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金剛三昧經序品第一

ABC_IT_K0521_T_001
014_0057_a_01L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
014_0057_a_01L金剛三昧經序品第一


북량(北凉) 실역 인명
014_0057_a_02L北涼失譯人名


1. 서품(序品)
014_0057_a_03L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기사굴산 안에서 큰 비구의 무리 1만 명과 함께 계셨다. 이들은 모두 아라한의 도를 얻었으니, 그 이름은 사리불, 대목건련, 수보리 등으로서 이와 같은 많은 아라한들이었다.
또한 보살마하살 2천 명이 함께 계셨으니, 그 이름은 해탈(解脫)보살, 심왕(心王)보살, 무주(無住)보살 등으로서 이와 같은 보살들이었다. 다시 장자 8만 명도 함께 계셨으니, 그 이름은 범행(梵行) 장자, 대범행(大梵行) 장자, 수제(樹提) 장자 등으로서 이와 같은 장자들이었다.
또한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의 사람인 듯 아닌 듯한[人非人] 60만억 무리가 있었다.
014_0057_a_04L一時佛在王舍大城耆闍崛山中與大比丘衆一萬人俱皆得阿羅漢道其名曰舍利弗大目犍連須菩提如是衆等阿羅漢復有菩薩摩訶薩二千人俱其名曰解脫菩薩心王菩薩無住菩薩如是等菩薩有長者八萬人俱其名曰梵行長者大梵行長者樹提長者如是等長者復有天夜叉乾闥婆阿修羅迦樓緊那羅摩睺羅伽人非人等六十萬億
그 때 세존께서는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일체의 대중을 위해 대승경전을 말씀하셨으니, 일미(一味)․진실(眞實)․무상(無相)․무생(無生)․결정(決定)․실제(實際)․본각(本覺)․이행(利行)이라 표현하셨다.
“만일 이 경전을 듣거나 네 구절의 게송만을 받아 지녀도 이 사람은 곧 부처님의 지혜의 경지에 들어가서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할 수 있을 것이며, 일체 중생을 위한 위대한 선지식이 되리라.”
부처님께서는 이 경전을 말씀하신 뒤,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으셔서는 곧 금강삼매(金剛三昧)에 들어가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셨다.
014_0057_a_14L爾時尊者大衆圍遶爲諸大衆說大乘經名一味眞實無相無生決定實際本覺利行若聞是經乃至受持一四句偈是人則爲入佛智地以方便敎化衆生爲一切衆生作大知識佛說此經已結加趺坐卽入金剛三昧身心不動
그 때 대중 가운데 아가타(阿伽佗)라 부르는 한 비구가 있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꿇어앉아서 이 대의를 거듭 밝히고자 게송으로 말하였다.
014_0057_a_20L爾時衆中有一比名曰阿伽陁從座而起合掌䠒跪欲重宣此義而說偈言
014_0057_b_01L위대한 자비로 가득하신 우리 세존이시여,
지혜에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시고
중생을 널리 다 건지시려고
유일한 도리[一諦義]1)를 말씀하셨네.
014_0057_a_22L大慈滿足尊
智慧通無碍
廣度衆生故
說於一諦義

모두 한맛의 도[대승]로써 설하시고
끝내 소승으로 설하지 않으시니
말씀하신 의미2)
진실하지 않음을 여의셨네.
014_0057_b_02L皆以一味道
終不以小乘
所說義味處
皆悉離不實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경지에 들어가
참다운 실제(實際)를 결정하시사
듣는 사람은 모두 세간에 나와
해탈하지 않음이 없게 하셨네.
014_0057_b_03L入佛諸智地
決定眞實際
聞者皆出世
無有不解脫

헤아릴 수 없는 일체의 보살들이
모두 중생을 제도하려고
대중을 위해 넓고 깊게 물어서
법의 고요한 모습[寂滅相]을 알고
결정된 곳에 들어가시네.
014_0057_b_04L無量諸菩薩
皆悉度衆生
爲衆廣深問
知法寂滅相
入於決定處

여래의 지혜와 방편으로써
마땅히 실제에 들어가도록 설하시니
모두 일승에 따르게 하시되
갖가지 뒤섞인 맛이 없구나.
014_0057_b_06L如來智方便
當爲入實說
隨順皆一乘
無有諸雜味

마치 한 번 비가 적시면
온갖 풀이 번영하듯이
그 바탕에 따라 각기 다르나
한맛의 진리로 적셔
두루 일체에 충만케 하시네.
014_0057_b_07L猶如一雨潤
衆草皆悉榮
隨其性各異
一味之法潤
普充於一切

저 한 번의 비로 적시면
모두 보리(菩提)의 싹을 길러내듯이
금강의 맛에 들어가시어
법의 진실한 삼매를 증득하시고
결정코 의심과 뉘우침을 끊으시니
한 법의 표지[印]를 이루시었네.
014_0057_b_09L如彼一雨潤
皆長菩提芽
入於金剛味
證法眞實定
決定斷疑悔
一法之印成

2. 무상법품(無相法品)
014_0057_b_11L金剛三昧經無相法品第二

그 때에 세존께서는 삼매로부터 일어나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경지는 참다운 법의 모습인 결정성(決定性)에 들어가기 때문에 방편과 신통이 모두 모습 없는[無相] 이익을 얻게 하느니라. 유일한 깨달음의 진리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렵다. 모든 2승들이 알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부처님과 보살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니라. 제도할 수 있는 중생에게는 모두 한맛[一味]의 가르침을 설하느니라.”
014_0057_b_12L爾時尊者從三昧起而說是言諸佛智地入實法相決定性故方便神通皆無相利一覺了義難解難入非諸二乘之所知見唯佛菩薩乃能知之可度衆生皆說一味
이 때에 해탈보살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정법(正法)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상법(像法)이 세상에 머무르는 어지러운 시대[末劫]3)에 사는 5탁4)의 중생들은 가지가지의 악업이 많아 3계를 윤회하며 벗어날 때가 없을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로 후세 중생을 위해 한맛의 결정적인 진실을 설하셔서 저 중생들이 함께 해탈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014_0057_b_17L爾時解脫菩薩卽從座起合掌䠒跪而白佛言尊者若佛滅後正法去世像法住世於末劫中五濁衆生多諸惡業輪迴三界無有出時願佛慈悲爲後世衆生宣說一味決定眞實彼衆生等同解脫
014_0057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는 내가 세상에 나온 원인을 물어서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며, 저 중생들이세상에 나온 결과를 얻게 할 수 있다. 이 오직 하나뿐인 중대한 일[一大事]은 헤아릴 수 없으니, 위대한 사랑과 연민[大慈大悲] 때문이니라. 내가 만일 말하지 않는다면 즉시 인색함과 탐욕에 떨어지리니, 너희들은 한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너희들을 위해 설하리라.
선남자여, 만일 중생을 교화한다면 교화한다는 생각도 없고, 교화함이 없다는 생각도 내지 않아야 그 교화가 더욱 클 것이니라.
저 중생들이 모두 대상과 주체[心我]5)라는 생각을 여의게 해야 하느니라. 일체의 대상과 주체는 본래 공적(空寂)한 것이니라. 만일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 마음은 허깨비처럼 변화[幻化]되지 아니할 것이며, 허깨비[幻]도 없고 변화(變化)도 없으면 바로 생김[生]이 없는 법을 얻을 것이요, 생김이 없는 마음은 변화함이 없는 데 있느니라.”
014_0057_b_23L佛言善男子汝能問我出世之因欲化衆生令彼衆生獲得出世之果是一大事不可思議以大慈故以大悲故我若不說卽墮慳貪汝等一心諦聽諦聽爲汝宣說善男子若化衆生無生於化不生無其化大焉令彼衆生皆離心我切心我本來空寂若得空心心不幻無幻無化卽得無生無生之心在於無化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마음의 바탕은 본래 공적합니다. 그 공적한 마음의 주체는 아무런 색깔이나 모양이 없는데 어떻게 닦아서 본래 공적한 마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로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014_0057_c_09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生之心性本空寂空寂之心體無色云何修習得本空心願佛慈悲爲我宣說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여, 일체의 마음의 모습은 본래 근본이 없으며, 본래 근본이 없는 곳은 공적하여 생김이 없느니라. 만일 마음에 생김이 없으면 바로 공적함에 들어가나니, 공적한 마음의 경지에서 바로 마음의 공함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모습[相]이 없는 마음에는 대상도 없고 주체도 없나니 일체의 법의 모습도 이와 같으니라.”
014_0057_c_12L佛言菩薩一切心相本來無本無本處空寂無生若心無生卽入空寂空寂心地卽得心空善男子無相之心無心無我一切法相亦復如是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일체의 중생들이 주체에 사로잡혀 있거나 대상에 사로잡혀 있다면6) 어떠한 가르침으로 깨닫게 하여 저 중생들이 이 얽매임[縛:번뇌]에서 벗어나도록 하겠습니까?”
014_0057_c_16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一切衆生若有我者若有心者以何法覺令彼衆生出離斯縛
014_0058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주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12인연을 관찰하게 하리라. 12인연은 본래 원인과 결과에서 발생한 것이며, 원인과 결과는 의식의 흐름[心行]7)에서 일어난 것이니라. 마음도 오히려 있지 않은데 하물며 몸이 있겠느냐? 만일 주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그에게는 있다는 견해를 없애게 할 것이요, 만일 주체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그에게는 없다는 견해를 없애게 하리라.
만일 대상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자라면 생김의 바탕[生性]8)을 소멸하게 하고, 만일 대상이 소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소멸의 바탕[滅性]9)을 소멸하게 하리라. 없애는 것이 바탕을 보는 것[見性]이요, 바로 실제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본래의 생김은 소멸하지 않고 본래의 없어짐은 생기지 않는 것이어서소멸하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으며,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나니, 일체의 모든 법도 이와 같으니라.”
014_0057_c_18L佛言善男子有我者令觀十二因緣十二因緣本從因果因果所起興於心行心尚不何況有身若有我者令滅有見無我者令滅無見若心生者令滅滅若心滅者令滅生性滅是見性入實際何以故本生不滅本滅不生不滅不生不生不滅一切諸法亦復如是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중생이 법이 생기는 것을 보았을 때는 어떠한 견해를 없어지게 해야 하겠습니까? 법이 소멸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어떠한 견해를 없어지게 해야 하겠습니까?”
014_0058_a_03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若有衆生見法生時令滅何見見法滅時令滅何見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여, 만일 어떤 중생이 법이 생기는 것을 보았을 때는 없다는 견해를 없어지게 하고, 법이 소멸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있다는 견해를 없어지게 하라. 만일 이러한 견해를 없어지게 한다면 법의 참다운 근원[法眞]10)을 얻으며, 결정된 바탕에 들어가는 일 없이 생김[生]이 없는 것을 결정하게 되리라.”
014_0058_a_05L佛言菩薩若有衆生見法生時令滅無見見法滅時令滅有見若滅是見得法眞無入決定性決定無生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중생들이 생김이 없는 곳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생김이 없는 것입니까?”
014_0058_a_08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令彼衆生住於無生是無生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김이 없는 곳에 머무른다면 이것이 바로 생김이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머묾도 없고 생김도 없는 것이 바로 생김이 없는 것이니라. 보살이여, 만일 생김이 없는 것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생김으로 생기는 것을 없애려는 것이다. 생김과 소멸함이 함께 없어지면 본래의 생김은 발생하지 않느니라. 마음은 항상 공적하며, 공적함의 바탕은 머묾이 없나니, 마음에 머묾이 없는 것이 바로 생김이 없는 것이니라.”
014_0058_a_09L佛言住於無生卽是有生何以故無住無生是無生菩薩若生無生以生滅生滅俱滅本生不生心常空寂空性無心無有住乃是無生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마음에 머묾이 없다면 어떻게 수학(修學)할 것입니까? 배울 것이 있습니까, 배울 것이 없습니까?”
014_0058_a_13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心無有住有何修學有學也爲無學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여, 생김이 없는 마음은 마음에 나고 드는 것[出入]이 없나니, 본래의 여래장(如來藏)은 바탕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배움이 있는 것[有學]도 아니고 배움이 없는 것[無學]도 아니니라. 배움과 배우지 않음이 있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배움이 없는 것[無學]이며, 배움이 있지 아니한 것으로 곧 배울 바를 삼느니라.”
014_0058_a_15L佛言菩薩無生之心無出入本如來藏性寂不動非有學亦非無學無有學不學是卽無學非無有學是爲所學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여래장의 바탕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 합니까?”
014_0058_a_18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云何如來藏性寂不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래장이란 생기고 소멸하는 분별 망상의 모습이 이법[理]을 가리워 드러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 여래장의 바탕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느니라.”
014_0058_a_20L佛言如來藏者生滅慮知相隱理不顯是如來藏性寂不動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생기고 소멸하는 분별 망상이라 합니까?”
014_0058_a_21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云何生滅慮知相
014_0058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여, 이법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느니라. 만일 옳고 그른 것이 있다면, 바로 여러 가지의 생각이 발생하게 되느니라. 천 가지 생각 만 가지 분별이 생기고 소멸하는 모습이니라.
보살이여, 근본 바탕과 모습을 관찰할 적에는이법이 저절로 만족하나니라. 천 가지 생각과 만 가지 분별은 도리에 유익하지 않으며, 부질없이 정신만 소란하게 하여 본래의 마음을 잃게 하느니라.
만일 생각하고 분별함[思慮]이 없으면 생기고 소멸함이 없어서 실답게 일어나지 않나니, 모든 식(識)이 안정되어 고요해지며, 식의 흐름이 생기지 않으며, 5법이 청정하게 되리니, 이것을 대승이라 하느니라.
보살이여, 5법이 청정한 데 들어가게 되면 마음에는 바로 망령됨이 없어지느니라. 만일 망령됨이 없어지면 여래의 스스로 깨달은 성스러운 지혜[聖智]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지혜의 경지에 들어가면 일체가 본래부터 생김이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되며, 본래 생김이 없는 것을 알면 망령된 생각이 없어지느니라.”
014_0058_a_22L菩薩理無可不若有可不卽生諸千思萬慮是生滅相菩薩觀本性相理自滿足千思萬慮不益道理爲動亂失本心王若無思慮則無生如實不起諸識安寂流注不生五法淨是謂大乘菩薩入五法淨卽無妄若無有妄卽入如來自覺聖智之地入智地者善知一切從本不知本不生卽無妄想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망령된 생각이 없다는 것은 마땅히 그치고 쉬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까?”
014_0058_b_08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無妄想者應無止息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여, 망령된 생각은 본래 생기는 것이 아니기에 쉬어야 할 망령이 없느니라. 마음에 주체적인 마음이 없음을 알면 그쳐야 할 마음이 없으므로 분별함이 없으며, 현재의 의식이 생기지 않으며, 그쳐야 할 생김도 없나니, 이것이 바로 그침이 없는 것[無止]이요, 또한 그침 없는 것도 아니니라. 왜냐 하면 그침이면서도 그칠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014_0058_b_09L菩薩妄本不生無妄可息知心無無心可止無分無別現識不生生可止是則無止亦非無止何以故止無止故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쳤으되 그칠 것이 없으나 그침이 바로 생기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 생김이 없는 것입니까?”
014_0058_b_13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若止無止止卽是生何謂無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그치려 하는 것이 생기는 것이거니와, 이미 그치고 보면 그칠 것도 없느니라. 또한 그침이 없는 데도 머무르지 않으며, 머묾이 없는 데도 머무르지 않나니, 무엇을 생기는 것이라 하는가?”
014_0058_b_14L佛言菩薩當止是生止已無止亦不住於無止亦不住於無住云何是生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생김이 없는 마음에 어찌 취하고 버릴 것이 있으며, 어떠한 법의 모습에 머무르는 것입니까?”
014_0058_b_16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無生之心有何取捨住何法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김이 없는 마음에는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느니라. 마음 아닌 데에 머무르며 법 아닌 데에 머무르는 것이니라.”
014_0058_b_18L佛言無生之心不取住於不心住於不法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마음 아닌 데에 머무르고, 법 아닌 데에 머무르는 것입니까?”
014_0058_b_19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云何住於不心住於不
014_0058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에 한 생각도 내지 않는 것이 마음 아닌 데에 머무르는 것이요, 법에 한 생각도 내지 않는 것이 법 아닌 것에 머무르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음과 법에 생김이 일어나지 않으면 의지할 것이 없으며, 모든 의식의 흐름[行]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이 항상 공적하여 다른 모양이 없느니라. 예를 들자면 허공에는 움직임도 없고 머묾도 없으며, 일어남도 없고 만듦[爲]도 없으며, 저것도 없고이것도 없는 것과 같으니라. 공한 마음의 눈[空心眼]을 얻고 법의 공한 몸[法空身]을 얻어서 5음과 6입이 모두 공적하게 되리라.
선남자여, 공한 법을 닦는다는 것은 3계(界)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계상(戒相)에도 머무르지 아니한다. 청정하여 생각이 없으며, 끌어안을 것도 없고 놓아버릴 것도 없으며, 바탕이 금강과 같아서 3보(寶)를 부수어 버리지 아니하며, 마음을 비워서 움직이지 아니하지만 6바라밀(波羅蜜)을 갖추고 있느니라.”
014_0058_b_21L佛言不生於心是住不心不生於是住不法善男子不生心法卽無依止不住諸行心常空寂無有異相譬彼虛空無有動住無起無作無彼無此得空心眼得法空身五陰六入悉皆空寂善男子修空法者不依三不住戒相淸淨無念無攝無放等金剛不壞三寶空心不動具六波羅蜜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6바라밀은 모두 모습[相]을 지니고 있거늘 모습을 지니고 있는 법이 세간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014_0058_c_06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六波羅蜜者皆是有相有相之法能出世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내가 설명한 6바라밀이란 모습이 없고 만듦[爲]이 없는 것이니라. 까닭이 무엇인가? 만일 사람이 욕심을 여읜 경계에 들어가면 마음이 항상 청정하며, 진실하게 방편을 말하여 본각의 이익으로 남들을 이롭게 하나니, 이것이 보시[檀]바라밀이니라.
의지와 생각[志念]11)이 견고하여 마음에 항상 머묾이 없고, 청정하여 물듦이 없으며, 3계에 집착하지 않나니, 이것이 지계[尸]바라밀이니라.
공(空)한 법을 닦아 번뇌를 끊어서 일체의 존재[諸有]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3업(業)을 적정하게 하여 몸과 마음에 머무르지 않으면, 이것이 인욕[羼提]바라밀이니라.
이름과 수효[名數]12)를 멀리 여의고, 공(空)과 유(有)의 견해를 끊어서 깊이 5음이 공함에 들어가면, 이것이 정진[毘梨耶]바라밀이니라.
공적함도 함께 여의고, 일체의 공함[空]에도 머무르지 아니하며, 마음이 머묾 없는 데에 있으나 크게 공함에도 머무르지 아니하면, 이것이 선정[禪]바라밀이니라.
마음에는 마음의 모습[相]이 없으며, 허공처럼 비움도 취하지 않는다. 모든 의지적 작용이 생기지도 않지만 적멸을 깨닫지도 않는다. 마음에 나가고 들어옴이 없이 바탕이 항상 평등하므로 가지가지 법의 실제(實際)는 모두 결정성(決定性)이다. 일체의 경지에 의지하지 않고 지혜에도 머무르지 아니하면, 이것이 지혜(智慧)바라밀이니라.
014_0058_c_08L佛言善男子我所說六波羅蜜者無相無爲何以故若人離欲心常淸實語方便本利利人是檀波羅蜜志念堅固心常無住淸淨無染不著三界是尸波羅蜜修空斷結不依諸寂靜三業不住身心是羼提波羅遠離名數斷空有見深入陰空毘梨耶波羅蜜俱離空寂不住諸空心處無住不住大空是禪波羅蜜無心相不取虛空諸行不生不證寂心無出入性常平等諸法實際決定性不依諸地不住智慧是般若波羅蜜
014_0059_a_01L선남자여, 이 6바라밀은 모두 본각의 이익을 얻어서 결정성(決定性)에 들어가며, 초연하게 세간을 벗어나 걸림없이 해탈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해탈법의 모습[解脫法相]은 모두 모습이 없는 의지적 작용이며, 또한 벗어남과 벗어나지 않음도 없나니, 이것을 해탈이라 하느니라. 왜냐 하면 해탈의 모습은 모습도 없고 의지적 작용도 없으며, 움직임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는 적정한 열반이며, 또한열반이라는 모습도 취하지 않느니라.”
014_0058_c_20L善男子是六波羅蜜者皆獲本利入決定性超然出世無碍解脫善男子如是解脫法相皆無相行無解不解是名解脫何以故解脫之無相無行無動無亂寂靜涅槃不取涅槃相
해탈보살이 이러한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일찍이 없던 가르침을 얻었다 생각하고, 그 뜻을 펼치고자 게송으로 말하였다.
014_0059_a_02L解脫菩薩聞是語已大欣懌得未曾有欲宣義意而說偈言

