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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83_a_01L용암당유고龍巖堂遺稿용암 체조龍巖體照용암집 서문龍巖集序스님들과 교유하던 한 선비 벗이 소매에서 용암龍巖 대사의 행장과 시집을 꺼내 보여 주었다. 이에 나는 용암 대사라는 분을 알게 되었고 또 용암을 호로 삼은 까닭도 알게 되었다. 대사의 한평생은 용으로 시작하여 부처로 마친 것이라 할 수 있다. 잉태할 때는 용이 꿈으로 들어왔고 입적할 때는 부처와 함께 돌아갔으니, 앞의 조짐으로 보면 곧 용이요 이미 변한 것으로 말하면 곧 부처이니 이것이 바로 일암日庵 장로가 용암이라는 호를 내려 준 이유인 것이다. 그 행장을 살펴보건대 행실은 순박하고 찬찬하며(淳備), 시집을 열람하건대 그 시는 청아하고 빼어났으니(淸逸), 비록 선비들 소문에서 이 정도의 시인을 구한다 해도 여럿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애석하도다, 금세에 이 같은 법사가 계셨는데도 내 직접 뵙지 못했음이여! 대사의 영명한 성품과 지혜로운 식견으로서 이기理氣의 균부均賦1)를 근본으로 하고 색물色物의 구공俱空2)에 귀의했으니 용이 또한 부처인가, 부처가 또한 용인가? 그것은 진정 좋은 변화라 할 만한가, 좋지 않은 변화라 할 만한가?내가 일찍이 듣기로 대사는 호남의 선비 집안 출신으로 집안이 화를 만나 마침내 불가로 들어왔으니 가히 좋지 않은 변화라 할 만하다. 총명한 재주와 지혜로 어지러운 세상을 만난즉, 공과 이익이 사람들에게 미칠 만한데도 불교에 머물고 말았으니 이 역시 좋지 않은 변화라 할 만하다. 그러나 천하의 네 갈래 길(四道) 중에 불교가 최고이며, 인생의 세 가지 어려움(三難)3) 중에 부처를 만나기가 가장 어려운데, 저 고해를 벗어나 극락을 밟으니 곧 좋은 변화라 할 만하다. 또 비록 당대에 입신양명하지 못했으나 법의 바다에서 자비의 배를 띄워 중생을 널리 제도하였으니 -
009_0783_a_01L[龍巖堂遺稿]
009_0783_a_02L1)龍巖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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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83_a_04L士友之從浮屠游者。袖示龍巖行狀與
009_0783_a_05L詩集。余乃知有龍巖大師。而且知以
009_0783_a_06L龍巖爲號之義也。盖師之平生。可謂
009_0783_a_07L始於龍而終於佛也。其胚也。龍入於夢。
009_0783_a_08L其寂也。佛與之歸。自其先朕而觀之
009_0783_a_09L即龍也。及其已變而言之。則佛也。此
009_0783_a_10L其日庵所以錫號龍巖者也。按其狀。其
009_0783_a_11L行也淳備。覽其集。其詩也淸逸。雖
009_0783_a_12L求之章甫之聞。亦不易多得者也。惜
009_0783_a_13L乎。今世有如此法師。而余未之得見
009_0783_a_14L也。師之靈性慧識。根於理氣之勻賦。
009_0783_a_15L而歸於色物之俱空。龍亦佛耶。佛亦
009_0783_a_16L龍耶。其可謂善變化耶。抑可謂不善
009_0783_a_17L變化耶。吾甞聞。師也。湖南之士族。而
009_0783_a_18L家禍迫之。終入於釋。則可謂不善變
009_0783_a_19L化也。以其聦明才智。遇風雲世。即
009_0783_a_20L功利之及於人可也。而止於佛。亦可謂
009_0783_a_21L不善變化也。然而天下有四道。佛爲
009_0783_a_22L最高。人生有三難。釋爲難逢。而脫
009_0783_a_23L彼苦海。踏于極樂。即可謂善變化也。
