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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237_a_01L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 ✽벽암 각성碧巖覺性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 서문대개 길례吉禮(관례·혼례 등)는 조금 가볍게 여겨도 되지만 흉례凶禮(상례)는 더욱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미 이가 나고 머리카락이 난 사람1)이라면 어떻게 한결같이 정을 잊고 그 예를 끊어 버릴 수 있겠는가? 아무리 우리 종파가 적멸寂滅2)로 즐거움을 삼고 생사를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여긴다지만, 바른 비니毘尼(律)를 따른 후에야 법칙에 부합하게 될 것이다.『석씨상의釋氏喪儀』와 같은 책은 우리나라(東國)에는 본래 그런 책이 없었으니, 석씨의 집안에서 덕 높으신 스님이 돌아가시면 흉례를 치름에 있어서 어긋나는 일이 많았다. 감실龕室·당당當堂·애읍哀泣의 경우는 세속과 똑같이 하였는데, 이미 좋은 방법을 만들어 낼 길도 없고 게다가 옛 법을 따르는 방법조차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그리하여 대대로 내려오면서 전례前例만을 답습하는 것으로 실로 슬픔을 견뎌 내는 역할을 해 왔다. 아울러 구조口弔와 제문祭文에 대해서는 말은 풍성하지만 상고할 길이 없고, 제복制服의 경중도 규범에 맞는 것이 없으며, 수답酬答하는 제서題書에 있어서도 높고 낮은 신분을 다하지 못하였으며 사유闍維(다비)와 도종導從3)에 있어서도 길례와 흉례가 서로 뒤섞여 있었다. 내가 이를 늘 마음에 언짢게 생각해 오던 차에 근래 자각慈覺 대사의 『선원청규禪院淸規』와 응지應之 대사의 『오삼집五杉集』, 그리고 『석씨요람釋氏要覽』을 얻어 모조리 열람해 보니, 그 가운데 가장 귀감龜鑑이 되는 것은 상례喪禮 한 의식으로 매우 자세하였으나 다만 그것은 중국에서 숭상하는 법으로 동방의 예와는 걸맞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그 요점만을 초출抄出하여 상·하 두 편으로 나누어서 초학初學들에게 부쳐 주노라.때는 대명大明 숭정崇禎 병자丙子년(1636) 가을날 벽암碧巖 장로가 화엄사 장실丈室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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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237_a_01L[釋門喪儀抄]
008_0237_a_02L1)釋門喪儀抄序
008_0237_a_03L
008_0237_a_04L夫吉禮且輕。凶禮尤重。旣含齒戴髮。
008_0237_a_05L豈可一槩忘情而絶其禮哉。雖我宗以
008_0237_a_06L寂滅爲樂。生死是常。隨方毗尼。後合其
008_0237_a_07L則。如釋氏喪儀。東國素無其本。釋門
008_0237_a_08L上德歸寂。凶禮多違。龕室當堂哀泣
008_0237_a_09L同俗。旣無生善之路。且虧遵古之道。
008_0237_a_10L遆相㳂襲。實所堪傷。兼迺口吊祭文。
008_0237_a_11L言多無稽。制服輕重。罔所合䂓。至於
008_0237_a_12L酬答書題。匪窮高下。闍維導從。凶吉
008_0237_a_13L相叅。余每以介懷。近得慈覺大師禪院
008_0237_a_14L淸䂓。應之大師五杉集釋氏要覽讀之。
008_0237_a_15L其中最爲龜鑑者。喪禮一儀甚詳。而但
008_0237_a_16L是中國所尙之法。不合東方之禮故。抄
008_0237_a_17L出其要。分爲上下篇。以寄初學云。
008_0237_a_18L旹大明崇禎丙子秋。日。碧巖長老。書
008_0237_a_19L于華嚴寺丈室中。
008_0237_a_20L{底}澄光寺開板本。(順治十四年白谷處能書記。
008_0237_a_21L서울大學校所藏百愚集合綴本)。{甲}同澄光寺
008_0237_a_22L開板本(東國大學校所藏。小有加筆處故別爲甲
008_0237_a_23L本)。
- 1)이가 나고~난 사람 : 원문의 ‘함치대발含齒戴髮’은 입속에 이가 나 있고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나 있다는 말로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 2)적멸寂滅 : 번뇌煩惱의 경지를 벗어나 생사生死의 괴로움을 끊음을 말한다.
- 3)도종導從 : 행렬의 앞과 뒤에서 수행하는 사람. 도導는 앞에 서는 사람을, 종從은 뒤에 따라가는 사람을 이른다.
- 1){底}澄光寺開板本。(順治十四年白谷處能書記。서울大學校所藏百愚集合綴本)。{甲}同澄光寺開板本(東國大學校所藏。小有加筆處故別爲甲本)。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김두재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