큰 깨달음으로 만족하신 세존께서
중생을 위하여 법을 펼치시되
모두 1승법을 설하시니
2승의 길은 있을 수 없네.
014_0059_a_04L大覺滿足尊
爲衆敷演法
皆說於一乘
無有二乘道

한맛의 모습 없는 이익은
마치 허공보다 큰 것 같아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 없건만
그 바탕이 각각 다름에 따라
모두 근본 자리를 얻게 하셨네.
014_0059_a_06L一味無相利
猶如太虛空
無有不容受
隨其性各異
皆得於本處

저처럼 객체와 주체를 여의어
하나의 법으로 이루어 진 바
일체 존재[諸有]의 같고 다른 행위는
모두 본각의 이익을 얻어서
두 가지 모습의 견해 끊게 하셨네.
014_0059_a_07L如彼離心我
一法之所成
諸有同異行
悉獲於本利
滅絕二相見

적정한 열반 또한
깨달음을 취하는데 머물지 않고
결정적인 경지에 들어가니
모습도 없고 의지적 작용도 없네.
014_0059_a_09L寂靜之涅槃
亦不住取證
入於決定處
無相無有行

마음을 비운 열반[寂滅]의 경지는
적멸한 마음도 생김이 없는 것,
저 금강의 바탕과 같아서
3보를 부수지 아니하고
6바라밀을 갖추어
일체의 중생들 제도하시네.
014_0059_a_10L空心寂滅地
寂滅心無生
同彼金剛性
不壞於三寶
具六波羅蜜
度諸一切生

초연히 삼계를 벗어나게 하지만
모두 소승법으로 하지 않고
한맛의 법인(法印)인
1승으로 이룩하셨네.
014_0059_a_12L超然出三界
皆不以小乘
一味之法印
一乘之所成

그 때 대중들이 이 뜻을 설하는 것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으며, 대상[心]과 주체[我]라는 생각을 여의고, 공하여 모습[相] 없는 경지에 들어가니 광대하고 광활하였으며, 모두 결정성을 얻어서 오염된 번뇌를 남김없이 끊어 버렸다.
014_0059_a_14L爾時大衆聞說是義心大欣懌得離心我入空無相恢廓曠蕩皆得決定斷結盡漏

3. 무생행품(無生行品)
014_0059_a_17L金剛三昧經無生行品第三

그 때 심왕(心王)보살은 부처님의 설법이 삼계의 밖으로 벗어나 헤아릴 수 없는 것임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모아 합장하고 게송으로 여쭈었다.
014_0059_a_18L爾時心王菩薩聞佛說法出三界外不可思議從座而起叉手合掌以偈問曰

여래께서 말씀하신 뜻은
세간을 벗어나 아무런 모습이 없고
일체의 중생들이
다 번뇌가 끝나게 하셨네.
014_0059_a_21L如來所說義
出世無有相
可有一切生
皆得盡有漏

결박을 끊고 대상과 주체를 비우게 되면
이것이 바로 생김이 없는 것
생김이 있을 수 없는데
어떻게 생김이 없는 법인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014_0059_a_23L斷結空心我
是則無有生
云何無有生
而得無生忍
014_0059_b_01L
그 때 부처님께서 심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생김이 없는 법인[無生法忍]의 가르침은 본래 생김이 없는 것이다. 모든 의식의 흐름은 생김이 없는 것이면서도 생김이 없는 의식의 흐름이 아니니라. 생김이 없는 법인을 얻었다면 곧 허망한 것이니라.”
014_0059_b_01L爾時佛告心王菩薩言善男子無生法忍法本無生諸行無生非無生行得無生忍卽爲虛妄
심왕보살이 부처님께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생김이 없는 법인을 얻은 것이 곧 허망한 것이라 한다면 얻을 것도 없고 법인(法忍)도 없는 것은 허망하지 않은 것입니까?”
014_0059_b_04L心王菩薩言得無生忍卽爲虛妄無得無忍應非虛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왜냐 하면 얻을 것도 없고 법인도 없다는 이것이 바로 얻을 것이 있는 것이니라. 얻을 것이 있고 법인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생김이 있는 것이니라. 얻는다는 데서 생김을 지니게 되며, 얻게 되는 법을 지니므로 아울러 허망하게 되느니라.”
014_0059_b_06L佛言不也何以故無得無忍是則有得有得有忍是則有生有生於得有所得法竝爲虛妄
심왕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일러 법인도 없고 생김도 없는 마음이 허망한 것이 아니라 하옵니까?”
014_0059_b_08L心王菩薩尊者云何無忍無生心而非虛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인도 없고 생김도 없는 마음이란 마음에 형태나 단락(段落)이 없는 것이니, 마치 불의 바탕과 같은 것이니라. 불은 비록 나무 속에 있지만 그것은 결정된 바가 없는 바탕에 있는 것이므로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요, 바탕은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니라. 이치를 드러내기 위하여 설명을 빌려서 이름으로 삼았지만 이름도 얻을 수 없듯이 마음의 모양도 그러하니라. 그 있는 데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니, 마음이 이러한 것인 줄 알면 이것이 바로 생김이 없는 마음이니라.
014_0059_b_09L佛言無忍無生心者心無形段猶如火性雖處木中其在無所決定性故但名但字性不可得欲詮其理假說爲名名不可得心相亦爾不見處所知心如是則無生心
선남자여, 이 마음의 바탕과 모습은 또한 아마륵이란 과일[阿摩勒果]과 같아서 본래 스스로 생긴 것도 아니요, 다른 것을 따라서 생긴 것도 아니며, 함께 생긴 것도 아니요, 원인[因]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생김이 없는 것도 아니니라. 왜냐 하면 끊임없이 새 것과 옛 것이 교체[代謝]하는 것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인연으로 일어나지만 생기는 것이 아니며, 인연으로 사라지지만 소멸하여지는 것도 아니니, 숨고 나타나는 것은 형상이 없는 것이니라. 근본적인 이치는 적멸하여 있을 수 없는 곳에 있으며, 머무르는 것도 볼 수 없나니, 결정성(決定性)이기 때문이니라.
이 결정된 바탕은 또한 동일한 것도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니요, 아주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늘 있는 것도 아니니라.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나오는 것도 아니요, 생기는 것도 아니며 소멸하는 것도 아니니라. 모두 네 가지의 비방[四謗]을 여의었고 말의 길이 끊어졌나니, 생김이 없는 마음의 바탕[心性]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014_0059_b_14L善男子是心性相又如阿摩勒果本不自生不從他不共生不因生不無生何以故代謝故緣起非生緣謝非滅隱顯無根理寂滅在無有處不見所住定性故是決定性亦不一不異不斷不常不入不出不生不滅離諸四謗言語道斷無生心性亦復如是
014_0059_c_01L무엇이 생김과 생기지 않음, 법인의 있음과 법인의 없음을 말하는 것인가?
만일 마음에 얻음이 있느니 머묾이 있느니, 또 그 이치를 보느니 하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지혜를 얻지 못하리니, 그것은 영원한 어둠이니라.
마음의 바탕[心性]을 요별(了別)하는 자는마음의 바탕이 이와 같아서 바탕 또한 이와 같이 생김도 없고 행함도 없음을 아느니라.”
014_0059_b_21L云何說生不生有忍無忍若有說心有得有住及以見者卽爲不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般若是爲長夜了別心性者知心性如是性亦如是無生
심왕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마음은 본래 행함에서 생기는 것이 아닐 것 같으면 모든 행함은 생김이 없을 것이며, 행함[行爲]을 일으키는 것도 생기지 않을 것이니 생기지도 않고 행함도 없는 것이 바로 생김이 없는 행함[無生行]이라 하겠습니다.”
014_0059_c_03L心王菩薩言尊者心若本如無生於行諸行無生生行不生不生無行卽無生行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는 생김이 없는 이치로 생김이 없는 행함을 깨달았느냐?”
014_0059_c_05L佛言善男子汝以無生而證無生行也
심왕보살이 여쭈었다.
“아니옵니다. 왜냐 하면 만일 생김이 없는 행함이라면 바탕과 모습[性相]이 공적하여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며, 얻을 수도 없고 잃을 것도 없으며, 말도 없고 해설도 없으며, 아는 것도 없고 모습도 없으며,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는 것일진대 어떻게 깨닫는다고 하겠습니까? 만일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면 쟁론(爭論)이 되리니, 다툴 것도 없고 논의할 것도 없는 것이 생김이 없는 행함이기 때문입니다.”
014_0059_c_06L心王菩薩言不也以故如無生行性相空寂無見無聞無得無失無言無說無知無相無取無捨云何取證若取證者卽爲諍論無諍無論乃無生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
014_0059_c_10L佛言汝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也
심왕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바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보리의 바탕 속에는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으며, 깨달을 것도 없고 알 것도 없으며, 분별할 모습도 없습니다. 분별이 없는 속에서 청정한 바탕에 합일하나니, 그 바탕은 아무것도 혼합되어 있지 않고 말씀과 해설도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요, 아는 것도 아니며 모르는 것도 아니니, 가지가지의 본받아야 할 행함도 이와 같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의 본받아야 할 행함은 있는 곳을 볼 수 없으며, 결정성(決定性)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얻느니 얻지 못하느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는데,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겠습니까?”
014_0059_c_11L心王菩薩言我無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故菩提性中無得無失無覺無知無分別相無分別中卽淸淨性性無閒雜無有言說非有非無非知非不諸可法行亦復如是何以故一切法行不見處所決定性故本無有得不得云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014_0060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그대가 말한 것처럼 일체의 마음의 흐름[心行]은 모습이 없으며, 주체는 고요하여 생김이 없는 것에 지나지 않느니라.
지니고 있는13) 가지가지의 식(識)도 이와 같으니라. 왜냐 하면 눈과 눈의 감각은 다 공적한 것이며, 식도 공적하여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있을 수 없으며, 안으로 3수(受)가14) 없으니 3수가 적멸하느니라. 귀․코․혀․몸․마음 그리고 의식과 말나(末那)와 아리야식(阿梨耶識)도 역시 이와 같아서 모두 생기하지 않는 적멸한 마음이며,생김이 없는 마음이니라.
014_0059_c_18L佛言如是如是如汝所言一切心行不過無相體寂無生可有諸識亦復如是何以故眼觸悉皆空寂識亦空無有動不動相內無三受三受寂心意意識及以末那梨耶識亦復如是皆亦不生寂滅之心及無生心
만일 적멸한 마음을 일으키거나 생김이 없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이것은 생김이 있는 행함이요, 생김이 없는 행함이 아니니라. 보살이여, 안으로 3수(受)와 3행(行)15)과 3계(戒)를 일으키느니라.
만일 이미 적멸하여 마음을 내었더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마음은 항상 적멸하여 성과[功]도 없고 쓰임[用]도 없으며, 적멸의 모습[寂滅相]도 깨닫지 못하고, 또한 깨달음이 없는 데도 머무르지 않느니라. 머물 곳이 없는 데 있을 수 있지만 언제까지나 모습 없음[無相]을 지니면 3수와 3행과 3계가 없으니, 모두 적멸하고 청정하여 머묾도 없느니라. 삼매에도 들어가지 아니하고 좌선(坐禪)에도 머무르지 아니하니 생김도 없고 행함도 없느니라.”
014_0060_a_02L若生寂滅心若生無生是有生行非無生行菩薩內生三三行三戒若已寂滅生心不生常寂滅無功無用不證寂滅相亦不住於無證可處無住摠持無相則無三受三行三戒悉皆寂滅淸淨無住不入三昧不住坐禪無生無行
심왕보살이 여쭈었다.
“선(禪)은 능히 움직임을 섭수하여 가지가지의 허깨비와 어지러움을 안정시키거늘 어찌하여 선(禪)이라 하지 않습니까?”
014_0060_a_08L心王菩薩言禪能攝動定諸幻亂云何不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여, 선(禪)은 곧 움직임이니 움직이지도 않고 선(禪)이라 하지도 않는 것이 생김이 없는 선[無生禪]이니라. 선(禪)의 근본 바탕[本性]은 생김이 없는 것이니 생김을 여읜 선의 모습[禪相]이요, 선(禪)의 본성은 머묾이 없는 것이니 머묾을 여읜 선(禪)의 움직임이니라. 만일 선(禪)의 근본 바탕[本性]에 움직임[動]과 고요함[靜]이 없는 줄 안다면, 생김이 없음을 얻으리라. 생김이 없는 지혜는 또한 머무는 것에 의지하지 않으며 마음 역시 움직이지 않나니, 이러한 지혜 때문에 그러므로 생김이 없는 반야바라밀을 얻느니라.”
014_0060_a_10L佛言菩薩禪卽是動不動不禪是無生禪禪性無生離生禪相禪性無住離住禪動若知禪性無有動靜卽得無生無生般若亦不依住心亦不動以是智故故得無生般若波羅
심왕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생김이 없는 지혜[無生般若]는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으므로 어디에서도 떠나지 않습니다. 마음에 머물 곳이 없으며, 처소가 없는 데에 마음을 머무르게 하여 머묾도 없고 마음도 없습니다. 마음이 생김 없이 머묾[心無生住], 이와 같이 머무는 마음이 바로 생김이 없는 머묾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음이 생김이 없이 머무르는 것은 헤아려 생각할 수 없는 것이거늘 헤아려 생각할 수 없는 가운데서 말할 수 있습니까?”
014_0060_a_15L心王菩薩言尊者無生般若於一切處無住於一切處無離心無住處無處住心無住無心心無生住如此住心卽無生住尊者心無生住不可思議不思議中可不可說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014_0060_a_19L佛言如是如是
심왕보살은 이러한 말씀을 듣고 처음 있는 일이라 찬탄하면서 게송으로 여쭈었다.
014_0060_a_20L心王菩薩聞如是言歎未曾有而說偈言

큰 지혜 원만하신 세존께서
생김 없는 법을 널리 말씀하시네.
일찍이 듣지 못한 바를 듣게 하시니
아직 설하지 아니한 법 이제 말씀하시네.
014_0060_a_21L滿足大智尊
廣說無生法
聞所未曾聞
未說而今說

마치 깨끗한 단 이슬이
때때로 한 번 나타나듯이
만나기도 어렵고 헤아리기도 어려운데,
듣는 것 역시 어려워라.
014_0060_a_23L猶如淨甘露
時時乃一出
難遇難思議
聞者亦復難
014_0060_b_01L
위없이 좋은 복전(福田)이요
최상의 미묘한 약(藥)이라.
널리 중생을 건지시려고
이제야 말씀을 펼치시었네.
014_0060_b_01L無上良福田
最上勝妙藥
爲度衆生故
而今爲宣說

