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 / 釋門喪儀抄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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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
벽암 각성碧巖覺性
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 서문
대개 길례吉禮(관례·혼례 등)는 조금 가볍게 여겨도 되지만 흉례凶禮(상례)는 더욱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미 이가 나고 머리카락이 난 사람1)이라면 어떻게 한결같이 정을 잊고 그 예를 끊어 버릴 수 있겠는가? 아무리 우리 종파가 적멸寂滅2)로 즐거움을 삼고 생사를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여긴다지만, 바른 비니毘尼(律)를 따른 후에야 법칙에 부합하게 될 것이다.
『석씨상의釋氏喪儀』와 같은 책은 우리나라(東國)에는 본래 그런 책이 없었으니, 석씨의 집안에서 덕 높으신 스님이 돌아가시면 흉례를 치름에 있어서 어긋나는 일이 많았다. 감실龕室·당당當堂·애읍哀泣의 경우는 세속과 똑같이 하였는데, 이미 좋은 방법을 만들어 낼 길도 없고 게다가 옛 법을 따르는 방법조차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대대로 내려오면서 전례前例만을 답습하는 것으로 실로 슬픔을 견뎌 내는 역할을 해 왔다. 아울러 구조口弔와 제문祭文에 대해서는 말은 풍성하지만 상고할 길이 없고, 제복制服의 경중도 규범에 맞는 것이 없으며, 수답酬答하는 제서題書에 있어서도 높고 낮은 신분을 다하지 못하였으며 사유闍維(다비)와 도종導從3)에 있어서도 길례와 흉례가 서로 뒤섞여 있었다. 내가 이를 늘 마음에 언짢게 생각해 오던 차에 근래 자각慈覺 대사의 『선원청규禪院淸規』와 응지應之 대사의 『오삼집五杉集』, 그리고 『석씨요람釋氏要覽』을 얻어 모조리 열람해 보니, 그 가운데 가장 귀감龜鑑이 되는 것은 상례喪禮 한 의식으로 매우 자세하였으나 다만 그것은 중국에서 숭상하는 법으로 동방의 예와는 걸맞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그 요점만을 초출抄出하여 상·하 두 편으로 나누어서 초학初學들에게 부쳐 주노라.
때는 대명大明 숭정崇禎 병자丙子년(1636) 가을날 벽암碧巖 장로가 화엄사 장실丈室에서 쓰다.


008_0237_a_01L[釋門喪儀抄]

008_0237_a_02L1)釋門喪儀抄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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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吉禮且輕凶禮尤重旣含齒戴髮
008_0237_a_05L豈可一槩忘情而絶其禮哉雖我宗以
008_0237_a_06L寂滅爲樂生死是常隨方毗尼後合其
008_0237_a_07L如釋氏喪儀東國素無其本釋門
008_0237_a_08L上德歸寂凶禮多違龕室當堂哀泣
008_0237_a_09L同俗旣無生善之路且虧遵古之道
008_0237_a_10L遆相㳂襲實所堪傷兼迺口吊祭文
008_0237_a_11L言多無稽制服輕重罔所合䂓至於
008_0237_a_12L酬答書題匪窮高下闍維導從凶吉
008_0237_a_13L相叅余每以介懷近得慈覺大師禪院
008_0237_a_14L淸䂓應之大師五杉集釋氏要覽讀之
008_0237_a_15L其中最爲龜鑑者喪禮一儀甚詳而但
008_0237_a_16L是中國所尙之法不合東方之禮故
008_0237_a_17L出其要分爲上下篇以寄初學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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旹大明崇禎丙子秋碧巖長老
008_0237_a_19L于華嚴寺丈室中

008_0237_a_20L{底}澄光寺開板本(順治十四年白谷處能書記
008_0237_a_21L서울大學校所藏百愚集合綴本){甲}同澄光寺
008_0237_a_22L開板本(東國大學校所藏小有加筆處故別爲甲
008_0237_a_23L本)
  1. 1)이가 나고~난 사람 : 원문의 ‘함치대발含齒戴髮’은 입속에 이가 나 있고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나 있다는 말로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2. 2)적멸寂滅 : 번뇌煩惱의 경지를 벗어나 생사生死의 괴로움을 끊음을 말한다.
  3. 3)도종導從 : 행렬의 앞과 뒤에서 수행하는 사람. 도導는 앞에 서는 사람을, 종從은 뒤에 따라가는 사람을 이른다.
  1. 1){底}澄光寺開板本。(順治十四年白谷處能書記。서울大學校所藏百愚集合綴本)。{甲}同澄光寺開板本(東國大學校所藏。小有加筆處故別爲甲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