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법요초(心法要抄) / 心法要抄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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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_0647_c_01L심법요초心法要抄심법요초 서문(心法要抄序)이한李漢1)은 “문장이란 도를 밝히는 도구이다.”라고 하였으니, 진실하도다, 이 말씀이여. 문장을 짓되 도를 밝히지 못하면 비록 교묘하더라도 어찌 취하리오. 청허 노화상께서 (글을) 가려 모으는 여가에 도에 들어가는 핵심(經要)을 기술하시어 ‘심법요초’라고 이름하셨고, 소요 대사逍遙大師2)께서 이를 기록하셔서 상자에 보관하며 알아보는 자를 기다렸다. 목양 이牧羊頤3) 도인이 이를 간행하여 배포하고자 하면서 나에게 서문 한 말씀을 요청하였다. 내가 그 책을 구하여 읽어 보니, 한 글자 한 말씀 가운데 도를 밝히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어찌 이와 같이 기이하리오. 옛적 노나라 양공襄公이 쓴 정전鼎篆은 지극한 보배였지만,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고, 오직 도안道安만이 그것을 변별할 수 있었으니, 오직 이공頤公과 같은 분을 만나지 못할 것이 두려울 따름이다.(이공의 법명) 앞의 글자는 명明이다.4)처능處能5)이 삼가 쓰다. -
007_0647_c_01L[心法要抄]
007_0647_c_02L1)心法要抄序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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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_0647_c_04L曺溪 [1] 曰。文者。貫道之器也。誠哉是言。
007_0647_c_05L爲文而不貫道。雖工。奚取哉。淸虛老和
007_0647_c_06L尙。拾掇之暇。述入道經要。名之曰心
007_0647_c_07L法要抄。逍遙大師。錄之藏篋。以竢知
007_0647_c_08L者。牧羊賾 [2] 道人。將欲刊布。微 [3] 余一言
007_0647_c_09L辨 [4] 之。余求其卷而讀之。隻字片言。無
007_0647_c_10L非貫道也。何若是之奇乎。昔魯襄公之
007_0647_c_11L鼎篆。非不至寶而人無知者。惟道安能
007_0647_c_12L辨之。唯不得如賾公者。是惧焉。上字
007_0647_c_13L明也。處能謹書。
007_0647_c_14L{底}甲辰大芚山安心寺留置本(國立圖書館所
007_0647_c_15L藏) {甲}刊年未詳本(서울大學校所藏) {乙}刊年
007_0647_c_16L未詳妙香藏版本淸虛堂集卷四收錄該當文(東
007_0647_c_17L國大學校所藏)。此序文。甲乙兩本無有。
- 1)이한李漢 : 한유韓愈(768~824)의 제자이자 사위이다. 그가 쓴 「昌黎文集序」에 “문장은 도를 밝히는 도구이니 이에 깊이 통달하지 않고서 도에 지극한 사람은 없다.(文者, 貫道之器也, 不深於斯, 道有至者不也.)”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문장은 『古文眞寶 後集』에 수록되어 있다.
- 2)소요 대사逍遙大師 : 1562~1649. 부휴 선수浮休善修(1543~1615)에게 경을 배웠고, 묘향산에 가서 청허 휴정淸虛休靜(1520~1604)의 문하에서 수행하여 그의 법을 이었다. 저서로 『逍遙堂集』이 있고, 효종이 1652년에 ‘혜감선사慧鑑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 3)목양 이牧羊頤 : 목양 명이牧羊明頤를 가리킨다. 한편 『西域中華海東佛祖源流』(H10, 118c)에는 화악 문신華岳文信의 법을 이은 ‘목양 명이’가 있다. 이에 따르면, 청허 휴정淸虛休靜―소요 태능逍遙太能(1562~1604. 청허 하 제1세)―해운 경열海運敬悅(1580~1646. 제2세)―취여 삼우翠如三愚(제3세)―화악 문신華岳文信(1629~1707. 제4세)―목양 명이(제5세)으로 이어진다.
- 4)원문은 ‘上字明也’라고 하여 본문과 같은 크기의 글씨로 되어 있지만, 처능이 이 책의 간행자를 ‘목양 색’이라고만 소개하였으므로, 그의 법명 전체를 온전히 보여 주기 위해 ‘색色’ 앞에 ‘명明’이 있음을 설명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 5)처능處能 : 백곡 처능白谷處能(1617~1680)을 가리킨다. 조선 후기에 팔도선교십육종도총섭八道禪敎十六宗都摠攝을 역임하였다. 현종의 척불 정책에 대하여 「諫廢釋敎疏」를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 1){底}甲辰大芚山安心寺留置本(國立圖書館所藏) {甲}刊年未詳本(서울大學校所藏) {乙}刊年未詳妙香藏版本淸虛堂集卷四收錄該當文(東國大學校所藏)。此序文。甲乙兩本無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