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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4_a_01L선원제전집도서과평선원제전집도서과평 상권(禪源諸詮集都序科評 ✽ 卷上)해동사문 설암 추붕 과평海東沙門 雪巖秋鵬 科評 ✽제1편 배휴의 서문선원제전집도서 서
홍주 자사 겸 어사중승 배휴1) 지음
과목을 나눔(3항목)
제1. 사람을 들어 법을 찬탄함(3항목)(一擧人讚法三)1. 총체적으로 표함(一總標)배휴 서 규봉 선사가 선禪의 근원이 되는 모든 전적들을 모아 선장禪藏2)으로 삼고 전체의 서문을 썼다. 하동 배휴는 이를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하였다.
2. 별도로 해석함(2항목)(二別釋二)1) 좁은 견해로 각기 집착하여 서로 다툼(3항목)
(1) 먼저 약이 되는 가르침을 밝히고 그에 의거하여 세움(3항목)
① 두 가지로 표함
배휴 서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여 근기에 따라 가르침을 세우신 이래, 보살이 중간에 나와 병에 맞추어 약을 처방하였다.
② 두 가지로 해석함
배휴 서 그러므로 일대시교3)로 깊고 얕은 삼문三門을 열고, 하나의 참되고 맑은 마음으로 성性과 상相의 다른 법을 펼치셨다. 마명4)과 용수5) 두 대사가 불타의 경전을 홍포하였으나, 공空과 성性으로 종취宗趣를 달리하였고, 혜능6)과 신수7) 두 선사가 달마8) 의 마음을 함께 전했으나 돈頓과 점漸9)으로 품수稟受를 달리하였다. 천태10) 는 오로지 삼관三觀11)에 의지하였고, 우두12)는 한 법도 없다고 하였으며, 강서13)는 전체가 온통 진眞이라 하였고, 하택14)은 지견知見을 곧바로 가리키라고 하였다. 그 외에도 공空과 유有가 서로 논파하기도 하고, 진眞과 망妄이 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어기어 빼앗기도 하고 수순하여 취하기도 하며, 은밀히 가리키기도 하고 드러내어 설하기도 하니, 서역과 중국에 그 종파가 번성하게 되었다.
③ 두 가지로 결론지음
배휴 서 참으로 병의 원인이 천 가지면 약도 수만 가지가 생겨나듯이, 근기에 맞추고 기량을 따르면 (방편이) 한 가지로 같을 수 없는 것이다.
(2) 앞에서 말한 것을 따라 상호 비난함을 바로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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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4_a_01L[禪源諸詮集都序科評]
009_0204_a_02L1)禪源諸詮集都序科評卷上 ✽
009_0204_a_03L
009_0204_a_04L2)海東沙門。雪巖秋鵬科評 ✽
009_0204_a_05L禪源諸詮集都序叙
009_0204_a_06L洪州剌史兼御史中丞裵休述
009_0204_a_07L科分文三一擧人讃法三一摠標
009_0204_a_08L圭峰禪師。集禪源諸詮。爲禪藏而都序
009_0204_a_09L之。河東裵休曰。未曾有也。
009_0204_a_10L二別釋二一小見各執相諍文三
009_0204_a_11L一先明藥敎據立三一雙標
009_0204_a_12L自如來現世。隨機立敎。菩薩間生。據
009_0204_a_13L病指藥。
009_0204_a_14L二雙釋
009_0204_a_15L故一代時敎。開深淺之三門。一眞淨心
009_0204_a_16L演性相之別法。馬龍二士。皆弘調御之
009_0204_a_17L經。而空性異宗。能秀二師。俱傳達摩
009_0204_a_18L之心。而頓漸殊禀。天台專依三觀。牛
009_0204_a_19L頭無有一法。江西擧體全眞。荷澤直指
009_0204_a_20L知見。其他空有相破。眞妄相收。反奪
009_0204_a_21L順取。密指顯說。西域中夏。其宗寔繁。
009_0204_a_22L三雙結
009_0204_a_23L良以病有千源。藥生多品。投機隨器。
009_0204_a_24L不得一同。
009_0204_a_25L二躡前正明相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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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4_b_01L배휴 서 비록 모두가 깨달음의 문이고 다 진실한 도이기 때문에 모든 종파의 문하에는 다 통달한 사람이 있지만, 각기 자신이 익힌 데 안주하여 통하는 것은 적고 막히는 것은 많아 수십 년을 지나면서 스승의 법이 점점 더 붕괴되어 갔다. (자파를) 계승하여 문호를 만들고 각기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경론으로 창과 방패를 삼아 서로를 공격하니, 누가 창을 만들고 누가 갑옷을 만드느냐에 따라 사정이 변화하게 되었다.
원주『주례』15)에서 “함인函人【함函의 음은 함含이다.】은 갑옷을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하였으며, 『맹자』에서는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못하겠는가. 그렇지만 갑옷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이 상하는 것만 걱정하고, 화살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이 상하지 않는 것만을 걱정한다.”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대개 익힌 직업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배우는 사람들도 단지 자기 종파의 무리만 따라 피차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하는 것뿐이다.
배휴 서 법은 남이냐 나냐에 따라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여 시비가 분분하고 복잡하니, 사리를 분석하여 식별할 수가 없다.
(3) 부처나 조사도 도움 되는 것이 없음을 결론으로 드러냄
배휴 서 지난날 세존과 보살 및 제방의 선가와 교가들이 마침 후인들에게 쟁론을 일으키고 번뇌의 병을 더 보태게 하였으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2) 대사가 탄식하고 화회함(3항목)
(1) 때를 당하여 침묵하기 어려움을 탄식함
배휴 서 규봉 대사가 오래도록 탄식하면서, “내가 이때를 당하여 침묵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2) 교설에 의거하여 하나임을 드러냄(2항목)
① 하나의 법임을 듦
배휴 서 이에 여래의 3종 교의敎義16)로 선종의 3종 법문法門17)을 인증하게 되었다.
② 네 가지 비유를 끌어옴(2항목)
가. 처음 두 가지 비유는 교敎와 종宗의 법이 일미一味임을 바로 비유함
배휴 서 금쟁반·금비녀·금팔찌를 녹여 하나로 금붙이를 만들고, 소·낙·제호18)를 섞어 한 가지 맛이 되게 하였다.
나. 뒤의 두 가지 비유는 선禪 하는 사람과 강설하는 사람이 수순하여 화회함을 겸하여 비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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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4_b_01L雖俱爲證悟之門。盡是正眞之道。所以
009_0204_b_02L諸宗門下。皆有達人。然各安所習。通
009_0204_b_03L少局多。數十年中。師法益壞。以承禀爲
009_0204_b_04L戶牖。各自開張。以經論爲干戈。互相攻
009_0204_b_05L擊。情隨凾矢而遷變。
009_0204_b_06L周禮曰。凾音
含人爲甲。孟子曰。矢人豈
009_0204_b_07L不仁於凾人㦲。凾人唯恐傷人。矢人
009_0204_b_08L唯恐不傷人。盖所習之術使然也。今
009_0204_b_09L學者。但隨宗徒。彼此相非耳。
009_0204_b_10L法逐人我以高低。是非紛拏。莫能辨析。
009_0204_b_11L三結現佛祖無益
009_0204_b_12L則向者世尊菩薩。諸方敎宗。適足以起
009_0204_b_13L諍後人。增煩惱病。何利益之有㦲。
009_0204_b_14L二大師發歎和會三一歎時難默
009_0204_b_15L圭山大師。久而歎曰。吾丁此時。不可
009_0204_b_16L以默矣。
009_0204_b_17L二約敎現一二初擧一法
009_0204_b_18L於是以如來三種敎義。印禪宗三種法
009_0204_b_19L門。
009_0204_b_20L後引四喩二一初二喩正喩敎宗
009_0204_b_21L法爲一味
009_0204_b_22L融鉼盤釵釧爲一金。攪酥酪醍醐爲一
009_0204_b_23L味。
009_0204_b_24L二後二喩兼喩禪講人順和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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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4_c_01L배휴 서 그물코와 옷깃을 드니 그물과 옷 전체가 따라오고,
원주 『순자』에 이르기를, “갖옷19)의 옷깃을 들어 올림에 있어, 다섯 손가락을 굽혀 끌어당기니 끌려오는 털의 숫자를 다 헤아리지 못한다.”20)라고 하였다.
배휴 서 도시를 목표로 하여 오는 사람들은 모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다.
원주 『주역약례周易畧例』21)에 이르기를, “도시를 목표로 사방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니, 육방六方에서 모여들었지만 많은 것은 아니었다.”라고 하였다. 『도서都序』가 원교圓敎에 의거하여 모든 종파를 인증하니, 비록 백가라도 통괄하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
(3) 근기에 따라 이익을 성취함(3항목)
① 깊은 공을 서술한 것을 찬탄함
배휴 서 그래도 오히려 배우는 사람들이 밝히기 어려울까 염려하여, 다시 종지와 근원에 대한 본말, 진과 망의 화합, 공空과 성性의 은현隱顯, 법과 의미의 차별, 돈頓과 점漸의 동이同異, 부정 표현과 긍정 표현의 호환, 방편과 진실의 심천深淺, 통함과 편협함의 옳고 그름을 곧바로 보여 주었다.22)
원주 이 아래의 글은 서술한 것이 명백히 드러나 간절히 사람들이 깨닫게 하고자 함을 찬탄한 것이다.23)
배휴 서 귀에 대고 말해 주고, 손바닥을 가리키듯 보여 주며, 사자처럼 몸을 펴서 소리치고 연민과 부드러움으로 이끌지 않음이 없다.
원주 이하는 자비로 염려함이 어린아이를 기르는 것과 같음을 찬탄한 것이다.
② 어린아이를 기르는 것과 같음을 찬탄함
배휴 서 젖을 먹이고 약을 주는 것은 부처의 씨앗이 일찍 사라질까 걱정하는 것이며
원주 스스로 선근을 끊고 천제가 되는 것이 ‘일찍 사라지는 것(夭傷)’이다.
배휴 서 품어서 껴안는 것은 물에 떠내려가거나 불에 탈까 염려하는 것이다.
원주 배(腹)는 품는 것이니, 자식이 태어나 3년을 지나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 물과 불의 염려가 없게 된다. 지금 사람이 점점 자라 -
009_0204_c_01L振綱領而擧者皆順。
009_0204_c_02L荀子云。如振裘領。屈五指而頓之。
009_0204_c_03L順者不可勝數。
009_0204_c_04L據會要而來者同趣。
009_0204_c_05L周易略例云。據會要以觀方來。則六
009_0204_c_06L合輻輳。未足多也。都序據圓敎以印
009_0204_c_07L諸宗。雖百家。亦無所不統。
009_0204_c_08L三就機成益三初歎叙述深功
009_0204_c_09L尙恐學者之難明也。又復直示宗源之
009_0204_c_10L本末。眞妄之和合。空性之隱顯。法義
009_0204_c_11L之差殊。頓漸之異同。遮表之回互。權
009_0204_c_12L實之深淺。通局之是非。
009_0204_c_13L此下歎叙述明顯。而丁寧欲人悟也。
009_0204_c_14L莫不提耳而告之。指掌而示之。頻伸以
009_0204_c_15L吼之。愛軟以誘之。
009_0204_c_16L此下歎慈悲憂念。如養赤子也。
009_0204_c_17L二歎如養赤子
009_0204_c_18L乳而藥之。憂佛種之夭傷也。
009_0204_c_19L自斷善根而作闡提。 夭傷也。
009_0204_c_20L腹而擁之。念水火之漂焚也。
009_0204_c_21L腹。抱也。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
009_0204_c_22L之懷。無水火之慮。今人稍長大。沉。
009_0204_c_23L{底}乾隆五年平安道寧邊普賢寺刊本。(東國大
009_0204_c_24L學校所藏)。題名。編者補入。撰者名。在「洪
009_0204_c_25L州…裵休述」之後。編者移置於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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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5_a_01L오욕에 빠지는 것이 물과 불이다.
배휴 서 이끌어 인도함은 삿된 가르침과 소승의 미혹한 함정에 빠질까 두려워한 것이고,
원주 이미 선근이 있고, 그에 더하여 오욕을 여의었지만, 다시 대승에 들어가지 못할까 염려하는 것이다.
배휴 서 휘저어 흩어 버림은 투쟁이 굳어질까 걱정하는 것이다.
원주 이미 대승법에 들었지만, 오히려 서로 시비하기 때문에 그것을 휘저어 흩어 버리는(揮散)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서』의 으뜸 취지다.
③ 자비와 지혜가 부처와 같음을 찬탄함
배휴 서 태양도 긴 밤의 어둠을 깨뜨릴 수 없고, 자애로운 어머니도 죽은 후에 그 자식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이다.
원주 이 아래는 자비와 지혜가 부처와 같음을 찬탄한 내용이다. 부처의 광명이 비록 찬란하지만, 우리 스승을 얻은 후에야 그 광명을 돌이켜 고루 비추었고, 부처의 자비가 너르지만, 우리 스승을 얻은 후에야 중생들을 더욱 이롭게 하였다.
배휴 서 우리 스승(규봉)은 부처의 광명을 받들어 그 빛을 중생들에게 고루 비추니 의심의 장막이 모두 제거되었으며, 부처의 마음을 따라 대비를 널리 펼치니 억겁이 다하도록 중생들을 이롭게 하였다.
3. 총체적 결론(三摠結)배휴 서 곧 세존은 가르침을 연 주인이시고, 우리 스승은 그 가르침을 회통한 사람이다. 본말이 서로 부합하고 원근이 서로 비추니, 세존의 일대 가르침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마친 분이라고 하겠다.
원주 세존이 가르침을 펴신 이래 오늘날까지 그 가르침을 화해하여 통하게 하니 할 수 있는 일을 다 마치신 것이다.
제2. 질문에 의거하여 의심을 풂(3항목)(二假問遣疑三)1. 세 가지 질문을 세움(一立三問)배휴 서 어떤 사람이 말했다.“여래 이후로 일찍이 전체를 회통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 하루아침에 종지를 어겨 지키지 않고, 관문을 폐지하여 의거하지 않으니, -
009_0205_a_01L於五欲。是水火也。
009_0205_a_02L挈而導之。懼邪小之迷陷也。
009_0205_a_03L旣有善根。又離五欲。復恐不入於大
009_0205_a_04L乘也。
009_0205_a_05L揮而散之。悲鬪諍之牢固也。
009_0205_a_06L旣入大乘法中。又互相是非。故揮散
009_0205_a_07L之。即都序之宗趣也。
009_0205_a_08L三歎悲智同佛
009_0205_a_09L大明不能破長夜之昏。慈母不能保身
009_0205_a_10L後之子。
009_0205_a_11L此下歎悲智與佛同也。佛日雖盛。得
009_0205_a_12L吾師然後。廻光曲照。佛悲雖普。得
009_0205_a_13L吾師然後。弘益彌多。
009_0205_a_14L若吾師者。捧佛日而委曲廻照。疑曀盡
009_0205_a_15L除。順佛心而橫亘大悲。窮刼蒙益。
009_0205_a_16L三摠結
009_0205_a_17L則世尊爲闡敎之主。吾師爲會敎之人。
009_0205_a_18L本末相符。遠近相照。可謂畢一代時敎
009_0205_a_19L之能事矣。
009_0205_a_20L自世尊演敎。至今日。會而通之。能
009_0205_a_21L事方畢。
009_0205_a_22L二假問遣疑三一立三問
009_0205_a_23L或曰。 自如來未嘗大都而通之。 今一旦
009_0205_a_24L違宗趣而不守。廢關坊而不據。無乃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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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5_b_01L비밀한 법장과 은밀한 도에 어찌 어긋나지 않겠는가.”24)
2. 세 가지 질문에 답함(二還三答)배휴 서 대답하였다.25)“여래가 처음에는 비록 삼승을 따로 설했지만, 그 후에는 하나의 도道(일승)로 회통하였다.”
과평 “30년 전 운운”이라고 한 주석 57자는 당본唐本에 없으므로 지금 수록하지 않는다.26)
배휴 서 『열반경』에서 가섭보살이 “모든 불타에게 은밀한 말씀은 있지만, 비밀한 법장은 없다.”라고 말하자, 세존이 찬탄하여 “여래의 말씀은 널리 열려 있어 명백히 드러나니 청정하고 거리낄 것이 없다. 어리석은 사람이 알지 못하여 비밀한 법장이라 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깨달아 알기 때문에 비밀한 법장이라 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므로 왕도王道가 흥성하면 변방의 관문을 닫지 않아도 오랑캐가 지켜 주고, 불도佛道가 정비되면 제법을 모두 지니게 되니, 방비하는 일은 마군과 외도가 맡아 준다.
원주 열반원교는 제법을 화회하지만, 오직 마군의 말과 외도의 삿된 가르침만은 가려 구별한다.
3. 통탄스러움을 결론으로 책망함(三痛結責)배휴 서 다시 정에 집착하여 그곳에 팔을 걷어붙이고 우쭐대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제3. 총체적으로 탄식하며 권하는 결론(三總歎勸結)배휴 서 슬프다. 뒤에 오는 학자들은 마땅히 불타로부터 믿음을 취할지언정 사람으로부터 취하지 말 것이며, 근본법에서 증득을 취할지언정 지말枝末로 익힌 것에서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주 『도서』는 불타의 말씀으로 모든 종파를 인증하고, 근본법으로 편파적인 주장을 조명하였다. 그 때문에 그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간곡히 권하고 있다.
배휴 서 이렇게 하는 것이 규봉 대사가 애쓰신 공덕을 저버리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원주 “슬프다. 부모님이여! 나를 낳으시느라 고생하셨다.”27)라고 하였는데, 우리 스승의 공덕은 이보다 더 크다고 하겠다. 후세 사람이 그 법을 보고 비감한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목석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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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5_b_01L秘藏密契之道乎。
009_0205_b_02L二還三答
009_0205_b_03L答曰。如來。初雖別說三乘。後乃通爲一
009_0205_b_04L道。
009_0205_b_05L三十年前云云。注五十七字。不在唐
009_0205_b_06L本。今以不錄。
009_0205_b_07L故湼槃經。迦葉菩薩曰。諸佛有密語無
009_0205_b_08L密藏。世尊讃之曰。如來之言。開發顯
009_0205_b_09L露。淸淨無翳。愚人不解。謂之秘藏。智
009_0205_b_10L者了達則不名藏。此其證也。故王道興。
009_0205_b_11L則外戶不閉。而守在戎夷。佛道備則諸
009_0205_b_12L法摠持。而防在魔外。
009_0205_b_13L湼槃圓敎。和會諸法。唯簡別魔說及
009_0205_b_14L外道邪宗耳。
009_0205_b_15L三痛結責
009_0205_b_16L不當復執情。攘臂於其間也。
009_0205_b_17L三摠歎勸結
009_0205_b_18L嗚呼。後之學者。當取信於佛。無取信
009_0205_b_19L於人。當取證於本法。無取證於末習。
009_0205_b_20L都序以佛語印諸宗。以本法照偏說。
009_0205_b_21L故丁寧勸其深信也。
009_0205_b_22L能如是則不辜圭山大師劬勞之德矣。
009_0205_b_23L哀哀父母。生我劬勞。吾師之德。過。
009_0205_b_24L於是矣。後之人。覩其法而不生悲感。
009_0205_b_25L本石無異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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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5_c_01L제2편 선원제전집도서선원제전집도서 권상【또는 ‘선나리행제전집禪那理行諸詮集’이라고도 한다.】
『도서』를 과목으로 나눔(2항목)
제1. 제목(2항목)(初題目二)
1. 두 제목을 표하여 세움(一標立雙題)2. 작자의 명칭 (二作者佳號)도서 종남산 초당사 사문 종밀 술
제2. 본문(3항목)(後本文三)
1. 큰 강령을 총체적으로 서술함(3항목)(一摠敘大綱三)1) 선의 근원을 바로 밝힘(2항목)
(1) 제목을 해석하고 명칭을 분간함(3항목)
① 총 제목을 표하여 서술함
도서 『선원제전집』이란 모든 선가에서 서술한 것을 기록한 문헌으로, 선문의 근원 도리를 문자로 드러낸 구句 및 게송이다. 그것을 모아 하나의 장전을 만들어 후대에 물려주려 했기 때문에 전체 제목을 이 명칭으로 정한 것이다.
② 두 제목을 나열하여 해석함
도서 선禪이란 인도의 말로, 온전하게는 선나禪那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것을 사유수思惟修 또는 정려靜慮라고도 번역하는데, 모두 정혜定慧의 통칭이다. 근원(源)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중생의 본각진성本覺眞性이니, 불성이라고도 하고, 또는 심지心地라고도 한다. 그것을 깨닫는 것을 혜慧라 하고, 그것을 닦는 것을 정定이라고 하니, 정과 혜를 통칭하여 선禪이라 부른다. 이 본성(본각진성을 말함)이 선의 근원이기 때문에 선원禪源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름으로 선나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행理行이란 선의 본원이 선리禪理라는 것이고, 망정을 잊고 여기에 계합하는 것을 선행禪行이라 부른다. 그 때문에 (선리와 선행을 합하여) 이행理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③ 난문을 해결하고 결론으로 분간함
도서 그러나 지금 모은 제가의 찬술은 선리禪理를 많이 말하고 선행禪行은 적게 설했기 때문에 선원禪源이라고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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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5_c_01L禪源諸詮集都序禪源諸詮集都序卷上亦名禪那理
行諸詮集
009_0205_c_02L序科分文二初題目二一標立雙
009_0205_c_03L題二作者佳號
009_0205_c_04L終南山草堂寺沙門宗密1)述
009_0205_c_05L後本文三一摠叙大綱三一正明
009_0205_c_06L禪源二一釋題揀名三一標叙摠
009_0205_c_07L題
009_0205_c_08L禪源諸詮集者。寫錄諸家所述詮表禪
009_0205_c_09L門根源道理文字句偈。集爲一藏。以貽
009_0205_c_10L後代故。都題此名也。
009_0205_c_11L二列釋雙題
009_0205_c_12L禪是天竺之語。具云禪那。中華翻云思
009_0205_c_13L惟修。亦云靜慮。皆是㝎慧之通稱也
009_0205_c_14L源者是一切衆生本覺眞性。亦名佛性
009_0205_c_15L亦名心地。悟之名慧。修之名㝎。㝎慧
009_0205_c_16L通名爲禪。此性是禪之本源。故云禪源
009_0205_c_17L亦名禪那。理行者。此之本源。是禪理。
009_0205_c_18L忘情契之是禪行。故云理行。
009_0205_c_19L三通難結揀
009_0205_c_20L然今所集諸家述作。多談禪理。少說禪
009_0205_c_21L行故。且以禪源題之。
009_0205_c_22L「述」下有「海東沙門雪巖秋鵬科評」。編者除
009_0205_c_23L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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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6_a_01L(2) 명칭에 의거하여 의미를 해석함(2항목)
① 근원을 해석함(3항목)
가. 잘못된 해석을 표하여 듦
도서 지금 단지 진성眞性만을 지목하여 선禪이라고 하는 것은 이행理行의 뜻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인도의 음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나. 의혹을 풀고 근원을 보임
도서 그러나 진성眞性을 떠나 별도로 선의 본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중생이 진성에 어둡고 진애塵埃에 물들면 이것을 산란이라 하고, 진애를 등지고 진성과 합하면 선정이라고 말한다. 만약 본성을 직접 논한다면 진眞도 아니고 망妄도 아니며, 등지는 것도 아니고 합하는 것도 아니다. 정定도 없고 산란도 없으니, 무엇을 선이라 하겠는가. 더구나 이 진성은 선문禪門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만법의 근원이기 때문에 법성이라 하고, 중생의 우매함과 깨달음의 근원이기 때문에 여래장장식【『능가경』에 나온다.】이라고도 한다. 또 모든 부처가 지닌 만덕의 원천이기 때문에 불성【『열반경』 등의 경】이라고도 하며, 보살만행의 근원이기 때문에 심지心地라고도 한다.
원주 『범망경』 「심지법문품」에서 이르기를, “이것은 모든 불타의 본원이고, 보살도를 행하는 근본이며, 대중과 여러 불자의 근본이다.”라고 하였다.
다. 잘못된 해석을 결론으로 깨뜨림
도서 만행은 육바라밀을 벗어나지 않는다. 선문은 단지 육바라밀 중의 하나로서 그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데, 어떻게 전체적으로 진성眞性을 지목하여 하나의 선행禪行이라 할 수 있는가.
② 선을 해석함(3항목)
가. 홀로 공용을 밝힘(3항목)
가) 청정한 법을 생기게 함
도서 그러나 (육바라밀 중) 선정이라는 하나의 실천행이 가장 신묘하다. 그것은 자성상自性上에 무루의 지혜를 일으키며 일체의 미묘한 작용과 수많은 수행과 공덕, 내지 신통광명이 -
009_0206_a_01L二約名釋義二一釋源三一標擧
009_0206_a_02L錯解
009_0206_a_03L今時有但目眞性爲禪者。是不達理行
009_0206_a_04L之旨。又不辨華竺之音也。
009_0206_a_05L二遣惑現源
009_0206_a_06L然非離眞性。別有禪體。但衆生迷眞合
009_0206_a_07L塵。即名散亂。背塵合眞名爲禪㝎。若
009_0206_a_08L直論本性。即非眞非妄。無背無合。無
009_0206_a_09L㝎無亂。誰言禪乎。況此眞性。非唯是
009_0206_a_10L禪門之源。亦是萬法之源。故名法性
009_0206_a_11L亦是衆生迷悟之源。故名如來藏藏識
009_0206_a_12L出楞
伽經。亦是諸佛萬德之源。故名佛性湼
般
009_0206_a_13L等
經。亦是菩薩萬行之源。故名心地。
009_0206_a_14L梵網經心地法門品云。是諸佛之本
009_0206_a_15L源。行菩薩道之根本。是大衆諸佛子
009_0206_a_16L之根本也。
009_0206_a_17L三結破錯解
009_0206_a_18L萬行不出六波羅蜜。禪門但是六中之
009_0206_a_19L一。當其第五。豈可都目眞性爲一禪行
009_0206_a_20L㦲。
009_0206_a_21L二釋禪三一獨明功用三一能生
009_0206_a_22L淨法
009_0206_a_23L然禪㝎一行。最爲神妙。能發起性上無
009_0206_a_24L漏智慧。一切妙用。萬行萬德。乃至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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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6_b_01L모두 선정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 도를 구함에 반드시 의지해야 함
도서 그러므로 삼승의 학인이 성도聖道를 구하고자 하면, 반드시 선禪을 닦아야 한다. 선을 떠나 들어갈 문이 없고 선을 떠나 나아갈 길이 없다.
다) 염불도 선을 닦아야 함
도서 염불로 왕생정토를 구하는 데도 십육관선十六觀禪1)과 염불삼매와 반주삼매般舟三昧2)를 닦아야 한다.
나. 깊고 얕음을 대응하여 구별함(3항목)
가) 진성을 들어 표시를 세워 일으킴
도서 또 진성은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범부와 성인의 차별도 없지만, 선은 깊고 얕음이 있어서 등급에 차이가 있다.
나) 별도로 깊고 얕음을 밝힘
도서 법도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상계上界를 좋아하고 하계下界를 싫어하여 닦는 것은 외도선이고, 인과를 확고히 믿어 (상계를) 좋아하고 (하계를) 싫어하여 닦는 것은 범부선이다. 아공我空이라는 치우친 진리를 깨달아 닦는 것은 소승선이고, 아공我空과 법공法空 두 공이 드러나는 진리를 깨달아 닦는 것이 대승선이다.
원주 위의 네 부류에는 모두 사색四色·사공四空3)의 차이가 있다.4)
도서 자기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여 번뇌가 없으며, 무루의 ‘아는 본성’이 본래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단번에 깨달으면, 이 마음이 곧 부처로서 둘은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에 의거하여 닦는 것이 최상승선이다. 또 이것을 여래청정선이라고도 하고, 일행삼매一行三昧5)라고도 하며, 진여삼매라고도 한다. 이것은 일체 삼매의 근본이니, 끊임없이 닦아 익힌다면, 저절로 백천 삼매를 점차적으로 얻게 될 것이다.
