한국불교전서

무용당유고(無用堂遺稿) / 無用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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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당유고無用堂遺稿
무용집無用集 서문
찬국 옹餐菊翁은 말한다.
죽음과 이웃하기가 두려워서 다섯 번이나 땅을 옮겼으나 가는 곳마다 온갖 재앙을 만나 피하기에 급급하였다. 이에 구두초약狗竇抄藥1)을 하는 것도 아예 포기한 채 오직 숙세宿世의 인연으로 유희삼매遊戱三昧(無碍自在)의 경계에서 노닐며, 그동안 감추어 둔 붓에 애써 입김을 불어넣어 조계曹溪의 무용無用 선자禪子를 간파看破하는 것으로 공안公案을 삼았다.
지난해에 어떤 객客이 무용의 시문 몇 구절을 외우며 옹翁에 대하여 묻기를, “이이는 그의 스승인 백암栢巖과 비교해서 어떠한가?”라고 하기에 “혜가慧可가 정수精髓를 얻었다는 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2)라고 하였다. 어떤 이는 어쩌면 저화비영咀華蜚英의 풍조3)에 휩쓸려 물든 것으로서, 그 집안에서 말하는 법진法塵4)에 돌아가지 않으면 칠원漆園(莊子)의 찌꺼기 법으로 돌아간다고 비평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그의 문집을 상고해 보건대, 대개 아무렇게나 지은 불협화음이 아니요, 백업白業(善業)에 마음을 정진한 뒤의 여가에 지은 아름다운 말들인데, 이 역시 금구목설金口木舌5)의 뜻에서 나와 방편으로 지은 것들이라고 하겠다.
시험 삼아 한두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가령 “나의 자취만을 알 뿐, 나의 근본은 알지 못하는데, 나는 문자 없는 광대한 경을 지니고 있다.”6)라는 『백암집栢巖集』의 서문으로 말하면, 저산杼山의 「방기필연문放棄筆硏文」에 나오는, “나는 그대를 부리느라 피곤하고, 그대는 나의 무지가 곤혹스러울 것이니, 내 장차 그대를 놓아주어 각기 본성에 돌아가게 하고자 한다.”7)라는 내용과 몸은 달라도 마음은 합치되었다고 할 것이요, “그대는 나랏일 애쓰는 북쪽에서 온 나그네요, 나는 내 한 몸 좋게 하는 남쪽에 누운 중이로세.”8)라는 방백方伯에게 올린 시의 구절로 말하면, 선월禪月이 월越과 촉蜀 두 지방을 나그네로 떠돌 적에 지은, “칼 하나 서릿발 위엄”이나 “점점 늙어 가기에 마음먹고 건너왔소.”9)라는 구절과 입은 달라도 소리는 똑같다고 할 것이니, 그러고 보면 과거가 아닌 오늘날, 중국이 아닌 이 땅에서 문사文士와 사인詞人을 인도하여 불타의 지혜에 들어오게 하고, 또 웅번雄藩의 패주覇主를 우습게 보며 세상의 영화를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말을 해도 좋을 것이다.
