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1059_T_004
- 031_0942_c_01L고금역경도기 제4권
- 031_0942_c_01L古今譯經圖紀卷第四 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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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매 지음
주법장 번역 - 031_0942_c_02L大唐翻經沙門釋 靖邁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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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齊) 소씨(蕭氏) 시대
제(齊)는 소씨(蕭氏)가 건강(建康)에 도읍한 나라이다. - 031_0942_c_03L齊蕭氏都建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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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담마가타야사(曇摩伽陁耶舍) - 031_0942_c_04L
- 사문 담마가타야사는 중국말로, 법생칭(法生稱)이라고 한다. 인도국(印度國) 사람이다. 중생들을 깨닫게 하는 일에 항상 마음을 두었다. 또한 제도하여 이롭게 하는 일을 저버린 적이 없었다. 제(齊)나라 고제(高帝) 건원(建元) 3년(481) 세차 신유(辛酉)에 광주(廣州) 조정사(朝亭寺)에서, 『무량의경(無量義經)』1권을 번역했다. 사문 혜표(慧表)가 필수했다.
- 031_0942_c_05L沙門曇摩伽陁耶舍“此言法生稱”印度國人。悟物居情,導利無捨。以齊高帝建元三年歲次辛酉,於廣州朝亭寺譯無量義經一卷沙門慧表筆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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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하승(摩訶乘) - 031_0942_c_08L
- 사문 마하승은 서역 사람이다. 마음을 미묘한 도(道)에 두고, 널리 펴는 데 뜻을 두었다. 그러다 제나라 무제(武帝) 영명(永明) 연중(年中)에 광주에서, 『오백본생경(五百本生經)』1권ㆍ『타비리율(他毘利律)』1권을 번역했다. 타비리는 중국말로, 숙덕(宿德)이다.
- 031_0942_c_09L沙門摩訶乘,西域人。拪心妙道,結志弘通。以齊武帝永明年中,於廣州,譯五百本生經一卷他毘利律一卷他毘利“此云宿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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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승가발다라(僧伽跋陁羅) - 031_0942_c_1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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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승가발타라는 중국말로, 중현(衆賢)이라고 한다. 서역 사람이다. 불도(佛道)에 뜻을 두었고, 성격이 서글서글하였다. 또한 하염없이 중생들을 교화하여 이롭게 하는 일을 했다.
제나라 무제 영명(永明) 6년(488) 세차 기사(己巳)49)에 사문 승의(僧猗)와 함께 광주(廣州) 죽림사(竹林寺)에서, 『선견비바사율(善見毘婆沙律)』 1부18권를 번역했다. - 031_0942_c_13L沙門僧伽跋陁羅“此云衆賢”西域人。懷道放曠,化惠無窮。以齊武帝永明六年歲次己巳,共沙門僧猗,於廣州竹林寺譯善見毘婆沙律一部十八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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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달마마제(達摩摩提) - 031_0942_c_1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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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달마마제는 중국말로, 법의(法意)라고 한다. 서역 사람이다. 모든 물정(物情)에 대해 깊히 깨닫고서,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중생들을 교화하여 깨닫도록 했다.
그러다 제(齊)나라 무제 8년(490) 세차 신미(辛未)50)에 사문 법헌(法獻)과 함께 양주(楊州)의 와관사(瓦官寺)에서, 『관세음참회제죄주경(觀世音懺悔除罪呪經)』1권ㆍ『묘법연화경제바달다품제십삼(妙法蓮華經提婆達多品第十三)』1권을 번역했다. - 031_0942_c_17L沙門達摩摩提“此云法意”西域人。悟物情深,隨方啓喩。以齊武帝永明八年歲次辛未,爲沙門法獻,於楊州瓦官寺譯觀世音懺悔除罪呪經一卷妙法蓮華經提婆達多品第十三一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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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구나비지(求那毘地) - 031_0942_c_2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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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3_a_01L사문 구나비지는 중국말로, 덕진(德進)이라고 한다. 중인도(中印度) 사람이다. 약관의 나이에 출가하여 많은 경문을 암기하니, 대승과 소승의 경문 20만 구절을 외웠다. 그리고 음양(陰陽)51)ㆍ도참(圖讖)52) 등의 학문도 궁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는 석장을 짚고 계행을 지킴에, 위의(威儀)가 단아하고 엄숙했다.
그러다 제나라 무제 영명 10년(492) 9월 10일 양주(楊州) 비야리사(毘耶離寺)에서, 『백구비유집(百句譬喩集)』10권ㆍ『십이인연경(十二因緣經)』1권ㆍ『수달장자경(須達長者經)』1권 등 모두 3부 12권을 번역했다. - 031_0942_c_22L沙門求那毘地“此云德進”中印度人。弱年從道,强記洽文,誦大小乘,凡二十萬言。陰陽圖讖,莫不窮究,執錫戒塗,威儀端肅。以齊武帝永明十年九月十日,於楊州毘耶離寺,起譯百句譬喩集十卷十二因緣經一卷須達長者經一卷摠三部合一十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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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석법도(釋法度) - 031_0943_a_06L
- 사문 석법도는 제나라 무제 때 양주에서, 『회하경(灰河經)』1권ㆍ『비발률(毘跋律)』1권을 번역했다.
- 031_0943_a_07L沙門釋法度,以齊武帝世,於楊州,譯灰河經一卷毘跋律一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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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석담경(釋曇景) - 031_0943_a_08L
- 사문 석담경은 제나라 때, 『미증유인연경(未曾有因緣經)』2권ㆍ『마하마야경(摩訶摩耶經)』2권을 번역했다.
- 031_0943_a_09L沙門釋曇景,以齊世,譯未曾有因緣經二卷摩訶摩耶經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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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석법화(釋法化) - 031_0943_a_10L
- 사문 석법화는 제나라 때, 『익의경(益意經)』2권을 번역했다.
- 沙門釋法化以齊世譯益意經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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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남위(南魏) 원씨(元氏) 시대
남위(南魏)는 원씨(元氏)가 낙양(洛陽)에 도읍한 나라이다. - 031_0943_a_11L南魏元氏都洛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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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담마류지(曇摩流支) - 031_0943_a_1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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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담마류지는 중국말로, 법희(法希)라고 한다. 또한 법락(法樂)이라고도 한다. 남인도(南印度) 사람이다. 출가하여 불도[道]에 입문한 그는, 오로지 율장(律藏)을 연구하여 명성을 드날렸다. 불법을 널리 펴는 일에 힘쓰고, 많은 사람들을 감화[感]시키면서 다니다가, 위(魏)의 낙양으로 왔다.
위나라 선무제(宣武帝) 경명(景明) 2년(501) 세차 신사(辛巳)에 『여래장엄지혜광명입제불경계경(如來藏嚴智慧光明入諸佛境界經)』2권을 번역했고, 정시(正始) 원년(504) 세차 갑신(甲申)에 『신력입인법문경(信力入印法門經)』5권을 번역했다. 또한 정시 4년(507) 정해(丁亥)에는 『금색왕경(金色王經)』1권을 번역했다. 사문 도보(道寶)가 필수했다. - 031_0943_a_13L沙門曇摩流支“此云法希亦曰法樂”南印度人。棄家入道,偏以律藏,傳名弘道爲務,感物而動,遊魏洛陽。以魏宣武帝景明二年歲次辛巳,譯如來莊嚴智慧光明入諸佛境界經二卷正始元年歲次甲申,譯信力入印法門經五卷四年丁亥譯金色王經一卷沙門道寶筆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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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석법장(釋法場) - 031_0943_a_20L
- 사문 석법장은 원위(元魏) 사람이다. 위나라 선무제때 낙양에서, 『변의장자자소문경(辯意長者子所問經)』1권을 번역했다.
- 031_0943_a_21L沙門釋法場,元魏人也。以魏宣武帝時於洛陽譯辯意長者子所問經一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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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보리류지(菩提流支) - 031_0943_a_2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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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3_b_01L사문 보리류지는 중국말로, 각희(覺希)라고 한다. 북인도(北印度) 사람이다. 삼장(三藏)에 두루 통달했고, 총지(總持)를 오묘하게 깨달았다. 불법을 널리 펴는 데 뜻을 두고, 널리 다니면서 보고 들었다.
위나라 선무제 영평 원년(508) 세차 무자(戊子)에 낙양에 도착했는데, 무제(武帝)가 친히 그 노고를 위로하였다. 또 영녕사(永寧寺)에 머물게 하고서, 필요한 물품을 공급했다.
7백여 명의 범승(梵僧)들이 보리류지를 번역기관의 책임자로 삼고, 그해에 『십지경론(十地經論)』을 번역했다. 첫날은 무제가 직접 필수했고, 그 이후부터는 사문 승변(僧辯)ㆍ승랑(僧朗)ㆍ도담(道湛) 등과 시중(侍中) 최광(崔光) 등이 필수했다. 그는 위나라 영평(永平) 원년(508) 세차 무자(戊子)부터, 천평(天平) 2년(535) 세차 을묘(乙卯)에 이르기까지, 『불명경(佛名經)』12권ㆍ『입능가경(入楞伽經)』10권ㆍ『대살차니건자수기경(大薩遮尼乾子授記經)』10권ㆍ『법집경(法集經)』8권ㆍ『승사유범천소문경(勝思惟梵天所問經)』6권ㆍ『심밀해탈경(深密解脫經)』5권ㆍ『신력입인법문경(信力入印法門經)』5권ㆍ『분신왕문경(奮迅王問經)』2권ㆍ『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1권ㆍ『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1권ㆍ『차마바제수기경(差摩婆帝受記經)』1권ㆍ『불어경(佛語經)』1권ㆍ『무자보협경(無字寶篋經)』1권ㆍ『불필정입인경(不必定入印經)』1권ㆍ『대방등수다라왕경(大方等修多羅王經)』1권ㆍ『미륵보살소문경(彌勒菩薩所問經)』1권ㆍ『제일의법승경(第一義法勝經)』1권ㆍ『가야정경(伽耶頂經)』1권ㆍ『문수사리순행경(文殊師利巡行經)』1권ㆍ『일체법고왕경(一切法高王經)』1권ㆍ『호제동자다라니주경(護諸童子陁羅尼呪經)』1권ㆍ『방불경(謗佛經)』1권ㆍ『십지경론(十地經論)』1부12권ㆍ『승사유경론(勝思惟經論)』10권ㆍ『미륵보살소문경론(彌勒菩薩所問經論)』10권ㆍ『보적경론(寶積經論)』4권ㆍ『보성론(寶性論)』4권ㆍ『금강반야경론(金剛般若經論)』3권ㆍ『순중론(順中論)』2권ㆍ『묘법연화경론(妙法蓮華經論)』2권ㆍ『가야정경론(伽耶頂經論)』2권ㆍ『삼구족경론(三具足經論)』1권ㆍ『무량수경론(無量壽經論)』1권ㆍ『보계보살사법경론(寶髻菩薩四法經論)』1권ㆍ『전법륜경론(轉法輪經論)』1권ㆍ『십이인연론(十二因緣論)』1권ㆍ『백자론(百子論)』1권ㆍ『파외도사종론(破外道四宗論)』1권ㆍ『파외도열반론(破外道涅槃論)』1권ㆍ『역중경론목록(譯衆經論目錄)』1권 등 모두 39부 127권을 번역했다.
