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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307_a_01L대각등계집大覺登階集백곡집서白谷集序대사大師는 나이 17, 18세 즈음에 속리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서 여러 이름난 대신과 학식 있는 선비들의 문을 방문하면서 자신이 지은 시문詩文을 폐백 삼아 바쳤다. 당시 선배인 큰 선비들이 대사의 총명함과 영특함을 크게 아껴서 칭찬하고 발전하도록 도와주었으며 영교휴묵靈皎休默1)과 같은 이들도 대사보다는 뛰어나다고 여기지 않았다.당시 나의 외조부 낙전당樂全堂 신 공申公2)은 조정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회상淮上3)에서 은거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대사는 곧바로 경전經典을 가지고 스님임에도 불구하고 신 공의 넷째 아들인 춘소공春沼公4)과 함께 아침저녁으로 곁에서 신 공을 모셨다. 붓이나 벼루 등을 준비하는 잔일을 하면서 4년을 지냈지만 여전히 게을리하지 않았다. 신 공은 경서經書와 역사서, 『논어』ㆍ『맹자』 같은 우리 유가의 말씀을 가르쳤으며, 한유韓愈와 소동파蘇東坡의 저서까지 두루 언급하였다. 대사는 매일 밤낮으로 열심히 읽고 공부하였으며 독송한 지 오래되어서야 드러내었다. 대사의 문장은 자못 광대무변하였는데 마치 계곡의 물이 쏟아져 나오는 듯하였고, 강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듯하였다.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5)이 더욱 감탄하고 칭찬을 하면서 기재奇才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대사는 자신의 본분사를 아직 철저히 밝히지 못했다고 여겨 지리산 쌍계사에 있는 벽암碧岩 선사6)를 찾아뵈었다. 대사는 학식이 풍부한 선사에게 의지해 참구하여 참된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고 편안히 깨달음의 세상에 머물렀다.대사는 중년中年이 되어서 서울 주변에 산 적이 있었는데 동명 정두경이 대사에게 시를 보냈다.
徃哭東陽尉 지난번엔 동양위를 곡哭하였더니
今逢白谷師 오늘은 백곡 대사를 만났네.
鳳凰終不返 봉황鳳凰7)은 끝내 돌아오지 않고
龍象亦含悲 용상龍象8) 또한 슬픔을 머금었구나.
대사가 세상에서 존경을 받음이 또한 이와 같았다. 그 뒤에 춘소공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외가의 여러 사촌들도 연이어 집안이 쇠락하였다. 내가 스님을 만날 때마다 문득 나에게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고 매번 마음 아파하였다. 구양수歐陽脩9)가 세상을 떠나자 혜근惠勤10)이 눈물을 흘렸고, 만경曼卿11)이 죽자 비연秘演12) 또한 늙어 버렸으니, -
008_0307_a_01L[大覺登階集]
008_0307_a_02L1)白谷集 [1] 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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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307_a_04L始師年十七八。自離岳。走至京師。蹐
008_0307_a_05L諸名卿學士之門。出詩文以爲贄。而一
008_0307_a_06L時先軰鉅公。多愛師之聰潁 [1] 夙悟。奬而
008_0307_a_07L進之。以爲靈皎休默之徒。不是過也。
008_0307_a_08L時我外王考樂全申公。不樂在朝。嘗屏
008_0307_a_09L處於淮上。師輒持經卷。攝緇而從之。
008_0307_a_10L與公之季子春沼公。朝夕左右。供筆硯
008_0307_a_11L之伇。關四寒暑。猶不怠。公仍敎以經。
