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경암집(鏡巖集) / 鏡巖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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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암집鏡巖集
경암집 서鏡巖集序
지난겨울 경암 응윤鏡巖應允 대사의 뛰어난 제자인 팔관 상인八關上人이 와서 스님의 편지를 전했는데, 편지에 이르기를 “저는 곧 죽을 것인데 문도들이 한두 가지 거친 시문을 모아서 추파秋波 선사의 유집에 붙이려고 합니다. 아마도 어느 날 죽게 되면 금지하지 못할 것 같으니, 바라건대 붓으로 한 구절 내려 주시어 분수에 넘치는 일을 끊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나는 한창 약초에 관심이 있어서 사양하고 우선 훗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팔관 상인이 이제 또 와서 말하기를 “경암 스님이 정월 상순에 방장산方丈山1) 벽송암碧松菴에서 시적示寂하시고 열반하여 떠나셨으니 탑을 세우기를 도모합니다.”라고 하여, 서로 마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또 영찬影贊과 문집의 서문을 간청하였다.
나는 경암 스님과 문자로 방외의 교유를 의탁한 지 30년이 되었으니 어찌 노쇠하다고 하여 사양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선문의 지결旨訣을 알지 못하니 스님의 조예는 내가 말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우리 유학의 실천하는 공부에 준해 보면 스님은 진실로 인륜에 독실한 분이다. 대저 사제는 군신·부자의 인륜에 끼지 않지만 생삼사일生三事一2)의 의리는 옛 성현이 가르치고 행하던 바이니 도리어 그 높고 무거움이 어떠한가? 세상 사람이 이 도를 멸시하고 버린 지 오래다. 혹자는 말하기를 “경사의 구두만을 전습할 뿐이니 제자라 이를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혹자는 말하기를 “과거科擧의 문자만 가르칠 뿐이니 스승이라 이를 수 있겠는가?”라고 한다. 심지어는 등을 돌려 배척하고 무기를 잡아서 공격하여 초나라, 월나라보다 더 심한 지경에 이르니, 이는 다른 까닭이 없고 다만 이해를 따져 진퇴하는 데에 미혹되었을 뿐이다.
경암 스님은 총명하고 바르고 자상한 자태로 일찍 추파 대사의 장실丈室에 들어가 일심으로 귀의하여 종신토록 섬기었다. 두루 내전內典을 궁구하고

010_0424_a_01L[鏡巖集]

010_0424_a_02L1)鏡巖集序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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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冬鏡巖允大師之高足八關上人
010_0424_a_05L致其師書書曰山人朝夕且死門徒
010_0424_a_06L拾得一二蔬滓欲附先師遺集恐一朝
010_0424_a_07L唇合禁之不得乞以一筆句下以絕濫
010_0424_a_08L分之事余方關心藥褁謝以姑竢他日
010_0424_a_09L關上人今又來言師已以正月上旬
010_0424_a_10L寂於方丈山之碧松菴涅槃而行謀竪
010_0424_a_11L塔矣相對垂涕已又拜請影贊及文集
010_0424_a_12L余與師託方外之交於文字之間
010_0424_a_13L三十年矣烏可以衰耄辭然余不曉禪
010_0424_a_14L門旨訣師之造詣非余所能言而準
010_0424_a_15L以吾儒踐履之工師實篤於人倫者也
010_0424_a_16L夫師弟子不列於君臣父子之倫而生
010_0424_a_17L三事一之義古聖賢之所詔敎而服行
010_0424_a_18L顧其尊且重何如也世人之蔑棄此
010_0424_a_19L道久矣或者曰經史口讀之傳習而已
010_0424_a_20L弟子云乎哉或者曰科臼功令之敎授
010_0424_a_21L而已師云乎哉甚至背而斥之操戈
010_0424_a_22L而攻楚越之不若也此無他直眩於利
010_0424_a_23L害趨捨耳師以聦明雅祥之姿早入秋
010_0424_a_24L波之室一心歸依終身服事徧究內

010_0424_b_01L선교禪敎에 아울러 능통하여 불자拂子를 세우고 법좌에 오르시면 대중이 운집하였다. 자신은 양종兩宗(선종·교종)의 대종사가 되었는데 잠시라도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시어 첫째도 우리 스승, 둘째도 우리 스승이라고 우러러, 진영을 그리고 탑을 세우며 풀을 뽑고 잡목을 태우는 데 이르기까지 그 정성을 다하지 아니함이 없어 그 힘이 닿는 데까지 극진히 하셨다. 오늘날 유자儒者의 의관을 입고 입으로 주공과 공자의 말을 읊는 자가 경암 스님의 풍모를 듣고 나면 어찌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진실로 그 스승을 사랑하면서 그 어버이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그 어버이를 사랑하면서 그 군주를 사랑하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내가 이로써 경암 스님의 도가 충효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알았노라. 경암 스님의 계행戒行과 문학은 진실로 훗날에 전해질 것임을 의심할 것이 없다. 팔관 등 여러 상인들이 슬퍼하며 분주히 다니면서 반드시 스님의 이름을 공문空門에 전해지게 하려는 것이 한결같이 경암 스님이 추파 대사에게 한 것과 같으니, 어찌 평소에 보고 느낀 것이 깊지 않았겠는가? 드디어 그 유집을 산정刪定하고 이와 같이 서술한다.
나는 경암 스님과 함께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으나 한 편의 문자로서도 무한한 세월에 마음의 교분을 맺을 수 있으리라.
갑자년 늦봄에 가선대부嘉善大夫 원임사간원原任司諫院 행대사간行大司諫 사수泗水 목만중睦萬中3)이 쓰다.


010_0424_b_01L兼通禪敎竪拂升座大衆雲集
010_0424_b_02L爲兩宗大宗師而跬步之間不忘師恩
010_0424_b_03L一則曰吾師二則曰吾師以至摹眞竪
010_0424_b_04L拾草灾木無不竭其誠而極其力之
010_0424_b_05L所到今之儒冠儒衣口誦周孔之言者
010_0424_b_06L聞師之風能無愧死人固有愛其師而
010_0424_b_07L不愛其親愛其親而不愛其君者乎
010_0424_b_08L以是知師之道不外於忠孝也師之戒
010_0424_b_09L行文學固足以傳後無疑而八關諸上
010_0424_b_10L人之奔走悲泣必使壽師名於空門
010_0424_b_11L如師之於秋波之爲豈非觀感於平昔
010_0424_b_12L者深耶遂爲删定其遺集而叙之如此
010_0424_b_13L余與師生並一世不得一當而一篇文
010_0424_b_14L亦足以託契於無量刼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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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子暮春嘉善大夫原任司諫院行大
010_0424_b_16L司諫泗水睦萬中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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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방장산方丈山 : 지리산의 이칭.
  2. 2)생삼사일生三事一 : 부모·스승·임금을 한결같이 섬김을 이르는 말이다. 진晉나라 대부 난공자欒共子가 말하기를, “백성은 부모·스승·임금 밑에서 사는지라 섬기기를 한결같이 한다.(民生於三。 事之如一。)”라고 하였다. 『國語』 「晉語」.
  3. 3)목만중睦萬中(1727~1810)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공겸公兼·유선幼選, 호는 여와餘窩·사수泗水. 신유박해 때 대사간으로, 영의정 심환지와 함께 남인 시파 계열의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를 주도하였다. 저서로는 『餘窩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