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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_0113_a_01L견정론(甄正論) 상권
현의(玄嶷) 지음
이한정 번역
체속공자(滯俗公子)가 견정(甄正)선생에게 이같이 말했다.
“저는 속세에 오랫동안 묻혀 살아 왔기에 생각이 대방(大方)을 알지 못하고, 말세에 태어났기에 마음이 통리(通理)에 어둡습니다. 보고 듣는 것을 게을리 하다가 갈림길에 부딪치면 머뭇거리면서 끝내 말에 체하고 현혹되어 평탄한 길에서도 자빠지는지라, 스스로 현혹된 것을 가슴에 품고 세월만 보냈습니다. 바라건대 손가락으로 남쪽을 알리고 소매로는 북쪽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선생이 책상을 치우고서 이같이 대답했다.
“내 어려서 『시경(詩經)』과 『예경(禮經)』만을 익히다가, 장성하여서는 옛 전적(典籍)을 즐겼는데, 이에 탐닉하여 해를 거듭하며 살펴보아도 피곤한 줄을 몰랐다. 책에 실린 것이나 글자로 쓰인 것은 제왕(帝王)의 치도(治道)일 뿐이다. 무릇 거룩한 가르침의 문호는 시비를 환히 밝히지 못하면 비류(紕謬)를 상세히 가리지 못하기에, 오래도록 영대(靈臺)에 두고 살피면서도, 나를 벗하는 이 없는 것이 한스러웠는데, 그대가 지금 묻는 것도 말만 헛되게 하지 않겠는가?”
그러자 공자가 무릎을 꿇고서 이같이 말씀드렸다.
“모름지기 일을 기록하는 서책이나 조(朝)ㆍ대(代)1)를 편력하는 사(史)는 옛사람의 찌꺼기를 전한 것인데, 참으로 선왕의 거려(蘧廬)2)를 이 같은 말세의 속인과 논한다고 하여 어찌 의논이 되겠습니까?
석가(釋迦)께서 자취를 남긴 법왕(法王)의 교화는 9류(流)를 뛰어넘어 독보하는 것인지라, 만 겁토록 우러러보아도 언사로는 그 경계를 새기지 못하고 어리석은 지혜로는 그 조짐조차 들여다보지 못하며, 휘황하기가 10경(景)이 청천에 빛나듯 하고, 도도하기가 9영(瀛)이 벽해에 파도치듯 합니다. 이는 대체로 세간을 벗어나는 성지(聖旨)인지라, 저의 짧은 혀로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도가(道家)를 가르침으로 베푼 것은 유래가 깊습니다. 그러니 황제(黃帝)의 서(書)에서 백양(伯陽)의 전(典)에 이르도록, 모두 수신(修身)하여 치국(治國)하는 요체이면서도, 연명하여 장수를 누리는 공로가 있고, 가만히 은둔하여 마음을 맑게 비우는 규약이 있고, 부드러우면서 태평스러운 덕망이 있고, 너그러우면서 강하게 하는 작용이 있고, 예봉(銳鋒)을 꺾어 분란을 풀어내는 공능이 있으니, 진실로 범부를 이롭게 하되 시정(時政)에 흐트러짐이 없으니, 우리나라가 세워진 것도 이에 비롯합니다. 근자에 오(吳)나라와 촉(蜀)나라가 강역(疆域)을 나누었고, 송(宋)나라와 제(齊)나라가 대통(大統)을 이었으나, 각기 천존(天尊)을 세워 교화의 주체(主體)로 삼았습니다. 경론의 말씀에 따르면, 천존이란 도법(道法)의 종가(宗家)이고 현문(玄門)의 극위(極位)인지라, 하늘과 사람이 모두 받들기에 천존이라 부릅니다. 조화(造化)가 이루어지는 원천인데다 음양(陰陽)이 시작되는 근본으로 천지를 낳고 건곤(乾坤)을 잉태하기에, 만물이 이를 바탕으로 형태를 세우면 삼광(三光)이 그것을 받아 모양을 이룬다 하는데, 그 말에 따르면 천존은 천지보다 앞선다고 합니다.
선생께서는 학문이 산봉우리처럼 넉넉한 데다 석실(石室)3)마저 겸하셨으며, 도는 유가와 역사를 갖추신 데다 식견과 변재가 세밀하십니다. 맑은 거울이 높이 매달려 오는 물건을 비추듯이, 큰 종을 두드리기를 기다려 바람 타고 흐르듯이, 이 깊은 의심을 터놓아 미혹한 이들을 돌이켜 주십시오.”
마침내 선생이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처럼 어리석고 고집 센 중생이 어찌 그대뿐이겠는가? 들어와 앉으라. 내 그대에게 이를 한번 논해보리라.
대체로 도가(道家)를 가르침으로 삼은 것이 황제(皇帝)에서 비롯하여 백양(伯陽)에 이른다는 일이 참으로 그대의 말과 같다고 치더라도, 천존에 이르러서는 얼마나 허망하고 얼마나 그릇됐는지 그대는 잘 귀담아 듣거라. 내가 그대에게 이를 분석하여 논하리라. 대체로 우주의 바깥은 말로써 다다를 바가 아니기에 사람이 이를 알 도리가 없으나, 천지의 안은 귀와 눈이 이르는 곳으로 모두 상세하게 규명할 수 있다. 내가 서(書)ㆍ사(史)를 열람하다가 고인이 남긴 말이 간독(簡牘)에 기록된 것이나 한묵(翰墨)에 전해지는 것을 훑어보았으므로, 마땅히 그대에게 사적(史籍)에 근거하고 전기(典記)에 의지해서 말하겠노라. 『주역(周易)』의 「구명결(鉤命決)」에서는 천지가 갈라지기 전에 태역(太易)이 있었고 태초(太初)가 있었고, 태시(太始)가 있었고 태소(太素)가 있었고 태극(太極)이 있었기에, 이를 5운(運)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를 풀어 보면 기(氣)의 형상이 나뉘지 않은 것을 태역이라 부르고, 원기(元氣)가 바야흐로 싹트는 것을 태초라 부르고, 기가 형태를 바로잡는 것을 태시라 부르고, 형체가 변하여 바탕을 이루는 것을 태소라 부르고, 바탕과 형체가 모두 갖춰진 것을 태극이라 부른다. 5기(氣)가 차츰 변화하는 것을 5운이라 부르니, 이것은 기의 형태와 바탕이 갖춰져 서로 떨어지지 않은 것을 가리켜서, 모두 태역이나 태소 따위로 부르는 것이다. 또 『역위(易緯)』 「통괘(通卦)」에서는 역(易)에 태극이 있고, 이것에서 양의(兩儀)가 생겨나는데, 기(氣)가 맑고 가벼운 것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기가 탁하고 무거운 것은 아래에 뭉쳐 땅을 이루기에, 천지가 화합하여 사람이 생겨나면, 사람을 이것에 보태어 삼재(三才)라 부른다고 한다. 또 『주역』「서괘(序卦)」에서는 천지만물이 있고 나서야 군신(君臣)이 세워지고 부자(父子)가 정해져서 장유(長幼)와 부부(夫婦)의 예법과 존비(尊卑)와 상하(上下)의 구별된다고 하는데, 이에 따르면태역(太易) 이전에는 기색(氣色)이 갈라지지 않았고, 형태와 형상이 나타나지도 않아 아득하게 혼돈된 ‘모양 없는 모양’이었으며, 이의(二儀)가 나누어지자 천지의 형태가 갖춰지고, 삼광(三光)이 명랑해져서 기의 형상과 바탕이 보이면, 마침내 음양이 교합하여 사람이 비로소 생겨났다고 한다. 이 이후에야 삼재가 드디어 갖춰졌다고 하는데, 여기에 서(書)와 기(紀)를 겸하여 풀어보면, 마치 손바닥을 가리키듯이 알 수 있다.