범본(梵本)은 만갑(萬甲)이 필수했는데, 초본(草本)이 한 칸 집에 가득했다. 그는 방언(方言)에 능통했고, 잡술(雜術)에도 능했다. 일찍이 우물가에 앉아 있었는데, 허공으로 손 씻는 그릇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또 어떤 때에는 주술을 외우면, 우물에서 물이 솟아올라 그 물을 퍼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 031_0943_a_23L沙門菩提流支“此云覺希”北印度人。遍通三藏,妙入摠持,志在弘法,廣流視聽。以魏宣武帝永平元年歲次戊子,至洛陽。武帝親慰勞,住永寧寺,供給七百梵僧,以流支爲譯匠,卽以其年,譯十地經論。初一日武帝親自筆受,後付沙門僧辯、僧朗、道湛、侍中崔光等筆受。從魏永平元年歲次戊子,至天平二年歲次乙卯,譯佛名經一十二卷入楞伽經十卷大薩遮尼乾子授記經十卷法集經八卷勝思惟梵天所問經六卷深密解脫經五卷信力入印法門經五卷奮迅王問經二卷不增不減經一卷金剛般若波羅蜜經一卷差摩婆帝受記經一卷佛語經一卷無字寶篋經一卷不必定入印經一卷大方等修多羅王經一卷彌勒菩薩所問經一卷第一義法勝經一卷伽耶頂經一卷文殊師利巡行經一卷一切法高王經一卷護諸童子陁羅尼呪經一卷謗佛經一卷十地經論一部一十二卷勝思惟經論十卷彌勒菩薩所問經論十卷寶積經論四卷寶性論四卷金剛般若經論三卷順中論二卷妙法蓮華經論二卷伽耶頂經論二卷三具足經論一卷無量壽經論一卷寶髻菩薩四法經論一卷轉法輪經論一卷十二因緣論一卷百字論一卷破外道四宗論一卷破外道涅槃論一卷譯衆經論目錄一卷摠三十九部一百二十七卷。梵本萬甲,筆受草本滿一間屋。洞善方言,兼工雜術。嘗坐井口,藻灌置空,或呪井令涌酌而爲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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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늑나마제(勒那摩提) - 031_0943_c_0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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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늑나마제는 혹은 늑나바제[婆提]라고도 하는데, 중국말로는 보의(寶意)라고 한다. 중인도(中印度) 사람이다. 억 개의 게송을 암송했고 학식이 해박했으며, 이법[理]과 사법[事]에 모두 통달했으나, 특히 선법(禪法)에 더욱 정통했다. 그리고 여러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불법을 펴는 데 뜻을 두었다.
선무제(宣武帝) 정시(正始) 5년(508) 세차 무자(戊子) 즉 영평(永平) 원년(508)에 낙양의 궁전[殿] 안에서, 『비야사문경(毘耶娑問經)』2권ㆍ『십지론(十地論)』12권ㆍ『보적경론(寶積經論)』4권ㆍ『구경일승보성론(究竟一乘寶性論)』4권ㆍ『법화경론(法華經論)』1권 등 모두 5부 23권을 번역했다. 사문 승랑(僧朗)ㆍ각의(覺意)와 시중(侍中) 최광(崔光) 등이 필수했다.
선무제(宣武帝)는 매일 『화엄경(華嚴經)』을 강의[講]해 달라고 보의를 초빙하였다. 보의가 강의를 해주면, 선무제는 그 이치를 곧바로 깨달았다. 어느 날 갑자기 고좌(高座)에서, 홀(笏)을 든 대관(大官)53)이 나타나 말했다.
“천제(天帝)께서 『화엄경』을 강의해 달라고 법사께 청하십니다.”
보의가 말했다.
“지금 법석(法席)54)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화엄경』 강의를 마치고 명(命)을 따를 것이오. 그러나 청법[法]하는 일은 혼자 의뢰하는 것이 아니오, 도강(都講)이 향불을 피우고, 유나(維那)가 범패(梵唄)55)
로 청한 뒤라야 청법에 응하는 것이오.”
그러자 사자(使者)는 그의 말과 같이 하였다. 강의가 끝날 무렵 앞서 온 사자(使者)가 맞이하러 왔고, 이에 도강(都講) 등 다섯 사람과 함께 법좌[座]에서 목숨을 마쳤다. 강의를 듣던, 그 자리의 모든 도인과 속인들이 그 광경을 보았다. - 031_0943_c_08L沙門勒那摩提或云婆提“此言寶意”中印度人。誦一億偈,博贍之富,理事兼通,尤明禪法。意存遊化,以宣武帝正始五年歲次戊子,卽是永平元年,於洛陽殿內譯毘耶娑問經二卷十地論十二卷寶積經論四卷究竟一乘寶性論四卷法華經論一卷摠有五部經合二十三卷。沙門僧朗、覺意、侍中崔光等筆受。帝每請講華嚴經,詞義開悟。忽於高座,見大官執笏,云:‘天帝請師講華嚴。’意曰:‘今法席未終,經訖從命。’然法不獨資都講,香火、維那,梵唄請亦定之。使如其言,講將了,見前使來迎,果與都講等五人俱於座終,現聽道俗咸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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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불타선다(佛陁扇多) - 031_0943_c_2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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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4_a_01L사문 불타선다는 중국말로, 각정(覺定)이라고 한다. 북인도 사람이다. 신묘하게 깨달았고, 총명하고 민첩하여 안과 밖을 해박하게 통달했다. 특히 방언(方言)을 잘했다. 예술에는 더욱 능했다.
위나라 효명제(孝明帝) 정광(正光) 6년(525) 세차 을사(乙巳)부터, 원상(元象) 원년(538) 세차 무오(戊午)에 이르기까지, 낙양 백마사(白馬寺)와 업도(鄴都) 금화사(金花寺)에서 『금강상미다라니경(金剛上味陁羅尼經)』1권ㆍ『여래사자후경(如來師子吼經)』1권ㆍ『전유경(轉有經)』1권ㆍ『십법경(十法經)』1권ㆍ『은색녀경(銀色女經)』1권ㆍ『정법공경경(正法恭敬經)』1권ㆍ『무외덕녀경(無畏德女經)』1권ㆍ『무자보협경(無字寶篋經)』1권ㆍ『아난다목거니하리다라니경(阿難多目佉尼訶離陁羅尼經)』1권ㆍ『섭대승론(攝大乘論)』2권 등 모두 10부 11권을 번역했다. - 031_0943_c_23L沙門佛陁扇多“此言覺定”北印度人。神悟聰敏,內外博通,特善方言,尤工藝術。以魏孝明帝正光六年歲次乙巳,至元象元年歲次戊午,於洛陽白馬寺及鄴都金花寺,譯金剛上味陁羅尼經一卷如來師子吼經一卷轉有經一卷十法經一卷銀色女經一卷正法恭敬經一卷無畏德女經一卷無字寶篋經一卷阿難多目佉尼訶離陁羅尼經一卷攝大乘論二卷摠一十部合一十一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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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양(梁) 소씨(蕭氏) 시대
양(梁)은 소씨(蕭氏)가 건강(建康)에 도읍한 나라이다. - 031_0944_a_09L梁簫氏都建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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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다라(曼陁羅) - 031_0944_a_10L
- 사문 만다라는 중국말로, 약성(弱聲)이라고 하고, 또한 홍약(弘弱)이라고도 한다. 부남국(扶南國) 사람이다. 신묘하게 지혜롭고 뛰어나게 총명하여, 내세와 현세의 일을 다 관찰함에 있어서 막힘이 없었다. 불법을 널리 펴는 데 뜻을 두었다. 범본(梵本)을 많이 가지고 양나라 무제(武帝) 천감(天監) 2년(503) 세차 계미(癸未)에 무제에게 받들어 받쳤다. 이에 무제가 칙명하여 번역하도록 하였고, 곧바로 그해부터 승가바라(僧伽婆羅)와 함께 양도에서, 『보운경(寶雲經)』7권ㆍ『법계체성무분별경(法界體性無分別經)』2권ㆍ『문수사리설반야바라밀경(文殊師利說般若波羅蜜經)』2권 등 모두 3부 11권을 번역했다.
- 031_0944_a_11L沙門曼陁羅“此言弱聲,亦云弘弱”扶南國人。神解超悟,幽明畢觀,無憚夷險,志存弘化,大齎梵本,以梁武帝天監二年歲次癸未,用以奉獻,帝令譯之。卽以其年,共僧伽婆羅同,於楊都,譯寶雲經七卷法界體性無分別經二卷文殊師利說般若波羅蜜經二卷摠三部,合一十一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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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승가바라(僧伽婆羅) - 031_0944_a_1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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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4_b_01L사문 승가바라는 중국말로, 중양(衆養)이라고 한다. 또한 승개(僧鎧)라고도 한다. 부남국(扶南國)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뛰어나게 총명하여 일찍이 법진(法津)에 빗대기도 했다. 15세에 출가하여 명성이 멀리까지 펴졌다. 위의[儀] 있는 모습은 맑고 깨끗했으며, 대담을 잘했다. 아비담론(阿毗曇論)에 대해서 매우 해박했으나, 구족계[具足]를 받은 이후에는 율장(律藏)에 대해 더욱 정통했다. 또 여러 나라의 글과 말도 잘했다.
