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BM_00013_0054_T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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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1_a_01L佛敎第 五十四號
0054_0001_a_02L[표지]
0054_0001_a_03LTHE BUDDHISM
0054_0001_a_04L佛敎第五十四號
0054_0001_a_05L大正十三年七月十五日 第三種郵便物認可
0054_0001_a_06L昭和三年十二月一日(每月一日一囘)發行
0054_0001_a_07L京城佛敎社發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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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1_b_01L[광고]
0054_0001_b_02L社告
0054_0001_b_03L本誌第四十五號에도曾히紹介한바잇슴니다 本原郡大本山龍珠寺監務로勤務하든震海李應涉師는年來
0054_0001_b_04L寫眞銅版技術에만흔趣味를가지고不斷의硏究를한結果從來의寫眞版製作上不便莫甚한濕板法에對하야新
0054_0001_b_05L紀元을劃할만한簡便至極한『轉寫式寫眞銅版法』을發明하야現今左記塲所에서開業하고寫眞銅版、亞鉛
0054_0001_b_06L凸版、寫眞出寫、畵帖、繪葉書、金屬美術看板等을一般法文에應하야可驚할만큼迅速美麗히製作함으로
0054_0001_b_07L此를吾敎의一幸事라하야本社指定製版所로하고並하야讀者諸位推薦하옵나이다
0054_0001_b_08L追 本末寺刹에서寺誌用銅版、繪葉書其他寫眞에關안것슬同人에게依賴하면遠近을不顧하고出張撮
0054_0001_b_09L影하야可及的特히廉價로製作한다하옵기此를追告하나이다
0054_0001_b_10L營業塲所社號及科目
0054_0001_b_11L京城府櫻井町一丁目一百十六番地
0054_0001_b_12L寫眞應用 東平社
0054_0001_b_13L科目
0054_0001_b_14L寫眞銅版
0054_0001_b_15L亞鉛凸版
0054_0001_b_16L今屬看板ㆍ마-크
0054_0001_b_17L其他
0054_0001_b_18L寫眞應用工藝
0054_0001_b_19L繪葉書ㆍ畵帖等製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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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2_a_01L佛敎第五十四號目次
0054_0002_a_02L□水와火一
0054_0002_a_03L□朝鮮에서自立한宗派退耕 二
0054_0002_a_04L□『나』에對한考察無號山房 八
0054_0002_a_05L□因緣의法則과諸行無常法雨樓主人 一二
0054_0002_a_06L□高麗大覺國師에關한硏究梁建植譯 一七
0054_0002_a_07L□松雲大師의信仰과그學德金泰洽 二三
0054_0002_a_08L□高句麗時代古墳壁畵에서본佛敎思想姜在鎬 三三
0054_0002_a_09L□佛敎의傳道와目的李德珍 四○
0054_0002_a_10L□梵語와朝鮮語의關係安自山 四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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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2_b_01L□松廣寺에서晩悟生 四八
0054_0002_b_02L□佛像의貌樣差別을뭇슴니다(决疑)一言佛者 五七
0054_0002_b_03L□旅中寸感周東元 五九
0054_0002_b_04L未定의世界〓山菊香〓大道는至純〓海印寺〓奉德寺鐘〓鐘소리
0054_0002_b_05L들리는가〓芬皇寺에서〓皇龍寺址〓雁鴨池〓神秘의心境
0054_0002_b_06L□心響曲雲精 七四
0054_0002_b_07L神秘〓蒼天〓저녁노리〓生命의흘음
0054_0002_b_08L□박처사따님白雷 八三
0054_0002_b_09L□慈悲心崔達順孃 八五
0054_0002_b_10L佛敎彙報
0054_0002_b_11L▲日本佛敎視察記▲大覺國師紀念祭文▲李鍾天君追悼文▲水害로甲宴中止
0054_0002_b_12L▲在東京朝鮮佛靑臨時總會▲大覺國師紀念祭擧行▲說敎及講演報告▲開運
0054_0002_b_13L寺佛專修了▲開運講院新築落成▲佛前化婚式擧行▲咸陽有稚園▣園▲開運
0054_0002_b_14L講堂과月初和尙▲李鍾天君薦度式▲佛專修學旅行▲僧侶大會發起期成▲住
0054_0002_b_15L持異動▲布敎擔任者變更▲布敎屆▲寺有土地賣却▲本末寺法改正▲朝鮮佛
0054_0002_b_16L敎僧侶大會發起會會錄▲朝鮮佛敎僧侶大會召集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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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3_a_01L[광고]
0054_0003_a_02L哲學博士 白性郁 先生著
0054_0003_a_03L釋迦牟尼와그의後繼者
0054_0003_a_04L全一册 定價十五錢
0054_0003_a_05L發行所 京城府壽松洞四四
0054_0003_a_06L佛敎社販賣部
0054_0003_a_07L電話光化門一○二二番
0054_0003_a_08L振替口座京城五四八二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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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3_b_01L[광고]
0054_0003_b_01L新刋紹介
0054_0003_b_02L尙玄 李能和 先生著
0054_0003_b_03L朝鮮基督敎及外交史 全一册
0054_0003_b_04L定價參圓五拾錢ㆍ送料貳拾四錢
0054_0003_b_05L 此書는朝鮮佛敎通史와倂美할만한大作이니朝鮮
0054_0003_b_06L에서要洋事情을最初로見聞한李通事、李芝峰의記
0054_0003_b_07L事로비롯하야最初輸入된西洋圖書、朝鮮學者對西
0054_0003_b_08L洋學術之思想、朝鮮學者與天主敎、基督敎東來慨
0054_0003_b_09L略으로부터 仁祖、肅宗、英宗、正宗、純祖、憲
0054_0003_b_10L宗、哲宗의列代에亘한西敎에關한事件과 밋尹持
0054_0003_b_11L忠、權尙然、李基慶、李承薰乃至李家煥、丁若鍾
0054_0003_b_12L等의獄情과를上篇에收載하고 高宗時代의西敎事
0054_0003_b_13L件과 朝鮮對西洋各國의外交史를下篇에收載하야
0054_0003_b_14L西敎의輸入은새로이西敎라는名聲이 朝鮮에처음
0054_0003_b_15L생기든날로부터目下現代에지의 巨細를纎悉無
0054_0003_b_16L遺한者라 基督敎의事情은基督敎人으로도 오히
0054_0003_b_17L려喫驚歎服하기를不覺할터이니 基督敎의歷史及
0054_0003_b_18L內情을알랴거나 基督敎를信仰及硏究하랴거나하
0054_0003_b_19L면此書보다右할者ㅣ업슬것을敢히斷言하는바이다
0054_0003_b_20L京城府西大門町二丁目一三九
0054_0003_b_21L發行所 朝鮮基督价彰文社
0054_0003_b_22L振替京城一四八九番
0054_0003_b_23L
0054_0003_b_24L哲學博士白性郁先生 著
0054_0003_b_25L釋迦牟尼와그後繼者
0054_0003_b_26L全一冊 定價 拾五錢
0054_0003_b_27L退耕 權相老編
0054_0003_b_28L부텨님말슴
0054_0003_b_29L全一冊 定價 五錢
0054_0003_b_30L은듕경
0054_0003_b_31L全一冊 定價 拾五錢
0054_0003_b_32L京城府壽松洞四十四番地
0054_0003_b_33L發行所佛敎社
0054_0003_b_34L電話光化門一○二二番
0054_0003_b_35L振替口座京城五四八二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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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4_a_01L佛敎第五十四號
0054_0004_a_02L水와火
0054_0004_a_03L蚌諸로써月光을承하면 器에水가流出하고 玻璃로써日光을照하면 陽燧
0054_0004_a_04L에火가發生하나니 其始也에는 水도一滴에不過하고 火도一點에不過하야
0054_0004_a_05L至極히微微함에止하기는同一한바이지마는 만일此를放任하야 火로하야곰物
0054_0004_a_06L에延燒케하면 滿天下에라도可히蔓延할수잇스나 水로하야곰物에接觸케하
0054_0004_a_07L면 一二平方吋을霑濕케함에도 오히려그能力이미치지못하나니 다가튼極
0054_0004_a_08L微의物質로서 그結果가그러틋懸殊하게되는것은 그理由가那邊에잇슬가하
0054_0004_a_09L면 그것은아조알기쉽게 一言으로蔽諸하고 火는向上性이잇서서 他를消
0054_0004_a_10L化하지마는 水는그의反對로 趨下性이잇서서他에攝入되는까닭이다 此로써
0054_0004_a_11L觀하면 滿天下의事物에對하야 오즉그의가진바性質如何로써 未來의究竟結
0054_0004_a_12L果를算할것이오 그始發點에잇서서는 豊弱은볼必要가업는것이다 暴風이
0054_0004_a_13L終日을吹치못하고 驟雨가終朝를注하지못하나니 始發의微弱에自沮할 必
0054_0004_a_14L要가업는바이요 오즉向上心만을肯辦함이可할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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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4_b_01L朝鮮에서自立한宗派
0054_0004_b_02L退耕
0054_0004_b_03L○
0054_0004_b_04L 如來의敎法은純眞一味이지마는 四十九年의긴歲月을두고 一切衆生의根機와 또는如何한事故가發生
0054_0004_b_05L하는時機와境遇를따라 應病與藥하심으로 政所謂『病有千源、藥生多品』이라 有時에는有을說하고 有
0054_0004_b_06L時에는空를說하며 自修에는戒律을嚴勵삼고 超脫에는淨士를讃歎하야 左投右合하며 千了百當하야 萬
0054_0004_b_07L流가海에朝하듯이 殊途가同歸하야 圓滿具足한 佛敎海가洋洋하얏지마는 鶴樹에潜輝以後로는 機根
0054_0004_b_08L이融會치못하야 各各自己의 機緣、知解、信仰에依하야 歸向이갓지못함으로 於是乎에異議가생기고
0054_0004_b_09L別解가일어나서 宗하는바旨趣가서로달라지니 이것이即是宗派가갈라지는 動機라 그럼으로印度에잇
0054_0004_b_10L서서 律藏이면저分裂되고 그다음에大小乘의背馳가생기고 空有의門壘가各立하야 그結局은律宗、俱
0054_0004_b_11L舍、成實、三論、天台、華嚴、法相、禪宗、密宗、淨土、地論、攝論、涅槃等諸宗이 星羅하게되엿다。
0054_0004_b_12L○
0054_0004_b_13L 그러나 佛敎는元來에 人天을普渡하기爲하야釋尊의自身부터도 勝應身까지受用하기를 질거아니하
0054_0004_b_14L고 糞掃衣를떨처입고 化門으로出現하야 衆生과示同하심으로 그敎旨도그本懷에相應하야 十方世界
0054_0004_b_15L에어데를勿論하고 佛敎의이르는곳마다 그곳衆生의根性에맛고 感化에빠르도록되야 그곳에잇든在來
0054_0004_b_16L의善美도 통터러佛敎의것으로 消化하고는 게서다시無量한文明을發揮하기爲하야 各方面으로旗幟를
0054_0004_b_17L세우는것이 即各宗派의蔚興하는素志들이라 그럼으로由하야 前記한各宗派中에도 그根柢는낫나치印
0054_0004_b_18L度에서胚胎를받얏다할지라도 그結果의大部分은支那에서實現되엿나니 第一禪宗으로말할지라도 達摩
0054_0004_b_19L가西來하야 敎外別傳을提唱함으로부터 五派가分芳하야 滿天下叢林에兒孫이遍滿하게되엿지마는 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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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5_a_01L反하야 印度에서는 支那와가치繁盛하엿담을듯지못하엿스며 律宗은南山道宣으로부터 天台宗은智者
0054_0005_a_02L禪師로부터 華嚴宗은帝心祖師로부터 淨土宗은東林惠遠으로부터 法相宗은慈恩窺基로부터 開宗이되
0054_0005_a_03L고 其外各宗들도 或은開祖 或은中祖로 支那의佛敎林에는 百花가爛熳히開發하엿고 그遺香餘蔭이
0054_0005_a_04L朝鮮乃至日本에까지미처서 各各宗派의成列이된것이다。
0054_0005_a_05L○
0054_0005_a_06L 그러나 이제朝鮮古來의宗派를들어 一考하야보건대 文獻이散迭되여서前記의十三宗이낫나치 輸入
0054_0005_a_07L되얏든것이라고는證左할수업스나 涅槃、天台、華嚴、慈恩、律、禪等 文蹟上으로나타나는 宗名으로써
0054_0005_a_08L推想하컨대 나타나지아니하는宗들도 亦是輸人되얏스라고斷言하기에 그다지거북성스럽지는안타마는
0054_0005_a_09L 이제여게서말하랴는것은 支那의그것을繼承한者에잇지아니하고 繼承이업시朝鮮古碩德들의宗旨、行事
0054_0005_a_10L에依하야 朝鮮에서自立한諸宗派를말하고저한다 華嚴宗은支那에서나어데서나 佛敎의敎家로서는 大
0054_0005_a_11L權威를가지고잇는宗派이다 그것은華嚴의敎理가圓融浩澣한最高理想의源泉임도原因이겟지마는 支那에
0054_0005_a_12L잇서帝心、雲華를이어서 賢首、淸凉의䟽鈔가華嚴宗으로하야곰 華嚴宗이될만하게 開演한것이 一大
0054_0005_a_13L樞要일것은 支那의華嚴宗을賢首宗이라고 別稱하는것만으로도 알기에容易하지아니하랴
0054_0005_a_14L○
0054_0005_a_15L 함으로朝鮮에잇서서도 華嚴宗이宏壯한歷史를가지고잇슬뿐만아니라 現今에이르러禪敎兩宗이라고하
0054_0005_a_16L는宗名도 泛然히「敎」字를너헛슨즉 여러敎家中에무엇을的指함인지알수업다할만콤 泛稱的이지마는 現
0054_0005_a_17L在의行事로보든지 또는久遠한歷史의沿革을考察하건대 그『敎』字는오즉華嚴을指한것이오 天台、三論
0054_0005_a_18L成實、俱舍、法相等은 조곰도意味한것이아니라하야도 누가過言이라고할수업게된것이事實이다。그런
0054_0005_a_19L데 飮水思源格으로 該宗의源緖를한번 溯考하야보자 新羅義湘祖師가 支那에西學하야 終南山至相
0054_0005_a_20L寺에서 智儼禪師의게 華嚴의奧旨를배와 藍茜의本色을沮壞하고는 文武王九年에還國하야 小白山錐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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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5_b_01L에居하게됨에 門徒가三千人의多數에이르렷스니 그中에서가장上首되는이들을 列擧할것가트면悟眞、
0054_0005_b_02L智通、表訓、眞定、眞藏、道融、良圓(亮元)、相源、能仁、義寂、十大德이되고 그中에서眞定、相圓、
0054_0005_b_03L亮元、表訓을四英이라하야 이四人으로하야곰 賢首의보낸바搜玄記、探玄記、敎分記等을分講케하야曰
0054_0005_b_04L「博我者藏公 起予者爾蜚』 라하야 華嚴闡揚에勞力하얏슴으로 同十六年에王勑을받드러 浮石寺創建을
0054_0005_b_05L비롯으로하야 華嚴宗十刹의大學을定하고 宗風을大揚하게되엿다 崔孤雲이撰한 唐大薦福寺故寺主翻
0054_0005_b_06L經大德法藏和尙傳에「誘令一國 學遍十山」 이라하고 其下에自註하기를
0054_0005_b_07L海東華嚴大學之所 有十山焉、中岳公山美理寺、南岳知異山華嚴寺、北岳浮石寺、康州迦耶山海印寺、
0054_0005_b_08L普光寺、熊州迦耶峽普願寺、鷄龍山岬寺(括地志所云鷄藍是)朔州華山寺、良州金井山梵語寺、毘瑟山玉
0054_0005_b_09L泉寺、全州母岳山國神寺(今歸信寺)、更有如漢州負岳山靑潭寺也、此十餘所。
0054_0005_b_10L라함으로써 其時의配置如何를알수가잇스며 當時의華嚴宗本山(그時에도本山이라고하엿슬는지는알수업
0054_0005_b_11L스나 現代用語를이에借用하는것이니 다시말하면 前記十餘所를가르치는말이라 即現代에比하면 本
0054_0005_b_12L山格이라는말임니다)에는 海印(即義湘祖師의撰述한法性偈圖)、華嚴經板、無孔珠로써該宗의三寶를삼은
0054_0005_b_13L듯하니 이제까지남아잇는遺迹으로도 智異山華嚴寺에三種華嚴의石壁經、海印及浮石寺에잇는三種華嚴
0054_0005_b_14L의古代版 밋海印寺에遺傳하는水晶珠가그것이며 朝鮮僧侶로는 法性偈를아니외이는이가업고 一切法
0054_0005_b_15L要에반듯이法性偈를외이게되는것도 當時華嚴宗에서行하든法式이 그대로그典型을냄겨온것이다。
0054_0005_b_16L○
0054_0005_b_17L高麗大覺國師의 『謁智異山華嚴寺緣起祖師影堂詩』에
0054_0005_b_18L偉論雄經罔不通 一生弘護有深功 三千義學分燈後 圓敎宗風滿海東
0054_0005_b_19L이라함은 純全히義湘祖師의開創한華嚴宗을讃歎하는同時에 華嚴寺가該宗의一本山이든것을 餘蘊업시
0054_0005_b_20L말한것이니 『三千義學』은『義湘門徒三千人』을指稱한것이며 『圓敎宗風』이即是義湘의門風을指目한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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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6_a_01L그것은 高麗肅宗六年에義湘法師를追尊하야 大聖圓敎國師로法謚를올림일새다
0054_0006_a_02L高麗의中葉에有名하든均如大師傳에는 그淵源을말하엿스니
0054_0006_a_03L『師北岳法孫也。昔新羅之季 伽倻山海印寺 有華嚴司宗。一曰觀惠公 百濟巨魁甄萱之福田也。二曰希
0054_0006_a_04L朗公 我太祖大王(高麗太祖)之福田也。………時世之輩 號惠公門徒爲南岳 號朗公門徒爲北岳』
0054_0006_a_05L『今日講師 是你先祖義相第七身也』
0054_0006_a_06L라하엿슨즉 均如도北岳希朗公의門徒이엿스며 希朗公은華嚴十山中에一인海印寺에居하엿슨즉 均如도
0054_0006_a_07L勿論義湘의遠孫임이無疑하니 然한則義湘의後裔가高麗乃至朝鮮時代에까지 綿延不絶한바이라하노라
0054_0006_a_08L○
0054_0006_a_09L 그러나 支那의系統을받지아니한 特殊한華嚴宗即朝鮮自立의華嚴宗(華嚴宗이라고만하면 語弊가업지
0054_0006_a_10L안흐나華嚴宗아님은아님으로華嚴宗이라고아즉말함)이잇는것을 말하려하는것이本題의正論이다。
0054_0006_a_11L 義湘과同時에 東方의大聖人元曉祖師가 押梁郡南佛地(一作發智)村 栗谷娑羅樹下에서誕生 (義湘보
0054_0006_a_12L다四年먼저)하얏스니 그誕地가佛地或發智임과 『娑羅』가朝鮮方言에「生」이임과「元曉」가始明本明의義
0054_0006_a_13L임과 그「小名」이誓幢임으로보아도 그應世가반듯이 徒然이아님을 像想할수잇거니와 그의一生에多大
0054_0006_a_14L한著述과 奇異한事蹟은이에 紹介하지안코 오즉本論의主題인華嚴宗에對한것만을略述하건대
0054_0006_a_15L 元曉祖師도初也에는 義湘과한가지北學의志를發하야 한가지䟦涉하야 支那로向하다가 途中에서自
0054_0006_a_16L得한바잇서 義湘을送別하고 本國으로도라와서 華嚴宗旨를발키엿스니 指月錄에
0054_0006_a_17L元曉入唐 將訪道名山 䟦涉間關 夜宿塚間 渴甚引水 掬取穴中 得泉甘凉 黎明視之 乃體髏也 大
0054_0006_a_18L惡吐之 忽猛省歎曰 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髑髏不二 如來大師曰 三界唯心 豈欺我哉 遂不復求
0054_0006_a_19L師 即還本國 䟽華嚴經 大弘圓頓之敎。
0054_0006_a_20L라한것이 그當時의實地를明證하는바이다 於是乎에 義湘은傳授가잇고 元曉는傳授가업스며 義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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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6_b_01L有學이오 元曉는無學이며 義湘은他覺이오 元曉는目覺인것을 알수잇스며
0054_0006_b_02L 뿐만아니라 元曉의著述한 華嚴經䟽가 支那에流播되야 彼土의老古錐들도 擧皆海東華嚴宗主로推
0054_0006_b_03L昂하며 그立義를遵하엿나니 賢首의探玄記에는
0054_0006_b_04L元曉法師 造此經䟽 立四敎等也
0054_0006_b_05L라하고 淸凉의華嚴䟽玄談에는
0054_0006_b_06L唐初海東法師 亦立四敎 (一)三乘敎 如四諦、緣起經等 (二)三乘通敎 如般若、深密經等 (三)一乘
0054_0006_b_07L分敎 如梵網經等 (四)一乘滿敎 如華嚴經等
0054_0006_b_08L이라고 引用指證한數節만을볼지라도 今에元曉의華嚴䟽는不傳하나마 此에因하야凝想하건대 一臠으로
0054_0006_b_09L써全鼎의味를알기에 그다지힘들지아니한터인즉 元曉祖師의華嚴에對한 法量과見解가如何히高峻通透
0054_0006_b_10L하야 當時內外國諸家를超越하얏슴을 넉넉히알수가잇다。
0054_0006_b_11L 그럼으로 元曉와義湘이同一한華嚴宗이며 圓頓의敎를弘通함도同一하며 또는至今到處名山에 元曉
0054_0006_b_12L庵이잇스면 반듯이그附近에義湘庵이잇고 義湘臺가잇스면 반듯이그不遠에元曉臺가잇슴과 元曉와義
0054_0006_b_13L湘이法兄弟라는傳說가튼것으로보아서도 兩祖師의去就가同一하고 情誼가敦厚하엿든것은 異議하리업
0054_0006_b_14L겟지마는
0054_0006_b_15L 그門徒와 그宗派가 各各달낫든것은事實이다 그것을무엇으로證明하느냐하면 義湘의門派에잇서서는
0054_0006_b_16L單純히華嚴宗이라呼하고 其他의異稱이업스며 或은浮石尊者라고는하엿스나 浮石宗等의名稱이업섯지
0054_0006_b_17L마는 그와反對로元曉의門派에잇서서는 華嚴宗이라는外에 海東宗、芬皇宗乃至元曉宗이라는名稱까지
0054_0006_b_18L잇섯슨즉 兩師의門風이相埒하야 서로甲乙의勢에잇슬뿐만아니라 어느方面으로는元曉宗이도리여義湘
0054_0006_b_19L의門下보다 優越하지아니하엿든가하는생각도잇게되는것이니 우리의禮懺文中에
0054_0006_b_20L『海東華嚴初祖 元曉祖師 義湘祖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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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7_a_01L하고 兩祖師를同時幷擧하는것이 當時에同一한華嚴宗으로 兩祖師가兩派의始祖되엿든것을 事實已上
0054_0007_a_02L으로證明하는것이니 不然하다하면 眞俗兩諦를勿論하고 初祖가반듯이一人이오二人이아닐것은 다시
0054_0007_a_03L異議할價値도업는것이아닌가 아모리華嚴宗에對한功績과道德이 同功一軆일지라도 居然히初祖의位에
0054_0007_a_04L幷列할理는萬無한바이며 더욱이支那의系統을받아來歷잇고元由잇는 華嚴宗의初祖義湘보다 오히려그
0054_0007_a_05L右에元曉를置함이 더욱異常한事實이다
0054_0007_a_06L○
0054_0007_a_07L 元曉宗의門徒에는賢哲이누구누구이엿스며 本山은어데어데이든것을 至今에조곰도알수는업거니와
0054_0007_a_08L그의著述인 大華嚴䟽十卷 華嚴經綱目一卷 入法界品抄記一卷等이 義湘의著述인 一乘法界圖記一卷
0054_0007_a_09L法界品鈔記一卷 白花道塲發願文一卷 大華嚴十門看法觀一卷에比하야 그量부터가얼마나豐富하며 그
0054_0007_a_10L外에도 金剛 涅槃 解深密 阿彌陀 無量壽 彌勒 梵網 楞伽等諸經과 起信 因明 成唯議 攝大
0054_0007_a_11L乘 成實 三論等諸論이며 調伏我心論 安身事心論 遊心安樂道等이 通佛敎에對하야 손을대이지아
0054_0007_a_12L니한데업서서 大綱大綱손을곱아보아도 그의著述이數百卷에不下하는中 十門和諍論이라는것은 그本
0054_0007_a_13L文은 읽어보지못하엿거니와 그題目으로부터解釋할지라도 當時佛敎의各宗各派에잇서서 紛拏한諍論
0054_0007_a_14L이잇든것을 元曉祖師가此를十門으로分類하야 辨駁和會한것인줄을 넉넉히斟酌할수잇다。
0054_0007_a_15L 그리고 彼日本에서 華嚴宗을宣揚한者는 奈良東大寺의良辨이엿섯는데 良辨은華嚴宗旨를新羅學人
0054_0007_a_16L眞嚴智即審詳大德의게學하고 審詳은即元曉祖師의弟子이며 元曉의華嚴䟽가日本에流通되기는 審詳大
0054_0007_a_17L德이가지고 가든것이歷史上에잇서서證明이만타
0054_0007_a_18L○
0054_0007_a_19L如何하엿든 新羅時代로부터華嚴宗에兩派가잇섯든것은事實이며 그兩派의後裔가다가치 언제까지繼續
0054_0007_a_20L되얏든지도詳細히指證할수업스나 想像上으로도長久한歲月에持續되얏슬것이며 而今에안저서遺迹上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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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7_b_01L남어잇는것으로써溯考하건대 大槩는義湘祖師의門派엣것이多大한듯하니 그理由는반듯이支那의繼統이
0054_0007_b_02L잇는것을正宗이라하고 系統이업는것은散宗이라하든 當時의習慣에因하야 얼만큼愼重히생각지아니함
0054_0007_b_03L에잇슬것이다 (未完)
0054_0007_b_04L『나』에對한考察(續)
0054_0007_b_05L無號山房
0054_0007_b_06L人道는 勿論우리의 現實界를指稱한것이니 亦是三毒으로 搆成되여서 汨亂할것은事實이지마는 天
0054_0007_b_07L道의正樂은 自我를찻기에 넘어나餘裕가업고 地獄及餘部는正苦이여서 亦是自我를實現할 可能性까지
0054_0007_b_08L업슴으로 人道는中間級에잇서서 自我를實現할수잇스며 同時에善惡의 分岐點에잇는지라 오즉人道
0054_0007_b_09L라야向上하든지(向下할것은勿論)修道할可能性이잇다하엿다 그럼으로 聖者의指導가 純全이人類中心論
0054_0007_b_10L的見地에서 人道를推奬하엿다 다시말하면 人類는이宇宙의統御資格으로 알엇든것이事實이다。
0054_0007_b_11L 地獄이란것은 우리의現實以下의級을 指摘하엿나니 이文字는더욱만이使用되는것이며 만은宗敎團体
0054_0007_b_12L에서 만은人類들中에서 使用하는것이다 이文字는原始人類에잇서서 暗黑을意味하는 像想的文字로
0054_0007_b_13L서 惡을代表한것이며 同時에光明을神이라指定한만큼(例하면舊約의說話) 暗黑을惡 또는神의反對되
0054_0007_b_14L는 惡魔이라表現한것이다 이文字에잇서서 解釋이各各다르나 佛敎에잇서서 이文字를 人道의下級 畜
0054_0007_b_15L生의上級으로 使用하여왓다 即人道로부터墮落되여 受報하는곳은地獄이니 이에對한文献인즉 참으로
0054_0007_b_16L廣汎하야 이에記錄을避하지마는 略擧한다면小大無間獄으로始하야 만은層節을設하고 또建設의方法
0054_0007_b_17L으로말하면 人間界와 무엇이 다름이업시設하엿나니 이것은다 印度在來의婆羅門敎에서 使用하든
0054_0007_b_18L것이요 佛敎에서特히建設하엿다는 무엇은보이지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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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8_a_01L 餓鬼라는것은 鬼趣即地獄類에屬하는것이니 이것은地獄의善緣에依하야 地獄은脫出하엿스나 前者
0054_0008_a_02L의自習으로 아직도暗黑한鬼趣에서 飢餓報를續行한다는것이니 이것도印度神話中에서 만이볼수잇는
0054_0008_a_03L것이다 同時에 人間界와 畜類들을 괴롭게한다하엿다
0054_0008_a_04L 畜生이라는것은 地獄即暗黑界에서光明界로 다시出生할時는 自我가極度로痳痺되며 暗愚하여서人
0054_0008_a_05L類가되지못하고 畜類로化한다는것이다 이名辭는 飛禽이나走獸를統稱한것이니 이들의前業이貪、嗔
0054_0008_a_06L癡等으로以한 殺生等으로되엿는지라 오즉 相殺、相害함으로向上하기가 참으로어렵다한다
0054_0008_a_07L 修羅라는것은 印度神話中에서 源을發한것이니 수라라는것은 言語學上으로보아서譯하면「酒」이
0054_0008_a_08L니 元來로好飮한다는말이다 이들이하도好飮하나 身軆가원악尨大하야 若干으로그의酒量을채울수업
0054_0008_a_09L다 그래서 海中에다가釀酒하고저하엿스나 海水는生水임으로 되지아니함으로 結局은自禁하는便이
0054_0008_a_10L조타하야 그後로는 다시禁酒를하엿슴으로「아수라」即禁酒라하엿다 이들은神通과變化가 天道에比
0054_0008_a_11L하겟스나 果報에依하야 居處가暗黑하고 同時에食事殘味가 惡感을주도록되엿다 이것이原因이되여
0054_0008_a_12L서 絶對의神 因陀羅와戰爭을함으로 或勝 或敗되여 그의餘波가 人間界에 日、月蝕、落雷로된다
0054_0008_a_13L는것으로始하야 印度神話史上에만은冊張을占한다 現今에도戰鬪狀態를 修羅塲이라하는것도 源을此
0054_0008_a_14L에서發한것이다。
0054_0008_a_15L 以上六級을六途라하야 印度在來 即婆羅門敎에서使用하여오든것을 聖者가說明의具에使用한것은當
0054_0008_a_16L時彼大衆의便宜를圖한듯하다 如何間이와가치徃來交叉하는것이 循環不息하야서 出期가업다 이것을
0054_0008_a_17L斷絶하고 이輪廻에超出하는것을 讃歎하엿다 이것을實行하자면 自我를實現하여야된다 即貪、嗔、
0054_0008_a_18L癡가五種戒를破하게하고 이것을破함으로 다시 六途輪廻가옴으로 因이果를내고 果가다시因을내여서
0054_0008_a_19L連鎻되여서 自我를實現할餘暇가생기지아니한다。
0054_0008_a_20L 以上은迷의經路를說明한것이다 다시悟境으로卽向上하는道理를 說明하자면 各個의『나』를實現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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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8_b_01L는것이다。汎然이생각하면 『나」를實現한다는말이 그다지도 無意味한듯하지마는 『나』라는것은 달
0054_0008_b_02L은것이 아니라 各個人軆內에 潜在하여잇는能力 다시말하면 哲學上으로 絶對能力을發揮하야 完
0054_0008_b_03L實하게 運用하자는것이다。各個人軆內部에는 絶對能力의痕跡을 볼수잇나니 例하면
0054_0008_b_04L 이에絶艶薄命의纎纎한美人이잇다假定하자 男性이 이와가치想徵한다면 人物의搆造가纎弱하여서 一
0054_0008_b_05L擧手、一投足이 全然困難하거온 다른事爲를하기에 不適當할만치된女子가 年齒二十八九歲時에 初
0054_0008_b_06L產으로 男兒二月朔可量된것을 가진中 旅行中에나 亦非常한境遇에잇서서 虎患으로失兒하엿다하면
0054_0008_b_07L이瞬間에 그女子는過度한神經에刺戟과絶望으로 全能力을다하야 失兒를찻고저努力할것은事實인中 그
0054_0008_b_08L의行動과 身軆的變遷으로말하면 그의눈에는 電光이돌고 그의纖弱柔軟한皮膚는 銕骨化하여서 全
0054_0008_b_09L然認識을 이즐만한狀態에서 失兒의所在를向하야 가는中 平素에恐怖로認할만한것은 全然無感覺狀
0054_0008_b_10L態에잇는지라 危險과安全에計度이업시 虎와衝突하야가면서라도 失兒를求하고저할것이다。이에서失
0054_0008_b_11L兒를救하고 救치못하엇다는것은 別問題이고 오즉이와가치興奮하여서 偉大한 不可抗的能力이 생
0054_0008_b_12L긴다는것이다。이것이偶發的으로생기엿슴으로 生理的으로이러난 急激한變化는 結局能力이發露한만
0054_0008_b_13L콤 날이게되여서 極烈한狀態로發病되야 乃至死亡이나 癈人에及할것이다。
0054_0008_b_14L 이러한經驗은 結局精神修養低級인 人軆內에서도 發露할수잇는것이니 이것은어떠한動物을 勿論
0054_0008_b_15L하고發露할수잇슴으로 在來에 『窮狗難逐』 이라는文字는 이것을말한것이다。이것이一時的發露로도어
0054_0008_b_16L느程度에서 偉人하다할만하거온 만은修養으로順序를발바서 發露된다면 快히偉大能力의 所持者인
0054_0008_b_17L人格을 實現할수잇는것이다。이에서聖者는 『天上天下唯「我」獨尊』 이라하엿다。이에『나』라는것은 事
0054_0008_b_18L實上 全宇宙를支配하는것이다。同時에이것을發揮하야 使用함으로 人類라는價値를가지게되는것이다
0054_0008_b_19L이것이佛敎에서 말하는一大事因緣이라는것이니 이宇宙안에 人類의使命은 오즉이에止한다는것이다
0054_0008_b_20L그럼으로 『普觀衆生、同禀而迷』 라함은 實로 個個가이絶對能力을 가지엇건마는 使用치못하고不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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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9_a_01L然한生活을 繼續한다는것이다。이러한類例는 우리가 法華經信解品等에依하야 잘記憶한다。
0054_0009_a_02L 自我를鍛鍊하야 絶對能力發揮하는手段인즉 多種多樣이다。佛敎에依하야 思考하야본다면 먼저 貪
0054_0009_a_03L嗔、癡等을쉬울것은事實이다 이것으로만滿足하지아니하고 積極的으로 修鍊하는方法인즉 古賢의記
0054_0009_a_04L錄도 만치마는 가장容易하方法인즉 數息에依하야 精神을集中식힌다고도하고 一定한思索案即 『話
0054_0009_a_05L頭』 라는것을 가지고 精神을集中한다。亦是信仰도 儀式으로도集中할수잇나니 例하면圓覺經三期懺
0054_0009_a_06L가튼것이다。가장短期에잇서서 修行하는분들의經驗으로 말하면
0054_0009_a_07L 一定한塲所에서 略三七日(二十一日)間을 高聲으로 一定한佛號(信仰上關係와信賴關係로)를 日三四
0054_0009_a_08L次式 一次에略一時間式定하여서 修行한다면 何某를 勿論하고 精神의集中은 可能하다。精神의集
0054_0009_a_09L中이라는것은 絶對能力發揮의 初步임으로 異常한境界가 現前하야 使用할수잇스나 이것은决코他
0054_0009_a_10L力이 아니요 自我의集中인 能力發揮임은事實이다。絶對能力發露前에 即完熟되기前에 識의作用(心
0054_0009_a_11L理學上現象) 으로 滿足을늣기는瞬間에 絶對能力을 完全이實現하기不能함으로 古聖은 『行者入定修
0054_0009_a_12L行時 立於發光地 觀諸種種變化 緣起 不得心住 一切所聞 所觀境界 終不可取』 라는말도 絶對能
0054_0009_a_13L力發揮하는 途程을示하엿고 또는 『這一着子捱將去 如墮萬尺井㡳相似 正當恁麼時 喫飯不知飯 喫
0054_0009_a_14L茶不知茶 放尿不知尿 放屎不知屎 如兀知癡』라하엿스니 精神集中하엿든 程度를말한것이다。
0054_0009_a_15L 다시密敎의 修行方式으로 말하면 一定한陀羅尼(眞言 를默誦하되 普通으로 丹田(臍下陰部上部)
0054_0009_a_16L을觀하야 修鍊하나니 恨器의利鈍으로 遲速을判할지나 略七七日(四十九日)이면 種種境界가現前한
0054_0009_a_17L다하엿나니 이것은 다 自我가凈化되여서 精神集中되는經路에서 생기는것이다。
0054_0009_a_18L 다시精神集中으로 以하야 絶對能力을實現또活用하든 古聖의記錄으로본다면 時間觀念에잇서서는
0054_0009_a_19L『一念普觀無量刼、無去無來亦無住、如是了知三世事、超諸方便成十力』 이라하엿고 空間觀念에잇서서
0054_0009_a_20L는 『蟭螟眼睫起皇州、玉帛諸侯次第設、天子臨軒論土廣、大虛猶是一浮漚』 라하엿고 自己의所得한境界
0054_0009_a_21L를말할때에 『圓覺山中生一▣、開花天地末分前、非靑非白亦非黑、不在春風不在天』 이라하엿스며 高聲
0054_0009_a_22L으로佛號을誦하야 精神集中으로 絶對能力을發顯식이든이약인즉 『阿彌陁佛在何方、着得心頭切莫忘、念
0054_0009_a_23L到念窮無念處、六門常放紫金光』 이라하엿스며 迷와悟境을分하야 說明할때에『處生死流 驪珠獨耀於
0054_0009_a_24L滄滄、踞涅盤岸、桂輪孤朗於碧天』이라한等이다。(二九五五、十一月十六日壽松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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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09_b_01L因緣의法則과諸行無常
0054_0009_b_02L法雨樓主人
0054_0009_b_03L一
0054_0009_b_04L因緣이라함은 梵語의尼陀那(Nidana)라는原語
0054_0009_b_05L로부터 意譯된것이니 一切의事物이生起함은 반
0054_0009_b_06L듯이因과緣이 和合하야 生起하는法이다。例하면
0054_0009_b_07L草木이生長함은 그種子인因과 雨、露、水、土、
0054_0009_b_08L太陽의緣에依하야 生長하나니 人子도亦然하야 孩
0054_0009_b_09L兒가生育됨은 父精의親因과 母血의助緣이 和合
0054_0009_b_10L하야 生育케된다。그럼으로因과緣의意義를 解
0054_0009_b_11L釋할것가트면 因이라함은 事物의發生함에 强烈
0054_0009_b_12L하고 또한極親한關係를 가진것이며 緣이라함은
0054_0009_b_13L事物의發生함에 微弱하고 또한疎濶한關係를 가
0054_0009_b_14L진것이다。그런데 佛敎에依하면 모든事物의 生
0054_0009_b_15L하고滅함은 因과緣의和合에잇다고 說하엿스니 이
0054_0009_b_16L제十二因緣의說에依하면 사람사람이 過去의業因
0054_0009_b_17L과 煩惱의緣이 和合하야 現在의識、名色、六入
0054_0009_b_18L觸、受의果를得하고 다시現在의愛、取의煩惱와 有
0054_0009_b_19L의業인因緣이 서로和合하야 未來의生、老死의果
0054_0009_b_20L를感得하게된다고하엿다。
0054_0009_b_21L 다시因果에就하야 論할것가트면 親因과助緣이
0054_0009_b_22L合하야 結果를齎來케하나니 因은原因이요 緣은
0054_0009_b_23L助緣이요 果는結果이다。그럼으로 善因善緣에는
0054_0009_b_24L善果가잇고 惡因惡緣에는 惡果가잇는法이다。이
0054_0009_b_25L러한單純한因果說은 世上사람도 흔히말하고 밋
0054_0009_b_26L는바이나 그러나 佛敎에서이르는 因緣說과 因
0054_0009_b_27L果說은 다못原因이잇스면 結果가잇다고하는 單
0054_0009_b_28L純한因果說이아니라 恰히蜘蛛의網와가치 縱橫無
0054_0009_b_29L盡하게 關係를가지고잇다。時間的으로나 空間的
0054_0009_b_30L으로나 無限無窮하게 關係하야잇는지라 如何히
0054_0009_b_31L些小하고 微細한일이라도 그一事物을 構成함에
0054_0009_b_32L는 無窮한原因과 無限한助緣이잇서서된것이요 决
0054_0009_b_33L코偶然히 成立되는일은 世上에하나도업다。그럼
0054_0009_b_34L으로 但只目前의일만보고 無因無緣無果라하고 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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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10_a_01L然作成이라하면 此는因果律의支配를 받으면서因
0054_0010_a_02L果를 믿지아니하는 大錯誤라생각한다。
0054_0010_a_03L二
0054_0010_a_04L그런까닭으로 吾儕는 行、住、坐、臥、語、默
0054_0010_a_05L動、靜에 因緣의法則과 因果의規範을 免할수가
0054_0010_a_06L업스며 脫할수가업나니 涅槃經가운데 『善惡之報
0054_0010_a_07L如影從形 三世因果 循環不失』 이라說하심은 우
0054_0010_a_08L리가 須臾間이라도 忘失할수업는 金科玉條의敎
0054_0010_a_09L訓이라고하겟다。그러나이러한 因果律은 他에잇
0054_0010_a_10L지아니하고 自에잇나니 何故이뇨하면 因果는何
0054_0010_a_11L處까지든지 主宰가업는것이다。그럼으로 何人을
0054_0010_a_12L勿論하고 다因果律의支配를 받으되 他로부터받
0054_0010_a_13L는것이아니라 自造因에依하야 自果報를 得하는
0054_0010_a_14L것이니 自作自受하며 自業自得하는것이다。例를
0054_0010_a_15L들것가트면 飮酒者가 飮酒業因에依하야 醉果報
0054_0010_a_16L를得하며 此를因하야 自軆를傷하고 疾病을起케
0054_0010_a_17L하는것과가트니 此는다-飮酒者가 自作自受한果
0054_0010_a_18L報요 自己外에 主宰者가잇서서식힌건이아니다。
0054_0010_a_19L그런故로우리는現在에 自作自受하는因緣의法則을
0054_0010_a_20L脫할수가업는同時에 前生先世에 지어나려온因緣
0054_0010_a_21L의支配도 免할수가업다。要컨대우리는 對內對外