천존이 만약 원래부터 형색이 없다면, 태역 따위와 다를 바가 없어서 5운에 우선하여 생겨나지 못한다. 만약 형색이 있다면, 삼재의 안에 태어나야 할 것이며, 이도 태역에 우선하지도 못한다. 또 태극 이전에는 형태도 없고 형상도 없으므로 천존에게 형태가 있다는 것이 맞지 않음이 명확해지리라. 만약 태역과 기가 동일하다면, 태극에 이르른 다음에야 삼재와 함께 형태를 갖추어 생겨나야 하는데, 이것은 음양과 천지에서 생육되는 것인데 어찌 천존이 천지를 낳는다고 하겠는가? 이같은 이치를 잘 연구하면 헛되고 실한 것이 스스로 드러나리니, 따로 경(經)ㆍ사(史)에서 찾지 않아도 되리라.”
이에 공자가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여 이같이 말했다.
“선생의 말씀처럼 참으로 허망하다면, 이는 단지 풍속이 사람을 바꾸었다는 것인데, 진흙탕에 빠져서 우매함만 늘었는데도, 어리석게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현혹되었습니다. 다시 의문나는 점을 여쭙고자 하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도가(道家)의 『영보경(靈寶經)』 따위에 따르면, 모두 천존의 말씀이라 하며, 부(部)ㆍ질(袟)이 모두 보존되어 있으므로, 근거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천존이 없다면 경전의 가르침은 어디서 비롯하게 되겠습니까?
『영보경』에 실린 사적은 너무도 분명하기에 제가 다시 말해 보겠습니다. 경전에는 천존은 대라천(大羅天) 현도(玄都) 옥경산(玉京山)에 머물면서 허공의 청림(靑林) 가운데로 노닐거나, 채목(寨木)의 아래에 앉기도 하면서 삼청(三淸)의 상청(上淸)에 처하니, 9선(仙)을 총괄하는 우두머리이고, 조회(朝會) 때마다 백령(百靈)이 모이되, 그 품계가 만 가지나 되기에 그 신변(神變)의 기이함이 모두 경문에 열거되어 있습니다.
만약 아무런 영향(影響)도 없었다면, 어떻게 이같이 하였겠습니까? 고견을 듣고 싶사오니, 잠시나마 의심을 풀어주십시오.”
선생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가 미신에 빠져 든 것이, 어찌 이다지도 심한가? 그대에게 대략을 논하겠으니, 그대는 잘 듣도록 하거라.
대체로 거짓되게 말하면 안 되므로 말은 반드시 『예경(禮經)』에 의거해야 하고, 붓은 함부로 놀려서는 안 되므로 일마다 전적에 근거해야 한다. 『예경』에 실리지 않았다면 바르지 못한 얘기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전적에 기록된 바도 없다면 실로 허무맹랑한 말이 된다. 겸상(縑緗:서적)은 징험할 수 있고 치소(緇素:승려와 속인)는 속이기 어렵기에, 마침내 가르침을 달리하여 외방(外方)에 두고 기이한 자취를 이 가운데 붙여서 사책(史策:기록)을 강구하여 명감(明鑑)의 임형(臨形)4)을 같게 하고자 제력(帝歷)을 구하였다.5) 만약 경중을 저울질하여 사물을 가늠해보면 무회씨(無懷氏)6) 이전에는 문자가 조합되지 못하다가 염황(炎皇) 이래로 서(書)와 기(紀)가 늘어났으니, 황제와 소호(少昊)의 대(代)와 전욱(顓頊)과 제곡(帝嚳)의 조(朝)와, 당요(唐堯)와 우순(虞舜)의 군(君)과, 하우(夏禹)와 은탕(殷湯)의 후(后)에 이르기까지, 그리고주무(周武)와 진양(秦襄)이래로 한(漢)ㆍ위(魏)ㆍ진(晉)ㆍ송(宋)의 이전까지 위로는 『상서(尙書)』와 좌전(左傳)이 있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황보밀(皇甫謐)의 『제왕기(帝王紀)』가 있고, 위요(韋耀)의 『통기(洞紀)』가 있고, 양엽(楊曄)과 배개(裴玠)의 서(書)가 있다. 역대로 서로 계승하여 연기(年紀)를 뚜렷이 하되, 큰 일은 기록하지 않은 것이 없고, 소소한 일마저도 실리지 않은 바가 없다. 선양(禪讓)과 전쟁(戰爭)의 제(帝)와, 순요(純澆)와 보취(步驟)의 황(皇)과, 신기(神祇)와 변현(變現)의 징표와, 재이(災異)와 상서(祥瑞)의 감응과, 용봉(龍鳳)과 구사(龜蛇)의 통감(通感)과, 어별(魚鱉)과 현시(贙兕)의 정령(精靈)에서 심지어 수목의 기괴(奇怪)함과 귀요이매(鬼妖魑魅)까지도 모두 기록하여 빠트린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천존만은 그 일이 상세하지 않은가?
천황(天皇)이 운(運)을 열어 제업(帝業)을 권여(權輿:사물의 시초)하는 것은 인황(人皇)의 연대로 아득하게 이어지되, 5성(姓)을 본종[宗本]으로 하였으니, 이에 72성이 파생되어 번창하되, 유소(有巢)와 수인(燧人)에 이르기까지 6기(紀) 96대 1백80만 2천7백60여 년을 거쳤다. 당시는 문자가 생겨나지도 않았고 풍속도 질박하였으며, 태호(太昊)에서 무회씨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16대이니, 합산하면 1만 7천7백83년간의 햇수이다. 3기(紀) 72선(禪)을 거쳐서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로부터 황제의 자손에 이르기까지, 서로 18세(世)를 이어왔기에, 합산하면 1천5백30년간이다. 문자가 생겨나자 점차로 기록이 상세해지고, 이때부터 사관(史官)이 확립되어 겪은 대로 볼 수 있어서 여러 가지 방책(方策)이 구비되었으나, 천존의 이치는 아무리 열독하여도 들리는 바가 없다. 따라서 이로 미루어 보면 그 허망함을 밝히기 충분하다 하리니 다시 무엇을 의심내겠는가?”
이에 공자가 말했다.
“선생께서 현하(懸河:폭포)처럼 변재에 능하시고, 끊이지 않고 말씀을 토하시니, 마음이 정갈하게 씻어지고 이목이 참신해집니다. 스스로 소리를 죽이고 숨을 삼킨 채 이치를 살피고 유현(幽玄)에 형통하더라도, 미신에 막힌 것이 너무 깊어서, 약간의 의혹이 없지 않습니다. 다시금 고견을 청하자니 부끄러운 마음만 앞섭니다. 재차 상세한 말씀을 청하고자 그동안 쌓인 우매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도가(道家)의 가르침의 자취와 의지(義旨)가 몹시 많은 데다 법문(法門)의 명수(名數)나 사리(事理)가 적지 않습니다. 경전에도 36부의 명자가 있어서 모두 삼통(三洞)에 포함되는 데다, 옥자(玉字)ㆍ금서(金書)ㆍ은함(銀函)ㆍ요격(瑤格)ㆍ자필(紫筆)ㆍ주도(朱韜)마다 모두 나타내어 밝혔으니, 어찌 이 모두가 헛된 것이겠습니까?”
선생이 말했다.
