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1003_T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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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_0258_b_01L
달마다라선경(達摩多羅禪經) 상권 - 030_0258_b_01L達摩多羅禪經卷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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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東晉) 천축(天竺)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한역
홍승균 번역 - 030_0258_b_02L 東晉天竺三藏佛陁跋陁羅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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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3업(業)은 선(禪)과 지(智)로써 일어남을 그 종지[宗]로 삼는다. 비록 그것이 정밀[精]하고 거침에 따라 달리 나뉜다고 하지만 계적(階籍)은 방식이 있다. 그러므로 길을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더라도 그 발길이 어지러워지는 일이 없으며, 세속을 혁신함에 있어서 힘쓰는 공(功)을 기다리지 않고도 고요함이 쌓이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를 경유하게 되면 깊숙한 경지에 나아가 은미(隱微)함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이 깊고 넓어서 궁구(窮究)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이치가 망령되거나 어두운 것이 아니므로 종지(宗旨)의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다. - 030_0258_b_03L夫三業之興,以禪智爲宗,雖精麤異分而階藉有方,是故發軫分逵塗無亂轍,革俗成務功不待積;靜復所由,則幽詣造微,淵博難究。然理不云昧,庶旨統可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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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이를 간략하게 본다면, 선(禪)은 지(智)가 아니므로 적(寂)의 끝을 말할 수가 없고, 또 지는 선이 아니므로 조(照)의 깊이를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禪)과 지(智)의 종요(宗要)는 곧 조(照)와 적(寂)을 이르는 것이니, 이것은 곧 서로 보완관계를 이루는 것으로서 곧 조는 적을 떠나지 않고 적은 조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감응하면 함께 노닐고 호응하면 같이 지향하는데, 그 공(功)이 쓰임에 있어서 현묘하여 서로 더불어서 저 만법(萬法)을 기르는 것으로서 실로 이것은 그 묘물(妙物)인 것이다.
그래서 군동(群動)을 운전하여 일(一)에 이르되 유(有)가 아니고, 저 대상(大像)은 아직 그것이 형상을 이루기 전에 확연하되 무(無)가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생각함이 없고 작위함이 없으나 작위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씻어서 마음의 혼란함을 진정하는 자는 이를 통하여 그 생각함을 연마하고, 깨달아서 그 미묘함에 들어간 자는 이를 통해서 그 신통함을 끝까지 하는 것이다. - 030_0258_b_08L試略而言:禪非智無以窮其寂,智非禪無以深其照。然則禪智之要,照、寂之謂,其相濟也。照不離寂,寂不離照;感則俱遊,應必同趣。功玄於在用,交養於萬法。其妙物也,運群動以至一而不有,廓大像於未形而不無,無思無爲而無不爲。是故洗心靜亂者,以之硏慮;悟徹入微者,以之窮神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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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약 장차 그 문(門)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그 근기가 섭회(攝會)에 있다. 그 이치가 현묘(玄妙)하고 그 헤아림이 광대하여 도(道)가 문장[文]에 숨어 버릴 경우, 이것은 곧 아난(阿難)이 곡진히 받는 저 음조(音詔)로서 적절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이를 영부(靈符:마음의 집)에 감추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마음이란 원래 일정한 법도가 없고 그 변화가 다양하며, 그리고 수(數)란 정해진 형상이 없고 그 느낌을 따라서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축(天竺)을 교화하여 행함에 있어서 장(匠)이 있음을 봉함(封緘)하여 유심(幽深)한 관문을 열 수가 없으므로 공연히 그 뜰만 엿볼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따라서 본다면 이치는 행(行)하고 장(藏)함이 있고 도(道)는 헛되이 전수하는 것이 아니니, 그것이 참으로 그럴 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 030_0258_b_16L若乃將入其門,機在攝會,理玄數廣,道隱於文。則是阿難曲承音詔,遇非其人,必藏之靈府。何者?心無常規,其變多方;數無定像,待感而應。是故化行天竺,緘之有匠;幽關莫闢,罕闚其庭。從此而觀,理有行藏,道不虛授,良有以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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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_0258_c_01L여래니(如來泥)께서 말씀하셨다.
“오래지 않아 아난(阿難)이 그 공행(共行)을 제자인 말전지(末田地)에게 전할 것이며, 말전지는 이를 사나바사(舍那婆斯)에게 전할 것이다.이들 세 응진(應眞:아라한)은 다들 지극한 원(願)을 타고 그윽한 가운데서 옛날에 계합(契合)하니, 그 공(功)이 말[言] 밖에 있다. 그리하여 저 경(經)이 변론하여 밝히지 않은 것은 반드시 어두운 길처럼 그 장(匠)이 없을 것이며 잔약(孱弱)하여 차별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우바굴(優波崛)이 있어서 약하면서도 뛰어나고 현명하여 그 지혜가 세상의 모범을 잇고 그 재주가 벼슬을 받는 것보다도 높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치에 접촉해서 간략함을 따라서 8만의 법장(法藏)을 보존하여 간직함에 오직 요령이 있을 것이니, 5부(部)의 나뉨이 여기서부터 비로소 시작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를 인하여 추론해 보면 형운(形運)을 따라 폐하고 흥하되 스스로 조짐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용(神用)으로 말하면 걸음이 그윽하여 자취가 없고 오묘한 움직임을 찾기가 어려워서 추솔(麤率)함을 집적거려서 이상(異常)만을 낳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가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 030_0258_b_22L如來泥曰未久,阿難傳其共行弟子末田地,末田地傳舍那婆斯。此三應眞咸乘至願,冥契于昔,功在言外;經所不辯,必闇軌無匠,孱焉無差。其後有優波崛,弱而超悟,智紹世表,才高應寡,觸理從簡。八萬法藏,所存唯要;五部之分,始自於此。因斯而推,固知形運以廢興自兆,神用則幽步無迹。妙動難尋,涉麤生異,可不愼乎?可不察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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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로부터 사변(事變)에 감응하여 구전(舊典)을 생각하게 되는 자가 있을 것이니, 그런 자들이 저들 5부(部)의 학(學)에 모두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 대법(大法)이 장차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고 이치가 심오함을 개탄하면서 드디어 각각 선경(禪經)을 술찬(述讚)하여 성대한 사업을 융숭(隆崇)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가르침에 있어서 무수한 방편을 사용해서 적연(寂然)함을 구할 것이지만 그것은 오직 고요하고 고요하기만 해서 그 원리는 역시 하나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가지를 찾아서 그 뿌리를 구하는 자는 많겠지만 그 근본을 통섭(統攝)하여 지말(枝末)을 운용하는 자는 적을 것이다. 그래서 더러는 장차 가다가도 이르지 못하고 더러는 그 방법만을 지키어 변하지 못할 것이다. - 030_0258_c_09L自茲已來,感於事變,懷其舊典者,五部之學,竝有其人。咸懼大法將頹,理深其慨,遂各述讚禪經,以隆盛業。其爲教也,無數方便,以求寂然;寂乎唯寂,其揆一耳。而尋條求根者衆,統本運末者寡;或將曁而不至,或守方而未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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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까닭으로 해서 경(經)을 만원(滿願)의 덕(德)이라고 일컬을 것이며, 모든 일[事]의 바람이라고 높일 것이다. 그런데 그 성지(聖旨)를 탐구하여 본다면 다만 장점만을 온전히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점 또한 이를 구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저들 5부의 업(業)이 서로 달라서 각각 그에 따른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러나 사람이란 영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도가 혹 융성하기도 하고 혹 쇠퇴하기도 할 것이며, 그것이 각각 흥하고 패하는 때를 따라 서로가 바뀌어 가며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어느 것이 크다거나 적다거나 하여 붙이는 명목이 고정된 것일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또 절(節)에 달하여 변(變)을 잘하면 출처(出處)하는 바가 경계가 없어서 그 이름을 감추어 버리고 자취를 지워버린다면 들리는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자는 다시 이름을 붙일 수가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저 부(部)로 나눈 것 또한 그 이름이 아닌 것으로서 이처럼 부로 나눈 것이고, 또한 그 밖에 따로 어떤 종문(宗門)을 벗어나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임이 분명하다 하겠다. - 030_0258_c_15L是故經稱滿願之德,高普事之風,原夫聖旨,非徒全其長,亦所以救其短。若然,五部殊業,存乎其人。人不經世,道或隆替,廢興有時,則互相昇降。小大之目,其可定乎?又達節善變,出處無際;晦名寄迹,無聞無示。若斯人者,復不可以名部。分旣非名,部之所分亦不出乎其外,別有宗明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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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_0259_a_01L매양 저 큰 가르침(불교)이 동쪽으로 전파됨에 있어서 선(禪)의 수가 더욱더 적다는 사실에 대하여 이를 개탄하여 왔다. 3업(業)이 통서(統緖)가 없어서 그 도가 거의 패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전에 구마기바(鳩摩耆婆:구마라집)가 마명(馬鳴)이 지은 것을 선양하여 드디어 이 업(業)이 있게 되었다. 비록 그 도가 아직 무르익지는 못하였지만 무릇 이것이 바로 저 산을 만들고자 지금 한 소쿠리의 흙을 담아다 부은 격이라 하겠으니, 그렇다면 장차 그 때가 올 것이라 이것이 기뻐 그 기취(奇趣)가 감격스럽다 하겠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제승(制勝)의 의론을 버리고 불언(不言)의 변(辯)을 따랐다. 그리하여 드디어 승나(僧那:사홍서원)의 지적(至寂)을 입을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기로 맹세하고 그 덕을 생각하여 이를 잊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저 유훈(遺訓)이 지금 여기에 남아 있는 것이다. - 030_0258_c_23L每慨大教東流,禪數尤寡,三業無統,斯道殆廢。頃鳩摩耆婆宣馬鳴所述,乃有此業;雖其道未融,蓋是爲山於一蕢。欣時來之有遇,感奇趣於若人,捨夫制勝之論,而順不言之辯,遂誓被僧那至寂爲已任,懷德未忘,故遺訓在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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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요지를 말한다면 아직 어떤 상(象)이 나타나기 전에 크게 이루기를 도모하는 것으로서 미언(微言)을 열어서 본체(本體)를 높인 것이다. 그리하여 색(色)에 미혹하여 덕에 어긋남을 깨달아서 6문(門)을 막아 환란(患亂)을 잠재웠으며, 성냄이 본성을 해친다는 것에 통달하여 나와 남을 동일시해서 이것을 마음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드디어 이족(異族)이 동기(同氣)로 그 형상을 바꾸고 자취를 만들었으며, 깊이 연기(緣起)에 들어가서 생사의 경계를 보았다. 그리하여 곧 9관(關)을 용진(龍津)에다 열어서 3인(忍)을 뛰어넘어 지위가 올라갔으며, 번뇌의 습기(習氣)가 무생(無生)에 엉기고 육체적인 고통들이 신화(神化)에서 그 종결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아무것도 따라서 생기는 것이 없지만 그러나 무엇이든 생기지 않는 것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들이 생기면서도 생기는 것이 없는 것이다. - 030_0259_a_06L其爲要也,圖大成於未象,開微言而崇體;悟惑色之悖德,杜六門以寢患;達忿競之傷性,齊彼我以宅心。於是異族同氣,幻形造迹;入深緣起,見生死際。爾乃闢九關於龍津,超三忍以登位;垢習凝於無生,形累畢於神化。故曰無所從生,靡所不生,於諸所生,而無所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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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여기서 번역하는 것은 달마다라(達摩多羅)와 불대선(佛大先)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분들은 서역(西域)의 뛰어난 분들로서 바로 선훈(禪訓)의 종장(宗匠)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경요(經要)를 수집해서 대승을 발하기를 권면하였다. 그러나 홍교(弘敎)가 서로 같지가 않기 때문에 서로들 자세하고 간략한 차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달마다라가 모든 편장(篇章)들을 모아서 이를 같은 도(道)로 만들어서 항하사와 같은 다양한 것들을 한 가지 빛깔로 열어 놓았다.
그런데 그가 본 관점은 곧 일어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소멸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록 가고 오는 것이 아무리 한정된 경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찍이 진여(眞如)를 벗어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색(色)이 진여를 떠난 적이 없고 진여가 색을 떠난 적이 없으니, 색이 곧 진여이며 진여가 곧 색인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 030_0259_a_13L今之所譯,出自達摩多羅與佛大先。其人西域之儁,禪訓之宗;搜集經要,勸發大乘。弘教不同,故有詳略之異。達摩多羅闔衆篇於同道,開一色爲恒沙。其爲觀也,明起不以生,滅不以盡,雖往復無際,而未始出於如。故曰:“色不離如如不離色;色則是如,如則是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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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_0259_b_01L그리고 불대선께서 그 근원을 맑게 하여 흐름을 이끌어 놓았으므로 그것이 차츰 흘러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에 두 가지 도로부터 감로의 문을 열어 놓았으니, 곧 4의(義)를 풀이하여 미망(迷妄)으로부터 돌아오도록 하였으며, 돌아올 길을 열어 주어서 이를 영회(領會)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음계(陰界)를 분별하여 이를 바른 관점으로 이끌어 주었으며, 연기(緣起)에 대하여 이를 시원스럽게 흩어버려서 스스로 우열을 가릴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근원을 추구하여 그 종말에 돌아옴으로써종극(終極)의 오묘함을 찾도록 하였다. 그러나 종극이란 그것이 다하는 것이 아니니, 또한 다하게 되는 것도 아니어서 이것을 일러 무진(無盡)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래의 무진법문(無盡法門)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그 도(道)가 3승(乘)을 통괄하고 그 지혜가 10지(地)를 통달하지 않고서야 누가 능히 그 현근(玄根)을 법신(法身)에다 통개(洞開)할 수 있고, 그 종일(宗一)을 무상(無相)에다 귀숙(歸宿)시킬 수가 있겠으며, 그리하여 정(靜)이 비추어 주지 않는 곳이 없고 동(動)이 적(寂)을 떠나지 않도록 할 수가 있겠는가? - 030_0259_a_20L佛大先以爲澄源引流,固宜有漸,是以始自二道,開甘露門;釋四義以反迷,啓歸塗以領會。分別陰界,導以正觀;暢散緣起,使優劣自辯。然後令原始反終,妙尋其極。其極非盡,亦非所盡,乃曰無盡,入于如來無盡法門。非夫道冠三乘,智通十地,孰能洞玄根於法身,歸宗一於無相,靜無遺照,動不離寂者哉!庾伽遮羅浮迷,譯言修行道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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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행방편도안나반나념퇴분(修行方便道安那般那念退分) - 030_0259_b_06L修行方便道安那般那念退分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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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세존께 예배를 올리니
타오르던 번뇌가 사라지는구나.
유전(流轉)하여 퇴주(退住)하는 자를
승진(升進)의 도로써 제도하네. -
030_0259_b_07L前禮牟尼尊,
熾然煩惱滅,
流轉退住者,
度以升進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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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묘한 법을 수행하여
퇴주의 허물에서 벗어나고
모든 악을 멸하여
모든 공덕들을 이루어 내리라. -
030_0259_b_09L 修行微妙法,
能離退住過,
亦滅一切惡,
成就諸功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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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세존께서는 법상(法相)을 잘 아시고 여실(如實)한 지혜를 얻어서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멸하시고 뜨거운 불구덩이로부터 벗어나 바라밀의 배를 타고 한량이 없는 고해(苦海)를 건너셨다. 그리고 본원(本願)의 큰 자비의 힘을 행하셨으므로 중생들을 버리지 않으셨으며, 모든 수행하는 자들을 위해서 일찍이 없던 법을 설하시어 모든 제도 받지 못한 자들을 제도해서 그 안온(安隱)함을 얻도록 하셨다.
이를 일러서 두 가지의 감로문(甘露門)이라고 하는데, 각각 그 두 가지의 길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방편도(方便道)이고, 둘째는 승도(勝道)이다. 이것은 청정함을 구족해서 심심(甚深)하고 미묘하여 능히 모든 수행하는 자들로 하여금 3퇴(退)의 법으로부터 벗어나서 주박(住縛)을 멀리 여의고 승진(升進)을 증익하도록 하며, 결정(決定)을 성취해서 생사의 고통을 끝내고 구경 해탈하도록 하는 동시에 중생들의 오랜 어리석음[癡冥]을 제거하여 주는 것이다. - 030_0259_b_10L佛世尊善知法相,得如實智慧,滅煩惱盛火,出熾然之宅,乘諸波羅蜜船,度無量苦海。以本願大悲力,故不捨衆生,爲諸修行,說未曾有法,度諸未度,令得安隱,謂二甘露門。各有二道:一、方便道,二曰、勝道。淸淨具足,甚深微妙,能令一切諸修行者出三退法,遠離住縛,增益升進,成就決定,盡生死苦,究竟解脫,兼除衆生久遠癡冥。
- 030_0259_c_01L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존자 대가섭(大迦葉)과 존자 아난(阿難)과 존자 말전지(末田地)와 존자 사나바사(舍那婆斯)와 존자 우바굴(優波崛)과 존자 바수밀(婆須蜜)과 존자 승가라차(僧伽羅叉)와 존자 달마다라(達摩多羅) 내지 존자 불야밀다라(不若蜜多羅) 등 모든 법을 간직한 자들이 이와 같은 지혜의 등불을 차례로 전하여 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내가그 들은 바를 따라서 이에 관한 뜻을 설하는 것이다.
- 030_0259_b_19L佛滅度後,尊者大迦葉、尊者阿難、尊者末田地、尊者舍那婆斯、尊者優波崛、尊者婆須蜜、尊者僧加羅叉、尊者達摩多羅,乃至尊者不若蜜多羅,諸持法者,以此慧燈,次第傳授,我今如其所聞而說是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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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들은 바대로
수행의 경지를 풀어 설하노니
방편과 승구경(勝究竟)이
수행에서 생기는 것과 같다. -
030_0259_c_02L我今如所聞,
演說修行地,
方便勝究竟,
如其修所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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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법(善法)을 수행하는 데에는
먼저 네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하니,
퇴감(退減)과 주(住)와 승진(昇進)과
모든 공덕(功德)을 결정하는 것이다. -
030_0259_c_04L修行於善法,
先當知四種,
退減住升進,
決定諸功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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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만약 수행이 퇴감할 때에
주법(住法)이 생기지 않게 한다고 해도
역시 승진은 불가능한 것이니
마땅히 이것을 지금 대강 설하리라. -
030_0259_c_05L修行退減時,
令住法不生,
亦不能升進,
是今當略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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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평등한 마음을 일으킨 다음
자비로운 마음의 관(觀)을 익히고 행하여
잠깐 동안이라도 성냄[瞋恚]의 마음을 그치고
잠시 중지하여 행해지지 않도록 한다. -
030_0259_c_06L先當起等意,
習行慈心觀,
須臾止瞋恚,
令暫息不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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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가 잠깐 멈추면
다음에 시라(尸羅:戒)를 깨끗이 하고
시라가 이미 깨끗해지면
삼매(三昧)가 그 가운데에서 일어나리라. -
030_0259_c_08L 煩惱暫止息,
次當淨尸羅,
尸羅旣淸淨,
三昧於中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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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를 이미 닦아서 일으켰으면
응하고 불응함을 관찰하고
응하고 불응함을 잘 안다면
응하여 짓는 바를 향해 닦아야 한다. -
030_0259_c_09L三昧已修起,
觀察應不應?
善知應不應,
修向所應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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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응하여 짓는 바를 수행하되
마음을 매어 전념하라.
이미 그곳을 즐길 수 있으면
올바르게 관찰하여 풍상(風相)에 의지하라. -
030_0259_c_10L旣向所應作,
專念繫心處,
已能樂彼處,
正觀依風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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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르게 관찰하여 풍상에 의지할 때에
아직도 마음이 어지러이 치달으면
마음을 그치게 하여 호흡에 드는 것을안반(安般)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견(見)이고, 둘째는 둔근(鈍根)에 접촉되는 불견(不見)이다.
말을 길들여서 매어둠과 같이 한다. -
030_0259_c_12L 正觀依風時,
其心猶馳亂,
止心在入息安般者二種:一見,二觸鈍根不見,
如繫調御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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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그치게 하여 쉬게 되었다면
바르게 사유하여
차가움과 따뜻함, 가벼움과 무거움
유연함과 거침, 껄끄러움과 매끄러움 등을 관찰한다. -
030_0259_c_13L心旣止入息,
思惟正憶念,
冷暖與輕重,
柔軟麤澀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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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여 분명하게 깨달아 알아서
이를 따라서 잘 조적(調適)해야 한다. -
修行諦覺知,
隨順善調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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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접촉하여 깨닫지 못하면
이것을 수행퇴(修行退)라 한다. -
030_0259_c_15L於觸復不了,
是說修行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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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세면서 둘이라 하고
둘을 세면서 하나라고 하고
아홉에 이르러서도 혼란이 생긴다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
030_0259_c_16L數一以爲二,
數二以爲一,
至九猶錯亂,
是說修行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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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이처럼 수행퇴를 하다가
처음부터 다시 세기 시작하여
열까지 세어서 만족하면
모든 허물의 행을 멀리 여의게 된다. -
030_0259_c_17L若於修行退,
更數從初起,
十數滿足者,
遠離諸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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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지 않거나 지나치게 닦는다면
다른 수행이 생길 수도 있으니
이같이 여러 잘못이 생기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
030_0259_c_19L不修與過修,
或有異修起,
有此諸過生,
是說修行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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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함에 만약 수식(數息)을 함께하면
마음에 혹란(惑亂)이 생기기도 한다.
그 혹란이 증장한다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
030_0259_c_20L修行若俱數,
心據生惑亂,
惑亂若增長,
是說修行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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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식(氣息)이 통하여 흐르지 못해서
얼굴과 콧등에 충격이 오면
머리와 이마가 모두 괴롭고
속에서 회오리바람이 일기도 한다.