옹翁이 바야흐로 배사하어盃蛇河魚에 시달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베개를 밀치고 생기를 되찾았으니, 이는 거연居然히 유마 거사維摩居士가 문수文殊의 문병問病을 계기로

009_0342_c_01L[無用堂遺稿]

009_0342_c_02L1)無用集序

009_0342_c_03L
009_0342_c_04L
餐菊翁說怕死隣五遷其地刼刼百
009_0342_c_05L併拋狗竇抄藥唯是宿因游戱三昧
009_0342_c_06L勉噓已鞱之笔勘破曺溪無用禪子爲
009_0342_c_07L公案 [1] 歲客有誦數句顏語問翁是與
009_0342_c_08L其師栢巖何如答以慧可得髓暗模 [2]
009_0342_c_09L或者染連於咀華蜚英不歸渠家法
009_0342_c_10L則歸漆園贏法迺今按卷蓋非物
009_0342_c_11L於惉懘者精心白業餘力綺語金口木
009_0342_c_12L有方有便試拈一二如以徒知我
009_0342_c_13L不知我本我有廣大沒字經序柏巖
009_0342_c_14L則與杼山放棄筆硏文我疲爾役
009_0342_c_15L困我愚我將放汝各歸本性分身而
009_0342_c_16L合性如以賢勞王事北來客獨善其身
009_0342_c_17L南臥僧上方伯詩則與禪月客遊越蜀
009_0342_c_18L兩邦一劒霜寒之句垂垂老得得來之
009_0342_c_19L異口而同聲籍今易地可率勸文士
009_0342_c_20L詞人令入佛智又眇視雄藩覇主
009_0342_c_21L愽世榮韙矣翁方困盃蛇河魚不覺
009_0342_c_22L堆枕起生居然維摩居士因文殊疾
009_0342_c_23L{底}雍正二年全羅道順天府松廣寺留板本(東
009_0342_c_24L國大學校所藏)

009_0343_a_01L불이법문不二法門을 개시開示한 것과 같아서, 곧바로 씻은 듯이 그 의심이 몸에서 사라졌다.10) 아, 기器를 보여 주었으면 그 도道를 알아야 하고,11) 경지를 내어 주었으면(與竟) 안심安心을 해야 할 것인데,12) 단지 음풍농월(批風抹月)하는 솜씨를 가지고 우리 스님을 단정하려 들었단 말인가.
일찍이 목재牧齋 몽수蒙叟가 승려의 시권詩卷에 제題하면서 말하기를, “옛사람이, 승려의 시는 소순蔬筍의 기미氣味가 싫다고 하였다. 소순의 기미를 꺼려서 비리고 삭히고 살지고 맛있게 한다면, 승려의 본색本色은 다 사라져 버릴 것이니, 그렇다면 그런 시는 또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13)라고 하였다. 사공 표성司空表聖은 “시 읊을 줄 아는 승려도 속되다.”14)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더구나 승려이면서 시를 읊을 줄 모르는 경우야 또 어떻다고 하겠는가.
유몽득劉夢得이 말하기를, “사문沙門을 한어漢語로 번역하면 욕심을 떠난다(離欲)는 뜻이 된다. 욕심을 떠나면 사방 한 치 되는 마음에 1만 경치가 들어오게 되고, 일단 들어오고 나면 반드시 흘려보내는 곳이 있어야 하니, 그것을 바로 문사文詞로 드러내고 성률聲律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문이 된 자 가운데 욕심을 떠나지 못하고서 시를 잘 짓는 자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옹翁이 이 말을 재삼 음미하는 동안 마음속의 의혹을 없앨 수 있었다. 나의 공안公案을 해결하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었으므로 마침내 이를 취하여 문집의 서문으로 삼게 되었다.
알봉집서閼逢執徐(갑진년) 여월余月(4월) 하한下澣(하순)에 찬국 옹은 문희비재聞喜匪齋에서 쓰다.