0054_0010_a_22L間에 우리의周圍에서 이러나는凡百事情은 因緣
0054_0010_a_23L法아닌것이업다。그럼으로 佛經에서는 因緣法을
0054_0010_a_24L力說한곳이 頗多하니 例를들것가트면
0054_0010_a_25L大乘入楞伽經二『一切法因緣生 一切法因緣滅』
0054_0010_a_26L楞嚴經二『彼外道等、常說自然、我說因緣』
0054_0010_a_27L說法明眼論 『宿一樹下 汲一河流 一夜同宿 一
0054_0010_a_28L日夫妻 皆是先世結緣』
0054_0010_a_29L又는 『聞法因緣五百生 同席對面五百生 汲流一
0054_0010_a_30L川接彌深 屛雨一樹思殊親』
0054_0010_a_31L等과가트며 다시因親緣疎한例를 들것가트면
0054_0010_a_32L維摩經佛國品註 什曰 『力强爲因 力弱爲緣』
0054_0010_a_33L肇曰 『前後相生因也 現相助成緣也 諸法要因緣
0054_0010_a_34L相假然後成立』
0054_0010_a_35L止觀五下『招果爲因 緣名緣由』
0054_0010_a_36L輔行一、三『親生爲因 疎助爲緣』
0054_0010_a_37L等과가트며 다시論及雜語中에서 因緣을說한例를
0054_0010_a_38L들것가트면
0054_0010_a_39L中觀四諦法 『衆因緣生法 我說即是無』
0054_0010_a_40L雜語 『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亦名爲假名 亦
-
0054_0010_b_01L是中道義』
0054_0010_b_02L라고하엿다。다시佛經에依하야 因緣法을 分析할
0054_0010_b_03L것가트면 因緣이四種이잇스니 一、因緣 二、等
0054_0010_b_04L無間緣三、所緣緣 四、增上緣이다。
0054_0010_b_05L三
0054_0010_b_06L第一因緣이라하는因은 親히果를生하는 原因이
0054_0010_b_07L니 例하면 我等의心은 六官을通하야 一切事物
0054_0010_b_08L의種子로부터 緣生케하니 反語로써말할것가트면
0054_0010_b_09L一切種子가 親히我等의心을助生케하는것이다。換
0054_0010_b_10L言하면 見物生心과가튼것이다。좀더자세히말할것
0054_0010_b_11L가트면 心生法하고 法生心하는原則이니 我等의
0054_0010_b_12L心은一切事物의種子를生하고 一切事物의種子는 我
0054_0010_b_13L等의心을生케하는 直接因緣을말한것이다。
0054_0010_b_14L 第二等無間緣이라함은 前緣後緣이相續不絶한것
0054_0010_b_15L을 가르친것이니 例하면 我等의前念이滅함과가
0054_0010_b_16L치 後念이起하야 前滅後生 前滅後生의循環法則으
0054_0010_b_17L로써 連續不絶하는緣을 말한것이다。換言하면 前
0054_0010_b_18L念이滅함은 後念이生하는緣이되는것이니 前滅後
0054_0010_b_19L生의前後가 同等하야 間斷함이업시 相續不絶하
0054_0010_b_20L는緣이란말이다。
0054_0010_b_21L 第三所緣緣이라함은 客觀的所緣의境을對하야 主
0054_0010_b_22L觀的能緣의心을말한것이니 例하면 我等의心은决
0054_0010_b_23L코獨生치못하는지라 반듯이對象이잇서서 비로소
0054_0010_b_24L能緣의心이起하는緣을 말한것이다。
0054_0010_b_25L 第四增上緣이라함은 心이며物의存在는 單히直
0054_0010_b_26L接原因結果인 因果法則에만잇는것이아니라 반듯
0054_0010_b_27L이第三者되는 間接原因이잇서서 物이며心을存在
0054_0010_b_28L케하는 間接因緣을 가르친것이니 善惡事間에扶
0054_0010_b_29L助치는아니하드래도 妨害치아니하는緣을말한것이
0054_0010_b_30L다。例를들것가트면 怨讎는「외나무다리」에서만
0054_0010_b_31L난다는「외나무다리」와가튼것이니「외나무다리」
0054_0010_b_32L는 잇스나업스나 怨讎가何處에서만나든지 報復
0054_0010_b_33L을演出할것이 定한일이지마는「외나무다리」에서
0054_0010_b_34L만나면 回避不得케되는지라「외나무다리」가 間接
0054_0010_b_35L으로 復讎를 深刻化케하는 增上緣이된단말이다
0054_0010_b_36L 佛敎의因緣觀으로말하면 이와가치 仔細하게 緻
0054_0010_b_37L密하게 觀察하엿다。그래서佛敎의因緣觀은 世俗
0054_0010_b_38L의運命觀과가태서 무슨일이든지 因緣으로미루고
0054_0010_b_39L因緣으로써 解釋하려한다。그럼으로 佛敎信者는
0054_0010_b_40L因緣의支配미테서 一步를進하지못하고 조흔일도
-
0054_0011_a_01L因緣에미루고 조치못한일도因緣에미루고 모든것
0054_0011_a_02L이因緣所致이닛가 因緣대로살다가보자하는 思想
0054_0011_a_03L에서彷徨하고마는者가만타。此는遺感으로생각하는
0054_0011_a_04L바이다。
0054_0011_a_05L 그러나佛敎의因緣觀은 決코이와가튼運命的因緣
0054_0011_a_06L觀에그치고마는것이아니다。佛經에서 因果를 繁
0054_0011_a_07L說함은 種桃得桃 種梨得梨하는 善惡의因果律을
0054_0011_a_08L잘-알고 잘-믿어서 避惡作善하며 斥邪入正하
0054_0011_a_09L라는世間의福因福果를 信解케하는同時에 菩提心
0054_0011_a_10L의佛種子를 심어서 佛果를得하라는 出世間의因
0054_0011_a_11L果를 信解케한것이다。그러나 勸善懲惡의世間因
0054_0011_a_12L果를 奬勵하는同時에 反面에는 福因福果도 畢
0054_0011_a_13L竟은無常하다는 無常觀이잇다。그것이只今말하고
0054_0011_a_14L저하는 諸行無常이다。
0054_0011_a_15L四
0054_0011_a_16L諸行無常이라함은 涅槃經에서나온經句이니 全
0054_0011_a_17L文을 다-들것가트면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
0054_0011_a_18L滅已 寂滅爲樂』 이라함이다。우리가因緣의法則을
0054_0011_a_19L免치못하며 因緣의支配를 脫할수가업스나 因緣
0054_0011_a_20L은生하고 滅하는 生滅의軌則을 버서나지못하는
0054_0011_a_21L것이라 結局은無常한것이다。例하면 緣이잇스면
0054_0011_a_22L生하나 緣이다-하면 滅하는것이다。그럼으로經
0054_0011_a_23L典가운데도 『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이라고하얏
0054_0011_a_24L스며 又는 『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種種法滅』이
0054_0011_a_25L라고하엿다。善因緣을지여서 아모리善福果를 받
0054_0011_a_26L드래도 福果가다-하면墮落한다。그럼으로 人間
0054_0011_a_27L世界에서 作福하야 天上에나서 福果를받드래도
0054_0011_a_28L福이다-하면 다시人間에墮落할뿐더러 宿罪가잇
0054_0011_a_29L스면 地獄에까지 빠아지는일이잇다。또는惡因緣
0054_0011_a_30L을 지으면 勿論惡果報를받으며 그果報가다-하
0054_0011_a_31L면 宿福에依하야 生天하는수도잇다。그러키때문
0054_0011_a_32L에 世間有漏福과 有爲生滅하는法은 畢竟無常한
0054_0011_a_33L것이다。그런故로우리는 모든因緣法이無常함을 徹
0054_0011_a_34L㡳히 覺悟하야 出世間의無漏福인 無爲寂滅之樂
0054_0011_a_35L을 求하지아니하면아니된다。우리가 佛敎를 硏
0054_0011_a_36L究함에는 實相方面과假相方面의두가지力面에依하
0054_0011_a_37L지아니하면 아니되나니 實相方面이라함은 出世
0054_0011_a_38L間의無漏果福 無爲寂滅之樂을 가르친것이요 假
0054_0011_a_39L相方面이라함은 世間의因緣生滅에屬한 有漏果報
0054_0011_a_40L를 가르친것이다。이것을 淺近한比喩로써 말할
-
0054_0011_b_01L것가트면 實相은 水의濕性과가튼것이오 因緣生
0054_0011_b_02L滅의假相은 水의波濤와거품과가튼것이다。그럼으
0054_0011_b_03L로 물의濕性을 알랴면 거품의물방울이 生滅하
0054_0011_b_04L는 現象에執着하면아니된다。波漚의起滅이 無體
0054_0011_b_05L無常함을 아러야 水의本軆의濕性을 알게된다。
0054_0011_b_06L이것과마찬가지로 諸法의實相原理를 알랴면 諸
0054_0011_b_07L法의假相因緣生滅이 無常함을 아러야된다。그런
0054_0011_b_08L까닭으로 因緣의法則을말한끗해 諸行無常을 말
0054_0011_b_09L하게되엿다。諸行無常四字에나아가서 解釋할것가
0054_0011_b_10L트면 諸는一切란뜻이요 行이란遷流한다는뜻이요
0054_0011_b_11L無常이란 定相이업다는뜻이다。그런즉 一切諸法
0054_0011_b_12L의因緣生滅相은 遷流變化하야 定相이업다는말이
0054_0011_b_13L다。
0054_0011_b_14L五
0054_0011_b_15L다시無常二字에就하야 解釋하야볼것가트면 無
0054_0011_b_16L常이라함은 梵語에薩迦耶薩이라는原語로부터 意
0054_0011_b_17L譯된말이니 一切諸法은 恒常生、住、異、滅의四
0054_0011_b_18L相에推移되야 一物로서 常住定止하는者업다는말
0054_0011_b_19L이다。此를稱하야 無常이라고한다。此無常에는 刹
0054_0011_b_20L那無常 一期無常의二別이잇고 或은念念壞無常 和
0054_0011_b_21L合離散無常 畢竟如是無常의三別이잇다。그러나要
0054_0011_b_22L컨대 萬物이徃來變易하야 常相업슴을 이른것이
0054_0011_b_23L다。以上에枚▣한二別이나 三別이나 畢竟大差는
0054_0011_b_24L업다。無常을 說明함에不外하다。그런데就中 刹
0054_0011_b_25L那無常이라함은 時時刻刻의生滅變化를 이른것이
0054_0011_b_26L요 一期無常이라함은 生으로부터老、老으로부터
0054_0011_b_27L病、病으로부터死까지이르는一期를 잡아서말한것
0054_0011_b_28L이나。此를알기쉽게 例를드러서 말할것가트면 蠟
0054_0011_b_29L燭이 點火로부터 心炷가다타서 火消됨은 一期
0054_0011_b_30L無常이요 刹那之間이라도 㷔㷔不息함은 刹那無
0054_0011_b_31L常이다。우리는 主觀的自己生命及身軆이나 客觀
0054_0011_b_32L的모든所緣境에 對하야 無常迅速한 늣김을 가
0054_0011_b_33L저서 奮鬪하지아니하면아니된다。우리는 모든因
0054_0011_b_34L緣法가운대서 因緣의支配를받으나 畢竟은無常치
0054_0011_b_35L아니한것이업다。父母도無常하고 妻子도無常하고
0054_0011_b_36L金錢도無常하고 田宅도無常하고 權勢도無常하고
0054_0011_b_37L名利도無常하고 甚至於自己生命까지無常하다。
0054_0011_b_38L 그럼으로 徃昔에 佛陀께서는 몃弟子沙門의게
0054_0011_b_39L問하시되
0054_0011_b_40L『人命이幾間에在하뇨』
-
0054_0012_a_01L一人은對答하되
0054_0012_a_02L『數日間에잇슴니다』
0054_0012_a_03L『汝ㅣ아즉道를아지못하엿도다』
0054_0012_a_04L一人은對答하되
0054_0012_a_05L『飯食間에잇슴니다』
0054_0012_a_06L『汝ㅣ또한道를아지못하엿도다』
0054_0012_a_07L一人은對答하되
0054_0012_a_08L『呼吸間에잇슴니다』
0054_0012_a_09L『善哉善哉로다 汝ㅣ道를知하도다』
0054_0012_a_10L하엿다한다。이法門의問答을 볼것가트면 우리는
0054_0012_a_11L우리의生命이 얼마나無常하며 믿을수업는것을알
0054_0012_a_12L수가잇다。그럼으로 諸行이無常하야 이에生하고
0054_0012_a_13L滅하는法이니 生하고滅하는法이滅해서 마라버릴
0054_0012_a_14L것가트면 畢竟寂滅의宮殿에 드러가게될지니 그
0054_0012_a_15L곳에이르게되면 常、樂、我、淨의佛의四德을 受
0054_0012_a_16L用할수가잇스리라고믿노라。(끗)
0054_0012_a_17L高麗大覺國師에關한硏究
0054_0012_a_18L內藤雋輔 述
0054_0012_a_19L梁建植 譯
0054_0012_a_20L(바) 歸國後의國師
0054_0012_a_21L國王及太后에게 破格의優遇로써 그歸國을 맛
0054_0012_a_22L게된國師는 興王寺에 住持가되얏다。일즉이文宗
0054_0012_a_23L이 丙申十年 (西紀一○五六年) 二月癸卯에 德水縣에
0054_0012_a_24L工을 始한興王寺는 十二年을 지내어 丁未二十
0054_0012_a_25L一年(西紀一○六七年)에 겨우 告成하야 全部가 二
0054_0012_a_26L千八百間이요 그落慶式에 當하야 王은 百官을
0054_0012_a_27L거느리고 行香하고 財襯을 施納하야 佛事의盛
0054_0012_a_28L함이 曠古未曾有라고까지 일커럿스나 爾來適當
0054_0012_a_29L한管理者를 缺하얏섯슴으로 宣宗은 國師의게 詔
0054_0012_a_30L하야 住持케하얏다。(朴浩撰碑文) 이에 그는 入宋
0054_0012_a_31L以來로 더욱이 硏學한華嚴敎理의宣演에 從事하
-
0054_0012_b_01L자 妙를 盡하고 神을 極하야 學者가海會하야
0054_0012_b_02L다시업든盛况을 呈하얏다。德麟、翼宗、景蘭、連
0054_0012_b_03L妙等이 各各 그무리를 거느리고 弟子에加한것
0054_0012_b_04L도 이즈음의일인줄로 생각한다。(朴浩撰碑文)
0054_0012_b_05L 國師는 歸國後에도 가끔 淨源을 비롯하야 在
0054_0012_b_06L宋中의知友와 文書를 徃復하고 書籍의交換을行
0054_0012_b_07L하얏는데 그中에도 그가 滯宋中에 時時로 物
0054_0012_b_08L質的外護를한것이 宋人에게 기픈感銘을 준듯하
0054_0012_b_09L야 歸國後에도 일부러 그恩惠에 叅與함을請하
0054_0012_b_10L는者도잇섯다。外集第五辯眞
書、布湛書그러나 淨源과는 特別
0054_0012_b_11L한親交가잇슴으로 그恩顧를 갑기爲하야 元祐二
0054_0012_b_12L年에는 靑紙金書華嚴三譯本(註一)及經閣建立費로
0054_0012_b_13L金二千兩을 보냇슴으로 咸淳臨安志卷七十八寺觀條
慧因寺志卷二及卷六參照淨源
0054_0012_b_14L은 大喜하야 答書를 쓰되 다만 慧因一寺의幸
0054_0012_b_15L福에 그칠뿐만아니라 兩浙의緇儒가 다 그줌을 받
0054_0012_b_16L엇다 말하고 大閣을 세워 奉安하얏다。外集第三
淨源書
0054_0012_b_17L時人이 因하야 高麗寺라고 俗稱하고 遠近에서
0054_0012_b_18L와 觀光歡美치안는者가업섯다。佛祖通載第二十八
外集第四希仲書
0054_0012_b_19L 이와가티 國師는 慧因院에 盡力한功이 만핫
0054_0012_b_20L섯는故로 慧因寺志卷三卷四에는 國師를 祖德中
0054_0012_b_21L에 헤엿고 또檀那로 들엇다。그런데 淨源法師
0054_0012_b_22L는 그이듬해 元祐三年(宣宗五年戊辰)十一月에 七
0054_0012_b_23L十八歲의高壽로써 示寂하얏다。生前에 特히 恩
0054_0012_b_24L義를 입엇고 師弟의情에 두터운國師의悲嘆은 삷
0054_0012_b_25L히기에 넉넉하다。얼마아니되어 慧因院의行者 姓
0054_0012_b_26L顏이라는사람이 淨源의眞影과 舍利를가지고 高
0054_0012_b_27L麗에 와 國師에게 드림으로 東坡全集卷三十論
高麗進奉第二狀先師
0054_0012_b_28L의百日齋에 當하야 스스로 疏를 지어 哀悼의
0054_0012_b_29L뜻을 받드럿다。文集第十四追薦
淨源百日齋䟽이듬해 元祐四年에
0054_0012_b_30L이르러 弟子壽介等五人을 杭州에 보내어 淨源
0054_0012_b_31L을 然하랴할새 國母는 그들로하야금 宋朝兩宮
0054_0012_b_32L의壽를 祝하기爲하야 두個의金塔을 持케하니 宋
史
0054_0012_b_33L列傳卷二四六高麗、東坡
全集卷三十論高麗進奉狀壽介等는 宋商徐戩의배를 타
0054_0012_b_34L고 同年十)月에 秀州에 이르고 同月三日에는
0054_0012_b_35L當時 杭州의知州이든蘇軾의게로 押到가되매 本
0054_0012_b_36L國禮賓省의文牒을 뵈고 渡宋의使命에 對하야 말
0054_0012_b_37L하얏스나 蘇軾은 熙寧以來로 入貢의使者로 말
0054_0012_b_38L미암아 받는朝廷賜與의費가 큰것과 沿道調發
0054_0012_b_39L의煩에 不堪함을 생각하고 또 契丹과 密接한
0054_0012_b_40L關係가잇는 高麗의入朝使者가 이르는곳마다 山
-
0054_0013_a_01L川을 圖畵하고 書籍을 購買함은 决코 宋에 對
0054_0013_a_02L하야 有
0054_0013_a_03L利치안타
0054_0013_a_04L고 상각
0054_0013_a_05L할뿐만아
0054_0013_a_06L니라 壽
0054_0013_a_07L介의來朝
0054_0013_a_08L는 國王
0054_0013_a_09L으로부터
0054_0013_a_10L親派된것
0054_0013_a_11L이아니요
0054_0013_a_12L私奠을
0054_0013_a_13L드리고자
0054_0013_a_14L함이니
0054_0013_a_15L義天의來
0054_0013_a_16L朝와는
0054_0013_a_17L크게 意
0054_0013_a_18L味가 다
0054_0013_a_19L르다는意
0054_0013_a_20L見으로 그글을 물리처 朝廷의相關하는배아니요
0054_0013_a_21L知州個人의處置임을 알게하고 다만 淨源의祭奠
0054_0013_a_22L만을 許
0054_0013_a_23L하고 그
0054_0013_a_24L남아의
0054_0013_a_25L尋師學法
0054_0013_a_26L과 出入
0054_0013_a_27L遊覽의類
0054_0013_a_28L는 모다
0054_0013_a_29L許치말고
0054_0013_a_30L期日送還
0054_0013_a_31L케함이조
0054_0013_a_32L타고 上
0054_0013_a_33L奏하얏다
0054_0013_a_34L東坡全集卷
0054_0013_a_35L三十論高麗
0054_0013_a_36L進本
狀朝廷
0054_0013_a_37L으로부터
0054_0013_a_38L는 壽介
0054_0013_a_39L等이 淨
0054_0013_a_40L源에 祭
0054_0013_a_41L함을 許하고 일이 끗나거든 明州로 보내여 便
0054_0013_a_42L
0054_0013_a_43L高麗睿宗의御製인大覺國師畵像讃
-
0054_0013_b_01L船을 기다리어 歸國케하라는命이 나리어 十一
0054_0013_b_02L月三十日에 杭州로부터 明州를 向하야 出發歸
0054_0013_b_03L國한듯하다。東坡全集卷三十乞令
高麗僧從泉州歸國狀그後元祐四年에 高麗
0054_0013_b_04L駙馬都尉瀋王瑋가 다시 詔를 받들어 香幡을院
0054_0013_b_05L에 밧치고 또 田百餘畆를 寄附하야 써 永遠
0054_0013_b_06L한香火를 供한것과隷因寺志卷
一原始條밋 元符元年의겨을(肅
0054_0013_b_07L宗三年戊寅) 에 高麗로부터 使를 보내어 方物을
0054_0013_b_08L貢하고다시 또 建中靖國元年即國師의示寂하든
0054_0013_b_09L해에도 使를 보내어 徽宗의登極을 賀하고 다
0054_0013_b_10L음에
0054_0013_b_11L附白金千數百兩 請於慧因院 造華嚴經閣及盧舍
0054_0013_b_12L那佛普賢文殊菩薩像並供具等 置於其閣 乞差童
0054_0013_b_13L行管勾 歲與剃度 部使者及引伴 各以其狀聞 朝
0054_0013_b_14L廷皆許之 未幾閣成。隷因寺志卷六隷
因敎院華嚴閣記
0054_0013_b_15L이라고 씨여잇다 이使者는 느젓서도 同年二月
0054_0013_b_16L初旬에 出發한것은이記事가 同年三月初一日로
0054_0013_b_17L적혀잇는것으로 말미암아 알수가잇스며 이들의
0054_0013_b_18L使者도 아마 國師의뜻을 받어 差遣된것이리라
0054_0013_b_19L고 생각한다。
0054_0013_b_20L 國師는 이미 宋으로부터 歸國한後에 請하야
0054_0013_b_21L興王寺에 敎藏司를 두고 널리 遼、宋、日本에
0054_0013_b_22L書를 求하야 諸宗章疏의刋正出版을 뜻하고잇섯
0054_0013_b_23L는데(後節參照)宣宗七年庚午에는 그序文을 쓰고 그
0054_0013_b_24L이듬辛未年봄에는 南遊하야 殘簡을 찻고 다시
0054_0013_b_25L翌年에는 孤大山景福寺로 갓다 얻은바書가 前
0054_0013_b_26L後合하야 無慮四千卷에 諸宗敎藏總錄이 이에 거
0054_0013_b_27L의 完成하얏다。十一年甲戌春二月初에는 洪圓寺
0054_0013_b_28L(註二)에 들엇섯고 同年夏五月에는 兄宣宗이 薨
0054_0013_b_29L한故로 國師는 크게 落膽을한것가타야 同月에
0054_0013_b_30L물러가 海印寺慶尙北道
陜川郡에 居하며 溪山에 自適하
0054_0013_b_31L야 浩然終焉의뜻이잇서 스스로 詩를 지어
0054_0013_b_32L海印却勝廬岳寺、伽耶還似虎溪流、遠公高迹雖難
0054_0013_b_33L繼、且喜終焉志已酬。
0054_0013_b_34L屈辱多年寄帝京、敎門功業恥無成、此時行道徒勞
0054_0013_b_35L爾、爭似林泉樂性情。
0054_0013_b_36L事去幾廻興嘆息、年來無計報君親、可憐少壯心如
0054_0013_b_37L昨、不覺銷磨四十春。以上文集第二十
海印寺退去有作
0054_0013_b_38L實로 懷舊의情이 견딀수업는것이잇스니 그宣宗
0054_0013_b_39L을 슯허하는情을 삷할수가잇다。때에 國師는 四
0054_0013_b_40L十歲이엇다。다음 獻宗이 即位함에 미처 그를
-
0054_0014_a_01L부르기를 여러번하얏스나 마츰내 이르지아니하
0054_0014_a_02L얏다。獻宗은 乙亥(西紀一○九五年)十月八日 即位
0054_0014_a_03L한지一年남짓하야 位를 叔父雞林公熙의게 讓하
0054_0014_a_04L니 이가 肅宗이다。王이 또한 屢屢히 近臣을
0054_0014_a_05L보내어 그를 마즈려하나 應하지아니하얏다。그
0054_0014_a_06L러나 王의懇請이 至切하야 敎書를 나리어
0054_0014_a_07L不穀之望師 可謂切矣 非止高山景行 寤寐增想
0054_0014_a_08L而鶺鴒在原 義重匪他 雖不能徃 屢以誠請 拂
0054_0014_a_09L衣高蹈 曾不我顧 古之達者 非夷非惠 與時卷
0054_0014_a_10L舒 冀或一來 副我意焉。
0054_0014_a_11L하라하얏다。이優渥한敎旨를 받고는 義로서 謝
0054_0014_a_12L絶할수업서 이에 서울로 가 또 興王寺에 住
0054_0014_a_13L하며 講學이 처음과가탯다。생각컨대 興王寺는
0054_0014_a_14L國師의게 對하야는 가장 關係가 깁흔절이다。
0054_0014_a_15L二年丁丑夏五月에는 國淸寺(註三) 에 住持하야 처
0054_0014_a_16L음으로 天台를 講하니 王은 親히 慶讃道塲을
0054_0014_a_17L베풀고 落成에 臨하얏스며 一宗의學者、諸宗의
0054_0014_a_18L碩德으로 모힌者 無慮一千人이엇스니 써 그盛
0054_0014_a_19L大를 생각할수가잇다。翌戊寅三年夏四月에는 肅
0054_0014_a_20L宗第四子澄儼이 王命에 依하야 出家하야 國師
0054_0014_a_21L로써 스승을 삼앗다。이가 都僧統이다。辛巳六
0054_0014_a_22L年二月에는 洪圓寺의九祖堂이 이루엇슴으로 肅
0054_0014_a_23L宗은 國師의게 請하야 그落慶式을 擧하고 지
0054_0014_a_24L금까지 祖譜가 一定치안튼것을 이에 이르러 馬
0054_0014_a_25L嗚、龍樹、天親、佛陁、光統、帝心、雲華、賢首、
0054_0014_a_26L淸凉을 九祖로 定하얏다。同年秋八月에 이르러
0054_0014_a_27L病하니 대개 그不快의徵은 이미 이前年부터 나
0054_0014_a_28L타난것가타야文集第三十庚申六月四日國淸
寺講徹天台妙言之後言志示徒의文中에
0054_0014_a_29L予有心勞之病 近日漸增 看讀經書 每覺心痛 學
0054_0014_a_30L業荒廢。
0054_0014_a_31L라고 씨여잇다。이에 이르러 國師도 또한 마
0054_0014_a_32L츰내 定命이 이름을안것갓다。門人이 이에 佛
0054_0014_a_33L事를 修하기를 請하나 佛에 事함이 오래다하
0054_0014_a_34L야 應치안코 恒常 几에 依하야 坐하고 或은
0054_0014_a_35L觀心을 行하고 或은 持經으로 날을 보내며 비
0054_0014_a_36L록疲憊하야도 中止치아니하얏다。王은 中使를 보
0054_0014_a_37L내어 容態를 뭇고 名醫로하야금 오게하얏스며
0054_0014_a_38L諸寺에서는 盛히 淸福의祈禱를 行하얏다。病이
0054_0014_a_39L革함에 미처 肅宗은 親히 와 慰問하고 그말
0054_0014_a_40L하랴고하는바를 무르니 國師 對答하야갈오대
-
0054_0014_b_01L所願重興正道 病奪其志 伏望至誠外護 以副如
0054_0014_b_02L來遺敎 則死且不朽。
0054_0014_b_03L冬十月五日壬辰에 마츰내 右脇하고 僊化하니 享
0054_0014_b_04L年이 四十七이요 僧臘이 三十六이엇다。肅宗이이
0054_0014_b_05L를 듯고 震悼하야 朝政을 轍하얏다。先是하야
0054_0014_b_06L十月三日에 病이 危篤함에 미처 冊하야國師로
0054_0014_b_07L하얏섯는데(朴浩撰碑文)지금 有司의게 命하에 賵
0054_0014_b_08L賻를 보내고 諡하야 大覺이라고하얏다。十六日
0054_0014_b_09L癸卯에 茶毗하야 遺骨을 거두고 十一月四日 辛
0054_0014_b_10L酉로써 厝을 五冠山靈通寺의東方에 安置하얏다
0054_0014_b_11L【註一】 湖山便覽卷八法雲寺의條에는晉譯華嚴經五百卷이라하
0054_0014_b_12L얏고또西湖志卷十寺觀慧因講寺의條에는晉譯華嚴經三百
0054_0014_b_13L部라고적혓스나모도다轉寫의誤일듯하다。
0054_0014_b_14L【註二】 이절은그가興王寺에住持하기비롯한지을順宗이알을때
0054_0014_b_15L그를불러大伽藍을新創하고額號를洪圓으로하겟다는志願
0054_0014_b_16L을말하고그의게對하야太子와協力하야吾願을完成하라고
0054_0014_b_17L일러그도또한그完成을맴서하고功이일움에미처住持로命
0054_0014_b_18L한배되얏다고金富軾은썻스나順宗은癸亥 (四紀一○八三
0054_0014_b_19L年)에即位하야四個月後에薨하고國師가興玉寺에住持한
0054_0014_b_20L것은前述과가치宋으로부터歸國한後니일러도丙寅 (西紀
0054_0014_b_21L一○八六年)인즉順宗의依囑을받은것은興王寺에잇슬때
0054_0014_b_22L가아니다。그러나이절이順宗의發願에依한것인것은文集
0054_0014_b_23L第九에收한○○敎書狀에竊惟其寺(新創弘圓寺)非獨順王
0054_0014_b_24L矢願之所、寔乃宣考徼福之塲。이라고씨인것으로가지고
0054_0014_b_25L라도알수가잇다。
0054_0014_b_26L【註三】 高麗圖經第十七卷祠宇條에依하면國淸寺는西郊亭之西
0054_0014_b_27L에잇다고하얏다。이절은己巳(宣宗六年)十月에太后의發
0054_0014_b_28L願에依하야天台性宗再興의目的으로써西郊에功을起한것
0054_0014_b_29L으로太后沒後에肅宗이그뜻을이어肅宗丁丑二年二月에이
0054_0014_b_30L르러비롯오完成한절이다。功이이미마치자國師의게詔하
0054_0014_b_31L야兼住케하얏다。麗史九十宗室大覺國師의條에는그가國
0054_0014_b_32L淸寺에住한것을海印寺에退居하든때보다도前인것가티적
0054_0014_b_33L엇스나이는顚倒다。
0054_0014_b_34L非心非佛
0054_0014_b_35L 非心非佛 亦非是物 寬若太虛 明同杲
0054_0014_b_36L日 悟而非得 迷亦不失 直下无心便徹頭
0054_0014_b_37L摩訶般若波羅蜜
0054_0014_b_38L(眞覺國師示善安道人偈語)
-
0054_0015_a_01L松雲太師의信仰과그의學德
0054_0015_a_02L金泰洽
0054_0015_a_03L一
0054_0015_a_04L泗溟堂松雲大師라하면 누구나모르는사람이업는
0054_0015_a_05L바이지마는 大師께서 壬辰兵亂에 出馬하야 戰
0054_0015_a_06L功이잇섯슴은 아는者가만흐나 大師의內的精神修
0054_0015_a_07L養에依한 信仰과學問과道德이 어떠함은아는者가
0054_0015_a_08L적다。그럼으로 大師를 敬慕하는 一念으로 大
0054_0015_a_09L師의全生涯를 通하야 可考할만한 記錄을 硏究
0054_0015_a_10L하고 그의信仰과 學德에對하야 論述코저한다。
0054_0015_a_11L大師는距今三百十九年前 光海君二年庚戌八月二十
0054_0015_a_12L六日에 入滅하셧는지라 今年은꼭大師의三百十九
0054_0015_a_13L回遠忌에當하는해이다。그래서去陰八月二十六日에
0054_0015_a_14L大師에對하야 紀念講演을한바도잇다。
0054_0015_a_15L 이제 大師의傳記에依해보건대 師의名은 惟政
0054_0015_a_16L이요 字는離幻이요 泗溟은 自號요 本姓은 任
0054_0015_a_17L氏요 誕生地는 慶南密陽이다。그런데 그先妣께
0054_0015_a_18L서 大師를 分娩하시든날에 한꿈을 꾸시니 白
0054_0015_a_19L雲을타고 黃幘金人을 이끌고 萬仭이나되는 高
0054_0015_a_20L臺를 올라가니 어떤늙은仙翁이 안젓다가 이러
0054_0015_a_21L서서 頂禮함을 보시엿다。이꿈을 깨고나서 곳
0054_0015_a_22L大師를分娩하시니 嘉靖二十三年(中宗三十九年)十
0054_0015_a_23L月十七日(距今三百八十五年前)이엿다。
0054_0015_a_24L 大師께서는 宿世의福緣을 가지고 誕生하신지
0054_0015_a_25L라 나실때부터도 聰明하고 頴悟하야 凡兒와갓
0054_0015_a_26L지아니하엿스며 차츰차츰 長成하시면서부터는 沈
0054_0015_a_27L默하야 말이업는지라 一切他兒들과가치 嬉弄치
0054_0015_a_28L아니하엿스며 或어쩨다가 興이나서 群童과가치
0054_0015_a_29L川上에서 놀게되면 모래를 거두워서 塔을모으
0054_0015_a_30L고 石塊를 세워서 부텨님이라하고 꼿치며 풀
0054_0015_a_31L이며 조각돌가튼것을 주어다가 供養具를 삼어
0054_0015_a_32L서 부텨님압헤 벌려노코 여러아히들과가치 無
0054_0015_a_33L數百拜를하엿다。大師께서는 어려서부터 이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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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15_b_01L치 信仰이크시엿다。이것이後日에 大器를이루게
0054_0015_b_02L한徵兆엿다。大師께서 晩年에도 信心이 얼마나
0054_0015_b_03L壯하시엿든가함은 日本가섯슬때에지으신 本法寺
0054_0015_b_04L除夜詩를 보드래도 알수가잇다。
0054_0015_b_05L在本法寺除夜
0054_0015_b_06L四海松雲老 行裝與志違
0054_0015_b_07L一年今夜盡 萬里幾時歸
0054_0015_b_08L衣濕蠻河雨 愁關古寺扉
0054_0015_b_09L焚香坐不寐 曉雪又霏霏
0054_0015_b_10L라하엿스니 此中焚香坐不寐는 大師의向佛祈願을
0054_0015_b_11L말한것이다。
0054_0015_b_12L 어느가을철에 한날에는 大師께서 여러아히들
0054_0015_b_13L과가치 들에나아가서 黃栗을 줍고잇노라닛가 어
0054_0015_b_14L떤漁夫가 큰자라한마리를 잡아들고간다。그래서
0054_0015_b_15L그것을본大師는 어린가슴에도 칙은한생각이 불
0054_0015_b_16L닐듯하야 自己가힘써주은 밤한다라키를 다-주
0054_0015_b_17L고 그자라를 빼아서서 물속에 더저느어주엇다
0054_0015_b_18L그래서 여러아희들은 모다感激하야 제각금주은
0054_0015_b_19L밤을모다 師의압헤갓다노흐며 平均하게노나가지
0054_0015_b_20L고가자하엿다。그러나 師는 그것을받아서 들주
0054_0015_b_21L은아희나 더주은아희나 差別업시 平均하게 논
0054_0015_b_22L아주고 自己는 抵死爲限하고 한톨도갓지아니하
0054_0015_b_23L고 空手로 歸家하얏다。그래서 鄕老들은 이것
0054_0015_b_24L을 보고 異常히녁이며 異口同音으로 말하기를
0054_0015_b_25L저-아희는 後日에 크게될아희라고 크게稱頌한
0054_0015_b_26L일도 잇섯다。
0054_0015_b_27L二
0054_0015_b_28L師가일곱살(庚戌) 되는해에는 어느날에 그의
0054_0015_b_29L祖父께서 史로써 敎誨하신대 師가무러가로대
0054_0015_b_30L「學者의業이 貴함닛가 賤함닛가 만일貴하다
0054_0015_b_31L하시면 맛당히 배움을 게울리하지 안켓슴니
0054_0015_b_32L다」
0054_0015_b_33L祖父가로대
0054_0015_b_34L「世間事는 學問에더貴한것이업나니라 古今聖
0054_0015_b_35L賢이 다-學을由하야 成就하엿거니 어찌敢히
0054_0015_b_36L學問을 忽하게 녁이갯느냐」
0054_0015_b_37L「녜-그럿켓슴니다 그러면 聖賢의마음으로써
0054_0015_b_38L業을 삼으면貴하고 此를違하면 賤하겟슴니다
0054_0015_b_39L그러나 疑心시러운것이 잇슴니다。世上所學은
-
0054_0016_a_01L害人의說이만코 成人의訓이적으니 이것을보면
0054_0016_a_02L어찌 貴하다하겟슴닛가」
0054_0016_a_03L「오냐 그러타 그러나 成人害人은 空言에잇
0054_0016_a_04L지아니하고 오즉마음의善否에 係할뿐이니라」
0054_0016_a_05L師는이와가치 祖父의게 問答하야 學問의貴함을
0054_0016_a_06L알고 배우기를 게을이하지아니하엿다。그러나 열
0054_0016_a_07L세살(甲辰)되시든해에는黃柳村汝獻先生의게 孟子
0054_0016_a_08L를배우다가 一夕에는 冊장을덥고 歎息하야가로
0054_0016_a_09L대 俗學은 賤陋하야 世緣에 膠擾할뿐이니 어
0054_0016_a_10L찌無漏學(佛經)을 배움만하랴하고 慶北金泉郡黃嶽
0054_0016_a_11L山直指寺에가시여서 信默和尙의게禮하고 削髮爲
0054_0016_a_12L僧을 請하얏다。大師는 俗學이 賤陋하다고 出
0054_0016_a_13L家하실뿐만아니라 일즉이 無常觀이 깁헛는故로
0054_0016_a_14L實은捨世入道코저함이다。그것은 大師의晩年作인
0054_0016_a_15L邙山의詩를보아도 알수가잇다。
0054_0016_a_16L過邙山
0054_0016_a_17L太華山前多少塜 洛陽城裏古今人
0054_0016_a_18L可憐不學長生術 杳杳空成松下塵
0054_0016_a_19L 大師는 直指寺에서 童眞出家하시고 처음에 傳
0054_0016_a_20L燈錄을 閱覽하게된바 熟讀할사이가업시 임의奧旨
0054_0016_a_21L를 깨친지라 久參衲子인 여러老宿들도 도로혀
0054_0016_a_22L大師의게 나아가 質問論議하엿다。
0054_0016_a_23L 大師가十八歲(辛酉)時에는 京畿道廣州郡奉恩寺
0054_0016_a_24L에올라와서 僧選禪科에及第하고 少年僧文章이란
0054_0016_a_25L華聞이 漸彰함에 一時學士大夫詩人으로著名한 朴
0054_0016_a_26L思庵、李鵝溪、高霽峰、崔駕運、許美叔、林子順、
0054_0016_a_27L李益之들과 交驩하야 詩翰을 唱和한일이만타。
0054_0016_a_28L어느때는 荷谷으로더부러 韓文最鉅篇을 一覽誦
0054_0016_a_29L之하기로 言約하고 暗誦한바 一字도不錯하는지
0054_0016_a_30L라 荷谷이驚嘆하고 手寫本으로써 償한일도잇다
0054_0016_a_31L그런데 奇高峰이라는이가 大師의게 戒言하되 大
0054_0016_a_32L師가 此를밋고 自足하게녁이면 學이반듯이 不
0054_0016_a_33L進할뿐더러 枉功을 虛費할뿐이니 自重하야勉勵
0054_0016_a_34L하라하얏다。이말을 드른大師는 悚神受敎하야 爾
0054_0016_a_35L來에 勤苦不怠하얏다。그래서 四子(四書)는 蘇
0054_0016_a_36L齋相의게 다시배우고 또李 (李太白)杜 (杜甫)詩
0054_0016_a_37L를 硏究하야 自此로 文章이 日益月進하엿다。
0054_0016_a_38L그뿐아니라 內典千凾을 다-涉獵하야 內外典에
0054_0016_a_39L通치아니한것이업는지라 方袍로 竺墳을 習하는
0054_0016_a_40L者ㅣ山門에 구름가치 모여드럿다。
-
0054_0016_b_01L三
0054_0016_b_02L大師께서三十二歲(乙亥)時에는 空門의衆望으로
0054_0016_b_03L써 禪宗에 住持就任을請하얏스되 苦辭拂錫하고
0054_0016_b_04L떠나버리시고마랏다。그길로 妙香山에入하야 法
0054_0016_b_05L益을 西山大師淸虗座下에 受할새 老師ㅣ心地를
0054_0016_b_06L提醒하야 性宗을 直授하니 言下에 大悟하시고
0054_0016_b_07L群言을 掃薙하고 閑習을 斷除하고 從前의遊戲
0054_0016_b_08L詞家를 綺語라하야 懺悔하고 安心定性에 一志하
0054_0016_b_09L야 苦行二載에 그正法을 徹得하엿다。그러나 이
0054_0016_b_10L때부터 忠義心이 간절하시엿든것은 香爐峰詩로
0054_0016_b_11L써 斟酌하겟다。
0054_0016_b_12L登香爐峰
0054_0016_b_13L山接白頭天杳杳 水連靑海路茫茫
0054_0016_b_14L大鵬飛盡西南闊 何處山河是帝鄕
0054_0016_b_15L 大師께서는 三十五歲(戊寅)時에 西山老師를 奉
0054_0016_b_16L別하고 楓岳(金剛山)을 向하야 寧越報德寺에서
0054_0016_b_17L三夏를 結制하고 南으로 八公、淸凉、太伯諸山
0054_0016_b_18L에 徧遊하시엿고 四十三歲時丙戌春에는 玉川山
0054_0016_b_19L上東庵에 到着하시니 一夜驟雨에 庭花가盡落한
0054_0016_b_20L지라 師ㅣ문듯 世法의無常함을 더욱이늣기시고
0054_0016_b_21L門人을招하야가로사대
0054_0016_b_22L「昨日開花가 今日空枝라 人世變滅도 亦復如
0054_0016_b_23L是로다。浮生이蜉蝣가튼지라 虗度光陰이 實爲
0054_0016_b_24L矜悶이로다。汝等은 靈性을 各具하엿거니 어
0054_0016_b_25L찌反求하야 一大事를 了達코저아니하나뇨 如
0054_0016_b_26L來가我의肚裏에在하거니 何必走外求하야 日時
0054_0016_b_27L를 蹉過하랴」
0054_0016_b_28L 하고 곳門徒를 四散식히고 禪室에 獨入하야
0054_0016_b_29L杜口結跏하야 或旬日을 不出하는지라 門徒들이
0054_0016_b_30L窓隙으로 窺見하면 兀兀함이 泥塑木造한 等像
0054_0016_b_31L과갓햇섯다。大師께서 後日에 殺活의臨濟宗風을
0054_0016_b_32L如意自在하게 應用함은 이때의禪的修養에 잇섯
0054_0016_b_33L든가한다。師의禪旨를 보려하면 以下의詩로써 알
0054_0016_b_34L수가잇다。
0054_0016_b_35L贈靈雲長老
0054_0016_b_36L千魔萬難看如幻 直似灘頭掇轉船
0054_0016_b_37L呑透金剛幷栗棘 方知父母未生前
0054_0016_b_38L酬李公求語
0054_0016_b_39L懸崖峭壁無栖泊 捨命忘形進不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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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17_a_01L更向釰鋒飜一轉 始知空刼已前時
0054_0017_a_02L贈圓沙彌求頌
0054_0017_a_03L萬法由來空裏花 豈宜徒算海中沙
0054_0017_a_04L但從鐵壁銀山透 不問如何又若何
0054_0017_a_05L贈海兄
0054_0017_a_06L父母非親誰可切 盲龜跛鼈最堪憐
0054_0017_a_07L直須猛烈英雄去 一擊方看海㡳烟
0054_0017_a_08L贈蘭法師
0054_0017_a_09L萬疑都就一疑團 疑去疑來疑自看
0054_0017_a_10L須是拏龍打鳳手 一拳拳倒鐵城關
0054_0017_a_11L達磨一葦渡江
0054_0017_a_12L齴齲來東十萬里 梁王不契渡江西
0054_0017_a_13L九年無語成何事 空使兒孫特地迷
0054_0017_a_14L贈大義長老
0054_0017_a_15L丈夫將欲敵生死 徑截疑團著意疑
0054_0017_a_16L到此若生些子念 轉頭鷂子過新羅
0054_0017_a_17L贈正凝禪子
0054_0017_a_18L此事從來弄劒刄 弄來須愼犯鋒鋩
0054_0017_a_19L遲疑若墮思量路 孤負爺孃隔故鄕
0054_0017_a_20L贈淳長老
0054_0017_a_21L趙州東院千秋栢 直示當人正眼來
0054_0017_a_22L參究早時如縛虎 竛竮切忌走塵埃
0054_0017_a_23L贈默山人
0054_0017_a_24L參禪不用多言語 只在尋常默自看
0054_0017_a_25L趙州無字如忘却 雖口無言我不干
0054_0017_a_26L 大師께서 四十六歲(己丑)時에는 五臺山靈鑑蘭
0054_0017_a_27L若에住하다가 그릇逆獄에坐하야 江陵府에拘하엿
0054_0017_a_28L더니 儒土輩가 其寃을訟하야 免釋되엿고 四十
0054_0017_a_29L七歲(庚寅)되시든해에는 楓岳에遊하야 다시三夏
0054_0017_a_30L를 結制하시엿다。
0054_0017_a_31L萬瀑洞
0054_0017_a_32L此是人間白玉京 琉璃洞府衆香城
0054_0017_a_33L飛流萬瀑千峰雪 長嘯一聲天地驚
0054_0017_a_34L眞歇臺
0054_0017_a_35L濕雲散盡山如沐 白玉芙蓉千萬峯
0054_0017_a_36L獨坐翻疑生羽翼 扶搖萬里御泠風