양(梁)나라 천감(天鑒) 원년(502) 세차 병술(丙戌)56)부터, 보통(普通) 원년(502) 세차 경자(庚子)에 이르기까지, 칙명으로 양도의 수광전(壽光殿)ㆍ정관사(正觀寺)ㆍ첨운관(瞻雲館) 등 세 곳에서 『아육왕경(阿育王經)』10권ㆍ『공작왕다라니경(孔雀王陁羅尼經)』2권ㆍ『문수사리문경(文殊師利問經)』2권ㆍ『도일체제불경계지엄경(度一切諸佛境界智嚴經)』1권ㆍ『보살장경(菩薩藏經)』1권ㆍ『문수사리소설반야바라밀경(文殊師利所說般若波羅蜜經)』1권ㆍ『사리불다라니경(舍利弗陁羅尼經)』2권ㆍ『팔길상경(八吉祥經)』1권ㆍ『십법경(十法經)』1권ㆍ『해탈도론(解脫道論)』13권ㆍ『아육왕전(阿育王傳)』5권 등 모두 11부 38권을 번역했다. 무제가 직접 필수했고, 후일 사문 보창(寶唱)ㆍ혜초(慧超)ㆍ승지(僧智)ㆍ법운(法雲) 등이 필수했다.
무제는 성품이 매우 온후하고 진중했다. 사유재산을 비축하지 않고 모든 것을 보시하여, 절을 건립하는 데 사용했다. 태위(太尉) 임천왕(臨川王)도 지극히 숭배하고 경모했다. - 031_0944_a_19L沙門僧伽婆羅“此言衆養亦云僧鎧”扶南國人。幼而穎悟,早附法津,十五出家,榮聲自遠。儀貌澄潔,善於談對,講阿毘曇論解標時,望具足已,後律藏尤明,善數國書語,以梁天鑑元年歲次丙戌,至普通元年歲次庚子,勅於楊都壽光殿、正觀寺、瞻雲館三處,譯阿育王經十卷孔雀王陁羅尼經二卷文殊師利問經一卷度一切諸佛境界智嚴經一卷菩薩藏經一卷文殊師利所說般若波羅蜜經一卷舍利弗陁羅尼經二卷八吉祥經一卷十法經一卷解脫道論十三卷阿育王傳五卷摠一十一部合三十八卷。初武帝自筆受,後付沙門寶唱、慧超、僧智、法雲等筆受。帝甚厚重,不畜私財,凡所有施,盡用造寺。太尉臨川王亦極崇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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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라말타(波羅末陁) - 031_0944_b_1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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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4_c_01L사문 바라말타는 중국말로, 진제(眞諦)라고 한다. 또한 구나라타(拘那羅陁)라고도 하는데, 중국말로 친의(親依)라고 한다. 서인도 우선니국(優禪尼國) 사람이다. 몸가짐이 빼어나게 맑고 밝았으며, 타고난 기품은 청아하고도 엄숙했다. 풍채는 시원스럽고 오뚝하며 여유 있어 저절로 원대해 보였다. 모든 서적을 읽지 않은 것이 없었고, 특히 예술(藝術)에 해박했다. 그리고 많은 경전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여러 나라를 유행하면서 대중들의 근기에 따라 이로움을 드러내었다.
양나라 무제 태청(泰淸) 2년(548) 세차 무진(戊辰)에는 무제가 보운전(寶雲殿)에 행차하여, 경전을 번역하도록 명령했다. 곧바로 태청 2년부터 번역하기 시작하여, 승성(承聖) 3년(554) 세차 갑술(甲戌)에 이르기까지, 정관사(正觀寺)에서 『금광명경(金光明經)』7권ㆍ『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1권ㆍ『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1권ㆍ『십칠지론(十七地論)』5권ㆍ『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1권ㆍ『중론(中論)』1권ㆍ『여실론(如實論)』1권ㆍ『십팔부론(十八部論)』1권ㆍ『대열반경본유금무게론(大涅槃經本有今無偈論)』1권ㆍ『삼세분별론(三世分別論)』1권 등 모두 10부 20권을 번역했다. 그러나 때마침 후경(侯景)1)이 내분을 일으켜, 이에 예장(豫章)ㆍ시흥(始興)ㆍ남강(南康) 등으로 옮겨 다녔다. 비록 보금자리를 펼 겨를이 없었을지라도, 번역하는 일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큰 배를 타고 서역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천명(天命)인지, 바람이 불어 광주(廣州)로 되돌아왔다. 마침 광주자사(廣州刺史) 목국공(穆國公) 구양위(歐陽頠)가 맞이하여, 제지사(制旨寺)에 머물도록 하고서, 경론(經論)의 번역을 청했다.
이에 진(陳)나라 영정(永定) 원년(557) 세차 병자(丙子)2)부터, 진나라 태건(泰建) 원년(569) 기축(己丑)년에 이르기까지, 『불아비담경(佛阿毗曇經)』9권ㆍ『무상의경(無上依經)』2권ㆍ『해절경(解節經)』1권ㆍ『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1권]ㆍ『광의법문경(廣義法門經)』1권ㆍ『승올다율(僧淴多律)』1권ㆍ『수선정법(修禪定法)』1권ㆍ『구사석론(俱舍釋論)』22권ㆍ『구사론본(俱舍論本)』16권ㆍ『섭대승론(攝大乘論)』15권ㆍ『입세아비담론(立世阿毗曇論)』10권ㆍ『불성론(佛性論)』4권ㆍ『사제론(四諦論)』4권ㆍ『승거론(僧佉論)』3권ㆍ『섭대승론본(攝大乘論本)』3권ㆍ『대공론(大空論)』3권ㆍ『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3권ㆍ『금칠십론(金七十論)』2권ㆍ『구사론게(俱舍論偈)』1권ㆍ『금강반야론(金剛般若論)』1권ㆍ『율이십이명료론(律二十二明了論)』1권ㆍ『대열반경론(大涅槃經論)』1권ㆍ『유교론(遺敎論)』1권ㆍ『삼무성론(三無性論)』2권ㆍ『반질론(反質論)』1권ㆍ『타부론(墮負論)』1권ㆍ『구나마저수상론(求那摩底隨相論)』1권ㆍ『보행왕정론(寶行王正論)』1권ㆍ『성취삼승론(成就三乘論)』1권ㆍ『십팔공론(十八空論)』1권ㆍ『사진론(思塵論)』1권ㆍ『해권론(解捲論)』1권ㆍ『정설도리론(正說道理論)』1권ㆍ『의업론(意業論)』1권ㆍ『부이집론(部異執論)』1권ㆍ『유식론문의합(唯識論文義合)』1권ㆍ『정론석의(正論釋義)』5권ㆍ『불성의(佛性義)』3권ㆍ『선정의(禪定義)』1권ㆍ『바수반두전(婆藪槃豆傳)』1권 등을 번역했다. 그는 양(梁)ㆍ진(陳) 2대에 걸쳐 모두 50부 149권을 번역했는데, 사문 혜개(惠愷)가 필수(筆受)했다.
진제[諦]는 또 좌구(坐具)3)
를 물 위에 펴놓고 가부좌하였는데, 마치 배를 타고 해안에 이르는 것과 같았다. 사군(使君)4)을 접대하여도, 좌구(坐具)가 젖는 일이 없었다. 또 연잎을 타고 물을 건너는 등의 신이(神異)한 사례가 매우 많았다. - 031_0944_b_13L沙門波羅末陁“此言眞諦”亦云拘那羅陁“此曰親依”西印度優禪尼國人。景行澄明,器宇淸肅,風神爽拔,悠然自遠,群藏廣部,罔不措懷,藝術異解,偏素諳練。歷遊諸國,隨機利現。以梁武帝泰淸二年歲次戊辰,現帝於寶雲殿,帝勅譯經。卽以泰淸二年譯,承聖三年歲次甲戌,於正觀寺,譯金光明經七卷彌勒下生經一卷仁王般若經一卷十七地論五卷大乘起信論一卷中論一卷如實論一卷十八部論一卷大涅槃經本有今無偈論一卷三世分別論一卷摠一十部,合二十卷。屬侯景紛糾,乃適豫章始興南康等,雖復拪遑,譯業無輟。卽汎舶西歸,業風賦命,飄還廣州,屬廣州刺史穆國公歐陽頠延住制旨寺,請譯經論,自陳永定元年歲次丙子訖。陳泰建元年己丑歲,更譯佛阿毘曇經九卷無上依經二卷解節經一卷金剛般若經一卷廣義法門經一卷僧淴多律一卷修禪定法一卷俱舍釋論二十二卷俱舍論本十六卷攝大乘論一十五卷立世阿毘曇論一十卷佛性論四卷四諦論四卷僧佉論三卷攝大乘論本三卷大空論三卷中邊分別論三卷金七十論二卷俱舍論偈一卷金剛般若論一卷律二十二明了論一卷大涅槃經論一卷遺教論一卷三無性論二卷反質論一卷墮負論一卷求那摩底隨相論一卷寶行王正論一卷成就三乘論一卷十八空論一卷思塵論一卷解捲論一卷正說道理論一卷意業論一卷部異執論一卷唯識論文義合一卷正論釋義五卷佛性義三卷禪定義一卷婆藪槃豆傳一卷梁陳二代,摠譯五十部,合一百四十九卷。沙門惠愷筆受。然諦或鋪坐具,加趺水中。若乘舟而濟岸,接對使君,而坐具無濕。或以荷藉水乘之而度,如斯神異,其例甚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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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동위(東魏) 원씨(元氏) 시대
동위(東魏)는 원씨(元氏)가 업(鄴)에 도읍한 나라이다. - 031_0945_a_04L東魏元氏都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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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야류지(般若留支) - 031_0945_a_0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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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새(優婆塞) 구담(瞿曇) 반야류지(般若留支)는 중국말로, 지희(智希)라고 한다. 남인도(南印度) 바라내성(波羅㮈城) 사람이며, 바라문종(婆羅門種)이다. 어려서 불법(佛法)을 배워 경전의 뜻을 세세하게 알았고, 신묘한 이치를 신이(神異)하게 나타냈으며, 방언(方言)에도 능통했다.
