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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690_a_01L아암유집兒菴遺集아암유집 서문우리 선사先師인 공자의 가르침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3백 편을 한마디 말로 하면, ‘생각에는 간사함이 없다(思無邪)’ 하리라.”라고 하였다. 저 ‘간사하다’ 함은 ‘올바르다(正)’라는 말의 반대말이니, 옛날 유생儒生들은 15개 나라의 풍속을 논함에, “선善으로써 선심善心을 느껴 분발하게 하고, 악으로써 악함을 징계하기도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대부분 모두가 꼭 바른 데에서만 나온 것이 아님에도 어찌하여 공자는 가르침에 이르기를, “간사함이 없다.”라고 하였는가?대개 ‘간사함이 없다’라는 말은, 한결같아서 잡됨이 없는 것을 말한다. 한결같아서 잡됨이 없으면 도道에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공자는 간사함이 없다는 말로 가르치신 것이다.혹은 말하기를, “한결같이 악하기만 해서 하나의 선함도 없이 잡스럽기만 하다면, 그 또한 도에 나아갈 수 있겠는가?” 하고 묻기에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다. 악하면 잡스러워서 한결같아질 수가 없다. 천하에 악이 없으면 한결같아질 수가 있어서 잡스러움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육경六經1)에서 예禮를 가르침에, “음陰으로는 악樂을 만들고, 양陽으로는 시詩를 펴는 것이 악樂의 한결같은 도이다.”라고 하였다. 마을(閭巷)의 남녀들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읊는 것이 도학道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모두 도학으로 나아가게 할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이르기를, “시로써 가르친다.”라고 한 것이다. 진실로 『서경書經』·『주역周易』·『예기禮記』·『춘추春秋』의 한결같은 관례로 법칙을 삼는다면 그것은 시와 악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뜻은 시에 깊은 사람이 아니면 분별해낼 능력이 없다. 그런 까닭에 공자가 시를 다듬고 정리할 때에 투과投瓜2)와 증작贈芍3)의 시에 이르기까지 함께 나열하여 수록한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이다.아암兒菴 상인上人4)은 머리를 깎고 계를 받은 뒤로부터 경전을 널리 섭렵하고 아울러 선과 교를 다 통달하였으며, 우뚝하게 치문緇門의 종장宗匠이 되었다. 그는 시를 짓는 데 있어서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으나, 지나간 것은 생각을 두지 않았으므로 방금 지은 시조차 금방 잃어버려서 떨어진 비단과 조각난 명주처럼 세간에 흩어지게 되었다. 그가 시적示寂한 이후에 그의 문도들이 찾아 모은 것이 몇 수에 지나지 않지만, 소사小詞·사륙문四六文·사기私記·편지(尺牘)를 함께 묶어 1권의 책으로 만들었다.스님의 시를 살펴보면 곧 시인으로서의 시의 격식을 갖추고 있어 -
010_0690_a_01L[兒菴遺集]
010_0690_a_02L1)兒菴遺集序
010_0690_a_03L
010_0690_a_04L五先師孔子之訓曰。詩三百。一言以蔽
010_0690_a_05L之。曰思無邪。夫邪正之反也。前儒論
010_0690_a_06L十五國風。有可以感發者。可以徵創者。
010_0690_a_07L槩未必皆出于正。何孔子之訓曰無邪
010_0690_a_08L也。蓋無邪者。一而無雜之謂也。一而
010_0690_a_09L無雜。則進乎道。故孔子以無邪訓之也。
010_0690_a_10L或曰一於惡。而無一善之雜。亦可以進
010_0690_a_11L乎道歟。曰不然。惡則雜而不能一也。
010_0690_a_12L天下無惡。而能一而無雜也。六經之敎
010_0690_a_13L禮。以陰制樂。以陽發詩。樂之一道也。
010_0690_a_14L閭巷男女。衝口而發。無關於道學。而
010_0690_a_15L皆可以造乎道學。故曰詩之敎也。苟以
010_0690_a_16L書易禮春秋。一例律之。非所謂詩與
010_0690_a_17L樂也。斯義非深於詩者。不能辨。故孔
010_0690_a_18L子删詩。至於投瓜贈芍之什。并列之者
010_0690_a_19L以此也。兒菴上人。自落髮受戒。博涉
010_0690_a_20L經典。幷通禪敎。卓然爲緇門宗匠。其
010_0690_a_21L爲詩。自名一家。過即不置念慮。隨作
010_0690_a_22L隨失。而零紈片素。散在人間。及示寂
010_0690_a_23L之後。其徒搜集。不過幾首。幷其小詞
