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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467_c_01L환성시집喚惺詩集환성의 시권에 제하다(題喚惺詩卷)“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꺾어 들고 멀리 남산을 바라본다.”1) 하였으니, 이 뜻은 당시 여산 혜원廬山慧遠2) 법사만 알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마침내 묻는 자가 없었는데, 이제 환성의 시를 살펴보니, 앞도 삼삼이고 뒤도 삼삼이라3) 멀리 있지 않음을 비로소 알겠다.환성 스님의 제자 해원海源4)과 성눌聖訥은 용상龍象의 덕을 지닌 분들이다. 성눌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청하기에 4구로 답하였다.“‘유마가 보인 병은 병이 아니요, 가섭의 말없음이 말씀이다’ 하겠으니, 이것이 바로 자네 스승의 행장行藏이네. ‘도체道體는 텅 빈 산에 달이 비침이요, 심법心法은 물이 흘러가고 꽃이 피어남이다’ 하겠으니, 이것이 바로 자네 스승의 문사文辭이네. 어찌 많은 말을 하겠는가.”성눌이 돌아가면 해원도 당연히 머리를 끄덕이리라.신미년(1751, 영조 27) 납월5) 8일 깊은 밤에 오봉鼇峯 쓰다. -
009_0467_c_01L[喚惺詩集]
009_0467_c_02L1)題喚惺詩卷
009_0467_c_03L
009_0467_c_04L采菊東籬下。悠然見南山。此意當時。
009_0467_c_05L唯廬山遠法師能解。後遂無問者。今
009_0467_c_06L覽喚惺詩。乃知前三三後三三弗遐矣。
009_0467_c_07L惺師弟子。海源聖訥。龍象也。訥來
009_0467_c_08L請余言。爲四句曰。維摩示病非病。迦
009_0467_c_09L葉不言是言。乃爾師之行藏。道軆山
009_0467_c_10L空月照。心法水流花明。乃爾師之文
009_0467_c_11L辭。何以多爲。訥乎歸而源也當爲點
009_0467_c_12L頭。
009_0467_c_13L辛未臈月八日丙夜。鼇峯。
009_0467_c_14L{底}乾隆辛未安邊釋王寺開刊本 (서울大學校
009_0467_c_16L所藏)。
- 1)동쪽 울타리~남산을 바라본다 : 도연명陶淵明의 시 ≺음주飮酒≻에서 발췌한 구절이다.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 사는 마을에 오두막 지었지만/ 수레와 말이 들고 나는 소란함 없나니/ 당신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물으시면/ 마음이 멀어지면 땅 절로 외지다 하리./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꺾어 들고/ 멀리 남산을 바라보니/ 산기운은 석양빛에 아름답고/ 나는 새들 떼 지어 돌아오네./ 이 가운데 참뜻이 있지만/ 표현하고 싶어도 이미 말을 잊었다오.(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 2)여산 혜원廬山慧遠(335~417) : 동진 때 스님이다. 안문雁門 누번樓煩 사람으로 13세에 이미 육경六經을 연구하였고, 노장학에도 정통하였다. 21세에 향산정 도안道安을 찾아가 수학하였다. 373년(전진, 건원 9) 부비苻丕가 양양襄陽을 공격해 도안을 데리고 돌아가자 제자들과 함께 여산에 은거하며 동림사東林寺를 창건하였다. 그곳에서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 『삼법도론三法度論』을 다시 번역하였고, 『십송률十誦律』을 완역하는 등 크게 공헌하였으며, 그의 덕을 사모해 모인 명사들과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해 염불행을 닦았다. 저서로 『대지도론요략大智度論要略』 20권, 『문대승중심의십팔과問大乘中深義十八科』 3권,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 『법성론法性論』 2권, 『사문단복론沙門袒服論』 1권 등이 있다.
- 3)앞도 삼삼이고 뒤도 삼삼이라(前三三後三三) : 선종에 전래되는 화두이다. 무착 문희無着門喜 선사가 오대산 화엄사 금강굴에서 문수의 화신을 친견했을 때 오고 간 문답의 일부이다. 문수가 무착에게 “남방의 불법은 어떻게 유지되는가?”라고 묻자, 무착이 “말법의 비구들이라 계율을 지키는 이들이 적습니다.” 하였다. “대중은 얼마나 되는가?”라고 묻자, “3백 명인 곳도 있고, 5백 명 정도 되는 곳도 있습니다.” 하였다. 무착이 “이곳에서는 어떻게 사십니까?” 하고 묻자, 문수가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살고, 용과 뱀이 뒤엉켜 산다.” 하였다. 그리고 물었다. “대중은 얼마나 됩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앞도 삼삼이고 뒤도 삼삼이다.”(『碧巖錄』 제35칙) 여기서는 대사의 시적 경지가 도연명의 그것과 견줄 만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 4)해원海源(1691~1770) : 호는 함월涵月, 자는 천경天鏡, 속성은 이씨, 함흥咸興 출신이다. 14세에 도창사道昌寺에서 출가해 선지식을 두루 참례하고 환성喚惺의 법을 이었다. 영조 46년에 나이 80세, 법랍 65년으로 입적하였으며, 탑과 비가 석왕사 동쪽에 있다. 저서로 『천경집天鏡集』 2권이 있다. 이는 『한국불교전서』 제9책에 수록되어 있다.
- 5)납월臈月 : 음력 섣달을 말한다.
- 1){底}乾隆辛未安邊釋王寺開刊本 (서울大學校所藏)。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성재헌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