0054_0017_a_37L四
0054_0017_a_38L【此間二十一行削除】
0054_0017_a_39L 師는四十九歲(壬辰)十月에 乾鳳寺에서 宣廟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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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17_b_01L幸하심을듯고 抗議慷慨하야 諸僧의게 가로대「我
0054_0017_b_02L等이 生居此土하야 食息優游하야 閱有年紀함은
0054_0017_b_03L秋毫라도 다-主上의力이어늘 値此艱危하야 其
0054_0017_b_04L忍坐視리요」 하고 數百僧을 募하야 順安에 亟
0054_0017_b_05L赴하니 諸僧이 來會에 群衆數千을 이루엇다。
0054_0017_b_06L壬辰十月領義僧渡祥原
0054_0017_b_07L十月湘南渡義兵 角聲旗影動江城
0054_0017_b_08L匣中寶劒中宵吼 願斬妖邪報聖明
0054_0017_b_09L聞 龍㫌西指痛哭而作
0054_0017_b_10L龍㫌西指禁城空 文武衣冠道路中
0054_0017_b_11L日暮遼雲是何處 草衣回首淚無窮
0054_0017_b_12L 時에西山大師 淸虛가 朝命으로 諸道僧兵을 摠
0054_0017_b_13L攝하고잇섯스나 老耗로써辭하고 松雲을薦하야 代
0054_0017_b_14L行케하니 大師遂히 大衆을 統率하고 體察使柳
0054_0017_b_15L成龍을 從하야 天將와協同하야 明年(癸巳)正月
0054_0017_b_16L에 平壤을破하야 行長을走케하고 因하야 都元
0054_0017_b_17L帥權慄을隨하야 嶺南에下하야 宜寧에 駐札하니
0054_0017_b_18L殺獲이 頗多한지라 上이嘉之하사 堂上階를授하
0054_0017_b_19L시엿다。
0054_0017_b_20L五
0054_0017_b_21L大師께서五十一歲(甲午)되시든봄에는 劉總兵綎
0054_0017_b_22L이 師를命하야 釜山營에入하야 淸正을諭하라함
0054_0017_b_23L에 大師께서 凡三次나徃來하여서 그要領을엇게
0054_0017_b_24L된지라 多少不快한생각이게시든끗헤 淸正이師의
0054_0017_b_25L게問하되 朝鮮에寶가有乎아하엿다。그래서師ㅣ應
0054_0017_b_26L對하야가로사대 寶ㅣ朝鮮에無하고 日本에有하도
0054_0017_b_27L다한즉 淸正이물으되 何謂也오하는지라 師ㅣ勵聲
0054_0017_b_28L大呼하야가로사대 方今我國에 汝頭로써寶로視하
0054_0017_b_29L니 이것이日本에잇는것이아니냐하얏다。그럼으로
0054_0017_b_30L淸正도 失色無顏하야 驚歎하고 正襟端坐하며 師
0054_0017_b_31L의손을잇글면서 果然師의禪的修養인大膽豪氣에敬
0054_0017_b_32L服하노라하엿다한다。
0054_0017_b_33L 어느때에는 上이大師를 內闥에招詣하야 平生
0054_0017_b_34L을備問하시고 下敎曰하사대 『昔者에劉秉忠과 姚
0054_0017_b_35L廣孝는 한가지山人으로써退俗하야 殊勳을立하고
0054_0017_b_36L芳名을後世에流傳하엿도다。今에國勢가 如此하니
0054_0017_b_37L네가만일還俗하야長髮하면 맛당히百里之寄를任하
0054_0017_b_38L고 三軍之命으로써授하겟노라』하엿다。그리한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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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18_a_01L大師는 固辭退下하는故로 上께서도不得已하야 武
0054_0018_a_02L庫鎧仗으로給하엿다。此를보면師께서는 國家를爲
0054_0018_a_03L하야 盡忠竭力하엿스되 暫時도佛法中信仰을 잇
0054_0018_a_04L지아니하며 佛子導師의節槪를 變치아니하고 世
0054_0018_a_05L間의富貴와榮華와權勢를 草芥視하신 超倫絶世의
0054_0018_a_06L人格者이시엿든것을 알수가잇다。師께서國事에奔
0054_0018_a_07L走하신것도 塗炭에든 生靈을 爲할뿐이요 自己
0054_0018_a_08L의名譽나地位나權利를 圖謀한것이아니엿든것은 以
0054_0018_a_09L下에大師의詩作을通하야보아도알수가잇다。
0054_0018_a_10L釜山大洋
0054_0018_a_11L邇來衰鬢逐年華 又泛南溟八月槎
0054_0018_a_12L曲臂折腰非我意 奈何低首入讎家
0054_0018_a_13L日本霜津海中寫懷
0054_0018_a_14L恭承聖命渡滄溟 履險忘身許一生
0054_0018_a_15L三寸耻爲蘇季子 六奇空羡漢陳平
0054_0018_a_16L思歸念切歌長鋏 作客時多損性靈
0054_0018_a_17L髮白形枯非爲口 只緣無策繫長纓
0054_0018_a_18L在馬烏客舘左車第二牙無故酸痛伏枕呻吟
0054_0018_a_19L病扃賓舘痛生牙 坐算平生百不嘉
0054_0018_a_20L剃髮作僧長在路 留鬚效世且無家
0054_0018_a_21L烟霞事業生難熟 存省工夫策未加
0054_0018_a_22L進退兩途俱錯了 白頭何事又乘槎
0054_0018_a_23L 以上에記錄한詩를볼것가트면 大師께서矢石風塵
0054_0018_a_24L에 不得已隨從함과 쓸데업는外緣으로 自家工夫
0054_0018_a_25L의有損無益을 愧嘆하신자취가歷歷히보힌다「曲臂
0054_0018_a_26L折腰非我意」「作客時多損性靈」「存省工夫策未加」
0054_0018_a_27L와가튼句는 모다自家의工夫無益이라는嘆息이다。
0054_0018_a_28L六
0054_0018_a_29L師는嶺南으로回來하야 兵을留하야抄擊하고 龍
0054_0018_a_30L起、八公、金烏의諸山城을 連築하야 保障케하야
0054_0018_a_31L各各儲胥를飾하고 然後에 곳印綬와戰馬를올리고
0054_0018_a_32L尺籍을 備局에納하고 章을抗하야 閑을乞하엿스
0054_0018_a_33L나 朝廷에서 敦諭不許하는지라 丁酉冬(五十四
0054_0018_a_34L歲時)에 麻提督貴를從하야 島山에入하고 戊戌
0054_0018_a_35L(五十五歲時)年에또 劉提督을從하야 曳橋에入하
0054_0018_a_36L야 다-首功이잇섯스니 前後備餉이四千餘石이오
0054_0018_a_37L器甲을萬으로써計할만하엿다。그래서上이嘉之하사
0054_0018_a_38L特히嘉善同知中樞府事로陞케하엿다。
0054_0018_a_39L 그後師께서는 五十八歲時(辛丑)에 釜山城을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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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18_b_01L하고 五臺山에隱居타가 六十一歲時(甲辰)에 西
0054_0018_b_02L山大師의訃音을承하고 犇喪할새 楊根娛嬪驛에至
0054_0018_b_03L하야 旨를奉하고 闕外에待命함에 行人을拜하야
0054_0018_b_04L日本에渡하라함으로 赴哭치못하고 八月에 國書
0054_0018_b_05L를奉하고 全權講和使節의大命을띄고 日本으로건
0054_0018_b_06L너가시니 日本의諸將들이 出迎相謂하야가로대 此
0054_0018_b_07L和尙이曾者에 說寶驚嘆케하든 說寶和尙泗溟松雲
0054_0018_b_08L大師가아니냐하며 鞠躬拜禮하얏다한다。師는對馬
0054_0018_b_09L島로부터 京都에扺하니 五山의諸大師가 다-約
0054_0018_b_10L束을信受하며 緇流가 麕至하야 受敎를願하는지
0054_0018_b_11L라 師ㅣ一一指迷開導하시니 다-頂禮하야가로대
0054_0018_b_12L肉身生佛이降臨하시엿다하며 稱讃無已하엿다。連
0054_0018_b_13L하야將軍家康을訪問하고 兩國生靈의久陷塗炭을備
0054_0018_b_14L言하고 吾는吾師普濟를因하야來하얏다하니 家康
0054_0018_b_15L도亦歸心釋敎한者라 師의風采를接하며 師의慈言
0054_0018_b_16L을聞하고 信心을發하야 敬之如佛하엿다。그래서家
0054_0018_b_17L康은 師의말삼이一一皆可라하고師의敎言대로聽
0054_0018_b_18L許하엿다。그럼으로 大師께서 功遂歸國케되니 五
0054_0018_b_19L山諸德이 一一餞送하며 大師와別離함을 痛惜하
0054_0018_b_20L는지라 大師ㅣ別詩를贈하니 그詩는아레와갓다。
0054_0018_b_21L別仙巢
0054_0018_b_22L聞飽聲名已十年 浮雲聚散却悽然
0054_0018_b_23L禪窓雨過花如霰 客舍春深柳似煙
0054_0018_b_24L人事每違眞夢幻 浮生一會如因緣
0054_0018_b_25L他時倘遂重遊計 皓月金沙奏沒絃
0054_0018_b_26L次元佶韻
0054_0018_b_27L聚散皆因宿有緣 海東那料此同筵
0054_0018_b_28L春亭烹進仙茶飮 靑草烟花滿眼前
0054_0018_b_29L 大師는 目的한바와가치 和好를成하고 日本에
0054_0018_b_30L渡한지一年만에 歸來케된바 被虜男女三千五百을
0054_0018_b_31L帶還하실새 釜山港에着하니 東萊府使가 憍慢無
0054_0018_b_32L雙하야 出迎도아니할뿐더러 指僧謂賤하며 國忌
0054_0018_b_33L日임에도不拘하고 歌舞妓로더부러 放蕩遊逸을 그
0054_0018_b_34L치지아니하엿다。大師께서 大命을띄고 鯨波萬里
0054_0018_b_35L를 떠날적에도 關門에잇는府使임에不拘하고 餞
0054_0018_b_36L別함이업섯는故로 不快하신생각이게시엿는데 大命
0054_0018_b_37L을遂하고 還駕하실적에도 出迎을忌하는지라 春
0054_0018_b_38L風和顏에 道德이뚝뚝떠러지는듯하신大師는 秋霜
0054_0018_b_39L烈日과가치變하사 臨濟門下의殺活消息과 高峰禪
0054_0018_b_40L師의賞罰棒을 내렷다。그래서東萊府使를 先斬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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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19_a_01L啓하시는草에云하대
0054_0019_a_02L『萬曆三十四年四月十五日申時末酉時一點에正憲
0054_0019_a_03L資憲大夫守兵曹判書兼知八道僧義兵都總攝行講和
0054_0019_a_04L接伴使臣惟政은龍灣行在所에再拜하고啓聞하노이
0054_0019_a_05L다 小臣이魯鈍微命으로國恩을猥被하야濫叨重位
0054_0019_a_06L에 夙夜憂懼하야 心常慽慽에罔知所措로소이다
0054_0019_a_07L東萊府使宋象允이 鎭守防禦하야 練兵繕甲치아
0054_0019_a_08L니할뿐아니라 觀日樓에風樂이 日有四하며今
0054_0019_a_09L月十二日은 即英陽大君의諱日이라 先朝ㅣ悲惜
0054_0019_a_10L하야 禁樂日也어늘 奏樂이如此하며 此臣之來에
0054_0019_a_11L元無門外結陣不啻라 聞臣之來하고 前朝亡國之
0054_0019_a_12L說로自諭하며 本府軍官을代行케하니 何法律이
0054_0019_a_13L至於斯也닛고 且萬里之去에 病不能送이라하며
0054_0019_a_14L萬里之來에도 亦病不能迎이라하니 何其病之長
0054_0019_a_15L이長於萬里之長乎잇가 非但無送迎之道라 分付
0054_0019_a_16L敎諭之道ㅣ於此又闕하니 生害人物은臣實矜憐이
0054_0019_a_17L오나 不依敎諭하고先斬後啓하노이다』
0054_0019_a_18L하얏다。
0054_0019_a_19L七
0054_0019_a_20L大師는甲辰年에渡日하얏다가 乙巳(六十二歲時)
0054_0019_a_21L年五月에나오시면서 이와가치 東萊府使를 先斬
0054_0019_a_22L後啓하고 復命한즉 上이其勞를嘉之하사 嘉義階
0054_0019_a_23L를加하고 御馬紵絲表裡를下賜하엿다。大師는 國
0054_0019_a_24L事로因하야 西山老師涅槃後에 犇喪치못함을 슬
0054_0019_a_25L피녀기사 十月에至하야 妙香山에到하야 祭文으
0054_0019_a_26L로써 西山影塔에 拜哭하야가로대 『關山月十年에
0054_0019_a_27L鬚鬢이颯然하고 扶桑國萬里에 精神이消喪이라 未
0054_0019_a_28L及再叅後喝하야 已矣返本還源이라 想聲容而空悲
0054_0019_a_29L하고 撫杖屨而長慟이로소이다』 하엿다。그리고눌
0054_0019_a_30L러서 普賢寺에 守制하야게시더니 六十三歲 (丙
0054_0019_a_31L午) 되시든봄에 營繕軍을領하고 法宮役에赴하야
0054_0019_a_32L三江洞에結茅하고 六十四歲 (丁未) 되시든가을에
0054_0019_a_33L乞骸하야 雉岳山에還居타가 六十五歲(戊申)되시
0054_0019_a_34L든해에 宣廟諱音을듯고 洛陽에抵到하야 拜哭하
0054_0019_a_35L고 因하야得病甚苦케되시엿다。그래서當時 上命
0054_0019_a_36L으로 備胡西郵코저하엿스나 應命함을不獲하고 伽
0054_0019_a_37L倻山에入하야 調治할새 上이御藥을 屢賜하시더
0054_0019_a_38L니 師가六十七歲(庚戌)되시든가을에 上이特念하
0054_0019_a_39L사 欲其就醫京山하야 方伯으로하야곰 敦遣한대
-
0054_0019_b_01L그해八月二十六日에 大師가여러禪德을 一堂에集
0054_0019_b_02L會하고 告하사대 『四大假合터니 今將返眞이라 何
0054_0019_b_03L用屑屑徃來하야 勞此幻軀하리요 吾將入滅하야 以
0054_0019_b_04L順大化하리라』 하고 遂히跏跌坐하야 悠然히逝化
0054_0019_b_05L하시니 世壽六十七이요 法臘五十七이라 文章으
0054_0019_b_06L로 敎學으로 禪旨로 事業으로 忠臣으로 豪傑
0054_0019_b_07L로 一世를驚動식히며 天下를움직이게하든 大師
0054_0019_b_08L의面影은 此로써幕을마추게되시고마랏다。嗚呼大
0054_0019_b_09L師여 大師의肉身은滅하엿슬지라도 法身은不滅하
0054_0019_b_10L시엿을것이어늘 大師의法身은 而今安在하신가?
0054_0019_b_11L敎界의多難이 莫若今日하니 大師의追憶이 더욱
0054_0019_b_12L이간절하도다。
0054_0019_b_13L八
0054_0019_b_14L以上에論述한一章으로써 細分하야볼것가트면 大
0054_0019_b_15L師의徹天的信仰을볼수가잇스니 幼時로부터 晩年
0054_0019_b_16L까지가 全部偉大한信仰의結晶이라할수가잇다。川
0054_0019_b_17L上에서嬉遊하면서도 集沙造塔하고 立石作佛하야
0054_0019_b_18L採花供養한것이라든지 百里의地를割與하고 三軍
0054_0019_b_19L의都督을授하겟다하야도 還俗치아니함은 모다偉
0054_0019_b_20L大한信仰의使然이라고생각한다。또는師의文章才學
0054_0019_b_21L을觀察할수가잇스니 十三에四書를讀破하고 詩賦
0054_0019_b_22L에能하엿스며 其後外典을 無所不通하고 十八에
0054_0019_b_23L內典千凾을 涉獵하고 洛陽의才子詩人墨客을 驚
0054_0019_b_24L服케하엿다。또는大師의慈悲道德을 볼수가잇스니
0054_0019_b_25L國家朝廷의全權大使로 日本에渡하엿것마는 家康
0054_0019_b_26L을對하야 一切國命이라稱치아니하고 西山大師의
0054_0019_b_27L敎誨라하엿스며 圓光及仙巢의게 致書하면서도 先
0054_0019_b_28L師(西山)의敎誨로 渡日하얏섯스나 願대로充分치
0054_0019_b_29L못하엿스니 나의願을이루게하라고하얏다。例를들
0054_0019_b_30L것가트면 圓光의게寄書하시되
0054_0019_b_31L『余以先師諦로 南遊馬鳥하야 前至貴國하야 得
0054_0019_b_32L見圓光老師及西笑長老五山諸德하고 盛論臨濟狂
0054_0019_b_33L風하야 別明宗旨하니不亦多乎아 余之本願은 只
0054_0019_b_34L要盡刷赤子하야 先師의普濟生靈의訣을副코저하
0054_0019_b_35L노라 唯兄은無違本志하고 當以度生願으로 前
0054_0019_b_36L告大將軍(家康)하야 盡刷生靈하야無冷舊盟하라』
0054_0019_b_37L又仙巢의게寄書하시되
0054_0019_b_38L『向者余以先師遺訣로 南遊至貴島라가 與兄及
0054_0019_b_39L柳川으로 前至日本하야 得見西笑老兄及圓光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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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20_a_01L老五山諸德하고 盛論宗旨하야 具明所從來하니
0054_0020_a_02L佳則佳矣나 未遂本願而回하야 無任缺然이로다
0054_0020_a_03L唯兄은更爲盡心하야 盡刷生靈하야無落前盟하라』
0054_0020_a_04L 하엿다。또는大師의偉業을볼것가트면 此는不言
0054_0020_a_05L可知라多言을避하는바이며 大師의人格을볼것가트
0054_0020_a_06L면 慈悲하기론春風과갓고 威嚴하기론秋霜과갓트
0054_0020_a_07L니 東萊府使에對하야 先斬後啓한것은 더욱이大
0054_0020_a_08L師의凛凛한人格을 追慕케된다。果然大師는 終始
0054_0020_a_09L一貫하야 信仰과道德을基礎로하신 人格的大導師
0054_0020_a_10L이다。그럼으로 大師를 追慕하는一念으로 大師
0054_0020_a_11L의信仰과學德이라는問題로 管見을述한바이나 韮
0054_0020_a_12L才淺識에 粗漏함이不少한지라 具眼家의斤正을바
0054_0020_a_13L라며 요만한論文이라도 比較的仔細이쓰게된結果
0054_0020_a_14L는 表忠寺에게신朴大隱和尙及事務室職員諸氏의好
0054_0020_a_15L意로 泗溟集及奮忠舒難錄等의資料提供에依한것이
0054_0020_a_16L라該氏의게特히感謝한微誠을表하나이다。(끗)
0054_0020_a_17L高句麗時代古墳壁畵에서본佛敎思想
0054_0020_a_18L姜在鎬
0054_0020_a_19L「여게發表코저하는小論은지난여름休暇를利用하야同學의몃벗으
0054_0020_a_20L로歷史地理行脚의길을떠낫슬적에보고들은바의一端인데그나마
0054_0020_a_21L怱忙한行脚이엿슴으로見聞의그것이나마만흔誤差가잇슬줄아오
0054_0020_a_22L니先輩諸位의敎示를바람니다」
0054_0020_a_23L 高句麗時代의古墳壁畵를이약이하자면 무엇보다
0054_0020_a_24L몬저 高句麗란 어떠한 나라이엿던것을 輪廓이
0054_0020_a_25L나마 말해둘必要가 잇는줄안다。高句麗은今日滿
0054_0020_a_26L洲의長春、吉林으로부터 哈爾賓方面에 居住하고
0054_0020_a_27L잇든 扶餘族의別部即卒本扶餘에서 始祖朱蒙(東
0054_0020_a_28L明聖王) 이西紀前三七年(前漢建昭二年)距今一千九
0054_0020_a_29L百六十四年前에세운나라이다。이때의國都의位置는
0054_0020_a_30L鴨綠江支流佟佳江의上流地方이엿다。이에鴨綠江上
0054_0020_a_31L流地方을 起點으로 沸流等隣近의小國을 討定하
0054_0020_a_32L야 國基를磐固케하며 힘써漢人을 排斥하며 東
0054_0020_a_33L으로北沃沮를滅하고 東北의挹婁를排斥하며 北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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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20_b_01L로夫餘를連하야 國境을널리開拓하얏는데 아들琉
0054_0020_b_02L璃王은니어 西으로鮮卑(東胡種)를降하고 國都를
0054_0020_b_03L慰那岩(中江鎭越邊)에옴기고일홈을 國內城이라하
0054_0020_b_04L엿다。이로부터 國勢가全盛하야 貊의諸國을取하
0054_0020_b_05L고漢을益斥하야 遼西를 屢伐하엿고 其後第六代
0054_0020_b_06L太祖王은漢武帝의設置한所謂四郡 (樂浪、玄莵、眞
0054_0020_b_07L蕃、臨屯) 을 여러번치서 漢과扶餘의聯合軍을破
0054_0020_b_08L하고 遼東을取하니 自此로漢郡의勢力은漸漸衰微
0054_0020_b_09L해짐에 이때高句麗는數代英主賢臣의勞力에因하야
0054_0020_b_10L國家가强盛한지라 山上王은 이에治禦의必要로都
0054_0020_b_11L를安寸忽(滿洲輯安縣通溝地方)에옴기니 이即丸都
0054_0020_b_12L城이다。이城은其後魏軍의게屢次來侵을받아 城이
0054_0020_b_13L陷落한일도잇섯다。그러나그후곳囘復되여 國力이
0054_0020_b_14L漸次充實해지던次에 稀世의英主 廣開土王 (好太
0054_0020_b_15L王)이登極하자 널리國土를開拓하되 西北으로契
0054_0020_b_16L丹東胡種의再興)과 後燕을처서 遼東七百餘里地
0054_0020_b_17L를奪取하여 西北境을平定한후 다시水陸軍을 發
0054_0020_b_18L하야南으로百濟에들어 百濟와倭의聯合軍을鏨潰하
0054_0020_b_19L고 臨津以北의地를平定하여 新羅와國境을接하도
0054_0020_b_20L록國土를廣開하니大王의一生間攻取한城邑이六十四
0054_0020_b_21L城千四百村이나된다한다。이에그아들長壽王은父王
0054_0020_b_22L의遺業을集大成하려고 압서西川王때附庸이된勿吉
0054_0020_b_23L(前名挹婁)을結하야 後顧의患을絶하고 南下하여半
0054_0020_b_24L島統一運動에着手하기爲하야 國都를大同江邊平壤
0054_0020_b_25L에옴기게되엿스니 이는長壽王十五年 (西紀四二七
0054_0020_b_26L年)이다。그런데 이長壽王移都平壤에對해서는 位
0054_0020_b_27L置上여러說이잇다。이제말슴하려는古墳壁畵는 平
0054_0020_b_28L壤을中心삼고잇는것임으로 煩雜하나마 不得已位
0054_0020_b_29L置를明白히區別할必要上歷史地理上으로考察하고저
0054_0020_b_30L한다。三國史記에「長壽王十五年移都平壤」 이라하
0054_0020_b_31L엿다。그런데또三國史記에이런記事가잇다。「平原
0054_0020_b_32L王二十八年移都長安城」 이제問題되는것은平壤城과
0054_0020_b_33L長安城이다。長安城에對하야 輿地勝覽에이런句가
0054_0020_b_34L잇다。「長安城在大聖山東北 平原王二十八年 自
0054_0020_b_35L平壤移居于此 城中有安鶴宮古址」그런대今平壤의
0054_0020_b_36L東北約四里許되는곳에標高百七八十米되는大聖山이
0054_0020_b_37L잇는데 其우에山城遺跡이至今도 宛然히남아잇다
0054_0020_b_38L大聖山南麓에安鶴宮이라하는村이잇는데 그村을中
0054_0020_b_39L心으로하고周圍에土城이둘러잇다。勝覽에는此城을
0054_0020_b_40L平原王의移都한長安城이라한모양이다。平壤志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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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21_a_01L그러고 朝鮮여러學者들도勝覽說을墨守해온듯하다
0054_0021_a_02L그러다가關野貞博士의卓見에依하야 平壤城과長安
0054_0021_a_03L城은異名同地인것이發見되엿다。이제同博士의說을
0054_0021_a_04L보건대 隋書에「都平壤城亦曰長安城 東西六里 隨
0054_0021_a_05L山屈曲 南臨浿水」 唐書에도亦長安城과平壤城을가
0054_0021_a_06L치써잇다한다。그러면長壽王이처음丸都에서 옴겨
0054_0021_a_07L온平壤城은어데이엿던가 이問題에對해서는安鶴宮
0054_0021_a_08L村土城附近에서出土된古瓦와 平壤의東北大同江岸
0054_0021_a_09L에잇는酒巖土城에서出土된古瓦의紋樣에依하야 考
0054_0021_a_10L古學上으로酒岩邊이長壽王처음都邑한곳으로考證되
0054_0021_a_11L엿다。그러면 大聖山城은어데屬할가가疑問이다。
0054_0021_a_12L이네들祖先때부터 外敵을防禦하는데에는險峻한山
0054_0021_a_13L岳에依支한築城의必要를 軆驗해왓다。國內城에서
0054_0021_a_14L도그러하엿고 丸都城에서도山城이잇섯다。傳統에
0054_0021_a_15L물드린이네들은 不時에 半島에들어왓다고山을여
0054_0021_a_16L이고城을싸을勇氣는아니난모양이엿다。그래서大同
0054_0021_a_17L江邊平坦한酒岩을中心으로土城을둘러싸고 不意의
0054_0021_a_18L敵襲을豫防하기爲하야 國內城의山城子와가치築城
0054_0021_a_19L한것이 酒岩에서合掌江이란細流를건느면 옴옥하
0054_0021_a_20L게들안저잇는것이 大聖山城인모양이다。이山城이
0054_0021_a_21L平壤附近에서는 가장險阻한山이다。그우에다石築
0054_0021_a_22L의城壁이둘러싸헛스니 要害堅固한山城일것은 現
0054_0021_a_23L今의地勢로보와서도 잘알수엇다。이山城을中心으
0054_0021_a_24L로한 酒岩邊이 長壽王의처음移都地인所謂平壤이
0054_0021_a_25L라하면 現平壤은그후平原王時에 그곳은地理上政
0054_0021_a_26L策上不便하다고 大同江과普通江을自然의城壁으로
0054_0021_a_27L牧丹峰의天嶮을利用하여 山城을이어 宮城을싸고
0054_0021_a_28L國都를再徙한것이平壤城即長安城의古址일것이다。
0054_0021_a_29L以上은關野博士의說에依하야 實地踏查해본바이다
0054_0021_a_30L本論에紹介하랴는古墳도 現平壤城에都邑을옴겨온
0054_0021_a_31L후 王族、大官들의墳墓인것이 大聖山城近傍의王
0054_0021_a_32L墳과比較硏究한結果 어름푸시나마 알게되엿다한
0054_0021_a_33L다。이제그古墳中몃個重要한 壁畵古墳을例로드러
0054_0021_a_34L그位置와構造의現狀을紹介한후 余의어리석은 생
0054_0021_a_35L각을 더하려한다。이제見學한順으로적건대 平南
0054_0021_a_36L江西郡三墓里 세무듬(三墓)이 처음본것이다。江
0054_0021_a_37L西邑에서西으로約半里되는 눈돌가운데 보기에도
0054_0021_a_38L엄청나게 무덕무덕三墓가鼎立하여잇다。三墓里란
0054_0021_a_39L地名도이로부터나온것이 처음듯는사람으로도짐작
0054_0021_a_40L된다。三墓中壁畵가남아잇는것은大、中、二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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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21_b_01L中墓는三墓中西北方에노인것으로 크기로는經百五
0054_0021_b_02L十尺、高約二十六尺이다。羡道들것처玄室에들어간
0054_0021_b_03L즉 四方十二尺가랑되는 네모가반듯한훌릉한 石
0054_0021_b_04L室이잇다。그構造로말하면四壁에는낫나치 한장의
0054_0021_b_05L花崗岩으로되엿다。기와쪼각가튼磚石만으로 옴막
0054_0021_b_06L사리가지맨들어노흔 樂浪古墳의內部들보고온一行
0054_0021_b_07L은 高句麗人의偉大性에는 놀래지안을수업섯다。
0054_0021_b_08L天井은二重으로괴여올리어 그우에다一枚의花崗石
0054_0021_b_09L을넙헛다。天井한가운데 蓮花文樣을 비롯하야四
0054_0021_b_10L壁에도四神圖 (左靑龍、右白虎、南朱雀、北玄武)
0054_0021_b_11L日月鳳凰等繪畵를 石壁에다彫刻을한것도아니요 다
0054_0021_b_12L만表面에다密陀油가튼繪具들使用하여그린것이 千
0054_0021_b_13L三百有餘年의星霜을거친今日에 그彩色의宛然함을
0054_0021_b_14L볼수잇슴에야 高句麗人의偉大와아울러그네들의藝
0054_0021_b_15L術의精華를 讃仰아니할수업섯다、大墓란것은三墓
0054_0021_b_16L中南方에노인것으로前墓에比하야 좀커보일뿐이오
0054_0021_b_17L內部構造로는前者에比하야石材를살게쓴代身에 요
0054_0021_b_18L모조모솜씨엇게 드다린품으로는 建築術上으로훨
0054_0021_b_19L신더價値잇서보인다。壁畵는 蓮花가솜만흔데다가
0054_0021_b_20L天井의天人翔의繪畵가 더욱異彩를나타내는것갓다
0054_0021_b_21L다음에有名한壁畵古墳은 龍岡郡眞池洞의것이다。
0054_0021_b_22L鎭南浦線眞池洞驛에서西北十七町許되는丘陵上에노
0054_0021_b_23L이엿다。大塚、雙楹塚이란二墓가잇는데 이는다가
0054_0021_b_24L치玄室과羡道와의사이에 別로前室이잇스며 그構
0054_0021_b_25L造의複雜한것은 高句麗古墳畵中 最盛期에지은것이
0054_0021_b_26L라할만하다。大塚에는前室과玄室間의通路兩側에壁
0054_0021_b_27L龕가는것이잇는것은다른古墳에서보지못한것이다。
0054_0021_b_28L이古墳構成資料는前江西것처럼 巨石으로만된것이
0054_0021_b_29L아니고 花崗石을쓰기는하엿스나 자듸잔것으로강
0054_0021_b_30L담을싸은후 그틈에다粘土質泥土를끼우고 그우에
0054_0021_b_31L는石灰에다赤色의粘土를混合한 所謂漆喰을바른데
0054_0021_b_32L다가 繪畵、文樣을그린모양인데 大槪는剝落되여
0054_0021_b_33L잘아라볼수업는것이곧遺憾이엿다。그러나前室에는
0054_0021_b_34L多少間남아잇다。其中繪畵中建築樣式 特히斗拱또
0054_0021_b_35L는그우에丹靑한紋樣가튼것은 建築美術上조흔叅考
0054_0021_b_36L品이다。南壁에잇는樓閣圖는 日本奈良時代에그린
0054_0021_b_37L繪因果經에보이는것과 類似한 形式이다。이는前
0054_0021_b_38L者와아울러朝鮮古代建築硏究上優秀한資料가될것갓
0054_0021_b_39L다。大塚에서南으로四町許에雙楹塚이잇다。墳의外
0054_0021_b_40L形이그다지크지는안흐나 그內部構造라던지 壁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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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22_a_01L裝飾의優秀한點으로는 朝鮮現存畵墳中定評이잇다
0054_0022_a_02L는것이다。鐵筋콩크리-트로맨든 門(扉)을열고羡
0054_0022_a_03L道에발을드려노으면 第一먼저보이는것이 兩壁에
0054_0022_a_04L多數의男女像、騎馬像及散馬、牛車等이다。그人物
0054_0022_a_05L에나타나는服飾으로 能히高句麗時代의衣服制度와
0054_0022_a_06L風俗의一端을 넘어다볼수잇는것이 무엇보다깃벗
0054_0022_a_07L다。뿐만아니라 우리古代服裝制度를硏究하는데는
0054_0022_a_08L아마모르면모르지만 現存한것으로는最古한叅考資
0054_0022_a_09L料가되지안을가생각한다。더욱 牛車모양가튼것은
0054_0022_a_10L日本古代畵에서흔히보는 所謂御所車와恰似하다。
0054_0022_a_11L이에關한彼我의關係는 賢明한讀者諸氏의想像에맷
0054_0022_a_12L길셈하자。다음에는前室에들어서면 그入口兩側에
0054_0022_a_13L는仁王像이그려잇다。이仁王像도 日本法隆寺所藏
0054_0022_a_14L의 光背裏面에毛刻된仁王像과 그手法이髣髴하다
0054_0022_a_15L하나 이는아즉律者는보지못한것임으로더論할수없
0054_0022_a_16L다。그러고 이前室四隅에도 大塚에서본斗拱이그
0054_0022_a_17L려잇고 東西壁에蒼龍、白虎 南壁에는人物、天井
0054_0022_a_18L에는蓮花、唐草文樣이그려잇다。이제前室에서玄室
0054_0022_a_19L에들러가는入口에는 左右에二個의八角柱가잇다。
0054_0022_a_20L雙楹塚의일홈도이에서부친모양갓다。柱頭와柱下礎
0054_0022_a_21L盤에蓮花文의裝飾이잇스며 柱身에는赤色地에다黃
0054_0022_a_22L色의蟠龍이그려잇다。玄室은三重의階段으로올려쌋
0054_0022_a_23L코 다시天井三角을三重으로괴여올린후 그한가운
0054_0022_a_24L데다十二瓣의蓮花文을모양잇게그려잇다。壁의四隅
0054_0022_a_25L에는樓閣의기동(柱)이보이고 樓閣의正面에는한雙
0054_0022_a_26L의男女가 合掌跏趺坐의形式으로 各各床에올라안
0054_0022_a_27L저잇스며 그엽門에는婢僕이문고리를잡고서서잇는
0054_0022_a_28L樣이그려잇스며 東壁에는九人의男女行列像이잇고
0054_0022_a_29L西壁에는天蓋狀의아래에무슨그림이잇섯던모양인데
0054_0022_a_30L至今은잘아라볼수업는것이큰遺憾이엿다。그런데이
0054_0022_a_31L壁畵中正面男女像은 이무듬의主人公夫妻라한다。
0054_0022_a_32L이제前記九人男女行列中 異彩를띄우는것은 先頭
0054_0022_a_33L에선頂上에다 方今불이피여오르는香爐를 인少女像
0054_0022_a_34L과 그다음에黑色長衫에다紅色袈裟를수하고 올흔
0054_0022_a_35L손에는六環錫杖을집고 왼손에는搖鈴을든 老師의
0054_0022_a_36L像이다。다른男女도各各性에따라表情과衣裝이各異
0054_0022_a_37L하다。이는아마當時葬式行列의一部이던가 或은死
0054_0022_a_38L後極樂行의길압잡이를그린것이아닌가생각된다。
0054_0022_a_39L 以上은 이번行脚時에본古墳壁畵中重要한것이나
0054_0022_a_40L이에도龍岡郡을中心으로한有名한壁畵古墳이數介
-
0054_0022_b_01L所가잇다。이제그位置와 內部壁畵에나타난繪畵와
0054_0022_b_02L文樣만을列記하여두고 結論에들어가려한다。
0054_0022_b_03L古墳名稱繪 畵 文 樣
0054_0022_b_04L梅山里四神塚四神、日月、主人夫唐草、雲
0054_0022_b_05L妻、牽馬人物、騎馬
0054_0022_b_06L人物、狩獵
0054_0022_b_07L花上里龕神塚斗拱、神王、侍人、蓮花、唐草、鳳凰
0054_0022_b_08L天人翔、山岳
0054_0022_b_09L同 星 塚四神、斗拱 蓮花、唐草、忍冬、星
0054_0022_b_10L肝城里蓮花塚斗拱、龕中人物、日 蓮花、巴文
0054_0022_b_11L月
0054_0022_b_12L(右表는高橋博士「滿鮮考古行脚」에서抄記함)
0054_0022_b_13L 以上에記載한古墳壁畵現狀에依하야 賢明한讀者
0054_0022_b_14L諸氏는 희미하게나마 當時高句麗에얼마나 佛敎
0054_0022_b_15L의影響이波及되엿던가를想像할줄안다。어느古墳에
0054_0022_b_16L서나다보는蓮花文、雙楹塚의金剛力士(仁王像)、僧
0054_0022_b_17L侶 三墓里大墓와花上里龕神塚의天人翔 이것만으
0054_0022_b_18L로도當時그네들信仰을推測할수잇는줄생각한다。그
0054_0022_b_19L러고이네들은大軆로原始民族사이에서보는것과가치
0054_0022_b_20L死後의世界란것을現實世界와 가튼原理로생각하는
0054_0022_b_21L것가치보인다。即未來는現世의延長으로생각한것갓
0054_0022_b_22L다。四神塚、雙楹塚의主人公夫妻의 樓閣中에안즌
0054_0022_b_23L像이라던지 그에따른侍人의配置가튼것은 이를雄
0054_0022_b_24L辯으로맘하는것갓다。이러타해서佛敎의過去、現在
0054_0022_b_25L未來三世의輪迴觀과合致된다고생각지는안으나 적
0054_0022_b_26L어도 이네들은宗敎上見地로 死後의世界를잇는樣
0054_0022_b_27L으로안모양이고 또한거럼나아가서 부텨님의거록
0054_0022_b_28L한힘을입어 九品蓮臺上으로引導받아가겟다는 그
0054_0022_b_29L네들欲望이 희미하나마이壁畵에서엿볼수잇는줄안
0054_0022_b_30L다。그러나이에對하여서 어느분은이러케말한다。佛
0054_0022_b_31L敎思想이만일이네들未來觀까지滲入하엿다면 그主
0054_0022_b_32L人公을表現하는데도 現在와世界와原理를달리하는
0054_0022_b_33L世界生活圖 卽日本聖德太子의天壽國曼茶羅(聖德太
子死後
0054_0022_b_34L얼마아니되여서王妃橘郞女等이采女와가치太子極樂往生의길을想
像해서二幅의繡帳으로그림수노흔極樂世界圖。奈良中宮寺所藏品)
0054_0022_b_35L에서보는形式으로表現식히지못한것을본다면 암만
0054_0022_b_36L해도佛敎信仰이 그네들生活中에깁히들어갓다고는
0054_0022_b_37L볼수업다한다。勿論日本聖德太子當時의佛敎信仰程
0054_0022_b_38L度와 高句麗平原王當時의그程度와의深淺에따라 이
0054_0022_b_39L問題는解决될줄생각된다。이제兩國의佛敎가들어온
0054_0022_b_40L年代와信仰의程度를考察해보건대 天壽國曼茶(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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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23_a_01L羅를수노튼當時로말하면 佛敎가日本에東漸된지高
0054_0023_a_02L句麗에比하야오래지는아니하엿지만 임의日本에서
0054_0023_a_03L는佛敎文化가旺盛하던때이엿슴으로 이環境속에서
0054_0023_a_04L所出된그所謂御物(天壽曼陀羅)은 當時의佛敎信仰
0054_0023_a_05L의象徵으로 가장深曲하게表現하엿슬것은想像할수
0054_0023_a_06L잇다。그러나 高句麗에는佛敎가들어온지좀오래되
0054_0023_a_07L엿스나 아즉도日本의그當時처럼 一般으로信仰이
0054_0023_a_08L篤實치못하엿슴은事實이다。이제高句麗의佛敎輸入
0054_0023_a_09L年代와 그發展如何를본다면 即高句麗小獸林王(十
0054_0023_a_10L七代)二年前秦王苻堅이 浮屠順道와佛像佛經을傳
0054_0023_a_11L함으로부터이다。其後同王四年에 晉僧阿道가와서
0054_0023_a_12L傳道에從事하엿스며 第十九代廣開土王二年에 王
0054_0023_a_13L은國土를四方으로擴張식히는一面에 文化敎化上에
0054_0023_a_14L有意하야 一船民衆의게佛敎崇信을勸함으로부터 佛
0054_0023_a_15L敎가高句麗國內에公許되게되엿다。그러면 우에말
0054_0023_a_16L한壁畵古墳은高句麗가國都를 丸都城에서長安城(平
0054_0023_a_17L壤) 으로옴긴후 二十五代平原王을中心으로建造된
0054_0023_a_18L것이라면 佛敎가들어온지約七代後(二百三十有年)
0054_0023_a_19L인것은짐작할수잇다。그러고 이古墳의構造나其他
0054_0023_a_20L여러가지點으로보와 當時의王族의무덤인것도알수
0054_0023_a_21L잇는줄안다。그러나 다가튼王室의손으로맨든것이
0054_0023_a_22L지만 그當時信仰의如何에따라 그表現에도深淺의
0054_0023_a_23L差가잇슬것은 속이지못할現狀인줄생각한다。如何
0054_0023_a_24L間古墳壁面에金剛力士、天人、僧侶들의像이 그려
0054_0023_a_25L잇는以上에는篤實한信仰아래에서 佛敎의輪迴說의
0054_0023_a_26L未來觀까지는 아니들어갓다하드래도 그네들의死
0054_0023_a_27L後의生活即未來生活은 佛敎에歸依하여 보담더조흔
0054_0023_a_28L보담더착한것을얻을만한信念을가젓다는것은 이壁
0054_0023_a_29L畵에서能히엿볼수잇는줄생각한다。(끗)
0054_0023_a_30L 附記「이古墳壁畵들을見學하시려면미리平南道廳에가서紹介狀을
0054_0023_a_31L얻은후古墳保護直轄駐在所及郡廳(江西)에서保管하는열여
0054_0023_a_32L(鍵)를얻어야됨니다」 十月十八日 江戶學窓에서
0054_0023_a_33L粤若、大浮圖의出處語默이 皆非苟也라
0054_0023_a_34L出處는係乎時하고 語默은存乎機하니 所
0054_0023_a_35L以發明其道하야 以覺後覺ㅣ也라
0054_0023_a_36L(高麗李益齋齊賢撰慧鑑國師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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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23_b_01L佛敎의傳道와目的
0054_0023_b_02L李德珍
0054_0023_b_03L【一】
0054_0023_b_04L千江有水千江月이요 萬里無雲萬里天인것과가치
0054_0023_b_05L人家相連한그處所에는 반듯이佛殿과塔臺의影子를
0054_0023_b_06L볼수잇스며 鷄犬相戲하는그塲所에서는반듯이梵鍾
0054_0023_b_07L외소리를듯게되지아니하는가? 東洋을말하야도 朝
0054_0023_b_08L鮮이나 中國이나 日本各津津浦浦모든곳 即野原
0054_0023_b_09L의末이든지 山岳의麓이든지 어느곳이든지 寺院
0054_0023_b_10L의建築이업는곳이업다。現今或업는곳이잇다하야도
0054_0023_b_11L過去몃百年前에는 다잇섯든곳이아닌가 現今寺院
0054_0023_b_12L이稀少한朝鮮에도 過去에는坊坊曲曲이 寺院이잇
0054_0023_b_13L섯든것을 우리가歷史上으로든지 實證的事實로든
0054_0023_b_14L지 넉넉히알수잇다。어찌朝鮮뿐이랴? 日本은家
0054_0023_b_15L家戶戶에 거의寺院을發見할수잇스며 支那는어떠
0054_0023_b_16L한가 地方이廣闊하고 오랜歷史를가진것만치 그
0054_0023_b_17L民族에그만한 큰恩德을준寺院이 無量한것이아닌
0054_0023_b_18L가 어찌東洋뿐이리요 暹羅에가든지 緬甸에가든
0054_0023_b_19L지 印度에가든지 錫崙에가든지 어데로가든지 寺
0054_0023_b_20L院과 佛像을보게되는것이다。그러면이러한地方에
0054_0023_b_21L서 何事를爲하야 寺院과佛像을 모시게되엿슬가
0054_0023_b_22L呶呶할것업시 個個人人의타오로는 信仰心에서나
0054_0023_b_23L온것이며 모든그들은그러한곳에서 精神의安慰를
0054_0023_b_24L얻어왓스며 人生의不安과煩悶、苦痛을醫療하야온
0054_0023_b_25L것이아닌가?
