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선원제전집도서과평(禪源諸詮集都序科評) / 禪源諸詮集都序科評卷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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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제전집도서과평
선원제전집도서과평 상권(禪源諸詮集都序科評 卷上)
해동사문 설암 추붕 과평海東沙門 雪巖秋鵬 科評
제1편 배휴의 서문
선원제전집도서 서

홍주 자사 겸 어사중승 배휴1) 지음

과목을 나눔(3항목)

제1. 사람을 들어 법을 찬탄함(3항목)(一擧人讚法三)
1. 총체적으로 표함(一總標)
배휴 서 규봉 선사가 선禪의 근원이 되는 모든 전적들을 모아 선장禪藏2)으로 삼고 전체의 서문을 썼다. 하동 배휴는 이를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하였다.

2. 별도로 해석함(2항목)(二別釋二)
1) 좁은 견해로 각기 집착하여 서로 다툼(3항목)

(1) 먼저 약이 되는 가르침을 밝히고 그에 의거하여 세움(3항목)

① 두 가지로 표함

배휴 서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여 근기에 따라 가르침을 세우신 이래, 보살이 중간에 나와 병에 맞추어 약을 처방하였다.

② 두 가지로 해석함

배휴 서 그러므로 일대시교3)로 깊고 얕은 삼문三門을 열고, 하나의 참되고 맑은 마음으로 성性과 상相의 다른 법을 펼치셨다. 마명4)과 용수5) 두 대사가 불타의 경전을 홍포하였으나, 공空과 성性으로 종취宗趣를 달리하였고, 혜능6)과 신수7) 두 선사가 달마8) 의 마음을 함께 전했으나 돈頓과 점漸9)으로 품수稟受를 달리하였다. 천태10) 는 오로지 삼관三觀11)에 의지하였고, 우두12)는 한 법도 없다고 하였으며, 강서13)는 전체가 온통 진眞이라 하였고, 하택14)은 지견知見을 곧바로 가리키라고 하였다. 그 외에도 공空과 유有가 서로 논파하기도 하고, 진眞과 망妄이 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어기어 빼앗기도 하고 수순하여 취하기도 하며, 은밀히 가리키기도 하고 드러내어 설하기도 하니, 서역과 중국에 그 종파가 번성하게 되었다.

③ 두 가지로 결론지음

배휴 서 참으로 병의 원인이 천 가지면 약도 수만 가지가 생겨나듯이, 근기에 맞추고 기량을 따르면 (방편이) 한 가지로 같을 수 없는 것이다.

(2) 앞에서 말한 것을 따라 상호 비난함을 바로 밝힘


009_0204_a_01L[禪源諸詮集都序科評]

009_0204_a_02L1)禪源諸詮集都序科評卷上

009_0204_a_03L

009_0204_a_04L2)海東沙門雪巖秋鵬科評

009_0204_a_05L禪源諸詮集都序叙

009_0204_a_06L洪州剌史兼御史中丞裵休述

009_0204_a_07L
科分文三
一擧人讃法三
一摠標

009_0204_a_08L
圭峰禪師集禪源諸詮爲禪藏而都序
009_0204_a_09L河東裵休曰未曾有也

009_0204_a_10L二別釋二
一小見各執相諍文三
009_0204_a_11L一先明藥敎據立三一雙標

009_0204_a_12L
自如來現世隨機立敎菩薩間生
009_0204_a_13L病指藥

009_0204_a_14L
二雙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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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一代時敎開深淺之三門一眞淨心
009_0204_a_16L演性相之別法馬龍二士皆弘調御之
009_0204_a_17L而空性異宗能秀二師俱傳達摩
009_0204_a_18L之心而頓漸殊禀天台專依三觀
009_0204_a_19L頭無有一法江西擧體全眞荷澤直指
009_0204_a_20L知見其他空有相破眞妄相收反奪
009_0204_a_21L順取密指顯說西域中夏其宗寔繁

009_0204_a_22L
三雙結

009_0204_a_23L
良以病有千源藥生多品投機隨器
009_0204_a_24L不得一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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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躡前正明相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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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휴 서 비록 모두가 깨달음의 문이고 다 진실한 도이기 때문에 모든 종파의 문하에는 다 통달한 사람이 있지만, 각기 자신이 익힌 데 안주하여 통하는 것은 적고 막히는 것은 많아 수십 년을 지나면서 스승의 법이 점점 더 붕괴되어 갔다. (자파를) 계승하여 문호를 만들고 각기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경론으로 창과 방패를 삼아 서로를 공격하니, 누가 창을 만들고 누가 갑옷을 만드느냐에 따라 사정이 변화하게 되었다.

원주『주례』15)에서 “함인函人【함函의 음은 함含이다.】은 갑옷을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하였으며, 『맹자』에서는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못하겠는가. 그렇지만 갑옷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이 상하는 것만 걱정하고, 화살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이 상하지 않는 것만을 걱정한다.”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대개 익힌 직업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배우는 사람들도 단지 자기 종파의 무리만 따라 피차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하는 것뿐이다.

배휴 서 법은 남이냐 나냐에 따라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여 시비가 분분하고 복잡하니, 사리를 분석하여 식별할 수가 없다.

(3) 부처나 조사도 도움 되는 것이 없음을 결론으로 드러냄

배휴 서 지난날 세존과 보살 및 제방의 선가와 교가들이 마침 후인들에게 쟁론을 일으키고 번뇌의 병을 더 보태게 하였으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2) 대사가 탄식하고 화회함(3항목)

(1) 때를 당하여 침묵하기 어려움을 탄식함

배휴 서 규봉 대사가 오래도록 탄식하면서, “내가 이때를 당하여 침묵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2) 교설에 의거하여 하나임을 드러냄(2항목)

① 하나의 법임을 듦

배휴 서 이에 여래의 3종 교의敎義16)로 선종의 3종 법문法門17)을 인증하게 되었다.

② 네 가지 비유를 끌어옴(2항목)

가. 처음 두 가지 비유는 교敎와 종宗의 법이 일미一味임을 바로 비유함

배휴 서 금쟁반·금비녀·금팔찌를 녹여 하나로 금붙이를 만들고, 소·낙·제호18)를 섞어 한 가지 맛이 되게 하였다.

나. 뒤의 두 가지 비유는 선禪 하는 사람과 강설하는 사람이 수순하여 화회함을 겸하여 비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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雖俱爲證悟之門盡是正眞之道所以
009_0204_b_02L諸宗門下皆有達人然各安所習
009_0204_b_03L少局多數十年中師法益壞以承禀爲
009_0204_b_04L戶牖各自開張以經論爲干戈互相攻
009_0204_b_05L情隨凾矢而遷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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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禮曰
人爲甲孟子曰矢人豈
009_0204_b_07L不仁於凾人㦲凾人唯恐傷人矢人
009_0204_b_08L唯恐不傷人盖所習之術使然也
009_0204_b_09L學者但隨宗徒彼此相非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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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逐人我以高低是非紛拏莫能辨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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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結現佛祖無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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則向者世尊菩薩諸方敎宗適足以起
009_0204_b_13L諍後人增煩惱病何利益之有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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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大師發歎和會三一歎時難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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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山大師久而歎曰吾丁此時不可
009_0204_b_16L以默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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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約敎現一二初擧一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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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是以如來三種敎義印禪宗三種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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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204_b_20L
後引四喩二一初二喩正喩敎宗
009_0204_b_21L法爲一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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融鉼盤釵釧爲一金攪酥酪醍醐爲一
009_0204_b_2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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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後二喩兼喩禪講人順和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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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휴 서 그물코와 옷깃을 드니 그물과 옷 전체가 따라오고,

원주 『순자』에 이르기를, “갖옷19)의 옷깃을 들어 올림에 있어, 다섯 손가락을 굽혀 끌어당기니 끌려오는 털의 숫자를 다 헤아리지 못한다.”20)라고 하였다.

배휴 서 도시를 목표로 하여 오는 사람들은 모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다.

원주 『주역약례周易畧例』21)에 이르기를, “도시를 목표로 사방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니, 육방六方에서 모여들었지만 많은 것은 아니었다.”라고 하였다. 『도서都序』가 원교圓敎에 의거하여 모든 종파를 인증하니, 비록 백가라도 통괄하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

(3) 근기에 따라 이익을 성취함(3항목)

① 깊은 공을 서술한 것을 찬탄함

배휴 서 그래도 오히려 배우는 사람들이 밝히기 어려울까 염려하여, 다시 종지와 근원에 대한 본말, 진과 망의 화합, 공空과 성性의 은현隱顯, 법과 의미의 차별, 돈頓과 점漸의 동이同異, 부정 표현과 긍정 표현의 호환, 방편과 진실의 심천深淺, 통함과 편협함의 옳고 그름을 곧바로 보여 주었다.22)

원주 이 아래의 글은 서술한 것이 명백히 드러나 간절히 사람들이 깨닫게 하고자 함을 찬탄한 것이다.23)

배휴 서 귀에 대고 말해 주고, 손바닥을 가리키듯 보여 주며, 사자처럼 몸을 펴서 소리치고 연민과 부드러움으로 이끌지 않음이 없다.

원주 이하는 자비로 염려함이 어린아이를 기르는 것과 같음을 찬탄한 것이다.

② 어린아이를 기르는 것과 같음을 찬탄함

배휴 서 젖을 먹이고 약을 주는 것은 부처의 씨앗이 일찍 사라질까 걱정하는 것이며

원주 스스로 선근을 끊고 천제가 되는 것이 ‘일찍 사라지는 것(夭傷)’이다.

배휴 서 품어서 껴안는 것은 물에 떠내려가거나 불에 탈까 염려하는 것이다.

원주 배(腹)는 품는 것이니, 자식이 태어나 3년을 지나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 물과 불의 염려가 없게 된다. 지금 사람이 점점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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振綱領而擧者皆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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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云如振裘領屈五指而頓之
009_0204_c_03L順者不可勝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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據會要而來者同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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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略例云據會要以觀方來則六
009_0204_c_06L合輻輳未足多也都序據圓敎以印
009_0204_c_07L諸宗雖百家亦無所不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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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就機成益三初歎叙述深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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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恐學者之難明也又復直示宗源之
009_0204_c_10L本末眞妄之和合空性之隱顯法義
009_0204_c_11L之差殊頓漸之異同遮表之回互
009_0204_c_12L實之深淺通局之是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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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下歎叙述明顯而丁寧欲人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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莫不提耳而告之指掌而示之頻伸以
009_0204_c_15L吼之愛軟以誘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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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下歎慈悲憂念如養赤子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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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歎如養赤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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乳而藥之憂佛種之夭傷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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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斷善根而作闡提 夭傷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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腹而擁之念水火之漂焚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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抱也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
009_0204_c_22L之懷無水火之慮今人稍長大

009_0204_c_23L{底}乾隆五年平安道寧邊普賢寺刊本(東國大
009_0204_c_24L學校所藏)題名編者補入
撰者名在「洪
009_0204_c_25L州…裵休述」之後編者移置於此

009_0205_a_01L오욕에 빠지는 것이 물과 불이다.

배휴 서 이끌어 인도함은 삿된 가르침과 소승의 미혹한 함정에 빠질까 두려워한 것이고,

원주 이미 선근이 있고, 그에 더하여 오욕을 여의었지만, 다시 대승에 들어가지 못할까 염려하는 것이다.

배휴 서 휘저어 흩어 버림은 투쟁이 굳어질까 걱정하는 것이다.

원주 이미 대승법에 들었지만, 오히려 서로 시비하기 때문에 그것을 휘저어 흩어 버리는(揮散)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서』의 으뜸 취지다.

③ 자비와 지혜가 부처와 같음을 찬탄함

배휴 서 태양도 긴 밤의 어둠을 깨뜨릴 수 없고, 자애로운 어머니도 죽은 후에 그 자식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이다.

원주 이 아래는 자비와 지혜가 부처와 같음을 찬탄한 내용이다. 부처의 광명이 비록 찬란하지만, 우리 스승을 얻은 후에야 그 광명을 돌이켜 고루 비추었고, 부처의 자비가 너르지만, 우리 스승을 얻은 후에야 중생들을 더욱 이롭게 하였다.

배휴 서 우리 스승(규봉)은 부처의 광명을 받들어 그 빛을 중생들에게 고루 비추니 의심의 장막이 모두 제거되었으며, 부처의 마음을 따라 대비를 널리 펼치니 억겁이 다하도록 중생들을 이롭게 하였다.

3. 총체적 결론(三摠結)
배휴 서 곧 세존은 가르침을 연 주인이시고, 우리 스승은 그 가르침을 회통한 사람이다. 본말이 서로 부합하고 원근이 서로 비추니, 세존의 일대 가르침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마친 분이라고 하겠다.

원주 세존이 가르침을 펴신 이래 오늘날까지 그 가르침을 화해하여 통하게 하니 할 수 있는 일을 다 마치신 것이다.

제2. 질문에 의거하여 의심을 풂(3항목)(二假問遣疑三)
1. 세 가지 질문을 세움(一立三問)
배휴 서 어떤 사람이 말했다.
“여래 이후로 일찍이 전체를 회통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 하루아침에 종지를 어겨 지키지 않고, 관문을 폐지하여 의거하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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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五欲是水火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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挈而導之懼邪小之迷陷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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旣有善根又離五欲復恐不入於大
009_0205_a_04L乘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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揮而散之悲鬪諍之牢固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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旣入大乘法中又互相是非故揮散
009_0205_a_07L即都序之宗趣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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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歎悲智同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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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明不能破長夜之昏慈母不能保身
009_0205_a_10L後之子

009_0205_a_11L
此下歎悲智與佛同也佛日雖盛
009_0205_a_12L吾師然後廻光曲照佛悲雖普
009_0205_a_13L吾師然後弘益彌多

009_0205_a_14L
若吾師者捧佛日而委曲廻照疑曀盡
009_0205_a_15L順佛心而橫亘大悲窮刼蒙益

009_0205_a_16L三摠結

009_0205_a_17L
則世尊爲闡敎之主吾師爲會敎之人
009_0205_a_18L本末相符遠近相照可謂畢一代時敎
009_0205_a_19L之能事矣

009_0205_a_20L
自世尊演敎至今日會而通之
009_0205_a_21L事方畢

009_0205_a_22L二假問遣疑三
一立三問

009_0205_a_23L
或曰 自如來未嘗大都而通之 今一旦
009_0205_a_24L違宗趣而不守廢關坊而不據無乃乘

009_0205_b_01L비밀한 법장과 은밀한 도에 어찌 어긋나지 않겠는가.”24)

2. 세 가지 질문에 답함(二還三答)
배휴 서 대답하였다.25)
“여래가 처음에는 비록 삼승을 따로 설했지만, 그 후에는 하나의 도道(일승)로 회통하였다.”

과평 “30년 전 운운”이라고 한 주석 57자는 당본唐本에 없으므로 지금 수록하지 않는다.26)

배휴 서 『열반경』에서 가섭보살이 “모든 불타에게 은밀한 말씀은 있지만, 비밀한 법장은 없다.”라고 말하자, 세존이 찬탄하여 “여래의 말씀은 널리 열려 있어 명백히 드러나니 청정하고 거리낄 것이 없다. 어리석은 사람이 알지 못하여 비밀한 법장이라 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깨달아 알기 때문에 비밀한 법장이라 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므로 왕도王道가 흥성하면 변방의 관문을 닫지 않아도 오랑캐가 지켜 주고, 불도佛道가 정비되면 제법을 모두 지니게 되니, 방비하는 일은 마군과 외도가 맡아 준다.

원주 열반원교는 제법을 화회하지만, 오직 마군의 말과 외도의 삿된 가르침만은 가려 구별한다.

3. 통탄스러움을 결론으로 책망함(三痛結責)
배휴 서 다시 정에 집착하여 그곳에 팔을 걷어붙이고 우쭐대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제3. 총체적으로 탄식하며 권하는 결론(三總歎勸結)
배휴 서 슬프다. 뒤에 오는 학자들은 마땅히 불타로부터 믿음을 취할지언정 사람으로부터 취하지 말 것이며, 근본법에서 증득을 취할지언정 지말枝末로 익힌 것에서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주 『도서』는 불타의 말씀으로 모든 종파를 인증하고, 근본법으로 편파적인 주장을 조명하였다. 그 때문에 그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간곡히 권하고 있다.

배휴 서 이렇게 하는 것이 규봉 대사가 애쓰신 공덕을 저버리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원주 “슬프다. 부모님이여! 나를 낳으시느라 고생하셨다.”27)라고 하였는데, 우리 스승의 공덕은 이보다 더 크다고 하겠다. 후세 사람이 그 법을 보고 비감한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목석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009_0205_b_01L秘藏密契之道乎

009_0205_b_02L二還三答

009_0205_b_03L
答曰如來初雖別說三乘後乃通爲一
009_0205_b_04L

009_0205_b_05L
三十年前云云注五十七字不在唐
009_0205_b_06L今以不錄

009_0205_b_07L
故湼槃經迦葉菩薩曰諸佛有密語無
009_0205_b_08L密藏世尊讃之曰如來之言開發顯
009_0205_b_09L淸淨無翳愚人不解謂之秘藏
009_0205_b_10L者了達則不名藏此其證也故王道興
009_0205_b_11L則外戶不閉而守在戎夷佛道備則諸
009_0205_b_12L法摠持而防在魔外

009_0205_b_13L
湼槃圓敎和會諸法唯簡別魔說及
009_0205_b_14L外道邪宗耳

009_0205_b_15L三痛結責

009_0205_b_16L
不當復執情攘臂於其間也

009_0205_b_17L三摠歎勸結

009_0205_b_18L
嗚呼後之學者當取信於佛無取信
009_0205_b_19L於人當取證於本法無取證於末習

009_0205_b_20L
都序以佛語印諸宗以本法照偏說
009_0205_b_21L故丁寧勸其深信也

009_0205_b_22L
能如是則不辜圭山大師劬勞之德矣

009_0205_b_23L
哀哀父母生我劬勞吾師之德
009_0205_b_24L於是矣後之人覩其法而不生悲感
009_0205_b_25L本石無異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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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선원제전집도서
선원제전집도서 권상【또는 ‘선나리행제전집禪那理行諸詮集’이라고도 한다.】

『도서』를 과목으로 나눔(2항목)

제1. 제목(2항목)(初題目二)

1. 두 제목을 표하여 세움(一標立雙題)
2. 작자의 명칭 (二作者佳號)
도서 종남산 초당사 사문 종밀 술

제2. 본문(3항목)(後本文三)

1. 큰 강령을 총체적으로 서술함(3항목)(一摠敘大綱三)
1) 선의 근원을 바로 밝힘(2항목)

(1) 제목을 해석하고 명칭을 분간함(3항목)

① 총 제목을 표하여 서술함

도서 『선원제전집』이란 모든 선가에서 서술한 것을 기록한 문헌으로, 선문의 근원 도리를 문자로 드러낸 구句 및 게송이다. 그것을 모아 하나의 장전을 만들어 후대에 물려주려 했기 때문에 전체 제목을 이 명칭으로 정한 것이다.

② 두 제목을 나열하여 해석함

도서 선禪이란 인도의 말로, 온전하게는 선나禪那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것을 사유수思惟修 또는 정려靜慮라고도 번역하는데, 모두 정혜定慧의 통칭이다. 근원(源)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중생의 본각진성本覺眞性이니, 불성이라고도 하고, 또는 심지心地라고도 한다. 그것을 깨닫는 것을 혜慧라 하고, 그것을 닦는 것을 정定이라고 하니, 정과 혜를 통칭하여 선禪이라 부른다. 이 본성(본각진성을 말함)이 선의 근원이기 때문에 선원禪源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름으로 선나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행理行이란 선의 본원이 선리禪理라는 것이고, 망정을 잊고 여기에 계합하는 것을 선행禪行이라 부른다. 그 때문에 (선리와 선행을 합하여) 이행理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③ 난문을 해결하고 결론으로 분간함

도서 그러나 지금 모은 제가의 찬술은 선리禪理를 많이 말하고 선행禪行은 적게 설했기 때문에 선원禪源이라고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009_0205_c_01L禪源諸詮集都序
禪源諸詮集都序卷上亦名禪那理
行諸詮集

009_0205_c_02L
序科分文二
初題目二
一標立雙
009_0205_c_03L
二作者佳號

009_0205_c_04L終南山草堂寺沙門宗密1)

009_0205_c_05L後本文三
一摠叙大綱三
一正明
009_0205_c_06L禪源二
一釋題揀名三一標叙摠
009_0205_c_07L

009_0205_c_08L
禪源諸詮集者寫錄諸家所述詮表禪
009_0205_c_09L門根源道理文字句偈集爲一藏以貽
009_0205_c_10L後代故都題此名也

009_0205_c_11L
二列釋雙題

009_0205_c_12L
禪是天竺之語具云禪那中華翻云思
009_0205_c_13L惟修亦云靜慮皆是㝎慧之通稱也
009_0205_c_14L源者是一切衆生本覺眞性亦名佛性
009_0205_c_15L亦名心地悟之名慧修之名㝎㝎慧
009_0205_c_16L通名爲禪此性是禪之本源故云禪源
009_0205_c_17L亦名禪那理行者此之本源是禪理
009_0205_c_18L忘情契之是禪行故云理行

009_0205_c_19L
三通難結揀

009_0205_c_20L
然今所集諸家述作多談禪理少說禪
009_0205_c_21L行故且以禪源題之

009_0205_c_22L「述」下有「海東沙門雪巖秋鵬科評」編者除
009_0205_c_23L

009_0206_a_01L
(2) 명칭에 의거하여 의미를 해석함(2항목)

① 근원을 해석함(3항목)

가. 잘못된 해석을 표하여 듦

도서 지금 단지 진성眞性만을 지목하여 선禪이라고 하는 것은 이행理行의 뜻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인도의 음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나. 의혹을 풀고 근원을 보임

도서 그러나 진성眞性을 떠나 별도로 선의 본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중생이 진성에 어둡고 진애塵埃에 물들면 이것을 산란이라 하고, 진애를 등지고 진성과 합하면 선정이라고 말한다. 만약 본성을 직접 논한다면 진眞도 아니고 망妄도 아니며, 등지는 것도 아니고 합하는 것도 아니다. 정定도 없고 산란도 없으니, 무엇을 선이라 하겠는가. 더구나 이 진성은 선문禪門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만법의 근원이기 때문에 법성이라 하고, 중생의 우매함과 깨달음의 근원이기 때문에 여래장장식【『능가경』에 나온다.】이라고도 한다. 또 모든 부처가 지닌 만덕의 원천이기 때문에 불성【『열반경』 등의 경】이라고도 하며, 보살만행의 근원이기 때문에 심지心地라고도 한다.

원주 『범망경』 「심지법문품」에서 이르기를, “이것은 모든 불타의 본원이고, 보살도를 행하는 근본이며, 대중과 여러 불자의 근본이다.”라고 하였다.

다. 잘못된 해석을 결론으로 깨뜨림

도서 만행은 육바라밀을 벗어나지 않는다. 선문은 단지 육바라밀 중의 하나로서 그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데, 어떻게 전체적으로 진성眞性을 지목하여 하나의 선행禪行이라 할 수 있는가.

② 선을 해석함(3항목)

가. 홀로 공용을 밝힘(3항목)

가) 청정한 법을 생기게 함

도서 그러나 (육바라밀 중) 선정이라는 하나의 실천행이 가장 신묘하다. 그것은 자성상自性上에 무루의 지혜를 일으키며 일체의 미묘한 작용과 수많은 수행과 공덕, 내지 신통광명이

009_0206_a_01L
二約名釋義二一釋源三一標擧
009_0206_a_02L錯解

009_0206_a_03L
今時有但目眞性爲禪者是不達理行
009_0206_a_04L之旨又不辨華竺之音也

009_0206_a_05L
二遣惑現源

009_0206_a_06L
然非離眞性別有禪體但衆生迷眞合
009_0206_a_07L即名散亂背塵合眞名爲禪㝎
009_0206_a_08L直論本性即非眞非妄無背無合
009_0206_a_09L㝎無亂誰言禪乎況此眞性非唯是
009_0206_a_10L禪門之源亦是萬法之源故名法性
009_0206_a_11L亦是衆生迷悟之源故名如來藏藏識
009_0206_a_12L出楞
伽經
亦是諸佛萬德之源故名佛性

009_0206_a_13L
亦是菩薩萬行之源故名心地

009_0206_a_14L
梵網經心地法門品云是諸佛之本
009_0206_a_15L行菩薩道之根本是大衆諸佛子
009_0206_a_16L之根本也

009_0206_a_17L
三結破錯解

009_0206_a_18L
萬行不出六波羅蜜禪門但是六中之
009_0206_a_19L當其第五豈可都目眞性爲一禪行
009_0206_a_20L

009_0206_a_21L
二釋禪三一獨明功用三一能生
009_0206_a_22L淨法

009_0206_a_23L
然禪㝎一行最爲神妙能發起性上無
009_0206_a_24L漏智慧一切妙用萬行萬德乃至神

009_0206_b_01L모두 선정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 도를 구함에 반드시 의지해야 함

도서 그러므로 삼승의 학인이 성도聖道를 구하고자 하면, 반드시 선禪을 닦아야 한다. 선을 떠나 들어갈 문이 없고 선을 떠나 나아갈 길이 없다.

다) 염불도 선을 닦아야 함

도서 염불로 왕생정토를 구하는 데도 십육관선十六觀禪1)과 염불삼매와 반주삼매般舟三昧2)를 닦아야 한다.

나. 깊고 얕음을 대응하여 구별함(3항목)

가) 진성을 들어 표시를 세워 일으킴

도서 또 진성은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범부와 성인의 차별도 없지만, 선은 깊고 얕음이 있어서 등급에 차이가 있다.

나) 별도로 깊고 얕음을 밝힘

도서 법도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상계上界를 좋아하고 하계下界를 싫어하여 닦는 것은 외도선이고, 인과를 확고히 믿어 (상계를) 좋아하고 (하계를) 싫어하여 닦는 것은 범부선이다. 아공我空이라는 치우친 진리를 깨달아 닦는 것은 소승선이고, 아공我空과 법공法空 두 공이 드러나는 진리를 깨달아 닦는 것이 대승선이다.

원주 위의 네 부류에는 모두 사색四色·사공四空3)의 차이가 있다.4)

도서 자기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여 번뇌가 없으며, 무루의 ‘아는 본성’이 본래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단번에 깨달으면, 이 마음이 곧 부처로서 둘은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에 의거하여 닦는 것이 최상승선이다. 또 이것을 여래청정선이라고도 하고, 일행삼매一行三昧5)라고도 하며, 진여삼매라고도 한다. 이것은 일체 삼매의 근본이니, 끊임없이 닦아 익힌다면, 저절로 백천 삼매를 점차적으로 얻게 될 것이다.

다) 깊은 선을 단순하게 결론지음

도서 달마 문하에 계속하여 전해져 온 것이 이 선(최상승선)이다.