008_0307_a_12L史語孟諸吾儒家言。旁及韓蘇等書。師
008_0307_a_13L遂日夜誦讀。久而後乃發之。其文頗滂
008_0307_a_14L沛浩漾。若峽之決而河之潰也。東溟鄭
008_0307_a_15L公斗卿。尤歎賞之。以爲奇才。顧師以
008_0307_a_16L己事未明。遠訪碧岩性師於頭流之雙
008_0307_a_17L溪。叅依老宿。提唱眞乘。居然一曹洞
008_0307_a_18L之世。適而中年。嘗棲正近圻。鄭東溟
008_0307_a_19L以詩贈之曰。徃哭東陽尉。今逢白谷師。
008_0307_a_20L鳳凰終不返。龍象亦含悲。其爲世所引
008_0307_a_21L重又如此。其後春沼公。遽下世外氏群
008_0307_a_22L從。又相繼凋落。余每與師相遇。師輒
008_0307_a_23L爲之叙說徃故。繼之以慨然悱惻。夫歐
008_0307_a_24L翁捐館。而惠勤流涕。曼卿已死。而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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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307_b_01L대개 안타깝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탄식이 있는 법이다. 흥망성쇠가 서로 뒤바뀌는 것은 예로부터 본래 그러하니 덧없는 세상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감회는 또 어찌 끝이 있겠는가?대사는 예전에 남한산성의 승군僧軍 총대장을 역임하였지만 얼마 있다가 사직하였다. 때때로 아미산峨嵋山(충청남도 부여 소재)과 성주산聖住山(충청남도 보령 소재) 사이를 홀로 왕래하다가 경신년(1680, 숙종 6) 가을에 마침내 조금 아픈 기색이 있다가 입적하였으니, 아아 슬프도다. 대사의 문도 회선懷善이 뒷일을 잘 수습하여 거의 유감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또 대사가 평생 동안 지은 시문 수백 수를 수집하여 천 리 밖에 있는 나를 방문하여 나에게 서문을 써 주기를 요청하였다. 내가 원고 상자를 열어서 읽어 보니, 시의 품격은 예스럽고 시의 분위기는 굳건하여 그 수준이 영교휴묵보다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소싯적의 작품들은 또 모두 다 대가인 선배들에게 물어서 인정을 받았다. 노년에는 더욱 문장이 웅대하여 고금의 여러 다양한 문장 체제에 능했다. 그가 지은 서문序文ㆍ비문碑文ㆍ기문記文들은 역시 대다수가 호탕하고 거침이 없어 볼만하여 나의 서문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저절로 세상에 전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더 슬프게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느낌이 있으니, 그것은 홀로 비연에 대한 여릉廬陵(구양수)의 감정이나 혜근에 대한 미산眉山(소동파)의 감정일 뿐이겠는가. 끝끝내 슬퍼하고 침묵만을 지켜 회선의 스승에 대한 간절한 뜻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대사의 평생 경력과 두 세대에 걸쳐 다진 우의를 책의 첫머리에 써서 나의 감회를 기록하여 『백곡집』의 서문으로 삼고자 한다. 대사의 이름은 처능處能이고, 백곡白谷은 그의 호이다.임술년(1682, 숙종 8) 중양절에 식암 거사息庵居士 김석주金錫冑 씀. -
008_0307_b_01L演亦老。盖亦有漠然。不知所向之歎焉。
008_0307_b_02L盛衰相嬗。自古已然。則浮世存沒之感。
008_0307_b_03L又烏可旣耶。師嘗爲南漢僧統之任。未
008_0307_b_04L久辭去。時獨徃來於峩嵋聖住之間。至
008_0307_b_05L庚申秋。竟以微疾示寂。噫嘻悲矣。其
008_0307_b_06L徒懷善。收拾後事。殆無遺憾。則復裒
008_0307_b_07L其平生所爲詩文數百首。千里訪余。請
008_0307_b_08L余序之。余乃發其篋而讀之。則其詩格
008_0307_b_09L古氣健。類非沾丐於靈皎休默之餘賸。
