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859_T_001
- 020_1218_a_01L노지장자인연경(盧至長者因緣經)
- 020_1218_a_01L盧至長者因緣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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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역인명(失譯人名)
권영대 번역 - 020_1218_a_02L失譯人今附東晉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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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탐에 집착하면 사람과 하늘이 천히 여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마땅히 보시한다. 왜냐하면 내가 일찍이 다음과 같이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노지(盧至)라는 큰 장자가 있었는데, 그 집은 부자여서 재산이 한량없고 창고가 가득 넘쳐 마치 비사문(毘沙門)과 같았으니, 옛적 좋은 복밭[福田]에서 보시의 인을 닦았으므로 그 과보를 얻었다. 그러나 보시할 때에 지극한 마음이 아니었던 까닭으로 부자이긴 하였지만 뜻이 항상 옹졸하였으며, 입은 옷은 때 묻고 비린내 나서 깨끗하지 못하였으며, 먹는 것은 잡곡인 피ㆍ가라지ㆍ명아주ㆍ콩 등 나물로서 주림을 채웠으며, 초ㆍ장ㆍ물[空水]로서 목마름을 면하였으며, 썩고 묵은 수레를 타고 풀잎을 엮어서 이엉을 하였다. 자기의 재물은 다 아끼고 인색하였고 고달프게 일하고 부지런히 수호하였으며 관리하기에 지치어 마치 종과 같았으므로 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때 라후라는 곧 게송을 말하였다. - 020_1218_a_03L“若著慳貪,人天所賤,是以智者應當布施。所以者何?我昔曾聞,有大長者,名曰盧至,其家巨富財產無量,倉庫盈溢如毘沙門,由其往昔於勝福田修布施因,故獲其報。然其施時不能至心,以是之故,雖復富有,意常下劣;所著衣裳,垢膩不淨;所可食者,雜穀稗莠藜藿草菜,以充其飢;酢漿空水,用療其渴;乘朽故車,編草草葉,用以爲蓋;於己財物,皆生慳悋,勞神役思,勤加守護,營理疲苦,猶如奴僕,爲一切人之所嗤笑。爾時,羅睺羅卽說偈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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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하는 인(因) 같지 않으면
받는 과(果) 각각 다르다.
참된 보시 정성이 두터우면
얻는 과보 마음대로다. -
020_1218_a_16L所施因不同,
受果各有異,
信施志誠濃,
獲報恣心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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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은중함을 품지 않은
보시는 깨끗한 과보 없나니
노지가 비록 큰 부자였으나
업신여김과 비웃음 받았다. -
020_1218_a_18L若不懷殷重,
徒施無淨報,
盧至雖巨富,
輕賤致嗤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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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_1218_b_02L
또 어느 때 명절[節會]이어서 성안에 집을 장엄하고 채색과 그림을 장식하고 비단 번기와 일산을 달았으며, 유리로 장식하고 곳곳에 꽃관을 달았으며, 향수로 땅을 씻고 온갖 꽃을 뿌렸으며, 창문과 대문에는 꽃으로 장식하였다.
모든 사람은 다 갖가지 재주와 음악과 노래와 춤으로 즐겼는데 즐겁기가 마치 천궁(天宮) 같았다. 모든 문 속에는 금병(金甁)에다가 향수를 가득 채웠으며, 거리마다 비단 번기와 일산을 달고 온갖 꽃을 뿌렸으며 향수로 땅을 씻었다. - 020_1218_a_19L“又於一時城中節會,莊嚴屋宅,塗飾彩畫,懸繒幡蓋,琉璃裝飾,處處周遍懸諸華冠,香水灑地嚴衆名華,窗牖門戶,以華裝挍,各各皆有種種伎樂歌舞嬉戲,歡娛受樂,如諸天宮。諸門之中,皆以金甁,盛滿香水,諸里巷中,懸繒幡蓋,散衆名花,香水灑地。
- 그때 노지는 모든 인민들이 온갖 모양으로 함께 모여 춤추며 한껏 즐기는 것을 보고 곧 생각하기를 ‘종들과 거지 같은 하천한 사람들도 다 옷을 빌어 입고 좋은 음식을 먹는구나. 나는 의복과 영락과 재보가 충분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왜 스스로 즐기지 못하는가’ 하고 곧 집으로 달려가서 열쇠로 창고문을 열어서 5전을 내고는 도로 문을 잠그고 생각하기를, ‘내가 집안에서 먹는다면 어머니ㆍ아내 등의 권속들에게 다 돌아가지 못할 것이고, 다른 사람의 집에 가서 먹는다면 집 주인이나 거지가 달라고 할 것이다’ 하였다.
- 020_1218_b_05L盧至爾時見諸人民,種種會同,戲舞盡歡,便生念言:‘奴婢、乞人、下賤之者,皆假借衣服,食美飮食;我今衣服瓔珞財寶自足,我今何爲而不自樂?’疾走歸家,自取鑰匙,開庫藏門,取五錢已,還閉鎖門,卽自思念:‘我今若於家中食者,母妻眷屬,不可周遍,若至他家,或有主人及以乞者,來從我索。’
- 그리하여 곧 2전으로 찐보리 가루를 사고 2전으로 술을 샀으며, 1전으로 파를 사고는 웃옷의 앞자락에 소금을 싸고 집에서 나와 성 밖의 나무 밑으로 향하였다. 나무 밑에 이르니 까마귀들이 많이 보였다. “여기서 머무르면 까마귀가 와서 쪼아 먹겠구나” 하고 무덤사이로 가서 보니 개들이 많았다. 다시 피하여 조용한 곳으로 가서 술에 소금을 넣고 찐보리 가루를 타서 파를 먹으니 술을 전에 먹지 않았던 탓으로 곧 매우 취하였다. 그는 매우 취해서 지껄이되 “온 나라가 실컷 즐기는데 왜 나 혼자만이 즐기지 않으랴” 하고 곧 일어나서 춤추면서 소리 높여 노래하였다.