호흡이 흩어져 정도(正道)를 잃었는데
그래도 이를 고칠 줄을 모른다면
몸에서 심한 번열(煩熱)이 치솟아서
마음이 사뭇 혼란하여진다. -
030_0259_c_21L氣息不通流,
衝擊於鼻面,
頭頂悉苦痛,
內或絞風起,
息亂失其道,
而彼不知治,
身體極燒熱,
其心生憒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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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_0260_a_01L
네 종류가 이미 착란을 일으키면
바람에 의지함이 어그러져 다투리라. -
030_0260_a_01L四種旣錯亂,
依風極違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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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여 수식을 하려고 해도
좋은 방편이 되지는 못한다.
이것을 대치(對治)하는 방법을 모르면
반드시 빠르게 퇴감하게 되리라. -
030_0260_a_02L修行欲令息,
而不善方便,
不知對治法,
是必疾退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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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숨을 인연하여 수행하려 해도
도리어 날숨을 인연하게 된다.
날숨을 인연하여 수행하려 해도
도리어 들숨을 인연하게 된다. -
030_0260_a_03L修行緣入息,
而反緣出息,
修行緣出息,
而反緣入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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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에 마음이 깨끗해지면
이것이 마땅히 수행의 과보이리라. -
030_0260_a_04L於二心俱淨,
是應修行果。
-
고요하게 머물러 정의(定意)가 생기면
다시금 새로이 수식을 구해야 한다.
이와 같은 잘못들이 있음을
모두 수행퇴라 한다. -
030_0260_a_05L寂止定意生,
而復更求數,
有此諸過謬,
是皆修行退。
-
급하게 헐떡이며 수식관을 한다면
이는 곧 생각을 흩어지게 한다.
그리하여 흩어진 생각으로
수행하면 마음에 광증(狂症)을 일으키게 된다. -
030_0260_a_06L急喘而安般,
則令念錯亂,
由是錯亂念,
修行心發狂。
-
이처럼 마음이 광증을 일으켜
응하고 불응함을 알지 못하고
두 가지에 분별이 없으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
030_0260_a_08L其心發狂故,
不知應不應,
於二無分別,
是說修行退。
-
수행하여 수식[數]이 이뤄지면
호흡이 가는 대로 따라서[隨] 가게 된다.
가는 곳을 따라 곳곳에 머물고
저 머문 곳에서 잘 관찰해야 한다. -
030_0260_a_09L修行數已成,
息去亦隨去,
去已處處住,
於彼善觀察。
-
관찰이 이뤄지면 호흡을 되돌리고
되돌리고 나면, 청정(淸淨)이 일어나게 된다. -
030_0260_a_10L旣觀令息還,
還已起淸淨。
-
이 여섯 가지를 잘 알지 못하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
030_0260_a_11L不善知六種,
是說修行退。
-
호흡의 길고 짧음을 모두 분별하니
몸이 두루하여 모조리 깨달아 알고
몸을 관찰하는 수행이 차츰 쉬게 되면
일체에 응하여 깨닫게 된다. -
030_0260_a_12L長短悉分別,
遍身盡覺知,
身行漸休息,
一切應決了。
-
이것을 잘 알지 못하면
이것을 곧 수행퇴라 한다.신념처(身念處)의 4승(勝)을 마친다.
기쁨을 알고 또한 즐거움을 알아서
방편의 뜻을 부지런히 행해야 한다.
마땅히 다시 심행(心行)을 제어하여
요동함에 이르지 않게 한다.수념처(受念處)의 4승을 마친다. -
030_0260_a_13L於此不善知,
是令修行退身念處四勝竟。知喜亦知樂,
勤方便意行,
當復制心行,
令不至掉亂受念處四勝竟。
-
다음으로 분별하여 마음을 알아
수행하여 바르게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또 기쁜 마음을 일으키면
되돌려 다시 섭수하여 정(定)에 들어가야 하니 -
030_0260_a_16L次分別知心,
修行正觀察,
又生欣悅心,
還復攝令定。
-
이것은 부정(不定)의 마음이 아니고
이미 마음이 정에 들면 해탈하게 된다.심념처(心念處)의 4승을 마친다. -
030_0260_a_17L非是不定心,
定已心解脫心念處四勝竟。
-
해탈을 잘 수행하는 자는
마음을 퇴몰(退沒)시키지 않으니
만약 퇴감(退減)의 분에 든다면
해탈하는 일이 있을 수 없으리라. -
030_0260_a_18L善修解脫者,
不令心退沒,
若入退減分,
則無有解脫。
-
무상(無常)과 단(斷)과
이욕(離欲)과 멸진(滅盡)을 관찰하여
날숨과 들숨이 멸하면
이를 수행승(修行勝)이라 이름한다.이 4상(相)은 법념처(法念處)와 비슷하다. -
030_0260_a_19L觀察無常斷,
離欲與滅盡,
出息入息滅,
是名修行勝 此四相似法念處。
-
이와 같은 열여섯 가지의 행이
자재로이 마음을 회전하면 -
030_0260_a_21L如是十六行,
自在心迴轉。
-
각(覺)과 촉(觸)을 얻으리니
견(見)을 얻음도 역시 그러하리라. -
覺觸之所獲,
見得亦復然。
-
만약 견(見)과 촉(觸)에 대하여
그 분제(分際)를 잘 알지 못한다면
이 과실을 반드시 알아서
지혜를 닦아 후퇴함이 없게 해야 한다. -
030_0260_a_22L若於見與觸,
不善識分際,
是過應當知,
無智令修退。
-
030_0260_b_01L
수행하여 위로 증진하면
마땅히 아래에 인연하지 않으니
아래에 인연함도 이와 같아서
위로의 증진에 응하지 않는다. -
030_0260_b_01L修行上增進,
不應緣於下,
緣下亦如是,
不應上增進。
-
만약 두 가지의 증진을 보면
마음이 굳게 머물러서 평등하게 관찰하게 된다.
여기 마음이 머물면 스스로 이루어
다시 수행하던 곳으로 돌아오리라. -
030_0260_b_02L若見二增進,
心住而等觀,
任之則自成,
還到修行處。
方便道安般念退分第一竟。
-
2. 수행승도퇴분(修行勝道退分) - 030_0260_b_04L修行勝道退分第二
-
뛰어난 염(念)을 성취했더라도
게으르면 결국 침몰하리라.
이것이 곧 퇴상(退像)이니
구하는 바를 감내하지 못한다. -
030_0260_b_05L勝念已成就,
懈怠竟沈沒,
是則爲退像,
無堪於所求。
-
불염오(不染汚)와 무기(無記)의
모든 번뇌의 퇴전(退轉)을 일으켜
번뇌의 더러움과 열기(熱氣)가 생기니
이로부터 정견(正見)을 잃게 된다. -
030_0260_b_07L 不染污無記,
起諸惱惱退,
垢濁熱炎生,
由是失正見。
-
요동하거나 아니면 빗장을 잠가
들뜨고 휘날리고 거칠고 껄끄럽고 미끄러지는
이와 같은 다섯 가지 퇴감(退減)의 모습을
수행하여 마땅히 분별해야 하리라. -
030_0260_b_08L 振掉或關鑰以灼反,
浮飄麤澀滑,
是五退減相,
修行應分別。
-
멀리 보아도 바라는 바가 끊어졌고
보이던 것도 이미 추락을 하여
돌아보면 깊고 험한 것들만 보이니
이런 것이 모두 퇴감의 모양이다. -
030_0260_b_09L望遠絕所悕,
有見已墜落,
還顧睹深嶮,
是皆退減相。
-
긴 병에 외우는 것을 그치고 다투니
업(業)이 많아서 멀리 돌아다니는구나.
그때에 해탈의 종자가
바로 다섯 가지 퇴감의 인(因)이다. -
030_0260_b_11L 長病誦止諍,
多業遠遊行,
彼時解脫種,
是五退減因。
-
신(信)ㆍ계(戒)ㆍ문(聞)ㆍ사(捨)ㆍ혜(慧)
이것에서 점점 쇠퇴하네. -
030_0260_b_12L信戒聞捨慧,
於是漸衰退。
-
몸이 무겁고 혼미하고 둔하고
잠에 빠지고 침몰하는
이 다섯 가지가 수행에서의 퇴전의 모양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
030_0260_b_13L身重與惛鈍,
耽睡及沈沒,
是五應當知,
修行退轉相。
-
겁나고 두려워서 머뭇거리며
놀랍고 두려워 기쁘지가 않으며
욕망을 여의는 데 게으르면
수행으로 회향하지 못한다. -
030_0260_b_15L 恐怯多猶豫,
驚畏不欣樂,
懈怠離所欲,
不迴向修行。
-
익히지 않거나 지나치게 익히는 것
이 두 가지는 모두 잘못된 것이다.
그때에는 해탈의 종자이던 것이
지금은 수행의 퇴전이다. -
030_0260_b_16L不習過修習,
是二俱爲失,
彼時解脫種,
於是修行退。
-
상(相)을 여읜 삼매의 즐거움과
이염(爾炎)이 모두 소진하면
거칠고 껄끄러운 4대(大)의 종자가
되돌아와 몸 안에서 일어난다. -
030_0260_b_17L三昧離相樂,
爾炎皆消盡,
麤澀四大種,
還從身內起。
-
그리하여 흔들려 정념(正念)을 잃으면
이로부터 마음이 혼란스러워
그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지 못하니
이것은 수행으로부터 생긴다. -
030_0260_b_19L 掉動失正念,
由是意憒亂,
其心不恬靜,
斯從行者生。
-
모든 상서로운 모양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니
이와 같이 관상을 수행한다면
보고자 해도 매우 어려우리라. -
030_0260_b_20L 一切諸瑞相,
不顯現分明,
修行如是觀,
欲見爲甚難。
-
모든 근(根)이 모두 내달려
욕망을 따라서 인연함을 향하니
삿된 마음이 널리 유산(流散)하여
모든 경계에 즐겨 달라붙는다. -
030_0260_b_21L諸根悉馳縱,
隨欲向所緣,
邪意普流散,
樂著諸境界。
-
형체가 사라지고 마음이 슬프며 참담하니
그 몸이 모조리 불타오른다.
이와 같이 불길이 타오르면
이것을 우퇴(憂退)라고 한다. -
030_0260_b_23L形消意愁慘,
其身皆燒燃,
如是燒然者,
是說爲憂退。
-
030_0260_c_01L
그 방편을 정근(精勤)하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 회한이 생기리라.
응한 바를 따라 성취했음을 듣고
나아가려 해도 열악하여 할 수 없다. -
030_0260_c_01L方便不精勤,
後則生悔恨,
聞所應成就,
欲進劣無能。
-
기쁜 승처(勝處)로 나아가지 않고
승처를 보고도 이를 취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지혜가 없기 때문이니
이것을 수행퇴(修行退)라 한다. -
030_0260_c_02L不趣喜勝處,
或見勝不取,
皆由無智故,
是說修行退。
-
스스로 계율을 벗어나는 것을 생각하여
의심하고 뉘우치고 모든 깨달음에 이르는 데
뜻이 없어 자미(滋味)가 없으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
030_0260_c_04L自念有越戒,
疑悔及諸覺,
意淡無滋味,
是說修行退。
-
모든 허물로 정의(定意)가 약하니
삼매가 점점 소멸하고
마음이 흩어져 번뇌에 덮이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
030_0260_c_05L諸過定意羸,
三昧漸消減,
心亂蓋所覆,
是說修行退。
-
마음의 거조(擧調)와 순사(順捨)
시(時)ㆍ비시(非時)를 관하지 않고
머물고 일어남과 인연을 깨닫지 못하고
지혜가 없으므로 수행이 퇴전한다. -
030_0260_c_06L心擧調順捨,
不觀時非時,
不了住起緣,
無智故修退。
-
여섯 때[六時]의 행(行)을 알지 못하고
6계(界)도 또한 잘 알지 못하여
6교(巧)의 방편에 또한 어리석으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탐욕과 성냄의 깨달음과
10상(想)의 선교방편과
여러 선지(禪地)로 향하는 것을 얻음과
법심(法心)이 미망을 이해함
이런 모든 것을 차례로 건너야 함을
모르기 때문에 수행이 퇴전한다. -
030_0260_c_08L不知六時行,
六界亦不善,
亦愚六巧便,
是說修行退,
貪欲瞋恚覺,
十想巧方便,
得向諸禪地,
及法心妄解,
一切次第度,
無知故修退。
-
처(處)와 비처(非處)와
업보(業報)와 정수(正受)를 관하지 않고
선정(禪定)의 모든 해탈과
정미(淨味)를 어리석어 깨닫지 못하고 -
030_0260_c_11L不觀處非處,
業報及正受,
禪定諸解脫,
淨味愚不了。
-
모든 근(根)이 이르는 곳의 길을
성(性)이 이를 분별하지 않고
마음이 뭇 잡스런 모양들을 따르면
이것이 모두 무지(無知)의 퇴전이다. -
030_0260_c_13L諸根到處道,
性欲不分別,
心隨衆雜相,
是悉無知退。
-
고락(苦樂)의 빠른 길에서
그 마음이 취향(趣向)하지 않고
이처럼 그 마음이 미혹하면
필시 퇴전의 곳으로 향하리라. -
030_0260_c_14L於苦樂速道,
其心不趣向,
如是意迷惑,
必向退轉處。
-
기(起)와 주(住)와 기연(起緣)과
입(入)과 출(出)과 방편
이 6법(法)을 이루지 못하면
이것이 수행을 퇴전케 한다. -
030_0260_c_15L起住與起緣,
入出及方便,
六法不成就,
是令修行退。
-
법을 알고 또한 의(義)를 알고
때를 알고 또한 양(量)을 알고
자신을 알고 무리들을 알고
그리고 복가라(福伽羅)를 아는 것 등
저 일곱 가지를 어리석어 깨닫지 못하면
이것이 수행을 퇴전케 한다. -
030_0260_c_17L知法亦知義,
知時亦知量,
自知與知衆,
及知福伽羅,
於七愚不了,
是令修行退。
-
갖가지 악한 법을 일어나게 하고
낮고 천한 업(業)을 익혀 행하고
선하지 못한 벗을 가까이하면
이것이 수행을 퇴전케 한다. -
030_0260_c_19L興起諸惡法,
習行卑賤業,
親近不善友,
令是修行退。
-
응할 바를 잘못 설하고
사랑하는 것에만 즐겨 마음이 향한다면
오래지 않아서 수행이 퇴전하리란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
030_0260_c_21L錯說違所應,
受者心樂向,
當知是不久,
必於修行退。
-
머무는 장소와 사람과
침상과 침구 등 온갖 도구들
이들은 모두 즐길 것이 못되니
가까이하면 수행을 퇴전시킨다. -
030_0260_c_22L所止處及人,
牀臥等衆具,
斯皆非所樂,
近令修行退。
-
030_0261_a_01L
기쁘게 모든 잡스런 모양을 따라
닦는 바의 지혜를 감손(減損)시키면
인연이 있는 곳을 버려서
마음의 진실을 얻지 못한다. -
030_0260_c_23L喜隨諸雜相,
損減所修慧,
棄捨所緣處,
心不得眞實。
-
수행할 때 본래의 모양을 버리고
마음이 흩어져 외연(外緣)을 따른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해도
끝내 마음이 즐겁지 않으리라. -
030_0261_a_02L修行捨本相,
散心隨外緣,
雖欲還彼處,
意衆不復樂。
-
그리하여 그 기르는 양분(養分)을 잃고
그 마음이 하나로 정해지지 못해서
몸이 다시는 윤택하지 않고
기쁨과 즐거움 또한 생기지 않으리라. -
030_0261_a_03L 遂失長養分,
其心不一定,
身無復滋潤,
悅樂亦不生。
-
의지한 곳이 즐길 수가 없으니
몸과 마음이 다 같이 어지럽고
삼매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니
그 마음이 영원히 머물지를 못한다. -
030_0261_a_04L所依不可樂,
身意俱錯亂,
三昧不復起,
其心永不住。
-
이같이 머물지 못하는 마음이
수행을 퇴전케 한다.
애(愛)와 견(見)과 만(慢)과 선(禪)을 증가시키는
인연에 마음이 맛들여 집착하여 -
030_0261_a_06L如是不住心,
必於修行退,
愛見慢增禪,
於緣心味著。
-
이처럼 번뇌의 생각이 일어나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그리하여 마치 몸을 가시로 찌르는 듯하고
혹은 심히 떨리는 듯하고 -
030_0261_a_07L有此累念生,
是說修行退,
身如利刺害,
或復極振掉。
-
온몸이 모두 번뇌로 왕성해지니
뱀의 독이 전신에 퍼진 듯하리라.
이 같은 세 가지의 과악(過惡)이 있다면
반드시 그 수행이 퇴전하리라. -
030_0261_a_08L擧體皆煩壯,
如蛇毒充滿,
有此三過惡,
必於修行退。
-
얻지 못할 것을 얻은 듯 수행하면
다른 일들로 마음이 한가롭지 못하리라.
저 3퇴(退)의 법을 익혀 가까이하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
030_0261_a_10L得未得服行,
他務意不閑,
習近三退法,
是說修行退。
-
업(業)과 번뇌와 과보
이것을 세 가지 장애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해탈장(解脫障)이 있으니
이것이 수행을 퇴전케 한다. -
030_0261_a_12L業與煩惱報,
說是三障閡,
亦有解脫障,
是令修行退。
-
방편상(方便想)의 악행(惡行)과
삼마제(三摩提)의 행지(行地)
이런 것을 관찰하지 못하면
이것이 수행을 퇴전케 한다. -
030_0261_a_13L方便想惡行,
三摩提行地,
於彼不觀察,
是令修行退。
-
방편상(方便想)의 여러 지위와
삼매행(三昧行)과 그 밖의 것을
들은 대로 따라서 이를 희망한다면
곧 취(趣)를 일으켜 퇴전한다. -
030_0261_a_14L方便想諸地,
三昧行及餘,
所聞隨悕望,
則於發趣退。
-
생할 때 멸한다는 생각을 하고
멸할 때 생한다는 생각을 하면
두 생각이 모두 타당성을 잃어서
이것이 곧 수행을 퇴전케 한다. -
030_0261_a_16L生時作滅想,
滅時作生想,
二想俱當失,
是則修行退。
-
만일 법에 머무는 가운데
생멸한다는 생각을 하니
이러한 전도(顚倒)를 일으키면
이것을 수행퇴(修行退)라 한다. -
030_0261_a_17L若於住法中,
而作生滅想,
興此諸顚倒,
是說修行退。
-
들[入] 때 나간다는 생각을 하고
나갈 때 든다는 생각을 하니
이 두 생각에 머물러 생각하면
이것을 전도(顚倒)라 말한다. -
030_0261_a_18L入時作出想,
出時作入想,
二俱作住想,
是說爲顚倒。
-
번뇌의 결박을 끊어버리고
바른 방편을 수행하면
그에 연유하여 힘을 얻으므로
비슷한 모양의 모든 상이 나온다.
비슷한 모양이 이미 생기면
수행하는 마음이 그를 따라 구르리라.
그리하여 곧장 번뇌가 일어나리니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
030_0261_a_20L欲斷煩惱得,
修行正方便,
由彼得力故,
相似諸相生,
相似相旣生,
修行心隨轉,
煩惱卽時起,
是說修行退。
-
퇴과(退過)의 세찬 물결들이
수행하는 자를 떠돌아다니게 하니
나의 능력에 따라서
법해(法海)를 조금만 퇴전하게 하리라. -
030_0261_a_22L退過諸駛水,
漂浪修行者,
隨我力所能,
少量退法海。
-
030_0261_b_01L
한량이 없는 그 밖의 퇴과(退過)는
그 깊이를 측량할 수가 없으니
지혜가 밝아 깊은 자들은
마땅히 스스로 널리 일컬어 설하리라. -
030_0261_b_01L 無量餘退過,
是深非所惻,
諸深明智者,
自當廣稱說。
勝道中退分竟。
-
3. 수행방편도안반념주분(修行方便道安般念住分) - 030_0261_b_03L修行方便道安般念住分第三
-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만큼
퇴과(退過)를 설했노라.
이젠 주과(住過)를 설할 테니
수행하는 자는 잘 들으라. -
030_0261_b_04L如我力所能,
演說退過已,
今當說住過,
修行者善聽!
-
만약에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에
보는 것이 없고 깨달음도 없어서
방편의 구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는 곧 초문주(初門住)니라. -
030_0261_b_06L若於入出息,
無見亦無覺,
不解方便求,
是則初門住。
-
이미 저 문혜(聞慧)가 생기면
마땅히 사혜(思慧)의 염을 일으켜야 한다.
차례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어리석어 주(住)에 속박될 것이다. -
030_0261_b_07L聞慧旣已生,
應起思慧念,
不善解次第,
愚癡住所縛。
-
만약 세는[數] 것을 성취했다면
숨이 가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따르는 법을 알지 못하면
이것을 수행주(修行住)라 한다. -
030_0261_b_08L若數已成就,
息去應隨去,
不知隨順法,
是說修行住。
-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물었다.
누가 안반념(安般念)을 익혔는가?
어떤 비구가 대답하였다.
제가 그 염(念)을 닦아 익혔습니다. -
030_0261_b_10L如佛問比丘,
誰習安般念?
有一比丘答,
是念我修習。
-
네가 안반념을 닦아 익혔다면
너는 있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
그리고 다시 승묘(勝妙)가 있으니
마땅히 석가모니께서 설하신
방편도인 안반을 닦아야 한다. -
030_0261_b_11L汝有安般念,
不言汝無有,
復更有勝妙,
牟尼說當修,
方便道安般。
念住分第三竟。
-
4. 수행승도주분(修行勝道住分) - 030_0261_b_13L修行勝道住分第四
-
뛰어난 도는 바른 관찰로 닦아
상행(相行)의 염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승진(升進)의 법을 잘 알지 못하면
이는 곧 주(住)에 속박되는 것이다. -
030_0261_b_14L勝道修正觀,
相行念已成,
不善升進法,
是則住所縛。
-
소연(所緣)의 경계에 애착을 가지고
업에 나아가면 마음이 게을러진다.
