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삼로행적(三老行蹟) / 三老行蹟

ABC_BJ_H0145_T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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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로행적三老行蹟
삼로행적三老行蹟
휴정休靜
이상현 (역)
총목차總目次
벽송당대사 행적碧松堂大師行蹟
부용당선사 행적芙蓉堂先師行蹟
경성당선사 행적敬聖堂禪師行蹟
벽송당대사 행적碧松堂大師行蹟
대사大師의 법휘法諱는 지엄智嚴이요, 호號는 야로埜老이며, 거처하는 당호堂號는 벽송碧松이다. 속성俗姓은 송씨宋氏로, 부친의 이름은 복생福生이며 부안扶安 사람이다. 모친 왕씨王氏가 한 범승梵僧이 예불禮佛을 하며 기숙寄宿하는 꿈을 꾸고 임신을 하여 천순天順 8년(1464, 세조 10) 갑신 3월 15일에 대사를 낳았다.
대사의 사람됨을 보면, 골상骨相이 기이하게 빼어나고, 웅건雄健한 기상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다. 어려서부터 독서와 검술을 좋아하였으며, 특히 병서兵書를 선호하였다. 홍치弘治 4년(1491, 성종 22) 신해 5월에 여진족女眞族이 북방을 침입하여 진장鎭將1)을 죽이자, 성종대왕成宗大王이 허종許琮에게 명하여 군사 2만을 거느리고 토벌하게 하였다. 대사도 이때 칼을 쥐고 종군從軍하여 채찍을 들고 한 번 휘둘러서 크게 전공戰功을 세웠는데, 정벌이 끝나고 나서 한숨을 쉬며 탄식하기를 “대장부가 이 세상에 태어나 심지心地를 간수하지는 않고 괜히 고생하며 치달리다니, 비록 전공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지 허명虛名을 숭상한 것일 뿐이다.”라고 하고는, 즉시 옷깃을 떨치고 계룡산鷄龍山 와초암臥草庵에 들어가 조징대사祖澄大師를 참알參謁한 뒤에 관직을 버리고 삭발하였다. 이때 대사의 나이 28세였다.
이로부터 지행志行을 분발하며 즐겨 선정禪定을 닦았으니, 이는 마치 수隋나라 낭장郎將 지암智巖2)의 무리와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선지식善知識을 찾아뵙고 멀리 풍유風猷를 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연희衍熙 교사敎師를 찾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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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_0752_b_02L1)三老行蹟

007_0752_b_03L

007_0752_b_04L總目次

007_0752_b_05L
碧松堂大師行蹟

007_0752_b_06L芙蓉堂先師行蹟

007_0752_b_07L敬聖堂禪師行蹟

007_0752_b_08L

007_0752_b_09L碧松堂2)大師行3)

007_0752_b_10L
4)大師法諱智嚴號埜老所居堂曰碧
007_0752_b_11L俗姓宋氏父曰福生扶安人也
007_0752_b_12L曰王氏5)6)夢一梵僧設禮7)寄宿
007_0752_b_13L而有娠以天順八年甲申三月十五日
007_0752_b_14L8)生焉爲人骨相奇秀雄武過人幼好
007_0752_b_15L9)10)善將鑑弘治四年辛亥五月
007_0752_b_16L野人寇朔方殺鎭將成宗大王命許
007_0752_b_17L琮帥師二萬討之師亦仗*劒從之
007_0752_b_18L鞭一揮大竪戰功焉旣罷征喟然嘆曰
007_0752_b_19L大丈夫生斯世也不守心地役役馳勞
007_0752_b_20L縱得汗馬之功徒尙虗名耳即拂衣
007_0752_b_21L入鷄龍山11)上草庵叅祖澄大師投簪
007_0752_b_22L12)時年二十八矣自爾志行卓厲
007_0752_b_23L樂修禪定若隋郞將智13)巖之儔焉
007_0752_b_24L日思欲叅禀遠挹風猷先訪衍熈敎師

007_0752_c_01L원돈圓頓의 교의敎義에 대해서 묻고, 그다음에는 정심正心 선사를 찾아가서 달마達摩가 서쪽에서 온 밀지密旨를 물었는데, 모두 현묘玄妙한 도리를 밝혀주었으므로 깨달은 바가 많았다.
정덕正德 무진년(1508, 중종 3) 가을에 금강산金剛山 묘길상妙吉祥에 들어가서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을 보다가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의 화두話頭에 의심을 두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칠통漆桶을 깨뜨렸다. 또 『고봉원묘선사어록高峰原妙禪師語錄』을 보다가 “계교하는 알음알이를 다른 세계로 날려 보내야 한다.(颺在他方)3)”라는 대목에 이르러

007_0752_c_01L14)圓頓敎義次尋正心禪師15)西來
007_0752_c_02L密旨俱振玄16)多所悟17)18)正德戊
007_0752_c_03L辰秋入金剛山妙吉祥看大慧語錄
007_0752_c_04L疑着狗子無佛性話不多時日打破漆
007_0752_c_05L又看高峯語錄至颺在他方之語
007_0752_c_06L{底}刊年未詳本(東國大學校所藏卷末附原人
007_0752_c_07L論) {甲}隆慶三年妙香山普賢寺開刊二老行蹟
007_0752_c_08L(高麗大學校所藏此本內容則碧松堂埜老行錄
007_0752_c_09L并埜老頌及慶聖堂休翁行錄){乙}康熙二十九年
007_0752_c_10L慶尙道蔚山雲興寺開刊二老行蹟(東國大學校
007_0752_c_11L所藏此本內容則碧松堂埜老行錄并埜老頌
007_0752_c_12L慶聖堂休翁行錄與慶聖堂休翁行錄後跋){丙}高
007_0752_c_13L麗國光明山大法住寺開刊本(서울大學校所藏
007_0752_c_14L刊年未詳此所集內容則眞一編碧松堂埜老行
007_0752_c_15L狀ㆍ碧松堂埜老集警誡文訓蒙要抄金沙論)
007_0752_c_16L{丁}崇禎三年龍腹寺版本(東國大學校所藏
007_0752_c_17L虛集七卷本之卷五所載該當文) {戊}刊年未詳
007_0752_c_18L妙香藏版本(東國大擧校所藏淸虛集四卷本之
007_0752_c_19L卷三所載該當文) {己}刊年未詳本(延世大學校
007_0752_c_20L所藏慶聖堂休翁行錄單篇)題名及目次
007_0752_c_21L者補入
「大師」作「埜老」{甲}{乙}{丙}ㆍ無有{丁}{戊}
007_0752_c_22L「蹟」作「錄」{甲}{乙}ㆍ作「狀」{丙}ㆍ作「跡」{丁}
007_0752_c_23L「大」右側行間有如下文「門人眞一編判禪敎兩
007_0752_c_24L宗事都大禪師兼奉恩寺住持休靜撰」{丙}ㆍ無有
007_0752_c_25L{丙}
「王」無有{丁}{戊}「夢」下有「見」{丙}
007_0752_c_26L「寄宿」無有{丙}
「生焉」作「誕生」{丙}「劔」
007_0752_c_27L作「釼」{甲}{乙}{丙}{丁}次同
「善」作「譱」{甲}{乙}
007_0752_c_28L「上」作「臥」{甲}{乙}{丙}
「䰂」作「髮」{丁}{戊}「巖」
007_0752_c_29L作「嚴」{丁}{戊}
「圓頓敎」作「楞嚴深」{甲}{乙}{丙}
007_0752_c_30L「西來」作「傳燈」{甲}{乙}{丙}「妙」作「微」{甲}{乙}
007_0752_c_31L{丙}ㆍ作「竗」{丁}{戊}
「益」下有「數五年間或之
007_0752_c_32L楓嶽」{甲}{乙}{丙}
「正德…白雲」百六十字無有
007_0752_c_33L{甲}{乙}{丙}

007_0753_a_01L예전의 지해知解를 모두 깨끗이 씻어버렸다. 이런 연고로 대사가 고봉과 대혜의 가풍을 평생 발휘하게 된 것이었다.
대혜大慧 화상은 육조六祖의 17대代 적손嫡孫이고, 고봉高峰 화상은 임제臨濟의 18대 적손이다. 아, 대사가 해외海外의 사람으로서 5백 년 전의 종파宗派를 은밀히 이었으니, 이는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무리가 천 년 뒤에 태어나서 멀리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뒤를 이은 것과 비슷하다. 그러고 보면 유교儒敎나 불교佛敎를 막론하고 도道를 전하는 것은 동일하다고 하겠다.
대사는 신미년(1511, 중종 6) 봄에 용문산龍門山에 들어가서 한 차례 결하結夏4)하였고, 계유년(1513, 중종 8) 봄에는 오대산五臺山에 들어가서 한 차례 결하하였다. 그리고 그 뒤로는 백운산白雲山에 가기도 하고 능가산楞伽山에 가기도 하는 등 제산諸山을 유희遊戱하면서 일정한 거처가 없었으니, 그야말로 천지天地 사이에 소요逍遙하는 일대一大 한도인閑道人5)이었다.
그러다가 경진년(1520, 중종 15) 3월에 지리산智異山에 들어가 초암草庵에 거하면서부터는 성도性度가 더욱 넓어지고 풍감風鑑이 더욱 밝아졌다. 몸에는 두 벌의 옷이 없었고, 하루에 두 번 먹지 않았으며, 문을 닫고 고요히 지낼 뿐 인사人事를 닦지 않았다. 인사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 아첨하는 일이 없었고, 세상에 아첨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佛法을 값싸게 팔지 않았으며, 불법을 값싸게 팔지 않았기 때문에 선학禪學을 겉으로 배우는 자들이 대사의 풍모를 보고는 거만倨慢 하다면서 많이 비난하였다. 옛사람이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를 알겠느냐?6)”라고 하였는데, 바로 이를 두고 말한 것이라고 하겠다.
대사가 하루는 일선장로一禪長老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이미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면, 진망眞妄을 여의고 명상名相이 끊어져서 정결貞潔하고 쇄락灑落할 터이니, 선禪이라고 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만약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모두 여래如來의 실상實相이요, 견문각지見聞覺知가 반야般若의 영광靈光 아님이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또한 천마天魔의 종족種族이요 외도外道의 사종邪宗이라고 할 터이니, 어떻게 일미선一味禪이 되겠는가.”라고 하고는 불자拂子를 들어 한 번 탁 치고, 시자侍者를 불러 차茶를 가져오게 한 뒤에 한참 있다가 말하였다.

萬片落花隨水去  일만 조각 꽃잎은 물 따라 흘러가고
一聲長笛出雲來  긴 피리 한 소리 구름 밖에서 들려오네

또 법준선자法峻禪子에게 게송偈頌으로 답하였다.