009_0206_b_01L通光明皆從㝎發故

009_0206_b_02L
二求道必依

009_0206_b_03L
三乘學人欲求聖道必須修禪離此
009_0206_b_04L無門離此無路

009_0206_b_05L
三念佛亦修

009_0206_b_06L
至於念佛求生淨土亦修十六觀禪
009_0206_b_07L及念佛三昧般舟三昧

009_0206_b_08L
二對卞深淺三一擧性標起

009_0206_b_09L
又眞性即不垢不淨凡聖無差禪則有
009_0206_b_10L淺有深階級殊等

009_0206_b_11L
二別明深淺

009_0206_b_12L
謂帶異計欣上厭下而修者是外道禪
009_0206_b_13L正信因果亦以欣厭而修者是凡夫禪
009_0206_b_14L悟我空偏眞之理而修者是小乘禪
009_0206_b_15L我法二空所顯眞理而修者是大乘禪
009_0206_b_16L上四類皆有四色四空之異也若頓悟
009_0206_b_17L自心本來淸淨元無煩惱無漏智性
009_0206_b_18L本自具足此心即佛畢竟無異依此
009_0206_b_19L而修者是最上乘禪亦名如來淸淨禪
009_0206_b_20L亦名一行三昧亦名眞如三昧此是一
009_0206_b_21L切三昧根本若能念念修習自然漸得
009_0206_b_22L百千三昧

009_0206_b_23L
三單結深禪

009_0206_b_24L
達摩門下展轉相傳者是此禪也

009_0206_c_01L
다. 난문을 회통하여 수승함을 드러냄

도서 달마가 오기 전, 예로부터 모든 선가에서 안 것은 오로지 다 사선四禪과 팔정八定6)뿐이었으니, 모든 고승들이 그것을 닦아서 공용을 얻었던 것이다. 남악 혜사(515~577)와 천태 지의(538~597)는 삼제三諦7)의 이치에 의지하여 삼지三止8)·삼관三觀을 닦도록 하였으니, 교의는 비록 가장 원만하고 미묘하지만, 들어가는 문호와 그 차례는 앞에서 말한 모든 선의 행상行相과 다르지 않다. 오직 달마가 전한 법만이 부처의 본체와 전적으로 같기 때문에 여타의 여러 문파와는 현격하게 다르다.

2) 모든 전적을 거듭 밝힘(2항목)

(1) 별도로 폐단을 밝힘(2항목)

① 이사본말의 폐단(2항목)

가. 그 유래를 표하여 일으킴

도서 그러므로 본종本宗에서 익히는 자가 그 본지를 터득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것을 터득하면 성인이 되어 곧바로 보리를 얻지만, 잃으면 삿됨에 떨어져 즉시 도탄에 빠진다. 앞의 조사들은 초기에 실수를 막으려고,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만 (법을) 전하였지만, 후대에는 이미 의지할 곳(법을 깨달은 종장)이 있기 때문에 응당 천 개의 등불이 천 곳을 비추게 된 것이다.

나. 폐단이 되는 것을 바로 밝힘

도서 그러나 법이 오래되니 폐단이 생겨 오류에 빠진 자가 많았기 때문에 경론을 배우는 자들의 의심과 비방 또한 적지 않았다.

② 해와 행에 있어서 시종의 폐단(2항목)

가. 유래를 표하여 일으킴

도서 처음 불타는 돈교頓敎와 점교漸敎를 설하시고, 선禪으로 돈문頓門과 점문漸門을 여니, 돈교·점교 이교와 돈문·점문 이문이 각각 서로 부합한다.

나. 폐단이 되는 것을 바로 밝힘

도서 그러나 지금 강講하는 사람들은 점교의 의미를 지나치게 드러내고, 선禪하는 사람들은 돈종頓宗을 일방적으로 전파하니, 선禪과 강講이 서로 만나는 것이 호胡나라와 월越나라9)처럼 간극이 깊게 된 것이다.

(2) 폐단을 구하는 것을 회통하여 밝힘(2항목)

① 바로 밝힘(3항목)

가. 시종을 표하여 일으킴


009_0206_c_01L
三通難現勝

009_0206_c_02L
達摩未到古來諸家所解皆是前四禪
009_0206_c_03L八㝎諸高僧修之皆得功用南嶽天
009_0206_c_04L令依三諦之理修三止三觀敎義
009_0206_c_05L雖最圓妙然其趣入門戶次第亦只是
009_0206_c_06L前之諸禪行相唯達摩所傳者頓同佛
009_0206_c_07L逈異諸門

009_0206_c_08L
二躡明諸詮二一別明設弊二
009_0206_c_09L理事本末之弊二
一標起由緖

009_0206_c_10L
故宗習者難得其旨得即成聖疾證
009_0206_c_11L菩提失即成邪速入塗炭先祖草昧
009_0206_c_12L防失故且人傳一人後代已有所憑故
009_0206_c_13L任千燈千照

009_0206_c_14L
二正明爲弊

009_0206_c_15L
洎乎法久成弊錯謬者多故經論學人
009_0206_c_16L疑謗亦衆

009_0206_c_17L
二解行始終之弊二一標起由緖

009_0206_c_18L
原夫佛說頓敎漸敎禪開頓門漸門
009_0206_c_19L敎二門各相符契

009_0206_c_20L
二正明爲弊

009_0206_c_21L
今講者偏彰漸義禪者偏播頓宗
009_0206_c_22L講相逢胡越之隔

009_0206_c_23L
二通明救弊二一正明三一標起
009_0206_c_24L端兒 [1]

009_0207_a_01L
도서 종밀은 숙생에 어떻게 이 마음을 훈습하였기에 자신은 해탈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속박을 풀어 주려 하고, 법을 위해 자기의 신명을 잊어버리면서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데만 정신이 빠져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원주 또 『정명경淨名經』10)에서 “자신에게 속박이 있으면서 타인의 속박을 풀어 주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다.”11)라고 말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을) 없애려고 하여도 어찌할 수 없으니, 이것은 필시 숙세에 익힌 것을 고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나. 폐단을 구하는 것을 바로 밝힘

도서 사람과 법이 어긋나서 법이 사람의 병이 되는 것을 항상 탄식해 온 까닭에 경·율·논의 소疏를 별도로 찬술하여 계·정·혜의 문을 크게 열고, 돈오를 드러내어 점수를 보완함으로써 조사의 말씀이 불타의 뜻에 부합함을 증명하였다.

다. 잠복된 난문을 해석하여 해결함

도서 의미는 이미 본말을 자세히 보여 주지만 문장이 방대하여 그것을 찾기 어려우니, 배우는 사람은 많지만 뜻을 파악한 자는 적다. 더구나 추구하는 것은 명名과 상相을 따라가는 데 있으니 금과 놋쇠를 누가 분간하겠는가. 헛되이 피로하고 수고로울 뿐이니, 근기(학자들을 가리킴)에 감응함이 보이지 않는다.

② 난문을 해결함(2항목)

가. 타인을 책망하는 것이 자신을 미혹하게 하는 장애가 된다는 것을 해결함12)

도서 불타가 자비를 증장시키는 것이 수행이라고 설하셨지만, 내(규봉 종밀 자신) 스스로 애견愛見을 막기 어려움을 걱정하였다. 마침내 대중을 버리고 입산하여 정과 혜를 균등하게 닦아 전후에 번잡한 생각을 쉰 지가 어느덧 10년이나 되었다.

원주 ‘전후’라고 한 것은 중간에 칙명을 받고 조정에 들어가 2년 동안 성에 머물다가 마침내 물러나 산으로 돌아갈 것을 왕에게 청한 것을 말한다.

도서 미세한 습기의 망념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고요한 지혜에 드러나고, 서로 다른 법과 의미는 텅 빈 마음에 나타난다. 문틈으로 비치는 햇빛에 먼지가 어지럽게 떠돌고, 맑은 연못 속에 만상의 그림자가 분명하게 비친다. 헛되이 침묵만을 지키는 어리석은 선禪과 문자만을 찾아 헤매는 산란하고 얕은 지혜에 어찌 견줄 수 있겠는가.


009_0207_a_01L
宗密不知宿生何作熏得此心自未解
009_0207_a_02L欲解他縛爲法忘於軀命愍人切
009_0207_a_03L於神情

009_0207_a_04L
亦知淨名云若自有縛能解他縛
009_0207_a_05L無有是處然欲罷不能驗是宿習難
009_0207_a_06L改故

009_0207_a_07L
二正明救弊

009_0207_a_08L
每歎與法差法爲人病故別撰經律
009_0207_a_09L論䟽大開戒㝎慧門顯頓悟資於漸修
009_0207_a_10L證師說符於佛意

009_0207_a_11L
三釋通伏難

009_0207_a_12L
意旣本末而委示文乃浩愽而難尋
009_0207_a_13L學雖多秉志者少況迹涉名相誰辨
009_0207_a_14L金鍮1) [1] 自疲勞未見機感

009_0207_a_15L
二通難二一通責他迷己之妨

009_0207_a_16L
雖佛說悲增是行而自慮愛見難防
009_0207_a_17L捨衆入山習㝎均慧前後息慮相繼
009_0207_a_18L十年

009_0207_a_19L
云前後者中間被勑追入內住城二
009_0207_a_20L方却來請歸山也

009_0207_a_21L
微細習情起滅彰於靜慧差別法義羅
009_0207_a_22L現於空心虛隙日光纎埃擾擾
009_0207_a_23L潭水底影像昭昭豈比夫空守默之癡
009_0207_a_24L但尋文之狂慧者也

009_0207_b_01L
나. 어리석은 선과 산란하고 얕은 지혜를 가진 사람의 비방을 전환하여 해결함

도서 그러나 본래 자기 마음을 깨달아야 모든 가르침을 분간하기 때문에 심종心宗13)에 뜻을 다하고, 모든 가르침을 분간함으로써 마음을 닦을 줄 알기 때문에 교의敎義에 정성을 다한다.

3) 모으는 뜻을 간략히 통함

도서 교敎란 제불 보살이 남긴 경론이고, 선禪이란 모든 선지식이 찬술한 언구와 게송이다. 불경은 광활하여 대천의 팔부중八部衆을 망라하지만, 선게禪偈는 간략하여 이 방면의 한 부류 근기만이 따라간다. 여러 무리를 망라하면 넓고 망망하여 의지하기 어렵지만, (일방一方의) 근기를 따라가면 분명하고 명확하여 사용하는 것이 쉽다. 지금 편찬하여 모으는 뜻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2. 별도로 의미의 형태를 해석함(3항목)(二別釋義相三)
1) 이 책을 찬집하는 내력(3항목)

(1) 선전만을 모은 것을 바로 밝힘(2항목)

① 체제와 법식을 질문하여 밝힘(2항목)

가. 선은 불교를 간략하게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질문함

도서 모아서 간략하다고 하는 것은, 글은 비록 간략하지만, 마땅히 의미가 두루 갖추어지고 이치가 축약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의미가 적은 글 가운데 있는 것이다. 또 제불의 경설은 모두 법【법체法體】과 의【의리義理】, 인因【삼현·십지·삼십칠품·십바라밀이다.】과 과果【불의 덕용德用】, 신信【법을 믿음】·해解【의미를 앎】·수修【지위를 밟아 인을 닦음】·증證【과를 증득함】을 갖추고 있다. 비록 세계가 각각 다르고 교화하는 뜻이 같지 않지만 가르침을 세우는 데는 이것이 모두 완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화엄경』에서는 매 회會, 매 위位마다 결론에서 시방세계가 다 이 말씀과 같다고 설하는 것이다. 지금 모아 놓은 모든 선가의 선 관련 저술을 보니, 질문에 따라 반대로 질문하고, 돌아서 세우고 돌아서 부순다. 그 순서가 없으니 시종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불교의 요점을 간략하게 취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 불조사의 나타난 본질이 각각 다르다고 답함(3항목)

가)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불타가 세상에 나와 가르침을 세우신 것과 조사가 장소에 따라 사람들을 제도한 것은 일의 본질이 각기 다른 것이다.


009_0207_b_01L
二轉通癡禪狂慧者之妨

009_0207_b_02L
然本因了自心而辨諸敎故懇情於心
009_0207_b_03L又因辨諸敎而解修心故虔誠於
009_0207_b_04L敎義

009_0207_b_05L
三畧通集意

009_0207_b_06L
敎也者諸佛菩薩所留經論也禪也者
009_0207_b_07L諸善知識所述句偈也但佛經開張
009_0207_b_08L大千八部之衆禪偈撮略就此方一類
009_0207_b_09L之機羅衆則莾蕩難依就機則指的易
009_0207_b_10L今之纂集意在斯焉

009_0207_b_11L
二別釋義相三一纂集由緖三
009_0207_b_12L正明偏集禪詮二
一徵明體式二
009_0207_b_13L一禪非佛敎撮畧問

009_0207_b_14L
夫言撮畧者文雖簡約義須周足
009_0207_b_15L理應撮束多義在少文中且諸佛說經
009_0207_b_16L皆具法

三賢十地三十七
品十波羅蜜也
佛之
德用

009_0207_b_17L

歷位
修因

雖世界各異化儀不
009_0207_b_18L其所立敎無不備此故華嚴每會
009_0207_b_19L每位皆結云十方世界悉同此說
009_0207_b_20L覽所集諸家禪述多是隨問反質旋立
009_0207_b_21L旋破無其倫序不見始終豈得名爲
009_0207_b_22L撮畧佛敎

009_0207_b_23L
二佛祖事體各別答三初摠標

009_0207_b_24L
佛出世立敎與師隨處度人事體各

009_0207_c_01L
나) 별도로 해석함

도서 불교는 만대에 믿고 의지해야 할 가르침이니, 그 이치를 자세히 보여 주어야 하지만, 조사의 가르침은 중생을 즉시 해탈시키는 데 있으니, 의미를 현묘하게 통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현묘하게 통하려면 반드시 언어를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니, 말하자마자 말한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그 흔적이 의식의 바탕에 끊어지고, 이치가 마음의 근원에 드러나면 신해수증信解修證14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성취되고, 경·율·논과 소를 익히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깊이 통달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도 닦음을 물으면, 닦음이 없다고 대답하고, 어떤 사람이 해탈 구하는 것을 물으면, “누가 묶었는가?”라고 도리어 질문한다. 어떤 사람이 성불의 길을 물으면, 본래 범부가 없다 하고, 어떤 사람이 임종할 때에 “마음이 편한가?”라고 물으면, 즉시 본래 일이 없다고 대답한다. 혹 또 이것은 망妄이고 이것은 진眞이며, 이와 같이 마음을 쓰고 이와 같이 업을 쉬어야 한다고 말한다.14)
요점을 들어 말하면, 이것은 당시 상황에 따라 그 시대의 근기에 응했을 뿐이니, 아뇩보리阿耨菩提라고 할 수 있는 정해진 법이 어떻게 있겠으며, 마하반야摩訶般若라고 할 만한 정해진 법이 어떻게 있겠는가. 단지 사념思念에 생각할 것이 없고, 뜻에 해야 할 것이 없으며, 마음에 생겨나는 것이 없고, 지혜에 머무는 일이 없으면, 곧 진실한 믿음이고 진실한 앎이며 진실한 수행이고 진실한 증득이다. 자신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명칭과 교의에 집착하여 불도를 구하려 하는 자여, 어찌 밝게 보지 못하는가. 글자를 알아 경을 보는 것이 본래 증오證悟가 아니니, 글을 풀이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오직 탐심과 진심, 사견만 치성하게 하는 것이다. 더구나 아난阿難은 오랜 세월 많이 듣고 모든 선법을 지녀도 성과聖果에 오르지 못하다가, 허망한 인연을 쉬고 스스로에게 광명을 돌이켜 비추는 순간 무생無生을 증득하지 않았는가.

다) 결론으로 답함

도서 가르침을 펴는 이익과 사람을 제도하는 방편에는 각각 그 이유가 있으니, 문자를 따르지만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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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別釋

009_0207_c_03L
佛敎爲萬代依憑理須委示師訓在即
009_0207_c_04L時度脫意使玄通玄通必在忘言故
009_0207_c_05L下不留其迹迹絕於意地理顯於心源
009_0207_c_06L即信解修證不爲而自然成就經律論
009_0207_c_07L不習而自然冥通故有問修道
009_0207_c_08L答以無修有問求解脫即反質誰縛
009_0207_c_09L有問成佛之路即云本無凡夫有問臨
009_0207_c_10L終安心即云本來無事或亦云此是妄
009_0207_c_11L此是眞如是用心如是息業擧要而
009_0207_c_12L但是隨當時事應當時機何有㝎
009_0207_c_13L名阿耨菩提豈有㝎行名摩訶般
009_0207_c_14L但得情無所念意無所爲心無所
009_0207_c_15L慧無所住即眞信眞解眞修眞證也
009_0207_c_16L若不了自心但執名敎欲求佛道者
009_0207_c_17L豈不現見識字看經元不證悟銷文
009_0207_c_18L釋義唯熾貪嗔邪見況阿難多聞摠持
009_0207_c_19L積歲不登聖果息緣返照暫時即證
009_0207_c_20L無生

009_0207_c_21L
三結答

009_0207_c_22L
即知垂敎之益度人之方各有其由
009_0207_c_23L不應於文字而貴也

009_0207_c_24L「徙」當作「徒」{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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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편찬하여 모은 것을 설명함(2항목)

가. 질문

도서 이미 거듭하여 뜻을 얻었으니, 문자에 매달리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모든 구게句偈를 모아 편찬하는가?

나. 대답

도서 모아 편찬하는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얻었지만 번거로운 생각을 끊지 못했거나, 선지식을 만나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깨달음을 얻은 자가 그것을 보게 하여 모든 스승들의 말뜻을 두루 알고 그 마음을 통하여 다른 생각을 끊게 하려는 것이다. 둘째, 깨달아 안 사람이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고자 할 때, 그 견문을 넓히고 방편을 증장시켜 대중을 받아들이고 문답으로 가르치는 법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위에서 “1천 세계에 펼치면 넓고 망망하여 의지하기 어렵지만, 일방을 따르면 분명하고 명확하여 사용하기 쉽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2) 겸하여 교의를 수용하도록 가까이서 해결해 줌

도서 그러나 그것(선문을 모아 편찬하는 것)은 단지 언어를 잊는 문에 바로 이르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겸하여 가르침을 베푸는 일을 돕는 이로움이 있다. 아울러 뜻이 부처에 계합함은 물론 글이 경전에 맞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글은 유사한 것 같지만 (뜻이) 어긋나서 경전에 맞도록 한다는 것은 실로 쉽지 않다. 일대장경을 대승과 소승, 권교權敎와 실교實敎,15) 요의了義와 불요의不了義16)로 판석判釋하여야 비로소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될 때) 모든 종파의 선문이 각각 종지가 바로 서서 불타의 뜻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대장경의 경론을 통합하면 3종種이고, 선문의 말과 가르침도 통합하면 또한 마찬가지로 3종宗이 된다.【각각 아래의 글에서 나열하여 해석하였다.】 이들을 배대할 때 서로 부합해야만 비로소 원만한 견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3) 별도로 찬술한 삼장의 글을 전환하여 소통함(2항목)

① 질문

도서 지금 집성한 선의 전적은 경론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② 대답함(2항목)

가. 총체적으로 대답함

도서 열 가지 이유가 있다. 반드시 경론의 방편과 실제를 알아서 모든 선禪의 시비를 가리고, 선의 마음에 대한 성상性相을 알아서 경론의 이사理事를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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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釋成纂集二初問

009_0208_a_02L
旣重得意不貴專文即何必纂集此
009_0208_a_03L諸句偈

009_0208_a_04L
二答

009_0208_a_05L
集有二意一雖有師授而悟不決宂
009_0208_a_06L又不逢善知識處處勘契者令覽之
009_0208_a_07L遍見諸師言意以通其心以絕餘念
009_0208_a_08L二爲悟解了者欲爲乂師令廣其見聞
009_0208_a_09L增其善巧解攝衆答問敎授也即上云
009_0208_a_10L羅千界莾蕩難依就一方指的易用是
009_0208_a_11L

009_0208_a_12L
二傍通兼收敎義

009_0208_a_13L
然又非直資忘言之門亦兼裨垂敎之
009_0208_a_14L非但令意符於佛亦欲使文合於經
009_0208_a_15L旣文似乘而令合實爲不易須判一藏
009_0208_a_16L經大小乘權實理了義不了義方可印
009_0208_a_17L諸宗禪門各有旨趣不乘佛意也
009_0208_a_18L謂一藏經論統唯三種禪門言敎亦統
009_0208_a_19L唯三宗各在下
文列釋
配對相符方成圓見

009_0208_a_20L
三轉通別撰三藏文二初問

009_0208_a_21L
今集禪詮何關經論

009_0208_a_22L
二答二初摠答

009_0208_a_23L
有十所以須知經論權實方辨諸禪
009_0208_a_24L是非又須識禪心性相方解經論理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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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개별적으로 대답함17)(2항목)

가) 장의 명칭을 표시하여 나열함

도서 첫째, 스승에게는 본말本末이 있다. 근본에 의거하여 지말枝末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둘째, 선에는 여러 종파가 있다. 서로 어긋나고 막히기 때문이다.
셋째, 경은 먹줄과 같다. 법도에 맞게 삿됨과 바름을 반듯하게 정하기 때문이다.
넷째, 경에는 방편과 실제가 있다. 요의了義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양量에는 세 가지가 있다.18) 서로 맞추면 같아야 하는 까닭이다.19)
여섯째, 의심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전적으로 통하여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법法과 의義가 같지 않다. 반드시 분별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덟째, 마음은 성상性相에 통한다. 명칭은 같지만 뜻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홉째, 오悟와 수修, 돈頓과 점漸이 있다. 말은 유사하지만 (뜻은) 어긋나기 때문이다.
열째, 스승은 방편을 전수한다. 마땅히 약과 병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 문장에 의거하여 그에 따라 해석함(10항목)

(가) 첫째 글(3항목)

㉮ 거듭 표함

도서 첫 번째 말한 “스승에게는 본말이 있다.”라고 한 것에 대하여 설명한다.

㉯ 분별하여 밝힘(2항목)

ㄱ. 옛것을 들어 겸하여 전함(2항목)

ㄱ) 바로 밝힘

도서 모든 종파의 시조는 석가釋迦이다. 경은 부처의 말씀이고, 선은 부처의 뜻이기 때문에 모든 부처의 마음과 말은 반드시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여러 조사가 서로 이어 온 근본은 부처가 친히 부촉하신 것이고, 보살이 논을 지은 시말은 오직 불경을 홍포하기 위함이다. 더구나 가섭으로부터 우파국다(毱多)20)에 이르기까지 널리 전한 것이 모두 삼장三藏을 겸한 것이다. 제다가提多迦21) 이래로 승려들이 쟁론을 일으킴으로써 율律과 교敎가 별도로 유행하게 되었고 계빈국罽賔國22) 이후 왕의 난으로 인해 경론이 분화하게 되었다. 중간에 출현한 마명馬鳴·용수龍樹가 모두 조사祖師이지만, 논을 짓고 경을 해석한 것이 수천만 게송에 이른다. 시기를 보아 중생을 교화함에 정해진 형식이 없었으니, 강講하는 자가 선禪을 훼손하고 선하는 자가 강을 훼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ㄴ) 난문을 해결함

도서 달마가 인도에서 법을 받아 중국에까지 이르러 이곳의 학인들을 보니, 법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이들은 오직 명칭과 법수로 알음알이를 삼고 차별 현상으로 행을 삼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달이 손가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법이 나의 마음이기 때문에 단지 마음을 마음으로 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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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別答二初標1) [1] 章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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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師有本末憑本印末故二禪有諸宗
009_0208_b_03L互相違阻故三經如繩墨楷㝎邪正故
009_0208_b_04L四經有權實須依了義故五量有三種
009_0208_b_05L勘契須同故六疑有多般須具通決故
009_0208_b_06L七法義不同善須辨識故八心通性相
009_0208_b_07L名同義別故九悟修頓漸言似違反故
009_0208_b_08L十師授方便須識藥病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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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依章隨釋文十初文三一標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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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言師有本末者

009_0208_b_11L
二辨明二一擧古兼傳二一正明

009_0208_b_12L
謂諸宗始祖即是釋迦經是佛語
009_0208_b_13L是佛意諸佛心口必不相違諸祖相
009_0208_b_14L承根本是佛親付菩薩造論始末
009_0208_b_15L弘佛經況迦葉乃至毱多弘傳皆兼三
009_0208_b_16L提多迦已下因僧起諍律敎別行
009_0208_b_17L罽賔國已來因王難經論分化中間
009_0208_b_18L馬鳴龍樹悉是祖師造論釋經數千
009_0208_b_19L萬偈觀風化物無㝎事儀未有講者
009_0208_b_20L毁禪禪者毁講

009_0208_b_21L
二通難

009_0208_b_22L
達摩受法天竺躬至中華見此方學人
009_0208_b_23L多未得法唯以名數爲解以事相爲行
009_0208_b_24L欲令知月不在指法是我心故但以心

009_0208_c_01L문자를 세우지 않는다고 한다. 종지宗旨를 드러내어 집착을 깨뜨리려고 이 말(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이지, 문자를 떠나 해탈을 설한다는 말이 아니다. 따라서 뜻을 얻은 사람을 가르칠 때, 『금강경』과 『능가경』을 자주 찬탄하면서 이 두 경이 내 마음의 요체要諦라고 말했던 것이다.

ㄴ. 지금의 미혹한 집착을 꾸짖음

도서 요즈음 제자들은 피차가 근원에 어두워 마음을 닦는 자는 경론을 다른 종宗이라 하고, 강설하는 사람은 선문禪門을 다른 법이라고 한다. 이들은 인과因果와 수증修證을 말하는 것을 듣고 경론 학자에 속한다고 추측하여 수증이 선문의 본래 일인 줄 알지 못하며, 마음이 곧 부처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억측으로 하는 선에 속한다고 추단하여 마음과 부처가 바로 경론의 본의인 줄 알지 못한다.

원주 어떤 사람이 선사가 어떻게 강설을 할 수가 있느냐고 힐난하여 물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23)

㉰ 결론으로 대답함

도서 지금 만약 권교權敎와 실교實敎라는 경론으로써 깊고 얕은 선종에 배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교敎를 가지고 마음을 관조하며 마음으로 교를 알 수 있겠는가.

(나) 둘째 글(3항목)

㉮ 문장을 거듭하여 분간하고 해석함

도서 둘째, “선에는 여러 종파가 있어 상호 어긋난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 가려 밝힘(2항목)

ㄱ. 모든 종파를 취하여 서로 어긋남을 보여 줌

도서 지금 기술한 것을 모은 것이 거의 백가百家에 이르지만 종지宗旨와 의미가 다른 것을 열 종류로 나누면, 강서江西·하택荷澤·북수北秀·남선南侁·우두牛頭·석두石頭·보당保唐·선십宣什·조나稠那·천태天台24) 등 십가十家가 있다. 모두 다 통달하여 뜻에는 어긋나지 않으나, 종지를 세우고 법을 전하는 데는 서로 어긋나고 막힌다.
어떤 사람은 공空으로 근본을 삼고, 어떤 사람은 지해知解로 근원을 삼으며, 어떤 사람은 고요함(寂默)을 참됨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가고 앉는 모든 행위가 옳다 하고, 어떤 사람은 아침저녁 분별로 만들어 낸 일체를 모두 헛된 것이라 하며,

009_0208_c_01L傳心不立文字顯宗破執故有斯言
009_0208_c_02L非離文字說解脫也故敎授得意之者
009_0208_c_03L即頻讃金剛楞伽云此二經是我心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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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責今迷執

009_0208_c_05L
今時弟子彼此迷源修心者以經論爲
009_0208_c_06L別宗講說者以禪門爲別法聞談因果
009_0208_c_07L修證便推屬經論之家不知修證
009_0208_c_08L是禪門之本事聞說即心即佛便推屬
009_0208_c_09L胸襟之禪不知心佛正是經論之本意

009_0208_c_10L
有人難云禪師何得講說余今此答
009_0208_c_11L

009_0208_c_12L
三結答

009_0208_c_13L
今若不以權實經論對配深淺禪宗
009_0208_c_14L得以敎照心以心解敎

009_0208_c_15L
二中文三初牒章卞釋

009_0208_c_16L
二禪有諸宗互相違反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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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卞明二一約諸宗示違反

009_0208_c_18L
今集所述殆且百家宗義別者猶將
009_0208_c_19L十室謂江西荷澤北秀南侁牛頭石
009_0208_c_20L保唐宣什及稠那天台等雖皆通
009_0208_c_21L情無所違而立宗傳法互相乘阻
009_0208_c_22L有以空爲本有以知爲源有云寂默方
009_0208_c_23L有云行坐皆是有云現今朝暮分別
009_0208_c_24L「烈」當作「列」{編}

009_0209_a_01L어떤 사람은 분별이 만들어 낸 일체를 모두 참된 것이라 한다. 어떤 이는 일체의 공행이 모두 있다 하고, 어떤 이는 부처까지도 함께 없다고 한다. 어떤 이는 그 뜻대로 놓아두어야 한다 하고, 어떤 이는 그 마음을 묶어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경과 율로 의지할 바를 삼아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경과 율이 도에 장애가 된다고 한다. (자기 주장을) 가볍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말하며, 자신의 종파는 틀림없이 홍포하고 나머지 무리는 철저히 폄훼한다.