- 020_1218_b_13L於是卽用兩錢買麨,兩錢沽酒,一錢買蔥,從自家中,衣衿裹鹽,齎出城外,趣於樹下。旣至樹下,見有多烏,若此停止,烏來摶撮,卽詣塚閒,見有諸狗,復更逃避,至空靜處。酒中著鹽,和麨食蔥,先不飮酒,卽時大醉。旣大醉已,而作是言:‘擧國卽時大作歡樂,我今何爲獨不歡樂?’卽便起舞揚聲而歌,其歌辭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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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제석천왕도
오늘의 즐거움
나를 미치지 못하는데
더구나 비사문이냐. -
020_1218_b_22L縱令帝釋,
今日歡樂,
尚不及我,
況毘沙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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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_1218_c_02L
또 말하기를 “나 오늘 명절에 술 마시니 얼씨구 즐겁기 비사문을 뛰어 넘고 제석천보다 낫구나”라고 하였다.
석제환인과 무수한 하늘들이 기원(祗園)에 가려는 도중인데, 보니 이 노지가 술에 취하여서 춤추면서 “제석천보다 낫구나” 하고 노래하였다.
제석은 생각하였다.
‘이 간탐한 사람이 으슥한 곳에서 술을 마시고는 나를 모욕[罵辱]하는구나.’
그리고는 다시 생각하였다.
‘내가 오늘 부처님 처소에 가지 말고 먼저 저 사람을 골려 주리라[惱].’ - 020_1218_b_24L復作是言:‘我今節慶際,縱酒大歡樂,踰過毘沙門,亦勝天帝釋。’釋提桓因與無數天衆欲至祇桓,於其道邊,見此盧至旣醉且舞,而歌言:‘勝於帝釋。’帝釋默念:‘此慳貪人,屛處飮酒,罵辱於我。’復作是念:‘我於今者,莫至佛所,先惱於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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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몸을 변화하여 노지와 똑같게 하고는 그의 집으로 가서 부모ㆍ종ㆍ하인 등 권속들을 모으고 어머니 앞에 앉아서 아뢰었다.
“저의 사랑스러운 말을 들어보십시오. 저의 앞뒤에 큰 간탐 귀신[慳鬼]이 있어서 저를 따라다니면서 저로 하여금 아까워서 먹지 못하게 하였으며, 부모님에게나 권속들에게 돈과 재물을 주지 못한 것도 다 간탐 귀신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밖에 나가서 한 도인을 만났는데 저에게 좋은 주문을 주어서 간탐 귀신을 떨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만약 저 간탐 귀신이 설사 다시 온다 하더라도 결코 거듭 저를 뇌란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오나 그 간탐 귀신이 저와 꼭 닮았으니 혹 와서 모든 문지기들이 아프게 몽둥이로 친다면 반드시 ‘내가 노지다’ 하고 거짓으로 이름을 댈 것입니다. 온 집안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 020_1218_c_08L釋提桓因,卽變己身,猶如盧至,卽到其家,聚集父母、僕使、眷屬,於母前坐,而白母言:“聽我愛語,我於前後,有大慳鬼,隨逐於我,所以使我惜不噉食,不與父母及以眷屬錢財寶物,皆由慳鬼。今日出行,値一道人,與我好呪,得除慳鬼,若彼慳鬼,設復更來,終不重能惱亂於我。然此慳鬼,與我相似,設當來者,諸守門人,痛當打棒。其必詐稱:‘我是盧至。’一切家人,莫信其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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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_1219_a_02L그는 창고를 활짝 열어 재물을 내어서는 좋은 음식을 만들고 어머니ㆍ아내ㆍ권속들 모두를 배불려 주었다. 밥 먹기를 끝내고 그는 문지기에게 말했다.
“빨리 문을 닫아라. 설령 간탐 귀신이 오더라도 내가 영락을 나누어 주고 옷을 골고루 주고 모든 기악을 연주하기를 기다린 뒤에야 문을 열어라.”
즉시 창고를 열어서 제일 좋은 영락은 먼저 어머니에게 주고 다음은 아내에게 주고 집안의 남녀에게 다들 고루 나누어 주었으며, 그 외에 온 손님에게도 영락과 옷과 밥을 주고는 온갖 기악을 연주하였다. 온 권속들은 여러 가지 향을 몸에 발랐으며 혹침수향을 피웠다. - 020_1218_c_18L大開庫藏,出諸財物,作好飮食,與其母妻及以眷屬,悉令充飽。飮食已竟,語守門者:‘急速閉門,慳鬼儻來,待我分付瓔珞遍賜衣服,作諸伎樂,然後開門。’卽時大開庫藏,上妙瓔珞,先用與母,次者與婦,舍內男女,盡皆遍與其外來客,亦與瓔珞及以衣食,作衆伎樂。其家眷屬,衆香塗身,燒黑沈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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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제석은 한 손에는 어머니를 잡고 한 손에는 아내를 이끌며 기뻐서 음악에 맞추어 일어나 춤을 추었는데,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
사위성 사람들은 모두 노지 장자가 간탐 귀신을 때었다는 말을 듣고 온통 몰려와서 구경하였다.
노지는 술에서 깨어나 성으로 돌아와서 곧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문을 꽉 메운 것들 보았으며, 또한 집안으로부터 노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껏 놀랐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왕이 나 때문에 화가 나서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크게 군사들을 모아 내 집에 와서 나를 벌주려는 것이 아닌가. 사위성의 사람들이 명절이라고 내 집에 몰려왔는가. 모든 하늘들이 나에게 더욱 이익되게 하려고 내 집에 와서 이렇게 풍악을 연주하는가. 집사람들이 내 창고를 깨뜨려 밥을 지어 먹는가.’ - 020_1219_a_03L于時帝釋,一手捉母,一手攜婦,歡樂起舞,歡娛嬉戲,不可具說。舍衛城人皆聞盧至長者慳鬼得除,一切集會盡來觀之。盧至醉醒,還來入城。卽歸己家,見諸人衆,充塞其門,復聞家中歌舞之聲,極大驚愕,作是思惟:‘將非是王以瞋我故,將諸群臣大集兵衆來至我家,欲誅於我?爲是舍衛城人,因作節會,盡入我家?爲是諸天,欲增益我,來至我家,作斯伎樂?爲是家人破我庫藏,而自噉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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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생각을 하고는 빨리 문으로 달려가서 큰소리로 집사람을 불렀다.
그때 집사람들은 풍악 소리의 시끄러움 때문에 도무지 듣는 이가 없었는데, 제석이 그 부르는 소리를 듣고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부르니 너희들은 음악을 멈추어라. 아마 간탐 귀신이 돌아왔나 보다.”
사람들은 귀신이 왔다는 말을 듣고 곧 문을 활짝 열고 피하여 달아났다.