0054_0023_b_26L 大凡人生은恒常宗敎를求하는 性情이잇는것이다
0054_0023_b_27L如何한邦國 如何한處所에던지 人類가生存하야잇
0054_0023_b_28L는곳에는 宗敎가업는곳이업슬것이다。勿論그對像
0054_0023_b_29L하고信하는神은各各달라서 여러가지差別이만치마
0054_0023_b_30L는 自己以上의妙力이잇다하야 何物이든지 崇仰
0054_0023_b_31L하지아니하는일은업슬것이다。亞弗利加의土蕃이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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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24_a_01L를神이라하고崇拜하며 南亞米利加의土人과南洋의
0054_0024_a_02L土人이 嚴格한動物과植物 또는山嶽日星等을崇拜
0054_0024_a_03L하고잇는것이라든지 英吉利와佛蘭西의文明國民이
0054_0024_a_04L天帝를唯一히信하고잇는것이라든지 그形式은다르
0054_0024_a_05L나 모다그것이宗敎的自然要求에不過한것이다。그
0054_0024_a_06L러면一般宗敎를二種으로區別하야볼수잇스니 自然
0054_0024_a_07L敎와顯示敎가그것이다。다시말하면 人類自然의要
0054_0024_a_08L求에從하야 別로히이것을宣傳하는敎主라든지 敎
0054_0024_a_09L祖等이업는것을自然敎라하며 此에反하야敎主、敎
0054_0024_a_10L祖가잇서서 此를唱道하며 組織的으로傳道하는것
0054_0024_a_11L을 顯示敎라한다。저野蠻時代에行하는宗敎는 大
0054_0024_a_12L槪自然敎에屬한것이다。이러타할만한敎理도업스며
0054_0024_a_13L오즉口碑와傳說에만依하야 行하는것이다。
0054_0024_a_14L 今日文明國에서行하고잇는것은 顯示敎에屬한것
0054_0024_a_15L이다。그中에佛敎와가치 世界的으로 三大宗敎라
0054_0024_a_16L하고잇는 耶穌敎와 囘囘敎는 다가치훌륭한敎主
0054_0024_a_17L를가지고잇는것이다。即囘囘敎는西歷五百七十年에
0054_0024_a_18L亞刺比亞의「멧가」地方에서出生한 『마호멧도』라
0054_0024_a_19L는偉人이 三十八歲時에멧가近地岩窟에入하야 食
0054_0024_a_20L을斷하고 神에祈하야 자조자조神의託宣을受하야
0054_0024_a_21L自己가神命을弘通하는 豫言者라고絶呌하며 開宗
0054_0024_a_22L한것이다。現今一億萬人의信徒를가젓다。
0054_0024_a_23L 耶穌敎는距今一千九百餘年前 (마호멧도의五百七
0054_0024_a_24L十年前) 猶太國이라야一小邑나지례에서出生한 이
0054_0024_a_25L에스그리스도에依하야 傳道한것이다。不幸으로그
0054_0024_a_26L리스도는 十字架에一點露와가치 사라젓스나 그
0054_0024_a_27L遺敎는歐羅巴全土를席捲하야 亞細亞、亞弗利加、
0054_0024_a_28L亞米利加의三大陸에亘하야 現今三億二千七百萬人
0054_0024_a_29L의信徒를가지게되엿다。
0054_0024_a_30L 佛敎도亦이러한宗敎와가치 顯示者即敎主를가젓
0054_0024_a_31L다。基督의降誕前五百餘年에 中印度迦毘羅皤卒都
0054_0024_a_32L에誕生한釋迦牟尼佛이 一切衆生이不悲에悲하며 不
0054_0024_a_33L喜에喜하며 不迷에迷하며 不狂에狂하고 잇는現
0054_0024_a_34L像을憐悶히여기사 宇宙의眞理를示하며 人生의妙
0054_0024_a_35L趣를說하야 人類로하야곰그依支할곳을敎하며 行
0054_0024_a_36L할道를示하엿섯다。
0054_0024_a_37L 以來多歲月間에 幾多의變遷을지나서 現今은地
0054_0024_a_38L球上에五億萬人의信徒를가젓섯다。世界의三大宗敎
0054_0024_a_39L中에 가장開宗이오래되고 가장信徒가만흔것이 佛
0054_0024_a_40L敎이다。此에리스타비쓰氏의統計에依하야 그信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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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24_b_01L數를示하면實로左와如함
0054_0024_b_02L南方佛敎
0054_0024_b_03L錫崙一、五二○、○○○人
0054_0024_b_04L英領緬甸二、四四八、○○○人
0054_0024_b_05L暹羅三、○○○、○○○人
0054_0024_b_06L印度차-인徒一○、四八○、○○○人
0054_0024_b_07L安南壹二、○○五、○○○人
0054_0024_b_08L計二九、四五三、○○○人
0054_0024_b_09L北方佛敎
0054_0024_b_10L和蘭領瓜五○、○○○人
0054_0024_b_11L英領아스산마례五○○、○○○人
0054_0024_b_12L露領올기스、가륨구韃靼、西比利亞南部}六○○、○○○人
0054_0024_b_13L朝鮮七○○、○○○人
0054_0024_b_14L보-단싯김一、○○○、○○○人
0054_0024_b_15L가슈-미라二○○、○○○人
0054_0024_b_16L西藏六、○○○、○○○人
0054_0024_b_17L蒙古二、○○○、○○○人
0054_0024_b_18L滿洲三、○○○、○○○人
0054_0024_b_19L支那本部四一四、六八○、○○○人
0054_0024_b_20L日本三、三八○、○○○人
0054_0024_b_21L計四六八、七三○、○○○人
0054_0024_b_22L合計四九八、一八三、○○○人
0054_0024_b_23L 이統計는本來부터正確하다고는할수업스나 如何
0054_0024_b_24L간世界宗敎中에 第一多數의信者를가젓슴은 疑心
0054_0024_b_25L업는事實이다。그러면 그敎法도점점分하야 一見
0054_0024_b_26L에氷炭不相容하는것과가튼 狀態가되여잇는것도不
0054_0024_b_27L少할것이다。此를一括하야말하기는 實로困難한일
0054_0024_b_28L이다。特히 그經典에對하야서도 回回敎의고-란
0054_0024_b_29L經이라든지 耶穌敎의파니불等과가치 그리簡單한
0054_0024_b_30L것이아니다。
0054_0024_b_31L 佛敎經典은적어도萬餘卷의 經律論三藏을가젓다
0054_0024_b_32L그럼으로 그要를摘取하야 그義를明示하기는 容
0054_0024_b_33L易치아니한것만치 深玄難測한叵思議의妙法를가젓
0054_0024_b_34L다。此를開하면 天地六合에洽하고 此를卷하면 心
0054_0024_b_35L腔에도未滿이라한것이 佛敎의한特色으로볼수잇다
0054_0024_b_36L다시말하면 一字一句라도 그妙趣를顯出하게되나
0054_0024_b_37L니 그는一經의한題目에서 佛敎의要를말한일도잇
0054_0024_b_38L스며 一佛名號에도足히大要를具한일도잇스며 阿
0054_0024_b_39L字本不生의 阿一字에도收한다하고 禪宗에서는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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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25_a_01L默도亦得이라하니 殺活自在與奪縱橫이라하엿다。
0054_0025_a_02L그宣傳發展을말하야도 時代에따라서 地方에應하
0054_0025_a_03L야 諸種의發達과衰退가잇는것이다。우리朝鮮에도
0054_0025_a_04L여러번變遷을거덥하야 온것은事實이다。現今은禪
0054_0025_a_05L敎兩宗이라는 總括號內에다가모다싸고 運行하야
0054_0025_a_06L가지마는 過去에는여러가지宗派를分裂하야 運行
0054_0025_a_07L하야온것도事實인가한다。日本에서는現今諸宗을分
0054_0025_a_08L하야 運行하야가는過程에잇다。日本에서도佛敎를
0054_0025_a_09L朝鮮에서실고간후。一千三百餘年來에 幾多의變遷
0054_0025_a_10L을지내서 現今에는十三宗派가分立하야 各多數의
0054_0025_a_11L寺院을가지고 佛敎의大盛况을이루는現像이다。日
0054_0025_a_12L本뿐만아니라 어대든지日本人이多數히사는곳에는
0054_0025_a_13L반듯이 몃개의寺院이잇다。暫時間을빌어서 日本
0054_0025_a_14L의各宗寺院數를紹介하면左와갓다。
0054_0025_a_15L法相宗四五個寺
0054_0025_a_16L華嚴宗三一個寺
0054_0025_a_17L天台宗四八○○個寺
0054_0025_a_18L眞言宗一二七六二個寺
0054_0025_a_19L淨土宗八三二三個寺
0054_0025_a_20L臨濟宗(禪宗)六一三○個寺
0054_0025_a_21L曹洞宗(禪宗)一四○九九個寺
0054_0025_a_22L黃蘗宗(禪宗)六○五個寺
0054_0025_a_23L眞 宗一九一八六個寺
0054_0025_a_24L日蓮宗五○六一個寺
0054_0025_a_25L時 宗五二一個寺
0054_0025_a_26L融通念佛宗三五七個寺
0054_0025_a_27L計七一九一○個寺
0054_0025_a_28L 이寺院數는幾年前統計임으로 現今은그以上되는
0054_0025_a_29L줄생각한다。이와가치宗派를分하야 그說이各異하
0054_0025_a_30L야 或은高尙幽遠한理를談吐하며 或은適切의義를
0054_0025_a_31L唱하며 或은坐禪을道破하며 또는念佛을說하며 或
0054_0025_a_32L은祈禱를主하며 或은題目을明하며 이러한것이모
0054_0025_a_33L다 佛敎아닌것은아니나 其趣는大端히差異가不無
0054_0025_a_34L하다。
0054_0025_a_35L 그러나 元來同一한根源에서流出한것인故로 또
0054_0025_a_36L한歸一한點이업는것은아니다。
0054_0025_a_37L 그分裂的硏究와合一的硏究는 諸賢의高案에一任
0054_0025_a_38L하고 下에는佛敎의目的에對하야 暫時筆步를옴길
0054_0025_a_39L가함니다。
-
0054_0025_b_01L【二】
0054_0025_b_02L佛敎의分派는 以上과가치 多種으로잇는것이다
0054_0025_b_03L따라서此를硏究하는데도 여러가지方法이잇는것이
0054_0025_b_04L다。或은釋迦如來成道以來로 如何한變遷을하야 發
0054_0025_b_05L達하야왓는일을 歷史的으로硏究하는法도잇슬것이
0054_0025_b_06L며 或은天台、華嚴、般若이며 禪이며 敎이며 淨
0054_0025_b_07L土、眞言等一宗과一派에 全力을다하야 硏究하는
0054_0025_b_08L方法도잇슬것이며 或은各宗各敎의敎理를比較하야
0054_0025_b_09L硏鑽하는法도不無하는것이다。敎理의優劣을 知하
0054_0025_b_10L는것은 此比較的硏究法이 더욱適當하지아니할가
0054_0025_b_11L한다。그發達의跡을調査하는데는 歷史的硏究法이
0054_0025_b_12L適當할것이며 精純히調査하는데에잇서서는 一宗
0054_0025_b_13L一派를特別히硏究하는데不過할것이다。그런대 이
0054_0025_b_14L分析的硏究法으로硏究하는것은 專門的에屬한硏究
0054_0025_b_15L이다。筆者는只今一般의佛敎槪念을一端이라도論코
0054_0025_b_16L자함이엿다。그主眼되는것은 人生의慰安을주며 吾
0054_0025_b_17L人의精神에歸着을得코자하는 根柢를示한것이다。
0054_0025_b_18L 그硏究의專門에屬한것은 筆者亦硏究道程에잇스
0054_0025_b_19L니 다른機會로미루나이다。
0054_0025_b_20L 佛敎는宗敎이며 哲學이아니다。그러면 그敎理
0054_0025_b_21L를말하는데 當하야는 論理明晣하며 所說이透徹
0054_0025_b_22L하다。微에入하야細를穿하고 世間의哲學과倂馳하
0054_0025_b_23L야 小分도羞恥될것이업슴이다。
0054_0025_b_24L 宗敎라함은 人心全軆의安慰를得하기目的한것이
0054_0025_b_25L다。但哲學과가치 智識的要求만채우면조타는것이
0054_0025_b_26L아니다。勿論만흔宗敎學者中에는 心的要素의本性
0054_0025_b_27L을써서 智에잇다하며 (例하면슈피氏와如히) 宗敎
0054_0025_b_28L의根柢를 이에두지아니한것도아니나 此는決코그
0054_0025_b_29L妥當的適說이아니다。그러면 스-라이엘곳헤류等
0054_0025_b_30L과如히 宗敎의根柢를써서 絶對依賴의念이라하엿
0054_0025_b_31L다。即感情一方으로써서말한것이다。此亦適當한說
0054_0025_b_32L明이아니다。
0054_0025_b_33L 宗敎는决코 智識의一方에 偏한것이아니며 또
0054_0025_b_34L한感情의一方에만 倚한것도아니나니 智力과感情
0054_0025_b_35L을調和하야 精神全軆의安慰를得하야 日常生存의
0054_0025_b_36L根柢가되는것이다。即道義의標準이될만한것이되지
0054_0025_b_37L아니하야서는 아니될것이다。
0054_0025_b_38L 多種의宗敎中에는 單道德的意志의訓練에만 主
0054_0025_b_39L를한宗敎도잇스며 感情에만依한宗敎 智力에만依
-
0054_0026_a_01L支한宗敎가만히잇스나佛敎는决코 一方에偏在한宗
0054_0026_a_02L敎가아니다。
0054_0026_a_03L 元來로智情意는 人心의三作用이며 人生의心에는
0054_0026_a_04L確然히區別할理由까지는아니겟스나 此三의各異的
0054_0026_a_05L傾向이잇는것은 明若觀火한事實이다。곳다시말하
0054_0026_a_06L면 物의道理를알고저하는智와 惜欲愛憎이라는情
0054_0026_a_07L과 實際에决斷하야行하는意와 三者가各異의作用
0054_0026_a_08L을한다는것이다。
0054_0026_a_09L 酒를飮하면衛生에조치못한것을아는智、如何間飮
0054_0026_a_10L欲을起하는思는情、飮할가不飮할가 여러가지思考
0054_0026_a_11L하야 飮不飮間에决斷하는것이意이다。此智의目的
0054_0026_a_12L한바는眞에잇스며 情의目的한바는美에잇스며 意
0054_0026_a_13L의目的한바는善에잇지아니하면아니될것이다。故로
0054_0026_a_14L便宜하기爲하야 佛敎를左의三方面에 區別한일이
0054_0026_a_15L잇다。
0054_0026_a_16L佛敎의三方面
0054_0026_a_17L
0054_0026_a_18L心{智(敎理)〓哲學的〓轉迷開悟〓眞〓解
0054_0026_a_19L情(信仰)〓純宗敎的〓離苦得樂〓美〓信
0054_0026_a_20L意(道德)〓倫理的〓止惡修善〓善〓行}證
0054_0026_a_21L 眞理를眞理아니라한것을迷라하며 眞理를眞理인
0054_0026_a_22L줄知하는것이悟라한다。故로 哲學的으로硏究하야
0054_0026_a_23L가는目的은 轉迷開悟에잇는것이며 또情의方面에
0054_0026_a_24L는 彼我身及世界가 苦多樂少한有限에잇서서 無
0054_0026_a_25L漏한果敢업슴을咀呪하야 無限絶對의佛에依賴하야
0054_0026_a_26L離苦得樂하는데잇스며 意의方面에는道德이잇는故
0054_0026_a_27L로 止惡修善이그것이다。이三者가滿足하게되여서
0054_0026_a_28L眞으로서知하지아니하는것이업스며 美로서具하지
0054_0026_a_29L아니한것이업스며 善으로서行하지아니하는것이업
0054_0026_a_30L는 境에到達하는것이 佛敎의目的인故로 决코一
0054_0026_a_31L方面에偏側되여잇는것이아니며 精神全軆의平和를
0054_0026_a_32L得하며 慰安을得하는데잇나니 그러면 人心의三
0054_0026_a_33L作用되는 知情意의三者가 確然히區別되지아니하
0054_0026_a_34L는것과가치 佛敎의此三方面도 또한確然히區別이
0054_0026_a_35L되지아니하는것이다。此三者는相互關聯하야 轉迷
0054_0026_a_36L離苦가되는것이며 離苦하면止惡이되고 止惡이면
0054_0026_a_37L亦轉迷離苦가된다하며 轉迷離苦하면亦止惡이된다
0054_0026_a_38L함과가치 相互間密接한關係를가지고잇는것이다。
0054_0026_a_39L 그럼으로宇宙의眞理를解析하면 此를곳信하게된
0054_0026_a_40L다 信하는것이곳行하게되나니 이에佛果를證하며
0054_0026_a_41L그目的을達하게되는것이다。信解行證의四는 相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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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26_b_01L
0054_0026_b_02L치못할것이다。이三方面도亦一貫하야잇는것이다。
0054_0026_b_03L 右圖와가튼關係를가지
0054_0026_b_04L고잇다。그러나 이에暫
0054_0026_b_05L時 順序를立하야말하자
0054_0026_b_06L면 智識的으로如何한敎
0054_0026_b_07L理上에立脚하야잇는것을
0054_0026_b_08L硏究하고 次에信仰에入
0054_0026_b_09L하며 道德에入하야 佛
0054_0026_b_10L敎의三方面을窺察하는것
0054_0026_b_11L이다。이것은日本有名한佛敎學者加藤咄堂氏의 通
0054_0026_b_12L俗講話를參考한것이어니와 다만그前에 佛敎信者
0054_0026_b_13L로서不知하면아니될것은 佛敎의敎主그人格이다。
0054_0026_b_14L그러고 時代를잘理解하야 信仰과宣傳을組織的으
0054_0026_b_15L로하야가자는 企待를添附하고이에붓을놋슴니다。
0054_0026_b_16L 萬頃廣野의찬바람은 夜分의空氣를헷치고無等山頭둥근月色
0054_0026_b_17L은 半空霜天을쏘는 湖南旅窓에서 十月二十日夜半에 法運
0054_0026_b_18L의盛行을빌고 夢世界로入한다。
0054_0026_b_19L梵語와朝鮮語와의關係(三)
0054_0026_b_20L安自山
0054_0026_b_21L【三】
0054_0026_b_22L梵語가朝鮮에入한것은 直接으로流傳된것보다 支
0054_0026_b_23L那에來하야 漢字로譯한것이入한即重譯的으로遺傳
0054_0026_b_24L된것이多한지라 重譯的으로來할時는 얼마큼其眞
0054_0026_b_25L面目으로來치못한것은 推測키容易하다。그런데梵
0054_0026_b_26L語가漢字로飜譯될時에 不確實한것이잇다하면 더
0054_0026_b_27L욱朝鮮에來한梵語는承誤傳訛되야 其間의差異가多
0054_0026_b_28L有할것인즉 所謂朝鮮에入한梵語는 眞梵語가아니
0054_0026_b_29L오 中路에서變化한것이多한듯하다할지라。
0054_0026_b_30L法苑珠林傳第一
0054_0026_b_31L佛興西方 法流東國 通譯音訛 方言語謬 音
-
0054_0027_a_01L訛則義失 語謬則理乖 故曰 必也正明乎 貴
0054_0027_a_02L無乖謬矣
0054_0027_a_03L大藏經第一千五十冊
0054_0027_a_04L竊觀上代有經已來 賢德筆受 每至度語 無不
0054_0027_a_05L稱云 譯胡爲漢 且東夏九州 □西域爲天竺者
0054_0027_a_06L具摠名也 或云身毒 如梵稱此方爲□那 或云
0054_0027_a_07L眞丹 或作震旦 此皆承有楚夏耳 若當漢 漢
0054_0027_a_08L止劉氏 兩代一號 已後禪讓 魏晉不同 須依
0054_0027_a_09L帝王 稱謂甄別 今爲此錄 悉改正之
0054_0027_a_10L 이런證跡에依하면 已徃支那人들도 誤譯된梵語
0054_0027_a_11L를改正하기에 勞力한것을可知라 朝鮮서는이러케
0054_0027_a_12L佛經을訂正하야본일은업섯고 오직漢譯佛經을그대
0054_0027_a_13L로讀習한지라 今日에佛敎가獨立하고 學術的事業
0054_0027_a_14L을振興하자면 實相梵語를硏究하야 佛經을直譯함
0054_0027_a_15L이可한일이라 이事業을圖하자면 먼저朝鮮語를科
0054_0027_a_16L學的으로 講究할必要가잇나니 이럼으로 余가本
0054_0027_a_17L文을書함은 二個目的이잇스니 一은朝鮮語의本質
0054_0027_a_18L을알것 他一은佛敎의學術的事業을爲한바 即佛經
0054_0027_a_19L을原語에對照하야 其眞意義를闡明하자하는것。
0054_0027_a_20L (一)自來로朝鮮人은 學術的獨立이업섯다。모도漢
0054_0027_a_21L學을解釋하고 漢學術을採用할뿐이라 오직獨立이
0054_0027_a_22L라할것은 諺文을使用하는것밧게업다。佛經에잇서
0054_0027_a_23L서도 모도漢字로譯한것을 解得하기에苦心하얏고
0054_0027_a_24L梵語로쓴原經을 直接朝鮮語로譯解한것은 全無라
0054_0027_a_25L하야도過言이아니라 世宗世祖時에 佛經諺解를만
0054_0027_a_26L히發行하매 此가一大事業이라할지라 그러나此亦
0054_0027_a_27L是原經을譯한것이아니오 漢譯經을重譯한것이라 眞
0054_0027_a_28L言集은呪文百九十餘篇을 諺文漢文梵文三種文을 對
0054_0027_a_29L照하야刋行한것이라 이는直接梵語를 그대로誦한
0054_0027_a_30L것일새 各寺에서眞言하는것은 다梵語를使用하는
0054_0027_a_31L것인대 그眞言을誦할時는 그語意를領知하는지모르
0054_0027_a_32L거니와 眞言하는梵語는其語音이 모도本語와는틀
0054_0027_a_33L리는것이多하다。이것이얼마나羞耻되는일인가 今
0054_0027_a_34L日佛敎는이것을覺醒할것이라 더욱今日의佈敎方針
0054_0027_a_35L은 貴族的이아니오 平民的으로할것이다。即佛經
0054_0027_a_36L을智識階級만알것이아니라 日常의用語로詳解하야
0054_0027_a_37L普通人士의게도알게할것이다。이럼으로써어떤方面
0054_0027_a_38L으로보던지 梵語의硏究는最急한일이라하는것이다
0054_0027_a_39L 法苑珠林傳에말하되「神理無聲 因言辭以寫意 言
0054_0027_a_40L詞無跡 緣文字以圖音」 이라하니 佛敎徒ㅣ어찌妙
-
0054_0027_b_01L理를明함에 語文을重視치아니할가。
0054_0027_b_02L (二)朝鮮人은學術的獨立이업섯슴으로 盲目的從屬
0054_0027_b_03L的으로따라가고 숭내내는것이多하다。近日朝鮮語
0054_0027_b_04L를硏究하고 文法을講한다하는일을두고보면 奇恠
0054_0027_b_05L한說明을下하고 或은精神的議論뿐이오 科學的解
0054_0027_b_06L論은另力치아니하니 中等學校에서敎授하는 所謂
0054_0027_b_07L朝鮮語文法이란것은 모도謬妄한것으로서 空然히
0054_0027_b_08L學生의精神上負擔만加重케할뿐이다。이것이何由오
0054_0027_b_09L하면 外國語를不知하는緣故다。게다가말하되 外
0054_0027_b_10L國語를不知하면 自國語의價値를發見할수업다한지
0054_0027_b_11L라 外國語의格式을不知하면 語法을論키不能하거
0054_0027_b_12L던 况言語學又는關係되는他國語의性質을不知코야
0054_0027_b_13L어찌其議論이當을得할가 西洋言語學界에서도 梵
0054_0027_b_14L語의性質을硏究한後에야 비로소科學的根據가確立
0054_0027_b_15L한것이다。우리도亦是親近의關係가重한 梵語를講
0054_0027_b_16L究한後가아니면 朝鮮語의本質을解得키不能할것은
0054_0027_b_17L不言可知의일이다。是以로 文法家들도이에對하야
0054_0027_b_18L覺醒을起치아니키不可하다。
0054_0027_b_19L 余는方今朝鮮言語學一書를起草中에잇는지라 이
0054_0027_b_20L를始作하야不絶한硏究를持續하기는 그럭저럭二十
0054_0027_b_21L餘年에至하엿다。여게는滿蒙漢及梵語等과의關係를
0054_0027_b_22L徹㡳히說明하야 朝鮮語의本質을 한번道破코자한
0054_0027_b_23L다。그러나 余의一個人의私見이 足히公契되기를
0054_0027_b_24L望키不敢하나 或是學界의參考가될가하야 其一端
0054_0027_b_25L을玆에發表하는것이다。(完)
0054_0027_b_26L松廣寺에서(色麈聲塵의二)
0054_0027_b_27L晩悟生
0054_0027_b_28L[一]
0054_0027_b_29L新聞을通하야 全南順天附近에 水害가若干잇슴
0054_0027_b_30L을아랏스나 지내온谷城郡境은 그被害의跡을볼수
0054_0027_b_31L업섯고 松光面洛水橋을근너면서부터 橋梁이破壞
0054_0027_b_32L되고 道路가缺潰하야 限一里距離에서 行路難의
0054_0027_b_33L늣김을備甞하엿다。
0054_0027_b_34L 그러나 寺境을드러섬으로부터 아즉까지新式의
-
0054_0028_a_01L治道는되지안엇스나 그래도直線으로平坦하고 林
0054_0028_a_02L木은左右로茂盛한데 山下洞人이밤(生栗)망태를질
0054_0028_a_03L머진데다가 竹竿을끄을고 鎌子(낫)를손에든체 길
0054_0028_a_04L을연하엿스니 當地가舊時쩍栗木封山으로밤남기欝
0054_0028_a_05L密한데 方今摘取期을當한까닭이라한다。나려오는
0054_0028_a_06L사람을 左右로避하면서 限數武地를드러가니 縹
0054_0028_a_07L緲한一閣이 虹蜺橋上에翼然히나타난다。그곳을當
0054_0028_a_08L到하야 行李를나려노코 十餘尺이나되는 溪流도
0054_0028_a_09L나려보며 淸凉閣이라는扁額과 天井中央에잇는經
0054_0028_a_10L藏二字와 其他題詩等을 차레로둘러봄에 終日行
0054_0028_a_11L路의困憊는 언의듯업서지고 羽化登仙의 快感을
0054_0028_a_12L늣기엿다。거게서 신발과衣服等을整頓하고 다시
0054_0028_a_13L드러오느라니 어느동무한분이 우리압흐로急走를
0054_0028_a_14L하여온다。여보게鳳儀- 저가누구관대 저와같이
0054_0028_a_15L急히오는가? 왜-白羊寺에와서 先生님께法華經
0054_0028_a_16L한秩을차리든 金得善君이아님잇가 아-그런가 말
0054_0028_a_17L을마치지못하여서 金君이닥처오며 日前편지를보
0054_0028_a_18L와 오늘사이나到着하실뜻하여서 散步兼나왓슴니
0054_0028_a_19L다。人事를마치고는 行李을받아들고 曹溪門을드
0054_0028_a_20L러서서 다시왼켠으로 羽化閣과天王門等五重關을
0054_0028_a_21L지내고 法王門을正面으로치어다보면서 바른손짝
0054_0028_a_22L으로다시꺽거 門하나를드러서니 이곳은事務所와
0054_0028_a_23L接賓室로꿈여노흔 龍華堂이라한다。마츰여러분이
0054_0028_a_24L新聞을보다가 金君의紹介로 彼此初見禮을마치고
0054_0028_a_25L宿所에나아가 夕供을應하엿다。不多時 當寺에學
0054_0028_a_26L識으로中堅이되는 林錫珍氏가來訪하야 當寺의過
0054_0028_a_27L去現在와 近頃日本視察의顚末等 滔滔數百言에心
0054_0028_a_28L醉하야 數時間이지내감을渾忘하엿다。今日은路困
0054_0028_a_29L이잇슬톄니 편히休息하라 한말슴을남겨두고 自
0054_0028_a_30L己處所로도라간後 茶童이寢具를가저왓다。家屋의
0054_0028_a_31L結搆부터宏壯하려니와 寢具에對하여도그훌륭한것
0054_0028_a_32L은 諸各寺에볼수업는準備이다。凡節이全鮮三寶寺
0054_0028_a_33L刹中一數됨을 자랑할수잇다。驚嘆함을말지안엇다
0054_0028_a_34L二
0054_0028_a_35L翌日은住持猊下를 事務室로訪問하고 任員한분
0054_0028_a_36L을案內로交涉하야 各殿叅拜로나섯다。第一着으로
0054_0028_a_37L大雄殿에드러가 東便으로施設되여잇는 寶物各項
0054_0028_a_38L을觀覽하엿다。普照國師의受用하시든 袈裟、신발
0054_0028_a_39L能見難思、搖鈴、如來齒牙、鯨鬚、象牙等牌 其他
-
0054_0028_b_01L各點을차레로拜觀하고 그뒤로잇는 石階三十餘層
0054_0028_b_02L을발바올라 說法殿에드러섯다。이집은普照國師꺼
0054_0028_b_03L서 常住說法하시든곳이라 中央卓子가제물로說法
0054_0028_b_04L床이되여잇는데 十六國師의談禪法會가 儼然未散
0054_0028_b_05L인듯늣기엿다。그웃층三面으로는李太王己亥에 海
0054_0028_b_06L印寺化主梵雲스님을命하야 藏經네秩을印出한後 一
0054_0028_b_07L秩은諸山勝地에分奉하고 其外는三寶寺刹에 各一
0054_0028_b_08L秩式奉安하엿다는것인데 그-粧置의嚴整함은 또
0054_0028_b_09L한사람으로하야곰 不知不識間에起敬케한다。다시
0054_0028_b_10L上海로온頻伽精含의것 日本으로온大正新修의것 東
0054_0028_b_11L洋三國藏經은 모다 이說法殿內에가치모실經綸이
0054_0028_b_12L라한다。「若不傳法度衆生、畢竟無能報恩者」라는頌
0054_0028_b_13L句를暗誦하면서 누가子期의知音이되여 저만흔經
0054_0028_b_14L卷을 모조리閱覽을하여볼꼬하는感이 油然히湧出
0054_0028_b_15L된다。
0054_0028_b_16L 그다음에 臺上七殿과 臺下各房이며 三日水의
0054_0028_b_17L眞景과 普照塔의靈塲을 順序로拜觀하고 短墻을
0054_0028_b_18L도라 眞樂臺에올라서니 道塲全景이 掌珠와如히
0054_0028_b_19L나타난다。年前에通度 海印 兩寺를叅拜하엿스나
0054_0028_b_20L佛殿僧寮의模範으로 짜여잇기는 當寺로一指를 屈
0054_0028_b_21L할수밧게업다하엿다。
0054_0028_b_22L三
0054_0028_b_23L案內員을向하야 三十年前까지는 貴寺이建築稠
0054_0028_b_24L密이 비가오드래도道塲一周에는 兩具準備가업섯다
0054_0028_b_25L는대 只今으로볼것가트면 조금비인곳이間間잇는
0054_0028_b_26L듯함니다。예-그것은 中年에一大修繕을加할적에
0054_0028_b_27L日後不虞의變이잇슬것가트면 連簷接屋이도리혀 걱
0054_0028_b_28L정거리라는觀念下에 不緊한집들은 多數毀撤한까
0054_0028_b_29L닭임니다。그리고 西쪽한편으로는 年前火變을격
0054_0028_b_30L근後 아즉再建을못하여서 恒常經營中에잇담니다
0054_0028_b_31L함으로 結果를보기까지는 한쪽이허성한듯한생각
0054_0028_b_32L이 끈어지지안습니다한다。거게서는 바로華嚴殿
0054_0028_b_33L을건너가서 各種經板을拜觀하엿다。學人時代에 無
0054_0028_b_34L用集一卷式을박혀가든일이 其然未然인듯三十年光
0054_0028_b_35L陰도 그리갓갑다고는할수업다。溪流를끼고도라 普
0054_0028_b_36L照國師의手植香樹 附近에到着하엿다。國師가 이
0054_0028_b_37L香樹를슴으시면서「此樹與吾同死生」이라하섯다는
0054_0028_b_38L傳說이잇는데 國師涅槃當時에枯死됨으로부터 于
0054_0028_b_39L今七百餘年을 저모양으로서서잇다한다。枝條한개
-
0054_0029_a_01L가업고 다만白色을呈하는 數十丈의香木이 멀리
0054_0029_a_02L바라보면 電幹木과類似하다기도할듯하다。거게서
0054_0029_a_03L一柱門을바른편으로끼고 諸祖師의竪碑處에드러섯
0054_0029_a_04L다。當寺近代事業으로 浮休 默庵 斗月 奇峯 幻
0054_0029_a_05L海 霽雲 离峰 龍雲 碧潭等九位高僧의行狀을記
0054_0029_a_06L錄한碑를 죄-다藍浦石을輸入하야 宏壯하게樹立
0054_0029_a_07L하엿다。다른곳은寺蹟碑一座가업는寺院이 車載斗
0054_0029_a_08L量인데 當寺는諸祖師의德行까지 永遠토록紀念하
0054_0029_a_09L게되는 偉大事業을樹立케됨은 그누가놀래지아니
0054_0029_a_10L하랴。
0054_0029_a_11L 道塲을一週하고는 다시宿所로도라와서 當寺의
0054_0029_a_12L位置沿革等을略抄하니曰
0054_0029_a_13L 當寺는 朝鮮南端順天西六十里曹溪山中에位하니
0054_0029_a_14L山脉은即小白山系로 德裕 蘆嶺을經하야 그東一
0054_0029_a_15L支가潭陽秋月山 光州無等山 長興天冠山 綾州中
0054_0029_a_16L條山 寶城馬峙山이되야 得粮灣에이르러止하고 다
0054_0029_a_17L시中條山으로부터 馬峙에未及하야 그-東北의一
0054_0029_a_18L支가 樂安金華山을經하야 蜿蜒起伏의勢로 本曹
0054_0029_a_19L溪山을成하니 海㧞二千九百四十八尺이오 面積은
0054_0029_a_20L一千五百六十町一反三畝步를有하엿스며 東南北三
0054_0029_a_21L面으로는 連峯이重疊되고 오즉西쪽으로 洞天이
0054_0029_a_22L豁開하엿다。當地에新羅高僧慧璘이 小庵을開創하
0054_0029_a_23L고 山名은松廣이라 寺號는吉祥이라하엿든바 高
0054_0029_a_24L麗仁廟朝에至하야 釋熙大師가 大刹을經營코저 材
0054_0029_a_25L木을鳩聚하고 良工을招集하야 着手未幾에 不幸
0054_0029_a_26L히逝世함에 寺宇는百間에지내지못하고 居僧은겨
0054_0029_a_27L우三四十에達하엿다한다。其後 五十餘年을經하야
0054_0029_a_28L普照國師ㅣ公山에崛起함에 定慧社額을揭한居祖寺
0054_0029_a_29L는 人衆地狹하야 容衆이甚難한지라 上足守愚를
0054_0029_a_30L江南으로派遣하야 安禪處를廣求하엿다。愚師ㅣ此
0054_0029_a_31L山에到着함애 境勝地肥하고 泉甘林茂하야 結社
0054_0029_a_32L處가適當함을覺悟하고 距今七百三十一年前 即明
0054_0029_a_33L宗二十七年丁巳에天眞、廓照二人으로더부러 大刹
0054_0029_a_34L을經始하야 不眠不休의功績으로 九個星霜을經하
0054_0029_a_35L야 熙宗元年己丑에竣工하니 金碧이炳煥하고 妙
0054_0029_a_36L像이尊嚴한지라 先是에 普照國師는 神宗元年戊
0054_0029_a_37L午春을卜하야 公山으로부터 禪衆을領率하고 智
0054_0029_a_38L異山、上無住庵에이르러 掛搭을하섯다가 同三年
0054_0029_a_39L庚申에 비롯오當寺에到着하야 定慧雙修의素志를
0054_0029_a_40L實行하니 四方學者ㅣ道塲에雲集하야 道風이再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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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29_b_01L되고 佛日이復明한지라 熙宗이此를嘉聞하시고 山
0054_0029_b_02L名은曹溪 (國師ㅣ六祖壇經으로師를爲함에依홈) 라
0054_0029_b_03L社號는修禪이라 御筆로特褒하시고 寺名을松廣이
0054_0029_b_04L라함은 山의舊號를仍用하니 此가慧璘開山後第一
0054_0029_b_05L創이라한다。
0054_0029_b_06L 其後熙宗六年庚午歲에 國師入寂하시고 高足慧
0054_0029_b_07L諶이後를이어開堂하니 學者ㅣ雲奔에 社宇ㅣ甚狹
0054_0029_b_08L한지라 翌年辛未에 康宗이登極하자 有司에게當
0054_0029_b_09L寺增搆를命하시고 中使를遣하야 建築을監督하섯
0054_0029_b_10L나니 此가當寺의第二創이되엿스며
0054_0029_b_11L 다시 李太祖四年乙亥에 高峯和尙이 慶尙道로
0054_0029_b_12L부터 南方을遊歷하다가 樂安郡金薪里라는旅店에
0054_0029_b_13L서 一夜宿泊을하게되엿다。夜夢에 一大梵刹의景
0054_0029_b_14L槪絶勝함을보왓는대 翌日에偶然히 當寺에드러와
0054_0029_b_15L서 徘徊四顧한즉 前夜夢境과 毫釐의差가업는지
0054_0029_b_16L라 師ㅣ慨然히着手하면서 我의私力으로 獨辦不
0054_0029_b_17L能이라하고 定宗元年己卯秋에 詣京伏奏曰 臣僧
0054_0029_b_18L이願을세워 先師普照 普濟等諸祖道塲을重創코저
0054_0029_b_19L하옵나이다。上이優答하시고 翌年庚辰七月에王旨
0054_0029_b_20L로써 書雲觀에命하야 當寺를再興할새 雲庇、尙濟