그 때 대중 속에서 이러한 설법을 듣고, 모두 생김 없는 법과 생김 없는 반야를 얻게 되었다.
014_0060_b_02L爾時衆中聞說此已皆得無生無生般若

4. 본각리품(本覺利品)
014_0060_b_04L金剛三昧經本覺利品第四

그 때 무주(無住)보살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한맛이요 진실하며[一味眞實] 불가사의한 법을 듣고, 먼 곳으로부터 가까이 이르러 부처님의 자리로 다가가 한마음으로 자세히 듣고 청정한 경지에 들어가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014_0060_b_05L爾時無住菩薩聞佛所說一味眞實不可思議從遠近來親如來座專念諦聽入淸白處身心不動
그 때 부처님께서 무주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014_0060_b_08L爾時佛告無住菩薩言汝從何來至何所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근본 없는 데서 왔다가 이제 근본 없는 데로 갑니다.”
014_0060_b_10L無住菩薩言尊者我從無本今至無本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본래 온 곳도 없으니 이제 갈 곳도 없느니라. 그대가 얻은 본각(本覺)의 이익은 헤아려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니라. 이것이 위대한 보살마하살이니라.”
그리고는 바로 큰 광명을 놓으시어 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시며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4_0060_b_11L佛言汝本不從來本不至所汝得本利不可思議是大菩薩摩訶薩卽放大光遍照千界說偈言

위대하도다, 보살이여.
지혜가 만족하고
항상 본각의 이익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구나.
014_0060_b_14L大哉菩薩
智慧滿足
常以本利
利益衆生

가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항상 본각의 이익에 머물며
가지가지 중생을 이끌어 주니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구나.
014_0060_b_16L於四威儀
常住本利
導諸群庶
不來不去

그 때 무주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이익으로 운전해야 중생의 일체의 정식(情識)을 변화시켜 아마라식[奄摩羅]에 들어가게 합니까?”
014_0060_b_17L爾時無住菩薩而白佛言尊者以何利轉而轉衆生一切情識入庵摩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항상 순일한 깨달음[一覺]으로 여러 가지 식(識)을 변화시켜 아마라식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왜냐 하면 일체 중생의 본각(本覺)은 항상 순일한 깨달음으로 가지가지의 중생을 깨우치며, 저 중생들이 모두 본각을 얻어서 가지가지의 정식(情識)들이 공적하여 생김이 없는 줄을 깨우치게 하느니라. 왜냐 하면 결정된 근본 바탕[本性]은 본래 움직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014_0060_b_19L佛言諸佛如來常以一覺而轉諸識入庵摩羅何以故一切衆生本覺以一覺覺諸衆生令彼衆生皆得本覺諸情識空寂無生何以故決定本性本無有動
014_0060_c_01L무주보살이 여쭈었다.
“일체의 식(識)16)모두 경계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인데 어떻게 움직이지 않습니까?”
014_0060_c_01L無住菩薩言可一八識皆緣境起如何不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의 경계는 본래 공하며, 일체의 식도 본래 공하므로 공은 연고(緣故)가 없는 바탕[無緣性]이니라. 어떠한 인연으로 일어나는가?”
014_0060_c_02L佛言一切境本空一切識本空空無緣性如何緣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일체의 경계가 공하다면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無住菩薩言一切境空如何有見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게 되면 망상이 되느니라. 왜냐 하면 일체의 존재[萬有]는 생김도 없고 형상도 없어서 본래 스스로 이름하지 않는 것이니 모두가 공적하며, 일체의 법(法)의 모습도 이러하며 일체 중생의 몸 또한 이와 같으니라. 몸도 오히려 존재하지 않거늘 어떻게 볼 수 있을 것인가?”
014_0060_c_04L佛言見卽爲妄何以故一切萬有無相本不自名悉皆空寂一切法相亦復如是一切衆生身亦如是尚不有云何有見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일체의 경계가 공하고 일체의 몸이 공하며, 일체의 식이 공하고 깨달음 역시 공하겠습니다.”
014_0060_c_08L無住菩薩言一切境空一切身空一切識空覺亦應空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순일한 깨달음이란 무너뜨릴 수 없고 부술 수도 없나니 결정성(決定性)이기 때문이니라. 공한 것도 아니요 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공하면서도 공하지 않은 것[空亦不空]도 아니니라.”
014_0060_c_09L佛言可一覺者不毀不壞決定性故非空非不空無空不空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가지가지의 경계도 그러하여 공의 모습도 아니며 공의 모습 아닌 것도 아니겠습니다.”
014_0060_c_11L無住菩薩言諸境亦然非空相非無空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저 경계라 할 수 있는 것은 바탕이 본래 결정되어 있지만 결정된 바탕의 근본은 처소가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014_0060_c_12L佛言彼可境者性本決定決定性根有處所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깨달음도 이와 같아서 처소가 없겠습니다.”
014_0060_c_14L無住菩薩言覺亦如是無有處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깨달음은 처소가 없기 때문에 청정하나니 청정하므로 깨달음이 없느니라. 사물은 처소가 없기 때문에 청정하나니 청정하므로 물질[色]이라 할 것도 없느니라.”
014_0060_c_15L佛言如是覺無處故淸淨淸淨無覺物無處故淸淨淸淨無色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마음과 안식(眼識:눈의 분별)도 이와 같아서 헤아릴 수 없겠습니다.”
014_0060_c_16L無住菩薩言識亦復如是不可思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과 안식도 이와 같아서 헤아릴 수 없느니라. 왜냐 하면 물질은 본래 처소가 없으므로 청정하여 이름할 것이 없으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니라. 눈은 본래 처소가 없고 청정하여 보이는 것이 없으므로 밖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니라. 마음은 본래 처소가 없고 청정하여 그침이 없으므로 일어날 곳이 없느니라. 식(識)은 처소가 없고 청정하여 움직임이 없으므로 인연의 차별이 있을 수 없느니라. 바탕은 모두 공적하며, 바탕은 깨달을 수 없나니, 법칙을 깨닫는 것으로 깨달음을 삼기 때문이니라.
014_0060_c_17L佛言識亦復如是不可思議以故色無處所淸淨無名不入於內眼無處所淸淨無見不出於外心無處所淸淨無止無有起處識無處淸淨無動無有緣別性皆空寂無有覺覺則爲覺
014_0061_a_01L선남자여, 깨달음 없는 여러 가지의 식(識)을 깨우쳐 알면 근본으로 들어가느니라. 왜냐 하면 금강석 같은 지혜[金剛智]의 경지에서는 해탈의 길[解脫道]이끊어졌으며, 완전하게 끊어지면 머묾이 없는 경지에 들어가 나오고 들어가는 것이 없느니라. 마음은 소재처가 없는 결정성의 경지에 있으며, 그 경지는 청정하기가 맑은 유리와 같고, 바탕은 항상 평등하기가 저 대지와 같으며, 깨달아 미묘한 관찰은 지혜의 햇빛과 같고, 이로움을 성취하고 본각(本覺)을 얻는 것은 위대한 진리의 비[法雨]와 같으니라. 이 지혜에 들어간 자는 부처님의 지혜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며, 지혜의 경지에 들어간 자는 가지가지의 식(識)이 발생하지 않느니라.”
014_0060_c_23L善男子覺知無諸識則入何以故金剛智地解脫道斷斷已入無住地無有出入心處無在決定性地其地淸淨如淨琉璃性常平等如彼大地覺妙觀察如慧日光利成得本如大法雨入是智者是入佛智地入智地者諸識不生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순일한 깨달음의 성스러운 힘과 네 가지 큰 지혜의 경지는 바로 일체 중생의 본각의 이익[本覺利]이 되겠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의 중생은 바로 이 몸속에서 본래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014_0061_a_06L住菩薩言如來所說一覺聖力四弘智地卽一切衆生本根覺利何以故一切衆生卽此身中本來滿足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왜냐 하면 일체의 중생은 본래부터 번뇌가 없으며, 가지가지 착함과 이익의 근본이지만 지금은 욕심의 가시[欲刺]를 지니고 있으므로 아직 항복시키지 못한 것이니라.”
014_0061_a_09L佛言如是何以故一切衆生本來無漏善利本今有欲刺爲未降伏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만일 어떤 중생이 아직 본각의 이익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번뇌를 캐어 모으고 있다면 극복하기 어려운 그것들을 어떻게 항복시켜야 하겠습니까?”
014_0061_a_11L無住菩薩言若有衆生未得本利猶有採集云何降伏難伏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혹 번뇌를 쌓거나 혹 홀로 행하되 대상을 분별하거나 번뇌에 물들더라도 그 정신을 돌리어 공한 동굴[空窟]에 머물게 하면 조복하기 어려운 것을 항복시키게 될 것이요, 마군의 속박에서 벗어나 초연히 명백하게 드러난 경지에 앉아 식음(識陰)17)이 완전한 열반에 들게 되느니라.”
014_0061_a_13L佛言若集若獨行別及以染迴神住空窟降伏難調伏解脫魔所縛超然露地坐識陰般涅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마음으로 열반을 얻으면 홀로 뛰어나 필적할 것이 없이 항상 열반에 머무르게 되리니 그것을 마땅히 해탈이라 합니까?”
014_0061_a_16L無住菩薩言心得涅槃獨一無伴常住涅槃應當解脫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열반에 머무르면 이것은 열반의 올가미니라. 왜냐 하면 열반이 바로 본각의 이익이며, 이로운 본각이 본래 열반이요, 열반의 깨달음의 성분(性分)이 바로 본각의 성분이기 때문이니라. 깨달음의 바탕은 다른 것이 아니므로 열반도 다름이 없다. 깨달음은 본래 생김이 없으므로 열반도 생김이 없다. 깨달음은 본래 사라짐이 없으므로 열반도 사라짐이 없다. 열반과 깨달음은 본래 다름이 없으므로 열반을 얻을 수 없나니, 열반을 얻을 수 없는데 어찌 머묾이 있다 하겠느냐.
014_0061_a_17L佛言常住涅槃是涅槃縛何以故涅槃本覺利利本覺涅槃涅槃覺分卽本覺分覺性不涅槃無異覺本無生涅槃無生覺本無滅涅槃無滅涅槃覺本無異故無得涅槃涅槃無得云何有住
014_0061_b_01L선남자여, 깨달은 사람은 열반에 머무르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깨달음은 본래 생김이 없는 것이니 중생의 허물을 벗어나며, 깨달음은 본래 공적함도 없으니 열반의 움직임을 벗어나는 것이니라. 이러한 경지에 머무르면 마음에머무는 바가 없어서 나가고 들어감이 있을 수 없으며 아마라식에 들어가기 때문이니라.”
014_0061_a_22L善男子覺者不住涅槃何以故覺本無生離衆生覺本無寂離涅槃動住如是地無所住無有出入入庵摩羅識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아마라식은 들어갈 곳이 있는 것이며, 곳[處]은 얻을 바가 있는 것이니, 이것은 법을 얻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014_0061_b_02L無住菩薩言庵摩羅識是有入處處有所是得法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왜냐 하면 비유하자면 어리석은 자식이 손에 금전(金錢)을 가지고도 지니고 있는 줄 모르고 시방(十方)으로 돌아다니며, 50년이 지나도록 가난과 고난으로 오직 구걸하는 것으로 일을 삼았으나18) 자신을 지탱하기도 부족했던 것과 같으니라. 그 아버지는 자식의 이러한 사정을 보고 자식에게 일러 말했다.
‘너는 금전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어찌하여 쓸 줄을 모르느냐? 마음대로 필요한 것을 모두 충족할 수 있으리라.’
그 자식이 정신을 차리고 금전을 찾으니,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금전(金錢)를 얻었다고 말했느니라. 그 아버지는 말했느니라.
‘어리석은 자식아, 너는 기뻐하지 말라. 얻었다는 금전은 본래 너의 물건이니, 네가 얻은 것이 아니니라. 어찌 기쁘다고 하겠느냐?’
선남자여, 아마라식도 이와 같으니라. 본래 나오는 모습[出相]도 없으며 이제 들어가는 것[入]도 아니니라. 옛적에는 어리석었기 때문이니 없는 것이 아니며, 이제 깨달았다고 하여 들어온 것이 아니니라.”
014_0061_b_04L佛言不也何以故譬如迷子手執金錢而不知有遊行十方經五十年貧窮困苦專事求索而以養身而不充足其父見子有如是事而謂子言汝執金錢何不取用隨意所須皆得充足其子醒已而得金錢心大歡喜而謂得錢其父謂言迷子汝勿欣懌所得金錢是汝本物汝非有得云何可喜善男子庵摩羅者亦復如是本無出相今卽非入昔迷故非無今覺故非入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저 아버지는 그 자식이 어리석은 줄을 알면서도 어찌하여 50년이 지나도록 시방으로 돌아다니며 가난과 고난을 겪은 다음에야 비로소 알려 주는 것입니까?”
014_0061_b_14L無住菩薩言彼父知其子迷云何經五十年十方遊歷貧窮困苦方始告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0년이 지났다는 것은 한순간19)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요, 시방으로 돌아다녔다는 것은 함부로 분별하는 생각에 끌려 다님이니라.”
014_0061_b_16L佛言經五十年一念心動十方遊歷遠行遍計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어떠한 것을 한순간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 합니까?”
014_0061_b_17L住菩薩言云何一念心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순간의 마음이 움직이면 5음이 함께 일어나며, 5음이 일어나는 가운데 50악(惡)20)이 갖추어져 있느니라.”
014_0061_b_18L佛言一念心動五陰俱生五陰生中具五十惡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함부로 분별함에 끌려 다니며 시방을 돌아다니고 한순간의 마음이 일어날 때에 50악을 갖추게 되는데, 어떻게 저 중생이 한순간의 마음도 일으키지 않도록 하겠습니까?”
014_0061_b_19L無住菩薩言遠行遍計遊歷十方念心生具五十惡云何令彼衆生無生一念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중생들로 하여금 심신(心神)을 가라앉혀 금강 같은 경지[金剛地]에 머물게 하고, 마음이 고요하여 일어남이 없게 하며, 마음을 항상 무사태평하게 하면, 바로 한순간의 마음도 일어남이 없느니라.”
014_0061_b_22L佛言令彼衆生安坐心神金剛地靜念無起心常安泰卽無一
014_0061_c_01L무주보살이 여쭈었다.
“불가사의하옵니다. 깨달음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그 마음이 무사태평하면 바로 본각의 이익입니다. 그 이익은 움직임이 없지만 항상 있어서 없는 것이 아니며, 없는 것이 아니란 것도 있을 수 없으며, 깨닫지 않는다는 것[不覺]이 없지 않으며, 깨달음이 없음[無覺]을 깨달아 알면 그것은 본래의 이익(本利)이요 본각(本覺)입니다. 깨달음이란 청정하고 물듦이 없어서 변이(變易)하지 않고 결정성이기 때문에 헤아려 측량할 수 없습니다.”
014_0061_c_01L無住菩薩言不可思議覺念不生其心安泰卽本覺利利無有動常在不無無有不無不無不覺覺知無覺本利本覺覺者淸淨無染無著不變不易決定性故不可思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佛言如是
무주보살이 이 말씀을 듣고 처음 있는 일이라 느껴 게송으로 여쭈었다.
014_0061_c_05L無住菩薩聞是語已得未曾有而說偈言

세존이시여, 크게 깨달으신 세존이시여,
중생에게 생각 없는 법[無念法]을 설하시니
생각도 없고 생김도 없는 마음이여,
그 마음 항상 생겨서 소멸하지 않는구나.
014_0061_c_07L尊者大覺尊
說生無念法
無念無生心
心常生不滅

순일한 깨달음은 본각의 이익
가지가지 본각을 이롭게 하는 것은
마치 저 금전을 얻은 것 같아서
얻은 것이 곧 얻은 것이 아니어라.
014_0061_c_09L一覺本覺利
利諸本覺者
如彼得金錢
所得卽非得