ㄴ. 후학을 들어 화해할 것을 밝힘(2항목)

ㄱ) 이유를 바로 밝힘

도서 후학이 말에 집착하고 뜻에 어두워 견해가 서로 어긋나니, 어찌 화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ㄴ) 질문과 대답으로 널리 밝힘

옳은 것은 받아들이고 옳지 않은 것은 가려내면 되는데, 어찌하여 그렇게 절실하게 화회해야만 하는가?
혹은 공空, 혹은 유有, 혹은 성性, 혹은 상相이라 하지만 다 어긋나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각자가 모두 자기편은 옳다 하고, 타인은 배척하여 그르다고 하여 피차 (그것을) 확실하게 하기 때문에 화회가 필요한 것이다.
이미 모두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각기 확정한 대로 두면 될 텐데 왜 반드시 화회해야 하는가?
궁극의 도는 하나로 돌아가고 분명한 뜻은 둘이 아니니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궁극의 도는 한쪽 끝이 아니고 요의了義는 치우치지 않으니, 한편만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로 화회하여 모두를 원만 미묘하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얼음을 불에 넣으면 화력이 온전하지 못하고 창으로 방패를 찌르면 결국 둘 다 승리하지 못한다. 모든 종파를 모았으나 이미 서로 어긋났기 때문에 하나가 옳다고 하면 하나는 그르다고 한다. 어떻게 하여 모두를 미묘하게 화회하겠는가?
대답한다. 그 법은 다 그대로 두고 병통만을 다 버리는 것이 미묘한 것이다. 법이 사람을 따르면 어렵고 사람이 법을 따르면 쉽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주로 망정을 따라 상호 집착하고 집착하면 서로 어긋나게 된다. 얼음과 불이 서로 만나고 창과 방패가 서로 대적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법은 본래 이치와 합하여 서로 통하게 되고 통하면 서로 순응한다. 또 얼음이 저절로 녹으면 모두 물이 되고, 금가락지와 금팔찌가 녹으면 다 금이 되므로 쉽다고 하는 것이다. 요점을 말하면, 한편으로 치우치는 것은 모두 그릇되지만, 화회하는 것은 다 옳다고 하겠다.


009_0209_a_01L爲作一切皆妄有云分別爲作一切
009_0209_a_02L皆眞有萬行悉存有兼佛亦泯有放
009_0209_a_03L任其志有拘束其心有以經律爲所依
009_0209_a_04L有以經律爲障道非唯汎語而乃確言
009_0209_a_05L確弘其宗確毁餘類

009_0209_a_06L
二擧後學明和會二一正明所以

009_0209_a_07L
後學執言迷意情見乘張爭不和會也

009_0209_a_08L
二問答廣明

009_0209_a_09L
是者即收非者即揀何須委曲和會
009_0209_a_10L 或空或有或性或相悉非邪僻
009_0209_a_11L緣各皆黨已爲是斥彼爲非彼此確㝎
009_0209_a_12L故須和會 旣皆非邪即各任確㝎
009_0209_a_13L何必會之 至道歸一精義無二
009_0209_a_14L應兩存至道非邊了義不偏不應單
009_0209_a_15L故必須會之爲一令皆圓妙
009_0209_a_16L氷雜火勢不俱全將矛刺盾功不雙
009_0209_a_17L諸宗所集旣互相違一是則一非
009_0209_a_18L如何會令皆妙 俱存其法俱遣其病
009_0209_a_19L即皆妙也謂以法就人即難以人就法
009_0209_a_20L即易人多隨情互執執即相違誠如
009_0209_a_21L氷火相和矛盾相敵故難也法本稱
009_0209_a_22L理互通通即互順自然凝流皆水
009_0209_a_23L釧皆金故易也擧要而言局之即皆非
009_0209_a_24L會之即皆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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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르고 빼앗아 결론으로 대답함

도서 만일 불타의 말씀으로 각각 그 뜻을 보여 주고 각각 장점을 취하여 통합한 3종宗을 3교敎에 배대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화회하여 일대 선교방편을 삼아 미묘한 법문을 함께 성취하며, 각자가 망정妄情을 잊고 함께 지혜의 바다로 돌아가겠는가.

원주 오직 불타가 설한 것만이 다르면서 같기 때문에 불경에 의거, 세 가지를 화회하여 하나가 되도록 한 것이다.

(다) 셋째 글(3항목)

㉮ 문장을 거듭하고 표하여 밝힘

도서 셋째, “경은 먹줄과 같다. 삿됨과 바른 것을 반듯하게 정한다.”라는 것을 살펴본다.

㉯ 표한 것에 의거하여 분별하고 해석함

도서 먹줄이 도구는 아니지만, 장인은 반드시 먹줄에 의지하여 작업한다. 경론이 선禪은 아니지만 선을 전하는 자는 반드시 경론으로 그 기준을 삼는다. 중근이나 하근은 단지 스승에게만 의지하기 때문에 스승이 근기를 보아 그 사람에 맞도록 가르쳐 준다. 상근의 무리가 깨달음이 비록 원통圓通하여도 부처의 말씀을 아직 궁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부처의 견해와 같다고 하겠는가.

㉰ 문답으로 결론지어 말함

가는 곳마다 다 불경이 있어 배우는 사람들이 외우고 읽어 자세히 알고 있다. 지금 선의 요지를 모으는 데 구태여 경을 분간할 필요가 있는가?
이 뜻은 그 다음의 글에 있으니, 그것이 곧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글에서는 말한다.

(라) 넷째 글(2항목)

㉮ 문장을 거듭하여 분별하고 해석함

도서 넷째, “경에는 방편과 실제가 있다. 반드시 요의了義에 의지해야 한다.”라는 것에 대해 말해 본다. 불타가 모든 경전을 설함에 있어서 자신의 뜻에 따르는 말이 있고, 다른 사람의 뜻에 따르는 말이 있으며, 궁극적인 이치에 맞추기도 하고, 당시의 근기를 따르기도 한다. 성性과 상相을 드러내기도 하고, 돈점頓漸과 대소를 설하기도 하며, 요의了義와 불요의不了義를 설하기도 한다. 글이 혹 체성과 마주쳐서 어긋나기도 하지만, 의미는 반드시 원만하고 형통하여 걸림이 없다. 이와 같이 경권이 무한히 많으니, 어떻게 그 주요 의미를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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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縱奪結答

009_0209_b_02L
若不以佛語各示其意各取其長
009_0209_b_03L爲三宗對於三敎則何以會爲一大善
009_0209_b_04L俱成要妙法門各忘其情同歸智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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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佛所說即異而同故約佛經會三
009_0209_b_06L爲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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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中文三一標明牒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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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經如繩墨楷㝎邪正者

009_0209_b_09L
二依標辨釋

009_0209_b_10L
繩墨非巧工巧者必以繩墨爲憑
009_0209_b_11L論非禪傳禪者必以經論爲准中下
009_0209_b_12L根者但可依師師自觀根隨分指授
009_0209_b_13L上根之軰悟雖圓通未窮佛言何同
009_0209_b_14L佛見

009_0209_b_15L
三問答結說

009_0209_b_16L
所在皆有佛經任學者轉讀勘會
009_0209_b_17L集禪要何必辨經此意即其次之
009_0209_b_18L便是答此問也文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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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中文二初牒章辨釋

009_0209_b_20L
四經有權實須依了義者謂佛說諸經
009_0209_b_21L有隨自意語有隨他意語有稱畢竟之
009_0209_b_22L有隨當時之機有詮性詮相有頓
009_0209_b_23L漸大小有了義不了義文或敵體相違
009_0209_b_24L義必圓通無礙龍藏浩瀚何見指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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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으로 답함

도서 그러므로 이제 단지 20여 지紙를 가지고 그것을 한꺼번에 선택 결정하여 일시에 부처의 뜻을 원만히 보게 하였으니, 그 뜻을 본 후에 일대장경을 자세히 살핀다면 구절구절마다 종지를 알 것이다.25)

(마) 다섯째 글(3항목)

㉮ 거듭 표함

도서 다섯째, “양量에는 세 가지가 있으나, 따져 보면 반드시 같다.”라는 말에 대해 살펴본다.

㉯ 분별하여 해석함

도서 서역의 모든 현성賢聖들이 법과 의미를 파악하는 데 모두 삼량三量을 세웠다. 첫째는 비량比量이고, 둘째는 현량見量이며, 셋째는 불언량佛言量이다. 양量이란 측정하는 것으로서 되(升)나 말(㪷) 같은 것을 말한다. 즉 물건을 측정하고 해당 단위를 정하는 것이다. 비량이란 원인을 비유로 추측하는 것을 말한다. 멀리 연기를 보고 거기에는 반드시 불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비록 불이 보이지 않지만 (불이 있다는 것이) 거짓이 아니다. 현량이란 스스로 눈앞에 드러나서 미루어 생각하지 않아도 그대로 확실한 것을 가리킨다. 불언량이란 모든 경전으로 정해진 것이다.
“따져 보면 반드시 같다.”라는 것은 어떤 말인가. 만일 부처의 말씀에만 의거하고, 스스로 증득하여 깨달은 것을 비교 측정하지 않는다면, 단지 평범한 믿음일 뿐이니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만약 단지 현량만을 취하여 자신의 견해를 확고히 하고 부처의 말씀(경전)에 맞추어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삿된지 바른지를 알겠는가. 외도들도 그들이 집착하는 이치를 스스로 알고 그것을 닦아 공용을 얻음으로써 자신이 주인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것이 삿된 것인지를 알겠는가.
만약 단지 비량만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성스런 가르침과 자신의 견해도 없으니, 어디에 의거하여 비교 측정하고, 어떤 법을 비교하여 헤아리겠는가.

㉰ 결론으로 답함

도서 그러므로 삼량을 따져 보면, 반드시 같아야 비로소 결정이 이루어진다. 선종에도 이미 현량과 비량의 이량二量이 있지만, 지금 다시 경론으로써 그것을 인정하고 있으니, 삼량三量이 구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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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結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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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今但以二十餘紙都決擇之令一時
009_0209_c_03L圓見佛意見佛意後備尋一藏即句
009_0209_c_04L句知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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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中文三一標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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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量有三種 勘契須同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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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辨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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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域諸賢聖所解法義皆以三量爲㝎
009_0209_c_09L一比量二見量三佛言量量者量度
009_0209_c_10L如升㪷量物知㝎也比量者以因由
009_0209_c_11L譬喩比度也如遠見烟必知有火
009_0209_c_12L不見火亦非虛妄見量者親自現見
009_0209_c_13L不假推度自然㝎也佛言量者以諸
009_0209_c_14L經爲㝎也勘契須同者若但憑佛語
009_0209_c_15L不自比度證悟者只是汎信於己未益
009_0209_c_16L若但取現量自見爲㝎不勘佛語
009_0209_c_17L知邪正外道亦親見所執之理修之
009_0209_c_18L亦得功用自謂爲主豈知是邪若但
009_0209_c_19L用比量者旣無聖敎及自所見是約
009_0209_c_20L何比度比度何法

009_0209_c_21L
三結答

009_0209_c_22L
故須三量勘同方爲決㝎禪宗已多有
009_0209_c_23L現比二量今更以經論印之則三量備
009_0209_c_2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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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여섯째 글(3항목)

㉮ 거듭 표함

도서 여섯째, “의심에 여러 가지가 있으니 통하여 해결해야 한다.”라는 말에 대해 살펴본다.

㉯ 나열하여 질문함

도서 수십 년 동안 경론에 능한 대덕이 빈번히 나에게 질문한 것은 다음과 같다.
“사선四禪과 팔정八定은 모두 상계上界에 있고, 이 세계(界 : 욕계)에는 선禪이 없다. 선을 닦는다는 것은 반드시 경론에 의거하여 상계의 선정을 끌어와서 이 계에서 닦고 익히는 것이다. 따라서 선을 닦아 성취한 것은 모두 사선과 팔정이다. 모든 가르침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다 밝혔는데, 어찌하여 이것을 떠나 별도로 선문禪門을 말하는가. 이미 경론에 의거하지 않았으니, 이는 사도邪道임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또 어떤 사람이 물었다.
“경에는 점차적으로 아승기겁을 닦아야 보리를 증득한다고 했는데, 선은 단번에 깨달아 찰나에 정각을 이룬다고 하니, 경은 부처의 말씀이고, 선은 스님의 말씀이다. 부처님을 거스르고 스님을 존중하니 심히 의심스럽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선문의 요지는 옳고 그른 것이 없고 원망과 친함도 다 끊어 버리며 성내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는데, 왜 남방의 혜능과 북방의 신수가 물과 불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하택과 홍주는 삼별과 상별(參商26)처럼 간격이 있는가.”
또 어떤 사람이 물었다.
“6대에 걸쳐 스승과 제자가 선법을 전하면서 모두가 말하기를, ‘안으로 비밀스러운 말을 가르쳐 주고 밖으로 의발을 전수하는 것이니, 의발과 법을 갖추어야 인가認可에 부합한다’라고 하였다. 조계 이후에 이런 일을 들어 보지 못했으니, 요즈음 선문禪門을 열고 사람을 교화하는 자들이 비밀스러운 말을 설하는가. 비밀한 말을 설하지 않는다면 전하는 것은 달마의 법이 아니고, 설한다면 듣는 사람이 모두 계합하여 의발을 전해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26)
또 어떤 선문의 대덕이 물었다.
“달마가 마음을 전함에 문자를 세우지 않았는데, 그대는 왜 앞의 조사를 위배하여 논을 강설하고 경전을 전하는가.”
가까이에서 다시 물었다.
“정명淨明(유마 거사)도 이미 정좌하는 것을 나무랐고, 하택도 언제나 마음을 한데 모으는 것을 배척하였으며, 조계도 사람이 결가부좌하는 것을 보고 일찍이 스스로 주장자로 내리쳐 일으켰다. 지금 그대는 가르치고 지도하면서 좌선을 권한다고 듣고 있다. 선禪 하는 암자가 산속 곳곳에 널려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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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中文三一標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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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疑有多般須具通決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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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列問

009_0210_a_04L
數十年中頻有經論大德問余曰
009_0210_a_05L禪八㝎皆在上界此界無禪凡修禪
009_0210_a_06L須依經論引取上界禪定而於此
009_0210_a_07L界修習修習成者皆是彼禪諸敎具
009_0210_a_08L無出此者如何離此別說禪門
009_0210_a_09L不依經論即是邪道又有問曰經云
009_0210_a_10L漸修祗刼方證菩提禪稱頓悟刹那
009_0210_a_11L便成正覺經是佛語禪是僧言違佛
009_0210_a_12L遵僧切疑未可又有問曰禪門要旨
009_0210_a_13L無是無非塗割寃親不嗔不喜何以
009_0210_a_14L南能北秀水火之嫌荷澤洪州參商
009_0210_a_15L之隙又有問曰六代師資傳授禪法
009_0210_a_16L皆云內授密語外傳信衣衣法相資
009_0210_a_17L以爲符印曹溪已後不聞此事未審
009_0210_a_18L今時開禪化人說密語否不說則所傳
009_0210_a_19L非達摩之法說則聞者盡合得衣
009_0210_a_20L又有禪德問曰達摩傳心不立文字
009_0210_a_21L汝何違背先祖講論傳經近復問曰
009_0210_a_22L淨名已呵宴坐荷澤每斥凝心曹溪見
009_0210_a_23L人結跏曾自將杖打起今聞汝每因敎
009_0210_a_24L即勸坐禪禪庵羅列遍於巖壑

009_0210_b_01L종지에 위배되고 조사의 도에 어긋나지 않는지, 나는 정말로 의심스럽다.”

㉰ 결론으로 답함

도서 내가 비록 때에 따라 각각 이미 대답했으나, 의심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아 (설명을) 듣지 못한 자들을 딱하게 여겨 왔다. 더구나 힐난하여 질문하는 자는 생각이 치우치고 집착이 각각 달라 피차가 서로 어긋나니, 갑의 의심이 해결되면 을의 병이 다시 더 커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삼문三門의 이치를 열어 일대장경을 평가함으로써 앞에서 제기한 의문을 총체적으로 답하여 확연히 통하도록 하겠다.

원주 아래에 서로 해당되는 글의 의미에 따라 하나하나 각주로 지적하였으니, 그것은 이 모든 난문에 대답한 것이다. 대답한 곳을 보고자 하면, 반드시 주석을 살펴보라.

(사) 일곱째 글(3항목)

㉮ 거듭 표함

도서 일곱째, “법과 의義가 같지 않으니, 식을 잘 분별한다.”라는 것을 살펴본다. 제법의 성상을 밝혀 알려고 한다면 먼저 법과 의미를 분간해야 한다. 법에 의하여 의미를 해석하면 의미가 분명하고, 의미로써 법을 나타내면 법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 개별적으로 해석함(2항목)

ㄱ. 법에 나아가 법의 의미를 밝힘

도서 지금 세상일에 의해 그것을 밝혀 보자. 진금이 장인 등의 솜씨에 따라 귀고리·비녀·주발·술잔 등 여러 가지 기물로 만들어지지만, 금의 성질은 절대로 동이나 철로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금은 법이고, ‘변하지 않는 것과 연緣을 따르는 것’은 의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무엇이 연을 따르는 것이고, 무엇이 변하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단지 둘을 합한 것이 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비유하면 일대장경과 논서의 의미와 이치는 단지 일심一心을 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이 곧 법이고 일체가 의미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무량한 의미는 일법一法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나 그것을 통합하면 오직 두 종류뿐이니, 첫째는 변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연을 따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모든 경전은 이 마음이 미오迷悟의 연을 따라 더러움과 깨끗함, 범상함과 성스러움, 번뇌와 보리, 유루와 무루 등을 이룬다고 설한다. 또한 이 마음이 깨끗하거나 더럽거나 등이라고 말을 할 때에도, 본래 변하지 않고 항상 고요하여

009_0210_b_01L宗違祖吾切疑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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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結答

009_0210_b_03L
余雖隨時各已酬對然疑者千萬
009_0210_b_04L其未聞況所難之者情皆偏執所執
009_0210_b_05L各異彼此互違因決甲疑復增乙病
009_0210_b_06L故須開三門義評一藏經摠答前疑
009_0210_b_07L無不通徹

009_0210_b_08L
下隨相當文義一一注脚指之答此
009_0210_b_09L諸難欲見答處須檢注文

009_0210_b_10L
七中文三初牒標

009_0210_b_11L
七法義不同善須辨識者凡欲明解諸
009_0210_b_12L法性相先須辨得法義依法解義
009_0210_b_13L即分明以義詮法法即顯著

009_0210_b_14L
二別釋二一就法明法義

009_0210_b_15L
今且約世物明之如眞金隨工匠等緣
009_0210_b_16L作鐶釧椀盞種種器物金性必不變爲
009_0210_b_17L銅鐵金即是法不變隨緣是義設有
009_0210_b_18L人問說何物不變何物隨緣只合答
009_0210_b_19L云金也以喩一藏經論義理只是說心
009_0210_b_20L心即是法一切是義故經云無量義
009_0210_b_21L從一法生然無量義統唯二種
009_0210_b_22L不變二隨緣諸經只說此心隨迷悟緣
009_0210_b_23L成垢淨凡聖煩惱菩提有漏無漏等
009_0210_b_24L只說此心垢淨等時元來不變常自寂

009_0210_c_01L진실하고 여여하다는 등등이라고 설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무슨 법이 변하지 않고 무슨 법이 연을 따르는가라고 물으면, 두 질문에 대해 단지 합하여 마음이라고 웃으면서 대답할 것이다.

ㄴ. 사람을 근거로 잘못에 집착함을 밝힘

도서 변하지 않는 것은 성性이고 연을 따르는 것은 상相이다. 성상은 모두 일심상一心上의 의미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성과 상 두 종파가 서로 비난하는 것은 단지 진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마음 심心 자를 듣고 팔식八識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팔식을 알지 못하는 말이다. 팔식은 단지 진심상에 연을 따르는 의미일 뿐이다. 그러므로 마명보살이 일심으로 법을 삼고, 진여와 생멸 이문으로 의미를 삼았다. 이에 논에서 “이 마음에 의해 마하연의 의미를 드러낸다.”라고 한 것이다. 심진여心眞如는 본성本性의 체體이고, 심생멸心生滅은 상相과 용用이다. 단지 이 마음이 허망하지 않기 때문에 진眞이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여如라고 말할 뿐이다. 이 때문에 논에서 일일이 심진여·심생멸이라고 하는 것이다.
요즈음 선禪 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의미를 많이 모르기 때문에 단지 마음을 선이라 부르고, 강설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법을 모르기 때문에 단지 명칭을 가지고 의미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명칭을 따라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에 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마음이란 말을 듣고 얕다고 말하고, 성性이란 말을 듣고 깊다고도 한다. 혹은 성으로 법을 삼기도 하고, 마음으로 의미를 삼기도 하는 것이다.

㉰ 결론으로 답함

도서 그러므로 세 종파와 경론을 서로 상대하여 조명하면, 법과 의미가 드러나서 일심으로 돌아갈 것이니, 쟁론도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아) 여덟째 글(3항목)

㉮ 거듭된 글을 표하여 밝힘

도서 여덟째, “마음이 성상性相에 통하여 명칭은 같지만 의미는 다르다.”라고 하는 것을 살펴본다.

㉯ 표한 것에 의거하여 별도로 밝힘(2항목)

ㄱ. 간략하게 해석함

도서 모든 경전이 어떤 때는 마음을 도적이라고 폄훼하여 끊도록 하고, 어떤 때는 마음이 부처라고 찬탄함으로써 권해 닦도록 한다. 또는 착한 마음, 악한 마음, 청정한 마음, 더러운 마음,

009_0210_c_01L眞實如如等設有人問說何法不
009_0210_c_02L何法隨緣只合笑云心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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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就人明執非

009_0210_c_04L
不變是性隨緣是相當知性相皆是一
009_0210_c_05L心上義今性相二宗互相非者良由不
009_0210_c_06L識眞心每聞心字將謂只是八識
009_0210_c_07L知八識但是眞心上隨緣之義故馬
009_0210_c_08L鳴菩薩以一心爲法以眞如生滅二門
009_0210_c_09L爲義論云依於此心顯示摩訶衍義
009_0210_c_10L心眞如是性體心生滅是相用只說此
009_0210_c_11L心不虛妄故云眞不變易故云如是以
009_0210_c_12L論中一一云心眞如心生滅今時禪者
009_0210_c_13L多不識義故但呼心爲禪講者多不
009_0210_c_14L識法故但約名說義隨名生執難可
009_0210_c_15L會通聞心謂淺聞性謂深或却以性
009_0210_c_16L爲法以心爲義

009_0210_c_17L
三結答

009_0210_c_18L
故須約三宗經論相對照之法義旣顯
009_0210_c_19L但歸一心自然無諍

009_0210_c_20L
八中文三初標名牒章

009_0210_c_21L
八心通性相名同義別者

009_0210_c_22L
二依標別釋二一畧釋

009_0210_c_23L
諸經或毁心是賊制令斷除或讃心是
009_0210_c_24L勸令修習或云善心惡心淨心垢

009_0211_a_01L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자애로운 마음, 연민하는 마음이라 하기도 한다. 혹은 마음이 경계에 의거하여 생긴다 하고, 혹은 마음이 경계에서 생긴다고 한다. 혹은 적멸이 마음이라고도 하고, 혹 사려하는 것이 마음이라 하는 등 가지가지 서로 다르다. 만일 여러 종파를 서로 대비하여 보여 주지 않는다면, 경을 보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변별하겠는가.

ㄴ. 널리 해석함(2항목)

ㄱ)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많은 종류의 마음인가, 단지 한 가지 마음인가?

ㄴ) 별도로 해석함(2항목)

(ㄱ) 또 많은 종류(의 마음)에 의거하여 명칭과 본체를 간략히 보임

도서 지금 (마음의) 명칭과 본체를 간략히 보이겠다. 일반적으로 ‘마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간략히 네 종류가 있으니, 범어로도 각기 다르고 번역도 또한 다르다.
첫째, 흘리타야紇利陁耶이니, 이곳 말로는 육단심肉團心이라고 한다. 이것은 몸 가운데의 오장심五藏心을 가리킨다.

원주 모두 『황정경』27) 「오장론」의 설명과 같다.

도서 둘째, 연려심緣慮心이니, 이것은 팔식을 말한다. 모두 자분自分의 대상을 따라 사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주 색色은 안식의 대상이고, 내지 신근과 종자와 기세간은 아뢰야식의 대상이다. 이것들은 각각 일분一分만을 연緣하기 때문에 자분이라고 한다.

도서 이 팔식에는 각각 심소가 있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오직 무기이고, 어떤 것은 선과 염오가 다른 것에 다 통한다. 여러 경전 가운데 모든 심소를 지목하여 다 마음이라 하는 것이니, 선심과 악심 등을 말한다.

도서 셋째, 질다야質多耶이니, 이곳 말로는 집기심集起心이라 한다. 이것은 오직 제8식이 종자를 집적하여 현행을 일으키는 까닭이다.

원주 『황정경』 「오장론」에서 이것을 지목하여 ‘신神’이라 하였고, 서역의 외도는 그것을 ‘아我’라고 하였으니, 모두 이 식識을 말하는 것이다.

도서 넷째, 건율타야乾栗陁耶이니, 이곳 말로는 견실심堅實心 또는 진실심眞實心이라고 한다. 이것은 진실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009_0211_a_01L貪心嗔心慈心悲心或云心托境
009_0211_a_02L或云心生於境或云寂滅爲心
009_0211_a_03L云緣慮爲心乃至種種相違若不以諸
009_0211_a_04L宗相對顯示則看經者何以辨之

009_0211_a_05L
二廣釋二初摠標

009_0211_a_06L
爲當有多種心爲復只是一般心耶

009_0211_a_07L
二別釋二初且約多種略示名體

009_0211_a_08L
今且畧示名體汎言心者畧有四種
009_0211_a_09L梵語各別翻譯亦殊一紇利陁耶
009_0211_a_10L云肉團心此是身中五藏心也

009_0211_a_11L
具如黃庭經五藏論說也

009_0211_a_12L
二緣慮心此是八識俱能緣慮自分境
009_0211_a_13L

009_0211_a_14L
色是眼識境乃至根身種子器世界
009_0211_a_15L是阿賴耶識之境各緣一分故云自
009_0211_a_16L分也

009_0211_a_17L
此八各有心所於中或唯無記或通善
009_0211_a_18L染之殊諸經之中目諸心所摠名心
009_0211_a_19L謂善心惡心等三質多耶此云集
009_0211_a_20L起心唯第八識積集種子生起見行故

009_0211_a_21L
黃庭經五藏論目之爲神西國外道
009_0211_a_22L計之爲我皆是此識也

009_0211_a_23L
四乾栗陁耶此云堅實心亦云眞實心
009_0211_a_24L此是眞實心也

009_0211_b_01L
(ㄴ) 한가지로 회통하여 돌아감으로써 마음으로 통함을 자세히 밝힘(3항목)

㉠ 일심을 바로 밝힘

도서 그러나 제8식은 별도로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진심일 뿐이지만 불각不覺 때문에 모든 망상과 화합하거나 화합하지 않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화합하는 의미는 더러움과 깨끗함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장식藏識이라고 칭하고, 화합하지 않는 의미는 체성이 항상 변하지 않는 것으로서 진여라고 하니, 모두 다 여래장이다.