009_0343_a_01L開示不二法門即灑然袪體噫 見器
009_0343_a_02L而知道與竟而安心是可但以批風抹
009_0343_a_03L月之工而槩師也㦲甞觀牧齋蒙叟題
009_0343_a_04L僧卷而曰昔人言僧詩忌蔬荀氣
009_0343_a_05L蔬荀之氣而腥膿肥厚之是嗜僧之本
009_0343_a_06L色盡矣詩于何有司空表聖有言
009_0343_a_07L吟僧亦俗而況僧而不解吟者乎劉夢
009_0343_a_08L得曰沙門華言離欲也離欲則方寸地
009_0343_a_09L虛而萬景入入必有所洩乃形于詞而
009_0343_a_10L遣乎聲律然則爲沙門者未有不能離
009_0343_a_11L而能工于詩者也翁也三復斯言
009_0343_a_12L犂怯于心勘破公案於是乎在遂取
009_0343_a_13L而弁諸簡

009_0343_a_14L
閼逢執徐余月下澣餐菊翁書于聞
009_0343_a_15L喜匪齋
  1. 1)구두초약狗竇抄藥 : 개구멍으로 음식을 들여오고 방 안에 틀어박혀 약방문藥方文이나 정리한다는 뜻으로, 남의 비방을 피하기 위하여 사람들과의 접촉이나 외출을 피하는 등 철저히 몸단속을 하면서 자숙自肅하는 것을 말한다. 당 덕종德宗 때 육지陸贄가 모함을 받아 충주별가忠州別駕로 폄직貶職된 뒤에 비방을 피하기 위하여 문을 흙으로 봉쇄하고(土塞其門), 김치와 같은 음식물도 모두 개구멍으로 들여오게 하는가 하면(鹽菜之類。 皆由狗竇而入。), 오직 방에 단정히 들어앉아서 고금의 약방문을 정리하여(端坐一室抄藥方) 50권으로 만들었다는 ‘합호피방闔戶避謗’의 고사가 있다.(『山堂肆考』 권81 「抄古方」)
  2. 2)혜가慧可가 정수精髓를~있는 일이다 : 혜가가 달마達磨의 정수를 얻은 것처럼, 무용도 백암의 정수를 얻어서 의발을 전해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말이다.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인 보리달마菩提達磨가 제자 4인의 경지를 점검하면서, 3인에게는 각각 나의 가죽(皮)과 살(肉)과 뼈(骨)를 얻었다고 한 뒤에, 마지막 혜가에 대해서는 나의 정수(髓)를 얻었다고 하며 의발衣鉢을 전수한 고사가 전한다.(『景德傳燈錄』 권3 「菩提達磨」)
  3. 3)저화비영咀華蜚英의 풍조 : 알찬 내용보다는 겉치레 위주로 꾸며서 명성을 드날려 보고자 하는 경박한 세태를 말한다. ‘저화咀華’는 한퇴지韓退之가 지은 「進學解」의 “향기 물씬한 미문美文에 흠뻑 젖고 그 꽃술을 입에 머금고 씹어서 문장을 짓는다.(沈浸醲郁。 含英咀華。 作爲文章。)”라는 구절에서 발췌한 것이고, ‘비영蜚英’은 『史記』 「司馬相如列傳」의 “꽃다운 명성을 드날리고 무성한 내용을 치달린다.(蜚英聲。 騰茂實。)”라는 말에서 발췌한 것이다.
  4. 4)법진法塵 : 불교 용어인 육진六塵의 하나로, 의식意識에 의해 생겨나는 제법諸法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제법이 정식情識을 오염시키는 까닭에 번뇌의 의미를 지닌 진塵이라는 말을 써서 법진이라고 한 것이다.
  5. 5)금구목설金口木舌 : 금 입에 나무 혀라는 뜻으로, 목탁木鐸을 가리키는데, 목탁을 쳐서 경계시키는 것처럼 성인의 가르침을 선양하여 대중을 계도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한나라 양웅揚雄의 『法言』 「學行」의, 공자의 도를 세상에 알리려면, “제유諸儒의 입을 금으로 하고 혀를 목으로 만드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莫若使諸儒金口而木舌)”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6. 6)나의 자취만을~지니고 있다 : 본서 하권 「백암 화상 문집 서문(栢庵和尙文序)」 말미에 나온다.