逢君贈與莫鎁劔  그대를 만나 막야의 명검을 주노니

007_0753_a_01L頓落前解是故師之平生所發揮者
007_0753_a_02L高峰大慧之風也大慧和尙六祖十七
007_0753_a_03L代嫡孫也高峰和尙臨濟十八代嫡孫
007_0753_a_04L師以海外之人密嗣五百年前
007_0753_a_05L宗派猶程朱1)生乎千載之下遠承
007_0753_a_06L孔孟之緖也儒也釋也傳道則一也
007_0753_a_07L師辛未春入龍門山結二夏癸酉春入
007_0753_a_08L五臺山結一夏厥後或之白雲或之楞
007_0753_a_09L遊戱諸山居無定止2)逍遙然天地
007_0753_a_10L間一大閑道人也曁庚辰三月3)4)
007_0753_a_11L異山5)棲身草庵性度益弘風鑑益朗
007_0753_a_12L身無再衣日不再食杜門㝠寂不修
007_0753_a_13L6)不修人事故不謟於世不謟於
007_0753_a_14L世故不賤賣佛法不賤賣佛法故
007_0753_a_15L叅禪學者望崖而退多以倨慢譏之
007_0753_a_16L古人云非魚安知魚此之謂也7)師一
007_0753_a_17L顧一禪長老曰旣是一也離眞妄
007_0753_a_18L絕名相乾乾淨淨灑灑落落喚什麽
007_0753_a_19L作禪若言萬象森羅悉是如來實相
007_0753_a_20L見聞覺知無非般若靈光猶是天魔種
007_0753_a_21L外道邪宗怎生是一味禪拈拂子
007_0753_a_22L摵一摵喚侍者點茶來良久云萬片
007_0753_a_23L落花隨水去一聲長笛出雲來又寶法
007_0753_a_24L峻禪子偈曰逢君贈與莫鎁8)勿使

007_0753_b_01L勿使鋒鋩生綠苔  칼날에 푸른 이끼 돋지 않게 하라
五蘊山前如見賊  오온의 산 앞에선 도적을 본 것처럼 하여
一揮能斬箇箇來  한 번 휘둘러 모조리 베어버릴지어다

대사는 때때로 교敎의 혀(舌)를 가지고 대해大海에 파란波瀾을 일으켰고, 선禪의 칼(劍)을 가지고 뭇 여우(野狐)의 정령精靈을 베어버렸으니, 종문宗門을 자유자재로 교화한 그 능력은 실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점이 있었다.
가정嘉靖 갑오년(1534, 중종 29) 겨울에 여러 문인들을 수국암壽國庵에 모이게 한 뒤에 『법화경法華經』을 강론하다가 「방편품方便品」에 이르러 홀연히 크게 탄식하면서 이르기를 “중생 스스로 광명을 등지고서 윤회輪廻의 고통을 감수한 것이 오래되었으므로, 수고스럽게도 저 세존께서 한번 동방에 빛을 비추어 주셨다. 그러나 입이 닳도록 말씀하신 것은 모두 중생을 위해 방편方便을 세우신 것이요 실상實相의 법문은 아니니, 대개 제법諸法의 적멸상寂滅相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여러분이 만약 부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것을 믿고서 자신의 심지心地를 곧장 깨우쳐 들어간다면, 보배 창고(寶藏)를 열고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노승老僧도 여러분을 위해 적멸상을 보일 것이니, 여러분은 밖으로 구하지 말고 진중히 노력할지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시자侍者를 불러 차를 가져오게 해서 차를 마신 뒤에 문을 닫고 단정히 앉아 한참 동안 조용히 있었는데, 창을 열고 살펴보니 벌써 입적入寂한 상태였다. 이때가 바로 11월 초하룻날 진시辰時였다. 안색顔色도 변하지 않았고, 굴신屈伸도 살아 있을 때와 같았으며, 다비茶毘를 행하던 밤에는 상서로운 빛이 하늘을 비췄고, 재齋를 올리던 아침에는 채색 구름이 하늘에 어렸다. 정골頂骨 한 조각과 수많은 사리舍利가 나왔는데 진주珍珠처럼 영롱하였다. 제자인 장로長老 숭인崇仁과 법사法師 설은雪訔과 법사 원오圓悟와 선덕禪德 진일眞一의 무리가 석종石鍾을 조성하여 의신동義神洞 남쪽 기슭에 봉안하였다. 또 대사가 노래한 가송歌頌 약간 편을 예전에 잃어버렸는데, 지금 겨우 50수首를 얻어서 간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장이란 도인道人의 여사餘事로서, 누가 요청하면 별로 개의치 않고 붓 가는 대로 쓴 것이니, 이는 마치 형산荊山의 사람이 옥돌을 던져서 까치를 잡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대사의

007_0753_b_01L鋒鋩生綠苔五蘊山前如見賊一揮能
007_0753_b_02L斬箇箇來師有時以敎舌飜大海之波
007_0753_b_03L有時以禪*劔斬群狐之精靈化門
007_0753_b_04L舒卷實不可思議9)10)靖甲午冬
007_0753_b_05L命諸門人會壽國庵講法華經至方
007_0753_b_06L便品忽然太息曰衆生自蔽光明
007_0753_b_07L受輪轉久矣勞他世尊一光東照
007_0753_b_08L於苦口開示皆爲衆生設方便爾
007_0753_b_09L實法也盖諸法寂滅相不可以言宣
007_0753_b_10L今汝等諸人若信佛無言直下悟入自
007_0753_b_11L家心地則可謂開寶11)藏報佛恩也
007_0753_b_12L日老僧亦爲諸人示寂滅相去也
007_0753_b_13L人莫向外求努力珎重遂喚侍者
007_0753_b_14L茶來啜茶訖閉門端坐良久默然
007_0753_b_15L12)窓視之則已入寂矣乃十一月初一
007_0753_b_16L日辰時也顏色不變屈伸如生茶毗
007_0753_b_17L之夜祥光洞天薦齋之晨瑞雲盤空
007_0753_b_18L頂骨一片舍利▼(粘/(人+㣺))▼(粘/(人+㣺))瑩若眞珠焉
007_0753_b_19L13)長老崇仁14)法師雪訔法師圓悟
007_0753_b_20L禪德15)眞一16)之徒鑴石鍾以安于義神
007_0753_b_21L17)之南麓又師所詠歌頌若干篇曾散
007_0753_b_22L失之今僅得18)五十首刊行焉然文章
007_0753_b_23L乃道人之餘事凡有請則不經意而信
007_0753_b_24L19)筆揮之若荊山之人以玉抵鵲也

007_0753_c_01L세수世壽는 81세7)요, 법랍法臘은 44세이다. 아, 섶의 불은 끝나는 때가 없고,8)식성識性은 멈추는 때가 없다. 겁해劫海는 망망茫茫하고 진적陳迹은 묘묘杳杳하니, 어찌 연월年月을 기록해야만 하겠는가. 대저 이미 지나간 것 모두가 환화幻化라고 한다면, 앞으로 올 것만 유독 환화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이 모두 환화장엄幻化莊嚴으로 환화중생幻化衆生에게 개시開示하였고 보면, 부처나 중생이나 역시 하나의 환화일 뿐이니, 어찌 유독 우리 대사만 그렇다고 하겠는가. 비록 그렇긴 하지만, 환성幻性은 환幻이 아니니, 이 글을 보는 자들은 소홀히 말지어다.

 가정嘉靖 39년(1560, 명종 15) 5월 어느 날에 두류산인頭流山人 휴정休靜은 삼가 짓다.

진찬眞賛은 다음과 같다.


007_0753_c_01L20)八十一臘四十四薪火無窮
007_0753_c_02L識性不停21)劫海茫茫陳迹杳杳何年
007_0753_c_03L月而可記乎大抵已徃者悉皆幻化
007_0753_c_04L則方來者獨非幻化耶三世諸佛
007_0753_c_05L以幻化莊嚴開示幻化衆生則佛與衆
007_0753_c_06L亦是一幻化耳22)何獨吾師也雖然
007_0753_c_07L幻性非幻覽者毋23)24)嘉靖三十九
007_0753_c_08L年五月25)26)頭流山人休靜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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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眞賛曰

007_0753_c_10L「軰」作「子」{丁}{戊}「逍遙…三月」十七字無有
007_0753_c_11L{甲}{乙}{丙}
「入」上有「厥後」{甲}{乙}{丙}「智」作
007_0753_c_12L「知」{丙}
「棲身草庵」無有{甲}{乙}{丙}「事」下
007_0753_c_13L有「其儀範緇林者可謂一時之最而後學之宗也然」{甲}{乙}{丙}

007_0753_c_14L「師一…議也」百六十八字無
007_0753_c_15L有{甲}{乙}{丙}
「劔」作「釼」{丁}{戊}次同「也」下
007_0753_c_16L有如下文「若導初學則先以禪源集別行錄
007_0753_c_17L如實知見次以禪要語錄(丙本作書狀) 掃除
007_0753_c_18L知解之病而指示活路也凡接人機鋒 大略若
007_0753_c_19L有時與門人雪誾靈觀圓悟一禪等六七十之
007_0753_c_20L講諸大乘經論則圓音落落若飜大海之波
007_0753_c_21L瀾焉」{甲}{乙}{丙}
「靖」下有「十三年」{甲}{乙}{丙}
007_0753_c_22L「藏」下有「而」{丙}
「窓」作「牎」{甲}{乙}{丙}「長
007_0753_c_23L老」無有{甲}{乙}{丙}
「法師…禪德」十字無有{甲}{乙}
007_0753_c_24L{丙}
「眞一」作「一眞」{丁}{戊}「之徒」無有{甲}
007_0753_c_25L{乙}{丙}
「之」無有{甲}{乙}{丙}「五」作「二」{甲}{乙}
007_0753_c_26L{丙}
「筆」作「茟」{甲}{乙}「八」作「七」{甲}{乙}{丙}
007_0753_c_27L{丁}{戊}
「劫」上有「則」{甲}{乙}{丙}「何」作「非」
007_0753_c_28L{丙}
「忽」下有「於是乎撰」{丙}「嘉靖…謹
007_0753_c_29L撰」十七字無有{丙}
「日」無有{甲}{乙}「頭流山
007_0753_c_30L人」無有而有文如下「上澣判敎宗事都大師兼
007_0753_c_31L判禪宗事都大禪師行奉恩寺住持」{甲}{乙}
「眞」
007_0753_c_32L上有「碧松堂嚴長老」{甲}{乙}ㆍ上有「寫師」而又其
007_0753_c_33L下有「又」{丙}ㆍ此眞賛文甲乙兩本在卷頭

007_0754_a_01L震旦之皮     진단의 가죽이요
天竺之骨     천축의 뼈로다
華月夷風     중화의 달과 동이의 바람이여
如動生髮     타고난 머리칼이 나부끼듯 하도다
昏衢一燭     어두운 거리에 있는 하나의 촛불이요
法海孤舟     불법의 바다에 있는 외로운 배로다
嗚呼不泯     아, 없어지지 않으리라
萬歲千秋     천추만세토록
부용당선사 행적芙蓉堂先師行蹟
선사先師는 영남嶺南 진주晋州 사람이다. 휘諱는 영관靈觀이고, 호號는 은암선자隱庵禪子이며, 혹은 연선도인蓮船道人이라고 한다. 몸은 이 세상에 부치고 있어도 생각은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있기 때문에 부용당芙蓉堂이라고 칭하였다. 집안은 대대로 천인賤人으로서 생활은 부유했으나 예법禮法은 없었다. 선사는 성화成化 을사년(1485, 성종 16) 7월 7일에 태어났다.
나이 8세가 되었을 적에 부친이 그를 데리고 낚시를 하면서 고기 망태를 맡겼는데, 생명이 붙어 있는 것들을 가려서 모두 놓아주자, 부친이 화가 많이 나서 매질을 하였다. 이에 선사가 절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사람이나 물고기나 목숨을 아끼는 것은 똑같고 고통을 참는 것도 똑같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하니, 부친이 이 말을 듣고서 화를 풀었다.
집 근처에 신룡神龍의 굴이 있어서 구름이 울 밖으로 피어오르고 음악이 빈집에서 흘러나왔으므로, 부로父老들이 서로 전하기를 “이것은 칩룡蟄龍이 풍악을 울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선사가 지팡이로 상을 두드리면 그 음악 소리가 홀연히 그치곤 하였다. 또 때때로 용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비늘과 갈기가 햇빛에 반짝이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했는데, 선사가 머리를 들고 한 번 고함을 치면 용이 홀연히 사라졌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기동奇童이라고 불렀다.
또 언젠가는 이승異僧이 찾아와서 부친에게 이르기를 “이 아이는 출세간出世間의 보배로서 속세에 있을 몸이 아니니 출가出家시키십시오.”라고 하고는 조금 뒤에 홀연히 사라지기도 하였다. 선사는 유년 시절부터 돌을 세워 부처를 만들기도 하고, 모래를 바쳐 불공佛供을 올리기도 하였으며, 소나무 아래를 암자로 삼고서 눈을 감고 단정히 앉아 서쪽으로 해가 기우는 것도 알지 못하였다.
이처럼 날마다 세상에 염증을 내고 불문佛門을 깊이 동경하다가 나이 13세 되던 정사년(1497, 연산군 3) 가을 깊은 밤중에 사람이 잠든 틈을 타서 몸을 빼어 문을 빠져나온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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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旦之皮天笁之骨