그때 노지는 달려서 집으로 들어와 제석이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바로 가운데 자리에 앉고 어머니는 오른쪽에 부인은 왼쪽에 앉았으며, 장엄한 옷과 좋은 영락을 입고 음악을 연주하고 음악에 맞추어 노래하고 술 마시며, 노는데 얼굴빛도 유쾌하게 벌려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 020_1219_a_13L思惟是已,疾走衝門,高聲大叫,喚其家人。時其家人,音樂聲亂,都無聞者。帝釋聞喚聲,語衆人言:‘誰打門喚?汝等且止音樂,或能是彼慳鬼還來。’人聞有鬼,卽大開門,一切走避。時彼盧至,走來入屋,見於帝釋,眷屬圍遶,正處中坐,母處其右,婦處其左,莊嚴衣服,著好瓔珞,鼓樂絃歌,飮酒慶會,容色熙怡,羅列而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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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_1219_b_02L노지는 깜짝 놀라며 제석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인데 내 집에 들어와서 방일함이 이와 같으냐?”
제석은 빙긋이 웃으며 말하였다.
“집사람들 스스로가 나를 아느니라.”
권속들은 곧 노지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노지는 대답하였다.
“내가 노지이다.”
온 집사람들은 다 한꺼번에 제석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바로 노지요, 우리의 주인이다.” - 020_1219_a_22L盧至愕然,驚問釋言:‘汝是誰耶?來我家中,放逸如是。’釋微笑言:‘今日家人,自識於我。’其家眷屬,卽問盧至:‘汝爲是誰?’盧至答曰:‘我是盧至。’擧家盡皆同聲,指釋而作是言:‘此是盧至,我之家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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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는 곧 다시 집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러면 나는 누구냐?”
“당신이 노지와 닮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귀신이다.”
노지는 다시 말하였다.
“나는 귀신이 아니다. 내가 바로 노지다. 너희들은 지금 똑똑히 관찰해라.”
다시 어머니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어머니는 저의 어머니입니다. 형은 제 형이고 아우는 제 아우입니다. 아내는 제가 경애하는 아내요, 자식은 제가 잊지 못하는[所念] 자식이며, 모든 종과 하인은 다 나의 소유입니다.” - 020_1219_b_04L盧至尋復問家人言:‘我今是誰?’家人答言:‘汝之雖認似盧至鬼。’盧至復言:‘我非是鬼,我是盧至,汝等今者宜好觀察。’顧語母言:‘母是我母,兄是我兄,弟是我弟,妻者是我所敬之妻,子者是我所念之子。一切僕從,盡是我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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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제석을 가리키며 집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는 다른 사람이다. 얼굴 모양은 나와 같지만 변화하여 내 모양을 만든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살림을 모으고 돈과 재물을 창고에 모았는데, 이 어떤 허깨비가 내 재물을 흩었느냐?”
그때에 그 집사람들은 다들 믿지 않았다.
제석은 어머니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 두 사람이 아주 닮지 않았습니까?”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저 귀신의 모양이 너를 꼭 닮았구나.” - 020_1219_b_10L復指帝釋,語家人言:‘此是餘人,顏貌似我幻化作我,我從小來,產業積聚,錢財庫藏,是誰幻惑,散我財物?’時其家人,咸皆不信。釋問母言:‘今我兩人,極相似不?’母答言:‘彼鬼形貌,甚似於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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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다시 제석에게 말하였다.
“네가 효도와 순종으로 나를 받들어 섬기는 것을 보니 네가 진실로 내가 낳은 아들이며, 저것이 참으로 귀신인줄을 알겠구나. 만약 너희 두 사람이 다 나에게 효도하였던들 내가 가리지 못하였을 것이지만 너는 효순하고 저 사람은 패역하였다. 그 때문에 나는 네가 정녕 내 아들임을 알았노라.”
다시 며느리를 향하여 말했다.
“저 사람이 너희 남편인데 어찌하여 지금 너는 서로 붙어 안지[鳴捉] 않는가?”
부인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괴상하여라. 왜 사라져 없어지지 않았는가. 결코 그를 위해 부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부인은 다시 제석에게 말했다.
“주인[大家]이여, 나는 차라리 지금 당신 곁에서 죽을지언정 결코 저 귀신 옆에서는 살지 않겠습니다.” - 020_1219_b_15L母復語釋:‘觀汝孝順,奉事於我,眞實知汝,我所生子;彼實是鬼。若汝二人,俱孝順我,我不能別。以汝孝順,彼人悖逆,故我定知汝是我子。’迴語婦言:‘彼是汝夫,汝今何爲不相鳴捉?’其婦羞赧,而作是言:‘怪哉!何不滅去?終不爲其而作婦也。’婦語釋言:‘大家!我今寧在爾邊而死,終不在彼鬼邊而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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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_1219_c_02L제석은 집사람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확실히 내가 노지임을 알았다면 어찌하여 앞에 저 귀신을 들여보냈느냐?”
그때 집 사람들은 이 말을 듣는 즉시 노지의 발을 거꾸로 끌고 몽둥이로 쳐서 문밖의 거리로 내쫓았다.
그는 목 놓아 크게 울면서 말하였다.
“괴상하다. 지금 내 몸뚱이와 얼굴이 본래와 다른가. 무엇 때문에 집 사람들이 이렇게 버리는가.” - 020_1219_b_23L釋語家人:‘爾定知我是盧至者,何爲前彼鬼使入耶?’時其家人,聞此語已,卽時倒曳盧至之腳,牽挽打棒驅令出門。到里巷中,擧聲大哭,唱言:‘怪哉!我於今者,身形面首,爲異於本,何故家人,見棄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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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좌우 사람들에게 말했다.
“지금 내 몸뚱이가 본래와 같지 않습니까? 지금의 내 얼굴이 본래의 얼굴이 아닙니까? 말씨나 행동이나 길고 짧은 모양이 다릅니까, 같습니까?”
곁의 사람들이 말했다.
“당신은 본래와 같고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는 지금 누구입니까? 변화해서 된 다른 사람은 아닌가요? 이름은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 020_1219_c_05L復語左右:‘我今此身,如本身不?今我之面,如本面不?言語行來,長短相貌,爲異不異?’傍人語言:‘汝故如本,與先不異。’復語人言:‘我今是誰?將非化作他異人不?竟爲字誰,我今爲在何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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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길게 탄식하였다.