008_0307_b_10L而少時之作。又皆就質於諸先軰鉅公
008_0307_b_11L得其印可者。晩益宏肆。能爲古今雜體。
008_0307_b_12L其爲書序碑記之文者。亦多踈宕可觀。
008_0307_b_13L有不待余文。而自可以傳於世者。然余
008_0307_b_14L於此尤有所憯。然感於中者。不特廬陵
008_0307_b_15L之於秘演。眉山之於惠勤而已。又安可
008_0307_b_16L終然泯默。以重孤懷善。爲師勤勤之志
008_0307_b_17L耶。故將師生平終始及兩世相識之誼。
008_0307_b_18L並書諸卷首。以志余感。以爲白谷集序。
008_0307_b_19L師名處能。白谷其號也。
008_0307_b_20L壬戌重陽。息庵居士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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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영교휴묵靈皎休默 : 김석주金錫冑의 『식암선생유고息庵先生遺稿』 권8의 「백곡집서白谷集序」에서는 “奬而進之。 以爲靈皎默休之徒。 不是過也。”라고 하여 ‘靈皎默休’로 되어 있다. 신정申晸의 『분애유고汾厓遺稿』 권10의 「백곡처능사비명병서白谷處能師碑銘幷序」에서는 “遺外迹。 托詩鳴。 悅靈皎休默之名者耶。”라 하여 ‘靈皎休默’으로 되어 있다. 영靈은 영관靈觀, 교皎는 미상, 휴休는 휴정休靜, 묵默은 진묵震默 스님을 말한다고 한다. 『백곡집ㆍ월저당집』(김달진 옮김, 동국역경원, 2002) 참고.
- 2)신 공申公 : 신익성申翊聖(1588∼1644)을 가리킨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군석君奭, 호는 낙전당樂全堂ㆍ동회 거사東淮居士이다. 선조의 사위로 12세에 선조의 딸 정숙 옹주貞淑翁主와 결혼하여 동양위東陽尉에 봉해졌다. 아버지가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이다.
- 3)회상淮上 : 경기도 광주廣州 주위의 두강斗江으로 추정된다. 처능이 지은 「제동회선생문祭東淮先生文」에 “廣陵之東。 斗江之傍。”이란 말이 있다. 경기도 광주의 동쪽, 두강의 옆이란 의미이다. 두강은 광주 주위를 흐르는 강임을 알 수 있다.
- 4)춘소공春沼公 : 신최申最(1619∼1658)를 가리킨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계량季良, 호는 춘소春沼이다. 신익성의 넷째 아들로 낭천 현감狼川縣監을 역임하였으며, 저서로 『예가부설禮家附說』이 있다. 식암息庵 김석주金錫冑의 스승이다.
- 5)정두경鄭斗卿(1597∼1673) : 본관은 온양溫陽이고 자는 군평君平, 호는 동명東溟이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저서로 『동명집東溟集』이 있다.
- 6)벽암碧岩 선사(1575∼1660) : 각성覺性 대사를 말한다. 호가 벽암碧岩이다. 벽암碧嵓으로도 쓴다. 병자호란 때 전국 승병 총사령관인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을 맡아 큰 공로를 세웠다. 제자로 수초守初, 처능이 있으며, 저서로 『도중결의圖中決疑』, 『간화결의看話決疑』가 있다.
- 7)봉황鳳凰 : 뛰어난 인물을 말한다. 여기서는 작고한 신익성을 비유한다.
- 8)용상龍象 : 학덕學德이 높은 스님을 말한다. 여기서는 백곡 대사를 비유한다.
- 9)구양수歐陽脩(1007~1072) : 송宋의 문장가이다.
- 10)혜근惠勤(?~1117) : 송의 고승이다.
- 11)만경曼卿 : 송의 문장가인 석연년石延年(994∼1041)의 자이다. 저서로 『석만경집石曼卿集』이 있다.
- 12)비연秘演 : 송의 고승으로 석만경과 교우가 깊었다. 구양수의 작품 중에 「석비연시집서釋秘演詩集序」, 「제석만경문祭石曼卿文」이 있다.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임재완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