0054_0029_b_21L等一二十餘人을召集하야 長短濶狹을 前과差異업게
0054_0029_b_22L하고 佛殿僧寮를一新重建하며 다시世宗二年庚子
0054_0029_b_23L에 中印禪師ㅣ住持에任함으로부터 高峯의未盡한
0054_0029_b_24L志願을續하야 門徒二十餘名으로 寺宇를增築하고
0054_0029_b_25L同十年戊申에이르러訖工하니 高峯、中印兩師의重
0054_0029_b_26L建을並하야 當寺의第三創이라하며
0054_0029_b_27L 其後百餘年을經한 丁酉年間에火亂을遭하야 全
0054_0029_b_28L寺가刼灰塲을成함애 時住持應禪和尙이 宣祖王三
0054_0029_b_29L十四年辛丑春으로始하야 臨鏡堂 普照庵 天子庵
0054_0029_b_30L等을次第로重建하나 僧殘寺敗한其時狀態로는 修
0054_0029_b_31L補의力이不及한지라 光海主元年己酉秋에이르러 智
0054_0029_b_32L異山華嚴寺浮休宗主를奉邀함에 禪師는上足碧巖等
0054_0029_b_33L四百餘名을董率하고 惠然來建하니 寺宇一新에 山
0054_0029_b_34L水增光이라 應禪、浮休兩師의重建으로 當寺第四
0054_0029_b_35L創이되얏스며
0054_0029_b_36L 다시憲宗八年壬寅三月에至하야 倐然火起로 道
0054_0029_b_37L塲西半部即二千一百五十二間이 또刼灰로化함에 奇
0054_0029_b_38L峯、龍雲兩師가 事由를禮曹에呈하야 勸善文과空
0054_0029_b_39L名帖七百餘張을得하야 煥然重創하니 現今冥府殿
0054_0029_b_40L以下寺宇는 모다그때重建한者이라 此로써當寺의
-
0054_0030_a_01L第五創이되엿고
0054_0030_a_02L 距今六年前大正十一年度에 住持雪月和尙이 寺
0054_0030_a_03L宇重新을倡謀하야 森林伐採願을當局에提出하엿스
0054_0030_a_04L나 任期滿了로써 願을畢하지못하엿고 現住持栗
0054_0030_a_05L庵和尙이 繼續斡旋한結果 翌年癸卯五月에認可를
0054_0030_a_06L得하야 材木或은製炭으로 數萬圓을收入하야 重
0054_0030_a_07L建或은修繕하며 必要인것은增建도하고 不必要한
0054_0030_a_08L것은毀撤도하며 飜瓦、築階、佛事等을 次第進行
0054_0030_a_09L하야 今日輪奐의美를畢露케하니 此가當寺第六創
0054_0030_a_10L이되엿다한다。
0054_0030_a_11L 沿革의顚末은이에마치고 當寺의宗統이 어찌나
0054_0030_a_12L된것을 적어볼까한다。新羅慧璘禪師가 吉祥寺를
0054_0030_a_13L剏하고 華嚴宗旨를 闡揚하엿스나 普照國師가占
0054_0030_a_14L有한以後로는 그만禪風에薰陶되야 그宗統을失하
0054_0030_a_15L엿다。普照國師는九山一派로 即江陵郡闍崛山梵日
0054_0030_a_16L國師의宗統을承하야 禪風이大振함에 國家의待遇
0054_0030_a_17L가特殊하고 士庶의歸依가輻輳할뿐더러 普照以下
0054_0030_a_18L에眞覺 淸眞 眞明 圓悟 圓鑑 慈靜 慈覺 湛
0054_0030_a_19L堂 慧鑑 慈圓 慧覺 覺眞 淨慧 弘眞 幻庵等
0054_0030_a_20L十五國師가繼出되고 其外에懶翁 無學兩大王師가
0054_0030_a_21L勅旨를奉하야 來住하엿스니 此를曹溪宗全盛時代
0054_0030_a_22L라할수잇다。그리다가 浮休禪師가重建의役을마치
0054_0030_a_23L고 智異山으로還錫할時 門徒若干名을命留하엿는
0054_0030_a_24L대 其後로는浮休法派가 漸次牛耳를執하게되자 曹
0054_0030_a_25L溪宗徒는 또系統을失하고 休派에게薰和하엿슬뿐
0054_0030_a_26L이며 休門으로부터 翠微 栢庵 無用 影海 楓
0054_0030_a_27L巖等高僧碩德이輩出하엿스며 楓巖의後에 十八門
0054_0030_a_28L徒가星羅하엿스나 現存者는即維岳 默庵 霽雲 碧
0054_0030_a_29L潭 友溪 斗月等六大門庭이 團欒集住하야 臨濟
0054_0030_a_30L宗風을紹隆하엿다云이다。
0054_0030_a_31L 此를記抄하고는 조금懶症이생기여서 기지게를
0054_0030_a_32L한번켜노라니 林綺山氏가 드러오면서 여보-무
0054_0030_a_33L엇을쓰기만하오 나하고眞樂堂에올라가 散步나합
0054_0030_a_34L시다한다。예-좃습니다。그만뒤를따라그臺를두번
0054_0030_a_35L째올라가서는 限三十分동안이나 問答이잇섯든것
0054_0030_a_36L이다。
0054_0030_a_37L 여보시오 저-西便으로 이曹溪山의水口를 멀
0054_0030_a_38L리막아잇는크다란山은 名稱이무엇인가요 그는同
0054_0030_a_39L福維摩山입니다。그런데當寺에무슨傳說이나업는가
0054_0030_a_40L요? 別것이업습지요 記者가드른대로몃가지이약
-
0054_0030_b_01L이를할터이니 그-眞假이나評定을하여줄까요-
0054_0030_b_02L一、最初松廣山이라일홈을지은것은 十八國師가
0054_0030_b_03L廣度衆生하리라는未來를보와 豫定한것이니 松
0054_0030_b_04L字를十八公으로 解釋된까닭이라 그런데 十六
0054_0030_b_05L國師가나고 아즉두분이아니낫다하며 或은懶翁
0054_0030_b_06L無學兩王師가來住하엿스니 그數爻를채웟다기도
0054_0030_b_07L하고
0054_0030_b_08L二、湛堂國師는 元나라順帝의太子인데 慈覺國
0054_0030_b_09L師가다리고나을적에 鴨綠江에到着하야 배에오
0054_0030_b_10L르니 太子의福이殊勝하야 배가여러번 가라안
0054_0030_b_11L고저함에 다시下陸하야 보선을벗겨서 머리에
0054_0030_b_12L三日을이게하야 减福을시킨結果 乘船의障이업
0054_0030_b_13L다하며 또入定한지三日만에 見性을하엿다하야
0054_0030_b_14L或은三日國師라名稱하며 三日庵과三日水도 그
0054_0030_b_15L때로부터일홈이잇다하며
0054_0030_b_16L一、當寺開山以前에 賊類가雄據한것을 普照國
0054_0030_b_17L師가此를逐黜하고 졀을지엇는데 當寺는賊類의
0054_0030_b_18L行爲를 조곰하여야 防災가된다고 一年一次式
0054_0030_b_19L寺有畓에나아가서 小作人에게此를豫通하고 나
0054_0030_b_20L락몃단식을 暗夜秘密裡에 비여오는데 中年까
0054_0030_b_21L지 그러한風俗이잇섯다는말임니다。
0054_0030_b_22L 그는다 外界에風聞이지요 當寺는그러한말이업
0054_0030_b_23L습니다。다만三日庵 三日水等은 그를듯도하지요
0054_0030_b_24L또當寺가最初賊窟이라함은 이런말이訛傳된듯도합
0054_0030_b_25L니다。最初慧璘禪師가開山하고 그門徒가절을직혀
0054_0030_b_26L오는대 意外에普照國師가 禪衆을領率하고 鵲巢
0054_0030_b_27L鳩居의格으로 占領을遂行하니 누가조타할理가잇
0054_0030_b_28L슴잇가 그만反抗을하자니 自然的是非가되엿든갑
0054_0030_b_29L듸다。그러나 寡不敵衆이고 또勢力에눌리게되니
0054_0030_b_30L在來衆은그꼴을아니보겟다고 他山으로移去도하며
0054_0030_b_31L처저잇는사람은 하는수업시 禪宗에薰和되고만것
0054_0030_b_32L이며 또나락을비여왓다함은 近古에小作人이頑强
0054_0030_b_33L하여서 小作料를잘바치지안는까닭에 其時靑年들
0054_0030_b_34L은 此를憤慨하야 寺有地에나아가 半分式을비여
0054_0030_b_35L온일이잇담니다。
0054_0030_b_36L 그런데 오늘은山內末寺이나 叅拜하여볼까요-
0054_0030_b_37L東庵、普照兩庵은年前兵火에燒燼되고 其外는別로
0054_0030_b_38L볼것이업습니다。그러면天子庵香樹나拜觀하겟습니
0054_0030_b_39L다。그는한번봄즉하지요 그러나오늘은틀렷습니다
0054_0030_b_40L東便山中으로 十里나올라가야할터이닛까- 明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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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1_a_01L로미루지요 昨日臺上臺下에잇는 佛殿僧寮를다-
0054_0031_a_02L보왓지요마는 그名稱은죄다이젓슴니다。다시드를
0054_0031_a_03L수가잇슬까요 그는어려울것이업습니다하고 한손
0054_0031_a_04L을드러一一히指示한다。저-曹溪門을드러와서 개
0054_0031_a_05L울을걸처지은것은 羽化閣이고 그안으로잇는것은
0054_0031_a_06L天王門 그안으로解脫門 그안으로大藏殿 그안으
0054_0031_a_07L로泛鐘樓 그안으로法王門 法王門드러서는 大雄
0054_0031_a_08L殿이아님잇가 또天王門東便으로잇는것은枕溪樓 그
0054_0031_a_09L樓에서北便으로단겨잇는것은 法性寮인데 只今講
0054_0031_a_10L院입니다。法性寮北으로 佛閣두채가나라니잇스니
0054_0031_a_11L東은靈山殿 西는藥師殿입니다。靈山殿을連簷한집
0054_0031_a_12L은 海雲 이고 鐘閣과法王門을案對로한집은 龍
0054_0031_a_13L華堂인데 只今敎務所와應接室로使用하는곳이요 그
0054_0031_a_14L집우에側面으로보이는곳은行解堂이고 大雄殿을西
0054_0031_a_15L으로案한것은 冥府殿입니다。또天王門西으로잇는
0054_0031_a_16L집은六鑑亭이고 그안으로臨鏡堂이잇고 臨鏡堂西
0054_0031_a_17L편으로 크게보이는丁字閣은 大便所이고 그西쪽
0054_0031_a_18L으로잇는것은旅舘입니다。다시鐘閣西便으로잇는것
0054_0031_a_19L은普濟堂 그안으로相對한집은凝香閣그 엽흐로는
0054_0031_a_20L觀音殿 그우으로聖壽殿 그엽흐로는文殊殿입니다
0054_0031_a_21L臺下建物은아마그만하면다되엿지요 또臺上各殿도
0054_0031_a_22L적어보럅잇가 大雄殿뒤正面으로 說法殿이고 그
0054_0031_a_23L東으로白雪堂 그東으로祖師殿 그東으로遮眼堂 그
0054_0031_a_24L東으로國師殿 그東으로眞影堂이고 다시說法殿西
0054_0031_a_25L으로羅漢殿 그西으로靑雲堂 그西으로下舍堂 그
0054_0031_a_26L우으로上舍堂 그우으로三角殿 그엽흐로沐浴閣입
0054_0031_a_27L니다。그만하면臺上臺下가 죄다記錄이된듯함니다
0054_0031_a_28L예-넘어勤念하섯슴니다。그만나려갑시다。宿所로
0054_0031_a_29L도라와서또一夜를經過하고 翌朝는金得善과崔鳳儀
0054_0031_a_30L를帶同하고 天子庵拜觀의길을떠낫다。東으로華嚴
0054_0031_a_31L殿을 바른편으로끼고 學生運動塲을드려다보면서
0054_0031_a_32L五里假量의嶺上에을라서니 南으로筏橋四十五里 東
0054_0031_a_33L으로天子庵五里라 씨여잇는指道標가 고개를번쩍
0054_0031_a_34L들고 人事를하는듯한다。東으로山허리를끼고 몃
0054_0031_a_35L굽이나도라 該庵에當到하니 家屋은舊時代에修繕
0054_0031_a_36L한것이라 一覽할價値가업는듯하고 그뒤로잇는香
0054_0031_a_37L樹二株는 世界에다시볼수업는國寶이다。傳說에慈
0054_0031_a_38L覺、湛堂두분國師가 집행이한개式을 슴어둔것이
0054_0031_a_39L라는데 우리아람으로는두아람以上이되고 꼬불꼬
0054_0031_a_40L불트러올라가서 數十丈이되여보이는 두株香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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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1_b_01L우의로일산을 밧친듯하엿는대 年前에家屋一棟을
0054_0031_b_02L넘어갓갑게세운까닭에 조그마한가지하나히 烟氣
0054_0031_b_03L에쏘여죽엇슴으로 그집을毀撤하엿다한다。金君이
0054_0031_b_04L先生님 이것보셔요 손을대일만한데 왼나무全軆
0054_0031_b_05L가흔들립니다그려 여보迷信의소리그만두오 여간
0054_0031_b_06L손을대인다고뭣 아람도리남기흔들리겟소 아마바
0054_0031_b_07L람이부는게지 지금무슨바람이잇슴잇가 한번試驗
0054_0031_b_08L을하여보셔요한다。記者도疑信相半으로。어데試驗
0054_0031_b_09L하여보자하고 右手를드러한번문지르니 果然香樹
0054_0031_b_10L가가지마다흔들흔들한다。이것도不思議의한記錄이
0054_0031_b_11L라하고 主人의게作別한後 그만도라섯다。樓閣下
0054_0031_b_12L로조금나려오다가 鳳儀君을對하야 明日이秋夕即
0054_0031_b_13L嘉緋節이아닌가 筏橋가예서四十里라 旣是覲親을
0054_0031_b_14L할테이면 오늘로發程하여서 父母兄弟의깁분얼골
0054_0031_b_15L로 名日을가치쉬고 限三日後仙巖寺로차자오게「一
0054_0031_b_16L年明月今宵多」로 오늘가치조흔佳節에 故鄕을차
0054_0031_b_17L자가서 父母兄弟로더부러 倚閭看雲之懷를잇게하
0054_0031_b_18L고 一席에깃버하면 孟氏三樂에第一됨이그아닌가
0054_0031_b_19L- 우리가튼사람은 父母兄弟俱沒하고 思家步月
0054_0031_b_20L할곳도업시되니 자네가튼時代를 얼마나부러운줄
0054_0031_b_21L모르겟네 父母님께空手로가는法이아니라 내가돈
0054_0031_b_22L양을補助할테니 부대失期말고잘단여오게 이와가
0054_0031_b_23L치또한번作別한後 金君과落謝塵을이약이하면서 큰
0054_0031_b_24L절로도타왓다。이날은佛敎報에對한視務를了畢하고
0054_0031_b_25L夕供後심심푸리로 羽化閣을라섯든것이다。偶然히
0054_0031_b_26L懸板을치어다보느라니 順天現代文章金孝燦氏의 四
0054_0031_b_27L律一首가붓허잇다
0054_0031_b_28L「琳宮貝葉午陰遲 坐說南宗雨法時 心鏡涵虛三
0054_0031_b_29L日水 春光不老兩笻枝 吐魚應器留陳跡 寶舃靈
0054_0031_b_30L牙證後期 寄語人間善男女 樂邦捨此更何之」
0054_0031_b_31L 어렷슬때字모듬하든習慣이闖發함에 識法者懼
0054_0031_b_32L는생각지도안코 되나안되나次韻을하여보왓다。
0054_0031_b_33L「登臨緩步夕陽遲 遙憶芳年過此時 百道流泉鳴
0054_0031_b_34L有曲 一株香樹凈無枝 滿樓鐘響懷孫順 溢閣經
0054_0031_b_35L藏待子期 境是人非秋色暮 遠望塵界獨憐之」
0054_0031_b_36L 이것을글이라고 獨子와가치사랑을못익여서 입
0054_0031_b_37L으로중얼중얼宿所로도라오니 京城理事會에出張하
0054_0031_b_38L섯든 當寺講主金海隱氏가 薄暮에還錫하야 龍華堂
0054_0031_b_39L까지辱臨하엿다。彼此반가히人事한後 久阻의懷를
0054_0031_b_40L잠관펴고 一晝夜이나격근、汽車、自働車의餘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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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2_a_01L休息하러 도라가게한後 翌朝京城이약이를仔細히
0054_0032_a_02L듯고 同講伯의內外書籍을만히모와둔 白雪堂에드
0054_0032_a_03L러가서 大槪를閱覽하고 小使一人에게 行李를지
0054_0032_a_04L어 十五日午後四點頃에 仙巖寺로到着하엿다。
0054_0032_a_05L投稿歡迎 佛敎决疑
0054_0032_a_06L第三十七囘問答 佛像의貌樣差別을뭇슴니다
0054_0032_a_07L問者 慶南陜川 一信佛者
0054_0032_a_08L 先生님 佛像의貌樣이어떠면 毘盧ㆍ釋迦ㆍ阿彌陀ㆍ藥師ㆍ觀音ㆍ地藏ㆍ文殊ㆍ普賢等差異가잇스며畵像은頭邊에圓形이잇스니 모-다
0054_0032_a_09L무삼理致임닛가 佛像緣起를아울러詳示하시기를바람니다。여러곳얘무러보아도 各說異端을하니 眞假를알수업슴니다。또듯사
0054_0032_a_10L오니釋迦牟尼께서는 三十二相과八十種好를具足하섯다는데 金剛杵雜志表面에잇는寫眞이 釋迦如來의眞像이라하오니 事實님닛
0054_0032_a_11L가? 細細히解說하야주옵소서
0054_0032_a_12L退耕 相老 解答
0054_0032_a_13L佛像의差別말슴님닛가 그것은적어도얼마나硏究
0054_0032_a_14L를싸아야함니다。日本人이著作한「佛像硏究」라는
0054_0032_a_15L冊子를얻어보시면 仔細히알것임니다마는 爲先에
0054_0032_a_16L궁금할터이니 大略쉽게對答하오리다。
0054_0032_a_17L 塑像中에 花冠을쓰신이는菩薩像이오 螺髻와肉
0054_0032_a_18L髻가잇는이는佛像인데 毘盧遮那佛은兩手를胸前에
0054_0032_a_19L모아서 左手의長指無名指小指는屈하고 食指는竪
0054_0032_a_20L立하며 右手로는左手를덥혀서 웁여쥐엿슴니다。
0054_0032_a_21L손을그러케한것은 일홈이歸依三寶印이라고하는것
0054_0032_a_22L이며 釋迦牟尼佛은 左手를跏趺坐우 (立像이면胸
0054_0032_a_23L前) 에노아두고 右手를下埀하엿스며 阿彌陀佛은
0054_0032_a_24L左手를肩部에갓갑도록들어서 長指拇指를相捻 (俗
0054_0032_a_25L所謂坎中連) 하고 右手는胸部에當하게坎中連을하
0054_0032_a_26L엿스니 그것은일홈이解脫苦惱印이며 藥師如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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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2_b_01L左手의掌中에香盒가튼것을가젓스니 그것은藥담은
0054_0032_b_02L그릇을表示한것이오 觀世音菩薩은 손에나或은들
0054_0032_b_03L고잇는蓮花우에 軍持(甁)가잇스니 그것은甘露水甁
0054_0032_b_04L이라하고 花冠의頂上에佛像이잇스니 그는觀世音菩
0054_0032_b_05L薩의本所師인 千光王淨住如來라고함니다。또觀世
0054_0032_b_06L音菩薩과꼭갓고도 甘露水甁과願佛이업든지 或은
0054_0032_b_07L願佛잇는位置에甘露水甁으로代身하엿든지하면 그
0054_0032_b_08L는大勢至菩薩이고 地藏菩薩은花冠을쓰지안코 沙
0054_0032_b_09L門相으로나或幞巾만을쓰고 一手에六環錫杖을집고
0054_0032_b_10L一手에는掌上明珠가잇스며 文殊菩薩은多分이獅子
0054_0032_b_11L를타고 普賢菩薩은多分이白象을탓스나 或文殊菩
0054_0032_b_12L薩은如意를들고 普賢菩薩은蓮花를들기도하엿슴니
0054_0032_b_13L다。以外에여러가지差別이잇지마는 長遑히枚擧할
0054_0032_b_14L수업스며 또는朝鮮에서流行하는方式인즉 日本과
0054_0032_b_15L는多少의差異도잇슬것임니다。
0054_0032_b_16L 佛像緣起로말을하면 釋尊이在世하섯슬때에 母親
0054_0032_b_17L을爲하야 忉利天에을라가세서 三月間을說法하시
0054_0032_b_18L고 人間으로도라오시지아니함으로 優闐國王이思
0054_0032_b_19L慕의情을익이지못하야 栴檀香으로釋尊의像을造成
0054_0032_b_20L하엿스니 이것이佛像의緣起임니다。
0054_0032_b_21L 金剛杵表面에잇는寫眞이요 꼭釋尊의眞像임니다
0054_0032_b_22L부텨님은法身ㆍ報身ㆍ化身이잇슴니다。法身은佛과
0054_0032_b_23L佛사이에도서로볼수업는터인즉 相好를말할수도업
0054_0032_b_24L지마는 報身에는十華藏微塵數大人相이잇고 化身에
0054_0032_b_25L는三十二相ㆍ八十種好가잇슴니다。그러치마는 釋
0054_0032_b_26L尊이淨飯王宮에降誕하실때에는 化身中에도劣應身
0054_0032_b_27L即衆生身으로出現하사 示同衆生하섯스니 이寫眞
0054_0032_b_28L은即淨飯王宮에太子로게실때의眞像임니다。그럼으
0054_0032_b_29L로조곰도疑心할것업는眞像이지오 보는者의境遇를
0054_0032_b_30L따라서 다各各보는것이原則인즉 衆生으로서볼때
0054_0032_b_31L에는꼭그럴것입니다。三十二相ㆍ八十種好에 紫磨
0054_0032_b_32L金色相으로는보는것은 적어도化身成佛로보는것임
0054_0032_b_33L니다。
0054_0032_b_34L 佛菩薩의게는 常光ㆍ放光두가지가잇슴니다。放
0054_0032_b_35L光이라는것은 眉間으로나面門으로나 어느一處에
0054_0032_b_36L光明이出하야 世界를照耀하는것이오 常光이라함
0054_0032_b_37L은 그身首의後에圓光이잇는것이니 이光明은언제
0054_0032_b_38L든지 恒常一尋이湧出하야圓相으로보이는것이니「身
0054_0032_b_39L佩圓光」 이니「項佩圓光」 이니하는古人들의 文句
0054_0032_b_40L도잇지마는 佛畵하는畵員들은 그것을일러서「身
0054_0032_b_41L佩」 니「頭佩」 니함니다。그것은 覺이圓滿하야一
0054_0032_b_42L切의漏染이업는表示임으로 畵像에만잇는것이아니
0054_0032_b_43L라 塑像에도그것이잇게造成한것도만슴니다。그래
0054_0032_b_44L서塑像의背後에잇는것은 多分히光背라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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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3_a_01L旅中寸感
0054_0033_a_02L周東元
0054_0033_a_03L一、未定의世界
0054_0033_a_04L싸늘한 밤긔운에 깨어보니 車안은 모도들잔다。괴로운모양으로-만또로배에서 알엣도리를걸
0054_0033_a_05L처덥고 혹은 엷은레인코트에다가 두팔을쑤셔넣고 車가흔드는대로 머리와몸을 흔들리우며 아쉰
0054_0033_a_06L잠을 자고있다。嚴冬깊은밤에 鐘路쓰레기통앞에서 가마니쪽을의지로 모진바람을막아가며 사나운
0054_0033_a_07L꿈을보는 거지떼들과같이。나도 레인코트로 억개등성이를갈이고 일어나앉었다 찬긔운이 스르르
0054_0033_a_08L돈다。쓸쓸하고나! 누가 이약기나 좀 해주었으면 싶다。엇개가 옷삭움크러진다 두손을 코트
0054_0033_a_09L퍼켈에 꾹찔으고 졸리는듯 가물거리는 電燈을발아보며 나는 우둑허니 앉어있다。기침이콜록콜
0054_0033_a_10L록나온다。
0054_0033_a_11L 『웬셈인고? 내가 이게 웬일인고? 도무지 무슨까닭이냐? 편치도 몯한몸으로-』나는 나
0054_0033_a_12L의旅行에 對한 意義와態度를 새삼스럽게 알아본다。
0054_0033_a_13L 『오냐! 不遇의人生이다。내뜻아니▣간다。까닭몰으고 가는것이다! 내가 自得한興奮性도 없
0054_0033_a_14L이 스스로 作定한 計劃도없이 나는간다。무엇이 定한바있음이냐? 定法이 元來없는 娑婆의세
0054_0033_a_15L상에서。寒氣의感觸을밧으며 孤獨의寂寞을늣기며 車박휘가 끌르는대로 南으로南으로 실려가는것
0054_0033_a_16L만은 事實이다。잠코대같이 희미한 意識의안개속에서 人生은 얼음같은 찬事實에 놀래인다!이
0054_0033_a_17L것만이 實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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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3_b_01L잠이 설깨인 어떤손이 건드적 비트적하면서 기어나간다。어느때나 되었는지 은캄캄하다。
0054_0033_b_02L―――(京釜線中에서)
0054_0033_b_03L二、山菊香
0054_0033_b_04L山도山도 험한山에
0054_0033_b_05L고개고개 넘어오다
0054_0033_b_06L매말은 陰地판에
0054_0033_b_07L돌菊花 떼로피어
0054_0033_b_08L허위단심 넘는손을
0054_0033_b_09L쉬어가게 하려오。
0054_0033_b_10L
0054_0033_b_11L파리한 이모양이
0054_0033_b_12L눈에차지 안코요
0054_0033_b_13L잔약한 이목슴이
0054_0033_b_14L얼마되진 안허도
0054_0033_b_15L매섭은 香氣로써
0054_0033_b_16L님을담쑥 싸려오
0054_0033_b_17L―――(靑岩寺가는길에)―――
0054_0033_b_18L三、大道는至純
0054_0033_b_19L靑岩寺서 海印을가려면 木通嶺을 넘게된다 보기에는 얼마되지안흐나 쉽게보지몯할嶺이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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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4_a_01L에서 偶然히 多幸하게 指路人을얻다。山中에사는 젊은상투쟁이다。山中사람으로는 하이카라인양
0054_0034_a_02L하야 명주안바틴 옥양목겹두루막이에 통냥갓을가볍게얹었으나 고무신에 뒷굼치터진 양말이 삽
0054_0034_a_03L살개 쥐둥이처럼 山中샛님을 딸아가며짓는다。하여간 그는 나의게는 고마운指導者이다。우리는
0054_0034_a_04L姓도몰은다。이름은더구나몰은다。다만 나의 木通嶺넘는 指導者의役割만은 充分히 履行하였다。
0054_0034_a_05L그는 재밑에닥치자 『이재 고약한거료 이재를넘을락쿠면 한땀내야 할거료-』하며 단단히 알어
0054_0034_a_06L차려라하는듯이 注意를식히는모양이더니 스스로 두루막이와 저고리를벗어 模範을보인다。나는속
0054_0034_a_07L으로 비웃었다。『이만한고개쯤이야 무엇을 그다지-』하고 鼻笑하였다。그러나 아-果然 얼
0054_0034_a_08L마아니하야 나는숨이차고 땀이흘음에 놀래었다。絶頂은 아즉 보이지도안는다。나는 어느새 外
0054_0034_a_09L套를벗었다 上衣를벗었다 엷은 속적삼하나로 살을갈일뿐으로 모든것을벗어버렸다。心臟은 찌어
0054_0034_a_10L질듯이 헐덕으리고 땀은 소내기처럼 쏘다진다 指路人은 앞을서서 핑핑달아난다。
0054_0034_a_11L 『大道는 至純』이라고 나는 불으짓었다。
0054_0034_a_12L 참으로 大道를위하야는 모든 雜것을 떨어바려야된다 外的으로 모든 너절한것을 버려라。粉
0054_0034_a_13L도바리고 비누도 던저라。넥타이도 끌으고 外套도벗어라-오즉 眞實赤裸한 알몸동이로 나서
0054_0034_a_14L라! 內的으로 모든 邪念을 버리라 미워하는마음 疑猜하는마음을 없에라。富貴心、名譽心、勝
0054_0034_a_15L利心까지도 다-버리라-오즉 淸淨無垢한 虛心空念으로 나서라! 物的으로 純化하고 心的으
0054_0034_a_16L로 淨化하고서라야 至道의 極秘에 極秘의 奧義에 接觸할수 있으리라 不淨한成心이 가슴에차
0054_0034_a_17L고不純한 雜陋가 몸에얽히고서야 무엇을 더感受할수있으랴! 한몸으로 두지개질수없음과 같
0054_0034_a_18L이 한손으로 두愛人을잡을수없고 한가슴에 두님을 품을수없다。오- 大道를 求하는자여 먼저
0054_0034_a_19L純化、淨化할지어다。다음으로 希望의눈알에 精進의手足을 갗우면 理想의意地에 到達하기 거의
0054_0034_a_20L틀림이없으리라。여긔에 하나더 必要되는것은 指導者다。指導를 딸아서 欲望의目標를 向하야 不
-
0054_0034_b_01L斷히 精進하고도 아니될것이있으랴 여긔에 三者를 有機的으로 얽어매어 根柢的生命이 되는것
0054_0034_b_02L은 信仰이다 目標에對한信仰 指導에對한信仰 精進으로因하야 自力으로 得成하겟다는 信仰은三
0054_0034_b_03L者를 緣結하야 同一한 生血管의 우에서 呼吸하게하야 大道得成의 果位에 達케하는 終始一貫
0054_0034_b_04L한 生命이라할것이다。
0054_0034_b_05L 木通嶺넘에는 吾人의目標인 海印이있다。이에對한 得達의欲望、이欲望으로붙어 생기는精進、이
0054_0034_b_06L를指示하는指導者―이三者를 根柢的으로 緣結하고 生命的으로 流動하는 信仰이 吾人의要件이
0054_0034_b_07L다。이런데서 吾人은生活한다! 니는 이렇게 木通嶺을넘어 海印을찾어간다。
0054_0034_b_08L―――(十月二十五日海印寺가는길에)―――
0054_0034_b_09L四、海印寺
0054_0034_b_10L十里나 長林의 蒼松을 헻이고
0054_0034_b_11L重重疊疊한 白石우흘 흘러도
0054_0034_b_12L丹楓에 물들어 붉게흘으는
0054_0034_b_13L紅流洞 어구를 醉한듯 돌아들면
0054_0034_b_14L꺽지고 거륵한山이 伽倻山이라하데。
0054_0034_b_15L
0054_0034_b_16L九光樓 올라서면
0054_0034_b_17L氣宇훨쩍 열리는것
0054_0034_b_18L大海中에 太陽이 붉근솟음 같은것이
0054_0034_b_19L千古에 特立한 大寂光殿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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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5_a_01L이중에 뉘사는고 마음 시원하리니
0054_0035_a_02L놀찐대 이사람과 같이 놀고싶어라
0054_0035_a_03L八萬藏經 긋득이 香象에 실어
0054_0035_a_04L天地間에 너급놓고 큰소리 질러
0054_0035_a_05L光明을 등진자에 던저주고 싶노라。
0054_0035_a_06L―――(十月二十六日藏經을叅拜하고)―――
0054_0035_a_07L五、奉德寺鐘
0054_0035_a_08L鐘은울리자는것이어니
0054_0035_a_09L時를딸아 天下에알리자는것이어니
0054_0035_a_10L博物舘한옆에다 갇워둠은무슨뜻고
0054_0035_a_11L
0054_0035_a_12L鐘은울어 天下를깨우자함이니
0054_0035_a_13L깨어날줄 몰으는세상이라면
0054_0035_a_14L내혼자 울불은들 무엇하리오!
0054_0035_a_15L울어도 시원치못할 世上이라면
0054_0035_a_16L찰하리 獄中에들어 말아니하려오。
0054_0035_a_17L
0054_0035_a_18L사람들아 날더러 아니운다말고서
0054_0035_a_19L獄에가친 내얼골보고나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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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5_b_01L당신의祖上이 고아하든내몸이
0054_0035_b_02L이제는 博物舘구석에서 몬지만켜오
0054_0035_b_03L
0054_0035_b_04L녯일을말한들 당신들이듯겠오
0054_0035_b_05L千年두고 그려오는 이가슴만傷하오
0054_0035_b_06L흐느적느르적허는 당신들의그림재
0054_0035_b_07L그속에도 피가돌고 熱이붙느냐?
0054_0035_b_08L그림재가풀어줄 내恨이라면
0054_0035_b_09L썩은나무그늘에서 울어보겠다!
0054_0035_b_10L녯일을말한들 누가알아보리오
0054_0035_b_11L千年두고 그려오는 이가슴만터지오!
0054_0035_b_12L
0054_0035_b_13L언제나 오시려는고 녯님의魂魄이
0054_0035_b_14L끌는피 타는가슴에 이몸을녹일만큼
0054_0035_b_15L내울음 맘끝울려 天下를붓이도록
0054_0035_b_16L千百年 쌓인恨을ㆍ훨훨히풀어주실
0054_0035_b_17L거룩한 님의魂이 언제나오시려노!
0054_0035_b_18L―――(十月二十八日慶州博物舘에서)―――
0054_0035_b_19L六、鐘소리들리는가
0054_0035_b_20L千年을 더지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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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6_a_01L山도물도 변하리다
0054_0036_a_02L그러나 太陽을 地獄에 가둔다고
0054_0036_a_03L光明이야 변하릿가!
0054_0036_a_04L千數百年 녯鐘의 우는소리들리는가
0054_0036_a_05L十七萬戶 百萬人을 깨워일으키든 그소리
0054_0036_a_06L太平聖代 녯나라 新羅일을 전하는저소리
0054_0036_a_07L나즉히 웅장하게 깊숙한 기녹으로
0054_0036_a_08L석은새집웅 쓸어진 바람벽을넘어
0054_0036_a_09L줄음잡힌 늙은이의 조으는 눈섭을 흔들고
0054_0036_a_10L허술한 廢墟의 쑥대밭으로
0054_0036_a_11L꽃 몯찾는 벌이의 울음처럼
0054_0036_a_12L千年의 山을 넘고
0054_0036_a_13L萬年의 물을건너
0054_0036_a_14L또山을넘고 또물을건너
0054_0036_a_15L恨없이 흘러가네……………
0054_0036_a_16L七、芬皇寺에서
0054_0036_a_17L聖人도 이땅에신 몰으는가
0054_0036_a_18L알고도 몰으는체 하는가
0054_0036_a_19L거룩한님의뜻을 누가받아 傳하릿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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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6_b_01L녯날의 자최마자 찾을길없음니다!
0054_0036_b_02L
0054_0036_b_03L海東國 華嚴大聖 和諍國師碑基만이
0054_0036_b_04L풀밭에 눈물지고 말없이 눟었으니
0054_0036_b_05L芬皇寺남아있는절이 오즉이나하릿가
0054_0036_b_06L九層塔 九層塔하더니 三層겨우남았오。
0054_0036_b_07L
0054_0036_b_08L世上이 몰은다고 聖人이야 恨하릿가
0054_0036_b_09L가실길 도렷이 가심이 聖人인가함니다
0054_0036_b_10L문허진절터 시들은풀끝에 맻인이슬이
0054_0036_b_11L님의두고가신 뜻인줄만 앎니다。
0054_0036_b_12L八、皇龍寺址
0054_0036_b_13L수건으로 머리동인 農夫
0054_0036_b_14L늙은황소 멍에지워
0054_0036_b_15L사래긴밭을 한가로히 갈고있네。
0054_0036_b_16L
0054_0036_b_17L가마귀 두마리 날어와서
0054_0036_b_18L한마리는 마당같은 柱礎돌에앉고
0054_0036_b_19L한마리는 밭가는 황소등에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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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7_a_01L깍깍울더니 후르르 날아간다
0054_0037_a_02L
0054_0037_a_03L丈六金身 모시었든 큰法堂은 어데냐!
0054_0037_a_04L天下를 鎭壓하든 九層塔은 어데냐!
0054_0037_a_05L까막까치 날아들든 率居의老松은!
