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선가귀감(禪家龜鑑) / 禪家龜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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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가귀감禪家龜鑑
청허 휴정淸虛休靜
이상현 (역)
총목차總目次
선가귀감禪家龜鑑
사명 유정四溟惟政의 발문
보원普願의 발문
충허 성정冲虛性正의 발문
선가귀감禪家龜鑑
조계 퇴은 서술(曹溪 退隱 述)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지극히 밝고 지극히 신령스럽다. 일찍이 생겨난 적도 없고 일찍이 사라진 적도 없으며,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설명할 수도 없다.

 해설 한 물건이란 무슨 물건인가? ○ 옛사람이 게송으로 읊었다.
 古佛未生前    옛 부처님이 나오기 전부터
 凝然一相圓    응연히 둥근 일원상一圓相이여
 釋迦猶未會    석가도 오히려 알지 못했는데
 迦葉豈能傳    가섭이 어떻게 전했으리1)

이것이 한 물건이 일찍이 생겨난 적도 없고 일찍이 사라진 적도 없으며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설명할 수도 없는 이유이다. 육조대사六祖大師가 대중에게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다. 여러분은 알겠는가?”라고 고하였을 때, 신회선사神會禪師가 바로 나와서 “제불諸佛의 본원本源이요, 신회의 불성佛性입니다.”라고 대답하였으니, 이것이 신회가 육조의 서자(孼子)가 된 이유이다.2) 회양선사懷讓禪師가 숭산嵩山에서 왔을 때에 육조六祖가

007_0634_c_01L[禪家龜鑑]

007_0634_c_02L1)禪家龜鑑 [1]

007_0634_c_03L

007_0634_c_04L2)3) [2]

007_0634_c_05L
有一物於此從本以來昭昭靈靈
007_0634_c_06L曾生不曾滅名不得狀不得

007_0634_c_07L
一物者何物4) [3] 古人頌云古佛
007_0634_c_08L未生前凝然一相圓釋迦猶未會
007_0634_c_09L迦葉豈能傳此一物之所以不曾生
007_0634_c_10L不曾滅名不得狀不得也六祖告
007_0634_c_11L衆云吾有一物無名無字諸人還
007_0634_c_12L識否神會禪師即出曰諸佛之本源
007_0634_c_13L神會之佛性此所以爲六祖之孽子
007_0634_c_14L懷讓禪師自嵩山來六祖問曰
007_0634_c_15L{底}萬曆己卯惟政跋文本(高麗大學校所藏){甲}
007_0634_c_16L萬曆十八年金剛山楡岾寺開刊本(國立圖書館
007_0634_c_17L所藏){乙}萬歷三十三年慶尙道華山圓寂寺開刊
007_0634_c_18L本 {丙}萬曆三十五年全羅道順天府曺溪山松廣
007_0634_c_19L寺開刊本(東國大學校所藏){丁}萬歷四十年妙
007_0634_c_20L香山內院庵開板留移普賢寺本(東國大學校所
007_0634_c_21L藏){戊}萬歷戊午順天地松廣寺開刊本(東國大
007_0634_c_22L學校所藏){己}崇禎六年朔寧龍腹寺留板本(國
007_0634_c_23L立圖書館所藏附禪敎釋){庚}順治六年鷲栖山
007_0634_c_24L通度寺重刊本(全南潭陽郡龍華寺所藏){辛}雍
007_0634_c_25L正九年香山普賢寺留刊本(東國大學校所藏)
007_0634_c_26L{壬}萬曆癸未普願跋文本(高麗大學校所藏){癸}
007_0634_c_27L續藏經第二編第十七套第五册
「曹溪退隱
007_0634_c_28L述」無有{甲}{乙}{丁}{己}{辛}
「溪」作「谿」{癸}「○」
007_0634_c_29L無有{癸}

007_0635_a_01L“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라고 물으니, 회양이 몸 둘 바를 몰랐는데, 8년 뒤에 스스로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한 물건이라고 말해도 맞지 않습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회양이) 육조의 적자嫡子가 된 이유이다.

 송頌
 三敎聖人     삼교의 성인이
 從此句出     이 구절로부터 나왔다
 誰是擧者     누가 이 구절을 들어 말할 것인가
 惜取眉毛     잘못하면 눈썹이 빠질 터인데3)

부처와 조사祖師가 세상에 나와서 공연히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켰다.

 해설 부처와 조사는 세존世尊과 가섭迦葉을 가리킨다.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대비大悲의 정신으로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한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한 물건(一物)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들의 면목面目이 본래 원만하게 이루어졌으니, 어찌 다른 사람이 그 얼굴에 연지 찍고 분 바를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부처와 조사가) 세상에 나온 것이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이 되는 까닭이다. 『허공장경虛空藏經』에 “문자文字도 마업魔業이요, 명상名相도 마업이요, 부처님의 말씀까지도 마업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이 뜻이다. 이것은 본분本分을 곧장 거론한 것이니, 부처와 조사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송頌
 乾坤失色     하늘과 땅이 빛을 잃고
 日月無光     해와 달도 광채가 없네

그렇긴 하지만 법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도 근기根機가 다양하니, 방편方便을 시설하는 것도 무방하다.

 해설 법法은 한 물건(一物)을 가리키고, 사람은 중생을 가리킨다. 법에는 불변不變과 수연隨緣의 뜻이 있고, 사람에게는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의 근기가 있다. 그러므로 문자와 언어를 시설하는 것도 무방하니, 이는 이른바 “공적公的으로는 바늘도 용납할 수 없지만, 사적私的으로는 거마車馬도 통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중생이 비록 원만하게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태어나면서부터 혜안慧眼이 없으니 윤회輪廻의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세상에 뛰어난 금비金鎞4)가 아니라면, 그 누가 무명無明의 두꺼운 꺼풀을 벗겨 주겠는가! 고통의 바다를 건너 즐거운 언덕에 오르게 되는 것은 모두 대비大悲의 은혜 덕분이니, 그러고 보면 신명身命을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이 바치더라도 그 은혜를 만분의 일도 갚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신훈新熏(종자種子를 새로 훈습熏習하는 것)을 자세히 들어 부처와 조사의 깊은 은혜에 감사한 것이다.

 송頌
 王登寶殿     임금님이 보전에 오르시니
 野老謳歌     촌 노인이 칭송하며 노래하네


007_0635_a_01L什麽物伊麽來師罔措至八年
007_0635_a_02L自肯曰說似一物即不中此所以
007_0635_a_03L爲六祖之嫡子也
◆三敎聖人從此
007_0635_a_04L句出誰是擧者惜取眉毛

007_0635_a_05L
佛祖出世無風起浪

007_0635_a_06L
佛祖者世尊迦葉也出世者大悲
007_0635_a_07L爲體度衆生也然以一物觀之則人
007_0635_a_08L人面目本來圓成豈假他人添脂着
007_0635_a_09L粉也此出世之所以起波浪也虛空
007_0635_a_10L藏經云文字是魔業名相是魔業
007_0635_a_11L至於佛語亦是魔業是此意也
007_0635_a_12L直擧本分佛祖無功能
◆乾坤失色
007_0635_a_13L日月無光

007_0635_a_14L
然法有多義人有多機不妨施設

007_0635_a_15L
法者一物也人者衆生也法有不
007_0635_a_16L變隨緣之義人有頓悟漸修之機
007_0635_a_17L不妨文字語言之施設也此所謂官
007_0635_a_18L不容針私通車馬者也衆生雖曰圓
007_0635_a_19L生無慧目甘受輪轉故若非出
007_0635_a_20L世之金1)誰刮無明之厚膜也
007_0635_a_21L於越苦海而登樂岸者皆由大悲之
007_0635_a_22L恩也然則恒沙身命難報萬一也
007_0635_a_23L此廣擧新熏感佛祖深恩
◆王登
007_0635_a_24L2) [4] 殿野老謳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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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갖가지 명자名字를 붙여서 마음이라고도 하고 부처라고도 하고 중생이라고도 하는 것이니, 이름에 집착해서 분별하는 마음을 내면 안 된다. 있는 그대로가 모두 옳으니, 한 생각을 일으키면 그 순간에 어긋나고 말 것이다.

 해설 한 물건(一物)에 억지로 세 가지의 명자를 세운 것은 교敎의 입장에서 부득이한 일이요, 이름에 집착해서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말도록 한 것은 선禪의 입장에서 부득이한 일이다. 올렸다 내렸다 하고 세웠다 부쉈다 하는 것은 모두 법왕法王이 법령法令을 걸림 없이 내리는 것이다. 이것은 위의 글을 결론 맺고 아래의 글을 일으키는 것으로서, 부처와 조사의 사리事理(事體)가 각기 다름을 논한 것이다.

 송頌
 九旱逢佳雨    9년 가뭄에 단비를 만나고
 他鄕見故人    타향에서 옛 친구를 보았네

세존이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한 것이 선지禪旨이고, 한 시대에 언어로 설한 것이 교문이다. 그래서 선은 부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의 언어라고 하는 것이다.

 해설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한 것이란, 세존이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가섭迦葉에게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게 한 것이 하나요,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 들어 보인 것이 둘이요,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관 속의 두 발을 가섭에게 내어 보여 준 것이 셋이니, 가섭이 별도로 선禪의 등불을 전해 받았다는 것이 이것이다. 한 시대에 언어로 설한 것이란, 49년 동안 세존이 설법한 오교五敎를 말한다. 즉 인천교人天敎가 하나요, 소승교小乘敎가 둘이요, 대승교大乘敎가 셋이요, 돈교頓敎가 넷이요, 원교圓敎가 다섯이니, 아난阿難이 교敎의 바다를 유통시켰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고 보면 선禪과 교敎의 근원은 세존이요, 선과 교의 갈래는 가섭과 아난이다. 무언無言으로 무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선禪이요, 유언有言으로 무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교敎이다. 그리고 마음이 바로 선법禪法이요, 언어가 바로 교법敎法이다. 법이 비록 한맛이기는 하지만 견해는 하늘과 땅처럼 현격하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선禪과 교敎의 두 길을 변론한 것이다.

 송頌
 不得放過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草裏橫身     잡초 속에 파묻히리니

그러므로 만약 사람이 언어에 미혹되면 꽃을 들어 보인 것(拈花)과 빙긋이 웃은 것(微笑)이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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强立種種名字或心或佛或衆生
007_0635_b_02L可守名而生解當體便是動念即乖

007_0635_b_03L
一物上强立三名字者敎之不得已
007_0635_b_04L不可守名生解者亦禪之不得已
007_0635_b_05L一擡一搦旋立旋破皆法王法
007_0635_b_06L令之自在者也此結上起下論佛
007_0635_b_07L祖事體各別
3) [5] 旱逢佳雨他鄕見
007_0635_b_08L故人

007_0635_b_09L
世尊三處傳心者爲禪旨一代所說者
007_0635_b_10L爲敎門故曰禪是佛心敎是佛語

007_0635_b_11L
三處者多子塔前分半座一也靈山
007_0635_b_12L會上擧拈花二也雙樹下槨示雙趺
007_0635_b_13L三也所謂迦葉別傳禪燈者此也
007_0635_b_14L代者四十九年間所說五敎也
007_0635_b_15L天敎一也小乘敎二也大乘敎三也
007_0635_b_16L頓敎四也圓敎五也所謂阿難流通
007_0635_b_17L敎海者此也然則禪敎之源者世尊
007_0635_b_18L禪敎之派者迦葉阿難也以無
007_0635_b_19L言至於無言者禪也以有言至於無
007_0635_b_20L言者敎也乃至心是禪法也語是
007_0635_b_21L敎法也則法雖一味見解則天地懸
007_0635_b_22L此辨禪敎二途
◆不得放過4)
007_0635_b_23L裏橫身

007_0635_b_24L
是故若人失之於口則拈花微笑

007_0635_c_01L교의 자취가 되겠지만, 만약 마음으로 터득하면 세상의 온갖 잡담과 귓속말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하는 선지禪旨가 될 것이다.

 해설 법法은 명자名字가 없기 때문에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고, 법은 형상形相이 없기 때문에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다. 입으로 표현하려고 하면 본체의 심왕心王을 잃게 되고, 본체의 심왕을 잃으면 세존世尊이 꽃을 들어 보인 것이나 가섭迦葉이 빙긋이 웃은 것 모두가 진부陳腐한 말로 전락하여 결국 죽은 물건이 되고 말 것이다. 반면에 마음으로 터득하면, 길거리에 떠도는 이야기가 훌륭한 법요法要로 들릴 뿐만 아니라, 지저귀는 새 소리까지도 실상實相을 설하는 법문法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보적선사寶積禪師는 곡성哭聲을 듣고 깨우쳐 환희의 춤을 추었으며, 보수선사寶壽禪師는 싸우는 광경을 목격하고서 법열法悅의 얼굴을 활짝 폈던 것이다. 이것은 선禪과 교敎의 깊음과 얕음을 밝힌 것이다.

 송頌
 明珠在掌     밝은 구슬 손에 쥐고
 弄去弄來     괜히 만지작거리기만

내게는 생각을 끊고 반연을 잊은 한마디 말이 있다. 올연히 일없이 앉았노라니, 봄이 와서 풀이 저절로 푸르도다.

 해설 생각을 끊고 반연을 잊었다는 것은 마음으로 체득한 경지를 말함이니, 이른바 한가한 도인(閑道人)5)이라는 것이다. 아! 그 사람됨이 본래 연고緣故가 없고 본래 일이 없어서 배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며, 녹수청산에서 마음대로 소요逍遙하고 어촌 주막에서 자유롭게 노닐 뿐, 연대年代와 갑자甲子를 모두 알지 못하지만, 봄이 찾아오자 예전처럼 풀이 저절로 푸르다는 말이다. 이는 한 생각을 돌이켜 자성自性을 비춰 본 사람을 특별히 찬탄한 것이다.

 송頌
 將謂無人     사람이 없는 줄 알았더니
 賴有一箇     그래도 하나 있군 그래


007_0635_c_01L是敎迹得之於心則世間麁言細語
007_0635_c_02L皆是敎外別5) [6] 禪旨

007_0635_c_03L
法無名故言不及也法無相故
007_0635_c_04L不及也擬之於口者失本心王也
007_0635_c_05L失本心王則世尊拈花迦葉微笑
007_0635_c_06L盡落陳言終是死物也得之於心者
007_0635_c_07L非但6) [7] 談善說法要至於鷰語
007_0635_c_08L談實相也是故寶積禪師聞哭聲
007_0635_c_09L踊悅身心寶壽禪師見諍拳開豁
007_0635_c_10L面目者以此也此明禪敎深淺

007_0635_c_11L明珠在7) [8] 弄去弄來

007_0635_c_12L
吾有一言絕慮忘緣兀然無事坐
007_0635_c_13L來草自靑

007_0635_c_14L
絕慮忘緣者得之於心也所謂8)
007_0635_c_15L道人也於戱其爲人也本來無緣
007_0635_c_16L本來無事飢來即食困來即眠
007_0635_c_17L水靑山任意逍遙漁村酒肆自在
007_0635_c_18L9) [9] 年代甲子10)捴不知春來依舊
007_0635_c_19L*草自靑此別11) [10]
007_0635_c_20L將謂無人賴有一箇

007_0635_c_21L「鎞」作「▼(金+箆)」{癸}「寶」作「實」{乙}「九」作
007_0635_c_22L「久」{癸}
「草」作「艸」{癸}次同「傳」無有{乙}
007_0635_c_23L「街」作「衒」{癸}「掌」作「手」{癸}「閑」作
007_0635_c_24L「閒」{癸}
「閑」作「眠」{癸}「捴」作「總」{癸}
007_0635_c_25L「歎」作「欲」{癸}
「廻」作「回」{癸}

007_0636_a_01L
교문은 오직 일심의 법을 전하고, 선문은 오직 견성의 법을 전한다.

 해설 마음(心)은 거울의 바탕과 같고, 성품(性)은 거울의 빛과 같다. 성품은 본디 청정하니 깨치는 즉시 본마음도 얻게 된다. 이것은 깨친 일념一念을 은근히 강조한 것이다.

 송頌
 重重山與水  산과 물 중중첩첩한 속에
 淸白舊家風  청백한 옛집의 가풍이로세.

 평評 마음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본원本源의 마음이요, 또 하나는 무명無明이 상相을 취하는 마음이다. 성품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본법本法의 성품이요, 또 하나는 성性과 상相 두 개가 상대相對한 성품이다. 그래서 선학禪學을 닦는 이나 교학敎學을 닦는 이나 똑같이 그 용어에 집착하여 오해한 나머지, 얕은 것을 깊다고 하고 깊은 것을 얕다고 하면서, 마침내 관심觀心 수행修行에 있어 큰 병통을 이루기 때문에 여기에서 변론하였다.

그렇긴 하지만 제불이 설한 경에서는 먼저 제법을 분별하고 나서 필경공畢竟空6)의 도리를 설한 반면에, 조사가 보여 주는 일구一句는 자취가 생각의 바탕에서 끊어지고 이치가 마음의 근원에 드러났다.

 해설 제불은 만대의 의지처가 되는 분인 만큼 자상하게 가르쳐 주신 것이 당연하고, 조사는 그 자리에서 당장 해탈시키려 하였으므로 깨우치는 데에 생각을 둔 것이다. 자취(迹)는 조사가 말한 자취요, 생각(意)은 학자學者의 생각이다.

 송頌
 胡亂指注     아무렇게나 말하는 듯해도
 臂不外曲     팔이 밖으로 굽지는 않는군

제불이 활을 설했다면 조사는 활줄을 설했다고 할 수 있다. 제불은 무애의 법문을 설하고 나서야 바야흐로 일미로 돌아가는데, 이 일미의 자취까지 털어 버려야만 비로소 조사가 보여 준 일심을 드러낼 수 있다. 그래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의 화두話頭는 용궁의 장경(龍藏)에도 있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해설 활을 설했다는 것은 곡진하게 설명했다는 말이요, 활줄을 설했다는 것은 직설적으로 언급했다는 말이다. 용궁의 장경(龍藏)은 용궁龍宮에 보관된 장경藏經이라는 말이다. 어떤 승려가 조주趙州에게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조주가 “뜰 앞의 잣나무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007_0636_a_01L
敎門惟傳一心法禪門惟傳見性法

007_0636_a_02L
心如鏡之體性如鏡之光性自淸
007_0636_a_03L即時1) [11] 秘重
007_0636_a_04L得意一念
◆重重山與水淸白舊家
007_0636_a_05L

007_0636_a_06L
評曰心有二種一本源心二無明
007_0636_a_07L取相心也性有二種一本法性
007_0636_a_08L二性相相對性也故禪敎者同迷
007_0636_a_09L守名生解或以淺爲深或以深爲
007_0636_a_10L遂爲觀行大病故於此辨之

007_0636_a_11L
然諸佛說經3) [12] 分別諸法後說畢竟
007_0636_a_12L祖師示句迹絶於意地理顯於心
007_0636_a_13L

007_0636_a_14L
諸佛爲萬代依憑故理須委示祖師
007_0636_a_15L在即時度脫故意使玄通祖師
007_0636_a_16L言迹也學者意地也
◆胡亂指
007_0636_a_17L臂不外曲

007_0636_a_18L
諸佛說弓祖師說絃佛說無礙之法
007_0636_a_19L方歸一味拂此一味之迹方現祖師所
007_0636_a_20L示一心故云庭前栢樹子話龍藏所未
007_0636_a_21L有底

007_0636_a_22L
說弓曲也說絃直也龍藏龍宮
007_0636_a_23L之藏經也僧問趙州如何是祖師西
007_0636_a_24L來意州答云庭前栢樹子此所謂

007_0636_b_01L격외格外의 선지禪旨라고 하는 것이다.

 송頌
 魚行水濁     물고기가 지나가니 물이 흐려지고
 鳥飛毛落     새가 날아가니 깃털이 떨어지네

그러므로 학자는 먼저 실다운 언교에 입각하여 불변不變과 수연隨緣의 두 뜻(二義)이 바로 자기 마음의 성性과 상相이며,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의 두 개의 문이 바로 자기 수행의 처음과 끝이라는 것을 자세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뒤에 교의를 놓아 버리고서 단지 자기 마음이 앞에 나타난 한 생각을 가지고 선지를 참구한다면 반드시 소득이 있을 것이니, 이것을 몸을 벗어나 살아나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해설 상근기上根機와 대지혜大智慧를 소유한 사람이야 여기에 구애받을 것이 없겠지만, 중근기中根機나 하근기下根機인 사람은 순서를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교의敎義는 불변不變과 수연隨緣,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에 차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법禪法은 한 생각(一念) 속에 불변과 수연, 성性과 상相, 체體와 용用이 원래 동시에 있는 까닭에 즉卽도 여의고 비非도 여의며, 시도 옳고 비도 옳은 것(離卽離非, 是卽非卽)7)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사宗師가 법法에 의거하고 언어를 떠나서 한 생각을 곧바로 가리켜 자기 성품을 보고는 부처가 되게 하였으니, 교의敎義를 놓아 버린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송頌
 明歷歷時     역력하게 밝을 때에도
 雲藏深谷     깊은 골에 구름이 잠기고
 深密密處     빽빽하게 깊은 곳에도
 日照晴空     맑은 하늘에 태양이 비친다

대저 학자는 활구活句를 참구參究해야지 사구死句를 참구하면 안 된다.

 해설 활구를 참구하면 불조佛祖와 더불어 스승이 될 수 있겠지만, 사구를 참구하면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8) 이 아래에서 특별히 활구를 들어 스스로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게 하였다.

 송頌
 要見臨濟     임제를 만나려면
 須是鐵漢     무쇠처럼 굳세어야

 평評 화두話頭에는 구句와 의意의 두 개의 문이 있다. 구句를 참구하는 것이 경절문徑截門9)으로서 활구活句라고 할 것이니, 여기에는 마음의 길(心路)도 없고 말의 길(語路)도 없어서 실마리를 더듬어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意를 참구하는 것이 원돈문圓頓門으로서 사구死句라고 할 것이니, 여기에는 이치의 길(理路)이 있고 말의 길이 있어서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릇 공안을 참구할 때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마치 닭이

007_0636_b_01L格外禪旨也
◆魚行水濁鳥飛毛落

007_0636_b_02L
故學者先以如實言敎委辨不變隨緣
007_0636_b_03L二義是自心之4) [13] 頓悟漸修兩門
007_0636_b_04L是自行之始終然後放下敎義但將自
007_0636_b_05L心現前一念叅詳禪旨則必有所得
007_0636_b_06L所謂出身5) [14]

007_0636_b_07L
上根大智不在此限中下根者
007_0636_b_08L6) [15] 等也敎義者不變隨緣頓悟
007_0636_b_09L漸修有先有後禪法者一念中
007_0636_b_10L變隨緣性相體用元是一時離即
007_0636_b_11L離非是即非即故宗師據法離言
007_0636_b_12L直指一念見性成佛耳放下敎義者
007_0636_b_13L以此
◆明歷歷時雲藏深谷深密
007_0636_b_14L密處日照晴空

007_0636_b_15L
大抵學者7)8) [16] 莫*叅死句

007_0636_b_16L
活句下薦得9) [17] 與佛祖爲師死句
007_0636_b_17L下薦得自救不了此下特擧活句
007_0636_b_18L使自悟入
◆要見臨濟須是鐵漢

007_0636_b_19L
評曰話頭有句意二門*叅句者
007_0636_b_20L徑截門活句也沒心路沒語路
007_0636_b_21L無摸𢱢故也*叅意者圓頓門死
007_0636_b_22L句也有理路有語路有聞解思
007_0636_b_23L想故也

007_0636_b_24L
凡本*叅公案上切心做工夫如雞抱

007_0636_c_01L알을 품듯, 고양이가 쥐를 잡듯, 굶주린 자가 밥을 찾듯,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 어린아이가 어미를 찾듯 해야 할 것이니, 그러면 반드시 투철하게 깨달을 때가 있을 것이다.

