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 金剛三昧經論卷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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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4_b_01L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금강삼매경론 상권(金剛三昧經論 ✽ 卷上)
신라국 사문 원효가 서술하다新羅國 沙門 元曉 述이 『금강삼매경』을 간략하게 네 부문으로 분별한다. 첫 번째는 경전의 대의를 서술하고, 두 번째는 경전의 종지를 판별하고, 세 번째는 경전의 제목을 해석하고, 네 번째는 경문의 뜻을 해석한다.
제1편 경전의 대의를 서술함(述大意者)첫 번째, 경전의 대의를 서술한다. 대저 일심一心의 근원은 유有와 무無를 초월하여 그 자체로 청정하고, 삼공三空1)의 바다는 진眞과 속俗을 융합하여 담연하다. 담연하게 진과 속을 융합했지만 하나(一)가 아니고, 그 자체로 청정해 가(邊)를 벗어나 있지만 중中2)이 아니다. 중이 아니지만 가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유가 아닌 법이면서도 무에 즉하여 머물지 않고, 무의 형상이 아니면서도 유에 즉하여 머물지 않는다.하나가 아니지만 진과 속을 융합하고 있기 때문에 진이 아닌 사事가 속俗이 된 적이 없고, 속이 아닌 이理가 진이 된 적도 없다. 진과 속을 융합했으면서도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진과 속의 자성(性)이 성립되지 못할 것이 없고, 염染과 정淨의 모습(相)이 구비되지 않음이 없다. 가를 벗어나 있으면서도 중이 아니기 때문에 유와 무의 법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 없고, 시是와 비非의 뜻이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이에 파破하지 않지만 파하지 못할 것이 없고, 세우지(立) 않지만 세우지 못할 것이 없다. 그래서 도리가 없는(無理) 지극한 도리(至理)이고, 그렇지 않으면서(不然) 바로 그러하다(大然)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금강삼매경』의 대의이다.진실로 그렇지 않으면서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설명하는 주체인 언설(語)은 핵심(環中)3)에 묘하게 계합되어 있고, 도리가 없는 지극한 도리이기 때문에 설명되는 객체인 종지(宗)는 방외方外를 멀리 벗어나 있다. 파하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에 ‘금강삼매金剛三昧’라 하고, 세우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에 ‘섭대승경攝大乘經’이라 하며, 일체의 의義와 종宗이 ‘금강삼매’와 ‘섭대승경’을 벗어나지 않는 까닭에 또한 ‘무량의종無量義宗’이라고도 한다. 이에 이들 가운데 하나를 제목으로 지목하여 첫머리에 두었으므로 -
001_0604_b_01L[金剛三昧經論]
001_0604_b_02L1)金剛三昧經論 ✽ 卷上
001_0604_b_03L
001_0604_b_04L新羅國沙門。元曉述
001_0604_b_05L此經略開四門分別。初述大意。次
001_0604_b_06L辨經宗。三釋題名。四消文義。
001_0604_b_07L第一述大意者夫一心之源。離有無
001_0604_b_08L而獨淨。三空之海。融眞俗而湛然。
001_0604_b_09L湛然。融二而不一。獨淨。離邊而非
001_0604_b_10L中。非中而離邊。故不有之法不卽
001_0604_b_11L住無。不無之相不卽住有。不一而
001_0604_b_12L融二。故非眞之事未始爲俗。非俗
001_0604_b_13L之理未始爲眞也。融二而不一。故
001_0604_b_14L眞俗之性無所不立。染淨之相莫
001_0604_b_15L不備焉。離邊而非中。故有無之法
001_0604_b_16L無所不作。是非之義莫不周焉。爾
001_0604_b_17L乃無破而無不破。無立而無不立。可
001_0604_b_18L謂無理之至理。不然之大然矣。是謂
001_0604_b_19L斯經之大意也。良由不然之大然。故
001_0604_b_20L能說之語妙契環中。無理之至理。
001_0604_b_21L故所詮之宗超出方外。無所不破
001_0604_b_22L故名金剛三昧。無所不立故名攝大
001_0604_b_23L乘經。一切義宗無出是二。是故亦
001_0604_b_24L名無量義宗。且擧一目以題其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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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4_c_01L『금강삼매경』이라 한 것이다.
제2편 경전의 종지를 판별함(辨經宗者)두 번째, 경전의 종지를 판별한다. 『금강삼매경』의 종宗과 요要는 각각 풀어 주는(開) 측면이 있고 묶어 주는(合) 측면이 있다. 묶어 주는 측면으로 말하면 일미관행一味觀行이 핵심(要)이고, 풀어 주는 측면으로 설명하면 십중법문十重法門이 근본(宗)이다.
제1장 일미관행(合論)관행이라 말한 것에서 관觀은 공간적으로 논한 것으로 경境과 지智에 통하고, 행行은 시간적으로 바라본 것으로 그 인因과 과果에 미친다.
1. 행行1) 과果과果는 오법五法4)의 원만함을 말한다.
2) 인因인因은 육행六行5)의 완비를 말한다.
2. 관觀1) 지智지智는 본각本覺과 시각始覺, 곧 두 가지 각이다.
2) 경境경境은 곧 진眞과 속俗의 분별이 사라진(雙泯) 것이다.
진과 속의 분별이 없을 뿐이지 소멸된 것이 아니고, 본각과 시각이면서도 집착의 발생이 없다(無生). 집착의 발생이 없는 행은 그대로 분별상이 없음(無相)에 계합되고, 분별상이 없는 법은 순조롭게 본각의 터득(本利)을 성취한다. 터득(利)은 이미 터득된 본각으로서 새롭게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부동의 확실한 자리(實際)이다. 그 자리는 이미 확실한 자리로서 자성(性)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진실한 자리(眞際)도 역시 공空이다. 제불여래도 그곳에 들어 있고, 일체보살도 그 속으로 따라서 들어간다. 이와 같은 경우를 여래장如來藏에 들어간다고 하니, 이것이 『금강삼매경』 여섯 품6)의 대의이다.
이 관문에서는 처음의 신해信解로부터 (여섯째) 등각等覺에 이르기까지 육행을 세운다. 육행이 원만해질 때 구식九識7)으로 전환되고 현현하니 무구식無垢識(眞如)을 현현시켜 청정법계로 삼고, 그 밖의 팔식八識을 전환시켜 사지四智8)를 성취하니 오법五法이 이미 원만해지므로 삼신三身9)이 갖추어진다. 이와 같이 인과 과는 경과 지를 벗어나지 않으며, 경과 지는 둘이 아니라 오직 일미一味일 뿐이다.이와 같은 일미관행이야말로 『금강삼매경』의 종지이다. 그러므로 『금강삼매경』에는 대승의 모든 법상法相이 포함되지 않음이 없고, 무량한 뜻(義)과 근본(宗)이 들어 있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금강삼매’라는 명칭이 허황하지 않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일미관행에 대하여 묶어 주는 측면에서 논하여 간략하게 서술하면 이와 같다.
제2장 십중법문(開說)이제 다음으로 풀어 주는 측면에서 말하면 십문十門이 된다. 그 종지는 이른바 일문으로부터 증가하여 -
001_0604_c_01L故言金剛三昧經也。
001_0604_c_02L第二辨經宗者此經宗要。有開有合。
001_0604_c_03L合而言之。一味觀行爲要。開而說之。
001_0604_c_04L十重法門爲宗。[合論]言觀行者。觀是橫論。
001_0604_c_05L通於境智。行是竪望。亘其因果。[行]果
001_0604_c_06L謂五法圓滿。因謂六行備足。[觀]智卽本
001_0604_c_07L始兩覺。境卽眞俗雙泯。雙泯而不滅。
001_0604_c_08L兩覺而無生。無生之行。冥會無相。
001_0604_c_09L無相之法。順成本利。利旣是本利而
001_0604_c_10L無得故。不動實際。際旣是實際而離
001_0604_c_11L性故。眞際亦空。諸佛如來於焉而
001_0604_c_12L藏。一切菩薩於中隨入。如是名爲
001_0604_c_13L入如來藏。是爲六品之大意也。於此
001_0604_c_14L觀門。從初信解乃至等覺。立爲六
001_0604_c_15L行。六行滿時。九識轉顯。顯無垢識
001_0604_c_16L爲淨法界。轉餘八識而成四智。五
001_0604_c_17L法旣圓三身斯備。如是因果不離
001_0604_c_18L境智。境智無二。唯是一味。如是一味
001_0604_c_19L觀行以爲此經宗也。所以大乘法相
001_0604_c_20L無所不攝。無量義宗莫不入之。名
001_0604_c_21L不虛稱。斯之謂歟。合論一觀。略述如
001_0604_c_22L之。開說十門爲其宗者。謂從一門
001_0604_c_23L{底}朝鮮佛敎會本(劉敬鍾校訂本) {甲}高麗大藏
001_0604_c_24L經。補遺板庭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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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5_a_01L십문에까지 이른다.
1. 일문一門일문은 무엇인가. 일심一心 가운데서 일념一念(正念)이 작동하여 일실一實10)을 따르고 일행一行11)을 닦으며 일승一乘(대승의 가르침)에 들어가 일도一道(一實諦에 이르는 길)에 머물러서 일각一覺(一本覺)을 써서 일미一味12)를 깨치는 것이다.
2. 이문二門이문은 무엇인가. 이안二岸에 머물지 않아 이중二衆을 떠나고, 이아二我(人我와 法我)에 집착하지 않아 이변二邊(有邊과 無邊)을 여의며, 이공二空(人空과 法空)에 통달하여 이승二乘(聲聞乘과 緣覺乘)에 떨어지지 않고, 이제二諦(眞諦와 俗諦)를 두루 갖추어 이입二入(理入과 行入)을 어기지 않는 것이다.
3. 삼문三門삼문은 무엇인가. 삼신불(三佛)에 스스로 귀의하여 삼계三戒13)를 받아 삼대제三大諦14)를 따라서 삼해탈三解脫15)을 얻고 등각의 삼지三地16)와 묘각의 삼신17)이 삼공취三空聚18)에 들어가 삼유심三有心19)을 소멸하는 것이다.
4. 사문四門사문은 무엇인가. 사정근四正勤20)을 닦아 사신족四神足21)에 들어가서 사대연四大緣의 힘22)으로 (행行·주住·좌坐·와臥의) 사위의四威儀에 항상 이익을 얻어 사선四禪23)을 초월하여 멀리 사방四謗24)을 여의고 사홍지四弘地25) 가운데서 사지四智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5. 오문五門오문은 무엇인가. 오음五陰26)인 중생에게는 오십악五十惡27)이 갖추어져 있다. 따라서 오근五根28)을 심고 오력五力29)을 길러 오공해五空海30)를 건너고 오등위五等位31)를 넘어서서 오정법五淨法32)을 얻어 오도의 중생(五道生)33)을 건지는 것 등이다.
6. 육문六門그리고 육문·칠문·팔문·구문 등은 무엇인가. 육도六度34)를 갖추어 육입六入35)을 영원히 제거한다.
7. 칠문七門칠각분七覺分36)을 닦아 칠의과七義科37)를 소멸한다.
8. 팔문八門팔식八識38)의 바다를 맑힌다.
9. 구문九門구식九識39)의 흐름이 청정해진다.
10. 십문十門이와 같이 해야 비로소 십신十信으로부터 십지十地에 이르기까지 온갖 수행이 구족되고 온갖 덕이 원만해진다.
이와 같은 십문의 모든 수행문이 바로 『금강삼매경』의 종지이다. 이것은 경문에 모두 수록되어 있으므로 해당 경문에서 설명하겠다. 그런데 이 뒤의 아홉 가지 수행문은 모두 일문에 포함되고, 일문에 아홉 가지 수행문이 있으니 일미관행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측면으로 보아도 하나에서 늘어나지 않고, 총합적인 측면으로 보아도 열에서 줄어들지 않으니, 부증불감不增不減이 『금강삼매경』의 근본(宗)과 핵심(要)이다.