㉡ 경을 인용하여 증명함

도서 그러므로 『능가경』에서 “적멸이란 일심이고, 일심은 여래장이다.”라고 하였으니, 여래장이란 역시 속박된 법신이다. 『승만경』의 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4종의 마음이 본래 일체임을 알아야 한다. 『밀엄경』에서는 “불타가 설한 여래장【법신이 속박되어 있다는 명칭】이 아뢰야28)【장식】가 된다. 삿된 지혜로는 장식이 곧 아뢰야식임을 알지 못한다.”라고 설한다.

원주 어떤 사람은 진여와 아뢰야식의 체성이 다르다고 집착하는데, 이것은 삿된 지혜이다.

도서 여래의 청정장淸淨藏29)과 세간의 아뢰야阿賴耶는 금과 금반지의 관계와 같다. 반지는 금이 여러 가지로 변한 것이니, 결국 금의 성질에는 차별이 없다.

원주 금반지 등은 아뢰야식을 비유한 것이고, 금은 진여를 비유한 것이니, 통틀어 여래장이라 하는 것이다.

㉢ 앞의 걸림 없음을 따름

도서 그렇게 비록 본질은 같지만, 진망眞妄의 의미에 구별이 있고 본말 또한 다르니, 앞의 세 가지는 상相이고, 뒤의 한 가지는 성性이다. 성에 의거하여 상을 일으키니 다 이유가 있으며, 상을 회통하여 성으로 돌아가니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니다. 성과 상이 걸림 없으니 모두가 일심이다.

㉰ 주고 빼앗아 결론지어 답함

도서 그것에 미혹하면 향하는 곳마다 담장을 마주하는 것과 같고, 깨달으면 만법이 거울 앞에 있는 것처럼 밝다. 만일

009_0211_b_01L
二會歸一般詳卞心通三初正明
009_0211_b_02L一心

009_0211_b_03L
然第八識無別自體但是眞心以不
009_0211_b_04L覺故與諸妄想有和合不和合義
009_0211_b_05L合義者能含染淨目爲藏識不和合
009_0211_b_06L體常不變目爲眞如都是如來藏

009_0211_b_07L
二引經成證

009_0211_b_08L
故楞伽云寂滅者名爲一心一心者
009_0211_b_09L即如來藏如來藏者亦是在纒法身
009_0211_b_10L如勝鬘經說故知四種心本同一體
009_0211_b_11L故密嚴經云佛說如來藏法身在
纒之名
以爲
009_0211_b_12L阿賴耶
惡慧不能知藏即賴耶識

009_0211_b_13L
有執 眞如與賴耶體別者是惡慧也

009_0211_b_14L
如來淸淨藏世間阿賴耶如金與指鐶
009_0211_b_15L展轉無差別

009_0211_b_16L
指鐶等喩賴耶金喩眞如都名如
009_0211_b_17L來藏也

009_0211_b_18L
三躡前無碍

009_0211_b_19L
然雖同體眞妄義別本末亦殊前三
009_0211_b_20L是相後一是性依性起相盖有因由
009_0211_b_21L會相歸性非無所以性相無碍都是
009_0211_b_22L一心

009_0211_b_23L
三縱奪結答

009_0211_b_24L
迷之則觸向面墻悟之則萬法臨鏡

009_0211_c_01L헛되이 문구를 찾거나 억측으로 믿으면 이 일심의 성상을 어떻게 알겠는가.

(자) 아홉째 글(3항목)

㉮ 문장을 거듭 표하여 서술함

도서 아홉째, “깨달음과 수행, 단번에 깨달음과 점차적인 깨달음이 상반되는 것 같지만 부합한다.”라는 것에 대해 설명하겠다. 모든 경론과 선문에서 어떤 사람은 먼저 점차 수행한 공이 이루어진 후에 활연히 돈오한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먼저 단번에 깨닫고 점차적으로 닦는 것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단번에 닦고 나서 점차로 깨닫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깨달음과 닦음이 모두 점차적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모두 단번에 깨닫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법에 돈(돈오)과 점(점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돈과 점은 근기에 있다고 하니, 위의 설들은 각각 의의가 있는 것이다.

㉯ 돈과 점을 별도로 밝힘

도서 (돈과 점이) 상반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깨달은 것을 성불이라고 하고, 본래 번뇌가 없는 것을 돈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응당 닦아 끊을 것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 다시 점차로 닦는다고 할 수 있는가. 점차로 닦는다고 하는 것은, 번뇌가 다 끊어지지 않고 인행因行이 다 갖추어지지 않았으며 과덕이 원만하지 않은 것인데, 어떻게 돈이라고 할 수 있는가. 돈이라면 점이 아니고, 점이라면 돈이 아니기 때문에 상반된다고 하는 것이다.

㉰ 서로 도움을 결론으로 답함

도서 아래에 배대하여 회통하는 것과 같이 돈과 점이 상반되지 않음은 물론 도리어 서로 돕는 것이다.

(차) 열째 글(3항목)

㉮ 거듭 표함

도서 열째, “스승과 제자가 전수함에 반드시 약과 병을 알아야 한다.”라는 것에 대해 살펴본다.

㉯ 따로 해석함(3항목)

ㄱ. 약의 처방을 바로 서술함

도서 위에서 전수하는 방편을 계승한다는 것은, 모두 본성을 먼저 열어 보이고, 바야흐로 그 본성에 의거하여 선을 닦게 하는 것을 말한다.

ㄴ. 집착하는 병을 널리 밝힘


009_0211_c_01L空尋文句或信胸襟於此一心性相
009_0211_c_02L如何了會

009_0211_c_03L
九中文三初牒章標叙

009_0211_c_04L
九悟修頓漸似反而符者諸經論及諸
009_0211_c_05L禪門或云先因漸修功成豁然頓悟
009_0211_c_06L或先因頓悟方可漸修或云由頓修
009_0211_c_07L故漸悟或云悟修皆漸或云皆頓
009_0211_c_08L云法無頓漸頓漸在機如上等說
009_0211_c_09L有意義

009_0211_c_10L
二別明頓漸

009_0211_c_11L
言似反者謂旣悟即成佛本無煩惱
009_0211_c_12L名爲頓者即不應修斷何得復云漸
009_0211_c_13L漸修即是煩惱未盡因行未圓
009_0211_c_14L德未滿何名爲頓頓即非漸漸即非
009_0211_c_15L故云相反

009_0211_c_16L
三結答相資

009_0211_c_17L
如下對會即頓漸非唯不相乘反
009_0211_c_18L乃互相資也

009_0211_c_19L
十中文三初標牒

009_0211_c_20L
十師資傳授須識藥病者

009_0211_c_21L
二別釋三初正叙藥方

009_0211_c_22L
謂承上傳授方便皆先開示本性方令
009_0211_c_23L依性修禪

009_0211_c_24L
二廣明執病

009_0212_a_01L
도서 본성을 쉽게 깨닫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현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성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먼저 집착을 깨뜨려야 한다. 집착을 깨뜨리는 방편은, 반드시 범부와 성인이라는 생각을 모두 없애고 공功과 과過를 동시에 제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계戒는 지님도 범함도 없는 것이고, 선禪은 안정도 산란도 없는 것이다. 삼십이상이 전부 허공의 꽃이어서 실체가 없고, 삼십칠조도품이 모두 몽환이다. 의지가 마음으로 하여금 집착이 없도록 하여야 선을 닦을 수 있는 것이다. 얕은 식견의 후학들은 단지 이 말에 집착하여 그것을 구경의 도로 삼는다. 또 닦아 익히는 문에서 사람들이 대부분 방일하기 때문에 다시 좋아하고 싫어함을 널리 설하며, 탐냄과 성냄을 경책하고 근검을 찬탄한다. 또 몸을 조절하고 숨을 고르며 거침과 미세함의 차례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후인들이 이것을 듣고 본각의 작용에 미혹하여 한결같이 법상에 집착한다.
오직 근성이 영리하고 뜻이 견고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승을 모시고 깨달음과 닦음의 의미를 터득한다. 그러나 근성이 경박한 사람은 잠시 하나의 의미를 듣고 이미 다 충족했다고 말한다. 이에 작은 지혜를 믿고 타인의 스승이 되어 본말을 궁구하지 않고 치우친 집착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돈점 문하에서 서로 대면하는 것을 원수처럼 여기고, 남종과 북종이 서로 적대시하는 것이 초나라와 한나라30) 같으니, 발을 씻는 뉘우침31)과 코끼리 만지는 비유를 여기에서 경험하게 된다.

ㄷ. 결론으로 자기의 뜻을 말함

도서 지금 찬술하는 것이 어찌 하나의 책만을 위함이겠는가. 모아 회통하는 것은 이伊 자의 3점32)에 있으니, 3점이 분산되면 이伊 자가 성립되지 않는다. 3종宗33)이 만약 어긋난다면 어떻게 부처를 이루겠는가.

㉰ 결론으로 답함

도서 그러므로 전수하는 약과 병을 알려고 하면, 반드시 3종이 어긋나지 않음을 보아야 하고, 3종이 어긋나지 않음을 보고자 하면 반드시 3종 불교를 알아야 한다.

원주 앞에서 서술한 “선사가 ‘어째서 강설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지금 열 가지 뜻으로 대답하였다. 그러므로 처음에 이미 서역 조사에 대해 서술한 것은

009_0212_a_01L
性不易悟多由執相故欲顯性先須
009_0212_a_02L破執破執方便須凡聖俱泯功過齊
009_0212_a_03L戒即無犯無持禪即無㝎無亂
009_0212_a_04L十二相都是空花三十七品皆爲夢
009_0212_a_05L意使心無所着方可修禪後學淺
009_0212_a_06L便但執此言爲究竟道又以修習
009_0212_a_07L之門人多放逸故復廣說欣厭毁責
009_0212_a_08L貪嗔讃歎勤儉調身調息麁細次第
009_0212_a_09L後人聞此又迷本覺之用便一向執相
009_0212_a_10L唯根利志堅者始終事師方得悟修之
009_0212_a_11L其有性浮淺者纔聞一意即謂已
009_0212_a_12L仍恃小慧便爲人師未窮本末
009_0212_a_13L成偏執故頓漸門下相見如仇讎
009_0212_a_14L北宗中相敵如楚漢洗足之悔摸象
009_0212_a_15L之諭驗於此矣

009_0212_a_16L
三結告己意

009_0212_a_17L
今之所述豈欲別爲一本集而會之
009_0212_a_18L務在圓伊三點三點各別旣不成伊
009_0212_a_19L三宗若乘焉能作佛

009_0212_a_20L
三結答

009_0212_a_21L
故知欲識傳授藥病須見三宗不乖
009_0212_a_22L見三宗不乖須解三種佛敎

009_0212_a_23L
前叙有人難云禪師何以講說余今
009_0212_a_24L摠以十意答之故初已叙西域祖師

009_0212_b_01L모두 경론을 홍포하기 위한 것이다.34)

2) 『도서』의 정종분(2항목)

(1) 이理와 사事의 본말(3항목)

① 앞의 것을 결론짓고 뒤의 것을 일으킴

과평 지금까지 (선전을 서술하는) 열 가지 다른 (이유를) 끝마쳤다. 여기부터는 스승의 말씀이 부처의 뜻에 부합함을 증명하여 성상이 한 법임을 나타냄으로써 선교禪敎 양가가 착오하고 의심하며 비방하는 폐단을 구제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근원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35)

도서 위의 열 가지 뜻이 이치와 용례가 분명하다. 다만 선의 3종宗과 교의 3종種을 배대하여 자세히 살피는 것은 말(용량을 측정하는 도구)과 저울로 재는 것처럼 얕고 깊음을 충분히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선문을 서술하고 뒤에 교로써 증명하려고 한다.

② 선과 교로 나누어 나열함

도서 선의 3종이란, 첫째, 망상을 쉬고 마음을 닦는 종(息妄修心宗), 둘째, 완전히 소멸하여 붙일 것이 없는 종(泯絶無寄宗), 셋째, 심성을 바로 드러내는 종(直顯心性宗)을 가리킨다. 교의 3종이란, 첫째, 밀의로 성性에 의거하여 상相을 설하는 교(密意依性說相敎), 둘째, 밀의로 상相을 깨뜨리고 성性을 드러내는 교(密意破相顯性敎), 셋째, 진심이 곧 성性임을 드러내 보여 주는 교(現示眞心卽性敎)이다.

③ 셋을 회통하여 하나가 되게 함(3항목)

가.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위의 3교敎를 차례로 앞의 3종宗과 서로 동일하게 배대하여 하나하나 그것을 증명한 후에 총체적으로 회통하여 일미가 되게 하였다.

나. 개별적으로 해석함(2항목)

가) 같음을 증득하여 집착을 깨뜨림(2항목)

(가) 오직 본의만을 말함(2항목)

㉮ 선종을 해석함(3항목)

ㄱ. 여섯 자36)를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지금 먼저 선종을 서술한다.

ㄴ. 개별적으로 3종을 해석함(3항목)

ㄱ) 상종(3항목)

(ㄱ) 종법을 자세히 밝힘(2항목)

㉠ 열어 보여 줌

도서 첫째, ‘망상을 쉬고 마음을 닦는 종’은 다음과 같이 설한다. 중생은 본래 불성을 갖추고 있지만 시작이 없는 무명(無始無明)이 불성을 가리고 덮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다.

009_0212_b_01L皆弘經論也

009_0212_b_02L
二都序正宗二一理事本末三
009_0212_b_03L結前起後

009_0212_b_04L
自此至十別異終則證師說符於
009_0212_b_05L佛意現性相一法以救禪敎兩家
009_0212_b_06L錯謬疑謗之弊此解源義也

009_0212_b_07L
上之十意理例照然但對詳禪之三宗
009_0212_b_08L敎之三種如經㪷秤足定淺深先叙
009_0212_b_09L禪門後以敎證

009_0212_b_10L
二分列禪敎

009_0212_b_11L
禪三宗者一息妄修心宗二泯絕無寄
009_0212_b_12L三直顯心性宗敎三種者一密意依
009_0212_b_13L性說相敎二密意破相顯性敎三顯示
009_0212_b_14L眞心即性敎

009_0212_b_15L
三會三爲一三初摠標

009_0212_b_16L
右此三敎如次同前三宗相對一一證
009_0212_b_17L之然後摠會爲一味

009_0212_b_18L
二別釋二初證同破執二初惟談
009_0212_b_19L本義二
初釋禪宗三初摠標六字

009_0212_b_20L
今且先叙禪宗

009_0212_b_21L
二別釋三宗三一相宗三一詳明
009_0212_b_22L宗法二
一開示

009_0212_b_23L
初息妄修心宗者說衆生雖本有佛性
009_0212_b_24L而無始無明覆之不見故輪廻生死

009_0212_c_01L모든 부처는 이미 망상을 끊었기 때문에 자성을 보는 것이 분명하여 생사에서 벗어나 신통 자재하다. 그러나 범부와 성인은 공용이 같지 않고, 외경과 내심이 각각 한계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 깨달아 들어감

도서 그러므로 반드시 스승의 말과 가르침에 의지하여 경계를 등지고 마음을 관함으로써 망념을 없애야 할 것이다. 망념이 사라진 것이 곧 깨달음이니, 깨달으면 알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마치 거울의 어두운 먼지를 부지런히 털고 닦으면 티끌이 사라지고 밝음이 드러나 비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또 선의 경계로 들어가는 방편을 반드시 밝게 알아야 할 것이다. 산란하고 시끄러움을 멀리하고 한가하며 조용한 곳에서 몸을 조절하고 숨을 고른다. 가부좌로 편안하고 고요히 앉아 입천장을 혓바닥으로 받치고 마음을 한 경계에만 집중한다.

(ㄴ) 결론으로 종파의 사람들을 지적함

도서 남선·북수·보당·선십 등의 문하가 모두 이러한 부류이다.

(ㄷ) 난문을 해결하고 분간함

도서 우두·천태·혜조·구나 등은 방편을 행하는 데 있어서 행적은 크게 같지만 견해는 서로 다르다.

ㄴ) 공종(3항목)

(ㄱ) 종파의 사람과 법을 나타냄(2항목)

㉠ 깨달음과 수증을 나열하여 해석함

도서 둘째, ‘완전히 소멸하여 붙일 것이 없는 종’은 다음과 같이 설한다. 범부와 성인 등의 법이 꿈같고 허깨비 같아서 모두 있는 바가 없다. 본래 공적하니 지금 비로소 없는 것이 아니며,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혜 또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평등한 법계에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법계 또한 가명이다. 마음이 이미 있지 않은데, 누가 법계라고 말하겠는가. 닦음도 닦지 않음도 없으니, 설사 한 법이 있어 열반보다 수승하다 하여도 나는 또한 몽환과 같다고 할 것이다. 법은 얽어맴이 없고

009_0212_c_01L諸佛已斷妄想故見性了了出離生死
009_0212_c_02L神通自在當知凡聖功用不同外境內
009_0212_c_03L各有分限

009_0212_c_04L
二悟入

009_0212_c_05L
故須依師言敎背境觀心息滅妄念
009_0212_c_06L念盡即覺悟無所不知如鏡昏塵
009_0212_c_07L勤拂拭塵盡明現即無所不照又須
009_0212_c_08L明解趣入禪境方便遠離憒閙住閑靜
009_0212_c_09L調身調息1)跌宴默舌柱上腭
009_0212_c_10L心注一境

009_0212_c_11L
二結指宗人

009_0212_c_12L
南侁北秀保唐宣什等門下皆此類也

009_0212_c_13L
三通難揀別

009_0212_c_14L
牛頭天台慧稠求那等進趣方便迹即
009_0212_c_15L大同見解即別

009_0212_c_16L
二空宗三一現宗人法二一列釋
009_0212_c_17L悟修證

009_0212_c_18L
二泯絕無寄宗者說凡聖等法皆如
009_0212_c_19L夢幻都無所有本來空寂非今始無
009_0212_c_20L即此達無之智亦不可得平等法界
009_0212_c_21L無佛無衆生法界亦是假名心旣不有
009_0212_c_22L誰言法界無修不修無佛不佛設有
009_0212_c_23L一法勝過湼槃我說亦夢幻無法可
009_0212_c_24L「跌」疑「趺」{編}

009_0213_a_01L부처는 지을 수 없으니, 무릇 짓는 것이 있으면 모두 미망이다. 이와 같이 본래 일이 없다는 것을 통달하면 마음에 붙일 것이 없어 전도顚倒를 떠날 것이니, 그때야 비로소 해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사람을 들어 행을 자세히 밝힘

도서 석두·우두로부터 그 뒤 경산徑山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이치를 보여 준다. 다만 마음과 행이 이와 함께 상응토록 하는 것이지, 한 법도 사념에 막히게 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오래가면 공이 이루어져 번뇌 습기가 저절로 없어지고 원망과 친함, 괴로움과 즐거움에 일체 아무 일도 없게 된다.

(ㄴ) 평범한 학자가 뜻에 어두움

도서 이로 인해 한 무리의 도사나 유생 또는 한가로운 승려나 선리를 참구하는 사람이 모두 이 말이 궁극이라고 하는 것은, 이 종파가 단지 이 말37)만으로 법을 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ㄷ) 난문을 해결하고 분간함

도서 하택·강서·천태 등의 문하에서도 또한 이 이치를 설하지만, 종지로 삼지는 않는다.

ㄷ) 성종(3항목)

(ㄱ) 법에 의거하여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셋째, ‘심성을 바로 드러내는 종’은 다음과 같이 설한다. 일체 제법은 유有이거나 공空이거나 모두 다 오직 진성眞性이다. 진성은 무위이니, 그 본체는 일체가 아니다.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며, 인因도 아니고 과果도 또한 아니다. 선도 아니고 악 등도 아니지만, 본체에 계합한 작용이 여러 가지 현상 제법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범부가 되고 성인이 되며, 형상을 나타내고 색을 나타내고 상을 나타내는 것 등을 말한다.

(ㄴ) 사람을 따라 개별적으로 해석함(2항목)

㉠ 숫자로 표함

도서 그 가운데 심성을 지시함에는 다시 두 종류가 있다.

㉡ 열어 해석함(2항목)

a. 홍주가 보여 주는 것(2항목)

a) 바로 밝힘(3항목)


009_0213_a_01L無佛可作凡有所作皆是迷妄
009_0213_a_02L此了達本來無事心無所寄方免顚倒
009_0213_a_03L始名解脫

009_0213_a_04L
二擧人詳明行

009_0213_a_05L
石頭牛頭下至徑山皆示此理使令
009_0213_a_06L心行與此相應不令滯情於一法上
009_0213_a_07L日久功至塵習自亡則於寃親苦樂
009_0213_a_08L一切無事

009_0213_a_09L
二汎學迷旨

009_0213_a_10L
因此便有一類道士儒生閑僧汎參
009_0213_a_11L禪理者皆說此言便爲臻極不知此
009_0213_a_12L不但以此言爲法

009_0213_a_13L
三通難揀別

009_0213_a_14L
荷澤江西天台等門下亦說此理然非
009_0213_a_15L所宗

009_0213_a_16L
三性宗三初約法摠標

009_0213_a_17L
三直顯心性宗者說一切諸法若有若
009_0213_a_18L皆唯眞性眞性無爲體非一切
009_0213_a_19L非凡非聖非因非果非善非惡等
009_0213_a_20L即體之用而能造作種種謂能凡能聖
009_0213_a_21L現色現相等

009_0213_a_22L
二就人別釋二初標數

009_0213_a_23L
於中指示心性復有二類

009_0213_a_24L
二開釋二一洪州所示二一正明

009_0213_b_01L
(a) 깨달음

도서 첫째는 지금 언어와 동작을 할 수 있고, 탐함과 성냄, 자비와 인욕, 선과 악을 지음, 고와 낙을 받는 등이 곧 너의 불성이다.38) 이것이 곧 본래 부처로서 이것을 제외하고 달리 부처가 없는 것이다.39)

(b) 닦음

도서 이 천진 자연을 통달했기 때문에 마음을 일으켜 수도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 도가 곧 마음이니 마음으로 다시 마음을 닦을 수 없고, 악한 것 또한 마음이니 마음으로 다시 마음을 끊을 수 없다.

(c) 증득
도서 끊지도 않고 닦지도 않으며 뜻대로 자재하니, 그것을 비로소 해탈이라고 한다.

b) 거두어 결론 내림

도서 본성은 허공과 같아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거늘 무엇에 의거하여 더 보태고 보충하겠는가. 단지 시간과 장소를 따라 업을 쉬고 신묘함을 길러야40)성태聖胎가 점점 성장하여 자연 신묘함이 드러날 것이다.41) 이것이 참된 깨달음이고 참된 수행이며 참된 증득이라 하겠다.

b. 하택이 보여 주는 것(2항목)

a) 열어 보임

도서 둘째, 모든 법이 몽환과 같다고 성인들이 똑같이 설한다. 망념은 본래 고요하고 바깥 경계는 본래 공하다. 비고 고요한 마음이 신령스럽게 알아서 어둡지 않으니, 이 비고 고요한 앎이 곧 너의 진성이다. 미혹하거나 깨닫거나 마음은 본래 스스로 아는 것이니, 연緣을 빌려 생하는 것이 아니며, 경계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앎이라는 한 글자가 뭇 미묘함의 문이다.

b) 깨달아 들어감(2항목)

(a) 물든 연기

도서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그것에 미혹해 왔기 때문에 신심身心이 나라고 그릇 집착하여 탐하고 성내는 등의 번뇌를 일으킨다.

(b) 깨끗한 연기(3항목)

ⓐ 깨달음


009_0213_b_01L
一悟

009_0213_b_02L
一云即今能語言動作貪嗔慈忍造善
009_0213_b_03L惡受苦樂等即汝佛性即此本來是
009_0213_b_04L除此無別佛也

009_0213_b_05L
二修

009_0213_b_06L
了此天眞自然故不可起心修道道即
009_0213_b_07L是心不可將心還修於心惡亦是心
009_0213_b_08L不可將心還斷於心

009_0213_b_09L
三證

009_0213_b_10L
不斷不修任運自在方名解脫

009_0213_b_11L
二收結

009_0213_b_12L
性如虛空不增不減何假添補但隨
009_0213_b_13L時隨處息業養神聖胎增長顯發自
009_0213_b_14L然神妙此即是爲眞悟眞修眞證也

009_0213_b_15L
二荷澤所示二一開示

009_0213_b_16L
二云諸法如夢諸聖同說故妄念本寂
009_0213_b_17L塵境本空空寂之心靈知不昧即此
009_0213_b_18L空寂之知是汝眞性任迷任悟心本
009_0213_b_19L自知不藉緣生不因境起知之一字
009_0213_b_20L衆妙之門

009_0213_b_21L
二悟入二一染緣起

009_0213_b_22L
由無始迷之故妄執身心爲我起貪嗔
009_0213_b_23L等念

009_0213_b_24L
二淨緣起三初悟

009_0213_c_01L
도서 만일 선지식이 제법의 실상을 열어 보이는 것을 만나면, 비고 고요한 앎을 단번에 깨달을 것이다. 안다는 것도 또한 생각도 없고 형상도 없는데, 무엇이 아상我相·인상人相이겠는가.42)

ⓑ 닦음

도서 모든 현상이 공함을 깨달으면 마음이 저절로 무념이 될 것이니, 생각이 일어나면 곧 (일어나는 생각이 공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깨달으면 없어질 것이다. 수행의 미묘한 문이 오직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만행을 갖추어 닦더라도 오직 무념으로 으뜸을 삼는다. 무릇 이 무념의 지견을 터득하면, 사랑하고 미워함이 자연스럽게 담박해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스럽게 밝음을 더하며 죄업이 자연스럽게 단멸되고 공행이 자연스럽게 증진될 것이다.43)

ⓒ 증득

도서 이미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닌 줄 깨달았으니, 자연스럽게 닦지만 닦음이 없는 것이다. 번뇌가 다하면 생사가 곧바로 끊어지고, 생멸이 사라지면 고요히 비춤이 눈앞에 나타나 응용이 무궁할 것이다. 그것을 부처라 부른다.44)

(ㄷ) 비방을 해결하여 총체적으로 결론지음

도서 그러나 이 양가兩家(성종과 상종)는 상相을 회통하여 성性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동일한 종파인 것이다.

ㄷ. 3종을 총체적으로 결론지음

도서 그렇지만 위의 3종宗 가운데 다시 교를 존중하기도 하고 교를 얕보기도 하며 상을 따르기도 하고 상을 훼손하기도 하는 종파가 있다. 이와 같이 외부의 힐난을 차단하는 통로와, 바깥 대중을 접하는 방편과, 제자를 가르치는 의궤 등 여러 가지 점에서 같지 않다. 이것은 모두 자리행과 이타행의 실천에 있어서 각기 그 편의를 따른 것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으뜸으로 삼는 도리가 서로 부합하지 않아 둘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부처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화회해야 하는 것이다.

㉯ 교로써 증명함(2항목)

ㄱ.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다음으로 아래에서는 불교佛敎를 총 세 가지로 판별한다.