그 때에 대중들은 이 말씀을 듣고 모두 본각의 이익인 지혜바라밀을 얻었다.
014_0061_c_10L爾時大衆聞說是語皆得本覺利般若波羅蜜

5. 입실제품(入實際品)
014_0061_c_12L金剛三昧經入實際品第五

이에 여래께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모든 보살들은 본각의 이익에 깊이 들어가야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느니라. 만일 후세에 때 아닌 때[若後非時]에 진여에 상응하여 법을 설하면 시기와 이익을 함께하기 어려우므로[時利不俱]21) 혹은 순조롭게 말하고 혹은 거슬리게 설법하되 동일한 것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게 진여에 상응하여 설하느니라. 모든 망정(妄情)과 지견(智見)22)을 이끌어 일체지(一切智)의 바다에 흘러 들어가게 하며, 제도받을 수 있는 중생들로 하여금 헛된 바람에 휩쓸리지 않게 하며, 모두 저들로 하여금 한맛[一味]의 신비로운 젖[神乳]23)을 바라도록 할 뿐이니라.
세간은 세간이 아니며 머묾은 머무는 처소가 아니니, 다섯 가지 공[五空]에 나가고 들어가되 취하고 버림이 있을 수 없느니라.
014_0061_c_13L於是如來作如是言諸菩薩等本利深入可度衆生若後非時應如說法時說利不但順不順說非同非異應如說引諸情智流入薩婆若海令可衆挹彼虛風悉令彼庶一味神世閒非世閒住非住處五空出入無有取捨
왜냐 하면 모든 법의 공한 모습과 바탕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有無] 아니요, 없는 것도 없지 않은 것[無不無]도 아니니라. 없는 것도 아니요 있는 것도 아니므로 결정된 바탕이 없나니, 있다는 것에도 없다는 것에도[有無]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저 있다 없다 분별하는 범부나 성인24)의 지혜로는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모든 보살들이 만일 이 이익을 알 것 같으면 바로 보리(깨달음)를 얻으리라.”
014_0061_c_20L何以故諸法空相性非有非無不無不無不有無決定性不住非彼有無凡聖之智而能測隱諸菩薩等若知是利卽得菩提
014_0062_a_01L그 때 대중 가운데 한 보살이 있었는데 대력(大力)이라 불렀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부처님 앞에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섯 가지 공에 나가고 들어감에 취하고 버림이 있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다섯 가지 공에서 취하고 버림이 없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014_0061_c_23L爾時衆中有一菩薩名曰大力卽從座起前白佛言尊者如佛所說五空出入無有取捨云何五空而不取捨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의 다섯 가지 공이란 3유(有)25)가 공이요, 6도(道)의 그림자가 공이며, 법의 모습[法相]이 공이요, 명상(名相)26)이 공이며, 심식(心識)이 공임을 말하느니라. 보살이여, 이와 같은 공들은 공이면서 공에 머물지 아니하며, 공이면서 공의 모습이 없거니와 모양이 없는 법에 어찌 취하고 버림이 있겠는가? 취할 것이 없는 경지에 들어가면 세 가지 공에 들어가느니라.”
014_0062_a_03L佛言菩薩五空者三有是空六道影是空法相是空名相是空心識義是空如是等空空不住空空無空相相之法有何取捨入無取地則入三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어떠한 것이 세 가지 공입니까?”
大力菩薩言云何三空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가지 공이란 공의 모습[空相]도 공하며, 공이 공하다[空空]는 것도 공하며, 그 공해진 것[所空]도 공한 것을 말하느니라. 이와 같은 공들은 세 가지 모습에 머무르지 아니하지만 진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 문자와 언어의 길이 끊어져 헤아릴 수 없느니라.”
014_0062_a_08L佛言三空空相亦空空空亦空所空亦空是等空不住三相不無眞實文言道不可思議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진실은 없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의 모습은 마땅히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014_0062_a_11L大力菩薩言不無眞實是相應有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없는 것[無]은 없는 것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있는 것[有]은 있는 것에 머무르지 않으니,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있는 것이 아닌 법[不有之法]은 아니라고 하면 없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다. 없는 것이 아닌 모습[不無之相]은, 아니라고 하면 있는 것에 머무는 것이니, 있고 없는 것으로써 이치를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니라. 보살이여, 이름과 뜻[名義]이 없는 모습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왜냐 하면 이름 없는 이름이라 하여 이름 없는 것이 아니며, 뜻 없는 뜻이라 하여 뜻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014_0062_a_12L佛言無不住無有不住有不無不有不有之法不卽住無不無之相不卽住有非以有無而詮得理菩薩無名義相不可思議何以故名之名不無於名無義之義不無於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이와 같은 이름과 뜻은 진실하고 여여[如]한 모습이며, 여여하게 오는 여여한 모습입니다. 그 여여함은 여여함에 머무르지 아니하며, 여여함에는 여여함의 모습이 없습니다. 모습[相]에는 여여함이 없기 때문에 여여하게 오지 않는 것이 없으며, 중생의 마음의 모습들 또한 여여하게 오는 것이니, 중생의 마음에는 마땅히 특별한 경지가 없겠습니다.”
014_0062_a_17L大力菩薩言如是名義眞實如相如來如相如不住如如無如相相無如非不如來衆生心相相亦如來生之心應無別境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중생의 마음에는 진실로 별다른 경계가 없느니라. 왜냐 하면 마음은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며, 이치는 더러움이 없기 때문이니라. 다만 티끌에 물들었기에 3계라 이름하며, 3계의 마음을 별다른 경계라 이름하느니라. 이 경계는 허망한 것이며, 마음의 변화를 따라서 생긴 것이니, 마음에 허망함이 없을 것 같으면 특별한 경계도 없는 것이니라.”
014_0062_a_20L佛言如是衆生之實無別境何以故心本淨故理無穢故以染塵故名爲三界三界之心名爲別境是境虛妄從心化生心若無妄卽無別境
014_0062_b_01L대력보살이 여쭈었다.
“만일 마음이 깨끗할 것 같으면가지가지의 경계는 생기지 않을 것이니, 이 마음이 청정할 때는 마땅히 3계가 없겠습니다.”
014_0062_b_01L大力菩薩言心若在諸境不生此心淨時應無三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보살이여, 마음이 경계를 발생시킨 것이 아니고 경계도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보이는 모든 경계는 오직 보여지는 마음일 뿐이니, 마음에 환화(幻化)가 없으면 보이는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이여, 안으로 중생이 없고 세 가지 성품이 공적하면 나라는 무리도 없고 남이라는 무리도 없느니라. 이리하여 두 가지의 들어감[二入]에 이르러도 역시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되나니, 이러한 이익을 얻으면 3계가 없는 것이니라.”
014_0062_b_02L如是菩薩心不生境境不生心以故所見諸境唯所見心心不幻化則無所見菩薩內無衆生三性空寂則無己衆亦無他衆乃至二入亦不生心得如是利則無三界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어떠한 것이 두 가지의 들어감에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까? 마음은 본래 생기지 않는 것인데 어떻게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까?”
014_0062_b_07L大力菩薩云何二入不生於心心本不生何有入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가지 들어감이란, 첫째는 이치로 들어감[理入]이요, 둘째는 행함[行]으로 들어가는 것이니라.
014_0062_b_09L佛言二入者一謂理入二謂行入
이치로 들어간다는 것은, 중생은 참된 바탕[眞性]과 다르지 않지만 하나도 아니요 같은 것도 아니니라. 다만 번뇌[客塵]에 가리어 있을 뿐이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것임을 깊이 믿는 것이니라. 마음을 깨우침의 관법[覺觀]에 집중하되 불성을 잘 관찰하여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자신도 없고 다른 이도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둘이 아닌 금강 같은 마음의 경지[金剛心地]에 굳게 머물러 이동하지 아니하며, 적정(寂靜)하여 인위적인 조작이 없고 분별함이 없으면, 이것을 이치로 들어가는 것[理入]이라 부르는 것이니라.
014_0062_b_10L理入者深信衆生不異眞性不共但以客塵之所翳障不去凝住覺觀諦觀佛性不有不無無他凡聖不二金剛心地堅住不寂靜無爲無有分別是名理入
행함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마음이 어디로 기울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그림자(경계의 영상)가 흘러 변함이 없으며, 있는 곳[有處]에서 고요히 생각하되, 찾는 것이 없어서 바람이 두드리나[風鼓:경계의 바람] 움직이지 않기가 마치 대지(大地)와 같으며, 대상[心]과 주체[我]를 버리고 중생을 제도하되 생김도 없고 모습도 없으며,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것이니라.
014_0062_b_14L入者心不傾倚影無流易於所有處靜念無求風鼓不動猶如大地捐離心我救度衆生無生無相不取不捨
보살이여, 마음에는 나가고 들어옴이 없고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없는 마음은 들어오되 들어오지 않는 것이므로 들어오는 것이라 부르느니라.
보살이여, 이와 같이 법에 들어가되 법의 모습[法相]은 공하지 아니하며, 공하지 않은 법이지만 헛되이 버리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없는 것이 아닌 법은 공덕을 갖추고 있으며, 마음도 아니요 그림자(경계)도 아니며, 법이(法爾:법 그대로)27)가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014_0062_b_17L菩薩心無出入無出入心入不入故故名爲入菩薩如是入法法相不空不空之法法不虛棄何以故不無之具足功德非心非影法爾淸淨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어찌하여 마음도 아니요 그림자도 아니며, 법이가 청정하다고 합니까?”
014_0062_b_21L力菩薩言云何非心非影法爾淸淨
014_0062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공하고 여여한[空如] 법은 심식(心識)의 법이 아니요, 마음의 부림[心使]이 소유한 법도 아니니라. 공한 모습[空相]의 법도 아니며, 물질적인 모습[色相]의 법도 아니니라. 마음의 유위(有爲)와서로 응하지 않는 법도 아니며, 마음의 무위(無爲)와 서로 응하는 법도 아니니라. 드러난 그림자도 아니며 어떠한 현상으로 드러내어 보이는 것도 아니니라. 자성(自性)도 아니며 차별도 아니요, 이름도 아니며 모습[相]도 아니요, 뜻[義]도 아니니라. 왜냐 하면 뜻에는 여여함[如]이 없기 때문에 여여함이 없는 법 또한 없는 것이요 여여함이 없는 것이며, 여여함이 없는 것도 있을 수 없으며, 그렇다고 여여함이 없는 법이 있다는 것도 아니니라. 왜냐 하면 근본 이치인 법은 이치도 아니며 근본도 아니요, 모든 쟁론(爭論)을 떠나 그 모습을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이여, 이와 같이 청정한 법은 생기되 생김이 있는 법으로 생기는 것도 아니요, 없어지되 없어지는 법으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라.”
014_0062_b_22L佛言空如之法非心識法非心使所法非空相法非色相法非心有爲不相應法非心無爲是相應法非所現影非所顯示非自性非差別非名非相非義何以故義無如故無如之亦無無如無有無如非無如有以故根理之法非理非根離諸諍論不見其相菩薩如是淨法非生之所生生非滅之所滅滅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불가사의합니다. 이와 같은 법의 모습은 무엇이 합하여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홀로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굴레를 메울 수도 없고 무엇과 짝지을 수도 없으며, 모이는 것도 아니고 흩어지는 것도 아니며, 생기는 것도 아니요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또한 오는 모양이나 가는 모양이 없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014_0062_c_08L大力菩薩言可思議如是法相不合成不獨成不絆不聚不散不生不滅亦無來相及以去住不可思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불가사의하고도 불가사의하니라. 마음과 마음도 역시 그러하니라. 왜냐 하면 여여함[如]은 마음과 다르지 않나니, 마음은 본래 여여하기 때문이니라.
중생의 불성(佛性)은 하나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니라. 중생의 바탕은 본래 생기고 없어짐이 없나니, 생기고 없어지는 바탕은 그 바탕이 본래 열반이니라. 바탕과 모습[性相]이 본래 여여하며, 여여함에는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니라.
일체의 법의 모습[法相]은 인연을 따르나 일어남이 없으며, 일어나는 모습과 바탕은 여여하며, 여여함은 움직이는 바가 없는 것이니라. 인연의 바탕과 모습은 서로가 본래 공한 것이며, 인연과 인연은 공하고 공한 것이어서 인연으로 일어날 수 없느니라. 일체의 연기법은 미혹한 마음과 망령된 견해이며, 드러난 것은 본래 생김이 없는 것이니, 인연의 근본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마음은 법의 이치와 같아서 자체가 공하여 없는 것이니라. 저 공의 으뜸[空王]은 본래 머무르는 곳이 없건마는, 범부의 마음은 망령되이 분별해서 보는 것과 같으니라.
014_0062_c_11L佛言如是可思議不思議心心亦如是何以故如不異心心本如故衆生佛性不一不異衆生之性本無生滅生滅之性性本涅槃性相本如如無動故一切法相從緣無起起相性如如無所動因緣性相相本空無緣緣空空無有緣起一切緣法惑心妄見現本不生緣本無故心如法理自體空無如彼空王本無住處凡夫之心妄分別見
014_0063_a_01L여여의 모습은 본래 있고 없는 것이 아니니라.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모습은 오직 심식(心識)을 보는 것일 뿐이니라. 보살이여, 이러한 심법(心法)은, 자체는 없는 것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요,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니라. 보살이여, 없다느니 없지 않다느니[無不無] 하는 모습은 언설로 도달하는 경지가 아니니라. 왜냐 하면 진여의 법은 텅 비어서 모습이 없나니,2승(乘)이 미칠 수 있는 경지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허공의 경계는 안과 밖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여섯 가지를 실천하는[六行] 보살28)이라야 이것을 알 수 있느니라.”
014_0062_c_20L如如之相本不有無有無之相見唯心識菩薩如是心法不無自體自體不有不有不無菩薩無不無相非言說地何以故眞如之法虛曠無相二乘所及虛空境界內外不測六行之士乃能知之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어떠한 것을 6행(行)이라 합니까? 원컨대 설명하여 주십시오.”
014_0063_a_03L大力菩薩言云何六願爲說之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첫째는 10신행(信行)이요, 둘째는 10주행(住行)이요, 셋째는 10행행(行行)이요, 넷째는 10회향행(回向行)이요, 다섯째는 10지행(地行)이요, 여섯째는 등각행(等覺行)이니, 이와 같이 실행하는 사람이라야 능히 알 수 있느니라.”
014_0063_a_04L佛言一者十信行二者十住行三者十行行四者十迴向行五者十地行六者等覺行如是行者乃能知之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실제(實際)에 대한 깨달음의 이익은 나가고 들어옴이 없나니, 어떠한 법과 마음으로 실제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014_0063_a_07L大力菩薩言實際覺利無有出入何等法心得入實際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실제의 법은, 법에 끝[際]이 없으므로 끝이 없는 마음이면 실제에 들어가느니라.”
014_0063_a_08L佛言際之法法無有際無際之心則入實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끝없는 마음의 지혜는 그 지혜가 가이없으며, 가이없는 마음은 마음에 자재함을 얻나니, 자재로운 지혜라야 실제(實際)에 들어가게 되느니라. 저 범부들처럼 마음이 유약한 중생들은 그 마음에 헐떡거림이 많으리니, 어떠한 법으로 다스려야 견고한 마음을 얻어서 실제에 들어가게 하겠습니까?”
014_0063_a_10L大力菩薩言無際心智其智無崖無崖之心心得自在自在之智得入實際如彼凡夫軟心衆生其心多喘以何法御令得堅心得入實際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여, 저 마음이 헐떡거리는 자는 안과 밖의 번뇌[使]로 끄달림에 따라서 흘러가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만드느니라. 커다란 바람이 파도를 치면 큰 용이 놀라 날뛰나니, 그 놀라 날뛰는 마음 때문에 헐떡거림이 많게 되느니라. 보살이여, 저 중생들로 하여금 셋을 보존하고 하나를 지키게 해서[存三守一] 여래선(如來禪)에 들어가게 하나니, 선정 때문에 마음은 헐떡거림이 없어지느니라.”
014_0063_a_13L佛言菩薩彼心喘者以內外使隨使流注滴瀝成海大風鼓浪大龍驚駭驚駭之心故令多喘菩薩令彼衆生存三守一入如來禪以禪定故心則無喘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어떠한 것을 셋을 보존하고 하나를 지키게 해서 여래선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입니까?”
014_0063_a_17L大力菩薩言何謂存三守一入如來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셋을 보존한다는 것[存三]은 세 가지 해탈을 보존하는 것이요, 하나를 지키게 한다는 것[守一]은 한마음의 진여[如]를 지키는 것이니라. 여래선(如來禪)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치로써 마음의 청정한 진여를 관찰[觀]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마음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실제(實際)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014_0063_a_19L佛言存三者存三解脫守一者一心如入如來禪者理觀心淨如入如是心地卽入實際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세 가지 해탈법이란 어떠한 일이며, 이치로써 관찰하는 삼매(三昧)는 어떠한 법을 따라서 들어갑니까?”
014_0063_a_21L大力菩薩言三解脫法是何等事理觀三昧從何法入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가지 해탈이란 바로 허공해탈[虛空]․금강해탈[金剛]․반야해탈[般若]을 말하며, 이치로 관찰[觀]한다는 것은 마음이 이치대로 청정하여 마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니라.”
014_0063_a_22L三解脫者虛空解脫金剛解脫若解脫理觀者心如理淨無可不心
014_0063_b_01L대력보살이 여쭈었다.
“어떠한 것을 작용을 보존하는 것[存用]이라 하며, 어떠한 것을 관찰한다 합니까?”
014_0063_b_01L大力菩薩言云何存用云何觀之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과 현상[事]이 둘이 아닌 것을, 작용을 보존하는 것이라 부르고, 안으로 행하고[內行] 밖으로 행함[外行]에,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둘이 아니며, 하나의 모습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에 얻고 잃음이 없어서 동일하면서도 동일하지 않은 경지로 깨끗한 마음이 흘러들어 가는 것을 관찰한다고 부르는 것이니라.
보살이여, 이러한 사람은 두 가지 모습에 머무르지 않느니라. 비록 출가를 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집에 있는 것[在家]에도 집착하지 않느니라. 비록 법복(法服)이 없고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29)를 갖추지 아니하였으며, 포살(布薩)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은 인위적인 조작이 없이[無爲] 저절로 편안하기 때문에 성인의 도과(道果)를 얻어서 2승(乘)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보살도에 들어간 뒤에 마땅히 수행의 경지를 채워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루게 되느니라.”
014_0063_b_02L心事不二是名存用內行外行入不二不住一相心無得失一不一淨心流入是名觀之菩薩如是之不在二相雖不出家不住在家無法服而不具持波羅提木叉戒入布薩能以自心無爲自恣而獲聖不住二乘入菩薩道後當滿地成佛菩提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불가사의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출가(出家)하지는 않았지만 출가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열반의 저택에 들어가서 여래의 옷을 입고 깨달음의 자리에 앉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문(沙門)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존경하고 공양하여야 하겠습니다.”
014_0063_b_10L大力菩薩言不可思議如是之人非出家非不出家何以故入涅槃宅著如來衣坐菩提座如是之人乃至沙門宜應敬養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왜냐 하면 열반의 저택에 들어가서 마음은 3계를 뛰어넘었으며, 여래의 옷을 입고 법이 공한 곳에 들어갔으며, 깨달음의 자리에 앉아서 정각(正覺: 바른 깨달음)의 경지에 올라갔으니, 이와 같은 사람은 마음으로 두 가지 나[二我]를 뛰어넘었거늘, 어찌 하물며 사문이라 하여 존경하고 공양하지 않겠는가?”
014_0063_b_13L佛言如是何以入涅槃宅心越三界著如來衣法空處坐菩提座登正覺地如是之人心超二我何況沙門而不敬養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저와 같이 순일한 경지[一地]와 공의 바다[空海]는 2승(乘)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습니다.”
014_0063_b_16L力菩薩言如彼一地及與空海二乘之人爲不見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저 2승(乘)의 사람들은 삼매에 탐닉하여 삼매의 몸을 얻지만 저 공의 바다인 순일한 경지에서는 마치 술 병[酒病]을 얻어 침침하며 취하여 깨어나지 못하거나,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도 오히려 깨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나니, 술기운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어나며, 바야흐로 이러한 행함[行]을 닦은 뒤에 불신(佛身:부처님의 몸)을 얻게 되는 것이니라.
저러한 사람은 일천제(一闡提)30)를 버림에 따라서 곧 여섯 가지의 행함[六行]에 들어가며, 행하는 경지와 처소에서 한 생각의 깨끗한 마음이 청정하며, 결정코 명백하여 금강 같은 지혜의 힘[金剛智力]으로 아비발치의 경지[阿鞞跋致]31)에서 중생을 제도하되 자비심에 다함이 없느니라.”
014_0063_b_18L佛言如是彼二乘人味著三昧得三昧身於彼空海一地如得酒病惛醉不醒乃至數劫猶不得覺酒消始悟方修是行後得佛身如彼人者從捨闡提卽入六行於行地所一念淨心決定明白金剛智力鞞跋致度脫衆生慈悲無盡
014_0063_c_01L대력보살이여쭈었다.
“이러한 사람은 마땅히 계율(戒律)을 지키지 않으리니, 저 사문들을 마땅히 공경하여 우러러보지 않을 것입니다.”
014_0063_c_01L大力菩薩言如是之人應不持戒於彼沙門應不敬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계율을 설명하는 사람이 되면 착하지 않고 교만하기 때문이며, 마음 바다의 파도와 물결 때문이니라. 그러나 그의 마음의 땅[心地]은 8식(識)의 바다가 잔잔해지고, 9식(識)의 흐름이 청정하여 바람이 그것을 움직일 수 없고, 파도와 물결이 일어나지 않나니, 계율의 근본 바탕은 공과 같아서 그것을 지키는 자는 도리어 미혹하여[迷] 엎어지는 것이니라. 저러한 사람은 7식(識)과 6식이 일어나지 않고 가지가지의 갈망과 애욕[諸集]이 사라져 고요하며, 세 부처[三佛]를 여의지 않고 보리심을 발하느니라. 세 가지 모습 없는 가운데서 마음에 순응하여 심오하게 들어가되 3보(寶)를 깊이 공경하고 위의(威儀)를 잃지 않기 때문에 저 사문을 공경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보살이여, 저 어진 사람32)은 세간의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법에 머무르지 않으며, 세 가지 공한[三空] 마을[聚]에 들어가 세 가지 법[三有]의 마음을 없애느니라.”
014_0063_c_03L佛言爲說戒者不善慢故海波浪故如彼心地八識海澄九識流淨風不能動波浪不起戒性等空持者迷倒如彼之人七六不生諸集滅定不離三佛而發菩提三無相中順心玄入深敬三寶不失威儀於彼沙門不無恭敬菩薩彼仁者不住世閒動不動法入三空聚滅三有心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저 어진 사람은 과족만덕(果足滿德)부처님과 여래장(如來藏)부처님과 형상(形像)부처님 등 이러한 부처님의 처소에서 보리심을 발하여 세 가지의 청정한 계율[三聚戒]에 들어가지만 그 모습[相]에 머무르지 않고, 3계33)의 마음을 없애 버리되 공적한 경지에 거주(居住)하지 않으며, 제도할 만한 중생을 버리지 않으려고 고르지 못한 땅[不調地:중생계]에 들어갔으니 불가사의합니다.”
014_0063_c_10L力菩薩言彼仁者於果足滿德佛來藏佛形像佛如是佛所發菩提心入三聚戒不住其相滅三界心不居寂地不捨可衆入不調地不可思議
그 때에 사리불(舍利弗)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014_0063_c_14L爾時舍利弗從座而起前說偈言