 해설 조사祖師의 공안公案에 1천 7백 가지가 있으니, 예컨대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10)․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11)․마삼근麻三斤12)․간시궐乾屎橛13)과 같은 것들이다. 닭이 알을 품을 때에는 온기溫氣를 항상 유지하고,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에는 마음과 눈을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굶주린 자가 밥을 찾고, 목마른 자가 물을 찾고, 어린아이가 어미를 찾는 것도 모두 진심眞心에서 우러나온 것이요 억지로 지어낸 마음이 아니니, 간절하다고 말할 수 있다. 참선할 때에 이처럼 간절한 마음이 없이 투철하게 깨닫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참선은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크게 믿는 마음이요, 둘째는 크게 발분發憤하는 마음이요, 셋째는 크게 의심하는 마음이다.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빠지면, 마치 발이 부러진 솥과 같아서 끝내는 소용없이 되고 말 것이다.

 해설 부처가 이르기를 “성불成佛은 믿음이 근본이 된다.”라고 하였고, 영가永嘉14)는 말하기를 “도를 닦는 자는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라고 하였고, 몽산蒙山15)은 말하기를 “참선하는 자가 언구言句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바로 큰 병이다.”라고 하였고, 또 “크게 의심해야 크게 깨닫는다.”라고 하였다.

일상적으로 인연에 응하는 곳마다 단지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라고 한 화두話頭를 들 것이니, 항상 화두를 들고 의심하며 살피노라면 이치의 길도 끊어지고 의리의 길도 끊어지고 아무 맛도 없어지면서 속에서 열이 나고 답답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올 것이다. 바로 이때가 목숨을 바쳐 더욱 정진해야 할 때로서, 부처를 이루고 조사가 되는 기본이 된다고 할 것이다.


007_0636_c_01L10) [18] 如猫捕鼠如飢思食如渴思水
007_0636_c_02L如兒憶母必有透徹之期

007_0636_c_03L
祖師公案有一千七百則如狗子無
007_0636_c_04L佛性庭前栢樹子麻三斤乾屎11) [19]
007_0636_c_05L之流也雞之抱卵暖氣相續也
007_0636_c_06L之捕鼠心眼不動也至於飢思食
007_0636_c_07L渴思水兒憶母皆出於眞心非做
007_0636_c_08L作底心故云切也*叅禪無此切心
007_0636_c_09L能透徹者無有是處

007_0636_c_10L
*叅禪須具三要一有大信根二有大
007_0636_c_11L憤志三有大疑情苟闕其一如折足
007_0636_c_12L之鼎終成廢器

007_0636_c_13L
佛云成佛者信爲根本永嘉云
007_0636_c_14L道者先須立志蒙山云*叅禪者
007_0636_c_15L不疑言句是爲大病又云大疑之下
007_0636_c_16L必有大悟

007_0636_c_17L
日用應緣處只擧狗子無佛性話擧來
007_0636_c_18L擧去疑來疑去覺得沒理路沒義路
007_0636_c_19L沒滋味心頭熱悶時便是當人放身
007_0636_c_20L命處亦是成佛作祖底基本也

007_0636_c_21L「豁」作「割」{癸}「此」作「比」{乙}「先」作
007_0636_c_22L「光」{乙}
「性」作「栍」{乙}「活」作「沽」{乙}
007_0636_c_23L「獵」作「躐」{甲}{丁}{己}{辛}{癸}ㆍ作「㯿」{乙}「叅」
007_0636_c_24L作「參」{癸}次同
「活」作「沽」{乙}「堪」作「㙋」
007_0636_c_25L{乙}
「卵」作「卯」{乙}「橛」作「撅」{甲}{乙}

007_0637_a_01L
 해설 어떤 승려가 조주趙州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라고 묻자, 조주가 “없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한마디야말로 종문宗門의 일대 관문關門으로서, 온갖 잘못된 견문각지見聞覺知를 꺾어 버린 병장기兵仗器인 동시에 모든 부처와 조사의 면목面目이요 골수骨髓라고 할 것이니, 이 관문을 뚫은 뒤에야 부처와 조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옛사람이 읊기를 “조주가 칼을 빼어 들었나니, 서릿발처럼 그 빛이 뻗치도다. 뭐라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당장에 몸이 두 동강 나리로다.”16)라고 하였다.

화두를 들어 보일 적에 답을 알아맞히려고 하지도 말 것이요, 사량하여 판단하지도 말 것이요, 미혹된 상태에서 막연히 깨닫게 되기를 기대하지도 말 것이다. 사량할 수 없는 것을 사량하다가 마음이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되어, 마치 쥐가 쇠뿔 안에 들어간 것처럼 되어야만 전도된 소견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 또 평소에 계교하며 안배하는 것이 식정識情(망념)이요, 생사를 따라 떠내려가는 것이 식정이요, 겁내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식정인데, 지금 사람들은 이 병을 알지 못한 채 그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해설 화두를 참구할 때에 열 가지 병이 있다. 머릿속으로 헤아리는 것,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깜박거리는 것에 붙잡히는 것, 언어로 활로를 찾는 것, 문자로 증거를 대는 것, 화두를 들어 보일 적에 알아맞히려 하는 것, 아무 일 없는 듯 허세 부리는 것, 있고 없음의 분별을 짓는 것, 참으로 없다고 인식하는 것, 도리가 그렇다고 이해하는 것, 미혹된 상태에서 막연히 깨닫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이 열 가지 병을 여의고, 오직 화두를 들 때에 정신을 차리고서 이것이 무엇일까 하고 의심만 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은 모기가 무쇠 소의 등 위에 올라탄 것과 같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더 이상 물을 것이 없이, 주둥이가 들어가지 않는 곳을 목숨 걸고 한 번 뚫어서 몸뚱이까지 꿰뚫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해설 윗글의 뜻을 거듭 강조하여 활구活句를 참구하는 자로 하여금 뒤로 물러나지 않게 한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오묘한 깨달음은

007_0637_a_01L
僧問趙州狗子還有佛性也無州云
007_0637_a_02L此一字子宗門之一關亦是摧
007_0637_a_03L許多惡知惡覺底器仗亦是諸佛面
007_0637_a_04L亦是諸祖骨髓也須透得此關然
007_0637_a_05L佛祖可期也古人頌云趙州露
007_0637_a_06L刃劒寒霜光燄燄 [1] 議問如何
007_0637_a_07L身作兩段

007_0637_a_08L
話頭不得擧起處承當不得思量卜度
007_0637_a_09L又不得將迷待悟就不可思量處思量
007_0637_a_10L心無所之如老鼠入牛角便見倒斷也
007_0637_a_11L又尋常計較安排底是識情隨生死遷
007_0637_a_12L流底是識情怕怖慞惶底是識情
007_0637_a_13L人不知是病只管在裏1) [20] 頭出頭沒

007_0637_a_14L
話頭有十種病曰意根下卜度曰揚
007_0637_a_15L眉瞬目處挅根曰語路上作活計
007_0637_a_16L文字中引證曰擧起處承當曰颺在
007_0637_a_17L無事匣裏曰作有無會曰作眞無會
007_0637_a_18L曰作道理會曰將迷待悟也離此十
007_0637_a_19L種病者但擧話時畧抖擻精神
007_0637_a_20L疑是箇甚麽

007_0637_a_21L
此事如蚊子上鐵牛便不問如何若何
007_0637_a_22L2)觜不得處棄命一攅和身透入

007_0637_a_23L
重結上意使*叅活句者不得退屈
007_0637_a_24L古云*叅禪須透祖師關3)妙悟

007_0637_b_01L마음 길이 끊어진 곳을 궁구해야 한다.”17)라고 하였다.

공부하는 방법은 마치 거문고 줄을 매는 것과 같으니, 완급을 잘 조절해서 중도中道에 맞게 해야 한다. 조급히 하면 집착에 가깝고, 놓아 버리면 무명에 떨어지니, 또렷하고 분명하게 하면서 치밀하고 끊임없이 해야 한다.

 해설 거문고 타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줄을 맬 때 완급緩急을 잘 조절해야만 맑은 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공부도 이와 같아서 급하게 하면 혈기를 동요시키고, 잊어버리면 귀신의 굴에 빠지게 된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해야 하니, 묘법妙法이 그 속에 들어 있다.

공부가 걸어도 걷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앉아도 앉는 것을 알지 못할 정도가 되면 바로 이러한 때에 8만 4천 마군이 육근六根의 문간에서 엿보고 있다가 마음을 따라 일어날 것인데, 마음이 만약 일어나지만 않는다면 마군이 어떻게 해 보겠는가!

 해설 마魔라는 것은 생사生死를 좋아하는 귀신의 이름이다. 8만 4천 마군魔軍이란 바로 중생의 8만 4천 번뇌를 가리킨다. 마魔는 본래 종자種子가 없는 것인데, 수행하다가 생각을 잘못하면 마침내 샘물처럼 번져 나오게 된다. 중생은 외부의 경계를 따라가기 때문에 순탄하지만, 도인道人은 경계를 거스르기 때문에 저항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도가 높을수록 마가 기승을 부린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효자孝子와 다투다가 자기 다리를 찍기도 하고,18) 멧돼지와 씨름하다가 자기 코를 잡기도 하는19) 이것 역시 자기 마음속에서 망상이 일어나 외마外魔에 걸려든 것이다. 마음이 만약 일어나지만 않는다면 외마가 갖가지 재주를 부리더라도 칼로 물을 베고 입으로 빛을 부는 것같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이 “벽의 틈으로는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의 틈으로는 마가 침노한다.”라고 한 것이다.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天魔요, 일어나지 않는 마음은 음마陰魔이며,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하는 마음은 번뇌마煩惱魔이다. 하지만 우리의 바른 법 가운데에는 본래 이런 일이 없다.

 해설 대저 기심機心을 잊는 것이 불도佛道요, 분별分別하는 것이 마경魔境이다. 그러나 마경도 꿈속의 일이니, 굳이 따질 것이 뭐가 있겠는가!


007_0637_b_01L心路絕

007_0637_b_02L
工夫如調絃之法緊緩得其中勤則近
007_0637_b_03L執着忘則落無明惺惺歷歷密密綿
007_0637_b_04L綿

007_0637_b_05L
彈琴者曰緩急得中然後淸音普矣
007_0637_b_06L工夫亦如此急則動血囊忘則入鬼
007_0637_b_07L不徐不疾*妙在其中

007_0637_b_08L
工夫到行不知行坐不知坐當此之時
007_0637_b_09L八萬四千魔軍在六根門頭伺候隨心
007_0637_b_10L生設心若不起爭如之何

007_0637_b_11L
魔者樂生死之鬼名也八萬四千魔
007_0637_b_12L軍者乃衆生八萬四千煩惱也魔本
007_0637_b_13L無種修行失念者遂派其源也
007_0637_b_14L生順其境故順之道人逆其境故逆
007_0637_b_15L故云道高魔盛也禪定中或見
007_0637_b_16L孝子而䂨股或見猪子而把鼻者
007_0637_b_17L自心起見感此外魔也心若不起
007_0637_b_18L則種種伎倆翻爲割水吹光也古云
007_0637_b_19L壁隙風動心隙魔侵

007_0637_b_20L
起心是天魔不起心是陰魔或起或
007_0637_b_21L不起是煩惱魔然我正法中本無如
007_0637_b_22L是事

007_0637_b_23L
大抵忘機是佛道分別是魔境
007_0637_b_24L魔境夢事何勞辨詰

007_0637_c_01L
공부가 타성일편打成一片20)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비록 금생에 투철하게 깨닫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눈 감고 죽을 적에 악업에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해설 업業은 무명無明이요, 선禪은 반야般若이다. 밝음과 어두움이 서로 맞서지 못하는 것은 이치상 당연한 일이다.

대저 참선하는 자들은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아야 한다.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사대 요소로 이루어진 추한 육신이 매 순간마다 낡아서 썩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호흡하는 사이에 있음을 알고 있는가? 세상에 태어나서 부처와 조사의 가르침을 접하였는가? 위 없는 법문을 듣고서 환희하는 마음을 내었는가? 승당을 떠나지 않고서 절조를 지켰는가? 옆 사람과 잡담을 하지는 않았는가? 시기하며 시비를 부추기지는 않았는가? 화두가 하루 종일 똑똑히 들리고 있는가?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면서도 화두에 끊어짐이 없었는가? 듣고 보고 깨달아 알 때에도 타성일편이 되는가? 자기를 돌이켜 관찰하며 부처와 조사의 뜻을 파악했는가? 금생에 부처의 혜명을 정녕 잇고 있는가? 편히 기거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 하나의 육신이 정녕 윤회에서 빠져나왔는가? 팔풍八風21)의 경계에 당하여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는가? 이상은 참선하는 사람들이 일상생활 중에 점검해야 할 도리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이 몸을 금생에 제도濟度하지 않으면, 또 어느 생에 이 몸을 제도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해설 네 가지 은혜란 부모와 임금과 스승과 시주施主의 은혜를 말한다. 사대四大 요소로 이루어진 추한 육신이란, 아버지의 정수(精) 한 방울과 어머니의 피(血) 한 방울은 습한 수대水大요, 정수가 뼈가 되고 피가 살이 된 것은 단단한 지대地大요, 정수와 피 한 뭉치가 썩지도 않고 문드러지지도 않는 것은

007_0637_c_01L
工夫若打成一片則縱今生透不得
007_0637_c_02L光落地之時不爲惡業所4) [21]

007_0637_c_03L
業者無明也禪者般若也明闇不相
007_0637_c_04L理固然也

007_0637_c_05L
大抵*叅禪者還知四恩深厚麽還知
007_0637_c_06L四大醜身念念衰杇麽還知人命在呼
007_0637_c_07L吸麽生來値遇佛祖麽及聞無上法
007_0637_c_08L生希有心麽不離僧堂守節麽不與鄰
007_0637_c_09L單雜話麽切忌皷扇是非麽話頭十二
007_0637_c_10L時中明明不昧麽對人接話時無間
007_0637_c_11L斷麽見聞覺知時打成一片麽返觀
007_0637_c_12L自己捉敗佛祖麽今生決定續佛慧命
007_0637_c_13L起坐便宜時5) [22] 思地獄苦麽此一
007_0637_c_14L報身定脫輪廻麽當八風境心不動
007_0637_c_15L此是*叅禪人日用中6) [23] 底道理
007_0637_c_16L古人云此身不向今生度更待何生度
007_0637_c_17L此身

007_0637_c_18L
四恩者父母君師施主恩也四大醜
007_0637_c_19L身者父之精一滴母之血一滴者
007_0637_c_20L水大之濕也精爲骨血爲皮者
007_0637_c_21L大之堅也精血一塊不腐不爛者
007_0637_c_22L「許」作「𧦝」{己}{辛}「觜」作「嘴」{癸}「妙」作
007_0637_c_23L「玅」{癸}次同
「牽」作「率」{癸}「還」作「遙」
007_0637_c_24L{乙}
「檢」作「撿」{乙}{癸}

007_0638_a_01L따스한 화대火大요, 콧구멍이 먼저 이루어져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은 활동하는 풍대風大인데, 아난阿難이 말하기를 “정욕의 기운이 거칠고 탁하고 비리고 더러운 것이 서로 얽혀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추한 육신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매 순간마다 낡아서 썩어 간다는 것은, 머리 위의 광음光陰이 잠시도 쉬지 않아 얼굴은 저절로 쭈글쭈글해지고 머리털은 저절로 하얗게 세어 가니, ‘지금 이미 옛날과 같지 않으니, 뒤에도 마땅히 지금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처럼, 참으로 무상無常한 몸인 것이다. 그러나 무상의 귀신은 죽이는 것으로 장난을 삼으니, 실로 매 순간마다 두렵기만 하다. 호呼는 화火에 속하는 날숨이요, 흡吸은 풍風에 속하는 들숨이니, 사람의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은 단지 날숨과 들숨 사이에 있을 뿐이다. 팔풍八風은 순역順逆의 두 영역을 말한다. 지옥의 고통이란, 인간의 60겁劫이 지옥의 하루에 해당하는데, 그곳의 확탕鑊湯ㆍ노탄爐炭ㆍ검수劔樹ㆍ도산刀山의 고통은 입으로 형언할 수가 없다. 사람의 몸을 얻는 것이 바닷속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에, 여기에서 안타깝게 여겨 일깨운 것이다.

 평評 위의 법어法語는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고서 차갑고 따뜻한 것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총명聰明으로는 업業에 맞설 수 없고, 간혜乾慧22)로는 윤회輪廻를 벗어나지 못하니, 각자 자세히 살펴서 거드름 떨며 자만하지 말지어다.

말만 배우는 무리는 말할 때에는 깨달은 듯하지만, 경계를 대하면 다시 헤매나니, 이는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난다고 하는 자이다.

 해설 이는 윗글의 자만하지 말라는 뜻을 맺은 것이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지를 보고서 허실虛實을 분변할 수 있다.

생사의 문제에 맞서고 싶다면, 이 한 생각을 ‘탁!’ 하고 한 번 깨뜨려야 할 것이니, 그때에야 비로소 생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해설 ‘탁!’은 칠통漆桶이 깨지는 소리이다. 칠통처럼 어두운 마음을 깨뜨려야만 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제불諸佛이 인지因地23)에서 수행한 법도 단지 이것일 뿐이다.


007_0638_a_01L火大之暖也鼻孔先成通出入息者
007_0638_a_02L風大之動也阿難曰欲氣麁濁
007_0638_a_03L臊交遘此所以醜身也念念衰杇者
007_0638_a_04L頭上光陰刹那不停面自皺而髮自
007_0638_a_05L如云今旣不如昔後當不如今
007_0638_a_06L此無常之體也然無常之鬼以殺爲
007_0638_a_07L實念念可畏也呼者出息之火
007_0638_a_08L吸者入息之風也人命寄托
007_0638_a_09L在出入息也八風者順逆二境也
007_0638_a_10L地獄苦者人間六十劫泥犂一晝夜
007_0638_a_11L鑊湯爐炭劒樹刀山之苦口不可形
007_0638_a_12L言也人身難得甚於海中之鍼1) [24]
007_0638_a_13L於此愍而警之

007_0638_a_14L
評曰上來法語如人飮水冷暖自
007_0638_a_15L聦明不能敵業乾慧未2)免苦
007_0638_a_16L各須察念勿以自謾

007_0638_a_17L
學語之軰說時似悟對境還迷所謂
007_0638_a_18L言行相違者也

007_0638_a_19L
此結上自謾之意言行相違虛實可
007_0638_a_20L

007_0638_a_21L
若欲敵生死須得這一念子爆地一破
007_0638_a_22L方了得生死

007_0638_a_23L
打破漆桶3) [25] 打破漆桶然後
007_0638_a_24L死可敵也諸佛因地法行者只此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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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생각을 ‘탁!’ 하고 한 번 깨뜨린 이후에도 모름지기 밝은 스승을 찾아 눈이 바른지의 여부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해설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으니, 참괴慙愧의 생각을 내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도道의 세계는 대해大海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 깊어지는 것이니, 작은 것을 얻고서 만족하지 말도록 조심할지어다. 깨닫고 나서 밝은 스승을 찾지 않으면,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거꾸로 독약毒藥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옛 어른이 이르기를 “단지 그대의 안목이 바른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이요, 그대의 행실은 귀하게 여기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다.

 해설 옛날에 앙산仰山이 위산潙山의 물음에 대답하기를 “『열반경』 40권이 모두 마귀의 말입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앙산의 안목이 바른 것이다. 또 앙산이 행실에 대해서 묻자, 위산이 대답하기를 “단지 그대의 안목이 바른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운운하였으니, 이것은 바른 안목을 갖는 것을 우선시하고 행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뒤로 돌린 것이다. 그래서 “행실을 닦으려면 먼저 돈오頓悟해야 한다.”24)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라건대 도를 닦는 이들은 자기의 마음을 굳게 믿고서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스스로 높게 여기지도 말 것이다.

 해설 이 마음은 평등하여 본래 범성凡聖의 차이가 없지만, 사람에게는 미오迷悟와 범성凡聖의 구분이 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격발하여 부처와 다름없는 진아眞我를 홀연히 깨치는 것이 돈頓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굽히지 말라고 한 까닭이니, 예컨대 “본래 한 물건도 없다(本來無一物).”25)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깨달음을 얻고 나서 습기習氣를 끊어 범부에서 성인의 경지를 이루어 가는 것이 점漸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높게 여기지 말라고 한 까닭이니, 예컨대 “때때로 부지런히 떨고 닦는다(時時勤拂拭也).”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굽히는 것은 교학자敎學者의 병통이요, 높게 여기는 것은 선학자禪學者의 병통이다. 교학자는 선문禪門에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비결秘訣이 있는 것을 믿지 않은 채 권교權敎에 깊이 빠져들고 진망眞妄을 따로 집착하면서 관행觀行은 스스로 닦지 않고 남의 보배만 귀하게 여겨 헤아리는 까닭에 스스로 움츠러들며 물러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 선학자는 교문敎門에 닦아서 끊는 정로正路가 있는 것을 믿지 않은 채 더럽게 훈습薰習된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서 공부의 단계가

007_0638_b_01L

007_0638_b_02L
然一念子爆地一破然後須訪明師
007_0638_b_03L決擇正眼

007_0638_b_04L
此事極不容易須生慚愧始得道如
007_0638_b_05L大海轉入轉深愼勿得小爲足
007_0638_b_06L後若不見人則醍醐上味翻成毒藥

007_0638_b_07L
古德云只貴子眼正不貴汝行履處

007_0638_b_08L
昔仰山荅潙山問云涅槃經四十卷
007_0638_b_09L緫是魔說此仰山之正眼也仰山又
007_0638_b_10L問行履處潙山答曰只貴子眼正4)
[26]
007_0638_b_11L此所以先開正眼而後說行履也
007_0638_b_12L若欲修行先須頓悟

007_0638_b_13L
願諸道者深信自心不自屈不自高

007_0638_b_14L
此心平等本無凡聖然約人有迷
007_0638_b_15L悟凡聖也因師激發忽悟眞我
007_0638_b_16L佛無殊者頓也此所以不自屈
007_0638_b_17L本來無一物也因悟斷習轉凡成
007_0638_b_18L聖者漸也此所以不自高如云
007_0638_b_19L時勤拂拭也屈者敎學者病也
007_0638_b_20L禪學者病也敎學者不信禪門
007_0638_b_21L有悟入之秘5) [27] 深滯權敎別執眞
007_0638_b_22L不修觀行數他珎寶故自生退
007_0638_b_23L屈也禪學者不信敎門有修斷之
007_0638_b_24L6) [28] 染習雖起不生慚愧果級雖

007_0638_c_01L초보初步에 불과할지라도 법에 대한 자만심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발언하는 것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다. 이 때문에 득의得意하여 마음을 닦는 자는 스스로 굽히지도 않고 스스로 높게 여기지도 않는 것이다.