“그대가 근본에 현혹되더니, 이제는 또 말단에 현혹되는구나. 그대가 논한 것에서 약간만 보충하면 깨달을 수 있으리라.
도가의 경전은 모두 천존의 말씀이라 하나, 이는 주체가 본래 허망한 것임을 실토하는 것으로 가르침의 자취라는 것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가죽은 털을 남기지 않는데, 어찌 이를 다시 붙이려 하는가? 비록 36부가 남아 있어도 모두 위서(僞書)이며, 그 무리가 삼통(三洞)이라 칭하더라도 모두 실다운 기록이 아니다. ‘옥자’와 ‘금서’는 날조된 가운데서 생겨난 허위이고, ‘은함’과 ‘요격’은 허구 속에서 꾸며진 허구이며, ‘자필’이란 명칭도 말을 왜곡시켜 망령되게 세운 것이다. ‘주도’의 설도 억지로 치장하여 헛되이 이름붙인 것으로, 그 같은 일을 말하여 비루한 백성을 현혹시키되 진실을 은폐하니, 이것도 허망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도가에서 경전과 그 가르침을 천존의 계시라 주장하나 교주가 궁극적으로 있지 않으므로 경에 주체가 없이 설해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경을 설하는 주체가 없다는 것이 허위의 단서임을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이다. 반드시 근원을 캐고 원천을 따져야지, 어찌 번잡한 언사에 매여 애를 쓰는가?
그대가 아직도 미처 깨닫지 못하니, 끝내 분석하여 논하여야 하겠구나. 36부라 칭하는 것도 그 이치가 이러하다. 이 같은 이름은 불경에서 나온 것인데, 도사가 이를 근거로 창작하였다. 비루하고 우매한 무리들이 많으면 좋다고 여겨서 불경에는 12부가 있는데, 이에 24부를 더하여 모두 36부를 만들었다. 불법에서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 따위의 6근(根)의 염진(染塵)을 설하고, 이에 기인해서 죄명을 제정한다. 이어 6근의 매 근마다 6종(種) 법문(法門)을 열어서, 6곱하기 6은 36인 까닭에 36이라 표시하는 것을 보고는, 이같이 따라 호칭하더라도 그 이름만이 있을 뿐이지 끝내 그 이치는 없다. 매 부(部)의 내용마다 사리에 어긋나는 것도, 이것은 성인의 풀이가 아니라 망령되게 날조하였으니, 어찌 면밀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36부가 거짓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삼통이란 명칭도 불경의 삼장(三藏)을 모방하였으니, 삼통이란, 첫째를 ‘통진(洞眞)’이라 이르고, 둘째를 통현(洞玄)이라 이르고, 셋째를 통신(洞神)이라 이른다. 이 같은 것을 삼통이라 하는데, 여기서 통(洞)이란 통찰하여 밝게 깨닫는다는 이치이기에, 이 같은 세 부류의 경전을 익히면 도리를 밝게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하고자 삼통이라 부른 것이다. 통진이란 불법의 대승경전을 배워서 법체(法體)의 실상(實相)을 풀어내는 것이고, 통현이란 이치를 설명하여 진실에 계합하는 것이고, 통신이란 부적ㆍ금방(禁方)ㆍ장표(章標)ㆍ초의(醮儀)의 부류이다. 지금 삼통의 경문을 조사해 보면, 오직 『노자』의 두 권이 통현의 목차에 약간 섭수(攝受)되었는데, 그 통진부(洞眞部)란 바로 영보(靈寶)이다. 경전의 숫자도 근대의 오(吳)ㆍ송(宋)ㆍ제(齊)ㆍ양(梁) 4대조(代朝)의 도사, 갈현(葛玄)이나 송문명(宋文明)ㆍ육수정(陸修靜) 및 고환(顧歡) 따위가 날조한 것으로, 모두가 실다운 근거가 없다. 그 통신의 1부는 후한말 촉나라 사람 장도릉(張道陵)이 스스로 설한 것이라 하는데, 저이가 아미산(峨嵋山)에서 도를 닦아 증과(證果)하자, 노자가 자미궁(紫微宮)에서 하강하여 장도릉에게 천사(天師)의 직임과 부적ㆍ금방(禁方)ㆍ장표(章標)ㆍ초의(醮儀)의 일과 귀신을 부르는 술법을 수여하였다고 이르면서, 도릉이 몸소 도경(道經)이라 날조한 경이 수백 권이나 된다. 장도릉이 천존과 마주보고 설법하였다는 경전도 그 경문은 대부분 천사 장도릉이 설했다고 한다. 진(晉) 무제(武帝)가 오나라를 평정한 이후에 장도릉의 경법(經法)이 처음으로 강좌(江左)에 유포되었다. 송문명 등이 장도릉이 날조한 경전에다 의소(義疏)를 창작하여 이를 풀이하자, 이로 인해 다시 위경(僞經)이 급증하여 그 수가 늘어나게 되었으므로, 삼통이 날조된 경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옥자’와 ‘금서’는 천존이 옥경(玉京)의 현도(玄都)에서 경전을 설하자, 여러 천상의 진인(眞人)들이 편집하여 ‘옥(玉)’이라 제자(題字)하고 그 경문을 베낀 것이라 하는데, 일설에는 ‘옥자’란 여러 천서(天書)의 이름이라고도 한다. ‘금서’는 금(金)에 새긴 것을 제자한 것이니, 지금의 도사들에게 수여되는 진문(眞文) 및 상청(上淸)의 어휘들은 모두 ‘옥자’로서 글을 삼는데, 그 글자가 소전(小篆)과 비슷하면서도 소전이 아니다. 도가는 진행도(眞行道)를 밝혀서 5방에 단(壇)을 세우고 각자 하나의 진문(眞文)을 펼치는데, 그와 같은 글과 글자를 ‘옥자’로 쓴다. 송문명 등이 예서(隷書)를 지어 이를 번역하였다는데, 송문명에 따랐다는 이 같은 경위를 징험해 보면 글자를 위조한 것임이 더욱 뚜렷해진다. 만약 ‘옥자’가 원래 여러 천상의 진인이 쓰던 것이라면 송문명은 근대의 도사인지라 설법하는 집회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또 경을 편집한 진인과 서로 접촉하지도 않았을텐데, 어떻게 송문명이 ‘옥자’를 알아 예서로 바꾸었겠는가? 이는 ‘옥자’는 송문명이 지은 것인데, 전서체로 고치고서 ‘옥자’란 이름을 허위로 내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예서로써 그 날조된 글자를 다시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니, 이같이 증험해 보면 환히 알 수 있다. 또 ‘은함’과 ‘요격’이라는 것도, 함(函)은 경전을 담는 상자이고, 격(格)은 경전을 저장하는 창고이다. 이는 천존이 설한 경전은 하늘과 사람에게 공경 받는 것이라 은함에 담고 옥장에 모신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은과 옥이 귀하기 때문에 경전을 제본하는 데 쓰인다고 하나, 이 같은 것은 헛된 말로 전부가 속이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단지 선궁(仙宮)은 인간보다 존귀하여 매사가 다를 텐데, 만약 인간의 은과 옥으로 천궁의 보물을 삼는다면 인간의 소리와 색도 천궁에서 귀중한 것이 될 수 있겠다. 소리와 색으로 경전의 말씀을 위조하는 것도 망령된 것인데 은과 옥이 어찌 진재(眞材)가 되겠는가. 색의 대경(對境)이 동일한데도, 서로 간에 어떠한 차별이 있기에 진재로 옹립하면서 색을 부정하는지 그 연유를 모르겠다. 또 ‘자필(紫筆)’과 ‘주도(朱韜)’라 하는 것은 한층 더 거짓되며, 단지 붓이 생겨난 것은 여섯 나라[六國]에서 비롯된다고 전하는데, 진나라 사람 몽염(蒙恬)이 최초로 붓을 만들었다. 진나라 이전에는 모두 나무를 깎아 글을 쓰면서 이것을 참(槧)이라 부르거나 또는 찰(札)이라 부르거나 또는 고(觚)라 불렀기에 원래 붓이라는 이름조차도 없었는데 어떻게 천존이 이를 붓이라 불렀겠는가? 하물며 5색(色)도 실답지 못하고 6진(塵)도 모두 헛된 것인데, 미혹된 마음이 집착에 매여 망령되게 색이라 하는 것으로 성현에게는 본래 이 같은 소견이 없다. 이는 송문명 등이 세속에서 귀히 여기는 주자(朱紫)로서 도참(圖讖)을 색칠하는 데 쓰면서 이같이 이름을 붙인 것뿐이다. 또 도(韜)라는 것은 『육토(六韜)』를 본떠서 허망하게 태공(太公)의 병서(兵書) 이름을 표절했으며, 바로 세속의 책을 가지고 이름을 달리하였다 하나, 병지(兵誌)를 따서 목차를 정했기에, 참으로 진로(塵勞)의 경계를 여의지 못하고 바야흐로 생사의 흐름에 묻힌 것이라 하겠다. 말하는 일이 비슷하다고 그 이름을 아름답게 여겼으나 이치를 궁리해 보면 전부가 헛된 자취일 뿐이다.”
