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대각등계집(大覺登階集) / 白谷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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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등계집大覺登階集
백곡집서白谷集序
대사大師는 나이 17, 18세 즈음에 속리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서 여러 이름난 대신과 학식 있는 선비들의 문을 방문하면서 자신이 지은 시문詩文을 폐백 삼아 바쳤다. 당시 선배인 큰 선비들이 대사의 총명함과 영특함을 크게 아껴서 칭찬하고 발전하도록 도와주었으며 영교휴묵靈皎休默1)과 같은 이들도 대사보다는 뛰어나다고 여기지 않았다.
당시 나의 외조부 낙전당樂全堂 신 공申公2)은 조정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회상淮上3)에서 은거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대사는 곧바로 경전經典을 가지고 스님임에도 불구하고 신 공의 넷째 아들인 춘소공春沼公4)과 함께 아침저녁으로 곁에서 신 공을 모셨다. 붓이나 벼루 등을 준비하는 잔일을 하면서 4년을 지냈지만 여전히 게을리하지 않았다. 신 공은 경서經書와 역사서, 『논어』ㆍ『맹자』 같은 우리 유가의 말씀을 가르쳤으며, 한유韓愈와 소동파蘇東坡의 저서까지 두루 언급하였다. 대사는 매일 밤낮으로 열심히 읽고 공부하였으며 독송한 지 오래되어서야 드러내었다. 대사의 문장은 자못 광대무변하였는데 마치 계곡의 물이 쏟아져 나오는 듯하였고, 강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듯하였다.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5)이 더욱 감탄하고 칭찬을 하면서 기재奇才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대사는 자신의 본분사를 아직 철저히 밝히지 못했다고 여겨 지리산 쌍계사에 있는 벽암碧岩 선사6)를 찾아뵈었다. 대사는 학식이 풍부한 선사에게 의지해 참구하여 참된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고 편안히 깨달음의 세상에 머물렀다.
대사는 중년中年이 되어서 서울 주변에 산 적이 있었는데 동명 정두경이 대사에게 시를 보냈다.

徃哭東陽尉       지난번엔 동양위를 곡哭하였더니
今逢白谷師       오늘은 백곡 대사를 만났네.
鳳凰終不返       봉황鳳凰7)은 끝내 돌아오지 않고
龍象亦含悲       용상龍象8) 또한 슬픔을 머금었구나.

대사가 세상에서 존경을 받음이 또한 이와 같았다. 그 뒤에 춘소공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외가의 여러 사촌들도 연이어 집안이 쇠락하였다. 내가 스님을 만날 때마다 문득 나에게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고 매번 마음 아파하였다. 구양수歐陽脩9)가 세상을 떠나자 혜근惠勤10)이 눈물을 흘렸고, 만경曼卿11)이 죽자 비연秘演12) 또한 늙어 버렸으니,

008_0307_a_01L[大覺登階集]

008_0307_a_02L1)白谷集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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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307_a_04L
始師年十七八自離岳走至京師
008_0307_a_05L諸名卿學士之門出詩文以爲贄而一
008_0307_a_06L時先軰鉅公多愛師之聰潁 [1] 夙悟奬而
008_0307_a_07L進之以爲靈皎休默之徒不是過也
008_0307_a_08L時我外王考樂全申公不樂在朝嘗屏
008_0307_a_09L處於淮上師輒持經卷攝緇而從之
008_0307_a_10L與公之季子春沼公朝夕左右供筆硯
008_0307_a_11L之伇關四寒暑猶不怠公仍敎以經
008_0307_a_12L史語孟諸吾儒家言旁及韓蘇等書
008_0307_a_13L遂日夜誦讀久而後乃發之其文頗滂
008_0307_a_14L沛浩漾若峽之決而河之潰也東溟鄭
008_0307_a_15L公斗卿尤歎賞之以爲奇才顧師以
008_0307_a_16L己事未明遠訪碧岩性師於頭流之雙
008_0307_a_17L叅依老宿提唱眞乘居然一曹洞
008_0307_a_18L之世適而中年嘗棲正近圻鄭東溟
008_0307_a_19L以詩贈之曰徃哭東陽尉今逢白谷師
008_0307_a_20L鳳凰終不返龍象亦含悲其爲世所引
008_0307_a_21L重又如此其後春沼公遽下世外氏群
008_0307_a_22L又相繼凋落余每與師相遇師輒
008_0307_a_23L爲之叙說徃故繼之以慨然悱惻夫歐
008_0307_a_24L翁捐館而惠勤流涕曼卿已死而秘

008_0307_b_01L대개 안타깝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탄식이 있는 법이다. 흥망성쇠가 서로 뒤바뀌는 것은 예로부터 본래 그러하니 덧없는 세상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감회는 또 어찌 끝이 있겠는가?
대사는 예전에 남한산성의 승군僧軍 총대장을 역임하였지만 얼마 있다가 사직하였다. 때때로 아미산峨嵋山(충청남도 부여 소재)과 성주산聖住山(충청남도 보령 소재) 사이를 홀로 왕래하다가 경신년(1680, 숙종 6) 가을에 마침내 조금 아픈 기색이 있다가 입적하였으니, 아아 슬프도다. 대사의 문도 회선懷善이 뒷일을 잘 수습하여 거의 유감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또 대사가 평생 동안 지은 시문 수백 수를 수집하여 천 리 밖에 있는 나를 방문하여 나에게 서문을 써 주기를 요청하였다. 내가 원고 상자를 열어서 읽어 보니, 시의 품격은 예스럽고 시의 분위기는 굳건하여 그 수준이 영교휴묵보다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소싯적의 작품들은 또 모두 다 대가인 선배들에게 물어서 인정을 받았다. 노년에는 더욱 문장이 웅대하여 고금의 여러 다양한 문장 체제에 능했다. 그가 지은 서문序文ㆍ비문碑文ㆍ기문記文들은 역시 대다수가 호탕하고 거침이 없어 볼만하여 나의 서문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저절로 세상에 전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더 슬프게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느낌이 있으니, 그것은 홀로 비연에 대한 여릉廬陵(구양수)의 감정이나 혜근에 대한 미산眉山(소동파)의 감정일 뿐이겠는가. 끝끝내 슬퍼하고 침묵만을 지켜 회선의 스승에 대한 간절한 뜻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대사의 평생 경력과 두 세대에 걸쳐 다진 우의를 책의 첫머리에 써서 나의 감회를 기록하여 『백곡집』의 서문으로 삼고자 한다. 대사의 이름은 처능處能이고, 백곡白谷은 그의 호이다.
임술년(1682, 숙종 8) 중양절에 식암 거사息庵居士 김석주金錫冑 씀.