다) 깊은 선을 단순하게 결론지음
도서 달마 문하에 계속하여 전해져 온 것이 이 선(최상승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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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6_b_01L通光明。皆從㝎發故。
009_0206_b_02L二求道必依
009_0206_b_03L三乘學人。欲求聖道。必須修禪。離此
009_0206_b_04L無門。離此無路。
009_0206_b_05L三念佛亦修
009_0206_b_06L至於念佛。求生淨土。亦修十六觀禪。
009_0206_b_07L及念佛三昧。般舟三昧。
009_0206_b_08L二對卞深淺三。一擧性標起。
009_0206_b_09L又眞性即不垢不淨。凡聖無差。禪則有
009_0206_b_10L淺有深。階級殊等。
009_0206_b_11L二別明深淺
009_0206_b_12L謂帶異計。欣上厭下而修者。是外道禪。
009_0206_b_13L正信因果亦以欣厭而修者。是凡夫禪。
009_0206_b_14L悟我空偏眞之理而修者。是小乘禪。悟
009_0206_b_15L我法二空所顯眞理而修者。是大乘禪。
009_0206_b_16L上四類。皆有四色四空之異也。若頓悟
009_0206_b_17L自心。本來淸淨。元無煩惱。無漏智性
009_0206_b_18L本自具足。此心即佛。畢竟無異。依此
009_0206_b_19L而修者。是最上乘禪。亦名如來淸淨禪。
009_0206_b_20L亦名一行三昧。亦名眞如三昧。此是一
009_0206_b_21L切三昧根本。若能念念修習。自然漸得
009_0206_b_22L百千三昧。
009_0206_b_23L三單結深禪
009_0206_b_24L達摩門下。展轉相傳者。是此禪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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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6_c_01L다. 난문을 회통하여 수승함을 드러냄
도서 달마가 오기 전, 예로부터 모든 선가에서 안 것은 오로지 다 사선四禪과 팔정八定6)뿐이었으니, 모든 고승들이 그것을 닦아서 공용을 얻었던 것이다. 남악 혜사(515~577)와 천태 지의(538~597)는 삼제三諦7)의 이치에 의지하여 삼지三止8)·삼관三觀을 닦도록 하였으니, 교의는 비록 가장 원만하고 미묘하지만, 들어가는 문호와 그 차례는 앞에서 말한 모든 선의 행상行相과 다르지 않다. 오직 달마가 전한 법만이 부처의 본체와 전적으로 같기 때문에 여타의 여러 문파와는 현격하게 다르다.
2) 모든 전적을 거듭 밝힘(2항목)
(1) 별도로 폐단을 밝힘(2항목)
① 이사본말의 폐단(2항목)
가. 그 유래를 표하여 일으킴
도서 그러므로 본종本宗에서 익히는 자가 그 본지를 터득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것을 터득하면 성인이 되어 곧바로 보리를 얻지만, 잃으면 삿됨에 떨어져 즉시 도탄에 빠진다. 앞의 조사들은 초기에 실수를 막으려고,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만 (법을) 전하였지만, 후대에는 이미 의지할 곳(법을 깨달은 종장)이 있기 때문에 응당 천 개의 등불이 천 곳을 비추게 된 것이다.
나. 폐단이 되는 것을 바로 밝힘
도서 그러나 법이 오래되니 폐단이 생겨 오류에 빠진 자가 많았기 때문에 경론을 배우는 자들의 의심과 비방 또한 적지 않았다.
② 해와 행에 있어서 시종의 폐단(2항목)
가. 유래를 표하여 일으킴
도서 처음 불타는 돈교頓敎와 점교漸敎를 설하시고, 선禪으로 돈문頓門과 점문漸門을 여니, 돈교·점교 이교와 돈문·점문 이문이 각각 서로 부합한다.
나. 폐단이 되는 것을 바로 밝힘
도서 그러나 지금 강講하는 사람들은 점교의 의미를 지나치게 드러내고, 선禪하는 사람들은 돈종頓宗을 일방적으로 전파하니, 선禪과 강講이 서로 만나는 것이 호胡나라와 월越나라9)처럼 간극이 깊게 된 것이다.
(2) 폐단을 구하는 것을 회통하여 밝힘(2항목)
① 바로 밝힘(3항목)
가. 시종을 표하여 일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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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6_c_01L三通難現勝
009_0206_c_02L達摩未到。古來諸家所解。皆是前四禪
009_0206_c_03L八㝎。諸高僧修之。皆得功用。南嶽天
009_0206_c_04L台。令依三諦之理。修三止三觀。敎義
009_0206_c_05L雖最圓妙。然其趣入門戶次第。亦只是
009_0206_c_06L前之諸禪行相。唯達摩所傳者。頓同佛
009_0206_c_07L體。逈異諸門。
009_0206_c_08L二躡明諸詮二一別明設弊二一
009_0206_c_09L理事本末之弊二一標起由緖
009_0206_c_10L故宗習者。難得其旨。得即成聖。疾證
009_0206_c_11L菩提。失即成邪。速入塗炭。先祖草昧
009_0206_c_12L防失故。且人傳一人。後代已有所憑故。
009_0206_c_13L任千燈千照。
009_0206_c_14L二正明爲弊
009_0206_c_15L洎乎法久成弊。錯謬者多故。經論學人
009_0206_c_16L疑謗亦衆。
009_0206_c_17L二解行始終之弊二一標起由緖
009_0206_c_18L原夫佛說頓敎漸敎。禪開頓門漸門。二
009_0206_c_19L敎二門。各相符契。
009_0206_c_20L二正明爲弊
009_0206_c_21L今講者。偏彰漸義。禪者偏播頓宗。禪
009_0206_c_22L講相逢。胡越之隔。
009_0206_c_23L二通明救弊二一正明三一標起
009_0206_c_24L端兒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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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7_a_01L도서 종밀은 숙생에 어떻게 이 마음을 훈습하였기에 자신은 해탈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속박을 풀어 주려 하고, 법을 위해 자기의 신명을 잊어버리면서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데만 정신이 빠져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원주 또 『정명경淨名經』10)에서 “자신에게 속박이 있으면서 타인의 속박을 풀어 주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다.”11)라고 말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을) 없애려고 하여도 어찌할 수 없으니, 이것은 필시 숙세에 익힌 것을 고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나. 폐단을 구하는 것을 바로 밝힘
도서 사람과 법이 어긋나서 법이 사람의 병이 되는 것을 항상 탄식해 온 까닭에 경·율·논의 소疏를 별도로 찬술하여 계·정·혜의 문을 크게 열고, 돈오를 드러내어 점수를 보완함으로써 조사의 말씀이 불타의 뜻에 부합함을 증명하였다.
다. 잠복된 난문을 해석하여 해결함
도서 의미는 이미 본말을 자세히 보여 주지만 문장이 방대하여 그것을 찾기 어려우니, 배우는 사람은 많지만 뜻을 파악한 자는 적다. 더구나 추구하는 것은 명名과 상相을 따라가는 데 있으니 금과 놋쇠를 누가 분간하겠는가. 헛되이 피로하고 수고로울 뿐이니, 근기(학자들을 가리킴)에 감응함이 보이지 않는다.
② 난문을 해결함(2항목)
가. 타인을 책망하는 것이 자신을 미혹하게 하는 장애가 된다는 것을 해결함12)
도서 불타가 자비를 증장시키는 것이 수행이라고 설하셨지만, 내(규봉 종밀 자신) 스스로 애견愛見을 막기 어려움을 걱정하였다. 마침내 대중을 버리고 입산하여 정과 혜를 균등하게 닦아 전후에 번잡한 생각을 쉰 지가 어느덧 10년이나 되었다.
원주 ‘전후’라고 한 것은 중간에 칙명을 받고 조정에 들어가 2년 동안 성에 머물다가 마침내 물러나 산으로 돌아갈 것을 왕에게 청한 것을 말한다.
도서 미세한 습기의 망념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고요한 지혜에 드러나고, 서로 다른 법과 의미는 텅 빈 마음에 나타난다. 문틈으로 비치는 햇빛에 먼지가 어지럽게 떠돌고, 맑은 연못 속에 만상의 그림자가 분명하게 비친다. 헛되이 침묵만을 지키는 어리석은 선禪과 문자만을 찾아 헤매는 산란하고 얕은 지혜에 어찌 견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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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7_a_01L宗密不知宿生何作。熏得此心。自未解
009_0207_a_02L脫。欲解他縛。爲法忘於軀命。愍人切
009_0207_a_03L於神情。
009_0207_a_04L亦知淨名云。若自有縛。能解他縛。
009_0207_a_05L無有是處。然欲罷不能。驗是宿習難
009_0207_a_06L改故。
009_0207_a_07L二正明救弊
009_0207_a_08L每歎與法差。法爲人病故。別撰經律
009_0207_a_09L論䟽。大開戒㝎慧門。顯頓悟資於漸修。
009_0207_a_10L證師說符於佛意。
009_0207_a_11L三釋通伏難
009_0207_a_12L意旣本末而委示。文乃浩愽而難尋。汎
009_0207_a_13L學雖多。秉志者少。況迹涉名相。誰辨
009_0207_a_14L金鍮。1)徙 [1] 自疲勞。未見機感。
009_0207_a_15L二通難二一通責他迷己之妨
009_0207_a_16L雖佛說悲增是行。而自慮愛見難防。遂
009_0207_a_17L捨衆入山。習㝎均慧。前後息慮。相繼
009_0207_a_18L十年。
009_0207_a_19L云前後者。中間被勑。追入內住城二
009_0207_a_20L年。方却來請歸山也。
009_0207_a_21L微細習情起滅。彰於靜慧。差別法義羅
009_0207_a_22L列。現於空心。虛隙日光。纎埃擾擾。淸
009_0207_a_23L潭水底。影像昭昭。豈比夫空守默之癡
009_0207_a_24L禪。但尋文之狂慧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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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7_b_01L나. 어리석은 선과 산란하고 얕은 지혜를 가진 사람의 비방을 전환하여 해결함
도서 그러나 본래 자기 마음을 깨달아야 모든 가르침을 분간하기 때문에 심종心宗13)에 뜻을 다하고, 모든 가르침을 분간함으로써 마음을 닦을 줄 알기 때문에 교의敎義에 정성을 다한다.
3) 모으는 뜻을 간략히 통함
도서 교敎란 제불 보살이 남긴 경론이고, 선禪이란 모든 선지식이 찬술한 언구와 게송이다. 불경은 광활하여 대천의 팔부중八部衆을 망라하지만, 선게禪偈는 간략하여 이 방면의 한 부류 근기만이 따라간다. 여러 무리를 망라하면 넓고 망망하여 의지하기 어렵지만, (일방一方의) 근기를 따라가면 분명하고 명확하여 사용하는 것이 쉽다. 지금 편찬하여 모으는 뜻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2. 별도로 의미의 형태를 해석함(3항목)(二別釋義相三)1) 이 책을 찬집하는 내력(3항목)
(1) 선전만을 모은 것을 바로 밝힘(2항목)
① 체제와 법식을 질문하여 밝힘(2항목)
가. 선은 불교를 간략하게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질문함
도서 문 모아서 간략하다고 하는 것은, 글은 비록 간략하지만, 마땅히 의미가 두루 갖추어지고 이치가 축약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의미가 적은 글 가운데 있는 것이다. 또 제불의 경설은 모두 법【법체法體】과 의【의리義理】, 인因【삼현·십지·삼십칠품·십바라밀이다.】과 과果【불의 덕용德用】, 신信【법을 믿음】·해解【의미를 앎】·수修【지위를 밟아 인을 닦음】·증證【과를 증득함】을 갖추고 있다. 비록 세계가 각각 다르고 교화하는 뜻이 같지 않지만 가르침을 세우는 데는 이것이 모두 완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화엄경』에서는 매 회會, 매 위位마다 결론에서 시방세계가 다 이 말씀과 같다고 설하는 것이다. 지금 모아 놓은 모든 선가의 선 관련 저술을 보니, 질문에 따라 반대로 질문하고, 돌아서 세우고 돌아서 부순다. 그 순서가 없으니 시종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불교의 요점을 간략하게 취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 불조사의 나타난 본질이 각각 다르다고 답함(3항목)
가)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답 불타가 세상에 나와 가르침을 세우신 것과 조사가 장소에 따라 사람들을 제도한 것은 일의 본질이 각기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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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7_b_01L二轉通癡禪狂慧者之妨
009_0207_b_02L然本因了自心而辨諸敎故。懇情於心
009_0207_b_03L宗。又因辨諸敎而解修心故。虔誠於
009_0207_b_04L敎義。
009_0207_b_05L三畧通集意
009_0207_b_06L敎也者。諸佛菩薩所留經論也。禪也者。
009_0207_b_07L諸善知識所述句偈也。但佛經開張。羅
009_0207_b_08L大千八部之衆。禪偈撮略。就此方一類
009_0207_b_09L之機。羅衆則莾蕩難依。就機則指的易
009_0207_b_10L用。今之纂集。意在斯焉。
009_0207_b_11L二別釋義相三。一纂集由緖三一
009_0207_b_12L正明偏集禪詮二一徵明體式二
009_0207_b_13L一禪非佛敎撮畧問
009_0207_b_14L問。 夫言撮畧者。文雖簡約。義須周足。
009_0207_b_15L理應撮束。多義在少文中。且諸佛說經。
009_0207_b_16L皆具法法
體義義
理因三賢十地三十七
品十波羅蜜也果佛之
德用。信
009_0207_b_17L信
法解解
義修歷位
修因證證
果。雖世界各異。化儀不
009_0207_b_18L同。其所立敎。無不備此。故華嚴每會
009_0207_b_19L每位。皆結云十方世界。悉同此說。今
009_0207_b_20L覽所集諸家禪述。多是隨問反質。旋立
009_0207_b_21L旋破。無其倫序。不見始終。豈得名爲
009_0207_b_22L撮畧佛敎。
009_0207_b_23L二佛祖事體各別答三初摠標
009_0207_b_24L答。佛出世立敎。與師隨處度人。事體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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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7_c_01L나) 별도로 해석함
도서 불교는 만대에 믿고 의지해야 할 가르침이니, 그 이치를 자세히 보여 주어야 하지만, 조사의 가르침은 중생을 즉시 해탈시키는 데 있으니, 의미를 현묘하게 통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현묘하게 통하려면 반드시 언어를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니, 말하자마자 말한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그 흔적이 의식의 바탕에 끊어지고, 이치가 마음의 근원에 드러나면 신해수증信解修證14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성취되고, 경·율·논과 소를 익히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깊이 통달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도 닦음을 물으면, 닦음이 없다고 대답하고, 어떤 사람이 해탈 구하는 것을 물으면, “누가 묶었는가?”라고 도리어 질문한다. 어떤 사람이 성불의 길을 물으면, 본래 범부가 없다 하고, 어떤 사람이 임종할 때에 “마음이 편한가?”라고 물으면, 즉시 본래 일이 없다고 대답한다. 혹 또 이것은 망妄이고 이것은 진眞이며, 이와 같이 마음을 쓰고 이와 같이 업을 쉬어야 한다고 말한다.14)요점을 들어 말하면, 이것은 당시 상황에 따라 그 시대의 근기에 응했을 뿐이니, 아뇩보리阿耨菩提라고 할 수 있는 정해진 법이 어떻게 있겠으며, 마하반야摩訶般若라고 할 만한 정해진 법이 어떻게 있겠는가. 단지 사념思念에 생각할 것이 없고, 뜻에 해야 할 것이 없으며, 마음에 생겨나는 것이 없고, 지혜에 머무는 일이 없으면, 곧 진실한 믿음이고 진실한 앎이며 진실한 수행이고 진실한 증득이다. 자신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명칭과 교의에 집착하여 불도를 구하려 하는 자여, 어찌 밝게 보지 못하는가. 글자를 알아 경을 보는 것이 본래 증오證悟가 아니니, 글을 풀이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오직 탐심과 진심, 사견만 치성하게 하는 것이다. 더구나 아난阿難은 오랜 세월 많이 듣고 모든 선법을 지녀도 성과聖果에 오르지 못하다가, 허망한 인연을 쉬고 스스로에게 광명을 돌이켜 비추는 순간 무생無生을 증득하지 않았는가.
다) 결론으로 답함
도서 가르침을 펴는 이익과 사람을 제도하는 방편에는 각각 그 이유가 있으니, 문자를 따르지만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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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7_c_01L別。
009_0207_c_02L二別釋
009_0207_c_03L佛敎爲萬代依憑。理須委示。師訓在即
009_0207_c_04L時度脫。意使玄通。玄通必在忘言故。言
009_0207_c_05L下不留其迹。迹絕於意地。理顯於心源。
009_0207_c_06L即信解修證。不爲而自然成就。經律論
009_0207_c_07L䟽。不習而自然冥通。故有問修道。即
009_0207_c_08L答以無修。有問求解脫。即反質誰縛。
009_0207_c_09L有問成佛之路。即云本無凡夫。有問臨
009_0207_c_10L終安心。即云本來無事。或亦云此是妄
009_0207_c_11L此是眞。如是用心。如是息業。擧要而
009_0207_c_12L言。但是隨當時事。應當時機。何有㝎
009_0207_c_13L法。名阿耨菩提。豈有㝎行。名摩訶般
009_0207_c_14L若。但得情無所念。意無所爲。心無所
009_0207_c_15L生。慧無所住。即眞信眞解眞修眞證也。
009_0207_c_16L若不了自心。但執名敎。欲求佛道者。
009_0207_c_17L豈不現見。識字看經。元不證悟。銷文
009_0207_c_18L釋義。唯熾貪嗔邪見。況阿難多聞摠持
009_0207_c_19L積歲。不登聖果。息緣返照暫時。即證
009_0207_c_20L無生。
009_0207_c_21L三結答
009_0207_c_22L即知垂敎之益。度人之方。各有其由。
009_0207_c_23L不應於文字而貴也。
009_0207_c_24L「徙」當作「徒」{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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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8_a_01L② 편찬하여 모은 것을 설명함(2항목)
가. 질문
도서 문 이미 거듭하여 뜻을 얻었으니, 문자에 매달리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모든 구게句偈를 모아 편찬하는가?
나. 대답
도서 답 모아 편찬하는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얻었지만 번거로운 생각을 끊지 못했거나, 선지식을 만나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깨달음을 얻은 자가 그것을 보게 하여 모든 스승들의 말뜻을 두루 알고 그 마음을 통하여 다른 생각을 끊게 하려는 것이다. 둘째, 깨달아 안 사람이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고자 할 때, 그 견문을 넓히고 방편을 증장시켜 대중을 받아들이고 문답으로 가르치는 법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위에서 “1천 세계에 펼치면 넓고 망망하여 의지하기 어렵지만, 일방을 따르면 분명하고 명확하여 사용하기 쉽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2) 겸하여 교의를 수용하도록 가까이서 해결해 줌
도서 그러나 그것(선문을 모아 편찬하는 것)은 단지 언어를 잊는 문에 바로 이르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겸하여 가르침을 베푸는 일을 돕는 이로움이 있다. 아울러 뜻이 부처에 계합함은 물론 글이 경전에 맞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글은 유사한 것 같지만 (뜻이) 어긋나서 경전에 맞도록 한다는 것은 실로 쉽지 않다. 일대장경을 대승과 소승, 권교權敎와 실교實敎,15) 요의了義와 불요의不了義16)로 판석判釋하여야 비로소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될 때) 모든 종파의 선문이 각각 종지가 바로 서서 불타의 뜻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대장경의 경론을 통합하면 3종種이고, 선문의 말과 가르침도 통합하면 또한 마찬가지로 3종宗이 된다.【각각 아래의 글에서 나열하여 해석하였다.】 이들을 배대할 때 서로 부합해야만 비로소 원만한 견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3) 별도로 찬술한 삼장의 글을 전환하여 소통함(2항목)
① 질문
도서 문 지금 집성한 선의 전적은 경론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② 대답함(2항목)
가. 총체적으로 대답함
도서 답 열 가지 이유가 있다. 반드시 경론의 방편과 실제를 알아서 모든 선禪의 시비를 가리고, 선의 마음에 대한 성상性相을 알아서 경론의 이사理事를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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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8_a_01L二釋成纂集二初問
009_0208_a_02L問。旣重得意。不貴專文。即何必纂集此
009_0208_a_03L諸句偈。
009_0208_a_04L二答
009_0208_a_05L答。集有二意。一雖有師授。而悟不決宂。
009_0208_a_06L又不逢善知識。處處勘契者。令覽之
009_0208_a_07L遍見諸師言意。以通其心。以絕餘念。
009_0208_a_08L二爲悟解了者。欲爲乂師。令廣其見聞
009_0208_a_09L增其善巧。解攝衆答問敎授也。即上云
009_0208_a_10L羅千界莾蕩難依。就一方指的易用是
009_0208_a_11L也。
009_0208_a_12L二傍通兼收敎義
009_0208_a_13L然又非直資忘言之門。亦兼裨垂敎之
009_0208_a_14L益。非但令意符於佛。亦欲使文合於經。
009_0208_a_15L旣文似乘而令合。實爲不易。須判一藏
009_0208_a_16L經大小乘權實理。了義不了義。方可印
009_0208_a_17L㝎。諸宗禪門。各有旨趣。不乘佛意也。
009_0208_a_18L謂一藏經論。統唯三種。禪門言敎。亦統
009_0208_a_19L唯三宗各在下
文列釋。配對相符。方成圓見。
009_0208_a_20L三轉通別撰三藏文二初問
009_0208_a_21L問。 今集禪詮。何關經論。
009_0208_a_22L二答二初摠答
009_0208_a_23L答。 有十所以。須知經論權實。方辨諸禪
009_0208_a_24L是非。又須識禪心性相。方解經論理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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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8_b_01L나. 개별적으로 대답함17)(2항목)
가) 장의 명칭을 표시하여 나열함
도서 첫째, 스승에게는 본말本末이 있다. 근본에 의거하여 지말枝末을 인정하기 때문이다.둘째, 선에는 여러 종파가 있다. 서로 어긋나고 막히기 때문이다.셋째, 경은 먹줄과 같다. 법도에 맞게 삿됨과 바름을 반듯하게 정하기 때문이다.넷째, 경에는 방편과 실제가 있다. 요의了義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다섯째, 양量에는 세 가지가 있다.18) 서로 맞추면 같아야 하는 까닭이다.19)여섯째, 의심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전적으로 통하여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일곱째, 법法과 의義가 같지 않다. 반드시 분별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여덟째, 마음은 성상性相에 통한다. 명칭은 같지만 뜻이 다르기 때문이다.아홉째, 오悟와 수修, 돈頓과 점漸이 있다. 말은 유사하지만 (뜻은) 어긋나기 때문이다.열째, 스승은 방편을 전수한다. 마땅히 약과 병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 문장에 의거하여 그에 따라 해석함(10항목)
(가) 첫째 글(3항목)
㉮ 거듭 표함
도서 첫 번째 말한 “스승에게는 본말이 있다.”라고 한 것에 대하여 설명한다.
㉯ 분별하여 밝힘(2항목)
ㄱ. 옛것을 들어 겸하여 전함(2항목)
ㄱ) 바로 밝힘
도서 모든 종파의 시조는 석가釋迦이다. 경은 부처의 말씀이고, 선은 부처의 뜻이기 때문에 모든 부처의 마음과 말은 반드시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여러 조사가 서로 이어 온 근본은 부처가 친히 부촉하신 것이고, 보살이 논을 지은 시말은 오직 불경을 홍포하기 위함이다. 더구나 가섭으로부터 우파국다(毱多)20)에 이르기까지 널리 전한 것이 모두 삼장三藏을 겸한 것이다. 제다가提多迦21) 이래로 승려들이 쟁론을 일으킴으로써 율律과 교敎가 별도로 유행하게 되었고 계빈국罽賔國22) 이후 왕의 난으로 인해 경론이 분화하게 되었다. 중간에 출현한 마명馬鳴·용수龍樹가 모두 조사祖師이지만, 논을 짓고 경을 해석한 것이 수천만 게송에 이른다. 시기를 보아 중생을 교화함에 정해진 형식이 없었으니, 강講하는 자가 선禪을 훼손하고 선하는 자가 강을 훼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ㄴ) 난문을 해결함
도서 달마가 인도에서 법을 받아 중국에까지 이르러 이곳의 학인들을 보니, 법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이들은 오직 명칭과 법수로 알음알이를 삼고 차별 현상으로 행을 삼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달이 손가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법이 나의 마음이기 때문에 단지 마음을 마음으로 전하여 -
009_0208_b_01L二別答二初標1)烈 [1] 章名
009_0208_b_02L一師有本末。憑本印末故。二禪有諸宗。
009_0208_b_03L互相違阻故。三經如繩墨。楷㝎邪正故。
009_0208_b_04L四經有權實。須依了義故。五量有三種。
009_0208_b_05L勘契須同故。六疑有多般。須具通決故。
009_0208_b_06L七法義不同。善須辨識故。八心通性相。
009_0208_b_07L名同義別故。九悟修頓漸。言似違反故。
009_0208_b_08L十師授方便。須識藥病故。
009_0208_b_09L二依章隨釋文十初文三一標牒
009_0208_b_10L初言師有本末者。
009_0208_b_11L二辨明二一擧古兼傳二一正明
009_0208_b_12L謂諸宗始祖。即是釋迦。經是佛語。禪
009_0208_b_13L是佛意。諸佛心口。必不相違。諸祖相
009_0208_b_14L承根本。是佛親付。菩薩造論始末。唯
009_0208_b_15L弘佛經。況迦葉乃至毱多。弘傳皆兼三
009_0208_b_16L藏。提多迦已下。因僧起諍。律敎別行
009_0208_b_17L罽賔國已來。因王難。經論分化。中間
009_0208_b_18L馬鳴龍樹悉是祖師。造論釋經數千
009_0208_b_19L萬偈。觀風化物無㝎事儀。未有講者
009_0208_b_20L毁禪。禪者毁講。
009_0208_b_21L二通難
009_0208_b_22L達摩受法天竺。躬至中華。見此方學人
009_0208_b_23L多未得法。唯以名數爲解。以事相爲行。
009_0208_b_24L欲令知月不在指。法是我心故。但以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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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8_c_01L문자를 세우지 않는다고 한다. 종지宗旨를 드러내어 집착을 깨뜨리려고 이 말(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이지, 문자를 떠나 해탈을 설한다는 말이 아니다. 따라서 뜻을 얻은 사람을 가르칠 때, 『금강경』과 『능가경』을 자주 찬탄하면서 이 두 경이 내 마음의 요체要諦라고 말했던 것이다.
ㄴ. 지금의 미혹한 집착을 꾸짖음
도서 요즈음 제자들은 피차가 근원에 어두워 마음을 닦는 자는 경론을 다른 종宗이라 하고, 강설하는 사람은 선문禪門을 다른 법이라고 한다. 이들은 인과因果와 수증修證을 말하는 것을 듣고 경론 학자에 속한다고 추측하여 수증이 선문의 본래 일인 줄 알지 못하며, 마음이 곧 부처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억측으로 하는 선에 속한다고 추단하여 마음과 부처가 바로 경론의 본의인 줄 알지 못한다.
원주 어떤 사람이 선사가 어떻게 강설을 할 수가 있느냐고 힐난하여 물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23)
㉰ 결론으로 대답함
도서 지금 만약 권교權敎와 실교實敎라는 경론으로써 깊고 얕은 선종에 배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교敎를 가지고 마음을 관조하며 마음으로 교를 알 수 있겠는가.