ㄴ. 개별적으로 해석함(2항목)

ㄱ) 방편교를 비밀히 설함(3항목)

(ㄱ) 상을 설함(5항목)

㉠ 명칭을 표하여 교를 세움


009_0213_c_01L
若得善友開示頓悟空寂之知知且無
009_0213_c_02L念無形誰爲我相人相

009_0213_c_03L
二修

009_0213_c_04L
覺諸相空心自無念念起即覺覺之
009_0213_c_05L即無修行妙門唯在此也故雖備修萬
009_0213_c_06L唯以無念爲宗但得無念知見
009_0213_c_07L愛惡自然淡薄悲智自然增明罪業自
009_0213_c_08L然斷除功行自然增進

009_0213_c_09L
三證

009_0213_c_10L
旣了諸相非相自然修而無修煩惱盡
009_0213_c_11L生死即絕生滅滅已寂照現前
009_0213_c_12L用無窮名之爲佛

009_0213_c_13L
三通妨摠結

009_0213_c_14L
然此兩家皆會相歸性故同一宗

009_0213_c_15L
三摠結三宗

009_0213_c_16L
然上三宗中復有遵敎慢敎隨相毁相
009_0213_c_17L拒外難之門戶接外衆之善巧敎弟子
009_0213_c_18L之儀軌種種不同皆是二利行門
009_0213_c_19L隨其便亦無所失但所宗之理即不
009_0213_c_20L合有二故須約佛和會也

009_0213_c_21L
二以敎證二一摠標

009_0213_c_22L
次下判佛敎摠爲三種者

009_0213_c_23L
二別釋二初密說權敎三初說相
009_0213_c_24L文五
初標名立敎

009_0214_a_01L
도서 첫째, 밀의로 성性에 의거하여 상相을 설하는 교

원주 부처가 삼계 육도를 보니, 그것은 모두 진성眞性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삼계 육도는 단지 중생이 진성에 미혹해서 일어난 것으로서 별도로 본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진성에 의지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기가 우둔한 자는 마침내 깨닫는 것이 어려우므로 그가 대상을 보는 데 따라 법을 설한다. 점차 제도하기 때문에 상을 설한다고 하고, 아직 밝게 드러나지 않은 것을 설하기 때문에 비밀한 뜻이라 한다.

도서 이 하나의 교敎 가운데 세 종류가 있다.

㉡ 숫자에 따라 개별적으로 해석함(3항목)

a. 첫째 글(3항목)

a) 교의 명칭을 표하여 세움

도서 첫째, 인천인과교

b) 교의를 바로 해석함

도서 선악업보를 설함으로써 인과가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삼도의 고통을 두려워하고 인천의 즐거움을 구하게 하며, 보시·지계·선정 등 일체 선행을 닦아 인도와 천도, 색계와 무색계에까지 태어나게 한다.

c) 교의 명칭을 결론지어 나타내 보임

도서 그 때문에 인천교라고 하는 것이다.

b. 둘째 글(3항목)

a) 교의 명칭을 표하여 세움

도서 둘째, 미혹을 끊고 고를 멸하는 교

b) 교의를 바로 해석함(2항목)

(a) 총체적으로 표함

도서 삼계가 불안함이 모두 화택火宅의 고통과 같다고 설하여 혹업惑業의 집착을 끊고 도를 닦아 멸도를 증득하도록 한다. 이것은 근기를 따르기 때문에 설하는 법수法數가 한결같이 차별이 있는 것이다. 삿됨과 바름을 간별하고 범부와 성인을 분별하며, 좋고 싫음을 나누고 인과를 밝혀 중생의 오온이 도무지 나라고 할 주체가 없다는 것을 설한다.

(b) 개별적으로 밝힘(2항목)

ⓐ 고와 집을 밝힘(2항목)

i) 바로 밝힘(3항목)


009_0214_a_01L
一密意依性說相敎

009_0214_a_02L
佛見三界六道悉是眞性之相但是
009_0214_a_03L衆生迷性而起無別自體故云依性
009_0214_a_04L然根鈍者卒難開悟故且隨他所見
009_0214_a_05L境相說法漸漸度故云說相說未
009_0214_a_06L彰顯故云密意也

009_0214_a_07L
此一敎中自有三類

009_0214_a_08L
二依數別釋三初中文三一標立
009_0214_a_09L敎名

009_0214_a_10L
一人天因果敎

009_0214_a_11L
二正釋敎義

009_0214_a_12L
說善惡業報令知因果不差懼三途苦
009_0214_a_13L求人天樂修施戒禪定等一切善行
009_0214_a_14L生人道天道乃至色界無色界

009_0214_a_15L
三結現敎名

009_0214_a_16L
故云人天敎

009_0214_a_17L
二中文三初標立敎名

009_0214_a_18L
二斷惑滅苦敎

009_0214_a_19L
二正釋敎義二一摠標

009_0214_a_20L
說三界不安皆如火宅之苦令斷業惑
009_0214_a_21L之集修道證滅以隨機故所說法數
009_0214_a_22L一向差別以揀邪正以辨凡聖以分
009_0214_a_23L欣厭以明因果說衆生五蘊都無我主

009_0214_a_24L
二別明二一明苦集二一正明三

009_0214_b_01L
(i) 아집에 미혹함을 밝힘

도서 (중생의 오온은) 단지 몸과 뼈로 이루어진 겉모습이며, 사려하는 마음일 뿐이다.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인연의 힘 때문에 찰나찰나 생멸하며 상속하여 끝이 없다. 흐르는 물 같고 타오르는 불꽃 같다. 신심이 임시로 화합하여 하나인 것 같고, 항상한 것같이 보인다. 범부와 어리석은 자는 그것을 알지 못하여 아我라고 집착한다.

(ii) 혹업의 과보를 밝힘

도서 이 아我에 의지하여 탐【명리를 탐하는 것이 곧 나를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함】ㆍ진【진은 정情의 대상을 어기어 아我를 침해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ㆍ치【대하는 것마다 잘못 알아 도리에 맞지 않게 문제 삼는 것】 등의 삼독을 일으키고, 삼독은 의식을 두드려 몸과 입을 움직임으로써 일체의 업을 일으킨다. 업을 지으면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그림자가 형상을 따르고 메아리가 소리를 따름】 오도五道45)의 고락 등 몸【이것은 별업이 초감한 것】과 삼계의 수승한 곳이나 열악한 곳【이것은 공업共業이 초감한 곳】 등의 과보를 받는다.

(iii) 윤회가 끊어지지 않음

도서 받은 몸을 또 집착하여 ‘나(我)’라고 여기고 또다시 탐욕 등 번뇌를 일으켜 업을 짓고 과보를 받는다. 몸은 나고 늙고 병들어 죽으며, 죽어서는 다시 태어난다. 세계는 생성하고 머무르며 무너져 공空으로 돌아가지만 공은 다시 생성하여 겁과 겁을 지나도록 태어나고, 또 태어나서 윤회가 끊어지지 않는다. 마침도 없고 시작도 없는 것이 마치 우물물을 긷는 도르래와 같다.

ii) 결론으로 답함

도서 모두 이 몸이 본래 ‘나’가 아님을 깨닫지 못한 때문이다.

원주 이 이상은 모두 앞에서 설명한 인천교 중의 세간인과이다. 앞의 가르침은 단지 하계를 싫어하고 상계를 좋아하게 하지만, 삼계가 모두 싫어하고 근심하는 곳임을 설하지 않았다. 또 아를 깨뜨리지 않고 지금 그것을 갖추어 설하니, 이 가르침이 곧 고집 이제二諦이다. 아래의 가르침은 아집을 깨뜨리고, 도제道諦와 멸제滅諦 이제를 닦게 하여 출세의 인과를 밝히기 때문에 사제교四諦敎라고 하는 것이다.

ⓑ 도제와 멸제를 밝힘(2항목)

i) 널리 신심을 깨뜨림(2항목)

(i) 심사관46)(2항목)

ⓘ 거친 것을 깨뜨림


009_0214_b_01L一明迷我執

009_0214_b_02L
但是形骸之色思慮之心從無始來因
009_0214_b_03L緣力故念念生滅相續無窮如水㳙
009_0214_b_04L如燈燄燄身心假合似一似常
009_0214_b_05L愚不覺執之爲我

009_0214_b_06L
二明或業報

009_0214_b_07L
保此我故即起貪貪名則
以榮我
嗔違情境
恐侵害我


009_0214_b_08L錯解非
理計較
等三毒三毒擊於意識發動身口
009_0214_b_09L造一切業業成難逃影隨形
響應聲
受五道
009_0214_b_10L苦樂等身此是別
業所感
三界勝劣等處此是共業
所感處也

009_0214_b_11L
三輪回不絕

009_0214_b_12L
於所受身還執爲我還起貪等造業
009_0214_b_13L受報身則生老病死死而復生界則
009_0214_b_14L成住壞空空而復成刼刼生生輪廻
009_0214_b_15L不絕無終無始如汲井輪

009_0214_b_16L
二結咎 [1]

009_0214_b_17L
都由不了此身本不是我

009_0214_b_18L
此上皆是前人天敎中世間因果也
009_0214_b_19L前但令厭下欣上未說三界皆可厭
009_0214_b_20L又未破我今具說之即苦集二
009_0214_b_21L諦也下破我執令修道滅二諦
009_0214_b_22L出世因果故名四諦敎也

009_0214_b_23L
二明道滅二一廣破身心二一尋
009_0214_b_24L伺觀二
一破麁

009_0214_c_01L
도서 ‘나’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살펴보자. 이 몸은 본래 몸과 마음이 화합하여 형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 추구하고 찾아서 분석해 보면, 몸은 지·수·화·풍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고, 마음은 수受【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받아들임】·상想【형상을 취함】·행行【일체를 조작함】·식識【하나하나 분별함】의 네 가지【이 네 가지와 색色을 합하여 오온이라 부른다.】로 구성되어 있다. 만일 모두 다 나라면, 곧 여덟 개의 나47)가 성립될 것이다.

ⓘⓘ 미세한 것을 깨뜨림

도서 더구나 몸 가운데는 다시 360개의 뼈마디가 있고, 마디마다 각각 구별되어 있으며, 가죽과 털, 근육과 살, 간과 심장, 비장과 신장으로 되어 있어서 각각 서로 같지 않다.【가죽이 털이 아닌 것처럼】 모든 심소 등도 각기 다르기 때문에 보는 것은 듣는 것이 아니고, 기쁨은 성냄이 아니다. 이미 이렇게 많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무엇을 취해 나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만일 이것이 다 나라면, 나는 백이요, 천이다. 한 몸 가운데에 많은 주인이 있게 되니,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이를 떠나 별법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뒤집고 찾아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ii) 여실하게 관함

도서 이 신심身心 등은 단지 많은 연이 모인 화합상 같지만 본래 일체一體가 아니며, 아상我相·인상人相인 것 같지만 본래 아我와 인人이 없다. 누가 탐하고 성내며, 누가 죽이고 도둑질하며, 누가 보시하고 계행을 지키며, 누가 인천에 태어나는가.【고와 집을 아는 것임】 이것을 문득 깨달으면 마침내 삼계유루의 선악에도 마음이 막히지 않을 것이다.【집제를 끊음】

ii) 닦음과 증득을 간략히 밝힘

도서 단지 무아관의 지혜를 닦아【도제】 탐 등의 번뇌를 끊고, 모든 업을 멈추고 아공진여我空眞如를 증득하여 수다원과를 얻고, 번뇌를 멸진하여 아라한과를 얻는다.【멸제】 몸을 남김없이 태우고 지혜를 소멸하여 영원히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다.

c) 경론을 회통하여 결론함

도서 모든 『아함경』 등 경전 618권과 『바사론』 등 698권은 모두 이 소승과 앞에서 언급한 인간과 천상의 인과를 설하는 것이다.

009_0214_c_01L
不是我者此身本因色心和合爲相
009_0214_c_02L今推尋分析色有地水火風之四類
009_0214_c_03L有受領納好
惡之事

造作
一切
一一
了別
之四類此四
與色
009_0214_c_04L都名
五藴
若皆是我即成八我

009_0214_c_05L
二細破

009_0214_c_06L
況色中復有三百六十段骨段段各別
009_0214_c_07L皮毛筋肉肝心脾腎各不相是皮不是
毛等

009_0214_c_08L心數等亦各不同見不是聞喜不是
009_0214_c_09L旣有此衆多之物不知定取何者爲
009_0214_c_10L若皆是我我即百千一身之中
009_0214_c_11L主紛亂離此之外復無別法翻覆推
009_0214_c_12L皆不可得

009_0214_c_13L
二如實觀

009_0214_c_14L
便悟此身心等但是衆緣似和合相
009_0214_c_15L元非一體似我人相元無我人爲誰
009_0214_c_16L貪嗔爲誰煞盜誰修施戒誰生人天
009_0214_c_17L知苦
集也
遂不滯心於三界有漏善惡斷集
諦也

009_0214_c_18L
二略明修證

009_0214_c_19L
但修無我觀智
以斷貪等此息諸業
009_0214_c_20L證我空眞如得須陀洹果乃至滅盡患
009_0214_c_21L得阿羅漢果
灰身滅智永離諸苦

009_0214_c_22L
三會結經論

009_0214_c_23L
諸阿含等經六百一十八卷婆沙等論
009_0214_c_24L六百九十八卷皆唯說此小乘及前人

009_0215_a_01L부수와 질수가 비록 많지만, 이치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c. 셋째 글(3항목)

a) 교의 명칭을 표하여 세움

도서 셋째, 식으로써 대경을 깨뜨리는 교

원주 앞의 교에서 설한 대경의 형상은 생겨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는 것으로서 오직 아我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법들도 또한 없는 것이다. 단지 이것은 정식情識이 허망하게 변하여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식으로써 대경을 깨뜨린다고 하는 것이다.

b) 교의를 바로 해석함(2항목)

(a) 식으로써 대경을 깨뜨림(2항목)

ⓐ 식이 대경을 생겨나게 하는 것임을 밝힘

도서 위에서 설명한 생멸 등 법은 진여와 관련되지 않는다. 다만 각각 이 중생에게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자연 그대로 8종의 식이 있을 뿐이다. 그중에 제8 장식이 근본이니, 근신ㆍ기세계ㆍ종자를 단번에 변현해 내고 칠식七識을 생기하니, 각각 자분自分의 소연所緣을 변현해 낸다.

원주 눈은 색을 연하고, 내지 제7식은 견見을 연하며, 제8식은 근·종자·기세계를 반연한다.

도서 이 팔식 외에 실법은 없는 것이다. 묻는다. 어떻게 변하는가. 대답한다. 아我와 법을 분별하는 훈습력 때문에 모든 식이 생길 때에 아와 법으로 변화한다. 6·7의 2식識은 무명이 덮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실제의 ‘아’이며, 실제의 ‘법’이라고 집착한다. 마치 병자【병이 무거우면 마음이 혼미하여 사람과 물건이 이상하게 보인다.】와 꿈꾸는【몽상으로 보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병과 꿈의 힘으로 마음에 여러 가지 바깥 대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꿈을 꿀 때는 외계의 대상이 실재하는 것으로 집착하게 된다.

ⓑ 경계가 오직 식임을 밝힘

도서 꿈을 깨면 비로소 꿈속에서만 변한 것임을 알게 된다. 나의 이 몸이나 바깥 세계도 또한 이와 같다. 오직 식이 변한 것임을 모르기 때문에 아와 모든 경계가 있다고 집착하지만, 이미 깨달았으니, 아와 법이 본래 없고, 심식心識만이 있을 뿐이다.


009_0215_a_01L天因果部帙雖多理不出此

009_0215_a_02L
三中文三初標立敎名

009_0215_a_03L
三將識破境敎

009_0215_a_04L
說前所說境相若起若滅非唯無我
009_0215_a_05L亦無如上等法但是情識虛妄變起
009_0215_a_06L故云將識破境也

009_0215_a_07L
二正釋敎義二初將識破境二
009_0215_a_08L明識生境

009_0215_a_09L
說上生滅等法不關眞如但各是衆生
009_0215_a_10L無始已來法爾有八種識於中第八藏
009_0215_a_11L是其根本頓變根身器界種子
009_0215_a_12L生七識各能變現自分所緣

009_0215_a_13L
眼緣色乃至七緣見八緣根種器界
009_0215_a_14L

009_0215_a_15L
此八識外都無實法問如何變耶
009_0215_a_16L我法分別熏習力故諸識生時變似我
009_0215_a_17L六七二識無明覆故緣此執爲實
009_0215_a_18L我實法如患病重心昏見
異色人物
夢想所
見可知
患夢
009_0215_a_19L力故心似種種外境相現夢時執爲實
009_0215_a_20L有外物

009_0215_a_21L
二明境唯識

009_0215_a_22L
窹來方知唯夢所變我此身相及外世
009_0215_a_23L亦復如是唯識所變迷故執有我
009_0215_a_24L及諸境旣悟本無我法唯有心識

009_0215_b_01L
(b) 지혜에 의하여 닦고 증득함

도서 결국 이 이공二空48)의 지혜에 의하여 유식관唯識觀49)·육도六度50)·사섭법四攝法51) 등의 행을 닦아 번뇌장과 소지장52)의 이장二障을 점차 항복 받아 끊으면 이공이 드러나는 진여를 증득하게 된다. 십지가 원만하니 팔식을 전환하여 사지四智53)보리를 성취하고, 진여를 장애하는 것이 모두 사라지니 법성신法性身54) 대열반을 얻는다.

c) 경론을 회통하여 결론함

『해심밀경』 등 수십 본의 경전과 유가유식瑜伽唯識 등 수백 권의 논서도 그 설하는 이치가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 총체적으로 회통하여 명칭을 결론함

도서 이 위의 세 종류는 전체가 ‘첫 번째, 밀의로 성性에 의지하여 상相을 설하는 교’이다.

㉣ 선에 배대하여 같음을 나타냄

도서 그러나 오직 ‘세 번째, 식으로써 대경을 깨뜨리는 것’은 선문禪門의 ‘망념을 쉬고 마음을 닦는 종파’와 서로 부합한다. 바깥 경계가 모두 공한 것을 알기 때문에 바깥 경계의 사상事相을 닦지 않고 오직 망념을 쉬고 마음을 닦을 뿐이다. 망념을 쉰다는 것은 아와 법의 허망함을 쉬는 것이고,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오직 식인 마음을 닦는 것이기 때문에 유식의 가르침과 같은 것이다.

㉤ 훼손하지 말 것을 깨우쳐 줌(4항목)

a. 서로 비난함을 바로 배척함

도서 (그렇다면) 이미 부처와 같은데, 무엇 때문에 저 점문漸門에서 망념을 쉬고 청정을 보며, 때때로 번뇌를 씻으며, 마음을 집중하여 머무르고, 오로지 한 경계에 집중하며, 가부좌하여 몸을 조절하고 숨을 고르는 것 등을 비난하는가. 이들 여러 가지 방편은 모두 불타가 권하고 찬탄한 것이 아닌가.

b. 잠복되어 있는 난문을 가만히 해결함

도서 정명淨名(유마 거사)은 반드시 앉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것이지, 반드시 앉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앉거나 앉지 않거나 하는 것은 근기에 따라 맡길 것이며, 마음을 집중하거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각기 익혀 온 성품에 따라 헤아려야 할 것이다. 고종대제와

009_0215_b_01L
二依智修證

009_0215_b_02L
遂依此二空之智修唯識觀及六度四
009_0215_b_03L攝等行漸漸伏斷煩惱所知二障證二
009_0215_b_04L空所顯眞如十地圓滿轉八識成四智
009_0215_b_05L菩提也眞如障盡成法性身大湼槃也

009_0215_b_06L
三會結經論

009_0215_b_07L
解深密等數十本經瑜伽唯識數百卷
009_0215_b_08L所說之理不出此也

009_0215_b_09L
三摠會結名

009_0215_b_10L
此上三類都爲第一密意依1) [1] 說相敎

009_0215_b_11L
四配禪現同

009_0215_b_12L
然唯第三將識破境與禪門息妄修心
009_0215_b_13L而相符會以知外境皆空故不修
009_0215_b_14L外境事相唯息妄修心也息妄者
009_0215_b_15L我法之妄修心者修唯識之心故同
009_0215_b_16L唯識之敎

009_0215_b_17L
五諭勿毁文四初正斥相非

009_0215_b_18L
旣與佛同如何毁他漸門息妄看淨
009_0215_b_19L時時拂拭凝心住心全注一境及跏
009_0215_b_20L趺調身調息等也此等種種方便悉是
009_0215_b_21L佛所勸讃

009_0215_b_22L
二潜通伏難

009_0215_b_23L
淨名云不必坐不云必不坐坐與不坐
009_0215_b_24L任逐機宜凝心運心各量習性當高

009_0215_c_01L현종 시대에는 원돈圓頓 본종이 행해지지 않았다. 오직 북지北地에 신수神秀 선사가 점교를 크게 선양하여 2경京55)의 법주가 되고, 세 황제56)의 문사門師가 되었다. 그는 (점교를) 전적으로 달마의 종이라고 칭하였으나, 부처에 계합하는 종지를 드러내지는 못하였다. 이에 조계 하택이 원종圓宗이 끊어질까 근심하여 마침내 마음을 멈추거나 조복 받는 일 등을 꾸짖어 책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은 다만 병을 제거하는 것이지, 법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c. 점교에 연원이 있음을 보여 줌

도서 하물며 이 방편은 본래 5조 대사(弘忍)가 가르쳐 전수한 것으로, 각각 다 인가하여 (남능南能·북수北秀를) 일방의 스승으로 삼은 것이다. 달마는 벽관으로써 사람을 안심케 하고, “밖으로 모든 연을 멈추고 안으로는 마음의 헐떡거림을 없애며,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말했으니, 어찌 이것이 곧 좌선법이 아니겠는가. 또 여산 혜원이 불타와 야사의 두 범승과 번역한 『달마선경』(『달마다라선경』) 두 권에서 좌선의 문호와 점차적 방편을 갖추어 밝혔는데, 그것은 천태와 선수侁秀57) 문하의 의취와 다름이 없다. 여기에 4조(道信)도 수십 년간 옆구리를 자리에 붙이지 않았던 것이다.58)

d. 결론으로 시비를 물리침

도서 요의了義와 불요의不了義 종宗이란 견해의 심천에 따른 것이지, 조복하고 조복하지 않는 행으로써 법과 의미가 치우치거나 원만함을 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다만 스스로 병에 따라 대치하면 될 뿐, 이것을 칭찬하고 저것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도서 앞에서 서술한 글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찌하여 좌선을 권하는가라고 힐난하는 질문에 대해 내가 지금 이 말로써 대답한 것이다.

(ㄴ) 상을 깨뜨리는 교(5항목)

㉠ 교의 명칭을 표하여 세움

도서 둘째, 밀의로 상을 깨뜨리고 성을 드러내는 교

원주 진실 요의에 의하면, 헛된 집착은 본래 공하여 다시 깨뜨릴 것이 없으며, 무루의 모든 법은 본래 진성이지만 연을 따르는 미묘한 작용은 영원토록 단절되지 않고,

009_0215_c_01L宗大帝乃至玄宗朝時圓頓本宗未行
009_0215_c_02L北地唯有神秀禪師大揚漸敎爲二京
009_0215_c_03L法主三帝門師全稱達摩之宗又不顯
009_0215_c_04L即佛之旨曹溪荷澤恐圓宗滅絕遂呵
009_0215_c_05L毁住心調伏等事但是除病非除法也

009_0215_c_06L
三示漸有源

009_0215_c_07L
況此之方便本是五祖大師敎授各皆
009_0215_c_08L印可爲一方師達摩以壁觀敎人安心
009_0215_c_09L外止諸緣內心無喘心如墻壁
009_0215_c_10L以入道豈不正是坐禪之法又廬山遠
009_0215_c_11L與佛陀耶舍二梵僧所譯達摩禪經
009_0215_c_12L兩卷具明坐禪門戶漸次方便與天
009_0215_c_13L台及侁秀門下意趣無殊故四祖數十
009_0215_c_14L年中脇不至席

009_0215_c_15L
四結却是非

009_0215_c_16L
即知了與不了之宗各由見解深淺
009_0215_c_17L以調與不調之行而定法義偏圓但自
009_0215_c_18L隨病對治不須讃此毁彼

009_0215_c_19L
前叙有人問難余云何以勸坐禪者
009_0215_c_20L余今以此答也

009_0215_c_21L
二破相敎五初標立敎名

009_0215_c_22L
二密意破相顯性敎

009_0215_c_23L
據眞實了義則妄執本空更無可破
009_0215_c_24L無漏諸法本是眞性隨緣妙用永不

009_0215_c_25L「徃」當作「性」{編}

009_0216_a_01L또 깨뜨릴 수도 없는 것이다. 단지 한 부류의 중생이 망상에 집착하여 그것으로 진성을 장애하기 때문에 현묘한 깨달음을 얻기가 어려웠다. 이에 불타가 선과 악, 더러움과 깨끗함, 성과 상을 가리지 않고 일체를 꾸짖고 깨뜨린 것이다. 진성과 묘용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한편으로 없다고 하였기 때문에 ‘밀의’라고 하였다. 또 뜻은 본성을 드러내는 데 있지만, 말은 형상을 깨뜨려서 뜻이 말 가운데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하는 것이다.

㉡ 교의를 바로 밝힘(2항목)

a. 공의 이치를 널리 설함(2항목)

a) 앞의 경공境空에 거듭하여 심공心空을 표하여 서술함

도서 이 교는 앞의 가르침 중의 소변所變59) 경계를 설한 것으로 이미 모두가 허망하니 능변能變60)의 식이 어찌 홀로 진실하겠는가. 마음과 경계가 서로 의존하여 공하지만, 마치 있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b) 심과 대경이 모두 공하다는 이유를 자세히 해석함(2항목)

(a) 바로 밝힘

도서 또 마음은 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경에 의지하여 비로소 일어나며, 대경은 스스로 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인해 나타난다. 마음이 여여하면 대경이 사라지고, 대경이 멸하면 마음이 공하다. 대경이 없는 마음이 있지 않고, 마음이 없는 대경도 없다. 꿈에 물체를 볼 때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다른 것 같지만, 실제는 똑같이 허망하여 온통 있는 바가 없는 것이다. 모든 식과 모든 대경도 이와 같다. 모두 여러 인연에 가탁한 것으로서 자성이 없기 때문에 일찍이 한 법도 인연을 따라 생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겠다.

(b) 전전하여 해석함

도서 그 때문에 일체법이 공 아닌 것이 없다. 무릇 존재하는 상이 모두 허망한 것이니, 공 가운데는 안·이·비·설·신·의 육근이 없고, 십팔계·십이인연·사제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업도 없고 과보도 없으며, 닦음도 없고 증득함도 없으니, 생사열반이 평등하여 허깨비와 같은 것이다.