007_0754_a_02L華月夷風如動生髮

007_0754_a_03L昏衢一燭法海孤舟

007_0754_a_04L嗚呼不泯萬歲千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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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_0754_a_06L2)芙蓉堂3)先師行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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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師嶺南晋州人也諱靈觀號隱庵禪
007_0754_a_08L一曰蓮船道人身雖寄世想在西
007_0754_a_09L方故以芙蓉堂稱之家世犯賤富而
007_0754_a_10L無禮師成化乙巳七月初七日生焉
007_0754_a_11L纔八歲父携而釣魚使負魚籃則擇
007_0754_a_12L其生命者而盡放之父大怒撻之師拜
007_0754_a_13L而泣曰人與物愛命則同忍痛則一也
007_0754_a_14L伏望垂恕父聞而弛怒家近神龍之窟
007_0754_a_15L雲蒸檻外樂出虛堂父老相傳曰
007_0754_a_16L蟄龍之管絃也師以杖擊床則樂聲忽
007_0754_a_17L有時龍出水面鱗鬣耀日人不敢
007_0754_a_18L師擧頭一喝則能形忽沒以是里
007_0754_a_19L稱奇童有異僧來謂父曰此童乃
007_0754_a_20L出世之寶非烟火之物請出家俄而
007_0754_a_21L僧忽不見師竹馬之年或立石爲佛
007_0754_a_22L或獻沙爲供或偃松爲庵合眼危坐
007_0754_a_23L不知日之西也日厭世網深想空門
007_0754_a_24L年至十三丁巳之秋夜深人靜抽身出

007_0754_b_01L누군가가 인도하는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10여 리를 걸어갔다. 그러다가 사천沙川을 건널 즈음에 평소 기르던 개가 거기까지 쫓아왔으므로, 선사가 그 개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존당尊堂을 잘 지켜 드리고 나는 쫓아오지 말아라. 나는 이제 영원히 운수인雲水人이 되어 맹세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니, 너는 빨리 돌아가서 잘 지내거라.”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개가 머리를 숙이고서 그 말을 듣더니 이별을 아쉬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는 몇 번 멍멍 짖고서 그 자리를 떠나갔다.
선사가 이에 외로운 그림자를 나부끼며 강을 사이에 두고 돌아다보니 달이 서쪽 봉우리에 지고 있었다. 날이 밝아오자 곧장 덕이산德異山으로 들어가서 고행선자苦行禪子를 찾아뵙고 3년 동안 투신投身하여 가르침을 받고 삭발하였다. 17세 되던 신유년(1501, 연산군 7)에 먼저 신총법사信聰法師를 참알參謁하여 교학敎學을 탐구하였고, 또 위봉대사威鳳大師를 참례參禮하여 선문禪門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구천동九泉洞에 들어가서 직접 초암草庵을 엮고 봄과 가을을 아홉 번 보내는 동안 항상 앉아서 눕지 않았으니 어찌 잠자기 편한 자리에 옆구리가 닿은 적이 있었겠으며, 지팡이가 산을 나간 적이 없었으니 어찌 주점酒店의 문을 지나간 적이 있었겠는가. 교의敎義를 논할 때는 1만 이랑에 물결이 넘실거리며 끝없이 퍼져나갔고, 선지禪旨를 굴릴 때는 천 길 낭떠러지처럼 우뚝 높이 솟구쳤다.
기사년(1509, 중종 4)에 멀리 용문산龍門山에 들어가서 조우대사祖愚大師를 방문하고 선禪에 대해 토론하였으며, 그 여가에 『노자老子』와 『장자莊子』를 모두 섭렵하였다. 갑술년(1514, 중종 9)에 또 청평산淸平山의 학매선자學梅禪子에게 투신하여 현미玄微한 도리를 물었으나 법法에는 다른 맛이 있지 않았다. 기묘년(1519, 중종 14)에 금강산金剛山 대존암大尊庵에 가서 조운대사祖雲大師와 두 차례 하안거夏安居를 하였다. 또 훌훌 떨치고 미륵봉彌勒峯 내원암內院庵으로 깊이 들어가서 율시律詩 한 수를 읊은 뒤에 붓을 던지고 문에 크게 써 붙여 말하였다.

空費悠悠憶少林  공연히 오랜 세월 소림少林9)을 생각만 하다가
因循衰鬢到如今  어느새 백발이 다 된 오늘에 이르렀네
毗耶昔日無聲臭  예전에 비야毗耶10)에는 아무 소리 없었고
摩竭當年絶響音  당년에 마갈11)에선 음향이 끊어졌지
似杌能防分別意  나무 등걸 같아야 분별하는 마음 물리치고
如痴必禦是非心  멍텅구리 같아야 시비의 마음을 막는 법
故將妄計飛山外  그래서 망상은 산 밖으로 날려 보내고
終日忘機對碧岑  종일 기심機心 잊고서 푸른 산을 대한다오

그리고는 붓과 벼루를 불살라버리고 아무 말 없이 앉아서 9년을 보냈는데, 만약 유객遊客이 문에 이르면

007_0754_b_01L似有人引去不覺行十餘里及渡
007_0754_b_02L沙川則師所養一狗子已追之矣師顧
007_0754_b_03L謂狗子曰善護尊堂勿追我也我今永
007_0754_b_04L作雲水人矢不歸也汝速還珎重
007_0754_b_05L子低頭聽其語似有惜別之態發啾
007_0754_b_06L唧數聲而去師於是翩翩隻影隔江回
007_0754_b_07L則落月正在西峰也黎明直入德異
007_0754_b_08L尋苦行禪子投三年學其法而落
007_0754_b_09L髮焉十七辛酉初叅信聡法師探敎
007_0754_b_10L又禮威鳳大師入禪樞因入九泉洞
007_0754_b_11L手結芧庵已度九春秋長坐不臥
007_0754_b_12L脇安眠之席笻無出山寧過酒肆之
007_0754_b_13L論敎義則洋洋焉波瀾萬頃轉禪旨
007_0754_b_14L則嶷嶷然崖岸千尋己巳遠入龍門山
007_0754_b_15L訪祖愚大師討禪餘暇涉盡莊老
007_0754_b_16L戌又向淸平山投學梅禪子扣擊玄微
007_0754_b_17L法無異味己卯到金剛山大尊庵與祖
007_0754_b_18L雲大師結二夏又拂瓢衲深入彌勒
007_0754_b_19L峯內院庵吟一律拔筆大書其門曰
007_0754_b_20L空費悠悠憶少林因循衰鬢到如今
007_0754_b_21L耶昔日無聲臭摩竭當年絕響音似杌
007_0754_b_22L能防分別意如痴必禦是非心故將妄
007_0754_b_23L計飛山外終日忘機對碧岑於是燒
007_0754_b_24L4)茟硯杜默而坐經九年若遊客到門

007_0754_c_01L단지 이 시만을 가리킬 뿐이었다.
경인년(1530, 중종 25) 가을에 홀연히 돌이켜 살펴보니, 어버이의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이에 고향을 떠올리며 멀리 생각하고, 백운白雲을 바라보며 크게 탄식하다가 마침내 남쪽으로 출발하였다. 점차 본성本城으로 향하고 점차 가산家山에 가까워지면서 구릉과 나무숲 하나하나가 예전과 같아졌다. 그래서 석양夕陽의 강촌江村에 슬픈 심정으로 서 있었는데, 홀연히 한 노인이 소를 끌고 나왔으므로, 선사가 절을 하고서 “이곳이 진촌晉村입니까?”라고 물으니, 노인이 괴이하게 여기면서 왜 묻느냐고 물었다. 이에 선사가 “이곳은 제가 태어난 곳인데, 제 부모님의 생사를 알지 못해서 물어보려고 합니다.”라고 하니, 노인이 “자네 부친의 성명은 무엇이고, 자네의 아명兒名은 무엇인가?”라고 하였다. 선사가 “제 부친의 성명은 원연袁演이고, 저의 아명은 구언九彥입니다.”라고 하니, 노인이 갑자기 소를 놔두고서 손을 붙잡으며 “오늘 만난 것이 부자父子가 확실하구나. 너의 이름을 들으니 바로 내 아들이요, 나의 이름을 대다니 바로 너의 아비이다. 네가 나를 버리고 도망친 뒤로 30여 년 동안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기에 걱정과 시름으로 세월을 보냈는데 지금 홀연히 나타나다니, 이제 나의 소원이 풀어졌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부자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각자 슬픔과 기쁨을 가누지 못한 채 한바탕 통곡하였는데, 노인이 한참 있다가 눈물을 닦으면서 “너의 어머니는 10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너의 주인은 7년 전에 상처를 하였다. 다만 너의 전택田宅은 아직도 그대로 있다.”라고 하였다. 선사가 “원씨袁氏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노인이 “너의 누이는 네가 집을 나간 저녁부터 문을 닫고 누웠고, 네가 기르던 개도 해를 쳐다보며 앉아 있다가 7일째 되던 날에 누이와 개가 모두 죽었으므로 덕산德山 서쪽 기슭에 묻어 주었다.”라고 하였다. 선사가 이 말을 듣고는 비통하게 무상함을 느끼면서 더욱 눈물을 흘렸다. 해 질 녘에 집에 도착하니 옛날의 아동들이

007_0754_c_01L則指此詩而已庚寅秋忽然反省
007_0754_c_02L報罔極之恩引故國而遐想望白雲而
007_0754_c_03L太息爰發南行漸向本城漸近家山
007_0754_c_04L丘陵林樹一一如咋夕陽江村悵然
007_0754_c_05L而立忽見一老翁牽牛而出師拜而
007_0754_c_06L問曰此晋村耶翁恠而問曰何故問
007_0754_c_07L師曰此我所生之地也不知我父母
007_0754_c_08L存沒故當欲問之翁曰汝父姓名誰耶
007_0754_c_09L汝之兒名亦誰耶師曰我父姓名袁演
007_0754_c_10L我之兒名九彥也翁忽放牛執手曰
007_0754_c_11L日父子的矣汝名我子我名汝父
007_0754_c_12L捨我逃走三十餘年求索不得憂愁年
007_0754_c_13L今忽自來甚適我願定父子後
007_0754_c_14L不堪悲欣一塲痛哭翁良久拭淚曰
007_0754_c_15L汝母十年前棄世汝主七年前喪室
007_0754_c_16L汝之田宅猶在爾師曰袁氏安在翁曰
007_0754_c_17L5)姝從汝出家之夕閉門而臥汝狗子
007_0754_c_18L亦視日而坐至七日袁與狗俱死
007_0754_c_19L於德山之西麓爾師聞之痛念無常
007_0754_c_20L尤爲落淚及黃昏到家則昔之群童
007_0754_c_21L此左側行間有「碧松堂埜者行錄終」{甲}{乙}ㆍ有
007_0754_c_22L「碧松堂埜老行狀」{丙}
此芙蓉堂行蹟文無有
007_0754_c_23L{甲}{乙}{丙}
「先師」無有{丁}{戊}「茟」作「筆」{丁}
007_0754_c_24L{戊}
「姝」作「妹」{戊}