“이상하고 괴이하구나. 나는 지금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때 노지는 흡사 미친 사람 같았다. 나머지 친한 이웃사람과 집 사람 아닌 이들이 와서 위로하고 달래었다.
“당신은 신중하고 두려워 말라. 당신은 곧 노지이며 지금 당신은 왕사성의 시장에 있으며 우리는 당신의 친한 이웃사람으로 일부러 와서 보는 것이니, 당신은 뜻을 굳세게 하여서 방법과 꾀를 만들어서 스스로가 밝혀야 하오.” - 020_1219_c_10L復長歎曰:‘奇哉!怪哉!我於今者,知何所道。’盧至爾時,如似顚狂,其餘親里,非家人者,咸來慰喩:‘汝愼莫懼!汝是盧至。汝於今者,在舍衛城中市上,我等是汝親里,故來看汝。汝好强意,當作方計以自分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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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는 그때야 마음이 조금 안정되어 눈물을 닦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내가 정말 노지입니까?”
여러 사람들이 대답하였다.
“당신이 정말 노지입니다.”
노지는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
“당신들 모두가 나를 위하여 증명할 수 있습니까?”
여러 사람들이 말하였다.
“우리 모두는 당신을 위하여 정말로 당신이 노지라고 증명할 수 있소.”
노지가 말하였다.
“당신들이 만약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인연을 들어보시오.” - 020_1219_c_16L盧至爾時聞是語已,意用小安,抆淚而言,更問餘人:‘我爲實是盧至以不?’餘人答言:‘汝實是盧至。’盧至語衆人言:‘汝等皆能爲我證不?’衆人皆言:‘我等諸人,皆爲汝證,實是盧至。’盧至答言:‘汝等若爾,聽我廣說因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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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이 젊은 소년
나와 꼭 닮았네.
내가 사랑하던 부인과 함께
한 상에 나란히 앉았네. -
020_1219_c_22L誰有年少人,
與我極相似,
共我所愛婦,
同牀接膝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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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웠던 권속들
나를 때려 내쫓고
모두들 그 사람 좋아하니
그는 편안히 내 집에 있네. -
020_1219_c_24L所親家眷屬,
見打驅逐出,
所親皆愛彼,
安止我家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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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_1220_a_02L
주리고 추운 괴로움 참으며
알뜰히 모은 재물
그가 지금 멋대로 쓰기를
마치 비사문이
의식을 자재하듯 하는데
나는 한 푼이 없네. -
020_1220_a_02L我忍飢寒苦,
積聚諸錢財,
彼今自在用,
我無一毫分,
猶如毘沙門,
自恣於衣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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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에 여러 사람들
제각기 괴상하다고
이 일이 어찌됨인가
다들 그렇게 말하네. -
020_1220_a_04L城中諸人等,
各各生疑怪,
皆作如是言,
此事當云何,
-
그 중에 지혜로운 이
말하기를
어떤 매우 교활한 이
모양이 노지와 같았는데 -
020_1220_a_05L中有明智者,
而作如是言,
此閒淫狡人,
形貌似盧至,
-
노지의 간탐함을 알고
일부러 와서 골림이라
우리들 함께 증명하리니
그냥 두어서는 아니 된다. -
020_1220_a_07L知其大慳貪,
故來惱亂之,
我等共證拔,
不宜便棄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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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모든 사람들은 이 말을 다 듣고 모두 마음을 같이하여 노지에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어떻소? 무엇을 하려 하오?”
노지는 곧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 모두가 나를 위하여 모이시오. 내일 왕의 처소에 함께 가야겠습니다.”
여러 사람들은 다 같이 말했다.
“내일 당신을 왕의 처소로 보내겠소.”
이튿날이 되자 모두들 말했다.
“잘됐다. 오늘이 바로 그때다.” - 020_1220_a_08L爾時,諸人聞是語已,皆悉同心,咸言:‘盧至!汝今云何,欲何所爲?’盧至卽時,而作是言:‘汝等諸人,爲我集會,明日當共至於王所。’衆人咸言:‘明當送汝至於王所。’至明日已,諸人言曰:‘善哉!善哉!今正是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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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는 말했다.
“나는 나의 재물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큰일인데, 당신들이 만약 나에게 돈을 빌려주시면 내가 성공만 하면 당신들에게 보상하겠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말하였다.
“필요한 대로 당신에게 주겠소. 그런데 무엇이 필요하오?”
그때 노지가 말했다.
“지금 당신이 금 네 수(銖:무게의 단위)의 값이 나가는 2장의 첩(氎:가는 모직)을 나에게 주시오. 왕께 바치리다.”
모두들 웃으면서 생각하였다.
‘노지가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4수(銖)를 말하다니 큰 보시구나.’ - 020_1220_a_14L盧至卽言:‘此是大事。我於己財,不得自在,汝等若能貸我錢財,若我得者,當償於汝。’諸人皆言:‘隨所須欲,當給於汝。’又問:‘欲須何物?’爾時,盧至長者而言:‘今汝與我二張㲲來,使直四銖金,當上於王。’諸人皆笑,作是念言:‘盧至先來,不曾有是,念言四銖,乃是大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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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_1220_b_02L그리하여 노지는 곧 2장의 첩(氎)을 끼고 궁궐 문에 이르러 문지기에게 말했다.
“내가 오늘 공물을 바치려 합니다.”
그때 문지기는 깜짝 놀라 웃으며 말했다.
“나는 30년 동안 이 사람이 문 앞에 와서 공물을 바치겠단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오늘 웬일일까?”
문지기는 곧 들어가서 왕께 합장하고 아뢰었다.
“처음 있는 일이옵니다. 노지가 지금 문에서 바칠 것이 있다 하옵니다.” - 020_1220_a_21L盧至爾時,卽挾二張㲲,到於王門,語通門者言:‘我於今者欲有貢獻。’時守門人,極驚笑言:‘我於三十年中,未曾聞彼來至門中有所貢獻,今日云何卒能如是?’時守門者,卽入白王,合掌而言:‘未曾有也,盧至今者在於門中,欲有所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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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마음이 침착하고 사리에 밝아서 성내지도 기뻐하지도 않고 다만 스스로 생각하였다.