 평評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스스로 높게 여기지도 말 것이니, 대략적으로 초심初心을 거론하면 인위因位에 과해果海를 갖추고 있으니 십신十信의 일위一位이고, 자세하게 보살菩薩을 거론하자면 과위果位가 인위의 근원과 통하니 오십오위五十五位가 되는 것이다.

마음을 알지 못하고서 도를 닦는다면 단지 무명을 도와줄 뿐이다.

 해설 만약 철저히 깨닫지 못했다면, 닦는 것이 어찌 참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깨닫는 것과 닦아 나가는 것은 비유컨대 기름과 불이 서로 의지하고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다.

수행의 요체는 단지 범부凡夫의 생각을 없애기만 하면 되니, 성인聖人의 지해知解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해설 병이 다 나아서 약을 쓸 필요가 없어지면 다시 건강했던 몸이 되는 것이다.

중생의 마음을 버릴 것 없이, 다만 자성을 오염시키지 말지니라. 굳이 정법을 구하려 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해설 버리는 것이나 구하는 것이나 똑같이 오염시키는 일이다.

번뇌를 끊는 것을 이승이라 하고, 번뇌가 아예 일어나지 않는 것을 대열반이라고 한다.

 해설 끊는 곳에는 능소能所26)가 있지만, 일어나지 않는 곳에는 능소가 없다.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비추어 보아 한 생각이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도 일어남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해설 이것은 성性이 일어나는 것만 밝힌 것이다.

죽이고 도둑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한마음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라. 일어나는 그곳이 텅 비어 고요한데, 무엇을 또 끊는단 말인가!

 해설 이것은 성性과 상相을 함께 밝힌 것이다.

 평評 경經에 이르기를 “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무명無明을 영원히 끊는 것이라고 한다.”라고 하였고, 또

007_0638_c_01L多有法慢故發言過高也是故
007_0638_c_02L得意修心者不自屈不自高也

007_0638_c_03L
評曰不自屈不自高者略擧初心
007_0638_c_04L因該果海則雖信之一位也廣擧
007_0638_c_05L菩薩果徹因源則五十五位也

007_0638_c_06L
迷心修道但助無明

007_0638_c_07L
悟若未徹修豈稱眞哉悟修之義
007_0638_c_08L如膏明相賴目足相資

007_0638_c_09L
修行之要但盡凡情別無7) [29]

007_0638_c_10L
病盡藥除還是本人

007_0638_c_11L
不用捨衆生心但莫染汚自性求正法
007_0638_c_12L是邪

007_0638_c_13L
捨者求者皆是染汚也

007_0638_c_14L
斷煩惱名二乘煩惱不生名大涅槃

007_0638_c_15L
斷者能所也不生者無能所也

007_0638_c_16L
須虛懷自照信一念緣起無生

007_0638_c_17L
此單明性起

007_0638_c_18L
諦觀殺盜8)淫妄從一心上起當處便
007_0638_c_19L何須更斷

007_0638_c_20L
此雙明性相

007_0638_c_21L
經云不起一念名爲永斷無明
007_0638_c_22L「故」作「境」{癸}「免」作「兔」{乙}「聲」下有
007_0638_c_23L「以」{癸}
「云云」作「云」{癸}「訣」作「𧥱」{丁}
007_0638_c_24L{己}{辛}
「正」作「五」{乙}「聖」無有{乙}「淫」
007_0638_c_25L作「婬」{癸}

007_0639_a_01L이르기를 “한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깨달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환상인 줄 알면 바로 벗어나게 되어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상을 벗어나면 바로 깨닫게 되어 또한 차례로 수행할 것도 없다.

 해설 마음은 요술쟁이, 몸은 요술의 성, 세계는 요술의 옷, 명상名相은 요술의 밥이다. 그리고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내는 것이나, 망妄을 말하고 진眞을 말하는 것까지도 환상 아닌 것이 없다. 또 시작을 알 길 없는 환상과 같은 무명無明도 모두 각심覺心에서 나온 것이다. 환상은 마치 허공 꽃과 같으니 환상이 없어지면 이를 부동不動이라고 이름한다. 꿈속에서 병이 들어 의원醫員을 찾던 사람도 꿈을 깨면 더 이상 방편을 지을 것이 없는데, 환상인 줄 아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다.

중생이 생멸生滅이 없는 가운데에서 망령되게 생사와 열반을 보고 있는 것은 허공 꽃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해설 성품에는 본래 생멸生滅이 없으므로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 없고,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으므로 꽃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이 없다. 생사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허공 꽃이 생겨나는 것을 보는 것과 같고, 열반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허공 꽃이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일어나도 본래 일어나는 것이 없고, 사라져도 본래 사라지는 것이 없는 만큼, 이 두 가지 소견에 대해서는 더 이상 따질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사익경思益經』에서 “제불諸佛이 세상에 나온 것은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생사와 열반의 두 소견을 제도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보살이 중생을 제도濟度하여 멸도에 들게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멸도를 얻은 중생은 없다.

 해설 보살은 단지 일어나는 생각들을 중생으로 삼는다. 따라서 그 생각들의 실체가 공空한 것을 요달了達한 것이 중생을 제도한 것이니, 생각들이 이미 공적空寂하게 되었다고 보면 실제로 멸도를 얻은 중생은 없는 것이다. 이상은 신해信解에 대해서 논하였다.

이치는 순식간에 깨달을 수 있어도, 행업行業은 순식간에 없앨 수 없다.

 해설 문수文殊는 천진天眞에 통달했고, 보현普賢은 연기緣起에 밝았다. 깨닫는 것은 번갯불과 같아도,

007_0639_a_01L念起即覺

007_0639_a_02L
知幻即離不作方便離幻即覺亦無
007_0639_a_03L漸次

007_0639_a_04L
心爲幻師也身爲幻城也世界幻衣
007_0639_a_05L名相幻食也至於起心動念
007_0639_a_06L妄言眞無非幻也又無始幻無明
007_0639_a_07L皆從覺心生幻幻如空花幻滅名不
007_0639_a_08L故夢瘡求醫者1)寤來無方便
007_0639_a_09L幻者亦如是

007_0639_a_10L
衆生於無生中妄見生死涅槃如見空
007_0639_a_11L花起滅

007_0639_a_12L
性本無生故無生涅也空本無花故
007_0639_a_13L無起滅也見生死2) [30]
007_0639_a_14L見涅槃者如見空花4) [31] 然起
007_0639_a_15L本無起滅本無滅於此二見不用
007_0639_a_16L5) [32] 是故思益經云諸佛出世
007_0639_a_17L爲度衆生只爲度生死涅槃二見耳

007_0639_a_18L
菩薩度衆生入滅度又實無衆生得滅
007_0639_a_19L

007_0639_a_20L
菩薩只以念念爲衆生也了念體空
007_0639_a_21L度衆生也念旣空寂者實無衆
007_0639_a_22L生得滅度也此上論信解

007_0639_a_23L
理雖頓悟事非頓除

007_0639_a_24L
文殊達天眞普賢明緣起解似電光

007_0639_b_01L행동은 궁자窮子27)와 같다. 이하에서는 수증修證에 대해서 논하였다.

음란한 생각을 품고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과 같고, 살생의 생각을 품고 참선하는 것은 귀를 막고서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고, 도둑질할 생각을 품고 참선하는 것은 새는 술잔이 가득 차기를 바라는 것과 같고, 망어妄語의 생각을 품고 참선하는 것은 똥 덩어리로 향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 비록 지혜가 많다고 하더라도 모두 악마의 세계를 이룰 뿐이다.

 해설 이것은 수행의 법도인 세 가지 ‘새는 일이 없는(無漏)’ 학문을 밝힌 것이다. 소승小乘은 법法을 받아 지키는 것으로 계戒를 삼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그 말단을 다스린다고 할 수 있고, 대승大乘은 마음을 단속하는 것으로 계를 삼기 때문에 세밀하게 그 뿌리까지 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법을 받아 지키는 계는 몸으로 범하는 일이 없고, 마음으로 지키는 계는 생각으로 범하는 일까지도 없는 것이다. 음란한 것은 청정淸淨함을 끊고, 살생하는 것은 자비慈悲를 끊고, 도둑질하는 것은 복덕福德을 끊고, 망어妄語를 하는 것은 진실眞實을 끊는 것이다. 제대로 지혜를 성취하여 여섯 가지 신통력神通力28)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婬行과 망어妄語의 생각을 끊지 않는다면, 반드시 악마의 세계에 떨어져 보리菩提의 바른길을 영원히 잃게 될 것이다. 이 네 가지 계율戒律은 모든 계율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특별히 밝혀서 생각으로도 범하지 않게 한 것이다.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을 계戒라 하고, 생각 자체가 없어지는 것을 정定이라 하고, 망령되지 않은 것을 혜慧라고 한다. 또 계가 도둑을 손으로 잡는 것이라면, 정은 도둑을 밧줄로 묶는 것이요, 혜는 도둑을 죽이는 것이다. 또 계의 그릇이 튼튼해야 정의 물이 맑아지면서 혜의 달빛이 비치게 되는 것이다. 이 삼학三學29)이야말로 만법萬法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특별히 밝혀서 새는 일이 없게끔 한 것이다.

 송頌
 靈山會上     영산회상에
 豈有無行佛    아무렇게나 행하는 부처가 어찌 있었겠으며
 少林門下     소림의 문하에
 豈有妄語祖    아무렇게나 말하는 조사가 어찌 있었으리오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삼업三業30)을 단속하지 않으며, 제멋대로 놀고 게으름을 부리며, 타인을 업신여기면서 시비를 따지는 것으로 근본을 삼는다.

 해설 마음의 계율을 한 번 깨뜨리면, 온갖 허물이 동시에 일어난다.


007_0639_b_01L行同窮子此下論修證

007_0639_b_02L
帶婬修禪如蒸沙作飯帶殺修禪
007_0639_b_03L塞耳呌聲帶偸修禪如漏巵求滿
007_0639_b_04L妄修禪如刻糞爲香縦有多智皆成
007_0639_b_05L魔道

007_0639_b_06L
此明修行軌則三無漏學也小乘禀
007_0639_b_07L法爲戒粗治其末大乘攝心爲戒
007_0639_b_08L細絶其本然則法戒無身犯心戒無
007_0639_b_09L思犯也婬者斷淸淨殺者斷慈悲
007_0639_b_10L盜者斷福德妄者斷眞實也能成
007_0639_b_11L智慧縱得六神通如不斷殺盜婬妄
007_0639_b_12L則必落魔道永失菩提正路矣此四
007_0639_b_13L百戒之根故別明之使無思犯
007_0639_b_14L無憶曰戒無念曰定莫妄曰慧
007_0639_b_15L又戒爲捉賊定爲縛賊慧爲殺賊
007_0639_b_16L又戒器完固定水澄淸慧月方現
007_0639_b_17L此三學者實爲萬法之源故特明之
007_0639_b_18L使無諸漏也

007_0639_b_19L
靈山會上豈有無行佛少林門下
007_0639_b_20L豈有妄語祖

007_0639_b_21L
無德之人不依佛戒不護三業放逸
007_0639_b_22L懈怠輕慢6)他人7) [33] 量是非而爲根
007_0639_b_23L

007_0639_b_24L
一破心戒百過俱生

007_0639_c_01L
 평評 이와 같은 마군魔軍의 무리가 말법末法에 마구 일어나 정법正法을 어지럽히니, 학자學者는 자세히 알아야 할 것이다.

만약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옴에 걸린 여우(疥癩野干)31)의 몸도 얻지 못할 텐데, 더군다나 청정한 깨달음의 과보를 바랄 수 있겠는가!

 해설 계율을 부처님처럼 중히 여기면 부처님이 항상 옆에 계실 것이다. 모름지기 초계草繫32)와 아주鵝珠33)의 고사를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생사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과 애욕愛欲의 갈증을 없애야 할 것이다.

 해설 애정은 윤회輪廻의 근본이 되고, 욕정은 생을 받는 인연이 된다. 부처가 이르기를 “음란한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티끌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은애恩愛에 한 번 얽혀들면, 사람을 끌어다 죄의 문에 집어넣게 된다.”라고 하였다. 갈증이란 정애情愛가 너무도 간절한 것을 표현한 말이다.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는 모두 선정을 통해서 나온다.

 해설 초범입성超凡入聖34)하고 좌탈입망坐脫立亡35)하는 것 모두가 선정禪定의 힘이다. 그래서 “성도聖道를 구하려면 이것밖에 다른 길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삼매三昧의 상태에 있으면, 일어났다 사라지는 세간의 모든 현상을 알 수가 있다.

 해설 빈틈의 햇빛 속에 먼지가 부옇게 떠다니고, 맑은 못의 물속에 그림자가 밝게 비친다.

경계境界를 대하고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불생이라 하고, 불생을 무념이라 하고, 무념을 해탈이라고 한다.


007_0639_c_01L
8) [34] 如此魔徒末法熾盛惱亂
007_0639_c_02L正法學者詳之

007_0639_c_03L
若不持戒尙不得疥癩野干之身況淸
007_0639_c_04L淨菩提果可冀乎

007_0639_c_05L
重戒如佛佛常在焉須草繫鵝珠
007_0639_c_06L以爲先9) [35]

007_0639_c_07L
欲脫生死先斷貪欲及10) [36] 愛渴

007_0639_c_08L
愛爲輪廻之本欲爲受生之緣佛云
007_0639_c_09L婬心不除塵不可出又云恩愛一縛
007_0639_c_10L11)牽人入罪門渴者情愛之至切
007_0639_c_11L

007_0639_c_12L
無礙淸淨慧皆因禪定生

007_0639_c_13L
超凡入聖坐脫立亡者皆禪定之力
007_0639_c_14L故云欲求聖道離此無路

007_0639_c_15L
心在定則能知世間生滅諸相

007_0639_c_16L
虛隙日光12)埃擾擾淸潭水底
007_0639_c_17L像昭昭

007_0639_c_18L
見境心不起名不生不生名無念
007_0639_c_19L念名解脫

007_0639_c_20L「寤」作「窹」{乙}{癸}「者」作「翳」{乙}「起」作
007_0639_c_21L「滅」{丁}
「滅」作「起」{丁}「窮」作「窺」又冠
007_0639_c_22L註曰窺疑窮{癸}
「他」作「佗」{癸}次同「較」
007_0639_c_23L作「輕」{癸}
「評」作「平」{乙}「噵」作「導」{甲}
007_0639_c_24L{乙}{丁}{己}{辛}
「諸」作「除」{甲}{乙}{丁}{己}{辛}「着」
007_0639_c_25L作「著」{癸}次同
「埃」作「挨」{丁}{己}{辛}

007_0640_a_01L
 해설 계戒와 정定과 혜慧는 하나 속에 모두 구비되어 있으니 개별적인 것이 아니다.

도를 닦아 적멸寂滅을 증득했다면 이것도 참된 것이 아니다. 심법이 본래 적요하니 이것이 바로 참 적멸인 것이다. 그러므로 “제법이 본래부터 항상 그 자체로 적멸상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해설 자기 눈은 자기가 보지 못한다. 자기 눈을 보았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그러므로 묘수妙首는 생각으로 헤아리고, 정명淨名은 침묵을 지킨 것이다.36) 이하에서는 구체적인 행동을 거론하였다.

가난한 사람이 구걸하러 오거든 분수껏 베풀어 주어라. 자기 몸처럼 여겨 크게 슬퍼하는 것(同體大悲)이 참다운 보시이다.

 해설 나와 남을 하나로 여기는 것이 동체同體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 집안의 살림살이이다.

어떤 사람이 와서 해를 끼치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추슬러 성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 한 생각 속에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면, 백만 가지 업장業障의 문이 열린다.

 해설 번뇌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해도, 화내고 거드름을 부리는 업장이 더 크다. 『열반경涅槃經』에서 이르기를 “향수를 발라 주거나 칼로 찌르거나 모두 무심하라.”37)라고 하였다. 성을 내는 것은 맑은 하늘에서 번개가 치며 우레가 울리는 것과 같다.

만약 인욕忍辱의 행동이 없다면, 대비大悲의 만행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해설 수행의 문이 한없이 많아도 자비慈悲와 인욕忍辱이 근본이 된다. 인忍의 마음도 곡두(幻)의 꿈과 같고, 욕辱의 경계도 거북의 털과 같은 것이다.

본래의 참 마음을 지키는 것이 으뜸가는 정진이다.

 해설 만약 정진精進하겠다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이것은 망상妄想이지 정진이 아니다. 그래서 ‘망상하지 말라, 망상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게으른 자는 항상 뒷날을 기약하곤 하는데, 이런 자는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이다.

주문呪文을 염송念誦할지니, 금생에 지은 업은 그래도 제어하기 용이해서 자신의 행동으로 피할 수 있지만, 전생에 지은 업은 없애기 어려운 만큼 반드시 신주神呪의 힘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해설 마등摩登38)이 깨달음의 열매를 얻은 것은 실로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주를 염송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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戒也定也慧也擧一具三不是單
007_0640_a_02L

007_0640_a_03L
修道證滅是亦非眞也心法本寂
007_0640_a_04L眞滅也故曰諸法從本來常自寂滅相

007_0640_a_05L
眼不自見見眼者妄也故妙首思量
007_0640_a_06L淨名杜默此下散擧細行

007_0640_a_07L
貧人來乞隨分施與同體大悲是眞
007_0640_a_08L布施

007_0640_a_09L
自*他爲一曰同體空手來空手去
007_0640_a_10L吾家活計

007_0640_a_11L
有人來害當自攝心勿生嗔恨一念
007_0640_a_12L嗔心起百萬障門開

007_0640_a_13L
煩惱雖無量嗔慢爲甚涅槃云
007_0640_a_14L割兩無心嗔如冷雲中霹靂起火來

007_0640_a_15L
若無忍行萬行不成

007_0640_a_16L
行門雖無量慈忍爲根源忍心如幻
007_0640_a_17L辱境若龜毛

007_0640_a_18L
1) [37] 眞心第一精進

007_0640_a_19L
若起精進心是妄非精進故云
007_0640_a_20L妄想莫妄想懈怠者常常望後
007_0640_a_21L自棄人也

007_0640_a_22L
持呪者現業易制自行可違宿業難
007_0640_a_23L必借神力

007_0640_a_24L
摩登得果信不誣矣故不持神呪

007_0640_b_01L악마의 헤살을 멀리 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배는 공경과 굴복을 뜻한다. 즉 참된 본성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해설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해지면 그것이 바로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이다.

염불念佛이란 무엇인가? 입으로만 하는 것을 송불誦佛이라 하고, 마음으로 하는 것을 염불이라 한다. 입으로만 하고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수도修道에 아무 이익이 없을 것이다.

 해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의 육자六字 법문法問이야말로 윤회輪廻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속으로는 부처의 경계를 떠올리며 항상 잊지 말고 생각할 것이요, 입으로는 부처의 명호名號를 일컬으며 얼버무리지 말고 분명히 불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相應하는 것을 염불念佛이라고 한다.

 평評 오조五祖가 이르기를 “본래의 진심眞心을 간수하는 것이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을 염송하는 것보다 낫다.”라고 하였다. 또 육조六祖가 이르기를 “항상 다른 부처만 염송하면 생사生死를 면하지 못하지만, 나의 본심本心을 지키면 즉시 피안彼岸으로 건너간다.”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부처는 자신의 본성本性 속에서 찾아야지, 몸 밖에서 구할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미혹된 사람은 염불하며 왕생往生을 추구하지만,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할 뿐이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대저 중생이 마음을 깨달아 스스로 제도濟度하는 것이지, 부처가 중생을 제도할 수 없다.”【운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제덕諸德은 곧바로 본심을 가리켰을 뿐이요, 별도로 방편方便을 시설한 것은 없었다.【하나의 법法을 가지고 모든 근기根機에 적용하였다.】 이치로 말하면 실로 이와 같다고 하겠지만, 적문迹門39)에는 실로 극락세계가 있는 것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이 48대원大願을 세웠으므로, 염불을 열 번만 하면 이 원력願力에 의해 반드시 정토(蓮胎)에 왕생하여 곧장 윤회를 벗어날 수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이 똑같이 이야기하고, 시방十方의 보살들도 똑같이 왕생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금에 걸쳐 왕생한 사람들의 전기傳記가 분명히 전해오고 있으니, 바라건대 여러 수행하는 이들은 부디 잘못 알지 말고서 열심히 노력할지어다.