(나) 둘째 글(3항목)
㉮ 문장을 거듭하여 분간하고 해석함
도서 둘째, “선에는 여러 종파가 있어 상호 어긋난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 가려 밝힘(2항목)
ㄱ. 모든 종파를 취하여 서로 어긋남을 보여 줌
도서 지금 기술한 것을 모은 것이 거의 백가百家에 이르지만 종지宗旨와 의미가 다른 것을 열 종류로 나누면, 강서江西·하택荷澤·북수北秀·남선南侁·우두牛頭·석두石頭·보당保唐·선십宣什·조나稠那·천태天台24) 등 십가十家가 있다. 모두 다 통달하여 뜻에는 어긋나지 않으나, 종지를 세우고 법을 전하는 데는 서로 어긋나고 막힌다.어떤 사람은 공空으로 근본을 삼고, 어떤 사람은 지해知解로 근원을 삼으며, 어떤 사람은 고요함(寂默)을 참됨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가고 앉는 모든 행위가 옳다 하고, 어떤 사람은 아침저녁 분별로 만들어 낸 일체를 모두 헛된 것이라 하며, -
009_0208_c_01L傳心。不立文字。顯宗破執。故有斯言。
009_0208_c_02L非離文字說解脫也。故敎授得意之者。
009_0208_c_03L即頻讃金剛楞伽云。此二經是我心要。
009_0208_c_04L二責今迷執
009_0208_c_05L今時弟子。彼此迷源。修心者。以經論爲
009_0208_c_06L別宗。講說者。以禪門爲別法。聞談因果
009_0208_c_07L修證。便推屬經論之家。不知修證。正
009_0208_c_08L是禪門之本事。聞說即心即佛。便推屬
009_0208_c_09L胸襟之禪。不知心佛。正是經論之本意。
009_0208_c_10L有人難云。禪師何得講說。余今此答
009_0208_c_11L也。
009_0208_c_12L三結答
009_0208_c_13L今若不以權實經論。對配深淺禪宗。焉
009_0208_c_14L得以敎照心。以心解敎。
009_0208_c_15L二中文三初牒章卞釋
009_0208_c_16L二禪有諸宗。互相違反者。
009_0208_c_17L二卞明二一約諸宗示違反
009_0208_c_18L今集所述。殆且百家。宗義別者。猶將
009_0208_c_19L十室。謂江西荷澤。北秀南侁。牛頭石
009_0208_c_20L頭。保唐宣什。及稠那天台等。雖皆通
009_0208_c_21L達。情無所違。而立宗傳法。互相乘阻。
009_0208_c_22L有以空爲本。有以知爲源。有云寂默方
009_0208_c_23L眞。有云行坐皆是。有云現今朝暮分別
009_0208_c_24L「烈」當作「列」{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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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9_a_01L어떤 사람은 분별이 만들어 낸 일체를 모두 참된 것이라 한다. 어떤 이는 일체의 공행이 모두 있다 하고, 어떤 이는 부처까지도 함께 없다고 한다. 어떤 이는 그 뜻대로 놓아두어야 한다 하고, 어떤 이는 그 마음을 묶어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경과 율로 의지할 바를 삼아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경과 율이 도에 장애가 된다고 한다. (자기 주장을) 가볍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말하며, 자신의 종파는 틀림없이 홍포하고 나머지 무리는 철저히 폄훼한다.
ㄴ. 후학을 들어 화해할 것을 밝힘(2항목)
ㄱ) 이유를 바로 밝힘
도서 후학이 말에 집착하고 뜻에 어두워 견해가 서로 어긋나니, 어찌 화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ㄴ) 질문과 대답으로 널리 밝힘
문 옳은 것은 받아들이고 옳지 않은 것은 가려내면 되는데, 어찌하여 그렇게 절실하게 화회해야만 하는가?답 혹은 공空, 혹은 유有, 혹은 성性, 혹은 상相이라 하지만 다 어긋나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각자가 모두 자기편은 옳다 하고, 타인은 배척하여 그르다고 하여 피차 (그것을) 확실하게 하기 때문에 화회가 필요한 것이다.문 이미 모두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각기 확정한 대로 두면 될 텐데 왜 반드시 화회해야 하는가?답 궁극의 도는 하나로 돌아가고 분명한 뜻은 둘이 아니니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궁극의 도는 한쪽 끝이 아니고 요의了義는 치우치지 않으니, 한편만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로 화회하여 모두를 원만 미묘하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문 얼음을 불에 넣으면 화력이 온전하지 못하고 창으로 방패를 찌르면 결국 둘 다 승리하지 못한다. 모든 종파를 모았으나 이미 서로 어긋났기 때문에 하나가 옳다고 하면 하나는 그르다고 한다. 어떻게 하여 모두를 미묘하게 화회하겠는가?답 대답한다. 그 법은 다 그대로 두고 병통만을 다 버리는 것이 미묘한 것이다. 법이 사람을 따르면 어렵고 사람이 법을 따르면 쉽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주로 망정을 따라 상호 집착하고 집착하면 서로 어긋나게 된다. 얼음과 불이 서로 만나고 창과 방패가 서로 대적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법은 본래 이치와 합하여 서로 통하게 되고 통하면 서로 순응한다. 또 얼음이 저절로 녹으면 모두 물이 되고, 금가락지와 금팔찌가 녹으면 다 금이 되므로 쉽다고 하는 것이다. 요점을 말하면, 한편으로 치우치는 것은 모두 그릇되지만, 화회하는 것은 다 옳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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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9_a_01L爲作。一切皆妄。有云分別爲作。一切
009_0209_a_02L皆眞。有萬行悉存。有兼佛亦泯。有放
009_0209_a_03L任其志。有拘束其心。有以經律爲所依。
009_0209_a_04L有以經律爲障道。非唯汎語。而乃確言。
009_0209_a_05L確弘其宗。確毁餘類。
009_0209_a_06L二擧後學明和會二一正明所以
009_0209_a_07L後學執言迷意。情見乘張。爭不和會也。
009_0209_a_08L二問答廣明
009_0209_a_09L問。 是者即收。非者即揀。何須委曲和會。
009_0209_a_10L答。 或空或有。或性或相。悉非邪僻。但
009_0209_a_11L緣各皆黨已爲是。斥彼爲非。彼此確㝎
009_0209_a_12L故須和會。問。 旣皆非邪。即各任確㝎。
009_0209_a_13L何必會之。答。 至道歸一。精義無二。不
009_0209_a_14L應兩存。至道非邊。了義不偏。不應單
009_0209_a_15L取。故必須會之爲一。令皆圓妙。問。 以
009_0209_a_16L氷雜火。勢不俱全。將矛刺盾。功不雙
009_0209_a_17L勝。諸宗所集。旣互相違。一是則一非。
009_0209_a_18L如何會令皆妙。答。 俱存其法。俱遣其病。
009_0209_a_19L即皆妙也。謂以法就人即難。以人就法
009_0209_a_20L即易。人多隨情互執。執即相違。誠如
009_0209_a_21L氷火相和。矛盾相敵故難也。法本稱
009_0209_a_22L理互通。通即互順。自然凝流皆水。鐶
009_0209_a_23L釧皆金故易也。擧要而言。局之即皆非。
009_0209_a_24L會之即皆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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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9_b_01L㉰ 따르고 빼앗아 결론으로 대답함
도서 만일 불타의 말씀으로 각각 그 뜻을 보여 주고 각각 장점을 취하여 통합한 3종宗을 3교敎에 배대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화회하여 일대 선교방편을 삼아 미묘한 법문을 함께 성취하며, 각자가 망정妄情을 잊고 함께 지혜의 바다로 돌아가겠는가.
원주 오직 불타가 설한 것만이 다르면서 같기 때문에 불경에 의거, 세 가지를 화회하여 하나가 되도록 한 것이다.
(다) 셋째 글(3항목)
㉮ 문장을 거듭하고 표하여 밝힘
도서 셋째, “경은 먹줄과 같다. 삿됨과 바른 것을 반듯하게 정한다.”라는 것을 살펴본다.
㉯ 표한 것에 의거하여 분별하고 해석함
도서 먹줄이 도구는 아니지만, 장인은 반드시 먹줄에 의지하여 작업한다. 경론이 선禪은 아니지만 선을 전하는 자는 반드시 경론으로 그 기준을 삼는다. 중근이나 하근은 단지 스승에게만 의지하기 때문에 스승이 근기를 보아 그 사람에 맞도록 가르쳐 준다. 상근의 무리가 깨달음이 비록 원통圓通하여도 부처의 말씀을 아직 궁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부처의 견해와 같다고 하겠는가.
㉰ 문답으로 결론지어 말함
문 가는 곳마다 다 불경이 있어 배우는 사람들이 외우고 읽어 자세히 알고 있다. 지금 선의 요지를 모으는 데 구태여 경을 분간할 필요가 있는가?답 이 뜻은 그 다음의 글에 있으니, 그것이 곧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글에서는 말한다.
(라) 넷째 글(2항목)
㉮ 문장을 거듭하여 분별하고 해석함
도서 넷째, “경에는 방편과 실제가 있다. 반드시 요의了義에 의지해야 한다.”라는 것에 대해 말해 본다. 불타가 모든 경전을 설함에 있어서 자신의 뜻에 따르는 말이 있고, 다른 사람의 뜻에 따르는 말이 있으며, 궁극적인 이치에 맞추기도 하고, 당시의 근기를 따르기도 한다. 성性과 상相을 드러내기도 하고, 돈점頓漸과 대소를 설하기도 하며, 요의了義와 불요의不了義를 설하기도 한다. 글이 혹 체성과 마주쳐서 어긋나기도 하지만, 의미는 반드시 원만하고 형통하여 걸림이 없다. 이와 같이 경권이 무한히 많으니, 어떻게 그 주요 의미를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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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9_b_01L三縱奪結答
009_0209_b_02L若不以佛語。各示其意。各取其長。統
009_0209_b_03L爲三宗。對於三敎。則何以會爲一大善
009_0209_b_04L巧。俱成要妙法門。各忘其情。同歸智海。
009_0209_b_05L唯佛所說。即異而同故。約佛經會三
009_0209_b_06L爲一。
009_0209_b_07L三中文三一標明牒章
009_0209_b_08L三經如繩墨。楷㝎邪正者。
009_0209_b_09L二依標辨釋
009_0209_b_10L繩墨非巧。工巧者。必以繩墨爲憑。經
009_0209_b_11L論非禪。傳禪者。必以經論爲准。中下
009_0209_b_12L根者。但可依師。師自觀根。隨分指授。
009_0209_b_13L上根之軰。悟雖圓通。未窮佛言。何同
009_0209_b_14L佛見。
009_0209_b_15L三問答結說
009_0209_b_16L問。所在皆有佛經。任學者轉讀勘會。今
009_0209_b_17L集禪要。何必辨經。答。此意即其次之
009_0209_b_18L文。便是答此問也。文云。 [1]
009_0209_b_19L四中文二初牒章辨釋
009_0209_b_20L四經有權實須依了義者。謂佛說諸經
009_0209_b_21L有隨自意語。有隨他意語。有稱畢竟之
009_0209_b_22L理。有隨當時之機。有詮性詮相。有頓
009_0209_b_23L漸大小。有了義不了義。文或敵體相違。
009_0209_b_24L義必圓通無礙。龍藏浩瀚。何見指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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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9_c_01L㉯ 결론으로 답함
도서 그러므로 이제 단지 20여 지紙를 가지고 그것을 한꺼번에 선택 결정하여 일시에 부처의 뜻을 원만히 보게 하였으니, 그 뜻을 본 후에 일대장경을 자세히 살핀다면 구절구절마다 종지를 알 것이다.25)
(마) 다섯째 글(3항목)
㉮ 거듭 표함
도서 다섯째, “양量에는 세 가지가 있으나, 따져 보면 반드시 같다.”라는 말에 대해 살펴본다.
㉯ 분별하여 해석함
도서 서역의 모든 현성賢聖들이 법과 의미를 파악하는 데 모두 삼량三量을 세웠다. 첫째는 비량比量이고, 둘째는 현량見量이며, 셋째는 불언량佛言量이다. 양量이란 측정하는 것으로서 되(升)나 말(㪷) 같은 것을 말한다. 즉 물건을 측정하고 해당 단위를 정하는 것이다. 비량이란 원인을 비유로 추측하는 것을 말한다. 멀리 연기를 보고 거기에는 반드시 불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비록 불이 보이지 않지만 (불이 있다는 것이) 거짓이 아니다. 현량이란 스스로 눈앞에 드러나서 미루어 생각하지 않아도 그대로 확실한 것을 가리킨다. 불언량이란 모든 경전으로 정해진 것이다.“따져 보면 반드시 같다.”라는 것은 어떤 말인가. 만일 부처의 말씀에만 의거하고, 스스로 증득하여 깨달은 것을 비교 측정하지 않는다면, 단지 평범한 믿음일 뿐이니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만약 단지 현량만을 취하여 자신의 견해를 확고히 하고 부처의 말씀(경전)에 맞추어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삿된지 바른지를 알겠는가. 외도들도 그들이 집착하는 이치를 스스로 알고 그것을 닦아 공용을 얻음으로써 자신이 주인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것이 삿된 것인지를 알겠는가.만약 단지 비량만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성스런 가르침과 자신의 견해도 없으니, 어디에 의거하여 비교 측정하고, 어떤 법을 비교하여 헤아리겠는가.
㉰ 결론으로 답함
도서 그러므로 삼량을 따져 보면, 반드시 같아야 비로소 결정이 이루어진다. 선종에도 이미 현량과 비량의 이량二量이 있지만, 지금 다시 경론으로써 그것을 인정하고 있으니, 삼량三量이 구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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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9_c_01L二結答
009_0209_c_02L故今但以二十餘紙。都決擇之。令一時
009_0209_c_03L圓見佛意。見佛意後。備尋一藏。即句
009_0209_c_04L句知宗。
009_0209_c_05L五中文三一標牒
009_0209_c_06L五量有三種。 勘契須同者。
009_0209_c_07L二辨釋
009_0209_c_08L西域諸賢聖所解法義。皆以三量爲㝎。
009_0209_c_09L一比量。二見量。三佛言量。量者。量度
009_0209_c_10L如升㪷。量物知㝎也。比量者。以因由
009_0209_c_11L譬喩比度也。如遠見烟。必知有火。雖
009_0209_c_12L不見火。亦非虛妄。見量者。親自現見
009_0209_c_13L不假推度。自然㝎也。佛言量者。以諸
009_0209_c_14L經爲㝎也。勘契須同者。若但憑佛語。
009_0209_c_15L不自比度證悟者。只是汎信。於己未益。
009_0209_c_16L若但取現量。自見爲㝎。不勘佛語。焉
009_0209_c_17L知邪正。外道亦親見所執之理。修之
009_0209_c_18L亦得功用。自謂爲主。豈知是邪。若但
009_0209_c_19L用比量者。旣無聖敎。及自所見。是約
009_0209_c_20L何比度。比度何法。
009_0209_c_21L三結答
009_0209_c_22L故須三量勘同。方爲決㝎。禪宗已多有
009_0209_c_23L現比二量。今更以經論印之。則三量備
009_0209_c_24L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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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0_a_01L(바) 여섯째 글(3항목)
㉮ 거듭 표함
도서 여섯째, “의심에 여러 가지가 있으니 통하여 해결해야 한다.”라는 말에 대해 살펴본다.
㉯ 나열하여 질문함
도서 수십 년 동안 경론에 능한 대덕이 빈번히 나에게 질문한 것은 다음과 같다.“사선四禪과 팔정八定은 모두 상계上界에 있고, 이 세계(界 : 욕계)에는 선禪이 없다. 선을 닦는다는 것은 반드시 경론에 의거하여 상계의 선정을 끌어와서 이 계에서 닦고 익히는 것이다. 따라서 선을 닦아 성취한 것은 모두 사선과 팔정이다. 모든 가르침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다 밝혔는데, 어찌하여 이것을 떠나 별도로 선문禪門을 말하는가. 이미 경론에 의거하지 않았으니, 이는 사도邪道임이 분명하다고 하겠다.”또 어떤 사람이 물었다.“경에는 점차적으로 아승기겁을 닦아야 보리를 증득한다고 했는데, 선은 단번에 깨달아 찰나에 정각을 이룬다고 하니, 경은 부처의 말씀이고, 선은 스님의 말씀이다. 부처님을 거스르고 스님을 존중하니 심히 의심스럽다.”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선문의 요지는 옳고 그른 것이 없고 원망과 친함도 다 끊어 버리며 성내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는데, 왜 남방의 혜능과 북방의 신수가 물과 불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하택과 홍주는 삼별과 상별(參商26)처럼 간격이 있는가.”또 어떤 사람이 물었다.“6대에 걸쳐 스승과 제자가 선법을 전하면서 모두가 말하기를, ‘안으로 비밀스러운 말을 가르쳐 주고 밖으로 의발을 전수하는 것이니, 의발과 법을 갖추어야 인가認可에 부합한다’라고 하였다. 조계 이후에 이런 일을 들어 보지 못했으니, 요즈음 선문禪門을 열고 사람을 교화하는 자들이 비밀스러운 말을 설하는가. 비밀한 말을 설하지 않는다면 전하는 것은 달마의 법이 아니고, 설한다면 듣는 사람이 모두 계합하여 의발을 전해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26)또 어떤 선문의 대덕이 물었다.“달마가 마음을 전함에 문자를 세우지 않았는데, 그대는 왜 앞의 조사를 위배하여 논을 강설하고 경전을 전하는가.”가까이에서 다시 물었다.“정명淨明(유마 거사)도 이미 정좌하는 것을 나무랐고, 하택도 언제나 마음을 한데 모으는 것을 배척하였으며, 조계도 사람이 결가부좌하는 것을 보고 일찍이 스스로 주장자로 내리쳐 일으켰다. 지금 그대는 가르치고 지도하면서 좌선을 권한다고 듣고 있다. 선禪 하는 암자가 산속 곳곳에 널려 있지만 -
009_0210_a_01L六中文三一標牒
009_0210_a_02L六疑有多般須具通決者。
009_0210_a_03L二列問
009_0210_a_04L數十年中。頻有經論大德。問余曰。四
009_0210_a_05L禪八㝎。皆在上界。此界無禪。凡修禪
009_0210_a_06L者。須依經論。引取上界禪定。而於此
009_0210_a_07L界修習。修習成者。皆是彼禪。諸敎具
009_0210_a_08L明。無出此者。如何離此。別說禪門。旣
009_0210_a_09L不依經論。即是邪道。又有問曰。經云。
009_0210_a_10L漸修祗刼。方證菩提。禪稱頓悟。刹那
009_0210_a_11L便成正覺。經是佛語。禪是僧言。違佛
009_0210_a_12L遵僧。切疑未可。又有問曰。禪門要旨。
009_0210_a_13L無是無非。塗割寃親。不嗔不喜。何以
009_0210_a_14L南能北秀。水火之嫌。荷澤洪州。參商
009_0210_a_15L之隙。又有問曰。六代師資。傳授禪法。
009_0210_a_16L皆云內授密語。外傳信衣。衣法相資
009_0210_a_17L以爲符印。曹溪已後。不聞此事。未審
009_0210_a_18L今時開禪化人。說密語否。不說則所傳
009_0210_a_19L者。非達摩之法。說則聞者。盡合得衣。
009_0210_a_20L又有禪德問曰。達摩傳心。不立文字。
009_0210_a_21L汝何違背先祖。講論傳經。近復問曰。
009_0210_a_22L淨名已呵宴坐。荷澤每斥凝心。曹溪見
009_0210_a_23L人結跏。曾自將杖打起。今聞汝每因敎
009_0210_a_24L誡。即勸坐禪。禪庵羅列。遍於巖壑。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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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0_b_01L종지에 위배되고 조사의 도에 어긋나지 않는지, 나는 정말로 의심스럽다.”
㉰ 결론으로 답함
도서 내가 비록 때에 따라 각각 이미 대답했으나, 의심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아 (설명을) 듣지 못한 자들을 딱하게 여겨 왔다. 더구나 힐난하여 질문하는 자는 생각이 치우치고 집착이 각각 달라 피차가 서로 어긋나니, 갑의 의심이 해결되면 을의 병이 다시 더 커지게 되었다.그러므로 삼문三門의 이치를 열어 일대장경을 평가함으로써 앞에서 제기한 의문을 총체적으로 답하여 확연히 통하도록 하겠다.
원주 아래에 서로 해당되는 글의 의미에 따라 하나하나 각주로 지적하였으니, 그것은 이 모든 난문에 대답한 것이다. 대답한 곳을 보고자 하면, 반드시 주석을 살펴보라.
(사) 일곱째 글(3항목)
㉮ 거듭 표함
도서 일곱째, “법과 의義가 같지 않으니, 식을 잘 분별한다.”라는 것을 살펴본다. 제법의 성상을 밝혀 알려고 한다면 먼저 법과 의미를 분간해야 한다. 법에 의하여 의미를 해석하면 의미가 분명하고, 의미로써 법을 나타내면 법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 개별적으로 해석함(2항목)
ㄱ. 법에 나아가 법의 의미를 밝힘
도서 지금 세상일에 의해 그것을 밝혀 보자. 진금이 장인 등의 솜씨에 따라 귀고리·비녀·주발·술잔 등 여러 가지 기물로 만들어지지만, 금의 성질은 절대로 동이나 철로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금은 법이고, ‘변하지 않는 것과 연緣을 따르는 것’은 의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무엇이 연을 따르는 것이고, 무엇이 변하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단지 둘을 합한 것이 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비유하면 일대장경과 논서의 의미와 이치는 단지 일심一心을 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이 곧 법이고 일체가 의미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무량한 의미는 일법一法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나 그것을 통합하면 오직 두 종류뿐이니, 첫째는 변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연을 따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모든 경전은 이 마음이 미오迷悟의 연을 따라 더러움과 깨끗함, 범상함과 성스러움, 번뇌와 보리, 유루와 무루 등을 이룬다고 설한다. 또한 이 마음이 깨끗하거나 더럽거나 등이라고 말을 할 때에도, 본래 변하지 않고 항상 고요하여 -
009_0210_b_01L宗違祖。吾切疑焉。
009_0210_b_02L三結答
009_0210_b_03L余雖隨時。各已酬對。然疑者千萬。愍
009_0210_b_04L其未聞。況所難之者。情皆偏執。所執
009_0210_b_05L各異。彼此互違。因決甲疑。復增乙病。
009_0210_b_06L故須開三門義。評一藏經。摠答前疑
009_0210_b_07L無不通徹。
009_0210_b_08L下隨相當文義。一一注脚指之。答此
009_0210_b_09L諸難。欲見答處。須檢注文。
009_0210_b_10L七中文三初牒標
009_0210_b_11L七法義不同。善須辨識者。凡欲明解諸
009_0210_b_12L法性相。先須辨得法義。依法解義。義
009_0210_b_13L即分明。以義詮法。法即顯著。
009_0210_b_14L二別釋二一就法明法義
009_0210_b_15L今且約世物明之。如眞金隨工匠等緣。
009_0210_b_16L作鐶釧椀盞種種器物。金性必不變爲
009_0210_b_17L銅鐵。金即是法。不變隨緣是義。設有
009_0210_b_18L人問。說何物不變。何物隨緣。只合答
009_0210_b_19L云金也。以喩一藏經論義理。只是說心。
009_0210_b_20L心即是法。一切是義。故經云。無量義
009_0210_b_21L者。從一法生。然無量義。統唯二種。一
009_0210_b_22L不變。二隨緣。諸經只說此心隨迷悟緣。
009_0210_b_23L成垢淨凡聖煩惱菩提有漏無漏等。亦
009_0210_b_24L只說此心垢淨等時。元來不變。常自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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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0_c_01L진실하고 여여하다는 등등이라고 설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무슨 법이 변하지 않고 무슨 법이 연을 따르는가라고 물으면, 두 질문에 대해 단지 합하여 마음이라고 웃으면서 대답할 것이다.
ㄴ. 사람을 근거로 잘못에 집착함을 밝힘
도서 변하지 않는 것은 성性이고 연을 따르는 것은 상相이다. 성상은 모두 일심상一心上의 의미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성과 상 두 종파가 서로 비난하는 것은 단지 진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마음 심心 자를 듣고 팔식八識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팔식을 알지 못하는 말이다. 팔식은 단지 진심상에 연을 따르는 의미일 뿐이다. 그러므로 마명보살이 일심으로 법을 삼고, 진여와 생멸 이문으로 의미를 삼았다. 이에 논에서 “이 마음에 의해 마하연의 의미를 드러낸다.”라고 한 것이다. 심진여心眞如는 본성本性의 체體이고, 심생멸心生滅은 상相과 용用이다. 단지 이 마음이 허망하지 않기 때문에 진眞이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여如라고 말할 뿐이다. 이 때문에 논에서 일일이 심진여·심생멸이라고 하는 것이다.요즈음 선禪 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의미를 많이 모르기 때문에 단지 마음을 선이라 부르고, 강설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법을 모르기 때문에 단지 명칭을 가지고 의미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명칭을 따라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에 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마음이란 말을 듣고 얕다고 말하고, 성性이란 말을 듣고 깊다고도 한다. 혹은 성으로 법을 삼기도 하고, 마음으로 의미를 삼기도 하는 것이다.
㉰ 결론으로 답함
도서 그러므로 세 종파와 경론을 서로 상대하여 조명하면, 법과 의미가 드러나서 일심으로 돌아갈 것이니, 쟁론도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아) 여덟째 글(3항목)
㉮ 거듭된 글을 표하여 밝힘
도서 여덟째, “마음이 성상性相에 통하여 명칭은 같지만 의미는 다르다.”라고 하는 것을 살펴본다.
㉯ 표한 것에 의거하여 별도로 밝힘(2항목)
ㄱ. 간략하게 해석함
도서 모든 경전이 어떤 때는 마음을 도적이라고 폄훼하여 끊도록 하고, 어떤 때는 마음이 부처라고 찬탄함으로써 권해 닦도록 한다. 또는 착한 마음, 악한 마음, 청정한 마음, 더러운 마음, -
009_0210_c_01L滅。眞實如如等。設有人問。說何法不
009_0210_c_02L變。何法隨緣。只合笑云心也。
009_0210_c_03L二就人明執非
009_0210_c_04L不變是性。隨緣是相。當知性相皆是一
009_0210_c_05L心上義。今性相二宗互相非者。良由不
009_0210_c_06L識眞心。每聞心字。將謂只是八識。不
009_0210_c_07L知八識。但是眞心上隨緣之義。故馬
009_0210_c_08L鳴菩薩。以一心爲法。以眞如生滅二門
009_0210_c_09L爲義。論云依於此心。顯示摩訶衍義。
009_0210_c_10L心眞如是性體。心生滅是相用。只說此
009_0210_c_11L心不虛妄故云眞。不變易故云如。是以
009_0210_c_12L論中。一一云心眞如心生滅。今時禪者。
009_0210_c_13L多不識義故。但呼心爲禪。講者。多不
009_0210_c_14L識法故。但約名說義。隨名生執。難可
009_0210_c_15L會通。聞心謂淺。聞性謂深。或却以性
009_0210_c_16L爲法。以心爲義。
009_0210_c_17L三結答
009_0210_c_18L故須約三宗經論。相對照之。法義旣顯。
009_0210_c_19L但歸一心。自然無諍。
009_0210_c_20L八中文三初標名牒章
009_0210_c_21L八心通性相名同義別者。
009_0210_c_22L二依標別釋二一畧釋
009_0210_c_23L諸經或毁心是賊。制令斷除。或讃心是
009_0210_c_24L佛。勸令修習。或云善心惡心。淨心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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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1_a_01L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자애로운 마음, 연민하는 마음이라 하기도 한다. 혹은 마음이 경계에 의거하여 생긴다 하고, 혹은 마음이 경계에서 생긴다고 한다. 혹은 적멸이 마음이라고도 하고, 혹 사려하는 것이 마음이라 하는 등 가지가지 서로 다르다. 만일 여러 종파를 서로 대비하여 보여 주지 않는다면, 경을 보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변별하겠는가.
ㄴ. 널리 해석함(2항목)
ㄱ)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많은 종류의 마음인가, 단지 한 가지 마음인가?
ㄴ) 별도로 해석함(2항목)
(ㄱ) 또 많은 종류(의 마음)에 의거하여 명칭과 본체를 간략히 보임
도서 지금 (마음의) 명칭과 본체를 간략히 보이겠다. 일반적으로 ‘마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간략히 네 종류가 있으니, 범어로도 각기 다르고 번역도 또한 다르다.첫째, 흘리타야紇利陁耶이니, 이곳 말로는 육단심肉團心이라고 한다. 이것은 몸 가운데의 오장심五藏心을 가리킨다.
원주 모두 『황정경』27) 「오장론」의 설명과 같다.
도서 둘째, 연려심緣慮心이니, 이것은 팔식을 말한다. 모두 자분自分의 대상을 따라 사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주 색色은 안식의 대상이고, 내지 신근과 종자와 기세간은 아뢰야식의 대상이다. 이것들은 각각 일분一分만을 연緣하기 때문에 자분이라고 한다.
도서 이 팔식에는 각각 심소가 있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오직 무기이고, 어떤 것은 선과 염오가 다른 것에 다 통한다. 여러 경전 가운데 모든 심소를 지목하여 다 마음이라 하는 것이니, 선심과 악심 등을 말한다.
도서 셋째, 질다야質多耶이니, 이곳 말로는 집기심集起心이라 한다. 이것은 오직 제8식이 종자를 집적하여 현행을 일으키는 까닭이다.