0054_0037_a_06L
0054_0037_a_07L보습끝에 패어난 기와조각 손에들고
0054_0037_a_08L밭가에 늘어놓인 柱礎웋에 앉으니
0054_0037_a_09L千年古事는 누게 물어알리오
0054_0037_a_10L노곤한 가을볕에 소의거름 느리다
0054_0037_a_11L九、雁鴨池
0054_0037_a_12L宮殿안에 蓮塘파고
0054_0037_a_13L蓮塘안에 宮殿짓고
0054_0037_a_14L阿房宮을 불어하랴
0054_0037_a_15L千葉같은 宮殿속에
0054_0037_a_16L洞庭湖를 불어하랴
0054_0037_a_17L十二峯은 巫山이라
0054_0037_a_18L十二峯에 다리놓고
0054_0037_a_19L千葉마다 배를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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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7_b_01L宮殿에서 蓮塘으로
0054_0037_b_02L蓮塘에서 宮殿으로
0054_0037_b_03L가을밤엔 달을따러
0054_0037_b_04L봄날이면 꽃을따러
0054_0037_b_05L달이지랴 꽃이지랴
0054_0037_b_06L꽃지면은 달이돋고
0054_0037_b_07L달지면은 꽃이핀다
0054_0037_b_08L蓮塘물에 얼음얼면
0054_0037_b_09L宮殿속에 들렴으나
0054_0037_b_10L宮殿속이 더우면은
0054_0037_b_11L蓮塘물에 들렴으나
0054_0037_b_12L花草밭에 雜새소리
0054_0037_b_13L바위밑에 조는사심
0054_0037_b_14L물속에서 헤는잉어
0054_0037_b_15L벗불으는 저기럭이
0054_0037_b_16L鴛鴦한쌍 물에뜨고
0054_0037_b_17L孔雀이는 춤을추네
0054_0037_b_18L해와달도 밝을시고
0054_0037_b_19L비바람도 順平하다。
0054_0037_b_20L膺廉郞의 부마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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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8_a_01L이宮殿에 모시었고
0054_0038_a_02L王範師傳 三益興도
0054_0038_a_03L이宮殿에 누리었네
0054_0038_a_04L千年社稷 넘어질제
0054_0038_a_05L敬順王의 슲은우름
0054_0038_a_06L高麗太祖 王建앞에
0054_0038_a_07L흘렀음도 이宮殿에
0054_0038_a_08L麻衣太子 억울한恨
0054_0038_a_09L父王前에 하소함도
0054_0038_a_10L이宮殿에 이蓮塘에
0054_0038_a_11L그눈물이 비가되고
0054_0038_a_12L그원한이 바람되어
0054_0038_a_13L十二巫山 문허다가
0054_0038_a_14L蓮塘물을 메워내고
0054_0038_a_15L千葉宮殿 헐어다가
0054_0038_a_16L안개같이 훝었고나
0054_0038_a_17L奇花瑤草 피든곧에
0054_0038_a_18L갈대꽃만 히였고나
0054_0038_a_19L鴛鴦孔雀 노든터에
0054_0038_a_20L고기낙는 아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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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8_b_01L十、神秘의心境(石窟庵)
0054_0038_b_02L머길에 지친몸을 어둔밤길을치워 기어코 佛國寺까지 끌고와서 재우기는 朝陽의石窟庵을화
0054_0038_b_03L하게 보려함이어니와 東海에 처음올으는 光明을 남먼저 맞으려함이 가만한企圖이었다。첫새
0054_0038_b_04L벽에깨어나니 그렇게도 밝든달은 구름속으로 숨어가버리고 솜같은안개가 山門을 잠가든다。그
0054_0038_b_05L래도 한번 가기로 한것이니 주저할心事도아니오 이렇게 가노라면 안개도 설마 거치겠지하는
0054_0038_b_06L保證몯할 希望을 마음속에그리며 잃어진 어머니를 찾어가는 어린羊의 마음으로 처음가는石窟
0054_0038_b_07L庵길을 指導없이 나섰다。吐含山南이라니 이고개를 넘어리라 東海가보이려면 저긔쯤되렸다 이
0054_0038_b_08L렇게 안개같이도 희미한 짐작을指導者처럼 믿고 절뚝으리는 다리를 자욱한안개속으로 끌어옴
0054_0038_b_09L기니 風致林愛護하자는 揭示板이 앙상한솔덤불틈에서 희뜩희뜩 낱을내놓는다。
0054_0038_b_10L 한모롱이를 돌아서면 촬촬촬물소리들리며 깊은골로 들어간다 이골을 헤어나기도 급하게 山
0054_0038_b_11L羊의뿌다귀처럼 굽으러진모롱이 코구멍을 꿜듯이 밧작닥아선다。이뿌다귀를 검어잡고 한모롱이
0054_0038_b_12L돌아서면 더깊은골작으로 또들어간다 안개는 더욱짙어 눈섭에 이슬방울 맺어주고 새벽바람은
0054_0038_b_13L不祥을預示하는듯 급하게 훌여간다。길웋는 萬丈이나되는지 길알에는 끝도아니뵈는―――아니 바
0054_0038_b_14L루 발밑도안보이는 구렁에서 무엇인지 陰險한소리 두어번웅헐댄다。바람틈으로 들리는 휘휱소
0054_0038_b_15L리는 머리풀고가는귀신의 號泣이아닌가! 앙상히 여윈가지에 말라붙은잎사귀가 머리끝을 쭈뼛
0054_0038_b_16L하며 으스스 떨고있다。앞에도 人跡은끌이고 뒤에도 끝였다 左右에도 寂寂하다。다만 물소리
0054_0038_b_17L바람소리 음험한소리 무서운소리 뺨을칠듯이 달려드는山 갈ㅅ길을막고 잠겨드는안개 하늘에구
0054_0038_b_18L름은 올줄도갈줄도몰으고 날은 짜증내고 도루어두어든다。
0054_0038_b_19L 이렇게 몇모롱이 이렇게 몇골자귀 돌고건너고 건너고 또돌고………이모롱이 돌아나면 거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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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9_a_01L東海가뵈려니하든마음도 몇번이나 우라끼리(裡切)를 당하였는지 이제는 미리 占칠勇氣도없어젔
0054_0039_a_02L다。그러나 마음은 새삼스럽게 갈아앉는다。
0054_0039_a_03L
0054_0039_a_04L가는대로 가자!
0054_0039_a_05L가는길만 옳다면
0054_0039_a_06L머것을 恨하랴!
0054_0039_a_07L옳은길 웋에서
0054_0039_a_08L가고 또가다
0054_0039_a_09L몯다간들 어떠리만
0054_0039_a_10L새벽붙어 나선길이니
0054_0039_a_11L해지기전에야 몯가랴。
0054_0039_a_12L
0054_0039_a_13L음험한 귀신의 울음
0054_0039_a_14L사나운 김승의 하폄
0054_0039_a_15L天動하고 地震하는 속이라도
0054_0039_a_16L높은고개 넘ㅅ고
0054_0039_a_17L깊은골 건너
0054_0039_a_18L발은길로만 활개치고 가리라。
0054_0039_a_19L
0054_0039_a_20L앞에도 사람없고
0054_0039_a_21L뒤에도 사람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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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39_b_01L길은 물을곧 없고
0054_0039_b_02L도아는 줄이 없어도
0054_0039_b_03L어머니 뵈려는 마음
0054_0039_b_04L이마음이 指導요
0054_0039_b_05L生命곳 예있거니
0054_0039_b_06L가다말줄이 있으랴
0054_0039_b_07L싫어할줄 있으랴!
0054_0039_b_08L
0054_0039_b_09L어머니의 웃는얼굴
0054_0039_b_10L뵙고서만 죽어도
0054_0039_b_11L어린羊의 그리든눈은
0054_0039_b_12L편안히 감기려든、
0054_0039_b_13L어머니의 다스한품에
0054_0039_b_14L포근히안겨
0054_0039_b_15L목슴의 흰젓을
0054_0039_b_16L마음끝 빪이어!
0054_0039_b_17L
0054_0039_b_18L오! 나의慈母여!
0054_0039_b_19L나는 지금 감니다
0054_0039_b_20L이山구비를 허위단심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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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40_a_01L이골자구니에서
0054_0040_a_02L귀신과 사나운김승에게 쫏기며
0054_0040_a_03L어머니를 찾어 줄달음침니다!
0054_0040_a_04L
0054_0040_a_05L오! 이어린 羊은
0054_0040_a_06L얼마나 다른 길에서
0054_0040_a_07L철없이 해매었음닛가!
0054_0040_a_08L어머니의 불으는소리가 마치
0054_0040_a_09L저-幽靈의 그늘에서 나는것같더이다
0054_0040_a_10L저- 妖魔의불으는 손길이
0054_0040_a_11L어머니의 손으로 보였음니다!
0054_0040_a_12L오! 이어린羊이
0054_0040_a_13L妖魔의거리에서 헤매든過去여!
0054_0040_a_14L어리석음이여!
0054_0040_a_15L
0054_0040_a_16L오! 그러나 이제는
0054_0040_a_17L어머니의 묵묵한입에서
0054_0040_a_18L흘러나오는 불으심이어!
0054_0040_a_19L지금 감니다
0054_0040_a_20L어머니의 거룩한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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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40_b_01L 소슬한 谷風에 더운땀을 식히며 吐含山中腹을 南에서 南으로 돌아 다시 北으로 두어모퉁
0054_0040_b_02L이를 되풀어가더니 난데없는 落水물소리 고요히잠든 검은庵子뒤에서 중은죽어도 나는살았노라
0054_0040_b_03L고 이리오라고 소리친다。촬촬치르르………寂寞한天地에 唯一한소리다! 生命의소리다。宇宙의神秘
0054_0040_b_04L한生命의소리다! 이石噴水우흐로 石階段을올라서니 오! 거룩한 心境이어! 말도없다 글도없
0054_0040_b_05L다! 오즉神秘의心境이다! 美術이아니라 信仰의境이다!
0054_0040_b_06L 窟안에 으스름하게 꿈속의그림자처럼 고요히 그러나 莊嚴하게 그러구도 慈惠롭게 거룩하게
0054_0040_b_07L앉으신 釋迦如來 그앞에 반듸불보다도 적은 아마 十萬八千土를 빛어온 별의餘影인듯이 희미
0054_0040_b_08L한光은 안개속에서 숨도안쉬고 눈도깜빡아니한다。…………………
0054_0040_b_09L고요히 고요히 참으로 고요히 合掌하다。
0054_0040_b_10L至心歸命頂禮。
0054_0040_b_11L心響曲
0054_0040_b_12L雲精
0054_0040_b_13L神秘
0054_0040_b_14L모란ㅅ송이가치
0054_0040_b_15L月桂꼿봉오리가치
0054_0040_b_16L갓피어올으는 숫處女의
0054_0040_b_17L피ㅅ줄 슨 볼!
0054_0040_b_18L그리로서 넘치는神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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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41_a_01L어머니의 젓가슴만
0054_0041_a_02L빗초이는
0054_0041_a_03L무심히 흘러가는 구름떼만
0054_0041_a_04L빗초이는
0054_0041_a_05L順하고 새ㅅ별가튼
0054_0041_a_06L어린악이 눈瞳子!
0054_0041_a_07L그리로서 소치는神秘!
0054_0041_a_08L―――(舊稿에서)―――
0054_0041_a_09L蒼天
0054_0041_a_10L蒼天!
0054_0041_a_11L蒼天을 보면
0054_0041_a_12L내넉이 뛰더라 미칠듯이 뛰더라。
0054_0041_a_13L蒼天!
0054_0041_a_14L蒼天에다 썩고 타는 회포를
0054_0041_a_15L풀어노아 주어라!
0054_0041_a_16L그러케도 넓고 끗업는 蒼天의 보드라운품에
0054_0041_a_17L허트려노아라!
0054_0041_a_18L오오、蒼天!
0054_0041_a_19L造化의 숨은뜻을품고 오락가락하는
-
0054_0041_b_01L그리운 구름떼의 蒼天!
0054_0041_b_02L(舊稿에서)
0054_0041_b_03L저녁노리
0054_0041_b_04L타올으는情㷔의 火輪은 地平線저쪽에 고요이잠기고
0054_0041_b_05L맑은 한울에 푸른숩우에 黃昏을 속삭이는 어엽븐 바람꼿이 보드라운 나래를 펼치도다。
0054_0041_b_06L
0054_0041_b_07L마을 마을의 山기슭으로
0054_0041_b_08L밥짓는내가 시름업시 피어올으는데
0054_0041_b_09L축동압 오리나무숩헤는
0054_0041_b_10L모여드는새들의 저녁노리가 물으녹앗도다
0054_0041_b_11L
0054_0041_b_12L아아、고단한 저녁새들의
0054_0041_b_13L조막가튼가슴을 볼룩어리는
0054_0041_b_14L하로ㅅ살림을 마침의질거움이
0054_0041_b_15L紅爐의熱湯가치 끌토다
0054_0041_b_16L미칠듯이 뛰놀며 춤추도다。
0054_0041_b_17L
0054_0041_b_18L生命의힘이 하늘을꿰ㅅ뚤어 아우성치는 저
0054_0041_b_19L질거움의 단순한 저녁노래ㅅ소리!
-
0054_0042_a_01L山을 흔들도다。
0054_0042_a_02L따를 눌으도다。
0054_0042_a_03L아아 시들은 나의心臟에 젊은피의물ㅅ결을 일으키도다。
0054_0042_a_04L―――(舊稿에서)―――
0054_0042_a_05L生命의흘음
0054_0042_a_06L一
0054_0042_a_07L나라의목숨이 거의 끗날때가 오매 서로 할퀴고 물어뜻고 죽이고 죽고、
0054_0042_a_08L큰싸홈이 백성들의눈물에 뜬 피를뿜는時代를 코 노래에 띄어두고 오즉、
0054_0042_a_09L한폭의종희에만 끌어을으는 회포를 부어너으시던 부어너으시던
0054_0042_a_10L할아버지의 귀여운 혈통을받으신
0054_0042_a_11L오오 아버님!
0054_0042_a_12L임의 이生을가신 당신의靈魂이서어 들으시소!
0054_0042_a_13L당신의「幸福」―――당신의귀여운 아들의노래를
0054_0042_a_14L
0054_0042_a_15L富와貴와 끗업는榮譽를 꿈꾸시던 당신의靈魂!
0054_0042_a_16L마츰내 山과들에 고단하고 외로운 삶의남음을 부치섯건마는
0054_0042_a_17L아아、悲劇의悲劇의 主人公과도가치
0054_0042_a_18L봄날의무서운 회흐리바람과도가치
0054_0042_a_19L모든血肉의 염통을 뚤으고
-
0054_0042_b_01L고기를 고가신 당신의
0054_0042_b_02L아아 외로운 靈魂이시어
0054_0042_b_03L
0054_0042_b_04L당신의 生命과 사랑의열매로
0054_0042_b_05L당신의 자랑과 깃븜의열매로
0054_0042_b_06L뿌리고가신 오오 당신의「幸神」―――당신의아들
0054_0042_b_07L
0054_0042_b_08L사나운 구름ㅅ고개를 넘으랴고 넘으랴고 애태는 가엽슨初生ㅅ달과도가치
0054_0042_b_09L永遠히잠잠한 풀으른 숩풀의꿈을 어지러히 흔들고닷는 쌀쌀한 새벽ㅅ바람과도가치
0054_0042_b_10L奸惡한餓鬼의종들의 쏘는 毒蛇가튼 눈총에 쏘이며
0054_0042_b_11L검풀은貪慾의 묵어운 발ㅅ길에 채이고 짓밟히어
0054_0042_b_12L찌든목숨이 안탑가히도 살랴는 오오 애틋한 숨ㅅ결
0054_0042_b_13L지난時代의 짧고도 지리턴삶을 집씹는매운물로 타올으는 가슴을축이며 외치는소리!
0054_0042_b_14L당신의 귀여운아들의 아아、애처러운노래를 들으시소
0054_0042_b_15L二
0054_0042_b_16L어머님!!
0054_0042_b_17L天女의발으다 흘리는분ㅅ송이가치
0054_0042_b_18L北國의밤을도아 시름업시뿌리는 눈ㅅ송이!
0054_0042_b_19L머 한울나라로 가비엽게춤추며 나리는
0054_0042_b_20L오오 불붓는 天女의 웃음!!
-
0054_0043_a_01L그보드라운 숫시앗씨의가슴에 안기어
0054_0043_a_02L쌀쌀한겨울의밤을 꿈노래로 영접하는
0054_0043_a_03L오오 北國의魂을 받으신 어머님!!
0054_0043_a_04L
0054_0043_a_05L그리운 북녁의 눈나라!
0054_0043_a_06L異邦의 애처러운 봄노래
0054_0043_a_07L들을넘어 江을건너
0054_0043_a_08L흘으는 山險한國境에
0054_0043_a_09L새벽한울에 뜨는 새ㅅ별과가치오신 어머님!
0054_0043_a_10L大陸을 휩쓰는 어름가튼 바람꼿처름
0054_0043_a_11L흘으는運命의물ㅅ결에 찌드는 바다ㅅ가의 어린풀 엄과도가치
0054_0043_a_12L애처로히도 갓피어올으는生靈에
0054_0043_a_13L당신의 生命을 부어너으시던
0054_0043_a_14L오오 나의 搖籃이시어! 들으시소!
0054_0043_a_15L당신의귀여운 아들의노래를!
0054_0043_a_16L三
0054_0043_a_17L사람아 들으라
0054_0043_a_18L山아 들아
0054_0043_a_19L춤추며 노래하고
-
0054_0043_b_01L흘으는 시내야
0054_0043_b_02L달님 별님
0054_0043_b_03L저해님아 들으라。
0054_0043_b_04L
0054_0043_b_05L天使도 들으라
0054_0043_b_06L惡魔도 들으라
0054_0043_b_07L世上을 삼킬듯이 白晝에날뛰는 모든魍魎!
0054_0043_b_08L그리운 님네도 들으시소!
0054_0043_b_09L四
0054_0043_b_10L나는 저녁한울에뜨는 별처름왓것마는
0054_0043_b_11L자지ㅅ빗 구름을타고
0054_0043_b_12L춤추는 天女의 웃음에안기어 왓것마는
0054_0043_b_13L
0054_0043_b_14L오오 별들이속삭이는 無窮의한울!
0054_0043_b_15L따우에는 보드라운달님의 웃음이흐늑이고
0054_0043_b_16L거륵한 해님의 사랑이 넘치것마는
0054_0043_b_17L질거움에 뛰노는 나의염통은 아아 매운서리에얼도다。
0054_0043_b_18L풀엄과 가치 어린나의靈魂은 아아 모진바람에떨도다。
0054_0043_b_19L
0054_0043_b_20L나래를 버린 제비와도가치
-
0054_0044_a_01L애처로이도 어머니의 무릅을 떠나가는 어린生靈이 그리운 그리운 樂園을바라
0054_0044_a_02L人生의 어둠을헤치며 더듬는 애닯픔과 압픔!
0054_0044_a_03L아아 젊음에 뛰노는 피ㅅ줄을 시들이엇도다。
0054_0044_a_04L
0054_0044_a_05L쓸쓸한 외로움의 골을
0054_0044_a_06L내홀로 헤매일때에도
0054_0044_a_07L구진비 매운눈
0054_0044_a_08L獅子의高喊가튼 바람이소리치는
0054_0044_a_09L어둠의 끗업는荒野를 헤매일때에도
0054_0044_a_10L모든 압픔과슯픔에 찌어진염통을 붇움켜안고
0054_0044_a_11L咀呪의 눈물에 어린 나의靈魂의눈은
0054_0044_a_12L아아 故鄕의宮殿에 빗나는 그리운「빗」을보앗도다。
0054_0044_a_13L가엽슨무리!
0054_0044_a_14L거칠고 어지러운 들을 끗업시 헤매이는 어린羊의 무리를 불으시는
0054_0044_a_15L오오 님네의「거륵한 빗」을。
0054_0044_a_16L五
0054_0044_a_17L아우성! 아우성! 아우성!
0054_0044_a_18L오오 목숨을 짜내이는 아우성!
0054_0044_a_19L江山을 뒤흔드는 아우성!
-
0054_0044_b_01L흘으는「때」의 물ㅅ결을타고
0054_0044_b_02L狂浪이구비치는 魔王의바다를 어둠으로 어둠으로 잠기는 生靈들의 아우성!
0054_0044_b_03L삶의 끗업는「마루」를 올으랴고 올으랴고 애태는 아우성
0054_0044_b_04L惡魔의 毒한 채ㅅ죽에 피를뿜는 아우성!
0054_0044_b_05L地獄의 불꼿이 검붉은혀를 널늠거리는아우성!
0054_0044_b_06L아아 나의靈魂을 얼빼이도다。
0054_0044_b_07L아아 빗나는 날ㅅ빗을 갈이도다。
0054_0044_b_08L
0054_0044_b_09L마는 보라!
0054_0044_b_10L저 滔滔한 흘음을。
0054_0044_b_11L줄인 獅子의울음가튼 아우성을 휩싸고흘으는
0054_0044_b_12L永遠의 흘음을-生命의불꼿의 흘음을。
0054_0044_b_13L魔城가튼 검은구름을 꾀뚤어부어주는 해님의웃음의 흘음을。
0054_0044_b_14L
0054_0044_b_15L나는 永遠의흘음에 외로운生命의 배를 띄워
0054_0044_b_16L가을한울가튼 人生의 바다를흘으도다。
0054_0044_b_17L애처러운 生靈들의 아우성은 나의靈魂의귀를 울리도다。
0054_0044_b_18L사나운 삶의물ㅅ결은 내넉을 삼치도다。
0054_0044_b_19L그래도 生命의 흘음은 흘으도다。
0054_0044_b_20L노래를 불으며 흘으도다。
-
0054_0045_a_01L暴風이 부는고야
0054_0045_a_02L그래도 흘으도다
0054_0045_a_03L안개가 가렷구나
0054_0045_a_04L그래도 흘으도다
0054_0045_a_05L暗礁가 두려워라
0054_0045_a_06L그래도 흘으도다。
0054_0045_a_07L生命의흘음은 흘으도다。永遠의 나라로
0054_0045_a_08L―――(舊稿에서)―――
0054_0045_a_09L박처사따님(童謠)
0054_0045_a_10L白雷
0054_0045_a_11L○
0054_0045_a_12L어머니내말드서요
0054_0045_a_13L처녀는시집간대지
0054_0045_a_14L이웃집박처사따님
0054_0045_a_15L죽어도시집실타나
0054_0045_a_16L○
0054_0045_a_17L나희지금열여덟살
0054_0045_a_18L입브기는텬하뎨일
-
0054_0045_b_01L오고가는중신아비
0054_0045_b_02L벌떼처럼드나드네
0054_0045_b_03L○
0054_0045_b_04L부안변산깊은골에
0054_0045_b_05L일홈높은이처녀는
0054_0045_b_06L베도짜며김도잘매
0054_0045_b_07L늙은네가좋아죽네
0054_0045_b_08L○
0054_0045_b_09L의상맹랑이처녀는
0054_0045_b_10L개미버레사랑시러
0054_0045_b_11L나희여서일곱붙어
0054_0045_b_12L끌는물을아니버려
0054_0045_b_13L○
0054_0045_b_14L깊은겨을눈찬골에
0054_0045_b_15L사냥군이달려들어
0054_0045_b_16L노루사슴쏘아내니
0054_0045_b_17L종일눈물흘렷다네
0054_0045_b_18L○
0054_0045_b_19L아버지는처사라고
0054_0045_b_20L학명이란늙은중에
-
0054_0046_a_01L참선이란공부배화
0054_0046_a_02L그이얙이하엿더니
0054_0046_a_03L○
0054_0046_a_04L입븐딸은그말듯고
0054_0046_a_05L우두머니안젓더니
0054_0046_a_06L벌덕누어데굴르며
0054_0046_a_07L올타올타알엇다고
0054_0046_a_08L○
0054_0046_a_09L야릇하다이처녀는
0054_0046_a_10L무얼그리알엇는지
0054_0046_a_11L시집일랑꿈도안코
0054_0046_a_12L뛰고웃고노래하네
0054_0046_a_13L―――(三九、九、一五日朝)―――
0054_0046_a_14L慈悲心
0054_0046_a_15L東京 崔達順 孃
0054_0046_a_16L萬物를사랑하고 同時에萬物를 尊敬함은놉흔宗敎心의發露가아니면 될수가업슴니다 모든人類와모
0054_0046_a_17L든動物과植物를사랑하며 그러고 그存在를 尊重히여김은 宗敎家의慈悲心이아니면 불수가업슴니다
0054_0046_a_18L宗敎의中에서도 特히佛敎가아니면 求할수가업슴니다 文化의進步에就하야 次第로사람과사람과의關
-
0054_0046_b_01L係가 平等해지며 또한相互扶助를부르지지는同時에 여러가지階級을打破하고 서로尊敬과 愛心을가
0054_0046_b_02L지지아니하면안될것슴니다。그러나그것은 다못複雜한近代의 社會生活을整理하고 便宜를얻고저하는
0054_0046_b_03L功利的思想에서 生긴것임으로 그게는조금도宗敎的! 아니佛敎的情操가업슴니다。
0054_0046_b_04L…………此間十二行削除…………
0054_0046_b_05L 吾人은物質的으로 或은機械的으로 人類를同等한位置에노코볼때에 거게는참된平等이아니면 참된
0054_0046_b_06L平和가업슬것이라고 생각함니다 決코我畓引水가아니라 참된平等 참된平和를얻고저함에는 宗敎의
0054_0046_b_07L信念! 아니大乘佛敎의信念이아니면 안될것이라고 吾人은斷言함니다。佛敎에서는 生佛一如라하야
0054_0046_b_08L모든人類는絶對的平等인故로 누구든지다佛陁라하는大覺者의地位에 올을만한本質을 가젓다는것을
0054_0046_b_09L說하얏슴니다 人種이다르고 階級이다르나 그本性은絶對로 一如平等하야 何等의差別이업는것이외
0054_0046_b_10L다 釋尊의時代에 印度四種의種類階級이잇서서 上下의別이 極히嚴格하얏슴은 佛敎徒로서는 또는
0054_0046_b_11L學者로서는 누구나다-알것이외다 그러나釋尊은 그어느階級을勿論하고 佛敎의敎團에 歸入하려할
0054_0046_b_12L때에는 何等의等級을置하지아니하얏슴니다 그順序는入團의前後에依하야 定하얏슴니다 『어떤물이던
0054_0046_b_13L지海에入 하면 同一한짠맛이잇는거와가치 四姓이出家하면 모다釋氏라일홈한다』하는것이 即그의說
0054_0046_b_14L法임니다 佛敎에서云하는 佛이라는것은 人類의向上進步한 極度의地位를일홈한것인데 即我等의全
0054_0046_b_15L人格이 完全히發揮된것을말함이외다 佛敎는元來無神論이라서 他宗敎와가치 造物主인 創造神을絶
0054_0046_b_16L對로認證치아니함니다 그런故로佛敎의佛은 基督敎等이云하는 神과는全然다른性質임니다 基督敎의
0054_0046_b_17L神은全知全能全在의唯一神으로서 我等人類와는全然質이다르다함니다 即神은絶對의存在로서 世界의
0054_0046_b_18L創造者이며 사람은神으로부터맨드러진것인대 그러나墮落하는罪惡이잇다고한다 그런故로사람은如何
0054_0046_b_19L히努力해도 到底히神이될수가업고 오즉근근히神의下人으로서 天國의一隅에 꾸러안즐다름이라고함
0054_0046_b_20L니다 그런데佛敎의佛은 사람과同質同性임니다 釋迦나彌陁나 다-人間이向上하야 佛이된것이외다
-
0054_0047_a_01L나든결로곳佛이된것은아니외다 即釋迦는根本이悉達太子이며 彌陁은根本이國王으로서 다-我等과가
0054_0047_a_02L튼人間이엿스나 發心修行의功德에依하야 成佛한것이외다 그러면釋迦나彌陀가佛이된거와가치 我等
0054_0047_a_03L도다-佛이될수가잇슴니다 即釋迦나彌陁의成佛한事實은 同時에또한我等一切衆生의 成佛할事實이아
0054_0047_a_04L니면안됨니다 萬若 一切衆生가운데 오즉釋迦나彌陁만은成佛하고 다른一切衆生은 成佛못한다하면
0054_0047_a_05L人間敎로서참된價値가어데잇것슴닛가 我等이只今釋迦와彌陀도 根本이我等과가튼 人間인것을들어알
0054_0047_a_06L때에 그게徹㡳的인 自覺이이러나지안흐면안됨니다 釋尊이四月八日誕生時에 天地를가릇처 天上天
0054_0047_a_07L下唯我獨尊이라한것이 곳獨尊의自覺은 何人이든지아니가저서는안될 놉흔自負心이외다 모든人類는
0054_0047_a_08L다佛이될資格을가젓다는 이福音이傳할때에 我等은二種의생각을이르키지아니하면안될것임니다 一은
0054_0047_a_09L我等은本質에在하야 釋迦나彌陀와가튼資格이엇다함에 깁흔自覺으로 自重心 自尊心을이르키는同時
0054_0047_a_10L에 高遠한大理想峯頭에達하기前에 大精進 大努力의志를세우지아니하면안될것니다 釋迦나彌陁가 大
0054_0047_a_11L願을發하야 大行을試한것이 다-自覺이根本이된것이외다 다른하나는 人類는다-이놉흔資格을가진故
0054_0047_a_12L로 그資格을認證하고 그自尊心을認證하며 그에對하야 各各깁흔尊敬과 慈悲心을가지지아니하면안
0054_0047_a_13L될것임니다 『法華經』 에는有名한常不輕菩薩의이약이가잇슴니다 옛적에잇든憍慢한比丘의 발부하든時
0054_0047_a_14L代임니다 그때에常不輕이라하는一比丘가잇섯슴니다 이僧侶는길을가다가 사람을만나면반듯이禮拜를
0054_0047_a_15L하며 그러고그이가僧侶나 佛敎를信하는사람들이면 『나는깁히당신을恭敬함니다 당신은菩薩의道를修
0054_0047_a_16L行하야 곳佛이될것임니다』 하는豫言을하며 그러고俗人을만나면 『나는당신을가벼히아니암니다 당신
0054_0047_a_17L은다-佛이될것임니다』하며 分明히禮拜하더람니다 이比丘는別로經典도읽지아니하고 오즉禮拜뿐만
0054_0047_a_18L하는故로 俗人中에는惡口雜言을하는者도잇섯슴니다 『이밋친놈! 네가우리드러다佛이될것이라고하늬
0054_0047_a_19L그런건방진豫言은누구든지信치안는다』 이러케해도이比丘는 조금도성내는마음이업고 또도라서며 당
0054_0047_a_20L신들은 다-佛이될것임니다하면 衆人은모다분이나서 몽치로따리고 돍을던지면 할수록이比丘는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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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47_b_01L-ㄹ리다라나며 크다란목소리로 『나는당신들을가벼이아니암니다 당신들은다-佛이될것임니다』 하며
0054_0047_b_02L또禮拜를하더람니다 衆人은이比丘가언제든지 『가벼이아니암니다 輕蔑치아니함니다』 함으로이比丘를
0054_0047_b_03L常不輕이라고일홈햇다는말이잇슴니다 如何間一切人類가다-佛이될資格이잇다하면 例하면그것이異人
0054_0047_b_04L種이든지 無產者든지 婦人이든지 어린아희든지 同一한資格이잇는故로 無差別의待遇를주는同時에
0054_0047_b_05L尊敬을表치안흐면안되겟슴니다 恭敬이업는곳에는侮辱이따르며 權利가侵害됨니다 저便이輕視하는故
0054_0047_b_06L로 여게서도敬服치아니함니다 거게서衝突鬪爭이이러나는것도 또한自然임니다 父子兄弟夫婦의間에
0054_0047_b_07L서도 서로그人格을認證하며 그地位를尊重히하지아니하면 一家의平和을保存할수가업슴니다 하물며
0054_0047_b_08L複雜한社會生活法에서야말해무엇하것슴니다 常不輕菩薩과가치 만나는사람마다 禮拜는못할지라도그
0054_0047_b_09L마음은서로人格을認證하고尊敬의念을表하야 差別待遇等를 全然히여이면 그게서자미스러운平等의世
0054_0047_b_10L界 平和의世界가建設될것이라고信함니다 鬪爭等이手段에依하야 例하면人類平等이된다하드래도 거
0054_0047_b_11L게는참된平和가잇슬理가업슬것이며 그리고또한그世界는 何時든지破滅되지아니할수가업슬것임니다 自
0054_0047_b_12L覺과尊敬과에依하야 平等의世界가建設된다하드래도 서로慈悲心을表하야 서로讓步하지아니하면그結
0054_0047_b_13L果는各自가權利만主張한다하면 平和는招來할수가업슴니다 人類平等이라해도 그것은오즉其本質에就하
0054_0047_b_14L야 觀念하는것뿐임으로 外面에나타나는形式이 老少 男女 貧富 貴賤의千差萬別인것은 否認할수
0054_0047_b_15L업슴니다 거게서向上的平等을맛보려면 各自의自覺에依하야成佛의大理想에向하야 精進努力하는同時
0054_0047_b_16L에向上的外面에나타나는 千差萬別의世界를바라보며 利他的博愛를行하지 아니하면안될것임니다 빵
0054_0047_b_17L(Bread) 의滿足을얻지못하야 헤매이는것이勿論苦痛일것이며 病들어呻吟하는者가醫藥을얻지못함도甚
0054_0047_b_18L히苦痛일것이외다 또는自由가업는 늙은이 젊은이 연약한婦人等도불상하기는하나 眞理에迷하야流
0054_0047_b_19L轉하는것도 또한不幸타아니할수가업슬것이외다 吾人은이러한人類의不幸을바라보며 거게同情하고各
0054_0047_b_20L各의苦痛을除去해주려는 大慈悲心을이르키지아니하면 안되겟슴니다 그러고또이러한一便에서 人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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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48_a_01L의不幸에同情하는同時에 他方面에서는 積極的으로 모든衆生에向하야 平等愛를주지아니하면 안되
0054_0048_a_02L겟임니다 人間이라하는것은 本能的으로利己主義가잇는故로 한번自己의利益을謀하고 自己의欲望을
0054_0048_a_03L채우려함니다 他人의미움이되고 他人이그로因하야 失敗되는일이잇서도 그것은조금도생각지아니함
0054_0048_a_04L니다 近代에至하야 其傾向이더욱甚한듯함니다 옛적부터聖人君子가 道德을說하고 各宗敎의敎祖가
0054_0048_a_05L博愛를標榜세운것은 다-이利己主義를擴張함에 지남이업는듯함니다 그러나이利己主義는物質的利己
0054_0048_a_06L主義가아니올시다 愛를說함에도 여러가지가잇슴니다 儒敎等이云하는仁은 親한者、갓가운者로부터漸
0054_0048_a_07L次성글고 먼데까지미친다고햇슴니다 그러면根本부터 差別的이아님니가 基督敎에서는 너의敵을사