008_0307_b_01L演亦老盖亦有漠然不知所向之歎焉
008_0307_b_02L盛衰相嬗自古已然則浮世存沒之感
008_0307_b_03L又烏可旣耶師嘗爲南漢僧統之任
008_0307_b_04L久辭去時獨徃來於峩嵋聖住之間
008_0307_b_05L庚申秋竟以微疾示寂噫嘻悲矣
008_0307_b_06L徒懷善收拾後事殆無遺憾則復裒
008_0307_b_07L其平生所爲詩文數百首千里訪余
008_0307_b_08L余序之余乃發其篋而讀之則其詩格
008_0307_b_09L古氣健類非沾丐於靈皎休默之餘賸
008_0307_b_10L而少時之作又皆就質於諸先軰鉅公
008_0307_b_11L得其印可者晩益宏肆能爲古今雜體
008_0307_b_12L其爲書序碑記之文者亦多踈宕可觀
008_0307_b_13L有不待余文而自可以傳於世者然余
008_0307_b_14L於此尤有所憯然感於中者不特廬陵
008_0307_b_15L之於秘演眉山之於惠勤而已又安可
008_0307_b_16L終然泯默以重孤懷善爲師勤勤之志
008_0307_b_17L故將師生平終始及兩世相識之誼
008_0307_b_18L並書諸卷首以志余感以爲白谷集序
008_0307_b_19L師名處能白谷其號也
008_0307_b_20L壬戌重陽息庵居士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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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영교휴묵靈皎休默 : 김석주金錫冑의 『식암선생유고息庵先生遺稿』 권8의 「백곡집서白谷集序」에서는 “奬而進之。 以爲靈皎默休之徒。 不是過也。”라고 하여 ‘靈皎默休’로 되어 있다. 신정申晸의 『분애유고汾厓遺稿』 권10의 「백곡처능사비명병서白谷處能師碑銘幷序」에서는 “遺外迹。 托詩鳴。 悅靈皎休默之名者耶。”라 하여 ‘靈皎休默’으로 되어 있다. 영靈은 영관靈觀, 교皎는 미상, 휴休는 휴정休靜, 묵默은 진묵震默 스님을 말한다고 한다. 『백곡집ㆍ월저당집』(김달진 옮김, 동국역경원, 2002) 참고.
  2. 2)신 공申公 : 신익성申翊聖(1588∼1644)을 가리킨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군석君奭, 호는 낙전당樂全堂ㆍ동회 거사東淮居士이다. 선조의 사위로 12세에 선조의 딸 정숙 옹주貞淑翁主와 결혼하여 동양위東陽尉에 봉해졌다. 아버지가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이다.
  3. 3)회상淮上 : 경기도 광주廣州 주위의 두강斗江으로 추정된다. 처능이 지은 「제동회선생문祭東淮先生文」에 “廣陵之東。 斗江之傍。”이란 말이 있다. 경기도 광주의 동쪽, 두강의 옆이란 의미이다. 두강은 광주 주위를 흐르는 강임을 알 수 있다.
  4. 4)춘소공春沼公 : 신최申最(1619∼1658)를 가리킨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계량季良, 호는 춘소春沼이다. 신익성의 넷째 아들로 낭천 현감狼川縣監을 역임하였으며, 저서로 『예가부설禮家附說』이 있다. 식암息庵 김석주金錫冑의 스승이다.
  5. 5)정두경鄭斗卿(1597∼1673) : 본관은 온양溫陽이고 자는 군평君平, 호는 동명東溟이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저서로 『동명집東溟集』이 있다.
  6. 6)벽암碧岩 선사(1575∼1660) : 각성覺性 대사를 말한다. 호가 벽암碧岩이다. 벽암碧嵓으로도 쓴다. 병자호란 때 전국 승병 총사령관인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을 맡아 큰 공로를 세웠다. 제자로 수초守初, 처능이 있으며, 저서로 『도중결의圖中決疑』, 『간화결의看話決疑』가 있다.
  7. 7)봉황鳳凰 : 뛰어난 인물을 말한다. 여기서는 작고한 신익성을 비유한다.
  8. 8)용상龍象 : 학덕學德이 높은 스님을 말한다. 여기서는 백곡 대사를 비유한다.
  9. 9)구양수歐陽脩(1007~1072) : 송宋의 문장가이다.
  10. 10)혜근惠勤(?~1117) : 송의 고승이다.
  11. 11)만경曼卿 : 송의 문장가인 석연년石延年(994∼1041)의 자이다. 저서로 『석만경집石曼卿集』이 있다.
  12. 12)비연秘演 : 송의 고승으로 석만경과 교우가 깊었다. 구양수의 작품 중에 「석비연시집서釋秘演詩集序」, 「제석만경문祭石曼卿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