공자가 선생의 이 같은 말을 듣고서 정신이 아득해지고 마음이 동요되어 어쩔 줄을 모르다가 마침내 선생에게 이같이 말했다.
“듣건대 중구(衆口)는 쇠도 녹인다 하고, 참언(讒言)을 자꾸 하면 뼈도 녹아난다고 했습니다. 선생께서 이같이 논의하셔도 반박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의심나는 것을 아직도 풀지 못하였으니, 다시 풀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전에서 채운(彩雲)과 하광(霞光)이 허공에 맺혀 글자를 이루고, 연휘(烟輝)와 무액(霧液)의 뭉쳐진 기(氣)가 글이 되었다 합니다. 빛줄기가 8각형의 글자를 사방 1장으로 드리우자 마침내 『영보』가 모두 시현되었다 하는데 이는 참으로 그럴 듯합니다.”
선생이 말했다.
“생각을 고루한 데 집착하는 이는 바꾸기 힘드나, 성품이 밝아서 살피는 이는 쉽게 깨달을 진데, 그대는 깊이 빠져 들어 정신을 잃고서도 되돌리지 못하며, 미혹이라 생각하고도 보는 것에 휘말려 다시 의심을 내는구나. 그대는 자세히 들어보라. 내가 그대에게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이 같은 경전의 뜻을 일러주겠다. 대체로 진문(眞文)이라 서술하는 것은 근원을 속여서 『영보』의 허망한 자취를 현시하려는 것임을 이미 말했다. 천존이 일기(一氣)의 단서를 머금고 양의(兩儀)를 포괄하는 시초부터 물상(物象)과 군형(群形)을 낳아 기른다고 말하는데, 저 경전의 말씀이 헛된 소문에 의하지 않았더라도 글씨의 성립이 어떻게 기(氣)의 맺힘이라고 추리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송문명 등이 진문(眞文)의 인(因)을 위조하여 그 연기(緣起)의 상(狀)을 망령되이 세운 것이다. 그리하여 천존이 운하(雲霞)의 기가 맺히고 뭉친 것에 감응하여 글을 이뤘기에 글자가 바로 사방 l장이나 되었다는 것은 세속의 책과 달리하려는 의도이고, 빛줄기가 8각으로 내렸다는 것은 전예체(篆隷體)를 달리 쓰려는 것이다. 만약 진문을 이 하방(下方)에 드러내어 범속에서 모두 알리려면 반드시 신령한 형상도 시현해야 하나, 진문이 만약 상방(上方)의 천존이 모두 통솔하는 곳에 있다면 글이 번잡해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괴이한 자취를 나타내어 해조(海棗)의 논을 펴고자 해도 궁리하는 것이 달팽이 뿔처럼 허무한지라 이 또한 거짓이다.”
공자가 말했다.
“‘옥자’가 기가 허공에 맺힌 것임을 거짓이라 말씀하시니, 진실로 말씀하신 바와 같더라도 대라천(大羅天)이나 현도(玄都)의 경계 및 옥경(玉京)ㆍ선우(仙宇)ㆍ금궐(金闕)ㆍ천궁(天宮) 또는 허공의 청보림(靑寶林)이나 채목(寨木)의 영수(靈樹)나 삼청상계(三淸上界) 및 구선(九仙)의 영부(靈府)에 도속(道俗)을 함께 말씀하신 것이 어찌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선생이 마침내 팔장을 풀고 이같이 말했다.
“마침 그대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대가 먼저 물었구나. 지금 그대에게 그 허망함을 모두 드러내주겠다. 『영보』의 위경에 따르면 32천이 있는데, 그 천상은 밑에서 위로 중첩되어 놓여 있다고 한다. 밑에서 첫 번째가 태황황증천(太黃皇曾天)이고, 두 번째가 태명옥모천(太明玉貌天)이고, 세 번째가 청명하동천(淸明何童天)이고, 네 번째가 현태평육천(玄胎平育天)이고, 다섯 번째가 원명문거천(元明文擧天), 여섯 번째가 상명칠요천(上明七曜天)이고, 일곱 번째가 허무월형천(虛無越衡天)이고, 여덟 번째가 태극몽예천(太極濛翳天)이고, 아홉 번째가 적명화양천(赤明和陽天)이고, 열 번째가 상진현명천(上眞玄明天)이고, 열한 번째가 휘명종표천(暉明宗飄天)이고, 열두 번째가 축락황가천(竺落皇笳天)이고, 열세 번째가 허명당휘천(虛明堂暉天)이고, 열네 번째가 관명단정천(觀明端靜天)이고, 열다섯 번째가 현명공경천(玄明恭慶天)이고, 열여섯 번째가 태환극요천(太煥極瑤天)이고, 열일곱 번째가 원재공승천(元載孔昇天)이고, 열여덟 번째가 태안황애천(太安皇崖天)이고, 열아홉 번째가 현정극풍천(顯定極風天)이고, 스무 번째가 시황고망전(始黃考芒天)이고, 스물한 번째가 태황옹중천(太黃翁重天)이고, 스물두 번째가 원사강유천(元思江由天)이고, 스물세 번째가 상박원락천(上撲元樂天)이고, 스물네 번째가 무극담서천(無極曇誓天)이고, 스물다섯 번째가 호정소도천(浩庭霄度天)이고, 스물여섯 번째가 연통원통천(淵通元洞天)이고, 스물일곱 번째가 태문한총천(太文翰寵天)이고, 스물여덟 번째가 태소수락천(太素秀樂天)이고, 스물아홉 번째가 태허무상천(太虛無上天)이고, 서른 번째가 태석등승천(太釋騰勝天)이고, 서른한 번째가 용변범도천(龍變梵度天)이고, 서른두 번째가 태극평육천(太極平育天)이다.