007_0640_b_01L遠離魔事者無有是處

007_0640_b_02L
禮拜者敬也伏也恭敬眞性屈伏無
007_0640_b_03L

007_0640_b_04L
身口意淸淨則佛出世

007_0640_b_05L
念佛者在口曰誦在心曰念徒誦失
007_0640_b_06L於道無益

007_0640_b_07L
阿彌陁佛六字法門定出輪廻之捷
007_0640_b_08L徑也心則緣佛境界憶持不忘
007_0640_b_09L則稱佛名號分明不亂如是心口相
007_0640_b_10L名曰念佛

007_0640_b_11L
2)評曰 [38] 五祖云守本眞心勝念十
007_0640_b_12L方諸佛六祖云常念*他佛不免
007_0640_b_13L生死守我本心即到彼岸又云
007_0640_b_14L佛向性中作莫向身外求又云
007_0640_b_15L人念佛求生悟人自淨其心又云
007_0640_b_16L大抵衆生悟心自度佛不能度衆
007_0640_b_17L
如上諸德直指本心別無
007_0640_b_18L方便方將一法
便逗諸根
理實如是然迹門實
007_0640_b_19L有極樂世界阿彌陀佛有四十八
007_0640_b_20L大願凡念十聲者承此願力
007_0640_b_21L生蓮胎徑脫輪廻三世諸佛
007_0640_b_22L口同音十方菩薩同願徃生
007_0640_b_23L况古今徃生之人傳記昭昭願諸
007_0640_b_24L行者愼勿錯認勉之勉之

007_0640_c_01L
범어 아미타阿彌陀를 여기에서는 무량수無量壽라고도 하고, 무량광無量光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시방 삼세에서 첫째가는 부처의 명호名號이다. 인지因地40)에 있을 때의 이름은 법장비구法藏比丘였는데,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앞에서 마흔여덟 가지 서원誓願을 세우고 말하기를 “내가 부처가 될 때에는 시방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 속의 제천諸天과 인민人民은 물론이요, 지극히 미천한 벌레들까지도 나의 이름을 열 번만 부르면 반드시 나의 세계에 태어나게 해 주소서. 이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면 저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습니다.”【운운】라고 하였다. 선성先聖이 이르기를 “염불하는 한마디 소리에 천마天魔의 간담이 떨어지고, 이름이 귀부鬼簿에서 지워지며, 연꽃이 금지金池에서 피어난다.”라고 하였다. 또 참법懺法에 이르기를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은 하나는 더디고 하나는 빠르다. 바다를 건너가려고 할 때 나무를 심어 배를 만들면 더딜 것이니, 이는 자력에 비유된다. 반면에 남의 배를 빌려 타고 바다를 건너면 빠를 것이니, 이는 불력佛力에 비유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이르기를 “이 세상에서 어린아이가 물과 불에 쫓겨 큰소리로 부르짖으면, 부모가 듣고 급히 달려와 구원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목숨을 마칠 때에 큰소리로 염불을 하면, 부처님은 신통神通을 갖췄으므로 반드시 와서 맞이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성大聖의 자비慈悲는 부모보다도 낫고, 중생의 생사生死는 수화水火보다도 심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의 마음이 정토淨土이니 정토에 왕생할 수 없고, 나의 본성이 아미타불이니 아미타불을 볼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저 아미타불은 탐내는 일도 없고 성내는 일도 없는데, 나도 탐내거나 성내는 일이 없는가? 저 아미타불은 지옥을 연화세계蓮花世界로 바꾸는 일을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도 쉽게 한다. 반면에 나는 업력業力 때문에 지옥에 떨어질까 항상 겁을 내는데, 더군다나 지옥을 연화세계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저 아미타불은 한량없는

007_0640_c_01L
梵語阿彌陀此云無量壽亦云無
007_0640_c_02L量光十方三世第一佛號也
007_0640_c_03L名法藏比丘對世自在王佛發四
007_0640_c_04L十八願云我作佛時十方無央數
007_0640_c_05L世界諸天人民以至蜎飛蝡動之
007_0640_c_06L念我名十聲者必生我刹中
007_0640_c_07L不得是願終不成佛
先聖云
007_0640_c_08L佛一聲天魔喪膽名除鬼3)簿 [39]
007_0640_c_09L出金池又懺法云自力*他力
007_0640_c_10L遲一速欲越海者種樹作船
007_0640_c_11L比自力也借船越海速也
007_0640_c_12L佛力也又曰世間稚兒迫於水火
007_0640_c_13L高聲大呌則父母聞之急走救援
007_0640_c_14L如人臨命終時高聲念佛則佛具
007_0640_c_15L神通決定來迎爾是故大聖慈悲
007_0640_c_16L勝於父母也衆生生死甚於水火
007_0640_c_17L有人云自心淨土淨土不可
007_0640_c_18L自性彌陀彌陀不可見此言
007_0640_c_19L似是而非也彼佛無貪無嗔我亦
007_0640_c_20L無貪嗔乎彼佛變地獄作蓮花
007_0640_c_21L易於反掌我則以業力常恐自墮
007_0640_c_22L於地獄況變作蓮花乎彼佛觀無
007_0640_c_23L「本」作「木」{乙}此評曰文底本與註釋不分
007_0640_c_24L編者改行錄之
「簿」作「薄」{丙}

007_0641_a_01L세계를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환히 보는데, 나는 담장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시방세계를 눈앞에 있는 것처럼 환히 본단 말인가? 그러므로 사람마다 본성은 부처이지만 행동은 중생이니, 그 상相과 용用을 논한다면 하늘과 땅처럼 현격한 것이다. 규봉圭峯이 “설령 실제로 돈오頓悟를 했다고 하더라도, 끝내는 점수漸修를 해야만 한다.”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이 말이 옳다.
 그렇다면 자성自性이 미타彌陀라고 주장하는 자에게 물어보겠다. 태어나면서 석가釋迦인 자와 저절로 이루어진 미타彌陀가 어디에 있겠는가? 스스로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니, 어느 누가 이에 대해서 알지 못하겠는가? 목숨이 끊어지려 하면서 생사生死의 고통이 일어날 즈음에 정녕 걸림 없이 대처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한때 허세를 부리다가 영원히 나락奈落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마명馬鳴과 용수龍樹 같은 조사祖師들도 모두 분명히 말씀하시면서 왕생往生을 간절히 권하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왕생을 원하지 않는단 말인가? 또 부처님이 친히 “서방 정토가 여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10만【십악十惡을 가리킴】 8천【팔사八邪를 가리킴】 국토를 지나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둔근鈍根을 위해서 상相을 설하신 것이고, 또 “서방 정토는 여기에서 멀지 않으니, 마음【중생을 가리킴】이 바로 부처【미타를 가리킴】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이근利根을 위해서 성性을 설하신 것이다. 가르침에는 권權과 실實이 있고, 말씀에는 현顯과 밀密이 있다. 만약 해解와 행行이 상응하는 자라면 원근에 두루 통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祖師의 문하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른 자【혜원慧遠】도 있었고, 주인공主人公을 부른 자【서암瑞巖】도 있었던 것이다.

불경을 듣는 것은 남이 듣게 하는 인연과 남이 환희하게 하는 복이 있다. 허깨비 같은 몸은 다하는 때가 있지만 진실한 행은 없어지지 않는다.

 해설 이것은 지학智學을 설명한 것이니, 마치 금강석을 먹이는 것과 같아서41) 칠보七寶를 보시하는 것보다도 더 낫다. 연수延壽 선사(壽師)42)가 말하기를 “듣고서 믿지 않더라도 부처의 종자를 심는 인연을 맺게 되고,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인간과 천상의 복을 보탤 것이다.”라고 하였다.


007_0641_a_01L盡世界如在目前我則隔壁事
007_0641_a_02L猶不知況見十方世界如目前乎
007_0641_a_03L是故人人性則雖佛而行則衆生
007_0641_a_04L論其相用天地懸隔圭峯云
007_0641_a_05L實頓悟終須漸行誠哉是言也
007_0641_a_06L然則寄語自性彌陀者豈有天生
007_0641_a_07L釋迦自然彌陀耶須自忖量人豈
007_0641_a_08L不自知臨命終時生死苦際
007_0641_a_09L得自在否若不如是莫以一時貢
007_0641_a_10L却致永劫沉墮又馬鳴龍樹
007_0641_a_11L悉是祖師皆明垂言敎深勸徃生
007_0641_a_12L我何人哉不欲徃生1) [40] 自云
007_0641_a_13L西方去此遠2) [41]
007_0641_a_14L此爲鈍根說相也又云西方去此
007_0641_a_15L不遠即心
是佛
此爲利根說
007_0641_a_16L性也敎有權實語有顯密若解
007_0641_a_17L行相應者遠近俱通也故祖師門
007_0641_a_18L亦有或喚阿彌佛者4) [42]
或喚主
007_0641_a_19L人公者
5) [43]

007_0641_a_20L
聽經有經耳之緣隨喜之福幻𨈬有盡
007_0641_a_21L實行不亡

007_0641_a_22L
此明智學如食金剛勝施七寶
007_0641_a_23L師云聞而不信尙結佛種之因
007_0641_a_24L而不成6) [44] 人天之福

007_0641_b_01L
불경을 보면서 자기 몸에 돌이켜 공부하지 않으면, 만 권의 대장경을 모두 본다 하더라도 아무 이익이 없을 것이다.

 해설 이는 우학愚學을 설명한 것이니, 마치 봄날의 새가 낮에 울고 가을벌레가 밤에 우는 것과 같다. 종밀宗密 선사(密師)43)는 말하기를 “문자나 알고서 경을 본다면 애당초 깨달음과는 관계가 없다. 글이나 새기고 뜻이나 푸는 것은 다만 탐욕과 성냄과 사견을 부추길 뿐이다.”라고 하였다.

공부가 도에 이르지 못했으면서 견문을 과시하며 그저 민첩하게 말솜씨를 구사하여 상대를 이기려고 하는 것은 마치 측간의 벽에 단청丹靑을 바르는 것과 같다.

 해설 특별히 말세末世의 우학愚學을 거론한 것이다. 공부는 본래 자기 성품을 닦는 것인데, 전적으로 남을 위해 익힌다면 이것은 도대체 무슨 마음이라고 할까?

출가한 사람이 외전을 익히는 것은 칼로 진흙을 베는 것과 같다. 진흙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데 칼만 상할 따름이다.

 해설 문밖으로 빠져나온 장자의 아이들이 불붙는 집안으로 도로 들어가는구나.

출가해서 승려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편안히 지내기 위해서도 아니요, 잘 입고 잘 먹으려 함도 아니요, 명리名利를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생사를 벗어나기 위함이요, 번뇌를 끊기 위함이요, 부처의 혜명을 잇기 위함이요,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함이다.

 해설 그 기상이 하늘을 찌르는 대장부라고 이를 만하다.

부처가 이르기를 “무상의 불길이 세상을 모두 불태운다.”라고 하였고, 또 “중생의 고통의 불길이 사방에서 온통 타오른다.”라고 하였고, 또 “각종 번뇌의 도적들이 항상 사람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도를 닦는 사람들은 스스로 경계하여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것처럼 해야 할 것이다.

 해설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다. 이것이 바로 무상無常의 고통의 불길이 사방에서 온통 타오른다고 하는 것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삼가 고하노니, 부디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지어다.

세상의 헛된 명성을 욕심내는 것은 괜히 애쓰면서 몸을 피곤하게 하는 일이요, 세상의 명리名利를 구하려고 도모하는 것은 업장業障의 불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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看經若不向自己上做工夫雖看盡萬
007_0641_b_02L猶無益也

007_0641_b_03L
此明愚學如春禽晝啼秋蟲夜鳴
007_0641_b_04L密師云識字看經元不證悟銷文
007_0641_b_05L釋義唯熾貪嗔邪見

007_0641_b_06L
學未至於道衒耀見聞徒以口舌辯利
007_0641_b_07L相勝者如厠屋塗丹雘

007_0641_b_08L
別明末世愚學學本修性7) [45] 習爲
007_0641_b_09L是誠何心哉

007_0641_b_10L
出家人習外典如以刀割泥泥無所用
007_0641_b_11L而刀自傷焉

007_0641_b_12L
門外長者子還入火宅中

007_0641_b_13L
出家爲僧豈細事乎非求安逸也
007_0641_b_14L求溫飽也非求利名也爲生死也
007_0641_b_15L斷煩惱也爲續佛慧命也爲出三界度
007_0641_b_16L衆生也

007_0641_b_17L
可謂衝天大丈夫

007_0641_b_18L
佛云無常之火燒諸世間又云衆生苦
007_0641_b_19L四面俱焚又云諸煩惱賊常伺殺
007_0641_b_20L道人宜自警悟如救頭燃

007_0641_b_21L
身有生老病死界有成住壞空心有
007_0641_b_22L生住異滅此無常苦火四面俱焚者
007_0641_b_23L8) [46] 白叅玄人光陰莫虛度

007_0641_b_24L
貪世浮名枉功勞形營求世利業火

007_0641_c_01L땔나무를 더 집어넣는 격이다.

 해설 세상의 헛된 명성을 욕심내는 것과 관련하여 어떤 사람이 시를 짓기를 “기러기는 하늘 끝으로 날아갔건만 모래 위에 그 발자취 남아 있고, 사람은 황천으로 떠났건만 집에 그 이름 남아 있네.”라고 하였고, 세상의 명리를 도모하는 것과 관련하여 어떤 사람이 시를 짓기를 “벌이 온갖 꽃을 찾아 꿀을 만들었지만, 온갖 고생을 하며 누굴 위해 달게 해 주었는지 모르겠네.”44)라고 하였다. 괜히 애쓰면서 몸을 피곤하게 한다는 것은 얼음을 쪼아 조각하는 것처럼 쓸데없는 재주를 부린다는 말이요, 업장의 불길에 땔나무를 더 집어넣는다는 것은 아무리 색깔 좋고 향기 좋은 나무라도 결국은 불쏘시개가 된다는 말과 같다.

명예와 이익을 좇는 납자는 초야에 묻힌 촌사람만도 못하다.

 해설 금륜왕金輪王의 자리도 버리고 설산雪山에 들어간 것은 천 분의 세존世尊이 나오는 대겁大劫의 시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을 법칙이다. 그런데 말법末法 시대에 속은 양羊이고 거죽만 범처럼 꾸민 자들이 염치를 모르고서 위풍과 위세 있는 곳을 좇아 총애를 얻으려고 아첨을 떨고 있다. 아, 그것이 증거이다.

 평評 마음이 세상의 명리名利에 물든 사람은 권문權門에 아부하며 그 뒤를 쫓아다니다가 거꾸로 속인俗人에게 비웃음을 당한다. 이런 납자衲子는 양羊이라는 비유 하나로 이와 같은 많은 행위를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징야부懲也夫 세 글자로 글을 맺었는데, 이 세 글자는 『장자莊子』의 글에서 나온 것이다.

부처가 이르기를 “어떤 도적이 나의 의복을 빌려 입고서 여래를 팔아먹으며 갖가지 죄업罪業을 짓는고?”라고 하였다.

 해설 말법末法 시대의 비구比丘에게는 여러 가지 이름이 따라다닌다. 혹은 조서승鳥鼠僧45)이라고도 하고, 아양승啞羊僧46)이라고도 하고, 대머리 거사(秃居士)라고도 하고, 지옥 찌꺼기(地獄滓)라고도 하고,

007_0641_c_01L加薪

007_0641_c_02L
貪世浮名者有人詩云鴻飛天末迹
007_0641_c_03L留沙人去黃泉名在家營求世利者
007_0641_c_04L有人詩云采得百花成蜜後不知辛
007_0641_c_05L苦爲誰甜枉功勞形者9) [47] 雕刻
007_0641_c_06L不用之巧也業火加薪者10) [48] 弊色
007_0641_c_07L致火之具也

007_0641_c_08L
名利衲子不如草衣野人

007_0641_c_09L
唾金輪入雪山千世尊不易之軌則
007_0641_c_10L末世羊質虎皮之軰不識廉耻望風
007_0641_c_11L隨勢陰媚取寵噫 其懲也夫

007_0641_c_12L
心染世利者阿附權門趨走風塵
007_0641_c_13L返取笑於俗人此衲子以羊質
007_0641_c_14L此多行以懲也夫三字結之此三
007_0641_c_15L文出11) [49]

007_0641_c_16L
佛云云何賊人假我衣服裨販如來
007_0641_c_17L造種種業

007_0641_c_18L
末法比丘有多般名字12)鳥鼠僧
007_0641_c_19L或啞羊僧或秃居士或地獄滓
007_0641_c_20L「佛」無有 {癸}「矣」作「夫」{癸}「萬」作「方」
007_0641_c_21L又冠註曰方疑万{癸}
「慧」作「惠」{癸}「巖」
007_0641_c_22L作「岩」{癸}
「盖」作「益」{癸}「全」作「金」{乙}
007_0641_c_23L「謹」作「▼(言+荳)」{乙}「氷」作「水」{辛}「麁」作
007_0641_c_24L「麤」{癸}次同
「莊」作「藏」{乙}「鳥」作「烏」
007_0641_c_25L{乙}{癸}

007_0642_a_01L가사 입은 도적(被袈裟賊)이라고도 하는데, 아, 이런 이름이 붙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以此)이라고 하겠다.

 평評 여래如來를 팔아먹는다고 한 것은 인과因果를 무시하고 죄복罪福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을 마구 지으며 사랑과 미움을 쉴 새 없이 일으키는 것을 말하니, 정말 가엾다고 이를 만하다. 승려도 아니고 속인도 아닌 자를 조서鳥鼠라고 하고, 입으로 설법說法하지 못하는 자를 아양啞羊이라고 하고, 모양은 승려이지만 마음은 속인인 자를 대머리 거사(秃居士)라고 하고, 죄업罪業이 중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자를 지옥 찌꺼기(地獄滓)라고 하고, 부처를 팔아서 먹고사는 자를 가사 입은 도적(被袈裟賊)이라고 하는데, 가사 입은 도적이라는 말로 이와 같은 많은 이름을 증명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차以此라는 두 글자로 글을 맺었는데, 이 두 글자는 『노자老子』의 글에서 나온 것이다.

아! 불자여, 하나의 옷과 하나의 밥이 농부의 피와 직녀의 고통 아닌 것이 없으니,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모할 수가 있겠는가!

 해설 『전등록傳燈錄』에 의하면, 어떤 수도자가 도안道眼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목균木菌이 되어 신도가 보시한 은혜를 갚았다고 한다.47)

그러므로 말하기를 “털로 뒤덮이고 뿔을 머리에 인 축생畜生의 전신前身을 알고 싶은가? 지금 신도들의 시주施主를 거저 받는 사람들이다.”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심보일까? 눈앞의 즐거움이 곧 후생後生의 괴로움이 되는 것을 도무지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

 해설 『지도론智度論』에 의하면, 어떤 수도자가 다섯 알의 곡식 때문에 소의 몸을 받아 살아서는 열심히 일해서 보상하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 보상했다고 한다. 신도의 시주를 그냥 받으면 마치 메아리처럼 응보應報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차라리 뜨거운 철판을 몸에 두를지언정 신심 깊은 사람이 주는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차라리 끓는 쇳물을 입에 댈지언정 신심 깊은 사람이 주는 음식을 먹지 말 것이요, 차라리 끓는 가마솥 속에 몸을 던질지언정 신심 깊은 사람이 주는 집에서 거처하지 말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해설 『범망경梵網經』에 이르기를 “파계한 몸으로 신심 있는 사람이 베푸는 각종 공양과 시주를 받지 않겠다고 서원을 세워라. 보살이 만약

007_0642_a_01L被袈裟賊其所以以此

007_0642_a_02L
裨販如來者撥因果排罪福沸騰
007_0642_a_03L身口迭起愛憎可謂愍也避僧
007_0642_a_04L避俗曰*鳥鼠舌不說法曰啞羊
007_0642_a_05L僧形俗心曰秃居士罪重不遷曰
007_0642_a_06L地獄滓賣佛營生曰被袈裟賊
007_0642_a_07L被袈裟賊證此多名以此二字結
007_0642_a_08L此二字文出老子

007_0642_a_09L
於戱佛子一衣一食莫非農夫之血
007_0642_a_10L織女1) [50] 道眼未明如何消得

007_0642_a_11L
傳燈一道人道眼未明故身爲木菌
007_0642_a_12L以還信施

007_0642_a_13L
故曰要識披毛戴角底麽即今虛受信
007_0642_a_14L施者是有人未飢而食未寒而衣
007_0642_a_15L誠何心哉都不思目前之樂便是身後
007_0642_a_16L之苦也

007_0642_a_17L
智論一道人五粒粟受牛身生償
007_0642_a_18L筋骨死還皮肉虛受信施報應如
007_0642_a_19L

007_0642_a_20L
故曰寧以熱鐵纒身不受信心人衣
007_0642_a_21L以洋銅灌口不受信心人食寧以鐵鑊
007_0642_a_22L投身不受信心人房舍等

007_0642_a_23L
梵網經云不以破戒之身受信心人
007_0642_a_24L種種供養2)及種種施物菩薩若不

007_0642_b_01L이런 서원을 세우지 않으면 경구죄輕垢罪를 범하게 된다.”48)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수도하는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에 독약을 먹는 것처럼 여기고, 시주를 받을 때에 화살을 맞는 것처럼 여겨야 한다. 많은 선물과 달콤한 말을 수도하는 사람은 두려워해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

 해설 음식 먹을 때에 독약 먹는 것처럼 여기라는 것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서이고, 시주 받을 때에 화살 맞는 것처럼 여기라는 것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서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수도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하나의 숫돌과 같다고 할 것이다. 장씨張氏의 셋째 아들도 와서 칼을 갈고, 이씨李氏의 넷째 아들도 와서 칼을 간다. 이렇게 왕래하며 칼을 가는 동안, 다른 사람들의 칼은 잘 들겠지만 자신의 숫돌은 점점 닳아 없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또 남들이 와서 자기의 숫돌에 갈지 않는다고 걱정을 하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라고 한 것이다.

 해설 이와 같은 수도자는 평생 지향하는 것이 오직 잘 입고 잘 먹는 데에만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옛말에도 “삼도三途49)의 고통은 아직 고통이라고 할 수 없다. 승복僧服을 걸쳤다가 사람의 몸을 잃으면서부터 본격적인 고통이 시작된다.”라고 하였다.

 해설 옛사람이 이르기를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의 물도 그냥 넘길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승복을 입었다가 사람 몸을 잃게 되는 이유이니, 불자佛子들이여, 불자들이여, 분격憤激할지어다. 이 장章은 처음에 ‘아(於戱)’라는 하나의 글자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옛말(古語)’이라는 하나의 말로 끝났다. 그리고 중간에 설명하면서 ‘고왈故曰’이라는 글자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것 역시 글을 짓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하겠다.

가엾다! 이 몸이여! 아홉 개의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물이 흘러나오고, 백천 가지 종기와 부스럼으로 뒤덮인 한 조각 엷은 거죽이로다. 또한 ‘가죽 주머니에는 똥이 담기고 피 고름이 모였다.’라고 하니 더러운 악취를 욕심내며 아까워할 것이 없다. 더군다나 백 년 동안 잘 길러 주어도 한 번 숨 쉬는 사이에 은혜를 저버리는 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해설 위에서 말한 죄업罪業이 모두 이 몸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소리쳐 꾸짖으면서 깊이 경책警策해야 할 것이다. 이 몸이야말로 모든 애욕愛慾의 근본이니, 이 몸이 허망한 줄 알게 되면 모든 애욕이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탐착耽着하게 되면 한량없는 허물과

007_0642_b_01L發是願則得輕垢罪

007_0642_b_02L
故曰道人進食如進毒受施如受箭
007_0642_b_03L幣厚言甘道人所畏

007_0642_b_04L
進食如進毒者畏喪其道眼也受施
007_0642_b_05L如受箭者畏失其道果也

007_0642_b_06L
故曰修道之人如一塊磨刀之石張三
007_0642_b_07L也來磨李四也來磨磨來磨去別人
007_0642_b_08L刀快而自家石漸消然有人更嫌*他
007_0642_b_09L人不來我石上磨實爲可惜

007_0642_b_10L
如此道人平生所向只在溫飽

007_0642_b_11L
故古語亦有之曰三途苦未是苦袈裟
007_0642_b_12L3)失人身 [51] 是苦也

007_0642_b_13L
古人云今生未明心滴水也難消
007_0642_b_14L此所以袈裟下失人身也佛子佛子
007_0642_b_15L憤之激之此章始起於一於戱終結
007_0642_b_16L於一古語中間4) [52] 繹許多故曰字
007_0642_b_17L亦一段文法也

007_0642_b_18L
咄哉此身九孔常流百千癰疽一片
007_0642_b_19L薄皮又云草囊盛糞膿血之聚臭穢
007_0642_b_20L可鄙無貪惜之何況百年5) [53] 一息
007_0642_b_21L背恩

007_0642_b_22L
上來諸業皆由此身發聲叱咄
007_0642_b_23L有警也此身諸愛根本了之虛妄
007_0642_b_24L則諸愛自除如其耽着則起無量過

007_0642_c_01L환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여기에서 특별히 밝혀서 수도자의 눈을 뜨게 한 것이다.