원주 『황정경』 「오장론」에서 이것을 지목하여 ‘신神’이라 하였고, 서역의 외도는 그것을 ‘아我’라고 하였으니, 모두 이 식識을 말하는 것이다.
도서 넷째, 건율타야乾栗陁耶이니, 이곳 말로는 견실심堅實心 또는 진실심眞實心이라고 한다. 이것은 진실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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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1_a_01L心。貪心嗔心。慈心悲心。或云心托境
009_0211_a_02L生。或云心生於境。或云寂滅爲心。或
009_0211_a_03L云緣慮爲心。乃至種種相違。若不以諸
009_0211_a_04L宗相對顯示。則看經者何以辨之。
009_0211_a_05L二廣釋二初摠標
009_0211_a_06L爲當有多種心。爲復只是一般心耶。
009_0211_a_07L二別釋二初且約多種略示名體
009_0211_a_08L今且畧示名體。汎言心者。畧有四種。
009_0211_a_09L梵語各別。翻譯亦殊。一紇利陁耶。此
009_0211_a_10L云肉團心。此是身中五藏心也。
009_0211_a_11L具如黃庭經五藏論說也。
009_0211_a_12L二緣慮心。此是八識。俱能緣慮自分境
009_0211_a_13L故。
009_0211_a_14L色是眼識境。乃至根身種子器世界。
009_0211_a_15L是阿賴耶識之境。各緣一分。故云自
009_0211_a_16L分也。
009_0211_a_17L此八各有心所。於中或唯無記。或通善
009_0211_a_18L染之殊。諸經之中。目諸心所。摠名心
009_0211_a_19L也。謂善心惡心等。三質多耶。此云集
009_0211_a_20L起心。唯第八識。積集種子。生起見行故。
009_0211_a_21L黃庭經五藏論。目之爲神。西國外道
009_0211_a_22L計之爲我。皆是此識也。
009_0211_a_23L四乾栗陁耶。此云堅實心。亦云眞實心。
009_0211_a_24L此是眞實心也。
-
009_0211_b_01L(ㄴ) 한가지로 회통하여 돌아감으로써 마음으로 통함을 자세히 밝힘(3항목)
㉠ 일심을 바로 밝힘
도서 그러나 제8식은 별도로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진심일 뿐이지만 불각不覺 때문에 모든 망상과 화합하거나 화합하지 않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화합하는 의미는 더러움과 깨끗함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장식藏識이라고 칭하고, 화합하지 않는 의미는 체성이 항상 변하지 않는 것으로서 진여라고 하니, 모두 다 여래장이다.
㉡ 경을 인용하여 증명함
도서 그러므로 『능가경』에서 “적멸이란 일심이고, 일심은 여래장이다.”라고 하였으니, 여래장이란 역시 속박된 법신이다. 『승만경』의 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4종의 마음이 본래 일체임을 알아야 한다. 『밀엄경』에서는 “불타가 설한 여래장【법신이 속박되어 있다는 명칭】이 아뢰야28)【장식】가 된다. 삿된 지혜로는 장식이 곧 아뢰야식임을 알지 못한다.”라고 설한다.
원주 어떤 사람은 진여와 아뢰야식의 체성이 다르다고 집착하는데, 이것은 삿된 지혜이다.
도서 여래의 청정장淸淨藏29)과 세간의 아뢰야阿賴耶는 금과 금반지의 관계와 같다. 반지는 금이 여러 가지로 변한 것이니, 결국 금의 성질에는 차별이 없다.
원주 금반지 등은 아뢰야식을 비유한 것이고, 금은 진여를 비유한 것이니, 통틀어 여래장이라 하는 것이다.
㉢ 앞의 걸림 없음을 따름
도서 그렇게 비록 본질은 같지만, 진망眞妄의 의미에 구별이 있고 본말 또한 다르니, 앞의 세 가지는 상相이고, 뒤의 한 가지는 성性이다. 성에 의거하여 상을 일으키니 다 이유가 있으며, 상을 회통하여 성으로 돌아가니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니다. 성과 상이 걸림 없으니 모두가 일심이다.
㉰ 주고 빼앗아 결론지어 답함
도서 그것에 미혹하면 향하는 곳마다 담장을 마주하는 것과 같고, 깨달으면 만법이 거울 앞에 있는 것처럼 밝다. 만일 -
009_0211_b_01L二會歸一般詳卞心通三初正明
009_0211_b_02L一心
009_0211_b_03L然第八識。無別自體。但是眞心。以不
009_0211_b_04L覺故。與諸妄想。有和合不和合義。和
009_0211_b_05L合義者。能含染淨。目爲藏識。不和合
009_0211_b_06L者。體常不變。目爲眞如。都是如來藏。
009_0211_b_07L二引經成證
009_0211_b_08L故楞伽云。寂滅者。名爲一心。一心者。
009_0211_b_09L即如來藏。如來藏者。亦是在纒法身。
009_0211_b_10L如勝鬘經說。故知四種心。本同一體。
009_0211_b_11L故密嚴經云。佛說如來藏法身在
纒之名。以爲
009_0211_b_12L阿賴耶藏
識。惡慧不能知藏。即賴耶識。
009_0211_b_13L有執。 眞如與賴耶體別者。是惡慧也。
009_0211_b_14L如來淸淨藏。世間阿賴耶。如金與指鐶。
009_0211_b_15L展轉無差別。
009_0211_b_16L指鐶等。喩賴耶。金喩眞如。都名如
009_0211_b_17L來藏也。
009_0211_b_18L三躡前無碍
009_0211_b_19L然雖同體。眞妄義別。本末亦殊。前三
009_0211_b_20L是相。後一是性。依性起相。盖有因由。
009_0211_b_21L會相歸性。非無所以。性相無碍。都是
009_0211_b_22L一心。
009_0211_b_23L三縱奪結答
009_0211_b_24L迷之則觸向面墻。悟之則萬法臨鏡。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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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1_c_01L헛되이 문구를 찾거나 억측으로 믿으면 이 일심의 성상을 어떻게 알겠는가.
(자) 아홉째 글(3항목)
㉮ 문장을 거듭 표하여 서술함
도서 아홉째, “깨달음과 수행, 단번에 깨달음과 점차적인 깨달음이 상반되는 것 같지만 부합한다.”라는 것에 대해 설명하겠다. 모든 경론과 선문에서 어떤 사람은 먼저 점차 수행한 공이 이루어진 후에 활연히 돈오한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먼저 단번에 깨닫고 점차적으로 닦는 것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단번에 닦고 나서 점차로 깨닫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깨달음과 닦음이 모두 점차적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모두 단번에 깨닫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법에 돈(돈오)과 점(점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돈과 점은 근기에 있다고 하니, 위의 설들은 각각 의의가 있는 것이다.
㉯ 돈과 점을 별도로 밝힘
도서 (돈과 점이) 상반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깨달은 것을 성불이라고 하고, 본래 번뇌가 없는 것을 돈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응당 닦아 끊을 것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 다시 점차로 닦는다고 할 수 있는가. 점차로 닦는다고 하는 것은, 번뇌가 다 끊어지지 않고 인행因行이 다 갖추어지지 않았으며 과덕이 원만하지 않은 것인데, 어떻게 돈이라고 할 수 있는가. 돈이라면 점이 아니고, 점이라면 돈이 아니기 때문에 상반된다고 하는 것이다.
㉰ 서로 도움을 결론으로 답함
도서 아래에 배대하여 회통하는 것과 같이 돈과 점이 상반되지 않음은 물론 도리어 서로 돕는 것이다.
(차) 열째 글(3항목)
㉮ 거듭 표함
도서 열째, “스승과 제자가 전수함에 반드시 약과 병을 알아야 한다.”라는 것에 대해 살펴본다.
㉯ 따로 해석함(3항목)
ㄱ. 약의 처방을 바로 서술함
도서 위에서 전수하는 방편을 계승한다는 것은, 모두 본성을 먼저 열어 보이고, 바야흐로 그 본성에 의거하여 선을 닦게 하는 것을 말한다.
ㄴ. 집착하는 병을 널리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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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1_c_01L空尋文句。或信胸襟。於此一心性相
009_0211_c_02L如何了會。
009_0211_c_03L九中文三初牒章標叙
009_0211_c_04L九悟修頓漸。似反而符者。諸經論及諸
009_0211_c_05L禪門。或云先因漸修功成。豁然頓悟。
009_0211_c_06L或先因頓悟。方可漸修。或云由頓修
009_0211_c_07L故漸悟。或云悟修皆漸。或云皆頓。或
009_0211_c_08L云法無頓漸。頓漸在機。如上等說。各
009_0211_c_09L有意義。
009_0211_c_10L二別明頓漸
009_0211_c_11L言似反者。謂旣悟即成佛。本無煩惱
009_0211_c_12L名爲頓者。即不應修斷。何得復云漸
009_0211_c_13L修。漸修即是煩惱未盡。因行未圓。果
009_0211_c_14L德未滿。何名爲頓。頓即非漸。漸即非
009_0211_c_15L頓。故云相反。
009_0211_c_16L三結答相資
009_0211_c_17L如下對會。即頓漸。非唯不相乘反。而
009_0211_c_18L乃互相資也。
009_0211_c_19L十中文三初標牒
009_0211_c_20L十師資傳授。須識藥病者。
009_0211_c_21L二別釋三初正叙藥方
009_0211_c_22L謂承上傳授方便。皆先開示本性。方令
009_0211_c_23L依性修禪。
009_0211_c_24L二廣明執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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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2_a_01L도서 본성을 쉽게 깨닫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현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성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먼저 집착을 깨뜨려야 한다. 집착을 깨뜨리는 방편은, 반드시 범부와 성인이라는 생각을 모두 없애고 공功과 과過를 동시에 제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계戒는 지님도 범함도 없는 것이고, 선禪은 안정도 산란도 없는 것이다. 삼십이상이 전부 허공의 꽃이어서 실체가 없고, 삼십칠조도품이 모두 몽환이다. 의지가 마음으로 하여금 집착이 없도록 하여야 선을 닦을 수 있는 것이다. 얕은 식견의 후학들은 단지 이 말에 집착하여 그것을 구경의 도로 삼는다. 또 닦아 익히는 문에서 사람들이 대부분 방일하기 때문에 다시 좋아하고 싫어함을 널리 설하며, 탐냄과 성냄을 경책하고 근검을 찬탄한다. 또 몸을 조절하고 숨을 고르며 거침과 미세함의 차례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후인들이 이것을 듣고 본각의 작용에 미혹하여 한결같이 법상에 집착한다.오직 근성이 영리하고 뜻이 견고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승을 모시고 깨달음과 닦음의 의미를 터득한다. 그러나 근성이 경박한 사람은 잠시 하나의 의미를 듣고 이미 다 충족했다고 말한다. 이에 작은 지혜를 믿고 타인의 스승이 되어 본말을 궁구하지 않고 치우친 집착을 일으킨다.그러므로 돈점 문하에서 서로 대면하는 것을 원수처럼 여기고, 남종과 북종이 서로 적대시하는 것이 초나라와 한나라30) 같으니, 발을 씻는 뉘우침31)과 코끼리 만지는 비유를 여기에서 경험하게 된다.
ㄷ. 결론으로 자기의 뜻을 말함
도서 지금 찬술하는 것이 어찌 하나의 책만을 위함이겠는가. 모아 회통하는 것은 이伊 자의 3점32)에 있으니, 3점이 분산되면 이伊 자가 성립되지 않는다. 3종宗33)이 만약 어긋난다면 어떻게 부처를 이루겠는가.
㉰ 결론으로 답함
도서 그러므로 전수하는 약과 병을 알려고 하면, 반드시 3종이 어긋나지 않음을 보아야 하고, 3종이 어긋나지 않음을 보고자 하면 반드시 3종 불교를 알아야 한다.
원주 앞에서 서술한 “선사가 ‘어째서 강설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지금 열 가지 뜻으로 대답하였다. 그러므로 처음에 이미 서역 조사에 대해 서술한 것은 -
009_0212_a_01L性不易悟。多由執相。故欲顯性。先須
009_0212_a_02L破執。破執方便。須凡聖俱泯。功過齊
009_0212_a_03L袪。戒即無犯無持。禪即無㝎無亂。三
009_0212_a_04L十二相。都是空花。三十七品。皆爲夢
009_0212_a_05L幻。意使心無所着。方可修禪。後學淺
009_0212_a_06L識。便但執此言。爲究竟道。又以修習
009_0212_a_07L之門。人多放逸。故復廣說欣厭。毁責
009_0212_a_08L貪嗔。讃歎勤儉。調身調息。麁細次第。
009_0212_a_09L後人聞此。又迷本覺之用。便一向執相。
009_0212_a_10L唯根利志堅者。始終事師。方得悟修之
009_0212_a_11L旨。其有性浮淺者。纔聞一意。即謂已
009_0212_a_12L足。仍恃小慧。便爲人師。未窮本末。多
009_0212_a_13L成偏執。故頓漸門下。相見如仇讎。南
009_0212_a_14L北宗中。相敵如楚漢。洗足之悔。摸象
009_0212_a_15L之諭。驗於此矣。
009_0212_a_16L三結告己意
009_0212_a_17L今之所述。豈欲別爲一本。集而會之。
009_0212_a_18L務在圓伊三點。三點各別。旣不成伊。
009_0212_a_19L三宗若乘。焉能作佛。
009_0212_a_20L三結答
009_0212_a_21L故知欲識傳授藥病。須見三宗不乖。欲
009_0212_a_22L見三宗不乖。須解三種佛敎。
009_0212_a_23L前叙有人難云。禪師何以講說。余今
009_0212_a_24L摠以十意答之。故初已叙西域祖師
-
009_0212_b_01L모두 경론을 홍포하기 위한 것이다.34)
2) 『도서』의 정종분(2항목)
(1) 이理와 사事의 본말(3항목)
① 앞의 것을 결론짓고 뒤의 것을 일으킴
과평 지금까지 (선전을 서술하는) 열 가지 다른 (이유를) 끝마쳤다. 여기부터는 스승의 말씀이 부처의 뜻에 부합함을 증명하여 성상이 한 법임을 나타냄으로써 선교禪敎 양가가 착오하고 의심하며 비방하는 폐단을 구제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근원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35)
도서 위의 열 가지 뜻이 이치와 용례가 분명하다. 다만 선의 3종宗과 교의 3종種을 배대하여 자세히 살피는 것은 말(용량을 측정하는 도구)과 저울로 재는 것처럼 얕고 깊음을 충분히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선문을 서술하고 뒤에 교로써 증명하려고 한다.
② 선과 교로 나누어 나열함
도서 선의 3종이란, 첫째, 망상을 쉬고 마음을 닦는 종(息妄修心宗), 둘째, 완전히 소멸하여 붙일 것이 없는 종(泯絶無寄宗), 셋째, 심성을 바로 드러내는 종(直顯心性宗)을 가리킨다. 교의 3종이란, 첫째, 밀의로 성性에 의거하여 상相을 설하는 교(密意依性說相敎), 둘째, 밀의로 상相을 깨뜨리고 성性을 드러내는 교(密意破相顯性敎), 셋째, 진심이 곧 성性임을 드러내 보여 주는 교(現示眞心卽性敎)이다.
③ 셋을 회통하여 하나가 되게 함(3항목)
가.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위의 3교敎를 차례로 앞의 3종宗과 서로 동일하게 배대하여 하나하나 그것을 증명한 후에 총체적으로 회통하여 일미가 되게 하였다.
나. 개별적으로 해석함(2항목)
가) 같음을 증득하여 집착을 깨뜨림(2항목)
(가) 오직 본의만을 말함(2항목)
㉮ 선종을 해석함(3항목)
ㄱ. 여섯 자36)를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지금 먼저 선종을 서술한다.
ㄴ. 개별적으로 3종을 해석함(3항목)
ㄱ) 상종(3항목)
(ㄱ) 종법을 자세히 밝힘(2항목)
㉠ 열어 보여 줌
도서 첫째, ‘망상을 쉬고 마음을 닦는 종’은 다음과 같이 설한다. 중생은 본래 불성을 갖추고 있지만 시작이 없는 무명(無始無明)이 불성을 가리고 덮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다. -
009_0212_b_01L皆弘經論也。
009_0212_b_02L二都序正宗二一理事本末三初
009_0212_b_03L結前起後
009_0212_b_04L自此至十別異終。則證師說符於
009_0212_b_05L佛意。現性相一法。以救禪敎兩家。
009_0212_b_06L錯謬疑謗之弊。此解源義也。
009_0212_b_07L上之十意。理例照然。但對詳禪之三宗。
009_0212_b_08L敎之三種。如經㪷秤。足定淺深。先叙
009_0212_b_09L禪門。後以敎證。
009_0212_b_10L二分列禪敎
009_0212_b_11L禪三宗者。一息妄修心宗。二泯絕無寄
009_0212_b_12L宗。三直顯心性宗。敎三種者。一密意依
009_0212_b_13L性說相敎。二密意破相顯性敎。三顯示
009_0212_b_14L眞心即性敎。
009_0212_b_15L三會三爲一三初摠標
009_0212_b_16L右此三敎。如次同前三宗相對。一一證
009_0212_b_17L之然後。摠會爲一味。
009_0212_b_18L二別釋二初證同破執二初惟談
009_0212_b_19L本義二初釋禪宗三初摠標六字
009_0212_b_20L今且先叙禪宗。
009_0212_b_21L二別釋三宗三一相宗三一詳明
009_0212_b_22L宗法二一開示
009_0212_b_23L初息妄修心宗者。說衆生雖本有佛性。
009_0212_b_24L而無始無明。覆之不見故。輪廻生死。
-
009_0212_c_01L모든 부처는 이미 망상을 끊었기 때문에 자성을 보는 것이 분명하여 생사에서 벗어나 신통 자재하다. 그러나 범부와 성인은 공용이 같지 않고, 외경과 내심이 각각 한계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 깨달아 들어감
도서 그러므로 반드시 스승의 말과 가르침에 의지하여 경계를 등지고 마음을 관함으로써 망념을 없애야 할 것이다. 망념이 사라진 것이 곧 깨달음이니, 깨달으면 알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마치 거울의 어두운 먼지를 부지런히 털고 닦으면 티끌이 사라지고 밝음이 드러나 비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또 선의 경계로 들어가는 방편을 반드시 밝게 알아야 할 것이다. 산란하고 시끄러움을 멀리하고 한가하며 조용한 곳에서 몸을 조절하고 숨을 고른다. 가부좌로 편안하고 고요히 앉아 입천장을 혓바닥으로 받치고 마음을 한 경계에만 집중한다.
(ㄴ) 결론으로 종파의 사람들을 지적함
도서 남선·북수·보당·선십 등의 문하가 모두 이러한 부류이다.
(ㄷ) 난문을 해결하고 분간함
도서 우두·천태·혜조·구나 등은 방편을 행하는 데 있어서 행적은 크게 같지만 견해는 서로 다르다.
ㄴ) 공종(3항목)
(ㄱ) 종파의 사람과 법을 나타냄(2항목)
㉠ 깨달음과 수증을 나열하여 해석함
도서 둘째, ‘완전히 소멸하여 붙일 것이 없는 종’은 다음과 같이 설한다. 범부와 성인 등의 법이 꿈같고 허깨비 같아서 모두 있는 바가 없다. 본래 공적하니 지금 비로소 없는 것이 아니며,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혜 또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평등한 법계에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법계 또한 가명이다. 마음이 이미 있지 않은데, 누가 법계라고 말하겠는가. 닦음도 닦지 않음도 없으니, 설사 한 법이 있어 열반보다 수승하다 하여도 나는 또한 몽환과 같다고 할 것이다. 법은 얽어맴이 없고 -
009_0212_c_01L諸佛已斷妄想故。見性了了。出離生死。
009_0212_c_02L神通自在。當知凡聖。功用不同。外境內
009_0212_c_03L心。各有分限。
009_0212_c_04L二悟入
009_0212_c_05L故須依師言敎。背境觀心。息滅妄念。
009_0212_c_06L念盡即覺悟。無所不知。如鏡昏塵。須
009_0212_c_07L勤拂拭。塵盡明現。即無所不照。又須
009_0212_c_08L明解趣入禪境方便。遠離憒閙。住閑靜
009_0212_c_09L處。調身調息。跏1)跌宴默。舌柱上腭。
009_0212_c_10L心注一境。
009_0212_c_11L二結指宗人
009_0212_c_12L南侁北秀保唐宣什等門下。皆此類也。
009_0212_c_13L三通難揀別
009_0212_c_14L牛頭天台慧稠求那等。進趣方便。迹即
009_0212_c_15L大同。見解即別。
009_0212_c_16L二空宗三一現宗人法二一列釋
009_0212_c_17L悟修證
009_0212_c_18L二泯絕無寄宗者。說凡聖等法。皆如
009_0212_c_19L夢幻。都無所有。本來空寂。非今始無。
009_0212_c_20L即此達無之智。亦不可得。平等法界
009_0212_c_21L無佛無衆生。法界亦是假名。心旣不有。
009_0212_c_22L誰言法界。無修不修。無佛不佛。設有
009_0212_c_23L一法。勝過湼槃。我說亦夢幻。無法可
009_0212_c_24L「跌」疑「趺」{編}。
-
009_0213_a_01L부처는 지을 수 없으니, 무릇 짓는 것이 있으면 모두 미망이다. 이와 같이 본래 일이 없다는 것을 통달하면 마음에 붙일 것이 없어 전도顚倒를 떠날 것이니, 그때야 비로소 해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사람을 들어 행을 자세히 밝힘
도서 석두·우두로부터 그 뒤 경산徑山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이치를 보여 준다. 다만 마음과 행이 이와 함께 상응토록 하는 것이지, 한 법도 사념에 막히게 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오래가면 공이 이루어져 번뇌 습기가 저절로 없어지고 원망과 친함, 괴로움과 즐거움에 일체 아무 일도 없게 된다.
(ㄴ) 평범한 학자가 뜻에 어두움
도서 이로 인해 한 무리의 도사나 유생 또는 한가로운 승려나 선리를 참구하는 사람이 모두 이 말이 궁극이라고 하는 것은, 이 종파가 단지 이 말37)만으로 법을 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ㄷ) 난문을 해결하고 분간함
도서 하택·강서·천태 등의 문하에서도 또한 이 이치를 설하지만, 종지로 삼지는 않는다.
ㄷ) 성종(3항목)
(ㄱ) 법에 의거하여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셋째, ‘심성을 바로 드러내는 종’은 다음과 같이 설한다. 일체 제법은 유有이거나 공空이거나 모두 다 오직 진성眞性이다. 진성은 무위이니, 그 본체는 일체가 아니다.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며, 인因도 아니고 과果도 또한 아니다. 선도 아니고 악 등도 아니지만, 본체에 계합한 작용이 여러 가지 현상 제법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범부가 되고 성인이 되며, 형상을 나타내고 색을 나타내고 상을 나타내는 것 등을 말한다.
(ㄴ) 사람을 따라 개별적으로 해석함(2항목)
㉠ 숫자로 표함
도서 그 가운데 심성을 지시함에는 다시 두 종류가 있다.
㉡ 열어 해석함(2항목)
a. 홍주가 보여 주는 것(2항목)
a) 바로 밝힘(3항목)
-
009_0213_a_01L拘。無佛可作。凡有所作。皆是迷妄。如
009_0213_a_02L此了達本來無事。心無所寄。方免顚倒。
009_0213_a_03L始名解脫。
009_0213_a_04L二擧人詳明行
009_0213_a_05L石頭牛頭。下至徑山。皆示此理。使令
009_0213_a_06L心行。與此相應。不令滯情於一法上。
009_0213_a_07L日久功至。塵習自亡。則於寃親苦樂
009_0213_a_08L一切無事。
009_0213_a_09L二汎學迷旨
009_0213_a_10L因此。便有一類道士。儒生閑僧。汎參
009_0213_a_11L禪理者。皆說此言。便爲臻極。不知此
009_0213_a_12L宗。不但以此言爲法。
009_0213_a_13L三通難揀別
009_0213_a_14L荷澤江西天台等門下。亦說此理。然非
009_0213_a_15L所宗。
009_0213_a_16L三性宗三初約法摠標
009_0213_a_17L三直顯心性宗者。說一切諸法。若有若
009_0213_a_18L空。皆唯眞性。眞性無爲。體非一切。謂
009_0213_a_19L非凡非聖。非因非果。非善非惡等。然
009_0213_a_20L即體之用。而能造作種種。謂能凡能聖
009_0213_a_21L現色現相等。
009_0213_a_22L二就人別釋二初標數
009_0213_a_23L於中指示心性。復有二類。
009_0213_a_24L二開釋二一洪州所示二一正明
-
009_0213_b_01L(a) 깨달음
도서 첫째는 지금 언어와 동작을 할 수 있고, 탐함과 성냄, 자비와 인욕, 선과 악을 지음, 고와 낙을 받는 등이 곧 너의 불성이다.38) 이것이 곧 본래 부처로서 이것을 제외하고 달리 부처가 없는 것이다.39)
(b) 닦음
도서 이 천진 자연을 통달했기 때문에 마음을 일으켜 수도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 도가 곧 마음이니 마음으로 다시 마음을 닦을 수 없고, 악한 것 또한 마음이니 마음으로 다시 마음을 끊을 수 없다.
(c) 증득도서 끊지도 않고 닦지도 않으며 뜻대로 자재하니, 그것을 비로소 해탈이라고 한다.
b) 거두어 결론 내림
도서 본성은 허공과 같아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거늘 무엇에 의거하여 더 보태고 보충하겠는가. 단지 시간과 장소를 따라 업을 쉬고 신묘함을 길러야40)성태聖胎가 점점 성장하여 자연 신묘함이 드러날 것이다.41) 이것이 참된 깨달음이고 참된 수행이며 참된 증득이라 하겠다.
b. 하택이 보여 주는 것(2항목)
a) 열어 보임
도서 둘째, 모든 법이 몽환과 같다고 성인들이 똑같이 설한다. 망념은 본래 고요하고 바깥 경계는 본래 공하다. 비고 고요한 마음이 신령스럽게 알아서 어둡지 않으니, 이 비고 고요한 앎이 곧 너의 진성이다. 미혹하거나 깨닫거나 마음은 본래 스스로 아는 것이니, 연緣을 빌려 생하는 것이 아니며, 경계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앎이라는 한 글자가 뭇 미묘함의 문이다.
b) 깨달아 들어감(2항목)
(a) 물든 연기
도서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그것에 미혹해 왔기 때문에 신심身心이 나라고 그릇 집착하여 탐하고 성내는 등의 번뇌를 일으킨다.
(b) 깨끗한 연기(3항목)
ⓐ 깨달음
-
009_0213_b_01L三一悟
009_0213_b_02L一云即今能語言動作。貪嗔慈忍造善
009_0213_b_03L惡受苦樂等。即汝佛性。即此本來是
009_0213_b_04L佛。除此無別佛也。
009_0213_b_05L二修
009_0213_b_06L了此天眞自然。故不可起心修道。道即
009_0213_b_07L是心。不可將心還修於心。惡亦是心。
009_0213_b_08L不可將心還斷於心。
009_0213_b_09L三證
009_0213_b_10L不斷不修。任運自在。方名解脫。
009_0213_b_11L二收結
009_0213_b_12L性如虛空。不增不減。何假添補。但隨
009_0213_b_13L時隨處。息業養神。聖胎增長。顯發自
009_0213_b_14L然神妙。此即是爲眞悟。眞修眞證也。
009_0213_b_15L二荷澤所示二一開示
009_0213_b_16L二云諸法如夢。諸聖同說。故妄念本寂
009_0213_b_17L塵境本空。空寂之心靈知不昧。即此
009_0213_b_18L空寂之知。是汝眞性。任迷任悟。心本
009_0213_b_19L自知。不藉緣生。不因境起。知之一字
009_0213_b_20L衆妙之門。
009_0213_b_21L二悟入二一染緣起
009_0213_b_22L由無始迷之故。妄執身心爲我。起貪嗔
009_0213_b_23L等念。
009_0213_b_24L二淨緣起三初悟
-
009_0213_c_01L도서 만일 선지식이 제법의 실상을 열어 보이는 것을 만나면, 비고 고요한 앎을 단번에 깨달을 것이다. 안다는 것도 또한 생각도 없고 형상도 없는데, 무엇이 아상我相·인상人相이겠는가.42)
ⓑ 닦음
도서 모든 현상이 공함을 깨달으면 마음이 저절로 무념이 될 것이니, 생각이 일어나면 곧 (일어나는 생각이 공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깨달으면 없어질 것이다. 수행의 미묘한 문이 오직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만행을 갖추어 닦더라도 오직 무념으로 으뜸을 삼는다. 무릇 이 무념의 지견을 터득하면, 사랑하고 미워함이 자연스럽게 담박해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스럽게 밝음을 더하며 죄업이 자연스럽게 단멸되고 공행이 자연스럽게 증진될 것이다.43)
ⓒ 증득
도서 이미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닌 줄 깨달았으니, 자연스럽게 닦지만 닦음이 없는 것이다. 번뇌가 다하면 생사가 곧바로 끊어지고, 생멸이 사라지면 고요히 비춤이 눈앞에 나타나 응용이 무궁할 것이다. 그것을 부처라 부른다.44)
(ㄷ) 비방을 해결하여 총체적으로 결론지음
도서 그러나 이 양가兩家(성종과 상종)는 상相을 회통하여 성性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동일한 종파인 것이다.