제3편 경전의 제목을 해석함(釋題目者)세 번째, 경전의 제목을 해석한다. 이 경의 제목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섭대승경’이고, 둘째는 ‘금강삼매’이며, 셋째는 ‘무량의종’이다. -
001_0605_a_01L增至十門。一門云何。一心中一念
001_0605_a_02L動。順一實。修一行。入一乘。住一道。
001_0605_a_03L用一覺。覺一味。二門云何。不住二
001_0605_a_04L岸以遣二衆。不着二我。以離二邊。
001_0605_a_05L通達二空不墮二乘。俱融二諦不
001_0605_a_06L違二入。三門者。自歸三佛而受三
001_0605_a_07L戒。順三大諦得三解脫。等覺三地。
001_0605_a_08L妙覺三身。入三空聚。滅三有心。四
001_0605_a_09L門者。修四正勤。入四神足。四大緣
001_0605_a_10L力。四儀常利。超出四禪。遠離四謗。
001_0605_a_11L四弘地中四智流出。五門者。於五
001_0605_a_12L陰生具五十惡。故植五根而養五力。
001_0605_a_13L涉五空海䟦五等位。得五淨法。度
001_0605_a_14L五道生。如是等也。[六門]云何六七八九等
001_0605_a_15L門。具修六度。永除六入。[七門]行七覺分。
001_0605_a_16L滅七義科。[八門]八識海澄。[九門]九識流淨。[十門]始
001_0605_a_17L從十信乃至十地。百行備足。萬德
001_0605_a_18L圓滿。如是諸門。爲是經宗。皆在經
001_0605_a_19L文。文處當說。然此後九門。皆入一
001_0605_a_20L門。一門有九。不出一觀。所以開不
001_0605_a_21L增一。合不減十。不增不減爲其宗
001_0605_a_22L要也。
001_0605_a_23L第三釋題目者此經之目。有其三種。
001_0605_a_24L一名攝大乘經。二名金剛三昧。三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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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5_b_01L이 가운데 첫째와 셋째의 명칭에 대해서는 이하 해당하는 곳에서 해석하겠다.여기에서는 먼저 둘째에 해당하는 ‘금강삼매’라는 제목에 대하여 해석한다. 왜냐하면 ‘금강삼매’라는 명칭만 경전의 첫머리에 제목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금강삼매’라는 용어를 둘로 나누어 먼저 ‘금강’에 대하여 해석하고, 나중에 ‘삼매’에 대하여 해석한다.
제1장 금강‘금강’에도 두 가지의 경우가 있으니, 먼저 해석하고 뒤에 간별한다.
1. 금강을 해석함“금강”은 비유를 들어 지칭한 것인데, 견실하다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깨뜨리는 것(穿破)을 공능으로 삼는다. 마땅히 “금강삼매”도 또한 이와 같이 실제實際를 체성으로 삼고 깨뜨리는 것을 공능으로 삼는 줄 알아야 한다.
1) 실제를 체성으로 삼음“실제를 체성으로 삼는다.”는 것은 이치의 궁극적인 근원을 깨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경문에서는 “법을 깨치니 진실한 삼매였다네.”라고 하였다.
2) 깨뜨리는 것을 공능으로 삼음“깨뜨리는 것을 공능으로 삼는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모든 의심을 타파하는(破) 것이고, 둘째는 모든 선정을 꿰뚫는(穿) 것이다.
(1) 모든 의심을 타파함
“모든 의심을 타파한다.”는 것은 설법을 일으켜 의심을 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경문에서는 “의심과 후회를 영원히 단절한다.”고 하였다.
(2) 모든 선정을 꿰뚫음
“모든 선정을 꿰뚫는다.”는 것은 이 금강삼매가 그 밖의 모든 삼매로 하여금 다 각각의 작용을 얻게끔 한다는 것이다. 마치 보배구슬을 꿰뚫어 쓰임새가 있게 하는 것과 같다.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에서는 이에 대하여 “무엇을 금강삼매라 하는가.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타파할 수 있다.”40)고 하였다. 저 『대지도론』에서는 그것을 해석하여 “금강삼매는 비유하면 금강과 같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 없다. 이 삼매도 역시 그와 같아서 제법에 통달하지 못할 것이 없고, 모든 삼매로 하여금 각각 그 작용을 얻게끔 한다. 그것은 마치 자거·마노·유리를 오직 금강만이 꿰뚫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41)고 하였다.생각해 보면 『대품반야경』에서 말한 “모든 삼매를 타파한다.”에서 ‘타파한다(破)’는 곧 꿰뚫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대품반야경』의 타파한다는 말을 ‘뚫고 들어간다(穿入)’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모든 삼매가 다 자성이 없다는 것을 통달하고 나면 그 모든 삼매로 하여금 자체에 집착하는 것을 여의게끔 할 수가 있다. 그것을 말미암아 걸림없이 자재를 얻는다. 명칭에 대한 해석은 이것으로 마친다.
2. 금강을 간별함다음은 간별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1) 정定과 혜慧를 간별함먼저 정定과 혜慧를 간별한다.
문 금강반야와 금강삼매를 모두 금강이라 부르는데, 어떤 차별이 있는가?해 금강반야는 혜慧, 금강삼매는 정定이라는 차별이 있다. -
001_0605_b_01L無量義宗。初後二名。次門當釋。今
001_0605_b_02L且先釋中間一目。唯此一名在首題
001_0605_b_03L故。於中有二。先釋金剛。後釋三昧。
001_0605_b_04L[金剛]初中亦二。先釋後簡。[釋金剛]言金剛者。寄
001_0605_b_05L喩之稱。堅實爲軆。穿破爲功。金剛
001_0605_b_06L三昧。當知亦爾。實際爲軆。破穿爲
001_0605_b_07L能。實際爲軆者。證理窮源故。如下文
001_0605_b_08L言。證法眞實定故。破穿爲能者。有
001_0605_b_09L其二義。一破諸疑。二穿諸定。破諸
001_0605_b_10L疑者。起說斷疑故。如下文言。決定
001_0605_b_11L斷疑悔故。穿諸定者。此定能令諸
001_0605_b_12L餘三昧皆得有用。如穿寶珠。得有
001_0605_b_13L用故。如大品經言。云何名金剛三昧。
001_0605_b_14L住此三昧能破諸三昧。彼論釋云。
001_0605_b_15L金剛三昧者。譬如金剛無物不陷。
001_0605_b_16L此三昧亦如是。於諸法中無不通達。
001_0605_b_17L令諸三昧。皆得有用。如硨磲碼碯琉
001_0605_b_18L璃。唯金剛能穿入。案云。經言破諸
001_0605_b_19L三昧者。破之言穿。論中穿入。釋經
001_0605_b_20L破故。達諸三昧皆無自性。令彼三
001_0605_b_21L昧能離自着。由是無碍得自在故。
001_0605_b_22L釋名如是。[簡別金剛]次簡別者。於中有二。先
001_0605_b_23L簡定慧。問。金剛般若。金剛三昧。皆
001_0605_b_24L名金剛。有何差別。解云。彼慧此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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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5_c_01L또한 금강반야는 인因과 과果에 통하는데, 금강삼매는 그 가운데서 과지果地에 위치한다. 또한 반야로서의 금강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곧 그 체성은 견고하고 작용은 예리하며 형상은 넓은 부분과 좁은 부분이 있다. 그러나 삼매로서의 금강은 견고하고 예리하다는 뜻만 취한다. 이 점에서 서로 차별이 있다.
2) 다른 정定과 차이점을 간별함다음은 다른 정定과의 차이점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금강삼매金剛三昧이고, 둘째는 금강륜삼매金剛輪三昧이며, 셋째는 여금강삼매如金剛三昧이다. 『대품반야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떤 것이 금강륜삼매인가? 이 삼매에 머물면 다른 모든 삼매의 기능을 지니게 된다. 어떤 것이 여금강삼매인가?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을 관통하여 통달하면서도 그 통달한 것을 내보이지 않는다.42)
위의 경문에 대하여 『대지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문 세 가지 삼매에 어째서 다 금강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가?답 첫째는 금강이라 했고, 둘째는 금강륜이라 했으며, 셋째는 여금강이라 했다. 여금강삼매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제법을 관통하고 꿰뚫지만 그 꿰뚫는 것을 내보이지 않는다.”고 했고, 금강삼매에 대해서는 “모든 삼매를 통달한다.”고 했으며, 금강륜삼매에 대해서는 “모든 삼매륜을 지닌다.”고 했다. 이것은 모두 부처님께서 스스로 설한 뜻이다. 이에 대하여 논자들은 “여금강삼매는 일체번뇌의 속박을 남김없이 타파한다. 비유하면 마치 석제환인이 손에 금강을 들고서 아수라 군대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것은 곧 학인들의 말후심末後心이기도 하다. 이 말후심으로부터 점차 성문의 보리와 벽지불의 보리와 부처의 무상보리 등 세 가지의 보리를 터득한다. 논자들은 또 “금강삼매는 일체제법을 타파하고 무여열반에 들어가 다시는 중생의 업보(有)를 받지 않는다. 비유하면 진금강眞金剛으로 모든 번뇌의 산을 남김없이 파괴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논자들은 또 “금강륜삼매는 일체 모든 불법마저 타파해 막힘도 없고 걸림도 없다.”고 하였다.43)
생각해 보면 여기에서 “모든 불법마저 타파한다.”는 것은 마치 전륜성왕의 윤보輪寶가 모든 왕들을 쳐부수고 그들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는 것과 같다. -
001_0605_c_01L是爲差別。又金剛般若。通於因果。
001_0605_c_02L金剛三昧。位在果地。又般若金剛。
001_0605_c_03L具有三義。軆堅。用利。形狀寬狹。三
001_0605_c_04L昧金剛。但取堅利。如是差別。次別
001_0605_c_05L餘定。此有三類。一金剛三昧。二金
001_0605_c_06L剛輪三味。三如金剛三昧。大品經言。
001_0605_c_07L云何金剛輪三昧。住是三昧能持諸
001_0605_c_08L三昧分。云何如金剛三昧。住是三昧
001_0605_c_09L能貫達諸法亦不見達。彼論釋言。
001_0605_c_10L問曰。三種三昧何以皆言金剛。答曰。
001_0605_c_11L初言金剛。中言金剛輪。後言如金
001_0605_c_12L剛。如金剛三昧。佛言。能貫穿諸法
001_0605_c_13L亦不見是穿。金剛三昧能通達諸三
001_0605_c_14L昧。金剛輪三昧能持諸三昧輪。是
001_0605_c_15L皆佛自說義。論者言。如金剛三昧者。
001_0605_c_16L能破一切煩惱結使無有遺餘。譬如
001_0605_c_17L釋提桓因手執金剛。破阿修羅軍。
001_0605_c_18L卽是學人末後之心。從是心次第得
001_0605_c_19L三種菩提。聲聞。辟支佛。佛無上菩
001_0605_c_20L提。金剛三昧者。能破一切諸法入
001_0605_c_21L無餘涅槃更不受有。譬如眞金剛
001_0605_c_22L能破諸山令滅盡無餘。金剛輪者。
001_0605_c_23L能破一切諸佛 [1] 法無遮無碍。案云。
001_0605_c_24L此中破諸佛法者。猶如轉輪聖王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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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6_a_01L이런 까닭에 금강륜삼매는 위의 두 가지 삼매, 곧 여금강삼매 및 금강삼매와 다르다.
(문) 위의 두 가지 삼매, 곧 여금강삼매와 금강삼매는 무엇이 다른가?(답) 다섯 가지의 차별이 있다.첫째는 비유의 차별이다. 말하자면 전자는 금강으로 아수라의 군대를 파하고, 후자는 금강으로 번뇌의 산을 파한다.둘째는 법의 차별이다. 전자는 번뇌를 파하고, 후자는 제법을 파한다.셋째는 수행 계위의 차별이다. 전자는 유학위有學位의 경지이고, 후자는 무학위無學位의 경지이다.넷째는 명칭의 차별이다. 전자의 여금강삼매는 달리 금강유정金剛喩定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후자는 단지 금강삼매라고만 할 뿐 ‘여如’ 혹은 ‘유喩’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깨달음을 향한 과정의 삼매(因定)와 깨달음의 결과로 나타나는 삼매(果定)가 다르기 때문이다. 과정의 삼매는 유공용有功用(수행에 대한 상이 남아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결과의 삼매는 무공용無功用(수행 및 깨달음에 대한 상이 없는 무집착의 경지)으로 초월하고 또 초월하여 무위無爲에 이르기 때문이다. 또한 여금강은 금강에서 일부분 엇비슷한 뜻만 취하므로 단지 번뇌만 파하고 그 밖의 법은 파하지 못한다. 그러나 금강은 금강과 완전히 똑같은 날카로움을 드러내어 일체의 색물色物을 관파貫破하지 못할 것이 없다. 삼매의 작용도 그와 같아서 일체제법도 역시 파하지 못할 것이 없는 줄을 알아야 한다.다섯째는 교설의 차별이다. 말하자면 유학위의 여금강삼매는 『금강삼매본성청정부증불감경金剛三昧本性淸淨不增不減經』44)에서 설한 것이고, 무학위의 금강삼매는 이 『금강삼매경』에서 설한 것이다.지금 이 『금강삼매경』에서 부처님이 들어간 삼매(定)는 일체법을 파하여 집착할 바가 없으므로 금강삼매라 말한 것이다. 금강삼매는 육종석六種釋45) 가운데 지업석持業釋에 해당하는데, 비유를 들어 명칭한 점으로 보면 인근석隣近釋에 해당하며, 금강삼매라는 명칭으로 경전의 제목을 삼은 점에서는 의주석依住釋에 해당한다. 이것은 삼매라는 정定에 주안점을 둔 까닭이다.