 평評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육신은 주인이 없으므로, 네 명의 원수가 임시로 모여 산다고도 하고, 사대로 이루어진 육신은 은혜를 배반하는 까닭에 네 마리의 독사를 기른다고도 한다. 육신이 허망한 것을 내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 화를 내고 깔보는 것이요, 다른 사람도 육신이 허망한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 화를 내고 깔보는 것이다. 이것은 두 귀신이 하나의 송장을 두고 다투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인데, 그 송장의 됨됨이에 대해서 혹은 거품 덩어리, 혹은 꿈 덩어리, 혹은 고생 뭉치, 혹은 똥 무더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빨리 썩을 뿐만이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더럽기만 하다. 위에 있는 일곱 구멍에서는 항상 눈물과 콧물이 흘러나오고, 아래에 있는 두 구멍에서는 항상 오줌과 똥이 흘러내린다. 그러므로 하루 중에 어느 때나 몸을 깨끗이 씻고서 사람들을 만나야만 한다. 행동이 거칠어 몸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선신善神이 반드시 그를 등지고 떠나게 마련이다.『인과경因果經』에 이르기를 “손을 깨끗이 씻지 않고 경권經卷을 만지거나, 부처님 앞에서 침을 뱉는 자는 후생에 반드시 측간의 벌레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고, 『문수경文殊經』에서 이르기를 “대소변을 볼 때에는 목석木石처럼 처하면서, 말하거나 소리 내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요, 또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를 쓰지 말 것이요, 또 측간에 가래를 뱉지도 말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뒷간에 다녀와서 깨끗이 씻지 않은 자는 선상禪床에 앉지도 말고 보전寶殿에 오르지도 말라.”라고 하였다.
 율律에 이르기를 “처음 뒷간에 들어갈 때에는 먼저 손가락을 세 번 튕겨서 오물 속에 있는 귀물鬼物에게 알린다. 그리고 신주神呪를 각각 일곱 번 묵송黙誦하는데, 처음에는 입측주入厠呪 ‘옴로다아바하 唵狠嚕陀耶 莎訶.’를 외우고,

007_0642_c_01L故於此特明之以開修道之眼
007_0642_c_02L

007_0642_c_03L
評曰四大無6) [54] 一爲假四寃
007_0642_c_04L四大背恩故一爲養四蛇我不了
007_0642_c_05L虛妄故爲*他人也嗔之慢之*他
007_0642_c_06L人亦不了虛妄故爲我也嗔之慢
007_0642_c_07L若二鬼之爭一屍也一屍之爲
007_0642_c_08L體也一曰泡聚一曰夢聚一曰
007_0642_c_09L苦聚一曰糞聚非徒速杇亦甚
007_0642_c_10L鄙陋上七孔常流涕唾下二孔
007_0642_c_11L常流屎尿故須十二時中潔淨身
007_0642_c_12L以*叅衆數凡行*麁不淨者
007_0642_c_13L善神必背去因果經云將不淨手
007_0642_c_14L執經卷在佛前涕唾者必當獲
007_0642_c_15L厠蟲報文殊經云大小便時
007_0642_c_16L如木石愼勿語言作聲又勿畵壁
007_0642_c_17L書字又勿吐痰入厠中又云登厠
007_0642_c_18L不洗淨者不得坐禪7) [55] 不得登
007_0642_c_19L寶殿律云初入厠時先須彈指三
007_0642_c_20L以警在穢之鬼默誦神呪各七
007_0642_c_21L初誦入厠呪曰8)옴로다아바하 [56]
唵狠嚕陀耶 莎訶

007_0642_c_22L「之」無有{癸}「及」作「乃」{癸}「失人身始」
007_0642_c_23L作「以袈裟下」{丁}{己}
「紬」作「細」{丁}{壬}「將」
007_0642_c_24L作「長」{乙}
「主」作「生」{癸}「床」作「狀」又
007_0642_c_25L冠註曰狀疑牀{癸}
正音傍點省略{編}次同

007_0643_a_01L다음 세정주洗淨呪 ‘옴하나 리데바하 唵賀曩密 㗚帝莎訶.’를 외운다. 그러고는 오른손으로 병甁을 쥐고 왼손【무명지를 씀】을 씻는데, 정수淨水를 조금씩 기울여서 착실하게 씻는다. 다음 세수주洗手呪 ‘옴주가 라야바하 唵 主迦囉野 莎 訶.’를 외우고, 다음 거예주去穢呪 ‘옴시리예 바혜바하 唵室利曳婆醘娑嚩賀.’를 외우고, 다음 정신주淨身呪 ‘옴 바라놔가닥 바하 唵跋 折囉惱迦吒娑 嚩賀.’를 외운다. 이 오신주五神呪는 큰 위덕威德을 지니고 있어서 여러 악귀신惡鬼神이 들으면 반드시 두 손을 마주 잡고 공경하게 마련이다. 만약 법도에 맞게 외우지 않으면, 비록 칠항하수七恒河水로 씻고 금강金剛의 물가에 이른다 할지라도, 신기身器를 청정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세정洗淨할 때에는 냉수冷水를 사용하고, 세수洗手할 때에는 조각皂角50)을 쓰며, 톱밥(木屑)과 물에 갠 재(灰泥)도 통용한다. 만약 물에 갠 재를 쓰지 않으면, 닦을 때 묻은 물이 손등을 적셔서 아직도 더러울 것인데, 그대로 예불禮佛하고 송경誦經을 한다면 반드시 죄를 얻을 것이다.”【운운】라고 하였다. 이는 뒷간에 가서 깨끗이 씻는 법을 말한 것인데, 이 역시 수도하는 사람이 날마다 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대략 경전의 말을 인용해서 여기에 함께 소개하였다.

죄가 있으면 곧바로 참회하고, 악업惡業을 지었으면 곧바로 참괴할 줄 아는 것이 장부의 기상이다. 또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되면, 그 죄도 마음을 따라 없어질 것이다.

 해설 참회라는 것은 예전의 허물을 뉘우치고 앞으로의 잘못을 경계하는 것이요, 참괴慚愧라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질책하고 밖으로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공적空寂한 것인 만큼, 죄업이 붙어 있을 여지가 없다.

수도하는 사람은 마음을 단정히 하여 질박하고 정직한 것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 하나의 표주박과 하나의 누더기로 떠돌면서 어디서나 걸림이 없어야 한다.

 해설 부처가 이르기를 “마음은 곧게 펴진 줄과 같아야 한다.”라고 하였고, 또 “곧은 마음이 바로 도량道場이다.”라고 하였다. 만약 이 몸을 탐착耽着하지 않는다면, 어디에 있거나 반드시 걸림이 없게 될 것이다.

007_0643_a_01L次誦洗淨呪曰옴하나 1) [57] 㗚帝莎訶
007_0643_a_02L右手執瓶左手用無
名指
洗之
007_0643_a_03L水旋旋傾之*着實洗淨次誦洗
007_0643_a_04L手呪曰3) [58] 莎 訶次誦去穢
007_0643_a_05L呪曰옴시리예 바혜바하
唵室利曳5) [59] 醘娑嚩賀
次誦淨身
007_0643_a_06L呪曰옴 바6) [60] 折囉惱迦吒娑 嚩賀 此五
007_0643_a_07L神呪有大威德諸惡鬼神聞必
007_0643_a_08L拱手若不如法誦持則雖用七恒
007_0643_a_09L河水洗至金剛際亦不得身器淸
007_0643_a_10L又云9)洗淨須用冷水 [61] 洗手須
007_0643_a_11L用皂角又木屑灰泥亦通若不
007_0643_a_12L用灰泥則觸水淋其手背垢穢尙
007_0643_a_13L禮佛誦經必得罪
此登厠洗
007_0643_a_14L淨之法亦是道人日用行實故
007_0643_a_15L略引經語并附于此

007_0643_a_16L
有罪即懺悔發業即慚愧有丈夫氣象
007_0643_a_17L又改過自新罪隨心滅

007_0643_a_18L
懺悔者懺其前愆悔其後過慚愧
007_0643_a_19L慚責於內愧發於外然心本空
007_0643_a_20L罪業無寄

007_0643_a_21L
道人宜應端心以質直爲本一瓢一衲
007_0643_a_22L旅泊無累

007_0643_a_23L
佛云心如直絃又云直心是道塲
007_0643_a_24L不耽*着此身則必旅泊無累

007_0643_b_01L
범부는 경계만을 취하고, 도인은 마음만을 취한다. 그러나 마음과 경계 둘을 모두 잊어야만 참된 법이라고 할 것이다.

 해설 경계만을 취하는 것은 마치 사슴이 신기루蜃氣樓를 쫓아가는 것과 같고, 마음만을 취하는 것은 원숭이가 물 위의 달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마음과 경계가 다를지라도 병통이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범부凡夫와 이승二乘을 합쳐서 논한 것이다.

 송頌
 天地尙空秦日月  천지에는 진나라 일월이 비치지 않고
 山河不見漢君臣  산하에는 한나라 군신이 보이지 않네

성문은 숲속에서 좌선해도 마왕에게 붙잡히고, 보살은 세간에 노닐어도 외마가 찾지 못한다.

 해설 성문聲聞은 고요한 곳을 찾아 수행을 하기 때문에 걸핏하면 마음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니 귀신이 보게 된다. 보살菩薩은 성품이 본디 공적空寂하기 때문에 자취가 없고, 자취가 없으니 외마外魔가 보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이승二乘과 보살을 합쳐서 논한 것이다.

 송頌
 三月懶遊花下路  늦은 봄 꽃길에서 한가로이 노니는데
 一家愁閉雨中門  한 집의 문이 빗속에 시름겹게 닫혔네

어떤 사람이든지 목숨이 끊어질 때에는 단지 ‘오온은 모두 공허하고, 사대는 나라고 할 것이 없으며, 참 마음은 형상이 없이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날 때에도 본 성품은 나는 것이 아니요, 죽을 때에도 본 성품은 가는 것이 아니다. 담연히 원만하고 고요하여 마음과 경계가 여일하다.’라고 관찰해야 한다.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깨쳐서 삼세에 구애를 받지 않게 될 것이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초월한 자유인이라고 할 것이다. 부처를 보아도 따라갈 마음이 없고, 지옥을 보아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스스로 무심할 수만 있다면 법계와 똑같이 될 것이니, 이 점이 바로 요긴한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평상시가 인지因地가 되고 임종할 때가 과지果地가 된다고 할 것이니, 수도하는 사람들은 유의해서 살필지어다.

 평評 죽음이 두려운 노년에 석가를 가까이하는구나.51)

 송頌
 好向此時明自己  지금 바로 자기 마음을 밝힐지어다
 百年光影轉頭非  백 년 세월도 한순간에 지나가나니

어떤 사람이든지 목숨이 끊어질 때에 털끝만큼이라도 범부네 성인이네 하고 분별하며 헤아리는 생각이 끊어지지 않고 남아 있으면, 나귀나 말의 배 속에 의탁하는 몸이 되거나,

007_0643_b_01L
凡夫取境10) [62] 人取心心境兩忘乃是
007_0643_b_02L眞法

007_0643_b_03L
取境者如鹿之趂空花也取心者
007_0643_b_04L如猿之捉水月也境心雖殊取病則
007_0643_b_05L一也此合論凡夫二乘
◆天地尙空
007_0643_b_06L秦日月山河不見漢君臣

007_0643_b_07L
聲聞宴坐林中被魔王捉菩薩遊戱世
007_0643_b_08L外魔不11) [63]

007_0643_b_09L
聲聞取靜爲行故心動心動則鬼
007_0643_b_10L見也菩薩性自空寂故無迹無迹
007_0643_b_11L則外魔不見此合論二乘菩薩
◆三
007_0643_b_12L月懶遊花下路一家愁12) [64] 雨中門

007_0643_b_13L
凡人臨命終時但觀五蘊皆空四大無
007_0643_b_14L眞心無相不去不來生時性亦不
007_0643_b_15L死時性亦不去湛然圓寂心境13)
007_0643_b_16L [65] 但能如是直下頓了不爲三世所
007_0643_b_17L拘繫便是出世自由人也若見諸佛
007_0643_b_18L無心隨去若見地獄無心怖畏但自
007_0643_b_19L無心同於法界此即是要節也然則
007_0643_b_20L平常是因臨終是果道人須*着眼看

007_0643_b_21L
怕死老年親釋迦
14) [66] 向此時明自
007_0643_b_22L百年光影轉頭非 [2]

007_0643_b_23L
凡人臨命終時若一毫毛凡聖情量不
007_0643_b_24L思慮未忘向驢胎馬腹裏托質

007_0643_c_01L지옥(泥犂)의 끓는 가마솥 속에 들어가 삶기거나, 나아가 예전처럼 다시 개미나 모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해설 백운白雲52)은 이르기를 “털끝만큼이라도 범부네 성인이네 하는 분별심이 있다가 깨끗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나귀나 말의 배 속에 들어가는 일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두 가지로 분별하는 소견이 남아 있으면 육도六道 윤회輪廻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송頌
 烈火茫茫     맹렬한 불길이 끝없이 번지는데,
 寶劔當門     보검 들고 관문 앞에 우뚝 섰도다.

 평評 위의 두 구절은 ‘종사宗師가 무심無心하여 도道에 합하는 문’을 특별히 열고, ‘교문敎門에서 염불念佛하여 왕생往生을 구하는 문’은 임시로 막은 것이다. 그러나 근기根器가 같지 않고 지원志願 또한 다른 만큼, 각자의 방식대로 하더라도 둘 다 상관없는 일이다. 바라건대 수도하는 자들은 평소에 분수껏 각자 노력하여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 후회되는 일이 없도록 할지어다.

선을 공부하는 자가 본지풍광本地風光을 환히 깨닫지 못한다면, 높이 치솟은 현묘한 관문을 무슨 수로 뚫고 들어갈 것인가! 왕왕 단멸공斷滅空을 선으로 삼기도 하고, 무기공無記空을 도로 삼기도 하고, 일체를 무無로 여기는 것을 고견으로 삼기도 하는데, 이는 허무하게 완공頑空에 빠진 것으로서 깊은 병통을 지니고 있다. 지금 천하에서 선을 말하는 자 중에는 이 병에 걸린 자가 많다.

 해설 향상向上의 한 관문은 발을 딛고 올라설 문도 없다. 운문 문언雲門文偃 선사가 말하기를 “빛을 꿰뚫지 못하는 데에 두 가지 병이 있고, 법신法身을 꿰뚫은 뒤에도 두 가지 병이 있으니, 모름지기 하나하나 꿰뚫어야만 한다.”라고 하였다.

 송頌
 不行芳草路    방초의 길 밟지 않고서는
 難至落花村    꽃 지는 마을에 가기 어려우리


007_0643_c_01L犂鑊湯中煮煠乃至依前再爲螻蟻蚊
007_0643_c_02L

007_0643_c_03L
白雲云設使一毫毛凡聖情念淨盡
007_0643_c_04L亦未免入驢胎馬腹中二見星飛
007_0643_c_05L入諸趣
◆烈火茫茫寶劒當門

007_0643_c_06L
評曰此二節特開宗師無心合道
007_0643_c_07L權遮敎中念佛求生門然根器
007_0643_c_08L不同志願亦異各各如是兩不
007_0643_c_09L相妨願諸道者平常隨分各自
007_0643_c_10L15) [67] 最後刹那莫生疑悔

007_0643_c_11L
禪學者本地風光若未發明則孤峭
007_0643_c_12L玄關擬從何透徃徃斷滅空以爲禪
007_0643_c_13L無記空以爲道一切俱無以爲高見
007_0643_c_14L此㝠然頑空受病幽矣今天下之言禪
007_0643_c_15L多坐在此病

007_0643_c_16L
向上一關措足無門雲門云光不
007_0643_c_17L透脫有兩種病透過法身亦有兩
007_0643_c_18L種病須一一透得始得
◆不行芳
007_0643_c_19L草路難至落花村

007_0643_c_20L「리」作「라」{乙}「密」作「蜜」{乙}「주」作
007_0643_c_21L「쥬」{乙}{戊}
「野」作「嘢」{乙}「婆」作「▼((口+皮)/女)」{丁}
007_0643_c_22L「」無有{丁}「바」作「비」{乙}「跋」作「▼(工+交)」
007_0643_c_23L{乙}
「洗淨須用冷水」無有{乙}「道」下有「道」
007_0643_c_24L{乙}
「覓」作「見」{癸}「閉」作「閑」{丁}{己}{辛}
007_0643_c_25L「一如」作「如一」{乙}「好」作「如」{癸}「勞」
007_0643_c_26L作「努」{甲}{乙}

007_0644_a_01L
종사에게도 병이 많이 있다. 병이 귀와 눈에 있는 자는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거나 귀를 기울이며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선禪으로 삼고, 병이 입과 혀에 있는 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거나 제멋대로 고함치는 것을 선으로 삼고, 병이 손과 발에 있는 자는 앞뒤로 왔다 갔다 하거나 이쪽저쪽을 가리키는 것을 선으로 삼고, 병이 마음과 배에 있는 자는 현묘한 경지를 궁구하며 정견情見을 초월하는 것을 선으로 삼는데, 사실에 입각하여 논하자면 모두 병 아닌 것이 없다.

 해설 부모를 죽인 자도 부처 앞에서 참회할 수 있지만, 반야般若를 비방한 자는 참회할 길이 없다.

 송頌
 空中撮影非爲妙  공중의 그림자 잡아도 묘하지 않은데
 物外追蹤豈俊機  물외의 자취 좇는 것이 뭐가 대단할까

본분 종사가 온전히 제시한 이 구로 말하면, 마치 장승이 손뼉 치며 노래를 하고 화롯불에 눈송이가 떨어지는 것과 같으며, 또 전광석화電光石火와도 같아서 학자들이 실로 헤아려 따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스승의 은혜를 알고서 말하기를 “선사의 도덕을 중히 여김이 아니요, 단지 선사가 나에게 설명해서 깨뜨려 주지 않은 것을 고맙게 여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해설 말하지 말라, 말하지 말라. 문자로 전해질 것이 두렵도다.

 송頌
 箭穿江月影    화살이 강 위의 달그림자 꿰뚫으려면
 須是射鵰人    모름지기 수리 잡는 사람이라야

대저 학자는 먼저 종문宗門의 갈래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 한다. 옛날에 마조가 한 번 할을 하매 백장은 귀가 먹었고, 황벽은 혀를 내둘렀다. 이 하나의 할이야말로 부처가 꽃을 들어 보인 소식이요, 달마가 처음 중국에 건너온 면목이라 할 것이다. 아! 이것이 바로 임제종의 연원이다.

 해설 법을 아는 자가 두려우니, 뭐라고 말하면 갈길 수밖에.

 송頌
 杖子一枝無節目  마디 없는 대 지팡이 하나를
 慇懃分付夜行人  밤길 가는 이에게 은근히 쥐어 주네

 평評 옛날 마조馬祖의 할喝 한마디에 백장百丈은 대기大機를 얻었고 황벽黃檗은 대용大用을 얻었다. 대기에는 원만하게 응한다는 뜻이 들어 있고, 대용에는 바로 절단한다(截)는 뜻이 담겨 있다. 이 일은 『전등록傳燈錄』에 보인다.


007_0644_a_01L
宗師亦有多病病在耳目者以瞠眉努
007_0644_a_02L側耳點頭爲禪病在口舌者以顚
007_0644_a_03L言倒語胡喝亂喝爲禪病在手足者
007_0644_a_04L以進前退後指東畵西爲禪病在心腹
007_0644_a_05L以窮玄究1)2) [68] 情離見爲禪
007_0644_a_06L實而論無非是病

007_0644_a_07L
殺父母者佛前懺悔謗般若者
007_0644_a_08L悔無路
◆空中撮影非爲*妙物外
007_0644_a_09L追蹤豈俊機

007_0644_a_10L
本分宗師全提此句如木人唱拍
007_0644_a_11L爐點雪亦如石火電光學者實不可擬
007_0644_a_12L議也故古人知師3) [69] 不重先師道
007_0644_a_13L只重先師不爲我說破

007_0644_a_14L
不道不道恐上紙墨
◆箭穿江月影
007_0644_a_15L須是射鵰人

007_0644_a_16L
大抵學者先須詳辨宗途昔馬祖一喝
007_0644_a_17L百丈耳䏊黃蘗吐舌這一喝便是
007_0644_a_18L拈花消息亦是達摩初來底面目
007_0644_a_19L此臨濟宗之淵源

007_0644_a_20L
識法者懼和聲便打
◆杖子一枝無
007_0644_a_21L節目慇懃分付夜行人

007_0644_a_22L
昔馬祖一喝也百丈得大機黃蘖
007_0644_a_23L得大用大機者圓應爲義大用
007_0644_a_24L直截爲義事見傳燈錄

007_0644_b_01L
 대개 조사의 종파에 다섯 갈래가 있으니, 임제종臨濟宗ㆍ조동종曹洞宗ㆍ운문종雲門宗ㆍ위앙종潙仰宗ㆍ법안종法眼宗이 그것이다.
 〔임제종臨濟宗〕 본사本師 석가불釋迦佛로부터 33세世를 내려와 육조六祖 혜능대사慧能大師에 이르고, 그로부터 아래로 곧장 전해졌으니, 남악 회양南嶽懷讓ㆍ마조 도일馬祖道一ㆍ백장 회해百丈懷海ㆍ황벽 희운黃蘗希運ㆍ임제 의현臨濟義玄ㆍ흥화 존장興化存奬ㆍ남원 도옹南院道顒ㆍ풍혈 연소風穴延沼ㆍ수산 성념首山省念ㆍ분양 선소汾陽善昭ㆍ자명 초원慈明楚圓ㆍ양기 방회楊歧方會ㆍ백운 수단白雲守端ㆍ오조 법연五祖法演ㆍ원오 극근圓悟克勤ㆍ경산 종고徑山宗杲 선사 등이다.
 〔조동종曹洞宗〕 육조六祖의 아래에서 곁갈래로 전해졌으니, 청원 행사靑原行思ㆍ석두 희천石頭希遷ㆍ약산 유엄藥山惟儼ㆍ운암 담성雲巖曇晟ㆍ동산 양개洞山良价ㆍ조산 탐장曹山耽章ㆍ운거 도응雲居道膺 선사 등이다.
 〔운문종雲門宗〕 마조馬祖의 곁갈래로 전해졌으니, 천왕 도오天王道悟ㆍ용담 숭신龍潭崇信ㆍ덕산 선감德山宣鑑ㆍ설봉 의존雪峯義存ㆍ운문 문언雲門文偃ㆍ설두 중현雪竇重顯ㆍ천의 의회天衣義懷 선사 등이다.
 〔위앙종潙仰宗〕 백장百丈의 곁갈래로 전해졌으니, 위산 영우潙山靈祐ㆍ앙산 혜적仰山慧寂ㆍ향엄 지한香嚴智閑ㆍ남탑 광용南塔光涌ㆍ파초 혜청芭蕉慧淸ㆍ곽산 경통霍山景通ㆍ무착 문희無着文喜 선사 등이다.