009_0783_a_24L雖不能立揚當世。而普濟衆生於法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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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83_b_01L역시 좋은 변화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용이 꿈에 나타난 것은 장차 부처가 되려는 것이니, 부처로 변화한 것은 저 용에서부터라 할 수 있다. 내 일찍이 살펴보건대, 전국시대의 선비들은 호협에 뛰어났고 위진魏晉 시대의 선비들은 몸을 술에 숨겼으니 이는 그들이 귀의할 참된 성인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대사같이 현명한 분이 저 불도에서 나와 이곳(유학)으로 들어왔다면 곧 조예와 성취가 어찌 적막한 부도浮屠(불교계)에만 그쳤겠는가? 나는 그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노라. 그러나 용이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요 부처로 변화한 것은 적연寂然이 아니니, 대사의 이름이 꽃비와 물에 비친 달그림자 사이에 길이 빛날 줄을 비로소 알겠노라. 이 또한 용의 좋은 변화요, 부처의 좋은 교화로서 적멸 중에서 진실한 것이로다. 그러므로 나는 그 재능을 아끼고 그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한창려韓昌黎4)가 태전太顚의 글에 머리말을 쓴 뜻에 의거하여 행장 뒤에 적는다.가선대부嘉善大夫 형조참판刑曹參判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김조윤金朝潤이 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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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83_b_01L慈航之間。即亦可謂善變化也。然即
009_0783_b_02L龍之現。將爲佛也。佛之化。自夫龍也歟。
009_0783_b_03L窃甞觀戰國之士。踊於俠。魏晋之士。
009_0783_b_04L隱於酒。是不得眞聖人與之依歸也。如
009_0783_b_05L使師之賢。出于彼而入于此。即其造詣
009_0783_b_06L成就。豈止於寂寞門浮屠而已哉。余
009_0783_b_07L悲其不遇。而龍之現也。非偶然。佛之
009_0783_b_08L化也。非寂然。始見師之名。長耀於
009_0783_b_09L花雨水月之間。即是亦龍之善變。佛
009_0783_b_10L之善化。而實於寂滅者也。余故愛其
009_0783_b_11L才。憐其遇。而依韓昌黎冠太顚之意。
009_0783_b_12L題于行狀之後云。
009_0783_b_13L嘉善大夫刑曹參判同知義禁府事五
009_0783_b_14L衛都摠府副摠管。金朝潤序。
009_0783_b_15L{底}崇禎後壬寅忠州白雲山刊本(李智冠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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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이기理氣의 균부均賦 : 이理와 기氣가 고르게 조화를 이룬 본성. 호남의 선비 집안에서 자란 용암의 유교적 자양분을 말한다.
- 2)색물色物의 구공俱空 : 물질이 곧 공임. 여기서는 이러한 사유에 기반을 둔 불교를 말한다.
- 3)세 가지 어려움(三難) : 사람으로 태어나는 어려움(人身難得), 남자로 태어나는 어려움(丈夫難得), 불법을 만나는 어려움(佛法難逢).
- 4)한창려韓昌黎 : 창려昌黎는 당나라의 문인·정치가인 한유韓愈(768~824)의 봉호. 자는 퇴지退之이며 창려 사람이다. 육경六經의 문장을 지을 것을 선비들에게 제창하였으며, 벼슬이 이부시랑吏部侍郞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공文公이며 창려백昌黎伯에 봉해졌다. 처음에는 불교를 배척하여 형부시랑刑部侍郎에 있을 때 헌종憲宗이 불사리를 영접하자 극렬하게 반대하는 표(佛骨表)를 올려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태전太顚 선사의 이름을 듣고 편지글을 통해 도에 대해 문답하였으며, 이후 불교에 깊이 귀의하게 되었다. 『名公法喜志』(X88, 338a).
- 1){底}崇禎後壬寅忠州白雲山刊本(李智冠所藏)。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김종진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