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 浮休堂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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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부휴당집浮休堂集 서문
대저 도道는 하나일 뿐이다. 내가 언젠가 이에 대해서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 또한 도이다. 그 도를 말하면 돈오頓悟가 있고 점수漸修가 있지만, 그 극치에 이르면 그 둘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특별히 설한 바가 있다.
당초에 이것을 전함에 종통宗統이 있고 서얼庶孼이 있었다. 그 종통을 얻으면 마음속에 순수한 기운이 쌓여 언어로 드러나게 마련이고, 자연히 죽음과 삶을 달관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호를 부휴浮休1)라고 하였으니, 아, 얼마나 존경할 만하다고 하겠는가.
부휴의 고제高弟인 각성覺性과 희옥熙玉은 이른 나이에 함장函丈2)에 나아가 가르침을 받들면서 그 법을 듣고 그 도를 지켰다. 그러고는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자기 스승이 읊고 노래한 시문詩文 약간 편을 수습하여 한 질로 정리한 뒤에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다.
내가 그 원고를 읽어 보니 실로 도가 깃들어 있는 언어였다. 특히 발사跋詞의 경우는 더욱 법도에 정통하였으니, 이는 그야말로 도덕이 바탕이 되어서 문장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할 만하였다. 이를 통해서 그가 평소에 얼마나 공부를 순일純一하게 하여 도통道統을 회통會通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선가禪家로 집대성을 하면서 영파靈派3)의 정통을 곧바로 이어받았으니, 더더욱 공경할 만하다고 하겠다.
기타 전후前後의 도량에서 도를 전한 것은 너무도 적막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아, 임자년에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에 나라 사람들은 그가 지극한 도가 응축된(至道之凝) 분임을 알았다.4) 을묘년에 다비를 하였는데, 스스로 지은 만사挽詞 게송에서 도를 분명하게 터득한 경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스님의 휘諱는 선수善修요, 향년은 73세이다. 칠불암七佛庵에서 읊고 노래하는 일을 영원히 쉬었으니, 그때가 바로 을묘년 11월 초하루였다. 이 문집은 실로 각성과 희옥 덕분에 전하게 되었다. 도가 이 문집에 깃들어 있으니, 도를 전하는 자는 반드시 이 문집을 중하게 여겨 힘써야 할 것이다. 나는 원빈元賓5)을 그리워하면서도 볼 수 없다가 지금 희옥을 보고 서문을 지으면서 거듭 탄식하는 바이다.

008_0001_a_01L[浮休堂大師集]

008_0001_a_02L1)浮休堂集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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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夫道一而已矣余甞特爲之說曰
008_0001_a_05L而二二而一者亦道也道其道而有頓
008_0001_a_06L有漸到其極則二可一在是其初以是
008_0001_a_07L傳之有宗有孽得其宗則積於中形諸
008_0001_a_08L自達死生故自號以浮休其可敬
008_0001_a_09L夫浮休之高弟覺性熙玉早奉敎
008_0001_a_10L於凾丈聞其法守其道者迨暇捃摭其
008_0001_a_11L師之吟咏之緖餘若干篇彙爲一帙
008_0001_a_12L余以序讀其稿實有道之言也至於
008_0001_a_13L3) [3] 尤通4) [4] 此可謂因其道德
008_0001_a_14L文章者歟5) [5] 其平素6) [6] 會通道統
008_0001_a_15L集大成於禪家直接靈派之正統
008_0001_a_16L可敬也夫其他前後道場之傳道太寥
008_0001_a_17L寥矣嗚呼不幸於壬子國人知其至
008_0001_a_18L道之凝茶毘于乙卯自挽之偈也
008_0001_a_19L道之原章章處師之諱善修年七十三
008_0001_a_20L休吟咏于七佛庵迺乙卯十一月初吉
008_0001_a_21L此集實賴覺性熙玉而不朽道寓於玆
008_0001_a_22L傳其道者必有在處勉乎哉余乃
008_0001_a_23L思元賔而不見者今見玉而爲7) [7] 三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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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萬曆 기미년(1619, 광해군 11) 7월 일에 풍성豊城 후인後人 반환자盤桓子는 삼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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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歷己未七月豊城後人盤桓
008_0001_b_02L子謹識

008_0001_b_03L{底}紀元二九四七年智異山大華嚴寺藏板本
008_0001_b_04L(서울大學校所藏) {甲}東國大學校所藏刊年未
008_0001_b_05L詳本 {乙}國立圖書館所藏刊年未詳本 {丙}成均
008_0001_b_06L館大學校所藏刊年未詳本
此序文亦在甲
008_0001_b_07L又有異體之同序ㆍ乙丙兩本無有
「跋」甲
008_0001_b_08L本之異體序文作「䟲」
「于」甲本之異體序文
008_0001_b_09L作「其」
「知」上{甲}本之異體序文有「以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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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純」甲本之異體序文作「積」「之」下甲本
008_0001_b_11L之異體序文有「序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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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부휴浮休 : 『莊子』 「刻意」의 “삶이란 물 위에 떠 있는 거품과 같고, 죽음이란 그 거품이 꺼지는 것과 같다.(其生若浮, 其死若休.)”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2. 2)함장凾丈 : 선생과 제자 사이의 거리가 1장丈 정도 떨어져 있다는 말로, 강학講學하는 장소를 뜻한다.
  3. 3)영파靈派 : 부용 영관芙蓉靈觀(1485~1571)의 법맥. 부휴당이 부용 영관의 법맥을 잇고 있음을 말한다.
  4. 4)임자년에 불행한~분임을 알았다 : 광승狂僧의 무고로 투옥되었다가 오히려 광해군의 예우를 받게 된 일을 통해서 부휴가 지극한 덕의 소유자임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임자년은 광해군 4년(1612)이다. 『中庸』에 “지극한 도의 소유자가 아니면 지극한 도와 결합이 되지 않는다.(苟不至德, 至道不凝焉.)”라는 말이 나온다.
  5. 5)원빈元賓 : 당나라 때 사람 이관李觀의 자字이다. 이화李華의 종자從子로 24세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태자교서랑太子校書郞에 제수되었으며, 전인前人을 답습하지 않고 문장을 잘 지어 이름을 떨치다가 29세에 객사하자, 우인友人 한유韓愈가 묘지墓誌를 지어 슬퍼하였다. 여기서는 부휴를 원빈에 비유하였는데, 한유의 「答李秀才書」에 “원빈이 죽고 난 뒤로 그의 글이 더욱 귀중하게 여겨졌다. 원빈을 그리워하면서도 볼 수 없었으므로, 원빈이 허여許與한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마치 원빈을 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元賓旣歿, 其文益可貴重, 思元賓而不見, 見元賓之所與者, 則如元賓焉.)”라는 말이 나온다.
  1. 1){底}紀元二九四七年智異山大華嚴寺藏板本(서울大學校所藏) {甲}東國大學校所藏刊年未詳本 {乙}國立圖書館所藏刊年未詳本 {丙}成均館大學校所藏刊年未詳本
  2. 2)此序文。亦在甲本。又有異體之同序ㆍ乙丙兩本無有。
  3. 3)「跋」甲本之異體序文作「䟲」。
  4. 4)「于」甲本之異體序文作「其」。
  5. 5)「知」上{甲}本之異體序文有「以此」。
  6. 6)「純」甲本之異體序文作「積」。
  7. 7)「之」下甲本之異體序文有「序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