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역산집(櫟山集) / 暎虛堂遺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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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산집櫟山集
영허당유집 서문暎虛堂遺集序文
영허 스님의 시를 읽고 영허 스님의 글을 읽으면 영허 스님이라는 사람을 알 수 있다. 영허 스님은 순후하고 담박하며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힘쓰지 않아서 청정하고 현허玄虛한 경계에 몸을 편안히 두고, 텅 비어 넉넉하고 고요한 경지에 뜻을 정하여 질박하되 거칠지 않고, 조화롭되 속되지 않았다. 그리고 법에 대해 들은 것을 받들고 배운 것을 행하여 스스로 일가一家의 말을 이루어 『화엄경華嚴經』의 법을 오롯이 체현한 사람이 되었으니, 참으로 법문法門의 대종사大宗師이다. 그리고 명산대찰을 두루 편력하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무릇 유람하고 완상한 것들은 곧 시문詩文으로 발현해 내었다. 그 격률格律의 기이하고 고아함은 수려하고 진기한 바위산 같고 문체의 기세가 광대한 것은 드넓은 안개 물결 같았다. 풍월風月은 스님의 정회情懷요, 호산湖山은 스님의 기운이었으니, 이것들이 영허 스님의 시문이 된 것이다. 그러니 영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면 진실로 그 시문 가운데에서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스님은 보현普賢의 보좌에 배석陪席하고 가섭迦葉의 반열을 뒤좇아 무량無量한 경계에 들어가고, 초제招提1)의 문에 바짝 다가가 애당초 사물에 이끌리지 않고 유유히 고원高遠한 경지에 노닐면서 흉중에 한 점의 걸림도 없었다. 태평한 세상 속에 자유자재하였고, 맑고 조화로운 기운을 호흡하여 도가 완성되고 법이 완전해지자 도법을 지킴에 의혹됨이 없었다. 그리하여 부들방석 위에서 꼼짝하지 않고 좌선하면서 마음을 청정하게 하였으니, 진실로 정법삼매定法三昧요, 단박에 깨쳐 원각圓覺을 이룬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가슴속에 온축된 것들을 발휘하고 정묘한 광채를 수련한 것들이 진실로 스님의 시문과 필묵 사이에 있을 터이니, 길이 보존하여 썩지 않게 함이 마땅하다. 용암庸庵과 철요鐵鷂2)는 모두 스님의 의발을 전수받은 사람들로, 스님의 남은 풍광을 추모하여 유문遺文을 수습하여 장차 간행하려고 하면서 나에게 교정을 부탁하였다. 나는 본디 유학자이나 불가의 서적에 대해서도 평소 등한시하지 않고 대략 섭렵하였다.

010_0940_a_01L[櫟山集]

010_0940_a_02L暎虛堂遺集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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誦暎師詩讀暎師書可以知暎師之人
010_0940_a_05L淳古澹泊不務華飾安身乎淸淨
010_0940_a_06L玄虛之域宅志乎衷裕恬靜之鄕質而
010_0940_a_07L不野和而不俗尊所聞行所學自成
010_0940_a_08L一家之言而不失爲華嚴經卷中人
010_0940_a_09L法家之大宗師也名山巨刹足跡無有
010_0940_a_10L不徧凡所遊覽賞玩乃能發之爲詩文
010_0940_a_11L格律之奇古巖巒之秀異也體勢之
010_0940_a_12L汪洋烟波之浩漫也風月其情懷
010_0940_a_13L山其性氣則此其爲暎虛之詩若文
010_0940_a_14L求暎虛之人者固不在其中耶陪普贒
010_0940_a_15L之座追飮光之列入無量之界逼招
010_0940_a_16L提之門未始爲事物之牽引而悠悠然
010_0940_a_17L高鞱遠擧𦚾中無一點滯介康莊昇平
010_0940_a_18L呼吸淸和道成法全守之不惑塑坐
010_0940_a_19L蒲團心珠瀅澈眞箇是定法三昧頓
010_0940_a_20L悟而圓覺者也然則其攄發蘊奧修鍊
010_0940_a_21L精光亶在乎藻繪翰墨之間而宜其長
010_0940_a_22L存而不朽也庸庵鐵鷂俱以衣鉢之托
010_0940_a_23L追慕餘光抄輯遺文將付剞劂而請
010_0940_a_24L余讎校之余固儒學人也於法家書

010_0940_b_01L지금 이 문집을 보니, 조금만 보아도 그 전체의 맛을 알 수 있다. 이에 마침내 그 시말을 차례대로 서술하여 영허 스님의 유집遺集의 서문으로 삼는다.
계미년(1883, 고종 20) 12월 하순에 성환惺寰 김조영金祖永3)이 짓다.

010_0940_b_01L素不閑而略爲之涉獵矣今見此集
010_0940_b_02L則一臠可知全鼎之味遂次肇卒以爲
010_0940_b_03L映虛師遺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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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未臈月下澣惺寰金祖永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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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초제招提 : ⓢ caturdeŚa의 음역音譯으로, 사원寺院의 별칭이다.
  2. 2)용암庸庵과 철요鐵鷂 :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나, 『역산집』 권말의 문도 명단에 있는 용암 전우庸庵典愚와 철요 사문鐵鷂師文 두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3. 3)성환惺寰 김조영金祖永 :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나, 안창렬安昌烈의 『동려문집東旅文集』 권4 「송김공선철원서送金公善澈元序」의 내용에 따르면, 1881년(고종 18)에 조정의 개화 정책에 반대하면서 영남 유생들이 올린 「만인소萬人疏」의 소두疏頭가 되었다는 죄명으로 평안도 안변安邊으로 유배를 간 것으로 되어 있다. 『역산집』이 안변의 석왕사釋王寺에서 간행된 점을 미루어 보면, 김조영이 유배 시절에 용암과 철요 등의 청을 받고 서문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