위(魏)나라 청하왕(淸河王) 자선견(子善見) 원상(元象) 원년(538) 세차 무오(戊午)부터, 흥화(興和) 3년(541) 세차 신유(辛酉)에 이르기까지, 업성(鄴城)에서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70권ㆍ『성선주의천자소문경(聖善住意天子所問經)』3권ㆍ『팔불명경(八佛名經)』1권ㆍ『금색왕경(金色王經)』1권ㆍ『무구녀경(無垢女經)』1권ㆍ『무구우바이문경(無垢優婆夷問經)』1권ㆍ『보의묘아경(寶意猫兒經)』1권ㆍ『보살사법경(菩薩四法經)』1권ㆍ『해탈계본(解脫戒本)』1권ㆍ『독자도인문론(犢子道人問論)』1권ㆍ『회쟁론(廻諍論)』1권ㆍ『업성취론(業城就論)』1권ㆍ『유식무경계론(唯識無境界論)』1권ㆍ『이가수로가론(伊迦輸盧迦論)』1권등 모두 14부 85권을 번역했다. 사문 담림(曇林)ㆍ승방(僧昉) 등이 필수했다. - 031_0945_a_06L優婆塞瞿曇般若留支“此云智希”南印度波羅柰城人。婆羅門種,少學佛法妙閑經旨,神理標異,領悟方言。以魏淸河王子善見元象元年歲次戊午,至興和三年歲次辛酉,在鄴城,譯正法念處經七十卷聖善住意天子所問經三卷八佛名經一卷金色王經一卷無垢女經一卷無垢優婆夷問經一卷寶意猫兒經一卷菩薩四法經一卷解脫戒本一卷犢子道人問論一卷迴諍論一卷業成就論一卷唯識無境界論一卷伊迦輸盧迦論一卷摠一十四部合八十五卷沙門曇林、僧昉等筆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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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제(齊) 고씨(高氏) 시대
제(齊)는 고씨(高氏)가 업(鄴)에 도읍한 나라이다. - 031_0945_a_18L齊高氏都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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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련제야사(那連提耶舍) - 031_0945_a_1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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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5_b_01L사문 나련제야사는 중국말로, 존칭(尊稱)이라고 한다. 북인도(北印度) 오장국(烏長國)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여러 차례 부처님의 신령스러운 발자취를 순례했다. 이에 천제석대(天梯石臺)와 용묘보탑(龍廟寶塔)에 직접 정례(頂禮)5)하되, 조금도 방일하지 않았다. 때문에 귀국(鬼國)에 들어가도 귀신들이 감히 괴롭히지 못했고, 설령 분란이 일어난 나라에 들어가더라도 적들의 난리는 종식되었다.
그는 늘 돌아다니면서 교화하다가, 제(齊)나라의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제나라 문선제(文宣帝) 천보(天保) 8년(557) 세차 정축(丁丑)부터, 천통(天統) 4년(568) 세차 무자(戊子)에 이르기까지, 달마사나(達摩闍那)와 함께 업도(鄴都)에서 『보살견실삼매경(菩薩見實三昧經)』14권ㆍ『대방등월장경(大方等月藏經)』12권ㆍ『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11권ㆍ『대비경(大悲經)』5권ㆍ『수미장경(須彌藏經)』2권ㆍ『시연등공덕경(施然燈功德經)』1권ㆍ『법승아비담론(法勝阿毗曇論)』7권 등 모두 7부 52권을 번역했다.
그 뒤로 수(隋) 문제(文帝) 개황(開皇) 2년(582) 세차 임인(壬寅)에서, 5년(585) 세차 을사(乙巳)에 이르기까지, 『대방등일장경(大方等日藏經)』15권ㆍ『역장엄삼매경(力莊嚴三昧經)』3권ㆍ『대장엄법문경(大莊嚴法門經)』2권ㆍ『덕호장자경(德護長者經)』2권ㆍ『연화면경(蓮華面經)』2권ㆍ『대운륜청우경(大雲輪請雨經)』2권ㆍ『뇌고녀경(牢固女經)』1권ㆍ『백불명경(百佛名經)』1권 등 모두 8부 28권을 번역했다. 사문 승침(僧琛)ㆍ명분(明芬) 등이 중국말로 바꾸고, 사문 지현(智鉉)과 학사(學士) 비장방(費長房) 등이 필수했다.
그는 얼굴과 머리의 형상이 장대하고 특이하여, 보통 사람들보다 빼어났다. 정수리에 솟아오른 육계(肉髻)6)는 구름 위로 솟은 산봉우리와 같았고, 눈동자는 정 중앙에 위치하여 상ㆍ하로 움직일 적에도 항상 일정했으며, 귀는 크고 길며 귓불이 갖추어져 있었다. - 031_0945_a_20L沙門那連提耶舍“此言尊稱”北印度烏長國人。以幼出家,數近靈迹。是以天梯石臺之所,龍廟寶塔之方,竝親頂禮,僅無遺逸。雖入鬼國,鬼莫敢傷,設往亂邦,賊徒息擾。旣常遊化感及茲境,以齊文宣帝天保八年歲次丁丑,至天統四年歲次戊子,共達摩闍那於鄴都譯菩薩見實三昧經十四卷大方等月藏經一十二卷月燈三昧經一十一卷大悲經五卷須彌藏經二卷施然燈功德經一卷法勝阿毘曇論七卷摠七部合五十二卷。後至隋文帝開皇二年歲次壬寅訖。至五年歲次乙巳,又譯大方等日藏經十五卷力莊嚴三昧經三卷大莊嚴法門經二卷德護長者經二卷蓮華面經二卷大雲輪請雨經二卷牢固女經一卷百佛名經一卷摠八部合二十八卷沙門僧琛、明芬等度語,沙門智鉉及學士費長房等筆受。面首形偉,特異常倫,頂起肉髻,聳若雲峯,目正處中、上、下量等,耳高而長,輪埵成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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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만천의(萬天懿) - 031_0945_b_17L
- 거사(居士) 만천의는 원래 선비족(鮮卑族) 사람으로, 성(姓)은 만사씨(萬俟氏)이다. 바라문(婆羅門)을 스승으로 섬겼다. 그는 매우 총명하여 범서(梵書)와 범어[語]에 대해 잘 알았으며, 주술(呪術)에 더욱 능했다. 특히 의술에 밝았고, 불법을 세세하게 꿰뚫었다. 고제(高齊) 때에는 업성(鄴城)에서, 『존승보살소문경(尊勝菩薩所問經)』 일명 『입무량문다라니경(入無量門陁羅尼經)』1권을 번역했다.
- 031_0945_b_18L居士萬天懿,元是鮮卑,姓萬俟氏。師事婆羅門,甚聰悊,善梵書語,尤工呪術,特鑑醫方,妙閑佛法。以高齊,於鄴城,譯尊勝菩薩所問經,一名入無量門陁羅尼經一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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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진(陳) 진씨(陳氏) 시대
진(陳)은 진씨(陳氏)가 건업(建鄴)에 도읍한 나라이다. - 031_0945_b_22L陳陳氏都建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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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파수나(月婆首那) - 031_0945_b_2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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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5_c_01L우선니국(優禪尼國)의 왕자(王子) 월파수나는 중국말로, 고공(高空)이라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총명하여 도(道)를 명확하게 알고, 심오하고 미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오로지 불경만을 배워 이치[義理]에 정통했고, 음운(音韻)을 환하게 깨달았으며, 방언(方言)을 잘했다.
그러다 동위제선견(東魏帝善見) 원상(元象) 원년(538) 세차 무오(戊午)부터, 흥화(興和) 2년(540) 세차 경신(庚申)에 이르기까지, 업도(鄴都)의 사도(司徒) 공손등(公孫騰)의 집에서 『승가타경(僧伽吒經)』4권ㆍ『대가섭경(大迦葉經)』2권ㆍ『빈바사라왕문불공양경(頻婆娑羅王問佛供養經)』1권 등 모두 3부 7권을 번역했고, 승방(僧昉)이 필수했다.
또 양나라 무제(武帝) 대동(大同) 말년(末年)에 고제(高齊)에서 양나라로 들어가 무제를 알현했는데, 무제의 칙명으로 그곳에 머물면서 외국을 출입하는 사명(使命)7)을 관장하게 되었다. 바로 그해에 『대승정왕경(大乘頂王經)』1권을 번역했다. 또 태청(太淸) 2년(548)에 우전국[于塡]의 승려 득승(得勝)을 만나 『천왕반야경[天王般若]』의 범본(梵本)을 가지고 진(陳)나라에 도착해서, 천가(天嘉) 6년(565) 세차 을유(乙酉)에 강주(江州) 흥업사(興業寺)로 와서 7권을 번역하였고, 사문 지흔(智欣)이 필수했다. - 031_0945_c_01L優禪尼國王子月婆首那“此云高空”生知俊朗,體悟幽微,專學佛經,尤工義理,洞曉音韻,兼善方言。以東魏帝善見元象元年歲次戊午訖,至興和二年歲次庚申,於鄴都司徒公孫騰之第譯僧伽咤經四卷大迦葉經二卷頻婆娑羅王問佛供養經一卷摠三部合七卷。僧昉筆受。又以梁武帝大同末年,自高齊入梁,見帝,帝因留住,勅遣摠知外國使命,卽以其年,譯大乘頂王經一卷又以太淸二年遇于塡僧得勝天王般若梵本,到陳天嘉六年歲次乙酉,於江州興業寺,譯爲七卷,沙門智欣筆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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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보리(須菩提) - 031_0945_c_14L
- 사문 수보리는 중국말로, 선현(善現)이라고 한다. 부남국(扶南國) 사람이다. 이해와 깨달음이 무리에서 뛰어났고, 문장과 문채가 세속을 벗어났다. 대중들을 교화하는 일에 게을리 한 적이 없었고, 여러 지방을 유행하다가 중국으로 왔다. 진대(陳代)에 양도(楊都) 도성 안의 지경사(至敬寺)에서 진나라 군주를 위해서 『대승보운경(大乘寶雲經)』1부8권를 번역했다.