007_0755_a_01L모두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되어 있었는데, 역시 그들과 함께 침상을 맞대고 밤늦게 이야기하다 보니, 새벽에 닭이 우는 것도 알지 못하였다.
다음 날 아침에 부친이 선사를 데리고 가서 노주老主를 뵈니, 노주가 “네가 구언이냐?” 하고 놀라면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조금 뒤에 노주가 방석을 내주면서 앉으라고 하자, 선사가 멈칫거리고 뒤로 물러나며 말하기를 “소생이 주인님과 아버지를 배신한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만, 이제 전택田宅을 모두 바쳐 속죄贖罪를 하고 출가出家 수도修道해서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주인이 “출가해서 어떻게 은혜를 갚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자, 선사가 옛일을 인용하며 답하기를 “출가의 목적은 세상을 피해 자기의 뜻을 구하고, 속습俗習을 바꿔 참다운 도를 통달하는 것입니다. 속습을 바꾸는 것이고 보면 세상의 예법을 함께할 수가 없고, 세상을 피하는 것이고 보면 그 자취를 고상하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하여 삼승三乘에 통달하고 인천人天을 개통하면 오족五族을 구제하고 육친六親을 제도하는 것은 손을 뒤집듯 쉬운 일입니다. 그런 까닭에 안으로 천륜天倫의 중함을 어긴다 해도 사실은 효도에 위배됨이 없는 것이요, 밖으로 주인을 모시는 공경을 바치지 못한다 해도 사실은 공경함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운운.”라고 하였다. 주인은 유자儒者였는데, 이 말을 듣고는 아름답게 여겨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며 말하기를 “사문沙門은 물외物外의 사람이니, 세상의 예법은 생략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침상을 맞대고서 하룻밤 묵으며 머무를 것을 청했으나, 선사가 굳이 사양하며 따르지 않았다.
이튿날 문권文券을 바치고 전택田宅을 반환한 뒤에 재배再拜하고 물러났으며, 또 노부老父에게 하직을 고한 뒤에 곧장 두류산頭流山으로 향하였다. 그리하여 지엄대사智嚴大師 벽송碧松의 문을 두드리며 말하기를 “영관靈觀이 멀리서 풍도를 좇아 찾아뵈었으니, 한 번 거두어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하니, 지엄이 “영靈에 대해서는 감히 묻지 않겠다만, 관觀은 어디에서 왔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선사가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서 두 손을 맞잡고 말하기를 “스승께서 살펴주십시오.”라고 하니, 지엄이 웃으면서 “조탁雕琢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다음 날 지엄이 선사를 위해서 마음의 안개를 씻어주고 불해佛海로 인도하매 선사의 20년 묵은 의심이 마치 골짜기의 얼음덩어리가 녹듯 홀연히 풀어졌다. 그래서 선사가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연속해서 감탄하며 “이분이야말로 진정 나의 스승님이다.”라고 하였는데, 옆에서 모신 지 3년 만에 지엄도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 스승이 설계를 하고 제자가 운영을 하였으니 이 주석柱石이 아니면 어떻게 이 동량棟樑을 세웠겠는가.
선사는

007_0755_a_01L盡作翁婆也亦與之連床夜語不覺鷄
007_0755_a_02L之已曉矣明朝父携覲於老主主驚
007_0755_a_03L此九彥耶不覺澘然俄而主進席許
007_0755_a_04L師逡巡辭退曰小賤背主背親
007_0755_a_05L不容天今欲盡納田宅以贈身出家修
007_0755_a_06L道以報恩也主曰出家何能報恩耶
007_0755_a_07L師引古荅曰出家者遁世以求其志
007_0755_a_08L變俗以達其道變俗則不與世典同禮
007_0755_a_09L遁世則宜高尙其迹達三乘開人天
007_0755_a_10L拯五族拔六親猶如反掌也是故雖
007_0755_a_11L內乖天屬之重而不違其孝雖外闕奉
007_0755_a_12L主之恭而不失其敬也
主儒者也
007_0755_a_13L聞而嘉之起立携手而上階曰沙門物
007_0755_a_14L外人也宜删世禮矣因連枕一宿而請
007_0755_a_15L留之師强不從明日呈文劵納田宅
007_0755_a_16L再拜而退又告別老父即向頭流山
007_0755_a_17L扣智嚴大師碧松之門曰靈觀自遠趨
007_0755_a_18L願一攝受嚴曰靈且不敢觀從何
007_0755_a_19L師近前叉手曰請師鑑嚴笑曰
007_0755_a_20L爲雕琢翌日嚴爲師碎蕩心霧陶瀉
007_0755_a_21L佛海師之二十年宿疑忽如層氷之冸
007_0755_a_22L巨壑也即頂禮連聲歎曰此眞吾師
007_0755_a_23L執侍三年嚴亦厭世厥師經之
007_0755_a_24L厥資營之非斯柱石孰此棟樑哉

007_0755_b_01L평소 성품이 온아溫雅하였고 애증愛憎의 감정이 없었으며, 오로지 평등平等하게 대하려는 생각으로 한 수저의 밥이라도 사람을 보면 나누어주곤 하였으니, 일찍부터 자비慈悲의 씨앗을 심은 것을 여기에서도 볼 수가 있다. 여기에 또 문장도 올바르고 의리도 분명하였으며, 학자를 가르치는 것 역시 부지런히 하며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칠요七曜12)ㆍ구장九章13)과 천문天文ㆍ의술醫術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므로, 『중용中庸』을 품고 다니고 『장자莊子』를 끼고 다니는 자들까지도 모두 선사를 찾아와서 의문점을 해결하곤 하였다. 이 때문에 문 가득 뛰어난 선비들이 모두 생이별의 한을 품었고, 뜰 가득 승려와 속인들은 함께 가고 머무르는 마음을 억제하였다. 그러므로 영남嶺南과 호남湖南에서 백의白衣가 삼교三敎에 통하게 된 것은 바로 선사의 풍도 덕분이라고 할 것이니, 전단栴檀을 옮겨 심자 다른 식물도 똑같이 향기를 풍기게 되었다고 이를 만하다.
어떤 승려가 명상名相에 대해서 묻자, 선사가 답하기를 “천만 가지 사려思慮가 나의 심왕心王을 잃게 한다. 나의 이 심왕은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이 행하는 곳이 없으니, 명名은 언어의 길이요 상相은 마음이 행하는 곳이다. 팔만대장경이 수습하지 못하는 것은 향상向上의 길이요, 삼천 고불古佛이 설할 수 없는 것은 격외格外의 선禪이다. 만약 마음이 허공虛空과 같이 되면, 도道에 조금 상응하는 점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승려가 불법佛法에 대해서 묻자, 선사가 답하기를 “진불眞佛은 형체가 없고, 진법眞法은 형상이 없다. 학인學人이 모양을 지어서 부처를 구하고 불법을 구한다면, 이는 모두 여우(野狐)의 정령精靈이요, 외도外道의 소견이다. 진정한 도인道人이라면 멀리 홀로 뛰어나서 부처를 구하는 데에도 집착하지 않고 불법을 구하는 데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불諸佛의 갖가지 수승한 형상을 보더라도 어린애 장난처럼 여기고, 지옥의 갖가지 험악한 형상을 보더라도 허공 꽃처럼 여길 뿐이니, 이는 그와 같이 억지로 불법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정법正法 중에서는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두 소견도 모두 잘못이고, 악마니 부처니 하는 두 길도 모두 잘못이며, 범성이 없다는 이해도 잘못이고, 마불이 없다는 이해도 잘못이다. 불법은 본래 공空한 것이니, 공空으로 다시 공空을 얻을 수 없는 것이요, 불법은 본래 소득所得이 없는 것이니, 소득이 없는 것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줄기 신령스러운

007_0755_b_01L平生叶性溫雅情絕愛僧念專平等
007_0755_b_02L至於一匙之飯見人則分之其夙植慈
007_0755_b_03L悲之種亦可見矣兼又文字允正
007_0755_b_04L理明1)凡敎學者亹亹不倦凡七曜
007_0755_b_05L九章天文醫術莫不通焉至於懷中
007_0755_b_06L庸挾莊子者亦莫不決疑焉是故溢門
007_0755_b_07L英儒俱懷生別之恨盈庭法俗共鯁
007_0755_b_08L去留之心是故湖嶺兩南以白衣
007_0755_b_09L三敎者乃師之風也可謂栴檀移植
007_0755_b_10L異物同熏也有僧問名相師荅曰
007_0755_b_11L思萬慮失我心王我此心王言語道
007_0755_b_12L心行處滅名是語路相是心處
007_0755_b_13L萬大藏收不得者向上路三千2)古佛
007_0755_b_14L說不及者格外禪若心如虗空者
007_0755_b_15L道有少分相應有僧問佛法師荅曰
007_0755_b_16L眞佛無形眞法無相學人作㨾求佛
007_0755_b_17L求法者皆是野狐精外道見若眞道人
007_0755_b_18L逈然獨出不着佛求不着法求則雖
007_0755_b_19L見諸佛種種勝相猶如兒戱雖見地獄
007_0755_b_20L種種惡相亦如空花不是强爲法如是
007_0755_b_21L故也我正法中凡聖二見俱錯魔佛二
007_0755_b_22L道俱惡無凡聖解亦錯無魔佛解亦惡
007_0755_b_23L佛法本空故不可以空更得空佛法本
007_0755_b_24L無所得故無所得亦不可得也一段靈

007_0755_c_01L빛이 확연廓然히 텅 비었으니, 어찌 시비是非를 강변强辯할 수 있겠는가. 운운. 본래 소득선사가 평생토록 사람들을 지도한 방식이 이와 같았다. 그러므로 항상 조사祖師의 공안公案을 들어 보여 사람들로 하여금 있는 힘껏 참구參究해서 활연대오豁然大悟하여 입문入門하게 하였다.
선사는 한 번 벽송碧松의 문을 밟은 뒤로 혹은 황룡산黃龍山에 거하기도 하고, 혹은 팔공산八公山에 거하기도 하였으며, 혹은 대승동大乘洞에 머무르기도 하고, 의신동義神洞에 머무르기도 하고, 연곡동燕谷洞에 머무르기도 하였는데, 이처럼 모르는 사이에 41년의 세월이 꿈처럼 지나가고, 융경隆慶 신미년(1571, 선조 4) 4월 14일에 입적入寂 하였으니, 세수世壽 87세요, 법랍法臘 72세였다. 시자侍者 법융法融ㆍ영응靈應ㆍ진기眞機ㆍ신옹信翁이 영골靈骨을 수습하여 연곡사燕谷寺 서쪽 기슭에 부도浮屠를 세웠다.
아, 선사의 영대靈臺와 신우神宇는 우러러볼 수는 있을지언정 엿볼 수는 없고, 선사의 지해智海와 법원法源은 건널 수는 있을지언정 측량할 수는 없다. 내가 미천한 재능과 협소한 소견으로 선사의 광대한 덕을 기술하려니 실로 부끄럽기만 하다. 그러나 후학後學이 선사의 법어法語를 통해 눈을 뜨고서 한 번 웃는다면, 선사의 은덕을 알게 되는 동시에 선사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만력萬曆 5년(1577, 선조 10) 정축년 9월 어느 날에 문인門人 풍악산인楓嶽山人 휴정休靜은 삼가 짓다.

진찬眞賛은 다음과 같다.