이로부터 속박에 묶여
뛰어난 곳에 능히 이르지 못하리라. -
030_0261_b_16L愛著所緣境,
進業心懈怠,
由是縛所縛,
不能至勝處。
-
혹은 움직일 수가 없음이 있으니
연함도 아니고 견고함도 아니다.
혹은 강하고 지극히 탄탄하니
또한 금강상(金剛像)과도 같다. -
030_0261_b_17L或有不可動,
非軟亦非堅,
或强極牢密,
亦如金剛像。
-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장애가 있으면
나아가지도 못하고 물러나지도 못한다.
이것은 곧 주에 속박된 모양이니
도에 승진함을 멀리 여의게 한다. -
030_0261_b_18L有此五障閡,
不進亦不退,
是則住縛相,
遠離升進道。
-
어지러운 빛이나 검은 암흑이
차마 자신을 나타내지 못하니
탁한 기름을 태우는 빛과 같아서
보는 눈을 역시 가린다. -
030_0261_b_20L亂光及黑闇,
忍自身不現,
譬燃濁油光,
亦如翳目視。
-
광명이 나타나 발하지를 못하니
모든 기쁨과 즐거움을 배반해 버린다.
숨에 고요하게 머물러 즐거움이 분명하면
저들은 끝내 다시 생기지 않는다. -
030_0261_b_21L光明不顯發,
背捨諸喜樂,
寂止息樂分,
彼終不復生。
-
마치 견실한 물건이
유연한 모습을 나타냄과 같으니
이따금 수행하는 자들이
상(相)에 머무름 역시 그러하다. -
030_0261_b_22L猶如堅實物,
而有濡相現,
或時修行者,
住相亦復然。
-
030_0261_c_01L
상은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지 않으면서
하고자 함에 따라 생각[想]을 일으킨다.
비록 마음을 따르고자 하나
끝내 즐거워하는 바를 따르지 않는다. -
030_0261_c_01L相非隨所欲,
而起隨欲想,
雖欲令隨意,
終不從所樂。
-
상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이를 강제로 지니고자 한다면
이와 같은 어그러진 생각은
곧 주(住)에 속박된 것이다. -
030_0261_c_02L謂相非所留,
而欲强制持,
如是違反念,
則爲住所縛。
-
이와 같은 생각을 이루었다면
강제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하리라.
저들 가고 머무는 모양에 맡겨 둔다면
가장 뛰어난 곳에 능히 이르리라. -
030_0261_c_03L是想已成就,
當知非所制,
住彼去留相,
能到最勝處。
-
떠오르는 것을 가라앉히려 하고
떠오르는 것을 낮추려 하고
가는 것을 오게 하려 하고
머물러 있는 것을 머물지 않게 하려 하고 -
030_0261_c_05L欲令涌作沒,
或欲高爲下,
於去欲使來,
於住不欲住。
-
멸할 때에 멸하지 않게 하려 한다면
하고자 하는 것에 여여하지 못하니
수행을 생멸에 맡긴다면
행하는 바가 항상 전진(轉進)하리라. -
030_0261_c_06L滅時欲不滅,
終不如所欲,
修行住生滅,
所行常轉進。
-
모든 법의 모양이 이미 이루어지며
끝내 자상(自相)을 버리지 않는다.
만약 자상을 버리지 않으면
자상이 곧 그 현현(顯現)하리라. -
030_0261_c_07L諸法相已成,
終不捨自相,
若不捨自相,
自相則顯現。
-
얇은 껍질로 부정(不淨)을 덮어 가리어
몸의 더러움을 감추려고 하듯이
겉모양과 온갖 도구들과
이락(利樂)을 가지고 몸의 고통을 가린다. -
030_0261_c_09L薄皮覆不淨,
令不見身穢,
威儀及衆具,
利樂翳身苦。
-
비슷한 모양이 차례로 생겨나서
빈틈없이 앞뒤로 이어졌다.
항상하지 않은 모양에 가려지고 숨겨져
몸의 변화를 보지 못하게 한다. -
030_0261_c_10L相似次第生,
前後續無閒,
隱蔽非常相,
令不見身變。
-
베풀어 짓고 수(受)를 사용함에
나라는 아상(我相)을 섭지(攝持)한다.
능히 본사(本事)를 억념하여서
감춰진 몸이 내가 아님을 관한다. -
030_0261_c_11L施作服用受,
攝持吾我相,
能憶念本事
隱身非我觀。
-
이들 모든 비슷한 모양들을
수행하여 분별하지 않으면
그들에게서 애락(愛樂)을 일으켜서
공덕의 상(相)을 일으킨다. -
030_0261_c_13L是諸相似相,
修行不分別,
於彼起愛樂,
而生功德相。
-
마음이 사물에 집착하여 망상이 생기면
승진하기를 다시 즐거워하지 않으니
뛰어난 법에 나아가지 못해
주과(住過)가 날로 증장하리라. -
030_0261_c_14L染著妄想生,
不復樂升進,
不能取勝法,
住過日增長。
-
비아(非我)ㆍ상사상(相似相)
이들이 회전(廻轉)하지 않고
이와 같이 회전하지 않으면
수행자의 어리석음과 미혹함이 생긴다. -
030_0261_c_15L非我相似相,
此等不迴轉,
如是不迴轉,
行者癡惑生。
-
지혜가 없으니 번뇌에 머물러
그곳에 매달려 집착하니
집착하길 좋아하면 모든 허물이 생긴다.
이런 모양을 지금 설하리라. -
030_0261_c_17L無智住所縛,
繫著於彼處,
樂著生諸過,
是相今當說。
-
이염(爾炎)이 차츰 손괴(損壞)하여
나뉘고 서로 혼란하고
파산(破散)하여 화합이 어려우면
이것이 곧 주에 속박된 모습이다. -
030_0261_c_18L爾炎漸損壞,
分離及交亂,
破散叵和合,
是則住相縛。
-
몸으로 방편을 하지 않고
스스로 분리(分離)의 생각을 만들고
교란하거나 티끌처럼 부서지면
이것이 주(住)에 속박된 것이다. -
030_0261_c_19L於身不巧便,
自生分離想,
交亂或塵碎,
是爲住所縛。
-
상(常)을 지켜 이상(異想)이 없어지고
뭇 색(色)이 차례로 생기지 않는다.
갖가지 중묘(衆妙)의 생각들이
또한 차례로 일어나지 않는다. -
030_0261_c_21L守常無異想,
衆色不次生,
種種衆妙想,
亦不次第起。
-
흘러나가서 머물지 않으니
그 몸이 점차 소멸하리라.
모양이 미혹되어 다시 오가면
수행이 증장하지 못하리라. -
030_0261_c_22L流出而不住,
其身漸消減,
相或來復去,
修行不增長。
-
030_0262_a_01L
고요하게 머묾이 이미 생기지 못하면
그 몸이 장양(長養)함이 없어서
마음이 열락(悅樂)을 일으키지 않으니
이를 말하여 청정하지 못한 사(捨)라 한다. -
030_0261_c_23L寂止旣不生,
於身無長養,
心不起悅樂,
是說不淨捨。
-
저 청정하지 못한 사(捨)는
그 소견이 깨끗하지 못하다.
또한 승진을 하지 못하고
그리고 다시 퇴전하지도 않는다. -
030_0262_a_02L彼不淸淨捨,
所見不鮮白,
亦不能升進,
亦復不退轉。
-
사문(沙門)의 상(像)을 희롱하듯이
젊을 때에 열락이 생기는 것도
비유하면 옷을 빌려 입은 것과 같고
또한 꿈에 본 것과도 같다. -
030_0262_a_03L如戲沙門像,
少時生悅樂,
譬如借衣服,
亦如夢所見。
-
명(命)을 청정하지 않음이라 하고
첨곡(諂曲)과 여악(餘惡)
취락(聚落)의 지식(知識)의 곳에서
스스로 그 공덕을 나타낸다. -
030_0262_a_04L爲命不淸淨,
諂曲及餘惡,
聚落知識所,
自顯其功德。
-
모든 과악(過惡)을 가리어 감추어서
죄를 범하여 드러내지 않고
그 밖의 모든 계박(繫縛)이
수행하는 자를 더럽히고 물들인다. -
030_0262_a_06L覆藏諸過惡,
犯罪不發露,
及餘一切縛,
垢污修行者。
-
사상(事相)이 있는 것과 방불하니
곧 실재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익지 않은 것을 익었다고 하고
멸하지 않은 것을 멸했다고 생각한다. -
030_0262_a_07L髣髴有事相,
而便起實想,
未熟謂爲熟,
未滅想已滅。
-
평등하여 만족하지 않은데
승진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이삭을 벤 싹을 쪼개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곧 주(住)에 계박된 것이다. -
030_0262_a_08L方便不等滿,
而欲求升進,
如部含穟苗,
是則住所縛。
-
업(業)이 당초부터 방편이 없고
상현(相現)하여 굳게 수지(守持)하고
과진(過進)하여 마음이 자긍(自矜)하니
이러한 것이 주에 계박된 것이다. -
030_0262_a_10L業始無方便,
相現堅守持,
過進心矜擧,
如是住所縛。
-
그런데 혹 수행을 하는 자가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일으키면
이런 소견이 마음을 산란케 해서
곧장 계박된다. -
030_0262_a_11L或有修行者,
而起斷常見,
是見令心亂,
則爲縛所縛。
-
혹 수행을 하는 자가
몸과 몸을 자세[細微]하게 본다면
그것이 주에 계박되어서
염심(厭心)이 증장하지 않는다. -
030_0262_a_12L或有修行者,
身身細微觀,
彼爲住所縛,
厭心不增長。
-
염심이 증진하지 못하면
탐욕을 여읠 수가 없으니
탐욕을 여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탈을 얻겠는가? -
030_0262_a_14L厭心不增進,
不能離貪欲,
若不離貪欲,
何從有解脫。
-
해탈을 이루지 못한다면
끝내 번뇌를 다할 수 없고
모든 번뇌를 끊지 못하면
진실한 지혜가 없다. -
030_0262_a_15L解脫不成就,
終不得漏盡,
不斷諸漏者,
則無實智慧。
-
저 신념처(身念處)에서
주상(住相)이 이미 분별되었으니
수(受)ㆍ심(心)ㆍ법(法)의 염처도
마땅히 이와 같이 자세히 설하리라. -
030_0262_a_16L於彼身念處,
住相已分別,
受心法念處,
如是應廣說。
-
수행하되 마음이 즐겁지 않고
그 기쁨 또한 생기지 않고
몸에 고요하게 머무는 즐거움이 없으면
그것이 곧 주상(住相)임을 알아야 한다. -
030_0262_a_18L修行心不悅,
彼喜亦不生,
身無寂止樂,
當知是住相。
-
수행하여 수호할 때의
신(信)ㆍ계(戒)ㆍ문(聞)ㆍ사(捨)ㆍ혜(慧)는
항상 적은 분량을 지키면
이것이 곧 주상(住相)이 된다. -
030_0262_a_19L修行所受獲,
信戒聞捨慧,
常守其少分,
是則爲住相。
-
주(住)에 매인 어떤 비구가
아난(阿難)이 있는 곳에 도달한다 해도
그가 머문 바 주상(住相)에 미혹하리니
이를 지금 대강 설하리라. -
030_0262_a_20L有住縛比丘,
往到阿難所,
迷於所住相,
是今當略說。
-
무상삼매(無相三昧)를 얻어서
6년을 주(住)에 결박되어
즐겨 설하는 바를 듣고 싶다면
언제나 아난을 따라다녀야 하리. -
030_0262_a_22L得無相三昧,
六年住所縛,
樂欲聞所說,
常隨逐阿難。
-
소업(所業)에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퇴전(退轉)하지도 못하고
주의 경계에서 머물러만 있다면
해탈의 도리를 얻지 못한다. -
030_0262_a_23L不能進所業,
亦復不退轉,
住於住境界,
不得解脫道。
-
030_0262_b_01L
오지도 않고 또 가지도 않고
이미 해탈하여 머무르고
머물러 다시 해탈하고
해탈하여 다시 속박된다. -
030_0262_b_01L不來亦不去,
解脫已而住,
住已復解脫,
解脫已還縛。
-
혹시 어떤 수행을 하는 자가
퇴전하지 않는 곳에 머물렀으나
미세한 번뇌가 일어남을
능히 깨달아 알지 못하니
번뇌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뛰어난 곳에 이르지 못한다. -
030_0262_b_03L或有修行者,
住在不退地,
微細煩惱起,
而不能覺知,
不覺煩惱故,
不能到勝處。
-
지위에 대하여 분별이 없으면
또한 그 퇴과(退過)도 없다.
지위의 모든 허물이 일지 않으니
이와 같이 그 주(住)에 머문다.
그러다 혹 주분(住分) 중에서
중묘(衆妙)의 모양을 잃어버린다. -
030_0262_b_05L於地無分別,
亦無有退過,
地諸過不起,
如是止於住,
或於住分中,
而失衆妙相。
-
중묘의 모양이 비록 멸해도
마음은 여전히 그 지위에 따른다.
마음이 그 지위에 따를 때
여분(餘分)의 낙상(樂相)이 생긴다. -
030_0262_b_07L衆妙相雖滅,
意猶順彼地,
意順彼地時,
餘分樂相生。
-
이미 적은 낙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하게 머묾에 의지하여 머문다.
그 고요하게 머무는 마음을 인(因)으로 하는 것을
짓는 것이 이미 지어졌다고 말한다. -
030_0262_b_08L已有少樂故,
心依寂止住,
因其寂止心,
自謂作已作。
-
고요하게 머묾에 안주함이 구족하지 못하면
구족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무지(無智)가 마음과 눈을 가렸는데도
지혜롭다고 스스로 말하니 -
030_0262_b_10L安止不具足,
不得具足果。無智翳心目,
而自謂爲智。
-
무지장(無智障)을 수행하여
응용할 바를 깨닫지 못한다.
응용할 바를 깨닫는 자는
능히 구경지(究竟地)에 머물리라. -
030_0262_b_11L修行無智障,
不覺所應用,
覺所應用者,
於地能究竟。
-
저들 공지(共地)에 머무는 자는
여러 가지 번뇌에 오염된다.
만약 수행하는 자로 하여금
불공지(不共地)를 이루게 하여
이와 같이 과환(過患)을 알면
끝내 그는 계박되지 않으리라. -
030_0262_b_12L彼住共地中,
種種垢所污,
若使修行者,
成就不共地,
如是知過患,
彼終不爲縛。
-
그러나 번뇌의 과실을 모르고
어리석어 실지(實智)가 없으면
선(禪)으로써 길안(吉安)을 깨달음이
마치 코끼리가 나무에 매인 것 같으리라. -
030_0262_b_14L不識煩惱過,
愚癡無實智,
於禪覺吉安,
猶如象繫樹。
-
수행하여 이염(爾炎)을 관하되
그 일어나는 곳을 알지 못하고
그 의지하여 나오는 곳을 따르면
스스로 알지를 못한다. -
030_0262_b_16L修行觀爾炎,
莫知所起處,
從其所依出,
而自不能知。
-
솟아오르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으니
모양이 일어남을 보지 못하고
또한 멸하는 곳을 알지 못하면
과(過) 또한 과라 할 것이 없다. -
030_0262_b_17L不涌亦不沒,
不見相所起,
亦不知滅處,
過亦無過是。
-
설하는 바 모든 장애는
모두가 견고한 주상(住相)이다.
그로 해서 머문다고 하지 않으니
이것은 명지(明智)의 설이 아니다. -
030_0262_b_18L所說諸障㝵,
皆是堅住相,
謂不由彼住,
斯非明智說。
-
지어서 일어나는 모든 과환이
얼마간 인연의 계박이라 해도
능히 모든 대치(對治)를 사용한다면
중묘(衆妙)를 다시 드러내어 설하리라. -
030_0262_b_20L興造諸過患,
若干因緣縛,
能用諸對治,
衆妙復顯說。
-
높일 자를 공경하지 않고
또한 교만함을 버리지 않고
스스로 허물을 덮어 가리고
밝은 자를 향해서 설하지 않는다. -
030_0262_b_21L所尊不恭敬,
亦不捨憍慢,
自隱覆其過,
不向明者說。
-
나의 나이가 벌써 쇠하여 늙었으니
이미 사람들이 버리는 바가 되었다.
더러 이양(利養)을 잃기도 해서
나로 하여금 고뇌가 일게 한다. -
030_0262_b_22L我年旣衰老,
已爲衆所棄,
或能失利養,
令我生苦惱。
-
030_0262_c_01L
마음이 언제나 두렵고 근심스러우니
깊은 생각을 하며 길이 탄식하노라.
내가 나중에 죽게 될 때에
장차 무슨 계책을 세울 것인가? -
030_0262_c_01L心常懷憂畏,
深慮長歎息,
我後當死時,
將欲作何計?
-
허물을 숨기면 마음이 근심스럽고
미혹되면 번뇌에 머물게 되니
스스로를 거슬러 죄를 저질러 몸을 더럽히면
큰 공덕의 바다를 잃는다. -
030_0262_c_02L隱過心憂惱,
愚惑作所縛,
撗自生罪累,
失大功德海。
-
현재의 법락(法樂)에 맛을 붙여서
음식을 탐하며 간사해 지혜가 없다.
후세의 과보를 내던져 버리고는
이 같은 과악(過惡)들을 일으킨다. -
030_0262_c_03L味著現法樂,
貪餐黠無慧,
棄捨後世果,
興此諸過惡。
-
이러한 모든 주에 속박됨에
그 일어남도 각각 다르다.
수행을 함에 비겁하거나 용렬하지 않으면
능히 응하여 대치할 바를 다스릴 수 있게 된다. -
030_0262_c_05L如是諸住縛,
所起各各異,
修行無怯劣,
能治所應治。
-
그러나 비겁하거나 용렬하여 방편이 없이
승진할 길이 없다고 스스로 말한다면
빠져 나오기가 매우 어려우리니
마치 깊은 수렁에 빠진 코끼리와 같다. -
030_0262_c_06L怯劣無方便,
自謂無由進,
是則甚難拔,
如象溺深泥。
-
이처럼 빠져나오기 매우 어려우니
게으른 마음에 속임을 당하게 된다.
긴긴 밤을 진창에 빠져 꼼짝을 못하고
열화가 치받아서 죽음으로 내달으리라. -
030_0262_c_07L如是甚難拔,
懈怠心所欺,
長夜沒住泥,
熱迫而趣死。
-
업행과 번뇌와 과보
이것이 세 가지 장애가 되어 가린다.
지혜가 없고 일어날 기세가 없으면
영원히 머묾에 빠져버리게 되리라. -
030_0262_c_09L業行煩惱報,
爲此三障覆,
無智無勢起,
永爲住所沒。
-
오랜 세월 어리석음을 쌓아
업행과 모든 번뇌들
이 같은 것들에 얽매이고
미혹하고 어지러워 자재하지 못하다. -
030_0262_c_10L久遠積癡冥,
業行諸煩惱,
繫縛斯等類,
迷亂不自在。
-
모든 과악들을 익혀 가까이하면
선한 공덕을 멀리 여의게 되어
그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니
마치 허공을 맴도는 화살과 같다. -
030_0262_c_11L習近諸過惡,
遠離善功德,
令其意悤擾,
如箭旋虛空。
-
뱀의 독이 성하여 가득하고
전갈과 악룡(惡龍)이 득실거리며
깊은 바다가 밑바닥이 없고
물도 없는 불구덩이인 이런 곳을 -
030_0262_c_13L蛇毒盛充滿,
蝮蝎惡龍處,
巨海深無底,
無澤大火聚。
-
소경이 헤맨다고 한다면
눈이 안 보이니 보지를 못하리라.
수행하는 자가 머문 곳에 얽매임도
그 잘못됨이 역시 이와 같다. -
030_0262_c_14L盲人近彼遊,
闇往而不見,
修行住所縛,
其過亦如是。
-
주과(住過)가 한량없이 많으니
승진의 덕도 역시 그러하여
바다와 같이 그 끝과 바닥이 없으니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
030_0262_c_15L住過多無量,
升進德亦然,
如海無涯底,
是深不可量。
-
세간에 지혜의 장애가 없으니
진실의 지혜가 등불이 된다.
등불을 들고 방일하지 않으면
그 밝음이 꺼지는 일이 없으리라. -
030_0262_c_17L世閒無知障,
眞實慧爲燈,
持燈無放逸,
彼明終不滅。
-
주분(住分)의 허물은
모든 간힐(奸黠) 없는 자를 속박함을 설하고
지혜를 결정하는 경계는
그 구경(究竟)이 비아분(非我分)이라. -
030_0262_c_18L善說住分過,
縛諸無黠者,
決定知境界,
究竟非我分。
-
갖가지 허물에 얽매인 것들이
그 얽매임이 한 모양이 아니니
마땅히 업의 뭇 연(緣)을 안다면
불성(佛性)을 능히 깨달으리라. -
030_0262_c_19L種種過所縛,
是縛非一相,
當知業衆緣,
唯佛能覺了。
-
5. 수행방편도승진분(修行方便道升進分) - 030_0262_c_21L修行方便道升進分第五
-
비구여, 안반념(安般念)의
공덕주(功德住)와 승진(升進)은
능히 지혜를 더하게 하니
내가 지금 차례대로 설하리라. -
030_0262_c_22L比丘安般念,
功德住升進,
能令智慧增,
我今次第說。
-
030_0263_a_01L
공덕에 이미 머물렀으면
더욱 나아가 공덕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므로 공덕에 머무르는 것과 올라가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수행을 설하리라. -
030_0263_a_01L功德住已進,
進復功德住,
是故說修行,
功德住升進。
-
수행은 코끝에
마음을 묶어 굳게 머물러 있게 하고
생각을 오로지 전념하여 분명하게 하며
올바르게 관하여 풍상(風相)에 의지한다. -
030_0263_a_02L修行於鼻端,
繫心令堅住,
專念諦思惟,
正觀依風相。
-
들숨과 날숨에
마음을 매어 굳게 머물게 하여
생각을 이어 나가서 잊지 않는다면
이것이 공덕에 머무는 첫 단계이다. -
030_0263_a_03L入息與出息,
繫心隨憶念,
憶念若不忘,
是初功德住。
-
이런 공덕에 머문 다음에
다시 방편을 일으켜
공덕을 더 얻으려고 할 때에
거기 머무르면 더욱 올라감이 있게 된다. -
030_0263_a_05L彼功德住已,
復起方便求,
更求功德時,
住則生升進。
-
더욱 진전이 있을 때에는
또한 공덕에 머무르는 것이 생긴다.