‘오늘은 명절이라 사람이 문에 이를 턱이 없고, 노지는 간탐하니까 역시 내 문 앞에 올 리가 없을 터이고 문지기가 나에게 농담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믿을 수가 없구나. 하지만 왕이란 마치 큰 바다가 작은 물이라고 돌려보내지 않듯이, 어찌 재물이 많고 적음을 헤아릴까보냐.’
왕은 곧 앞에 나오기를 허락하고 또 생각하였다.
‘그 노지는 품성이 인색해서 죽을 형편이 안 되고는 이렇게 안할 텐데.’ - 020_1220_b_04L王意沈審,不卒瞋喜,但自思惟:‘今日將不因於節會,有諸人等來至門中,盧至慳悋,亦復不應來至我門;守門之人不應於我而作調戲。意爲云何?我不能信。夫爲王者,譬如大海不逆細流,寧可計其財物多少。’王於爾時,卽便聽前。王作是念:‘而此盧至,稟性慳悋,將不死到,卒能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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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노지는 곧 여러 사람들과 함께 왕에게 이르렀는데, 왕에게 바치려고 두 장의 첩을 내려고 손으로 첩을 잡아당겼으나 겨드랑이가 좁아져서 빼내지 못하였다. 곧 빙빙 돌면서 힘껏 잡아당기니 그제야 나왔는데, 나오기는 했으나 벌써 제석이 조화로 두 풀단으로 만들었다. 노지는 풀단을 보자 어찌나 부끄러웠든지 곧 땅에 주저앉았다.
왕은 이것을 보자 가엾은 마음이 생겨 그에게 말했다.
“비록 풀단이지만 괴로워할 것 없다. 할 말이 있다면 네 뜻대로 말하라.” - 020_1220_b_12L卽時盧至,共於衆人,往到王所,欲出二㲲用奉於王,以手挽㲲,其腋急挾,挽不能得,便自迴轉,盡力痛挽,方乃得出。旣得出已,帝釋卽化作兩束草。顧見草束,生大慚愧,卽便坐地。王見如是,卽起慈愍而語之言:‘縱令草束,亦無所苦,欲有所說隨汝意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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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_1220_c_02L노지는 서러움에 목메어 흐느끼면서 말했다.
“제가 이 풀을 보니 너무 부끄러워 몸뚱이를 땅에 빠뜨릴 수도 없고, 지금 제 몸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겠으니 어찌 말할 바를 알겠습니까?”
왕은 그 말을 듣고 불쌍한 마음이 나서 옆 사람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지금 슬픔에 막혀 말을 하지 못하니 네가 그의 뜻을 알거든 대신 말하라.”
옆 사람은 왕께 대답하였다.
“노지가 오늘 와서 왕께 아뢸 것은 모습이 서로 똑같은 어떤 모르는 사람이 그의 집에 와서 노지라고 사칭하며, 집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따르게 하였고, 재물을 흩어 쓰고 모두 탕진하였으며, 집 사람들이 식별하지 못하고 그를 내쫓아서 그를 도리어 나그네[路人]처럼 되게 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그는 마음이 괴로워서 말을 못하였습니다.” - 020_1220_b_19L盧至悲噎歔欷而言:‘我見此草,羞慚之盛,不能以身陷入于地,不知今者爲有此身?爲無此身?知何所云?’王聞其言,特生哀愍,問傍人言:‘彼今哀塞,不能得言。汝等若知其意,當代道之。’傍人答王:‘盧至今來,仰白王者,不知何人形貌相似,至於其家中,詐稱盧至,能使家人生其愛著,散用財物,一切蕩盡,使其家人都不識別,驅其令出,返如路人,以是之故,其心懊惱,不能出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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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말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실로 고뇌할 만하다. 자기의 재물을 다른 사람이 썼으니까. 하지만 내 마땅히 이치를 판단하여 그의 집과 재물을 도로 얻도록 하리라.”
왕은 다시 말하였다.
“세간의 사람이란 모습이 서로 같을지라도 그 마음은 똑같지 않은 법이며, 마음이 아무리 같더라도 그 몸의 으슥한 곳에 있는 은밀한 일은 서로 알지 못하게 반드시 조금은 다를 터이니 너는 근심하지 말라. 내 너를 위해서 자세히 검사하겠다.”
그때 이름이 숙구(宿舊)라는 한 신하가 곧 일어나 합장하고 왕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대왕이시여. 왕은 지혜롭고 자비하심은 마땅히 그러합니다.”
그때에 숙구는 곧 게송을 말하였다. - 020_1220_c_06L王言:‘若如此者,實應苦惱。何以故?自己財物,爲他所用。雖復如是,我當斷理,使其還得室家財物。’王復言曰:‘世間之人,雖形相似,然其心意,未必一等,雖心相似,然其形體隱屛之處,有諸密事可不相知,必有小異;汝莫愁憂,我今爲汝,當細撿挍。’時有一臣,名曰宿舊,卽起合掌,而白王言:‘善哉大王!王之智慧慈,惻阿枉,正應如是。’爾時,宿舊卽說偈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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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하고 괴롭고 두려운 자
왕께서 위하여 구호하시고
빈궁하고 곤액 만난 자
왕께선 으레 친구 되시네. -
020_1220_c_15L憂苦怖畏者,
王爲作救護,
貧窮困厄者,
王當作親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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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고 참되게 선을 닦는 자
왕께서 함께 법 친구 되시고
모든 악함을 행하는 자에겐
왕께서 법갈퀴 되시네. -
020_1220_c_17L正眞修善者,
王共爲法朋,
於諸惡行者,
王爲作象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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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_1221_a_02L
그때 노지는 오체를 땅에 던져 왕께 아뢰었다.
“저의 집에 비밀하게 재보를 감춘 곳은 그가 끝내 알 수 없는 곳이며, 제 몸의 비밀한 것을 그가 어찌 알겠습니까. 대왕께서는 저를 위해 가려 주시기 원합니다.”
왕은 사자를 보내어 가서 그 노지를 닮은 사람을 불러 빨리 오도록 하였다. 곧 불러와서 왕에게 이르러서 한 쪽에 섰는데 왕이 두 사람을 보니 분별할 수가 없었다. 왕은 자세히 살폈지만 처음 있는 일이란 생각이 났다.