007_0644_b_01L
大凡祖師宗途有五曰臨濟宗
007_0644_b_02L曹洞宗曰雲門宗曰潙仰宗
007_0644_b_03L法眼宗

007_0644_b_04L
〔臨濟宗〕 本師釋迦佛至三十三
007_0644_b_05L六祖慧能大師下直傳曰南嶽
007_0644_b_06L懷讓曰馬祖道一曰百丈懷海
007_0644_b_07L曰黃蘗希運曰臨濟義玄曰興化
007_0644_b_08L存奬曰南院4) [70] 曰風穴延沼
007_0644_b_09L曰首山省念5) [71] 陽善昭曰慈
007_0644_b_10L明椘圓曰楊歧方會曰白雲守
007_0644_b_11L曰五祖法演6)曰圓悟克勤
007_0644_b_12L徑山宗杲 [72] 禪師等

007_0644_b_13L
〔曹洞宗〕 六祖下傍傳曰靑原行
007_0644_b_14L曰石頭希遷曰藥山惟儼
007_0644_b_15L雲巖曇晟曰洞山良价曰曹山耽
007_0644_b_16L曰雲居道膺禪師等

007_0644_b_17L
〔雲門宗〕 馬祖傍傳曰天王道悟
007_0644_b_18L曰龍潭崇信曰德山宣鑑曰雪峯
007_0644_b_19L義存曰雲門文偃曰雪竇重顯
007_0644_b_20L曰天衣義懷禪師等

007_0644_b_21L
〔潙仰宗〕 百丈傍傳曰潙山靈祐
007_0644_b_22L曰仰山慧寂曰香嚴智閑曰南塔
007_0644_b_23L7) [73] 曰芭蕉慧淸曰霍山景通
007_0644_b_24L曰無8) [74] 文喜禪師等

007_0644_c_01L 〔법안종法眼宗〕 설봉雪峯의 곁갈래로 전해졌으니, 현사 사비玄沙師備ㆍ지장 계침地藏桂琛ㆍ법안 문익法眼文益ㆍ천태 덕소天台德韶ㆍ영명 연수永明延壽ㆍ용제 소수龍濟紹修ㆍ남대 수안南臺守安 선사 등이다.

 〔임제臨濟의 가풍〕 맨손에 한 자루 칼을 들고서 부처도 죽이고 조사祖師도 죽인다. 삼현三玄과 삼요三要로 고금古今을 분변하고, 사빈주四賓主로 용사龍蛇를 징험한다. 금강보검金剛寶劍을 손에 쥐고서 죽목竹木의 정령精靈을 소제掃除하고, 사자獅子의 위엄을 떨치며 여우와 살쾡이의 심담心膽을 찢어 놓는다. 임제종을 알고 싶은가? 청천靑天에 벽력霹靂이 울리고, 평지平地에 파도波濤가 인다.
 〔조동曹洞의 가풍〕 방편으로 오위五位53)를 개설하여 삼근三根54)을 잘 제접提接한다. 보검寶劍을 휘둘러 제견諸見의 빽빽한 숲을 베어 버리고, 홍통弘通을 묘하게 협찬하여 만기萬機의 천착穿鑿을 끊어 버린다. 위음威音의 나반那畔55)에 눈에 가득 연광煙光이요, 공겁空劫 이전에 일호一壺의 풍월風月이라. 조동종을 알고 싶은가? 부처와 조사가 나오지 않은 공겁의 밖에서 바름과 치우침(正偏)은 유무有無의 기틀에 떨어지지 않았다.
 〔운문雲門의 가풍〕 검봉劍鋒을 피할 길은 있어도, 철벽鐵壁을 뚫을 문은 없다. 공인된 담론을 부정하고, 상식적인 견해를 배척한다. 번개가 치듯 사량思量을 허용치 않나니, 뜨거운 불길 속에 어떻게 안주安住할 수 있으랴. 운문종을 알고 싶은가? 주장자 짚고서 하늘 위로 솟구치니, 찻잔

007_0644_c_01L
〔法眼宗〕 雪峯傍傳曰玄沙師備
007_0644_c_02L曰地藏桂琛曰法眼文益曰天台
007_0644_c_03L德韶曰永明延壽曰龍濟紹修
007_0644_c_04L曰南臺守安禪師等

007_0644_c_05L
〔臨濟家風〕赤手單刀殺佛殺祖
007_0644_c_06L辨古今於玄要驗龍蛇於主賔
007_0644_c_07L金剛寶劒掃除竹木精靈9) [75]
007_0644_c_08L子全威震裂狐狸心膽要識臨濟
007_0644_c_09L宗麽靑天轟霹靂平地起波濤

007_0644_c_10L
〔曹洞家風〕 10) [76] 開五位善接三
007_0644_c_11L橫抽寶劒斬諸見稠林11) [77]
007_0644_c_12L弘通截萬機穿鑿威音那畔滿
007_0644_c_13L目烟光空劫已前一壺風月
007_0644_c_14L識曹洞宗麽佛祖未生空劫外
007_0644_c_15L偏不落有無機

007_0644_c_16L
〔雲門家風〕 劒鋒有路鐵壁無門
007_0644_c_17L掀翻露布葛藤剪却常情見解
007_0644_c_18L電不及思量烈焰寧容湊泊要識
007_0644_c_19L雲門宗麽12) [78] 杖子𨁝跳上天
007_0644_c_20L「妙」作「玅」{癸}次同「超」作「起」{丁}{辛}
007_0644_c_21L「恩」作「思」{乙}
「道」作「首」{癸}「汾」作「分」
007_0644_c_22L{丙}
「曰圓…宗杲」十字底本二行小文字
007_0644_c_23L者作本文活字
「涌」作「漏」{癸}「著」作「着」
007_0644_c_24L{乙}
「奮」作「奪」{癸}「權」作「㩲」{丁}{己}{辛}
007_0644_c_25L「恊」作「協」{甲}「柱」作「拄」{癸}

007_0645_a_01L속에서 제불諸佛이 설법하네.
 〔위앙潙仰의 가풍〕 창화唱和하는 사제師弟요, 한 집안의 부자父子로다. 허리춤에 문자 새기고 머리에는 뿔이 솟았으며, 실중室中에서 학인을 점검하면 사자獅子의 허리도 끊어진다. 사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를 끊어56) 한 방망이로 때려 부수고, 입은 두 개나 혀는 하나도 없으니(兩口無一舌)57) 구곡九曲에 진주가 나온다. 위앙종을 알고 싶은가? 깨진 비석이 옛길에 비껴 있고, 무쇠 소가 소실봉小室峯에서 졸고 있다.
 〔법안法眼의 가풍〕 말 속에 메아리가 있고, 구句 속에 칼날이 숨어 있다. 촉루髑髏로 항상 세계를 범하고, 비공鼻孔으로 가풍을 접한다. 바람 부는 나뭇가지와 달빛 어린 물가는 진심眞心을 드러내 보여 주고, 푸른 대와 국화꽃은 묘법妙法을 환히 밝힌다. 법안종을 알고 싶은가? 바람은 조각구름을 산으로 돌려보내고, 달빛은 물 위에 떠서 다리를 지나가네.

 〔특별히 밝힌 임제臨濟의 종지宗旨〕 무릇 일구一句 중에 삼현三玄을 구비하고, 일현一玄 중에 삼요三要를 구비한다. 일구는 문채文綵 없는 인印이요, 삼현과 삼요는 문채 있는 인印이다. 권權과 실實은 현玄이요, 조照와 용用은 요要이다.
 〔삼구三句〕 제1구는 몸 잃고 목숨 잃는 것(喪身失命)이요, 제2구는 입 열기 전에 잘못되는 것(未開口錯)이요, 제3구는 뒷간 삼태기와 빗자루(糞箕掃箒)이다.
 〔삼요三要〕 일요一要는 조즉대기照即大機요, 이요二要는 조즉대용照即大用이요, 삼요三要는 조용동시照用同時이다.
 〔삼현三玄〕 체중현體中玄은 삼세일념三世一念 등이요, 구중현句中玄은 경절언구徑截言句 등이요, 현중현玄中玄은 양구방할良久棒喝 등이다.
 〔사요간四料揀〕 첫째 탈인불탈경奪人不奪境은 하근下根을 대함이요, 둘째

007_0645_a_01L子裏諸佛說法

007_0645_a_02L
〔潙仰家風〕 師資唱和父子一家
007_0645_a_03L脇下書字頭角崢嶸室中驗人
007_0645_a_04L獅子腰折離四句絕百非1) [79]
007_0645_a_05L粉碎有兩口無一舌九曲珠通
007_0645_a_06L要識潙仰宗麽斷碑橫古路鐵牛
007_0645_a_07L2) [80] 少室

007_0645_a_08L
〔法眼家風〕 言中有響句裏藏鋒
007_0645_a_09L髑髏常3) [81] 世界鼻孔磨觸家風
007_0645_a_10L風柯月渚顯露眞心翠竹黃花
007_0645_a_11L宣明妙法要識法眼宗麽風送斷
007_0645_a_12L4) [82] 嶺去月和流水過橋來

007_0645_a_13L
〔別明臨濟宗旨〕 大凡一句中具
007_0645_a_14L三玄一玄中具三要一句無文綵
007_0645_a_15L三玄三要有文綵5) [83] 權實玄
007_0645_a_16L照用要

007_0645_a_17L
〔三句〕 第一句喪身失命第二句
007_0645_a_18L未開口錯第三句糞箕掃箒

007_0645_a_19L
〔三要〕 一要照即大機二要照即
007_0645_a_20L大用三要照用同時

007_0645_a_21L
〔三玄〕 體中玄三世一念等
007_0645_a_22L中玄徑截言句等玄中玄良久
007_0645_a_23L棒喝等

007_0645_a_24L
〔四料6) [84] 〕 奪人不奪境待下根

007_0645_b_01L탈경불탈인奪境不奪人은 중근中根을 대함이요, 셋째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은 상근上根을 대함이요, 넷째 인경구불탈人境俱不奪은 출격인出格人을 대함이다.
 〔사빈주四賓主〕 첫째 빈중빈賓中賓은 학인學人이 안목(鼻孔)이 없는 것이니 문問이 있고 답答이 있다. 둘째 빈중주賓中主는 학인이 안목이 있는 것이니 주主가 있고 법法이 있다. 셋째 주중빈主中賓은 사가師家가 안목이 없는 것이니 문問만 있다. 넷째 주중주主中主는 사가가 안목이 있는 것이니 기특하다고 할 만하다.
 〔사조용四照用〕 첫째 선조후용先照後用은 인人만 있고, 둘째 선용후조先用後照는 법法만 있고, 셋째 조용동시照用同時는 농부의 소를 몰며 기인飢人의 밥을 뺏는 것이고, 조용부동시照用不同時는 문問이 있고 답答이 있다.
 〔사대식四大式〕 첫째 정리正利이니 소림면벽少林面壁의 종류요, 둘째 평상平常이니 화산타고禾山打皷의 종류요, 셋째 본분本分이니 산승불회山僧不會의 종류요, 넷째 공가貢假이니 달마불식達摩不識의 종류이다.
 〔사할四喝〕 첫째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과 같은 할이니, 이것은 한칼로 모든 알음알이를 베어 버리는 것이요, 둘째 땅에 웅거한 황금 털 사자獅子와 같은 할이니, 이것은 한마디 발하는 기상에 모든 마군이 분쇄되는 것이요, 셋째 장대로 더듬고(探竿) 풀 묶음의 그림자로 기척을 살피는 것(影草)과 같은 할이니, 이것은 학인學人의 사승師承과 안목(鼻孔)의 유무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요, 넷째 한 번 할이 한 번 할로만 쓰이지 않는 할이니, 이것은 위에서 말한 삼현三玄과 사빈주四賓主 등을 구비한 것이다.
 〔팔방八棒〕 지시에 따라 진리로 돌아오게 하는 방棒, 기연機緣에 접하여 바르게 따라오게 하는 방, 진리를 믿고 정도正道로 복귀하게 하는 방, 우치愚癡를 질책하며 처벌하는 방, 종지宗旨를 따르는 것을 칭찬하는 방, 수행의 허실虛實을 시험하는 방, 맹목적으로 난타亂打하는 방, 범성凡聖을 분별하는 소견을 타파하는 정대正大한 방 등이다.
이와 같은 방법은 임제臨濟의 종풍宗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위로는 제불諸佛로부터

007_0645_b_01L奪境不奪人待中根人境兩俱
007_0645_b_02L待上根人境俱不奪待出格
007_0645_b_03L

007_0645_b_04L
〔四賔主〕 賔中賔學人無鼻孔
007_0645_b_05L有問有答賔中主學人有鼻孔
007_0645_b_06L有主有法主中賔師家無鼻孔
007_0645_b_07L有問在主中主師家有鼻孔
007_0645_b_08L妨奇特

007_0645_b_09L
〔四照用〕 先照後用有人在
007_0645_b_10L用後照有法在照用同時驅耕
007_0645_b_11L奪食照用不同時有問有答

007_0645_b_12L
〔四大7) [85] 〕 正利少林面壁類
007_0645_b_13L禾山打皷類本分山僧不會類
007_0645_b_14L貢假達摩不識類

007_0645_b_15L
〔四喝〕 金剛王寶8) [86] 一刀揮斷
007_0645_b_16L一切情解踞地獅子發言吐氣
007_0645_b_17L衆魔腦9) [87] 竿影草探其有無
007_0645_b_18L師承鼻孔一喝不作一喝用具上
007_0645_b_19L三玄四賔主等

007_0645_b_20L
〔八棒〕 觸令返玄接掃從正
007_0645_b_21L11) [88] 苦責罰棒順宗旨賞棒
007_0645_b_22L有虛實辨棒盲枷瞎棒掃除凡聖
007_0645_b_23L正棒

007_0645_b_24L
此等法非特臨濟宗風上自諸佛

007_0645_c_01L아래로는 중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본분本分의 일이라고 할 것이니, 만약 이와 같은 설법이 아니라면 모두 망어妄語라고 하겠다.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망이는 모두 무생無生의 도리를 철저히 증득하여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꿰뚫은 것이다. 대기와 대용이 무애자재하여 온몸으로 출몰하고 온몸으로 짊어지면서 문수와 보현의 대인의 경계를 지키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사실에 입각해서 논한다면, 이 두 분 조사祖師도 마음을 도둑맞은 도깨비 신세를 면치 못했다고 할 것이다.

 해설 취모검吹毛劍 늠름하니, 그 칼날 범하지 말지어다.

 송頌
 爍爍寒光珠媚水  달빛 받아 반짝이는 구슬 물속에서 아름답고
 寥寥雲散月行天  구름 거친 텅 빈 하늘에 달이 떠가네

대장부는 부처와 조사祖師를 보기를 원수처럼 해야 한다. 부처에게 집착하여 구하는 것이 있으면 부처에게 매이게 되고, 조사에게 집착하여 구하는 것이 있으면 조사에게 매이게 된다.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괴로움이 되니, 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해설 부처와 조사를 원수처럼 여기라는 것은 위에 나오는바 “공연히 평지풍파를 일으켰다(無風起浪).”라는 말을 맺은 것이고,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괴로움이 된다는 것은 위에 나오는바 “있는 그대로가 모두 옳다(當體便是).”라는 말을 맺은 것이고, 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것은 위에 나오는바 “한 생각을 일으키면 그 순간에 어긋나고 말 것이다(動念卽乖).”라는 말을 맺은 것이다. 이쯤 되어서는 천하 사람들의 혀끝을 끊어 버리고 생사生死의 빠른 수레바퀴를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위태로움에서 붙들어 일으키고 난리를 평정한 것이, 마치 단하丹霞가 목불木佛을 태운 것58)과 같고, 운문雲門이 개밥으로 주겠다고 한 것59)과 같고, 노파가 부처를 보지 않으려 했던 것60)과 같으니, 이 모두가 사견邪見을 깨고 정법正法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필경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송頌
 常憶江南三月裏  항상 생각나네, 강남 땅 삼월
 鷓鴣啼處百花香  자고새 노래하고 온갖 꽃향기 넘치는 곳

신령스러운 빛이 어둡지 않으니 만고토록 아름다운 도이다. 이 문에 들어오려면

007_0645_c_01L下至衆生皆分上事若離此說法
007_0645_c_02L皆是妄語

007_0645_c_03L
臨濟喝德山棒皆徹證無生透頂透
007_0645_c_04L大機大用自在無方全身出沒
007_0645_c_05L身擔荷退守文殊普賢大人境界然據
007_0645_c_06L實而論此二師亦不免偸心鬼子

007_0645_c_07L
凛凛吹毛不犯鋒鋩
◆爍爍寒光珠
007_0645_c_08L媚水寥寥雲散月行天

007_0645_c_09L
大丈夫見佛見祖如寃家若著佛求
007_0645_c_10L被佛縛若著祖求被祖縛有求皆苦
007_0645_c_11L不如無事

007_0645_c_12L
佛祖如寃者結上無風起浪也有求
007_0645_c_13L皆苦者結上當體便是也不如無事
007_0645_c_14L結上動念即乖也到此坐斷天
007_0645_c_15L下人舌頭生死迅輪庶幾停息也
007_0645_c_16L扶危定亂如丹霞燒木佛雲門喫狗
007_0645_c_17L老母不見佛皆是摧邪顯正底手
007_0645_c_18L然畢竟如何
常憶江南三月裏
007_0645_c_19L12) [89] 啼處百花香

007_0645_c_20L
神光不昧萬古徽猷入此門來莫存
007_0645_c_21L「搥」作「槌」{癸}「眠」作「眼」{乙}「干」作
007_0645_c_22L「于」{癸}
「歸」作「掃」{己}「印」 作「郞」{癸}
007_0645_c_23L「揀」作「楝」{癸}「式」下有「正利平常本分貢
007_0645_c_24L假」{癸}
「劔」作「釰」{乙}「裂」作「烈」{癸}
007_0645_c_25L「探」作「眼」{乙}
「傷」作「復」{癸}「鴣」作「鴰」
007_0645_c_26L{丙}

007_0646_a_01L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해설 신령스러운 빛이 어둡지 않다는 것은 위에 나오는 “지극히 밝고 지극히 신령스럽다(昭昭靈靈).”라는 말을 맺은 것이고, 만고토록 아름다운 도라는 것은 위에 나오는 “본래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다(本不生滅).”라는 말을 맺은 것이고,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는 것은 위에 나오는 “이름에 집착해서 분별하는 마음을 내면 안 된다(不可守名生解).”라는 말을 맺은 것이다. 문門에는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이 모두 출입한다는 뜻이 들어 있으니, 하택荷澤이 “지知라는 한 글자야말로 모든 묘함의 문이 된다(知之一字衆妙之門也).”라고 말한 것과 같다. 아! “어떻게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설명할 수도 없다(名不得狀不得).”라는 말에서 시작하여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莫存知解).”라는 말로 맺었으니, 한 편의 얽히고설킨 글을 하나의 구절로 모두 깨뜨린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일해一解로 시종始終하면서 중간에 만행萬行을 거론한 것은 외전外典의 삼의三義와 같다고 하겠다. 그리고 지해知解라는 두 글자야말로 불법佛法에 큰 해가 되기 때문에 특별히 거론하여 마무리한 것인데, 하택 신회荷澤神會 선사가 조계曹溪의 적자嫡子가 되지 못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이에 “이와 같이 제창하여 종지를 밝혔으니, 서쪽에서 온 눈 푸른 달마에게 웃음거리 되었네.”라고 한 번 읊어본다. 그러나 필경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송頌
 孤輪獨照江山靜  둥근 달 외로이 비치는 고요한 강산
 自笑一聲天地驚  무심코 한껏 웃은 한 소리에 천지가 놀라네

선가귀감 끝
사명 유정四溟惟政의 발문
위의 글은 바로 조계曹溪 노화상老和尙인 퇴은退隱 큰스님이 지은 것이다.
아! 지난 2백 년 동안 사법師法이 갈수록 없어진 나머지, 선禪과 교敎에 종사하는 자들이 각각 다른 소견을 내기에 이르렀다. 교敎를 받드는 자는 오직 조박糟粕인 문자에만 탐닉하며 한갓 바다에 들어가서 모래알만 셀 따름이요, 오교五敎에 사람의 마음을 곧장 가리켜서 스스로 깨우쳐 들어가게 하는 문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그리고 선禪을 받드는 자는 스스로 천진天眞한 본성만을 믿고서 수증修證하는 도리는 무시한 채 돈오頓悟한 뒤에 발심發心해서 만행萬行을 수습修習하는 뜻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선과 교가 혼잡스럽게 되어 모래와 금을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원각경圓覺經』의 이른바 ‘본래 성불成佛’이라는 말을 듣고서 미오迷悟가 본래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인과因果를 무시한다면 이는 곧 사견邪見을 이루는 것이다. 또 ‘무명無明을 수습修習한다.’라는 말을 듣고서 진심眞心이 망념妄念을 낸다고 여긴 나머지 참되고 떳떳한 성품을 잃는다면 이것 역시 사견을 이루는

007_0646_a_01L知解

007_0646_a_02L
神光不昧者結上昭昭靈靈也萬古
007_0646_a_03L徽猷者結上本不生滅也莫存知解
007_0646_a_04L結上不可守名生解也門者
007_0646_a_05L凡聖出入義如荷澤所謂知之一字
007_0646_a_06L衆妙之門也起於名狀不得
007_0646_a_07L於莫存知解一篇葛藤一句都破也
007_0646_a_08L然始終一解中擧萬行如世典之三
007_0646_a_09L義也知解二字佛法之大害故1) [90]
007_0646_a_10L擧而終之荷澤神會禪師不得爲曹
007_0646_a_11L溪嫡子者以此也因而頌曰如斯
007_0646_a_12L擧唱明宗旨笑殺西來碧眼僧然畢
007_0646_a_13L竟如2)
◆孤輪獨照江山靜自笑
007_0646_a_14L一聲天地驚

007_0646_a_15L
禪家龜鑒終

007_0646_a_16L
007_0646_a_17L
3) [91] 右編乃曺溪老和尙退隱師翁所著也
007_0646_a_18L二百年來師法益喪禪敎之徒各生異
007_0646_a_19L宗敎者唯耽糟粕徒自筭沙不知五
007_0646_a_20L4) [92] 上有直指人心使自悟入之門宗禪
007_0646_a_21L5) [93] 天眞撥無修證不知頓悟後始
007_0646_a_22L即發心修習萬行之意禪敎混6) [94] 沙金
007_0646_a_23L罔分圓覺所謂聞說本來成佛謂本無迷
007_0646_a_24L撥置因果則便成邪見又聞修習無
007_0646_a_25L謂眞能生妄失眞常性則亦成邪見