반야의 바다를 갖추었지만
열반의 성역에 머물지 않나니
마치 저 미묘한 연꽃이
높은 언덕에서 나지 않은 것 같네.
014_0063_c_15L具足波若海
不住涅槃城
如彼妙蓮華
高原非所出

모든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세월에
온갖 번뇌를 버리지 않으시고
세상 건지신 뒤에 득도하심은
마치 진흙에서 연꽃이 나오는 것 같네.
014_0063_c_17L諸佛無量劫
不捨諸煩惱
度世然後得
如泥華所出

저러한 6행(行)의 경지는
보살(菩薩)이 닦을 바요,
저러한 3공(空)의 마을은
보리의 참된 길이네.
014_0063_c_18L如彼六行地
菩薩之所修
如彼三空聚
菩提之眞道

나는 이제 머물되 머무르지 않는 것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와 같이
올 곳으로 다시 돌아와
보살도 갖춘 뒤에 벗어나리라.
014_0063_c_19L我今住不住
如佛之所說
來所還復來
具足然後出

또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나와 하나요 둘이 없게 하듯이
앞에 온 이나 뒤에 오는 이
모두 바른 깨침에 오르게 하리.
014_0063_c_21L復令諸衆生
如我一無二
前來後來者
悉令登正覺

그 때에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불가사의하니라. 너는 마땅히 장차 깨달음의 길을 성취하여 한량없는 중생들이 생사(生死)의 바다를 벗어나게 하리라.”
014_0063_c_22L爾時佛告舍利弗言不可思議汝當於後成菩提道無量衆生超生死苦
014_0064_a_01L그 때에 대중들은 모두 보리를 깨달았고, 많은 소승의 무리들은 다섯 가지의 공[五空]한 바다에 들어갔다.
014_0064_a_02L爾時大衆皆悟菩提諸小衆等入五空海

6. 진성공품(眞性空品)
014_0064_a_03L金剛三昧經眞性空品第六

그 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도를 닦는 데는 이름과 모습이 있을 수 없으며, 세 가지 청정한 계율[三戒]에는 형식도 없는데, 어떻게 수용하여 중생을 위해 설명하겠습니까?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를 위해 말씀하여 주십시오.”
014_0064_a_04L爾時舍利弗而白佛言尊者修菩薩道無有名相三戒無儀云何攝受爲衆生說願佛慈悲爲我宣說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그대를 위해 설명하여 주리라. 선남자여, 좋거나 좋지 않은 법은 마음에 따라서 변화하여 생기는 것이니라. 일체의 경계는 의식과 언어로 분별한 것이니, 한 곳에서 제어(制御)하면 온갖 인연이 끊어져 없어지리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순일한 본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세 가지의 작용[用]은 베풀어지지 않을 것이요, 여여한 이치에 머무르면 6도의 문이 닫힐 것이며, 네 가지 인연이 순조로울 것 같으면 세 가지 계율이 갖추어지리라.”
014_0064_a_07L佛言男子汝今諦聽爲汝宣說善男子不善法從心化生一切境界意言分制之一處衆緣斷滅何以故善男一本不起三用無施住於如理道門杜四緣如順三戒具足
사리불이 여쭈었다.
“어떠한 것이 네 가지 인연이 순조로울 것 같으면 세 가지 계율이 갖추어진다는 것입니까?”
014_0064_a_12L舍利弗云何四緣如順三戒具足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가지 인연이란, 첫째는 택멸(擇滅)34)하는 힘으로 취하는 인연[擇滅力取緣]이니 섭률의계(攝律儀戒)35)를 말하며, 둘째는 본각의 이익인 청정한 근기의 힘으로 모여 일어나는 인연[本利淨根力所集起緣]이니 섭선법계(攝善法戒)36)를 말하는 것이요, 셋째는 근본 지혜와 대비의 힘에서 연유[本慧大悲力緣]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37)를 말하며, 넷째는 순일한 깨달음에 통달한 지혜의 힘에서 연유[一覺通智力緣]하는 여여함에 따라 머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네 가지 인연이라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네 가지 큰 인연의 힘은 현상의 모습[事相]에는 머물지 않지만 공용(功用)이 없는 것이 아니며, 한 곳[一處:本覺境地)을 떠나서는 찾을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이와 같은 하나의 일은 전체적으로 6행을 받아들였으니, 이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인 일체지혜의 바다이니라.”
014_0064_a_13L佛言緣者一謂作擇滅力取緣攝律儀戒二謂本利淨根力所集起緣攝善法三謂本慧大悲力緣攝衆生戒謂一覺通智力緣順於如住是謂四善男子如是四大緣力不住事相不無功用離於一處則不可求善男如是一事通攝六行是佛菩提薩婆若海
사리불이 여쭈었다.
“‘현상의 모습[事相]에는 머무르지 않지만 공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란 법의 참된 공이며, 영원하고[常], 즐겁고[樂], 불멸의 나요[我], 청정한 것[淨]은 두 가지 나38)를 뛰어넘은 위대한 열반이며, 그 마음에는 얽매임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힘의 관행(觀行)이며, 이러한 관행의 깨달음 가운데 마땅히 37조도품의 법[道品法]을 갖추겠습니다.”
014_0064_a_21L舍利弗言不住事相不無功是法眞空常樂我淨超於二我般涅槃其心不繫是大力觀是觀覺應具三十七道品法
014_0064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37조도품의 법을 갖추었느니라. 왜냐 하면 4념처(念處), 4정근(正勤), 4여의족(如意足), 5근(根), 5력(力), 7각지(覺支), 8정도(正道) 등의 이름은 많으나 그 뜻이 하나이니라. 또한 동일한 것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니 이름과 숫자 때문이며, 다만 이름뿐이요 문자일 뿐이니라. 법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얻을 수 없는 법은 하나의 뜻이요, 문자에는 없나니, 문자(文字)가 없는 모습과 의미는 진실한 공의 바탕이니라. 공한 바탕의 의미는 실답게 여여하며, 여여한 이치는 일체의 법을 갖추었느니라. 선남자여, 여여한 이치에 머무르는 사람은 세 가지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게 되느니라.”
014_0064_b_01L佛言如是三十七道品法何以故四念處四正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正道等多名一義不一不異以名數故但名但字法不可得不得之法一義無文無文相義眞實空性空性之義如實如如如如之理具一切法善男住如理者過三苦海
사리불이 여쭈었다.
“일체의 법이란 모두 다 언어와 문자일 뿐이나 언어와 문자의 모습이 바로 뜻이 되지는 않느니라. 실다운 뜻을 언어로 의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제 여래께서는 어떻게 법을 설하시겠습니까?”
014_0064_b_08L舍利弗言切萬法皆悉言文言文之相卽非爲如實之義不可言議今者如來云何說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법을 설하는 것은 너희 중생들이 말씀을 일으키는 데(상태나 환경)에 있으므로 말할 수 없는 것을 설하는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설하는 것이니라. 내가 설한 것은 의어(義語: 뜻말)이지 문어(文語:글말)가 아니니라. 중생이 설명하는 것은 문어이지 의어(義語)가 아니니라. 의어가 아닌 것은 모두 공허하여 실답지 않은 것이니, 공허하여 실답지 않은 말[空無之言]은 그 뜻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뜻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모두가 속이는 말[妄語]이니라.
014_0064_b_11L佛言我說法者以汝衆生在生說故說不可說是故說之我所說義語非文衆生說者文語非義義語者皆悉空無空無之言無言於不言義者皆是妄語
뜻과 같이 말하자면 실상의 공은 공이 아니며 공허한 실상은 진실한 것이 아니니라. 두 가지 모습을 떠나 중간이라 할지라도 맞지 않나니, 그 알맞지 않은 법은 세 가지 모습[三相]을 떠나 처소를 볼 수 없으므로 여여한 그대로 말하느니라. 여여함에는 없다거나 있다거나 하는 것이 없나니, 없다는 것은 없다는 법에 대해서 있는 것이니라. 여여함에는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것이 없나니, 있다는 것은 있다는 법에 대해서 없는 것이니라. 여여함에는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말씀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여여함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여여함은 여여함을 소유하지 않으므로 여여한 말씀이 없는 것도 아니니라.”
014_0064_b_15L如義語者空不空空實不實離於二相中閒不不中之法離於三相不見處所如如說如無無有無有於無如無有有無於有如有無不在說不在說故不在於如如不有如不無如說
사리불이 여쭈었다.
“일체의 중생들은 일천제(一闡提)를 따르나니 일천제의 마음은 어떠한 지위에 머물러야 여래와 여래의 실상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014_0064_b_20L舍利弗言一切衆生從一闡提闡提之心住何等位得至如來如來實相
014_0064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천제의 마음을 따라 여래와 여래의 실상에 도달하여 다섯 등급의 지위에 머무느니라.
첫째는 믿음의 지위[信位]이다. 이 몸 속의 진여의 종자(種子)는망령된 마음으로 가려져 있으나 망령된 것을 버리면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을 믿는 것이니, 마음이 청정하면 명백하게 모든 경계가 의식과 언어의 분별인 줄을 아느니라.
둘째는 생각하는 지위[思位]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모든 경계는 오직 의식과 언어뿐이며, 의식과 언어의 분별은 마음대로 나타나는 것이요, 보이는 경계는 나의 본래의 식(識)이 아니라고 관하는 것이니라. 이 본래의 식은 법도 아니며 뜻도 아니요, 잡히는 것도 아니며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닌 줄을 아는 것이니라.
014_0064_b_22L佛言從闡提心乃至如來如來實相住五等位一者信位信此身中眞如種子爲妄所翳捨離妄心淨心淸白知諸境界意言分別二者思位思者觀諸境界唯是意言意言分別隨意顯現所見境界非我本識知此本識非法非義非所取非能取
셋째는 닦는 지위[修位]이다. 닦는다는 것은 항상 수행하고자 하는 주체적인 마음[能起]을 일으키되 마음을 일으킴과 닦음이 동시이니라. 먼저 지혜로써 이끌어서 가지가지의 장애와 난관[障難]을 배제하고 속박(번뇌나 업장)에서 벗어나는 것이니라.
넷째는 행함의 지위[行位]이다. 행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의 행함의 경지를 벗어나 마음에 취하고 버리는 것이 없느니라. 지극히 청정하고 근기가 예리하여 움직이지 않는 마음의 여여함은 결정된 보배로운 바탕이며 위대한 열반의 경지이니, 오직 바탕만이 공하고 클 뿐이니라.
014_0064_c_06L三者修位修者常起能起起修同時先以智導排諸障難出離蓋纏四者行位行者離諸行地心無取捨極淨根利不動心如決定實性大般涅槃唯性空大
다섯째는 버리는 지위[捨位]이다. 버린다는 것은 바탕이 공한데도 머물지 않는 것이니라. 바른 지혜는 흘러서 변하지만 대비의 여여한 모습이며, 그 모습은 여여함에도 머무르지 않느니라. 삼먁삼보리(三藐三菩提)39)는 마음을 비워 깨닫지 않는 것이니, 마음에는 변제(邊際:변두리나 끝)가 없어서 처소를 볼 수 없으며, 이것이 여래에 이르는 길이니라.
선남자여, 이 5위(位)는 순일한 깨달음이니라. 본각의 이익에 따라서 들어가나니, 만일 중생을 교화하고자 한다면 그 본처(本處)에 따라야 하느니라.”
014_0064_c_10L五者捨位捨者不住性空正智流易大悲如相相不住如三藐三菩提虛心不心無邊際不見處所是至如來男子五位一覺從本利入若化衆生從其本處
사리불이 여쭈었다.
“어떠한 것을 그 본처에 따르는 것이라 합니까?”
舍利弗言云何從其本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본래 근본이란 없느니라. 정해진 처소가 없는 데에 살면서 변제(邊際)를 비우고 실상에 들어가며, 보리심을 일으켜 성스러운 길[聖道]을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마치 손으로 저 허공을 잡는 것과 같아서 잡은 것도 아니며, 잡지 않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014_0064_c_15L佛言本來無本處於無處空際入實發菩提心而滿成聖道何以故善男如手執彼空不得非不得
사리불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셨듯이 불사에 앞서서 본각의 이익으로써 취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적멸을 생각하는 것이며, 적멸은 여여한 것입니다. 가지가지의 공덕을 다 지니고, 마땅히 일체의 법을 진열하되 원융무애하여 둘이 아니니 헤아려 측량할 수 없습니다. 마땅히 이 법을 알면 바로 이것이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이것은 크게 신비한 주문[大神呪]이며, 이것은 크게 밝은 주문[大明呪]이며, 이것은 위없이 밝은 주문[無上明呪]이며, 이것은 위없이 평등한 주문[無等等呪]입니다.”
014_0064_c_18L舍利弗如尊所說在事之先取以本利念寂滅寂滅是如摠持諸德該羅萬圓融不二不可思議當知是法卽是摩訶般若波羅蜜是大神呪是大明呪是無上呪是無等等呪
014_0065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진여는 공한 바탕이니라. 바탕이 공한 지혜의 불은 가지가지의 번뇌[結]를 태워 없애 버려평등하고 평등하니라. 등각(等覺:평등한 깨달음)의 세 가지 경지[三地]와 묘각(妙覺:묘한 깨달음)의 세 가지 몸[三身]이 9식(識) 가운데서 명백하여 밝고 깨끗하며 가지가지의 그림자가 있을 수 없느니라.
014_0064_c_23L佛言如是眞如空性性空智火燒滅諸平等平等等覺三地妙覺三身九識中皎然明淨無有諸影
선남자여, 이 법은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니, 그것은 지혜 자체의 작용(作用)이기 때문이니라. 움직임도 아니고 고요함도 아니니, 그것은 작용의 바탕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니, 그것은 공한 모습도 공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중생을 교화할 것 같으면 저 중생들이 이 뜻을 관찰[觀]하여 들어가게 해야 하느니라. 이 뜻에 들어가면 이것이 여래를 보는 것이니라.”
014_0065_a_03L善男子是法非因非緣智自用故非動非靜用性空故義非有無空相空故善男若化衆生令彼衆生觀入是義是義者是見如來
사리불이 여쭈었다.
“여래를 뜻으로 관찰하면 가지가지의 흐름에 머무르지 않으며, 마땅히 4선(禪)40)을 여의고 유정천(有頂天)41)을 뛰어넘겠습니다.”
014_0065_a_07L舍利弗言如來義觀不住諸流應離四禪而超有頂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왜냐 하면 일체의 법은 이름과 숫자일 뿐이니 4선도 이와 같으니라. 만일 여래를 볼 것 같으면 여래의 마음은 자유로워서 항상 멸진처(滅盡處)에 있으며, 나오는 것도 아니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그것은 안과 밖이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014_0065_a_08L如是何以故一切法名數四禪亦如是若見如來者如來心自在常在滅盡處不出亦不入內外平等故
선남자여, 저러한 가지가지의 선관(禪觀)은 모두 생각이 공한 선정이거니와 이 여여함은 그것과 다르니라. 왜냐 하면 여여함으로 여여함의 실상을 관찰하되 여여함의 모양을 보고 관찰할 수 없이 가지가지의 모습이 적멸하나니, 적멸이 바로 여여의 뜻이기 때문이니라. 저와 같이 생각이 있는 선정(禪定)은 움직임이지 선(禪)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선의 바탕[禪性]은 가지가지의 움직임을 여읜 것이므로 물들게 하는 것도 아니며 물들어진 것도 아니요, 법도 아니며 그림자도 아니니라. 가지가지의 분별을 떠난 본각의 이익이란 뜻이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이와 같이 관찰하는 선정(禪定)이라야 선(禪)이라 이름하느니라.”
014_0065_a_11L男子如彼諸禪觀皆爲想空定是如非復彼何以故以如觀如實不見觀如相諸相相已寂滅寂滅卽如義彼想禪定是動非是禪何以故禪性離諸動非染非所染非法非影離諸分別本利義故善男子如是觀定名爲禪
사리불이 여쭈었다.
“불가사의합니다. 여래께서는 항상 여여한 실상으로 중생을 교화하시되 이러한 실상의 뜻에는 글이 많고 뜻이 풍부하여 근기가 영리한 중생은 닦을 수 있으려니와 근기가 아둔한 중생은 뜻을 알기가 어려우리니, 어떠한 방편으로 저 아둔한 중생들이 이 진리에 들어오도록 하겠습니까?”
014_0065_a_18L舍利弗言不可思議如來常以如實而化衆生如是實義多文廣利根衆生乃可修之鈍根衆生難以措意云何方便令彼鈍根得入是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아둔한 근기의 중생들이 하나의 사구게(四句偈)를 받아 지니게 하면 참된 진리에 들어가리라. 일체의 불법이 하나의 게송 가운데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니라.”
014_0065_a_22L佛言令彼鈍根受持一四句偈入實諦一切佛法攝在一四偈中
사리불이 여쭈었다.
“어떠한 것이 네 구절로 된 게송입니까? 원하옵건대 말씀하여 주십시오.”
014_0065_a_23L利弗言云何一四句偈願爲說之
014_0065_b_01L이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4_0065_b_01L尊者而說偈言