010_0690_a_24L四六私記尺牘一卷。觀其詩。乃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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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690_b_01L절대로 스님(衲子)들의 어투와 같지 않다. 소사·사륙문·『주역』·『노논어魯語論』5)에 대한 글은 몽둥이를 휘두르고(棒) 고함을 지르는(喝) 선가禪家의 가풍과는 조금도 가깝지 않으니, 이런 까닭으로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아! 슬프다. 바로 이런 점이 아암이 된 이유이고, 이런 점이 바로 좋은 시문이 된 이유이다. 당대의 명사 정다산丁茶山(정약용)이나 김담연金覃硏과 같은 큰 학자들이 서로 오가면서 주고받은 편지에서 칭송해 마지않았던 것이 어찌 공연한 일이겠는가? 내전內典(불경)의 여러 경전들과 게송의 어구는 대부분 4언·5언·7언으로 글을 지었으나 그것들은 시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시에 가깝지 않다.탕혜휴湯惠休6)가 시를 잘 지었는데 강문통江文通7)의 옛것을 본받고 휴休 상인의 체로 시를 지었으니, 그 시의 결구에 이르기를, “날이 저무니 푸른 구름 모여드는데 임만 홀로 돌아오지 않는구나.”라고 하였다. 이에 식견 있는 사람들이 그 신비에 가까움을 칭송하였다. 이를 보면 그에게 시도詩道가 있음을 알 만하다.이제 그의 뒤를 이은 법손들이 그가 남긴 시고詩稿를 간행하려고 하여 서문을 받으려고 천 리 길을 달려와 나에게 한마디를 구하기에 내가 기꺼이 글을 지어 아암 스님을 찬탄하고, 한편으로 우리 유생들이 시답잖은 학문을 좋아하여 억지로 운어韻語를 삼는 것을 풍자하노라.대정大正 8년(1919) 월 일에 하정 거사荷亭居士 여규형呂圭亨이 서문을 쓰다. -
010_0690_b_01L之詩。絕不類衲子口氣。且其小詞四六
010_0690_b_02L與周易魯語論。無一近於棒喝家風。或
010_0690_b_03L以是疑之。嗚呼。此其所以爲兒菴也。
010_0690_b_04L此其所以爲眞詩文也。一時名流。如丁
010_0690_b_05L茶山金覃硏諸公。相往答。稱詡而不已
010_0690_b_06L者。豈徒然哉。內典諸書與偈語。多以
010_0690_b_07L四五七言綴文。而非詩故。無一近於詩
010_0690_b_08L者焉。湯惠休善爲詩。江文通效古。作
010_0690_b_09L休上人軆。結句曰。日暮碧雲合。佳人
010_0690_b_10L殊未來。識者稱其神似。觀此可以知詩
010_0690_b_11L道之有在也。今其後法孫。將刊其遺稿。
010_0690_b_12L以書來千里外。求余一言。余樂爲之書。
010_0690_b_13L旣以贊兒菴。且以風吾黨之慕贋學。而
010_0690_b_14L强爲韻語者。
010_0690_b_15L大正八年月日。荷亭居士呂圭亨序。
010_0690_b_16L{底}新文舘刊行油印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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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육경六經 : 『易經』·『書經』·『詩經』·『春秋』·『禮記』·『樂記』 등 유가의 경서이다.
- 2)투과投瓜 : 『시경』 「衛風」 〈木瓜〉라는 시에 “나에게 모과를 보내 주시기에 아름다운 패옥으로 보답하옵니다. 답례로 그런 것이 아니라, 영원히 좋은 짝이라 생각해서라오.(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 匪報也。 永以爲好也。)”라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 3)증작贈芍 : 작약芍藥을 선물로 바친다는 뜻으로 남녀의 사랑을 표시한다. 『시경』 「鄭風」 〈溱洧〉라는 시의 내용을 이르는 말이다.
- 4)상인上人 : 승려를 높이어 일컫는 말이다.
- 5)『노논어魯語論』 : 『논어』에는 『古論語』·『齊論語』·『魯語論』 이 세 종류가 있는데, 현재 통용되고 있는 것은 『노논어』로서 20편으로 이루어졌다. 나머지 둘은 망실되었다.
- 6)탕혜휴湯惠休 : 남조南朝 송나라 스님으로 속성이 탕湯이다. 시문에 능통하여 후세에 시를 잘하는 사람을 늘 혜휴에 비유하곤 하였다.
- 7)강문통江文通 : 강엄江淹. 남조 시대 고성考城 사람으로 자字가 문통文通이다. 젊었을 때부터 문장에 명성이 드러나 세상 사람들이 강랑江郞이라고 칭했다. 벼슬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이르렀고, 예릉후醴陵侯에 봉해졌다.
- 1){底}新文舘刊行油印本。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김두재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