007_0646_b_01L것이다.
아, 위태하도다! 사도斯道가 전해지지 않는 것이 어쩌면 이토록 심하게 되었단 말인가!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의 도가 마치 한 오라기 머리카락으로 천 균鈞의 무게를 들어 올리듯 거의 땅에 떨어질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우리 큰스님이 서산西山에 주석하신 10년 동안 마음의 소를 기르시는 여가에 50여 권의 경론經論과 어록語錄을 열람하다가 일용日用 중에 참고할 만한 긴요한 어구가 있으면 번번이 기록해 두시고는 때때로 입실入室한 몇 명의 제자들에게 친절히 가르쳐 주시곤 하였다. 그리하여 한결같이 양을 기르는 것처럼 지나치면 억누르고 뒤처지면 채찍질하여 대각大覺의 문에 몰아넣으려고 노심초사하신 그 마음이 그토록 간절하였는데도 제자들은 그만 근기根機가 노둔한 탓으로 도리어 법문法門이 너무 높다고 불평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큰스님이 제자들의 미욱함을 불쌍히 여겨 각 어구 아래에 주석을 달아 해설하고 순서대로 정리해서 엮어 놓으니, 마치 쇠사슬처럼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면서 혈맥血脈이 상통하여 만 권의 대장경의 요지와 오종五宗의 근원이 빠짐없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말을 보더라도 진리를 드러내고 어떤 구절을 접해도 종지宗旨에 부합하였으므로 종전에 치우친 자는 원만하게 되고 막힌 자는 통하게 되었으니, 실로 선禪과 교敎의 귀감龜鑑이요, 해解와 행行의 양약良藥이라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큰스님이 항상 더불어 이런 일을 논하실 때에는 한마디 말이나 반 구절이라도 마치 칼날을 매만지듯 조심하면서 남의 평을 받게 될까 염려하셨으니, 어찌 이것을 방외方外에 유통시켜 당신의 능력을 내보이려 하신 것이겠는가! 문인門人 백운선자白雲禪子 보원普願이 베껴 쓰고, 문인 벽천선덕碧泉禪德 의천義天이 교정을 하니, 문인 대선사大禪師 정원淨源과 문인 대선사 태상太常과 문인 청하도인靑霞道人 법융法融 등이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하며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동지 6~7인과 함께 바랑(鉢囊) 속의 재화財貨를 기울여 간행해서 유통시킴으로써 몽매함을 깨우쳐 주신 큰스님의 은혜에 보답하기로 하였다.
조사祖師의 대기大機와 용궁龍宮의 장경藏經이 마치 깊은 못과 가없는 바다처럼 아득하기만 하니, 흑룡黑龍의 턱 밑의 구슬을 찾고 산호珊瑚를 캐어 보려고 한들 무슨 수로 구하겠는가! 마치 땅을 밟는 것처럼 바다에 들어가는 솜씨가 아니라면, 물가에서 바라보며 탄식하는 일을 결코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요점만 간추려 정리한 공로와 미욱함을 깨우쳐 준 은혜야말로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다고 할 것이니, 만 번 뼈가 부서지고 천 번 목숨을 바친다 하더라도,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는가! 천 리 밖에서 이를 보고 듣고서 놀라지도 않고 의심하지도 않으며 공경히 받들어 읽으면서 보배로 삼는다면,

007_0646_b_01L是也嗚呼殆哉斯道7) [95] 不傳何若是
007_0646_b_02L其甚也綿綿涓涓如一髮引千鈞幾乎落
007_0646_b_03L地無從矣賴我師翁住西山一十年
007_0646_b_04L牛有暇覽五十本經論語錄間有日用中
007_0646_b_05L8)叅決要切之語句則輙錄之時與室中
007_0646_b_06L二三子詢詢然誨之一如牧羊之法
007_0646_b_07L者抑之後者鞭之驅入於大覺之門
007_0646_b_08L娑心得徹困若是其切也奈二三子鈍根
007_0646_b_09L返以法門之高峻爲病9) [96] 師翁愍其
007_0646_b_10L迷蒙各就語句下入註而解之編次而
007_0646_b_11L繹之鉤鎻連環血脉相通萬藏之要
007_0646_b_12L宗之源極備於此言言見諦句句朝宗
007_0646_b_13L向之偏者圓之滯者通之可謂禪敎之龜
007_0646_b_14L解行之良藥也然師翁常與論這般事
007_0646_b_15L雖一言半句如弄劍刃上事恐上紙10) [97]
007_0646_b_16L豈欲以此流通方外誇衒己能也哉
007_0646_b_17L人白雲禪子11) [98] 願寫之門人碧泉禪德義
007_0646_b_18L12) [99] 門人大禪師淨源門人大禪師
007_0646_b_19L13) [100] 門人靑霞道人法融等稽首再拜
007_0646_b_20L未曾有也遂與同志六七人傾鉢囊
007_0646_b_21L中所儲入榟流通以報師翁訓蒙之恩也
007_0646_b_22L大機龍藏汪洋渺若淵海雖言探龍珠采
007_0646_b_23L珊瑚者孰從而求之非入海如陸之手段
007_0646_b_24L頗不免望涯之嘆然即撮要之功發蒙之
007_0646_b_25L如山之高若海之深設若碎萬骨粉
007_0646_b_26L千命如何報得一毫哉千里之外有見
007_0646_b_27L之聞之不驚不疑敬之讀之以爲寶玩

007_0646_c_01L참으로 이른바 천년 뒤에 하나의 자운子雲(한漢나라 양웅揚雄의 자字. 식견이 높은 사람의 대명사)이 될 것이다.
만력萬曆 기묘년(1579, 선조12) 봄에 조계曹溪 종수宗遂 사명四溟 은봉隱峰 유정惟政은 배수拜手 구결口訣하고 삼가 뒤에 쓰다.

보원普願의 발문61)
서산西山 큰스님이 실내室內의 몇몇 제자들이 선교禪敎를 모르고 관행觀行을 잃은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일용日用에 절실한 부처와 조사의 심요心要 수백 어를 손수 뽑아서 『선가귀감禪家龜鑑』이라고 이름 붙였다. 제자 이환離幻이 그대로 이어받아 밝히고, 학사學士 이수륜李秀倫이 필사하고 책으로 엮어 세상에 드러냈으며, 시은市隱 김수향金守香이 목판에 새겨 보관했으니, 이른바 똑같은 종족이라고 하겠다.
아! 이 한 권을 펼치면, 학자들이 굳이 용궁의 장경을 섭렵하지 않고도 곧장 조사祖師의 심인心印을 허리에 찰 것이니, 그 법유法乳의 은해恩海와 유통流通한 공덕功德을 어떻게 보답할 수 있겠는가.
만력萬曆 계미년(1583, 선조16) 봄에 제자 보원普願은 손을 맞잡고 절하고서 삼가 뒤에 쓰다.
충허 성정冲虛性正의 발문
이 『귀감龜鑑』은 바로 선교禪敎에서 날마다 써야 할 요문要門으로서, 모든 부처와 조사가 이로써 극치를 다하였으니, 어떤 수행을 하거나 이것을 놔두고서 어떻게 통하겠는가! 그런데 판각板刻한 뒤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판본板本이 마멸磨滅되어 만세의 귀감이 될 수 없겠기에 자응慈應과 신화信和가 힘껏 방판方板을 모집하여 애써 개간改刊하였다. 이는 실로 흑두타黑頭陀의 중복重腹이라고 이를 만하기에 경축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007_0646_c_01L則眞所謂千歲之下一子雲耳

007_0646_c_02L
時萬曆己卯春14) [101] 曺溪宗遂四溟
007_0646_c_03L隱峰惟政拜手口訣因爲謹䟦

007_0646_c_04L
007_0646_c_05L
15) [102] 西山大師翁愍室中二三子輩迷禪敎
007_0646_c_06L失觀行手抄佛祖心要切於日用者數百
007_0646_c_07L名曰禪家龜鑑弟子離幻信之受而
007_0646_c_08L昭焉學士李秀倫筆之書而景焉 [3]
007_0646_c_09L金守香鋟之木而甲焉所謂一宗之族也
007_0646_c_10L展此一卷學者不勞涉龍藏而直佩祖
007_0646_c_11L師之心印則其法乳恩海流通功德
007_0646_c_12L勝報也哉

007_0646_c_13L
萬曆癸未春弟子普願拜手敬䟦

007_0646_c_14L
007_0646_c_15L
16) [103] 龜鑑者乃禪敎日用之要門也佛佛祖
007_0646_c_16L皆以此臻極而凡修行之17) [104] 捨此奚
007_0646_c_17L盖鋟鏤累稔板本磨滅未爲萬世之
007_0646_c_18L龜鑑故慈應信和力募方板黽勵改刊
007_0646_c_19L可謂黑頭陀之重腹者也仍玆祝之

007_0646_c_20L「特」作「時」{癸}「何」下有「咄」{乙}此跋文
007_0646_c_21L無有{甲}{乙}{丙}{丁}{己}{庚}{辛}
「敎」下有「之」{癸}
007_0646_c_22L「恃」作「特」{癸}
「濫」作「溢」{癸}「之」無有
007_0646_c_23L{癸}
「叅」作「參」{癸}「焉」作「爲」{癸}「墨」
007_0646_c_24L作「黑」{癸}
「普」作「魯」{癸}「校」作「挍」{癸}
007_0646_c_25L「太」作「大」{癸}「節」無有{癸}此跋文
007_0646_c_26L於甲壬本然甲本「萬曆癸未春弟子普願拜手敬
007_0646_c_27L跋」無有
此跋文只在辛本「隊」疑「際」
007_0646_c_28L{編}

007_0647_a_01L
문인門人 충허冲虛 성정性正은 쓰다.

007_0647_a_01L
門人冲虛性正1) [105]

007_0647_a_02L甲本刊記如下「大施主金彥謙兩主大施主女
007_0647_a_03L莫加屎兩主大施主金億萬兩主張峻兩主
007_0647_a_04L枝華兩主白仁凡兩主朴禮必兩主(此下七十
007_0647_a_05L七人名單省略) 比丘靈照比丘性岑比丘慈
007_0647_a_06L比丘志安魯汙乞靈駕女去加屎靈駕女貴
007_0647_a_07L非靈駕申千福靈駕金守永靈駕金毛里金
007_0647_a_08L貴男靈駕金亍之靈駕女鳳台靈駕察伊靈駕
007_0647_a_09L刻字比丘妙嚴鍊板比丘義文執務金天雨
007_0647_a_10L丘志峻比丘印正時萬曆十八年庚寅夏金剛
007_0647_a_11L山楡岾寺開刊」

007_0647_a_12L乙本刊記如下「上來此功德普及於一切願我
007_0647_a_13L與衆生皆共成佛道仍修奉祝主上三殿下位
007_0647_a_14L萬歲文武百官如上治國國泰民安法輪轉
007_0647_a_15L辦施主緣化等伏願戰亡亂亡法界亡魂上世靈
007_0647_a_16L父母徃生淨界供養大施主朴氏有德靈駕
007_0647_a_17L衣▼(示+東)大施主金山兩主劉金伊兩主車守兩主
007_0647_a_18L大施主申長福兩主布施大施主金永石兩主
007_0647_a_19L永春兩主申氏守今兩主申氏守德保全應心
007_0647_a_20L兩主板大施主申長福兩主張撿山兩主申要
007_0647_a_21L光兩主徐貴斤兩主李先鶴保介非兩主板大
007_0647_a_22L爲他引勸居士申應豪少年春男供養主智叅
007_0647_a_23L輝甘校正兼寫經幼學康汝海證師判事熙
007_0647_a_24L前主持淨裕刊前主持智崇萬歷三十三年
007_0647_a_25L甲辰歲慶尙道華山圓寂寺開刊」

007_0647_a_26L丙本刊記如下「萬曆三十五年丁未六月日 全
007_0647_a_27L羅道順天府曺溪山松廣寺開刊刻手弘彥智玄
007_0647_a_28L慈敬勝訔智成妙淨別座妙湛供養主玄祖
007_0647_a_29L助緣禪覺元膺居士曺孫鍊板居士金連福
007_0647_a_30L善道人湛玄」

007_0647_a_31L丁本刊記如下「大施主李春靈昱 ▣雄 ▣英
007_0647_a_32L▣▣ 性了幸珪性珠 ▣加思印 ▣眞 ▣輝
007_0647_a_33L刻手記廣淳李信會 ▣仁由極▣ 白忠京
007_0647_a_34L一亥天玉眞祥鍊板金▣▣ 熟刀斗玄

007_0647_b_01L

007_0647_b_01L頭一萸別坐惠正萬歷四十年壬子妙香山內院
007_0647_b_02L庵開板留移普賢寺」

007_0647_b_03L戊本刊記如下「時萬曆戊午孟春順天地松廣寺
007_0647_b_04L開刊刻手秩▣導弘彥化士湛玄」

007_0647_b_05L己本刊記如下「王妑殿下壽齊年主上殿下壽萬
007_0647_b_06L世子邸下壽千秋供養施主兼別坐志默
007_0647_b_07L施主秩尙正曺金介朴仁龍玄修李旕孫
007_0647_b_08L幸正孫萬孫高唜同劉今守李賢洪彦守
007_0647_b_09L漢江金碧还魯沈延孝男李黃大施主秩朴
007_0647_b_10L允福李彥卜盧氏天今和卞洪彥日趙順卜
007_0647_b_11L姜金同彐岩信已安億龍韓夢男女玉眞
007_0647_b_12L字秩祖云法哲處俊戒能性甘密玄學修
007_0647_b_13L彐浩緇密木手海禪令冾令守承立供養主
007_0647_b_14L玲屹天己五男承卜春世天奉崇禎六年癸
007_0647_b_15L月 日朔寧龍腹寺留板化主惠淳仅雄」

007_0647_b_16L庚本刊記如下「王妑殿下壽齊年主上殿下壽萬
007_0647_b_17L世子殿下壽千秋緣化秩大化士香山衲子
007_0647_b_18L崇信大化士發心道人大珠別座衲子雙輪鍊板
007_0647_b_19L魚山道人戒敏供養主海英惠學師慧泳林
007_0647_b_20L性演順治六年己丑八月日 鷲栖山通度寺重
007_0647_b_21L刊」