0054_0048_a_08L랑하라는 博愛를說햇슴니다 그런대敵을사랑하라는말가운대는 分明히敵이란意味가 豫想되여잇는故
0054_0048_a_09L로 이것도差別愛라아니할수가업슴니다 마는佛敎에서는無緣의大慈悲인故로 敵의別은새로이自他의區
0054_0048_a_10L別까지보지안는絶對의平等愛를 그대로가르첫슴니다 아니一切人類의苦痛은 이것을곳自己의苦痛처럼
0054_0048_a_11L引受하고 自己가받을幸福은 이것을곳一切人類에平均히分給하려고努力함니다 自己를全然他人에沒入
0054_0048_a_12L시키는同時에 他의모든것을크다란自己라고생각함니다 곳無我의眞理에基하야 自他一如의觀念으로平
0054_0048_a_13L等愛가되는것이의다 敵의意味를豫想하고 自己와他人의別을보는가운데는 거게利己的功利的인 생각
0054_0048_a_14L이나는것은 自然한일임니다 곳利己的功利的인 생각이잇다하면 그博愛는神聖치못할뿐만아니라 或
0054_0048_a_15L時에는鬪爭이 이러날것은避할수업는것이외다 基督敎에서三十年戰爭 神聖戰爭等이 이러난것도全然
0054_0048_a_16L理由업는것은아니외다 佛敎에서는一切衆生을볼때에 極愛의一子라고함니다 모든人類를한사람의愛兒
0054_0048_a_17L와가치봄니다 어버이는그子女가 조흔일을하면-질거하고 낫분일을하면근심함니다 행여나불속에들
0054_0048_a_18L어갓는가 물속에들어갓는가 놉흔데서떠러젓는가 그러타면불속에 물속에뛰여들어가 그것을救하려고
0054_0048_a_19L함니다 佛이我等에對한사랑은 그와갓슴니다 萬若我等이地獄에떠러지면 佛로地獄에뛰여들어 그것
0054_0048_a_20L을救하기前에는 쉬지아니함니다 佛의慈悲는人類世上에뿐만아니라 널리또한動物에까지及하얏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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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48_b_01L그이약이는이러함니다 옛적에 尸毘王이라하는明君이이섯슴니다 이大王은 慈悲心이만허서 國內人
0054_0048_b_02L民을사랑하고 貧困者의게金銀財寶를施하야 救濟하되 조금도앗가운생각이업섯슴니다 그行함은全혀
0054_0048_b_03L菩薩의修行이엿슴니다 어떤때에大王의宮殿에 한마리의비들기가急하게날러와서 大王의겨드랑이밋해
0054_0048_b_04L걱구러젓슴니다 大王은놀라여 비들기를어루만지고잇슬때에 다홈에는勇猛한 한마리의매가 大王의
0054_0048_b_05L압헤날러나리며하는말이 비들기를내여주시오 얼는내여주시오 비들기가당신의겨드랑이밋헤숨어잇슴
0054_0048_b_06L니다 그때에大王은가만히말하얏슴니다 비들기를내여줄수가업다 비들기의生命은내가도을것이다 生靈
0054_0048_b_07L의命을빼스려하는것은 조흔일이아니라하얏슴니다 매는生靈의命을뺏는것이조흔일이아니라하나 내가
0054_0048_b_08L只今비들기를먹지안흐면 죽겟슴니다 나는배가곱홈니다 大王은배가곱흘지라도 生靈의命을뺏는것이
0054_0048_b_09L조흔일이아니라고對答하얏슴니다 매는그러면 大王님은딱함니다 나는只今 비들기를먹지안흐면 배
0054_0048_b_10L가곱하서죽겟슴니다 大王님은 비들기의命만을도우시고 나는죽어도조타는말슴이오닛가 그대로理由
0054_0048_b_11L가잇슴닛가 萬若비들기를 도우려하옵거든 그代身나의게 비들기와가튼分量의 맛나는고기를주시오
0054_0048_b_12L이때에 尸毘王은 欣然이佩劒을빼여 自己의허벅다리의살을뚝떼여 배곱흐다는매의게주엇슴니다 이
0054_0048_b_13L이약이는釋尊의本生物語中에서나온것이외다 그때의尸毘王은 過去世에修行하든釋尊이라고함니다 또
0054_0048_b_14L는호랑이의게干한本生物語도잇슴니다 옛적에어느國王에 三人의王子가잇섯슴니다 其第一王子를 摩
0054_0048_b_15L訶羅那 第二王子를摩訶提婆 第三王子를摩訶薩埵라하얏슴니다 이三人의王子는 어느때에山에놀러갓
0054_0048_b_16L슴니다 그리하야漸漸山속에를들어가니 큰竹林이이섯슴니다 이때에저便으로바라보니 한마리의猛虎
0054_0048_b_17L가일곱마리의 색기를낫코 글로因하야 食物을準備치못해서 어미색기가 한번에굴머죽게되엿슴니다
0054_0048_b_18L그리하야참다가참다가참지못하는 어미호랑이는 더견딀수가업서서 只今自己가나흔색기를먹으려고하
0054_0048_b_19L얏슴니다 이悲慘한情景을바라본 三人의王子는 心中에여러가지로 各各感想이잇섯슴니다 第一王子
0054_0048_b_20L는 『君子는위홈한곳에 갓가히아니하나니라 호랑이는 불상하니얼는가자』 하얏슴니다 그러니第二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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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49_a_01L子도크게賛成하며 오래잇스면염려되오니가자하야 두사람은가려고함니다 그럴때第三의薩埵王子는 儼
0054_0049_a_02L然히하는말이 兄님들은가십시오 나는이悲慘한모양을보고는 到㡳히갈수가업슴니다 나는나의몸으로
0054_0049_a_03L써 호랑이를救하겟슴니다 하면서두사람의王子를뒤에두고 스사로나아가 그竹林中에드러가 옷을벗
0054_0049_a_04L고발간알몸이되여 그몸을호랑이의압헤던젓슴니다 그래도그때호랑이는 王子를먹으려고아니하얏슴니
0054_0049_a_05L다 거긔서王子는이호랑이가 원청기운이업서서 生血을보지아니하면 食慾이이러나지아니할것을생각
0054_0049_a_06L하고 다시이러나 말라진대ㅅ가지로써그몸을쑤서서 鮮血이나게하고 다시놉흔곳에서호랑이의 압헤
0054_0049_a_07L떠러젓슴니다 果然피를본호랑이는문듯王子의몸에뛰여들어 살이며 뼈까지먹어버렷슴니다 그때의薩埵
0054_0049_a_08L王子는 또過去에서修行中의釋尊이라고함니다 如何히놉흔犧牲的物語임닛가 自己의物件은 무엇하나
0054_0049_a_09L도남을주기시러하는것이 我等의本能임니다 뿐만아니라오히려더만히저축하려는것이慾望임니다 世上예
0054_0049_a_10L서는金錢物品을他人에施하는이는잇스나 그러나그것은 임의엇절수업는事情이며 但名譽를爲하는것이
0054_0049_a_11L외다 어떤이는自己의生命을버려서 사람을爲하야 나라를爲하야 죽는이도잇스니 이것은勿論놉흔義
0054_0049_a_12L行이아니랄수가업슴니다 그러나대개는 名譽를爲하야活動하는것이외다 佛敎에서는物件을布施할때에
0054_0049_a_13L自己가布施한다는생각!누구의게對하야布施한다는생각 무엇을布施한다는생각 이세가지의생각을 全然
0054_0049_a_14L여이지아니하면안된다는것을 가르첫슴니다 이것은功利的생각으로부터 全혀여이지아니하면 참된布
0054_0049_a_15L施가안된다는意味이외다 只今尸毘王이國王의놉흔몸으로셔 한마리의 비들기를爲하야 그살을베히고
0054_0049_a_16L薩埵王子가王子의몸으로서 호랑이를爲하야 그命을버린것이 人間同志일것가트면 어떠한感謝를얻기
0054_0049_a_17L爲한 功利的생각도잇섯다하겟스나 비들기와 호랑이의 動物에對하야무슨感謝나報酬를바라지아니한
0054_0049_a_18L것은 分明한事實임니다 그러면彼의尸毘王이나 薩埵王子의行爲는 全然功利的생각을여인놉흔犧牲心
0054_0049_a_19L의 發露라아니할수가업슴니다 佛敎에서는 또한모든살랴하고 活動하려고하는生命을 尊重히하라하
0054_0049_a_20L얏슴니다 僧侶는물을걸러먹지아니하면 안된다는規定이잇슴니다 이것은물을마실때에 물속에잇는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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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49_b_01L레들이죽어서는 안된다는것이외다 또는僧侶는보드라운풀속에 小便을보아서는안된다는規定이잇슴니
0054_0049_b_02L다 풀속에조고마한버레들을놀래게하며 또는그것을죽일念慮가 잇다는것이외다 고기를먹어서는안된
0054_0049_b_03L다는것도 物件을불상히생각하는마음에 등지지말라는것이외다 이러케살라는生命을尊重히하고 如何
0054_0049_b_04L히적은物件이라도 그生存을사랑하는것은 無限한慈悲心의發露이외다 印度人은 只今도새나 버레나
0054_0049_b_05L모기等을죽이라는말이업슴니다 원숭이가튼것도 자-ㄹ사람에順從하야 佛跡巡禮者가이르는곳마다歡
0054_0049_b_06L迎을나온다는말이잇슴니다 이러케印度人의마음이 사람과動物과의愛念을가지고잇는것은 오래된佛敎의
0054_0049_b_07L衆生愛의思想에基因된것이외다 또는佛敎의愛는 오즉動物뿐아니라 植物에까지도及하얏슴니다 戒律
0054_0049_b_08L中에僧侶는 草木을베혀서는안된다는말슴도잇슴니다 또한이러한이약이도잇슴니다 어떤때에數人의僧
0054_0049_b_09L侶가 큰벌판을지나갈때에 突然一團의도적이나타나서 僧侶의衣服을빼앗고 그러고다시 그僧侶들을
0054_0049_b_10L죽이려하얏슴니다 그것은萬若이僧侶들을 이대로살려두어서는 自己들의所行을 마을사람의게알릴가
0054_0049_b_11L하는念慮가잇는까닭이외다 그때에도적놈들中에 佛敎의規定을잘아는사람이잇섯슴니다 僧侶는出家法
0054_0049_b_12L으로서풀을뽑거나 끈커나하는일이업스니 僧侶들을풀닙헤 잡아매어두어도 다러날念慮가업다고말하
0054_0049_b_13L얏슴니다 거긔서도적놈들은그말을따라 僧侶들을풀속에잡아매두고 急히다러낫슴니다 僧侶들은발간
0054_0049_b_14L몸으로 풀속에묵겨서 佛敎의禁戒를犯하지아니하고 그대로잇섯슴니다 해는점점뜨거워오는데 毒蛇
0054_0049_b_15L파리等은 몹시도苦롭게하얏슴니다 그래도僧侶들은몸을꼼짝도아니하얏슴니다 그사이해는저서 캄캄
0054_0049_b_16L한밤이되엿슴니다 猛獸와鷙鳥는擾亂이울제 肝膽은自然히서늘하얏슴니다 이때에年老한一人의僧侶는
0054_0049_b_17L절문僧侶들의게 警戒하얏슴니다 사람의命은빠른것이다 그것은시내에흐르는물과갓다 例하면하늘에
0054_0049_b_18L사는사람도오래살면 滅하는것과갓다 우리로언제죽을지모르는것이다 그런故로只今목슴을앳기어 戒律
0054_0049_b_19L를破해서는아니된다 人身은엇기어렵고 佛法은만나기어렵다 諸根은가추기어렵고 信心은이르키기어럽
0054_0049_b_20L다 낫나치다-만나기어려운中에 우리는佛法을만낫스니 只今如何한苦痛이잇서도 조금도聖敎에違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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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50_a_01L해서는아니된다 이러케말하며 彼는僧侶들을勸햇슴니다 僧侶들은다-마음을决定하야 身心共히不動
0054_0050_a_02L不撓함이恰似히큰나무가 바람한점업슬때에 枝葉도움즉이지아니하는것과가튼 態度가되엿슴니다 얼
0054_0050_a_03L마後에그나라의大王이산양을하려고와서 이僧侶들의모양을보고 말할수업시感心이되여 곳풀을헷치고
0054_0050_a_04L그네들을自由롭게보냇슴니다 仁이禽獸에까지及하는것은 예전부터업는말은아니나 草木에도及하는것
0054_0050_a_05L은 또한일즉이佛敎가아니면 업슬것갓슴니다 이러케大乘佛敎는 一面에서人類平等의自覺을부르지즈
0054_0050_a_06L며 서로尊敬과慈悲心을表하는同時에 他一面에서는差別의世界로因하야 苦롭고 煩悶하는者를救하며
0054_0050_a_07L또한人間으로부터 動物로부터 植物까지도 틈업시慈悲心을表함니다
0054_0050_a_08L(佛紀二九五五年十月二十日 江戶에서偶感)
0054_0050_a_09L「追-아즉佛敎에對하야 그리修養이만치못한筆者로셔 所重이自別한雜誌上에 무엇을쓴다는것은 甚히頑慢한것인줄은 스사로아
0054_0050_a_10L나이다 그러나多幸히 佛敎徒의집에태여난 德으로 父母의命令에依하야 이곳와서所謂宗敎學을배운다는것이 어언間一年이되엿
0054_0050_a_11L슴으로 이적지도아주신 父母님의恩德을萬分之一이라도갑기爲하야 또는우리佛敎에터럭만한도움이라도 될가하야 첫붓을감히든
0054_0050_a_12L것이오니 讀者諸位는諒察하옵소서」
0054_0050_a_13L本社는 支那의모든刻經處에서刋行하는 一切經典을紹介販賣하오니 所用이잇는
0054_0050_a_14L書籍이잇삽거든 本社로下命하시압
0054_0050_a_15L支那刻經目錄은請求하시며보내드림니다
0054_0050_a_16L아모리迅速하야도注文하신지十日以內로는書籍을보내드리지못함니다
0054_0050_a_17L代金은金錢加計에依하야一定치안슴니다
0054_0050_a_18L佛敎社販賣部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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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50_b_01L[광고]
0054_0050_b_02L京城府貫鐵洞二七○番地
0054_0050_b_03L金銀買賣
0054_0050_b_04L金箔製造 商金光商會
0054_0050_b_05L都散賣
0054_0050_b_06L電話光化門三七八番
0054_0050_b_07L振替京城一二八一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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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51_a_01L佛敎彙報(附錄)
0054_0051_a_02L日本佛敎視察記【續】
0054_0051_a_03L綺山 林鍚珍
0054_0051_a_04L九、奈良의惜瞥
0054_0051_a_05L同日。一路로奈良平野를지나 奈良驛에下車하니
0054_0051_a_06L同二時十五分이되얏슴니다。即時指定旅舘인「가마
0054_0051_a_07L야」 旅舘案內員의迎導로 奈良最中을東貫하는街道
0054_0051_a_08L를直向하야 한참동안을步入하매 猿澤池란大澤이
0054_0051_a_09L나타나는대 이못가에서 閒放自適하든 麋鹿二三
0054_0051_a_10L頭가 그濯濯하고아릿따운몸으로써 우리의옷깃을
0054_0051_a_11L문질으면서 머리를수기고 人事하는대신 고개를
0054_0051_a_12L들고 반기는樣姿로 마져줌니다。나는이仁性을가
0054_0051_a_13L진 瑞鹿이나타나 멀리오는우리의 客勞를慰安하
0054_0051_a_14L야줌에 사랑스럽고 깃븐맘을익기지못하야 그머
0054_0051_a_15L리를 잠간어르만저주면서 南쪽으로꺽거 池塘의
0054_0051_a_16L西堤를발바 信館에다달아 主人의引導로 即時二
0054_0051_a_17L階에올라 北쪽으로뚤인窓밧글 내다보매 方今지
0054_0051_a_18L나오든猿澤池의鏡波가 簷影에汪洋하고 그對岸인
0054_0051_a_19L興福寺의影姿가 池面에映寫되야잇슴은 우리의첫
0054_0051_a_20L印象을깁히박혀줌니다。이一幅만보아도 奈良風景
0054_0051_a_21L의明媚함을 疑心업시推測할수잇슴니다。少焉에旅
0054_0051_a_22L舘主人으로부터 分排하야주는『奈良史蹟案內地圖』
0054_0051_a_23L를按하야본즉 『猿澤池』(天竺獮猴池에倣홈)는即奈
0054_0051_a_24L良八景의一數로 周圍約三百三十米突、水深約二、
0054_0051_a_25L三米突인데 池中에는鯉鮒가牣躍하고 池畔에는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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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51_b_01L烏가鶴鶴하며 特히그背景(興福寺)이逸勝하고 月
0054_0051_b_02L印이有名하며 그西邊에는采女社 (平城朝의宮女가
0054_0051_b_03L水死함과同時에그靈을祀한곳) 가잇고 그東邊에는
0054_0051_b_04L衣掛柳가잇다』 하얏슴니다。一盃의香茶를마친後人
0054_0051_b_05L力車를볼러타고 法相宗의大本山인興福寺의門前에
0054_0051_b_06L이르러 時間의不許로말미암아 寺務所를訪問치못
0054_0051_b_07L하고 車夫의案內를받아 假金堂 (天明二年假建、
0054_0051_b_08L本尊藥師佛) 의階除에서 本堂의內部를잠ㅅ간들어
0054_0051_b_09L다보고 그西쪽에잇는南圓堂 (弘仁四年藤原冬嗣初
0054_0051_b_10L創、寬保元年重建八角寶珠形)北圓堂(養老五年에鎌
0054_0051_b_11L足의追善을爲하야初創하고仁治元年에重建한者) 三
0054_0051_b_12L重塔 (康治二年鳥羽天皇의皇后待賢門院의本願으로
0054_0051_b_13L初創하고寬仁元年에重建한者)과 그東쪽에잇는東金
0054_0051_b_14L堂(神龜三年初創應永廿二年重建한者)五重塔 (天平
0054_0051_b_15L二年初創、應永二十二年重建한者인대高는地盤부터
0054_0051_b_16L相輪까지四十七米突)等의 外華만을望見하면서 東
0054_0051_b_17L大寺를向하려 北門通을나서는途中에 記를按한즉
0054_0051_b_18L『當寺는 最初孝德天皇朝의內臣인中臣鎌足이 그氏
0054_0051_b_19L姓을藤原氏로改易함과 共히大和厩坂에藤原一族의
0054_0051_b_20L氏寺로創建하얏든바 元明天皇和銅四年三月에 平
0054_0051_b_21L城으로遷都함을말미암아 鎌足의子、不比等公이現
0054_0051_b_22L在의處로移建한者이니 醍醐天皇昌泰年間에는 그
0054_0051_b_23L堂宇가約一百七十有餘나되야 東大寺와倂稱되얏섯
0054_0051_b_24L스나 其後로자조火災에罹하야 方今一瞥한堂宇만
0054_0051_b_25L殘存케되얏다』 하얏슴니다。更히人力車를搭乘하고
0054_0051_b_26L近距離의東北에잇는 華嚴宗의總本山인 東大寺의
0054_0051_b_27L廻廊中門前에다달아 또한車夫의案內로 即時正門
0054_0051_b_28L內에들어서니 이門階로부터 宏豁한大佛殿을向하
0054_0051_b_29L는塲中道는 그兩側에石線을느리고 그線內에는明
0054_0051_b_30L砂를까랏스며 左右의塲面에는莎草로써敷飾하얏스
0054_0051_b_31L며 또그右側에는洗手泉이잇고 殿階에갓가운砂道
0054_0051_b_32L의正中에는 國寶인銅燈籠이웃뚝서잇는데 그扉面
0054_0051_b_33L에는四楞鐵索으로써 朝鮮寺院의佛殿門模樣으로交
0054_0051_b_34L叉織成한문살우에 或은菩薩 或은獅子像을浮雕하
0054_0051_b_35L야 工藝의妙腕을 餘蘊업시發揮하야두엇슴니다。
0054_0051_b_36L即時本殿의內奧를들어서매 石堤의壇上에 儼坐하
0054_0051_b_37L신大佛(毘盧遮那)尊像은 拜觀者로하야곰 驚嘆을
0054_0051_b_38L難禁케하야줌니다。又左右에脇侍로奉安되야잇는木
0054_0051_b_39L彫虗空藏菩薩과 如意輪觀世音菩薩像도 또한宏大
0054_0051_b_40L한尊像님니다。하나須彌의外에는 巨山을擬치못함
-
0054_0052_a_01L과如히 大佛의側에는巨像임을認치못하게되얏슴니
0054_0052_a_02L다。又木彫의廣目天王像과 多聞天王像이安置되야
0054_0052_a_03L잇는데 此亦逸工의彫造임을首肯치아니치못하게되
0054_0052_a_04L얏슴니다。於是乎奈良佛敎의播種이 巨大하얏던것
0054_0052_a_05L을能히象徵할수잇슴니다。한데記를案하야본즉 『當
0054_0052_a_06L寺는即南都七大寺의一이요 又華嚴宗의總本山으로
0054_0052_a_07L最初聖武天皇과皇后는 共히佛敎를深信하심과同時
0054_0052_a_08L에佛敎를國家的宗敎로하야 그隆興에專力을注하던
0054_0052_a_09L바 天平十二年六月에는 諸國에一丈六尺의佛像을
0054_0052_a_10L祀케하고 且法華經十部와 大般若經을寫케하고七
0054_0052_a_11L重塔을造케하섯스며 翌年三月에는諸國에勅하사國
0054_0052_a_12L마다僧尼二種의國分寺를建設케하심과 共히此에多
0054_0052_a_13L大한寺領을附與하고 特히奈良에는總國分寺總國分
0054_0052_a_14L尼寺를創設케하신後 良辨僧正을開山祖로定하고行
0054_0052_a_15L基菩薩ㆍ菩提僧正等으로하야곰 此를協力케하섯스
0054_0052_a_16L니 此는即鎭護國家의本塲으로서 本寺의初創이됨
0054_0052_a_17L니다。初에行基菩薩이 伊勢大廟의神託을受한後、
0054_0052_a_18L勅使를宇佐八幡倂太神宮에派遣하야 靈感을得한旋
0054_0052_a_19L踵即天平十五年十月에 大佛及東大寺ㆍ鑄ㆍ建의勅
0054_0052_a_20L旨를下하시고 十九年에는大殿造立의勅을下하심과
0054_0052_a_21L同時에御袖로써몸소 土石을運하시매 文武百官이
0054_0052_a_22L다-此에倣하야 佛座를築하얏스며 同年九月에는
0054_0052_a_23L大佛像을鑄了하고 天平勝寶三年에는大殿의竣功을
0054_0052_a_24L見케되얏는데 翌年四月의開眼式에는孝鎌天皇ㆍ太
0054_0052_a_25L上天皇ㆍ皇太皇后가臨幸하사 開眼供養을躬行하시
0054_0052_a_26L고太上皇은스스로 佛前에拜跪하사 三寶의奴라고
0054_0052_a_27L까지 稱함에至하얏슴니다。其後一百四年을經한齊
0054_0052_a_28L衡二年五月에는 尊像의頭部가頹落하섯슴으로 七
0054_0052_a_29L年後即貞觀三年三月에此를修理하고 勅使로하야곰
0054_0052_a_30L開眼供養을行케하얏스며 其後三百廿年을經한治承
0054_0052_a_31L四年平重衡의兵火로말미암아 殿堂이烏有에歸케되
0054_0052_a_32L얏슴으로後白河法皇의叡願에依하야 翌年五月로부
0054_0052_a_33L터源賴朝를大檀越로하고 俊乘上人을大勸進으로하
0054_0052_a_34L야 二年後인文治元年에尊像修繕을完了하고 同年
0054_0052_a_35L八月에法皇이親히導師가되야 開眼供養을行하섯스
0054_0052_a_36L며 其後三百八十三年을經한永祿十年에 松永久秀
0054_0052_a_37L와三好康長의爭亂을말미암아 燒燼되얏슴으로大和
0054_0052_a_38L國住人山田道安이佛像修理에極力하얏스며 이로부
0054_0052_a_39L터一百十九年後인 貞亨二年에는公慶上人이大勸進
0054_0052_a_40L의勅許를奉하고 七年後인元祿五年尊像修理의完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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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52_b_01L을奏得함에及하야는 勅使의叅向이有한外 開眼導
0054_0052_b_02L師當時別當觀修寺宮二品齊深法親王 供養導師興福
0054_0052_b_03L寺長官一乘院宮二品眞敬法親王의叅向이잇슴에依하
0054_0052_b_04L야嚴修되얏스며 其後二百餘의星霜을지냄에말미암
0054_0052_b_05L아 그結搆가漸弛함을生하얏슴으로 明治三十六年으
0054_0052_b_06L로부터 修理에着手한바 金七十五萬圓 (宮內省下賜
0054_0052_b_07L一萬圓政府補助四十八萬五千圓、信士醵出二十五萬
0054_0052_b_08L五千圓)과役夫二十萬六千有餘를費要하야 大正三年
0054_0052_b_09L에이르러完了하니 本殿의間數、尊像의尺度倂鑄料
0054_0052_b_10L는下와如함니다。(一)本殿의間數。東西三十一間二尺
0054_0052_b_11L二寸。南北二十七間四尺六寸。高二十六間四尺六寸
0054_0052_b_12L(二階)柱六十本、(周圍二丈、直徑自四尺乃至五尺五
0054_0052_b_13L寸)。(二)大佛의寸度。高五丈三尺五寸。面長一丈六尺。
0054_0052_b_14L面廣九尺五寸。眉長五尺四寸五分。目長三尺九寸。
0054_0052_b_15L鼻前徑二尺九寸四分。鼻高一尺六寸。口長三尺七寸
0054_0052_b_16L耳長八尺五寸。肩長二丈八尺七寸。臘長一丈八尺。
0054_0052_b_17L臂長一丈九尺。腹長一丈八尺。肘至腕長一丈五尺。
0054_0052_b_18L大指周廻四尺八寸。同長四尺四寸。中指周廻三尺二
0054_0052_b_19L寸。同長五尺八寸。小指長四尺四寸。無名指長五尺
0054_0052_b_20L三寸。頭指長五尺四寸。手掌六尺五寸六分。同廣六
0054_0052_b_21L尺八寸。手腕周圍一丈三尺五寸。足掌直徑一丈。足
0054_0052_b_22L大指長三尺二寸。同周圍四尺二寸。膝徑三丈九尺。
0054_0052_b_23L膝厚七尺。螺髻九百六十六顆。同各高一尺。各徑六
0054_0052_b_24L寸。蓮花銅座數大小五十六枚。各高一丈各徑一丈二
0054_0052_b_25L尺。蓮花座徑六丈八尺。後圓光高八丈三尺。同橫二
0054_0052_b_26L丈五尺。同厚五尺。圓光中化佛十六軆。(自八尺至九
0054_0052_b_27L尺)。(三)大佛鑄料。熟銅七十三萬九千五百六十一斤。
0054_0052_b_28L鍊金一萬四百四十六兩。白蠟一萬一千六百十八斤。
0054_0052_b_29L水銀五萬八千六百二十兩。炭一萬六百五十六斛。重
0054_0052_b_30L量四百四十噸半。』又本殿의大柱(周圍二丈)는柱의外
0054_0052_b_31L圍에板片을附添한後 鐵釘을周釘하고 柱根에는鐵
0054_0052_b_32L片을包莊하얏는데 就中一柱에는附板의兩側을橫穿
0054_0052_b_33L하야둔바 或時此柱穴을貫出하는作戱輩가잇슴으로
0054_0052_b_34L此를名하야柱㧞이라함니다。次에는本殿의搆內를離
0054_0052_b_35L出하야 그東편에잇는 當寺所屬의鐘樓、二月堂、三
0054_0052_b_36L月堂을次第로觀覽케되는데 就中鐘樓에이르매 모든
0054_0052_b_37L觀客들이鐵索에매여달인鯨槌를끄어 一鳴을試하기
0054_0052_b_38L에力을不惜함니다。함으로우리도또한效嚬코저하야
0054_0052_b_39L턱업시달게든즉 겟헤안즌鐘司로부터 一擊에要한
0054_0052_b_40L五錢金의支出이아니면 試鳴을不許한다함니다。이
-
0054_0053_a_01L에擊否를隨意하는中曼庵禪師는力不及의所致로 第
0054_0053_a_02L一聲이大振치못함을 一大遺憾으로생각하야 傍友
0054_0053_a_03L의應援을받어 第二聲을試하니 於是乎本聲을盡放
0054_0053_a_04L하야 方今落照에잠겨가는 奈良洞天의寂寞을깨트
0054_0053_a_05L러줌니다。한데本樓의創建은 即天平年間의古昔에
0054_0053_a_06L在하고 大鐘은高一丈三尺六寸。口徑九尺一寸三分
0054_0053_a_07L厚八寸을有하고 熟銅五萬二千六百八十斤。白蠟二
0054_0053_a_08L千三百斤을要하얏슴니다。又三月堂은天平五年聖武
0054_0053_a_09L天皇의勅命에依하야 良辨僧正이創建한者로 同寺
0054_0053_a_10L中最古建物이엿스며 二月堂은勝寶四年에創建한者
0054_0053_a_11L임니다。次에는人力車를更乘하고 南쪽으로春日神
0054_0053_a_12L社를向하야가는途中 八幡神宮前을지나 三笠山이
0054_0053_a_13L란麓根에이르니 行路가急峻하야 乘車의行이極難
0054_0053_a_14L함으로 即時車를내리여 徒步로徐徐히하면서 左
0054_0053_a_15L右를一瞥하매 同山의麓面은每年春에舊茅를燒却하
0054_0053_a_16L고 麋鹿과遊客들이 交遊自若케하야둔名所임으로
0054_0053_a_17L우리도또한小憩하다가 更히腕車를搭乘하고 이로
0054_0053_a_18L부터坂路를走下하는동안에 水谷神社를左顧하면서
0054_0053_a_19L문듯水谷橋를건너고 鹿苑林을지나 信地에다달아
0054_0053_a_20L徒步로春日鳥居에이르매 群鹿이一行의脚下에圍集
0054_0053_a_21L하야 고개를들고반기는듯이구는데 路傍에鴈列한
0054_0053_a_22L菓子商들이 圓形製인飼養菓子를뀌여들고 『이菓子
0054_0053_a_23L를사서주오!』하는勸辭가잇슴으로 우리는이에鹿
0054_0053_a_24L群의意를解하고 或十錢或二十錢値를사서試飼하야
0054_0053_a_25L보앗슴니다。한즉善食은姑舍하고 들고주는手指까
0054_0053_a_26L지를取囓케쯤되얏스며 더사달나는말대신에衫袖를
0054_0053_a_27L물어당김을말미암아 奇異한맘이소사나 다시或一
0054_0053_a_28L圓或五十錢乃至十錢値의菓子를買入하야 時間의關
0054_0053_a_29L係도愛惜하면서 鹿兒의前에秩序업시撒擲하야버리
0054_0053_a_30L고 神社를向하야轉入하매 各時代의異形을가진一
0054_0053_a_31L千의石燈籠과一千의銅燈籠이左右로林立하야잇슴도
0054_0053_a_32L一大偉觀이엿스며 蔚林의下 石階의上에 깁숙히
0054_0053_a_33L建築되야잇는神宮도 또한一大靈塲이엿슴은掩치못
0054_0053_a_34L할實景임니다。案한즉 『本社(官幣大社)는 即養老
0054_0053_a_35L年間에藤原不比等公의創建한者로 藤原家의祖、天
0054_0053_a_36L兒屋根命을祀한곳인데 大同年間에常陸鹿島로부터
0054_0053_a_37L武甕槌命ㆍ下總香取로부터經津主命ㆍ河內枚岡으로
0054_0053_a_38L부터比賣神을移鎭合祀케되얏다』 하얏스며 『幣殿은
0054_0053_a_39L即貞觀二年의創建으로 當時의特種建物이라』 하얏
0054_0053_a_40L슴니다。鳥居外에이르러 日割表排定員의不注意로
-
0054_0053_b_01L말미암아 日本佛敎의發祥地요 百濟僧侶의傳敎地
0054_0053_b_02L인만콤 佛敎에關한古代文化의見品이 保藏된帝室
0054_0053_b_03L奈良博物舘과 佛敎의最上乘을專門的으로鍊修하는
0054_0053_b_04L東大寺의 華嚴專修院等이備有하고 以外에도枚擧
0054_0053_b_05L키難하게쯤의名物 名所가多有함에도 不拘하고우
0054_0053_b_06L리의觀光時割이계우二時間에不過케되야 巡訪細
0054_0053_b_07L觀을不得케되얏슴은 今次의遺恨에부처두면서 腕
0054_0053_b_08L車를타고 旅舘을向하는路傍의杉林中에서 喇叭一
0054_0053_b_09L聲이亮響함니다。車夫의게其故를물은즉 本社의領
0054_0053_b_10L內에散放되야잇는 八百頭의鹿群들이 飼養者의彼
0054_0053_b_11L一聲에一時一處로雲集하야 宿食을共히하는軍呼라
0054_0053_b_12L함니다。特히天理敎를訪問한대신 法隆寺의拜觀할
0054_0053_b_13L機會를蹉失하얏슴이 또한難忘의恨事가되겟슴으로
0054_0053_b_14L夕飯을마치고 夜閑을빌어向發코저하얏스나 舘主
0054_0053_b_15L로부터方今갈수는잇지마는 볼수는업다는一言에落
0054_0053_b_16L膽하야 庶幾乎夢遊로나볼가하고寢席을促함에至하
0054_0053_b_17L얏슴니다。
0054_0053_b_18L大覺國師의紀念祭文
0054_0053_b_19L大偉哉라 國師의德은足히써 諸佛을繼紹하고 國
0054_0053_b_20L師의化는足히써 衆生을益케하고 國師의行은足히
0054_0053_b_21L써 正道를붓들게하고 國師의智는足히써 大誠을
0054_0053_b_22L發케하시도다 그럼으로 我等은國師의滅하신後八
0054_0053_b_23L百二十八年의遠忌를當하야 至心으로國師의聖德을
0054_0053_b_24L渴仰하고 敬慕하노이다。
0054_0053_b_25L 顧惟하옵건대 我大覺國師는 文宗仁孝聖王第四
0054_0053_b_26L子로降誕하시사 밋成長하심에 父王께서 國師의
0054_0053_b_27L穎悟함을사랑하사 諸王子의게이르사대 諸子中에
0054_0053_b_28L누가能히出家爲僧하야 福田利益을 作할者이뇨하
0054_0053_b_29L시니 國師가먼저出家求道함을願하시도다。그리하
0054_0053_b_30L야國師는 靈通寺景德國師의게得度하야 具足戒를
0054_0053_b_31L받으시고 華嚴學으로부터 一代宗乘을無不通達하
0054_0053_b_32L시니 當時의戒律 法相 涅槃 法性 圓融 禪寂
0054_0053_b_33L等의六宗을幷通하시고六經十略之書를該通하시도다
0054_0053_b_34L 大偉哉라 國師는此後로 聖德이 大闡하신지라
0054_0053_b_35L順宗 宣宗의 恩禮가 甚厚하사 累加法號하시고
0054_0053_b_36L大遼天祐皇帝는 茶香과金帛으로써 信緣을結하시
0054_0053_b_37L도다。國師께서 西으로宋에遊하심애 其國의宗門
0054_0053_b_38L大德이國師의聖德에服膺하야 經論疏鈔數千卷을奉
0054_0053_b_39L呈하고 國師께서本國으로還駕하심애 興王寺에住
-
0054_0054_a_01L持하사 禪敎顯密을演講하시고 高麗大藏의續藏을
0054_0054_a_02L飜刻하사 萬古의典範을垂하시도다。眞實로國師의
0054_0054_a_03L聖德은高勝須彌하고 明並日月하며 廣覆大海라 區
0054_0054_a_04L區讃頌이還汚國師일새 不須多言하고 古人이國師
0054_0054_a_05L를爲하야 讃仰한數句로써 此를代하노이다。
0054_0054_a_06L離國心忙海上塵 歸時身遇浙江春
0054_0054_a_07L休言求法多賢哲 自古王宮第一人
0054_0054_a_08L(大宋晉水沙門 淨源 上)
0054_0054_a_09L誰人萬里洪波上 爲法忘軀効善財
0054_0054_a_10L想得閻浮應罕有 優曇鉢向火中開
0054_0054_a_11L(禪院 宗本 上)
0054_0054_a_12L世尊應化二千九百五十五年十月五日
0054_0054_a_13L朝鮮佛敎聖讃會 謹疏
0054_0054_a_14L故春城李鍾天君의追悼文
0054_0054_a_15L嗚呼痛哉라李鍾天君이여!
0054_0054_a_16L佛紀二千九百五十五年十月二十三日午後九時에 春
0054_0054_a_17L城李鍾天君은 三十八歲를一期로하고 蔚山自宅에
0054_0054_a_18L서 無餘涅槃에入하엿도다
0054_0054_a_19L 嗚呼라鍾天君이여! 君의涅槃이 어찌이러틋速
0054_0054_a_20L하신가? 君의化緣이盡함인가 吾人의因緣이薄함
0054_0054_a_21L인가? 佛門의多事가 今日과가틈이업거늘 君이
0054_0054_a_22L先歸하니 吾人은누구로더부러가치하며 寰宇의混
0054_0054_a_23L亂이今時와가틈이업거늘 君이涅槃하니 吾人은누
0054_0054_a_24L구를밋고活動할까? 幻華가튼塵世며 泡影가튼人
0054_0054_a_25L生이라 어찌그常住를바라며 刹那刹那미들수업는
0054_0054_a_26L不定한無常이라 어찌그老少가잇스랴마는 그러나
0054_0054_a_27L君의夭逝는 眞實로夢外로다
0054_0054_a_28L 嗚呼鍾天君이여! 吾敎의 敎育事業를도라보나
0054_0054_a_29L君과가튼熱心者가乏少하며 布敎事業을도라보나君
0054_0054_a_30L과가튼信仰家가업스니 君이아니면 吾敎의敎育을
0054_0054_a_31L挽囘키어려우며 君이아니면敎網을 擴張할수업는
0054_0054_a_32L此時에 君은그어찌이러틋涅槃에速就하신가!