009_0216_a_01L
斷絕又不應破但爲一類衆生
009_0216_a_02L虛妄想障眞實性難得玄悟故
009_0216_a_03L且不揀善惡垢淨性相一切呵破
009_0216_a_04L眞性及妙用不無而且云無故云密
009_0216_a_05L又意在顯性語乃破相意不形
009_0216_a_06L於言中故云密也

009_0216_a_07L
二正明敎義二初廣說空理二
009_0216_a_08L牒前境空標叙心空

009_0216_a_09L
此敎說前敎中所變之境旣皆虛妄
009_0216_a_10L變之識豈獨眞實心境互依空而似
009_0216_a_11L有故也

009_0216_a_12L
二委釋心境皆空所以二一正明

009_0216_a_13L
且心不孤起託境方生境不自生
009_0216_a_14L心故現心如即境謝境滅即心空
009_0216_a_15L有無境之心曾無無心之境如夢見物
009_0216_a_16L似能見所見之殊其實同一虛妄都無
009_0216_a_17L所有諸識諸境亦復如是以皆假託
009_0216_a_18L衆緣無自性故未曾有一法不從因
009_0216_a_19L緣生

009_0216_a_20L
二轉釋

009_0216_a_21L
是故一切法無不是空者凡所有相
009_0216_a_22L皆是虛妄是故空中無眼耳鼻舌身意
009_0216_a_23L無十八界十二因緣四諦無智亦無得
009_0216_a_24L無業無報無修無證生死湼槃平等

009_0216_b_01L
b. 행하는 문을 간략히 가리킴

도서 단지 일체에 머물지 않고 집착이 없어야 도행道行이라 하는 것이다.

㉢ 경전으로 회통하여 논으로 매듭지음

도서 모든 반야부 천여 권의 경과 『중론』·『백론』·『십이문론』 등 삼론과 『광백론』 등은 다 이것을 설하고 있다.

원주 『지도론』 100권도 또한 이 도리를 설하였다. 단지 논주가 통달하여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소승 법상을 다 받아들였으니, 뒤의 진성종眞性宗과 은근히 같게 된 것이다.

㉣ 선종을 들어 배대함

도서 이 교와 선문의 민절무기종泯絕無寄宗은 전적으로 같다.

㉤ 상호 비난을 바로 배척함(2항목)

a. 앞의 것을 가지고 총체적으로 경책함

도서 이미 세존이 설하시고 보살이 홍포한 것이 이와 같은데, 왜 점문의 선주禪主와 강습講習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이 교설을 듣고 곧 인과를 없애는 말이라고 비방하는가. 불타도 스스로 업도 없고 과보도 없다고 말씀하셨으니, 어찌 이것을 삿된 견해라 하겠는가.

b. 따르고 빼앗아 결론으로 깨뜨림

도서 만일 불타가 설하신 이 말씀이 그 자체에 깊은 뜻이 있다면, 선문의 이 말씀에도 어찌 깊은 뜻이 없겠는가. 만일 “내가 일찍이 추궁하여 물었는데, 깊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한다면, 단지 이것은 그대가 (법을) 알지 못하는 무리를 만난 것이니, 사람을 원망할 것이지 어찌하여 법을 배척하는가.

(ㄷ) 난문을 통함(3항목61))

과평 질문하기를,62) “위로는 서역의 선현으로부터 각각 한 가르침에 의거하여 공空을 설하여 유有를 깨뜨리며, 유를 설하여 공을 깨뜨렸는데, 어찌하여 이 땅의 후학이 서로 깨뜨린 것에 대해서만 치우치게 책망하는가. 실로 책망하는 것은 옛 성인이 잘못했기 때문인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아래에 세 가지 글이 있다.


009_0216_b_01L如幻

009_0216_b_02L
二畧指行門

009_0216_b_03L
但以不住一切無執無着而爲道行

009_0216_b_04L
三會經結論

009_0216_b_05L
諸部般若千餘卷經及中百門等三論
009_0216_b_06L廣百等皆說此也

009_0216_b_07L
智度論百卷亦說此理但論主通達
009_0216_b_08L不執故該收大小乘法相潜同後眞
009_0216_b_09L性宗也

009_0216_b_10L
四擧配禪宗

009_0216_b_11L
此敎與禪門泯絕無寄宗全同

009_0216_b_12L
五正斥相非二一攝前摠責

009_0216_b_13L
旣同世尊所說菩薩所弘云何漸門禪
009_0216_b_14L及講習之徒每聞此說即謗云
009_0216_b_15L無因果佛自云無業無報豈邪見乎

009_0216_b_16L
二縱奪結破

009_0216_b_17L
若云佛說此言自有深意者豈禪門此
009_0216_b_18L無深意耶若云我曾推徵覺無深
009_0216_b_19L意者自是汝遇不解之流但可嫌人
009_0216_b_20L豈可斥法

009_0216_b_21L
三通難難云從上西域先賢各據
009_0216_b_22L一敎說空破有說有破空如何
009_0216_b_23L偏責此方後學相破耶實如所責
009_0216_b_24L古聖非耶故下文三

009_0216_c_01L
㉠ 서역의 선현들이 서로 논파했으나 잘못됨이 없음을 자세히 밝힘(3항목)

a. 미한 집착을 표하여 듦

도서 위의 두 교63)는 부처의 본의에 의거한 것으로, 비록 서로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 후학이 전하면서 다수가 문자에 집착하고 뜻에 미혹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각기 하나의 견해에 집착하여 서로 상대방의 잘못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양편을 다 대충 믿고 혼돈하니,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b. 원융 회통함을 자세히 밝힘(3항목)

a) 사람에 의거하여 장애를 해결함(2항목)

(a) 바로 통하게 함

도서 그 때문에 용수龍樹ㆍ제바提婆 등의 보살은 파상교破相敎(상을 깨뜨리는 교)에 의지하여 공의 이치를 자세히 설함으로써 유有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고 활연히 진공을 알게 한 것이다. 진공이란 유에 어긋나지 않는 공을 말한다. 무착無着ㆍ천친天親 등의 보살은 유식교唯識敎(오직 식뿐이라는 교)에 의지하여 명名과 상相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성性과 상相이 다르고, 염染과 정淨이 구별됨을 분석하여 공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고 분명하게 묘유妙有를 알도록 하였다. 묘유란 공空에 어긋나지 않는 유이다. 비록 각각 하나의 의미만을 진술하여도 모든 체성을 원만하게 갖추기 때문에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b) 전전하여 해결함

도서 만약 그렇다면 왜 이후에 청변과 호법 등 여러 논사가 서로 논파했는가?
이것은 서로 성립시킨 것이지 서로 깨뜨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말기의 후학이 근기가 점차 둔해져서 서로 공空과 유有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청변 등은 고정된 유有라는 상을 깨뜨림으로써 철저히 궁극적인 진공에 이르도록 하여 마침내 연기묘유를 성취하였다. 호법 등이 단멸이라는 치우친 공空을 깨뜨린 것도 그 의도는 마찬가지로 묘유에 있었다. 묘유가 있기 때문에 저 무성無性인 진공을 성취하는 것이다. 글은 서로 논파하고 있지만 뜻은 서로 성립시키는 데 있다.

원주 앞에서 남북의 선문이 서로 다투는 것에 대한 의심을 서술하였는데, 지금 여기에 그 결론을 내리고 있다.

b) 법에 의거하여 난문을 해결함

과평 논평하여 말한다. 극도로 어긋나는 문에 의거하면, 진공은 전적으로 묘유 쪽을 배제한다.

009_0216_c_01L
一廣明西域先賢相破無失又三
009_0216_c_02L一標擧迷執

009_0216_c_03L
此上二敎據佛本意雖不相違然後
009_0216_c_04L學所傳多執文迷旨或各執一見
009_0216_c_05L此相非或二皆泛信混鈍不曉

009_0216_c_06L
二廣明融會三一約人釋妨二
009_0216_c_07L正通

009_0216_c_08L
故龍樹提婆等菩薩依破相敎廣說空
009_0216_c_09L破其執有令洞然解於眞空眞空
009_0216_c_10L者是不違有之空也無着天親等菩薩
009_0216_c_11L依唯識敎廣說名相分析性相不同
009_0216_c_12L染淨各別破其執空令歷然解於妙有
009_0216_c_13L妙有者不違空之有也雖各述一義
009_0216_c_14L而擧體圓具故無違也

009_0216_c_15L
二轉通

009_0216_c_16L
若爾何故已後有淸辯護法等論
009_0216_c_17L互相破耶此乃相成不是相破
009_0216_c_18L何者以末代學人根器漸鈍互執空
009_0216_c_19L故淸辯等破㝎有之相令盡徹
009_0216_c_20L畢竟眞空方乃成彼緣起妙有護法等
009_0216_c_21L破斷滅偏空意在妙有妙有存故
009_0216_c_22L乃成彼無性眞空文即相破意即相成

009_0216_c_23L
前叙疑南北禪門相竸今於比 [1] 決也

009_0216_c_24L
二約法通難
009_0216_c_25L評曰極違門眞空全奪妙有之邊

009_0217_a_01L물을 말하면서 파도를 배제하는 것과 같다. 묘유가 전적으로 진공을 배제하는 쪽은 파도를 말하면서 물을 배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파도 밖에 물이 따로 없으며, 물 밖에 파도가 따로 없다. 극도로 순응하는 문에서는 진공과 묘유가 두 모양이 아니니, 파도가 곧 물이고, 물이 곧 파도이다.64)

도서 그것은 진공묘유에 두 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극도로 상호 어긋나는 의미이다. 서로를 해치어 완전히 배제함으로써 영구히 다하는 것을 가리킨다. 둘째, 지극히 서로 순응하는 의미이다. 가만히 하나의 모양으로 계합하여 전체를 완전히 포섭하는 것을 가리킨다. 만일 서로를 제거하여 완전히 다하지 않는다면 전체를 완전히 포섭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극도로 어긋나는 것이 바로 지극히 순응하는 것이다.

c) 앞의 의미를 회통하여 해석함

용수ㆍ무착 등은 지극히 순응하는 문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서로 성립시켰고, 청변과 호법 등은 극도로 어긋나는 문에 의거했기 때문에 서로를 깨뜨린 것이다.

c. 옛 성인의 뜻으로 결론지음

도서 어긋나고 순응함이 자재하고, 성립하고 깨뜨림에 걸림이 없으니, 모든 법에 화회하지 않음이 없을 뿐이다.

㉡ 이 땅의 후학들이 서로 비방하면서 증득함이 없는 것을 간략하게 경책함

도서 슬프다. 이 나라 양종(공종과 상종)의 후학이 경론을 배우면서 서로 비난하고 서로 배척하여 원수와 다름없으니, 어느 때 무생법인無生法印65)을 증득할 수 있겠는가. 지금 돈점의 선禪 하는 자들도 이와 다르지 않으니, 노력하고 살펴서 한곳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앞에서 질문한 것에 따라 화회의 의의를 결론으로 답함

도서 서역의 선현들은 서로 깨뜨렸지만 이미 성립시킨 것이라면, 어찌하여 이 나라에서는 서로 비난하고 서로 질시하는가?
사람이 물을 마셔야 차고 따뜻한 것을 아는 것처럼 각각 마음을 관하고 각자 생각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약을 써서 병을 막는 것은 건강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법을 세워 간교함을 막는 것은 어진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009_0217_a_01L以水奪波妙有全奪眞空之邊
009_0217_a_02L波奪水波外無水水外無波
009_0217_a_03L順門眞空妙有不二之相波即是
009_0217_a_04L水即是波也

009_0217_a_05L
由妙有眞空有二義故一極相違義
009_0217_a_06L謂互相害全奪永盡二極相順義
009_0217_a_07L冥合一相擧體全攝若不相奪全盡
009_0217_a_08L無以擧體全收故極違方極順也

009_0217_a_09L
三會釋前義

009_0217_a_10L
龍樹無着等就極順門故相成淸辯護
009_0217_a_11L法等據極違門故相破

009_0217_a_12L
三結古聖意

009_0217_a_13L
違順自在成破無碍即於諸法無不
009_0217_a_14L和會耳

009_0217_a_15L
二略責此方後學相非無證

009_0217_a_16L
哀㦲此方兩宗後學經論之者相非相
009_0217_a_17L不異仇讎何時得證無生法忍
009_0217_a_18L頓漸禪者亦復如是努力通鑑勿偏
009_0217_a_19L局也

009_0217_a_20L
三躡前立問決答和會意義

009_0217_a_21L
西域先賢相破旣是相成豈可此方
009_0217_a_22L相非便成相嫉如人飮水冷暖自
009_0217_a_23L各各觀心各各察念留藥防病
009_0217_a_24L爲健人立法防奸不爲賢士

009_0217_b_01L
ㄴ) 실교를 드러내어 설함(3항목)

(ㄱ) 성인의 가르침을 자세히 해석함(5항목)

㉠ 교의 명칭을 표하여 세움

도서 셋째, 진심이 곧 성性임을 드러내 보여 주는 교

원주 자기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키는 것이 곧 진성이다. 일과 형상에 의해 보여 주는 것도 아니고 형상을 깨뜨림에 의해 보여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곧 진성이라 하며, 방편의 은밀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드러내 보여 준다고 하는 것이다.

㉡ 교의를 바로 밝힘(2항목)

a. 두 가지 깨끗함을 자세히 밝힘(2항목)

a) 바로 밝힘(2항목)

(a) 자성의 깨끗함

도서 이 교는 일체중생에게 모두 비고 고요한 진심이 있으니, 시작이 없는 본래부터 본성은 스스로 청정하다고 설한다.

원주 번뇌의 의혹을 끊음으로써 청정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성이 청정하다고 하는 것이다. 『보성론』에서 “청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청정이고, 둘째는 번뇌를 여읜 청정이다.”라고 하였다. 『승만경』에서는 “자성청정심은 알기 어렵지만 이 마음이 번뇌에 물드는 것 또한 알기 어렵다.”라고 설한다. 해석하면, 이 마음은 앞의 공과 유, 두 종파의 이치를 초월했기 때문에 알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b) 번뇌를 떠난 청정함(2항목)

ⓐ 생사에 빠짐

도서 밝고 밝아 어둡지 않으며, 뚜렷하고 분명하여 항상 알고 있으니,【아래의 불설佛說을 인용하였다.】 미래가 다하도록 항상 머물러 없어지지 않으므로 불성이라 하고, 여래장이라고도 하며, 또한 심지心地라고도 한다.【달마가 전한 이 마음이다.】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망상이 가리어 스스로 증득하지 못하고 생사에 탐착한다.

ⓑ 부처가 출현하여 깨달음을 엶

도서 대각께서 그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세상에 출현하시어 생사 등의 법이 일체 공하다는 것을 설하시었으며, 이 마음이 모든 부처와 전적으로 같음을 열어 보이셨다.


009_0217_b_01L
二現說實敎三一委釋性敎五
009_0217_b_02L標立敎名

009_0217_b_03L
三顯示眞心即性敎

009_0217_b_04L
直指自心即是眞性不約事相而示
009_0217_b_05L亦不約破相而示故云即性不是方
009_0217_b_06L便隱密之意故云顯示也

009_0217_b_07L
二正明敎義二一廣明二淨二
009_0217_b_08L正明二
初自性淨

009_0217_b_09L
此敎說一切衆生皆有空寂眞心無始
009_0217_b_10L本來性自淸淨

009_0217_b_11L
不因斷惑成淨故云性淨寶性論云
009_0217_b_12L淸淨有二一自性淸淨二離垢淸淨
009_0217_b_13L勝鬘云自性淸淨心難可了知
009_0217_b_14L心爲煩惱所染亦難可了知釋云此
009_0217_b_15L超出前空有二宗之理故難可了
009_0217_b_16L知也

009_0217_b_17L
二離垢淨二一迷倫生死

009_0217_b_18L
明明不昧了了常知下引
佛說
盡未來際
009_0217_b_19L住不滅名爲佛性亦名如來藏亦名心
009_0217_b_20L達摩所傳
是此心也
從無始際妄想翳之不自
009_0217_b_21L證得耽着生死

009_0217_b_22L
二佛現開悟

009_0217_b_23L
大覺愍之出現於世爲說生死等法
009_0217_b_24L一切皆空開示此心全同諸佛

009_0217_c_01L
b) 인증(3항목)

(a) 법

도서 『화엄경』 「출현품」에서 설하였다.
“불자여, 한 중생도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지 않음이 없지만, 단지 망상집착으로 증득하지 못할 뿐이다. 만일 망상을 떠나면, 일체지66)ㆍ자연지67)ㆍ무애지68)가 곧 현전할 것이다.

(b) 비유

도서 비유하면 하나의 커다란 경권【불의 지혜를 비유함】이 있는데, 그 양이 삼천대천세계【지혜의 본체가 끝이 없어 법계를 널리 감쌈】와 같아서 삼천대천세계 중의 일을 일체 다 기록한 것과 같다.

원주 본체상에 본래 있는 항하사 같은 공덕과 항하사 같은 묘용을 비유한 것이다.

도서 이 큰 경권은 그 수량이 대천세계와 같지만, 전적으로 티끌 하나 가운데 들어 있다.

도서 부처의 지혜가 전부 중생의 몸 가운데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도서 하나의 티끌【하나의 중생을 들어 예로 삼음】과 같이 일체의 티끌이 다 또한 이와 같다. 그때 어떤 사람이 지혜가 총명하고 통달【세존을 비유함】하여 청정한 천안을 얻고 보니, 이 경권이 티끌 안에 있으나

원주 천안天眼은 장애에 막혀도 물체를 본다는 것은, 불안佛眼이 번뇌에 막혀도 부처의 지혜를 보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도서 모든 중생에게 조금도 이로움이 없음 보고

원주 미할 때는 도무지 그 묘용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이익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비유하는 것이다. 운운…….

도서 곧 방편을 일으켜 저 미진【법을 설하여 장애를 깨뜨리는 것을 비유함】 번뇌를 깨뜨리고 대경권을 꺼내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널리 이로움을 얻도록 하였다.【운운】

(c) 합


009_0217_c_01L
二引證三一法

009_0217_c_02L
如華嚴經出現品云佛子無一衆生而
009_0217_c_03L不具有如來智慧但以妄想執着而不
009_0217_c_04L證得若離妄想一切智自然智無碍
009_0217_c_05L即得現前

009_0217_c_06L
二喩

009_0217_c_07L
譬如有大經卷喩智
佛慧
量等三千大千世界
009_0217_c_08L智體無邊
廓周法界
書寫三千大千世界中事一切
009_0217_c_09L皆盡

009_0217_c_10L
喩體上本有恒沙功德恒沙妙用也

009_0217_c_11L
此大經卷雖復量等大千世界而全住
009_0217_c_12L在一微塵中

009_0217_c_13L
喩佛智全在衆生身中圓滿具足也

009_0217_c_14L
如一微塵擧一衆
生爲例
一切微塵皆亦如是
009_0217_c_15L時有一人智慧明達喩世
尊也
具足成就淸
009_0217_c_16L淨天眼見此經卷在微塵內

009_0217_c_17L
天眼方隔障見色喩佛眼方隔煩惱
009_0217_c_18L見佛智也

009_0217_c_19L
於諸衆生無少利益

009_0217_c_20L
喩迷時都不得其用與無不別云云
009_0217_c_21L乃至

009_0217_c_22L
即起方便破彼微塵喩說法
破障也
出此大經
009_0217_c_23L諸衆生普得饒益

009_0217_c_24L
三合

009_0218_a_01L
도서 여래의 지혜도 이와 같이 한량없고 걸림이 없어 널리 일체중생【삼천계 중의 일을 합하여 기록함】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서, 중생의 몸 가운데【티끌 가운데 합해 있음】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범부가 망상집착으로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이로움을 얻지 못한다. 이때 여래가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의 눈으로 널리 법계 일체중생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이 모든 중생이 어찌하여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우치하고 미혹하여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가. 내가 마땅히 성도聖道로써 가르쳐 그들이 망상집착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게 하리라.’
스스로 이 몸 가운데 여래의 광대한 지혜가 있어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보도록 하여, 저 중생이 성도聖道【육바라밀, 삼십칠도품】를 수습하여 망상을 떠나도록 한 것이다. 망상을 떠나고 나서 여래의 무량지혜를 증득하고 일체중생을 이롭고 안락하도록 하였다.”69)

b. 앎과 지혜가 다름을 간별함(2항목)

a) 물음

도서 위에서 이미 본성은 스스로 분명하고 뚜렷하여 항상 안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모든 부처가 반드시 열어 보여야 하는가?

b) 대답(2항목)

(a) 바로 답함

도서 여기에서 말하는 앎(知)이란 증득하여 아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으로 그것은 진성으로서 허공이나 목석과는 같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경계를 연하여 분별하는 식識과도 같지 않고, 본체를 관조하여 깨닫는 지혜와도 같지 않다. 바로 진여의 본성으로서 저절로 항상 아는 것이다.

(b) 인증

도서 그러므로 마명보살은 “진여란 자체가 진실하게 아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화엄경』 「회향품」에서도 “진여는 비치어 밝은 것이 본성이다.”라고 하였다. 또 「문명품」에 의하면, 지혜와 앎은 다르다. 지혜는 성인에 국한되어 범부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009_0218_a_01L
如來智慧亦復如是無量無碍普能
009_0218_a_02L利益一切衆生合書寫三
千界中事
具足在於衆生
009_0218_a_03L身中合微
塵中
但諸凡愚妄想執着不知不
009_0218_a_04L不得利益爾時如來以無障碍淸
009_0218_a_05L淨智眼普觀法界一切衆生而作是言
009_0218_a_06L奇㦲奇㦲此諸衆生云何具有如來智
009_0218_a_07L愚癡迷惑不知不見我當敎以聖
009_0218_a_08L令其永離妄想執着自於身中
009_0218_a_09L見如來廣大智慧與佛無異即敎彼衆
009_0218_a_10L修習聖道六波羅密三
十七道品
令離妄想離妄
009_0218_a_11L想已證如來無量智慧利益安樂一切
009_0218_a_12L衆生

009_0218_a_13L
二揀知智別二一問

009_0218_a_14L
上旣云性自了了常知何須諸佛開
009_0218_a_15L

009_0218_a_16L
二答二一正答

009_0218_a_17L
此言知者不是證知意說眞性
009_0218_a_18L同虛空木石故云知也非如緣境分別
009_0218_a_19L之識非如照體了達之智直是眞如之
009_0218_a_20L自然常知

009_0218_a_21L
二引證

009_0218_a_22L
故馬鳴菩薩云眞如者自體眞實識知
009_0218_a_23L華嚴回向品亦云眞如照明爲性又據
009_0218_a_24L問明品說智與知異智局於聖不通

009_0218_b_01L앎은 범부와 성인 모두에게 있는 것으로서 이지理智에 통한다. 그러므로 각수 등 아홉 보살이 문수사리에게 묻기를, “어떤 것을 불경계佛境界의 지혜【증오證悟의 지혜】라 하고, 어떤 것을 불경계의 앎【본래 가지고 있는 진심】이라고 하는가?”라고 하니, 문수가 ‘지혜(智)’에 대해 답하기를, “제불의 지혜가 자재하여 삼세에 걸림이 없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원주 과거·미래·현재에 통달하지 않은 일이 없기 때문에 자재하여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도서 ‘앎(知)’에 대해 답하기를, “앎이란 식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원주 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식은 분별에 속하기 때문이니, 분별은 진실한 앎이 아니다. 진실한 앎이란 오직 무념이라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이다.

도서 또한 마음의 경계도 아니어서,

원주 지혜로써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지혜로써 그것을 증득한다면, 그것은 증득되는 경계에 속한다. 진실한 앎이란 경계가 아니기 때문에 지혜로써 증득할 수 없는 것이다. 관조하는 마음을 잠깐만 일으켜도 곧 진실한 앎이 아니다. 그러므로 경에서 “스스로의 마음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취하는 것은 환幻이 아니나 환법을 이룬다.”라고 설하였고, 논에서는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한다.”라고 하였으며, 하택 대사는 “마음을 헤아리면 바로 어긋난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북종이 마음을 본다고 하는 것은 진실한 뜻을 잃은 것이라고 하겠다. 마음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경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마음의 경계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도서 그 본성은 본래 청정하니,

원주 오염된 번뇌를 떠나고 미혹함을 멸하는 데 의지하지 않고 깨끗하며, 장애를 끊고 혼탁함을 멈추는 데 의지하지 않고 맑기 때문에 본래 청정이라고 한다. 『보성론』에서도 오염된 번뇌를 떠나서 깨끗한 것이 아니라 그 본성이 깨끗하다고 하여 그것을 구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본성은 본래 청정하다고 하는 것이다.

도서 그것을 모든 중생에게 열어 보여 주었다.”

원주 이미 본래 깨끗하여 장애를 끊는 데 의지하지 않는 것이라 하였으니, 모든 중생이 본래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009_0218_b_01L於凡知即凡聖皆有通於理智故覺
009_0218_b_02L首等九菩薩問文殊師利言云何佛境
009_0218_b_03L界智證悟
之智
云何佛境界知本有
眞心
文殊答
009_0218_b_04L智云諸佛智自在三世無所碍

009_0218_b_05L
過去未來現在無事不了達故自在
009_0218_b_06L無碍

009_0218_b_07L
答知云非識所能識

009_0218_b_08L
不可以識識也以識屬分別分別即
009_0218_b_09L非眞知眞知唯無念方見

009_0218_b_10L
亦非心境界

009_0218_b_11L
不可以智知也謂若以證之即屬所
009_0218_b_12L證之境眞知非境界故不可以智證
009_0218_b_13L瞥起照心即非眞知也故經云
009_0218_b_14L自心取自心非幻成幻法論云心不
009_0218_b_15L見心荷澤大師云擬心即差故北
009_0218_b_16L宗看心是失眞旨心若可看即是
009_0218_b_17L境界故此云非心境界也

009_0218_b_18L
其性本淸淨

009_0218_b_19L
不待離垢滅惑方淨不待斷障凝濁
009_0218_b_20L方淸故云本淸淨也就寶性論中
009_0218_b_21L即揀非離垢之淨是彼性淨故云其
009_0218_b_22L性本淸淨

009_0218_b_23L
開示諸群生

009_0218_b_24L
旣云本淨不待斷障即知群生本來

009_0218_c_01L단지 미혹함이 가려서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그러므로 부처가 열어 보여 모두 깨달아 들어가도록 한다는 것은, 곧 『법화경』에서 설한, 부처의 지견을 열어 보여 깨달아 들어가게 한다는 말로, 위에서 인용한 것과 같다. 부처가 본래 출세하심은 단지 이 일을 위함이다. 저기에서 청정을 얻도록 한다고 말한 것은, 곧 『보성론』 중의 오염된 번뇌를 떠난 청정을 말한다. 이 마음은 비록 자성이 청정하지만 마침내 깨닫고 닦아야 성상性相이 원만하고 청정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경론은 모두 두 종류의 청정과 두 종류의 해탈을 설하고 있다.
요즈음 배움이 얕은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단지 염오를 떠난 청정과 장애를 떠난 해탈만을 알기 때문에 선문禪門에서 곧 마음이고 곧 부처라 하는 것을 비방한다. 어떤 사람은 단지 자성이 청정이고 자성이 해탈이라는 것만을 알기 때문에 교상을 가벼이 여겨 계율을 지키고 좌선을 하며 번뇌를 조복 받는 등의 행을 배척한다. 따라서 반드시 자성이 청정한 것을 돈오한 후, 스스로 해탈을 믿고 점차 닦아 번뇌를 여읜 청정과 장애를 여읜 해탈을 얻는다. 원만하고 청정한 구경해탈을 성취하면, 저 몸과 마음에 가리고 막힘이 사라져 석가모니불과 다름이 없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도서 『보장론』에서는 “유를 알면 유가 파괴되고, 무를 알면 무가 무너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주 이것이 다 유와 무를 알 수 있는 지혜다.

도서 그 안다는 앎은 유무를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

원주 이미 유무를 헤아리지 않았으니, 자성에 분별이 없는 앎이다.