- 031_0945_c_15L沙門須菩提“此云善現”扶南國人。解悟超群,詞彩逸俗,化物無倦,遊方屆茲。以陳世,於楊都城內至敬寺,爲陳主譯大乘寶雲經一部八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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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주(周) 우문씨(宇文氏) 시대
주(周)는 우문씨(宇文氏)가 장안(長安)에 도읍한 나라이다. - 031_0945_c_18L周宇文氏都長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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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나발타라(攘那跋陁羅) - 031_0945_c_19L
- 사문 양나발타라는 중국말로, 지현(智賢)이라고 한다. 파두마국(波頭摩國) 사람으로, 삼장(三藏)에 매우 달통했다. 주나라 명제(明帝) 무인(戊寅)년에 장안(長安) 도성의 바가사(婆伽寺)에서, 사나야사(闍那耶舍)와 함께 『오명론(五明論)』1권을 번역했다. 이것은 야사굴다(耶舍崛多) 등이 중국말로 바꾸고, 사문 지선(智僊)이 필수했다.
- 031_0945_c_20L沙門攘那跋陁羅“此云智賢”波頭摩國人。善達三藏,以周明帝戊寅歲,於長安城婆伽寺,共闍那耶舍,譯五明論一卷耶舍崛多等度語沙門智僊筆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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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나야사(闍那耶舍) - 031_0946_a_01L
- 031_0946_a_01L사문 사나야사는 중국말로, 장칭(藏稱)이라고 한다. 마가타국(摩伽陁國) 사람이다. 두 제자 야사굴다(耶舍崛多)ㆍ사나굴다(闍那崛多)와 함께 주나라 무제(武帝) 보정(保定) 4년(564) 세차 갑신(甲申)부터, 건덕(建德) 원년(572)에 이르기까지, 대총재(大冢宰) 진탕공(晋蕩公) 우문호(宇文護)를 위해서 장안(長安)의 사천왕사(四天王寺)에서 『정의천자소문경(定意天子所問經)』5권ㆍ『대승동성경(大乘同性經)』4권ㆍ『입여래지부사의경(入如來智不思議經)』3권ㆍ『보적경(寶積經)』3권ㆍ『불정주경병공능(佛頂呪經幷功能)』1권ㆍ『대운륜경청우품제일백품(大雲輪經請雨品第一百品)』1권 등 모두 6부 17권을 번역했다. 사문 원명(圓明)ㆍ도변(道辯)과 성양공(城陽公)소길(簫吉) 등이 필수했고, 상주국(上柱國) 평고공(平高公) 후수(候壽)가 총감검교(總監檢校)가 되었다.
- 031_0946_a_02L沙門闍那耶舍“此云藏稱摩”伽陁國人。共二弟子耶舍掘多、闍那崛多,以周武帝保定四年歲次甲申,至建德元年,爲大冢宰晉蕩公宇文護,於長安四天王寺譯定意天子所問經五卷大乘同性經四卷入如來智不思議經三卷寶積經三卷佛頂呪經幷功能一卷大雲輪經請雨品第一百品一卷摠六部合一十七卷。沙門圓明、道辯及城陽公簫吉等筆受。上柱國平高公侯壽爲摠監撿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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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사굴다(耶舍崛多) - 031_0946_a_1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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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6_b_01L사문 야사굴다는 중국말로, 칭장(稱藏)이라고 한다. 우파국(優婆國) 사람이다. 동학(同學)인 사나굴다와 함께 주나라 무제 때, 대총재(大冢宰)를 위해서 사천왕사(四天王寺)와 북호방(北胡坊)의 귀성사(歸聖寺)에서, 『금광명경경광수량대변다라니품(金光明經更廣壽量大辯陁羅尼品)』5권ㆍ『수발다라인연우바제사경(須跋陁羅因緣優波提舍經)』2권ㆍ『십일면관세음주경병공능(十一面觀世音呪經幷功能)』1권ㆍ『대운청우경(大雲請雨經)』1권 등 모두 4부 9권을 번역했다. 사문 원명(圓明)과 성양공(城陽公) 소길(蕭吉)이 필수했다.
4) 사나굴다(闍那崛多)
사문 사나굴다는 중국말로, 지덕(志德)이라고 한다. 북인도(北印度) 건달국(楗達國) 사람이고, 찰제리종(刹帝利種:왕족)이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활달하고 기량(器量)이 커서, 젊은이들의 모범이 되었다.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교화하다 주나라의 국경을 넘게 되었다.
처음 주(周)나라 무제(武帝) 때 『금색선인문경(金色仙人問經)』2권ㆍ『묘법연화보문중송게경(妙法蓮華普門重頌偈經)』1권ㆍ『종종잡주경(種種雜呪經)』1권ㆍ『불어경(佛語經)』1권 등 모두 4부 5권을 번역했고, 사문 원명(圓明)이 필수했다.
또한 수(隋)나라 문황제(文皇帝) 개황(開皇) 7년(587) 태세(太歲) 정미(丁未)부터, 15년(595)에 이르기까지, 칙명[勅]을 받들어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60권ㆍ『법거다라니경(法炬陁羅尼經)』20권ㆍ『대위덕다라니경(大威德陁羅尼經)』20권ㆍ『제불호념경(諸佛護念經)』10권ㆍ『오천오백불명경(五千五百佛名經)』8권ㆍ『대집현호보살경(大集賢護菩薩經)』6권ㆍ『성선주천자소문경(聖善住天子所問經)』4권ㆍ『관찰제법행경(觀察諸法行經)』4권ㆍ『사동자경(四童子經)』3권ㆍ『제법본무경(諸法本無經)』3권ㆍ『허공잉보살경(虛空孕菩薩經)』2권ㆍ『월상녀경(月上女經)』2권ㆍ『선사동자경(善思童子經)』2권ㆍ『이식경(移識經)』2권ㆍ『비유왕경(譬喩王經)』2권ㆍ『발각정심경(發覺淨心經)』2권ㆍ『일향출생보살경(一向出生菩薩經)』1권ㆍ『대위등광선인문의경(大威燈光仙人問疑經)』1권ㆍ『문수시리행경(文殊尸利行經)』1권ㆍ『팔불명호경(八佛名號經)』1권ㆍ『희유교량공덕경(希有校量功德經)』1권ㆍ『선공경사경(善恭敬師經)』1권ㆍ『여래선교주경(如來善巧呪經)』1권ㆍ『불공견삭관세음심주경(不空羂索觀世音心呪經)』1권ㆍ『십이불명신주교량공덕제장멸죄경(十二佛名神呪校量功德除障滅罪經)』1권ㆍ『금강장다라니경(金剛場陁羅尼經)』1권ㆍ『제법최상왕경(諸法最上王經)』1권ㆍ『입법계체성경(入法界體性經)』1권ㆍ『상주천자문경(商主天子問經)』1권ㆍ『출생보리심경(出生菩提心經)』1권ㆍ『금광명경촉루품(金光明經囑累品)』1권 등 모두 33부 150권을 번역했는데, 사문 승담(僧曇)ㆍ도수(道邃)ㆍ승곤(僧琨)ㆍ명분(明芬)ㆍ도밀(道密)과 학사(學士) 비장방(費長房)ㆍ유빙(劉憑) 등이 필수했다.
그는 속어(俗語)에 매우 밝았고, 비밀스런 요지를 깊이 통달했다. 따라서 번역할 때 수고롭지 않았다. 또한 그 뜻을 깨달아 알았으며, 말과 문장이 원만했다. - 031_0946_a_13L沙門耶舍崛多“此言稱藏”優婆國人。共同學闍那崛多,以周武帝世,爲大冢宰,於四天王寺及於北胡坊歸聖寺,譯金光明經,更廣壽量大辯陁羅尼品五卷須跋陁羅因緣優波提舍經二卷十一面觀世音呪經幷功能一卷大雲請雨經一卷摠四部合九卷沙門圓明及城陽公簫吉筆受。沙門闍那崛多“此言志德,”北印度揵達國人。剎帝利種,少懷達量,長垂淸範,遊涉行化,來達茲境。初以周武帝世譯金色仙人問經二卷妙法蓮華普門重頌偈經一卷種種雜呪經一卷佛語經一卷摠四部合五卷沙門圓明筆受又至隋文皇帝開皇七年太歲丁未,至十五年,奉勅,於大興善寺,譯佛本行集經六十卷法炬陁羅尼經二十卷大威德陁羅尼經二十卷諸佛護念經十卷五千五百佛名經八卷大集賢護菩薩經六卷聖善住天子所問經四卷觀察諸法行經四卷四童子經三卷諸法本無經三卷虛空孕菩薩經二卷月上女經二卷善思童子經二卷移識經二卷譬喩王經二卷發覺淨心經二卷一向出生菩薩經一卷大威燈光仙人問疑經一卷文殊尸利行經一卷八佛名號經一卷希有挍量功德經一卷善恭敬師經一卷如來善巧呪經一卷不空羂索觀世音心呪經一卷十二佛名神呪挍量功德除障滅罪經一卷金剛場陁羅尼經一卷諸法最上王經一卷入法界體性經一卷商主天子問經一卷出生菩提心經一卷金光明經囑累品一卷摠三十三部,合一百五十卷。沙門僧曇、道邃、僧琨、明芬、道密、學士費長房、劉憑等筆受。曉殊俗語,明深秘旨,凡所翻譯,不勞傳度,理會義門,口圓詞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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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수(隋) 양씨(楊氏) 시대
수(隋)는 양씨(楊氏)가 장안에 도읍한 나라이다. - 031_0946_c_03L隋楊氏都長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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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담법지(曇法智) - 031_0946_c_0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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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군수(洋川郡守) 담법지는 범명(梵名)으로 달마바야(達摩波若)라고 한다. 바라문종(婆羅門種)이다.