인연으로 생긴 뜻은,
이 뜻은 적멸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며,
가지가지의 생멸(生滅)을 소멸한 뜻은,
이 뜻은 생함이요, 멸함이 아니니라.
014_0065_b_02L因緣所生義
是義滅非生
滅諸生滅義
是義生非滅

그 때에 대중들은 이 게송 설하시는 것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으며, 모두 생김이 없는 법과 생김이 없어진 지혜와 바탕이 공한 지혜의 바다를 얻었느니라.
014_0065_b_04L爾時大衆聞說是偈僉大歡喜皆得滅生滅生般若性空智海

7. 여래장품(如來藏品)
014_0065_b_06L金剛三昧經如來藏品第七

그 때 범행 장자(梵行長子)가 본제(本際)42)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생긴다는 뜻이므로 소멸하지 않으며, 소멸한다는 뜻이니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여의 뜻이 바로 부처님의 보리입니다. 보리의 바탕이 바로 분별없는 것이며, 분별없는 지혜는 그 끝이 없음을 분별하나니, 다함 없는 모습[無窮之相]은 분별이 소멸한 것일 뿐이라 이러한 뜻의 모습[義相]은 불가사의하고, 불가사의한 가운데는 분별이 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일체 법의 수량은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으나 끝이 없는 법의 모양은 하나의 실다운 뜻의 바탕이며, 오직 하나뿐인 성품에 머무르게 된다는 그 일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014_0065_b_07L爾時梵行長者從本際起而白佛言尊者生義不滅滅義不生如是如義卽佛菩提菩提之性則無分別無分別智分別無窮無窮之相唯分別滅如是義相不可思議不思議中乃無分別尊者一切法數無量無邊無邊法相一實義性唯住一性其事云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자여, 불가사의하니라. 내가 설한 가지가지의 가르침은 어리석은 자를 위하기 때문이며 방편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니라. 일체 가르침의 모습은 하나요, 실다운 뜻의 지혜이니라.
왜냐 하면 마치 한 시장에 네 개의 대문[四大門]을 열어 놓으면, 이 네 개의 대문은 모두 하나의 시장으로 돌아가듯이, 저 중생들이 마음대로 들어가게 되는 가지가지 가르침의 맛 또한 이와 같으니라.”
014_0065_b_14L佛言長者不可思議我說諸法爲迷者故方便導故一切法相一實義智何以故譬如一市開四大門是四門中皆歸一市如彼衆庶隨意所入種法味亦復如是
범행 장자가 여쭈었다.
“가르침이 만일 이러하다면, 제가 한맛[一味]에 머무르면 마땅히 일체의 모든 맛을 포섭하겠습니다.”
014_0065_b_19L梵行長者言法若如是我住一味應攝一切諸味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왜냐 하면 한맛의 진실한 뜻은 하나의 큰 바다와 같아서 일체의 흐름이 들어가지 않음이 없느니라. 장자여, 일체 가르침의 맛은 오히려 저 뭇 흐름과 같아서 이름과 수량은 비록 다르지만 그 물은 다르지 않느니라. 만일 큰 바다에 들어가면 여러 흐름을 통괄하여 한맛에 머무르게 되나니, 곧 가지가지의 맛을 끌어안기 때문이니라.”
014_0065_b_20L佛言如是如是何以故一味實義如一大一切衆流無有不入長者一切法味猶彼衆流名數雖殊其水不異住大海則括衆流住於一味則攝諸
014_0065_c_01L범행 장자가 여쭈었다.
“모든 가르침이 한맛이라면 어찌하여 3승의 길[三乘道]과 그 지혜에 차이가 있다고 합니까?”
014_0065_c_02L梵行長者言諸法一味云何三乘道其智有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자여, 비유하자면 강(江)과 하수(河水)와 회수(淮水)와 바다[海]는 크고 작음이 다르기 때문이며, 깊고 얕음의 차이 때문이며, 이름과 글자의 구별 때문이니라. 물이 강 가운데 있으면 강물이라 부르고, 하수 가운데 있으면 하수라 부르고, 회수 가운데 있으면 회수라 부르지만 물이 함께 바다 가운데 있으면 바닷물이라 부르는 것처럼 가르침 또한 이와 같아서 함께 진여에 있으면 단지 부처의 길[佛道]이라 부를 뿐이니라.
장자여, 유일한 부처의 길[佛道]에 머무르면 세 가지 행[三行]을 통달하느니라.”
014_0065_c_03L佛言長者譬如江大小異故深淺殊故名文別故在江中名爲江水水在淮中名爲淮水在河中名爲河水俱在海中唯名海水法亦如是俱在眞如唯名佛長者住一佛道卽達三行
범행 장자가 여쭈었다.
“어떠한 것을 세 가지 행[三行]이라 합니까?”
014_0065_c_08L梵行長者言云何三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가지 행이란, 첫째는 현상에 따라 취하는 행[隨事取行]이며, 둘째는 식에 따라 취하는 행[隨識取行]이며, 셋째는 진여에 따라 취하는 행[隨如取行]이니라.
장자여, 이와 같은 세 가지 행은 많은 방법들을 모두 다 섭수(攝受)하고 있으며, 일체 가르침의 방법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이 행에 들어오는 자는 공이란 모습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이렇게 들어오면 여래장(如來藏)에 들어왔다고 말할 수 있느니라. 여래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들어가되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014_0065_c_09L佛言隨事取行隨識取行隨如取行長者如是三行摠攝衆門一切法門無不此入是行者不生空相如是入者可謂入如來藏入如來藏者入不入故
범행 장자가 여쭈었다.
“불가사의합니다. 여래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마치 싹이 열매를 맺은 것과 같아서 들어가는 곳이 없습니다. 줄기와 뿌리의 이로운 힘[利力]이 이롭게 그 근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근본 실제(實際)를 얻으면 그 지혜는 얼마나 됩니까?”
014_0065_c_13L梵行長者言不可思議入如來藏如苗成無有入處本根利力利成得本本實際其智幾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지혜는 끝이 없으나, 요약해서 말하자면 그 지혜에는 네 가지가 있느니라.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결정된 지혜[定智]이니 여여함을 따르는 것이며, 둘째는 결정되지 않은 지혜[不定智]이니 방편으로 병(病)을 꺾어 부수는 것이며, 셋째는 열반의 지혜이니 전각(電覺)43)의 실제(實際)를 제거함이며, 넷째는 마지막 지혜[究竟智]이니 실상에 들어가 부처의 길을 갖추는 것이니라.
장자여, 이와 같이 네 가지 중요한 작용[用]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라. 이것은 큰 다리[橋梁]이자 커다란 나루터이므로 만일 중생을 교화하려면 마땅히 이 지혜를 사용해야 하느니라.
014_0065_c_16L佛言其智無窮而言之其智有四何者爲四一者所謂隨如二者不定智所謂方便破病三者涅槃智所謂除電覺際四者究竟智所謂入實具足佛道長者是四大事用過去諸佛所說是大橋是大津濟若化衆生應用是智
014_0066_a_01L장자여, 이 커다란 작용을 사용하는 데는 다시 세 가지 중대한 사업이 있느니라.
첫째는 세 가지 삼매에서는 안과 밖44)이 서로 빼앗지 않으며, 둘째는 대(大)․의(義)․과(科)에서는도리에 따라 간택하여 소멸시키며, 셋째는 진여의 지혜와 선정에서는 위대한 자비(大悲)로써 이익을 함께 하느니라. 이와 같은 세 가지 일은 보리를 성취시키느니라. 이 일을 실행하지 않으면 능히 저 네 가지 지혜의 바다에 흘러 들어갈 수 없으며, 가지가지의 커다란 마군이가 그 유리한 기회를 얻게 되리라.
장자여, 너희들 대중은 성불(成佛)할 때까지 항상 닦고 익히되 잠시도 실수해서는 안 되느니라.”
014_0065_c_22L用是大用復有三大事一者於三三昧內外不相奪二者於大義科隨道擇滅三者於如慧定以悲俱利是三事成就菩提不行是事則不能流入彼四智海爲諸大魔所得其便長者汝等大衆乃至成佛常當修習勿令蹔失
범행 장자가 여쭈었다.
“어떠한 것을 세 가지의 삼매(三昧)라 합니까?”
梵行長者言云何三三昧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가지 삼매란 공삼매(空三昧)․무상삼매(無相三昧)․무작삼매(無作三昧)이니라.”
014_0066_a_06L佛言三三昧者所謂空三昧無相三無作三昧如是三昧
범행 장자가 여쭈었다.
“어떠한 것을 대(大)․의(義)․과(科)라 합니까?”
014_0066_a_08L梵行長者言云何於大義科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는 4대(大)를 말하며, 의는 5음(陰)․18계(界)․6입(入)을 말하며, 과는 근본 식[本識]을 말함이니, 이것을 대․의․과라 하느니라.”
014_0066_a_09L佛言大謂四大義謂陰界入等科謂本識是謂於大義科
범행 장자가 여쭈었다.
“불가사의합니다. 이와 같은 지혜의 공용(功用)은 스스로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여 3계의 경지를 넘어가며, 열반에도 머물지 않고 보살도에 들어갑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의 모습은 생하고 소멸하는 법이니, 분별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분별을 여의면 법은 마땅히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014_0066_a_10L梵行長者言不可思議如是智事利利人過三界地不住涅槃入菩薩如是法相是生滅法以分別故離分別法應不滅
그 때 여래께서는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4_0066_a_14L爾時如來欲宣此義而說偈言

법은 분별을 따라 생기고
다시 분별을 따라 도리어 없어지네.
가지가지 분별하는 법을 없애 버리면
이 법은 나고 없어지는 법이 아니네.
014_0066_a_15L法從分別生
還從分別滅
滅諸分別法
是法非生滅

그 때 범행 장자는 이 게송 설하시는 것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그 뜻을 펴고자 게송으로 말하였다.
014_0066_a_17L爾時梵行長者聞說是偈心大欣懌欲宣其義而說偈言

모든 법은 본래 적멸한 것
적멸은 또한 생김이 없나니
이 모든 나고 없어지는 법
이 법은 생김 없는 것도 아니어라.
014_0066_a_19L諸法本寂滅
寂滅亦無生
是諸生滅法
是法非無生

저것이 바로 이것과 함께하지 않나니
단멸[斷]과 상존[常]을 지니기 때문이네.
이것은 바로 두 가지를 떠났지만
또한 하나의 머묾에도 있지 않네.
014_0066_a_21L彼則不共此
爲有斷常故
此則離於二
亦不在一住

만일 법에 하나가 있다고 한다면
이 모습은 털바퀴45)와 같은 것
마치 아지랑이와 물이 뒤바뀌듯이
모두가 허망하기 때문이라네.
014_0066_a_22L若說法有一
是相如毛輪
如焰水迷倒
爲諸虛妄故
014_0066_b_01L
만일 법이 없다고 본다면
이 법은 마치 허공과 같으리니
장님은 해[日]를 볼 수 없듯이법을 설명해도 거북의 털과 같네.
014_0066_a_23L若見於法無
是法同於空
如盲無目倒
說法如龜毛

제가 이제 부처님 말씀을 듣고
법에는 두 가지 견해가 없음을 알았으며
또한 중간에 의지해 머물지도 않기에
머묾 없음에 따라 뜻을 받아 지니네.
014_0066_b_02L我今聞佛說
知法非二見
亦不依中住
故從無住取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은
머묾 없음을 따르나니
나도 머묾 없는 곳을 따라서
이곳에서 여래를 예배합니다.
014_0066_b_03L如來所說法
悉從於無住
我從無住處
是處禮如來

여래의 모습에 경건히 예배하는 것은
허공처럼 움직이지 않는 지혜이며
처소 없음에도 집착하지 않으니
머묾 없는 몸에 경례합니다.
014_0066_b_04L敬禮如來相
等空不動智
不著無處所
敬禮無住身

저는 어디서나
항상 모든 여래를 뵈옵나니
오직 원하옵건대 모든 여래께서는
저를 위해 영원한 법 말씀하소서.
014_0066_b_06L我於一切處
常見諸如來
唯願諸如來
爲我說常法

그 때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선남자들이여,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너희들을 위하여 영원한 법[常法]을 말하리라.
선남자여, 영원한 법이란 영원한 법이 아니니라. 말도 아니고 글자도 아니며, 진리[諦]도 아니고 해탈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고 경계도 아니니라. 가지가지의 망령됨과 단멸의 경계를 떠난 것이니라. 이 법은 무상한 것이 아니라 일체의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을 떠난 것이니라. 식(識)을 투철하게 보면 항상하는 것이지만 이 식은 항상 적멸하며, 적멸하다는 것 또한 적멸하느니라.
014_0066_b_07L爾時如來而作是言諸善男子汝等諦聽爲汝衆等說於常法善男子法非常法非說亦非字非諦非解脫非無非境界離諸妄斷際是法非無離諸常斷見了見識爲常是識常寂滅寂滅亦寂滅
선남자여, 법의 적멸을 인식하는 자는 마음을 적멸하게 하지 않았으나 마음이 항상 적멸하느니라. 적멸을 얻는 자는 마음이 항상 참된 관찰[觀]에 있느니라.
가지가지의 명색(名色)46)은 오직 이 어리석은 마음[痴心]일 뿐임을 아나니, 어리석은 마음의 분별로 모든 법을 분별하기 때문에 명색에서 벗어나는 어떤 다른 일이 없느니라. 법이 이와 같음을 알고 문자와 말에 따르지 않으며, 마음은 뜻을 핵심으로 삼아 나[我]를 분별하지 않고 나라는 것이 가명인 줄을 알면 바로 적멸을 얻을 것이니, 만일 적멸을 얻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014_0066_b_13L善男子知法寂滅不寂滅心心常寂滅得寂滅者常眞觀知諸名色唯是癡心癡心分分別諸法更無異事出於名色法如是不隨文語心心於義不分別知我假名卽得寂滅若得寂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그 때 장자 범행은 이 말씀을 듣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014_0066_b_19L爾時長者梵行聞說是語而說偈言

이름의 모습[相]과 분별하는 일과
법을 셋이라 부르며
진여와 바르고 묘한 지혜는
그것과 다섯을 형성했네.
014_0066_b_20L名相分別事
及法名爲三
眞如正妙智
及彼成於五

저는 이제 이 법이
단견과 상견에 얽매여
나고 없어지는 길에 들어간 줄 아나니
이것은 단견(斷見)이요 상견이 아니어라.
014_0066_b_22L我今知是法
斷常之所繫
入於生滅道
是斷非是常