제2장 삼매다음으로 두 번째 삼매의 명칭을 해석한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 해석하고 나중에 간별한다.
1. 삼매의 모든 명칭을 해석함옛 논사는 “저 삼매라는 명칭은 번역하면 정사正思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언급한 이 설명은 문맥의 뜻에 합치된다. -
001_0606_a_01L寶能破諸王無不伏故。是故與前
001_0606_a_02L二金剛別。前二金剛云何別者。有
001_0606_a_03L五差別。一者喩別。謂如金剛破軍。
001_0606_a_04L金剛破山故。二者法別。前破煩惱。
001_0606_a_05L後破諸法故。三者位別。前在學位。
001_0606_a_06L後在無學故。四者名別。前名如金剛
001_0606_a_07L三昧。餘處名金剛喩定。後者直名金
001_0606_a_08L剛三昧。除如及喩。所以然者。爲顯
001_0606_a_09L因果二定異故。因有功用。果無功用。
001_0606_a_10L損之又損之以至無爲故。又如金剛
001_0606_a_11L取其少分相似之義。但破煩惱不破
001_0606_a_12L餘波故。言金剛者。顯其全同金剛之
001_0606_a_13L利。一切色物無不貫破。三昧之用
001_0606_a_14L當知亦爾。一切諸法亦無不破故。
001_0606_a_15L五者敎別。謂有學位金剛三昧。則金
001_0606_a_16L剛三昧本性淸淨不增不減經中所
001_0606_a_17L說。其無學位金剛三昧。今此經中所
001_0606_a_18L說是也。今此經中佛所入定破一
001_0606_a_19L切法皆無所得。是故名爲金剛三昧。
001_0606_a_20L六種釋中是持業釋。取譬名者是隣
001_0606_a_21L近釋。卽以是名目此經者是依主釋。
001_0606_a_22L定爲主故。次第二釋三昧名者於中
001_0606_a_23L有二。先釋後簡。三昧之名。 略釋如是。古師說言。彼名三
001_0606_a_24L昧此云正思。今述此說當文義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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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6_b_01L말하자면 삼매(定)에 들어 있을 때는 반연하는 경계를 잘 생각하고 제대로 살피기(審正思察) 때문에 정사正思라고 한다. 『유가론瑜伽論』에서도 “삼마지란 말하자면 대상에 대하여 잘 살피고 제대로 관찰하는 심일경성心一境性46)이다.”47)라고 했기 때문이다.
문 정定이란 반드시 고요한 것으로 한 경계에 조용히 머무는 것인데, 어째서 잘 생각하고 제대로 살피는 것이라 말하는가? 그리고 생각하고 살피는 작용은 심사尋伺48)라고 해야 마땅한데, 어째서 정定을 생각하고 살피는 것이라고 설명하는가?답 만약 한 경계를 지키는 것만을 정定으로 간주한다면 혼침의 상태로 한 경계에 머무는 것도 반드시 삼매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제대로 생각하고 살피는 것을 심사라 한다면 사혜邪慧로 추구하는 것은 심사가 아니어야 할 것이다.그러므로 생각하고 살피는 것(思察)에도 두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모든 사邪와 정正을 의언意言으로 분별하는 것을 생각하고 살피는 것이라 말한다면 그것은 심사로서 분별이 되고 만다. 그러나 만약 반연의 경계를 바르게 살펴 분명하게 깨닫는 것만을 제대로 생각하고 살피는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삼매(定)의 작용이지 심사가 아니다. 삼매(定)는 분별과 무분별에 통하기 때문에 그 살핌의 바름으로써 심사와 간별한다.또한 하나의 경계에 머무는 것(住一境)에도 두 가지가 있다. 한 경계에 머물더라도 혼미하고 어두워 잘 살피지 못한다면 그것은 혼침이다. 그러나 만약 한 경계에 머물러 부침浮沈 없이 잘 생각하고 제대로 살핀다면 그것은 삼매(定)라 한다. 그러므로 생각하고 살피는 것을 저 혼침과 간별한다. 이런 까닭에 머물거나 옮기는 것만을 기준으로 삼매(定)와 산란(散)의 차별상을 간별해서는 안 되는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불보살의) 빠른 언변49)은 비록 속도는 빠를지라도 삼매(定)에 있기 때문이고, (중생들의) 더딘 생각은 비록 오랫동안 대상에 머물지라도 산란(散)하기 때문이다.지금 여기에서 금강삼매를 “제대로 생각하고 살피는 것”이라 하였지만, (사실 금강삼매에는) 정正과 부정不正도 없고 사思와 비사非思도 없다. 그런데도 “제대로 생각하고 살피는 것”이라 한 까닭은 다만 분별하는 사념邪念과 간별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또한 허공처럼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과도 다르다. 억지로 “제대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일컬었을 뿐이다. 삼매의 명칭을 대략 이와 같이 해석한다.
2. 삼매의 모든 명칭을 간별함다음으로 삼매의 모든 명칭을 간별한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
001_0606_b_01L謂在定時於所緣境審正思察故
001_0606_b_02L名正思。如瑜伽言三摩地者。謂於所
001_0606_b_03L緣審正觀察心一境性故。問。定應
001_0606_b_04L是靜。靜住一境。云何乃言審正思察。
001_0606_b_05L思察之用應是尋伺。云何說定爲思
001_0606_b_06L察耶。答。若守一境卽爲定者。惛沈
001_0606_b_07L住境應卽是定。若正思察是尋伺
001_0606_b_08L者。邪慧推求應非尋伺。當知思察
001_0606_b_09L有其二種。若通邪正意言分別名
001_0606_b_10L思察者。卽是尋伺直是分別。若唯
001_0606_b_11L審正明了緣境名正思察。正是定用
001_0606_b_12L而非尋伺。定通分別及無分別。故
001_0606_b_13L以審正簡彼尋伺。又住一境亦有
001_0606_b_14L二種。若住一境。惛迷闇昧不能審
001_0606_b_15L察卽是惛沈。若住一境不沈不浮
001_0606_b_16L審正思察是名爲定。故以思察別
001_0606_b_17L彼惛沈。是故當知不以住移簡別定
001_0606_b_18L散差別之相。何以故。捷疾之辯。雖
001_0606_b_19L速移轉而有定故。遲鈍之念。雖久
001_0606_b_20L住境而是散故。今此金剛三昧名
001_0606_b_21L爲正思察者。無正不正。亡思非思。
001_0606_b_22L但爲別於分別邪念。又不同於虛空
001_0606_b_23L無思。所以强號爲正思耳。三昧之名。
001_0606_b_24L略釋如是。次簡別者於中有二。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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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6_c_01L먼저 모든 명칭을 분별하고, 다음으로 통通과 국局을 간별한다.
1) 명칭을 분별함삼매(定)의 명칭은 다양하지만 대략 여덟 가지가 있다.
(1) 삼마희다三摩呬多(等引)
첫째는 삼마희다三摩呬多이니, 여기서는 등인等引이라고 번역한다. 혼침昏沈과 산란(掉擧)에 치우치는 것을 초월하기 때문에 평등하다(等)고 하고, 신통과 같은 모든 공덕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이끈다(引)고 한다. 또 이처럼 평등하게 이끌어서 후회가 없고 환희롭고 안락한 경지에 이르기 때문에 등인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욕계의 삼매(定)와는 다르다.
(2) 삼마지三摩地(等持)
둘째는 삼마지三摩地이니, 여기서는 등지等持라고 번역한다. 등等의 뜻은 앞의 삼마희다의 경우와 같다. 번뇌의 마음은 잘 제어하고 청정한 마음은 잘 유지하여 산란하지 않도록 하므로 등지等持라 한다. 또 삼매(定)와 지혜(慧)가 평등하여 서로 벗어나지 않으므로 등지等持라고 한다. 구역에서 삼마제三摩提라 한 것 또한 등지等持의 뜻이다.
(3) 삼마발제三摩鉢提(等至)
셋째는 삼마발제三摩鉢提이니, 여기서는 등지等至라고 번역한다. 평등하게 유지하는(等持) 동안 뛰어난 경지에 도달하므로 등지等至라 한다.
(4) 태연나駄演那(靜慮)
넷째는 태연나駄演那이니, 여기서는 정려靜慮라고 번역한다. 적정하게 사려하기 때문이고, 또 산란한 생각을 고요히 잠재우기 때문이다. 구역에서는 선나禪那라 하고 혹 지아나持阿那라고도 하였는데, 지역에 따른 다른 표현으로서 그 의미는 정려靜慮와 같다.
(5) 사마타奢摩他(止)
다섯째는 사마타奢摩他이니, 여기서는 지止라고 번역한다. 마음에 나타나는 분별경계를 그치도록 하므로 지止라 한다.
(6) 심일경성心一境性
여섯째는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마음으로 하여금 하나의 경계에 집중케 하는 성품이므로 심일경성이라 한다. 구역에서 일심一心이라 표현한 것은 이것을 축약한 것이다.
(7) 정定
일곱째는 정定이다. 반연의 대상을 잘 다스리므로 정定이라 한다.
(8) 정사正思
여덟째는 정사正思이다. 뜻은 위의 설명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떤 논사는 “삼매와 삼마제라는 명칭은 모두 등지等持로서 다른 명칭이 아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저 『금고경金鼓經』(『合部金光明經』)의 십종지十種地의 삼매 가운데 앞의 세 가지 지(三地)에서는 삼마제라고 하였고, 뒤의 일곱 가지 지(七地)에서는 삼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50) 이와 같이 두 가지 명칭이 만약 동일하게 등지等持라면 무슨 까닭에 앞의 세 가지 지와 뒤의 일곱 가지 지에서 다르게 설했겠는가.또한 이 두 가지 명칭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
001_0606_c_01L別諸名。後簡通局。定名不同。定名不同。略有
001_0606_c_02L八種。一名三摩呬多。此云等引。遠
001_0606_c_03L離惛沈掉擧之偏。故名爲等。引發神
001_0606_c_04L通等諸功德。故名爲引。又此等引
001_0606_c_05L無悔歡善安樂所引。故名等引。由此
001_0606_c_06L不同欲界定故。二名三摩地。此云等
001_0606_c_07L持。等義同前。能制持心令不馳散。
001_0606_c_08L故名等持。又定慧平等令不相離。
001_0606_c_09L故名等持。舊云三摩提。亦卽等持。
001_0606_c_10L三名三摩鉢提。此云等至。等持之中
001_0606_c_11L能至勝位。故名等至。四名駄演那。
001_0606_c_12L此云靜慮。寂靜思慮故。又能靜散慮
001_0606_c_13L故。舊云禪那。或云持阿那。方俗異
001_0606_c_14L語。同謂靜慮也。五名奢摩他。此譯
001_0606_c_15L云止。令心止境。故名爲止。六名心
001_0606_c_16L一境性。令心專一於境之性。故名心
001_0606_c_17L一境性。舊云一心。是略故也。七名
001_0606_c_18L爲定。審定所緣。故名爲定。八名正
001_0606_c_19L思。義如前說。有師說言。三昧之名
001_0606_c_20L及三摩提。只是等持非是異名。是
001_0606_c_21L說不然。所以者何。如金鼓經十種定
001_0606_c_22L中。前三地中名三摩提。後七地中名
001_0606_c_23L爲三昧。如是二名若同等持。何由
001_0606_c_24L改名前後異說。又此二名何由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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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7_a_01L만약 지역적인 방언 때문에 다른 것이라면 한 곳에서 두 가지 명칭을 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경전을 전승한 사람의 시대적 차이 때문에 다른 것이라면 동일한 경본에 이 두 가지 명칭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 삼마제와 삼마지의 경우에는 경전을 전승한 시대가 전후로 다를 뿐이어서 분명히 동일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삼매의 명칭은 삼마제와 동일한 책에 들어 있으니 어째서 다르지 않겠는가. 이런 까닭에 삼매와 삼마제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분명히 다르다.
2) 통과 국으로 간별함둘째, 다음으로 삼매의 통通과 국局을 설명하면 대략 네 가지 예가 있다.