이것에 머무르면 곧 더욱 진전이 있게 되고
이미 나아가면 다시 공덕에 머문다고 이름한다. -
030_0263_a_06L升進等起時,
亦生功德住,
是名住已進,
進已功德住。
-
안반(安般)의 모양인
공덕과 모든 허물
호흡의 가벼움과 무거움, 차가움과 더움
부드러움과 거침, 껄끄러움과 매끄러움을 잘 알아야 한다. -
030_0263_a_07L善解安般相,
功德及諸過,
息輕重冷暖,
軟麤與澀滑。
-
들숨과 날숨을 섭수하여
이것을 모든 근(根)에 받아들여
그 소연(所緣)의 경계에서도
이것을 섭수하여 고요하게 머물게 된다. -
030_0263_a_09L 阿那攝般那,
是攝持諸根,
於彼所緣境,
攝之令寂止。
-
수식법[數法]으로 밖으로 흩어지는 마음을
되돌려 섭수하는 뜻도 또한 그러하다.
바람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을
아나(阿那)라고 한다. -
030_0263_a_10L 外散心數法,
攝還義亦然,
持風來入內,
是故說阿那。
-
마음이 소연을 따라 구르면
그치게 하여 다시는 구르지 않게 하고
마음이 소연을 따라 일어나면
이를 다시 제어하여 멸하게 한다. -
030_0263_a_11L心轉於所緣,
止令不復轉,
心於所緣起,
亦復制令滅。
-
수행하여 관(觀)이 증진하면
이를 제어하여 지(止)에 따르게 한다.
수행하여 만약 지가 증진하면
이를 일으켜 관(觀)에 따르게 한다. -
030_0263_a_13L 修行觀若增,
制之令從止,
修行若止增,
起之令從觀。
-
견(見)이 증하면 촉(觸)으로 하고
촉이 증하면 견으로 한다.
득증(得證)과 지증(智證)
이 두 증이 함께 서로 섭지(攝持)한다. -
030_0263_a_14L見增則以觸,
觸增則以見,
得證與智證,
二增俱相攝。
-
수행하는 데 고요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고요하게 머물러 섭수하면
몸에서 청량함이 일어나서
모든 열뇌(熱惱)를 멸하여 없앤다. -
030_0263_a_15L修行緣不寂,
意寂止攝來,
身中淸涼起,
滅除諸熱惱。
-
요동하여 고요하지 않은 마음을
붙잡아서 고요하게 머물게 한다.
방편에 힘써 회전하면
그 몸이 모두 충만하게 된다. -
030_0263_a_17L掉踊不靜心,
攝之令寂止,
勤方便廻轉,
其身悉充滿。
-
4대종(大種)을 장양(長養)함은
호흡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들 종류가 다시 증익하면
수행하는 사람은 4대에 집착한다. -
030_0263_a_18L 長養四大種,
當知從息起,
是種復增益,
行者報四大。
-
들숨[阿那]의 힘은 능히
고요히 머물게 하며 선법(善法)을 일으키고
내가 소유한 큰 악도
없애 나가게 한다. -
030_0263_a_19L阿那力能起,
寂止善法分,
我所大惡刺,
亦能拔令出。
-
호흡이 짧아지면 차츰 멸하여
수행자는 마음이 안정된다.
그러므로 부처님 세존께서는
이를 말하여 아나(阿那)라 하셨다. -
030_0263_a_21L息短而漸滅,
修行心安靜,
是故佛世尊,
說名爲阿那。
-
다시 반나(般那)의 모습
이것을 지금 대강 설명한다면 -
030_0263_a_22L 復次般那相,
是今當略說。
-
털구멍의 모든 구멍과
호흡의 길을 먼저 깨끗이 하여
앞으로 나가는 것을 반나라고 하니
바야흐로 들어오는 바람으로부터 일어난다. -
030_0263_a_23L毛孔諸竅處,
先淨治息道,
前出名般那,
始由入風起。
-
030_0263_b_01L
날숨을 수행할 때에
모든 근(根)이 소연을 따르고
마음과 심법(心法)이 그에 따르는 것을
또한 반나라고 한다. -
030_0263_b_01L修行出息時,
諸根隨所緣,
心心法俱順,
是亦說般那。
-
날숨이 사라지고 나면
드디어 근본지(根本地)에 들어간다.
정수(正受)를 그치면
이것이 사(捨)를 거쳐 숨을 내쉰다. -
030_0263_b_03L出息歸於滅,
乃入根本地,
正受及命終,
斯由捨出息。
-
수행하여 날숨이 멸하면
다음으로 들숨[阿那]이 생긴다.
멸진하여 삼마제(三摩提)에 드니
제4선(禪)이 또한 그러하다. -
030_0263_b_04L修行出息滅,
次第阿那生,
滅盡三摩提,
第四禪亦然。
-
날숨[般那]이 이미 멸하고 나면
다음으로 들숨이 생긴다.
들숨을 쉴 때 희망하는 것을
아세바사(阿世婆娑)라고 말한다. -
030_0263_b_05L般那旣已滅,
次第阿那生,
阿那時悕望,
說阿世婆娑。
-
내가 죽은 자를 살펴보니
분명 이와 같은 모습이 없다.
그런데 호흡이 다시 생긴 자는
살펴보니 이러한 모습이 있다.
독기 서린 진창의 화사(火蛇)의 모습과
그 경계가 비슷하다. -
030_0263_b_07L我觀彼死者,
定無有是相,
彼息更生者,
觀有如是相,
毒淤埿火蛇,
此相似境界。
-
날숨으로 능히 마음을 섭수하여
소연을 따르지 않게 함이
마치 코끼리를 제어하는 갈고리와 같은 것을
파세바사(波世婆娑)라고 한다.날숨은 섭심(攝心)의 뜻이 있다. -
030_0263_b_09L出息能攝意,
不令隨所緣,
猶如制象鉤,
名波世婆娑出息有攝心義。
-
전도된 생각을 제거하여 버리고
진실한 생각을 성취하여
자재(自在)와 향상함을 여의고
오직 공행(空行)의 모임[聚]만을 행하라. -
030_0263_b_10L捨除顚倒想,
成就眞實想,
離自在及常,
唯爲空行聚。
-
본래 온 곳이 없고
가도 이를 곳이 없고
가고 오는 것이 없으니
잠시도 머물 수가 없다. -
030_0263_b_12L本無所從來,
去亦無所至,
去來不可得,
亦不須臾住。
-
지혜로운 자가 이것을 분명히 본다면
모든 짓고 아는 것을 여읜다.
날숨은 만드는 것이 없다고
본다면 전도(顚倒)에 떨어지리라. -
030_0263_b_13L慧智明見此,
離諸知作者,
出息無作者,
見則墮顚倒。
-
날숨은 이미 지나간 과거이니
그것은 볼 수가 없다.
목숨이 끊어지면 모든 호흡이 멈추듯
과거란 것 역시 그러하다. -
030_0263_b_14L出息已過去,
彼則不可見,
命斷諸息滅,
過去亦復然。
-
안반의 모든 공덕들과
날숨과 들숨과
온갖 사물 그리고 문자의 뜻을
내가 이미 대강 설하여 마쳤노라. -
030_0263_b_16L安般諸功德,
出息與入息,
衆物及字義,
我已略說竟。
-
이런 것들은 고설(故說)을 보탠 것이니
일찍이 서로 분리해 써서는 안 되리라.
만약 깨닫는 생각이 흩어지면
마땅히 안반념(安般念)을 익혀라. -
030_0263_b_17L是種增故說,
未曾相離用,
若爲覺想亂,
當習安般念。
-
이미 수식(數息)에 응하게 되면
곧 내부의 탐착을 제거한다.
만약 수식에 순응해 따른다면
곧 따르지 않는 것을 여의게 된다. -
030_0263_b_19L已能應於數,
則除內貪著,
於數若隨順,
是則離不順。
-
뜻이 흩어짐이 없는 경지에서
능히 흩어진 모든 생각을 포섭하라.
먼저 수를 하나로부터 시작하여
열에 이른다. -
030_0263_b_20L志在無亂境,
能攝諸亂相,
先數從一起,
如是乃至十。
-
수행하여 이 수에 따르면
곧 공덕에 머묾을 얻으리라.
그리하여 공덕에 머묾을 얻고 나면
곧 더욱 나아가게 되기를 구한다.
일체 산란함을 없애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더욱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수문(數門)을 마친다. -
030_0263_b_22L修行順此數,
便得功德住,
已得功德住,
則能求升進,
滅一切亂覺,
佛說增上故數門竟。
-
030_0263_c_01L
수는 능히 일체를 멸한다.
깨닫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멸한다고 말씀하셨다.
일체가 사(死)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나아가기 때문이다. -
030_0263_c_01L數能滅一切,
覺佛但言滅,
一切不死者,
以增上故也。
-
안과 밖으로 들고 나는 호흡이
가는 대로 마음의 그림자가 따라
결정(決定)을 하여 잘 관찰해서
따르면 이것이 열반에 나아가는 것이다. -
030_0263_c_02L內外出入息,
去則心影隨,
決定善觀察,
順是趣涅槃。
-
날숨과 들숨을 수행하여
그것이 일어나는 곳을 따라 이르러날숨과 들숨이 일어나는 곳은 다 같이 배꼽에 있다.
이와 같이 승진할 줄을 안다면
바깥의 탐착을 능히 여읜다.수문(隨門)을 마친다. -
030_0263_c_04L修行出入息,
隨到所起處出入息所起處同在齊,
如是知升進,
能離外貪著隨門竟。
-
극풍(極風)의 처소에 편안히 머무르면상하 극처(極處)의 풍제(風際)이다.
삼마제(三摩提) 등이 일어난다.
삼매가 이미 일어나면
곧 공덕에 머묾을 얻는다.지문(止門)을 마친다. -
030_0263_c_05L安止極風處 極上下風際,
三摩提等起,
三昧旣已起,
便得功德住止門竟。
-
수행하여 정(正)에 머물면
여러 풍(風)을 관찰하여
먼저 본처(本處)를 관하라.
이른바 풍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
030_0263_c_07L修行正住已,
種種觀察風,
先觀於本處,
謂風所從起。
-
이곳은 나(那)라고 하는데
하나가 되는가, 둘이 되는가?
서늘함과 따뜻함을 모두 관찰하면
여덟 가지가 앞에 설한 것과 같다. -
030_0263_c_08L此處爲云那,
爲一爲二耶?
冷暖悉觀察,
八種如前說。
-
제대(諸大)를 모두 관찰하면
오직 일종(一種)만 있을 것인가?
볼 때엔 모든 것이 갖추어 있으니
하나로써 증상(增上)하여 설하리라. -
030_0263_c_10L 爲摠觀諸大?
唯在一種耶?
觀時悉俱有,
以一增上說。
-
수행하여 풍대(風大)를 관하면
조색(造色)이 그것으로부터 생긴다.
오직 마음과 심법(心法)과
조색에 따라 일어난다.
조색이 아니고서야
다시 종대(種大)가 있을 것인가? -
030_0263_c_11L修行觀風大,
造色從彼生,
唯心與心法,
依彼造色起,
非彼造色已,
而復有種大。
-
모든 유(有)의 들숨과 날숨의
이 바람을 의종(依種)이라 한다.
그리고 보풍(報風)과 장양(長養)
이를 세 종류의 바람이라 한다. -
030_0263_c_13L諸有入出息,
是風名依種,
報風及長養,
是爲三種風。
-
혹은 말하기를 들숨이 앞에 있고
날숨이 뒤에 있다고 하고
혹은 말하기를 날숨이 앞에 있고
들숨이 뒤에 있다고 한다.
모두가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이와 같은 말을 한다. -
030_0263_c_15L或說入在前,
出者在於後,
或說出在前,
入者在於後,
皆有因緣故,
彼作如是說。
-
그 진실된 의미를
지혜로운 자는 곧 결정한다. -
如其眞實義,
慧者乃決定。
-
배꼽 있는 곳에서 일어나서
털구멍의 길을 깨끗이 다스린다.이것은 보풍(報風)이 털구멍을 열기 때문에 출(出)이라고 이름하는 것이요,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풍의 뜻에 연유하기 때문에
그들이 날숨이 앞에 있다고 말한다. -
030_0263_c_17L於臍處所起,
淨治毛孔道此報風開毛孔故名出,非出外,
由此風義故,
彼說出在前。
-
털구멍이 이미 열려 깨끗하면
들숨이 이미 앞에 있게 되니
마치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에
들숨에 들기 때문에 일어남과 같다. -
030_0263_c_19L毛孔已開淨,
入者則在前,
如人初生時,
阿那入故起。
-
호흡의 바람[息風]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래서 파나(波那)라고 말한다.이것이 진실의 뜻이다.
호흡의 바람의 모든 종대(種大)는
끊어버려도 고(苦)가 생기지 않는다. -
030_0263_c_20L息風最先出,
是故說波那 此是眞實義,
息風諸種大,
割截不生苦。
-
저것이 수(受)가 아님을 알아야 하리라.
수라고 한다면 그러하지 않으니 -
030_0263_c_22L當知彼非受,
謂受則不然。
-
저 수행하는 자들은
모든 단핍(斷逼)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들숨과 날숨은
몸으로 다시 받지 않으면 -
030_0263_c_23L以彼修行者,
不患諸斷逼,
是故出入息,
於身復非受。
-
030_0264_a_01L
만약 식명(識命)을 끊을 때에는
호흡이 곧 회전하지 않는다.
이것이 곧 중생의 수식이니
반드시 명근(命根)을 연유해 일어난다. -
030_0264_a_01L 識命若斷時,
息則不廻轉,
是則衆生數,
必由命根起。
-
호흡이란 곧 신행(身行)이니
세존께서 설하신 바이다.
또한 근본의(根本依)라 이름하니
중생이 말미암아 구르는 것이다. -
030_0264_a_02L息則是身行,
世尊之所說,
亦名根本依,
衆生所由轉。
-
그러나 이 호흡이 멸하여 없어지면
목숨이 의지할 만한 곳이 없다.
능히 그 명근(命根)을 간직하기 때문에
중생의 수식이라고 한다. -
030_0264_a_04L是息旣已滅,
命則無所依,
以能持命根,
故說衆生數。
-
아나(阿那)와 반나(般那)의 염(念)은
바람을 인연하여 경계를 삼는다.
비록 말하여 바른 사유라고 해도
그러나 진실한 행은 아니다. -
030_0264_a_05L阿那般那念,
緣風爲境界,
雖曰正思惟,
而非眞實行。
-
모든 수행하는 바의 관은
모두 바람을 인연하여 일어난다.
그러나 관함에 차별이 있으니
이것을 지금 차례로 설하리라. -
030_0264_a_06L一切所修觀,
彼悉緣風起,
於觀有差別,
次第今當說。
-
아나와 반나의 염에는
분별하여 세 종류가 있다.
이른바 들음(聞慧)을 따라 일어나는 것과
사혜(思慧)와 수혜(修慧)이다. -
030_0264_a_08L阿那般那念,
分別有三種,
所謂從聞起,
思慧與修慧。
-
이 안반념으로 해서
비구의 문혜(聞慧)가 생기니
모든 때에 받아들이는
명자(名字)를 경계라 한다. -
030_0264_a_09L於是安般念,
比丘聞慧生,
一切時悉受,
名字爲境界。
-
들고 나는 호흡을 경계로 하여
정념(正念)하면 사혜(思慧)가 생긴다.
그것이 이름에 인연할 때
때로는 다시 뜻에 인연한다. -
030_0264_a_10L境界出入息,
正念思慧生,
當知彼緣名,
時或復緣義。
-
아나와 반나의 염이
일어나는 곳에서 선혜(禪慧)를 닦으면
모든 것을 버림은 관(觀)이라 하니
오직 모든 법의(法義)만을 인연한다. -
030_0264_a_12L阿那般那念,
所起修禪慧,
悉已捨名觀,
唯緣諸法義。
-
마땅히 경계가 가까워
갖가지 다름이 있지 않고
서로 이어지는 인연도 또한 없으니
이를 등지(等智)의 행(行)이라 함을 알아야 한다. -
030_0264_a_13L當知近境界,
無有種種異,
亦非相續緣,
說是等智行。
-
이것을 일러 안반념은
어리석음이 없는 지혜의 성품이라 한다.
또한 사성(捨性)이라 이름하는
이것은 곧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이니 -
030_0264_a_14L謂是安般念,
無癡智慧性,
亦名爲捨性,
是則佛所說。
-
마땅히 이 지혜의 성품은
근(根)을 버림과 함께 생기는 것을 알아야 하리라. -
當知是慧性,
捨根共俱生。
-
그런데 만약 이 성품을 버려
나머지가 더불어 일어나게 된다면 -
030_0264_a_16L若使是捨性,
則與餘共起。
-
욕색(欲色) 두 가지의 번뇌를 갖게 되는데
몸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무색(無色)이 된다. -
030_0264_a_17L欲色二有繫,
無色無身依。
-
그 같은 최후의 선(禪)이 아니고
몸이 밀(密)하여 호흡이 없기 때문이다. -
非彼最後禪,
身密無息故。
-
혹은 근본지(根本地)라 하는 것
또한 이들 권속(眷屬)이다. -
030_0264_a_18L或謂根本地,
亦復是眷屬。
-
오직 권속이라고 말을 하지만
이것은 근본지가 아니다. -
030_0264_a_19L說言唯眷屬,
非是根本地。
-
저 성품을 버려
근본지에 있게 하고자 하면
아나와 반나의 염은
마땅히 8지(地)에 있어야 한다. -
030_0264_a_20L欲使彼捨性,
在於根本地,
阿那般那念,
應當在八地。
-
오직 권속이라는 말은
이와 같이 근을 버림을 말하는 것이다.
저 안반념을 알면
오직 5지(地)에 있게 된다. -
030_0264_a_21L所言唯眷屬,
如是說捨根,
知彼安般念,
唯在於五地。
-
이와 같은 정(定)은 5지에 있게 되고
이곳을 의지하여 회전하게 된다.
욕(欲)과 중간(中間)과 미지(未至)와
그리고 그 뒤의 두 권속이 된다. -
030_0264_a_22L此定在五地,
依是處廻轉,
欲中間未至,
及後二眷屬。
-
030_0264_b_01L
가장 상정(上頂)인 4선(禪)에는
거기에 비록 근을 버림이 있더라도
그 몸을 버림은 있지 않으니
털구멍의 길로 청정하게 다스린다. -
030_0264_b_01L最上頂四禪,
彼雖有捨根,
無有於彼身,
淨治毛孔道。
-
제4와 권속은
그 중에서 두 종류를 설하니
보생(報生)과 장양(長養)으로
오직 바람에 의지함에 있지 않다. -
030_0264_b_02L第四及眷屬,
彼中說二種,
報生與長養,
唯無有依風。
-
날숨과 들숨은
이 바람을 의지한다.
몸이 지극히 후밀(厚密)하기 때문에
의지함이 없음을 두 종류라 말한다. -
030_0264_b_03L出息與入息,
是風名爲依,
以身極厚密,
無依說二種。
-
부처님께서는 날숨과 들숨을
제4선을 바르게 받아들이는 바늘[刺]이라고 설하시고
또 인후(咽喉)가 있는 곳이라고
설하신 바가 있음을 분명히 알아라.
이것은 저것의 방편이기 때문에
또한 선(禪)의 뜻을 섭수한다. -
030_0264_b_05L佛說出入息,
四禪正受刺,
亦言咽喉處,
明知有所說,
是彼方便故,
亦以禪義攝。
-
날숨과 들숨
그곳에는 정(定)이 없다.
수행하여 날숨을 관하면
위로 제4선에 이른다. -
030_0264_b_07L出息與入息,
彼處定無有,
修行觀出息,
上際第四禪。
-
바람의 경계를 지극히 하고 나서
그것을 바르게 억념(憶念)하라.
어째서 나의 이와 같은 마음이
구경(究竟)의 인연이 아니라 하는가? -
030_0264_b_08L已極風境界,
於彼正憶念,
云何我是心,
於緣究竟未?
-
혹은 다시 그 위에서
조금 나아가 거듭 관찰하라.
혹은 곧 그곳에서 머물러
나머지 방편을 짓지 말라. -
030_0264_b_09L或復更於上,
少進重觀察,
或卽於彼住,
不作餘方便。
-
이와 같이 관(觀)하여 수행하면
곧 의혹을 제거할 수 있다. -
修行如是觀,
則能除疑惑。
-
수행하여 풍제(風際)를 지극히 하고
이곳을 잘 관찰하라.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곧 의관(疑觀)을 제거한다고 함을 알라.관문(觀門)을 마친다. -
030_0264_b_11L修行極風際,
是處善觀察,
當知如是心,
則名除疑觀觀門竟。
-
위를 관찰하고 난 뒤에
바람에 의지하여 다시 그치어 머문다.