여래께서 공한 법을 말씀하시니
단견과 상견에서 멀리 떠나 있도다.
인연은 없는 것이니 생기지 않는 것
생기지 않으므로 없어지지 않는 것이어라.
014_0066_b_23L如來說空法
遠離於斷常
因緣無不生
不生故不滅
014_0066_c_01L
인연에 집착하여 있다[有]고 하는 것은
마치 허공 속에서 꽃을 따려는 것과 같고
석녀(石女)의 아기를 구하려는 것과 같아서
필경에는 얻을 수 없으리라.
014_0066_c_01L因緣執爲有
如採空中華
猶取石女子
畢竟不可得

모든 인연을 떠나서 취하고
또한 다른 것을 따르지 않고 소멸한다.
자신의 5온 12처 18계와 4대에 미쳐서는
진여에 의지하므로 실상을 얻으리.
014_0066_c_03L離諸因緣取
亦不從他滅
及於己義大
依如故得實

이러므로 진여의 법은
항상 자재하여 여여하나니
일체 모든 법은
진여가 아니라 식이 변화한 것일세.
014_0066_c_04L是故眞如法
常自在如如
一切諸萬法
非如識所化
식을 여의면 모든 법은 공한 것
이러므로 공한 곳을 따라서 말하나니
생기고 없어지는 모든 법을 없애고
언제나 열반에 머묾이여.
014_0066_c_05L離識法卽空
故從空處說
滅諸生滅法
而住於涅槃

대비가 빼앗는 바이며
열반은 없어져서 머무르지 않나니
소취(所取)와 능취(能取)를 변화시켜
여래장에 들어가게 하시네.
014_0066_c_07L大悲之所奪
涅槃滅不住
轉所取能取
入於如來藏

그 때에 대중들이 이 뜻에 대한 설명을 듣고 모두 바른 생활을 얻어 여래의 여래장의 바다에 들어갔다.
014_0066_c_08L爾時大衆聞說是義皆得正命入於如來如來藏海

8. 총지품(摠持品)
014_0066_c_10L金剛三昧經摠持品第八

그 때 지장(地藏)보살이 대중 가운데서 일어나 부처님 앞으로 나와 합장하고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대중을 관찰하매 마음에 의심하는 일이 있어서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한 듯합니다. 이제 여래께서는 그 의심을 제거하여 주시고자 하시니, 제가 이제 대중을 위하여 의심에 따라 묻는 바입니다. 원하건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로 불쌍히 여겨 허락하여 주십시오.”
014_0066_c_11L爾時地藏菩薩從衆中起至于佛前合掌䠒跪而白佛言尊者我觀大衆心有疑事猶未得決今者如來欲爲除疑我今爲衆隨疑所問願佛慈悲垂哀聽許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여, 그대는 이와 같이 중생을 제도할 수 있으려니와 이것은 위대한 자비라, 헤아려 생각하기가 어렵느니라. 그대는 마땅히 널리 물어라. 그대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014_0066_c_16L佛言菩薩摩訶薩汝能如是救度衆生是大悲愍不可思議當廣問爲汝宣說
지장보살이 여쭈었다.
“일체의 모든 법이 어찌하여 인연으로 생기지 않는다 하십니까?”
014_0066_c_18L地藏菩薩言一切諸法云何不緣生
그 때 여래께서는 이 뜻을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4_0066_c_19L爾時如來欲宣此而說偈言

만일 법이 인연으로 생기는 바
인연을 떠나 법도 있을 수 없다면
어떻게 법의 고정된 바탕[性]이 없는데
인연으로 법이 생길 수 있겠는가?
014_0066_c_20L若法緣所生
離緣可無法
云何法性無
而緣可生法

그 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
“법이 만일 생김이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설법을 하시되 법이 마음을 따라서 생긴다고 말씀하십니까?”
014_0066_c_22L爾時地藏菩薩言法若無生云何說法法從心生
이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於是尊者而說偈言
014_0067_a_01L
이것이 마음으로 생겨난 법[所生法]이라면
이 법은 능취(能取:주체)와 소취(所取:대상)이니
술취한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는 것 같아
이 법도 그러하여 저것이 아니네.
014_0067_a_01L是心所生法
是法能所取
如醉眼空華
是法然非彼

그 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
“법이 만일 이와 같다면 법은 곧 의지할 상대가 없는 것이니, 의지할 상대가 없는 법은 마땅히 저절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014_0067_a_03L爾時地藏菩薩言法若如是法則無無待之法法應自成
이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4_0067_a_05L於是尊者而說偈言

법은 본래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나다 남이다 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끝나는 것도 아니며
이루어지고 무너짐에도 머물지 않느니라.
014_0067_a_06L法本無有無
自他亦復爾
不始亦不終
成敗則不住

그 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
“일체 모든 법의 모습이 바로 본래의 열반이며, 열반과 공의 모습도 이와 같나니, 이러한 법들이 없으면 이 법은 여여함에 상응하겠습니다.”
014_0067_a_08L爾時地藏菩薩言一切諸法相卽本涅涅槃及空相亦如是無是等法法應如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법이 없어야 이 법이 여여하니라.”
佛言無如是法是法是如
지장보살이 여쭈었다.
“불가사의합니다. 이와 같은 진여의 모습은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아니며, 뜻으로 취득하는 것이나 업으로 취득하는 것이나 모두 공적하나니, 공적한 마음과 법은 함께 취득할 수 없는 것이므로 마땅히 적멸합니다.”
014_0067_a_11L藏菩薩言不可思議如是如相非共不共意取業取卽皆空寂空寂心法俱不可取亦應寂滅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4_0067_a_14L於是尊者而說偈言

일체의 공적(空寂)한 법
이 법은 고요하나 공한 것은 아니다.
저 마음이 공하지 않을 때에
이러한 마음의 얻음은 있지 않으리.
014_0067_a_15L一切空寂法
是法寂不空
彼心不空時
是得心不有

그 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
“이 법은 3제(諦:색․공․심)가 아니니라. 3제인 물질[色]․허공[空]․마음[心]도 없어지는 것이거니와 이 법이 본래 소멸할 때에는 이 법도 마땅히 이러한 소멸에 상응하겠습니다.”
014_0067_a_17L爾時地藏菩薩言是法非三諦色空心亦滅是法本滅時是法應是滅
이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4_0067_a_19L是尊者而說偈言

법은 본래 자성이 없건만
저것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니
이와 같은 차별이 있는 곳에서가 아니라
저 그러함[如是]에 있느니라.
014_0067_a_20L法本無自性
由彼之所生
不於如是處
而有彼如是

그 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
“일체 모든 법은 생김도 없고 소멸함도 없거늘 어찌하여 하나가 아니라 합니까?”
014_0067_a_22L爾時地藏菩薩言一切諸法無生云何不一
이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於是尊者而說偈言
014_0067_b_01L
법은 머무르는 곳이 없으며
모습과 수효는 공하므로 없나니
이름[名]47)과 언설의 두 가지와 법,
이것은 바로 능취와 소취이니라.
014_0067_b_01L法住處無在
相數空故無
名說二與法
是則能所取

그 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
“일체 모든 법의 모습은 두 언덕에도 머물지 않으며, 또한 중간의 흐름에도 머물지 않나니, 심식(心識)도 이러하거늘, 어찌하여 가지가지의 경계가 식(識)을 따라 생긴 것이라 하십니까? 만일 식이 생김[生]을 지닐 수 있다면 이 식 또한 생김을 따르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생김이 없다고 하십니까? 식이 능생(能生)이라면 소생(所生)48)을 지니는 것입니다.”
014_0067_b_03L爾時地藏菩薩言一切諸法相不住於二岸亦不住中流心識亦如是云何諸境界從識之所生若識能有生識亦從生云何無生識能生有所生
이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4_0067_b_07L於是尊者而說偈言

소생과 능생 두 가지는
두 가지인 능연과 소연49)이라.
본래 각각의 자아가 없나니
있음에 사로잡히는 것은 허공의 꽃 같은 환상이니라.
014_0067_b_08L所生能生二
是二能所緣
俱本各自無
取有空華幻

식의 생김이 아직 없을 적에
경계는 이 때에 생긴 것이 아니니라.
경계가 아직 생기지 않았을 적에
이 때는 식도 역시 사라지느니라.
014_0067_b_10L識生於未時
境不是時生
於境生未時
是時識亦滅

그것들은 본래 함께 없는 것
또한 있다거나 없다거나가 아닌 있음이니,
생김이 없으면 식 역시 없는 것,
어찌 경계가 있음을 따른다고 하는가?
014_0067_b_11L彼卽本俱無
亦不有無有
無生識亦無
云何境從有

그 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
“법의 모습은 이와 같아서 안과 밖이 함께 공하여 경계와 지혜 두 가지 무리는 본래 적멸하니라. 여래께서 말씀하신 실상은 진실로 공한 것이니, 이와 같은 법은 바로 집기(集起)50)가 아닙니다.”
014_0067_b_12L爾時地藏菩薩言法相如是內外俱境智二衆本來寂滅如來所說實相眞空如是之法卽非集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실다운 법은 물질도 아니고 머묾도 없으며, 집기되는 것도 아니고 집기시키는 것도 아니며, 의(義)도 아니고 대(大)도 아닌 순일한 본각의 이로운 법이니 깊은 공덕의 무더기이니라.”
014_0067_b_15L佛言如實之法無色無住非所集非能非義非大一本利法深功德聚
지장보살이 여쭈었다.
“불가사의하고 불가사의한 무더기입니다. 7식과 전5식이 생기지 않으면 8식과 6식이 적멸하며, 9식의 모습도 공하여 없을 것입니다. 있음[有]도 공하여 있을 수 없고, 없음[無]도 공하여 있을 수 없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법의 뜻이 모두 공하여 행함이 없는 데에 들어가지만 가지가지의 업을 잃지 않으며 주체와 대상이 없으며, 주동과 피동[能所]의 신견(身見)51)과 안과 밖의 번뇌[結使]가 모두 고요해졌으므로 가지가지의 서원[願] 역시 멈추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치로 관(觀)하는 지혜와 선정과 진여를 세존께서는 항상 말씀하셨으니, 진실로 공한 법[空法]이 바로 훌륭한 약(藥)인 것과 같습니다.”
014_0067_b_17L藏菩薩言不可思議不思議聚七五不生八六寂滅九相空無有空無有無空無有如尊者所說法義皆空空無行不失諸業無我我所能所身內外結使悉皆寂靜故願亦息是理觀慧定眞如尊者常說寔如空卽良藥也
014_0067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왜냐 하면 법의 바탕은공하기 때문이니라. 공의 바탕은 생김이 없기 때문에 마음도 항상 생김이 없으며, 공의 바탕은 소멸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도 항상 소멸함이 없으며, 공의 바탕은 머묾이 없기 때문에 마음도 머묾이 없고, 공의 바탕은 조작함[爲]이 없기 때문에 마음도 역시 조작함이 없느니라. 공은 나가고 들어옴이 없어서 가지가지의 얻고 잃음을 떠나며, 5음․18계․6입 등이 모두 없나니, 마음이 여여하여 집착하지[着] 않는 것 또한 이와 같으니라. 보살이여, 나는 가지가지의 공한 가르침을 설하여 가지가지의 있다는 견해[有]를 부수기 때문이니라.”
014_0067_c_01L佛言如是何以故法性空故空性無生心常無生空性無滅心常無滅空性無住心亦無住空性無爲心亦無爲空無出入離諸得失界陰入等皆悉亦無心如不著亦復如是菩薩我說空法破諸有故
지장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있다는 것이 실답지 않기를 알되 아지랑이가 물이 아닌 것과 같이 알고, 실상이 없지 않다는 것을 알되 불의 바탕이 생기지 않는 것같이 알아야 하나니, 이와 같이 관찰[觀]하면 이 사람은 슬기롭다 하겠습니다.”
014_0067_c_06L地藏菩薩言尊者知有非實如陽焰水實非無如火性生如是觀者是人智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왜냐 하면 이 사람은 참다운 관(觀)으로 하나의 적멸을 관찰하되 모습과 모습 아닌 것을 평등하게 공으로 인정하여 공을 닦으므로 부처를 보는 데 실패하지 않으며, 부처를 보기 때문에 세 가지 흐름[三流]에 따르지 않느니라.
대승 가운데서 3해탈도(解脫道)는 하나의 몸이요 자성이 없느니라. 자성이 없기 때문에 공(空)이며, 공하기 때문에 모습이 없고, 모습이 없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 없으며, 만드는 것이 없기 때문에 희구하는 것이 없으며, 희구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서원[願]이 없나니, 바람[願]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로써 행업(行業)을 알기 때문에 반드시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하며,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부처를 보게 되며, 부처를 보기 때문에 미래에는 정토(淨土)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보살은 이 깊고 깊은 법에서 세 가지의 교화[三化]로써 부지런히 닦아 지혜와 선정이 원만하게 이루어졌으므로 3계를 뛰어넘느니라.”
014_0067_c_09L佛言如是何以故是人眞觀觀一寂滅相與不相等以空取空以修空不失見佛以見佛故不順三流於大乘中三解脫道一體無性以其無性故空空故無相無相故無作無作故無求無求故無願無願故以是知故須淨心以心淨故便得見佛見佛故當生淨土菩薩於是深法三化勤修慧定圓成卽超三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생김도 없고 소멸함도 없다는 것은 바로 무상52)하다는 것입니다. 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生滅法]을 없애되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 완전히 소멸하여 버리면 적멸로 항상함을 삼는 것이니라. 항상하기 때문에 단멸하지 않거니와 이 단멸하지 않는 법은 3계의 가지가지,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법[動不動法]을 떠나는 것이니라. 유위법(有爲法)에서 마치 불구덩이를 피하는 것과 같은데, 어떠한 법에 의지해서 스스로 책망하고 꾸짖어야 저 유일한 문에 들어가겠습니까?”
014_0067_c_17L地藏菩薩言如來所說無生無滅卽是無常滅是生滅生滅滅已寂滅爲常常故不斷是不斷法離諸三界動不動法於有爲法如避火坑依何等法而自呵責入彼一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여, 저 세 가지 중대한 일에서 그 마음을 꾸짖고 책망하며, 세 가지 큰 진리에서 그 행에 들어가게 되느니라.”
014_0067_c_22L佛言菩薩於三大事呵責其心於三大諦而入其行
014_0068_a_01L지장보살이 여쭈었다.
“어떠한 것을 세 가지 일에서 그 마음을 꾸짖는 것이라 하고, 어떠한 것을 세 가지 진리에서유일한 행에 들어간다 합니까?”
014_0067_c_23L地藏菩薩言云何三事而責其心云何三諦而入一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가지 중대한 일이란, 첫째는 인(因)이요, 둘째는 과(果)요, 셋째는 식(識)이니라. 이와 같은 세 가지 일은 본래부터 공하여 나 아닌 것과 참다운 나[眞我]가 없거늘, 어찌 이것에 애착하고 물드는 마음을 낼 것인가? 이 세 가지 일에 얽매여 고해(苦海)에 표류하는 것이라 관찰하고, 이러한 일로 항상 스스로 꾸짖고 책망해야 하는 것이니라.
014_0068_a_02L佛言三大事者一謂因二謂果三謂識如是三事從本空無非我眞我云何於是而生愛染觀是三事爲繫所縛飄流苦海以如是事常自呵責
세 가지 중대한 진리란, 첫째는 보리의 도이니, 이것은 평등한 진리이며, 불평등한 진리가 아니니라. 둘째는 크게 깨달아 바른 지혜로 얻는 진리이니, 삿된 지혜로 얻는 진리가 아니니라. 셋째는 지혜와 선정이 다름이 없는 행으로 들어가는 진리이니, 잡스러운 행으로 들어가는 진리가 아니니라. 이 세 가지 진리로써 부처의 길을 닦으면, 이 사람은 이 법에서 바른 깨달음[正覺]을 얻지 못할 리가 없으리라.
바른 깨달음의 지혜를 얻으면 위대하고 지극한 자비를 펼쳐서 자신과 남을 함께 이롭게 하며, 부처의 깨달음[佛菩提]을 성취하느니라.”
014_0068_a_06L三大諦者謂菩提之道是平等諦非不平等諦謂大覺正智得諦非邪智得諦謂慧定無異行入諦非雜行入諦以是三諦而修佛道是人於是法無不得正覺得正覺智流大極慈己他俱利成佛菩提
지장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법은 인연이 없습니다. 만일 인연[緣]이 없는 법일 것 같으면 인(因)이 곧 일어나지 않을 것인데, 어떻게 움직이지 않는 법으로 여래에 들어가겠습니까?”
014_0068_a_11L地藏菩薩言尊者如是之法則無因若無緣法因則不起云何不動法入如來
그 때 여래께서는 이 뜻을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4_0068_a_14L爾時如來欲宣此義而說偈言

일체 모든 법의 모습은
바탕이 공하나 움직이지 않음이 없나니
이 법은 이 때에 있지만
이 때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니라.
014_0068_a_15L一切諸法相
性空無不動
是法於是時
不於是時起

법에는 때(과거, 미래)를 달리함이 없으나
때를 달리해서 일어남도 아니며
법은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이 없나니
바탕이 공하므로 적멸하니라.
014_0068_a_17L法無有異時
不於異時起
法無動不動
性空故寂滅

바탕이 공하고 적멸할 때에
이 법은 이 때에 나타나나니
모습을 여읜 까닭에 고요히 머물고
고요히 머물기에 연유하지 아니하네.
014_0068_a_18L性空寂滅時
是法是時現
離相故寂住
寂住故不緣