(1) 정定과 등지等持
첫째는 정定과 등지等持이다. 이 두 가지 명칭의 범주가 제일 넓으니,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에 두루 통하고, 또 삼계에도 통하며, 욕계의 산란심에도 통한다. 왜냐하면 여섯 가지 심소心所51)와 별경別境의 다섯 가지 심소52) 가운데 삼마지가 있는데, 그것 또한 정定이라 하기 때문이다.
(2) 심일경성心一境性과 삼매三昧
둘째는 심일경성心一境性과 삼매三昧의 명칭이다. 이 두 가지의 범주가 두 번째로 넓으니, 비록 욕계에는 통하지만 오로지 산란한 마음에는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반주삼매般舟三昧53)나 욕계에 결부된 아홉 가지 심주心住54)의 심일경성 역시 욕계의 방편심에 통하기 때문이다.
(3) 삼마희다三摩呬多와 정려靜慮
셋째는 삼마희다三摩呬多와 정려靜慮이다. 이 두 가지 명칭은 범주가 좁다. 욕계의 마음에는 전혀 통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오직 경안輕安(몸과 마음이 가뿐한 경지)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에만 그 명칭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4) 삼마발제三摩跋提와 사마타奢摩他
넷째는 삼마발제三摩跋提와 사마타奢摩他이다. 이 두 가지의 범주가 가장 좁으니, 선정의 경지 안에서 다시 간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타는 네 가지 혜행慧行55) 가운데의 심일경성에는 통하지 못하고, 삼마발제는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의 세 가지 삼마지에 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삼매에 대한 여덟 가지 명칭의 넓고 좁음은 이와 같이 대략 서술된다.56) 이로써 셋째의 경전의 제목에 대한 해석을 마친다.
제4편 경문의 뜻을 해석함논 『금강삼매경』의 처음 「서품」57) 이하는 본문에 해당하는데, 네 번째로 경문을 분과하고 뜻을 해석한다.경전의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서분序分이다. -
001_0607_a_01L同。若由方俗異故不同者。不應一處
001_0607_a_02L俱說二名。若由傳者前後故異者。不
001_0607_a_03L應一本有此二名。如三摩提及三摩
001_0607_a_04L地。此由前後。傳者不同。故其是同
001_0607_a_05L灼然可見。三昧之名與三摩提同
001_0607_a_06L在一本。何由不異。是故當知如前說
001_0607_a_07L也。第二明通局者。略作四例。一者。
001_0607_a_08L定與等持。二名最寬。通漏無漏。亦
001_0607_a_09L通三界。及通欲界散亂心中。以六位
001_0607_a_10L心所別境五中有三摩地。亦名定故。
001_0607_a_11L二者。心一境性及三昧名。此二次
001_0607_a_12L寬。雖通欲界。不通一向散亂心中。
001_0607_a_13L以般舟三昧或欲界繫九種心住心
001_0607_a_14L一境性。亦通欲界方便心故。三者。
001_0607_a_15L三摩呬多及靜慮名。此二是狹。全
001_0607_a_16L不通於欲界心故。唯取輕安所含潤
001_0607_a_17L故。四者。三摩䟦提及奢摩他。此二
001_0607_a_18L最狹。於定地內有簡別故。以奢摩他
001_0607_a_19L不通四種慧行之中心一境性。三摩
001_0607_a_20L䟦提不通於空無相無願三三摩
001_0607_a_21L地故。八名寬狹。粗述如是。第三釋
001_0607_a_22L題名訖。
001_0607_a_23L[科文解釋]1)經序品第一。 [1]
001_0607_a_24L自下第四科文解釋。文有三分。一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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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7_b_01L둘째는 「제2 무상법품第二無相法品」 이하 여섯 개의 품58)과 몇몇 경문으로서 곧 정설분正說分이다. 셋째는 「제8 총지품第八總持品」에 들어가서 “그때 여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이하의 두 쪽 분량으로 유통분流通分이다.59)
제1장 서분序分서분에는 두 가지 서序가 들어 있다. 첫째는 통서通序이고, 둘째는 별서別序이다.60)
1. 통서通序경 다음과 같이 저는 들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대성의 기사굴산에서 대비구중 일만 명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모두 아라한도를 터득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사리불·대목건련·수보리 등 아라한이었다. 또한 보살마하살 이천 명과 함께 계셨다. 그들의 이름은 해탈보살·심왕보살·무주보살 등의 보살이었다. 또한 장자 팔만 명과 함께 계셨다. 그들의 이름은 범행장자·대범행장자·수제장자 등의 장자였다. 또한 천룡·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인비인 등 육십만억이 있었다.
논 통서通序에는 육사六事61)가 갖추어져 있다. 이 육사 가운데 앞의 세 가지는 부처님으로부터 친히 전승했음을 설명하는 것이고, 뒤의 세 가지는 대사大師62)의 설법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앞의 세 가지 가운데 첫째는 여시如是(信成就)이고, 둘째는 아문我聞(聞成就)이며, 셋째는 일시一時(時成就)이다. 뒤의 세 가지는 무엇인가. 첫째는 교주敎主(主成就로서 부처님)이고, 둘째는 주처住處(處成就로서 왕사대성의 기사굴산)이며, 셋째는 도중徒衆(衆成就로서 성문·보살·장자·팔부신중 등)이다. 이 셋째의 도중徒衆에도 차례로 네 부류의 무리(衆)가 있다. 곧 첫째는 성문중이고, 둘째는 보살중이며, 셋째는 장자중이고, 넷째는 잡류중이다.63)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일반적인 설명과 같다.
2. 별서別序경 그때 존자께서 대중에 둘러싸여 모든 대중에게 대승경전을 설하였다. 그 경전의 명칭은 일미一味·진실眞實·무상無相·무생無生·결정決定·실제實際·본각本覺·이행利行이었다. -
001_0607_b_01L序分。二者。第二品下六品餘文。是
001_0607_b_02L正說分。三者。入摠持品。爾時如來
001_0607_b_03L而告衆言已下二紙許文。是流通分。
001_0607_b_04L序分之內。有二種序。謂通與別。
001_0607_b_05L통서通序2)如是我聞。一時佛在王舍大城耆闍
001_0607_b_06L崛山中。與大比丘衆一萬人俱。皆得阿
001_0607_b_07L羅漢道。其名曰。舍利弗。大目犍連。須
001_0607_b_08L菩提。如是衆等阿羅漢。復有菩薩摩訶
001_0607_b_09L薩二千人俱。其名曰。解脫菩薩。心王
001_0607_b_10L菩薩。無住菩薩。如是等菩薩。復有長
001_0607_b_11L者八萬人俱。其名曰。梵行長者。大梵
001_0607_b_12L行長者。樹提長者。如是等長者。復有
001_0607_b_13L天。龍。夜叉。乾闥婆。阿脩羅。迦樓羅。
001_0607_b_14L緊那羅。摩睺羅伽。人非人等。六十萬
001_0607_b_15L億。 [2]
001_0607_b_16L通序之中卽有六事。前三明親承
001_0607_b_17L之傳。後三證大師之說。言前三者。
001_0607_b_18L一如是。二我聞。三一時。後三是何。
001_0607_b_19L一敎主。二住處。三徒衆。徒衆之內
001_0607_b_20L序四類衆。一聲聞衆。二菩薩衆。三
001_0607_b_21L長者衆。四雜類衆。於中委悉。如常
001_0607_b_22L所說。
001_0607_b_23L[別序]3)爾 [3] 時。尊者一本作
世尊大衆四
衆 [2] 圍繞。爲諸大
001_0607_b_24L衆說大乘經。名一味。眞實。無相。無生。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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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7_c_01L만약 이 경전을 듣고 내지 하나의 사구게만이라도 받아(受) 지닌다(持)면 그 사람은 곧 부처님 지혜의 경지(佛智地)에 들어가서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일체중생의 대선지식이 될 것이다.
논 이하는 별서이다. 여기에 네 부분이 있다. 첫째는 위의를 드러낸 부분(威儀分)이고, 둘째는 경전을 설하는 부분(說經分)이며, 셋째는 선정에 드는 부분(入定分)이고, 넷째는 중송重頌으로 설법을 드러내는 부분(重頌分)이다.
1) 위의를 드러내는 부분(威儀分)첫째, 위의를 드러낸 부분은 경문의 “그때 존자께서 대중에 둘러싸여”에 해당한다.
2) 경전을 설하는 부분(說經分)둘째, 경전을 설하는 부분은 경문의 “모든 대중에게 대승경전을 설하였다.”에 해당한다.
이 경문의 형세는 『법화경』의 서분과 비슷하다. 『법화경』에서 “그때 세존께서 사부대중에 둘러싸여 『무량의경』이라는 대승경전을 설하셨다.”64)고 하였다. 저 『법화경론』에서는 『무량의경』이라는 경명을 『법화경』의 다른 제목이라고 판별하였다.65) 곧 이것에 대하여 천친天親은 정설분正說分 이전의 설명으로 보았기 때문에 서분으로 간주한 것이다.66)그러나 지금 이 경문의 형세를 보면, 모두 경전의 서序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에 의거하면 분명히 이것은 별도의 경전이다. 앞서 일미一味 등의 경을 자세히 설하고 나서 잠시 입정入定하였다가 출정出定한 뒤 『금강삼매경』을 설한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경전의 종지를 설한 후에 그 경명을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일미·진실·무상·무생·결정·실제·본각·이행의 명칭들은 『금강삼매경』에 앞서 자세히 설하신 경의 제목임을 알아야 한다.67)이와 같이 두 경전68)은 대의는 비록 같을지라도 경문의 모습은 다르다. 전자는 자세하게 설한 법문으로 당시에 이익을 준 것이고, 후자는 간략하게 요약한 법문으로 말법세상末法世上에 이익을 주려는 것이다. 따라서 앞에서 자세히 설하신 것이 경을 요약해 다시 설하게 된 연유가 된다.이 경전을 설하는 부분(經說分)의 경문도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
001_0607_c_01L定。實際。本覺。利行。若聞是經乃至受持
001_0607_c_02L一四句偈。是人卽爲入佛智地。能以
001_0607_c_03L方便敎化衆生。爲一切生一本作
衆生 [3] 作大
001_0607_c_04L知識。
001_0607_c_05L4)此 [4] 下第二別序卽有四分。一威儀
001_0607_c_06L分。二說經分。三入定分。四重頌分。
001_0607_c_07L威儀分者。如經爾時尊者大衆圍繞
001_0607_c_08L故。說經分者。如經爲諸大衆說大乘
001_0607_c_09L經等故。此經文勢似法華序。如彼
001_0607_c_10L文言。爾時世尊四衆圍繞說大乘經
001_0607_c_11L名無量義。如彼論中判此經名。卽
001_0607_c_12L爲法華經之異目。彼意以爲在前說
001_0607_c_13L故名爲序分。今看此經文勢皆是
001_0607_c_14L經家序辭。以是准之應是別經。在
001_0607_c_15L前廣說。說已入定。從定起已。方說
001_0607_c_16L金剛三昧經也。說經宗後乃說經名。
001_0607_c_17L當知一味眞實等名。是前所說廣經
001_0607_c_18L之目。如是二經大意雖同。文相卽異。
001_0607_c_19L前所說者。廣說法門爲益當時。後
001_0607_c_20L所說者。略攝法門。爲利末世。是故
001_0607_c_21L在前廣說。以爲略經緣由。此說經分
001_0607_c_22L「經序品第一」無{甲}。「如是我聞…六十萬億」
001_0607_c_23L百四十一字無{甲}。經支上每有「經曰」{甲}。
001_0607_c_24L論文上每有「論曰」{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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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8_a_01L먼저 경전의 명칭을 서술하고, 나중에 경전의 공덕을 찬탄한다. “만약 이 경전을 듣고 내지……”69)가 경전의 공덕을 찬탄하는 부분이다.
3) 선정에 드는 부분(入定分)경 부처님께서는 이 경전을 설하시고 나서 결가부좌하여 곧 금강삼매에 들어가니 몸과 마음이 부동하였다.
논 이 부분은 셋째, 선정에 드는 부분이다. 경전을 설하기 전에 먼저 반드시 입정하는 것은 오직 적정자寂靜者만이 법을 깨치고 법을 설할 수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또한 성현의 침묵과 성현의 설법은 수시로 작용하여 서로 무관하지 않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4) 중송重頌으로 설법을 드러내는 부분(重頌分)이 부분은 넷째인 중송으로 설법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전에 설한 일미·진실·무상·무생·결정·실제·본각·이행 등의 경이 나중에 설하는 『금강삼매경』의 대의와 다르지 않음을 드러내기 위하여 게송으로 이전에 자세하게 설한 경전을 요약한 부분이다. 이로써 간략하게 설하는 경70)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중송의 경문에는 두 부분이 있다. 첫째는 중송의 발기에 대한 설명이고, 둘째는 중송의 내용이다.