집안 대대로 번역에 종사했고, 고제(高齊) 말엽에 소현사(昭玄寺)의 도통(都統)이 되었다. 그러다 제(齊)나라가 이미 평정되자, 불법도 동시에 무너졌다. 이로 인해 담법지는 승직(僧職)을 기준하여, 세속의 관리로 임명되었다. 따라서 양주(洋州)의 양천군수(洋川郡守)가 되었다가, 수나라 문황제(文皇帝) 개황(開皇) 2년(582) 세차 임인(壬寅)에는 칙명으로 담법지를 불러들여 경전을 번역하도록 했다. 이에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업보차별경(業報差別經)』1권을 번역했다. 담법지는 수나라 말과 인도 말을 모두 잘하였다. 따라서 번역하는 데 있어서 수고롭지 않았다. 성도(成都)의 석지현(釋智鉉)이 필수했다. - 031_0946_c_05L洋川郡守曇法智“梵名達摩波若”婆羅門種,門世已來,相傳翻譯。高齊之季爲昭玄寺都統。齊國旣平,佛法同毀,智因僧職,轉任俗官,策授洋州洋川郡守。隋文皇帝以開皇二年歲次壬寅,勅召智還使譯經,於大興善寺,翻業報差別經一卷智旣妙善隋梵二言,無勞傳語。成都釋智鉉筆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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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니다류지(毘尼多流支) - 031_0946_c_1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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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비니다류지는 중국말로, 멸희(滅喜)라고 한다. 북인도(北印度) 오장국(烏長國) 사람이다. 석장(錫杖)8)을 떨치고 중국으로 왔다.
수 문제(文帝) 개황 2년(582) 세차 임인(壬寅)에는 칙명으로 대흥선사에서, 『상두정사경(象頭精舍經)』1권ㆍ『대승방등총지경(大乘方等總持經)』1권 등 2부 2권을 번역했다. 급사(給事) 이도보(李道寶)가 중국말로 바꾸고, 사문 고법찬(高法繤)이 필수했다. - 031_0946_c_13L沙門毘尼多流支“此言滅喜”北印度烏長國人。振錫來此,以隋文帝開皇二年歲次壬寅,勅令於大興善寺,譯象頭精舍經一卷大乘方等摠持經一卷二部,合二卷。給事李道寶傳語。沙門高法纂筆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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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달마급다(達摩笈多) - 031_0946_c_1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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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7_a_01L사문 달마급다는 수나라 말로, 법밀(法密)이라고 한다. 남현두국(南賢豆國) 사람이다. 학문을 배울 나이에 불도를 흠모하였다. 그리하여 머리털을 자르고, 약관의 나이에 구족계를 받았다. 스승을 찾아 대승과 소승의 나라를 두루 다니면서 보고 들은 것이 많았으며, 예업(藝業)에 더욱 뛰어났다. 마침내 큰 뜻을 품고,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대중들을 이롭게 하였다. 또한 도착하는 나라마다 오직 강설(講說)만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개황 10년(590)에 과주(瓜州)에 도착하자, 문제(文帝)가 경사(京寺)로 맞아들였다. 그리하여 경사에 머문 지 오래지 않아 수나라 말에 크게 통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칙명으로 대흥선사에서, 『무소유보살경(無所有菩薩經)』4권ㆍ『호국보살경(護國菩薩經)』2권ㆍ『불화엄입여래부사의경계경(佛華嚴入如來不思議境界經)』2권ㆍ『대집비유왕경(大集譬喩王經)』2권ㆍ『동방최승등왕여래경(東方最勝燈王如來經)』1권ㆍ『이식경(移識經)』2권ㆍ『대승삼취참회경(大乘三聚懺悔經)』1권ㆍ『대방등대운청우경(大方等大雲請雨經)』1권 등을 번역했는데, 이치[義理]에 진실로 충실하여 경(經)의 미묘한 뜻에 걸맞았다.
그는 자비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름을 떨쳤고, 공손함과 온화함으로 성품을 이루었다. 아울러 마음이 불도[道]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고, 말보다 실천이 앞섰다. 계행의 대지는 넓고 평온했으며, 선정의 물은 맑고 깊었다. 경전의 자원(字原)을 통찰하고, 논(論)의 성명[聲]에 대한 뜻을 탐구했다. 또한 예의에 맞는 행동은 상서로웠고, 절도 있는 수행은 더욱 용맹스러웠다. 경(經)을 외우는 소리가 아침ㆍ저녁으로 이어졌고, 법도가 될 만한 올바른 말은 내외(內外)를 통달했다. 단정하게 기거하기를 좋아하고, 일상 업무를 줄였다. 또 욕심이 적은 것을 귀중하게 여겨 갈구하는 마음을 끊었으며, 사람들을 깨우쳐 널리 이롭게 하는 일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양제(煬帝)가 동도(東都)에 도읍을 정하고는 공경하고 존중하여, 융숭하게 예우했다. 다시 상림원(上林園) 안에 번경관(飜經舘)을 설치했다. 이곳에서, 『법거다라니경(法炬陁羅尼經)』20권ㆍ『기세경(起世經)』10권ㆍ『대방등대집보살염불삼매경(大方等大集菩薩念佛三昧經)』10권ㆍ『연생경(緣生經)』2권ㆍ『보리자량론(菩提資粮論)』6권ㆍ『금강반야경론(金剛般若經論)』2권ㆍ『연생론(緣生論)』1권ㆍ『대방등선주의천자소문경(大方等善住意天子所問經)』4권ㆍ『약사여래본원공덕경(藥師如來本願功德經)』1권ㆍ『섭대승론(攝大乘論)』10권 등을 개황(開皇) 10년(590)부터, 대업(大業) 말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18부 81권을 번역했다. 문의(文義)가 청아하고 깔끔하여, 불법의 본질을 바르게 드러냈다. 사문 언종(彦琮)과 행구(行矩) 등이 필수했다. - 031_0946_c_19L沙門達摩笈多“隋言法密”南賢豆國人。雖學年慕道落彩,冠字之暮戒具。尋師遍歷大小乘國,聞見旣廣,藝業尤多,遂發大心遊方利物,凡所至國唯以講說爲懷。曁開皇十年來屆瓜州,文帝延入京寺。至止未久,大通隋言,勅於大興善寺,譯無所有菩薩經四卷護國菩薩經二卷佛華嚴入如來不思議境界經二卷大集譬喩王經二卷東方最勝燈王如來經一卷移識經二卷大乘三聚懺悔經一卷大方等大雲請雨經一卷義理允正稱經微旨然而慈恕立身,恭和成性,心非道外,行在說前,戒地夷而靜,定水幽而潔,經洞字原,論探聲意。容儀祥正,勤節高猛,誦響繼昏晨,法言通內外,好端居而簡務,貴寡欲而息求。無倦誨人,有踰利己。至煬帝定鼎東都,敬重隆篤,復於上林園內,置翻經館,譯法炬陁羅尼經二十卷起世經十卷大方等大集菩薩念佛三昧經十卷緣生經二卷菩提資糧論六卷金剛般若經論二卷緣生論一卷大方等善住意天子所問經四卷藥師如來本願功德經一卷攝大乘論十卷從開皇十年,至大業末歲,譯經一十八部,合八十一卷,竝文義淸素,華質顯正。沙門彦琮、行矩等筆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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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당(大唐) 이씨(李氏) 시대
대당(大唐)은 이씨(李氏)가 장안(長安)에 도읍한 나라이다. - 031_0947_a_22L大唐李氏都長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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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라파가라(波羅頗迦羅) - 031_0947_a_2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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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7_b_01L사문 파라파가라는 당나라 말로, 명지식(明知識)이라고 한다. 혹은 파파(波頗)라고도 하는데, 중국말로는 광지(光智)라고 한다. 중인도(中印度) 사람이며, 찰제리종(刹帝利種)이다.
식견과 도량이 확 트여 민첩했고, 타고난 인품이 깊었다. 또한 내외(內外)를 널리 궁구했고, 대승과 소승을 세세하게 연구했다. 또한 법을 전하여 교화하는 일을 서원했기에, 어렵고 위험한 일도 꺼리지 않고 멀리 강을 건너 중국으로 왔다.
정관(貞觀) 원년(627)에 칙명으로 대흥선사에서, 『보성경(寶星經)』 1부7권ㆍ『반야등론(般若燈論)』 1부15권ㆍ『대장엄론(大莊嚴論)』 1부13권 등 모두 3부 35권을 번역했다. 사문 혜승 등이 증의(證義)했고, 사문 현모(玄暮) 등이 중국말로 바꾸었으며, 사문 혜명(慧明)ㆍ혜색(慧賾)ㆍ혜정(慧淨)ㆍ법림(法琳) 등이 필수했다. 좌복야(左僕射) 방현령(房玄齡)과 첨사(詹事) 두정륜(杜正倫)과 태부경(太府卿) 소경(簫璟) 등이 함께 감호(監護)를 맡았다. - 031_0947_b_01L沙門波羅頗迦羅“唐言作明知識”或云波頗“此云光智”中印度人。剎帝利種,識度通敏,器宇沖邃,博窮內外,硏精大小,誓傳法化,不憚艱危,遠涉蔥河,來屆於此,以貞觀元年,勅於大興善寺譯寶星經一部七卷般若燈論一部十五卷大莊嚴論一部十三卷凡三部合三十五卷。沙門慧乘等證義,沙門玄謨等譯語,沙門慧明、慧賾、慧淨、法琳等筆受,左僕射房玄齡、詹事杜正倫、太府卿簫璟等竝知監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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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장(玄奘) - 031_0947_b_1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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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_0947_c_01L사문 현장은 하남(河南) 낙양(洛陽) 사람이다. 속성(俗姓)은 진씨(陳氏)이고, 영천(潁川) 진중궁(陳仲弓)의 후손이다. 구차(鳩車)9)를 가지고 놀 나이에 출가하였고, 죽마(竹馬)를 가지고 놀 나이에 사물의 현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신장은 하늘을 뚫을 듯했고, 풍채는 달처럼 훤했다. 경락(京洛)에서, 명망과 덕망을 떨쳐 모두 다 큰 그릇으로 여겼다.
그는 스승이 있다는 곳을 모두 돌아다니며 섭렵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도성 밖의 사방이 많은 보루[壘]에 막혔으나, 인도로 가서 그곳의 더 높은 고승(高僧)들에게 차례대로 불법을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다. 현장 법사[法師]는 지학(志學:15세)의 나이에 불도를 배운 지 오래지 않아 소승과 대승교를 세세하게 꿰뚫었다. 따라서 두 강[二江]의 유역에서, 흠모하는 무리들이 기뻐하며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는 구족계[戒具]를 받고 말했다.