응하는 바를 관찰하여
다시 나머지 닦을 바를 일으킨다. -
030_0264_b_13L於上觀察已,
依風還止住,
觀察所應已,
復起餘所修。
-
만약 저 풍을 관찰하는 마음을
돌이켜 흔들림 없이 잘 결정하면
이것을 말하여 수행을 하는 자가
교묘한 방편을 회전한다고 한다. -
030_0264_b_14L若彼觀風心,
於還善決定,
是說修行者,
廻轉巧方便。
-
마치 사람이 마을에 놀러 갔다가
하던 것을 마치고 나면 돌아가듯이
이와 같이 관(觀)을 수행하면
희락(喜樂)이 드디어 증장하리라. -
030_0264_b_15L如人遊聚落,
所作訖已歸,
修行如是觀,
喜樂遂增長。
-
숨을 들이쉰다는 생각을 버리고
날숨의 연(緣)에 편안히 처(處)하라.
그리고 다시 숨을 내쉰다는 생각을 버리고
들숨의 연에 편안히 처하라. -
030_0264_b_17L已捨入息念,
安處出息緣,
亦捨出息念,
安處入息緣。
-
수(數)에 대하여 구경에 이르고 나서
호흡이 가면 또한 이를 따라가라. -
030_0264_b_18L於數已究竟,
息去亦隨去。
-
이와 같은 모든 종류를
또한 회전이라 이름한다. -
如是一切種,
亦名爲廻轉。
-
응하는 바의 상을 관찰하는데
모양 모양이 회전하고
갖가지 일을 관함도
차례로 회전함 역시 그러하다. -
030_0264_b_19L觀察所應相,
相相而廻轉,
種種衆事觀,
次第轉亦然。
-
회전을 잘하는 자에게도
이 회전의 뜻을 설해야 한다.
마땅히 이 회전이
지혜를 수행하는 곳임을 알아야 한다. -
030_0264_b_21L善於廻轉者,
說此廻轉義,
當知是廻轉,
修行智慧處。
-
저 방편이 일어나는 것에 따라
뛰어난 도가 현재 눈앞에 나타난다.
문혜(聞慧)를 염하여 제도하면
차례로 사혜(思慧)가 생긴다. -
030_0264_b_22L從彼方便起,
勝道現在前,
聞慧念已度,
次第思慧生。
-
030_0264_c_01L
그리하여 욕계의 행을 버린 다음
수혜(修慧)에 들어가는 것을
모두 회전이라 이름하니
세존께서 설하신 바이다. -
030_0264_b_23L已捨欲界行,
然後入修慧,
是悉名廻轉,
世尊之所說。
-
저들 이르지 못한 곳으로부터
차례로 초선(初禪)에 들어가
제3선에 이르게 되니
그 회전 역시 이와 같다. -
030_0264_c_02L從彼未至地,
次第入初禪,
乃至第三禪,
其轉亦如是。
-
그리고 제4선의 권속
만일 그곳에 저 바람이 있다면
이 또한 회전에 응하여
그 근본지에 들어간다. -
030_0264_c_03L第四禪眷屬,
若彼有風者,
是亦應廻轉,
入於根本地。
-
그것에 따라 교묘한 방편을 일으켜
차례로 일어나는 연에 머문다.
들고 남과 우파(優波)
이 여섯이 모두 회전한다. -
030_0264_c_04L從彼起巧便,
次第住起緣,
入出與優波,
此六悉廻轉。
-
공방편지(共方便地)를 버리면
공지(共地)가 현재 눈앞에 나타난다.
공방편지를 버리면
불공(不共)이 현재 눈앞에 나타난다.
불공방편(不共方便)을 버리면
불공이 현재 눈앞에 나타난다. -
030_0264_c_06L捨共方便地,
共地現在前,
捨共方便地,
不共現在前,
捨不共方便,
不共現在前。
-
상방편지(相方便地)를 인연해서
구경지(究竟地)로 전전(展轉)한다.
이것을 상회전(上廻轉)이라 하니
밝은 지혜로 일컬어 설하는 바이다.성인과 범부가 함께 가진 법을 이름하여 공지(共地)라 하며, 연(緣)을 따라 연에 이르는 것을 이름하여 제상(諸相)을 회전한다고 하는 바, 모든 방편에 대해 여러 지(地)가 차례로 회전함 또한 이와 같다. -
030_0264_c_08L緣相方便地,
展轉究竟地,
是名上廻轉,
明智所稱說。聖人、凡夫共有法,名爲共地。從緣至緣,名爲轉諸相。諸方便、諸地次第轉,亦如是也。
-
내가 지혜의 방편으로
이미 회전의 뜻으로 말하였으니
무구한 청정의 염(念)을
마땅히 지금 차례로 설하리라. -
030_0264_c_10L如我智方便,
已說廻轉義,
無垢淸淨念,
今當次第說。
-
수행하여
잠시 동안 억눌러 번뇌를 그치게 한다면
이것을 곧 청정이라 하니
부정(不淨)이 응하는 것이 아니다. -
030_0264_c_12L如令彼修行,
須臾抑止蓋,
是則爲淸淨,
不淨非所應。
-
만약에 이미 수식(數息)을 성취하면
내부의 탐착을 능히 버린다.
이러한 뜻은 마땅히
지혜로운 자의 관이 청정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030_0264_c_13L若已成就數,
能捨內貪著,
此義應當知,
慧者觀淸淨。
-
순응해 따르는 것이 성취되면
능히 외부의 탐착을 버린다.
이와 같이 바르게 사유하면
지혜로운 자의 염(念)이 청정해진다. -
030_0264_c_14L隨順已成就,
能捨外貪著,
如是正思惟,
智者念淸淨。
-
비구의 마음에 이미 머물면
혼란함에 어지럽혀지지 않는데
이처럼 움직이지 않고 관찰하여
수행하면 지혜가 청정하리라. -
030_0264_c_16L比丘心已住,
不爲亂所亂,
如是不動念,
修行智淸淨。
-
그런데 만약 이미 풍제(風際)에서
관찰하여 의혹을 여의고
다시는 호흡을 구하지 않으면
이것이 곧 청정함이다. -
030_0264_c_17L若已於風際,
觀察離疑惑,
不復更求息,
是則爲淸淨。
-
염지(念地)를 이미 모두 마치고
의지했던 모든 과악(過惡)들을
하지 않으면 청정한 것이다.
이것을 잠깐 사이에 -
030_0264_c_18L念地悉已竟,
所依諸過惡,
不爲則淸淨,
是說須臾頃。
-
아나와 반나의 염(念)의
방편도(方便道)를 섭수한 것이라고 한다.
공덕에 머묾과 승진(升進)
이 뜻을 내가 이미 설했노라. -
030_0264_c_20L阿那般那念,
方便道所攝,
功德住升進,
是義我已說。
方便升進第五竟。
-
6. 수행승도승진분(修行勝道升進分) - 030_0264_c_22L修行勝道升進分第六
-
030_0265_a_01L
공덕에 머묾과 승진
그리고 나머지 방편이란
수행의 일체지(一切地)인
공지(共地)와 불공지(不共地)를 섭수하는 것이다. -
030_0264_c_23L功德住升進,
及餘方便攝,
修行一切地,
共地不共地。
-
공덕에 머묾과 승진
그것은 뛰어난 도에 의지해 일어난다.
갖가지 상행(相行)의 뜻에 대해
지금 설할 테니 잘 들으라. -
030_0265_a_02L功德住升進,
彼依勝道起,
種種相行義,
今當說善聽。
-
제체(梯揥)가 이미 일어나면심주처(心住處)의 이름이다.
마음의 애락을 수행하라.
이와 같은 애락의 마음이
선교방편의 공덕주(功德住)가 된다.
지혜로운 자는 방편을 잘하여
마음을 일으키고 열심히 수행한다.
이와 같이 그 공덕주는
곧 선교방편이다. -
030_0265_a_03L挮揥旣已起心住處名,
修行心愛樂,
如是愛樂心,
巧便功德住,
慧者善方便,
起意勤修行,
如其功德住,
是則巧方便。
-
장차 미묘한 경계에 들어갈 때에
유주(流注)의 생각에 따르지 말라.
지혜로운 자는 마음을 섭수해 머물고
받아들여 지님과 같이 -
030_0265_a_06L將入微妙境,
勿隨流注想,
慧者攝心住,
如應善受持。
-
마땅히 머무는 바의 미묘한 공덕을
청정하게 하여 번뇌의 탁함을 없애고
구족하여 감소함이 없고
청정하여 안온함에 머물게 된다. -
030_0265_a_07L所住妙功德,
澄淨無垢濁,
具足無減少,
淸淨安隱住。
-
순일하여 두루 선명하게
정(定)에 집중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은 느낌에 연유하여 있으니
때가 지나면 다시 무(無)로 돌아간다. -
030_0265_a_08L淳一普鮮明,
凝定而不動,
是緣由感有,
時過復歸無。
-
색상(色相)이 차례로 일어나면
갖가지로 여러 모양이 생기니
수행하여 바르게 사유하면
몸과 마음에 희락(喜樂)이 생긴다. -
030_0265_a_10L色相次第起,
種種衆相生,
修行正思惟,
身心生喜樂。
-
이 공덕주에서
구족하여 지관(止觀)을 섭수하면
이미 능히 몸의 즐거움을 일으키고
마음 또한 바르게 안온해진다. -
030_0265_a_11L於是功德住,
具足攝止觀,
旣能起身樂,
心亦正安隱。
-
자지(自地)와 타지(他地)의
공덕에 머묾과 승진
이것을 지금 대강 설하노라.
수행을 널리 분별하여 -
030_0265_a_12L自地亦他地,
功德住升進,
是今當略說,
修行應分別。
-
수행의 삼마제와
선교방편으로 수순하여 집중하면
지혜로운 자는 혜안을 여니
이를 공덕이라 한다. -
030_0265_a_14L修行三摩提,
巧便隨順念,
智者開慧眼,
說名爲功德。
-
마음이 만족한 곳에 안립함을
공덕에 머묾이라 하고
성도(聖道)의 대치(對治)를 수행함을
공덕에 오르는 것이라 한다. -
030_0265_a_15L心足處安立,
說名功德住,
聖道修對治,
說名功德進。
-
대치의 모든 성행(聖行)의
공덕에 머묾과 승진은
경지에 따라 과악(過惡)의 마음이
일어나는 곳을 능히 모두 제거한다. -
030_0265_a_16L對治諸聖行,
功德住升進,
隨地過惡心,
所起悉能除。
-
수행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공덕의 이익이 증광(增廣)한다.
신(信)ㆍ계(戒)ㆍ문(聞)ㆍ사(捨)ㆍ혜(慧)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근(根)이 없음과
욕(慾)과 정진(精進)과 참괴(摲傀)와
제(除)와 희(喜)와 방일(放逸)하지 않음과
열락(悅樂)과 염(念)과 정(定)과 사(捨)와
정지(正智)와 여타의 선법(善法)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이
자지(自地)의 모든 번뇌를 여읜다. -
030_0265_a_18L修行勤精進,
功德利增廣,
信戒聞捨慧,
無貪恚癡根,
欲精進慚愧,
除喜不放逸,
悅樂念定捨,
正智餘善法,
如是一切種,
自地離諸垢。
-
그 공덕에 머물러 서면
곧 지위를 따라 대치한다.
이것이 정진의 힘에 연유하여
선을 도와서 마음을 장양(長養)한다. -
030_0265_a_21L其功德住立,
卽隨地對治,
是由精進力,
助善長養心。
-
어찌 저 지위의 가운데에
종수(種數)를 섭수하지 않으리오.
공덕에 머묾과 승진의
자지(自地)를 자세히 설했노라. -
030_0265_a_22L何於彼地中,
種數不攝受,
功德住升進,
自地以廣說。
-
030_0265_b_01L
자지(自地)의 선근의 힘으로
타지(他地)에 공덕이 생긴다.
가장 뛰어난 의리를 수행함에 대해
이 모양을 지금 대강 설하리라. -
030_0265_b_01L自地善根力,
他地功德生,
修行最勝義,
此相今略說。
-
자지가 이미 증상하면
나머지 뛰어난 청정한 법이 생긴다.
마땅히 이 공덕은
타지로서 승진하고 -
030_0265_b_02L自地旣增上,
餘勝淨法生,
當知是功德,
他地而升進。
-
한량이 없는 방편을 행하며
모든 도탈의 법[度法]을 알아야 하며
갖가지의 대치의 모양으로 하여
타지의 공덕이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
030_0265_b_03L無量行方便,
一切諸度法,
種種對治相,
他地功德起。
-
이를 저 초념처(初念處)에서
3념(念)을 겸하여 수행한다고 한다.
난래(煖來)와 정(頂)과 인(忍)과
세간의 제일법(第一法)과 -
030_0265_b_05L謂於初念處,
三念兼已修,
煖來及頂忍,
世間第一法。
-
견도(見道)와 사유도(思惟道)와
무학도(無學道)를 또한 수행하라.
모든 선(禪)과 신통(神通)과
무량과 무색정(無色定)과 -
030_0265_b_06L見道思惟道,
無學道亦修,
諸禪與神通,
無量無色定。
-
바른 법의 도품분(道品分)과
구경(究竟)의 누진(漏盡) 지혜와
배사(背捨)와 일체입(一切入)과
묘원(妙願)의 지혜와 청정(淸淨)과 -
030_0265_b_07L正法道品分,
究竟漏盡智,
背捨一切入,
妙願智淸淨。
-
신념(身念)의 선근력(善根力)이
이와 같은 제법(諸法)을 일으킨다.
미묘한 공덕의 모양은
모두 순서에 따라서 생기고 -
030_0265_b_09L身念善根力,
乃起是諸法,
微妙功德相,
一切隨順生。
-
만약에 계심처(繫心處)에 머물면
이것이 곧 자지(自地)의 모양이다.
그 모양이 일어남이 몸에 있으니
또한 나타나고 또한 촉(觸)한다. -
030_0265_b_10L若住繫心處,
是則自地相,
其相起在身,
亦現亦復觸。
-
때로는 과(果)에 가깝다고 설하고
때로는 가깝지 않다고 설한다.
혹은 다시 과를 함께하기도 하고
혹은 공(空)으로서 함께하지 않기도 한다. -
030_0265_b_11L有時說近果,
有時說非近,
或復有與果,
或空無所與。
-
이른바 과에 가깝다고 하는 것은
이 모양의 주변에 머무는 것이다.
만약 저 과에 가깝지 않다면
이 모양이 먼 것임을 알아야 한다. -
030_0265_b_13L所謂近果者,
是相近邊住,
若彼果不近,
當知是相遠。
-
만약에 드러나서 닿게 한다면
이것이 곧 과와 함께한 모습이 된다.
비록 드러나도 불촉(不觸)한다면
공상(空相)이어서 공덕이 없다. -
030_0265_b_14L若使現而觸,
是卽與果相,
雖現而不觸,
空相無功德。
-
비유하자면 마치 무과수(無果樹)가
꽃이 화려해도 열매가 없음과 같다. -
030_0265_b_15L譬猶無果樹,
華繁而無實。
-
마치 사람이 몹시 춥거나 목마를 때에
먼 곳에 불이나 물이 보인다고 해도
끝내 그곳에 닿을 수가 없으니
그저 보기만 하는 모양이 역시 그러한 것과 같다. -
030_0265_b_16L如人冷渴逼,
遠見有水火,
彼終不起觸,
但見相亦然。
-
공하므로 공덕이 없으니
몸에 쾌락이 없다.
희열(喜悅)이 끝까지 증장하여
식락(息樂)과 적지(寂止)와
몸과 마음에 이와 같은 즐거움을 받는다.
이를 말하여 과(果)와 함께한 모습이라 한다. -
030_0265_b_17L空無功德故,
於身無快樂,
喜悅極增長,
息樂及寂止,
身心受斯樂,
是說與果相。
-
공덕과 그리고 나머지 법의
자지(自地)와 타지(他地)와의
승진상(升進相)에 회전을 하니
4종(種)이 모두 역시 그러하다. -
030_0265_b_19L功德及餘法,
自地與他地,
升進相廻轉,
四種俱亦然。
-
모든 승진의 모양들과
수용하고 묘한 갖가지 인(印)과
연화(蓮花)와 뭇 보배 나무와
화려한 모든 그릇과 의복들이란
광염(光炎)이 지극히 찬란하니
한량없는 장엄 도구들이다. -
030_0265_b_21L一切升進相,
殊妙種種印,
蓮花衆寶樹,
靡麗諸器服,
光炎極顯炤,
無量莊嚴具。
-
지혜로운 자는 뛰어난 도의
공덕에 머묾과 승진을 설한다.
일어나는 모든 묘상(妙相)들을
내 지금 이를 갖추어서 설하리라. -
030_0265_b_23L慧說爲勝道,
功德住升進,
所起諸妙相,
我今當具說。
-
030_0265_c_01L
수행하는 자들은 잘 들으라.
이 위의 만다라(曼茶邏)에서
순일하게 온갖 상(相)을 일으키고
유광(流光)이 참연(參然)히 내려오고
청정하기가 마치 파리(頗梨) 보배와 같으니
그 빛이 4체(體)에 충만하다.
몸을 지극히 유연하게 하고
다시 몸으로부터 나와 -
030_0265_c_01L修行者諦聽!
於上曼荼邏,
淳一起衆相,
流光參然下,
淸淨如頗梨,
其光充四體,
令身極柔軟,
又復從身出。
-
점점 아래로 흘러내려서
그 선근의 힘을 따라
멀고 가까움에 일정한 모양이 없고 -
030_0265_c_04L漸漸稍流下,
隨其善根力,
遠近無定相。
-
그것이 저 만다라(曼荼邏)를 이루어
형세가 다하면 본처(本處)로 돌아온다. -
彼成曼荼邏,
勢極還本處。
-
근본 종성(種性) 가운데에
그 모양이 세 단계로 일어나니 -
030_0265_c_05L根本種性中,
其相三階起。
-
공덕주(功德住)의 다섯 모양과
공덕진(功德進)의 다섯 모양인데 -
030_0265_c_06L功德住五相,
功德進五相。
-
불괴(不壞) 공덕이 둘이요
반괴(半壞) 공덕이 둘이요
진괴(盡壞) 공덕이 하나이다. -
030_0265_c_07L不壞功德二,
半壞功德二,
盡壞功德一。
-
다시 계심처(繫心處)에 돌아와서
본래의 종성(種性)에 머물러 -
復還繫心處,
住本種性已。
-
시방에 두루 유산(流散)해서10상(相)이 생긴다.
그 공덕이 10상(相)의 위에10상이 각각 10상을 낳는다.
다시 각각 1상(相)이 나타난다.
그리고 또 유산(流散)의 곁에서
모든 심묘상(深妙相)을 일으키고
저 심묘(深妙)한 경계에서
다시 심묘상을 일으킨다. -
030_0265_c_08L流散遍十方十相生,
功德十相上十相各生十相,
各復一相現,
又於流散邊,
生諸深妙相,
於彼深妙際,
復生深妙相。
-
위아래로 여러 윤상(輪相)이
다시 이같이 나타나니 -
030_0265_c_11L上下輪諸相,
亦復如是現。
-
저 3계(階)의 처소에서
갖가지 모양들이 생긴다.
자상(自相)은 이미 각각 멸하여
오직 저 총상(摠相)에만 머문다. -
030_0265_c_12L於彼三階處,
種種雜相生,
自相各已滅,
唯彼棇相住。
-
모든 잡상(雜相)들은 이미 없어서
적정(寂靜)의 행(行)에 회전한다.
이들 세 가지 만다라는
경계가 나뉘어도 옮기지 않고 -
030_0265_c_13L諸雜旣已無,
寂靜行廻轉,
此三曼荼邏,
境分猶不移。
-
근본의 공덕주에 순응하니
자체(自體)가 앞의 말과 같다. -
順本功德住,
自體如前說。
-
들숨의 삼마제가
하방(下方)에 두루 충만하고
날숨의 삼마제가
상방(上方)에 두루 충만하여 -
030_0265_c_15L入息三摩提,
遍充滿下方,
出息三摩提,
遍充滿上方。
-
두 가지가 함께 시방에 가득하니
묘한 심심(甚深)을 바르게 받는다.
이와 같이 마음에 따르면
이를 일러 법자재(法自在)라 한다. -
030_0265_c_17L二俱滿十方,
正受妙甚深,
如是隨意者,
是謂法自在。
-
청정한 계심처(繫心處)를
법이 없으니 구하지 않는다.
이미 생긴 것을 장양하여
모든 공덕을 성취하니
하늘의 만다수(曼陀樹)처럼
만다지(曼陀池)에서 나서 자란다. -
030_0265_c_18L淸淨繫心處,
無法而不求,
旣生有長養,
成就諸功德,
如天曼陁樹,
曼陁池生長。
-
공덕에 머묾과 승진과
갖가지의 묘상(妙相)들
이 뜻을 내가 이미 설했으니
이를 수행하여 잘 지켜 가져라. -
030_0265_c_20L功德住升進,
種種衆妙相,
是義我已說,
修行善守持。
勝道升進第六竟。
-
7. 수행방편도안반념결정분(修行方便道安般念決定分) - 030_0265_c_22L修行方便道安般念決定分第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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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_0266_a_01L
승진의 법이 섭지[攝]하는
여러 공덕들을 이미 설했으니
수행의 결정분(決定分)에 대해
이제 이를 차례로 설하리라. -
030_0265_c_23L已說升進法,
所攝諸功德,
修行決定分,
是今次第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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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숨의 염(念)을 잘하면
들숨 또한 그러하다. -
善於出息念,
入息俱亦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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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을 자세히 사유하고
분별하여 갖춤에 명료하면
이것이 곧 결정분이니
세존께서 설하신 것이다. -
030_0266_a_02L出入諦思惟,
分別具明了,
此則決定分,
世尊之所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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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의 선근(善根)은
각각 그 자상(自相)을 다하고
가장 뛰어난 무상(無上)의 지혜를
그 이름을 말하여 결정(決定)이라 한다. -
030_0266_a_04L一切諸善根,
各各盡自相,
最勝無上智,
說名爲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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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모든 수행하는 자들은
이 결정분에 안주해야 하며
날숨과 들숨 때에
무상(無常)한 모양을 바르게 관찰하라. -
030_0266_a_05L彼諸修行者,
安住決定分,
出息入息時,
正觀無常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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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법이 차례로 일어나고
전전(展轉)하여 다시 서로 인연이 되며
나아가 뭇 인연이 합하여
일어나는 때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
030_0266_a_07L息法次第生,
展轉更相因,
乃至衆緣合,
起時不蹔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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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의 법은
그 성질이 신속히 쇠하여 멸함을 알아야 한다.