(1) 중송의 발기에 대하여 설명함
경 그때 대중 가운데 이름이 아가타라는 한 비구가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71)로 경전의 뜻을 펴려고 게송을 설하여 말씀드렸다.
논 이는 경문의 서序로서 뒤의 중송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아가타”는 번역하면 없앤다(無去) 혹은 소멸시킨다(滅去)는 말인데, 약藥의 명칭이다. 모든 병을 다 없애 주기 때문에 무거無去라고 한다. 아가타보살 역시 중생의 모든 번뇌와 병을 치료하기 때문에 약의 이름으로 그 명칭을 삼았다.
(2) 중송의 내용
여덟 게송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의 일곱 게송은 설하신 경에 대해 읊은 것이고, 마지막 한 게송은 삼매에 들어가신 것에 대해 읊은 것이다.
① 설한 경에 대하여 읊음
일곱 게송은 또 둘로 나뉜다. 앞의 세 게송은 총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고, 뒤의 네 게송은 개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 총론적으로 설명함
경
大慈滿足尊 대자대비를 만족한 세존께서는
智慧通無碍 지혜에도 통달하여 걸림이 없네
廣度衆生故 널리 중생을 제도하려는 까닭에
說於一諦義 일실제의 도리를 설해 주셨다네
皆以一味道 모든 도리는 오로지 일미일 뿐으로
終不以小乘 끝끝내 소승의 도리가 아니라네
所說義味處 말씀하신 평등과 일미의 도리는
皆悉離不實 모두 다 진실 아닌 것이 없다네
入諸佛智地 일체제불이 터득한 지혜 경계인
-
001_0608_a_01L文相有二。先序經名。後歎經德。若
001_0608_a_02L聞已下。是第二分。
001_0608_a_03L[入定分]佛說此經已。結跏趺坐。卽入金剛三昧。
001_0608_a_04L身心不動。
001_0608_a_05L是第三入定分。所以欲說經前先須
001_0608_a_06L入定者。爲顯唯寂靜者。於法能覺能
001_0608_a_07L說故。又復爲顯賢聖默然。賢聖說法。
001_0608_a_08L隨時而用。不相離故。
001_0608_a_09L爾時。衆中有一比丘。名阿伽陁。從座
001_0608_a_10L而起。合掌胡跪。欲宣此義。而說偈言。
001_0608_a_11L是第四重頌分。爲顯前說一味之經
001_0608_a_12L與後所說大意不殊。故以略偈頌前
001_0608_a_13L廣經。因此發起後略說經故。文卽
001_0608_a_14L有二。先序後頌。是經家序以發後頌。
001_0608_a_15L阿伽陀者。此云無去。或言滅去。此
001_0608_a_16L是藥名。能令諸病皆悉滅盡故名
001_0608_a_17L無去。此菩薩亦如是。能治衆生諸
001_0608_a_18L煩惱病故。以藥名爲其目也。八行頌
001_0608_a_19L中卽有二分。前七頌。頌說經。後一
001_0608_a_20L頌。頌入定。初中亦二。三頌摠明。四
001_0608_a_21L頌別顯。
001_0608_a_22L大慈滿足尊。智慧通無碍。廣度衆生故。
001_0608_a_23L說於一諦義。皆以一味道。終不以小乘。
001_0608_a_24L所說義味處。皆悉離不實。入諸佛 [4] 智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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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8_b_01L決定眞實際 궁극의 제일 실제에 들어갔으니
聞者皆出世 그 법을 듣는 자 모두 출세하고
無有不解脫 해탈 얻지 못한 자 아무도 없네72)
논 총론적으로 설명한 세 게송에 네 가지 뜻이 있다.
가) 능설能說의 덕을 찬탄함
첫째, “대자대비를 만족한 세존께서는지혜에도 통달하여 걸림이 없네.”라는 두 구는 능설能說의 덕을 찬탄하였다.
나) 능전能詮의 교를 찬탄함
둘째, “널리 중생을 제도하려는 까닭에 일실제의 도리를 설해 주셨다네. 모든 도리는 오로지 일미일 뿐으로 끝끝내 소승의 도리가 아니라네.”라는 게송은 능전能詮의 교를 찬탄하였다.
다) 소전所詮의 뜻을 찬탄함
셋째, “말씀하신 평등과 일미의 도리는 모두 다 진실 아닌 것이 없다네. 일체제불이 터득한 지혜 경계인 궁극의 제일 실제에 들어갔으니”라는 게송은 소전所詮의 뜻을 찬탄하였다.
라) 설교에 탁월한 이익이 있음을 찬탄함
넷째, “그 법을 듣는 자 모두 출세하고 해탈 얻지 못한 자 아무도 없네.”의 두 구는 설교에 탁월한 이익이 있음을 찬탄하였다.
둘째에서 말한 “일실제의 도리”란 일심이다. 일심법에 두 종류의 문이 있다. 두 가지 문이 의거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진실일 뿐이므로 일실제라고 한다. “일미의 도리”도 오직 일승일 뿐이다. 그 밖의 내용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개별적으로 드러냄
이하의 네 게송은 개별적으로 문답을 찬탄한 것이다.
가) 질문이 넓고 깊음을 찬탄함
경
無量諸菩薩 한량이 없는 모든 보살마하살도
皆悉度衆生 그처럼 모두 중생을 제도하려고
爲衆廣深問 중생 위해 넓고 심오한 질문 하여
知法寂滅相 제법의 적멸한 모습을 알려 주어
入於決定處 궁극적인 도리에 들도록 하였네
논 이 다섯 구는 넓고 깊은 질문으로 적멸을 알려 주어 실제에 들도록 한 것을 찬탄하였다.
나) 부처님 답변에 탁월한 이익이 있음을 찬탄함
경
如來智方便 여래가 사용하는 지혜와 방편은
當爲入實說 마땅히 실제에 드는 설법이라네
隨順皆一乘 그러므로 모두 일승법만 수순하여
無有諸雜味 그 밖의 뒤섞인 맛 전혀 없다네
猶如一雨潤 같은 구름에서 뿌리는 비이건만
衆草皆悉榮 갖가지 초목이 제각각 무성하네
隨其性各異 모든 성품마다 제각기 다르지만
一味之法潤 일미의 법으로 똑같이 적셔 주어
普充於一切 빠짐없이 일체를 덮어 주는 것이
如彼一雨潤 마찬가지로 똑같은 비 맞았건만
皆長菩提芽 죄다 보리의 새싹을 길러 준다네
논 이 부분은 두 번째로 부처님 답변에 탁월한 이익이 있음을 찬탄하였다. 여기에 세 부분이 있다. 첫째는 법法이고, 둘째는 비유(喩)이며, 셋째는 합合이다.순서대로 말하면 “여래가 사용하는 지혜와 방편은 마땅히 실제에 드는 설법이라네. 그러므로 모두 일승법만 수순하여 그 밖의 뒤섞인 맛 전혀 없다네.”의 네 구는 법이고, “같은 구름에서 뿌리는 비이건만 갖가지 초목이 제각각 무성하네.”의 두 구는 비유이고, “모든 성품마다 제각기 다르지만 일미의 법으로 똑같이 적셔 주어 빠짐없이 일체를 덮어 주는 것이 마찬가지로 똑같은 비 맞았건만 죄다 보리의 새싹을 길러 준다네.”의 다섯 구는 합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② 삼매에 들어감을 읊음
경
入於金剛味 금강과 같은 일미법에 들어가서
證法眞實定 법을 깨치니 진실한 삼매였다네
決定斷疑悔 의심과 미련을 영원히 단절하여
一法之印成 일법의 도장을 완전히 성취했네
논 이는 둘째73) 삼매에 들어가신 것에 대해 읊은 것이다.
가. 앞에서 선정에 듦을 그대로 읊음
앞의 두 구 “금강과 같은 일미법에 들어가서 법을 깨치니 진실한 삼매였다네.”는 앞서 선정에 들어가신 것을 곧장 읊은 것이다.
나. 이후에 시작될 설법을 미리 읊음
뒤의 두 구 “의심과 미련을 영원히 단절하여 일법의 도장을 완전히 성취했네.”는 이후에 시작될 설법에 대해 미리 읊은 것이다.74) 이후에 설해질 가르침에는 두 가지의 탁월한 효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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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8_b_01L決定眞實際。聞者皆出世。無有不解
001_0608_b_02L脫。
001_0608_b_03L摠明三頌。卽有四意。一者二句歎
001_0608_b_04L能說德。二者一頌歎能詮敎。三者一
001_0608_b_05L頌歎所詮義。四者二句歎敎勝利。
001_0608_b_06L第二中言一諦義者。所謂一心。依一
001_0608_b_07L心法有二種門。二門所依唯是一
001_0608_b_08L實故名一諦。一味道者唯一乘故。
001_0608_b_09L餘文可知。
001_0608_b_10L無量諸菩薩。皆悉度衆生。爲衆廣深問。
001_0608_b_11L知法寂滅相。入於決定處。
001_0608_b_12L此下四頌別歎間答。此五句者。歎
001_0608_b_13L問廣深。令知寂滅入實際故。
001_0608_b_14L如來智方便。當爲入實說。隨順皆一乘。
001_0608_b_15L無有諸雜味。猶如一雨潤。衆草皆悉榮。
001_0608_b_16L隨其性各異。一味之法潤。普充於一切。
001_0608_b_17L如彼一雨潤。皆長菩提芽。
001_0608_b_18L是第二歎佛答勝利。於中有三。謂法
001_0608_b_19L喩合。如其次第。四句二句五句
001_0608_b_20L應知。
001_0608_b_21L入於金剛味一本
作昧。 [5] 證法眞實定。決定斷
001_0608_b_22L疑悔。一法之印成。
001_0608_b_23L此第二頌入定。上半正頌在前入定。
001_0608_b_24L下半逆頌後起說法。後所說敎有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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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08_c_01L가) 영원히 의심과 미련을 단절함
첫째는 금강이 무엇이든지 파괴하듯이 영원히 의심과 미련을 단절한다.
나) 일승의 도장을 성취함
둘째는 무엇에도 파괴되지 않는 금강과 같은 일승의 도장을 성취한다.
뒤의 두 구는 능파能破와 불괴不壞라는 금강의 두 가지 뜻을 드러낸 것이다.이상으로 경문의 서분에 대한 논의를 마친다.
제2장 정설분정설분의 경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의 여섯 품은 개별적으로 관행觀行을 드러낸 부분이고, 마지막 「총지품」은 총체적으로 모든 의심을 제거한 부분이다.