高踞覺地     깨달음의 자리에 높이 걸터앉아
先引三車     삼거14)를 먼저 끌었다네
張羅八海     팔방의 바다에 그물을 펼쳐
撈摝群魚     온갖 물고기를 건져 올렸네
金搥擊碎     쇠몽치로 때려 부쉈나니
虎穴魔宮     호랑이 굴과 악마의 집이었네
人亡世寂     사람은 가고 세상은 적요한데
月落天空     달이 홀로 하늘에 지네

007_0755_c_01L廓然虛豁豈可强是非耶
師平
007_0755_c_02L生示人鉗鎚若此之類也是故常常提
007_0755_c_03L起祖師公案令人盡力叅究以豁然大
007_0755_c_04L悟爲入門也師自從一踏碧松之門
007_0755_c_05L居黃龍山或居八公山或住大乘洞
007_0755_c_06L住義神洞或住燕谷洞不覺夢過四十
007_0755_c_07L一年至隆慶辛未四月十四日入寂焉
007_0755_c_08L世壽八十七法臘七十二侍者法融
007_0755_c_09L3)眞機信翁收靈骨竪浮屠于燕谷
007_0755_c_10L寺之西麓也於戯其靈臺神宇可仰
007_0755_c_11L而不可窺智海法源可渉而不可測
007_0755_c_12L靜以樸樕之材湫隘之見記先師天廣
007_0755_c_13L之德實爲可慙然後學因師法語
007_0755_c_14L開眼一笑則一以知師恩一以報師恩
007_0755_c_15L萬曆五年丁丑九月日門人楓嶽山
007_0755_c_16L人休靜謹撰

007_0755_c_17L
眞賛曰

007_0755_c_18L
高踞覺地先引三車

007_0755_c_19L張羅八海撈摝群魚

007_0755_c_20L4)搥擊碎虎穴魔宮

007_0755_c_21L人亡世寂月落天空

007_0755_c_22L「柝」作「析」{丁}{戊}「古」作「石」{丁}「眞機
007_0755_c_23L信翁」無有而有文如下「大選淨源信翁禪德
007_0755_c_24L道義軰」{丁}{戊}
「搥」作「鎚」{丁}{戊}

007_0756_a_01L
경성당선사 행적敬聖堂禪師行蹟
선사禪師의 휘諱는 일선一禪이요, 호號는 휴옹休翁, 혹은 선화자禪和子라고 한다. 그의 선조 장씨張氏는 울산蔚山 사람이다. 부친의 이름은 윤한胤韓이다. 모친 박씨朴氏가 어느 날 졸다가 명주明珠를 삼키는 꿈을 꾸고 깨어나 임신을 하여 홍치弘治 원년(1488, 성종 19) 12월 13일 진시辰時에 선사를 낳았다. 몸을 씻기지도 않았는데, 향기가 나고 깨끗하였다.
나이 7, 8세 때부터 벌써 비린내 나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부엌에서 고기나 생선을 굽고 삶는 것을 볼 때마다 반드시 놀라고 슬퍼하였다. 집 남쪽에 과수원이 있어서 이웃집 아이들이 다투어 열매를 따곤 하였는데, 선사는 자기가 가진 것까지 모두 내주고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혹 모래를 모아 탑을 쌓기도 하고, 혹 돌을 포개어 대좌臺座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이 한마음으로 선사를 존중하여 부처로 받들었다. 선사의 타고난 자질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전생에 닦은 인연이 있음을 이를 통해 징험할 수 있다. 일찍 양친兩親을 잃고 삼 년 동안 피눈물을 흘리면서 세상이 무상無常함을 관찰하고 마음속으로 청허淸虛한 경지를 지향하였다.
나이 13세가 되자 단석산斷石山으로 들어가 해산법사海山法師에게 투신하여 3년 동안 충실히 시봉하고, 16세에 삭발하였다. 24세에 서쪽으로 묘향산妙香山에 들어가 문수암文殊庵에 자리를 잡고는 표주박 하나와 누더기 한 벌로 오로지 고행苦行을 익히고, 정심正心으로 불교의 이치를 탐구하면서 목숨을 마치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러다가 홀연히 사방을 유력遊歷할 생각을 내어 남쪽으로 지리산智異山에 들어가서 지엄대사智嚴大師를 참알參謁하였다. 지엄이 한 번 보고서 큰 그릇이라고 여기고는 게송偈頌 하나를 읊었다.

風颼颼月皎皎   바람은 솔솔 불고, 달은 휘영청 밝다
雲冪冪水潺潺  구름은 자욱하고, 냇물은 졸졸 흐른다
欲識這箇事   이 속의 일을 알고 싶다면
須叅祖師關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리라

선사가 즉시 활구活句에 마음을 두고 즐기면서 근심을 잊었다.
동쪽으로 금강산金剛山 시왕동十王洞에 들어가서는 공부가 이미 지극하게 되어 자나 깨나 언제나 한결같았는데, 죽비竹篦로 홀연히 선상禪床을 치면서 “조주趙州 노인이 칼날을 빼어들었다. 억! 꿈속에서 꿈을 말하다니, 허물이 적지 않도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로부터는 입으로 읊조리는 것도 반드시 경절문徑截門15)의 언구言句요, 마음으로 참구參究하는 것도 반드시

007_0756_a_01L1)敬聖堂2)禪師行3)

007_0756_a_02L
師諱一禪號休翁一曰禪和子其先
007_0756_a_03L張氏蔚山人也父曰胤韓4)曰朴氏
007_0756_a_04L5)一日假寐夢吞明珠覺而有娠弘治
007_0756_a_05L元年戊申十二月十6)三日辰時生焉
007_0756_a_06L不洗浴膚體香潔年纔七7)不喜薰
007_0756_a_07L8)每見家厨烹燀毛鱗則必駭然悲
007_0756_a_08L宅南有菓園鄰童竸9)師乃捨己
007_0756_a_09L所得盡以施之空手返焉或聚沙爲
007_0756_a_10L或壘石爲座羣童翕然尊重爲佛
007_0756_a_11L非特生質之美可驗夙世之熏▼(自/?)失雙
007_0756_a_12L泣血三年觀世無常意玩淸虛
007_0756_a_13L至十三入斷石山投海山法師10)
007_0756_a_14L三載十六薙髮二十四西入妙香山
007_0756_a_15L坐文殊庵一瓢一衲專習苦行正心
007_0756_a_16L佛理以命自期頃之忽興遊方之志
007_0756_a_17L南入11)智異山叅智嚴12)大師嚴一見深
007_0756_a_18L器之示一偈曰風颼颼月皎皎雲冪
007_0756_a_19L羃水潺潺欲識這箇事須叅祖師關
007_0756_a_20L師即13)留心活句樂而忘憂東入金剛
007_0756_a_21L山十王洞14)工夫已到寤寐恒一以竹
007_0756_a_22L忽擊禪15)床曰趙州16)老露刃17)
007_0756_a_23L18)夢中說夢漏逗不少自此詠於口
007_0756_a_24L必徑截門言句叅於心者19)亦必徑

007_0756_b_01L경절문의 언구였다. 얼마 뒤에 표훈사表訓寺 승당僧堂에 들어가서 한여름을 결제結制하고, 상원암上院庵에 들어가서 두 여름을 결제하였다.
가정嘉靖 병신년(1536, 중종 31)에 중종대왕中宗大王이 승군僧軍을 동원하여 신천新川을 막았다. 선사가 능가산楞伽山으로 가는 도중에 역장役場을 통과하면서 표연飄然히 혼자서 가자, 도청都廳의 대관大官이 보고는 기이하게 여겨 불러다 이야기를 나눈 뒤에 풍채가 비범한 것을 보고 반 달 동안이나 머물러 있게 하였다. 이에 경성京城의 사서士庶들이 또 선사의 덕음德音을 듣고는 다투어 나와서 시주施主를 하며 달이 갈수록 분분하게 명성이 전해지자 대간臺諫이 세상을 미혹시킨다고 논하여 금부禁府에 구금하고 법대로 국문鞫問하게 하였다. 그러나 선사가 태연히 바른말과 정연한 논리로 갖가지 의혹에 대해서 변론하니, 금부禁府가 듣고서 가상하게 여겨 위에 아뢰어 사면赦免하였다. 선사는 그 길로 멀리 서산西山에 들어가 9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갑진년(1544, 중종 39) 봄에 다시 묘향산妙香山에 들어가 보현사普賢寺 관음전觀音殿에 머무를 적에 주머니 속의 송곳이 더욱 드러나고16)과일이 농익어 향기가 퍼져나가자 석덕碩德과 고사高士들이 팔방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었으니, 실로 해동海東의 절상회折床會17)라고 이를 만하였다. 혹 법좌法座에 올라 여러 가지 경론經論을 강의할 때면, 문답을 나누며 설명하는 그 목소리가 주옥珠玉처럼 맑았으므로 보고 듣는 이들 모두가 뼈를 바꾸고 창자를 씻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선사는 사은四恩18)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일찍이 잊지 않고서 항상 말하기를 “남아가 세상에 나와서 자식으로서는 목숨 바쳐 효도하고 신하로서는 목숨 바쳐 충성해야 한다. 그러나 출가出家한 사람은 이를 겸행兼行할 수 없으니, 창과 방패처럼 서로 앞뒤가 맞지 않아서 두 가지 공을 함께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문인門人 의웅義雄의 무리에게 명하여 특별히 하나의 건물을 짓게 하고서 경성敬聖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난간과 창문과 문들이 층층으로 성대하게 세워진 가운데 옥빛과 금빛이 눈부시게 빛났다. 이에 선사가 향로香爐 앞에서 집전執典하며 날마다 성수만세聖壽萬歲를 축원하였으니, 증득하기 어려운 지혜를 증득한 것이 이미 이와 같고, 불충不忠의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 또 이와 같았고 보면, 승려 중의 직설稷契19)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선사는 언젠가 깊은 밤중에 문인들을 불러 말하기를 “대저 학자가 활구活句를 참구參究하지는 않고,

007_0756_b_01L截門言句也俄入表訓僧堂結一夏
007_0756_b_02L入上院20)結二夏至嘉靖丙申中宗
007_0756_b_03L大王用僧軍防新川師適楞伽山
007_0756_b_04L由役場飄然獨徃都廳大官見而異
007_0756_b_05L招而與之語風彩非凡挽留半月
007_0756_b_06L於是京城士庶亦聞師之德音爭趍捨
007_0756_b_07L施日益紛紜聲振臺論以惑世拘於
007_0756_b_08L禁府依法鞫之師從容自若言直理
007_0756_b_09L變化千萬禁府聞而嘉之奏以赦
007_0756_b_10L師即遠入西山泯迹九年21)甲辰春
007_0756_b_11L還入妙香山22)棲普賢寺觀音23)殿囊錐
007_0756_b_12L益露菓熟香飄碩德高士八表雲趍
007_0756_b_13L可謂海東折床會也或登座講諸經論
007_0756_b_14L則吐納問辯辭淸珠玉聞者見者若換
007_0756_b_15L骨洗腸24)師欲報四恩未嘗輟懷
007_0756_b_16L曰男兒處世爲子則死孝爲臣則死忠
007_0756_b_17L然出25)家人不能兼行者矛楯相觸
007_0756_b_18L不雙勝26)故也爰命門人義雄之軰
007_0756_b_19L起一堂27)敬聖安名焉28)窓戶闥
007_0756_b_20L欝爾層構玉光金色燎然奪目於是
007_0756_b_21L師執香29)日祝聖壽30)萬歲也則其能
007_0756_b_22L證難證之智旣如此其不墮不忠之坑
007_0756_b_23L又如此31)可謂僧中之稷契也有時深
007_0756_b_24L32)喚諸門人曰大抵學者不叅活句

007_0756_c_01L단지 약삭빠른 구이지학口耳之學20)을 가지고서 세상에 과시하거나, 발로 직접 실지實地를 밟아보지도 않고서 말과 행동을 서로 어긋나게 하거나, 이쪽저쪽으로 산수山水를 찾아다니며 밥이나 축내거나, 경론經論에 정신을 빼앗긴 채 한평생을 보내고 만다면, 끝내

007_0756_c_01L徒將聦慧口耳之學衒耀於世脚不踏
007_0756_c_02L實地言行相違33)這邊那邊討山討
007_0756_c_03L徒費粥飯被經論34)䁠過一生
007_0756_c_04L此敬聖堂行蹟文無有{丙}ㆍ「敬」作「慶」{甲}{乙}
007_0756_c_05L「禪師」作「休翁」{甲}{乙}{己}ㆍ無有{丁}{戊}「蹟」作
007_0756_c_06L「錄」{甲}{乙}{己}
「曰」無有{甲}{乙}{己}「一」上有
007_0756_c_07L「母」{甲}{乙}{己}
「三」作「二」{甲}{乙}「八」下有
007_0756_c_08L「聦黠明利似有老成之風」{甲}{乙}{己}
「羶」下
007_0756_c_09L有「甘嗜野菜」{甲}{乙}{己}
「之」作「集」{甲}{乙}{己}
007_0756_c_10L「勞」作「勤」{甲}{乙}{己}「智」作「知」{甲}{乙}{己}ㆍ
007_0756_c_11L「智異」作「頭流」{丁}{戊}
「大師」作「長老」{甲}{乙}
007_0756_c_12L{己}
「留心活句」作「深得密旨」{甲}{乙}{己}「工
007_0756_c_13L夫…禪床」十五字作「志存大乘冥心虛寂不覺
007_0756_c_14L失笑」{甲}{乙}{己}
「床」作「狀」{戊}「老」無有{甲}
007_0756_c_15L{乙}{己}
「劔」作「釼」{甲}{乙}{丁}{戊}{己}「喝」上有
007_0756_c_16L「寒霜光燄燄擬議問如何分身作兩段」{甲}{乙}{己}