“끝까지 비니(毘尼)10)를 잘 지키고 몸가짐을 신중히 하며, 법식을 섬세하고 깨끗이 하여 많은 이들의 모범이 되리라.”
그때 무황(武皇)이 천하를 평정하고, 강을 따라 언(鄢)ㆍ영(郢)을 지나서 돌아왔다. 그때 한양왕(漢陽王)이 번진(蕃鎭)인 형초(荊楚)를 굳건히 지키다가 법사의 높은 이름을 듣고, 은근히 초청하여 불법을 펴게 했다. 이에 형부(荊府)의 천황사(天皇寺)에서, 『섭대승론(攝大乘論)』과 『아비담론(阿毗曇論)』 등을 강의했다. 그리하여 천하의 이름 있는 승려들이 흠모하여,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아울러 왕과 뭇 공(公)들도 법(法)의 강연 자리에 몸소 나아갔다. 그러자 현장법사가 섬세한 이치를 분석하여, 본질을 꿰뚫도록 하였는데, 왕공(王公)들과 석학들이 일찍이 없었던 일을 증득하였다. 그때 대덕법사(大德法師) 지염(智琰) 등은 강한(江漢)에서, 삼장(三藏)에 정확하게 꿰뚫은 이들과 함께 현장법사의 거리낌 없고 섬세한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감탄하여 말하였다.
“어찌 만년에 이르도록 광명을 보지 못하다가, 찬란한 태양을 만날 줄이야 생각조차 할 수 있었겠는가?”
마침내 종심(縱心: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스승으로 삼는 예(禮)를 올렸다. 법사는 이로부터 그 후 경전을 열람했다.
구구(九丘:九州)에서 8장(藏)11)의 깊은 이치를 탐구하다가, 늘 교법(敎法)이 충분치 못하고, 가르치는 이들도 이치를 모순되게 말하였으며, 번역한 이들도 여의(如意)의 보배를 온전치 못하게 번역하여, 설산(雪山:印度)의 게송을 오히려 반쪽으로 만든 것을 개탄했다.
이에 석장[杖錫]을 짚고 신발을 신고 험한 길을 평지처럼 걸어서, 마침내 인도의 국경을 넘어서는, 스승들을 찾아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명(五明)ㆍ사함(四含)의 전적과 삼장(三藏)ㆍ십이분[十二]의 경전과 칠례팔전(七例八轉)의 음운[音]과 삼성육석(三聲六釋)의 구문[句] 등을 모두 자세히 연구하여, 그 미묘한 이치를 다했다. 그러나 거기에선 소승(小乘)과 외도(外道)들이 각기 이론(異論)을 지어, 대승(大乘)을 비방하고 헐뜯고 있었다. 이에 법사는 마침내 『악견론(惡見論)』을 지어 18부(部)의 소승(小乘)을 제압하고, 95종(種)의 외도를 타파했다. 또 『회중론(會中論)』을 지어 『유가론(瑜伽論)』과 『중론(中論)』의 미묘한 뜻을 이해하도록 하여, 대승의 분규를 잠재웠다. 그때에 중인도국(中印度國)의 계일대왕(戒日大王)은 5인도의 여러 나라를 총괄하여 다스렸다. 그리고 내외(內外)의 학문에도 해박했으며, 재주와 기예가 출중했던 사람이었다. 이 논을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크게 어긋난 것을 막아 세상을 기쁘게 할 만큼의 이익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우리 대하(大夏)의 사람들이 멸시당한 점도 드러났다. 내가 90일 동안 큰 모임을 베풀어 여기서 이 논의 잘잘못을 결정하리라.”
그리고 마침내 사방으로 말을 달려 만 리 밖에까지 알리게 했다.
“나에게 소속된 모든 나라에 칙명하노라. 토론에 능통한 자들은 모두 모일지어다.”
이에 대중들이 다 모이니, 법사는 지어놓은 두 논의 육천여 게송을 시험장 안에 두루 베풀고, 말했다.
“한 개의 게송이라도 깨뜨릴 수 있는 이가 있으면 마땅히 내 혀를 잘라서 사례하겠소.”
그리고 날마다 북을 쳐서 알리고 사람들과 토론을 했지만, 18일이 지나도록 그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 계일(戒日) 등의 왕과 대승ㆍ소승의 법사와 내외(內外)의 여러 도(道)에 통달한 이들이 모두 놀라서 법사와 토론한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법사는 17년 동안 백여 나라를 두루 유행하다가, 정관(貞觀) 19년(645)에 상경(上京:天子의 首都)으로 돌아와서 황제를 알현하니, 황제가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곧바로 칙명하여 가지고 온, 범본(梵本) 657부(部)를 서경(西京)의 홍복사(弘福寺)에서 번역하도록 했다. 또한 좌복야(左僕射) 방현령(房玄齡)에게 칙명하여, 나라 안의 석학(碩學)들을 널리 소집케 했다. 이에 사문 혜명(慧明)ㆍ영윤(靈潤) 등 50여 명이 불법의 교화를 도왔다. 또 태자(太子)의 좌서자(左庶子)인 허경종(許敬宗) 등에게 감역(監譯)을 전담하도록 칙명했다. 22년(648)에 이르러서는 번역한 경전을 황제에게 바치고 아뢰었다.
이에 태종(太宗) 문황제(文皇帝)는 총명하여 깊은 이치를 깨닫고, 서문(序文)을 지었는데, 그 문장이 해와 달의 광명이 비추는 듯 매우 뛰어났다. 황상(皇上)은 문장이 외부에 빛나고 사려 깊고 이치에 밝았으며, 예지가 있고 기억하는일 등이 성스럽게 빛났다. 또 찬란한 무늬처럼 빛나고 구름과 노을처럼 아름다우며, 채색으로 잘 꾸민 것 같았다.
또 그해 12월에 황상(皇上)이 춘궁(春宮)에 있을 때, 대효(大孝)를 깨달았다. 따라서 어머니를 회고하는 생각에, 문덕황태후(文德皇太后)를 위하여 대자은사(大慈恩寺)와 번경원(飜經院)을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지었다. 대웅전은 매우 크고 훌륭했고, 있는 솜씨를 다해 꾸민 단청은 교묘하고 아름다웠다. 또한 그림의 곱고 화려함이 심히 미묘했다.
그때, 서동(西東) 양궁(兩宮)에서 번상(幡像)을 크게 내고, 구부악(九部樂)과 경성(京城)의 모든 사찰에 칙명하였다. 그리하여 보배 깃대ㆍ깃발ㆍ해가리개ㆍ아름답고 미묘한 향과, 아울러 만년장안(萬年長安)의 모든 동네의 보배수레ㆍ뭇 기악[衆伎]과, 현장이 모셔온 불경과 불상을 자은사와 번경원에 보내도록 했다. 그리고 그곳에 대덕스님들이 머물도록 했다. 또한 때때로 황제가 몸소 안복문(安福門)에 행차하여, 향화(香華)12) 등으로 공양했다. 24일에 이르러서는, 황태자가 몸소 자은사[慈恩]에 와서 승려 천여 명을 득도시키고, 경성(京城)에서 사면을 크게 베풀었다.
현경(顯慶) 원년(元年:656)에는 칙명하여 좌복야 우지녕(于志寧)ㆍ시중(侍中) 허경종(許敬宗)ㆍ중서령(中書令) 내제(來濟)ㆍ이의부(李義府) 두정륜(杜正倫)ㆍ황문시랑(黃門侍郞) 설원초(薛元超) 등에게 윤문(潤文)하도록 하고, 국자박사(國子博士) 범의군(范義頵)ㆍ태자세마(太子洗馬) 곽유(郭瑜)ㆍ홍문관학사(弘文舘學士) 고약사(高若思) 등에게 번역하는 일을 알아서 돕도록 하여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 1부600권ㆍ『대보살장경(大菩薩藏經)』 1부20권ㆍ『대승대집지장십륜경(大乘大集地藏十輪經)』 1부10권ㆍ『본사경(本事經)』 1부7권ㆍ『무구칭경(無垢稱經)』 1부6권ㆍ『해심밀경(解深密經)』 1부5권ㆍ『분별연기초승법문경(分別緣起初勝法門經)』 1부2권ㆍ『능단금강반야경(能斷金剛般若經)』1권ㆍ『불지경(佛地經)』1권ㆍ『연기성도경(緣起聖道經)』1권ㆍ『여래시교승군왕경(如來示敎勝軍王經)』1권ㆍ『약사여래본원공덕경(藥師如來本願功德經)』1권ㆍ『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佛攝受經)』1권ㆍ『최무비경(最無比經)』1권ㆍ『심희유경(甚希有經)』1권ㆍ『칭찬대승공덕경(稱讚大乘功德經)』1권ㆍ『현무변불토공덕경(顯無邊佛土功德經)』1권ㆍ『육문다라니경(六門陁羅尼經)』1권ㆍ『제불심다라니경(諸佛心陁羅尼經)』1권ㆍ『발제고난다라니경(拔濟苦難陁羅尼經)』1권ㆍ『승당비인다라니경(勝幢臂印陁羅尼經)』1권ㆍ『팔명보밀다라니경(八名普密陁羅尼經)』1권ㆍ『불공견삭신주심경(不空羂索神呪心經)』1권ㆍ『십일면신주심경(十一面神呪心經)』1권ㆍ『지세다라니경(持世陁羅尼經)』[1권]ㆍ『수지칠불명호소생공덕경(受持七佛名號所生功德經)』1권ㆍ『천청문경(天請問經)』1권ㆍ『불임열반기법주경(佛臨涅槃記法住經)』1권ㆍ『적조신변삼마지경(寂照神變三摩地經)』1권ㆍ『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1권ㆍ『연기경(緣起經)』1권ㆍ『주오수(呪五首)』1권ㆍ『보살계본(菩薩戒本)』1권ㆍ『보살갈마(菩薩羯磨)』1권ㆍ『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1부100권ㆍ『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1부20권ㆍ『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1부16권ㆍ『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1부7권ㆍ『섭대승론본(攝大乘論本)』 