1. 개별적으로 관행을 드러냄개별적으로 드러낸 부분에 다음과 같이 여섯 개의 품이 있다.첫째는 「무상법품無相法品」으로 분별상이 없는 관찰을 설명한 것이다.둘째는 「무생행품無生行品」으로 무생無生과 무생을 터득하는 행行을 드러낸 것이다.셋째는 「본각리품本覺利品」으로 본각에 의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넷째는 「입실제품入實際品」으로 허상으로부터 실제에 들어가는 것이다.다섯째는 「진성공품眞性空品」으로 일체행이 진성과 진공에서 나왔음을 변별한 것이다.여섯째는 「여래장품如來藏品」으로 무량한 법문이 여래장에 들어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와 같은 여섯 품은 관행을 두루 다 갖춘 것이다. 왜냐하면 무릇 망상이 무시이래로 유전流轉하는 것은 단지 형상에 집착하여 분별하는 번뇌 때문이다. 이제 유전을 거슬러 근원으로 돌아가려면 먼저 모든 분별상을 없애야만 한다. 그러므로 첫째로 분별상이 없는 법을 관찰할 것을 설명하였다.비록 모든 분별상을 없앴다 하더라도 만약 관찰하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그 관찰하는 마음이 발생하기 때문에 오히려 본각을 모르게 된다. 따라서 관찰하는 마음이 발생하는 것도 없앤다. 이런 까닭에 둘째로 무생과 그 행을 드러내었다.그 행이 무생이어야 바야흐로 본각을 알게 된다. 본각에 의하여 중생을 교화하여 본각의 이익을 터득하게 하려고 셋째로 본각리문을 밝혔다.만약 본각에 의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면 중생이 곧 허상으로부터 실제에 들어가는 까닭에 넷째로 입실제에 대하여 밝혔다.내행內行에는 곧 무상법과 무생행이 해당하고, 외화外化에는 곧 본각리와 입실제가 해당한다. 이처럼 내행과 외화의 두 가지 수행의 방식(二利)으로 만행을 갖추는 것은 동일하게 진성에서 나오고 모두 진공에 따른 것이다. 이런 까닭에 다섯째로 진성과 진공을 밝혔다.이처럼 진성에 의하여 그 만행이 갖추어져야 여래장 곧 일미의 근원에 들어가는 까닭에 여섯째로 여래장을 드러내었다.마음의 근원에 돌아가면 무소위無所爲의 경지가 되고, -
001_0608_c_01L勝能。一決斷疑悔。如金剛能破。二
001_0608_c_02L印成一乘。如金剛不壞。下半二句
001_0608_c_03L顯此二義。序分文竟。
001_0608_c_04L正說之中大分爲二。謂前六品別
001_0608_c_05L顯觀行。摠持一品摠遣疑情。別顯
001_0608_c_06L之中卽爲六分。一無相法品明無
001_0608_c_07L相觀。二無生行品顯無生行。三本
001_0608_c_08L覺刹品依本利物。四入實際品從虛
001_0608_c_09L入實。五眞性空品辨一切行出眞性
001_0608_c_10L空。六如來藏品顯無量門入如來藏。
001_0608_c_11L如是六門觀行周盡。所以然者。凡
001_0608_c_12L諸妄想無始流轉。只由取相分別之
001_0608_c_13L患。今欲反流歸源。先須破遣諸相。
001_0608_c_14L所以初明觀無相法。雖遣諸相。若存
001_0608_c_15L觀心。觀心猶生不會本覺。故泯生
001_0608_c_16L心。所以第二顯無生行。行旣無生
001_0608_c_17L方會本覺。依此化物令得本利。故
001_0608_c_18L第三明本覺利門。若依本覺以利衆
001_0608_c_19L生。衆生卽能從虛入實。所以第四明
001_0608_c_20L入實際。內行卽無相無生。外化卽本
001_0608_c_21L利入實。如是二利以具萬行。同出
001_0608_c_22L眞性。皆順眞空。是故第五明眞性空。
001_0608_c_23L依此眞性萬行斯備。入如來藏一味
001_0608_c_24L之源。所以第六顯如來藏。旣歸心源
-
001_0609_a_01L무소위의 경지이기 때문에 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여섯 가지 품을 설하여 대승을 섭수하였다.
또한 이 여섯 품에는 그 밖의 뜻도 들어 있다.첫째의 「무상법품」은 관찰되는 법(所觀法)을 보인 것이다. 이 법은 일심으로서 여래장의 본체이다.둘째의 「무생행품」은 관찰하는 주체의 행(能觀行)을 밝힌 것이다. 이 무생행은 분별없이 관찰하는 여섯 가지 수행(六行)75)이다.셋째의 「본각리품」은 일심의 생멸문生滅門을 드러낸 것이다.넷째의 「입실제품」은 일심의 진여문眞如門을 드러낸 것이다.다섯째의 「진성공품」은 진眞과 속俗을 모두 없앴으면서도 진제眞諦와 속제俗諦를 버리지도 않은 것이다.여섯째의 「여래장품」은 모든 품을 두루 거두어 그것이 일미임을 보인 것이다. 이처럼 이중구조의 여섯 품으로 대승의 뜻을 남김없이 섭수하였다.
또한 이 여섯 품을 합하면 삼문이 된다. 「무상법품」과 「무생행품」은 관행의 처음과 끝을 섭수한 것이고, 「본각리품」과 「입실제품」은 교화의 근본과 지말이며, 「진성공품」과 「여래장품」은 인因을 섭수하여 과果를 성취하는 것이다.또한 「무상법품」과 「무생행품」은 형상을 없애고 본각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본각리품」과 「입실제품」은 본각으로부터 행을 일으키는 것이며, 「진성공품」과 「여래장품」은 본각으로 돌아가는 것과 본각으로부터 일으키는 것을 싸잡아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이중구조의 삼문으로 대승을 남김없이 섭수하였다.
또한 이 여섯 품은 단지 이문二門일 뿐이다.첫째의 이문이란 분별상(相)과 분단생(生)을 모두 없애는 것76)은 곧 본각리문이고, 입실제와 진성공은 곧 여래장문이다.둘째의 이문이란 분별상과 분단생을 모두 없애는 본각리문은 허망을 없애는 것으로 인을 드러낸 문이고, 입실제와 진성공의 여래장문은 진여를 드러내어 과를 성취하는 문이다. 이처럼 두 가지의 이문도 역시 대승을 남김없이 섭수하였다.또한 이 여섯 가지 품은 오직 일미일 뿐이다. 왜냐하면 분별상(相)과 분단생(生)에는 성품(性)이 없고, 본각에는 근본(本)이 없으며, 실제에는 끝(際)이 없고, 진성도 역시 공인데 무엇을 말미암아 여래장의 성품이 있겠는가. 그래서 「여래장품」에서는 “여래장식은 항상 적멸하다. 적멸 또한 적멸하다.”고 말하고, 「총지품」에서는 “제7식과 제5식은 불생이고, 제8식과 제6식은 적멸하며, 구상九相(제9식을 가리킴)은 공무空無이다.”라고 말한다.이처럼 무소득無所得의 일미야말로 바로 『금강삼매경』의 종지(宗)이고 요지(要)이다. -
001_0609_a_01L卽無所爲。無所爲故無所不爲。故
001_0609_a_02L說六門以攝大乘。又此六品亦有
001_0609_a_03L異意。謂初品示所觀之法。法謂一
001_0609_a_04L心如來藏體。第二品明能觀之行。
001_0609_a_05L行謂六行無分別觀。第三本覺利品
001_0609_a_06L顯一心中之生滅門。第四入實際品
001_0609_a_07L顯一心中之眞如門。第五眞性空品
001_0609_a_08L雙遣眞俗不壞二諦。第六如來藏品
001_0609_a_09L遍收諸門同示一味。以此二重六門
001_0609_a_10L攝大乘義周盡。又此六品合爲三門。
001_0609_a_11L前二品攝觀行始終。次二品者敎
001_0609_a_12L化本末。其後二門攝因成果。又前
001_0609_a_13L二品遣相歸本。中間二品從本起
001_0609_a_14L行。後二品者。雙顯歸起。以此二三
001_0609_a_15L攝大乘盡。又此六品只是二門。相
001_0609_a_16L生都泯是本覺利。實際眞空。是如來
001_0609_a_17L藏。又前門者遣妄顯因。其後門者
001_0609_a_18L顯眞成果。如是二二之門亦攝大乘
001_0609_a_19L周盡。又此六品唯是一味。所以然
001_0609_a_20L者。相生無性。本覺無本。實際離際。
001_0609_a_21L眞性亦空。何由得有如來藏性。如下
001_0609_a_22L如來藏品中言。是識常寂滅。寂滅亦
001_0609_a_23L寂滅。摠持品言。七五不生。八六寂
001_0609_a_24L滅。九相空無。如是無所得之一味
-
001_0609_b_01L무릇 무소득이기 때문에 터득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래서 제문諸門(『금강삼매경』의 정설분에 속하는 여섯 품)으로 전개하지 못할 것도 없으므로 한량이 없는 뜻(無量義)의 종지를 일으킨 것이다. 비록 일미이지만 여섯 문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여섯 부분에 의거하여 경문을 나누어 해석하였다.
1) 「무상법품無相法品」
먼저 품명을 해석한다. 무상無相이란 무상관無相觀77)이니, 모든 형상을 타파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법法이란 관찰되는 법(所觀法)이니, 일심법이다. 무상관이란 앞서 언급한 여섯 부분 중 제1분의 뜻이고, 소관법이란 뒤에 언급한 여섯 문 중 제1문의 법이다.78) 이제 이 「무상법품」에서는 무상과 법의 두 가지 뜻을 드러냈기 때문에 「무상법품」이라 말하였다.「무상법품」의 경문을 분과하면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삼매로부터 나오는 부분(出定分)이고, 둘째는 설법을 시작하는 부분(起說分)이며, 셋째는 법문을 들은 청중이 이익을 얻는 부분(得益分)이다.첫째의 출정분出定分과 셋째의 득익분得益分은 경문(經家)의 서序에 해당하고, 둘째의 기설분起說分은 본격적인 부처님의 말씀이다.
(1) 출정분出定分
경 그때 존자께서 삼매에서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논 출정분에서는 세 가지 종류의 성취를 드러낸다.
① 설법의 시성취
첫째는 설법의 시성취로서 경문의 “그때”에 해당한다.
② 설법의 주성취
둘째는 설법의 주성취로서 경문의 “존자께서”에 해당한다. 다섯 가지 신통을 구비하고 세간의 존중을 받으며 심심한 법을 진여의 뜻대로 설하기 때문에 세존이라 칭한다.
③ 자재성취
셋째는 자재성취로서 경문의 “삼매에서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에 해당한다. 그것은 곧 여래가 삼매에 들어가면(入定) 누구도 깨울 수가 없고, 삼매에 머물러 있음(住定)과 삼매에서 나옴(出定)에 자재하기 때문이다.
(2) 기설분起說分
경 “제불의 지혜의 경지는 진실한 법의 상에 들어간 것으로 결정성이기 때문이다.79)
논 이하는 둘째 본격적으로 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산문(長行)이고, 둘째는 중송重頌이다.
① 산문(長行)
산문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간략하게 설명한 부분(略標分)이고, 둘째는 자세하게 설명한 부분(廣說分)이다.
가. 간략하게 설명한 부분(略標分)
간략하게 설명한 부분에서는 두 가지 뜻을 보였다. -
001_0609_b_01L正爲此經之宗之要。但以無所得。故
001_0609_b_02L無所不得。所以諸門無所不開故
001_0609_b_03L作無量義之宗也。雖是一味而開六
001_0609_b_04L門故。依六分科文而釋。先釋品名。言
001_0609_b_05L無相者。謂無相觀。破諸相故。次言
001_0609_b_06L法者。謂所觀法。一心法故。無相觀
001_0609_b_07L者。先六分中第一分義。所觀法者。
001_0609_b_08L後六門內第一門法。今此初品顯是
001_0609_b_09L二義。以之故言無相法品。
001_0609_b_10L1)無相法品第二 [5]
001_0609_b_11L爾時。尊者一本作
世尊 [6] 從三昧起。而說是言。
001_0609_b_12L此一品文科分爲三分。初出定分。
001_0609_b_13L次起說分。後得益分。初後二分是
001_0609_b_14L經家序。其第二分正是佛言。初分中
001_0609_b_15L顯三種成就。一說法時成就。如經爾
001_0609_b_16L時故。二說法主成就。如經尊者故。
001_0609_b_17L具五通達爲世所尊。於甚深法如義
001_0609_b_18L說故。三自在成就。如經從三昧起
001_0609_b_19L說是言故。如來入定無能驚寤。於
001_0609_b_20L定住出得自在故。
001_0609_b_21L諸佛智地。入實法相。決定性故。
001_0609_b_22L此下第二正發言說。此中有二。一者
001_0609_b_23L長行。二者重頌。初長行中。亦有二
001_0609_b_24L分。一略標分。二廣說分。略標分中。
-
001_0609_c_01L첫째는 무상관無相觀을 보였고, 둘째는 소관법所觀法을 보였다.
가) 무상관
무상관에도 두 구가 있다. 첫째는 여래께서 자신이 무상관에 들어가는 것을 보였고, 둘째는 다른 사람들을 무상관에 들어가게 한 것을 보였다.
(가) 여래가 무상관에 들어감
부처님 자신이 무상관에 들어가는 모습은 경문의 “제불의 지혜의 경지는 진실한 법의 상에 들어간 것으로 결정성이기 때문이다.”에 해당한다.‘제불의 지혜의 경지’라고 한 것은 곧 이전에 들어갔던 금강삼매와 상응하는 지혜가 일체의 공덕법을 주지住持하기 때문이다.‘진실한 법의 상에 들어간다.’라고 한 것은, 이 제불의 지혜가 일체의 상을 타파하고 제법의 실상에 통달하기 때문이다.‘결정성’이라 한 것은, 제법의 실상은 부처님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부처님이 계시든 부처님이 계시지 않든 성품이 본래부터 그렇기 때문이다.이어서 말한 ‘때문이다.’는 결정성으로써 상구上句를 해석했다는 것이다. 만약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면 곧 실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상구上句를 이어받아서 하구下句를 이루는 것이니, 여래가 스스로 제법의 실상에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분별상이 없는(無相) 이익을 터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나) 다른 사람을 무상관에 들어가게 함
경 방편과 신통은 모두 분별상이 없는 이익이다.
