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 / 白雲和尙語錄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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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
백운 경한白雲景閑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 서序
고려조계대선사 경한의 호는 백운이며, 강남 하무산 석옥 청공1) 화상에게서 법을 전해 받았는데 이는 당신께서 하신 말씀에도 잘 드러나 있다. 세수 77세에 취암사에서 입적하셨다. 그 문도인 법린과 정혜가 판각判閣 김계생과 함께 화상의 어록을 목판에 새겨 상재上梓하고자 하여 내게 서문을 청하였다.
내가 연경에서 노닐 무렵, 나옹이 바야흐로 도道로 명성을 떨쳐 천자의 마음을 움직여 개당 설법하니 백성들이 그를 더욱 믿고 따랐다고 하는데 나는 알지 못했다. 백운 선사 또한 대단히 뛰어난 분이시나 법린이 아니었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 풍모를 흠모할 수 없었으리라.
아, 한 시대를 함께한 식자인으로서 서로 만나 보지 못하였으니 이 얼마나 한스러운가! 지금 백운 선사에 대해서는 더욱 한스럽기 그지없다. 그 도는 높고 말씀은 깊어 나의 견식과 역량으로는 알 수가 없네. 장차 안목을 갖춘 이가 밝혀야 하리니, 이에 더 쓰지 못하겠노라.
무오년(1378) 여름 4월 5일,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 삼중대광 한산군 영예문춘추관사 목은 이색이 쓰다.2)

세존께서 꽃을 드시자 가섭이 미소하여 대략 실마리를 드러냈으나, 불법의 근원에서 멀어지고 종파가 나뉘면서 방棒이나 할喝이 온통 그 남상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는 겉모습을 빌리거나 이름을 도둑질하여 세상에 아첨하는 자들이 무수히 발자취를 이어 구름처럼 일어남에 이 도는 날로 무너져 갔다.
백운 화상은 우리나라 고부군3) 출신으로서

006_0637_a_01L[白雲和尙語錄]

006_0637_a_02L1)白雲和尙語錄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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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曺溪大禪師景閑號白雲得法於
006_0637_a_05L江南霞霧山石屋珙和尙觀其自道可
006_0637_a_06L見已年七十七示寂于鷲嵒其徒法
006_0637_a_07L厸靜惠與判閣金繼生將鋟語錄于梓
006_0637_a_08L求余序余之游燕也懶翁方以道譽
006_0637_a_09L天子開堂說法鄕人尤皈仰焉
006_0637_a_10L予未之知也白雲師又其傑然者也
006_0637_a_11L非厸無以歆其風嗚呼士之同一世
006_0637_a_12L而不相遇者何限今於白雲益有憾
006_0637_a_13L若其道之高語之深非予之識量
006_0637_a_14L所可知也當有具眼者證之玆不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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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午夏四月五日推忠保節同德賛
006_0637_a_17L化功臣三重大臣 [1] 韓山君領藝文春秋
006_0637_a_18L館事牧隱李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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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尊拈花迦葉微咲略露頭角源遠
006_0637_a_23L而派分若棒若喝皆其濫觴至如假
006_0637_a_24L容盜名取媚於世者接跡雲起而斯
006_0637_a_25L道日喪白雲和尙海東古阜郡籍

006_0637_b_01L어려서 출가하여 배움에 힘쓰며 도를 구하였다. 하무산 석옥 청공의 법을 이어받았고 서천의 지공4)에게 의심나는 문제를 물어 계사년(1353) 음력 정월 기망 다음 날인 17일에 마음을 밝히고 도를 깨달았다.
석옥 청공 화상이 입적에 즈음하여 임종게를 부쳐 왔다.

白雲買了賣淸風       백운을 사고 맑은 바람은 팔았더니,5)
散盡家私澈骨窮       가산 온통 흩어져 뼈가 시리도록 가난하구나.
留得一間芧草屋       한 칸의 띠풀 집은 남겨 두었으니,
臨行付與丙丁童       떠나려는 이 순간 병정동자6)에게 전해 주노라.7)

이로써 석옥이 백운에게 법을 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백운 선사는 천연 그대로 더하거나 꾸밈 없이 참되고 변함없는 진실상을 남김없이 드러내셨으며, 겉모습을 빌리거나 이름을 도둑질하는 짓은 취하지 않으셨으니 참된 경지에 이른 분이시다.
내가 을사년(1365) 가을에 서해로 명을 받들고 사신으로 갔을 때에 선사께서는 신광사 주지로 계셨는데 한번 뵙고도 그 진기한 모습에 선사의 인품을 알 수 있었다. 그 후로 10년을 뵙지 못했는데 선사께서 입적하셨다니 참으로 애통할 뿐이다. 나와 뜻을 같이하는 친한 벗인 선교도총통 예원 찬영璨英 공이 선사의 어록을 보여 주었는데, 그 완연한 면목에 몹시도 놀라 두 번 세 번 되풀이해 음미해 보니 백운 선사의 정수가 이 어록에 온전히 담겨 있었다. 후학들이 이 법어를 본다면 비유컨대 어둠을 밝히는 빼어난 등불이요 더위를 씻어 주는 맑은 바람과 같아서 참으로 사숙의 지남이 될 만하리라. 문인 달잠達湛과 석찬釋璨 등이 침재鋟梓하여 후대에 길이 전하고자 하였고, 나 또한 백운 선사의 입적은 안타까우나 그 법만은 길이 전해져 없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 어록의 한 끝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을 기뻐하며 이 글을 쓰노라.
선광 정사년(1377) 3월 초하루, 통암거사 철성 이구 온보가 쓰다.