ㄷ. 3종을 총체적으로 결론지음
도서 그렇지만 위의 3종宗 가운데 다시 교를 존중하기도 하고 교를 얕보기도 하며 상을 따르기도 하고 상을 훼손하기도 하는 종파가 있다. 이와 같이 외부의 힐난을 차단하는 통로와, 바깥 대중을 접하는 방편과, 제자를 가르치는 의궤 등 여러 가지 점에서 같지 않다. 이것은 모두 자리행과 이타행의 실천에 있어서 각기 그 편의를 따른 것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으뜸으로 삼는 도리가 서로 부합하지 않아 둘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부처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화회해야 하는 것이다.
㉯ 교로써 증명함(2항목)
ㄱ.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다음으로 아래에서는 불교佛敎를 총 세 가지로 판별한다.
ㄴ. 개별적으로 해석함(2항목)
ㄱ) 방편교를 비밀히 설함(3항목)
(ㄱ) 상을 설함(5항목)
㉠ 명칭을 표하여 교를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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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3_c_01L若得善友開示。頓悟空寂之知。知且無
009_0213_c_02L念無形。誰爲我相人相。
009_0213_c_03L二修
009_0213_c_04L覺諸相空。心自無念。念起即覺。覺之
009_0213_c_05L即無。修行妙門。唯在此也。故雖備修萬
009_0213_c_06L行。唯以無念爲宗。但得無念知見。則
009_0213_c_07L愛惡自然淡薄。悲智自然增明。罪業自
009_0213_c_08L然斷除。功行自然增進。
009_0213_c_09L三證
009_0213_c_10L旣了諸相非相。自然修而無修。煩惱盡
009_0213_c_11L時。生死即絕。生滅滅已。寂照現前。應
009_0213_c_12L用無窮。名之爲佛。
009_0213_c_13L三通妨摠結
009_0213_c_14L然此兩家。皆會相歸性。故同一宗。
009_0213_c_15L三摠結三宗
009_0213_c_16L然上三宗中。復有遵敎慢敎。隨相毁相。
009_0213_c_17L拒外難之門戶。接外衆之善巧。敎弟子
009_0213_c_18L之儀軌。種種不同。皆是二利行門。各
009_0213_c_19L隨其便。亦無所失。但所宗之理。即不
009_0213_c_20L合有二。故須約佛和會也。
009_0213_c_21L二以敎證二一摠標
009_0213_c_22L次下判佛敎。摠爲三種者。
009_0213_c_23L二別釋二初密說權敎三初說相
009_0213_c_24L文五初標名立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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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4_a_01L도서 첫째, 밀의로 성性에 의거하여 상相을 설하는 교
원주 부처가 삼계 육도를 보니, 그것은 모두 진성眞性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삼계 육도는 단지 중생이 진성에 미혹해서 일어난 것으로서 별도로 본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진성에 의지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기가 우둔한 자는 마침내 깨닫는 것이 어려우므로 그가 대상을 보는 데 따라 법을 설한다. 점차 제도하기 때문에 상을 설한다고 하고, 아직 밝게 드러나지 않은 것을 설하기 때문에 비밀한 뜻이라 한다.
도서 이 하나의 교敎 가운데 세 종류가 있다.
㉡ 숫자에 따라 개별적으로 해석함(3항목)
a. 첫째 글(3항목)
a) 교의 명칭을 표하여 세움
도서 첫째, 인천인과교
b) 교의를 바로 해석함
도서 선악업보를 설함으로써 인과가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삼도의 고통을 두려워하고 인천의 즐거움을 구하게 하며, 보시·지계·선정 등 일체 선행을 닦아 인도와 천도, 색계와 무색계에까지 태어나게 한다.
c) 교의 명칭을 결론지어 나타내 보임
도서 그 때문에 인천교라고 하는 것이다.
b. 둘째 글(3항목)
a) 교의 명칭을 표하여 세움
도서 둘째, 미혹을 끊고 고를 멸하는 교
b) 교의를 바로 해석함(2항목)
(a)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삼계가 불안함이 모두 화택火宅의 고통과 같다고 설하여 혹업惑業의 집착을 끊고 도를 닦아 멸도를 증득하도록 한다. 이것은 근기를 따르기 때문에 설하는 법수法數가 한결같이 차별이 있는 것이다. 삿됨과 바름을 간별하고 범부와 성인을 분별하며, 좋고 싫음을 나누고 인과를 밝혀 중생의 오온이 도무지 나라고 할 주체가 없다는 것을 설한다.
(b) 개별적으로 밝힘(2항목)
ⓐ 고와 집을 밝힘(2항목)
i) 바로 밝힘(3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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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4_a_01L一密意依性說相敎。
009_0214_a_02L佛見三界六道。悉是眞性之相。但是
009_0214_a_03L衆生迷性而起。無別自體。故云依性。
009_0214_a_04L然根鈍者。卒難開悟。故且隨他所見
009_0214_a_05L境相。說法漸漸度。故云說相。說未
009_0214_a_06L彰顯。故云密意也。
009_0214_a_07L此一敎中。自有三類。
009_0214_a_08L二依數別釋三初中文三一標立
009_0214_a_09L敎名
009_0214_a_10L一人天因果敎。
009_0214_a_11L二正釋敎義
009_0214_a_12L說善惡業報。令知因果不差。懼三途苦
009_0214_a_13L求人天樂。修施戒禪定等一切善行。得
009_0214_a_14L生人道天道。乃至色界無色界。
009_0214_a_15L三結現敎名
009_0214_a_16L故云人天敎。
009_0214_a_17L二中文三初標立敎名
009_0214_a_18L二斷惑滅苦敎。
009_0214_a_19L二正釋敎義二一摠標
009_0214_a_20L說三界不安。皆如火宅之苦。令斷業惑
009_0214_a_21L之集。修道證滅。以隨機故。所說法數
009_0214_a_22L一向差別。以揀邪正。以辨凡聖。以分
009_0214_a_23L欣厭。以明因果。說衆生五蘊。都無我主。
009_0214_a_24L二別明二一明苦集二一正明三
-
009_0214_b_01L(i) 아집에 미혹함을 밝힘
도서 (중생의 오온은) 단지 몸과 뼈로 이루어진 겉모습이며, 사려하는 마음일 뿐이다.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인연의 힘 때문에 찰나찰나 생멸하며 상속하여 끝이 없다. 흐르는 물 같고 타오르는 불꽃 같다. 신심이 임시로 화합하여 하나인 것 같고, 항상한 것같이 보인다. 범부와 어리석은 자는 그것을 알지 못하여 아我라고 집착한다.
(ii) 혹업의 과보를 밝힘
도서 이 아我에 의지하여 탐【명리를 탐하는 것이 곧 나를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함】ㆍ진【진은 정情의 대상을 어기어 아我를 침해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ㆍ치【대하는 것마다 잘못 알아 도리에 맞지 않게 문제 삼는 것】 등의 삼독을 일으키고, 삼독은 의식을 두드려 몸과 입을 움직임으로써 일체의 업을 일으킨다. 업을 지으면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그림자가 형상을 따르고 메아리가 소리를 따름】 오도五道45)의 고락 등 몸【이것은 별업이 초감한 것】과 삼계의 수승한 곳이나 열악한 곳【이것은 공업共業이 초감한 곳】 등의 과보를 받는다.
(iii) 윤회가 끊어지지 않음
도서 받은 몸을 또 집착하여 ‘나(我)’라고 여기고 또다시 탐욕 등 번뇌를 일으켜 업을 짓고 과보를 받는다. 몸은 나고 늙고 병들어 죽으며, 죽어서는 다시 태어난다. 세계는 생성하고 머무르며 무너져 공空으로 돌아가지만 공은 다시 생성하여 겁과 겁을 지나도록 태어나고, 또 태어나서 윤회가 끊어지지 않는다. 마침도 없고 시작도 없는 것이 마치 우물물을 긷는 도르래와 같다.
ii) 결론으로 답함
도서 모두 이 몸이 본래 ‘나’가 아님을 깨닫지 못한 때문이다.
원주 이 이상은 모두 앞에서 설명한 인천교 중의 세간인과이다. 앞의 가르침은 단지 하계를 싫어하고 상계를 좋아하게 하지만, 삼계가 모두 싫어하고 근심하는 곳임을 설하지 않았다. 또 아를 깨뜨리지 않고 지금 그것을 갖추어 설하니, 이 가르침이 곧 고집 이제二諦이다. 아래의 가르침은 아집을 깨뜨리고, 도제道諦와 멸제滅諦 이제를 닦게 하여 출세의 인과를 밝히기 때문에 사제교四諦敎라고 하는 것이다.
ⓑ 도제와 멸제를 밝힘(2항목)
i) 널리 신심을 깨뜨림(2항목)
(i) 심사관46)(2항목)
ⓘ 거친 것을 깨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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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4_b_01L一明迷我執
009_0214_b_02L但是形骸之色。思慮之心。從無始來因
009_0214_b_03L緣力故。念念生滅。相續無窮。如水㳙
009_0214_b_04L㳙。如燈燄燄。身心假合。似一似常。凡
009_0214_b_05L愚不覺。執之爲我。
009_0214_b_06L二明或業報
009_0214_b_07L保此我故。即起貪貪名則
以榮我嗔嗔違情境
恐侵害我癡。觸
向
009_0214_b_08L錯解非
理計較等三毒。三毒擊於意識。發動身口。
009_0214_b_09L造一切業。業成難逃影隨形
響應聲故。受五道
009_0214_b_10L苦樂等身此是別
業所感。三界勝劣等處此是共業
所感處也。
009_0214_b_11L三輪回不絕
009_0214_b_12L於所受身。還執爲我。還起貪等。造業
009_0214_b_13L受報。身則生老病死。死而復生。界則
009_0214_b_14L成住壞空。空而復成。刼刼生生。輪廻
009_0214_b_15L不絕。無終無始。如汲井輪。
009_0214_b_16L二結咎 [1]
009_0214_b_17L都由不了此身本不是我。
009_0214_b_18L此上皆是前人天敎中。世間因果也。
009_0214_b_19L前但令厭下欣上。未說三界皆可厭
009_0214_b_20L患。又未破我。今具說之。即苦集二
009_0214_b_21L諦也。下破我執。令修道滅二諦。明
009_0214_b_22L出世因果。故名四諦敎也。
009_0214_b_23L二明道滅二一廣破身心二一尋
009_0214_b_24L伺觀二一破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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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4_c_01L도서 ‘나’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살펴보자. 이 몸은 본래 몸과 마음이 화합하여 형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 추구하고 찾아서 분석해 보면, 몸은 지·수·화·풍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고, 마음은 수受【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받아들임】·상想【형상을 취함】·행行【일체를 조작함】·식識【하나하나 분별함】의 네 가지【이 네 가지와 색色을 합하여 오온이라 부른다.】로 구성되어 있다. 만일 모두 다 나라면, 곧 여덟 개의 나47)가 성립될 것이다.
ⓘⓘ 미세한 것을 깨뜨림
도서 더구나 몸 가운데는 다시 360개의 뼈마디가 있고, 마디마다 각각 구별되어 있으며, 가죽과 털, 근육과 살, 간과 심장, 비장과 신장으로 되어 있어서 각각 서로 같지 않다.【가죽이 털이 아닌 것처럼】 모든 심소 등도 각기 다르기 때문에 보는 것은 듣는 것이 아니고, 기쁨은 성냄이 아니다. 이미 이렇게 많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무엇을 취해 나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만일 이것이 다 나라면, 나는 백이요, 천이다. 한 몸 가운데에 많은 주인이 있게 되니,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이를 떠나 별법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뒤집고 찾아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ii) 여실하게 관함
도서 이 신심身心 등은 단지 많은 연이 모인 화합상 같지만 본래 일체一體가 아니며, 아상我相·인상人相인 것 같지만 본래 아我와 인人이 없다. 누가 탐하고 성내며, 누가 죽이고 도둑질하며, 누가 보시하고 계행을 지키며, 누가 인천에 태어나는가.【고와 집을 아는 것임】 이것을 문득 깨달으면 마침내 삼계유루의 선악에도 마음이 막히지 않을 것이다.【집제를 끊음】
ii) 닦음과 증득을 간략히 밝힘
도서 단지 무아관의 지혜를 닦아【도제】 탐 등의 번뇌를 끊고, 모든 업을 멈추고 아공진여我空眞如를 증득하여 수다원과를 얻고, 번뇌를 멸진하여 아라한과를 얻는다.【멸제】 몸을 남김없이 태우고 지혜를 소멸하여 영원히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다.
c) 경론을 회통하여 결론함
도서 모든 『아함경』 등 경전 618권과 『바사론』 등 698권은 모두 이 소승과 앞에서 언급한 인간과 천상의 인과를 설하는 것이다. -
009_0214_c_01L不是我者。此身本因色心。和合爲相。
009_0214_c_02L今推尋分析。色有地水火風之四類。心
009_0214_c_03L有受領納好
惡之事想取
像行造作
一切識一一
了別之四類此四
與色
009_0214_c_04L都名
五藴。若皆是我。即成八我。
009_0214_c_05L二細破
009_0214_c_06L況色中復有三百六十段骨。段段各別。
009_0214_c_07L皮毛筋肉肝心脾腎。各不相是皮不是
毛等諸
009_0214_c_08L心數等。亦各不同。見不是聞。喜不是
009_0214_c_09L怒。旣有此衆多之物。不知定取何者爲
009_0214_c_10L我。若皆是我。我即百千。一身之中。多
009_0214_c_11L主紛亂。離此之外。復無別法。翻覆推
009_0214_c_12L我。皆不可得。
009_0214_c_13L二如實觀
009_0214_c_14L便悟此身心等。但是衆緣。似和合相。
009_0214_c_15L元非一體。似我人相。元無我人。爲誰
009_0214_c_16L貪嗔。爲誰煞盜。誰修施戒。誰生人天
009_0214_c_17L知苦
集也。遂不滯心於三界有漏善惡斷集
諦也。
009_0214_c_18L二略明修證
009_0214_c_19L但修無我觀智道
諦。以斷貪等。此息諸業。
009_0214_c_20L證我空眞如。得須陀洹果。乃至滅盡患。
009_0214_c_21L累。得阿羅漢果滅
諦。灰身滅智。永離諸苦。
009_0214_c_22L三會結經論
009_0214_c_23L諸阿含等經。六百一十八卷。婆沙等論。
009_0214_c_24L六百九十八卷。皆唯說此小乘及前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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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5_a_01L부수와 질수가 비록 많지만, 이치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c. 셋째 글(3항목)
a) 교의 명칭을 표하여 세움
도서 셋째, 식으로써 대경을 깨뜨리는 교
원주 앞의 교에서 설한 대경의 형상은 생겨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는 것으로서 오직 아我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법들도 또한 없는 것이다. 단지 이것은 정식情識이 허망하게 변하여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식으로써 대경을 깨뜨린다고 하는 것이다.
b) 교의를 바로 해석함(2항목)
(a) 식으로써 대경을 깨뜨림(2항목)
ⓐ 식이 대경을 생겨나게 하는 것임을 밝힘
도서 위에서 설명한 생멸 등 법은 진여와 관련되지 않는다. 다만 각각 이 중생에게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자연 그대로 8종의 식이 있을 뿐이다. 그중에 제8 장식이 근본이니, 근신ㆍ기세계ㆍ종자를 단번에 변현해 내고 칠식七識을 생기하니, 각각 자분自分의 소연所緣을 변현해 낸다.
원주 눈은 색을 연하고, 내지 제7식은 견見을 연하며, 제8식은 근·종자·기세계를 반연한다.
도서 이 팔식 외에 실법은 없는 것이다. 묻는다. 어떻게 변하는가. 대답한다. 아我와 법을 분별하는 훈습력 때문에 모든 식이 생길 때에 아와 법으로 변화한다. 6·7의 2식識은 무명이 덮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실제의 ‘아’이며, 실제의 ‘법’이라고 집착한다. 마치 병자【병이 무거우면 마음이 혼미하여 사람과 물건이 이상하게 보인다.】와 꿈꾸는【몽상으로 보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병과 꿈의 힘으로 마음에 여러 가지 바깥 대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꿈을 꿀 때는 외계의 대상이 실재하는 것으로 집착하게 된다.
ⓑ 경계가 오직 식임을 밝힘
도서 꿈을 깨면 비로소 꿈속에서만 변한 것임을 알게 된다. 나의 이 몸이나 바깥 세계도 또한 이와 같다. 오직 식이 변한 것임을 모르기 때문에 아와 모든 경계가 있다고 집착하지만, 이미 깨달았으니, 아와 법이 본래 없고, 심식心識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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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5_a_01L天因果。部帙雖多。理不出此。
009_0215_a_02L三中文三初標立敎名
009_0215_a_03L三將識破境敎。
009_0215_a_04L說前所說境相。若起若滅。非唯無我。
009_0215_a_05L亦無如上等法。但是情識。虛妄變起。
009_0215_a_06L故云將識破境也。
009_0215_a_07L二正釋敎義二初將識破境二初
009_0215_a_08L明識生境
009_0215_a_09L說上生滅等法。不關眞如。但各是衆生。
009_0215_a_10L無始已來。法爾有八種識。於中第八藏
009_0215_a_11L識。是其根本。頓變根身器界種子。轉
009_0215_a_12L生七識。各能變現自分所緣。
009_0215_a_13L眼緣色。乃至七緣見。八緣根種器界
009_0215_a_14L也。
009_0215_a_15L此八識外。都無實法。問如何變耶。答
009_0215_a_16L我法分別熏習力故。諸識生時。變似我
009_0215_a_17L法。六七二識。無明覆故。緣此執爲實
009_0215_a_18L我實法。如患病重心昏見
異色人物夢夢想所
見可知者。患夢
009_0215_a_19L力故。心似種種外境相現。夢時執爲實
009_0215_a_20L有外物。
009_0215_a_21L二明境唯識
009_0215_a_22L窹來方知唯夢所變。我此身相。及外世
009_0215_a_23L界。亦復如是。唯識所變。迷故執有我
009_0215_a_24L及諸境。旣悟本無我法。唯有心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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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5_b_01L(b) 지혜에 의하여 닦고 증득함
도서 결국 이 이공二空48)의 지혜에 의하여 유식관唯識觀49)·육도六度50)·사섭법四攝法51) 등의 행을 닦아 번뇌장과 소지장52)의 이장二障을 점차 항복 받아 끊으면 이공이 드러나는 진여를 증득하게 된다. 십지가 원만하니 팔식을 전환하여 사지四智53)보리를 성취하고, 진여를 장애하는 것이 모두 사라지니 법성신法性身54) 대열반을 얻는다.
c) 경론을 회통하여 결론함
『해심밀경』 등 수십 본의 경전과 유가유식瑜伽唯識 등 수백 권의 논서도 그 설하는 이치가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 총체적으로 회통하여 명칭을 결론함
도서 이 위의 세 종류는 전체가 ‘첫 번째, 밀의로 성性에 의지하여 상相을 설하는 교’이다.
㉣ 선에 배대하여 같음을 나타냄
도서 그러나 오직 ‘세 번째, 식으로써 대경을 깨뜨리는 것’은 선문禪門의 ‘망념을 쉬고 마음을 닦는 종파’와 서로 부합한다. 바깥 경계가 모두 공한 것을 알기 때문에 바깥 경계의 사상事相을 닦지 않고 오직 망념을 쉬고 마음을 닦을 뿐이다. 망념을 쉰다는 것은 아와 법의 허망함을 쉬는 것이고,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오직 식인 마음을 닦는 것이기 때문에 유식의 가르침과 같은 것이다.
㉤ 훼손하지 말 것을 깨우쳐 줌(4항목)
a. 서로 비난함을 바로 배척함
도서 (그렇다면) 이미 부처와 같은데, 무엇 때문에 저 점문漸門에서 망념을 쉬고 청정을 보며, 때때로 번뇌를 씻으며, 마음을 집중하여 머무르고, 오로지 한 경계에 집중하며, 가부좌하여 몸을 조절하고 숨을 고르는 것 등을 비난하는가. 이들 여러 가지 방편은 모두 불타가 권하고 찬탄한 것이 아닌가.
b. 잠복되어 있는 난문을 가만히 해결함
도서 정명淨名(유마 거사)은 반드시 앉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것이지, 반드시 앉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앉거나 앉지 않거나 하는 것은 근기에 따라 맡길 것이며, 마음을 집중하거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각기 익혀 온 성품에 따라 헤아려야 할 것이다. 고종대제와 -
009_0215_b_01L二依智修證
009_0215_b_02L遂依此二空之智。修唯識觀。及六度四
009_0215_b_03L攝等行。漸漸伏斷煩惱所知二障。證二
009_0215_b_04L空所顯眞如。十地圓滿。轉八識成四智
009_0215_b_05L菩提也。眞如障盡。成法性身大湼槃也。
009_0215_b_06L三會結經論
009_0215_b_07L解深密等數十本經。瑜伽唯識數百卷
009_0215_b_08L論。所說之理。不出此也。
009_0215_b_09L三摠會結名
009_0215_b_10L此上三類。都爲第一密意依1)徃 [1] 說相敎。
009_0215_b_11L四配禪現同
009_0215_b_12L然唯第三將識破境。與禪門息妄修心
009_0215_b_13L宗。而相符會。以知外境皆空故。不修
009_0215_b_14L外境事相。唯息妄修心也。息妄者。息
009_0215_b_15L我法之妄。修心者。修唯識之心。故同
009_0215_b_16L唯識之敎。
009_0215_b_17L五諭勿毁文四初正斥相非
009_0215_b_18L旣與佛同。如何毁他漸門。息妄看淨。
009_0215_b_19L時時拂拭。凝心住心。全注一境。及跏
009_0215_b_20L趺調身調息等也。此等種種方便。悉是
009_0215_b_21L佛所勸讃。
009_0215_b_22L二潜通伏難
009_0215_b_23L淨名云不必坐。不云必不坐。坐與不坐
009_0215_b_24L任逐機宜。凝心運心。各量習性。當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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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5_c_01L현종 시대에는 원돈圓頓 본종이 행해지지 않았다. 오직 북지北地에 신수神秀 선사가 점교를 크게 선양하여 2경京55)의 법주가 되고, 세 황제56)의 문사門師가 되었다. 그는 (점교를) 전적으로 달마의 종이라고 칭하였으나, 부처에 계합하는 종지를 드러내지는 못하였다. 이에 조계 하택이 원종圓宗이 끊어질까 근심하여 마침내 마음을 멈추거나 조복 받는 일 등을 꾸짖어 책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은 다만 병을 제거하는 것이지, 법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c. 점교에 연원이 있음을 보여 줌
도서 하물며 이 방편은 본래 5조 대사(弘忍)가 가르쳐 전수한 것으로, 각각 다 인가하여 (남능南能·북수北秀를) 일방의 스승으로 삼은 것이다. 달마는 벽관으로써 사람을 안심케 하고, “밖으로 모든 연을 멈추고 안으로는 마음의 헐떡거림을 없애며,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말했으니, 어찌 이것이 곧 좌선법이 아니겠는가. 또 여산 혜원이 불타와 야사의 두 범승과 번역한 『달마선경』(『달마다라선경』) 두 권에서 좌선의 문호와 점차적 방편을 갖추어 밝혔는데, 그것은 천태와 선수侁秀57) 문하의 의취와 다름이 없다. 여기에 4조(道信)도 수십 년간 옆구리를 자리에 붙이지 않았던 것이다.58)
d. 결론으로 시비를 물리침
도서 요의了義와 불요의不了義 종宗이란 견해의 심천에 따른 것이지, 조복하고 조복하지 않는 행으로써 법과 의미가 치우치거나 원만함을 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다만 스스로 병에 따라 대치하면 될 뿐, 이것을 칭찬하고 저것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도서 앞에서 서술한 글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찌하여 좌선을 권하는가라고 힐난하는 질문에 대해 내가 지금 이 말로써 대답한 것이다.
(ㄴ) 상을 깨뜨리는 교(5항목)
㉠ 교의 명칭을 표하여 세움
도서 둘째, 밀의로 상을 깨뜨리고 성을 드러내는 교
원주 진실 요의에 의하면, 헛된 집착은 본래 공하여 다시 깨뜨릴 것이 없으며, 무루의 모든 법은 본래 진성이지만 연을 따르는 미묘한 작용은 영원토록 단절되지 않고, -
009_0215_c_01L宗大帝。乃至玄宗朝時。圓頓本宗未行
009_0215_c_02L北地。唯有神秀禪師。大揚漸敎。爲二京
009_0215_c_03L法主三帝門師。全稱達摩之宗。又不顯
009_0215_c_04L即佛之旨。曹溪荷澤。恐圓宗滅絕。遂呵
009_0215_c_05L毁住心調伏等事。但是除病。非除法也。
009_0215_c_06L三示漸有源
009_0215_c_07L況此之方便。本是五祖大師敎授。各皆
009_0215_c_08L印可。爲一方師。達摩以壁觀。敎人安心
009_0215_c_09L云。外止諸緣。內心無喘。心如墻壁。可
009_0215_c_10L以入道。豈不正是坐禪之法。又廬山遠
009_0215_c_11L公。與佛陀耶舍二梵僧所譯達摩禪經
009_0215_c_12L兩卷。具明坐禪。門戶漸次方便。與天
009_0215_c_13L台及侁秀門下。意趣無殊。故四祖數十
009_0215_c_14L年中。脇不至席。
009_0215_c_15L四結却是非
009_0215_c_16L即知了與不了之宗。各由見解深淺。不
009_0215_c_17L以調與不調之行。而定法義偏圓。但自
009_0215_c_18L隨病對治。不須讃此毁彼。
009_0215_c_19L前叙有人問難余。云何以勸坐禪者。
009_0215_c_20L余今以此答也。
009_0215_c_21L二破相敎五初標立敎名
009_0215_c_22L二密意破相顯性敎。
009_0215_c_23L據眞實了義。則妄執本空。更無可破。
009_0215_c_24L無漏諸法。本是眞性。隨緣妙用。永不
009_0215_c_25L「徃」當作「性」{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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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6_a_01L또 깨뜨릴 수도 없는 것이다. 단지 한 부류의 중생이 망상에 집착하여 그것으로 진성을 장애하기 때문에 현묘한 깨달음을 얻기가 어려웠다. 이에 불타가 선과 악, 더러움과 깨끗함, 성과 상을 가리지 않고 일체를 꾸짖고 깨뜨린 것이다. 진성과 묘용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한편으로 없다고 하였기 때문에 ‘밀의’라고 하였다. 또 뜻은 본성을 드러내는 데 있지만, 말은 형상을 깨뜨려서 뜻이 말 가운데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하는 것이다.
㉡ 교의를 바로 밝힘(2항목)
a. 공의 이치를 널리 설함(2항목)
a) 앞의 경공境空에 거듭하여 심공心空을 표하여 서술함
도서 이 교는 앞의 가르침 중의 소변所變59) 경계를 설한 것으로 이미 모두가 허망하니 능변能變60)의 식이 어찌 홀로 진실하겠는가. 마음과 경계가 서로 의존하여 공하지만, 마치 있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b) 심과 대경이 모두 공하다는 이유를 자세히 해석함(2항목)
(a) 바로 밝힘
도서 또 마음은 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경에 의지하여 비로소 일어나며, 대경은 스스로 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인해 나타난다. 마음이 여여하면 대경이 사라지고, 대경이 멸하면 마음이 공하다. 대경이 없는 마음이 있지 않고, 마음이 없는 대경도 없다. 꿈에 물체를 볼 때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다른 것 같지만, 실제는 똑같이 허망하여 온통 있는 바가 없는 것이다. 모든 식과 모든 대경도 이와 같다. 모두 여러 인연에 가탁한 것으로서 자성이 없기 때문에 일찍이 한 법도 인연을 따라 생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겠다.