‘나이ㆍ모습ㆍ몸의 크기ㆍ얼굴ㆍ웃음ㆍ말씨ㆍ얼굴빛이 모두 같아서 요술로 만든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구나. 이제 이 두 사람이 내 앞에 서 있으나 분별할 수 없으니 나로 하여금 놀랍고 의아하게 하는구나.’ - 020_1220_c_18L爾時,盧至五體投地,而白王言:‘我家密弆起擧財寶之處,彼終不能而得知處。我身有密事,何必能知?唯願大王,爲我撿挍。’王卽遣使,往喚彼人似盧至者,語令疾來。卽便喚來,卽至王所,在一面立。王形相二人,不能分別。王諦觀之,生未曾有想:‘年紀相貌,形體大小,面目語笑,顏色皆同,如幻化所作,等無有異。今此二人,在我前立,不可分別,使我驚疑。’
-
왕은 불려온 자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는 곧 스스로 개탄하면서 말했다.
“나는 지금 이렇게 살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겠다. 나는 왕의 나라에 생장하였는데 어찌하여 왕이 알지 못하고 나더러 누구냐고 물으실까?”
왕은 조금 계면쩍어 무안해[慚赧] 하면서 ‘이 사람이 실로 노지이구나’ 하였다.
다시 앞사람에게 말했다.
“너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
노지는 대답하였다.
“제가 바로 노지이고, 저 사람은 아닙니다.” - 020_1221_a_05L王問喚來者言:‘汝爲是誰?’便自慨歎而言:‘我今徒爲此生,不如其死。我今云何生長王國,不爲王識?方問我言,而名是誰?’王小慚赧:‘此實盧至。’語前者言:‘汝今復欲何所論道?’盧至答言:‘我是盧至,彼非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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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말하였다.
“지금 너희 두 사람이 거울 속의 영상 같아서 모습이 한 가지니 어떻게 구별하겠느냐?”
노지가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먼저 왕께로 왔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병들거나 재앙이나 급한 어려움이나 두려움을 당하여 다 왕에게 찾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실로 그러하다. 내가 사람들에게 조세를 받는 것은 바로 그 일을 위해서다.”
왕은 조금 생각한 뒤에 제석에게 말했다.
“내가 너에게 묻겠다. 노지는 성품이 간탐한데 너는 주기를 좋아하니 그 성품이 각기 다르거늘 어찌하여 네가 노지라고 하는가?” - 020_1221_a_11L王言:‘汝今二人,如鏡中像,色貌一種,云何可別?’盧至白言:‘以是事故,我先歸王,若似有人,病痛苦厄,急難恐怖,悉歸於王。’王言:‘實爾,我所以受人租賦正爲是事。’王小思惟,語帝釋言:‘我欲問汝,盧至爲性慳貪,汝好惠施,其性各異,汝今云何言是盧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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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은 대답했다.
“왕께서 이제 마땅히 이렇게 자세히 물으셔야 하며, 실로 왕의 말씀과 같습니다. 하오나 제가 직접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니, 간탐하는 사람은 아귀 속에 떨어져 백ㆍ천ㆍ만년 동안 주리고 목마른 괴로움을 받으며, 고름ㆍ피ㆍ똥ㆍ오줌 등 더러움을 찾아 구하지만 끝내 털끝만큼도 얻지 못하며, 맑고 서늘한 샘물은 변하여 흐르는 불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간탐함에는 이러한 허물이 있다는 것을 듣고 그 인연을 두려워하여 악함을 버리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곧 간탐함을 버렸더니 보시할 마음이 곧 생겼습니다.” - 020_1221_a_17L帝釋答言:‘王今應作如是細問。實如王言,雖爾,我親自從佛教,慳貪之者,墮餓鬼中,百千萬歲,受飢渴苦,求索膿血屎尿不淨,終不能得如毛髮許,淸冷河泉,變成流火;我聞慳貪有如是過,畏怖因緣,欲捨是惡,以是事故,卽便捨慳,施心卽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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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_1221_b_02L왕은 말하였다.
“실로 이런 이치가 있다. 마치 때 묻은 옷을 잿물에 빨면 깨끗하듯이 번뇌란 마음의 때가 법을 듣자 곧 사라졌도다.”
왕은 모든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을 어떻게 해서 하나는 노지요 하나는 노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숙구가 대답하였다.
“그들의 집안의 비밀한 일을 물어서 같거나 다르면 그런 뒤엔 알 수 있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내 일이 복잡해서 자세하게 물을 수는 없다. 네가 말한 대로 하되 마땅히 이렇게 하리라.” - 020_1221_a_24L王言:‘實有是理,如似垢衣灰浣卽淨,煩惱垢心聞法卽除。’王語諸臣:‘如是二人,云何得知,一是盧至?一非盧至?’宿舊答言:‘問其家中所有密事,若有同異,然後可知。’王言:‘我事猥多,不得細問。如汝所言,應如是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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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떼어 각각 다른 곳에 두고 말하였다.
“너는 이제 안팎 친척의 나이ㆍ대소ㆍ명수ㆍ이름과 집안의 소유인 문짝 및 재물ㆍ모든 창고와 땅 위나 땅 밑의 온갖 물건들을 각기 기록하되 명확히 서류를 작성하여 정한 때에 속히 갖고 오라.”
두 사람은 각기 서류를 가지고 왔는데 온갖 소유와 은밀한 일과 필적까지 모두가 같았다. - 020_1221_b_07L卽分二人,各置異處,而便問言:‘汝今內外親屬,年紀大小,頭數名字,家中所有屋舍門戶,及以財物,一切庫藏,地上地中,種種諸物,各自記之,明作書疏,時速持來。’而此二人,各持書至,一切所有,隱密之事,及以書迹,悉皆一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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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이 일을 보고 처음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정신과 생각을 다해서 갖가지로 헤아려 보았으나 분별할 수 없으니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반드시 사람 아닌 것의 소행이다.’
왕은 말했다.
“그 두 사람을 불러서 내 곁에 오게 하라.”
왕은 오래 보고는 사자에게 말했다.
“그의 어머니를 불러오라.”
곧 그의 어머니를 불러왔다. 오자마자 왕께 공손히 절하였다.
왕은 합장하고 말했다.
“나 또한 노인을 공경하오.” - 020_1221_b_13L王見是事,生未曾有想:‘如我今者,盡其神思,種種籌量,不能分別。此非人事,必是非人所爲。’王言:‘還喚此二人,來到我邊。’王久看已,語使人言:‘喚其母來。’便卽喚來其母。到已向王拜敬,王合掌言:‘我亦敬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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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는 아뢰었다.