대체로 도가의 32천에 근거하면 대라(大羅)라는 이름은 빠져 있으니, 원래 대라천이 없었음이 분명해진다. 이 또한 망령되게 날조한 것으로, 이 같은 32천 조차도 모두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다. 어떻게 이를 아는가 하면, 지금 제24천을 담서천(曇誓天)이라 하고 31천을 범도천(梵度天)이라 이름하는 것에 근거한다. 표절한 담(曇)과 범(梵)의 두 글자는 원래 이 땅에는 없었던 것이다. 『옥편(玉篇)』ㆍ『설문(說文)』ㆍ『자림(字林)』ㆍ『자통(字統)』에도 이 같은 글자가 없다. ‘담’과 ‘범’의 두 글자는 원래가 불경에서 나온 것인데 그 상대되는 말을 찾지 못하자 천축의 음운(音韻)을 새기고자 번역하던 이가 만들어 석가의 성지(聖旨)를 기술한 것이다. 이 땅에는 원래 이 같은 글자가 없었으나, 나중에 갈홍(葛洪)이 불경에서 범이란 글자를 베끼고 정(淨)이라 새겼기에 육법언(陸法言)7)이 이로써 『절운(切韻)』에 편입하였다. 만약 천존이 『영보』 따위의 경전을 설했더라도 이는 불법이 동쪽에 전파되기 이전이므로 이 글자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하늘의 이름에 충당할 수 있겠는가? 만약 불법 이후라면 이는 불경을 표절한 것이며, 근자에 위조하여 그 진퇴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하더라도 위조한 자취만은 저절로 뚜렷해진다. 저 대라라는 이름이 참으로 이 같은 부류에 해당되니. 이처럼 한 쪽을 징험하면 나머지 세 모서리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
또 현도의 선궁(仙宮)과 옥경(玉京)의 영수(靈岫)란 것도 경의 말씀에 따르면, 현도는 옥경산 위의 궁전 이름이고, 금궐은 현도궁의 대궐을 호칭하는 것이라 하나, 그 종지를 검토해 보면 허망함이 더욱 뚜렷해진다. 도가의 법이 이 땅의 가르침이고 천존이 이 땅의 성인이라면 설명하고 교화하는 것을 외번(外蕃)에 두지 않을 터이니, 그 머무르는 곳도 이 땅 위라야 함당하다. 문자(文字)에서 추정되는 제왕의 경계는 위로는 헌황(軒皇)의 대에서 아래로는 희주(姬周)의 조(朝)에 이르기까지 동쪽으로는 진한(辰韓)을 넘지 못하고, 서쪽으로는 대하(大夏)를 지나지 못하고, 남쪽으로는 겨우 상군(象郡)에 이르렀고, 북쪽으로는 안문(雁門)에 막혔으니, 이 가운데에 넓고 좁음으로 저 하늘의 멀고 가까움을 알 수 있다. 또 『십주기(十州記)』ㆍ『사이전(四夷傳)』ㆍ『지리지(地理誌)』ㆍ『여지지(輿地誌)』ㆍ『괄지지(括地誌)』ㆍ『급몽서(汲冡書)』에 따르더라도, 옥경은 말할 것 없고 현도란 지역조자 찾지 못하는데, 천존이 어떠한 곳에서 교화를 폈다 하겠는가? 만약 여러 천상이었다 하더라도 천상과 인간의 경계는 완전히 달라서 단지 더럽고 깨끗하다는 차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조차도 같지 않은데다 그 글자도 더욱 좋을 것이니, 매사에 모두 현격한 차이가 있으리라. 단지 천지ㆍ일월ㆍ산하ㆍ금옥ㆍ주패(珠貝)ㆍ총림ㆍ산석(山石) 따위조차도 동업(同業)에 함께 감득(感得)하는 망정(妄情)에서 귀천(貴賤)이 있다는 집착을 내는 것이니, 상천(上天)에는 이 같은 일이 없다. 바로 인간이 금과 옥이 진귀하다고 허망하게 집착하는 것에서 선도(仙都)와 산궐(山闕)이라 이름 붙이고, 다시 성인이라 덧붙여 말하더라도 참으로 이와 같지 않을 터이니 이 또한 거짓이 된다. 단지 세간의 말조차 지역에 따라 달라져서 만리 이내라도 말소리로 뜻이 통하지 않는다. 하물며 여러 하늘도 각각 성운(聲韻)이 유별할 터이니, 설사 천존이 실제로 옥경산 위에서 설법하였고 마침내 사람에 의지해서 사방으로 전해져 이 땅까지 왔더라도 반드시 번역하고 나서야 유포된 수 있는데, 증험해 보면 경전을 전한 사람도 없는 데다 번역을 한 장소도 없다. 설사 경전의 말이 이 땅의 음운으로 되어 있더라도 반드시 사람이 전하는 것을 기다려서야 이 땅에 다다를 수 있다. 천존이 경전을 설한 뒤에는 반드시 이를 모아 기록하는 문인(門人)이 있어야 상천(上天)에서 하대(下代)로 전하게 된다. 현도의 승경(勝境)에서 출발하여 적현(赤縣)의 신주(神州)에 이르러서 36부의 영문(靈文)으로 새기고 12품의 과격(科格)을 연출하였다면, 이는 사람의 일 가운데 참으로 장관일텐데 어째서 사적만이 남아 있고 기록된 것이 없는가? 대체로 유정(有情)이라면 그 불가능을 알 수 있으니, 이 또한 거짓이 된다. 또 공청(共靑)의 보림(寶林)이나 채목(寨木)의 영수(靈樹)나 삼아(三雅)의 처소도 기재되어 있지 않은 데다 구구(九丘)의 장소조차도 불확실하다. 비록 이름을 달리 날조해서 속세의 사물과 달리 보이도록 기도하더라도, 오직 『영보경』에서 설하는 것은 근거 삼을 만한 전(典)이나 기(記)가 없다. 매사가 헛된 말에 뿌리박는 것이 마치 그림자를 붙잡는 것과 같은지라 이 또한 거짓이 된다. 또 삼청(三淸)의 천상(天上)과 구선(九仙)의 천부(天府)를 말하는 것도 헛된 자취만을 늘려서 그 헛된 종지를 보태려는 것이다. 『영보경』의 삼청전(三淸天)의 이름에 따르자면 앞서 말했듯이 상하로 겹쳐서 안치하였다. 하천(下天)을 상청(上淸)이라 하고, 중천(中天)을 태청(太淸)이라 하고, 상천(上天)을 옥청(玉淸)이라 하니, 이러한 것이 바로 삼청이다. 이 같은 삼천(三千)은 32천의 바로 위와 대라천의 아래에 두었으니, 옥청은 천존이 머무는 하늘이고, 태청은 대도군(大道君)이 머무는 하늘이고, 상청은 노자가 머무는 하늘이라 풀이하였는데, 그 가르침을 따져보면 바로 허위임이 드러난다. 『영보』에는 32천의 천위(天位)가 미리 정해져 있으므로, 만약 삼천 및 대라를 보충하면 바로 36천이 되는지라, 이미 있던 32위(位)와 맞지 않기에 이 또한 불가하다. 만약 삼청과 대라가 32천 내에 있다면 삼청과 대라는 별명에 불과해서 32천의 명수에 나열하여 함께 표시해야 하는데, 그러한 별명의 이름을 경전에서 따로 호칭하는 바가 없으니, 32천의 명수가 아님이 분명해져서 이 또한 거짓이 된다. 또 이 경전은 천존의 말씀이라 칭하는데, 설법하는 주체가 원래 헛되게 날조한 것이니, 설사 삼청의 이름이 있더라도 원래 옹립할 만한 천존은 없다고 하겠다. 소위 ‘옥청의 경계’라는 것도 망론에 불과하니, 대도군이라 호칭하더라도, 도(道)는 허통(虛通)의 이치이고. 무물(無物)을 이르는 것인데, 태상도군(太上道君)에게 어찌 형상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태청의 하늘도 세울 수 없으므로 이 또한 거짓이 된다. 노자가 수레를 몰고 서역으로 갔다가 종당에는 승천했다는 근거가 아무데도 없으니, 상청의 위(位)를 헛되이 표시하는 일 따위는 모두가 헛바람 치는 말이다. 두세 번을 거듭하면서 더우 허망해졌으므로 그 거짓된 자취가 바로 뚜렷해진다. 구선(九仙)이라 말하는 것도 경전의 말씀에 따르면, 신선에는 아홉 등급이 있어 등급의 차별에 따라 그 위를 표시한다는데, 천존이 만약 그 우두머리라면 이는 신선의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도, 『신선전(神仙傳)』 가운데 어째서 실려 있지 않은가? 설사 이것이 사실이더라도 생사를 면하지 못하고 마침내 겁화(劫火)에 불태워져 성증(聖證)의 위(位)에 들지 못하기에 대체로 그 경위를 날조한 것이 바로 이 같은 유이다.”