007_0756_c_17L「亦」無有{甲}{乙}{己}「入上院庵…九年」百二
007_0756_c_18L十四字無有而有文如下「厥後雲鳥活計鶉㞐不
007_0756_c_19L天磨五臺白雲楞伽遊歷諸山逍遙然天
007_0756_c_20L地間一大閑道人也」{甲}{乙}{己}
「{甲}」上有「嘉靖」
007_0756_c_21L{甲}{乙}{己}
「棲」作「捿」{甲}{乙}{丁}{戊}{己}「殿」下有
007_0756_c_22L「智嶽彌峻法海尤闊」{甲}{乙}{己}
「焉」下有「且
007_0756_c_23L結會道場非普賢則必內院非內院則必普賢
007_0756_c_24L巡遆兩處坐二十餘夏矣古人云方丈雖寛
007_0756_c_25L情自隘此之謂也」{甲}{乙}{己}
「家」下有「之」{甲}
007_0756_c_26L{乙}{己}
「故也…之軰」十字無有而有文如下「氷
007_0756_c_27L火同器勢不俱全故也曁戊午秋命義雄宗敏
007_0756_c_28L法心法眞性俊性一慧玉智文祖行之輩
007_0756_c_29L創上禪庵工訖庵之東」{甲}{乙}{己}
「敬」作「慶」
007_0756_c_30L{甲}{乙}{己}
「窓」作「牎」{甲}{乙}{己}「爐」作「鑪」
007_0756_c_31L{甲}{乙}{己}
「萬歲也」無有{甲}{乙}{己}「可謂…契
007_0756_c_32L也」八字無有{甲}{乙}{己}
「夜」下有「揮塵」{甲}{乙}
007_0756_c_33L{己}
「這邊那邊」作「關西湖南」{甲}{乙}{己}「賺」
007_0756_c_34L作「賺」{甲}{乙}{己}

007_0757_a_01L지옥의 찌꺼기가 될 것이요, 세상을 제도濟度하는 배는 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자는 한가히 지내는 것이 습성이 되어 사범師範을 찾지도 않고 여우의 굴속에 앉아 그저 졸기나 하면서 입으로 남모를 소리만 뇌까리며 사람을 속이고 있으니, 이 또한 매우 가련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밤중에 노끈이 움직이지 않건만 너희는 뱀이라고 의심을 하고, 어두운 방이 본래 비어 있건만 너희는 귀신을 겁내고 있다. 마음으로 진망眞妄이 있다는 생각을 일으키고, 성품 속에 범부와 성인을 분별하는 알음알이를 두는 것은, 마치 누에가 실을 토해서 자기 몸을 휘감는 것과 같다.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겠는가. 만약 한 생각으로 회광반조回光返照한다면, 그것이 바로 보리菩提의 바른길이라고 할 것이다. 운운.”라고 하였다. 미혹되고 몽매한 자를 깨우쳐주는 것이 이와 같았다.
융경隆慶 무진년(1568, 선조 1) 2월 30일에 문도門徒에게 이르기를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생각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고,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다. 무릇 시작이 있으면 끝남이 있는 것이니, 이것이 무상無常의 실체이다. 오늘 노승도 무상의 실상을 보여주려 하니, 여러분은 바른 생각을 추슬러 나에 대한 미련을 품지 말 것이요, 시속時俗을 따라 쓸데없는 일로 부산을 떨지 말 것이다. 나는 부사의不思議의 고개에 나아가 불사佛事를 지으려 하니, 나의 시체를 노천露天에 두어 조수鳥獸의 먹이가 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바로 붓을 들어 게偈를 지었다.

年逾八十似空花  여든 넘긴 세월 마치 허공의 꽃
徃事悠悠亦眼花  지난 일 유유해라, 역시 눈 속의 꽃
脚未跨門還本國  문에 발도 안 걸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니
故園桃李已開花  고향 동산 복사꽃 오얏꽃 활짝 피었네

그리고는 곧 붓을 놓고서 단정히 앉아 고요히 열반에 들었다. 그때 채색 구름이 사방에서 모여들고, 햇빛도 참담한 기색을 띠었다.
그로부터 7일 뒤에 문인이 선사의 명에 따라 색신色身을 상여喪輿에 모시고 부사의不思議의 고개로 향하니, 승려와 속인 수천 인이 길을 메우고 다례茶禮를 올리며 비통하게 호곡號哭하는 소리가 산골에 진동하였다. 다비茶毘를 행하던 날에 신광神光이 하늘을 밝혔으므로 백 리 밖에서 바라보고 절을 하기도 하였으니, 이때가 바로 4월 18일 해시亥時였다. 문인門人인 대사大師 의변義卞ㆍ선등禪燈ㆍ일정一精ㆍ

007_0757_a_01L1)作地獄滓非濟世舟2)航也一般漢
007_0757_a_02L閑成性不求師範3)狐窟中徒勞
007_0757_a_03L坐睡4)觜都嚧博謎子者亦深可憐愍
007_0757_a_04L又曰夜繩不動汝疑之爲蛇闇室本空
007_0757_a_05L汝怖之爲鬼心上起眞妄之情性中立
007_0757_a_06L凡聖之量5)6)呑吐絲自纒其身是誰
007_0757_a_07L過歟若一念廻光則實是菩提正路

007_0757_a_08L凡啓發迷蒙若此之類也7)隆慶戊辰
007_0757_a_09L二月三十日8)謂門徒曰界有成住壞
007_0757_a_10L念有生住異滅身有生老病死
007_0757_a_11L有始9)者必10)有終11)此無常之體也
007_0757_a_12L日老僧欲示無常諸仁者須攝正念
007_0757_a_13L勿懷眷戀亦莫隨俗爲譸張不益事
007_0757_a_14L12)13)吾欲向不思議之嶺作佛事
007_0757_a_15L露屍骸飼于鳥獸可也言已即拔14)
007_0757_a_16L15)16)17)年逾八十似空花徃事悠
007_0757_a_17L悠亦眼花脚未跨門還本國故園桃李
007_0757_a_18L已開花18)即放19)筆端坐泊然而逝20)
007_0757_a_19L時祥雲四21)合日色慘然及至七日
007_0757_a_20L人遵命奉色身轝于不思議之嶺22)
007_0757_a_21L白數千人塞路點茶號慕悲惋之聲
007_0757_a_22L23)咽山谷24)闍維之夜神光洞天
007_0757_a_23L里之外有見之者望拜焉乃四月十
007_0757_a_24L八日亥時也25)門人大師義卞禪燈

007_0757_b_01L성준性峻의 무리가 사리舍利 5과顆를 수습하여 석종石鍾을 세워 봉안하였다. 선사의 세수世壽 81세요, 법랍法臘 65세였다.
선사는 평상시에 문장을 짓는 일이 없었으나, 임종게臨終偈를 지을 때 붓을 적셔서 휘갈긴 것을 보면, 그 사기辭氣가 쾌활하기 그지없었으니, 평생토록 내보이지 않고 숨겨온 그 솜씨를 대략 알 수가 있다. 선사는 비록 중국에 가지는 않았어도, 항상 서방정토를 동경하면서 노닐었으며, 후학後學을 곡진하게 대하는 일은 있었지만, 선조先祖를 욕되게 하는 일은 있지 않았다. 아, 불법의 바다가 오염된 것이 금일보다 심한 때가 없으니, 선사의 대비大悲의 그물이 없었더라면 누가 인천人天의 고기를 건져서 열반涅槃의 언덕에 올려놓았겠는가. 말세에 부처의 동량棟樑이요 불법의 인각麟角21)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융경隆慶 무진년(1568, 선조 1) 10월 어느 날에 묘향산인妙香山人 휴정休靜은 짓다.

진찬眞賛은 다음과 같다.

師初來也     선사가 처음 올 때는
一顆明珠     한 알의 밝은 구슬
師今去也     선사가 지금 갈 때는
五箇神珠     다섯 알의 신령한 구슬
入火不變     불 속에서도 변치 않고
入水不渝     물속에서도 변치 않네
常寂常照     항상 고요하고 항상 비추나니
劫石須臾     겁석22)은 잠깐 사이로다

나의 행장은 떠돌아다니며 일정한 거처가 없다. 그래서 두류산頭流山에서 벽송碧松의 행적을 지었고, 풍악산楓嶽山에서 부용芙蓉의 행적을 지었고, 묘향산妙香山에서 경성敬聖의 행적을 지었다. 이것은 바로 삼산三山의 납자衲子들의 간청에 쫓겼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법맥法脈으로 갈래를 논한다면, 벽송은 조부요, 부용은 부친이요, 경성은 숙부라고 할 것이니, 내가 또 어떻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이에 재삼 질정質正하여 번거로운 내용은 생략하고 사실대로 기록하였으니, 이대로 간행하여 유통해도 좋을 것이다. 후학은 행여 의심하지 말라.휴정休靜은 삼가 뒤에 쓰다.

이 책은 방외方外의 벗인 행판대화엄종사行判大華嚴宗事 겸판대조계종사兼判大曹溪宗事

007_0757_b_01L性峻之軰收舍利五箇建石26)鍾安
007_0757_b_02L師壽八十一臘六十五師居常不
007_0757_b_03L治翰墨至於臨終之偈濡*筆走草
007_0757_b_04L氣快活其平生匿27)迹之智槩可見矣
007_0757_b_05L28)然則雖繆29)盭於支𨚗而常玩愒於蓮
007_0757_b_06L30)有覼縷於後學而無䖃苴於先祖
007_0757_b_07L嗚呼佛海穢滓無甚今日微師大
007_0757_b_08L悲之網則孰31)摝人天之魚置於湼槃
007_0757_b_09L之岸哉32)末世冝乎佛之棟樑而法之
007_0757_b_10L33)麟角者歟隆慶戊辰十月妙香山
007_0757_b_11L人休靜撰

007_0757_b_12L
34)眞賛曰

007_0757_b_13L
師初來也一顆明珠

007_0757_b_14L師今去也五箇神珠

007_0757_b_15L入火不變入水不渝

007_0757_b_16L35)常寂常照劫石須臾

007_0757_b_17L
007_0757_b_18L
36)靜之行裝鶉居不㝎在頭流山撰碧
007_0757_b_19L在楓嶽山撰芙蓉在妙香山撰敬聖
007_0757_b_20L乃迫於三山衲子之勉也況以法論派
007_0757_b_21L碧松祖也芙蓉父也敬聖叔也靜亦
007_0757_b_22L其可忽哉玆以再三質正削繁錄實
007_0757_b_23L37)榟流通後學幸勿疑也休靜謹跋

007_0757_b_24L
007_0757_b_25L
此卷方外友行判大華嚴宗事38)兼判大

007_0757_c_01L

007_0757_c_01L「作地…航也」作「未免虛生浪死又」{甲}{乙}
007_0757_c_02L{己}
「航」作「舤」{丁}{戊}「狐」作「鬼」{甲}{乙}{己}
007_0757_c_03L「觜都…又曰」十四字無有而有文如下「如到
007_0757_c_04L寶山空手去者深可憐愍又曰汝等諸人自己
007_0757_c_05L靈光盖天盖地不拘文字軆露眞常」{甲}{乙}{己}