법은 인연을 따라 일어나고
성(性)은 약하므로 무상하다. -
030_0266_a_08L當知和合法,
是性速朽滅,
法從因緣起,
性羸故無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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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연의 힘으로
이 법이 생기게 된다.
허망하여 견고함이 없으니
신속히 일어났다가 신속히 멸한다. -
030_0266_a_09L一切衆緣力,
是法乃得生,
虛妄無堅固,
速起而速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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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非常)의 독(毒)에 해침을 받아
그 성(性)이 오래 머물지 못한다.
이 같은 관법을 수행한다면
이것이 곧 결정념이다. -
030_0266_a_11L非常毒所毒,
其性不久住,
修行如是觀,
此則決定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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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운행하는 하늘에 비유컨대
호흡의 변화가 그보다 더욱 빠르다.
무상상(無常想)을 결정하고
수행하여 열반으로 나아간다. -
030_0266_a_12L譬如運行天,
息變疾於彼,
決定無常想,
修行趣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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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숨이 아직 멸하지 않으므로
들숨이 생기지 않고
들숨이 아직 멸하지 않으므로
날숨이 생기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
수행의 결정분이다. -
030_0266_a_13L非出息未滅,
而有入息生,
非入息未滅,
而有出息生,
如是諦觀察,
修行決定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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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껄끄럽고 날카로운 가시가 생기고
갖가지로 괴롭고 핍박하는 모양은
이른바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때에 줄어들고 끊어진다. -
030_0266_a_15L麤澀利刺生,
種種苦逼相,
謂息出與入,
一切時迫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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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에서 능히 깨달아 알아라.
모든 괴로움의 모양이 구족함을 깨닫는다.
이와 같은 진리의 사유를
이름하여 결정이라 한다. -
030_0266_a_17L於息能覺了,
具足衆苦相,
如是諦思惟,
說名爲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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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自相)은 견고함이 없고
적멸하고 공하고 무아로서
인연의 힘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인연 따라 일어나므로 멸하는 것이다. -
030_0266_a_18L自相無堅固,
寂滅空無我,
因緣力所起,
從緣起故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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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상(我相)이 있음을 여의면
항상 머물러서 변역(變易)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전도의 행(行)을
일체 모두 멀리 여의고
오직 진실하게 관한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결정이라 한다. -
030_0266_a_19L捨利有我相,
常住不變易,
如是顚倒行,
一切悉遠離,
唯作眞實觀,
是名爲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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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음으로써 견고함이 없고
또한 자재함이 없는 것이다.
저 들고 나는 호흡에는
일찍이 각지상(覺知相)이 없다.
내가 없음을 자세히 아는 것을
결정이라 한다. -
030_0266_a_21L非我無牢固,
亦無有自在,
非彼出入息,
曾有覺知相,
諦知無我故,
是說爲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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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_0266_b_01L
이 지혜의 모양이
성행(聖行)의 이름에 비슷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곧 방편인 것이니
저 진실의 행이 아니다. -
030_0266_a_23L當知是智相,
相似聖行名,
此則爲方便,
非彼眞實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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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여, 안반념(安般念)은
잡된 생각들로 깨달음이
이미 어지럽혀져 마음이 기쁘지 않으면
마땅히 수(數)를 따라 일으킨다.
혹은 들숨을 따라 수를 헤아리고
혹은 날숨을 따라 수를 헤아린다.
생각의 어지러움과 각관(覺觀)의 상(想)은
이로 인해 구경(究竟)하여 여읜다. -
030_0266_b_02L比丘安般念,
雜想覺所亂,
旣亂心不悅,
應當從數起,
或從入息數,
或從出思數,
思亂覺觀想,
由是究竟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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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자는 들숨에 있어서
마음을 묶어 수식을 행할 때에
한 번 들어오는 것을 세어서 하나로 하고
나가는 숨을 섞어서 헤아리지 말며
전념하여 수를 흩어지지 않게 한다.
이같이 하여 열에 이르고 -
030_0266_b_04L慧者於入息,
繫心行數時,
一入數爲一,
不雜數出息,
專念不亂數,
如是乃至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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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열에 날숨을 버리면
이로부터 결정을 얻는다.
이것이 곧 구족된
근본수(根本數)를 성취한 것이다. -
030_0266_b_06L捨彼十出息,
從此得決定,
此則說具足,
成就根本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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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머지 수법(數法)이 있으므로
방편을 일으켜 수행한다. -
更有餘數法,
修行方便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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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근본수법을
결정할 수 없으면
숨을 촉급하게 하여 깨닫기 쉽게 하고
방편으로 마음을 생하게 한다. -
030_0266_b_08L若於根本數,
不能起決定,
促息使易覺,
方便令心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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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두 번의 나가는 숨을 버리고
하나의 들어오는 숨을 세어야 한다.
마음이 안정된 것이 흩어지지 않으면
둘의 수를 센다. -
030_0266_b_10L當捨二出息,
然後數入一,
定意心不亂,
第二數成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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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두 번의 방편에서
결정하지 못하면
열의 나가는 숨을 넘은 뒤에
들어오는 숨의 하나를 헤아린다. -
030_0266_b_11L若於二方便,
猶不起決定,
乃至越十出,
然後數入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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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생각하여 마음이 흩어지지 않으며
차례로 구족하게 되는 것을
수행자의
열 가지 수(數)의 성취라고 한다. -
030_0266_b_12L正念心不亂,
次第至具足,
是說修行者,
十種數成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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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열 가지의 법은
곧 수의 구경이다.
더 이상은 다시 버려야 한다.
수를 더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
030_0266_b_14L如上十種法,
是則數究竟,
於上更復捨,
增數非修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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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수를 수행하면
이것이 곧 수법(數法)을 이룬 것이다.
이룬 뒤에는 마땅히 이를 버리고
다시 나머지 방편에 나아가야 한다. -
030_0266_b_15L修行如是數,
是則數法成,
成已應當捨,
復進餘方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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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수법을 수행하여
만약 다시 이를 성취하지 못하면
마땅히 다시 앞에서 설한 것처럼
처음의 수로 돌아가서 시작해야 한다. -
030_0266_b_16L修行於數法,
若復不成就,
應更如前說,
還從初數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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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을 써서 수법을 이루면
곧 결정분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수법을 성취하면
지혜로운 자의 마음이 수순하는 -
030_0266_b_18L方便成數法,
便得決定分,
數法已成就,
慧者心隨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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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설한 여섯 가지는
수행의 바른 방편을 설한 것과 같다.
이 같은 여섯 가지를 수행하면
신속히 염리상(厭離想)이 일어나
생사에 집착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힘써 근심과 번뇌를 끊고 -
030_0266_b_19L六種如前說,
修行正方便,
修行於六種,
疾生厭離想,
不樂著生死,
勤憂斷煩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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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여 마음속에
일체 유위법(有爲法)을 멀리 여의어라.
욕망을 여읨이
청정(淸淨)한 결정분(決定分)임을 알아야 한다. -
030_0266_b_21L修行心遠離,
一切有爲法,
當知是離欲,
淸淨決定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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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긺이 앞에 있다고 말하고
혹은 짧음이 앞에 있다고 말한다.
그 결정의 뜻에 대하여
지금 이를 차례로 설하리라. -
030_0266_b_22L或說長在前,
或說短在前,
如其決定義,
今當次第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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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_0266_c_01L
날숨이 일어날 때를 일러
짧음이 앞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응하는 바가 아니라고 하고
형세가 차츰 증진하기 때문에 -
030_0266_c_01L謂出息始起,
說言短在前,
是說非所應,
勢漸增進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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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이 감으로써 점점 멀어지고
나아가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소진하는 이것이 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른바 짧은 것은 그러하지 않다. -
030_0266_c_02L息去漸久遠,
乃至未還間,
當知盡是長,
謂短則不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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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숨이 차츰 증장하더라도
구경처에 이르지 못하면
이 가운데서 관찰하는 바를
이름하여 긴 가운데 짧음이라 한다. -
030_0266_c_03L出息漸增長,
未到究竟處,
是中所觀察,
說名長中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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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마음으로 방편을 정진하여
전념하여 바르게 사유하고
증장하여 구경에 이르는 것을
이름하여 긴 가운데 긺이라 한다. -
030_0266_c_05L一心勤方便,
專念正思惟,
增長至究竟,
說名長中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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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관함에 바람이 회전하고
나머지 구상(求想)을 버린
다음에 결정을 얻으면
이것이 곧 짧은 가운데 긺이다. -
030_0266_c_06L觀已風廻轉,
捨離餘求想,
然後得決定,
此則短中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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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숨이 극도로 짧을 때에는
돌아와 일어난 곳에 이르는데
그 관찰하는 바를
이름하여 짧은 가운데 짧음이라 한다. -
030_0266_c_07L入息極短時,
還到所起處,
於是所觀察,
說名短中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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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바르게 사유하고
수행하여 매우 명료하면
이미 결정분을 얻게 된다.
다시 나머지 방편에 나아가 -
030_0266_c_09L如是正思惟,
修行善明了,
已得決定分,
復進餘方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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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가득 널리 출입하는
신행(身行)의 호흡을 깨달아 알라.
이와 같은 각(覺)을 수행하면
이것을 곧 결정분이라 한다. -
030_0266_c_10L滿身遍覺知,
出入身行息,
修行如是覺,
則爲決定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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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컨대 마치 세차게 타는 불길의
그 광염(光炎)이 길고 먼 것과 같다.
섶이 다하면 불도 꺼지나니
불꽃이 다시 차츰 짧아진다.
그러나 다시 섶을 다 지핀다면
불꽃이 두루 널리 비추고
세력이 다하면 드디어 꺼지나니
저 네 종류의 바람도 역시 그러하여 -
030_0266_c_11L譬如火熾然,
光炎則長遠,
薪盡火將滅,
光炎還漸短,
若更增益薪,
光炎普周遍,
勢盡乃歸滅,
四種風亦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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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길고 짧음의 내외에서
교호(交互)하여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혹은 둘을 함께 장단(長短)으로 말하니
이와 같이 갖가지로 설명한다. -
030_0266_c_14L或說於長短,
內外互立名,
或二俱長短,
如是種種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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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저 깊은 우물의 물을 길어 올릴 때
두레박이 내려갈수록 점점 멀어지다가
다시 이를 끌어올려
끝에 이르면 그것이 짧아지는 것과 같다. -
030_0266_c_15L如彼汲深井,
甁下轉就遠,
旣攝令還上,
訖至復之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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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허공에 활을 쏨에 있어서
날아가는 화살이 거침없이
점점 높이 올라가지만
힘이 다하면 다시 내려오는 것과 같다. -
030_0266_c_17L譬如仰射空,
矢發疾無閡,
其去漸高遠,
勢極還自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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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여 바르게 사유하고
풍상(風相)에 의지하여 관찰하면
처음에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지니
장단의 뜻도 역시 그러하다. -
030_0266_c_18L修行正思惟,
觀察依風相,
初遠然後近,
長短義亦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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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저 끌고 돌아가는 바퀴가
굽혔다 폈다 하며 서로 왕래할 때
멀리 갔을 때는 길다고 하고
가까이 돌아오면 짧다고 하는 것과 같다.
호흡의 바람이 번갈아 들고 나니
길고 짧음이 역시 그러하다. -
030_0266_c_19L猶如牽旋輪,
屈伸互往來,
往遠名爲長,
來近則爲短,
息風迭出入,
長短亦復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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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컨대 저 진제(眞諦)를 관찰해 보면
먼저는 고(苦)인데 나중엔 집(集)인 것과 같다.
호흡의 관함 또한 이와 같아서
먼저는 길고 다음엔 짧다. -
030_0266_c_21L譬彼眞諦觀,
先苦而後集,
觀息亦如是,
先長然後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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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초선의 호흡이 짧고
제2선의 호흡이 길다고 하더라도
정수(正受)의 뜻에 거스른다는
이러한 말은 그러하지 않다. -
030_0266_c_23L若初禪息短,
第二禪息長,
以違正受義,
是說則不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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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_0267_a_01L
그와 같은 초선 중에서
호흡의 바람의 세력이 지극히 멀고
제2선의 호흡이 짧아서
정수가 차츰 차별된다.
몸에 가득 두루 각지(覺知)를 함은
곧 제3선에 의지한 것이다.
최후에 몸으로 하는 호흡은
털구멍을 떠나게 된다. -
030_0267_a_01L於彼初禪中,
息風勢極遠,
第二禪息短,
正受漸差別,
滿身遍覺知,
則依第三禪,
最後身行息,
以離毛孔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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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모든 삼매가
공덕의 상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수행하여 거기에 안주하면
깨닫는 생각이 흩어지지 않게 된다. -
030_0267_a_04L此說諸三昧,
隨順功德相,
修行安住彼,
不爲覺想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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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초선을 하는 중에
긴 것만 말하고 짧음은 없는가?
모든 의지하는 것을 버리지 않으니
이러한 까닭에 호흡이 길다. -
030_0267_a_05L何故初禪中,
唯說長無短?
不捨諸所依,
由是故息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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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깨닫는 생각의 힘으로써
호흡을 하여 가고 길어진다.
두 번째는 모든 의지하는 바를 버리므로
세력이 약하기에 호흡이 짧다. -
030_0267_a_06L彼以覺想力,
能令息去長,
第二捨諸依,
勢羸故息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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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수다라(修多羅)에서
부처님께서는 산정(山頂)의 샘은
흐르는 세력이 멀리 미치지 않으니
여타의 곳으로부터 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하셨다. -
030_0267_a_08L甚深修多羅,
佛說山頂泉,
涓流勢不遠,
餘處無來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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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은 산정의 비유처럼
두 번째의 의지하는 바도 역시 그러하여
단지 그곳을 좇아 일어나니
이것이 끝내 멀지 않다. -
030_0267_a_09L如彼山頂喩,
第二依亦然,
唯從其處起,
是終不能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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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장한 사나이는
무거운 짐을 지고도 산을 오르며
있는 힘을 다해 기운을 쓰니
그 호흡의 바람이 급하게 회전한다.
그러다가 편안한 곳에 이르면
그 호흡이 고르게 되니
이러한 비유는 저 호흡이
먼저는 짧고 나중은 길다는 말이다. -
030_0267_a_10L彼說健士夫,
負重而上山,
竭力令氣奔,
息風急廻轉,
旣到安隱處,
其息乃調適,
是喩說彼息,
前短而後長。
-
저 건장한 사나이가
짐을 지고 산을 올라가도
신력(身力)의 방편을 쓰면
그로 해서 호흡을 길게 한다. -
030_0267_a_13L所說健士夫,
負重而上山,
以身力方便,
是乃令息長。
-
그러나 만약 방편이 나빠서
자기 힘으로 짐을 지지 못하면
힘이 없는 방편이기에
호흡이 약하므로 멀리 가지 못한다. -
030_0267_a_14L如彼劣方便,
不自力負重,
以無力方便,
息微故不遠。
-
비유컨대 남자가 활을 쏠 때
화살을 멀리 가게 함과 같아서
힘이 약해 방편이 없으면
세력이 약해서 가까이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
030_0267_a_16L譬如壯夫射,
能令箭極遠,
劣力無方便,
勢弱去則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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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비유는
장단의 뜻을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
030_0267_a_17L此喩應當知,
是說長短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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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細微)한 깨달음을 수행하여
모든 진리에 이와 같이
16분(分)을 명료히 하면
모두 이름하여 결정(決定)이라 한다. -
030_0267_a_18L修行細微覺,
一切諦明了,
如是十六分,
悉名爲決定。
-
방편 승진(升進)의 이와 같은
공덕에 머묾을 분별하여
안반념을 결정함도
역시 마땅히 이와 같이 설했노라. -
030_0267_a_20L如方便升進,
分別功德住,
決定安般念,
亦應如是說。
-
그런데 저들 설하지 않은 것의
나머지 모든 공덕에 머묾을
마땅히 내가 설하리라.
그 결정분에 대한 것처럼 -
030_0267_a_21L如彼所未說,
諸餘功德住,
是故我當說,
如其決定分。
-
바람이 일어나는 바
근본의 청정함을 지극히 관찰하고
미묘한 모양을 수행하면
곧 이곳에서 -
030_0267_a_22L觀察風所起,
根本極淸淨,
修行微妙相,
則於是處現。
-
030_0267_b_01L
저 구경처에
마니 보배의 삼매를 나타낸다.
이 공덕으로부터
방편과 근본이 생기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
030_0267_b_01L於彼究竟處,
摩尼寶三昧,
當知此功德,
方便根本生。
-
미묘한 방편의
근본 결정분을 이미 설했노라.
나머지 깊은 정수(正受)의 모양은
모두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
030_0267_b_02L已說妙方便,
根本決定分,
餘深正受相,
一切如前說。
方便決定分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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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수행방편승도결정분(修行方便勝道決定分) - 030_0267_b_04L修行方便勝道決定分第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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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방편도를
섭수한 결정분을 설했으니
승도(勝道)의 결정상(決定相)에 대하여
이제 이를 내가 설하리라. -
030_0267_b_05L已說方便道,
所攝決定分,
勝道決定相,
是今我當說。
-
수행하여 잘 결정해서
계심처(繫心處)가 견고해지면이염(爾炎)을 이른다.
신수(身受)와 심법(心法)
이것에서 바르게 관찰한다. -
030_0267_b_07L修行善決定,
繫心處堅固謂爾炎也,
身受與心法,
於是正觀察。
-
여섯 가지 인(因)이 있어서
이것이 과(果)를 성취한다고 한다.
성(成)과 괴(壞)가 각각 세 종류이니성숙(成熟)의 숙도 역시 괴(壞)이다.
수행의 결정상이다. -
030_0267_b_08L說有六種因,
是能成就果,
成壞各三種成熟熟亦壞也,
修行決定相。
-
이 같은 여섯 가지의 인(因)에서
방편으로 잘 관찰하면
능히 다음 차례에
모든 번뇌를 신속히 끊을 수 있다. -
030_0267_b_10L於是六種因,
方便善觀察,
是則能次第,
疾得諸漏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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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나머지 인이 있으니
갖가지 허물고 이루는 일이
이와 같이 많아서 한량이 없으니
내가 지금 이를 대강 설하리라. -
030_0267_b_11L復更有餘因,
種種成壞事,
如是多無量,
我今當略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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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들이 수행이 되는가?
물의 종류의 허물어진 모양은
이레 동안이면 죽은 시체가
헐어 변한 모양으로 드러나게 된다. -
030_0267_b_12L何等爲修行?
水種所壞相,
謂七日死屍,
毀變相已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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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 모든 죽은 시체들은
검고 푸르게 썩어서 문드러진다.
이미 썩어서 피고름이 흐르니
고약한 즙이 흘러서 퍼진다.
허물어져 흐르고 문드러지고
온갖 지독한 냄새가 풍긴다. -
030_0267_b_14L彼彼諸死屍,
靑黑瘀爛壞,
已壞膿血流,
惡汁相澆漫,
潰漏若分離,
雜惡極臭穢。
-
이것이 모두 물이 허물어진 것이니
내신(內身)이 모두 그러하다.
그런데 저 오랜 겁 동안의 성패(成敗)는
물의 큰 힘에 연유한다. -
030_0267_b_16L是悉水所壞,
內身俱亦然,
乃至劫成敗,
斯由水大力。
-
물결이 크게 끓어 솟구치면
대지가 모두 침수되어 무너진다.
저 3선(禪)의 경계로부터
물이 두루 휘돌아서 내려오고
마구 쏟아짐이 극히 표탕(漂蕩)하여
물건이란 물건은 모두 소진한다. -
030_0267_b_17L水輪極沸涌,
大地皆瀸壞,
從彼三禪際,
周帀水來下,
洪注極漂蕩,
有物皆消盡。
-
모든 정식(情識)의 종류들과
백곡(百穀)과 총림(叢林)들과
흙이나 흙에서 나는 것들이
모조리 물에 의해 허물어진다. -
030_0267_b_19L一切情識類,
百穀及叢林,
土地地所生,
悉爲水所壞。
-
중생들이 물로 해서 허물어짐은
이것이 모두 숙업(宿業)에 의함이다.
이상과 같은 수재(水災)의 모양이
무구(無垢)3한 결정설(決定說)이다. -
030_0267_b_20L衆生水所壞,
是皆依宿業,
如上水災相,
無垢決定說。
-
이와 같은 모든 종류들이
모두가 삼매지(三昧地)의
수행의 과(果)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이 결정코 그러함을 마땅히 알라. -
030_0267_b_22L此諸一切種,
皆從三昧地,
修行果所起,
當知是決定。
-
수행하여 마음을 잘 묶어서
삼마제에 안주하고
소연(所緣)에서 능히 밝게
그 종상(種相)을 보는 것이다. -
030_0267_b_23L修行善繫心,
安住三摩提,
是能於所緣,
明見彼種相。
-
030_0267_c_01L
이 땅이 익을 때에 익으리.그 뜻이 또한 괴(壞)를 말하는 것인데, 이 땅이 번뇌를 허물어뜨릴 때에 괴상(壞相)을 보는 것이다.