  7. 7)저산杼山의 「방기필연문放棄筆硏文」에~하고자 한다 : 저산杼山은 당대唐代의 저명한 시승詩僧인 교연皎然을 가리킨다. 장성長城 사씨謝氏의 아들로, 이름은 주晝이며, 사영운謝靈運의 10세손이라고 하는데, 호주湖州의 저산에 거하였으므로 저산이 그의 별칭이 되었다. 저서에 『內典類聚』ㆍ『杼山集』ㆍ『儒釋交遊傳』 등이 전한다. 『宋高僧傳』 권29 「杼山皎然傳」에, “그가 서울에 유력하면 공경公卿이 존중하고, 지방에 가면 방백方伯의 흠모를 받았다. 그리하여 처음에 시구詩句를 가지고 인도하여 불타佛陀의 지혜에 들어오게 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그의 행화行化하는 뜻이 본래 여기에 있었다.(凡所遊歷京師則公相敦重。 諸郡則邦伯所欽。 莫非始以詩句牽勸令入佛智。 行化之意。 本在乎茲。)”라는 말이 나오고, 또 붓과 벼루(筆硯)를 돌아보면서, “나는 그대를 부리느라 피곤하고, 그대는 나의 무지가 곤혹스러울 것이니, 수십 년 동안 서로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 더군다나 그대는 외물이니 사람에게 어찌 얽매이겠는가. 여기에 있어도 그만이요 여기를 떠나도 그만일 것이니, 이제 그대를 놓아주어 각기 본성에 돌아가게 하고자 한다.(我疲爾役。 爾困我愚。 數十年間。 了無所得。 況汝是外物。 何累於人哉。 住既無心。 去亦無我。 將放汝。 各歸本性。)”라고 말하고는 마침내 제자에게 출송黜送하도록 명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본문의 “放棄筆硏文”의 ‘筆硏’은 ‘筆硯’과 같다.
  8. 8)그대는 나랏일~누운 중이로세 : 본서 상권 〈방백에게 올리다(上方伯)〉에 나온다.
  9. 9)선월禪月이 월越과~마음먹고 건너왔소 : 선월은 당말唐末 오대五代의 승려로, 저명한 시인이요 화가인 관휴貫休를 가리킨다. 당나라 소종昭宗 건녕建寧 초에 오월吳越 지역에 갔을 때 오월왕吳越王을 자처하며 위세를 부린 진동군절도사鎭東軍節度使 전류錢鏐에게 올린 시 중에 “마루 가득 꽃에 취한 3천 명의 식객이요, 칼 하나 서릿발 위엄이 열네 고을에 떨치네.(滿堂花醉三千客。 一劍霜寒十四州。)”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전류가 ‘十四州’를 ‘四十州’로 고쳐 주면 만나겠다고 하자, “고을도 고치기 어렵고, 시도 고치기 어렵다. 한가한 구름과 외로운 학이 어느 하늘인들 날아갈 수 없겠는가.(州亦難改。 詩亦難改。 閒雲孤鶴。 何天不可飛耶。)”라고 하고는 즉시 행장을 꾸려 소매를 떨치고 떠났다는 고사가 전한다.(『山堂肆考』 권146 「善月投詩」) 그리고 소종昭宗 천복天復 연간에 촉蜀에 들어가자 전촉前蜀의 군주인 왕건王建이 예우하여 자의紫衣를 내리며 선월 대사禪月大師라고 칭하였는데, 그에게 지어 준 시에 “물병 하나 발우 하나 점점 늙어 가기에 1만 물 1천 산 마음먹고 건너왔소.(一甁一鉢垂垂老。 萬水千山得得來。)”라는 구절이 있었으므로 득득래 화상得得來和尙이라고 불렸다는 고사가 전한다.(『宋高僧傳』 권30, 『釋氏稽古略』 권3) 저서에 『西嶽集』이 있는데, 제자 담역曇域이 그 이름을 『禪月集』으로 고쳤다. 『古文眞寶』 전집前集 7권에 〈古意〉라는 제목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10. 10)옹翁이 바야흐로~몸에서 사라졌다 : 찬국 옹이 무용당의 진면목을 파악하지 못해 그동안 깊은 의혹에 잠겨 있었는데, 옛날 문병을 온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설했던 유마 거사維摩居士처럼, 어떤 객의 질문에 찬국 옹 자신이 대답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답을 찾아 의혹을 해소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배사하어盃蛇河魚’는 공연히 의심하여 생긴 속병을 말한다. 배사는 술잔 속의 뱀이라는 뜻으로, 근거 없이 의심하는 것을 말한다. 진晉나라 악광樂廣이 친구와 술을 마실 적에 그 친구가 술잔 속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오인하여 마음속으로 의심한 나머지 병이 들었다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는 병이 절로 나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晉書』 권43 「樂廣傳」) 하어河魚는, 물고기는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먼저 썩는다는 ‘하어복질河魚腹疾’의 준말로, 복통 혹은 고질적인 속병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또 인도 비야리성의 방장실方丈室에 거주하는 유마 거사가 중생의 병이 다 낫기 전에는 자신의 병도 나을 수 없다면서 드러눕자, 석가모니가 문수보살文殊菩薩 등을 보내 문병하게 하였는데, 여러 문답이 오가던 끝에 문수가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대해서 물었을 때 유마가 말없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문수가 탄식하며 “이것이 바로 불이법문으로 들어간 것이다.(是眞入不二法門也)”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維摩經』 「入不二法門品」에 나온다.