007_0757_c_06L「如呑…云云」二十六字無有而有文如下「請
007_0757_c_07L將智慧之觜啄破無明之殼幸甚」{甲}{乙}{己}

007_0757_c_08L「呑」作「蚕」{丁}{戊}
「隆」上有「至」{甲}{乙}{己}
007_0757_c_09L「謂門徒日」無有而有文如下「特命檜巖住持義
007_0757_c_10L普賢住持元珪禪德暉晶學玄禪燈義淨
007_0757_c_11L精之徒曰」{甲}{乙}{己}
「者」無有{甲}{乙}{己}「有」
007_0757_c_12L無有{甲}{乙}{己}
「此無常之體」作「物之常」{甲}{乙}
007_0757_c_13L{己}
「也」下有「昔者莊子以天地爲棺槨之語
007_0757_c_14L實自有理莊子尙爾況道人乎」{甲}{乙}{己}
「吾」
007_0757_c_15L下有「常」{甲}{乙}{己}
「茟」作「筆」{丁}{戊}「畵」
007_0757_c_16L上有「大」{甲}{乙}{己}
「偈」無有{甲}{乙}{己}「曰」
007_0757_c_17L下有「八十人間命迅如一電光臨行忽擧目
007_0757_c_18L路是家鄕亦繼吟於口而書於紙曰」{甲}{乙}{己}

007_0757_c_19L「即」無有{甲}{乙}{己}「筆」作「茟」{甲}{乙}{己}次同
007_0757_c_20L「于」作「干」{丁}「合」下有「群雉大呌川魚聚
007_0757_c_21L頭」{甲}{乙}{己}
「緇」作「䊷」{甲}{乙}{己}「咽」作
007_0757_c_22L「噎」{甲}{乙}{己}
「闍維…洞天」八字作「以天竺法
007_0757_c_23L闍維之神光奪夜天地洞然」{甲}{乙}{己}
「門人
007_0757_c_24L…箇建」二十字無有而有文如下「銀色舍利鑴」
007_0757_c_25L{甲}{乙}{己}
「鐘」下有「 以」{甲}{乙}{己}「迹」作「跡」
007_0757_c_26L{甲}{乙}{己}
「然則…先祖也」二十九字在「岸哉
007_0757_c_27L(此頁中段九行)」之後{甲}{乙}{己}
「盭」作「▼((辛+攵)/心)」
007_0757_c_28L{丁}{戊}
「邦」作「藏」{甲}{乙}{己}「摝」作「漉」{甲}
007_0757_c_29L{乙}{己}
「末世…靜撰」二十九字無有而有文如
007_0757_c_30L下「亦可謂佛法之棟樑而叢林之獜角者也
007_0757_c_31L今以樸樕之材湫隘之見毛錐記德可慙可懼
007_0757_c_32L然以衆口之緖餘乃移撰于紙墨而已隆慶戊辰
007_0757_c_33L良月下澣判大華嚴宗事判大曹溪宗事休靜謹書
007_0757_c_34L慶聖堂休翁行錄終」{甲}{乙}{己}
「麟」作「獜」{丁}
007_0757_c_35L{戊}
此眞賛文在卷頭{甲}{乙}ㆍ無有{己}「常寂
007_0757_c_36L常照」作「常照常寂」{甲}{乙}
此跋文無有{甲}{乙}
007_0757_c_37L{丙}{己}
「榟」作「▼(女+宰)」{戊}「兼」無有{丁}{戊}

007_0758_a_01L사자도대선사賜紫都大禪師 정공靜公이 지은 것이다. 우리 유가儒家는 도道를 존숭하기 때문에 『논어論語』 향당鄕黨 편 속에 하나의 살아 있는 성인聖人의 모습을 그려놓았고, 선가禪家는 법法을 공경하기 때문에 지금 역시 세 분의 장로長老를 그려내었으니, 자취는 비록 다를지라도 스승을 위하는 마음은 똑같다고 하겠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현산 취은峴山醉隱은 쓰다.