경계의 바다에 충만하리라. -
030_0267_c_01L此地熟時熟亦義言壞,此地能壞煩惱時見壞相。,
充滿境界海。
-
수행하여 보는 바의 허물어짐은
수대(水大)의 결정상(決定相)이다.
저 화대(火大)의 소괴상(所壞相)을
지금 설할 테니 잘 들으라. -
030_0267_c_02L修行所見壞,
水大決定相,
火大所壞相,
今當說善聽。
-
식류(識流)와 식류 아닌 것들이
또한 위에 설한 것과 같다. -
識類非識類,
斯亦如上說。
-
불이 일어나 타기 시작하고부터
모든 것들이 다 소진한다.
나아가 겁 동안의 성패(成敗)는
세계가 모조리 재가 되어 멸하고 -
030_0267_c_04L及自現火然,
一切皆消盡,
乃至劫成敗,
世界悉灰滅。
-
저 불기둥이 치솟는 곳에서
이글거리는 큰 불꽃이 일어난다.
또한 2선(禪)의 경계로부터
가득 차게 모두 불을 비처럼 내리고 -
030_0267_c_06L於彼火輪處,
熾炎大火起,
亦從二禪際,
彌滿悉雨火。
-
성한 불길이 두루 널리 변만해서
세계가 모두 퀭하니 뚫린다.
저 삼매의 경지에서
바른 관찰의 사유가 일어나고 -
030_0267_c_07L盛火普周遍,
世界俱洞然,
於彼三昧地,
正觀思惟起。
-
수행하여 이런 변화를 보는 것이
불이 무너지는 결정의 모양이다.
저 풍대(風大)의 소괴상(所壞相)을
지금 차례로 설하리라.
이와 같은 여러 종류가
모두가 다 풍대의 허물어진 모습이라. -
030_0267_c_08L修行見此變,
火壞決定相,
風大所壞相,
今當次第說,
如上諸種類,
悉爲風所壞。
-
대지와 수미산이
분산하여 분진(粉塵)처럼
모두 소진하고 마멸(磨滅)하니
이것이 모두 바람의 큰 힘이다. -
030_0267_c_11L大地及須彌,
分散若粉塵,
一切盡磨滅,
是皆風大力。
-
위의 저곳은 제4선이요
아래는 지극한 풍륜(風輪)의 세계이다.
재풍(災風)이 저곳에서 일어나서
그곳이 모두 무너져 흩어진다. -
030_0267_c_12L上際第四禪,
下極風輪界,
災風從彼起,
其中皆散壞。
-
모든 것이 바람에 의해 무너진 것이니
지혜로운 자는 진실로
이와 같이 바르게 사유하여
바람이 무너뜨린 결정상을 보리라. -
030_0267_c_13L一切風所壞,
智者見眞實,
如是正思惟,
風壞決定相。
-
저들이 어떻게 수행을 한다 하는가?
언제나 깊은 근심과 싫어함[憂厭]을 일으켜
앞에서 저 고법(苦法)을 보고는
이를 따라 생각하여 잊지 않는다. -
030_0267_c_15L云何彼修行,
常起深憂厭?
於前見苦法,
隨憶念不忘。
-
여덟 곳의 괴로운 큰 지옥이
각각 16분(分)을 증장하고
그것들 뭇 괴로움의 종류들의
가없고 한량없는 지옥이 있다.
중생들이 그곳에 태어나고
행함을 따라 온갖 고통을 받는다. -
030_0267_c_16L八苦大地獄,
各增十六分,
彼彼衆苦類,
無量邊地獄,
衆生生彼處,
隨行受衆苦。
-
나는 이 악도(惡道)에서
아직 못 여의고 끌려오기도 했다.
마치 여덟 곳의 큰 지옥과 같아
누가 이를 다 일컬어 말하리오.
그 속의 한량이 없는 고통
그 끝을 얻기 어렵다. -
030_0267_c_18L我於此惡道,
未離或牽來,
如八大地獄,
誰能盡稱說,
其中無量苦,
難可得邊際。
-
가령 사람의 머리가 백 개가 있어
머리마다 백 개의 혀가 있다고 해도
지옥의 고통을 말하고자 한다면
겁이 다해도 다 말하지 못하리라. -
030_0267_c_20L設人有百頭,
頭各有百舌,
欲說地獄苦,
窮劫不能盡。
-
어리석음과 간힐(奸黠)의 지경(地經)을
오직 부처님만이 이를 잘 분별하신다.
나는 모조리 구경할 수 있지만
능히 헤아릴 수 있는 자가 없다. -
030_0267_c_21L如愚黠地經,
唯佛善分別,
我悉能究竟,
無有能測者。
-
고독(苦毒)의 바다를 윤회하면서
무량한 겁을 오고 가고 하였으니
전도(顚倒)되어 선행(善行)하지 않으면
이러한 큰 고통의 과보에 이르게 된다. -
030_0267_c_23L輪廻苦毒海,
往返無量劫,
顚倒不善行,
致此大苦果。
-
030_0268_a_01L
자기 숙명(宿命)을 스스로 본다면
이런 고통은 다들 일찍 겪었다.
수행하여 본래의 고통을 기억한다면
열반을 따름을 곧 얻으리라. -
030_0268_a_01L自見宿命時,
是痛曾悉經,
修行憶本苦,
便得順涅槃。
-
어두운 마음은
축생의 부정한 업을 증상시키니
어리석음의 불애(不愛)의 과보와
갖가지 괴로움의 과보의 몸을 받는다. -
030_0268_a_02L闇冥心增上,
畜生不淨業,
受癡不愛果,
種種苦報身。
-
9만 9천 종류의
그 형태가 각각 서로 달라 -
九萬九千種,
形類各別異。
-
공중을 다니는 것과 수륙(水陸)의 성질들이 있으며
기어 다니고 꿈틀거리는 무리들이
각각 그 업을 따라 삶을 받았으니
이러한 극적인 곳을 구른다.
일체의 저 축생들은
돌아가며[展轉] 서로 잔인하게 먹으니 -
030_0268_a_04L空行水陸性,
蚑行蠕動類,
隨業各受生,
宛轉此劇處,
一切諸畜生,
展轉相殘食。
-
내가 본래 어리석었으므로
일찍이 이런 괴로움을 모두 받는 것이다.
이것을 돌아보니 두려워져서
마음은 염환(厭患)을 수행하여 -
030_0268_a_06L我以愚癡故,
悉增受此苦,
顧此而懷懼,
心與厭患俱。
-
깊이 근심하고 싫어하면
곧 고결정(苦決定)에 대한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하면
방편으로 염리(厭離)를 일으킨다. -
030_0268_a_08L修行深憂厭,
則於苦決定,
修行已如是,
方便生厭離。
-
다시 또 스스로
아귀의 무량한 고통을 기억해 보면
바늘구멍처럼 목구멍은 가는데
거대한 몸은 옥초산(沃焦山) 같다.
이와 같이 무수한 겁 동안을
주리고 목마르고 너무 괴로워
하늘에서 내리는 단비를 보고
마시려고 하니 불덩이로 변한다. -
030_0268_a_09L又復自憶念,
餓鬼無量苦,
咽細如鍼孔,
巨身如沃燋,
於此無數劫,
飢渴極熱惱,
見天降甘雨,
欲飮成炭火。
-
저 4대(大)의 바다는
깊고 넓어서 끝도 바닥도 없는 것 같으나
마시려면 없어지고 마니
주리고 목마름을 그칠 수가 없다. -
030_0268_a_12L如彼四大海,
深廣無崖底,
飮之令悉盡,
不能止飢渴。
-
발가벗은 몸에 장발을 늘어뜨린 모습이
타다 남은 다라수(多羅樹) 모양이니
이런 곳에서 한없이 오래 살면서
이 같은 갖가지 고통들을 받는다. -
030_0268_a_13L裸形被長髮,
狀燒多羅樹,
於中甚久長,
受此種種苦。
-
업풍(業風)이 사방으로 몰아치면서
몸을 휘날려 부러뜨려 버리니
마치 저 광풍이 일어나서
마른 나무를 부러뜨림 같아라. -
030_0268_a_14L業風飄東西,
吹身令碎折,
亦如狂飆起,
摧破久枯樹。
-
내가 간탐(慳貪)의 행을 쌓아서
혜시(惠施)의 업을 익히지 않았으므로
아귀에 태어나서
이 같은 온갖 고통들을 받는 것이다. -
030_0268_a_16L我積慳貪行,
不習惠施業,
故生餓鬼處,
受此諸苦痛。
-
삼매의 경지에서
수행하여 사유가 일어나니
갖가지로 구별해 관찰하여
곧 방일하지 않으면 -
030_0268_a_17L三昧境界地,
修行思惟起,
種種別觀察,
便得不放逸。
-
비록 번뇌는 끊지 못해도
이 같은 고통들의 핍박과 초독(楚毒)을 보아
매우 근심스럽고 두려워
생사의 고통을 지극히 싫어하게 된다. -
030_0268_a_18L雖未斷煩惱,
見此衆苦迫,
楚毒深憂懼,
極厭生死苦。
-
이미 싫어하면 능히 욕망을 여의니
손바닥의 보배를 보는 것 같다.
탐욕을 이미 여의면
신속히 저 해탈을 얻게 되리라. -
030_0268_a_20L旣厭能離欲,
如觀掌中寶,
貪欲旣已離,
便速得解脫。
-
비유컨대 마치 향기로운 음식
그 속에 고독(蠱毒)이 있음과 같으니
갖가지 종류의 생사의 맛의
각종 괴로움이 역시 그러하다. -
030_0268_a_21L譬如香美食,
其中有蠱毒,
種種生死味,
雜苦亦如是。
-
마치 상자에 뱀을 담아
이것을 짊어지고 갈 때
만약 그것을 깨달아 벗어던지면
뱀에게 물리지 않음과 같다. -
030_0268_a_22L亦如篋盛蛇,
有人負自隨,
若能覺棄捨,
不爲毒所中。
-
030_0268_b_01L
우리 몸이 또한 이것과 같아서
4대(大)가 곧 독사이니
지혜로운 자는 이를 떼어버려
그로부터 해를 입지 않으리라. -
030_0268_b_01L身亦復如是,
四大爲毒蛇,
智者能捨離,
不爲彼所害。
-
아둔한 자가 횃불을 잡는데
급히 잡다보면 자기 몸을 데이니
밝은 사람은 버릴 때를 알아서
불에 데는 일이 결코 없는 것과 같다. -
030_0268_b_02L如愚執火炬,
急持卽自燒,
明人知時捨,
不爲火所焚。
-
죽고 사는 일에 즐겨 집착하는 자는
재염(災炎)이 항상 치열하리라.
그러나 만일 깨달아 버린다면
불에 데는 일은 있지 않으리라. -
030_0268_b_03L樂著生死者,
災炎常熾然,
若能覺捨離,
不爲火所焚。
-
비유컨대 모든 두려운 곳들도
역시 저 불타는 집과 같으니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곳보다도
생사의 두려움이 더 무서워라. -
030_0268_b_05L譬諸恐怖處,
亦如被燒舍,
蚖蛇毒%(口*赦)聚,
生死畏過是。
-
비유컨대 마치 신기루와 같고
그리고 빈 그릇과도 같다.
모든 법이 공하여 나가 없으니
진실된 성품 역시 그러하다. -
030_0268_b_06L譬猶空聚落,
又如彼虛器,
諸法空無我,
眞實性亦然。
-
이 같은 세 가지 악도(惡道)에서는
이처럼 고통이 한량이 없다.
하늘에 비록 희락(喜樂)이 있지만
이것 또한 커다란 고통이다. -
030_0268_b_07L此三惡道中,
如是苦無量,
雖天有喜樂,
是亦爲大苦。
-
비유컨대 타오르는 불길과 같이
탐애의 불길도 이와 같으니
오랫동안 천상에 있으면
항상 욕화(欲火)의 불길에 탄다. -
030_0268_b_09L譬彼盛火然,
貪愛熾如是,
久處在天上,
常爲欲火焚。
-
도리천(忉利天)에 있을 때에
선법(善法)에 편히 처해 앉아서
천녀(天女)가 공손히 시중을 들어 공양하고
지극한 쾌락이 한량없었음을 기억한다. -
030_0268_b_10L自憶忉利天,
安處善法坐,
天女侍供養,
無量極快樂。
-
사방의 동산에 늘어선 보배 나무에
꽃과 열매가 미묘하고 장엄하다.
뜻에 따라서 다섯 곳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일찍이 모조리 받았노라. -
030_0268_b_11L四園列寶樹,
花果妙莊嚴,
隨意五所欲,
一切曾悉受。
-
그때 백룡(白龍)과 코끼리를 타고
여러 욕지(浴池)들을 두루 노닐고
숲 속의 개울에서 마음껏 놀았는데
돌아보니 아직도 석양이로구나. -
030_0268_b_13L時乘白龍象,
遊觀諸浴池,
縱意林流間,
廻顧彌日夕。
-
먹는 것은 모두 감로(甘露)의 맛이요
마시는 것들은 감만다(甘曼陀)로구나.
충실(充實)하여 의혹과 근심이 없으니
받는 즐거움이 저 큰 바다와 같아라. -
030_0268_b_14L食必須陁味,
飮則甘曼陁,
充實無疑患,
受樂如大海。
-
또 내승당(內勝堂)에 거처하며
천녀가 아름다운 음악을 울리니
지극히 어여쁘고 아름다워
그 고운 자태가 눈이 부시어라.
6만 가지 목소리가 아름다우니
연하고 고운 소리를 항상 들어
눈과 귀가 조용할 때가 없으니
나의 마음을 취하여 어둡게 한다. -
030_0268_b_15L又處內勝堂,
天女進音樂,
妖豔極姿態,
光色曜心目,
妙音六萬種,
常聞美軟聲,
耳目隨彼轉,
令我心醉冥。
-
여러 하늘들이 노래를 부르니
소리가 악기들과 어우러진다.
벌렁 드러누워 음악을 들으니
자나 깨나 언제나 즐겁기만 하다.
모든 근에 감겨드는 5욕(欲)이
마치 불바퀴가 휘도는 것 같으며 -
030_0268_b_18L諸天發微歌,
聲與弦管諧,
偃臥聽音樂,
寤寐皆喜悅,
諸根廻五欲,
猶如旋火輪。
-
수미산왕(須彌山王)의 정상에서
편히 처하면 유쾌하여 자재롭다.
101가지 각종의 여러 보배들이
사이사이 뒤섞이어 땅을 장엄하고
여러 하늘들과 함께 노닥거리며
지나온 세월이 매우 장구(長久)하다. -
030_0268_b_20L須彌山王頂,
安處快自在,
百一衆雜寶,
間錯莊嚴地,
諸天共娛樂,
經歷甚久長。
-
저 다섯 경계에 접촉하니
다섯 가지 정근(情根)을 발동(發動)해
모든 것이 모조리 기특(奇特)하니
모든 것들이 쾌락의 인(因)이다. -
030_0268_b_22L觸彼五境界,
發動五情根,
一切悉奇特,
皆是快樂因。
-
030_0268_c_01L
모든 하늘은 한 그릇의 식사를 해도
복에 따라서 차별이 있다.
이와 같은 이색(異色)을 볼 때에
마음에는 근심과 고뇌가 생긴다. -
030_0268_b_23L諸天共器食,
隨福有差別,
見此異色時,
心則生憂惱。
-
이와 같이 슬프고 참혹하니
오히려 지옥의 고통과 같다. -
如是極愁慘,
猶如地獄苦。
-
이와 같은 부정한 음식을 먹으며
머리를 숙이니 마음이 부끄럽다.
회책(悔責)하노니 본래의 숙업(宿業)이
나로 하여금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이다. -
030_0268_c_02L食此不淨飯,
低頭內慚恥,
悔責本宿業,
令我致此苦。
-
여러 하늘들과 아수라가
스스로 지키며 저 이익을 탐하고
이로부터 다툼과 분노를 일으켜
죽음을 크게 두려워한다. -
030_0268_c_04L諸天阿修羅,
自守貪彼利,
由是興諍怒,
畏死大恐懼。
-
혹은 하늘에게 부림을 당하고
혹은 또 지극히 가난하니
내 비록 하늘에 태어났지만
악도(惡道)의 고통과 다름이 없다. -
030_0268_c_06L或爲天給使,
或復極貧寠,
我雖生天上,
無異惡道苦。
-
저 항상 즐거운 곳에
쇠하고 죽는 열 가지 모습이 있다.
이런 모양과 목숨이 다하는
이때가 가장 큰 고통이다. -
030_0268_c_07L於彼恒樂處,
衰死二五相,
是相及命終,
爾時最大苦。
-
바야흐로 마음껏 즐기려고 할 때
홀연히 그만 다섯 가지 쇠함이 오니
이 같은 모양을 보았을 때에
근심과 공포로 편안하지 못하다. -
030_0268_c_08L方欲恣所樂,
五衰忽然至,
若見是相時,
愁怖不自安。
-
천안(天眼)이 마침내 곧 깜박거리고
목욕을 하고 나면 물이 몸에 묻으며
모든 것들이 미묘한 경계에서도
그 마음이 즐겁고 기쁘지가 않으며 -
030_0268_c_10L天眼卒便瞬,
浴已水著身,
一切妙境界,
其心不喜樂。
-
천 가지 음악과
자연의 가릉빈가(加陵頻伽)새의 소리도
지금은 적적하여 소리가 없으면
마땅히 이레 만에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리라. -
030_0268_c_11L千種樂自然,
加陵頻伽音,
今則寂無聲,
當知七日死。
-
옥녀(玉女)들이 다들 버리고 떠났으니
그 밖의 천(天)이 함께 종사하고
보고 나면 열뇌(熱惱)가 생겨서
목숨이 끝나고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 -
030_0268_c_12L玉女悉捨去,
餘天共從事,
見已生熱惱,
命終入地獄。
-
그런데 현성(賢聖)한 사람은
무상한 변화를 깨달아
생사의 고통에서 해탈한다. -
030_0268_c_14L唯有賢聖人,
了達無常變,
解脫生死苦。
-
범부(凡夫)는 타오를 때
겨드랑이 밑에서 땀이 배어나
의복이 마침내 때가 묻는 것을
보고 크게 두려워하니
이것이 정업(淨業)이 다함이다.
화관(華冠)으로 곱게 장엄했는데
지금은 홀연히 병들고 풀이 죽었으며
몸은 본래 윤택하여 빛이 났으나
하루아침에 시들어서 쭈그러져 버렸다.
언제나 사랑하여 즐겁던 자리가
지금은 나빠져서 즐겁지 않아라.
이 다섯 가지 나쁜 조짐이 나타나면
마땅히 죽을 때가 왔음을 알아야 하리라. -
030_0268_c_15L凡夫爲燒然,
腋下流汗出,
衣服卒垢膩,
見已大恐怖,
是則淨業盡,
華冠常鮮嚴,
而今忽萎熟,
身體本光澤,
一朝頓枯悴,
常所愛樂坐,
今惡不復樂,
是五惡瑞現,
當知死時至。
-
그런데 저 진리를 본 자만이
이와 같은 나쁜 모양이 없어라.
내 지금 비구들에게 설하리니
여기서 염환(厭患)이 증장하리라.범본(梵本)에는 이 게송 하나가 없다. -
030_0268_c_19L唯有見諦者,
無此諸惡相,
我今說比丘,
於是增厭患梵本中無此一偈。
-
여러 하늘과 하늘의 곳이
쇠하고 변하여 오래 가지 못하노니
밝은 지혜로 수행하는 자는
이 같은 무상한 변화를 보아야 한다. -
030_0268_c_21L諸天及天處,
衰變不久住,
明智修行者,
見斯無常變。
-
4보(寶)의 수미왕(須彌王)을
진금산(眞金山)이 둘러싸 있으나
수행하여 혜안이 청정해지면
이것이 모두 녹아 흐르게 됨을 보리라. -
030_0268_c_22L四寶須彌王,
眞金山圍遶,
修行慧眼淨,
見此悉融消。
-
030_0269_a_01L
그리고 여러 대철위산(大鐵圍山)이
사천하(四天下)를 둘러싸고 있으나
녹아 허물어지는 비상(非常)의 모양을
수행하는 자는 명료하게 보리라. -
030_0268_c_23L又諸大鐵圍,
周帀四天下,
消壞非常相,
行者見明了。
-
수행을 하여 천상에서
이와 같이 관찰하고
다시 인도(人道)에서
생각하여 바르게 관찰하라. -
030_0269_a_02L修行於天上,
如是觀察己,
復於人道中,
思惟正憶念。
-
혹 때로 저 왕법(王法)을 범하여
손발을 더러 잘리기도 했으며
고문 받는 고통이 지극히 괴로운 것을
나는 이를 모두 경험했노라. -
030_0269_a_03L或時犯王法,
斬截身手足,
拷掠極楚毒,
我悉遍經歷。
-
친척을 길이 이별하니
그립고 슬퍼서 눈물이 흐른다.
가령 한 곳에 집착을 한다면
4대해(大海)를 초과하리라. -
030_0269_a_04L親戚永別離,
悲戀爲墮淚,
設集著一處,
過於四大海。
-
내가 본래 온 곳을 생각해 보니
사람 속에서 생을 받았는데
그 백골들을 모두 쌓아보면
수미산처럼 높고 넓으리라.
3악도를 흘러 돌면서
그 초독(楚毒)을 초월할 수 없으니 -
030_0269_a_06L計我從本來,
人中所受生,
白骨悉積聚,
高廣喩須彌,
流廻三惡道,
楚毒無過者。
-
사람과 하늘이 받는 고통
또한 한량이 없이 많다.