0054_0054_a_33L 嗚呼哀哉라鍾天君이여!! 君의一生을 回顧컨대
0054_0054_a_34L君은洛陽胎生으로 湖南에成長하면서 일즉이外典
0054_0054_a_35L을讀破하엿스나 그의無價値함을覺悟한後 佛門에
0054_0054_a_36L入하야 玉泉寺에서得度하고 內典을硏鑽하고 東으
0054_0054_a_37L로扶桑江戶에놀야서 曹洞宗第一中學에배우고 다
0054_0054_a_38L시東洋大學의倫理哲學敎育科를卒業하고 盈科歸國
-
0054_0054_b_01L하야靈鷲山에드러가서 鷲山寶林을經營發刋하엿스
0054_0054_b_02L며 또는漢城에올라와서 우리佛敎靑年會의幹事로
0054_0054_b_03L活動하고 東萊에나려가서高等高普의敎鞭을드럿스
0054_0054_b_04L며 또는晋州敎堂의布敎師로赴任하야 布敎에從事
0054_0054_b_05L할뿐더러 佛敎宣揚의講習所까지設立하야 赤誠을
0054_0054_b_06L披瀝하고 熱誠을다하엿스니 君은오즉우리敎界를
0054_0054_b_07L爲하야 敎育으로 布敎로 雜誌로 事業으로 여러
0054_0054_b_08L方面을通하야 一當百人으로 盡誠竭力하야 그하
0054_0054_b_09L고저하는바를 쉬지아니하엿도다 君은貧困과病苦
0054_0054_b_10L속에서惡戰苦鬪하엿나니 굶으면서도일하고 아르
0054_0054_b_11L면서도일하엿다 그러나이와가튼 事業의熱血兒가
0054_0054_b_12L冥路에速就함은 어찌함인고 佛天이無心함이든가
0054_0054_b_13L閻鬼가錯覺함이든가 아니다 아니다 决코아니다
0054_0054_b_14L君은冷酷한塵世가실허서 땃듯한蓮邦을차저간것이
0054_0054_b_15L다。그러나 우리는柱石으로밋고 棟樑으로알든君
0054_0054_b_16L을일헛는지라 그할바라를아지못하야하노라
0054_0054_b_17L 嗚呼苦哉라君이여! 會者必離하며 生者必滅이無
0054_0054_b_18L常의大道이어니 早晩은잇슬지언정 그누가死門을
0054_0054_b_19L免할손가 그러나 君의前程이遙遠하고 우리敎界
0054_0054_b_20L일이 泰山갓거늘 遙遠한前程을 餘地업시버리고
0054_0054_b_21L重且大한敎界일에致命傷을주고가니 君을爲하야可
0054_0054_b_22L惜하고 敎界를爲하야 痛憤한지라 남아잇는우리
0054_0054_b_23L는 前途有望하든君을 追慕하야 心香一炷로써默
0054_0054_b_24L禱하고 君의徃生極樂 成等正覺하기를祝하노라
0054_0054_b_25L歸依佛 歸依法 歸依僧 究竟圓成薩婆若 摩訶
0054_0054_b_26L般若波羅密
0054_0054_b_27L世尊應化二千九百五十五年十一月十一日
0054_0054_b_28L朝鮮佛敎靑年會員一同 謹疏
0054_0054_b_29L開北水害로
0054_0054_b_30L甲宴中止
0054_0054_b_31L本年舊歷七月八日은 京畿道敎宗大本山楊
0054_0054_b_32L州郡奉先寺住持申允泳氏의▣辰인바 其時는
0054_0054_b_33L全鮮製炭講習所가 當寺附近에開催되고 官
0054_0054_b_34L公吏五六十名이 臨時宿泊을寺中으로定하엿
0054_0054_b_35L슴에交際上紛忙으로以하야 一箇朔即八月八
0054_0054_b_36L日로退定하고 知交間其他末寺까지通牒을發
0054_0054_b_37L送하엿든바 千萬意外에關北水害의慘報를臨
0054_0054_b_38L期獲聞하고 以若慈善敎人으로臨塲救濟는못
0054_0054_b_39L할망정自己를爲하야 一時的慶筵을排設함은
0054_0054_b_40L良心上不許라하야 甲宴中止의通知를再發한
0054_0054_b_41L後 다시水害死亡者追薦祈禱會를組織하고二
0054_0054_b_42L週間豫定으로 全般大衆이微誠을披瀝하엿다
0054_0054_b_43L더라 (奉先)
-
0054_0055_a_01L在日本東京
0054_0055_a_02L 朝鮮佛靑臨時總會
0054_0055_a_03L去十月廿八日午前十一時에 在日本東京朝
0054_0055_a_04L鮮佛敎靑年會臨時總會를 市外下目黑三二八
0054_0055_a_05L李智英方에서開하고 議長吳官守氏가登席하
0054_0055_a_06L야 諸般問題를進行한바 特히今番臨時總會
0054_0055_a_07L의要件은 夏休巡講員의報告件과 金剛杵秋
0054_0055_a_08L期號發刋의件이엿는대 秋期號은十一月晦內
0054_0055_a_09L로發刋케하얏스며 其他여러가지問題를圓滿
0054_0055_a_10L히 討議하고同午後三時에 無事히閉會하얏
0054_0055_a_11L다더라(東京)
0054_0055_a_12L大覺國師紀念祭擧行
0054_0055_a_13L去十一月十六日 (舊十月五日午後三時)에
0054_0055_a_14L市內壽松洞覺皇敎堂에서는 敎務院及佛敎社
0054_0055_a_15L專修學校職員一同과 靑年會의幹部一同이會
0054_0055_a_16L集하야 大覺國師의八百二十八年遠忌의紀念
0054_0055_a_17L祭를行하얏다더라
0054_0055_a_18L覺皇敎堂의
0054_0055_a_19L說敎及講演의報告
0054_0055_a_20L十月二十日佛說無量壽經 金大隱
0054_0055_a_21L同 二十一日나란무엇인가 白性郁
0054_0055_a_22L同 二十七日無量壽經 金大隱
0054_0055_a_23L同 二十八日宗敎와藝術의關係 同 人
0054_0055_a_24L十一月三日無量壽經 同 人
0054_0055_a_25L同 四日義湘大師와華嚴哲學 同 人
0054_0055_a_26L同 十日無量壽經 同 人
0054_0055_a_27L同 十一日生活의二方面 李智光
0054_0055_a_28L開運寺佛專修了
0054_0055_a_29L高陽郡開運寺講院에서는 去十一月一日에
0054_0055_a_30L修了式을擧行하얏다는데 氏名은左와如하다
0054_0055_a_31L더라
0054_0055_a_32L○華嚴三賢部六人 朴永春 金炳奎 趙宗泫
0054_0055_a_33L金炳夏 朴茂根 金永宣
0054_0055_a_34L○華嚴玄談部十一人李淳浩 裴性元 金炯鎭
0054_0055_a_35L李性燁 黃普眼 鄭和振 徐炳宰 李海日
0054_0055_a_36L權晶玩 金普涉 黃河石
0054_0055_a_37L○四敎科卒業四人 李汶昊 金性仁 金完基
0054_0055_a_38L全東春
0054_0055_a_39L○括頌修了一人 金樂煥
0054_0055_a_40L○四集三人 金得成 宣忠信 權定荷
0054_0055_a_41L開運講院新築落成
0054_0055_a_42L去十一月二日에 開運寺에서는新築한大圓
0054_0055_a_43L庵講院의落成式을盛大히擧行하얏다는데 內
0054_0055_a_44L外人士가多數參集하엿다더라
0054_0055_a_45L佛前花婚式擧行
0054_0055_a_46L去十月九日에江景彩雲山聳岩寺에서는 主
0054_0055_a_47L禮法師朴泰一師의指導下에 佛前花婚式을擧
0054_0055_a_48L行하엿다는데 新郞은江景實業家金相德氏요
0054_0055_a_49L新婦는淑明九高出身朴貞男孃이라더라
0054_0055_a_50L(江景)
0054_0055_a_51L咸陽幼稚園開園
0054_0055_a_52L慶南咸陽郡佛敎布敎堂에서는 佛敎主義敎
0054_0055_a_53L育의幼兒保育機關이無하야 遺憾으로생각하
0054_0055_a_54L든바其間에諸般準備가整頓되얏슴으로 十一
0054_0055_a_55L月一日부터開園式을行하고 實地保育에從事
0054_0055_a_56L한다는데 保育機關이稀少한當地의稱頌이多
0054_0055_a_57L九하다더라 (咸陽)
0054_0055_a_58L開運寺講堂에對한
0054_0055_a_59L月初和尙의美擧
0054_0055_a_60L去十一月二日京畿道高陽郡 開運寺에서는
0054_0055_a_61L大圓庵이라는 佛敎專門講院을新築落成하고
0054_0055_a_62L큰절에잇는講堂을大圓庵으로 移轉하얏다는
-
0054_0055_b_01L데實은移轉維持할經費가업서서 어찌할줄을
0054_0055_b_02L모르든次에 楊州郡大本山奉先寺前住持洪月
0054_0055_b_03L初大和尙께서 此를듯고現金六百圓을喜捨義
0054_0055_b_04L捐하얏슴으로 同講院에서는愁眉를開하고圓
0054_0055_b_05L滿히移轉開講케된지라 開運寺大衆及講堂學
0054_0055_b_06L人은月初和尙의美擧에對하야 稱頌이藷藉하
0054_0055_b_07L다더라 (開運)
0054_0055_b_08L李鍾天君薦度式
0054_0055_b_09L去十一月十一日午前十時에 市內覺皇敎堂
0054_0055_b_10L에서는在京佛敎書年會員及法侶가 集會하야
0054_0055_b_11L故春城李鍾大君의薦度式을行하얏다더라
0054_0055_b_12L佛專秋季修學旅行
0054_0055_b_13L崇一洞佛敎專修學校에서는 秋期修學旅行
0054_0055_b_14L團을組織하고 去十月二十三日에江田俊雄、
0054_0055_b_15L曹學乳両先生引率下에 二十六名의學生이南
0054_0055_b_16L鮮地方을見學하고 十一月二日에 還着하엿
0054_0055_b_17L다다라
0054_0055_b_18L朝鮮佛敎僧侶大會
0054_0055_b_19L 發起人期成討議
0054_0055_b_20L去十一月十四日에는市內壽松洞
0054_0055_b_21L覺皇寺內에서在京僧侶有志代表委
0054_0055_b_22L員이會合하야朝鮮佛敎僧侶大會發
0054_0055_b_23L起人會期成을討議하고各本山에對
0054_0055_b_24L하야發起人을起送하라는公文을發
0054_0055_b_25L送하기로하엿다더라
0054_0055_b_26L○住持異動
0054_0055_b_27L異動年月日異動事由 所在地 寺刹名 住持氏名
0054_0055_b_28L昭和三年五月卅日再任 京畿道高陽郡恩平面 守國寺 洪月初
0054_0055_b_29L同同 同 水原郡日荊面 靑蓮庵 趙寶成
0054_0055_b_30L同 六月九日同 同 振威郡玄德面 深福寺 黃基亨
0054_0055_b_31L同 七月十三日同 同 水原郡陰德面 鳳林寺 金相鉉
0054_0055_b_32L同▣▣ 六月二日同 忠北 堤川郡寒水面 德周寺 姜元準
0054_0055_b_33L同 二年十一月廿日滿期 忠南 公州郡州外面 靈隱寺 朴松月
0054_0055_b_34L同三年五月二十八日就職 同 李性海
0054_0055_b_35L同 七月三日同 同 唐津郡高大面 聖堂寺 金玄鎬
0054_0055_b_36L同 五月十五日再任 全北 錦山郡濟原面 身安寺 黃碧應
0054_0055_b_37L同二年十一月十六日滿期 全北 益山郡礪山面 南原寺 李惠雲
0054_0055_b_38L同 三年六月七日就職 同 同 具永善
0054_0055_b_39L同再任 同 鎭安郡程川面 天皇寺 朴世永
0054_0055_b_40L同 二十一日同 同 益山郡金馬面 獅子庵 廉太燮
0054_0055_b_41L同 十八日同 同 錦山郡福壽面 彌勒寺 黃梵仁
0054_0055_b_42L同 二年十二月三日滿期 同 高敞郡古水面 文殊寺 宋宗憲
0054_0055_b_43L同 三年六月廿一日就職 同 同 安辰德
0054_0055_b_44L同 五日再任 全南 光州郡池漢面 藥師庵 朴秉芸
0054_0055_b_45L同 二十日同 同 羅州郡南平面 竹林寺 李昌玟
0054_0055_b_46L同 四月二十日滿期 同 和順郡內南面 維摩寺 金海隱
0054_0055_b_47L同 六月廿一日就職 同 同 吳浩然
0054_0055_b_48L同 二十五日再任 同 高興郡豆原面 修道庵 安宥文
0054_0055_b_49L同 三月五日滿期 慶北 聞慶郡加恩面 鳳巖寺 尹世煜
-
0054_0056_a_01L同 五月十一日就職 同 同 孫慶宣
0054_0056_a_02L同 二十二日再任 同 淸道郡華陽面 竹林寺 河亘林
0054_0056_a_03L大正十五年十月卅日辭職 同 尙州郡尙州面 龍興寺 梁然翁
0054_0056_a_04L昭和三年六月七日就職 同 同 金世寅
0054_0056_a_05L大正十年九月廿二日死亡 同 黃嶺寺 金慧翁
0054_0056_a_06L昭和三年六月七日就職 同 同 黃道虗
0054_0056_a_07L同 二年九月二日滿期 同 安東郡安東面 西岳寺 梁普仁
0054_0056_a_08L同 三年六月九日就職 同 同 朴來成
0054_0056_a_09L同 十七日滿期 同 西後面 鳳停寺 金敬文
0054_0056_a_10L同 十八日就職 同 同 金光俊
0054_0056_a_11L同 三月九日辭職 同 慶山郡瓦村面 元曉庵 金尙儀
0054_0056_a_12L同 六月十九日就職 同 同 沈霽山
0054_0056_a_13L同 二十日再任 同 榮州郡豊基面 毘盧寺 朴泛船
0054_0056_a_14L同 二年七月廿一日辭職 同 安東郡西後面 廣興寺 金昊旻
0054_0056_a_15L同 三年六月廿日就職 同 同 趙道奉
0054_0056_a_16L同二年十二月十七日滿期 同 達城郡月背面 臨休寺 白一波
0054_0056_a_17L同 三年七月五日就職 同 同 朴敬胤
0054_0056_a_18L同二年十一月二十八日辭職 同 靑松郡東 面 大典寺 金震宇
0054_0056_a_19L同 三年七月十六日就職 同 同 金五俊
0054_0056_a_20L同再任 同 聞慶郡籠岩面 石泉庵 金敎煥
0054_0056_a_21L同同 同 戶西南面 雲巖寺 尹應善
0054_0056_a_22L同 二月十三日辭職 同 奉化郡春陽面 覺華寺 朴大鉉
0054_0056_a_23L同 七月十七日就職 同 同 崔尙天
0054_0056_a_24L同 十八日再任 同 榮州郡平恩面 陳月寺 梁普貞
0054_0056_a_25L同 三月二十五日辭職 慶南 統營郡光道面 安靜寺 宋圓明
0054_0056_a_26L同 五月二十六日就職 同 同 黃連祚
0054_0056_a_27L同 二年十月十五日滿期 同 蔚山郡下廂面 玉泉庵 金鍾淳
0054_0056_a_28L同 三年五月廿九日就職 同 同 林說雲
0054_0056_a_29L同 六月廿三日再任 同 上北面 蜜蜂庵 李暎明
0054_0056_a_30L同滿期 同 晉州郡晉州面 護國寺 徐月荷
0054_0056_a_31L同 七月十日就職 同 同 李鍾根
0054_0056_a_32L同 四月二十八日再任 黃海道黃州郡州南面 上院庵 李寶潭
0054_0056_a_33L同 二年九月十九日滿期 同 信川郡南部面 慈惠寺 李貞煥
0054_0056_a_34L同 三年六月廿九日就職 同 同 方海眼
0054_0056_a_35L同 五月廿三日兼務鮮職 平南順川郡聖山面 觀音寺 高崙玉
0054_0056_a_36L同就職 同 同 金聳荷
0054_0056_a_37L同 六月十一日再任 同 安州郡東 面 圓寂寺 桂明道
0054_0056_a_38L同同 同 安州面 龍華寺 張南湖
0054_0056_a_39L同 七月十三日同 同 大同郡林原面 頭陀寺 安月影
0054_0056_a_40L同 五月十日同 江原道襄陽郡郡內面 靈穴寺 崔景熏
0054_0056_a_41L同 二年十二月十日滿期 同 三陟郡近德面 靈隱寺 趙會曇
0054_0056_a_42L同同 同 大願庵 同 人
0054_0056_a_43L同同 同 三聖庵 同 人
0054_0056_a_44L同 三年五月十日就職 同 靈隱寺 金汶▣
0054_0056_a_45L同同 同 大願庵 同 人
0054_0056_a_46L同同 同 三聖庵 同 人
0054_0056_a_47L同 二年八月五日滿期 同 鐵原郡新西面 聖住庵 李鎭學
0054_0056_a_48L同 二年六月三日就職 同 同 鄭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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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56_b_01L同 四月十三日滿期 局 東松面 到彼岸寺 洪月運
0054_0056_b_02L同 六月三日就職 同 同 全義權
0054_0056_b_03L同 五月三十日滿期 同 高城郡新上面 神溪寺 金坦月
0054_0056_b_04L同 六月十九日就職 同 同 金海雲
0054_0056_b_05L大正十五年八月二十三日滿期 同 原州郡板富面 國亨寺 徐皓峰
0054_0056_b_06L昭和三年七月四日就職 同 同 金永根
0054_0056_b_07L大正十五年八月二十三日滿期 同 原州面 立石庵 徐皓峰
0054_0056_b_08L昭和三年七月四日就職 同 同 金永根
0054_0056_b_09L同 五月四日滿期 咸南 德源郡府內面 明寂寺 全錦溟
0054_0056_b_10L同就職 同 同 嚴奇性
0054_0056_b_11L同 二十五日同 同 定平郡廣德面 親見臺 權水根
0054_0056_b_12L同就職 同 同 安相石
0054_0056_b_13L同 六月二十日滿期 同 高山面 曹溪寺 權水根
0054_0056_b_14L同就職 同 同 安相石
0054_0056_b_15L同 七月十一日滿期 同 三水郡好仁面 重興寺 吉昇明
0054_0056_b_16L同就職 同 同 金德然
0054_0056_b_17L同 十六日滿期 同 咸興郡德川面 興復庵 柳寶庵
0054_0056_b_18L同就職 同 同 李錦厚
0054_0056_b_19L同 七月二十四日滿期 同 安邊郡文山面 內院庵 崔煥虗
0054_0056_b_20L同同 同 香積庵 同 人
0054_0056_b_21L同同 同 安養庵 同 人
0054_0056_b_22L同同 同 白蓮庵 同 人
0054_0056_b_23L同同 同 普門庵 同 人
0054_0056_b_24L同同 同 三遂庵 同 人
0054_0056_b_25L同就職 同 內院庵 張河麗
0054_0056_b_26L同同 同 香積庵 同 人
0054_0056_b_27L同同 同 安養庵 同 人
0054_0056_b_28L同同 同 白蓮庵 同 人
0054_0056_b_29L同同 同 普門庵 同 人
0054_0056_b_30L同同 同 三遂庵 同 人
0054_0056_b_31L同 十九日再任 京畿道楊州郡瓦阜面 水鍾寺 李普仁
0054_0056_b_32L同同 開城郡進鳳面 玉泉寺 趙昌佑
0054_0056_b_33L同同 同 嶺北面 大興寺 張菊瀅
0054_0056_b_34L同二年十一月十七日滿期 同 江華郡府內面 靑蓮寺 崔明振
0054_0056_b_35L同 三年八月十五日就職 同 同 沈元根
0054_0056_b_36L同 二年一月十一日辭職 同 高陽郡神道面 興國寺 李法輪
0054_0056_b_37L同 三年八月廿九日就職 同 同 全海松
0054_0056_b_38L同 五月二十一日死亡 同 坡州郡坡平面 彌陀寺 林龍雲
0054_0056_b_39L同 八月三十一日就職 同 同 金石霽
0054_0056_b_40L同 六月二十日辭職 同 富川郡永宗面 龍宮寺 金海月
0054_0056_b_41L同 八月三十一日就職 同 同 金聖業
0054_0056_b_42L同 二年八月七日辭職 同 開城郡嶺北面 觀音寺 房暎霞
0054_0056_b_43L同 三年九月六日就職 同 同 金敬峰
0054_0056_b_44L同 七月十三日再任 忠北 永同郡永同面 重華寺 韓步盧
0054_0056_b_45L同 二年八月十八日滿期 慶北 醴泉郡上里面 鳴鳳寺 林待牛
0054_0056_b_46L同 三年八月十七日就職 同 同 權賛元
0054_0056_b_47L同 二年十月廿三日滿期 同 慶州郡山內面 金剛庵 金倚典
0054_0056_b_48L同 三年七月廿五日就職 同 同 鄭秉允
-
0054_0057_a_01L同 廿六日再任 同 西 面 朱砂庵 朴大崙
0054_0057_a_02L同 二十八日同 同 金泉郡開寧面 鷄林寺 尹相範
0054_0057_a_03L同同 同 永川郡新寧面 修道寺 金天祐
0054_0057_a_04L同同 同 富貴庵 朴亘千
0054_0057_a_05L同 二年十一月三日滿期 同 眞佛庵 池石潭
0054_0057_a_06L同三年七月二十八日就職 同 同 金霞宇
0054_0057_a_07L同 二年十一月三日滿期 同 淸道郡角北面 湧泉寺 白虎山
0054_0057_a_08L同 三年八月九日就職 同 同 白尙連
0054_0057_a_09L同 七月廿四日滿期 同 奉化郡鳳城面 中臺庵 金海恩
0054_0057_a_10L同 八月十一日就職 同 同 權雲燮
0054_0057_a_11L同二年十月二十八日滿期 同 軍威郡義興面 水泰庵 金在訓
0054_0057_a_12L同三年八月十一日就職 同 同 崔寅賛
0054_0057_a_13L同二年十一月二十七日滿期 同 義城郡安平面 雲嵐庵 李萬愚
0054_0057_a_14L同 三年八月廿三日就職 同 同 南玟俊
0054_0057_a_15L大正十五年十月十八日滿期 同 新平面 地藏寺 金藏善
0054_0057_a_16L昭和 三年九月三日就職 同 同 鄭在基
0054_0057_a_17L大正十五年十月廿日就職 同 榮州郡豊基面 喜方寺 李震雲
0054_0057_a_18L昭和 三年九月三日就職 同 同 金法曄
0054_0057_a_19L同 四日再任 同 高靈郡林泉面 盤龍寺 鄭啓宗
0054_0057_a_20L大正四年一月廿三日滿期 同 榮州郡豊基面 留石寺 金海雲
0054_0057_a_21L昭和三年 九月四日就職 同 同 李舞峰
0054_0057_a_22L同 八月十四日再任 黃海道載寧郡花山面 縣 庵 金昇煥
0054_0057_a_23L同 九月三日滿期 同 殷栗郡一道面 圓井寺 金秉權
0054_0057_a_24L同 四日就職 同 同 金法輸
0054_0057_a_25L同滿期 同 信川郡草里面 落山庵 朴慧明
0054_0057_a_26L同 五日就職 同 同 高致凡
0054_0057_a_27L同 六月十一日再任 平南道价川郡北 面 內院庵 康夏榮
0054_0057_a_28L同 七月二日同 同 中和郡水山面 深谷寺 金範河
0054_0057_a_29L同同 同 靑龍寺 崔世龜
0054_0057_a_30L同 四月二日觧職 同 寧遠郡永藥面 雲祥庵 趙莊芸
0054_0057_a_31L同同 同 三德庵 同
0054_0057_a_32L同同 同 五雲庵 同
0054_0057_a_33L同同 同 隱寂庵 同
0054_0057_a_34L同 七月二日就職 同 雲祥庵 李禹善
0054_0057_a_35L同同 同 三德庵 同
0054_0057_a_36L同同 同 五雲庵 同
0054_0057_a_37L同同 同 隱寂庵 同
0054_0057_a_38L同 二十日觧職 同 中和郡中和面 吉祥寺 元亨俊
0054_0057_a_39L同 九月四日就職 同 同 李敞榮
0054_0057_a_40L同 七月五日解職 同 寧遠郡成龍面 成龍寺 金德云
0054_0057_a_41L同同 同 雲興寺 同
0054_0057_a_42L同同 同 月窟庵 同
0054_0057_a_43L同 八月二十五日就職 同 成龍寺 黃永燦
0054_0057_a_44L同同 同 雲興寺 同
0054_0057_a_45L同同 同 月窟庵 同
0054_0057_a_46L同滿期 同 大同郡龍山面 法雲庵 李普和
0054_0057_a_47L同就職 同 同 元亨俊
0054_0057_a_48L同 二年八月二日觧職 江原道淮陽郡蘭谷面 鳳逸寺 朴鳴煥
-
0054_0057_b_01L同三年七月二十四日就職 同 同 柳成敏
0054_0057_b_02L同 二十五日再任 同 洪川郡東 面 壽陀寺 鯖仁牧
0054_0057_b_03L同同 同 玉水庵 同
0054_0057_b_04L同同 同 麟蹄郡北 面 百潭寺 李基鎬
0054_0057_b_05L同同 同 永矢庵 同
0054_0057_b_06L同同 同 五歲庵 同
0054_0057_b_07L同同 同 鳳頂庵 同
0054_0057_b_08L同同 同 圓明庵 同
0054_0057_b_09L同 八月十四日辭職 咸南 洪原郡甫靑面 興德庵 金祥珍
0054_0057_b_10L同就職 同 同 李允福
0054_0057_b_11L同再任 同 利原郡南 面 寶盛庵 李明鎭
0054_0057_b_12L同 二十四日滿期 同 端川郡新浦面 楸坡寺 金守巖
0054_0057_b_13L同就職 同 同 金萬城
0054_0057_b_14L(已上昭和三年十月二十二日官報)
0054_0057_b_15L○布敎擔任者變更屆
0054_0057_b_16L屆出年月日昭和三年四月二日
0054_0057_b_17L所屬敎宗派及布敎所의名稱朝鮮寺刹妙香山普賢寺寧邊布敎所
0054_0057_b_18L所在地平北寧邊郡寧邊面東部洞
0054_0057_b_19L舊擔任氏名朴無着
0054_0057_b_20L新擔任者住所氏名平北寧邊都普賢寺鄭義山
0054_0057_b_21L○
0054_0057_b_22L屆出年月日昭和三年四月十八日
0054_0057_b_23L所屬敎宗派及布敎所의名稱朝鮮寺刹元山府山祭洞大本山釋王寺布敎所
0054_0057_b_24L所在地咸南元山府山祭洞二一
0054_0057_b_25L舊擔任者氏名朴景淳
0054_0057_b_26L新擔任者住所氏名咸南元山府山祭洞二一 金▣翰
0054_0057_b_27L(已上昭和三年十月二十二日官報)
0054_0057_b_28L○布敎屆
0054_0057_b_29L屆出年月日昭和三年七月二十三日
0054_0057_b_30L屬敎宗派所朝鮮寺刹
0054_0057_b_31L布敎者의住所氏名咸北鏡城郡羅南面生駒町七○ 崔性眞
0054_0057_b_32L○
0054_0057_b_33L屆出年月日同七月二十五日
0054_0057_b_34L所屬敎宗派朝鮮寺刹
0054_0057_b_35L布敎者의住所氏名京畿道廣州郡彦州面奉恩寺 金瑢泰
0054_0057_b_36L(已上昭和三年十月二十二日官報)
0054_0057_b_37L○寺有土地賣却許可
0054_0057_b_38L許可年月日十月二十四日
0054_0057_b_39L賣却의目的東海線北部鐵道用地에編入키爲하야
0054_0057_b_40L賣却할土地安邊郡安道面中坪里四三七의二番地畓三七九坪
0054_0057_b_41L出願人咸鏡南道安邊郡文山面釋王寺住持 張河應
0054_0057_b_42L(已上昭和三年十一月五日官報)
0054_0057_b_43L○本末寺法中改正認可
0054_0057_b_44L江原道高城郡梧垈面 乾鳳寺本末寺法中改正의 件十月二十四日認可
0054_0057_b_45L하다
0054_0057_b_47L(已上昭和三年十一月五日官報)
-
0054_0058_a_01L朝鮮佛敎僧侶大會發起會會錄(附錄二)
0054_0058_a_02L昭和三年十一月三十日上午十時부터同十二月一日
0054_0058_a_03L下午三時까지京城府壽松洞覺皇敎堂에서朝鮮佛敎僧
0054_0058_a_04L侶大會發起會를開催하얏는데그議程順序는如左하다
0054_0058_a_05L一、開 會
0054_0058_a_06L一、會員檢告
0054_0058_a_07L一、司會選擧及書記、査察指定
0054_0058_a_08L一、發起準備經過報告
0054_0058_a_09L一、趣旨演說
0054_0058_a_10L一、意見聽取
0054_0058_a_11L一、大會의討議事項及其範圍
0054_0058_a_12L一、大會員의資格
0054_0058_a_13L一、大會召集期日
0054_0058_a_14L一、大會準備委員選擧
0054_0058_a_15L一、其他事項
0054_0058_a_16L一、閉 會
0054_0058_a_17L一、開會及會員檢告
0054_0058_a_18L發起會準備委員中都鎭鎬氏가登壇하야開會한後同
0054_0058_a_19L委員金法麟氏가左記한發起承諾會員을檢告하다
0054_0058_a_20L朴漢永(京城) 欠席 金法龍 (京城) 同 趙殷澤 (京城) 欠席
0054_0058_a_21L宋宗憲同 同 姜在源 同 同 姜正龍 同 同
0054_0058_a_22L金包光同 出席 金泰洽 同 同 金石頭 同 出席
0054_0058_a_23L姜大蓮同 同 曹學乳 同 同 鄭樂英 同 同
0054_0058_a_24L吳梨山同 同 劉二淸 同 同 金法麟 同 同
0054_0058_a_25L權相老同 同 金洛淳 同 出席 羅晴湖 (廣州奉恩寺) 欠席
0054_0058_a_26L都鎭鎬同 同 張龍瑞 同 同 姜性仁 同 出席
0054_0058_a_27L白性郁同 同 金敬弘 同 同 金性琬 同 欠席
-
0054_0058_b_01L朴心月(廣州奉恩寺) 出席 金擎山 (東萊梵魚寺) 欠席 宋雪牛 (梁山通度寺) 欠席
0054_0058_b_02L金晶海(江華傳燈寺) 同 金尙昊 同 同 金雪巖 同 同
0054_0058_b_03L尹貫河(迎日寶鏡寺) 欠席 奇石虎 同 出席 黃耕雲 同 同
0054_0058_b_04L沈寶淵同 同 金相琦 (金海長遊庵) 欠席 朴雲堤 同 出席
0054_0058_b_05L林鍾灝(尙州南長寺) 同 金雨潭 同 同 李混惺 (高城楡岾寺) 欠席
0054_0058_b_06L朴尙遜同 出席 孫宗炫 (河東雙溪寺) 同 朴世榮 同 出席
0054_0058_b_07L李敬玉(昌原聖住寺) 欠席 孫基炯 同 出席 韓普淳 (公州麻谷寺) 同
0054_0058_b_08L金海雲(高城神溪寺) 同 張河應 (安邊釋王寺) 欠席 安香德 同 欠席
0054_0058_b_09L崔高峰同 出席 吳時勸 同 出席 具寬泳 同 出席
0054_0058_b_10L李應涉(水原龍珠寺) 同 金聖業 (富川龍宮寺) 欠席 劉在炫 (固城玉泉寺) 欠席
0054_0058_b_11L李甲得同 同 李晟觀 同 同 李寶潭 (黃州成佛寺) 出席
0054_0058_b_12L趙印海同 欠席 崔仁澤 (聞慶金龍寺) 欠席 金雲岳 (通川龍貢寺) 欠席
0054_0058_b_13L朴檜潤(統營龍華寺) 同 金應明 同 同 金載奎 (信川月精寺) 同
0054_0058_b_14L柳晩灝同 出席 李炳浩 同 同 吳澤彥 (晋州布敎堂) 同
0054_0058_b_15L羅日溄(公州新元寺) 欠席 金敎煥 同 出席 梁武弘 (馬山布敎堂) 同
0054_0058_b_16L羅慶華同 同 沈德潤 (高陽開運寺) 欠席 鄭聚昕 (慶州祗林寺) 同
0054_0058_b_17L崔蘗山(信川貝葉寺) 同 尹四吉 同 同 權尙衍 (義城孤雲寺) 同
0054_0058_b_18L李範大同 同 鄭德化 (榻州普光寺) 同 楊渾虛 (永川銀海寺) 同
0054_0058_b_19L方海眼同 同 崔慧照 同 同 李敬明 同 出席
0054_0058_b_20L柳錦海(長城白羊寺) 欠席 李淨祿 同 出席 河允實 同 同
-
0054_0059_a_01L玄懿龍(淮陽長安寺) 欠席 千性愚 (陜川海印寺) 出度 黃金峰 (高城乾鳳寺) 欠席
0054_0059_a_02L裵錦峯同 同 康啓龍 (楊州奉先寺) 同 曹東庵 同 同
0054_0059_a_03L金賛儀(順天松廣寺) 同 鄭孟逸 (統營安靜寺) 出席 黃普應 (達城桐華寺) 同
0054_0059_a_04L林綺山同 同 李鍾郁 (平昌月精寺) 同 李月泳 (順天仙岩寺) 同
0054_0059_a_05L李淳弘同 出席 吳京律 (咸陽靈源寺) 欠席 朴夢惺 (南海龍門寺) 同
0054_0059_a_06L梁然翁(聞慶大乘寺) 同 朴鏡海 (南海花芳寺) 同 鄭仁權 同 同
0054_0059_a_07L李古鏡(陜川海印寺) 同 金瑛周 同 同
0054_0059_a_08L白景霞同 欠席 李大蓮 (高城乾鳳寺) 同
0054_0059_a_09L 有故欠席會員中李混惺、宋宗憲、鄭聚昕三氏는吳
0054_0059_a_10L梨山氏의게 劉在炫氏는姜正龍氏의게 金相琦氏는
0054_0059_a_11L金相昊氏의게 吳京律氏는金包光氏의게 崔仁澤氏
0054_0059_a_12L는金敎煥氏의게 李敬玉氏는趙殷澤氏의게 李晟觀
0054_0059_a_13L金聖業兩氏는金晶海氏의게 裴錦峯氏는白性郁氏의
0054_0059_a_14L게各各發起會에對한一切權利를委任하얐음으로此를
0054_0059_a_15L報告하다。
0054_0059_a_16L一、司會選擧及書記、查察指定
0054_0059_a_17L司會는金晶海氏의口頭呼薦으로權相老氏、副司會
0054_0059_a_18L는朴雲堤氏의口頭呼薦으로都鎭鎬氏가被選되다。
0054_0059_a_19L 司會의指定으로書記는金泰洽、金法麟兩氏、査察
0054_0059_a_20L은吳時勸、金法龍兩氏가被選되다。
0054_0059_a_21L一、發起凖備經過報告
0054_0059_a_22L發起會準備委員中金法麟氏가如左한經過를報告하
0054_0059_a_23L다。
0054_0059_a_24L1、朝鮮佛敎僧侶大會發起會準備會
0054_0059_a_25L 昭和三年十一月十一日下午에京城府壽松洞覺皇敎
0054_0059_a_26L堂에서在京有志僧侶들이會合懇談하야朝鮮佛敎의中
0054_0059_a_27L央機關의組織及敎憲의制定을爲하야朝鮮佛敎僧侶大
0054_0059_a_28L會를開催키로決議하고同會發起會準備委員十一名을
0054_0059_a_29L口頭呼選하다。
0054_0059_a_30L出席會員
-
0054_0059_b_01L吳梨山、金石頭、權相老、金包光、白性郁、都鎭鎬
0054_0059_b_02L金晶海、曹學乳、金泰洽、劉二淸、金尙昊、李應涉
0054_0059_b_03L金洛淳、金敬弘、趙殷澤、姜正龍、金法麟
0054_0059_b_04L發起會準備委員
0054_0059_b_05L權相老、金包光、都鎭鎬、白性郁、吳梨山、金尙昊
0054_0059_b_06L金晶海、曹學乳、金敬弘、金泰洽、金法麟
0054_0059_b_07L2、第一回發起準備委員會
0054_0059_b_08L 同日下午四時에第一回發起準備委員會가開催되야
0054_0059_b_09L制憲에關한材料蒐集과發起會召集의方法에對하야討
0054_0059_b_10L議한結果如左한委員이選定되다。
0054_0059_b_11L制憲委員
0054_0059_b_12L金包光、權相老、都鎭鎬、白性郁、金敬弘、金泰洽
0054_0059_b_13L吾梨山、金品海、金法麟
0054_0059_b_14L召集委員
0054_0059_b_15L金晶海、金尙昊、吳梨山、曹學乳、權相老
0054_0059_b_16L3、第二回發起準備委員會
0054_0059_b_17L 昭和三年十一月十四日上午二時에覺皇寺에서第二
0054_0059_b_18L回發起準備委員會가開催되여發起會의期日及召集文
0054_0059_b_19L作成에對하야討議한結果如左히决定하다。
0054_0059_b_20L一、發起會의期日 昭和三年十一月三十日
0054_0059_b_21L一、召集文의作成은委員都鎭鎬氏의게委任하다。
0054_0059_b_22L4、第三回發起委員會
0054_0059_b_23L 昭和三年十一月廿五日下午二時에覺皇寺에서第三
0054_0059_b_24L回發起準備委員會가開催되여發起會召集文의發送及
0054_0059_b_25L發起人承諾、推薦、委任의狀况에對한經過報告가있
0054_0059_b_26L은後發起會의開催에對한事務를分掌키爲하야如左의
0054_0059_b_27L委員을選定하다。
0054_0059_b_28L 但 金尙昊氏는有故辭免함으로金法龍氏를補選하
0054_0059_b_29L다。
0054_0059_b_30L一、宗憲起草準備委員 權相老、金包光
0054_0059_b_31L一、交涉委員 都鎭鎬、白性郁
0054_0059_b_32L一、接待委員 金泰洽、都鎭鎬、金法龍
0054_0059_b_33L一、發起會順序作成委員 都鎭鎬、金法麟
0054_0059_b_34L一、趣旨演說
0054_0059_b_35L 發起凖備委員白性郁氏가登壇하야趣旨를演說하니
0054_0059_b_36L其槪要를擧하건대
0054_0059_b_37L 今番朝鮮佛敎僧侶大會發起會開催로말하면宗憲의
0054_0059_b_38L制定、中央敎務院憲章及僧尼法規의制定이根本目的
0054_0059_b_39L이라하겟슴니다。朝鮮僧侶가從來에一定한內規가없
-
0054_0060_a_01L는까닭으로對內的으로는各自分立의狀態에있어서敎
0054_0060_a_02L運의統一的發展을計圖치못하얏스며僧侶自身이自己
0054_0060_a_03L의使命과地位를認識할수없음으로今日에와서如何한
0054_0060_a_04L階級의僧侶를勿論하고如斯한組織이一日이라도速히
0054_0060_a_05L實現되기를要望하는바이며對外的으로는佛陀의眞理
0054_0060_a_06L를宣揚하야救度衆生의大精神을發揮치못함으로敎團
0054_0060_a_07L의社會的威信과存在가날로墮落되며沒却되는것을敎
0054_0060_a_08L徒一般이痛嘆하는바이외다。以上의根本動機外에敎
0054_0060_a_09L育、布敎、綱紀等에對한年來의懸案을이統一的新精
0054_0060_a_10L神下에서討議解决하자는것이외다。
0054_0060_a_11L一、意見聽取
0054_0060_a_12L議長、登壇하야會員의게意見陳述을宣言하다。
0054_0060_a_13L此意見聽取에對하야여러會員이累累히陳述한바
0054_0060_a_14L있으나一定한見體的意見이업섯는故로發起會準
0054_0060_a_15L備委員이內定한討議事項範圍內에서逐條討議하
0054_0060_a_16L기로한바討議事項은左記와如하다。
0054_0060_a_17L大會의討議事項의範圍
0054_0060_a_18L一、宗憲制定
0054_0060_a_19L二、中央敎務院憲章制定
0054_0060_a_20L三、僧尼法規制定
0054_0060_a_21L四、敎育에對한根本方針
0054_0060_a_22L1、修禪社와敎學藏의問題
0054_0060_a_23L2、朝鮮佛敎中央圖書舘의設置
0054_0060_a_24L3、佛敎學會의組織과年報의刋行
0054_0060_a_25L4、留學生의監督方針
0054_0060_a_26L五、布敎에對한根本策
0054_0060_a_27L1、信者本位의方針
0054_0060_a_28L2、布敎書籍의纂刋
0054_0060_a_29L3、中央敎堂의擴張
0054_0060_a_30L六、財政에對한根本策
0054_0060_a_31L1、山林에對한問題
0054_0060_a_32L2、僧尼財產의相續問題
0054_0060_a_33L3、僧尼의義務金에對한方策
0054_0060_a_34L七、社會事業에對한問題
0054_0060_a_35L1、農村의敎化問題
0054_0060_a_36L2、罹災及貧窮의救濟
0054_0060_a_37L八、綱紀肅淸의根本策
0054_0060_a_38L1、僧籍調査에對한問題
0054_0060_a_39L2、私設寺院及布敎所에對한處置方針
-
0054_0060_b_01L九、佛敎靑年運動의擁護策
0054_0060_b_02L十、世界佛敎運動에對한態度
0054_0060_b_03L議長、十二時十分으로午後一時까지休憩를宣言하다
0054_0060_b_04L午後一時開會
0054_0060_b_05L議長、權相老氏가事故로因하야欠席함으로副議長都
0054_0060_b_06L鎭鎬氏가司會하다。
0054_0060_b_07L一、宗憲制定
0054_0060_b_08L二、中央敎務院憲章制定
0054_0060_b_09L三、僧尼法規制定
0054_0060_b_10L吳時勸氏 一、宗憲制定 二、中央敎務院憲章制定
0054_0060_b_11L三、僧尼法規制定의三案에對하야發起會準備委
0054_0060_b_12L員의說明을要求하니具寬泳氏의動議와河允實氏
0054_0060_b_13L의再請으로可决되다。
0054_0060_b_14L議長、發起會凖備委員中白性郁氏의게三案에對한說
0054_0060_b_15L明을要하다。
0054_0060_b_16L白性郁氏의說明에對하야異議가업슴으로三案이
0054_0060_b_17L無事通過되다。
0054_0060_b_18L四、敎育에對한根本方針
0054_0060_b_19L白性郁氏 敎育에對한根本方針에對하야一、二、三、
0054_0060_b_20L四、項을逐條說明하다。
0054_0060_b_21L鄭孟逸氏 敎育에對한根本方針에對하야一、二、三、
0054_0060_b_22L四、項이不充分하니敎育機關施設의件을添加해
0054_0060_b_23L주기를動議하다。
0054_0060_b_24L白性郁氏 地方及中央敎育事業의管理의件이라고文
0054_0060_b_25L句를修正하고再請하다。
0054_0060_b_26L此에對하야異議가업슴으로一致可决되다。
0054_0060_b_27L五、布敎에對한根本策
0054_0060_b_28L白性郁氏 布敎에對한根本策에對하야一、二、三、
0054_0060_b_29L項을逐條說明하다。
0054_0060_b_30L河允實氏 布敎方針統一의件이란項目을添加하자고
0054_0060_b_31L意見을陳述하니朴雲堤氏가動議하고崔高峯氏가
0054_0060_b_32L再請하다。
0054_0060_b_33L姜性仁氏 此條項目添加의必要가업다고改議하니金
0054_0060_b_34L晶海氏가動議하고金洛淳氏가再請하다。
0054_0060_b_35L議長擧手로可决을問하니姜性仁氏改議에對하야半
0054_0060_b_36L數以上인故로河允實氏動議가否决되다。
0054_0060_b_37L六、財政에對한根本策
0054_0060_b_38L白性郁氏 財政에對한根本策에對하야一、二、三、
0054_0060_b_39L項을逐條說明하다。
-
0054_0061_a_01L此에對하야異議가업슴으로一致可决되다。
0054_0061_a_02L七、社會事業에對한問題
0054_0061_a_03L白性郁氏此問題에對하야一、二項을逐條說明하니
0054_0061_a_04L異議가업슴으로一致可决되다。
0054_0061_a_05L八、綱紀肅淸의根本策
0054_0061_a_06L白性郁氏 此問題의一、二項을逐條說明하다。
0054_0061_a_07L朴雲堤氏 第一項僧籍調査에對한問題란文句를僧籍
0054_0061_a_08L整理란文句로修正하기를提議하니劉二淸氏가動
0054_0061_a_09L議하고鄭孟逸氏가再請하다。
0054_0061_a_10L此에對하야異議가업슴으로一致可納되다。
0054_0061_a_11L九、佛敎靑年運動의擁護策
0054_0061_a_12L十、世界佛敎運動에對한態度
0054_0061_a_13L白性郁氏 此二問題에對하야逐條說明하다。
0054_0061_a_14L此에對하야異議가업슴으로無事可納되다。
0054_0061_a_15L議長 午後五時休會를宣言하다。
0054_0061_a_16L◎第二日
0054_0061_a_17L午前十時開會
0054_0061_a_18L一、大會員의資格
0054_0061_a_19L大會員의資格에對하야河允實氏의年齡制限說과韓
0054_0061_a_20L普淳氏의各本末寺評議會에서推薦된者로하자는意見
0054_0061_a_21L等多數異論이있엇스나金晶海氏의動議와李敬明氏의
0054_0061_a_22L再請으로各本末寺總會에서選擧한代表로써該總會의
0054_0061_a_23L代表인住持의信任狀을携帶한者로하기를擧手可決하
0054_0061_a_24L다。
0054_0061_a_25L 但會員의人數指定은大會準備委員의게一任하고學
0054_0061_a_26L生은除外키로하다。
0054_0061_a_27L一、大會召集의期日
0054_0061_a_28L大會召集의期日은金晶海氏의動議와劉二淸氏의再
0054_0061_a_29L請으로昭和四年一月三日로定하기로擧手可决되다。
0054_0061_a_30L一、大會凖備委員의選擧
0054_0061_a_31L左記한銓衡委員十一名을口頭呼選하야大會準備委
0054_0061_a_32L員三十一名을選定通過케하다。
0054_0061_a_33L銓衡委員
0054_0061_a_34L白性郁、奇石虎、朴雲堤、姜性仁、李應涉、李古鏡、
0054_0061_a_35L金泰洽、曹學乳、吳時勸、金晶海、李敬明
0054_0061_a_36L大會準備委員
0054_0061_a_37L權相老、都鎭鎬、宋宗憲、黃耕雲、吳梨山、李古鏡、
0054_0061_a_38L白性郁、金晶海、劉二淸、金包光、李應涉、奇石虎、
-
0054_0061_b_01L曹學乳、吳時勸、金法麟、金法龍、姜在源、朴雲▣、
0054_0061_b_02L韓普淳、裴容荷、崔▣峰、河允實、梁然翁、孫▣炯、
0054_0061_b_03L李淳弘、姜性仁、李寶潭、鯖孟逸、柳晩灝、金洛淳、
0054_0061_b_04L金泰洽
0054_0061_b_05L一、其他事項
0054_0061_b_06L大會準備經費에對하야朴雲堤氏의意見과奇石虎氏
0054_0061_b_07L의動議、鄭孟逸氏의再請으로凖備委員이中央敎務院
0054_0061_b_08L과各本山에臨時借用한後그償還方法은大會에서决定
0054_0061_b_09L키로可决하다。
0054_0061_b_10L一、閉會
0054_0061_b_11L劉二淸氏의特請으로下午三時에議長이閉會를宣言
0054_0061_b_12L하다。以上
0054_0061_b_13L朝鮮佛敎僧侶大會召集文
0054_0061_b_14L朔風이勁冽한此時에
0054_0061_b_15L法力의周護加被하심을입사와今般朝鮮佛敎僧侶大會
0054_0061_b_16L發起會를圓滿히進行하얏사온바朝鮮佛敎界에는今日
0054_0061_b_17L로自하야一道의瑞光이闖發되리라는自信과希望裡에
0054_0061_b_18L서當日의會塲은歡喜園으로莊嚴되얏사오며會議의結
0054_0061_b_19L果는別紙의發起會會錄과如히議决하야昭和四年一月
0054_0061_b_20L三日로써大會를開催하기로하엿사오니 貴本末寺에
0054_0061_b_21L此旨를通達하시며各議案을窮硏深究하시와豐富한腹
0054_0061_b_22L案을가지시고右期日에圓滿히臨席하시와朝鮮佛敎未
0054_0061_b_23L來千古의大猷를討定하시기丹忱으로써昻望하오며兼
0054_0061_b_24L하야
0054_0061_b_25L爲法葆愛하심을誠禱
0054_0061_b_26L昭和三年十二月二日
0054_0061_b_27L朝鮮佛敎僧侶大會準備委員長
0054_0061_b_28L權相老
0054_0061_b_29L追
0054_0061_b_30L一、各本山住持猊下는無漏히出席하시압
0054_0061_b_31L一、出席員의定數는各本末寺의統計上(住持外)每
0054_0061_b_32L百人에一人式을當本末寺總會에서選㧞하기로
0054_0061_b_33L하엿슴니다 (本末寺總僧數가百人未滿이되는
0054_0061_b_34L寺刹은百人으로看做)
0054_0061_b_35L一、本末寺總會에서被選된이는必히該總會代表者
0054_0061_b_36L의署印한信任狀을携帶하실일
0054_0061_b_37L一、被選人名簿만은本年十二月二十五日까지에預
0054_0061_b_38L히調製送交하야주시압
0054_0061_b_39L一、長衫及絡子를携帶하시압(洋服은此限에不在)
-
0054_0062_a_01L◎投稿大歡迎
0054_0062_a_02L政治와時事를除하고 一切의原稿를모다 歡迎함
0054_0062_a_03L니다 不敢하오나 嚴選하야入選되시니게는薄謝를
0054_0062_a_04L드리겟슴니다 (原稿는一切返還치안슴니다) 더욱이
0054_0062_a_05L佛敎思想啓發、佛敎信仰皷吹、佛敎에서늣긴것 (例
0054_0062_a_06L하면 前日에他宗敎를信仰하다가 如何한늣김으로
0054_0062_a_07L佛敎에歸依햇다는것、佛敎에歸依하기前後에달라진
0054_0062_a_08L感覺가튼것)을特別히歡迎함니다。
0054_0062_a_09L◎支分社募集
0054_0062_a_10L本社에서全鮮的으로 支社與分社를募集하겟사오
0054_0062_a_11L니 文社又는分社를設置코자하시는 意向이잇는분
0054_0062_a_12L이거던 返信料를添附하야 本社에一次問議하야주
0054_0062_a_13L소서
0054_0062_a_14L[판권지]
0054_0062_a_15L本誌先金
0054_0062_a_16L一個月 三十錢
0054_0062_a_17L六個月 一圓六十錢
0054_0062_a_18L一個月 三圓
0054_0062_a_19L(郵便切手는一割增收)
0054_0062_a_20L送料不要
0054_0062_a_21L昭和三年十一月卅日 印刷
0054_0062_a_22L昭和三年十二月一日 發行「佛敎」 第五十四號
0054_0062_a_23L「本號定價三十錢」 (送料不要)
0054_0062_a_24L京城府壽松洞四十四番地
0054_0062_a_25L編輯兼
0054_0062_a_26L發行人 權 相 老
0054_0062_a_27L京城府堅志洞三十二番地
0054_0062_a_28L印刷人 金 在 涉
0054_0062_a_29L京城府堅志洞三十二番地
0054_0062_a_30L印刷所 漢城圖書株式會社
0054_0062_a_31L京城府壽松洞四十四番地
0054_0062_a_32L發行所佛敎社
0054_0062_a_33L電話光化門一○二二番
0054_0062_a_34L振替口座京城五四八二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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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_0062_b_01L[광고]
0054_0062_b_02L讀者의便利◇本社의擴張
0054_0062_b_03L本社에서販賣部를設立하고書籍其他를準備하
0054_0062_b_04L야滿天下讀者의便宜를돕사오니本社를사랑하
0054_0062_b_05L시거던陸續히注文하시압소서
0054_0062_b_06L(營業種目)
0054_0062_b_07L一、新舊書籍
0054_0062_b_08L但、朝鮮內에서出版된書籍(舊白紙板을除함)이면 本社社友의
0054_0062_b_09L게는定價에一割引하야提供하며本社의附屬刋行物은社友의게半
0054_0062_b_10L額으로提供합니다
0054_0062_b_11L一、線香ㆍ念珠類
0054_0062_b_12L一、其他佛具等
0054_0062_b_13L京城府壽松洞四十四番地
0054_0062_b_14L佛敎社販賣部
0054_0062_b_15L電話光化門一○二二番
0054_0062_b_16L振替口座京城五四八二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