㉢ 앞의 것을 거듭하여 명칭을 결론함

도서 이와 같이 열어 보인 ‘신령스럽게 아는 마음’이 곧 진성이니, 부처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진심이 곧 성임을 드러내 보여 주는 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 선종을 들어 배대함

도서 『화엄경』·『밀엄경』·『원각경』·『불정경』·『승만경』·『여래장경』·『법화경』·『열반경』 등 40여 부 경과 『보성론』·『불성론』·『기신론』·『십지경론』·

009_0218_c_01L皆有但以惑翳而不自知故佛開示
009_0218_c_02L令皆悟入即法華中開示悟入佛之
009_0218_c_03L知見如上所引佛本出世只爲此
009_0218_c_04L事也彼云使得淸淨者即寶性中離
009_0218_c_05L垢淸淨也是心雖自性淸淨終須
009_0218_c_06L悟修方得性相圓淨故數本經論
009_0218_c_07L皆說二種淸淨二種解脫今時學淺
009_0218_c_08L之人或只知離垢淸淨離障解脫
009_0218_c_09L毁禪門即心即佛或只知自性淸淨
009_0218_c_10L性淨解脫故輕於敎相斥於持律坐
009_0218_c_11L禪調伏等行不知必須頓悟自性淸
009_0218_c_12L自恃解脫漸修令得離垢淸淨離
009_0218_c_13L障解脫成圓滿淸淨究竟解脫若身
009_0218_c_14L若心無所擁滯同釋迦佛也

009_0218_c_15L
寶藏論云知有有壞知無無敗

009_0218_c_16L
此皆能知有無之智

009_0218_c_17L
其知之知有無不計

009_0218_c_18L
旣不計有無即自性無分別之知也

009_0218_c_19L
三牒前結名

009_0218_c_20L
如是開示靈知之心即眞性與佛無異
009_0218_c_21L故名顯示眞心即性敎也

009_0218_c_22L
四擧配禪宗

009_0218_c_23L
華嚴密嚴圓覺佛頂勝鬘如來藏法華湼
009_0218_c_24L槃等四十餘部經寶性佛性起信十地

009_0219_a_01L『법계론』·『열반경론』 등 15부 논서는, 비록 돈점이 같지 않지만, 드러내는 법체에 의거하면, 모두 이 교敎70)에 속하기 때문에 선문의 ‘셋째, 바로 심성을 드러내는 종宗’과 전적으로 같게 되는 것이다.

㉤ 공과 상의 비난을 버림(2항목)

a. 앞의 글을 거듭하여 상호 비난을 차단함

도서 이미 마명은 마음이 본원임을 표하였고, 문수는 앎이 참된 본체임을 구별하였는데, 어찌하여 상相을 깨뜨리는 무리는 단지 적멸이라고만 하여 진지를 인정하지 않으며, 상相을 설하는 가문은 범부와 성인이 다르다는 데 집착하여 (범부가) 곧 부처임을 인정하지 않는가. 지금 부처의 가르침에 의하여 판정함이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b. 설명한 것을 인용하여 결론으로 증명함(2항목)

a) 본래 의미를 곧바로 밝힘

도서 그러므로 앞에서 서역에서 마음을 전하는 데는 다분히 경과 논을 겸하였으니, (선과 교라는) 두 길이 없다고 서술하였다.

b) 자취를 밟아 힐난하는 질문을 해결함71)(3항목)

(a) 달마가 문자를 구별하고 마음을 전한 데 대해 힐난하는 질문을 해결함

도서 단지 이곳 (사람들은) 마음에 미혹하고 문자에 집착하여 명칭을 본체로 삼기 때문에 달마가 방편으로 문자와 구별하여 마음을 전한 것이다. 그 명칭【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을 표시해 들어서 그 본체【앎이 본체임】를 말없이 보여 주었고, 벽관【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으로 유인하여 모든 연을 끊게 하였다.
모든 연을 끊을 때에 물었다.
“단멸斷滅되었는가?”
대답했다.
“비록 모든 생각을 끊었지만 단멸되지는 않았습니다.”72)
물었다.
“무엇으로 증명하여 단멸되지는 않았다고 하는가?”
대답했다.
“뚜렷하게 스스로 알아 말로써 미칠 수 없습니다.”
달마가 즉시 인가하여 말했다.
“단지 이것이 자성청정심이니, 다시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대답이 (진성에) 계합하지 않으면 모든 잘못을 막고 다시 관찰하도록 하여야 한다. 끝까지 그에게 먼저 ‘앎(知)’이라는 글자를 말해 주지 않고 그가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고 나서 비로소 진실을 검증해야 한다. 이것이 친히 그 본체를 증득한 후에 인가하여 남은 의심을 끊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없이 심인心印을 전한다’라고 하였다. 말하지 않는다는 말은 ‘앎(知)’이란 글자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일체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6대에 걸쳐 서로 전한 것이 모두 이와 같다.


009_0219_a_01L法界湼槃等十五部論雖或頓漸不同
009_0219_a_02L據所顯法體皆屬此敎全同禪門第三
009_0219_a_03L直顯心性之宗

009_0219_a_04L
五遣空相訾二一牒前遮非

009_0219_a_05L
旣馬鳴標心爲本源文殊揀知爲眞體
009_0219_a_06L如何破相之黨但云寂滅不許眞知
009_0219_a_07L說相之家執凡異聖不許即佛今約
009_0219_a_08L佛敎判㝎正爲斯人

009_0219_a_09L
二人說結證二一正明本義

009_0219_a_10L
故前叙西域傳心多兼經論無二途也

009_0219_a_11L
二躡跡通難三一通達摩揀文傳
009_0219_a_12L心難

009_0219_a_13L
但以此方迷心執文以名爲體故
009_0219_a_14L摩善巧揀文傳心標擧其名心是
名也
默示
009_0219_a_15L其體知是
體也
喩以壁觀如上
所叙
令絕緖緣
009_0219_a_16L諸緣時問斷滅否答雖絕諸念亦不
009_0219_a_17L斷滅問以何證驗云不斷滅答了了
009_0219_a_18L自知言不可及師即印云只此是自
009_0219_a_19L性淸淨心更勿疑也若所答不契
009_0219_a_20L但遮諸非更令觀察畢竟不與他先言
009_0219_a_21L知字直待他自悟方驗眞實是親證
009_0219_a_22L其體然後印之令絕餘疑故云默傳
009_0219_a_23L心印所言默者唯默知字非摠不言
009_0219_a_24L六代相傳皆如此也

009_0219_b_01L
(b) 하택이 ‘앎(知)’을 드러냄이 은밀함(密)과 다르다는 난문을 해결함

도서 하택의 시대에 이르러 다른 종파가 다투어 퍼지고 말없는 가운데 계합하는 자를 찾으려 하나 인연이 있는 근기를 만나지 못하였다. 또 달마가 실에 매달린 것 같다고 한 예언을 생각하니,

원주 달마가 “나의 법은 제6대 이후에 그 생명이 실에 매달린 것 같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도서 종지가 끊어져 없어질까 두려워 ‘앎이라는 한 글자가 뭇 현묘함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하였으며, 깨달음의 깊고 얕음은 학자에게 맡기고, 우선 종교宗敎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것은 이 나라의 대법운수大法運數가 이른 것으로, 한 무리의 도속道俗이 함께 계합하여 널리 들었기 때문에 감응이 이와 같은 것이다.

(c) 법이 같은데 신표인 의발이 합당한가에 대한 힐난을 해결함73)

도서 말없이 전하면 나머지 사람이 모르기 때문에 가사로 신표를 삼은 것이며, 드러내어 전하면 배우는 사람들이 쉽게 구별하므로 단지 언설로써 의심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형용하여 말하는 것으로써 충분한데 경론을 인용하여 증거를 삼으려 하는가.

원주 앞에서 서술했던 “지금 법을 전하는 사람도 비밀한 말을 설하는가.”라는 외부의 힐난하는 질문에 대해 내가 지금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법은 달마의 법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깊건 얕건 모두 이익이 된다. 단지 옛날에는 은밀히 전하였지만 지금은 드러내어 전하기 때문에 비밀스런 말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어찌 명칭이 다르다고 법까지 다르겠는가.

(ㄴ) 치우친 방편을 가만히 물리침(2항목74))

과평 오늘날 학문이 얕은 사람들이 어떤 때는 깨달음의 문에 집착하여 실천의 문을 버리고, 어떤 때는 실천문에 막히어 깨달음의 문을 버린다. 돈과 점이 서로 비방하는 것이 마치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다투는 관계와 같다. 질문과 대답을 함께 갖추어 공교空敎와 상교相敎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성청정과 자성해탈을 단번에 깨달은 후에 번뇌를 떠난 청정과 장애를 떠난 해탈을 점차 깨닫게 한다. 그래서 지금 궁극적으로 청정한 원만해탈을 얻으면 석가불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문장은 둘로 나뉜다.

㉠ 질문

도서 이 마음을 깨닫고 나서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처음의 ‘상을 설하는 교’에 다시 의지하여 좌선을 하게 해야 하는가?


009_0219_b_01L
二通荷澤現知異密難

009_0219_b_02L
至荷澤時他宗竸播欲求默契不遇
009_0219_b_03L機緣又思惟達摩顯 [1] 絲之記

009_0219_b_04L
達摩云我法第六代後命如懸絲也

009_0219_b_05L
恐宗旨滅絕遂言知之一字衆妙之門
009_0219_b_06L任學者悟之深淺且務圖宗敎不斷
009_0219_b_07L亦是此國大法運數所至一類道俗
009_0219_b_08L得普聞故感應如是

009_0219_b_09L
三通法同合得信衣難

009_0219_b_10L
默傳者餘人不知故以袈裟爲信
009_0219_b_11L顯傳者學徒易辨但以言說除疑
009_0219_b_12L旣形言足可引經論爲證

009_0219_b_13L
前叙外難云今時傳法者說密語否
009_0219_b_14L余今以此答也法是達摩之法故
009_0219_b_15L者深淺皆益但昔密而今顯故不名
009_0219_b_16L密語豈可名別法亦別也

009_0219_b_17L
二暗斥偏權今時學淺之人或執
009_0219_b_18L悟門撥却行門或滯行門撥却
009_0219_b_19L悟門頓漸相訾如隔楚漢故
009_0219_b_20L答具修使空相人頓悟自性淸淨
009_0219_b_21L自性解脫然後漸修離垢淸淨離
009_0219_b_22L障解脫今得究竟淸淨圓滿解脫
009_0219_b_23L即同釋迦佛也文二一問

009_0219_b_24L
悟此心已如何修之還依初說相敎

009_0219_c_01L
㉡ 대답

도서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혼침이 매우 깊고 무거워 경책하기 어렵고, 들뜬 마음이 사나워 억누를 수 없으며, 탐하고 성냄이 맹렬하여 접촉하는 경계를 제어하기 어려운 사람은, 앞에서 말한 교설 가운데 여러 가지 방편을 사용하여 병에 따라 그것을 조복한다. (둘째,) 만약 번뇌가 많지 않은 사람이라면, 지혜와 앎이 총명하고 영리하므로 곧 본종本宗과 본교本敎75)의 일행삼매一行三昧에 의지한다.
『기신론』에서는 “지止(곧 定)를 닦는 사람은 고요한 곳에서 몸을 단정히 하고 뜻을 바로 한다. 호흡이나 형색에 의지하지 않고, 내지 오직 마음이니 바깥 경계는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금강삼매경』에서는 “선禪을 하는 것은 곧 움직이는 것이다. 움직이지도 않고 선을 하지도 않는 것이 생함이 없는 선(無生禪)이다.”라고 하였다. 또 『법구경』에서는 “만약 모든 삼매를 배우려 하는가. 이것(삼매에 들어가는 것)은 움직임이니, 좌선이 아니다. 마음은 경계를 따라 흐르는데 어떻게 정定이라고 하겠는가?”라고 하였고, 『정명경淨名經』에서는 “멸진정에서 일어나지 않고 모든 위의威儀【다니고, 머물고, 앉고, 누움】를 나타내며, 삼계에 의지하지 않고 몸과 뜻을 드러내는 것을 정좌라고 하니, 불타가 인가하였다.”라고 설한다.
여기에 의거한다면, 이미 삼계三界76)가 허공의 꽃이고, 사생四生77)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아 본체에 의거하여 행을 일으키니, 닦아도 닦음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부처에도 머물지 않고 마음에도 머물지 않는데, 누가 상계와 하계를 논하는가.

원주 앞의 힐난하는 질문에서 “교에 의거하여 상계의 선정을 이끌어 오는 것은 대나무 통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다. 단지 한 종파의 설에 집착하여 이 요의교를 본다면 이치상 부끄러워 물러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ㄷ) 막힌 것을 해결하고 의심을 풂(4항목78))

과평 의심하여 말하기를, 이미 성교性敎는 깨달음과 수행의 두 문을 갖추었다고 했는데, 만일 깨달음의 문에 의거하여 본다면 공교의 법(空法)과 같고, 수행문에 의거하여 본다면 상교의 법(相法)과 같다. 그러나 공空과 상相의 이치는 실제로 성종의 이치에 해당되지 않는다. 만일 성교의 두 가지 수행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많은 방편으로 수행하는 것은 ‘상相을 설하는 교’의 의미와 같고,

009_0219_c_01L令坐禪否

009_0219_c_02L
二答

009_0219_c_03L
此有二意謂惛深厚重難可策發
009_0219_c_04L擧猛利不可抑伏貪嗔熾盛觸境難
009_0219_c_05L制者即用前敎中種種方便隨病調伏
009_0219_c_06L若煩惱微薄慧解明利即依本宗本敎
009_0219_c_07L一行三昧如起信云若修止者住於
009_0219_c_08L靜處端身正意不依氣息形色乃至
009_0219_c_09L唯心無外境界金剛三昧云禪即
009_0219_c_10L是動不動不禪是無生禪法句經云
009_0219_c_11L若學諸三昧是動非坐禪心隨境界流
009_0219_c_12L云何名爲㝎淨名云不起滅㝎現諸
009_0219_c_13L威儀行住
坐臥
不於三界現身意是爲宴坐
009_0219_c_14L佛所印可據此即已達三界空花
009_0219_c_15L生夢寐依體起行修而無修尙不住
009_0219_c_16L佛住心誰論上界下界

009_0219_c_17L
前叙難云據敎須引上界㝎者
009_0219_c_18L管窺天但執一宗之說見此了敎
009_0219_c_19L理應懷慚而退也

009_0219_c_20L
三通妨決疑疑云旣曰性敎具悟
009_0219_c_21L修二門若據悟門見之即同空法
009_0219_c_22L若據修門見之即同相法則空相
009_0219_c_23L之理實不亞性宗之理若就性敎
009_0219_c_24L二修之義看則多方便修正同說

009_0220_a_01L본종본교의 일행삼매로 수행하는 것은 ‘상을 깨뜨리는 교’의 의미와 같다. 그러므로 성교의 이치도 또한 공종空宗과 상종相宗 이종二宗의 이치에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아래에 그것을 해결하였다. 아래 글은 네 가지로 나뉜다.

㉠ 드러낸 법을 듦

도서 그러나 이 교에서는 하나의 참된 심성心性으로써 물들고 깨끗한 모든 법에 대응하여 전부를 선별하거나 전부를 수용한다.
전부를 선별한다는 것은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단지 궁극적인 본체란 신령스런 앎이 곧 심성이고, 나머지는 모두 허망한 것임을 바로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경계 등도 아니며, 내지 상相과 성性도 아니고, 부처도 중생도 아니며, 사구四句79)를 떠났고, 백비百非80)가 끊어졌다’라고 하는 것이다. 전부를 수용한다는 것은 더럽거나 깨끗한 모든 법이 이 마음 아닌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헛되이 혹업을 일으키고, 내지 사생四生, 육도六道와 더러운 국토에 이르기까지 일으킨다.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본체를 따라 작용을 일으키고, 사등四等,81) 육도六度, 사변四辯,82) 십력十力,83) 미묘한 몸, 깨끗한 땅에 이르기까지 나타내지 않음이 없다. 이미 이 마음이 모든 법을 드러내어 일으켰기 때문에 법마다 모두 진심이다. 사람의 꿈속에 나타나는 일은 일마다 다 사람의 일이고, 금으로 그릇을 만들면 그릇마다 다 금이며, 거울에 비친 그림자는 그림자마다 모두 거울 속에서 움직이는 모양인 것과 같다고 하겠다.

원주 꿈은 망상 업보에, 그릇은 수행에, 그림자는 응신84)과 화신85)에 비유된다.

도서 그러므로 『화엄경』에서는 “일체법이 곧 마음의 자성이니, 지혜의 몸을 성취하는 것은 다른 것으로 인하여 깨닫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고, 『기신론』에서는 “삼계는 헛되고 거짓된 것으로 오직 마음이 만든 것으로 마음을 떠나면 육진 경계가 없다. 내지 일체의 분별은 분별하는 자기의 마음(自心)이다. 마음이 마음을 보지 못하니, 얻을 수 있는 형상이 없다. 그러므로 일체 모든 법은 거울 속의 형상과 같다.”라고 한 것이다. 또 『능가경』에서는 “적멸을 일심이라 하고, 일심을 여래장이라 부른다.”라고 하였으니, (일심은) 자체가 변하여 육도 윤회를 일으켜 선과 악을 짓고,

009_0220_a_01L相敎義本宗本敎一行三昧修正
009_0220_a_02L同破相敎義然則性敎之理亦不
009_0220_a_03L出空相二宗之理故通下文四
009_0220_a_04L一擧所現法

009_0220_a_05L
然此敎中以一眞心性對染淨諸法
009_0220_a_06L全揀全收全揀者如上所說但剋體
009_0220_a_07L直指靈知即是心性餘皆虛妄故云
009_0220_a_08L非識所識非心境等乃至非性非相
009_0220_a_09L非佛非衆生離四句絕百非也全收者
009_0220_a_10L染淨諸法無不是心心迷故妄起惑
009_0220_a_11L乃至四生六道雜穢國界心悟故
009_0220_a_12L從體起用四等六度乃至四辯十力妙
009_0220_a_13L身淨刹無所不現旣是此心現起諸
009_0220_a_14L法故法法全即眞心如人夢所現事
009_0220_a_15L事事皆人如金作器器器皆金如鏡
009_0220_a_16L現影影影皆鏡

009_0220_a_17L
夢喩妄想業報器喩修行影喩應化

009_0220_a_18L
故華嚴云知一切法即心自性成就
009_0220_a_19L慧身不由他悟起信論云三界虛僞
009_0220_a_20L唯心所作離心即無六塵境界乃至
009_0220_a_21L一切分別即分別自心心不見心
009_0220_a_22L相可得故一切諸法如鏡中像楞伽
009_0220_a_23L經云寂滅者名爲一心一心者名如
009_0220_a_24L來藏能遍興造一切趣生造善造惡

009_0220_b_01L그 원인과 함께하는 고락을 받는다. 그러므로 일체가 마음 아님이 없는 줄 알아야 한다.

㉡ 두 교를 이어서 밝힘

도서 모두 분간하는 문은 앞의 ‘제2 파상교(상을 깨뜨리는 교)’를 포섭하고, 모두 수용하는 문은 앞의 ‘제1 설상교(상을 설하는 교)’를 포섭한다.

㉢ 난문을 바로 해결함

도서 앞의 것을 여기에 대비시키면 이것은 앞의 것과 훨씬 다르지만, 이것으로 앞의 것을 포섭하면 앞의 것은 이것과 전적으로 같게 된다.86) 깊은 것은 반드시 얕은 것을 포용하지만, 얕은 것은 깊은 것에 도달하지 못한다. 깊은 것은 진심의 본체를 바로 드러내어 비로소 그 가운데에서 일체를 분간하고 일체를 수용한다.

㉣ 결론으로 요의를 보여 줌

도서 이와 같이 수용하고 분간함이 자재하고, 성상性相이 걸림이 없어야 비로소 일체의 법에 실로 머무름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오직 요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 결론으로 남은 글을 가리킴

도서 다시 심성의 같고 다름과 돈점의 위배되고 막힘, 배열한 모든 가문의 언교, 책의 차례와 그것을 지은 대의는 모두 다 하권下卷에 있다.

선원제전집도서 상권


009_0220_b_01L受苦樂與因俱故知一切無非心也

009_0220_b_02L
二躡明二敎

009_0220_b_03L
全揀門攝前第二破相敎全收門
009_0220_b_04L前第一說相敎

009_0220_b_05L
三正通妨難

009_0220_b_06L
將前望此此則逈異於前將此攝前
009_0220_b_07L前則全同於此深必該淺淺不至深
009_0220_b_08L深者直顯出眞心之體方於中揀一切
009_0220_b_09L收一切也