이것을 자세히 분별해 말하려면
겁이 다해도 다하지를 못하지만 -
030_0269_a_08L人天所受苦,
是亦多無量,
欲廣分別說,
窮劫不能盡。
-
저 삼매의 경계에서
태어난 과보를
잘 관찰하여 명료(明了)하면
수행을 하여 깊이 근심을 가라앉히리라. -
030_0269_a_09L三昧境界地,
思惟所生果,
觀察善明了,
修行深憂厭。
-
내가 비록 가업(家業)은 버렸으나
능히 도과(道果)를 이루지 못하면
스스로는 집을 나왔다고 하지만
생사의 지옥은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
030_0269_a_10L我雖捨家業,
不能成道果,
自謂爲出家,
未出生死獄。
-
내가 비록 은애(恩愛)를 버리고
소생(所生)을 버렸다고 이름해도
치애업(癡愛業)의 부모를
여의어 면할 수는 없다. -
030_0269_a_12L我雖棄恩愛,
名曰捨所生,
而不能免離,
癡愛業父母。
-
사람의 자식만 되었을 뿐이지
불법으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다.
겉으로는 성인(聖人)의 법의(法衣)를 입었으나
안으로 어리석음과 미혹함을 여의지 못했다. -
030_0269_a_13L徒自爲人子,
不從佛法生,
外假聖法衣,
力不離癡惑。
-
저 5욕(欲)의 이익을 버리고
출가(出家)의 업에 의지한다 하더라도
저 불법 가운데서
적은 공덕도 얻지 못했으며 -
030_0269_a_14L捨彼五欲利,
依止出家業,
而於佛法中,
不獲少功德。
-
비록 안의 탐착은 버렸다고 해도
저 출요(出要)는 얻지 못한 것이다.
4념(念)을 아직 이루지 못했으니
어디로부터 심락(心樂)을 얻을까? -
030_0269_a_16L雖捨內貪著,
而不得出要,
四念未成就,
何從得心樂?
-
머리를 깎고 형호(形好)를 헐었으나
교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욕미(欲味)의 기쁨만 그냥 잃었을 뿐
선열(禪悅)의 즐거움은 얻지 못했으니 -
030_0269_a_17L剃髮毀形好,
而不捨憍慢,
空失欲味歡,
不得禪悅樂。
-
5무간업(無間業)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비유컨대 마치 배나 다리도 없이
깊은 물을 건너려는 것과 같아 -
030_0269_a_18L於五無間業,
未能定不起,
譬如無舟梁,
而欲越深水。
-
결정취(決定聚)에 들지 못하고
다시 하늘에 태어나는 업도 없다.
무명(無明)이 심안(心眼)을 가리었으니
영원히 생사의 심연(深淵)에 빠진다. -
030_0269_a_20L未入決定聚,
復無生天業,
無明覆心眼,
永沒生死淵。
-
마땅히 업의 힘쓸 바에 정진을 해야
과(果)를 짓지 못하는 일이 없으리라.
짓는 자는 끝내 잃지 않으리니
수행을 하여 잘 생각해야 하리라. -
030_0269_a_21L應勤業所務,
無有無作果,
作者終不喪,
修行宜善思。
-
언제나 사람들의 신시(信施)를 받아서
저 몸속으로 침투하리라.
나에게 공덕이 있다고 말을 하지만
스스로 돌아보건대 비어서 실(實)이 없구나. -
030_0269_a_22L常受人信施,
侵彼肌體分,
謂我有功德,
自顧空無實。
-
030_0269_b_01L
이 기른 이양(利養)의 마음으로 해서
나의 선한 공덕을 가려버린다.
뼈를 깎는 고통을 깊이 생각하면
당장에 곧 염리(厭離)가 일어난다. -
030_0269_b_01L由此利養心,
翳我善功德,
深思剋骨苦,
卽時興厭離。
-
모든 악취(惡趣)를 벗어나지 못하고
전도(顚倒)된 소견에 속박되어
평등의 길인 석가모니의
1승(乘)의 도를 향하지 못한다. -
030_0269_b_02L未脫諸惡趣,
顚倒見所縛,
不向平等路,
牟尼一乘道。
-
얻기 어려운 세계에 태어나니
모든 근(根)이 다 구족한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신 때를 만나
또 그 바른 법을 얻어 들을 수 있으나
괴로움의 그릇[苦器]을 버리지 못했으며
탐욕의 바다를 건너지 못했다.
칼을 뽑아서 다섯 악적(惡賊)을
또한 꺾어 멸하지 못했다. -
030_0269_b_03L得生難得趣,
諸根悉具足,
値佛興于世,
又得聞正法,
而不捨苦器,
未渡貪欲海,
拔刀五惡賊,
是亦未摧滅。
-
이와 같이 바르게 볼 때에
그 수행이 해탈을 향하게 되며
이러한 우염상(憂厭相)을 지으면
곧 저 결정(決定)을 일으킨다. -
030_0269_b_06L如是正觀時,
修行向解脫,
作是憂厭相,
則便生決定。
-
몸은 부정(不淨)의 그릇이니
36물(物)이 가득하다.
비유컨대 마치 저 대지가
온갖 것들을 생육(生育)함과 같다. -
030_0269_b_07L身爲不淨器,
三十六充滿,
譬如大地種,
生育衆雜類。
-
몸은 숨겨지고 가려진 덩어리이며
또한 언제나 조욕(澡浴)과
취말(聚沫)과 촬마법(撮摩法)을 빌리니
오래지 않아 반드시 멸한다. -
030_0269_b_09L身爲隱覆聚,
亦常假澡浴,
聚沫撮摩法,
不久必當滅。
-
비유컨대 독사의 상자와 같이
4대(大)의 상자 역시 그러하다.
8만 가지 생물이 사는 집이라
언제나 서로 다투며 잡아먹는다. -
030_0269_b_10L譬如毒蛇篋,
四大篋亦然,
八萬虫中舍,
常共競侵食。
-
이 몸이 곧 재앙의 집이니
404가지의 질병과 번민과
갖가지 고통과 부정(不淨)
온갖 것이 안에 가득하다. -
030_0269_b_11L是身爲災宅,
四百四病惱,
種種苦不淨,
一切內充滿。
-
비유컨대 마치 낡은 빈 집 같고
또한 무덤들의 언덕 같아서
굽지 않은 토기처럼 견고하지 못하니
몸도 말하자면 역시 이와 같다. -
030_0269_b_13L譬如故空舍,
亦如丘塚間,
坏器無堅固,
說身亦復然。
-
한량없는 뭇 악의 모임[惡聚]은
허망하여 진실이 아닌데
전도되어 탐착을 일으키니
긴긴 밤을 초독(楚毒)으로 지새운다. -
030_0269_b_14L無量衆惡聚,
虛妄非眞實,
顚倒起貪著,
長夜嬰楚毒。
-
그리고 또 임신을 하게 되면
출산의 고통을 수없이 받으니
진실의 법을 보지를 못하면
생사의 바퀴만이 항상 돌아간다. -
030_0269_b_15L將復處胞胎,
數數受生苦,
不見眞實法,
生死輪常轉。
-
처음에는 가라라(迦羅邏)를 받고
다음에는 포육단(泡肉段)이 생기고
점점 자라서 지절(肢節)을 이루니
다섯 가지 임신의 고통이다. -
030_0269_b_17L始受加羅邏,
次生泡肉段,
漸厚成肢節,
五種胞胎苦。
-
날이 없는 지옥[無日獄]에 유폐되어서
생숙장(生熟藏)이 핍박을 받는다.
행측(行廁)에서 길러져 자라고
부정고(不淨苦)에 취하여 혼미해서 -
030_0269_b_18L幽閉無日獄,
生熟藏所迫,
長養於行廁,
臭悶不淨苦。
-
태(胎)에서 나와 삶의 고통을 받아
늙고 병이 들어 죽음으로 굴러간다.
모든 음(陰)이 일어나고
3상(相)에 박절(迫切)된다. -
030_0269_b_19L出胎受生苦,
輪轉老病死,
一切諸陰起,
三相所迫切。
-
색(色)은 거품[聚沫]과 같고
수(受)는 물 위의 거품 같고
상(想)은 봄철의 아지랑이와 같으며
뭇 행(行)은 마치 파초(芭蕉)와 같고
식(識)의 종자는 마치 허깨비와 같음을 보니
허망하여 진실함이 없다. -
030_0269_b_21L觀色如聚沫,
受如水上泡,
想如春時炎,
衆行如芭蕉,
識種猶如幻,
虛妄無眞實。
-
030_0269_c_01L
핍박이 바로 고상(苦相)이고
인연이 바로 집상(集相)이며
적정(寂靜)이 멸진상(滅盡相)이고
출요(出要)가 곧 도상(道相)이다. -
030_0269_b_23L逼迫是苦相,
因緣是集相,
寂靜滅盡相,
出要是道相。
-
이 4성제(聖諦)를
수행하여 차차 관찰하고
16행(行)을 사유하면
생사의 고통에서 해탈하리라. -
030_0269_c_02L於此四聖諦,
修行漸觀察,
思惟十六行,
解脫生死苦。
-
간략하게 모든 법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에 대해 설했으니,
결정의(決定義)를 분명하게 알고
수행하여 바르게 관찰하라. -
030_0269_c_03L略說一切法,
自相及共相,
明知決定義,
修行正觀察。
-
수행하여 지혜의 등불을 태워서
네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하면
능히 악취분(惡趣分)을 끊어
모든 수태(受胎)의 고통을 여의고
다시 즐거움을 몸에 받아서
세상의 고뇌에 얽매이지 않는다. -
030_0269_c_04L修行然慧燈,
正觀四眞諦,
能斷惡趣分,
離諸受胎苦,
不復樂受身,
嬰世之苦惱。
-
이양(利養)의 행을 없애 버리고
홀로 지내면서 멀리 여읨[遠離]을 닦는다. -
030_0269_c_06L捨除利養行,
獨處修遠離。
-
이미 능히 염리(厭離)를 닦으면
하늘에 태어나는 즐거움에 맛들이지 않게 된다.
그런데 더구나 인간에 탐착하여
온갖 고통들을 차마 받을 것인가? -
030_0269_c_07L已能修厭離,
不味生天樂,
況復著人閒,
忍受諸苦痛。
-
종(種)이 독사와 같음을 관하고
5음(陰)을 다섯 원적(怨賊)으로 하고
탐욕의 환란이
긴긴 밤에 은밀히 침해함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
030_0269_c_08L觀種如毒蛇,
陰爲五怨賊,
自覺貪欲患,
長夜密侵害。
-
6근(根)이 마치 공취(空聚)와 같으니
진적(塵賊)이 다투어 와서 모인 것이다.
이런 것이 안팎으로 들어오지만
진실관(眞實觀)을 수행하면 -
030_0269_c_10L六根如空聚,
塵賊競來集,
於此內外入,
修行眞實觀。
-
견애(見愛)는 대하(大河)와 같고
열반이 마치 피안과 같다.
수행하여 혜안(慧眼)이 청정해지면
법이 공하여 무아(無我)임을 관하게 된다. -
030_0269_c_11L見愛如大河,
涅槃如彼岸,
修行慧眼淨,
觀法空無我。
-
이와 같이 진실을 알면
3유(有)에 처함이 즐겁지 않다. -
030_0269_c_12L如是知眞實,
不樂處三有。
-
모든 법을 분명히 보는 자에게
3성(成)의 상(相)을 대략 설했노라.
앞에서 3괴(壞)를 설하였지만
방편과 부지런히 닦아 익힘의
상행(相行)의 뜻을
이제 차례로 다시 설하리라. -
030_0269_c_13L明見諸法者,
略說三成相,
及前說三壞,
方便勤修習,
次第相行義,
是今當更說。
-
하나의 색(色)을 갖가지로 관찰하면
하나하나가 네 종류의 인(因)이다.
결정코 인과를 알고
신념처(身念處)를 구경(究竟)하라. -
030_0269_c_15L一色種種觀,
一一四種因,
決定知因果,
究竟身念處。
-
받음과 마음이 서로 응해서
볼 때는 오직 그 자체이다.
인연의 과보가 한량이 없으니
그 모양은 같은 종류의 성품이다.
수행하여 사유가 일어남은
모두가 소의(所依)에 의해 나타난다. -
030_0269_c_16L受與心相應,
觀時惟自體,
因緣果無量,
其相同種性,
修行思惟起,
悉依所依現。
-
마음은 마치 훈련되지 않은 말과 같아서
허깨비와 같고 원숭이와 같다.
한량없는 인연의 모양이
모두 소의에 나타난다. -
030_0269_c_18L心猶不調馬,
如幻如猿猴,
無量因緣相,
一切現所依。
-
두 음(陰)은 공하여 무아이다.
다음에 상(想)과 색(色)을 합하여 관해야 한다.
상(想)과 수(受)와 식(識)과 합하고
행의 둘도 역시 그러하다. -
030_0269_c_20L二陰空無我,
次合觀想色,
想合受與識,
行二亦如是。
-
차례로 상과 색과 수와 그리고
상과 색과 식도 역시 그러하다.
상과 수와 식을 분별하니
행의 셋도 상(想)의 설함과 같다. -
030_0269_c_21L次第想色受,
想色識亦然,
分別想受識,
行三同想說。
-
사(四)와 오(五)가 점차 화합하여
사유해서 자상(自相)을 허물고
통틀어 5성음(盛陰)을 인연하니
칠처삼종관(七處三種觀)과 -
030_0269_c_22L四五漸和合,
思惟壞自相,
摠緣五盛陰,
七處三種觀。
-
030_0270_a_01L
열락(悅樂)의 넓은 경계가
다시 멸하여 생멸을 관한다.
일념(一念)으로 진실을 보아서
법념처(法念處)를 구족하라. -
030_0270_a_01L悅樂廣境界,
還滅觀生滅,
一念見眞實,
具足法念處。
-
음종(陰種)의 모양을 바르게 관찰하면
변화[化]와 꿈과 물에 비친 달과 같다.
정혜(定慧)가 굴러서 증광(增廣)하면
거기서 난법(煖法)이 생긴다. -
030_0270_a_02L正觀陰種相,
如化夢水月,
定慧轉增廣,
彼則煖法生。
-
그 마음이 지극히 적정하여
5음의 모양을 통틀어 본다.
즉 자신의 욕망의 불길을 끄고
삼계(三界)의 불길이 치솟음을 보아 -
030_0270_a_03L其心極寂靜,
摠見五陰相,
自身欲火燒,
三界盡熾然。
-
모든 모양의 3삼매(三昧)에서
바르게 해탈의 문으로 향하라.
처음에 4성제의
진실의 16행(行)을 관하여 -
030_0270_a_05L諸相三三昧,
正向解脫門,
初觀四聖諦,
眞實十六行。
-
난법을 성취하고 나서
진실한 관(觀)을 증진하여
부처님의 몸의 상호(相好)와
여러 공덕이 한량없음을 보라.
제일의 적멸법(寂滅法)은
청정하여 번뇌를 여의고 -
030_0270_a_06L成就煖法已,
增進眞實觀,
見佛身相好,
無量諸功德,
第一寂滅法,
淸淨離煩惱。
-
성중(聖衆)의 공덕의 바다는
깊고 깊어 바닥이 없다.
갖가지 미묘한 모양과
몸과 경계를 드러내니 -
030_0270_a_08L聖衆功德海,
甚深無崖底,
種種微妙相,
現身及境界。
-
보고 나면 마음이 즐겁다.
정법(頂法)에서 상(相)을 구족하고 -
030_0270_a_09L見已心歡喜,
頂法具足相。
-
증진하여 법인(法忍)이 생긴다.
5취(趣)에 경계를 나타내고 -
030_0270_a_10L增進生法忍,
五趣現境界。
-
악도(惡道)의 불길이 멸하여
청량한 곳에 놀면서 쉰다.
중간에 머물며 생사를 겪어도
최상은 오직 일심(一心)이다. -
030_0270_a_11L惡道熾然滅,
遊息淸涼處,
中住經生死,
最上唯一心。
-
먼저 한량없는 고통을 보고
다음에 괴로움의 종자[苦種]가 생김을 본다.
괴로움의 종자가 바뀌어 더욱 광대하여
차츰 고집(苦集)의 멸(滅)을 본다.
멸하고 난 다음에
8성(聖)의 평등의 길을 관한다. -
030_0270_a_12L先觀無量苦,
次見苦種生,
種轉增廣大,
漸見苦集滅,
滅已然後觀,
八聖平等道。
-
변하고 멸함은 무상(無常)의 모양이요
거칢[麤澁]과 핍박은 고통이다.
공적(空寂)하여 중생이 없고
자재하지 않는 것이 무아이다. -
030_0270_a_14L變滅無常相,
麤澀逼迫苦,
空寂無衆生,
不自在無我。
-
괴로움의 종자는 이 인(因)이 자라나
뭇 연과 합하여 집(集)이 된다.
종(種)이 생기므로 기(起)라 말하고
과(果)를 일으킴을 연(緣)이라 한다. -
030_0270_a_15L苦種是因緣,
衆緣合爲集,
種生故說起,
興果名爲緣。
-
고와 집이 다하므로 멸하니
멸하여 고요함을 적지(寂止)라 설한다.
청정은 3유(有)를 여의니
각(覺)을 설해 묘출(妙出)이라 한다. -
030_0270_a_17L苦集盡故滅,
滅靜說寂止,
淸淨離三有,
覺說爲妙出。
-
지름길이 곧 도상(道相)이며
평직(平直)을 정의(正義)라 설한다.
나아감[進向]을 일러 취(趣)라 하고
타고 나가기[乘出] 때문에 승(乘)이라 설한다. -
030_0270_a_18L徑路是道相,
平直說正義,
進向謂之趣,
乘出故說乘。
-
4제(諦) 16행(行)을
구족하면 진실한 기쁨이다.
인법(忍法)은 점차
세간의 제일법(第一法)을 만들고 -
030_0270_a_19L四諦十六行,
具足眞實觀,
忍法次第生,
世間第一法。
-
성행(聖行)의 정수지(正受地)에
이 세 결정(決定)을 얻어
견도(見道)와 사유도(思惟道)는
차례로 점차 구경(究竟)에 이른다. -
030_0270_a_21L聖行正受地,
得是三決定,
見道思惟道,
次第漸究竟。
-
모든 미묘한 모양은
각각 지대(地大)를 따라 일어나고
진실의 지혜를 성취하여
모든 공덕을 구족한다. -
030_0270_a_22L一切微妙相,
各各隨地起,
成就實智慧,
具足諸功德。
-
030_0270_b_01L
앞에서 말한
수행의 결정분(決定分)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밝은 지혜를 가진 자들은
마땅히 바른 방편을 지어야 한다.
믿고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고
항상 욕망이 일어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
030_0270_a_23L當知上所說,
修行決定分,
諸有明智者,
應作正方便,
信勤勿懈怠,
常起欲慚愧。
-
모든 범행(梵行)을 닦는 자들을
항상 사랑하여 공경해야 한다.
스스로를 지켜서 청정한 계율을 닦아
위의(威儀)로써 진리에 편안히 있게 한다. -
030_0270_b_02L於諸梵行者,
常當愛恭敬,
自守修淨戒,
威儀令安諦。
-
설령 이양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욕망을 줄여 만족할 줄 알면
만족이 쉬워서 기르기도 쉬우니
몸에 알맞은 식사를 헤아릴 줄을 안다.
또한 수레에 기름을 치는 것과 같아서
그 맛을 탐하지 않는다. -
030_0270_b_03L假使得利養,
少欲知止足,
易滿亦易養,
適身知量食,
亦如人膏車,
不爲貪味故。
-
모든 존재하는 생은
모조리 근심[過患]임을 깨달아
사유하여 잘 관찰하라.
3유(有)는 타는 불길과 같다. -
030_0270_b_05L曉了一切有,
所生悉過患,
思惟善觀察,
三有如火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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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저 중병 든 사람이
의원의 치료를 믿고 받아들임 같으니
선지식이 말하는 것을 듣고
관찰하여 자세히 사유하고 -
030_0270_b_06L如彼重病人,
信受醫方療,
聞善知識說,
觀察諦思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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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청정한 마음으로
몸을 단속하여 방일하지 말라.
조용히 침묵하여 말을 적게 하고
연좌(宴座)하여 실의(實義)를 생각해라. -
030_0270_b_08L常以淸淨心,
繫身莫放逸,
寂嘿少言說,
宴坐思實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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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언덕배기 수풀 사이에서
한가히 지내면서 멀리 여읨[遠離]을 닦아라.
아무 일이 없이 산과 바위를 즐기며
동굴 속의 노지(露地)에 앉아
나무 그늘에서 풀잎을 깔고는
이와 같이 청정하게 머물러라.
수행하여 안으로 사유하고
열심히 익혀 쉬거나 게으름 없이 -
030_0270_b_09L丘壙林樹間,
閑居修遠離,
無事樂山巖,
窟中露地坐,
樹下敷草葉,
如是淸淨住,
修行內思惟,
勤習無休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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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정밀히 자신의 이익을 구하고
물러나 머무는[退住] 허물을 멀리 여의어라.
반드시 승진(升進)을 한다면
결정코 공덕분(功德分)을 얻으리라.
부지런히 방편을 수행하면
모든 선근(善根)을 구족하리라. -
030_0270_b_12L專精求己利,
遠離退住過,
必能得升進,
決定功德分,
修行勤方便,
具足諸善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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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적은 지혜의 힘을 가지고
여러 법성(法性)을 대강 설했노라.
그 구경(究竟)의 뜻으로 말하면
10력(力) 지혜의 경계이다. -
030_0270_b_14L我以少慧力,
略說諸法性,
如其究竟義,
十力智境界。
達摩多羅禪經卷上
丙午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불타발다라(佛陀跋陀羅, Buddhabhadra)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