007_0758_a_01L曺溪宗事賜紫都大禪師靜公所撰也
007_0758_a_02L儒尊道故鄕黨篇中曾畫出一箇活聖
007_0758_a_03L人去禪家敬法故今亦寫三箇長老
007_0758_a_04L迹雖殊而爲師心則同也嗚呼休哉
007_0758_a_05L山醉隱識
  1. 1)진장鎭將 : 국경 지대를 지키는 장군.
  2. 2)지암智巖 : 당대唐代 우두종牛頭宗의 승려이다. 수隋나라 양제煬帝 대업大業 연간에 낭장郞將이 되어 자주 전공戰功을 세우다가 40세에 출가한 뒤에 우두산牛頭山으로 법융法融 선사를 참알하고 개오開悟하여 그 정법正法을 이었다.『續高僧傳』권20, 『景德傳燈錄』卷4.
  3. 3)계교하는~한다(颺在他方) : 『大慧普覺禪師語錄』권22, 「묘심거사에게 보이다(示妙心居士)」에 나온다. 고봉의 어록이라고 한 것은 청허의 착오가 아닌가 한다.
  4. 4)결하結夏 : 승려들이 음력 4월 보름부터 3개월 동안 사찰 밖으로 나가지 않고 좌선을 하며 공부에 매진하는 것을 말하는데, 결제結制 혹은 하안거夏安居라고도 한다.
  5. 5)한도인閑道人 : 절학무위한도인絶學無爲閑道人의 준말이다. 즉 스스로 도를 깨우친 결과 더는 배울 것이 없어서 할 일이 없어진 한가한 도인이라는 뜻이다. 당唐나라 선승禪僧 영가 현각永嘉玄覺이 지은 ‘증도가證道歌’ 첫머리의 “그대는 배움을 끊어버린 채 아무 할 일도 없이 그저 한가하기만 한 도인을 보지 못했는가. 그는 굳이 망상을 없애려 하지도 않고 참된 진리를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는 무명의 참 성품이 바로 불성이 되고 허깨비 같은 빈 몸이 바로 법신이 된다.(君不見,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無明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6. 6)물고기가~알겠느냐 : 장자莊子가 친구인 혜시惠施와 물고기의 즐거움에 대해서 서로 토론을 벌인 이른바 ‘호량濠梁의 대화’가 『莊子』「秋水」 편 말미에 실려 있는데, 그 토론 중에 “그대는 물고기가 아닌데, 물고기의 낙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子非魚, 安知魚之樂.)”라고 혜시가 반박하는 대목이 나온다.
  7. 7)81세 : 원문에는 81세로 되어 있으나 순천順天 갑신년(1464)에서 가정嘉靖 갑오년(1534)이면 71세여야 한다. 다른 본에는 71세로 되어 있다.
  8. 8)섶의 불은~없고 : 『장자』「養生主」 말미의 “관솔불의 기름은 다할 때가 있지만, 불씨는 새로 전해져 끝날 줄을 알지 못한다.(指窮於爲薪, 火傳也, 不知其盡也.)”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9. 9)소림少林 : 중국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를 가리킨다. 보리달마菩提達摩가 남조南朝 양梁나라 때 인도에서 중국에 온 뒤에 이 절에 머물면서 9년 동안이나 아무 말 없이 면벽面壁하며 좌선을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고 칭했다는 고사가 전한다.『景德傳燈錄』권3.
  10. 10)비야毗耶 : 인도印度의 비야리성毗耶離城을 가리킨다. 유마거사維摩居士가 이 성에 거주하면서 중생의 병이 다 낫기 전에는 자신의 병도 나을 수 없다면서 드러눕자, 세존世尊이 문수보살文殊菩薩 등을 보내 그를 문병問病하게 하였는데, 문수가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대해 물었을 때 유마가 묵묵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문수가 탄식하며 “이것이 바로 불이법문으로 들어간 것이다.(是眞入不二法門也)”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維摩經』「入不二法門品」에 나온다.
  11. 11)마갈摩竭 : 석가釋迦가 설법했던 인도 중부 마갈다국摩竭陀國을 가리킨다. 수도는 왕사성王舍城이다. 그리고 석가가 “49년 동안이나 세상에서 설법하였지만 사실은 한 글자도 설한 것이 없다.(吾四十九年住世, 未曾說一字.)”라고 했다는 ‘세존미설世尊未說’의 공안公案이 전한다.『五燈會元』권1.
  12. 12)칠요七曜 : 해와 달과 다섯 가지 별을 합한 것. 다섯 가지 별은 목성ㆍ수성ㆍ화성ㆍ금성ㆍ토성을 말한다.
  13. 13)구장九章 : 아홉 가지 군기軍旗. 즉 일장日章ㆍ월장月章ㆍ용장龍章ㆍ호장虎章ㆍ오장烏章ㆍ사장蛇章ㆍ작장鵲章ㆍ낭장狼章ㆍ고장韟章을 말한다.
  14. 14)삼거三車 : 『法華經』에 나오는 양거羊車ㆍ녹거鹿車ㆍ우거牛車. 즉 성문승聲門乘ㆍ연각승緣覺乘ㆍ보살승菩薩乘의 삼승三乘을 뜻한다.
  15. 15)경절문徑截門 : 불립문자不立文字ㆍ직지인심直指人心ㆍ견성성불見性成佛을 지향하며 온갖 지해知解를 끊고 곧장 불지佛地에 오르는 교외敎外의 선문禪門을 말한다. 고려의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智訥이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ㆍ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ㆍ경절문徑截門 등 3개의 문을 시설하여 학인을 접화接化하였다.
  16. 16)주머니~드러나고 : 뛰어난 능력이 은연중에 외부에 드러나 알려지는 것을 말한다. 전국시대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의 문객인 모수毛遂가 주머니 속의 송곳(囊中錐)을 예로 들면서, ‘자기가 만약 일찌감치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다면 송곳 자루까지 빠져 나왔을 것.(穎脫而出)’이라고 말한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史記』「平原君列傳」.
  17. 17)절상회折床會 : 당唐나라 여회如會선사를 앙모하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어 승당僧堂의 탑상榻床이 부러지며 무너졌으므로 당시에 그 모임을 절상회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宋高僧傳』권11「如會傳」에 나온다.
  18. 18)사은四恩 : 불교에서 말하는 네 가지의 중한 은혜를 말한다. 부모은父母恩ㆍ중생은衆生恩ㆍ국왕은國王恩ㆍ삼보은三寶恩, 혹은 사장은師長恩ㆍ부모은ㆍ국왕은ㆍ시주은施主恩, 혹은 천하은天下恩ㆍ국왕은ㆍ사장은ㆍ부모은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9. 19)직설稷契 : 순舜 임금의 명신名臣들이다. 직은 농관農官이었고, 설은 사도司徒였다.
  20. 20)구이지학口耳之學 : 천박한 공부를 뜻하는 말이다. 『荀子』「勸學」의 “소인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귀로 들어왔다가 곧장 입으로 나가고 만다.(小人之學也, 入乎耳出乎口.)”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21. 21)인각麟角 : 기린의 뿔. 희유하고 빼어난 사람이란 뜻이다.
  22. 22)겁석劫石 :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40리 되는 반석磐石을 천인天人이 백 년에 한 번씩 옷자락으로 스쳐서 다 닳아 없어지는 기간을 소겁小劫이라 하고, 80리 되는 반석이 닳는 기간을 중겁中劫, 800리 되는 반석이 닳는 기간을 대아승지겁大阿僧祇劫, 즉 무량겁無量劫이라고 하는데, 그 반석을 겁석이라고 한다. 『菩薩瓔珞本業經』권하에 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1. 1){底}刊年未詳本(東國大學校所藏。卷末附原人論) {甲}隆慶三年妙香山普賢寺開刊。二老行蹟(高麗大學校所藏。此本內容則碧松堂埜老行錄。并埜老頌。及慶聖堂休翁行錄){乙}康熙二十九年慶尙道蔚山雲興寺開刊。二老行蹟(東國大學校所藏。此本內容則碧松堂埜老行錄。并埜老頌。及慶聖堂休翁行錄。與慶聖堂休翁行錄後跋){丙}高麗國光明山大法住寺開刊本(서울大學校所藏刊年未詳。此所集內容。則眞一編。碧松堂埜老行狀ㆍ碧松堂埜老集。警誡文。訓蒙要抄。金沙論){丁}崇禎三年龍腹寺版本(東國大學校所藏。淸虛集七卷本之卷五所載該當文) {戊}刊年未詳妙香藏版本(東國大擧校所藏淸虛集四卷本之卷三所載該當文) {己}刊年未詳本(延世大學校所藏。慶聖堂休翁行錄單篇)。題名及目次。編者補入。
  2. 2)「大師」作「埜老」{甲}{乙}{丙}ㆍ無有{丁}{戊}。
  3. 3)「蹟」作「錄」{甲}{乙}ㆍ作「狀」{丙}ㆍ作「跡」{丁}。
  4. 4)「大」右側行間有如下文「門人眞一編。判禪敎兩宗事都大禪師兼奉恩寺住持休靜撰」{丙}ㆍ無有{丙}。
  5. 5)「王」無有{丁}{戊}。
  6. 6)「夢」下有「見」{丙}。
  7. 7)「寄宿」無有{丙}。
  8. 8)「生焉」作「誕生」{丙}。
  9. 9)「劔」作「釼」{甲}{乙}{丙}{丁}次同。
  10. 10)「善」作「譱」{甲}{乙}。
  11. 11)「上」作「臥」{甲}{乙}{丙}。
  12. 12)「䰂」作「髮」{丁}{戊}。
  13. 13)「巖」作「嚴」{丁}{戊}。
  14. 14)「圓頓敎」作「楞嚴深」{甲}{乙}{丙}。
  15. 15)「西來」作「傳燈」{甲}{乙}{丙}。
  16. 16)「妙」作「微」{甲}{乙}{丙}ㆍ作「竗」{丁}{戊}。
  17. 17)「益」下有「數五年間。或之楓嶽」{甲}{乙}{丙}。
  18. 18)「正德…白雲」百六十字無有{甲}{乙}{丙}。
  19. 1)「軰」作「子」{丁}{戊}。
  20. 2)「逍遙…三月」十七字無有{甲}{乙}{丙}。
  21. 3)「入」上有「厥後」{甲}{乙}{丙}。
  22. 4)「智」作「知」{丙}。
  23. 5)「棲身草庵」無有{甲}{乙}{丙}。
  24. 6)「事」下有「其儀範緇林者。可謂一時之最。而後學之宗也。然」{甲}{乙}{丙}。
  25. 7)「師一…議也」百六十八字無有{甲}{乙}{丙}。
  26. 8)「劔」作「釼」{丁}{戊}次同。
  27. 9)「也」下有如下文「若導初學。則先以禪源集別行錄。立如實知見。次以禪要。語錄(丙本作書狀) 掃除知解之病。而指示活路也。凡接人機鋒。 大略若此。有時與門人雪誾靈觀圓悟一禪等六七十之徒。講諸大乘經論。則圓音落落。若飜大海之波瀾焉」{甲}{乙}{丙}。
  28. 10)「靖」下有「十三年」{甲}{乙}{丙}。
  29. 11)「藏」下有「而」{丙}。
  30. 12)「窓」作「牎」{甲}{乙}{丙}。
  31. 13)「長老」無有{甲}{乙}{丙}。
  32. 14)「法師…禪德」十字無有{甲}{乙}{丙}。
  33. 15)「眞一」作「一眞」{丁}{戊}。
  34. 16)「之徒」無有{甲}{乙}{丙}。
  35. 17)「之」無有{甲}{乙}{丙}。
  36. 18)「五」作「二」{甲}{乙}{丙}。
  37. 19)「筆」作「茟」{甲}{乙}。
  38. 20)「八」作「七」{甲}{乙}{丙}{丁}{戊}。
  39. 21)「劫」上有「則」{甲}{乙}{丙}。
  40. 22)「何」作「非」{丙}。
  41. 23)「忽」下有「於是乎撰」{丙}。
  42. 24)「嘉靖…謹撰」十七字無有{丙}。
  43. 25)「日」無有{甲}{乙}。
  44. 26)「頭流山人」無有而有文如下。「上澣判敎宗事都大師兼判禪宗事都大禪師行奉恩寺住持」{甲}{乙}。
  45. 27)「眞」上有「碧松堂嚴長老」{甲}{乙}ㆍ上有「寫師」而又其下有「又」{丙}ㆍ此眞賛文甲乙兩本在卷頭。
  46. 1)此左側行間有「碧松堂埜者行錄終」{甲}{乙}ㆍ有「碧松堂埜老行狀」{丙}。
  47. 2)此芙蓉堂行蹟文無有{甲}{乙}{丙}。
  48. 3)「先師」無有{丁}{戊}。
  49. 4)「茟」作「筆」{丁}{戊}。
  50. 5)「姝」作「妹」{戊}。
  51. 1)「柝」作「析」{丁}{戊}。
  52. 2)「古」作「石」{丁}。
  53. 3)「眞機信翁」無有而有文如下「大選淨源。信翁。禪德。眞機。道義軰」{丁}{戊}。
  54. 4)「搥」作「鎚」{丁}{戊}。
  55. 1)此敬聖堂行蹟文無有{丙}ㆍ「敬」作「慶」{甲}{乙}。
  56. 2)「禪師」作「休翁」{甲}{乙}{己}ㆍ無有{丁}{戊}。
  57. 3)「蹟」作「錄」{甲}{乙}{己}。
  58. 4)「曰」無有{甲}{乙}{己}。
  59. 5)「一」上有「母」{甲}{乙}{己}。
  60. 6)「三」作「二」{甲}{乙}。
  61. 7)「八」下有「聦黠明利。似有老成之風」{甲}{乙}{己}。
  62. 8)「羶」下有「甘嗜野菜」{甲}{乙}{己}。
  63. 9)「之」作「集」{甲}{乙}{己}。
  64. 10)「勞」作「勤」{甲}{乙}{己}。
  65. 11)「智」作「知」{甲}{乙}{己}ㆍ「智異」作「頭流」{丁}{戊}。
  66. 12)「大師」作「長老」{甲}{乙}{己}。
  67. 13)「留心活句」作「深得密旨」{甲}{乙}{己}。
  68. 14)「工夫…禪床」十五字作「志存大乘。冥心虛寂。不覺失笑」{甲}{乙}{己}。
  69. 15)「床」作「狀」{戊}。
  70. 16)「老」無有{甲}{乙}{己}。
  71. 17)「劔」作「釼」{甲}{乙}{丁}{戊}{己}。
  72. 18)「喝」上有「寒霜光燄燄。擬議問如何。分身作兩段」{甲}{乙}{己}。
  73. 19)「亦」無有{甲}{乙}{己}。
  74. 20)「入上院庵…九年」百二十四字無有而有文如下「厥後雲鳥活計。鶉㞐不㝎。天磨。五臺。白雲。楞伽。遊歷諸山。逍遙然天地間一大閑道人也」{甲}{乙}{己}。
  75. 21)「{甲}」上有「嘉靖」{甲}{乙}{己}。
  76. 22)「棲」作「捿」{甲}{乙}{丁}{戊}{己}。
  77. 23)「殿」下有「智嶽彌峻。法海尤闊」{甲}{乙}{己}。
  78. 24)「焉」下有「且結會道場。非普賢則必內院。非內院則必普賢巡遆兩處。坐二十餘夏矣。古人云方丈雖寛。物情自隘。此之謂也」{甲}{乙}{己}。
  79. 25)「家」下有「之」{甲}{乙}{己}。
  80. 26)「故也…之軰」十字無有而有文如下「氷火同器。勢不俱全故也。曁戊午秋。命義雄。宗敏法心。法眞。性俊。性一。慧玉。智文。祖行之輩。俾創上禪庵。工訖。庵之東」{甲}{乙}{己}。
  81. 27)「敬」作「慶」{甲}{乙}{己}。
  82. 28)「窓」作「牎」{甲}{乙}{己}。
  83. 29)「爐」作「鑪」{甲}{乙}{己}。
  84. 30)「萬歲也」無有{甲}{乙}{己}。
  85. 31)「可謂…契也」八字無有{甲}{乙}{己}。
  86. 32)「夜」下有「揮塵」{甲}{乙}{己}。
  87. 33)「這邊那邊」作「關西湖南」{甲}{乙}{己}。
  88. 34)「賺」作「賺」{甲}{乙}{己}。
  89. 1)「作地…航也」作「未免虛生浪死。又」{甲}{乙}{己}。
  90. 2)「航」作「舤」{丁}{戊}。
  91. 3)「狐」作「鬼」{甲}{乙}{己}。
  92. 4)「觜都…又曰」十四字無有而有文如下「如到寶山。空手去者。深可憐愍。又曰汝等諸人。自己靈光。盖天盖地。不拘文字。軆露眞常」{甲}{乙}{己}。
  93. 5)「如呑…云云」二十六字無有而有文如下「請將智慧之觜。啄破無明之殼。幸甚」{甲}{乙}{己}。
  94. 6)「呑」作「蚕」{丁}{戊}。
  95. 7)「隆」上有「至」{甲}{乙}{己}。
  96. 8)「謂門徒日」無有而有文如下「特命檜巖住持義卞。普賢住持元珪。禪德暉晶。學玄。禪燈。義淨。一精之徒曰」{甲}{乙}{己}。
  97. 9)「者」無有{甲}{乙}{己}。
  98. 10)「有」無有{甲}{乙}{己}。
  99. 11)「此無常之體」作「物之常」{甲}{乙}{己}。
  100. 12)「也」下有「昔者。莊子以天地爲棺槨之語實自有理。莊子尙爾。況道人乎」{甲}{乙}{己}。
  101. 13)「吾」下有「常」{甲}{乙}{己}。
  102. 14)「茟」作「筆」{丁}{戊}。
  103. 15)「畵」上有「大」{甲}{乙}{己}。
  104. 16)「偈」無有{甲}{乙}{己}。
  105. 17)「曰」下有「八十人。間命。迅如一電光。臨行忽擧目。活路是家鄕。亦繼吟於口。而書於紙曰」{甲}{乙}{己}。
  106. 18)「即」無有{甲}{乙}{己}。
  107. 19)「筆」作「茟」{甲}{乙}{己}次同。
  108. 20)「于」作「干」{丁}。
  109. 21)「合」下有「群雉大呌川魚聚頭」{甲}{乙}{己}。
  110. 22)「緇」作「䊷」{甲}{乙}{己}。
  111. 23)「咽」作「噎」{甲}{乙}{己}。
  112. 24)「闍維…洞天」八字作「以天竺法闍維之。神光奪夜。天地洞然」{甲}{乙}{己}。
  113. 25)「門人…箇建」二十字無有而有文如下「銀色舍利鑴」{甲}{乙}{己}。
  114. 26)「鐘」下有「 以」{甲}{乙}{己}。
  115. 27)「迹」作「跡」{甲}{乙}{己}。
  116. 28)「然則…先祖也」二十九字在「岸哉(此頁中段九行)」之後{甲}{乙}{己}。
  117. 29)「盭」作「▼((辛+攵)/心)」{丁}{戊}。
  118. 30)「邦」作「藏」{甲}{乙}{己}。
  119. 31)「摝」作「漉」{甲}{乙}{己}。
  120. 32)「末世…靜撰」二十九字無有而有文如下「亦可謂佛法之棟樑。而叢林之獜角者也。余今以樸樕之材。湫隘之見。毛錐記德。可慙可懼。然以衆口之緖餘。乃移撰于紙墨而已。隆慶戊辰良月下澣判大華嚴宗事判大曹溪宗事休靜謹書慶聖堂休翁行錄終」{甲}{乙}{己}。
  121. 33)「麟」作「獜」{丁}{戊}。
  122. 34)此眞賛文。在卷頭{甲}{乙}ㆍ無有{己}。
  123. 35)「常寂常照」作「常照常寂」{甲}{乙}。
  124. 36)此跋文無有{甲}{乙}{丙}{己}。
  125. 37)「榟」作「▼(女+宰)」{戊}。
  126. 38)「兼」無有{丁}{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