(b) 전전하여 해석함
도서 그 때문에 일체법이 공 아닌 것이 없다. 무릇 존재하는 상이 모두 허망한 것이니, 공 가운데는 안·이·비·설·신·의 육근이 없고, 십팔계·십이인연·사제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업도 없고 과보도 없으며, 닦음도 없고 증득함도 없으니, 생사열반이 평등하여 허깨비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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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6_a_01L斷絕。又不應破。但爲一類衆生。執
009_0216_a_02L虛妄想。障眞實性。難得玄悟故。佛
009_0216_a_03L且不揀善惡垢淨性相。一切呵破。以
009_0216_a_04L眞性及妙用不無。而且云無。故云密
009_0216_a_05L意。又意在顯性。語乃破相。意不形
009_0216_a_06L於言中。故云密也。
009_0216_a_07L二正明敎義二初廣說空理二初
009_0216_a_08L牒前境空標叙心空
009_0216_a_09L此敎說前敎中所變之境。旣皆虛妄。能
009_0216_a_10L變之識。豈獨眞實。心境互依。空而似
009_0216_a_11L有故也。
009_0216_a_12L二委釋心境皆空所以二一正明
009_0216_a_13L且心不孤起。託境方生。境不自生。由
009_0216_a_14L心故現。心如即境謝。境滅即心空。未
009_0216_a_15L有無境之心。曾無無心之境。如夢見物
009_0216_a_16L似能見所見之殊。其實同一虛妄。都無
009_0216_a_17L所有。諸識諸境。亦復如是。以皆假託
009_0216_a_18L衆緣。無自性故。未曾有一法。不從因
009_0216_a_19L緣生。
009_0216_a_20L二轉釋
009_0216_a_21L是故一切法。無不是空者。凡所有相
009_0216_a_22L皆是虛妄。是故空中。無眼耳鼻舌身意。
009_0216_a_23L無十八界十二因緣四諦。無智亦無得。
009_0216_a_24L無業無報。無修無證。生死湼槃。平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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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6_b_01Lb. 행하는 문을 간략히 가리킴
도서 단지 일체에 머물지 않고 집착이 없어야 도행道行이라 하는 것이다.
㉢ 경전으로 회통하여 논으로 매듭지음
도서 모든 반야부 천여 권의 경과 『중론』·『백론』·『십이문론』 등 삼론과 『광백론』 등은 다 이것을 설하고 있다.
원주 『지도론』 100권도 또한 이 도리를 설하였다. 단지 논주가 통달하여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소승 법상을 다 받아들였으니, 뒤의 진성종眞性宗과 은근히 같게 된 것이다.
㉣ 선종을 들어 배대함
도서 이 교와 선문의 민절무기종泯絕無寄宗은 전적으로 같다.
㉤ 상호 비난을 바로 배척함(2항목)
a. 앞의 것을 가지고 총체적으로 경책함
도서 이미 세존이 설하시고 보살이 홍포한 것이 이와 같은데, 왜 점문의 선주禪主와 강습講習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이 교설을 듣고 곧 인과를 없애는 말이라고 비방하는가. 불타도 스스로 업도 없고 과보도 없다고 말씀하셨으니, 어찌 이것을 삿된 견해라 하겠는가.
b. 따르고 빼앗아 결론으로 깨뜨림
도서 만일 불타가 설하신 이 말씀이 그 자체에 깊은 뜻이 있다면, 선문의 이 말씀에도 어찌 깊은 뜻이 없겠는가. 만일 “내가 일찍이 추궁하여 물었는데, 깊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한다면, 단지 이것은 그대가 (법을) 알지 못하는 무리를 만난 것이니, 사람을 원망할 것이지 어찌하여 법을 배척하는가.
(ㄷ) 난문을 통함(3항목61))
과평 질문하기를,62) “위로는 서역의 선현으로부터 각각 한 가르침에 의거하여 공空을 설하여 유有를 깨뜨리며, 유를 설하여 공을 깨뜨렸는데, 어찌하여 이 땅의 후학이 서로 깨뜨린 것에 대해서만 치우치게 책망하는가. 실로 책망하는 것은 옛 성인이 잘못했기 때문인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아래에 세 가지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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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6_b_01L如幻。
009_0216_b_02L二畧指行門
009_0216_b_03L但以不住一切。無執無着。而爲道行。
009_0216_b_04L三會經結論
009_0216_b_05L諸部般若千餘卷經。及中百門等三論
009_0216_b_06L廣百等。皆說此也。
009_0216_b_07L智度論百卷。亦說此理。但論主通達
009_0216_b_08L不執故。該收大小乘法相。潜同後眞
009_0216_b_09L性宗也。
009_0216_b_10L四擧配禪宗
009_0216_b_11L此敎與禪門泯絕無寄宗全同。
009_0216_b_12L五正斥相非二一攝前摠責
009_0216_b_13L旣同世尊所說。菩薩所弘。云何漸門禪
009_0216_b_14L主。及講習之徒。每聞此說。即謗云。撥
009_0216_b_15L無因果。佛自云無業無報。豈邪見乎。
009_0216_b_16L二縱奪結破
009_0216_b_17L若云佛說此言。自有深意者。豈禪門此
009_0216_b_18L說。無深意耶。若云我曾推徵。覺無深
009_0216_b_19L意者。自是汝遇不解之流。但可嫌人。
009_0216_b_20L豈可斥法。
009_0216_b_21L三通難難云。從上西域先賢。各據
009_0216_b_22L一敎。說空破有。說有破空。如何
009_0216_b_23L偏責此方後學相破耶。實如所責
009_0216_b_24L古聖非耶。故下文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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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6_c_01L㉠ 서역의 선현들이 서로 논파했으나 잘못됨이 없음을 자세히 밝힘(3항목)
a. 미한 집착을 표하여 듦
도서 위의 두 교63)는 부처의 본의에 의거한 것으로, 비록 서로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 후학이 전하면서 다수가 문자에 집착하고 뜻에 미혹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각기 하나의 견해에 집착하여 서로 상대방의 잘못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양편을 다 대충 믿고 혼돈하니,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b. 원융 회통함을 자세히 밝힘(3항목)
a) 사람에 의거하여 장애를 해결함(2항목)
(a) 바로 통하게 함
도서 그 때문에 용수龍樹ㆍ제바提婆 등의 보살은 파상교破相敎(상을 깨뜨리는 교)에 의지하여 공의 이치를 자세히 설함으로써 유有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고 활연히 진공을 알게 한 것이다. 진공이란 유에 어긋나지 않는 공을 말한다. 무착無着ㆍ천친天親 등의 보살은 유식교唯識敎(오직 식뿐이라는 교)에 의지하여 명名과 상相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성性과 상相이 다르고, 염染과 정淨이 구별됨을 분석하여 공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고 분명하게 묘유妙有를 알도록 하였다. 묘유란 공空에 어긋나지 않는 유이다. 비록 각각 하나의 의미만을 진술하여도 모든 체성을 원만하게 갖추기 때문에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b) 전전하여 해결함
도서 문 만약 그렇다면 왜 이후에 청변과 호법 등 여러 논사가 서로 논파했는가?답 이것은 서로 성립시킨 것이지 서로 깨뜨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말기의 후학이 근기가 점차 둔해져서 서로 공空과 유有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청변 등은 고정된 유有라는 상을 깨뜨림으로써 철저히 궁극적인 진공에 이르도록 하여 마침내 연기묘유를 성취하였다. 호법 등이 단멸이라는 치우친 공空을 깨뜨린 것도 그 의도는 마찬가지로 묘유에 있었다. 묘유가 있기 때문에 저 무성無性인 진공을 성취하는 것이다. 글은 서로 논파하고 있지만 뜻은 서로 성립시키는 데 있다.
원주 앞에서 남북의 선문이 서로 다투는 것에 대한 의심을 서술하였는데, 지금 여기에 그 결론을 내리고 있다.
b) 법에 의거하여 난문을 해결함
과평 논평하여 말한다. 극도로 어긋나는 문에 의거하면, 진공은 전적으로 묘유 쪽을 배제한다. -
009_0216_c_01L一廣明西域先賢相破無失又三
009_0216_c_02L一標擧迷執
009_0216_c_03L此上二敎。據佛本意。雖不相違。然後
009_0216_c_04L學所傳。多執文迷旨。或各執一見。彼
009_0216_c_05L此相非。或二皆泛信。混鈍不曉。
009_0216_c_06L二廣明融會三一約人釋妨二初
009_0216_c_07L正通
009_0216_c_08L故龍樹提婆等菩薩。依破相敎。廣說空
009_0216_c_09L義。破其執有。令洞然解於眞空。眞空
009_0216_c_10L者是不違有之空也。無着天親等菩薩
009_0216_c_11L依唯識敎。廣說名相。分析性相不同
009_0216_c_12L染淨各別。破其執空。令歷然解於妙有。
009_0216_c_13L妙有者不違空之有也。雖各述一義。
009_0216_c_14L而擧體圓具。故無違也。
009_0216_c_15L二轉通
009_0216_c_16L問。若爾。何故已後。有淸辯護法等論
009_0216_c_17L師。互相破耶。答。此乃相成。不是相破。
009_0216_c_18L何者。以末代學人。根器漸鈍。互執空
009_0216_c_19L有。故淸辯等。破㝎有之相。令盡徹。至
009_0216_c_20L畢竟眞空。方乃成彼緣起妙有。護法等。
009_0216_c_21L破斷滅偏空。意在妙有。妙有存故。方
009_0216_c_22L乃成彼無性眞空。文即相破。意即相成。
009_0216_c_23L前叙疑南北禪門相竸。今於比 [1] 決也。
009_0216_c_24L二約法通難
009_0216_c_25L評曰。極違門眞空。全奪妙有之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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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7_a_01L물을 말하면서 파도를 배제하는 것과 같다. 묘유가 전적으로 진공을 배제하는 쪽은 파도를 말하면서 물을 배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파도 밖에 물이 따로 없으며, 물 밖에 파도가 따로 없다. 극도로 순응하는 문에서는 진공과 묘유가 두 모양이 아니니, 파도가 곧 물이고, 물이 곧 파도이다.64)
도서 그것은 진공묘유에 두 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극도로 상호 어긋나는 의미이다. 서로를 해치어 완전히 배제함으로써 영구히 다하는 것을 가리킨다. 둘째, 지극히 서로 순응하는 의미이다. 가만히 하나의 모양으로 계합하여 전체를 완전히 포섭하는 것을 가리킨다. 만일 서로를 제거하여 완전히 다하지 않는다면 전체를 완전히 포섭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극도로 어긋나는 것이 바로 지극히 순응하는 것이다.
c) 앞의 의미를 회통하여 해석함
용수ㆍ무착 등은 지극히 순응하는 문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서로 성립시켰고, 청변과 호법 등은 극도로 어긋나는 문에 의거했기 때문에 서로를 깨뜨린 것이다.
c. 옛 성인의 뜻으로 결론지음
도서 어긋나고 순응함이 자재하고, 성립하고 깨뜨림에 걸림이 없으니, 모든 법에 화회하지 않음이 없을 뿐이다.
㉡ 이 땅의 후학들이 서로 비방하면서 증득함이 없는 것을 간략하게 경책함
도서 슬프다. 이 나라 양종(공종과 상종)의 후학이 경론을 배우면서 서로 비난하고 서로 배척하여 원수와 다름없으니, 어느 때 무생법인無生法印65)을 증득할 수 있겠는가. 지금 돈점의 선禪 하는 자들도 이와 다르지 않으니, 노력하고 살펴서 한곳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앞에서 질문한 것에 따라 화회의 의의를 결론으로 답함
도서 문 서역의 선현들은 서로 깨뜨렸지만 이미 성립시킨 것이라면, 어찌하여 이 나라에서는 서로 비난하고 서로 질시하는가?답 사람이 물을 마셔야 차고 따뜻한 것을 아는 것처럼 각각 마음을 관하고 각자 생각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약을 써서 병을 막는 것은 건강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법을 세워 간교함을 막는 것은 어진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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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7_a_01L以水奪波。妙有全奪眞空之邊。以
009_0217_a_02L波奪水。波外無水。水外無波。極
009_0217_a_03L順門眞空妙有。不二之相。波即是
009_0217_a_04L水。水即是波也。
009_0217_a_05L由妙有眞空。有二義故。一極相違義。
009_0217_a_06L謂互相害。全奪永盡。二極相順義。謂
009_0217_a_07L冥合一相。擧體全攝。若不相奪全盡。
009_0217_a_08L無以擧體全收。故極違。方極順也。
009_0217_a_09L三會釋前義
009_0217_a_10L龍樹無着等。就極順門故相成。淸辯護
009_0217_a_11L法等。據極違門故相破。
009_0217_a_12L三結古聖意
009_0217_a_13L違順自在。成破無碍。即於諸法。無不
009_0217_a_14L和會耳。
009_0217_a_15L二略責此方後學相非無證
009_0217_a_16L哀㦲。此方兩宗後學經論之者。相非相
009_0217_a_17L斥。不異仇讎。何時得證無生法忍。今
009_0217_a_18L頓漸禪者。亦復如是。努力通鑑。勿偏
009_0217_a_19L局也。
009_0217_a_20L三躡前立問決答和會意義
009_0217_a_21L問。西域先賢相破。旣是相成。豈可此方
009_0217_a_22L相非。便成相嫉。答。如人飮水。冷暖自
009_0217_a_23L知。各各觀心。各各察念。留藥防病。不
009_0217_a_24L爲健人。立法防奸。不爲賢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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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7_b_01Lㄴ) 실교를 드러내어 설함(3항목)
(ㄱ) 성인의 가르침을 자세히 해석함(5항목)
㉠ 교의 명칭을 표하여 세움
도서 셋째, 진심이 곧 성性임을 드러내 보여 주는 교
원주 자기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키는 것이 곧 진성이다. 일과 형상에 의해 보여 주는 것도 아니고 형상을 깨뜨림에 의해 보여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곧 진성이라 하며, 방편의 은밀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드러내 보여 준다고 하는 것이다.
㉡ 교의를 바로 밝힘(2항목)
a. 두 가지 깨끗함을 자세히 밝힘(2항목)
a) 바로 밝힘(2항목)
(a) 자성의 깨끗함
도서 이 교는 일체중생에게 모두 비고 고요한 진심이 있으니, 시작이 없는 본래부터 본성은 스스로 청정하다고 설한다.
원주 번뇌의 의혹을 끊음으로써 청정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성이 청정하다고 하는 것이다. 『보성론』에서 “청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청정이고, 둘째는 번뇌를 여읜 청정이다.”라고 하였다. 『승만경』에서는 “자성청정심은 알기 어렵지만 이 마음이 번뇌에 물드는 것 또한 알기 어렵다.”라고 설한다. 해석하면, 이 마음은 앞의 공과 유, 두 종파의 이치를 초월했기 때문에 알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b) 번뇌를 떠난 청정함(2항목)
ⓐ 생사에 빠짐
도서 밝고 밝아 어둡지 않으며, 뚜렷하고 분명하여 항상 알고 있으니,【아래의 불설佛說을 인용하였다.】 미래가 다하도록 항상 머물러 없어지지 않으므로 불성이라 하고, 여래장이라고도 하며, 또한 심지心地라고도 한다.【달마가 전한 이 마음이다.】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망상이 가리어 스스로 증득하지 못하고 생사에 탐착한다.
ⓑ 부처가 출현하여 깨달음을 엶
도서 대각께서 그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세상에 출현하시어 생사 등의 법이 일체 공하다는 것을 설하시었으며, 이 마음이 모든 부처와 전적으로 같음을 열어 보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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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7_b_01L二現說實敎三一委釋性敎五一
009_0217_b_02L標立敎名
009_0217_b_03L三顯示眞心即性敎。
009_0217_b_04L直指自心。即是眞性。不約事相而示。
009_0217_b_05L亦不約破相而示。故云即性。不是方
009_0217_b_06L便隱密之意。故云顯示也。
009_0217_b_07L二正明敎義二一廣明二淨二一
009_0217_b_08L正明二初自性淨
009_0217_b_09L此敎說一切衆生。皆有空寂眞心。無始
009_0217_b_10L本來。性自淸淨。
009_0217_b_11L不因斷惑成淨。故云性淨。寶性論云
009_0217_b_12L淸淨有二。一自性淸淨。二離垢淸淨。
009_0217_b_13L勝鬘云自性淸淨心。難可了知。此
009_0217_b_14L心爲煩惱所染。亦難可了知。釋云此
009_0217_b_15L心。超出前空有二宗之理故。難可了
009_0217_b_16L知也。
009_0217_b_17L二離垢淨二一迷倫生死
009_0217_b_18L明明不昧。了了常知下引
佛說。盡未來際。常
009_0217_b_19L住不滅。名爲佛性。亦名如來藏。亦名心
009_0217_b_20L地達摩所傳
是此心也。從無始際。妄想翳之。不自
009_0217_b_21L證得。耽着生死。
009_0217_b_22L二佛現開悟
009_0217_b_23L大覺愍之。出現於世。爲說生死等法。
009_0217_b_24L一切皆空。開示此心。全同諸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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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7_c_01Lb) 인증(3항목)
(a) 법
도서 『화엄경』 「출현품」에서 설하였다.“불자여, 한 중생도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지 않음이 없지만, 단지 망상집착으로 증득하지 못할 뿐이다. 만일 망상을 떠나면, 일체지66)ㆍ자연지67)ㆍ무애지68)가 곧 현전할 것이다.
(b) 비유
도서 비유하면 하나의 커다란 경권【불의 지혜를 비유함】이 있는데, 그 양이 삼천대천세계【지혜의 본체가 끝이 없어 법계를 널리 감쌈】와 같아서 삼천대천세계 중의 일을 일체 다 기록한 것과 같다.
원주 본체상에 본래 있는 항하사 같은 공덕과 항하사 같은 묘용을 비유한 것이다.
도서 이 큰 경권은 그 수량이 대천세계와 같지만, 전적으로 티끌 하나 가운데 들어 있다.
도서 부처의 지혜가 전부 중생의 몸 가운데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도서 하나의 티끌【하나의 중생을 들어 예로 삼음】과 같이 일체의 티끌이 다 또한 이와 같다. 그때 어떤 사람이 지혜가 총명하고 통달【세존을 비유함】하여 청정한 천안을 얻고 보니, 이 경권이 티끌 안에 있으나
원주 천안天眼은 장애에 막혀도 물체를 본다는 것은, 불안佛眼이 번뇌에 막혀도 부처의 지혜를 보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도서 모든 중생에게 조금도 이로움이 없음 보고
원주 미할 때는 도무지 그 묘용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이익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비유하는 것이다. 운운…….
도서 곧 방편을 일으켜 저 미진【법을 설하여 장애를 깨뜨리는 것을 비유함】 번뇌를 깨뜨리고 대경권을 꺼내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널리 이로움을 얻도록 하였다.【운운】
(c)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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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7_c_01L二引證三一法
009_0217_c_02L如華嚴經出現品云。佛子。無一衆生而
009_0217_c_03L不具有如來智慧。但以妄想執着。而不
009_0217_c_04L證得。若離妄想。一切智自然智無碍
009_0217_c_05L智。即得現前。
009_0217_c_06L二喩
009_0217_c_07L譬如有大經卷喩智
佛慧。量等三千大千世界
009_0217_c_08L智體無邊
廓周法界。書寫三千大千世界中事。一切
009_0217_c_09L皆盡。
009_0217_c_10L喩體上本有恒沙功德恒沙妙用也。
009_0217_c_11L此大經卷。雖復量等大千世界。而全住
009_0217_c_12L在一微塵中。
009_0217_c_13L喩佛智全在衆生身中。圓滿具足也。
009_0217_c_14L如一微塵擧一衆
生爲例。一切微塵皆亦如是。
009_0217_c_15L時有一人。智慧明達喩世
尊也。具足成就淸
009_0217_c_16L淨天眼。見此經卷。在微塵內。
009_0217_c_17L天眼方隔障見色。喩佛眼方隔煩惱
009_0217_c_18L見佛智也。
009_0217_c_19L於諸衆生。無少利益。
009_0217_c_20L喩迷時。都不得其用。與無不別云云。
009_0217_c_21L乃至。
009_0217_c_22L即起方便。破彼微塵喩說法
破障也。出此大經。令
009_0217_c_23L諸衆生。普得饒益云
云。
009_0217_c_24L三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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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8_a_01L도서 여래의 지혜도 이와 같이 한량없고 걸림이 없어 널리 일체중생【삼천계 중의 일을 합하여 기록함】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서, 중생의 몸 가운데【티끌 가운데 합해 있음】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범부가 망상집착으로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이로움을 얻지 못한다. 이때 여래가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의 눈으로 널리 법계 일체중생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기이하고 기이하다. 이 모든 중생이 어찌하여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우치하고 미혹하여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가. 내가 마땅히 성도聖道로써 가르쳐 그들이 망상집착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게 하리라.’스스로 이 몸 가운데 여래의 광대한 지혜가 있어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보도록 하여, 저 중생이 성도聖道【육바라밀, 삼십칠도품】를 수습하여 망상을 떠나도록 한 것이다. 망상을 떠나고 나서 여래의 무량지혜를 증득하고 일체중생을 이롭고 안락하도록 하였다.”69)
b. 앎과 지혜가 다름을 간별함(2항목)
a) 물음
도서 문 위에서 이미 본성은 스스로 분명하고 뚜렷하여 항상 안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모든 부처가 반드시 열어 보여야 하는가?
b) 대답(2항목)
(a) 바로 답함
도서 답 여기에서 말하는 앎(知)이란 증득하여 아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으로 그것은 진성으로서 허공이나 목석과는 같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경계를 연하여 분별하는 식識과도 같지 않고, 본체를 관조하여 깨닫는 지혜와도 같지 않다. 바로 진여의 본성으로서 저절로 항상 아는 것이다.
(b) 인증
도서 그러므로 마명보살은 “진여란 자체가 진실하게 아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화엄경』 「회향품」에서도 “진여는 비치어 밝은 것이 본성이다.”라고 하였다. 또 「문명품」에 의하면, 지혜와 앎은 다르다. 지혜는 성인에 국한되어 범부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
009_0218_a_01L如來智慧。亦復如是。無量無碍。普能
009_0218_a_02L利益一切衆生合書寫三
千界中事。具足在於衆生
009_0218_a_03L身中合微
塵中。但諸凡愚。妄想執着。不知不
009_0218_a_04L覺。不得利益。爾時如來。以無障碍淸
009_0218_a_05L淨智眼。普觀法界一切衆生。而作是言。
009_0218_a_06L奇㦲奇㦲。此諸衆生。云何具有如來智
009_0218_a_07L慧。愚癡迷惑。不知不見。我當敎以聖
009_0218_a_08L道。令其永離妄想執着。自於身中。得
009_0218_a_09L見如來廣大智慧與佛無異。即敎彼衆
009_0218_a_10L生。修習聖道六波羅密三
十七道品。令離妄想。離妄
009_0218_a_11L想已。證如來無量智慧。利益安樂一切
009_0218_a_12L衆生。
009_0218_a_13L二揀知智別二一問
009_0218_a_14L問。上旣云。性自了了常知。何須諸佛開
009_0218_a_15L示。
009_0218_a_16L二答二一正答
009_0218_a_17L答。此言知者。不是證知。意說眞性。不
009_0218_a_18L同虛空木石。故云知也。非如緣境分別
009_0218_a_19L之識。非如照體了達之智。直是眞如之
009_0218_a_20L性。自然常知。
009_0218_a_21L二引證
009_0218_a_22L故馬鳴菩薩云。眞如者。自體眞實識知。
009_0218_a_23L華嚴回向品亦云。眞如。照明爲性。又據
009_0218_a_24L問明品說。智與知異。智局於聖。不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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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8_b_01L앎은 범부와 성인 모두에게 있는 것으로서 이지理智에 통한다. 그러므로 각수 등 아홉 보살이 문수사리에게 묻기를, “어떤 것을 불경계佛境界의 지혜【증오證悟의 지혜】라 하고, 어떤 것을 불경계의 앎【본래 가지고 있는 진심】이라고 하는가?”라고 하니, 문수가 ‘지혜(智)’에 대해 답하기를, “제불의 지혜가 자재하여 삼세에 걸림이 없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원주 과거·미래·현재에 통달하지 않은 일이 없기 때문에 자재하여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도서 ‘앎(知)’에 대해 답하기를, “앎이란 식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원주 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식은 분별에 속하기 때문이니, 분별은 진실한 앎이 아니다. 진실한 앎이란 오직 무념이라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이다.
도서 또한 마음의 경계도 아니어서,
원주 지혜로써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지혜로써 그것을 증득한다면, 그것은 증득되는 경계에 속한다. 진실한 앎이란 경계가 아니기 때문에 지혜로써 증득할 수 없는 것이다. 관조하는 마음을 잠깐만 일으켜도 곧 진실한 앎이 아니다. 그러므로 경에서 “스스로의 마음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취하는 것은 환幻이 아니나 환법을 이룬다.”라고 설하였고, 논에서는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한다.”라고 하였으며, 하택 대사는 “마음을 헤아리면 바로 어긋난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북종이 마음을 본다고 하는 것은 진실한 뜻을 잃은 것이라고 하겠다. 마음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경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마음의 경계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도서 그 본성은 본래 청정하니,
원주 오염된 번뇌를 떠나고 미혹함을 멸하는 데 의지하지 않고 깨끗하며, 장애를 끊고 혼탁함을 멈추는 데 의지하지 않고 맑기 때문에 본래 청정이라고 한다. 『보성론』에서도 오염된 번뇌를 떠나서 깨끗한 것이 아니라 그 본성이 깨끗하다고 하여 그것을 구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본성은 본래 청정하다고 하는 것이다.
도서 그것을 모든 중생에게 열어 보여 주었다.”
원주 이미 본래 깨끗하여 장애를 끊는 데 의지하지 않는 것이라 하였으니, 모든 중생이 본래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
009_0218_b_01L於凡。知即凡聖皆有。通於理智。故覺
009_0218_b_02L首等九菩薩。問文殊師利言。云何佛境
009_0218_b_03L界智證悟
之智。云何佛境界知本有
眞心。文殊答
009_0218_b_04L智云。諸佛智自在。三世無所碍。
009_0218_b_05L過去未來現在。無事不了達。故自在
009_0218_b_06L無碍。
009_0218_b_07L答知云。非識所能識。
009_0218_b_08L不可以識識也。以識屬分別。分別即
009_0218_b_09L非眞知。眞知唯無念方見。
009_0218_b_10L亦非心境界。
009_0218_b_11L不可以智知也。謂若以證之。即屬所
009_0218_b_12L證之境。眞知非境界。故不可以智證
009_0218_b_13L矣。瞥起照心。即非眞知也。故經云。
009_0218_b_14L自心取自心。非幻成幻法。論云。心不
009_0218_b_15L見心。荷澤大師云。擬心即差。故北
009_0218_b_16L宗看心。是失眞旨。心若可看。即是
009_0218_b_17L境界。故此云。非心境界也。
009_0218_b_18L其性本淸淨。
009_0218_b_19L不待離垢滅惑方淨。不待斷障凝濁
009_0218_b_20L方淸。故云本淸淨也。就寶性論中
009_0218_b_21L即揀。非離垢之淨。是彼性淨。故云其
009_0218_b_22L性本淸淨。
009_0218_b_23L開示諸群生。
009_0218_b_24L旣云本淨。不待斷障。即知群生本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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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8_c_01L단지 미혹함이 가려서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그러므로 부처가 열어 보여 모두 깨달아 들어가도록 한다는 것은, 곧 『법화경』에서 설한, 부처의 지견을 열어 보여 깨달아 들어가게 한다는 말로, 위에서 인용한 것과 같다. 부처가 본래 출세하심은 단지 이 일을 위함이다. 저기에서 청정을 얻도록 한다고 말한 것은, 곧 『보성론』 중의 오염된 번뇌를 떠난 청정을 말한다. 이 마음은 비록 자성이 청정하지만 마침내 깨닫고 닦아야 성상性相이 원만하고 청정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경론은 모두 두 종류의 청정과 두 종류의 해탈을 설하고 있다.요즈음 배움이 얕은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단지 염오를 떠난 청정과 장애를 떠난 해탈만을 알기 때문에 선문禪門에서 곧 마음이고 곧 부처라 하는 것을 비방한다. 어떤 사람은 단지 자성이 청정이고 자성이 해탈이라는 것만을 알기 때문에 교상을 가벼이 여겨 계율을 지키고 좌선을 하며 번뇌를 조복 받는 등의 행을 배척한다. 따라서 반드시 자성이 청정한 것을 돈오한 후, 스스로 해탈을 믿고 점차 닦아 번뇌를 여읜 청정과 장애를 여읜 해탈을 얻는다. 원만하고 청정한 구경해탈을 성취하면, 저 몸과 마음에 가리고 막힘이 사라져 석가모니불과 다름이 없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도서 『보장론』에서는 “유를 알면 유가 파괴되고, 무를 알면 무가 무너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주 이것이 다 유와 무를 알 수 있는 지혜다.