“왕께서는 만세토록 모든 원망과 해로움을 여의시고 복 닦으시기를 게을리 마십시오.”
왕은 명하여 자리를 펴게 하고 노모에게 앉게 하였다.
왕은 노모에게 말했다.
“이제 이 두 사람 중 누가 당신의 아들이고, 누가 당신의 아들이 아니오?”
제석은 가만히 어머니에게 말했다.
“다시는 전처럼 괴로움을 당하시지 않게 하십시오.”
어머니는 말했다.
“아들이여, 너는 근심치 말라.” - 020_1221_b_18L老母白言:‘願王萬歲,離諸怨害,修福不倦。’王勅敷座,命老母坐。王語母言:‘今此二人,誰是汝子?誰非汝子?’帝釋密語母言:‘莫復更使見苦如前。’母言:‘子汝莫愁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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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_1221_c_02L노모는 공경히 왕께 아뢰었다.
“이 아이가 효도하여 갖가지로 공양하며 나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니 이 사람이 곧 내 아들입니다. 저 사람은 공순하지도 않고 효도하지도 않으며 항상 나에게 친애하는 마음이 없으니 내 아들이 아닌 줄로 압니다. 하오나 이 두 사람이 좋거나 추한 것은 알지만 말소리가 서로 같으니 나 역시 분별할 수 없습니다.” - 020_1221_b_23L老母敬白王言:‘此兒慈孝,種種供養,孝順於我,此是我子;彼不恭孝,常於我所,無親愛心,知非我子。而此二人,雖知好醜,言音相似,我亦不能別。’
-
왕은 다시 물었다.
“내가 다시 다른 것을 묻겠소. 당신이 이 아이를 어릴 때부터 길러왔고, 또한 목욕을 시켰으므로 몸을 보았을 터이니 으슥한 곳에 흠집이나 사마귀 같은 비밀한 일을 기억하는가?”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예, 있습니다.”
제석은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노모의 말대로 만들어야겠다.’
제석은 그때 어머니가 왕에게 하는 말을 자세히 들었다. - 020_1221_c_04L王復問言:‘我欲更問餘事。汝養此兒,自小之時,及以洗浴,頗見身上,隱屛之處,瘡瘢黑子,私密之事,記識以不?’母言:‘有之。’帝釋思惟:‘我今所作當同老母。’帝釋于時諦聽母語。
-
어머니는 왕에게 말했다.
“내 아이는 왼쪽 갈비 밑에 팥알만한 흠집이 있습니다.”
제석은 생각하였다.
‘설령 흠집이 수미산만 하더라도 나는 만들겠거늘 하물며 작은 흠집이랴.’
곧 변화로 만들었다.
왕은 곧 생각하였다.
‘내가 일을 결단하여 반드시 결정짓겠다.’
왕은 말하였다.
“너희들은 각기 왼쪽 겨드랑을 벗고 높이 팔을 들어라.” - 020_1221_c_08L母語王言:‘我兒左脅下,有小豆許瘢。’帝釋念言:‘假使有瘢如須彌山,我亦能作,況復小瘢。’卽便化作。王卽念言:‘我今斷事,必得決定。’王言:‘汝等各脫左腋,高擧其臂。’
-
보니 두 흠집이 똑같았다. 왕과 신하들은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면서 말했다.
“이와 같은 일은 일찍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다. 사람을 웃기고 사람을 두렵게 하며 사람을 의심나게 하니, 기이한 일이요 매우 두렵도다.”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러한 일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두 사람을 데리고 기원(祇洹)에 가서 부처님 처소에 가면 반드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경사스런 모임의 즐거움을 폐하라.”
왕은 그때 게송을 말했다. - 020_1221_c_13L旣擧臂已,見兩瘢不異。王及群臣,大聲而笑,而作是言:‘如此之事,未曾聞見,能使人笑,能使人怖,能使人疑,此爲奇事,甚可怖畏。’王語群臣:‘如此之事,非我所了。當將此二人,往到祇洹,至于佛所,必得決了。廢我此閒慶會之樂。’王時卽說偈言:
-
부처님은 태양 벌써 뜨시어
능히 세간을 구원하시네.
모든 죄악 벗겨 주시고
애욕의 바다 마르게 하네. -
020_1221_c_19L佛日久已出,
能救濟世閒,
解脫諸過惡,
乾竭愛欲海。
-
얼굴은 둥근 달 같고
신통은 구족한 눈이어라.
삼계가 받들어 공양하고
일체 가운데 자재하시다. -
020_1221_c_21L面如盛滿月,
神通具足眼,
三界悉敬養,
一切中自在。
-
크게 자비하신 그 분은
반드시 우리 의심 없애주시며
일체가 다 칭찬하기를
이 일 잘 되었도다. -
020_1221_c_22L大悲者必能,
除滅我等疑,
一切皆稱讚,
此事爲善哉。
-
020_1222_a_02L
이 게송을 마치고 왕과 신하들은 각기 스스로 장엄하되 천관(天冠)ㆍ상복(上服)ㆍ주기(珠璣)ㆍ영락(瓔珞)으로 그 몸을 장엄하고, 향과 꽃을 들고 각자 왕의 뒤를 따랐으며, 두 사람의 노지는 갖가지로 장엄한 두 코끼리 위에 태웠다.
그때 왕은 깃털로 장식한 수레를 타고 풍악을 울렸으며, 백천 만의 무리가 왕의 뒤를 따랐다. 기원에 이르러서는 다섯 가지 천관과 보배 일산ㆍ칼ㆍ가죽신 및 마니주를 버려두고 위용을 정제해서 부처님 처소에 이르렀다. - 020_1221_c_23L說是偈已,王及群臣,各自嚴飾天冠上服,珠璣瓔珞莊挍其身,執持香華,各隨王後,以二盧至,置二象上,種種莊嚴。時,王自乘羽葆之車,作倡伎樂,百千萬種,隨從王後,往到祇洹,捨王五種天冠、寶蓋、刀劍、革屣及摩尼珠,整其儀容,往至佛所。
-
그때 세존께서는 천룡팔부에게 둘러싸여 계셨는데, 왕과 대중들이 오체를 땅에 던져 부처님께 절하고 일어나서 합장하고 아뢰었다.