  11. 11)기器를 보여~알아야 하고 : 무용당이 남긴 시문을 통해서 그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그래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도道는 무형無形의 추상적인 도리를 뜻하고, 기器는 유형有形의 구체적인 사물을 뜻하는 중국 철학 용어인데, 『周易』 「繫辭傳」 상의 “형이상의 것을 도라고 하고, 형이하의 것을 기라고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라는 말에서 연유한 것이다.
  12. 12)경지를 내어~할 것인데 : 중국 선종의 2조 혜가慧可가 초조初祖인 달마達磨에게 “내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니 스승께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我心未安。 請師安心。)”라고 하자, 달마가 “그 마음을 가지고 와라. 너에게 편안함을 주겠다.(將心來。 與汝安。)”라고 하였는데, 혜가가 한참 뒤에 “그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覓心了不可得)”라고 하니, 달마가 “내가 너에게 이미 안심의 경지를 주었다.(吾與汝安心竟)”라고 한 안심법문安心法門의 고사가 전한다.(『景德傳燈錄』 권3)
  13. 13)목재牧齋 몽수蒙叟가~구할 것인가 : 목재 몽수는 전겸익錢謙益(1582~ 1664)의 호이다. 자字는 수지受之이고, 동간유로東澗遺老ㆍ강운 노인絳雲老人 등의 별호가 있다. 명나라 만력萬曆 38년(1610)에 진사進士에 오른 뒤 한림원편수翰林院編修에 제수되었고, 『神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있다가 청나라에 들어와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明史』를 편찬하는 부총재가 되었다. 순치順治 3년(1646)에 병을 핑계대고 귀향하였으며, 동 5년에 반청운동反淸運動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가 출옥한 뒤에 반청복명反淸復明의 비밀결사에 참여하여 황종희黃宗羲ㆍ이정국李定國ㆍ정성공鄭成功 등과 연대하였다. 시문에 능하여 문종文宗의 칭호를 받고 우산시파虞山詩派의 영수領袖가 되었으며, 오위업吳偉業ㆍ공정자龔鼎孶와 함께 강좌삼대가江左三大家의 한 사람으로 칭해졌다. 『初學集』ㆍ『有學集』ㆍ『牧齋集』 등 저작이 매우 많은데, 본문에 인용된 말이 그가 편찬한 『列朝詩集』 중에 나올 가능성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소순蔬筍의 기미氣味는 승려의 티가 보이는 것을 말한다. 소순은 채소와 죽순이라는 뜻으로, 승려처럼 채식을 하는 방외인方外人을 비유하는 말이다.
  14. 14)사공 표성司空表聖은~승려도 속되다 : 표성은 사공도司空圖의 자字이다. 당나라 시인 사공도가 지은 〈僧舍貽友〉라는 제목의 오언율시 3구와 4구에 “시 읊을 줄 아는 승려도 속되고, 춤추기 좋아하는 학도 끝내 낮아라.(解吟僧亦俗。 愛舞鶴終卑。)”라는 구절이 나온다.(『全唐詩』 권632)
  1. 1){底}雍正二年全羅道順天府松廣寺留板本(東國大學校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