009_0220_b_10L
四結現了義

009_0220_b_11L
如是收揀自在性相無碍方能於一切
009_0220_b_12L悉無所住唯此名爲了義

009_0220_b_13L
二結指餘文

009_0220_b_14L
更有心性同異頓漸違妨及所排諸家
009_0220_b_15L言敎部帙次第述作大意悉在下卷

009_0220_b_16L
禪源諸詮集都序卷上

009_0220_c_01L
  1. 1)배휴(797~870) : 당唐의 맹주 제원 사람, 또는 하동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당 선종 때 평장사, 절도사 등의 관직에 올랐다. 해서를 잘 썼고 문장에 능하였다. 규봉 종밀(780~841)에게 화엄을 배웠으므로 종밀이 경소를 지을 때면 언제나 배휴에게 서문을 쓰게 했다. 일찍이 완릉에서 황벽 희운(?~850)을 만나 함께 선에 관해 토론하였으며, 그 말을 기록하여 『宛陵集』을 완성하였다. 선무제 때 불교가 대란을 만났을 때에는 중신이 되어 불교를 보호하기도 하였다.
  2. 2)선장禪藏 : 경·율·논 삼장에 대비하여 선가의 전적을 일컫는 말.
  3. 3)일대시교 : 불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여 입멸할 때까지 설한 교법.
  4. 4)마명(100~160년경) : 중인도 바라문 출신으로 카니슈카 왕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처음 외도의 법을 익혔으나 뒤에 협존자와 대론한 후 깊이 느낀 바 있어 불문에 귀의하였다. 삼장을 널리 배우고 내외전에 통달하였으며, 범어 문학의 선구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 글에서 마명을 성종으로 간주한 것은 마명의 저술로 알려진 『大乘起信論』 사상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나 『大乘起信論』의 저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5. 5)용수 : 남인도 바라문 출신.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베다·천문·지리·도술 등에 통달하였다. 출가하여 삼장을 널리 배웠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유력하다가 설산에서 노 비구를 만나 대승경전을 전해 받았다. 이를 통해 대승의 실제 의미를 통달하였으며, 외도가 불교를 공격하자 그들을 교화하고 불법을 홍포하였으며, 중론 및 대승경전 주석서를 다수 찬술하여 대승불교의 체계를 수립하였다.
  6. 6)혜능(638~713) : 당의 선승으로 선종 제6조. 광동 사람으로 『金剛經』 읽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바 있어 5조 홍인에게 찾아가 선을 전해 받았으며, 남해의 법성사 인종 법사를 만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조계 보림사에서 신수와 대응되는 돈오법문을 홍포하였다. 대범사에서 법당을 세우고 곧바로 조계산에 들어가 대법을 선양하다가 국은사에서 세수 76세로 입적하였다. 저술로는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六祖法寶壇經』과 『金剛經口訣』 등이 있다. 그의 문하에는 40명의 법을 받은 제자들이 있다.
  7. 7)신수(605~706) : 당의 승려, 북종선의 개조이다. 개봉 사람으로 50세에 5조 홍인의 제자가 되었다. 홍인 입적 후 강릉 당양산으로 가서 법을 전하였다. 많은 승려들이 그에게 귀의하여 명성이 높아지자, 측천무후가 그에게 귀의하고 그를 궁중으로 모셔 우대하였다. 남종 혜능의 선에 대해 그가 전한 선을 북종선이라 한다. 세수 102세로 천궁사에서 입적하였다.
  8. 8)달마(?~528) : 보리달마를 가리킨다. 중국 선종의 초조로 선가에서는 서천 28조로 꼽는다. 남인도 향지국 왕자이다. 처음 반야다라에게 도를 배우며 40여 년 동안 수학하였다. 반야다라에게 법을 받아 자국에서 널리 법을 폈다. 520년 양 무제 때 중국으로 건너와 무제와 만났으나 뜻이 맞지 않아 숭산 소림사에 머물며 9년간 면벽참선하였다. 제2조 혜가에게 법을 전하였다.
  9. 9)돈頓과 점漸 : 선가의 돈오와 점수를 말한다. 돈오란 단계적인 수행에 의거하지 않고 단번에 깨닫는 것이고, 점수는 깨달은 후에 그 깨달음에 입각하여 점차로 훈수熏修하는 것이다. 규봉은 미迷한 것을 깨닫는 것이 돈이고 범부를 고쳐 성인이 되는 것을 점이라고 하였다. 특히 규봉은 돈오점수를 체계화하였고, 고려의 지눌은 규봉의 돈점설을 계승하여 더욱 심화시켰다. 지눌은 자성이 본래 공적하여 불佛과 다름이 없음을 깨닫지만 오래 익혀 온 습기는 단번에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점수가 필요하다고 해석한다.
  10. 10)천태(538~597) : 천태 대사 지의를 가리킨다. 천태종의 개조로 18세에 출가하여 혜광에게 율학과 대승교를 배웠으며, 560년 혜사를 찾아가 심관을 받았다. 38세에 천태산에 들어가 수선사를 창건하고 『法華經』을 중심으로 하는 천태종을 개창하였으며, 석존 일대의 교설을 시간에 따라 5종으로 분류하고 교화 방법과 사상 내용을 4종으로 나누어 불교를 체계화하였다. 실천을 중시하고 선관에 의한 지관선법을 주창하여 천태선의 보급에 힘썼다. 그가 일생 동안 설교한 내용을 제자 관정이 필수한 『法華玄義』·『法華文句』·『摩訶止觀』 외에도 많은 저술이 남아 있다.
  11. 11)삼관三觀 : 천태종의 공관空觀·가관假觀·중관中觀의 삼관을 가리킨다. 밝은 지혜로 공·가·중의 이치를 관하는 것이다. ① 공관-공이란 성상을 모두 떠난 것이다. 일념의 마음이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으며 중간에 있지도 않다고 관한다. 이러한 공관은 가관을 통해 들어가며 견혹과 사혹을 끊는다. ② 가관-공관을 따라 들어가는 것으로 평등관이다. 가假란 만유의 법은 공하여 하나도 실재하는 것이 없으나 그 차별한 모양이 분명한 것은 대체로 가假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 가관으로 진사의 세혹細惑을 끊는다. ③ 중관-중도제일의제관中道第一義諦觀이라고도 한다. 중이란 ‘중정中正’의 의미로, 두 극단이 상대한다는 생각을 떠난 것이다. 일념의 마음이 공도 아니고 가도 아니며, 공에 즉하고 가에 즉한 것을 말한다. 일념이 중임을 관하기 때문에 일념이 중이고 일체가 중이다. 그러나 공도 아니고 가도 아니며 중도 아닌 것이다. 이 중관으로 무명혹을 제거한다. 일심 삼관의 관점에서는 공·가·중 셋이 모두 원융 무애한 것으로 본다. 공에 즉하여 가와 중을 관하고, 중에 즉하여 가와 공을 관하는 것이다. 이것을 즉공·즉가·즉중의 관법이라고 한다.
  12. 12)우두(594~657) : 당의 선승인 법융을 가리킨다. 선사는 19세에 경사를 통달하고 우연히 반야경을 보다가 불법에 귀의하여 출가하였다. 643년 우두산에 들어가 선실을 세우고 선관을 닦으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도신이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 3조 승찬의 돈교법문을 전하였다. 그 후 이 산이 법계의 중심이 되었고, 그의 법을 우두종이라 불렀다. 한때 그 세력이 왕성했으나 송대 이후에 쇠퇴하였다.
  13. 13)강서 : 마조 도일(709~788)을 말한다. 당대의 선승으로 남악 회양의 제자이다. 회양 문하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선법을 전해 받고 769년에 종릉(강서 진현) 개원사에서 회양의 법을 펴니 제자들이 운집하였다. 그 때문에 마조의 법을 강서선이라고 불렀으며, 홍주종이라고도 칭했다.
  14. 14)하택(684~758) : 하택은 당대의 선승 신회神會의 호로서 하택종의 종조이다. 13세에 육조 혜능을 참방하였고, 육조 입적 후 사방을 유력하다가 732년 칙명으로 남양 용흥사에 들어가 선법을 선양하였다. 육조의 입멸로 남방의 선인 돈종이 침체되자, 북방 신수종이 흥성하였다. 이에 하택은 신수의 점문漸門을 공격하니, 북종선이 다시 쇠퇴하고 남종선이 부흥하게 되었다. 그 후 하택이 안사의 난에 공을 세우자 숙종이 하택사 안에 선원을 지어 그를 거주케 하였다. 여기에서 육조의 종풍을 드날리니 세상 사람들이 하택 대사라고 불렀다.
  15. 15)『주례』 : 중국 주대의 예제를 가리킨다.
  16. 16)3종 교의敎義 : 『都序』에서 3종 교의란, 불타의 모든 가르침을 ① 밀의의성설상교密意依性說相敎, ② 밀의파상현성교密意破相顯性敎, ③ 현시진심즉성교現示眞心卽性敎의 3종으로 정리한 것을 가리킨다.
  17. 17)선종의 3종 법문法門 : ① 식망수심종息妄修心宗, ② 민절무기종泯絶無寄宗, ③ 직현심성종直顯心性宗의 세 가지이다. 규봉 선사는 이 선의 3종과 위 교의 3종을 배대하여 선과 교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18. 18)제호 : 소의 젖을 정제하여 만든 것이 낙이고, 그 낙을 정제한 것이 소이다. 제호는 가장 정제된 우유로 불성에 비유한다.
  19. 19)갖옷 : 모피로 안감을 댄 옷이다.
  20. 20)『荀子』 「勸學」편에 있는 말. 왕선겸王先謙의 『荀子集解』에서 왕염손王念孫의 견해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돈頓이란 끌어당기는 것을 가리킨다. 갖옷의 옷깃을 끈다는 것은 다섯 손가락을 굽혀 끌어당기면 전체 갖옷의 털이 다 따라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頓者。 引也。 言挈裘領者。 詘五指而引之。 則全裘之毛皆順也。)”
  21. 21)『주역약례周易畧例』 : 삼국시대 위나라 왕필이 쓴 『周易』의 주석서이다.
  22. 22)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이 아래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8대 법요를 찬탄하여 후학이 밝히기 어려울까 걱정하였다.”
  23. 23)이 문장은 주석문을 본문으로 잘못 취급한 것 같다. 상봉 정원의 『都序分科』는 주석으로 보아 본문 아래에 배열하였다.
  24. 24)이 질문은 불타께서 응기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하여 설하신 법문이 각각 다른데, 왜 설법의 본뜻을 어기고 통합을 말하느냐고 힐난하는 것이다.
  25. 25)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당본에서는 ‘대답하였다. 불타가 법화열반 회중에서 이미 일미로 융합하였지만, 단지 여기에 어두운 자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열반경』에서 운운.’이라고 하였다.(唐本云。 答曰。 佛於法華涅槃會中。 亦已融爲一味。 但昧者不覺。 故涅槃經云云。)”
  26. 26)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문이 있다. “30년 전에는 혹 소승을 설하고, 혹 공교空敎를 설하며, 혹 상교相敎를 설하고, 혹 성교性敎를 설하였으므로 듣는 사람들이 각기 근기에 따라 증득하여 깨달으니, 서로 통하여 알지 못하였다. 40년 후에 영취산에 앉아 삼승을 회통하고, 구시나가라에 나아가 일성一性을 드러내니, 이것이 전후의 궤칙이다.(三十年前。 或說小乘。 或說空敎。 或說相敎。 或說性敎。 聞者各隨機證悟不相通知也。 四十年後。 坐靈鷲而會三乘。 詣枸尸而顯一性。 此前後之軌則也。)” 이 57자는 『都序』의 판본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주석으로 보인다.
  27. 27)『詩經』 「小雅」 ≺蓼莪≻.
  28. 1)십육관선十六觀禪 : 16가지 관법으로 『無量壽經』에 나온다. 십육관법·십육상관·십육묘관 등으로 불린다. 염불하는 사람들이 아미타의 신상이나 정토를 염하여 왕생 서방하는 관법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일상관日想觀-정좌하고 서향하여 지는 해를 자세히 보는 것. ② 수상관水想觀-처음은 서방西方의 일체를 물이라고 보고, 둘째는 물이 얼음이 되어 비치는 것을 유리처럼 보는 것. ③ 지상관地想觀-땅의 상하가 모두 유리 보배라고 보는 것. ④ 보수관寶樹觀-극락세계의 나무를 모두 보배로 보는 것. ⑤ 보지관寶池觀-극락의 팔공덕수를 칠보 연화로 보는 것. ⑥ 보루관寶樓觀-앞의 총관상으로 하나하나의 세계 위에 무수한 보루가 있다고 보는 것. ⑦ 화좌관華座觀-불과 관음세지 두 보살이 앉아 있는 화좌를 생각함. ⑧ 상상관像想觀-금색불상이 화좌에 앉아 있는 것을 생각으로 봄. ⑨ 진신관眞身觀-무량수불의 진신을 관함. ⑩ 관음관觀音觀-미타 협시 가운데 관음상을 관상함. ⑪ 세지관勢至觀-협시 대세지보살 상을 관상함. ⑫ 보관普觀-스스로 극락세계에 왕생함을 관함. ⑬ 잡상관雜想觀-장륙불상이 연못 위에 있는 모양을 관함. ⑭ 상배관上輩觀-구품 중 상품에 이르는 으뜸가는 무리를 관함. ⑮ 중배관中輩觀-중품에 생하는 중배를 관함. ⑯ 하배관下輩觀-하품에 생하는 하배를 관함.
  29. 2)반주삼매般舟三昧 : 정행의 일종이다. 7일 혹은 90일로 일정 기간을 정하고 삼매를 수행하면 부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신업을 바르게 하고 입으로는 불 명호를 부르며 뜻으로 불체를 관하여 삼업이 상응하는 삼매를 가리킨다.
  30. 3)사색四色·사공四空 : 사색은 문맥으로 보아 색계色界 사선천四禪天, 사공은 무색계無色界 사공천四空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사선천에는 ① 초선천初禪天(인간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희락과 심사의 사유 능력이 남아 있다.), ② 제2선천(오직 의식만이 있어 희喜·사捨와 상응한다.), ③ 제3선천(오직 의식 활동만이 낙樂·사捨와 상응한다.), ④ 제4선천(오직 사捨와 상응하는 의식 활동만이 있다.)이 있다. 사공천은 무색계 사천이라고도 하는데, ① 공무변처空無邊處, ② 식무변처識無邊處, ③ 무소유처無所有處, ④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이른다.
  31. 4)이 문장이 저본에는 본문으로 되어 있지만, 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주석문으로 처리되어 있고, 『都序』의 다른 판본에도 주석문으로 처리되어 있다.
  32. 5)일행삼매一行三昧 : 마음을 한 가지로 정하여 닦는 삼매다. 진여삼매眞如三昧 또는 일상삼매一相三昧라고도 한다. 『六祖壇經』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언제나 항상 하나의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라 하였다.
  33. 6)사선四禪과 팔정八定 : 사선은 색계 사선이고, 색계 사선과 무색계 사무색정四無色定을 합하여 팔정이라고 한다. 색계와 무색계를 상대했을 때, 색계를 선禪, 무색계를 정定이라 한다. 그러나 욕계의 산란과 색계와 무색계의 선정 중, 색계의 선정을 정혜 균등이라 하고 무색계의 선정은 정이 많고 혜가 적다고 한다.
  34. 7)삼제三諦 : 천태종에 의하면, 제법실상의 진리는 공·가·중 삼제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공제란 진제 또는 무제라고도 부른다. 제법이 본래 공하지만 중생이 알지 못하여 실제라고 집착함으로 인해 망견을 내게 된다. 따라서 공관으로 대치하면 진공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가제는 속제 또는 유제라고도 한다. 제법이 본래 공하지만 인연이 모이면 뚜렷이 드러난다. 공 가운데 일체법을 세우기 때문에 가제라 부르는 것이다. 중제는 중도제일의제라고도 한다. 중관으로 관하면 제법은 본래 양변을 떠나지 않으며, 양변에 즉하지도 않는다. 진도 아니고 속도 아니며, 진에도 즉하고 속에도 즉한다. 청정하고 확 트여 원융무애하기 때문에 중제라고 하는 것이다.
  35. 8)삼지三止 : 삼지란 천태종의 공·가·중 삼관에 대해 세운 3종의 지행으로 체진지體眞止·방편수연지方便隨緣止·식이변분별지息二邊分別止의 세 가지이다. 체진지란 공관에 대응하여 세운 것으로 무명전도의 망상을 체득하는 것이 실상의 진리이기 때문에 체진지라 부른다. 방편수연지란 가관에 대응하여 세운 지행이다. 보살이 연을 따라 경계를 겪으면 마음이 속제에 편안해져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식이변분별지란 중관에 대응해 세운 지행으로 생사와 열반, 유와 무 등 이변의 상을 분별하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36. 9)호胡나라와 월越나라 : 중국에서 호나라는 북쪽에 있고, 월나라는 남쪽에 있어 서로 소원하고 격리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37. 10)『정명경淨名經』 : 『維摩經』을 말한다. 정명淨名은 유마 거사의 호, ‘무구칭’이라고도 한다. 불타의 세속 제자. 인도 비야리국 장자로 보살 행업을 닦은 사람.
  38. 11)『維摩詰所說經』 권2 「文殊師利問疾品」(T14, 545b3~4).
  39. 12)상봉 정원은 이곳에 추붕과 다른 과목명을 붙이고, 그 아래에 다음과 같은 주석을 붙이고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도 해탈하지 못하고 어떻게 타인을 경책한다고 하는가?’라고 힐난했기 때문에 아래에 그것을 통하게 하였다.”
  40. 13)심종心宗 : 불심종佛心宗으로 선종禪宗을 말한다.
  41. 14)신해수증信解修證 : 불도 수행의 1기로 먼저 법을 믿고, 다음 그 법을 요해하며, 그 법에 의지하여 행을 닦아 마지막으로 과를 증득하는 것. 청량 징관은 신해수증이라는 틀로 『華嚴經』을 해석한다.
  42. 15)권교權敎와 실교實敎 : 권교는 방편교로서 권도로 가르침을 삼는다. 실교는 진실한 가르침으로서 진실구경의 뜻을 말한다. 천태종에서는 『法華經』만이 유일한 실교이고, 여타의 경전은 모두 권교라고 주장한다.
  43. 16)요의了義와 불요의不了義 : 요의는 분명하게 설하여 궁극적인 실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을 말하고, 불요의란 드러내어 설한 것이 완전하지 않아 미진한 것을 가리킨다.
  44. 17)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슬프다. 선교의 근원이 하나이지만, 피차가 그 근원에 어두워 서로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고 하니, 선禪과 강講(敎)을 화회하려는 것이다. 첫머리에서 그 첫째 이유를 밝혔다. 공종空宗과 상종相宗이 서로 잘못이라 하여 쟁론을 쉬지 않는다. 다음에는 둘째 이유를 밝혔다. 앞의 2장章으로 인해 쟁론을 쉬는 것은 알지만, 경론을 철저히 알지 못하여 불타의 견해와 같은지를 알기 어렵다. 셋째 이유, 경론에 의지한다고 말하지만 권교와 실교를 가리지 못하여 무엇에 의지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넷째 이유, 권실은 알지만 비교해 보는 데 어두워 삿됨과 바름을 밝히기 어렵다. 다섯째 이유, 삼량이 같아서 삿됨을 따르는 것을 면할 수 있지만, 경솔하고 부주의하여 오히려 남은 의심이 있다. 여섯째 이유, 여러 의심은 제거했으나 법法과 의義를 분별하지 못하여 언어를 따라 알음알이를 낸다. 일곱째 이유, 법과 의를 듣고 사가四家가 쟁론을 쉬었으나 참됨과 허망함을 구별하지 못하여 명칭과 언어에 막힌다. 여덟째 이유, 팔문八門에 의해 각자의 잘못을 알았으나 오悟와 수修에서 돈점頓漸이 어긋나고 막힌다. 아홉째 이유, 돈점을 구별하여 요의了義를 알았으나 이를 전수하는 데 밝지 않아 (중생을 치료하는) 병과 약을 알지 못한다. 마지막 열째 이유, 이유가 이와 같으니 이미 화회가 이루어지고 상호 비방이 사라졌지만 선禪과 강講의 성상性相을 망정妄情으로 고집한다. 첫째에서 열째까지 운운하며 어둡고 우매한 것을 거친 솜씨로 구별하였다. 뒤에 글이 있다.”
  45. 18)양量에는 세 가지가 있다(三量) : 현량見量·비량比量·성언량聖言量이다.
  46. 19)서로 맞추면~하는 까닭이다 : 물고기 형상의 신표가 부합하는 것을 말한다. 나무 또는 주물로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 글자를 새긴 후 둘로 쪼개어 하나씩 갖는다. 나중에 그것을 맞추어 상대방을 믿는다. 삼량을 서로 맞추면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47. 20)우파국다 : 선종의 서천 28조 중 제4대 존자이다.
  48. 21)제다가提多迦 : 서천 28조 중 제5대 존자이다.
  49. 22)계빈국罽賔國 : 중국 한나라 때의 서역국 이름으로 지금 카슈미르 지역에 있던 나라이다.
  50. 23)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이 아래에 다음의 주석이 있다. “아래의 다섯 번째 질문을 가리키는 것이다.”
  51. 24)강서江西·하택荷澤~조나稠那·천태天台 : 남종선은 남악 아래의 임제·위앙 2종과 청원 아래의 조동·운문·법안 3종을 합한 오종과 임제 후의 황룡·양기파를 합하여 오가 칠종을 세운다. 그런데 이상 십가는 남종선의 하택선에 속한다는 규봉이 분류한 선의 종파로서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강서는 마조 도일, 하택은 신회, 북수는 북종 신수를 가리킨다. 남선은 자주 지선資州智詵(609~702)을 가리킨다. 처음 현장 삼장에게 사사, 후에 홍인의 제자가 되었다. 우두는 법융, 석두는 희천이다. 보당은 무주(714~774)를 가리킨다. 그는 무상의 제자로서 스승의 정중파에 상대되는 보당파를 열었다. 선십은 5조 홍인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조나는 혜조慧稠와 구나求那를 가리킨다. 이 두 사람은 북위北魏의 불타 선사佛陀禪師로부터 선법을 받았다. 천태는 지의이다.
  52. 25)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인천교人天敎부터 열 가지 다른 것을 분별하는 데 이르기까지 마침 20여 지紙가 된다.”
  53. 26)삼상參商 : 삼성과 상성의 두 별을 가리킨다. 삼성은 서쪽에 있고, 상성은 동쪽에 있다. 삼성이 뜰 때면 상성이 지고, 상성이 뜰 때면 삼성이 지기 때문에 두 별은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피차의 대립으로 화목하지 못함을 비유한다.
  54. 27)『황정경黃庭經』 : 도교의 경전으로 양생養生의 법을 다루고 있다.
  55. 28)아뢰야 : 뇌야식·아뢰야식 등이라고 하며, 제8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56. 29)청정장淸淨藏 : 청정을 감추고 있다는 말로 여래장과 같은 말이다.
  57. 30)초나라와 한나라 : B.C. 200년경에 세운 중국의 고대 국가를 가리킨다. 초는 항우가, 한은 유방이 세웠다. 두 나라는 상대를 멸망시키기 위해 늘 적대하고 싸웠으며, 결국 항우의 초나라가 패했다.
  58. 31)발을 씻는 뉘우침 : 라후라가 교만하자 석존이 라후라에게 석존의 발을 씻게 한 후 그 그릇에 음식을 담아 주면 먹겠느냐고 물었다. 라후라가 거절하니, 석존이 너의 바탕이 진실하지 못한 것도 이와 같다고 한 것을 말한다.
  59. 32)이伊 자의 3점 : 실담자 중 이伊 자는 점 세 개를 찍은 것(∴)과 같다. 이 세 점의 위치는 종횡도 없고 빠진 것이 없기 때문에 불교에서 법신·반야·해탈 등 삼덕의 원만함을 비유적으로 쓸 때 사용한다.
  60. 33)3종宗 : 공종·상종·성종이다.
  61. 34)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허락하여 말한 여섯 번의 질문 중 다섯 번째 강론과 전경傳經의 문답을 거듭 가리키는 것이다. 앞에서(前) 가리킨 초단이란, 초단에는 선조가 강설한 글이 있기 때문에 앞에서 기술한(前敘)이라는 두 글자를 쓰지 않고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을 다시 거듭 가리키는 것은, 지금 모은 선전에서, ‘어떻게 경론에 관계되느냐’ 하는 문답이 ‘선사가 어떻게 강설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문답과 같기 때문에 거듭 가리킨다고 한 것이다. 문장은 중첩되는 것 같지만 의미는 중복되지 않는다.”
  62. 35)이 주석은 여타 본에 없다.
  63. 36)여섯 자 : 바로 아래 나오는 “금차선서선종今且先叙禪宗(지금 먼저 선종을 서술한다.)”의 여섯 자를 가리킨다.
  64. 37)이 말 : 공종이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곧 이 종파에 대한 앞의 설명을 가리킨다.
  65. 38)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상相을 합하여 성性으로 돌아감.”
  66. 39)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진오眞悟.”
  67. 40)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진수眞修.”
  68. 41)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진증眞證.”
  69. 42)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돈오.”
  70. 43)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점수.”
  71. 44)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증과.”
  72. 45)오도五道 : 오취라고도 한다. 중생이 업인에 따라 전생하는 다섯 곳을 가리킨다. 육도 가운데 아수라가 빠진 지옥·아귀·축생·인도·천도의 다섯 곳이다.
  73. 46)심사관尋伺觀 : ‘심’이라는 것은 대상의 뜻과 이치를 개략적으로 살피는 것이고, ‘사’란 세밀하게 사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대상을 관하는 것을 심사관이라고 한다.
  74. 47)여덟 개의 나(八我) : 지·수·화·풍 사대와 오온 중 색온을 뺀 나머지 사온을 합한 것을 가리킨다.
  75. 48)이공二空 : 아공과 법공이다. 아공이란, 중생은 오온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상일하고 주재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법공이란, 일체 대상이 공하다는 것을 말한다. 아공은 아집을 떠난 것이고, 법공은 법집을 떠난 것이다.
  76. 49)유식관唯識觀 : 대승 관법의 한 가지, 남산 삼관의 하나로 별교와 원교 보살의 관법이다. 만유의 자성은 본래 청정하여 그 근본 이치가 매우 깊기 때문에 오직 식으로만 관하는 것이다.
  77. 50)육도六度 : 보살이 수행하는 여섯 가지 덕목으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를 가리킨다. 육바라밀이라고도 한다.
  78. 51)사섭법四攝法 : 사섭사라고도 한다. 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는 네 가지 덕목으로, 보시섭·애어섭·이행섭·동사섭이다. 보시섭은 법이나 재물을 보시하여 상대방을 이끌어 들이는 것이고, 애어섭은 온유한 말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다. 이행섭은 선행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여 이끌어 들이는 것이고, 동사섭은 중생과 고락을 함께하면서 이끄는 것이다.
  79. 52)번뇌장과 소지장 : 이장二障이라고 한다. 이 이장은 중생이 생사에 윤회하게 하는 가장 근본이 되는 번뇌이다. 번뇌장이란 번뇌가 곧 장애라는 말로 아집에 따라 일어나는 근본번뇌와 분忿·한恨·부覆 등 수번뇌가 여기에 포함된다. 소지장이란 알아야 할 대상인 진여를 장애하는 번뇌이다. 법집에 따라 일어나는 망상분별과 법애와 만慢·무명無明 등을 가리킨다.
  80. 53)사지四智 : 유루의 팔식을 전환하여 얻은 무루의 지혜로 대원경지·평등성지·묘관찰지·성소작지의 네 가지 지혜이다. 성소작지는 전오식을 전환하여 얻은 지혜이고, 묘관찰지는 제6식을 전환한 지혜이며, 평등성지는 제7식을 전환하여 얻은 지혜로 이체를 평등으로 관한다. 대원경지는 제8식을 전환하여 얻은 지혜로서 평등 원만한 궁극적인 지혜이다.
  81. 54)법성신法性身 : 법신이라고도 한다. 시방 허공계에 가득한 불신을 가리킨다. 상주불변하는 법성을 불신이라는 상징적인 모습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82. 55)2경京 : 중국 서쪽의 장안과 동쪽의 낙양 두 서울을 지칭한다.
  83. 56)세 황제 : 당의 고종·측천무후·중종 세 사람의 황제를 가리킨다.
  84. 57)선수侁秀 : 남선과 북수. 남선은 지선, 북수는 신수를 가리킨다. 둘 다 홍인의 문하이다.
  85. 58)옆구리를 자리에 붙이지 않았다는 말은 눕지 않았다는 뜻이니, 곧 4조 도신도 좌선을 했다는 말이다.
  86. 59)소변所變 : 능변에 의하여 생기한 일체 대상을 말한다.
  87. 60)능변能變 : 유식의 설로 인식의 주체인 식이 전변하여 일체 만법을 생기하는 것을 가리킨다. 능변에는 제1 능변(제8 이숙식), 제2 능변(제7 사량식), 제3 능변(제6 요별식)의 세 종류가 있다. 이 3종의 능변에 의해 일체 존재가 생기한다는 것이다.
  88. 61)3항목 : 바로 아래 과평의 마지막 문장에 의거하여 추가하였다.
  89. 62)상봉 정원의 『都序分科』에는 다음의 주석이 있다. “어떤 사람이 ‘위로부터 모든 보살이 공·상에 있어서 상을 깨뜨림이 서로 어긋나는데, 어찌하여 지금 공과 상이 서로 잘못이라 하는 것만을 치우쳐 책망하는가?’라고 힐문한 데 대해 아래에 통하게 하였다.”
  90. 63)위의 두 교 : 공교와 상교, 중관과 유식을 가리킨다.
  91. 64)이 글은 다른 본에는 없다. 설암 추붕의 논평으로 추정된다.
  92. 65)무생법인無生法印 : 생멸을 멀리 떠나 불생불멸하는 진여실상을 관하고 거기에 안주하는 것.
  93. 66)일체지一切智 : 일체 제법의 총상을 개괄적으로 아는 지혜. 도종지, 일체종지와 함께 삼지 중의 하나.
  94. 67)자연지自然智 : 무사지無師智라고도 부른다. 공용을 빌리지 않고 자연히 생긴 부처의 일체종지.
  95. 68)무애지無碍智 :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이 모든 사리를 알아 통달자재한 지혜.
  96. 69)“불자여, 한 중생도”부터 여기까지 모두 『華嚴經』 「出現品」에서 축약하여 인용한 글이다.
  97. 70)이 교 : 3종 교종 중 ‘현시진심즉성교’, 곧 진심이 성임을 드러내 보여 주는 교를 말한다.
  98. 71)이 과목 아래에 다음과 같은 상봉 정원의 주석이 있다. “어떤 사람이 힐난하여 물었다. ‘달마는 마음을 설하고 하택은 앎을 설했으니 앞선 조사들에 위배된다. 그런데 어찌하여 경론을 끌어와 증거를 삼고, 그것을 깊이 찬탄하여 의심할 수 없다고 하는가?’라고 하였기 때문에 아래에 통하여 말한 것이다.”
  99. 72)단멸되지는 않았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본래 청정하여 끊을 것도 없고 멸할 것도 없다는 것으로, 화엄이나 선의 말씀이다. 그래서 생각을 끊었지만 단멸되지는 않았다고 대답하였다.
  100. 73)이 과목 아래에 다음과 같은 상봉 정원의 주석이 있다.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신표의 의발을 전하지 않았는가라고 하였기 때문에 아래에 그것을 통하게 하였다.”
  101. 74)2항목 : 바로 아래 과평의 문장에 의거하여 추가하였다.
  102. 75)본종本宗과 본교本敎 : 본종은 성종性宗이고, 본교는 성교性敎이다.
  103. 76)삼계三界 : 미계를 셋으로 분류한 것으로 욕계·색계·무색계이다. 욕계는 탐욕이 성한 세계이고, 색계는 탐욕은 없으나 미묘한 형체가 있는 세계이며, 무색계는 욕망과 형체가 없어진 정신적인 세계이다.
  104. 77)사생四生 : 생물이 태어나는 네 가지 형태인 태생·난생·습생·화생이다.
  105. 78)4항목 : 바로 아래 나오는 과평의 마지막 문장에 의거하여 추가하였다.
  106. 79)사구四句 : 하나의 주제를 네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긍정·부정·긍정 혹은 부정·비긍정 혹은 비부정을 가리킨다.
  107. 80)백비百非 : 계속 부정하여도 사물의 진상에 도달하기 어려울 때 사용한다. 유무의 극단적인 견해를 없애기 위함이다.
  108. 81)사등四等 :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을 가리킨다.
  109. 82)사변四辯 : 사무애지四無碍智 또는 사무애해四無碍解라고도 한다. 마음의 측면으로는 사무애지, 사무애해라 하고, 말하는 측면으로는 사무애변四無碍辯이라고 부른다. ① 법무애法無碍-모든 교법에 통달함, ② 의무애義無碍-모든 교법의 중요 의미를 앎, ③ 사무애辭無碍-여러 가지 말을 알아 통달함, ④ 요설무애樂說無碍-모든 교법을 알아 근기가 좋아하는 말을 자재하게 함 등 네 가지이다.
  110. 83)십력十力 : 보살이 가지고 있는 열 가지 지혜의 힘. ① 심심력深心力, ② 증상심심력增上深心力, ③ 방편력方便力, ④ 지력智力, ⑤ 원력願力, ⑥ 행력行力, ⑦ 승력乘力, ⑧ 신변력神變力, ⑨ 보리력菩提力, ⑩ 전법륜력轉法輪力.
  111. 84)응신 : 불佛의 삼신三身 중의 하나이다. 불의 삼신은, ① 법신-영원히 변치 않는 만유의 본체를 인격화하여 법신이라고 부른다. ② 보신-수행 정진에 의해 성취된 불신. 아미타불과 같은 불신이다. ③ 응신-보신불을 보지 못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타나는 불신. 역사적인 불인 석가모니와 같다.
  112. 85)화신 : 삼신 중 응신을 제외하고 화신을 넣어 삼신이라 하기도 한다. 화신이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불이 스스로 여러 가지 중생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113. 86)앞의 것이란 파상교에 속하는 전간문全揀門이고, 이것이란 설상교가 속하는 전수문全收門이다. 파상교와 설상교를 대비하면 설상교와 파상교가 현저히 다르지만, 전수문으로 전간문을 포섭하면 파상교와 설상교가 전적으로 같아진다는 것이다.
  1. 1){底}乾隆五年平安道寧邊普賢寺刊本。(東國大學校所藏)。題名。編者補入。
  2. 2)撰者名。在「洪州…裵休述」之後。編者移置於此。
  3. 1)「述」下有「海東沙門雪巖秋鵬科評」。編者除之。
  4. 1)「徙」當作「徒」{編}。
  5. 1)「烈」當作「列」{編}。
  6. 1)「跌」疑「趺」{編}。
  7. 1)「徃」當作「性」{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