“저희들은 삼계에서 어리석음과 어둠에 덮여서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없으니, 오직 부처님만이 뜻이 맑고 깨끗하십니다. 일체 중생은 백천 번뇌에 이글이글 타나 부처님만이 적정(寂靜)하시고 그것을 없애셨습니다. 일체 세간은 다 나고 죽음에 묶였으나 오직 부처님 한 분만이 홀로 해탈을 얻어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참된 벗이 되며 일체의 눈 어둔 이에게 부처님께서는 눈이 되어 주십니다. 저희들은 갖가지 인연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은 누가 노지며, 누가 이 노지가 아닙니까?” - 020_1222_a_07L爾時世尊,天龍八部、四衆圍遶。王及大衆,五體投地,爲佛作禮,起已合掌,而白佛言:‘我及三界,愚闇所覆,不別眞僞;唯佛意淸淨,一切衆生,爲百千煩惱之所熾然。唯佛世尊,寂靜除滅,一切世閒,皆爲生死所縛。唯佛一人,獨得解脫,爲諸衆生作眞親友;一切盲冥,佛爲作眼。我等種種因緣,不能分別,如此二人,誰是盧至?誰非盧至?將二盧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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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노지를 데리고 부처님 앞에 앉자 일체 모든 사람들도 각기 잠자코 앉았다. 노지로 변화한 사람은 얼굴빛이 온화하고 즐거웠으며 갖가지 영락으로 그의 몸을 장엄한 채 잠자코 앉았으며, 진짜 노지는 얼굴빛이 초췌하고 때 묻은 더러운 옷을 입었으며 온몸에 흙을 묻히고 매우 근심하고 괴로워하면서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크게 자비하시어 일체를 구원하십니다. 원하옵건대 저를 구원하소서.” - 020_1222_a_16L著於佛前一切諸人,各默然坐。化盧至者,神色怡悅,種種嚴飾,瓔珞其身,默然而坐。眞實盧至,顏色憔悴,著垢膩衣,塵土坌身,極生憂苦,而作是言:‘世尊大慈!救濟一切,願救濟我。’
-
020_1222_b_02L그때 제석은 그의 근심스럽고 초췌함을 보고 스스로 미소 지으셨다.
바사닉왕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러한 일들을 부처님께서는 증명해 아시옵니다. 일체 중생은 번뇌로 어둡습니다. 오직 부처님 세존께서만 지혜의 횃불을 가졌사오니 모든 중생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소서. 마치 큰 의원처럼 또한 길잡이처럼 일체 중생에게 무외를 베푸시고, 또한 일체 중생에게 선근의 재물을 베푸옵소서. 또한 부처님께서는 번뇌[結使]를 꺾어 멸하셨으므로 큰 신선이라 불리옵니다. 훌륭하신 세존이시여, 지혜의 불로 저희의 번뇌와 의심그물의 빽빽한 숲을 태워 주소서. 세존이시여, 저희의 의심을 끊어 주소서. 이제 이 두 사람 중 누가 노지이고 누가 아닙니까?” - 020_1222_a_21L爾時帝釋,見其愁悴,而自微笑。波斯匿王,從坐而起,合掌問佛言:‘於此事中,佛能證知,一切衆生,爲煩惱所闇。唯佛世尊,執於慧炬,導諸衆生解脫之路,如大醫王,亦如導者,能施一切衆生無畏,亦施一切衆生善根之財,摧滅結使,故名大仙。善哉!世尊!願以智火,燒我煩惱疑網稠林。唯願世尊,斷我等疑,今此二人,誰是誰非。’
-
그때에 세존께서는 좋은 몸매의 팔과 장엄한 손을 들어 제석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제석은 곧 노지의 몸뚱이를 없애고 본래의 모양으로 돌아와서 여의주로서 온갖 빛을 비추며 그의 몸에는 영락을 입고서 부처님께 합장하고 게송을 말하였다. - 020_1222_b_07L爾時世尊,擧相好臂莊嚴之手,語帝釋言:‘汝作何事?’帝釋卽滅盧至身相,還復本形,種種光明,以如意珠,瓔珞其身,合掌向佛,而說偈言:
-
언제나 간탐에 조복되어
스스로 입고 먹지 못하다가
5전(錢)어치 술과 찐보리 가루에
소금 타서 마셨네. -
020_1222_b_11L常爲慳所伏,
不肯自衣食,
以五錢酒麨,
著鹽而飮之。
-
마시자 곧 크게 취하여
노래하고 춤추며 킬킬대면서
저희들 여러 하늘을 욕하기에
내 이런 이유로
일부러 그를 골려주었네. -
020_1222_b_13L飮已卽大醉,
戲笑而歌舞,
輕罵我諸天,
以是因緣故,
我故苦惱之。
-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이 다 허물이 있다. 놓아 주어라.”
그때 노지는 제석에게 말했다.
“내가 천신만고하여 모았는데 모든 재물을 네가 다 써버리지 않았느냐?”
제석은 말했다.
“나는 너의 재산을 털끝만큼도 축내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노지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집에 돌아가서 재물을 보아라.”
노지는 말했다.
“제가 가진 재물을 이미 다 써버렸는데 집에 돌아가서 무엇 하겠습니까?”
제석은 말하였다.
“나는 실로 너의 재물을 털끝만큼도 축내지 않았다.” - 020_1222_b_14L佛語帝釋:‘一切衆生,皆有過罪,宜應放捨。’爾時,盧至語帝釋言:‘我辛苦所集,一切錢財,汝不用我財物儩耶?’帝釋言:‘我不損汝一毫財物。’佛語盧至:‘還歸汝家,看其財物。’盧至言:‘我所有財物,皆已用盡,用還家爲?’帝釋言:‘我實不損汝財毫氂之許。’
-
노지는 말했다.
“너는 믿지 못하지만, 참으로 부처님 말씀은 믿는다.”
부처님 말씀을 믿은 까닭에 그는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으며, 그때에 천룡팔부와 사부대중은 이것을 보고 듣고는 4도과(道果)를 얻었으며 3업의 인연을 심었다.
모든 하늘들과 사부대중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물러갔다. -
020_1222_b_21L盧至言:‘我不信汝,正信佛語。’以信佛語故,卽得須陁洹果。時,天龍八部,及以四衆,見聞是已,得四道果,種三業因緣。諸天四衆,聞佛所說,歡喜而去。”
盧至長者因緣經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