도서 그 안다는 앎은 유무를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
원주 이미 유무를 헤아리지 않았으니, 자성에 분별이 없는 앎이다.
㉢ 앞의 것을 거듭하여 명칭을 결론함
도서 이와 같이 열어 보인 ‘신령스럽게 아는 마음’이 곧 진성이니, 부처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진심이 곧 성임을 드러내 보여 주는 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 선종을 들어 배대함
도서 『화엄경』·『밀엄경』·『원각경』·『불정경』·『승만경』·『여래장경』·『법화경』·『열반경』 등 40여 부 경과 『보성론』·『불성론』·『기신론』·『십지경론』· -
009_0218_c_01L皆有。但以惑翳而不自知。故佛開示
009_0218_c_02L令皆悟入。即法華中開示悟入佛之
009_0218_c_03L知見。如上所引。佛本出世。只爲此
009_0218_c_04L事也。彼云使得淸淨者。即寶性中離
009_0218_c_05L垢淸淨也。是心。雖自性淸淨。終須
009_0218_c_06L悟修。方得性相圓淨。故數本經論。
009_0218_c_07L皆說二種淸淨二種解脫。今時學淺
009_0218_c_08L之人。或只知離垢淸淨離障解脫。故
009_0218_c_09L毁禪門即心即佛。或只知自性淸淨
009_0218_c_10L性淨解脫。故輕於敎相。斥於持律坐
009_0218_c_11L禪調伏等行。不知必須頓悟自性淸
009_0218_c_12L淨。自恃解脫漸修。令得離垢淸淨離
009_0218_c_13L障解脫。成圓滿淸淨究竟解脫。若身
009_0218_c_14L若心。無所擁滯。同釋迦佛也。
009_0218_c_15L寶藏論云。知有有壞。知無無敗。
009_0218_c_16L此皆能知有無之智。
009_0218_c_17L其知之知。有無不計。
009_0218_c_18L旣不計有無。即自性無分別之知也。
009_0218_c_19L三牒前結名
009_0218_c_20L如是開示靈知之心。即眞性。與佛無異。
009_0218_c_21L故名顯示眞心即性敎也。
009_0218_c_22L四擧配禪宗
009_0218_c_23L華嚴密嚴圓覺佛頂勝鬘如來藏法華湼
009_0218_c_24L槃等四十餘部經。寶性佛性起信十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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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9_a_01L『법계론』·『열반경론』 등 15부 논서는, 비록 돈점이 같지 않지만, 드러내는 법체에 의거하면, 모두 이 교敎70)에 속하기 때문에 선문의 ‘셋째, 바로 심성을 드러내는 종宗’과 전적으로 같게 되는 것이다.
㉤ 공과 상의 비난을 버림(2항목)
a. 앞의 글을 거듭하여 상호 비난을 차단함
도서 이미 마명은 마음이 본원임을 표하였고, 문수는 앎이 참된 본체임을 구별하였는데, 어찌하여 상相을 깨뜨리는 무리는 단지 적멸이라고만 하여 진지를 인정하지 않으며, 상相을 설하는 가문은 범부와 성인이 다르다는 데 집착하여 (범부가) 곧 부처임을 인정하지 않는가. 지금 부처의 가르침에 의하여 판정함이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b. 설명한 것을 인용하여 결론으로 증명함(2항목)
a) 본래 의미를 곧바로 밝힘
도서 그러므로 앞에서 서역에서 마음을 전하는 데는 다분히 경과 논을 겸하였으니, (선과 교라는) 두 길이 없다고 서술하였다.
b) 자취를 밟아 힐난하는 질문을 해결함71)(3항목)
(a) 달마가 문자를 구별하고 마음을 전한 데 대해 힐난하는 질문을 해결함
도서 단지 이곳 (사람들은) 마음에 미혹하고 문자에 집착하여 명칭을 본체로 삼기 때문에 달마가 방편으로 문자와 구별하여 마음을 전한 것이다. 그 명칭【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을 표시해 들어서 그 본체【앎이 본체임】를 말없이 보여 주었고, 벽관【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으로 유인하여 모든 연을 끊게 하였다.모든 연을 끊을 때에 물었다.“단멸斷滅되었는가?”대답했다.“비록 모든 생각을 끊었지만 단멸되지는 않았습니다.”72)물었다.“무엇으로 증명하여 단멸되지는 않았다고 하는가?”대답했다.“뚜렷하게 스스로 알아 말로써 미칠 수 없습니다.”달마가 즉시 인가하여 말했다.“단지 이것이 자성청정심이니, 다시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만일 대답이 (진성에) 계합하지 않으면 모든 잘못을 막고 다시 관찰하도록 하여야 한다. 끝까지 그에게 먼저 ‘앎(知)’이라는 글자를 말해 주지 않고 그가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고 나서 비로소 진실을 검증해야 한다. 이것이 친히 그 본체를 증득한 후에 인가하여 남은 의심을 끊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없이 심인心印을 전한다’라고 하였다. 말하지 않는다는 말은 ‘앎(知)’이란 글자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일체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6대에 걸쳐 서로 전한 것이 모두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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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9_a_01L法界湼槃等十五部論。雖或頓漸不同。
009_0219_a_02L據所顯法體。皆屬此敎。全同禪門第三
009_0219_a_03L直顯心性之宗。
009_0219_a_04L五遣空相訾二一牒前遮非
009_0219_a_05L旣馬鳴標心爲本源。文殊揀知爲眞體。
009_0219_a_06L如何破相之黨。但云寂滅。不許眞知。
009_0219_a_07L說相之家。執凡異聖。不許即佛。今約
009_0219_a_08L佛敎判㝎。正爲斯人。
009_0219_a_09L二人說結證二一正明本義
009_0219_a_10L故前叙西域傳心。多兼經論。無二途也。
009_0219_a_11L二躡跡通難三一通達摩揀文傳
009_0219_a_12L心難
009_0219_a_13L但以此方。迷心執文。以名爲體故。達
009_0219_a_14L摩善巧。揀文傳心。標擧其名心是
名也。默示
009_0219_a_15L其體知是
體也。喩以壁觀如上
所叙。令絕緖緣。絕
009_0219_a_16L諸緣時。問斷滅否。答雖絕諸念。亦不
009_0219_a_17L斷滅。問以何證驗。云不斷滅。答了了
009_0219_a_18L自知。言不可及。師即印云。只此是自
009_0219_a_19L性淸淨心。更勿疑也。若所答不契。即
009_0219_a_20L但遮諸非。更令觀察。畢竟不與他先言
009_0219_a_21L知字。直待他自悟。方驗眞實。是親證
009_0219_a_22L其體。然後印之。令絕餘疑。故云默傳
009_0219_a_23L心印。所言默者。唯默知字。非摠不言。
009_0219_a_24L六代相傳。皆如此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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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9_b_01L(b) 하택이 ‘앎(知)’을 드러냄이 은밀함(密)과 다르다는 난문을 해결함
도서 하택의 시대에 이르러 다른 종파가 다투어 퍼지고 말없는 가운데 계합하는 자를 찾으려 하나 인연이 있는 근기를 만나지 못하였다. 또 달마가 실에 매달린 것 같다고 한 예언을 생각하니,
원주 달마가 “나의 법은 제6대 이후에 그 생명이 실에 매달린 것 같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도서 종지가 끊어져 없어질까 두려워 ‘앎이라는 한 글자가 뭇 현묘함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하였으며, 깨달음의 깊고 얕음은 학자에게 맡기고, 우선 종교宗敎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것은 이 나라의 대법운수大法運數가 이른 것으로, 한 무리의 도속道俗이 함께 계합하여 널리 들었기 때문에 감응이 이와 같은 것이다.
(c) 법이 같은데 신표인 의발이 합당한가에 대한 힐난을 해결함73)
도서 말없이 전하면 나머지 사람이 모르기 때문에 가사로 신표를 삼은 것이며, 드러내어 전하면 배우는 사람들이 쉽게 구별하므로 단지 언설로써 의심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형용하여 말하는 것으로써 충분한데 경론을 인용하여 증거를 삼으려 하는가.
원주 앞에서 서술했던 “지금 법을 전하는 사람도 비밀한 말을 설하는가.”라는 외부의 힐난하는 질문에 대해 내가 지금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법은 달마의 법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깊건 얕건 모두 이익이 된다. 단지 옛날에는 은밀히 전하였지만 지금은 드러내어 전하기 때문에 비밀스런 말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어찌 명칭이 다르다고 법까지 다르겠는가.
(ㄴ) 치우친 방편을 가만히 물리침(2항목74))
과평 오늘날 학문이 얕은 사람들이 어떤 때는 깨달음의 문에 집착하여 실천의 문을 버리고, 어떤 때는 실천문에 막히어 깨달음의 문을 버린다. 돈과 점이 서로 비방하는 것이 마치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다투는 관계와 같다. 질문과 대답을 함께 갖추어 공교空敎와 상교相敎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성청정과 자성해탈을 단번에 깨달은 후에 번뇌를 떠난 청정과 장애를 떠난 해탈을 점차 깨닫게 한다. 그래서 지금 궁극적으로 청정한 원만해탈을 얻으면 석가불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문장은 둘로 나뉜다.
㉠ 질문
도서 문 이 마음을 깨닫고 나서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처음의 ‘상을 설하는 교’에 다시 의지하여 좌선을 하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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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9_b_01L二通荷澤現知異密難
009_0219_b_02L至荷澤時。他宗竸播。欲求默契。不遇
009_0219_b_03L機緣。又思惟達摩顯 [1] 絲之記。
009_0219_b_04L達摩云。我法第六代後。命如懸絲也。
009_0219_b_05L恐宗旨滅絕。遂言知之一字。衆妙之門。
009_0219_b_06L任學者悟之深淺。且務圖宗敎不斷。
009_0219_b_07L亦是此國大法運數所至。一類道俗。合
009_0219_b_08L得普聞故。感應如是。
009_0219_b_09L三通法同合得信衣難
009_0219_b_10L默傳者。餘人不知故。以袈裟爲信。其
009_0219_b_11L顯傳者。學徒易辨。但以言說除疑。況
009_0219_b_12L旣形言足可。引經論爲證。
009_0219_b_13L前叙外難云。今時傳法者。說密語否。
009_0219_b_14L余今以此答也。法是達摩之法故。聞
009_0219_b_15L者深淺皆益。但昔密而今顯。故不名
009_0219_b_16L密語。豈可名別。法亦別也。
009_0219_b_17L二暗斥偏權今時學淺之人。或執
009_0219_b_18L悟門。撥却行門。或滯行門。撥却
009_0219_b_19L悟門。頓漸相訾。如隔楚漢故。問
009_0219_b_20L答具修。使空相人。頓悟自性淸淨。
009_0219_b_21L自性解脫。然後漸修離垢淸淨離
009_0219_b_22L障解脫。今得究竟淸淨圓滿解脫。
009_0219_b_23L即同釋迦佛也。文二。一問
009_0219_b_24L問。悟此心已。如何修之。還依初說相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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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19_c_01L㉡ 대답
도서 답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혼침이 매우 깊고 무거워 경책하기 어렵고, 들뜬 마음이 사나워 억누를 수 없으며, 탐하고 성냄이 맹렬하여 접촉하는 경계를 제어하기 어려운 사람은, 앞에서 말한 교설 가운데 여러 가지 방편을 사용하여 병에 따라 그것을 조복한다. (둘째,) 만약 번뇌가 많지 않은 사람이라면, 지혜와 앎이 총명하고 영리하므로 곧 본종本宗과 본교本敎75)의 일행삼매一行三昧에 의지한다.『기신론』에서는 “지止(곧 定)를 닦는 사람은 고요한 곳에서 몸을 단정히 하고 뜻을 바로 한다. 호흡이나 형색에 의지하지 않고, 내지 오직 마음이니 바깥 경계는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금강삼매경』에서는 “선禪을 하는 것은 곧 움직이는 것이다. 움직이지도 않고 선을 하지도 않는 것이 생함이 없는 선(無生禪)이다.”라고 하였다. 또 『법구경』에서는 “만약 모든 삼매를 배우려 하는가. 이것(삼매에 들어가는 것)은 움직임이니, 좌선이 아니다. 마음은 경계를 따라 흐르는데 어떻게 정定이라고 하겠는가?”라고 하였고, 『정명경淨名經』에서는 “멸진정에서 일어나지 않고 모든 위의威儀【다니고, 머물고, 앉고, 누움】를 나타내며, 삼계에 의지하지 않고 몸과 뜻을 드러내는 것을 정좌라고 하니, 불타가 인가하였다.”라고 설한다.여기에 의거한다면, 이미 삼계三界76)가 허공의 꽃이고, 사생四生77)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아 본체에 의거하여 행을 일으키니, 닦아도 닦음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부처에도 머물지 않고 마음에도 머물지 않는데, 누가 상계와 하계를 논하는가.
원주 앞의 힐난하는 질문에서 “교에 의거하여 상계의 선정을 이끌어 오는 것은 대나무 통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다. 단지 한 종파의 설에 집착하여 이 요의교를 본다면 이치상 부끄러워 물러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ㄷ) 막힌 것을 해결하고 의심을 풂(4항목78))
과평 의심하여 말하기를, 이미 성교性敎는 깨달음과 수행의 두 문을 갖추었다고 했는데, 만일 깨달음의 문에 의거하여 본다면 공교의 법(空法)과 같고, 수행문에 의거하여 본다면 상교의 법(相法)과 같다. 그러나 공空과 상相의 이치는 실제로 성종의 이치에 해당되지 않는다. 만일 성교의 두 가지 수행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많은 방편으로 수행하는 것은 ‘상相을 설하는 교’의 의미와 같고, -
009_0219_c_01L中。令坐禪否。
009_0219_c_02L二答
009_0219_c_03L答。此有二意。謂惛深厚重。難可策發。掉
009_0219_c_04L擧猛利。不可抑伏。貪嗔熾盛。觸境難
009_0219_c_05L制者。即用前敎中種種方便。隨病調伏。
009_0219_c_06L若煩惱微薄。慧解明利。即依本宗本敎
009_0219_c_07L一行三昧。如起信云。若修止者。住於
009_0219_c_08L靜處。端身正意。不依氣息形色。乃至
009_0219_c_09L唯心。無外境界。金剛三昧云。禪即
009_0219_c_10L是動。不動不禪。是無生禪。法句經云。
009_0219_c_11L若學諸三昧。是動非坐禪。心隨境界流。
009_0219_c_12L云何名爲㝎。淨名云。不起滅㝎。現諸
009_0219_c_13L威儀行住
坐臥。不於三界現身意。是爲宴坐。
009_0219_c_14L佛所印可。據此即已達三界空花。四
009_0219_c_15L生夢寐。依體起行。修而無修。尙不住
009_0219_c_16L佛住心。誰論上界下界。
009_0219_c_17L前叙難云。據敎須引上界㝎者。以
009_0219_c_18L管窺天。但執一宗之說。見此了敎。
009_0219_c_19L理應懷慚而退也。
009_0219_c_20L三通妨決疑疑云。旣曰性敎具悟
009_0219_c_21L修二門。若據悟門見之。即同空法。
009_0219_c_22L若據修門見之。即同相法。則空相
009_0219_c_23L之理。實不亞性宗之理。若就性敎
009_0219_c_24L二修之義。看則多方便修正同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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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20_a_01L본종본교의 일행삼매로 수행하는 것은 ‘상을 깨뜨리는 교’의 의미와 같다. 그러므로 성교의 이치도 또한 공종空宗과 상종相宗 이종二宗의 이치에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아래에 그것을 해결하였다. 아래 글은 네 가지로 나뉜다.
㉠ 드러낸 법을 듦
도서 그러나 이 교에서는 하나의 참된 심성心性으로써 물들고 깨끗한 모든 법에 대응하여 전부를 선별하거나 전부를 수용한다.전부를 선별한다는 것은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단지 궁극적인 본체란 신령스런 앎이 곧 심성이고, 나머지는 모두 허망한 것임을 바로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경계 등도 아니며, 내지 상相과 성性도 아니고, 부처도 중생도 아니며, 사구四句79)를 떠났고, 백비百非80)가 끊어졌다’라고 하는 것이다. 전부를 수용한다는 것은 더럽거나 깨끗한 모든 법이 이 마음 아닌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헛되이 혹업을 일으키고, 내지 사생四生, 육도六道와 더러운 국토에 이르기까지 일으킨다.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본체를 따라 작용을 일으키고, 사등四等,81) 육도六度, 사변四辯,82) 십력十力,83) 미묘한 몸, 깨끗한 땅에 이르기까지 나타내지 않음이 없다. 이미 이 마음이 모든 법을 드러내어 일으켰기 때문에 법마다 모두 진심이다. 사람의 꿈속에 나타나는 일은 일마다 다 사람의 일이고, 금으로 그릇을 만들면 그릇마다 다 금이며, 거울에 비친 그림자는 그림자마다 모두 거울 속에서 움직이는 모양인 것과 같다고 하겠다.
원주 꿈은 망상 업보에, 그릇은 수행에, 그림자는 응신84)과 화신85)에 비유된다.
도서 그러므로 『화엄경』에서는 “일체법이 곧 마음의 자성이니, 지혜의 몸을 성취하는 것은 다른 것으로 인하여 깨닫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고, 『기신론』에서는 “삼계는 헛되고 거짓된 것으로 오직 마음이 만든 것으로 마음을 떠나면 육진 경계가 없다. 내지 일체의 분별은 분별하는 자기의 마음(自心)이다. 마음이 마음을 보지 못하니, 얻을 수 있는 형상이 없다. 그러므로 일체 모든 법은 거울 속의 형상과 같다.”라고 한 것이다. 또 『능가경』에서는 “적멸을 일심이라 하고, 일심을 여래장이라 부른다.”라고 하였으니, (일심은) 자체가 변하여 육도 윤회를 일으켜 선과 악을 짓고, -
009_0220_a_01L相敎義。本宗本敎一行三昧修正
009_0220_a_02L同破相敎義。然則性敎之理。亦不
009_0220_a_03L出空相二宗之理。故通。下文四。
009_0220_a_04L一擧所現法
009_0220_a_05L然此敎中。以一眞心性。對染淨諸法。
009_0220_a_06L全揀全收。全揀者。如上所說。但剋體
009_0220_a_07L直指靈知。即是心性。餘皆虛妄。故云
009_0220_a_08L非識所識非心境等。乃至非性非相
009_0220_a_09L非佛非衆生。離四句絕百非也。全收者。
009_0220_a_10L染淨諸法。無不是心。心迷故。妄起惑
009_0220_a_11L業。乃至四生六道雜穢國界。心悟故。
009_0220_a_12L從體起用。四等六度。乃至四辯十力妙
009_0220_a_13L身淨刹。無所不現。旣是此心。現起諸
009_0220_a_14L法故。法法全即眞心。如人夢所現事。
009_0220_a_15L事事皆人。如金作器。器器皆金。如鏡
009_0220_a_16L現影。影影皆鏡。
009_0220_a_17L夢喩妄想業報。器喩修行。影喩應化。
009_0220_a_18L故華嚴云。知一切法。即心自性。成就
009_0220_a_19L慧身。不由他悟。起信論云。三界虛僞。
009_0220_a_20L唯心所作。離心即無六塵境界。乃至
009_0220_a_21L一切分別。即分別自心。心不見心。無
009_0220_a_22L相可得。故一切諸法。如鏡中像。楞伽
009_0220_a_23L經云。寂滅者。名爲一心。一心者。名如
009_0220_a_24L來藏。能遍興造一切趣生。造善造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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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20_b_01L그 원인과 함께하는 고락을 받는다. 그러므로 일체가 마음 아님이 없는 줄 알아야 한다.
㉡ 두 교를 이어서 밝힘
도서 모두 분간하는 문은 앞의 ‘제2 파상교(상을 깨뜨리는 교)’를 포섭하고, 모두 수용하는 문은 앞의 ‘제1 설상교(상을 설하는 교)’를 포섭한다.
㉢ 난문을 바로 해결함
도서 앞의 것을 여기에 대비시키면 이것은 앞의 것과 훨씬 다르지만, 이것으로 앞의 것을 포섭하면 앞의 것은 이것과 전적으로 같게 된다.86) 깊은 것은 반드시 얕은 것을 포용하지만, 얕은 것은 깊은 것에 도달하지 못한다. 깊은 것은 진심의 본체를 바로 드러내어 비로소 그 가운데에서 일체를 분간하고 일체를 수용한다.
㉣ 결론으로 요의를 보여 줌
도서 이와 같이 수용하고 분간함이 자재하고, 성상性相이 걸림이 없어야 비로소 일체의 법에 실로 머무름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오직 요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 결론으로 남은 글을 가리킴
도서 다시 심성의 같고 다름과 돈점의 위배되고 막힘, 배열한 모든 가문의 언교, 책의 차례와 그것을 지은 대의는 모두 다 하권下卷에 있다.
선원제전집도서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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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20_b_01L受苦樂與因俱。故知一切無非心也。
009_0220_b_02L二躡明二敎
009_0220_b_03L全揀門。攝前第二破相敎。全收門。攝
009_0220_b_04L前第一說相敎。
009_0220_b_05L三正通妨難
009_0220_b_06L將前望此。此則逈異於前。將此攝前。
009_0220_b_07L前則全同於此。深必該淺。淺不至深。
009_0220_b_08L深者直顯出眞心之體。方於中揀一切
009_0220_b_09L收一切也。
009_0220_b_10L四結現了義
009_0220_b_11L如是收揀自在。性相無碍。方能於一切
009_0220_b_12L法。悉無所住。唯此名爲了義。
009_0220_b_13L二結指餘文
009_0220_b_14L更有心性同異。頓漸違妨。及所排諸家
009_0220_b_15L言敎。部帙次第。述作大意。悉在下卷。
009_0220_b_16L禪源諸詮集都序卷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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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20_c_01L
- 1)배휴(797~870) : 당唐의 맹주 제원 사람, 또는 하동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당 선종 때 평장사, 절도사 등의 관직에 올랐다. 해서를 잘 썼고 문장에 능하였다. 규봉 종밀(780~841)에게 화엄을 배웠으므로 종밀이 경소를 지을 때면 언제나 배휴에게 서문을 쓰게 했다. 일찍이 완릉에서 황벽 희운(?~850)을 만나 함께 선에 관해 토론하였으며, 그 말을 기록하여 『宛陵集』을 완성하였다. 선무제 때 불교가 대란을 만났을 때에는 중신이 되어 불교를 보호하기도 하였다.
- 2)선장禪藏 : 경·율·논 삼장에 대비하여 선가의 전적을 일컫는 말.
- 3)일대시교 : 불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여 입멸할 때까지 설한 교법.
- 4)마명(100~160년경) : 중인도 바라문 출신으로 카니슈카 왕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처음 외도의 법을 익혔으나 뒤에 협존자와 대론한 후 깊이 느낀 바 있어 불문에 귀의하였다. 삼장을 널리 배우고 내외전에 통달하였으며, 범어 문학의 선구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 글에서 마명을 성종으로 간주한 것은 마명의 저술로 알려진 『大乘起信論』 사상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나 『大乘起信論』의 저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 5)용수 : 남인도 바라문 출신.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베다·천문·지리·도술 등에 통달하였다. 출가하여 삼장을 널리 배웠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유력하다가 설산에서 노 비구를 만나 대승경전을 전해 받았다. 이를 통해 대승의 실제 의미를 통달하였으며, 외도가 불교를 공격하자 그들을 교화하고 불법을 홍포하였으며, 중론 및 대승경전 주석서를 다수 찬술하여 대승불교의 체계를 수립하였다.
- 6)혜능(638~713) : 당의 선승으로 선종 제6조. 광동 사람으로 『金剛經』 읽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바 있어 5조 홍인에게 찾아가 선을 전해 받았으며, 남해의 법성사 인종 법사를 만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조계 보림사에서 신수와 대응되는 돈오법문을 홍포하였다. 대범사에서 법당을 세우고 곧바로 조계산에 들어가 대법을 선양하다가 국은사에서 세수 76세로 입적하였다. 저술로는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六祖法寶壇經』과 『金剛經口訣』 등이 있다. 그의 문하에는 40명의 법을 받은 제자들이 있다.
- 7)신수(605~706) : 당의 승려, 북종선의 개조이다. 개봉 사람으로 50세에 5조 홍인의 제자가 되었다. 홍인 입적 후 강릉 당양산으로 가서 법을 전하였다. 많은 승려들이 그에게 귀의하여 명성이 높아지자, 측천무후가 그에게 귀의하고 그를 궁중으로 모셔 우대하였다. 남종 혜능의 선에 대해 그가 전한 선을 북종선이라 한다. 세수 102세로 천궁사에서 입적하였다.
- 8)달마(?~528) : 보리달마를 가리킨다. 중국 선종의 초조로 선가에서는 서천 28조로 꼽는다. 남인도 향지국 왕자이다. 처음 반야다라에게 도를 배우며 40여 년 동안 수학하였다. 반야다라에게 법을 받아 자국에서 널리 법을 폈다. 520년 양 무제 때 중국으로 건너와 무제와 만났으나 뜻이 맞지 않아 숭산 소림사에 머물며 9년간 면벽참선하였다. 제2조 혜가에게 법을 전하였다.
- 9)돈頓과 점漸 : 선가의 돈오와 점수를 말한다. 돈오란 단계적인 수행에 의거하지 않고 단번에 깨닫는 것이고, 점수는 깨달은 후에 그 깨달음에 입각하여 점차로 훈수熏修하는 것이다. 규봉은 미迷한 것을 깨닫는 것이 돈이고 범부를 고쳐 성인이 되는 것을 점이라고 하였다. 특히 규봉은 돈오점수를 체계화하였고, 고려의 지눌은 규봉의 돈점설을 계승하여 더욱 심화시켰다. 지눌은 자성이 본래 공적하여 불佛과 다름이 없음을 깨닫지만 오래 익혀 온 습기는 단번에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점수가 필요하다고 해석한다.
- 10)천태(538~597) : 천태 대사 지의를 가리킨다. 천태종의 개조로 18세에 출가하여 혜광에게 율학과 대승교를 배웠으며, 560년 혜사를 찾아가 심관을 받았다. 38세에 천태산에 들어가 수선사를 창건하고 『法華經』을 중심으로 하는 천태종을 개창하였으며, 석존 일대의 교설을 시간에 따라 5종으로 분류하고 교화 방법과 사상 내용을 4종으로 나누어 불교를 체계화하였다. 실천을 중시하고 선관에 의한 지관선법을 주창하여 천태선의 보급에 힘썼다. 그가 일생 동안 설교한 내용을 제자 관정이 필수한 『法華玄義』·『法華文句』·『摩訶止觀』 외에도 많은 저술이 남아 있다.