공자가 말했다.
“선생이 거침없이 말씀하시어 아무리 말솜씨가 혓바닥에 꽃 피듯 하고, 구변이 샘솟듯 끊이지 않고, 문장이 급류가 쓸 듯이 하여 말로 치는 것이 마치 따사로운 봄바람이 얼음을 녹이고, 매서운 가을바람이 낙엽을 쓸 듯하여도 말은 한낱 말일 뿐입니다. 의심나는 것은 여전히 의심스럽습니다. 『영보도인경(靈寶度人經)』에 따르면 천존은 시청천(始靑天) 가운데 벽락(碧落)8)의 공가(空歌)인 대부려토(大浮黎土)에 머문다고 합니다. 이것은 천존이 거주한다는 근거가 되니, 설법하였다는 것도 의심할 바가 없어서 시청천도 분명해지고, 벽락의 궁(宮)도 확실해지는 데다, 그 경계를 표시하여 공가(空歌)라 호칭하고 그 국토를 이름하여 부려(浮黎)라고 새겼으니, 어떠한 고론이라도 이 같은 일마저 거짓이라 배척하지 못할 것입니다.”
선생이 손바닥으로 입을 쓰다듬으면서 공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고 안회(顔回)는 공자에게 칭찬 들었고, 아침에 세 개 주고 저녁에 네 개 준다고 저공(狙公)은 장생(莊生)에게 분노를 느꼈는데, 내 예전에는 이를 괴이쩍게 여겼으나 지금은 이를 믿게 되었다. 시청(始淸)의 하늘과 대라가 어떻게 다른지, 벽락이란 이름이 상청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앞서 일러줬어도 다시 현혹되는구나. 소위 32천의 설에 따르면 하늘에는 시청이란 이름이 없다. 또 삼청의 위(位)에도, 그 위에 부려(浮黎)의 경지가 없는데, 이를 뒤섞어 놓았으니, 시종(始終)이 어그러졌다. 단지 여러 천상에는 모두 천인뿐이며, 욕계(欲界)의 천상에는 남녀가 섞여 있는 곳으로, 비록 욕사(欲事)의 가볍고 무거움이 같지 않더라도, 열 가지 업을 훌륭히 닦아야 그 경계에 태어나니, 인간이 영토를 나누고 들판에 내 것이라 표시하는 것과 같을 수 없다. 또 색계(色界) 위로는 여자는 없고 남자만 있으니, 이는 사무량인(四無量因)을 닦아야 저 같은 과(果)를 감득(感得)하게 된다. 마침내 토지가 없는 실(實)에 감득하고 나면, 온갖 보배는 함께 이루어지는 것인데, 지금 말하는 대부려토(大浮黎土) 한 가지만 하더라도, 어찌 황당하지 않겠는가? 그 거짓된 경위는 징험해 보면 알 수 있기에, 이는 그대 자신의 생각이 어두운 것이지, 내 말이 틀린 것이 아니다.” - 033_0113_a_01L甄正論卷上大白馬寺僧玄嶷撰滯俗公子問於甄正先生曰:余長自聾俗,情未曉於大方;生於季代,心有昏於通理。每遲迴於聞見,踐歧路以躊躇;竟滯迷於言說,仰夷塗而顚躓。自懷此惑,行積歲時,希爲指南,坐祛知北。先生迺隱机而對曰:余少聞詩禮,長好墳籍,耽翫有年,搜覽無倦,簡冊所載文字所紀帝王政化,凡聖教門,莫不甄明是非,詳辯紕謬,久蓄靈臺之鑑,恨無起,余者商。子今質疑,不失言矣。公子跪而進曰:夫記事之書、歷代之史,述古人之糟粕,寔先王之蘧廬。此迺末俗之談,焉足言議?至如釋迦貽範,法王演化,超九流而獨步,歷萬劫而高視,言象不詮其閫域,愚智莫窺其萌兆。皎皎焉,若十景之耀靑天;滔滔焉,若九瀛之浮碧海。此蓋出世之聖旨,不俟僕之一二談也。夫道之爲教,其來尚矣。爰自黃帝之書,逮乎伯陽之典,修身理國之要,延齡保壽之功,靜退淸虛之規,雌柔恬淡之德,慈儉介剛之用,挫銳解紛之能,誠有益於凡情,固無虧於時政。自家刑國抑有由焉。近自吳、蜀分疆,宋、齊承統,別立天尊以爲教主。據其經論所說天尊者,迺道法之宗匠,玄門之極位,天人所奉故號天尊。源乎造化之先,本乎陰陽之始。生成天地孕育乾坤,萬物資之以立形,三光稟之以成象。據此所陳天尊在於天地之先矣。先生學富蓬山,藝兼石室,道該儒史,識辯幽微,明鏡高懸,物來斯鑑,洪鍾佇扣,敢遡下風。請決深疑,庶幾迷復。先生迺仰天而歎曰:此迷固衆,豈獨子焉?進坐。吾爲子論之。夫道之爲教,起自黃帝,逮於伯陽,誠如子之言也。至於天尊者,何虛妄乎,何虛誕歟!子諦聽之。吾爲子分折辯之。夫宇宙之外,言議所不及者,人莫得而知之;天地之內,耳目所洎者,咸可究而詳焉。余披覽書史,古人陳迹,簡牘所紀,翰墨所傳,咸見之矣。當爲子據史籍,憑典記而語之。案周易鉤命決云:‘天地未分之前,有太易,有太初,有太始,有太素,有太極:謂之五運。釋云:氣象未分謂之太易,元氣始萌謂之太初,氣形之端謂之太始,形變有質謂之太素,質形已具謂之太極,五氣漸變謂之五運。’此言氣形質具而未相離,皆謂太易、太素等也。又案易緯通卦云:‘易有大極是生兩儀。氣之淸輕者,上浮爲天;氣之濁重者,下凝成地。天地和而生人。以人參之,謂之三才。’又案易序卦云:‘有天地萬物,然後立君臣,定父子,長幼夫婦之禮,尊卑上下之別。’據此太易之前,氣色未分,形象未著,混淪茫昧無狀之狀,二儀旣判,天地形具;三光以朗,氣象質見,陰陽交合,人迺生焉。自茲之後,三才始備。此竝書紀所詮,若指諸掌。天尊若本無形色,卽與太易等無異,不得生在五運之前。若有形色,卽生在三才之內,不得在太易之先。且太極之先無形無象,天尊不合有形明矣。若與太易同氣,至太極後共三才,俱稟形而生,此迺爲陰陽天地之所生育,豈能生天地哉?請究斯理,虛實自彰,不假傍求稽之經史。公子戄然而驚曰:如先生所談,誠虛妄矣。但習俗移人觸塗多懵,以愚不了尚有惑焉。重申疑緖,伏希指誨。案道家靈寶等經非無憑據,咸是天尊所說,部祑具存。若元無天尊經教,從何而有?靈寶所載事迹昭然。僕請再陳,庶垂一覽。