논 이는 둘째 구절로, 다른 사람들을 무상관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방편”은 팔상八相80)의 방편이다. 말하자면 도솔천에서 내려온 것으로부터 내지 열반에 든 것을 가리킨다.“신통”은 여섯 가지 신통이다. 말하자면 삼륜三輪81)으로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다.“모두 분별상이 없는 이익”이란 이처럼 팔상의 방편과 여섯 가지 신통은 모두 여래 자신이 실상에 들어간 것으로부터 일어나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분별상이 없는 이익을 터득하도록 하기 때문이다.이로써 위에서 말한 무상관을 보인다는 것에 대하여 마친다.
나) 소관법
경 일각一覺과 요의了義는 이해하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승의 지견으로 들어갈 바가 아니다. 오직 불·보살만이 그 경계를 알아
논 이하는 간략하게 설명한 부분 가운데서 둘째로 소관법을 보인 부분이다. 여기에도 또 두 구절이 있다. -
001_0609_c_01L標二種義。初標無相觀。後標所觀法。
001_0609_c_02L無相觀中。有其二句。先標如來自入
001_0609_c_03L無相觀。後標令他入無相觀。言自入
001_0609_c_04L者。如經諸佛智地入實法相決定性
001_0609_c_05L故。諸佛智地者。謂如前所入金剛三
001_0609_c_06L昧相應之智。住持一切功德法故。入
001_0609_c_07L實法相者。謂此佛智破一切相通
001_0609_c_08L達諸法之實相故。決定性者。是實法
001_0609_c_09L相。非佛所作。有佛無佛性自爾故。
001_0609_c_10L次言故者。以決定性釋成上句。若
001_0609_c_11L不決定卽非實相故。又攝上句而成
001_0609_c_12L下句。如來自入實法相故。故能令他
001_0609_c_13L得無相利也。
001_0609_c_14L方便神通。皆無相利。
001_0609_c_15L此第二句令他得入。言方便者八
001_0609_c_16L相方便。謂從兜率天退乃至入涅槃
001_0609_c_17L故。神通者六神通。卽爲三輪化衆
001_0609_c_18L生故。皆無相利者。如是八六方便神
001_0609_c_19L通皆從自入實相而起。能令他得無
001_0609_c_20L相利故。標無相觀竟在於前。
001_0609_c_21L一覺了義。難解難入。非諸二乘之所知
001_0609_c_22L見。唯佛菩薩乃能知之。
001_0609_c_23L此下第二標所觀法。亦有二句。一者
001_0609_c_24L「無上法品第二」無{甲}。
-
001_0610_a_01L첫째는 소관법이 심오함을 보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에게 그 심오한 법을 설한다.
(가) 소관법이 심오함을 보임
“일각과 요의”는 일심과 본각과 여래장의 뜻으로서, 결코 이것을 능가하는 다른 심오한 법은 없기 때문이다.“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은 뜻이 너무 심오하여 모든 이승이 지견知見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은 체體가 깊고 깊어 오직 불·보살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후구後句로써 전구前句를 해석한 것이니, 처음 부분에서 드러낸 “제불의 지혜로 들어간 진실한 법의 상”이 곧 일심과 본각과 여래장법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이는 『능가경』에서 “적멸이란 일심을 가리키고, 일심이란 여래장을 가리킨다.”82)고 한 것과 같다. 지금 이 경문에서 말한 “진실한 법의 상”은 적멸의 뜻이고, 일각과 요의는 일심과 여래장의 뜻이다. 『법화론』에서는 “제불여래는 저 법이 구경이고 실상임을 안다. 실상이란 여래장과 법신의 체가 불변의 뜻임을 말한다.”83)고 하였다. 지금 이 경문에서 말한 “일각”은 일체의 제법은 오직 일심일 뿐이고, 일체의 중생은 곧 일심의 본각(一本覺)이라는 뜻이다. 이로 말미암아 일각一覺이라 말한 것이다.이하의 해당 부분에서 다시 자세하게 분별한다.
(나) 다른 사람에게 소관법이 심오함을 설함
경 제도할 수 있는 중생에게는 모두 일미법을 설하였다.”
논 이 대목은 중생을 위하여 모두 깊은 법을 설했음을 설명한 것이다.“제도할 수 있는 중생”이라는 것은 여래께서 교화하는 일체중생은 일심의 유전流轉이 아님이 없기 때문이다.“모두 일미법을 설하였다.”는 것은 여래께서 설한 일체교법은 일심과 본각과 일미에 들어가도록 함을 가리킨다. 곧 일체중생은 본래 일심과 본각이건만, 단지 무명으로 말미암아 환상을 따라 유전할 뿐이므로 모두 여래의 일미의 설법을 좇아 마침내 모두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지 않음이 없음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경우에 무소득이기 때문에 일미라고 하니, 이는 바로 일승一乘이다. -
001_0610_a_01L直標所觀法深。二者爲他說是深法。
001_0610_a_02L一覺了義者。一心本覺如來藏義。過
001_0610_a_03L是永無餘深法故。難解者。義甚深
001_0610_a_04L非諸二乘所知見故。難入者。軆甚深
001_0610_a_05L唯佛菩薩乃能入故。卽以後句而釋
001_0610_a_06L前句。欲明初門所標。佛智所入實法
001_0610_a_07L相者。直是一心本覺如來藏法。如楞
001_0610_a_08L伽經言。寂滅者名爲一心。一心者名
001_0610_a_09L如來藏。今此文言實法相者。是寂滅
001_0610_a_10L義。一覺了義者卽是一心如來藏
001_0610_a_11L義。法華論云。諸佛如來能知彼法
001_0610_a_12L究竟實相。言實相者。謂如來藏法身
001_0610_a_13L之軆不變義故。今此經言一覺者。一
001_0610_a_14L切諸法唯是一心。一切衆生是一
001_0610_a_15L本覺。由是義故名爲一覺。至下演
001_0610_a_16L中當更分別。
001_0610_a_17L可度衆生。皆說一味。
001_0610_a_18L此明爲他皆說深法。可度衆生者。如
001_0610_a_19L來所化一切衆生。莫非一心之流轉
001_0610_a_20L故。皆說一味者。如來所說一切敎法
001_0610_a_21L無不令入一覺味故。欲明一切衆生
001_0610_a_22L本來一覺。但由無明隨夢流轉。皆從
001_0610_a_23L如來一味之說無不終歸一心之源。
001_0610_a_24L歸心源時皆無所得。故言一味。卽
-
001_0610_b_01L이로써 위에서 말한 첫째의 간략하게 설명한 부분의 경문을 마친다.
나. 자세하게 설명한 부분(廣說分)
경 그때 해탈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하고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
논 이하는 산문 가운데 둘째로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설법을 청하는 것이고, 둘째는 설법하는 것이다.
가) 설법을 청함
설법을 청하는 것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청하는 사람의 위의를 서술하고, 둘째는 청하는 말을 밝힌다.
(가) 설법을 청하는 사람의 위의
위의를 서술함에도 두 부분이 있다.
㉮ 때에 의거하여 사람을 나타냄
첫째는 청하는 때에 의거하여 청하는 사람을 나타낸다.“해탈보살”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똑같이 해탈하도록 하려는 까닭에 질문자에 의탁하여 설해질 법을 내보인 것이다.
㉯ 예의를 서술함
둘째는 예의를 서술한다.경문에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하고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나) 설법을 청하는 말
이하는 둘째로 설법을 청하는 말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설법이 해당되는 시절을 들고, 둘째는 해당하는 시절의 중생에게 설법해 주길 청한다.
㉮ 설법이 해당되는 시절
경 “존자이시여, 만약 부처님께서 입멸하신다면 이후에는 정법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고 상법이 세상에 머무를 것이며, 말법시대가 되면 오탁악세84)의 중생이 갖가지 악업으로 삼계에 윤회하여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논 먼저 “상법이 세상에 머무를 것이며, 말법시대가 되면 오탁악세의 중생이 갖가지 악업으로 삼계에 윤회하여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라는 것은 이전에 널리 설해진 경전은 정법시절에 중생에게 이익을 주었음에 비하여 지금 『금강삼매경』은 상법시절에 중생을 교화하기 위함임을 가리킨다. 곧 시절에 따라서 시설된 설법의 깊고 얕음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 중생에게 설법해 주길 청함
경 바라건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로 후세의 중생을 위하여 일미·결정·진실의 법을 널리 설하여 그들 중생이 함께 해탈하도록 해 주십시오.”
논 이 대목에서는 둘째로 설법해 주길 본격적으로 청한다.“일미의 법을 널리 설한다.”는 것은 일각과 요의의 일미법을 설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결정·진실의 법을 설한다.”는 것은 진실한 법의 상에 들어가는 관찰법을 설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그들 중생이 함께 해탈하도록 해 주십시오.”란 저 상법시대와 말법시대의 중생으로 하여금 함께 일미법으로 구경에 해탈토록 해 달라는 것이다.이로 말미암아 말하자면 가르침에 네 구절이 있다.첫째는 정법시절의 중생을 바르게 교화하고 아울러 말법시절의 중생도 이익토록 한다. -
001_0610_b_01L是一乘。初略標文竟在於前。
001_0610_b_02L爾時。解脫菩薩。卽從座起。合掌胡跪。
001_0610_b_03L而白佛言。
001_0610_b_04L此下第二廣說。於中有二。先請後說。
001_0610_b_05L請中有二。先序人儀。後明發言。序
001_0610_b_06L有二句。一依時表人。解脫菩薩者。
001_0610_b_07L令諸衆生同一解脫故。寄能問人
001_0610_b_08L表所說法故。二序禮儀。如經卽從座
001_0610_b_09L起等故。
001_0610_b_10L尊者。若佛滅後。正法去世。像法住世。
001_0610_b_11L於末劫中。五濁衆生。多諸惡業。輪迴
001_0610_b_12L三界。無有出時。
001_0610_b_13L此下第二發言而請。於中有二。先擧
001_0610_b_14L所爲時節。後請爲彼宣說。初中。像法
001_0610_b_15L住世末劫中者。先廣說經爲益正法
001_0610_b_16L之時。今此經者。爲化像法之節。隨
001_0610_b_17L時厚薄。設敎異故。
001_0610_b_18L願佛慈悲。爲後衆生。 [7] 宣說一味決定眞
001_0610_b_19L實。令彼衆生。等同解脫。
001_0610_b_20L此是第二正請宣說。宣說一味者。請
001_0610_b_21L說一覺了義之味。決定眞實者。請說
001_0610_b_22L入實法相之觀。令彼衆生等同解脫
001_0610_b_23L者。令彼像法末世衆生等同一味究
001_0610_b_24L竟解脫。由是言之。敎有四句。一正
-
001_0610_c_01L정법시절의 경전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상법시절의 중생을 바르게 교화하고 아울러 정법시절의 중생도 이익토록 한다. 『금강삼매경』 등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는 정법시절과 말법시절의 중생을 전체적으로 교화하는 것이다. 『금강삼매경』 이외의 모든 경전이 이에 해당한다. 넷째는 정법시절과 말법시절의 중생을 이익토록 하지 못한다. 위의 첫째와 둘째와 셋째의 가르침을 제외한 그 밖의 가르침이 이에 해당한다.
나) 설법함
이하는 둘째로 여래께서 설법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해탈보살의 질문을 칭찬하고 설법하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청을 받아들여 본격적으로 설법하는 것이다.
(가) 질문을 칭찬하고 설법함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선남자여, 그대는 나한테 출세의 인연을 물어서 중생을 교화하고 그들 중생으로 하여금 출세의 과보를 터득하게 하려 하는구나. 이 일대사는 불가사의하니, 곧 대자이고 대비이기 때문이다. 이에 내가 그것을 설하지 않는다면 곧 간탐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일심으로 잘 들어라. 그대들에게 설해 주겠다.