006_0637_b_01L齔出家力學求道嗣法於霞霧石屋
006_0637_b_02L質疑於西天指空越癸巳孟春旣望翌
006_0637_b_03L明心見道石屋臨終而偈寄云
006_0637_b_04L雲買了賣淸風散盡家私澈 [2] 骨窮留得
006_0637_b_05L一間芧草屋臨行付與丙丁童則屋以
006_0637_b_06L是傳之雲者可知矣然雲天然無作
006_0637_b_07L常裸裸假容盜名雲所不取眞境中
006_0637_b_08L人也予於乙巳秋奉使西海師住神
006_0637_b_09L一見而奇之知其爲人不見十年
006_0637_b_10L而雲已歸寂是可悼也吾契友禪敎
006_0637_b_11L都摠統芮院英公以師之語錄見示
006_0637_b_12L然面目且驚且愕三復甞味雲之精
006_0637_b_13L盡在此矣後之學者觀此法語
006_0637_b_14L譬猶破暗之孤燈濯熱之淸風實爲私
006_0637_b_15L淑之指南也門人達湛釋璨等欲鋟於
006_0637_b_16L以壽其傳予愛雲之死而不朽
006_0637_b_17L喜掛名於其端於是乎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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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宣光丁巳三月初吉通菴居士
006_0637_b_19L城李玖溫甫

006_0637_b_20L{底}宣光戊午川寧鷲岩寺留板本(國立圖書舘
006_0637_b_21L所藏)
  1. 1)석옥 청공石屋淸珙(1272~1352) : 속성은 온溫씨.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 상숙常熟 출신. 고봉 원묘高峰原妙 문하에서 공부하다가 후에 급암 종신及菴宗信을 찾아가 화두를 받고 참구하여 득법하고 인가를 받았다. 백운 경한과 태고 보우 등이 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石屋珙禪師語錄』이 현존한다.
  2. 2)『東文選』 권116 「牧隱先生李文靖公行狀」, “정사년에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의 호를 더하였고 예문춘추관사를 통솔하였다. 임술년에 삼중대광판삼사사로 임명하였고, 계해년에 다시 한산군에 봉했으며, 갑자년에 한산부원군을 더하여 봉하였다. 을축년에 벽상삼한삼중대광 검교문하시중에 임명하였다.(丁巳, 加推忠保節同德贊化功臣之號, 領藝文春秋館事. 壬戌, 拜三重大匡判三司事. 癸亥, 復封韓山君. 甲子, 加封韓山府院君. 乙丑, 拜壁上三韓三重大匡檢校門下侍中.)”; 『牧隱集』 「年譜」 참조.
  3. 3)고부군古阜郡 : 전라북도 정읍시 일원과 부안군 일부를 포함한 지역의 옛 이름.
  4. 4)지공指空(?~1363) : 인도 마가다국 출신. 원元나라에서 활동했으며 고려에 와서 한동안 머물기도 하였다. 이때 나옹 혜근懶翁惠勤이 지공에게서 보살계를 받았다는 기록도 전한다.
  5. 5)백운白雲을 사고~바람은 팔았더니 : 백운은 백운 경한을, 맑은 바람 곧 청풍은 석옥 청공을 나타낸다. 백운을 법을 이은 제자로서 인정하고 자신은 세상을 뜬다는 암시이다.
  6. 6)병정동자丙丁童子 : 등화燈火를 담당하는 동자. 병·정은 오행五行에서 각각 양화陽火와 음화陰火에 속한다. 여기에서는 진리의 등불을 가지고 어둠을 밝힐 제자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백운 경한을 가리킨 것이다.
  7. 7)『石屋珙禪師語錄』에는 이 게송이 실려 있지 않다. 다만 권하에 다음과 같은 ≺辭世偈≻가 수록되어 있다. 『石屋珙禪師語錄』 권하 ≺辭世偈≻(X70, 675c17), “청산에 냄새나는 주검 묻지 말지니, 죽고 난 후에 땅 파서 묻을 필요 없느니라. 생각건대 내게는 삼매의 불도 없으니,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한 무더기 섶만 남으리.(靑山不著臰尸骸, 死了何須掘土埋. 顧我也無三昧火, 光前絶後一堆柴.)”
  1. 1){底}宣光戊午川寧鷲岩寺留板本(國立圖書舘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