經云:‘天尊居大羅天玄都玉京山,或遊空靑林中,或坐寨木之下,處三淸之上,摠九仙之長,朝會百靈,階級萬品。’其於神變奇異,備列經文。若無影響,何能致此?亟繁高聽,希暫釋疑。 先生莞爾而笑曰:子何惑之滯乎?重爲夫子揚攉而論之。子察之也。夫言不可以虛發,必據禮經;筆不可以妄書,事遵典籍。是知禮經無紀,咸非雅正之談;典籍不詮,竝爲虛謬之說。縑緗可驗,軸素難誣。教異外方,迹殊中宇。考之史策,同明鑑之臨形;求之帝載,若權衡之准物。自無懷以往文字未融,炎皇以來書紀方漸,逮乎皇帝少昊之代,顓頊帝嚳之朝,唐堯虞舜之君,夏禹殷湯之后,周武秦襄以降,漢魏晉宋以前,上自尚書,緜乎左傳、司馬遷史記、皇甫謐帝王紀、韋耀洞紀,楊曄裵玠之書,歷代相承年祀顯著,大無不錄,細無不載。禪讓戰爭之帝,純澆步驟之皇,神祇變現之徵,災異祥瑞之應,龍鳳龜蛇之通,感魚鼈贙兕之精,靈爰及樹石奇怪,鬼妖魑魅,莫不咸備書之。何獨天尊不詳其事?自天皇啓運帝業權輿,逮自人皇年代緜遠,五姓爲其宗本,七十二姓沠其繁流。至有巢燧人事,經六紀,九十六代,一百八萬二千七百六十餘年。其時文字未生,俗尚淳朴,自太昊至無懷氏,凡一十六代,合萬七千七百八十三年,數歷三紀七十二禪。自炎帝神農氏,至黃帝,子孫相承一十八世,合一千五百三十年,文字已生漸可詳紀。自茲以降,史官立焉,歷然可觀備諸方策,天尊之義,閴爾無聞。以此推之,足明虛妄,昭然可驗,何所疑焉?公子曰:先生縱懸河之辯,吐連環之辭,藻雪心靈,淸滌耳目。自可韜聲屛息,察理通幽,而迷滯過深,不無小惑。再黷高聽,有愧迺心。請更詳之,冀申積晦。案道家教迹,義旨甚多。法門名數,事理不少。經有三十六部,名迺包於三洞,玉字金書,鋃函瑤格,紫筆朱韜,具有表章,豈全虛也?先生曰:子迷其本,又惑其末。爲子備論,少選可悟。道經咸推天尊所說,說主本自憑虛,教迹足成烏有?皮之不存,毛將安附?雖有三十六部,咸是僞書,徒稱三洞,俱非實錄,玉字金書僞中生僞,銀函瑤格虛內搆虛,紫筆之名旣矯詞而妄立,朱韜之說,亦假飾而空題,語事似惑庸情,摭實足爲虛妄。且道家經教,云是天尊所詮。教主畢竟不存,明經無主可說,說經無主,自曉僞端。拔本塞源,詎勞繁述?子今尚未悟,終俟剖析論之。其稱三十六部者,義有由焉。此名發自佛經,道士因而創作。庸俗愚情,以增加爲勝,以佛經有一十二部,迺加二十四部,摠成三十六部。見佛法說眼耳等六根染塵,因茲結罪,遂於六根之上,每根開六種法門,六六三十六故,摽三十六。稱雖有其名,竟無其義。每部之內,事理乖張,此非聖人所詮,妄造豈能該密。三十六部僞妄可知。又三洞之名,還擬佛經三藏。三洞者:一曰洞眞,二曰洞玄,三曰洞神。此之謂三洞。洞者,洞徹明悟之義。言習此三經,明悟道理,謂之三洞。洞眞者,學佛法大乘經詮法體實相。洞玄者,說理契眞。洞神者,符禁章醮之類。今考覈三洞經文,唯老子兩卷微契洞玄之目。其洞眞部卽是靈寶經數,竝是近代吳宋齊梁四朝道士葛玄,宋文明陸修靜及顧歡等僞造,咸無典實。其洞神一部,後漢末蜀人張道陵自云,於峨嵋山,修道證果,老子從紫微宮下降,授道陵天師之任,及符禁章醮役召鬼神之術。道陵迺自僞造道經數百卷,經中敍道陵與天尊相對說經,經文多云天師道陵曰。晉武帝平吳之後,道陵經法始流至江左。文明等於道陵所造僞經之中,創制義疏,以解釋之。因此更造僞經,以增其數。三洞僞狀足可知矣。玉字金書者,經云:‘天尊於玉京玄都,說經旣畢,諸天眞人編玉爲字,以寫其文。一說云,玉字者,是諸天書。名金書者,鏤金爲字。今道士所受法眞文及上淸其詞,皆以玉字爲文。其字似小篆,又非小篆,道家明眞行道,於壇五方,各施一眞文。其文書作玉字。宋文明等作隸書以譯之。據文明此狀,益彰字僞。若玉字本是諸天眞人所書,文明是近代道士,不預說法之會,又與集經,眞人不相交接,如何文明得識玉字,而易以隸書?卽彰玉字是文明所作改篆書體,僞立玉字之名,所以還自以隸書易其僞字。以此驗之,皎然可悉。又云,銀函瑤格且函者,是盛經之匣,格者貯經之藏。此言天尊說經,人天敬重,盛以銀函秘之玉藏,銀玉貴故,用以緘經。准此虛詞,全爲詭妄。但仙宮人代貴尚各殊。若以人閒銀玉,爲天宮之珍,人閒聲色,可爲天宮所重,聲色僞經,說妄銀玉,何迺是眞財?色對境是同彼此,有何殊別立財破色?未識其由。又云,紫筆朱韜,此更虛僞。但筆之起稱,基於六國,秦人蒙恬方始造筆,自秦以前皆削木書之。或謂之槧,或謂之札,或謂之觚,元無筆號,豈有天尊以稱爲筆?況五色非實,六塵咸假,迷心執繫,妄以爲色,在於賢聖本無此見。文明等以朱紫俗中所貴,用飾籤題之名。且韜者,以擬六韜,妄竊太公兵書之號,迺俗書之異名,兵誌之殊目。不離塵勞之境,纔淪生死之流,語事似是美名,鞠理全成僞迹。公子聞先生此說,心昏志擾,莫知所措,迺謂先生曰:伏聞衆口爍金,積毀銷骨。先生此議無迺是乎?未解所疑,更希良釋。經云:‘雲彩霞光,結空成字,煙輝霧液,聚氣爲文,芒垂八角,字方一丈。’靈寶具顯,奚所惑哉?先生曰:情弊執者難移,性明察者易悟。夫子沈淪弱喪,往而不返;靡思己惑,翻見致疑。子審聽之。吾爲子述。此經旨意久已曉之。蓋敍眞文僞濫之源,顯靈寶虛妄之迹。旣云,天尊含一氣之端,包兩儀之始。生化物象,孕育群形。說經不託空聞,造字何推氣結?此文明等僞造眞文之因,虛立緣起之狀。迺云,天尊感雲霞之氣,聚結成文,字方一丈,冀異凡俗之書,芒垂八角,用殊篆隸之體。若其眞文應見於此下方,警悟凡俗,須示靈異之狀。眞文若在上方,天尊都化之所,何須廣大其文,以呈詭怪之迹,徒陳海棗之論。寧思蝸角之虛?此又僞也。公子曰:玉字之文,結空之氣,旣云,虛誕誠如所言。大羅之天,玄都之境,王京仙宇金闕天宮,空靑寶林寨木靈樹,三淸上界,九仙靈府,道俗同詮,豈竝非實?先生於是解頤而謂曰:適欲爲子說之。子果見問,今爲子具陳其妄。案靈寶僞經,有三十二天。其天自下而上,重疊置之。