- 11)삼관三觀 : 천태종의 공관空觀·가관假觀·중관中觀의 삼관을 가리킨다. 밝은 지혜로 공·가·중의 이치를 관하는 것이다. ① 공관-공이란 성상을 모두 떠난 것이다. 일념의 마음이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으며 중간에 있지도 않다고 관한다. 이러한 공관은 가관을 통해 들어가며 견혹과 사혹을 끊는다. ② 가관-공관을 따라 들어가는 것으로 평등관이다. 가假란 만유의 법은 공하여 하나도 실재하는 것이 없으나 그 차별한 모양이 분명한 것은 대체로 가假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 가관으로 진사의 세혹細惑을 끊는다. ③ 중관-중도제일의제관中道第一義諦觀이라고도 한다. 중이란 ‘중정中正’의 의미로, 두 극단이 상대한다는 생각을 떠난 것이다. 일념의 마음이 공도 아니고 가도 아니며, 공에 즉하고 가에 즉한 것을 말한다. 일념이 중임을 관하기 때문에 일념이 중이고 일체가 중이다. 그러나 공도 아니고 가도 아니며 중도 아닌 것이다. 이 중관으로 무명혹을 제거한다. 일심 삼관의 관점에서는 공·가·중 셋이 모두 원융 무애한 것으로 본다. 공에 즉하여 가와 중을 관하고, 중에 즉하여 가와 공을 관하는 것이다. 이것을 즉공·즉가·즉중의 관법이라고 한다.
- 12)우두(594~657) : 당의 선승인 법융을 가리킨다. 선사는 19세에 경사를 통달하고 우연히 반야경을 보다가 불법에 귀의하여 출가하였다. 643년 우두산에 들어가 선실을 세우고 선관을 닦으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도신이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 3조 승찬의 돈교법문을 전하였다. 그 후 이 산이 법계의 중심이 되었고, 그의 법을 우두종이라 불렀다. 한때 그 세력이 왕성했으나 송대 이후에 쇠퇴하였다.
- 13)강서 : 마조 도일(709~788)을 말한다. 당대의 선승으로 남악 회양의 제자이다. 회양 문하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선법을 전해 받고 769년에 종릉(강서 진현) 개원사에서 회양의 법을 펴니 제자들이 운집하였다. 그 때문에 마조의 법을 강서선이라고 불렀으며, 홍주종이라고도 칭했다.
- 14)하택(684~758) : 하택은 당대의 선승 신회神會의 호로서 하택종의 종조이다. 13세에 육조 혜능을 참방하였고, 육조 입적 후 사방을 유력하다가 732년 칙명으로 남양 용흥사에 들어가 선법을 선양하였다. 육조의 입멸로 남방의 선인 돈종이 침체되자, 북방 신수종이 흥성하였다. 이에 하택은 신수의 점문漸門을 공격하니, 북종선이 다시 쇠퇴하고 남종선이 부흥하게 되었다. 그 후 하택이 안사의 난에 공을 세우자 숙종이 하택사 안에 선원을 지어 그를 거주케 하였다. 여기에서 육조의 종풍을 드날리니 세상 사람들이 하택 대사라고 불렀다.
- 15)『주례』 : 중국 주대의 예제를 가리킨다.
- 16)3종 교의敎義 : 『都序』에서 3종 교의란, 불타의 모든 가르침을 ① 밀의의성설상교密意依性說相敎, ② 밀의파상현성교密意破相顯性敎, ③ 현시진심즉성교現示眞心卽性敎의 3종으로 정리한 것을 가리킨다.
- 17)선종의 3종 법문法門 : ① 식망수심종息妄修心宗, ② 민절무기종泯絶無寄宗, ③ 직현심성종直顯心性宗의 세 가지이다. 규봉 선사는 이 선의 3종과 위 교의 3종을 배대하여 선과 교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 18)제호 : 소의 젖을 정제하여 만든 것이 낙이고, 그 낙을 정제한 것이 소이다. 제호는 가장 정제된 우유로 불성에 비유한다.
- 19)갖옷 : 모피로 안감을 댄 옷이다.
- 20)『荀子』 「勸學」편에 있는 말. 왕선겸王先謙의 『荀子集解』에서 왕염손王念孫의 견해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돈頓이란 끌어당기는 것을 가리킨다. 갖옷의 옷깃을 끈다는 것은 다섯 손가락을 굽혀 끌어당기면 전체 갖옷의 털이 다 따라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頓者。 引也。 言挈裘領者。 詘五指而引之。 則全裘之毛皆順也。)”
- 21)『주역약례周易畧例』 : 삼국시대 위나라 왕필이 쓴 『周易』의 주석서이다.
- 22)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이 아래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8대 법요를 찬탄하여 후학이 밝히기 어려울까 걱정하였다.”
- 23)이 문장은 주석문을 본문으로 잘못 취급한 것 같다. 상봉 정원의 『都序分科』는 주석으로 보아 본문 아래에 배열하였다.
- 24)이 질문은 불타께서 응기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하여 설하신 법문이 각각 다른데, 왜 설법의 본뜻을 어기고 통합을 말하느냐고 힐난하는 것이다.
- 25)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당본에서는 ‘대답하였다. 불타가 법화열반 회중에서 이미 일미로 융합하였지만, 단지 여기에 어두운 자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열반경』에서 운운.’이라고 하였다.(唐本云。 答曰。 佛於法華涅槃會中。 亦已融爲一味。 但昧者不覺。 故涅槃經云云。)”
- 26)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문이 있다. “30년 전에는 혹 소승을 설하고, 혹 공교空敎를 설하며, 혹 상교相敎를 설하고, 혹 성교性敎를 설하였으므로 듣는 사람들이 각기 근기에 따라 증득하여 깨달으니, 서로 통하여 알지 못하였다. 40년 후에 영취산에 앉아 삼승을 회통하고, 구시나가라에 나아가 일성一性을 드러내니, 이것이 전후의 궤칙이다.(三十年前。 或說小乘。 或說空敎。 或說相敎。 或說性敎。 聞者各隨機證悟不相通知也。 四十年後。 坐靈鷲而會三乘。 詣枸尸而顯一性。 此前後之軌則也。)” 이 57자는 『都序』의 판본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주석으로 보인다.
- 27)『詩經』 「小雅」 ≺蓼莪≻.
- 1)십육관선十六觀禪 : 16가지 관법으로 『無量壽經』에 나온다. 십육관법·십육상관·십육묘관 등으로 불린다. 염불하는 사람들이 아미타의 신상이나 정토를 염하여 왕생 서방하는 관법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일상관日想觀-정좌하고 서향하여 지는 해를 자세히 보는 것. ② 수상관水想觀-처음은 서방西方의 일체를 물이라고 보고, 둘째는 물이 얼음이 되어 비치는 것을 유리처럼 보는 것. ③ 지상관地想觀-땅의 상하가 모두 유리 보배라고 보는 것. ④ 보수관寶樹觀-극락세계의 나무를 모두 보배로 보는 것. ⑤ 보지관寶池觀-극락의 팔공덕수를 칠보 연화로 보는 것. ⑥ 보루관寶樓觀-앞의 총관상으로 하나하나의 세계 위에 무수한 보루가 있다고 보는 것. ⑦ 화좌관華座觀-불과 관음세지 두 보살이 앉아 있는 화좌를 생각함. ⑧ 상상관像想觀-금색불상이 화좌에 앉아 있는 것을 생각으로 봄. ⑨ 진신관眞身觀-무량수불의 진신을 관함. ⑩ 관음관觀音觀-미타 협시 가운데 관음상을 관상함. ⑪ 세지관勢至觀-협시 대세지보살 상을 관상함. ⑫ 보관普觀-스스로 극락세계에 왕생함을 관함. ⑬ 잡상관雜想觀-장륙불상이 연못 위에 있는 모양을 관함. ⑭ 상배관上輩觀-구품 중 상품에 이르는 으뜸가는 무리를 관함. ⑮ 중배관中輩觀-중품에 생하는 중배를 관함. ⑯ 하배관下輩觀-하품에 생하는 하배를 관함.
- 2)반주삼매般舟三昧 : 정행의 일종이다. 7일 혹은 90일로 일정 기간을 정하고 삼매를 수행하면 부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신업을 바르게 하고 입으로는 불 명호를 부르며 뜻으로 불체를 관하여 삼업이 상응하는 삼매를 가리킨다.
- 3)사색四色·사공四空 : 사색은 문맥으로 보아 색계色界 사선천四禪天, 사공은 무색계無色界 사공천四空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사선천에는 ① 초선천初禪天(인간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희락과 심사의 사유 능력이 남아 있다.), ② 제2선천(오직 의식만이 있어 희喜·사捨와 상응한다.), ③ 제3선천(오직 의식 활동만이 낙樂·사捨와 상응한다.), ④ 제4선천(오직 사捨와 상응하는 의식 활동만이 있다.)이 있다. 사공천은 무색계 사천이라고도 하는데, ① 공무변처空無邊處, ② 식무변처識無邊處, ③ 무소유처無所有處, ④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이른다.
- 4)이 문장이 저본에는 본문으로 되어 있지만, 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주석문으로 처리되어 있고, 『都序』의 다른 판본에도 주석문으로 처리되어 있다.
- 5)일행삼매一行三昧 : 마음을 한 가지로 정하여 닦는 삼매다. 진여삼매眞如三昧 또는 일상삼매一相三昧라고도 한다. 『六祖壇經』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언제나 항상 하나의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라 하였다.
- 6)사선四禪과 팔정八定 : 사선은 색계 사선이고, 색계 사선과 무색계 사무색정四無色定을 합하여 팔정이라고 한다. 색계와 무색계를 상대했을 때, 색계를 선禪, 무색계를 정定이라 한다. 그러나 욕계의 산란과 색계와 무색계의 선정 중, 색계의 선정을 정혜 균등이라 하고 무색계의 선정은 정이 많고 혜가 적다고 한다.
- 7)삼제三諦 : 천태종에 의하면, 제법실상의 진리는 공·가·중 삼제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공제란 진제 또는 무제라고도 부른다. 제법이 본래 공하지만 중생이 알지 못하여 실제라고 집착함으로 인해 망견을 내게 된다. 따라서 공관으로 대치하면 진공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가제는 속제 또는 유제라고도 한다. 제법이 본래 공하지만 인연이 모이면 뚜렷이 드러난다. 공 가운데 일체법을 세우기 때문에 가제라 부르는 것이다. 중제는 중도제일의제라고도 한다. 중관으로 관하면 제법은 본래 양변을 떠나지 않으며, 양변에 즉하지도 않는다. 진도 아니고 속도 아니며, 진에도 즉하고 속에도 즉한다. 청정하고 확 트여 원융무애하기 때문에 중제라고 하는 것이다.
- 8)삼지三止 : 삼지란 천태종의 공·가·중 삼관에 대해 세운 3종의 지행으로 체진지體眞止·방편수연지方便隨緣止·식이변분별지息二邊分別止의 세 가지이다. 체진지란 공관에 대응하여 세운 것으로 무명전도의 망상을 체득하는 것이 실상의 진리이기 때문에 체진지라 부른다. 방편수연지란 가관에 대응하여 세운 지행이다. 보살이 연을 따라 경계를 겪으면 마음이 속제에 편안해져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식이변분별지란 중관에 대응해 세운 지행으로 생사와 열반, 유와 무 등 이변의 상을 분별하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 9)호胡나라와 월越나라 : 중국에서 호나라는 북쪽에 있고, 월나라는 남쪽에 있어 서로 소원하고 격리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 10)『정명경淨名經』 : 『維摩經』을 말한다. 정명淨名은 유마 거사의 호, ‘무구칭’이라고도 한다. 불타의 세속 제자. 인도 비야리국 장자로 보살 행업을 닦은 사람.
- 11)『維摩詰所說經』 권2 「文殊師利問疾品」(T14, 545b3~4).
- 12)상봉 정원은 이곳에 추붕과 다른 과목명을 붙이고, 그 아래에 다음과 같은 주석을 붙이고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도 해탈하지 못하고 어떻게 타인을 경책한다고 하는가?’라고 힐난했기 때문에 아래에 그것을 통하게 하였다.”
- 13)심종心宗 : 불심종佛心宗으로 선종禪宗을 말한다.
- 14)신해수증信解修證 : 불도 수행의 1기로 먼저 법을 믿고, 다음 그 법을 요해하며, 그 법에 의지하여 행을 닦아 마지막으로 과를 증득하는 것. 청량 징관은 신해수증이라는 틀로 『華嚴經』을 해석한다.
- 15)권교權敎와 실교實敎 : 권교는 방편교로서 권도로 가르침을 삼는다. 실교는 진실한 가르침으로서 진실구경의 뜻을 말한다. 천태종에서는 『法華經』만이 유일한 실교이고, 여타의 경전은 모두 권교라고 주장한다.
- 16)요의了義와 불요의不了義 : 요의는 분명하게 설하여 궁극적인 실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을 말하고, 불요의란 드러내어 설한 것이 완전하지 않아 미진한 것을 가리킨다.
- 17)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슬프다. 선교의 근원이 하나이지만, 피차가 그 근원에 어두워 서로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고 하니, 선禪과 강講(敎)을 화회하려는 것이다. 첫머리에서 그 첫째 이유를 밝혔다. 공종空宗과 상종相宗이 서로 잘못이라 하여 쟁론을 쉬지 않는다. 다음에는 둘째 이유를 밝혔다. 앞의 2장章으로 인해 쟁론을 쉬는 것은 알지만, 경론을 철저히 알지 못하여 불타의 견해와 같은지를 알기 어렵다. 셋째 이유, 경론에 의지한다고 말하지만 권교와 실교를 가리지 못하여 무엇에 의지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넷째 이유, 권실은 알지만 비교해 보는 데 어두워 삿됨과 바름을 밝히기 어렵다. 다섯째 이유, 삼량이 같아서 삿됨을 따르는 것을 면할 수 있지만, 경솔하고 부주의하여 오히려 남은 의심이 있다. 여섯째 이유, 여러 의심은 제거했으나 법法과 의義를 분별하지 못하여 언어를 따라 알음알이를 낸다. 일곱째 이유, 법과 의를 듣고 사가四家가 쟁론을 쉬었으나 참됨과 허망함을 구별하지 못하여 명칭과 언어에 막힌다. 여덟째 이유, 팔문八門에 의해 각자의 잘못을 알았으나 오悟와 수修에서 돈점頓漸이 어긋나고 막힌다. 아홉째 이유, 돈점을 구별하여 요의了義를 알았으나 이를 전수하는 데 밝지 않아 (중생을 치료하는) 병과 약을 알지 못한다. 마지막 열째 이유, 이유가 이와 같으니 이미 화회가 이루어지고 상호 비방이 사라졌지만 선禪과 강講의 성상性相을 망정妄情으로 고집한다. 첫째에서 열째까지 운운하며 어둡고 우매한 것을 거친 솜씨로 구별하였다. 뒤에 글이 있다.”
- 18)양量에는 세 가지가 있다(三量) : 현량見量·비량比量·성언량聖言量이다.
- 19)서로 맞추면~하는 까닭이다 : 물고기 형상의 신표가 부합하는 것을 말한다. 나무 또는 주물로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 글자를 새긴 후 둘로 쪼개어 하나씩 갖는다. 나중에 그것을 맞추어 상대방을 믿는다. 삼량을 서로 맞추면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 20)우파국다 : 선종의 서천 28조 중 제4대 존자이다.
- 21)제다가提多迦 : 서천 28조 중 제5대 존자이다.
- 22)계빈국罽賔國 : 중국 한나라 때의 서역국 이름으로 지금 카슈미르 지역에 있던 나라이다.
- 23)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이 아래에 다음의 주석이 있다. “아래의 다섯 번째 질문을 가리키는 것이다.”
- 24)강서江西·하택荷澤~조나稠那·천태天台 : 남종선은 남악 아래의 임제·위앙 2종과 청원 아래의 조동·운문·법안 3종을 합한 오종과 임제 후의 황룡·양기파를 합하여 오가 칠종을 세운다. 그런데 이상 십가는 남종선의 하택선에 속한다는 규봉이 분류한 선의 종파로서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강서는 마조 도일, 하택은 신회, 북수는 북종 신수를 가리킨다. 남선은 자주 지선資州智詵(609~702)을 가리킨다. 처음 현장 삼장에게 사사, 후에 홍인의 제자가 되었다. 우두는 법융, 석두는 희천이다. 보당은 무주(714~774)를 가리킨다. 그는 무상의 제자로서 스승의 정중파에 상대되는 보당파를 열었다. 선십은 5조 홍인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조나는 혜조慧稠와 구나求那를 가리킨다. 이 두 사람은 북위北魏의 불타 선사佛陀禪師로부터 선법을 받았다. 천태는 지의이다.
- 25)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인천교人天敎부터 열 가지 다른 것을 분별하는 데 이르기까지 마침 20여 지紙가 된다.”
- 26)삼상參商 : 삼성과 상성의 두 별을 가리킨다. 삼성은 서쪽에 있고, 상성은 동쪽에 있다. 삼성이 뜰 때면 상성이 지고, 상성이 뜰 때면 삼성이 지기 때문에 두 별은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피차의 대립으로 화목하지 못함을 비유한다.
- 27)『황정경黃庭經』 : 도교의 경전으로 양생養生의 법을 다루고 있다.
- 28)아뢰야 : 뇌야식·아뢰야식 등이라고 하며, 제8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 29)청정장淸淨藏 : 청정을 감추고 있다는 말로 여래장과 같은 말이다.
- 30)초나라와 한나라 : B.C. 200년경에 세운 중국의 고대 국가를 가리킨다. 초는 항우가, 한은 유방이 세웠다. 두 나라는 상대를 멸망시키기 위해 늘 적대하고 싸웠으며, 결국 항우의 초나라가 패했다.
- 31)발을 씻는 뉘우침 : 라후라가 교만하자 석존이 라후라에게 석존의 발을 씻게 한 후 그 그릇에 음식을 담아 주면 먹겠느냐고 물었다. 라후라가 거절하니, 석존이 너의 바탕이 진실하지 못한 것도 이와 같다고 한 것을 말한다.
- 32)이伊 자의 3점 : 실담자 중 이伊 자는 점 세 개를 찍은 것(∴)과 같다. 이 세 점의 위치는 종횡도 없고 빠진 것이 없기 때문에 불교에서 법신·반야·해탈 등 삼덕의 원만함을 비유적으로 쓸 때 사용한다.
- 33)3종宗 : 공종·상종·성종이다.
- 34)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허락하여 말한 여섯 번의 질문 중 다섯 번째 강론과 전경傳經의 문답을 거듭 가리키는 것이다. 앞에서(前) 가리킨 초단이란, 초단에는 선조가 강설한 글이 있기 때문에 앞에서 기술한(前敘)이라는 두 글자를 쓰지 않고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을 다시 거듭 가리키는 것은, 지금 모은 선전에서, ‘어떻게 경론에 관계되느냐’ 하는 문답이 ‘선사가 어떻게 강설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문답과 같기 때문에 거듭 가리킨다고 한 것이다. 문장은 중첩되는 것 같지만 의미는 중복되지 않는다.”
- 35)이 주석은 여타 본에 없다.
- 36)여섯 자 : 바로 아래 나오는 “금차선서선종今且先叙禪宗(지금 먼저 선종을 서술한다.)”의 여섯 자를 가리킨다.
- 37)이 말 : 공종이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곧 이 종파에 대한 앞의 설명을 가리킨다.
- 38)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상相을 합하여 성性으로 돌아감.”
- 39)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진오眞悟.”
- 40)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진수眞修.”
- 41)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진증眞證.”
- 42)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돈오.”
- 43)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점수.”
- 44)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증과.”
- 45)오도五道 : 오취라고도 한다. 중생이 업인에 따라 전생하는 다섯 곳을 가리킨다. 육도 가운데 아수라가 빠진 지옥·아귀·축생·인도·천도의 다섯 곳이다.
- 46)심사관尋伺觀 : ‘심’이라는 것은 대상의 뜻과 이치를 개략적으로 살피는 것이고, ‘사’란 세밀하게 사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대상을 관하는 것을 심사관이라고 한다.
- 47)여덟 개의 나(八我) : 지·수·화·풍 사대와 오온 중 색온을 뺀 나머지 사온을 합한 것을 가리킨다.
- 48)이공二空 : 아공과 법공이다. 아공이란, 중생은 오온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상일하고 주재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법공이란, 일체 대상이 공하다는 것을 말한다. 아공은 아집을 떠난 것이고, 법공은 법집을 떠난 것이다.
- 49)유식관唯識觀 : 대승 관법의 한 가지, 남산 삼관의 하나로 별교와 원교 보살의 관법이다. 만유의 자성은 본래 청정하여 그 근본 이치가 매우 깊기 때문에 오직 식으로만 관하는 것이다.
- 50)육도六度 : 보살이 수행하는 여섯 가지 덕목으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를 가리킨다. 육바라밀이라고도 한다.
- 51)사섭법四攝法 : 사섭사라고도 한다. 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는 네 가지 덕목으로, 보시섭·애어섭·이행섭·동사섭이다. 보시섭은 법이나 재물을 보시하여 상대방을 이끌어 들이는 것이고, 애어섭은 온유한 말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다. 이행섭은 선행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여 이끌어 들이는 것이고, 동사섭은 중생과 고락을 함께하면서 이끄는 것이다.
- 52)번뇌장과 소지장 : 이장二障이라고 한다. 이 이장은 중생이 생사에 윤회하게 하는 가장 근본이 되는 번뇌이다. 번뇌장이란 번뇌가 곧 장애라는 말로 아집에 따라 일어나는 근본번뇌와 분忿·한恨·부覆 등 수번뇌가 여기에 포함된다. 소지장이란 알아야 할 대상인 진여를 장애하는 번뇌이다. 법집에 따라 일어나는 망상분별과 법애와 만慢·무명無明 등을 가리킨다.
- 53)사지四智 : 유루의 팔식을 전환하여 얻은 무루의 지혜로 대원경지·평등성지·묘관찰지·성소작지의 네 가지 지혜이다. 성소작지는 전오식을 전환하여 얻은 지혜이고, 묘관찰지는 제6식을 전환한 지혜이며, 평등성지는 제7식을 전환하여 얻은 지혜로 이체를 평등으로 관한다. 대원경지는 제8식을 전환하여 얻은 지혜로서 평등 원만한 궁극적인 지혜이다.
- 54)법성신法性身 : 법신이라고도 한다. 시방 허공계에 가득한 불신을 가리킨다. 상주불변하는 법성을 불신이라는 상징적인 모습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 55)2경京 : 중국 서쪽의 장안과 동쪽의 낙양 두 서울을 지칭한다.
- 56)세 황제 : 당의 고종·측천무후·중종 세 사람의 황제를 가리킨다.
- 57)선수侁秀 : 남선과 북수. 남선은 지선, 북수는 신수를 가리킨다. 둘 다 홍인의 문하이다.
- 58)옆구리를 자리에 붙이지 않았다는 말은 눕지 않았다는 뜻이니, 곧 4조 도신도 좌선을 했다는 말이다.
- 59)소변所變 : 능변에 의하여 생기한 일체 대상을 말한다.
- 60)능변能變 : 유식의 설로 인식의 주체인 식이 전변하여 일체 만법을 생기하는 것을 가리킨다. 능변에는 제1 능변(제8 이숙식), 제2 능변(제7 사량식), 제3 능변(제6 요별식)의 세 종류가 있다. 이 3종의 능변에 의해 일체 존재가 생기한다는 것이다.
- 61)3항목 : 바로 아래 과평의 마지막 문장에 의거하여 추가하였다.
- 62)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어떤 사람이 ‘위로부터 모든 보살이 공·상에 있어서 상을 깨뜨림이 서로 어긋나는데, 어찌하여 지금 공과 상이 서로 잘못이라 하는 것만을 치우쳐 책망하는가?’라고 힐문한 데 대해 아래에 통하게 하였다.”
- 63)위의 두 교 : 공교와 상교, 중관과 유식을 가리킨다.
- 64)이 글은 다른 본에는 없다. 설암 추붕의 논평으로 추정된다.
- 65)무생법인無生法印 : 생멸을 멀리 떠나 불생불멸하는 진여실상을 관하고 거기에 안주하는 것.
- 66)일체지一切智 : 일체 제법의 총상을 개괄적으로 아는 지혜. 도종지, 일체종지와 함께 삼지 중의 하나.
- 67)자연지自然智 : 무사지無師智라고도 부른다. 공용을 빌리지 않고 자연히 생긴 부처의 일체종지.
- 68)무애지無碍智 :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이 모든 사리를 알아 통달자재한 지혜.
- 69)“불자여, 한 중생도”부터 여기까지 모두 『華嚴經』 「出現品」에서 축약하여 인용한 글이다.
- 70)이 교 : 3종 교종 중 ‘현시진심즉성교’, 곧 진심이 성임을 드러내 보여 주는 교를 말한다.
- 71)이 과목 아래에 다음과 같은 상봉 정원의 주석이 있다. “어떤 사람이 힐난하여 물었다. ‘달마는 마음을 설하고 하택은 앎을 설했으니 앞선 조사들에 위배된다. 그런데 어찌하여 경론을 끌어와 증거를 삼고, 그것을 깊이 찬탄하여 의심할 수 없다고 하는가?’라고 하였기 때문에 아래에 통하여 말한 것이다.”
- 72)단멸되지는 않았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본래 청정하여 끊을 것도 없고 멸할 것도 없다는 것으로, 화엄이나 선의 말씀이다. 그래서 생각을 끊었지만 단멸되지는 않았다고 대답하였다.
- 73)이 과목 아래에 다음과 같은 상봉 정원의 주석이 있다.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신표의 의발을 전하지 않았는가라고 하였기 때문에 아래에 그것을 통하게 하였다.”
- 74)2항목 : 바로 아래 과평의 문장에 의거하여 추가하였다.
- 75)본종本宗과 본교本敎 : 본종은 성종性宗이고, 본교는 성교性敎이다.
- 76)삼계三界 : 미계를 셋으로 분류한 것으로 욕계·색계·무색계이다. 욕계는 탐욕이 성한 세계이고, 색계는 탐욕은 없으나 미묘한 형체가 있는 세계이며, 무색계는 욕망과 형체가 없어진 정신적인 세계이다.
- 77)사생四生 : 생물이 태어나는 네 가지 형태인 태생·난생·습생·화생이다.
- 78)4항목 : 바로 아래 나오는 과평의 마지막 문장에 의거하여 추가하였다.
- 79)사구四句 : 하나의 주제를 네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긍정·부정·긍정 혹은 부정·비긍정 혹은 비부정을 가리킨다.
- 80)백비百非 : 계속 부정하여도 사물의 진상에 도달하기 어려울 때 사용한다. 유무의 극단적인 견해를 없애기 위함이다.
- 81)사등四等 :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을 가리킨다.
- 82)사변四辯 : 사무애지四無碍智 또는 사무애해四無碍解라고도 한다. 마음의 측면으로는 사무애지, 사무애해라 하고, 말하는 측면으로는 사무애변四無碍辯이라고 부른다. ① 법무애法無碍-모든 교법에 통달함, ② 의무애義無碍-모든 교법의 중요 의미를 앎, ③ 사무애辭無碍-여러 가지 말을 알아 통달함, ④ 요설무애樂說無碍-모든 교법을 알아 근기가 좋아하는 말을 자재하게 함 등 네 가지이다.
- 83)십력十力 : 보살이 가지고 있는 열 가지 지혜의 힘. ① 심심력深心力, ② 증상심심력增上深心力, ③ 방편력方便力, ④ 지력智力, ⑤ 원력願力, ⑥ 행력行力, ⑦ 승력乘力, ⑧ 신변력神變力, ⑨ 보리력菩提力, ⑩ 전법륜력轉法輪力.
- 84)응신 : 불佛의 삼신三身 중의 하나이다. 불의 삼신은, ① 법신-영원히 변치 않는 만유의 본체를 인격화하여 법신이라고 부른다. ② 보신-수행 정진에 의해 성취된 불신. 아미타불과 같은 불신이다. ③ 응신-보신불을 보지 못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타나는 불신. 역사적인 불인 석가모니와 같다.
- 85)화신 : 삼신 중 응신을 제외하고 화신을 넣어 삼신이라 하기도 한다. 화신이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불이 스스로 여러 가지 중생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 86)앞의 것이란 파상교에 속하는 전간문全揀門이고, 이것이란 설상교가 속하는 전수문全收門이다. 파상교와 설상교를 대비하면 설상교와 파상교가 현저히 다르지만, 전수문으로 전간문을 포섭하면 파상교와 설상교가 전적으로 같아진다는 것이다.
- 1){底}乾隆五年平安道寧邊普賢寺刊本。(東國大學校所藏)。題名。編者補入。
- 2)撰者名。在「洪州…裵休述」之後。編者移置於此。
- 1)「述」下有「海東沙門雪巖秋鵬科評」。編者除之。
- 1)「徙」當作「徒」{編}。
- 1)「烈」當作「列」{編}。
- 1)「跌」疑「趺」{編}。
- 1)「徃」當作「性」{編}。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이정희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