007_0647_b_22L辛本刊記如下「主上三殿下萬萬千千歲法輪常
007_0647_b_23L轉於無窮願諸同願叅同助緣化緣與法界含靈
007_0647_b_24L同證菩提之大果監投兼化主慈應信和引勸比
007_0647_b_25L丘弘律功刊通政別訓雍正九年辛亥五月
007_0647_b_26L留刊于香山普賢寺」
  1. 1)옛 부처님이~어떻게 전했으리 : 『從容錄』 제77칙 「仰山隨分」에 이 말이 나온다. 거기에는 고불古佛이 부모父母로 되어 있다.
  2. 2)육조대사六祖大師가 대중에게~된 이유이다 : 『六祖大師法寶壇經』에 나온다. 육조가 신회의 대답을 듣고는, “내가 너에게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다고 하였는데, 너는 본원이요 불성이라고 바로 대답하였으니, 지해종도知解宗徒가 될 뿐이다.”라고 평한 내용이 바로 뒤에 나온다.
  3. 3)잘못하면 눈썹이 빠질 터인데 : 불법佛法을 잘못 설하면 그 벌로 눈썹이 빠진다는 선림禪林의 전설이 있다. 오대五代의 취암선사翠巖禪師가 하안거夏安居 동안 동문同門에게 설법하고 나서 “내 눈썹이 아직 남아 있는가?(看翠嵒眉毛在麽?)”라고 물은 취암미모翠巖眉毛의 공안公案이 전한다. 『碧巖錄』 제8칙 참조.
  4. 4)금비金鎞 : 안과 수술용 쇠칼이라는 말이다. 옛날 인도의 양의良醫가 금비를 가지고 맹인의 눈알에 덮인 희끄무레한 백태白苔를 벗겨 내어 광명을 되찾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涅槃經』 권8에 나온다.
  5. 5)한가한 도인(閑道人) : 당나라 선승禪僧 영가 현각永嘉玄覺이 지은 ≺證道歌≻ 첫머리에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배움도 끊어지고 아무 하는 일 없이 한가한 도인은, 굳이 망상을 없애려 하지도 않고 참된 진리를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이름 없는 실제 성품이 바로 불성이요, 허깨비 같은 허망한 몸이 바로 법신인 것을.(君不見,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無名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이라는 말이 나온다.
  6. 6)필경공畢竟空 : 일체 제법諸法이 필경에는 공空하여 집착할 것이 없는 것을 말하며, 지경공至竟空이라고도 한다.
  7. 7)즉卽도 여의고~옳은 것(離卽離非, 是卽非卽) : 즉卽은 다르지 않은 같음을 말하고, 비非는 하나가 아닌 다름을 말한다. 『楞嚴經』 권4에 이 말이 나온다.
  8. 8)활구를 참구하면~못할 것이다 : 송宋나라 수산 성념首山省念 선사가 “제1구를 참구하면 불조와 함께 스승이 될 것이요, 제2구를 참구하면 인천과 함께 스승이 될 것이요, 제3구를 참구하면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第一句薦得, 與佛祖爲師;第二句薦得, 與人天爲師;第三句薦得, 自救不了.)”라고 말하며 학인을 접화接化한 수산삼구首山三句의 공안公案이 전한다. 『從容錄』 제76칙 참조.
  9. 9)경절문徑截門 : 불립문자不立文字ㆍ직지인심直指人心ㆍ견성성불見性成佛을 지향하며 온갖 지해知解를 끊고 곧장 불지佛地에 오르는 교외敎外의 선문禪門을 말한다. 고려의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智訥이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ㆍ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ㆍ경절문 등 3개의 문을 시설하여 학인을 접화接化하였다.
  10. 10)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 당나라의 고승인 조주 종심趙州從諗 선사에게 어떤 승려가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狗子還有佛性也無?)”라고 묻자, 조주가 “없다.(無.)”라고 대답하였는데, 승려가 다시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는데, 개는 어째서 없는 것인가?” 하고 물으니, 조주가 “그에게 업식業識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다른 승려가 또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조주가 “있다.(有.)”라고 하자, 그 승려가 “일단 불성이 있다고 한다면 어째서 저 가죽 부대 속에 들어갔는가?” 하고 물으니, 조주가 “그가 알고도 짐짓 범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였는데, 어째서 조주가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했는지, 그 본래의 참뜻을 깨닫게 하는 것이 이 화두話頭의 목적이다. 조주구자趙州狗子․조주불성趙州佛性․조주유무趙州有無라고도 칭한다. 『無門關』 제1칙, 『從容錄』 제18칙 등에 나온다.
  11. 11)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 어떤 승려가 조주 종심趙州從諗 선사에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의 화두를 거론하여 묻자,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라고 대답한 일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聯燈會要』 권6 「趙州從諗條」 참조. 조사서래의는 달마達磨가 서쪽 인도에서 중국에 건너와 불법佛法을 전한 진의眞意가 무엇인지를 묻는 선종의 화두話頭이다.
  12. 12)마삼근麻三斤 : 오대五代 송宋 초엽에 운문종雲門宗의 동산 수초洞山守初 선사에게 어떤 승려가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如何是佛?)” 하고 묻자, 선사가 “삼 서 근이다.(麻三斤.)”라고 대답한 일화에서 유래한 공안이다. 『碧巖錄』 제12칙 참조.
  13. 13)간시궐乾屎橛 : 시궐屎橛은 인도에서 사람의 똥을 닦을 때 쓰는 나무 조각으로, 즉 간시궐은 마른 똥 막대기를 가리킨다. 이처럼 더럽기 그지없는 물건에도 불법이 들어 있다는 뜻으로, 범부의 집착을 타파할 목적으로 선종에서 사용하는 공안인데, 어떤 승려가 운문雲門 선사에게 어떤 것이 부처냐고 묻자, 운문이 ‘마른 똥 막대기(乾屎橛)’라고 대답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無門關』 제21칙 「雲門屎橛」 참조.
  14. 14)영가永嘉 : 당나라 선승 영가 현각永嘉玄覺을 말한다. 그가 육조六祖 혜능慧能을 찾아갔을 때 그의 깨달음의 경지가 육조와 계합契合이 되자, 육조가 하룻밤만이라도 머물다 가라고 청했기 때문에 그를 일숙각一宿覺이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가 깨달음의 경지를 장문長文의 시가詩歌로 읊은 ≺證道歌≻가 지금도 전한다. 『景德傳燈錄』 권5 「溫州永嘉玄覺禪師」 참조.
  15. 15)몽산蒙山 : 원대元代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의 승려인 몽산 덕이蒙山德異를 말하는데, 세칭 고균비구古筠比丘라고도 한다. 원元 세조世祖 지원至元 27년(1290)에 그가 재편再編하여 유포한 『六祖壇經』을 보통 덕이본德異本이라고 칭한다. 『增續傳燈錄』 권4, 『五燈嚴統』 권22 참조.
  16. 16)북송北宋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의 승려인 오조 법연五祖法演 선사의 말이다. 『法演禪師語錄』 권3 참조.
  17. 17)『無門關』 제1칙 「趙州狗子」에 나오는 무문 혜개無門慧開의 평이다.
  18. 18)선정禪定 중에~찍기도 하고 : 옛날 어떤 선사가 좌선하는데, 한 상복을 입은 사람이 송장을 메고 와서 “당신이 왜 우리 어머니를 죽였느냐?”라고 말하며 달려들기에 시비 끝에 도끼로 그 상주를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자기의 다리에서 피가 흘렀다고 한다.
  19. 19)멧돼지와 씨름하다가~잡기도 하는 : 어떤 선사가 공부하고 있는데, 산돼지가 와서 대들기에 그 코를 붙잡고 소리치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자기 코를 잡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제 마음이 움직이므로 그 틈을 타서 자기 스스로 마魔를 지어낸다는 것이다.
  20. 20)타성일편打成一片 : 차별하여 분별하지 않고 하나로 융합하는 것을 말한다.
  21. 21)팔풍八風 :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여덟 가지 일. 나에게 이익을 주는 이利, 손해를 끼치는 쇠衰, 배후에서 헐뜯는 훼毁, 배후에서 찬미하는 예譽, 대중 앞에서 칭찬하는 칭稱, 대중 앞에서 비난하는 기譏, 심신이 핍박을 받는 고苦, 심신이 기쁘고 즐거운 낙樂을 말한다. 『釋氏要覽』 下 「躁靜」 참조.
  22. 22)간혜乾慧 : 지혜는 깊으나, 아직도 온전한 진제眞諦 법성法性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경지.
  23. 23)인지因地 : 과지果地의 대칭對稱으로, 불과佛果를 얻기 이전의 수행 단계를 뜻하는 말이다. 예컨대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과거 법장보살法藏菩薩로 있을 때가 바로 인지라고 할 수 있다. 인위因位라고도 한다.
  24. 24)『禪源諸詮集都序』 권1에 “혹은 ‘먼저 돈오해야만 점수할 수가 있다,’라고 말한다.(或云, ‘先須頓悟, 方可漸修.’)”라는 말이 나온다.
  25. 25)중국 불교 선종禪宗의 오조五祖인 홍인선사弘忍禪師의 상좌上佐 신수神秀가 게偈를 짓기를 “몸은 바로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와 같다. 때때로 부지런히 떨고 닦아서, 먼지가 일지 않게 해야 한다.(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拂拭勤, 勿使惹塵埃.)”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서 혜능慧能이 반박하여 게를 짓기를 “보리는 본디 나무가 아니요, 명경은 또한 대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먼지가 어디에서 일어난단 말인가!(菩提本非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六祖壇經』에 보인다.
  26. 26)능소能所 : 절대적인 것이 못 되고 상대적인 주객主客의 대립 관계를 나타내는 불교 용어로, 능能은 능동적인 주체 즉 인식하는 주관主觀을 뜻하고, 소所는 피동적인 객체客體 즉 인식의 대상을 뜻한다.
  27. 27)궁자窮子 : 『法華經』 7유喩의 하나. 빈궁한 아들이란 뜻이다. 『法華經』 「信解品」에 빈궁한 아들이 집을 나가 떠돌아다니다가 아버지의 집에 오매,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차츰차츰 업무를 익히게 하여 자신이 죽을 때 주변의 신하들을 불러들여 격식을 갖추고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밝히고 재산을 물려준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서는 일정한 시간과 절차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28. 28)여섯 가지 신통력神通力 : 부처와 보살의 여섯 가지의 무애자재無礙自在한 묘용妙用. 육신통六神通 혹은 육통六通이라고도 하며, 신족통神足通ㆍ천이통天耳通ㆍ타심통他心通ㆍ숙명통宿命通ㆍ천안통天眼通ㆍ누진통漏盡通 등을 말한다.
  29. 29)삼학三學 : 계戒ㆍ정定ㆍ혜慧를 가리킨다.
  30. 30)삼업三業 :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 즉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을 말한다.
  31. 31)옴에 걸린 여우(疥癩野干) : 『薩遮尼犍經』 권9에 나온다.
  32. 32)초계草繫 : 초계비구草繫比丘, 즉 풀에 묶인 비구의 일화를 말한다. 도적이 비구의 옷을 빼앗고 발가벗긴 뒤에 그 몸을 살아 있는 풀에 묶어 두고 떠났는데, 그 비구는 풀이 끊어져 시들어 죽을까 염려하여 차라리 자기가 죽겠다는 결심으로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다가, 다행히 국왕의 행차를 만나 결박을 풀고 국왕의 귀의를 받았다고 한다. 『法苑珠林』 권9 참조. 『涅槃經』 권26에 “초계비구처럼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계율을 훼손하지 말 것이다.(寧捨身命, 不毁禁戒, 如草繫比丘.)”라는 말이 나온다.
  33. 33)아주鵝珠 : 거위가 삼킨 구슬이라는 말이다. 어떤 비구가 보석을 가공하는 집에 걸식하러 가서 문밖에 서 있는데, 그 주인이 국왕을 위해 마니摩尼 구슬을 갈고 있다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거위가 와서 구슬을 삼켰다. 주인이 돌아와서 구슬이 없어진 것을 알고는 비구를 문책했으나 그 비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주인이 그 비구를 결박하고 몽둥이로 때리니 피가 흥건히 흘러내렸다. 그때 피를 핥아먹으려고 다가오는 거위를 주인이 홧김에 때려죽이는 것을 보고는 그 비구가 비로소 설명을 하니, 주인이 거위의 배를 가르고 구슬을 찾은 뒤에 통곡하며 사죄했다고 한다. 이 비구가 불살생계不殺生戒와 불망어계不妄語戒를 범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매를 맞았다고 하여 계율을 굳게 지키는 자의 비유로 곧잘 쓰이곤 한다. 『大莊嚴論經』 권11 참조.
  34. 34)초범입성超凡入聖 : 범부의 처지를 벗어나 성인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35. 35)좌탈입망坐脫立亡 : 단정히 앉아서 숨을 거두고, 똑바로 서서 열반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참고로 『普勸坐禪儀』에 “초범입성하고 좌탈입망하는 것이 일체 이 힘에 의한 것이다.(超凡越聖, 坐脫立亡, 一任此力矣.)”라는 말이 나온다. 『禪苑淸規』 권8 「坐禪儀條」 참조.
  36. 36)묘수妙首는 생각으로~지킨 것이다 : 묘수는 이른바 문수삼명文殊三名 중의 하나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가리킨다. 범어 Mañjuśrī를 음역音譯한 것 중에, 만수시리滿殊尸利는 묘수妙首로 의역意譯되고, 문수사리文殊師利는 묘덕妙德으로 의역되고, 만수실리曼殊室利는 묘길상妙吉祥으로 의역된다. 정명淨名은 인도 비야리국毘耶離國의 장자長者로서 석존釋尊의 속제자俗弟子였다는 유마거사維摩居士를 가리킨다. 문수보살이 유마거사를 찾아와서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유마가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문수가 탄식하며 “이것이 바로 불이법문으로 들어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維摩經』 「入不二法門品」 참조.
  37. 37)“향수를 발라 주고 칼로 찌르는 이 두 가지 일에 대해서 마음을 두 가지로 하지 말라.(塗割二事, 其心無二.)”라는 말이 『涅槃經』 권27과 권29에 나온다.
  38. 38)마등摩登 : 부처의 제자인 아난阿難을 유혹했던 인도 최하층 계급인 마등가종摩登伽種의 음녀淫女 발길제鉢吉帝를 가리킨다. 이 여인이 아난을 환술幻術로 유인해서 자기 방에 들어오게 하자, 부처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보내 신주神呪로 두 사람을 구해 내는데, 이 여인이 아난을 따라와 마침내 불법佛法에 귀의해서 아라한阿羅漢이 되는 이야기가 『楞嚴經』에 나온다.
  39. 39)적문迹門 : 『法華經』 28품 가운데서 앞의 14품을 말한다. 원융圓融 삼제三諦의 이치를 밝힌 것으로서 구원久遠 겁 전의 본불本佛이 아닌, 이 세계에 탄생한 적불迹佛의 법문을 적문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중생 구제의 방편적 측면’을 의미한다.
  40. 40)인지因地 : 불과佛果를 얻기 이전의 수행 단계를 가리키는 불교 용어이다.
  41. 41)마치 금강석을~것과 같아서 : 조금이라도 불법佛法의 인연을 맺어 놓으면, 금강석이 배 속을 통과하여 그대로 나오는 것처럼, 언젠가는 무명無明의 업장業障을 뚫고 금강석처럼 빛나는 열반涅槃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말로, 『華嚴經』 「如來出現品」에 나온다.
  42. 42)연수延壽 선사(壽師) : 송나라 법안종法眼宗 제3조 영명 연수永明延壽 선사를 가리킨다. 인용문은 『永明智覺禪師唯心訣』 말미에 나온다. 지각智覺은 그의 시호諡號이다.
  43. 43)종밀宗密 선사(密師) : 당나라 화엄종華嚴宗 제5조 규봉 종밀圭峯宗密 선사를 가리킨다. 인용문은 그가 지은 『禪源諸詮集都序』 권1에 나온다.
  44. 44)『蘇東坡詩集』 권50 ≺戱答佛印≻에 보인다.
  45. 45)조서승鳥鼠僧 : 파계승破戒僧을 비유하는 말이다. 조서는 새 같으면서도 새가 아니고 쥐 같으면서도 쥐가 아니라는 뜻으로, 박쥐의 별칭이다. 오서승烏鼠僧이라고도 한다.
  46. 46)아양승啞羊僧 : 파계破戒는 하지 않지만 무지한 둔근鈍根이라서 삼장三藏도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양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사람들의 핍박을 받기만 한다는 말법 시대의 지극히 어리석은 승려를 비유하는 말이다.
  47. 47)어떤 수도자가~갚았다고 한다 : 도안이 밝지 못한 비구가 신도의 극진한 공양을 받았다가 목균, 즉 버섯이 되는 응보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景德傳燈錄』 권2 「迦那提婆」에 나온다.
  48. 48)『梵網經』 2권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한 것이다. 경구죄輕垢罪는 바라이죄波羅夷罪, 즉 중죄重罪의 대칭對稱으로 그 죄가 비록 가볍기는 하지만 청정한 수행에 흠이 되는 48경계輕戒를 말한다.
  49. 49)삼도三途 : 삼악도三惡道, 즉 지옥地獄ㆍ아귀餓鬼ㆍ축생畜生을 말한다.
  50. 50)조각皂角 : 조각수皂角水, 즉 쥐엄나무 진액을 우려낸 물을 말한다.
  51. 51)죽음이 두려운~석가를 가까이하는구나 : 송나라 철인哲人 소옹邵雍의 칠언율시 제2연에 “명예를 구하던 젊은 날엔 공자에게 투신했는데, 죽음이 두려운 노년에 와선 석가를 가까이하네.(求名少日投宣聖, 怕死老年親釋迦.)”라는 구절이 나온다. 『擊壤集』 권14 ≺學佛吟≻ 참조.
  52. 52)백운白雲 : 송나라 백운 수단白雲守端 선사를 가리킨다. 본문의 내용은 『大慧普覺禪師語錄』 권10에 인용되어 나온다.
  53. 53)오위五位 : 조동종의 이른바 정편오위설正偏五位說, 즉 정중편正中偏ㆍ편중정偏中正ㆍ정중래正中來ㆍ편중지偏中至ㆍ겸중도兼中到를 말한다.
  54. 54)삼근三根 : 중생의 근성根性을 셋으로 나눈 것으로, 상근上根ㆍ중근中根ㆍ하근下根을 말한다.
  55. 55)위음威音의 나반那畔 : 과거過去 장엄겁莊嚴劫 최초의 부처인 위음왕불威音王佛이 세상에 나오기 이전의 절대 무한의 경계를 뜻하는 선림禪林의 용어로, 부모미생이전父母未生以前과 비슷한 표현이다.
  56. 56)사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를 끊어 : 머릿속에서 나온 일체의 논리를 배격한다는 말이다. 사구四句는 부정과 긍정을 반복하는 것으로, 예컨대 유有ㆍ무無ㆍ역유역무亦有亦無ㆍ비유비무非有非無 같은 것을 말하고, 백비百非는 유무有無 등 일체 개념에 대해 비非, 즉 부정의 뜻을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57. 57)입은 두~하나도 없으니(兩口無一舌) : 앙산 혜적仰山慧寂의 임종게臨終偈에 나오는 말이다.
  58. 58)단하丹霞가 목불木佛을 태운 것 : 당나라 단하 천연丹霞天然 선사가 각지를 유력遊歷하다가 혜림사慧林寺에 이르러 날이 춥자 목불木佛을 태워 불을 쬐는 것을 원주院主가 보고는 깜짝 놀라 질책을 하니, 단하가 사리舍利를 구하려 한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원주가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겠느냐?(木佛何有舍利?)”라고 반문하니, 단하가 “그렇다면 다른 불상도 가져다 불을 때야겠다.(旣無舍利, 更取兩尊燒.)”라고 응수한 고사가 전한다. 『五燈會元』 권5 「鄧州丹霞天然禪師」 참조.
  59. 59)운문雲門이 개밥으로~한 것 : 석가釋迦가 태어나자마자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나 홀로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라고 했다는데, 운문 문언雲門文偃 선사가 이 말을 듣고는 “내가 당시에 그 광경을 보았더라면, 한 방망이로 때려잡아 개밥으로 던져 주어서 세상을 태평하게 했을 것이다.(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卻, 貴圖天下太平.)”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雲門匡眞禪師廣錄』 권2 참조.
  60. 60)노파가 부처를~했던 것 : 인도 사위성舍衛城 동쪽의 한 노모老母가 부처를 보지 않으려고 하여 부처가 오는 것을 보면 고개를 돌려서 피하곤 하였으나 어느 방향에서나 모두 부처가 보였으므로 마침내 두 손으로 눈을 가렸는데, 그때에도 열 손가락 끝에서 모두 부처가 나타났다(於十指掌中, 亦總是佛.)는 고사가 전한다. 『五燈會元』 권1 「釋迦牟尼佛」 참조.
  61. 61)이하 번역은 김영욱․조영미․한재상 역주, 『정선 휴정』(대한불교조계종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2010)에 실린 『禪家龜鑑』 참조.
  1. 1){底}萬曆己卯惟政跋文本(高麗大學校所藏)。{甲}萬曆十八年金剛山楡岾寺開刊本(國立圖書館所藏)。{乙}萬歷三十三年慶尙道華山圓寂寺開刊本 {丙}萬曆三十五年全羅道順天府曺溪山松廣寺開刊本(東國大學校所藏)。{丁}萬歷四十年妙香山內院庵開板留移普賢寺本(東國大學校所藏)。{戊}萬歷戊午順天地松廣寺開刊本(東國大學校所藏)。{己}崇禎六年朔寧龍腹寺留板本(國立圖書館所藏。附禪敎釋)。{庚}順治六年鷲栖山通度寺重刊本(全南潭陽郡龍華寺所藏)。{辛}雍正九年香山普賢寺留刊本(東國大學校所藏) {壬}萬曆癸未普願跋文本(高麗大學校所藏)。{癸}續藏經第二編第十七套。第五册。
  2. 2)「曹溪退隱述」無有{甲}{乙}{丁}{己}{辛}。
  3. 3)「溪」作「谿」{癸}。
  4. 4)「○」無有{癸}。
  5. 1)「鎞」作「▼(金+箆)」{癸}。
  6. 2)「寶」作「實」{乙}。
  7. 3)「九」作「久」{癸}。
  8. 4)「草」作「艸」{癸}次同。
  9. 5)「傳」無有{乙}。
  10. 6)「街」作「衒」{癸}。
  11. 7)「掌」作「手」{癸}。
  12. 8)「閑」作 「閒」{癸}。
  13. 9)「閑」作「眠」{癸}。
  14. 10)「捴」作「總」{癸}。
  15. 11)「歎」作「欲」{癸}。
  16. 12)「廻」作「回」{癸}。
  17. 1)「豁」作「割」{癸}。
  18. 2)「此」作「比」{乙}。
  19. 3)「先」作「光」{乙}。
  20. 4)「性」作「栍」{乙}。
  21. 5)「活」作「沽」{乙}。
  22. 6)「獵」作「躐」{甲}{丁}{己}{辛}{癸}ㆍ作「㯿」{乙}。
  23. 7)「叅」作「參」{癸}次同。
  24. 8)「活」作「沽」{乙}。
  25. 9)「堪」作「㙋」{乙}。
  26. 10)「卵」作「卯」{乙}。
  27. 11)「橛」作「撅」{甲}{乙}。
  28. 1)「許」作「𧦝」{己}{辛}。
  29. 2)「觜」作「嘴」{癸}。
  30. 3)「妙」作「玅」{癸}次同。
  31. 4)「牽」作「率」{癸}。
  32. 5)「還」作「遙」{乙}。
  33. 6)「檢」作「撿」{乙}{癸}。
  34. 1)「故」作「境」{癸}。
  35. 2)「免」作「兔」{乙}。
  36. 3)「聲」下有「以」{癸}。
  37. 4)「云云」作「云」{癸}。
  38. 5)「訣」作「𧥱」{丁}{己}{辛}。
  39. 6)「正」作「五」{乙}。
  40. 7)「聖」無有{乙}。
  41. 8)「淫」作「婬」{癸}。
  42. 1)「寤」作「窹」{乙}{癸}。
  43. 2)「者」作「翳」{乙}。
  44. 3)「起」作「滅」{丁}。
  45. 4)「滅」作「起」{丁}。
  46. 5)「窮」作「窺」又冠註曰窺疑窮{癸}。
  47. 6)「他」作「佗」{癸}次同。
  48. 7)「較」作「輕」{癸}。
  49. 8)「評」作「平」{乙}。
  50. 9)「噵」作「導」{甲}{乙}{丁}{己}{辛}。
  51. 10)「諸」作「除」{甲}{乙}{丁}{己}{辛}。
  52. 11)「着」作「著」{癸}次同。
  53. 12)「埃」作「挨」{丁}{己}{辛}。
  54. 1)「本」作「木」{乙}。
  55. 2)此評曰文。底本與註釋不分故。編者改行錄之。
  56. 3)「簿」作「薄」{丙}。
  57. 1)「佛」無有 {癸}。
  58. 2)「矣」作「夫」{癸}。
  59. 3)「萬」作「方」又冠註曰方疑万{癸}。
  60. 4)「慧」作「惠」{癸}。
  61. 5)「巖」作「岩」{癸}。
  62. 6)「盖」作「益」{癸}。
  63. 7)「全」作「金」{乙}。
  64. 8)「謹」作「▼(言+荳)」{乙}。
  65. 9)「氷」作「水」{辛}。
  66. 10)「麁」作「麤」{癸}次同。
  67. 11)「莊」作「藏」{乙}。
  68. 12)「鳥」作「烏」{乙}{癸}。
  69. 1)「之」無有{癸}。
  70. 2)「及」作「乃」{癸}。
  71. 3)「失人身始」作「以袈裟下」{丁}{己}。
  72. 4)「紬」作「細」{丁}{壬}。
  73. 5)「將」作「長」{乙}。
  74. 6)「主」作「生」{癸}。
  75. 7)「床」作「狀」又冠註曰狀疑牀{癸}。
  76. 8)正音傍點省略{編}次同。
  77. 1)「리」作「라」{乙}。
  78. 2)「密」作「蜜」{乙}。
  79. 3)「주」作「쥬」{乙}{戊}。
  80. 4)「野」作「嘢」{乙}。
  81. 5)「婆」作「▼((口+皮)/女)」{丁}。
  82. 6)「」無有{丁}。
  83. 7)「바」作「비」{乙}。
  84. 8)「跋」作「▼(工+交)」{乙}。
  85. 9)「洗淨須用冷水」無有{乙}。
  86. 10)「道」下有「道」{乙}。
  87. 11)「覓」作「見」{癸}。
  88. 12)「閉」作「閑」{丁}{己}{辛}。
  89. 13)「一如」作「如一」{乙}。
  90. 14)「好」作「如」{癸}。
  91. 15)「勞」作「努」{甲}{乙}。
  92. 1)「妙」作「玅」{癸}次同。
  93. 2)「超」作「起」{丁}{辛}。
  94. 3)「恩」作「思」{乙}。
  95. 4)「道」作「首」{癸}。
  96. 5)「汾」作「分」{丙}。
  97. 6)「曰圓…宗杲」十字。底本二行小文字。編者作本文活字。
  98. 7)「涌」作「漏」{癸}。
  99. 8)「著」作「着」{乙}。
  100. 9)「奮」作「奪」{癸}。
  101. 10)「權」作「㩲」{丁}{己}{辛}。
  102. 11)「恊」作「協」{甲}。
  103. 12)「柱」作「拄」{癸}。
  104. 1)「搥」作「槌」{癸}。
  105. 2)「眠」作「眼」{乙}。
  106. 3)「干」作「于」{癸}。
  107. 4)「歸」作「掃」{己}。
  108. 5)「印」 作「郞」{癸}。
  109. 6)「揀」作「楝」{癸}。
  110. 7)「式」下有「正利平常本分貢假」{癸}。
  111. 8)「劔」作「釰」{乙}。
  112. 9)「裂」作「烈」{癸}。
  113. 10)「探」作「眼」{乙}。
  114. 11)「傷」作「復」{癸}。
  115. 12)「鴣」作「鴰」{丙}。
  116. 1)「特」作「時」{癸}。
  117. 2)「何」下有「咄」{乙}。
  118. 3)此跋文無有{甲}{乙}{丙}{丁}{己}{庚}{辛}。
  119. 4)「敎」下有「之」{癸}。
  120. 5)「恃」作「特」{癸}。
  121. 6) 「濫」作「溢」{癸}。
  122. 7)「之」無有{癸}。
  123. 8)「叅」作「參」{癸}。
  124. 9)「焉」作「爲」{癸}。
  125. 10)「墨」作「黑」{癸}。
  126. 11)「普」作「魯」{癸}。
  127. 12)「校」作「挍」{癸}。
  128. 13)「太」作「大」{癸}。
  129. 14)「節」無有{癸}。
  130. 15)此跋文。在於甲壬本。然甲本「萬曆癸未春弟子普願拜手敬跋」無有。
  131. 16)此跋文。只在辛本。
  132. 17)「隊」疑「際」{編}。
  133. 1)甲本刊記如下「大施主金彥謙兩主。大施主女莫加屎兩主。大施主金億萬兩主。張峻兩主。李枝華兩主。白仁凡兩主。朴禮必兩主(此下七十七人。名單省略) 比丘靈照。比丘性岑。比丘慈敏。比丘志安。魯汙乞靈駕。女去加屎靈駕。女貴非靈駕。申千福靈駕。金守永靈駕。金毛里金。楊貴男靈駕。金亍之靈駕。女鳳台靈駕。察伊靈駕 刻字比丘妙嚴。鍊板比丘義文。執務金天雨。比丘志峻。比丘印正。時萬曆十八年庚寅夏。金剛山楡岾寺開刊」。
    乙本刊記如下「上來此功德。普及於一切。願我與衆生。皆共成佛道。仍修奉祝。主上三殿下位萬歲。文武百官。如上治國。國泰民安法輪轉。所辦施主緣化等。伏願戰亡亂亡法界亡魂。上世靈駕。父母徃生淨界。供養大施主朴氏有德靈駕 衣▼(示+東)大施主金山兩主。劉金伊兩主。車守兩主大施主申長福兩主。布施大施主金永石兩主。金永春兩主。申氏守今兩主。申氏守德保。全應心兩主。板大施主申長福兩主。張撿山兩主。申要光兩主。徐貴斤兩主。李先鶴保。介非兩主。板大爲他引勸居士申應豪。少年春男。供養主智叅。道根。輝甘。校正兼寫經幼學康。汝海。證師判事熙運。前主持淨裕。刊前主持智崇。萬歷三十三年甲辰歲慶尙道華山圓寂寺開刊」。
    丙本刊記如下「萬曆三十五年丁未。六月。日 全羅道順天府曺溪山松廣寺開刊。刻手弘彥。智玄慈敬。勝訔。智成。妙淨。別座妙湛。供養主玄祖助緣禪覺。元膺。居士曺孫。鍊板居士金連福。幹善道人湛玄」。
    丁本刊記如下「大施主李春。靈昱 ▣雄 ▣英 ▣▣ 性了。幸珪。性珠 ▣加。思印 ▣眞 ▣輝 刻手記廣淳。李信會 ▣仁。由極▣ 白忠京。義一。一亥。天玉。眞祥。鍊板金▣▣ 熟刀斗玄。飯
  134. 1)頭一萸。別坐惠正。萬歷四十年壬子妙香山內院庵開板留移普賢寺」。
    戊本刊記如下「時萬曆戊午。孟春。順天地松廣寺開刊。刻手秩▣導。弘彥。化士湛玄」。
    己本刊記如下「王妑殿下壽齊年。主上殿下壽萬歲。世子邸下壽千秋。供養施主兼別坐志默。大施主秩尙正。曺金介。朴仁龍。玄修。李旕孫幸正。孫萬孫。高唜同。劉今守。李賢。洪彦守。金漢江。金碧还。魯沈。延孝男。李黃。大施主秩朴允福。李彥卜。盧氏天今。和卞。洪彥日。趙順卜 姜金同。彐岩。信已。安億龍。韓夢男。女玉眞。刊字秩祖云。法哲。處俊。戒能。性甘。密玄。學修 彐浩。緇密。木手海禪。令冾。令守。承立。供養主玲屹。天己。五男。承卜。春世。天奉。崇禎六年癸酉。月 日。朔寧龍腹寺留板。化主惠淳。仅雄」。
    庚本刊記如下「王妑殿下壽齊年。主上殿下壽萬歲。世子殿下壽千秋。緣化秩。大化士香山衲子崇信。大化士發心道人大珠。別座衲子雙輪。鍊板魚山道人戒敏。供養主海英。惠學。師慧。泳林性演。順治六年己丑。八月。日 鷲栖山通度寺重刊」。
    辛本刊記如下「主上三殿下萬萬千千歲。法輪常轉於無窮。願諸同願叅同助緣化緣與法界含靈同證菩提之大果。監投兼化主慈應信和。引勸比丘弘律。功刊通政別訓。雍正九年辛亥。五月。日 留刊于香山普賢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