1부3권ㆍ『섭대승론(攝大乘論)』 세친석(世親釋) 1부10권ㆍ『섭대승론(攝大乘論)』 무성석(無性釋) 1부10권ㆍ『광백론(廣百論)』 1부10권ㆍ『장진론(掌珍論)』 1부2권ㆍ『대승성업론(大乘成業論)』1권ㆍ『불지경론(佛地經論)』 1부7권ㆍ『성유식론(成唯識論)』 1부10권ㆍ『인명정리문론(因明正理門論)』1권ㆍ『인명입정리론(因明入正理論)』1권ㆍ『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1권ㆍ『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1권ㆍ『광백론송(廣百論頌)』1권ㆍ『현양성교론송(顯揚聖敎論頌)』1권ㆍ『왕법정리론(王法正理論)』1권ㆍ『관소연론(觀所緣論)』1권ㆍ『유식삼십론(唯識三十論)』1권ㆍ『변중변론(辯中邊論)』 1부3권ㆍ『변중변론송(辯中邊論頌)』1권ㆍ『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1권ㆍ『유가사지론석(瑜伽師地論釋)』1권ㆍ『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 1부200권ㆍ『발지론(發智論)』 1부20권ㆍ『순정리론(順正理論)』 1부80권ㆍ『현종론(顯宗論)』 1부40권ㆍ『구사론(俱舍論)』 1부30권ㆍ『식신족론(識身足論)』 1부16권ㆍ『법온족론(法蘊足論)』 1부12권ㆍ『오사론(五事論)』1부2권ㆍ『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1권ㆍ『입아비달마론(入阿毘達磨論)』 1부2권ㆍ『구사론송(俱舍論頌)』1권ㆍ『품류족론(品類足論)』 1부18권ㆍ『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 1부20권ㆍ『계신족론(界身足論)』 1부3권ㆍ『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1권ㆍ『승종십구의론(勝宗十句義論)』1권ㆍ『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1부12권를 번역했다. 『서역기』를 제외하고, 모두 75부 1,335권이다. - 031_0947_b_12L沙門玄奘,河南洛陽人。俗姓陳氏,穎川陳仲弓之後。鳩車之齡落綵,竹馬之齒通玄,牆刃干霄,風神朗月,京洛名德咸用器之。但以隨曆云湮,四郊多壘碩德高僧第如西蜀。法師以志學之歲,卽焉詢道至止。未久,半滿洞微,二江鑑徒莫不嘉駭。戒具云畢,偏隸毘尼。儀止祥淑,妙式群範。洎武皇定鼎,文軌攸同,沿江侚友,途經鄢郢。于時,漢陽王以磐石之寄,蕃鎭荊楚,先聞高譽,殷請敷揚。爰於荊府天皇寺,講攝大乘及阿毘曇等論。淮海名僧欽風雲萃,王及群公親詣法筵。法師析微通質,妙盡理原。王公碩識得未曾有。其時,大德法師智琰等竝江漢英靈,解窮三藏,旣覯法師妙辯無㝵,泣而歎曰:‘豈期以桑榆未光,得遇太陽初輝乎?’遂以縱心之年,師奘卒禮法師。自是厥後,閱筌蹄乎九丘,探幽旨于八藏,常慨教缺傳匠,理翳譯人,遂使如意之寶不全,雪山之偈猶半。於是杖錫裹足,履險若夷,旣戾梵境,籌諮無倦,五明、四含之典,三藏、十二之筌,七例、八轉之音,三聲、六釋之句,皆盡其微,畢究其妙。然彼小乘爰洎外道,各搆異論,誹毀大乘。法師遂造制惡見論,制十八部小乘,破九十五種外道。幷造會中論,融會瑜伽、中論之微旨,以靜大乘之糾紛。于時,中印度國戒日大王摠統五印諸國,內外博綜,才藝俊越,觀于斯論,歎而言曰:‘雖有顯大摧邪之殊益,然彰我大夏之蔑人。吾方九旬大施,可因此會定其臧否。’遂散馳衆,傳告萬里以來所屬諸國,勅能論者畢萃。大衆僉集,法師以所造二論六千餘頌,書于大施場門云:‘其有能破一偈,當截舌而謝之。’日日捊鼓,命于論人,凡一十八日,莫敢當者。于時,戒日等王、大小乘師、內外諸道,咸用駭忸法師討論。一十七周遊覽百有餘國,以貞觀十九年迴靶,上京見帝于洛。帝大悅卽命所將梵本六百五十七部,勅於西京弘福寺翻譯,仍勅左僕射房玄齡,廣召國內碩學沙門慧明、靈潤等五十餘人,助光法化,幷勅太子左庶子許敬宗等,專知監譯。到二十二年,已譯之經,奉以奏聞。于時,太宗文皇帝以悟達之懷,縱玄覽而爲序。天文絢發,冠日月而揚輝。皇上以文思欽明,暢睿想而興記;聖藻光繢,掞雲霞而布彩。又以其年十二月皇上在春宮,警大孝之慮,軫聖善之懷,奉爲文德皇太后,敬造大慈恩寺及翻經院。殿宇宏壯,窮班爾之工;瑩飾姸華,極珍繪之妙。于時,西東兩宮大出幡像,勅九部樂及京城諸寺,寶幢、幡、蓋、綺華、妙香幷萬年長安諸坊寶車、衆伎,送奘所將經像及慈恩大德僧等,住慈恩及翻經院。時,皇帝親御安福門,以香華等供養,至二十四日,皇儲親臨慈恩,度僧千人,大赦京城。曁顯慶元年勅左僕射于志寧、侍中許敬宗、中書令來濟、李義府、杜正倫、黃門侍郞薛元超等潤文。國子博士范義頵、太子洗馬郭瑜、弘文館學士高若思等助知翻譯譯大般若波羅蜜多經一部六百卷大菩薩藏經一部二十卷大乘大集地藏十輪經一部十卷本事經一部七卷無垢稱經一部六卷解深密經一部五卷分別緣起初勝法門經一部二卷能斷金剛般若經一卷佛地經一卷緣起聖道經一卷如來示教勝軍王經一卷藥師如來本願功德經一卷稱讚淨土佛攝受經一卷最無比經一卷甚希有經一卷稱讚大乘功德經一卷顯無邊佛土功德經一卷六門陁羅尼經一卷諸佛心陁羅尼經一卷拔濟苦難陁羅尼經一卷勝幢臂印陁羅尼經一卷八名普密陁羅尼經一卷不空羂索神呪心經一卷十一面神呪心經一卷持世陁羅尼經一卷受持七佛名號所生功德經一卷天請問經一卷佛臨涅槃記法住經一卷寂照神變三摩地經一卷般若波羅蜜多心經一卷緣起經一卷呪五首一卷菩薩戒本一卷菩薩羯磨一卷瑜伽師地論一部一百卷顯揚聖教論一部二十卷大乘阿毘達磨雜集論一部十六卷大乘阿毘達磨集論一部七卷攝大乘論本一部三卷攝大乘論世親釋一部十卷攝大乘論無性釋一部十卷廣百論一部十卷掌珍論一部二卷大乘成業論一卷佛地經論一部七卷成唯識論一部十卷因明正理門論一卷因明入正理論一卷大乘百法明門論一卷大乘五蘊論一卷廣百論頌一卷顯揚聖教論頌一卷王法正理論一卷觀所緣論一卷唯識三十論一卷辯中邊論一部三卷辯中邊論頌一卷唯識二十論一卷瑜伽師地論釋一卷大毘婆沙論一部二百卷發智論一部二十卷順正理論一部八十卷顯宗論一部四十卷俱舍論一部三十卷識身足論一部十六卷法蘊足論一部十二卷五事論一部二卷異部宗輪論一卷入阿毘達磨論一部二卷俱舍論頌一卷品類足論一部十八卷集異門足論一部二十卷界身足論一部三卷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一卷勝宗十句義論一卷大唐西域記一部十二卷右除西域記摠七十五部一千三百三十五卷。古今譯經圖紀卷第四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 49)무제 영명 6년(488) 세차 기사(己巳)는 무진(戊辰)이 맞다.
- 50)무제 영명 8년(490) 세차 신미(辛未)는 경오(庚午)가 맞다.
- 51)천지 만물을 만들어 내는 상반하는 성질의 두 가지 기운을 말한다.
- 52)앞날의 길흉을 예언하는 술법을 말한다.
- 53)천관(天官)을 말한다.
- 54)불법을 강의하는 자리를 말한다.
- 55)석가여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로, 절에서 재(齋)를 올릴 때에 부른다.
- 56)천감 원년(502) 세차 병술(丙戌)은 임오(壬午)가 맞다.
- 1)남북조(南北朝)시대의 삭방(朔方)사람. 자(字)는 만경(萬景). 힘이 장사이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다. 후위(後魏) 때 사도행대(司徒行臺)가 되어 하남(河南)에서 전제(專制)하다가 양무제(梁武帝)에 항복하여 하남왕(河南王)이 되었음. 나중에 배반하여 양무제를 굶어 죽게 하고 간문제(簡文帝)를 세웠다가 다시 시해(弑害)하고 자립(自立)하여 한제(漢帝)라 칭하였는데 얼마 후 왕승변(王僧辯) 등에게 토벌당했다.
- 2)진나라 영정 원년(557) 세차 병자(丙子)는정축(丁丑)이 맞다.
- 3)수행자가 앉거나 누울 때, 또는 부처나 스승에게 예배할 때 펴는 직사각형의 방석을 말한다.
- 4)임금의 명령을 받들고 나라 밖으로나 지방에 온 사신(使臣)의 경칭(敬稱)이다.
- 5)가장 공경하는 뜻으로, 이마가 땅에 닿도록 몸을 구부려서 하는 절이다.
- 6)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을 말한다.
- 7)사신이나 사절이 받은 명령을 말한다.
- 8)승려가 지니는 18물(物)의 하나로,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말한다.
- 9)비둘기와 수레 모양을 아울러 만든 일종의 장난감을 말한다.
- 10)석가모니가 제자를 위하여 마련한 모든 계율을 말한다.
- 11)부처님께서 말씀한 법문을 8종으로 나눈 것, 즉 태화장(胎化藏)ㆍ중음장(中陰藏)ㆍ마하연방등장(摩訶衍方等藏)ㆍ계율장(戒律藏)ㆍ십주보살장(十住菩薩藏)ㆍ잡장(雜藏)ㆍ금강장(金剛藏)ㆍ불장(佛藏) 등이다.
- 12)불전에 공양하는 향과 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