이 가지가지의 인연으로 일어나는 법,
이 법의 인연은 생김이 아니니
인연은 생하고 없어짐이 없으므로
생하고 없어짐의 바탕은 공적하도다.
014_0068_a_19L是諸緣起法
是法緣不生
因緣生滅無
生滅性空寂

인연의 바탕은 능연과 소연이니
이 인연은 본래 인연으로 생기느니라.
그러므로 법의 일어남은 인연이 아니며
인연이 일어나지 않음 또한 그러하니라.
014_0068_a_21L緣性能所緣
是緣本緣起
故法起非緣
緣無起亦爾

인연으로 생긴 법
이 법이 인연이니
인연의 생기고 없어지는 모습
저것은 바로 생기고 없어짐이 없는 것.
014_0068_a_22L因緣所生法
是法是因緣
因緣生滅相
彼則無生滅
014_0068_b_01L
저 진여의 참다운 실상은
본래 나고 사라짐이 아니건만
가지가지의 법은 이 때(현재)에 있으면서
스스로 생기고 사라짐을 만드는구나.
014_0068_a_23L彼如眞實相
本不於出沒
諸法於是時
自生於出沒

이러므로 지극히 청정한 근본은
본래 여러 힘 때문이 아니니
마지막 얻은 곳[後得處:究竟覺]에 나아가
본래의 얻음[本得:本覺]에서 그것을 얻는 것일세.
014_0068_b_02L是故極淨本
本不因衆力
卽於後得處
得彼於本得

그 때 지장보살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마음자리가 상쾌해졌고, 이 때에 대중들도 의심하는 자가 없었다. 그는 대중들의 마음을 알고 나서 게송으로 여쭈었다.
014_0068_b_03L爾時地藏菩薩聞佛所說心地快然——時諸衆等無有疑者——知衆心已而說偈言

저는 대중들의 마음속의 의심을 알았기에
은근하고 확고하게 물었더니
여래께서는 크신 사랑으로
잘 분별하여 남김이 없었네.
014_0068_b_06L我知衆心疑
所以殷固問
如來大慈善
分別無有餘

이 모든 2부 대중들은
모두 분명하게 깨달았으니
저는 이제 깨달은 곳에서
가지가지 중생을 두루 교화하되
014_0068_b_08L是諸二衆等
皆悉得明了
我今於了處
普化諸衆生

부처님의 크신 사랑처럼
본래의 서원을 버리지 않으리.
그러므로 저 외아들이 사는 땅[一子地]53)에서
번뇌에 머무르렵니다.
014_0068_b_09L如來之大悲
不捨於本願
故於一子地
而住於煩惱

그 때 여래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살은 불가사의하구나. 항상 큰 사랑[大悲]으로 중생의 괴로움을 뽑아 주는구나.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의 가르침[經法]을 받아 지니거나 이 보살의 이름을 지니면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고, 일체의 장애와 난관[障難]이 사라지리라. 만일 어떤 중생이 다른 잡념 없이 일심으로 이 경전을 염송하고, 법대로 닦아 익히면 그 때 보살은 항상 화신을 나투어 그를 위해 설법하고 이 사람을 옹호하여 끝끝내 잠시도 버리지 않으며, 이 사람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게 하리라.너희들 보살이여, 만일 중생을 교화하려거든 모두 이러한 대승의 결정된 깨달음의 뜻[了義]을 익히도록 할지니라.”
014_0068_b_10L爾時如來而告衆言是菩薩者不可思議恒以大慈拔衆生苦若有衆生持是經法持是菩薩名者卽不墮於惡趣一切障難皆悉除滅若有衆生無餘雜念專念是經如法修習爾時菩薩常作化身而爲說法擁護是人終不蹔捨令是人等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汝等菩薩若化衆皆令修習如是大乘決定了義
그 때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서 여쭈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대승의 복덩어리는 결정코 번뇌를 끊나니, 생김이 없는 깨달음의 이익은 불가사의합니다. 이와 같은 법은 어떠한 경전이라 부르며, 이 경전을 받아 지니면 얼마만한 복을 얻겠습니까?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써 저희들을 위해 말씀하여 주십시오.”
014_0068_b_19L爾時阿難從座而起前白佛言如來所說大乘福聚決定斷結無生覺利不可思議如是之法名爲何經受持是經得幾所福願佛慈悲爲我宣說
014_0068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경전의 이름은 불가사의하느니라.과거에 모든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생각하신 것이라 여래의 일체지(一切智)의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을 지니면 일체의 경전 속에서 바라거나 찾을 것이 없느니라. 이 경전의 법은 많은 법을 모두 지니고 있으며, 경전의 핵심요지를 포용하고 있느니라. 이 가지가지의 경전의 가르침[經法]은 법의 핵심을 묶은 것이니라.
이 경전의 이름은 󰡔섭대승경(攝大乘經)󰡕이라 부르며, 또한 󰡔금강삼매(金剛三昧)󰡕라 부르며, 역시 󰡔무량의종(無量義宗)󰡕이라 부르느니라.
만일 어떠한 사람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면 수십만의 가지가지의 부처님을 받아들여 모시는 것이라 부르느니라. 이러한 공덕은 비유하자면 허공처럼 끝이 없어서 헤아릴 수 없느니라. 내가 부촉할 것은 오직 이 경전뿐이니라.”
014_0068_b_23L佛言善男子是經名者不可思議去諸佛之所護念能入如來一切智若有衆生持是經者則於一切經中無所悕求是經典法摠持衆法諸經要是諸經法法之繫宗是經名名『攝大乘經』又名『金剛三昧』又名『無量義宗』若有人受持是經典者名受持百千諸佛如是功德譬如虛空無有邊際不可思議我所囑累唯是經典
아난이 여쭈었다.
“어떠한 마음으로 행하며, 어떠한 사람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겠습니까?”
014_0068_c_10L阿難言云何心行云何人者受持是經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경전을 받아 지니는 사람은 마음에 얻고 잃음이 없으며, 항상 범행(梵行)을 닦느니라. 희론(戱論)을 하더라도 항상 청정한 마음을 즐기고, 마을에 들어가더라도 마음은 항상 선정(禪定)에 있으며, 혹은 세속에 살더라도 3유(有)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이 사람은 현세에 다섯 종류의 복(福)이 있으니, 첫째는 대중들의 존경을 받으며, 둘째는 몸으로는 횡액과 요절하는 일이 없으며, 셋째는 삿된 이론을 잘 변별하여 대답하고, 넷째는 기꺼이 중생을 제도하며, 다섯째는 능히 성스러운 길[聖道]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 이러한 사람은 이 경전을 받아 지니느니라.”
014_0068_c_11L佛言善男子受持是經者是人心無得失常修梵行若於戲論常樂靜心入於聚落心常在定若處居家不著三有是人現世有五種福一者衆所尊敬二者身不橫夭三者辯答邪論四者樂度衆生五者能入聖道如是人者受持是經
아난이 여쭈었다.
“저러한 사람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공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014_0068_c_17L阿難言彼人者度諸衆生得受供養不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사람은 중생을 위하여 위대한 복전[大福田]이 될 수 있으며, 항상 위대한 지혜를 실행하되 방편과 진실을 함께 시연(試演)하리니, 이것은 4의승(依僧)이니라. 가지가지의 공양 내지 머리, 눈, 골수까지도 역시 다 받을 수 있거니와 하물며 옷과 음식[衣食]을 받지 못하겠는가?
선남자여, 이러한 사람은 너의 선지식이요, 너의 다리[橋梁]가 되거니와 하물며 범부로서 공양하지 않겠는가?”
014_0068_c_18L佛言如是人者能爲衆生作大福田常行大智權實俱演是四依僧於諸供養乃至頭目髓腦亦皆得受何況衣食而不得受善男子如是人者是汝知是汝橋梁何況凡夫而不供養
014_0069_a_01L아난이 여쭈었다.
“저 사람에게서 이 경전을 받아 지니게 되어 이 사람을 공양하면얼마만한 복(福)을 얻겠습니까?”
014_0068_c_23L難言於彼人所受持是經供養是人得幾所福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떠한 사람이 성 안에 가득한 금과 은을 가지고 보시하더라도 이 사람에게서 이 경전의 4구게(句偈)를 받아 지니는 것만 못하리니, 이 사람을 공양하는 것은 불가사의하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이 경전을 지니게 하면서 마음이 항상 선정(禪定)에 있어서 본심(本心)을 잃지 않아야 하느니라. 만일 본심을 잃으면 마땅히 바로 참회하라. 참회의 법은 맑고 시원하니라.”
014_0069_a_02L佛言若復有人持以滿城金銀而以布施不如於是人所受持是經一四句偈供養是人不可思議善男子令諸衆生持是經者心常在不失本心若失本心當卽懺悔悔之法是爲淸涼
아난이 여쭈었다.
“앞서의 죄를 참회하면 과거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까?”
014_0069_a_07L阿難言懺悔先罪不入於過去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마치 어두운 방과 같아서 밝은 등을 만나면 어둠은 바로 없어지느니라. 선남자여, 앞서 지은 모든 죄를 참회한다고 말함이 없으면 그것을 과거로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014_0069_a_08L佛言如是猶如暗室若遇明燈暗卽滅矣善男子無說悔先所有諸罪以爲說入於過去
아난이 여쭈었다.
“어떻게 하는 것을 참회라 합니까?”
014_0069_a_11L阿難言云何名爲懺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경전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진실관(眞實觀)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한 번 관(觀)에 들어갈 때마다 모든 죄가 없어지느니라. 모든 악취(惡趣)를 떠나 장차 정토(淨土)에 태어나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것이니라.”
014_0069_a_12L佛言依此經敎入眞實觀一入觀時諸罪悉滅離諸惡趣當生淨土速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처님께서 이 경전에 대한 설법을 마치시니, 그 때 아난과 모든 보살과 4부 대중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여 결정(決定)을 얻고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기쁘게 받들어 행하였다.
014_0069_a_14L佛說是經已爾時阿難及諸菩薩四部大衆皆大歡喜心得決定頂禮佛足歡喜奉行
金剛三昧經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일제의(一諦義)에 대해서는 번역이 다양하다. 이기영은 “한 가지 깨달음의 뜻”이라 번역했고, 백용성은 “한결같은 뜻”이라 번역했다. 역자는 “유일한 도리”라 번역했다. 원효 스님은 이것을 일심(一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승, 일불승, 일승도(一乘道)와 유관하며, 해탈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란 의미가 함유되어 있다. 따라서 유일한 도리라 번역했다.
  2. 2)의미처(義味處)를 번역한 말. 여기서 처는 장점[長處], 단점[短處], 12처(處)에서 볼 수 있듯이 의미를 한정하는 범주의 개념으로 어미 뒤에 붙어 명사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보고 단순하게 의미로 번역하였다.
  3. 3)말겁(末劫)은 혼탁한 세상, 진정한 가르침이 사라진 세상을 말한다.
  4. 4)질서와 정의가 파괴된 혼란한 세상을 지칭하는 말. 다섯 가지의 혼탁함, 즉 겁탁․견탁․번뇌탁․중생탁․명탁을 지칭한다.
  5. 5)심(心)은 심소(心所) 혹은 심수(心數)의 약어로 보고 대상으로 해석했으며, 아(我)는 이에 상대적 개념인 주체로 해석하였다.
  6. 6)‘약유아자 약유심자(若有我者 若有心者)’는 주체나 대상에 사로잡혀 있는 자로 번역했다. 아집과 법집에 떨어진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구절로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7. 7)분별식이 흘러가는 상태를 역동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의식의 흐름으로 번역했다.
  8. 8)고려대장경에는 멸성(滅性)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신수대장경에는 생성(生性)으로 주를 달아 놓고 있다. 논리적으로 생성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므로 생성으로 번역했다.
  9. 9)신수대장경의 부기에 따라 생성을 멸성으로 번역했다. 논리적으로는 신수대장경의 부기에 따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10. 10)법진(法眞)을 신수대장경에서는 법진원(法眞源)으로 부기하고 있다. 내용상으로는 법의 근원, 대상의 본바탕이란 의미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법의 참다운 근원으로 해석했다.
  11. 11)신수대장경에는 지(志)를 지(至)로 부기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상 지(志)로 번역하는 데 무리가 없으므로 의지로 번역했다.
  12. 12)명수(名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보살의 이름과 분별이며, 둘째는 법의 모습이다. 여기서는 첫 번째 의미를 취하여 번역했다.
  13. 13)가유(可有)를 신수대장경의 판본의 부기에 따라 소유(所有)로 번역하였다.
  14. 14)고(苦)․락(樂)․사(捨)를 말한다.
  15. 15)복행(福行)․죄행(罪行)․부동업(不動業:無動行)을 말한다.
  16. 16)이 부분은 8식으로 번역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내용의 흐름에 따르면 신수대장경의 부기에 따르는 것이 무리가 없으므로 일체의 식으로 번역한다.
  17. 17)8식과 5음.
  18. 18)‘전사구색(專事求索)’을 번역한 말. ‘전사’는 ‘오로지 ……으로 일을 삼는다’는 의미이며, ‘구색’은 찾는다, 요구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여기서는 구걸한다는 의미이다.
  19. 19)일념(一念)은 지극히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20. 20)50악이란 5음으로 짓는 악을 말한다. 즉 5음이 신업 세 가지, 구업 네 가지, 의업 세 가지 등 열 가지 악업이 5온에 가탁하여 악업을 짓는 것이다.
  21. 21)이 부분은 고려대장경본의 내용이 원활하게 통하지 않으므로 신수대장경의 부기에 따라 시기와 이익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번역했다. 고려대장경에는 이 부분이 “시설리부단(時說利不但)”으로 되어 있어서 의미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시리불구(時利不俱)”로 번역하였다.
  22. 22)정(情)과 지(智)를 번역한 문장이다. 정이란 크고 작은 욕정[大小情欲]의 차이를 말하며, 지란 공(空)에 대한 지견(知見)의 차별을 의미한다.
  23. 23)대정신수장경에는 신공(神孔)으로 부기되어 있으며, 원효 스님의 󰡔금강삼매경론󰡕에서도 신공으로 해석하고 있다.
  24. 24)여기서의 성인은 2승의 성인을 말한다.
  25. 25)세 가지의 생존, 세 가지의 법, 세 가지의 생존 영역, 삼계에서 각각 존재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26. 26)명칭과 형태. 임시로 이름 붙여진 것. 표면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이다.
  27. 27)자연적으로 정해져 있는 법 그대로의 모습. 본래 있는 그대로라는 뜻이다.
  28. 28)여섯 가지를 실천하는 보살을 지칭한다. 보살을 대사(大士)라 번역한다.
  29. 29)포살이나 자자를 시행할 때 장로가 대중들 앞에서 읽게 되는 계본(戒本). 여기에 적힌 계율 조항을 위반했을 경우는 고백하고 대중들의 용서를 구하고 참회한다.
  30. 30)구제불능의 중생을 이챤티카라고 하는데 한문으로 음역하여 일천제라 말한다.
  31. 31)불퇴전의 경지를 말한다. 다시는 퇴보하지 않는 수행의 경지이다.
  32. 32)어진 사람[仁者]이라 번역했지만 기실은 깨달은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처님을 지칭할 때 인자라 표기하기도 한다.
  33. 33)신수대장경에는 3유(有)로 부기되어 있다. 3유는 3계에 생존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고려장경본에 따라 3계로 번역하였다.
  34. 34)분별력에 의지하는 방편 지혜를 말한다.
  35. 35)부처님께서 정한 규칙을 지켜서 악을 방지하는 것을 말한다.
  36. 36)선을 증장시키는 계율을 지칭한다.
  37. 37)중생을 교화하고 중생의 이익을 위해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38. 38)인아(人我)와 법아(法我)를 말한다. 여기서 아는 궁극적인 실재를 지칭하는 것이며, 인간들의 경험적 자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주체와 객체 어디에도 영원불멸의 궁극적 실재는 법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것이 바로 두 가지 아를 초월하는 것이다.
  39. 39)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라는 뜻이다.
  40. 40)신역에서는 4정려를 말한다.
  41. 41)비상비비상천을 말한다.
  42. 42)첫째, 진리의 근거, 만물의 근본을 말한다. 둘째, 이전의 상태나 과거를 말한다. 셋째, 근본적인 구극의 진실, 진여를 말한다.
  43. 43)5식이 전광석화와 같이 일어나는 것이다.
  44. 44)안은 식(識)을 의미하고, 바깥은 경계나 대상을 지시한다.
  45. 45)허공에 아른거리는 실체가 없는 공화(空華)와 같은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46. 46)5온을 말한다. 명은 수․상․행․식을, 색은 물질을 말한다.
  47. 47)여기서 이름이라 번역했지만 명색이란 이름으로 구분할 때의 명(名)이다. 즉 5온 중에서 심리적 영역인 수․상․행․식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48. 48)능생은 만물을 만들어 내는 창조적 역할을 담당하는 무엇, 내지는 어떤 힘을 말한다. 소생은 능생자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을 말한다. 따라서 능생과 소생의 관계는 주체와 대상,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49. 49)마음과 개별적인 마음의 작용이 대상을 향해 작용하고, 그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을 연(緣)한다고 말한다. 심식은 스스로 연유(緣由)하는 것이기에 능연이라 말하고, 대상은 심식에 의해 연유하기 때문에 소연이라 말한다.
  50. 50)집(集)은 재생을 초래하고, 탐욕을 수반하며, 이곳저곳에 탐착하는 애착의 쌓임을 의미한다.
  51. 51)다섯 가지 견해 중의 하나. 5온이 화합한 신체를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또한 아(我)에 따르는 기구와 권속을 나의 소유로 잘못 생각하는 견해.
  52. 52)영원한 것이 없이 늘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53. 53)초지 이상에서 이미 일체의 중생이 평등함을 깨달았으므로 그 중생들을 보기를 외아들 보듯이 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음의 경지를 표현하여 외아들이 사는 땅이라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