從下第一太黃皇曾天,第二太明玉貌天,第三淸明何童天,第四玄胎平育天,第五元明文擧天,第六上明七曜天,第七虛無越衡天,第八太極濛蘙天,第九赤明和陽天,第十上眞玄明天,十一暉明宗飄天,十二竺落皇笳天,十三虛明堂暉天,十四觀明端靜天,十五玄明恭慶天,十六太煥極瑤天,十七元載孔昇天,十八太安皇崖天,十九顯定極風天,二十始黃考芒天,二十一太黃翁重天,二十二元思江由天,二十三上撲元樂天,二十四無極曇誓天,二十五浩庭霄度天,二十六淵通元洞天,二十七太文翰寵天,二十八太素秀樂天,二十九太虛無上天,三十太釋騰勝天,三十一龍變梵度天,三十二太極平育天。謹案道家三十二天,略無大羅之號,卽明元無大羅之天。此又妄造,則此三十二天摠是僞立。何以知者,今據二十四天名曇誓天,第三十一天名梵度天,竊尋曇梵二字,此土先無玉篇、說文、字林、字統,竟無此字。曇梵二字本出佛經。與無見之流翻譯人,造用詮天竺之音,演述釋迦之旨。在於此方先無此字。後葛洪於佛經上錄梵字,訓以爲淨陸,法言因而撰入切韻。若天尊說靈寶等經,在於佛法東流之前,此字未造,如何天名預用?若於佛法之後,卽是偸竊佛經,近始僞造。進退無據,僞迹自彰。大羅之名,寔此之類,驗斯一節,足表三隅。又玄都仙宮玉京靈岫,案經所說,玄都是玉京山上宮名,金闕迺玄都宮之闕稱。尋討宗旨,虛妄又彰。且道法是此方之教,天尊是此土聖人。詮化不在外蕃,居止合於此地。自從文字已來,帝王境域,上自軒皇之代,下至姬周之朝,東不越辰韓,西未逾大夏,南纔至象郡,北尚阻鴈門。此中闊狹,可知遠近斯在。又據十洲記、四夷傳地理誌、輿地誌、括地誌、汲冢書,竝無玉京玄都之域。未審天尊何處施化?若在諸天之上,天上、人閒境界全別,非唯穢淨有異諒,亦語言不同。至於文字尚好,是事懸隔。但天地,日月,山河,金玉,珠貝,叢林,山石之等,同業共感,妄情起計執有貴賤。在於上天初無此事。迺以人閒妄計金玉珍貴,用摽仙都山闕之名。忝曰聖人定不同此,此又虛也。但方域之言,隨地改革,萬里之內,音旨不通,況在諸天固殊聲韻?設有天尊實於玉京山上說法,終藉人傳方至此地,復須翻譯,然可流行驗。無傳經之人,又無翻譯之所。縱令經語是此土之音,必待人傳得至此國。天尊說經之後,須有集錄門人,降自上天,傳于下代。發玄都之勝境,至赤縣之神州,詮三十六部之靈文,演一十二品之科格。人事之閒,實爲壯觀。何故史籍遺而不書?凡在有情,知其不可。此又虛也。又空靑之林寨木之樹,三雅之所不載,九丘之所未詳。虛搆異名,冀殊俗物,唯有靈寶經說,竟無典記可憑。事等鑿空,言同捕影。此又虛也。又云,三淸之天,九仙之府,彌增僞迹,轉益虛宗。案靈寶,三淸天號還同前說。上下安之下曰上淸,中曰太淸,上曰玉淸。此三淸也。此三天布置在三十二天上,大羅天下。釋云,玉淸天尊所居之天,太淸大道君所居之天,上淸老子所居之天。就教推尋,更成虛僞。靈寶列三十二天,天位先定。若加三淸及以大羅,則有三十六天。不合祇有三十二位。此又不可也。若三淸大羅是三十二天內,三淸大羅是其別號,則列三十二天名數合摽,別號之名經無別稱。明非三十二天之數,此又虛也。又此經稱是天尊所說,說主元自搆虛,徒有三淸之名,本無天尊可立,玉淸之境,還是妄論。所稱大道君,道是虛通之理,無物之謂。太上道君豈合有像又不可立太淸之天此又僞也。老子驅車西域,竟無昇天之由。虛摽上淸之位,事等繫風之說。再三虛妄,僞迹逾彰。所言九仙者,案經所說,仙有九等等級,差降以摽其位。天尊若處其長,不出神仙之流。神仙傳中何爲不載?設令是實,未免生死,終爲劫火所焚,不入證聖之位,凡其僞狀,卽此之流。公子曰:先生辯囿宏開,耀詞葩於舌杪。言泉迥注,瀉文瀨於談端,若春景之煦薄冰,類秋飆之拂危葉。辯卽辯矣,疑尚疑焉。案靈寶度人經云:‘天尊居始靑天中碧落空歌大浮黎土。’此則所居有據,說法無疑,始靑之天顯然,碧落之宮昭著,空歌摽其境稱,浮黎列其土名。如何高論,摠排爲僞?先生迺撫掌大噱而謂公子曰:聞一知十,顏回見稱於孔父;朝三暮四,狙公致忿於莊生。余昔怪焉,今信之矣。且始靑之天,與大羅何異?碧落之號,將上淸豈殊?前以昌言,今復致惑。案三十三天,天無始靑之稱,三淸之位,位無浮黎之境。置立參差,終始乖舛。但諸天之上,咸是天人,欲界之天,男女雜處。雖有欲事輕重不同,修十善勝業,生於其境,不似人閒分疆畫野,自色界之上無女唯男,修四無量,因方感彼果,咸無土地之實,衆寶之所共成。今言大浮黎土,一何迂誕!虛僞之狀,參驗可知。子自情迷,非余辯悞。甄正論卷上丙午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 1)조(朝)는 천자(天子)의 치세(治世), 대(代)는 역성(易性) 교체의 혁세(革世)를 뜻한다.
- 2)숙소(宿所).『장자』「천운편」에 “인의(仁義)는 선왕(先王)의 거려이다.”하였다.
- 3)제왕의 도서실이 아니라, 제왕의 치세술(治世術)을 의미한다.
- 4)밖은 거울 따위로 볼 수 없음. 여기서 명감은 사서를, 임형은 기록을 뜻한다.
- 5)중국의 월령(月令)은 천자(天子)의 영(令)에 따라 제정된다. 따라서 황제의 저서가 아니라 그 연대의 햇수를 날조하였다는 뜻.
- 6)『한서교사지(漢書郊祀志』에 “옛날 무회씨가 태산(태산)에 봉해졌다.”하였다 하고 그 주에 “옛날의 왕자로 복희(伏羲) 이전에 있었다.”하였다.
- 7)수(隋)나라 때 사람으로 유진(劉臻)ㆍ안지추(顔之推) 등과 『절운』5권을 찬술했다.
- 8)태공(太空)을 말한다. 『도인경(度人經)』의 주에 “동방제일천(東方第一千)에 벽하(碧霞)가 두루 가득한데 이것을 ‘벽락’이라 한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