논 첫째로 질문을 칭찬하는 가운데 “출세의 인연”은 실상관에 들어가는 것이고, “출세의 과보”는 일미법을 통하여 해탈하는 것이다. “이 일대사”는 무상無上과 같다는 뜻이고, “불가사의”는 언설문자를 벗어나고 사려분별을 초월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저 『법화경』의 “제불세존이 오직 일대사인연으로 세상에 출현하셨다.”85)는 말과 같다. 이에 대하여 세친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일대사에는 네 가지 뜻이 있다. 그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무상無上의 뜻이다. 여래의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제외하고 달리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이다. 곧 『법화경』에서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 중생의 지견을 청정케 하려는 까닭에 세상에 출현하셨다.”는 내용을 가리킨다. 불지견이란 여래께서 증득한 여실지로서 중생의 뜻을 아는 것이다. 둘째는 동일하다(同)는 뜻이다. 모든 성문과 벽지불과 부처님은 평등한 법신이다. 이것은 『법화경』에서 “중생에게 불지견을 보여 주려는 까닭에 세상에 출현하셨다.”는 내용을 가리킨다. 평등한 법신이라 한 까닭은 불성과 법신이 무차별하기 때문이다. -
001_0610_c_01L化正法兼利後時。謂前經等。二正
001_0610_c_02L化像法兼利前時。謂此經等。三通
001_0610_c_03L化前後。謂諸餘經等。四不利前後。
001_0610_c_04L除上爾所敎。
001_0610_c_05L佛言。善男子。汝能問我。出世之因。欲
001_0610_c_06L化衆生。令彼衆生。獲得出世之果。是
001_0610_c_07L一大事。不可思議。以大慈故。以大悲
001_0610_c_08L故。我若不說。卽墮慳貪。汝等一心諦
001_0610_c_09L聽。 [8] 爲汝宣說。
001_0610_c_10L此下第二如來爲說。於中有二。一者
001_0610_c_11L讃問許說。二者對請宣說。讃問中
001_0610_c_12L言出世之因者。入實相觀故。出世之
001_0610_c_13L果者。一味解脫故。是一大事者。無
001_0610_c_14L上同義故。不可思議者。離言絕慮故。
001_0610_c_15L如法華經言。諸佛世尊唯以一大事
001_0610_c_16L因緣故出現於世。論者釋言。一大事
001_0610_c_17L者依四種義。何者爲四。一者無上
001_0610_c_18L義。唯除如來一切智智。更無餘事。
001_0610_c_19L如經欲開佛知見。令衆生知得淸淨
001_0610_c_20L故。出現於世故。佛知見者。如來能
001_0610_c_21L證以如實智。知彼義故。二者同義。以
001_0610_c_22L諸聲聞。辟支佛。佛法身平等。如經
001_0610_c_23L欲示衆生佛知見故。出現於世故。法
001_0610_c_24L身平等者。佛性法身無差別故。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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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1_a_01L셋째는 모른다(不知)는 뜻이다. 모든 성문과 벽지불 등은 그 진실한 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진실한 도리를 모른다고 한 까닭은 구경에는 오직 일불승인 줄을 모르는 것이다. 『법화경』에서 “중생에게 불지견을 깨우쳐 주려는 까닭에 세상에 출현하셨다.”는 내용을 가리킨다. 넷째는 불퇴전지를 증득케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무량한 지업智業을 시현해 주려는 것이다. 『법화경』에서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에 들도록 하려는 까닭에 세상에 출현하셨다.”는 내용을 가리킨다.86)
지금 이 『금강삼매경』에서 말한 일대사에도 또한 네 가지 뜻이 있다.첫째는 무상無上의 뜻이다. 위의 경문에서 말한 “제불의 지혜의 경지는 진실한 법의 상에 들어간 것으로 결정성이기 때문이다.”가 이에 해당한다.둘째는 동일하다(同)는 뜻이다. 위의 경문에서 말한 “일각一覺과 요의了義는 이해하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렵다.”는 부분이 이에 해당한다.셋째는 모른다(不知)는 뜻이다. 위의 경문에서 말한 “이승의 지견으로 들어갈 바가 아니다.”라는 부분이 이에 해당한다.넷째는 증득토록 한다(令證)는 뜻이다. 위의 경문에서 말한 “제도할 수 있는 중생에게는 모두 일미법을 설하였다.”는 부분이 이에 해당한다.이상으로 질문에 대한 칭찬을 마친다.
둘째로 청을 받아들이는 부분에도 두 구절이 있다. 첫째 구절은 설법하지 않으면 허물이 된다는 것을 역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고, 둘째 구절은 설법할 테니 잘 들으라고 순차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나) 본격적인 설법
경 선남자여, 만약 중생을 교화하려면 교화한다는 분별상이 없어야 하고 교화하지 않았다는 분별상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 그 교화가 훌륭하다.
논 이하는 둘째의 본격적으로 설법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무상관無相觀을 설명하여 자세하게 분별상이 없는 이로움을 설명하고, 둘째는 일각심一覺心을 드러내어 앞서 언급한 일심과 본각의 뜻을 펼친다.
㉮ 무상관을 설명함
무상관에도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직접적으로 관행의 모습을 설하고, 둘째는 문답을 통하여 모든 의심과 힐난(疑難)을 해결한다.
a. 직접적으로 관행의 모습을 설명함
직접적으로 관행의 모습을 설하는 것에도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방편관행을 설명하고, 둘째는 정관행을 설명한다.
a) 방편관행
방편관행에는 네 구절이 있다. 첫째의 1구87)는 교화하는 것을 말하고, 넷째의 1구88)는 교화가 훌륭함을 찬탄하며, 둘째와 셋째의 2구89)는 본격적으로 방편관상을 설명한다.“교화한다는 분별상이 없어야 한다.”는 둘째 구는 처음 방편관을 닦을 경우부터 -
001_0611_a_01L者不知義。以諸聲聞辟支佛等不能
001_0611_a_02L知彼眞實處故。不知眞實處者。不知
001_0611_a_03L究竟唯一佛乘故。如經欲令衆生悟
001_0611_a_04L佛知見故出現於世故。四者令證不
001_0611_a_05L退轉地。示現欲與無量智業故。如
001_0611_a_06L經欲令衆生入佛知見故。出現於世
001_0611_a_07L故。今此文中。一大事者。亦有四義。
001_0611_a_08L一無上義。如上文言。諸佛智地入實
001_0611_a_09L法相故。二者同義。如經一覺了義難
001_0611_a_10L解難入故。三不知義。非諸二乘所知
001_0611_a_11L見故。四令證義。可度衆生皆說一味
001_0611_a_12L故。讃問已竟。次許說中。亦有二句。
001_0611_a_13L初句反顯不說有過。後句順明誡
001_0611_a_14L聽許說。
001_0611_a_15L善男子。若化衆生。無生於化。不生無
001_0611_a_16L化。其化大焉。
001_0611_a_17L自此已下正爲宣說。於中有二。先
001_0611_a_18L明無相觀廣明無相利。後顯一覺心
001_0611_a_19L廣前一覺義。無相觀中亦有二分。
001_0611_a_20L一者。直說觀行之相。二者。往復決
001_0611_a_21L諸疑難。初中亦二。先方便觀。後明
001_0611_a_22L正觀。方便觀中。有其四句。初一句
001_0611_a_23L牒能化。後一句嘆化大。中間二句
001_0611_a_24L正明觀相。無生於化者。初修觀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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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1_b_01L모든 유상有相을 타파하여 교화한다는 미혹한 분별상(幻相)까지도 마음에 생겨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교화하지 않았다는 분별상도 없어야 한다.”는 셋째 구는 이미 교화한다는 분별상을 타파하고 이어서 교화하지 않았다는 공상空相마저 버린 것이다. 그것은 교화하지 않았다는 공에 대해서도 역시 마음을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중생은 본래부터 마음이 분별상을 벗어나 있음을 모르고 끝없이 모든 분별상에 집착하여 망념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모든 분별상을 타파하여 분별상에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야 한다. 비록 교화했다는 미혹한 분별상을 이미 타파했을지라도 아직 교화하지 않았다는 공성에는 집착한다. 공성에 집착하기 때문에 공에 대하여 마음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다시 교화하지 않았다는 공성도 없애야 한다. 이런 경우에야 바야흐로 공에 집착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아서 반드시 무이중도無二中道를 터득하여 부처님과 더불어 제법실상에 들어간다. 이와 같이 교화하기 때문에 “그 교화가 훌륭하다.”고 한 것이다.
문 이 방편관행은 어떤 계위에 속하는가?답 만약 믿음으로 수행하는 경우라면 십신十信에 해당하고, 비슷하게 관찰하는 경우라면 삼십심三十心(十住心·十行心·十廻向心)에 해당하며, 순수하게 닦는 것으로 말하자면 사선근四善根에 해당한다. 초지初地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는 모두 방편이다.
문 다른 곳에서는 삼무성三無性(無相性·無生性·無眞性)90)에 대한 관찰을 설하는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는 이무二無(無相性과 無生性)에 대해서만 설하는가?답 무상無相과 무생無生은 모두 일변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버려야 할 상相과 생生이 똑같이 유有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상관과 무생관에는 모두 심사尋思의 측면이 있다. 그러나 무성無性의 경우는 성性을 버리면 심사의 측면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낱낱으로(開) 보거나 전체적으로(合) 보거나 나름대로 도리에 통한다.이상으로 방편관행에 대한 설명을 마쳤으니, 다음으로 정관행을 드러내 보이겠다.
b) 정관행
경 저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망심妄心과 망아妄我를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체의 망심과 망아는 본래 공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공한 망심을 터득하면, 그 망심은 환幻도 아니고 화化도 아니며 환도 없어지고 화도 없어져서 곧 무생이 터득된다. 왜냐하면 무생의 마음은 화化가 없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논 이 부분은 정관행에 분별상이 없음(無二相)을 설명한 것이다. 정관행으로 소취所取와 능취能取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a) 소취를 벗어남
소취를 벗어난다는 것은 일체의 인상人相과 법상法相을 벗어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견리遣離이고, 둘째는 민리泯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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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1_b_01L破諸有相。於幻化相滅其生心故。
001_0611_b_02L不生無化者。旣破化相次遣空相。於
001_0611_b_03L無化空亦不生心故。所以然者。衆
001_0611_b_04L生本來迷心離相。遍取諸相動念
001_0611_b_05L生心故。先破諸相滅取相心。雖復
001_0611_b_06L已破幻化有相。而猶取其無化空性。
001_0611_b_07L取空性故於空生心。所以亦遣無化
001_0611_b_08L空性。于時不生取空之心不得已會
001_0611_b_09L無二中道。同佛所入諸法實相。如是
001_0611_b_10L化故其化大焉。問。此方便觀爲在
001_0611_b_11L何位。答。若仰信修在於十信。其相
001_0611_b_12L似觀在三十心。論其純修在四善
001_0611_b_13L根。將入初地近方便故。問。餘處說有
001_0611_b_14L三無性觀。何故此中但說二無。答。
001_0611_b_15L無相無生合爲一邊。所遣相生同
001_0611_b_16L是有故。又此二觀皆有尋思。遣無
001_0611_b_17L性時無尋思故。或開或合皆有道
001_0611_b_18L理故。已說方便。次顯正觀。
001_0611_b_19L令彼衆生。皆離心我。一切心我。本來
001_0611_b_20L空寂。若得空心。心不幻化。無幻無化。
001_0611_b_21L卽得無生。無生之心。在於無化。
001_0611_b_22L是明正觀無二之相。以離所取能取
001_0611_b_23L二故。離所取者。以離一切人法相故。
001_0611_b_24L此有二種。一者遣離。二者泯離。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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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1_c_01Lⓐ 견리遣離
“견리”는 이전에 집착한 분별상을 지금 없애는 것이다. 경문의 “저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망심과 망아를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 민리泯離
“민리”는 이전에 집착한 분별상이 본래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문의 “일체의 망심과 망아는 본래 공적하기 때문이다.”가 이에 해당한다.“망심妄心과 망아妄我”라는 것은, 인人이 망아이고, 법法이 망심이다. 마음은 제법이 의지하는 주主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과 법이 본래 공한 줄을 통달하는 때에는 이전에 집착한 분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견리와 민리가 동시에 성취된다.이상으로 소취를 벗어나는 것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다.
(b) 능취를 벗어남
능취를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말하자면 일체의 능취하는 분별을 벗어나는 것이다. 여기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본리本離이고, 둘째는 시리始離이다.
ⓐ 본리本離
“본리”란 망심과 망아가 본래 공한 줄을 터득할 때 바로 본각의 공적한 마음이 터득된다는 것이다. 이 공적한 마음은 본래 능취를 벗어나 있다. 능취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본래 환도 아니고 화도 아니다. 경문의 “만약 공한 망심을 터득하면 그 마음은 환幻도 아니고 화化도 아니다.”라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환도 아니고 화도 아닌 것은 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 시리始離
“시리”란 본각의 공적심을 터득할 경우 능취하는 분별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득심에 따른 환도 없어지고 화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경문의 “환도 없어지고 화도 없어져서 곧 무생이 터득된다.”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리하여 비로소 무생심을 터득하고 본래 공적하여 화가 없는 도리를 이해하기 때문이다.“무생의 마음은 화化가 없는 곳에 있다.”고 한 것은 심心과 경境을 가설한 것일 뿐으로 말로만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시리의 능취는 시각始覺의 뜻이고, 본리의 공적심은 본각本覺의 뜻이다. 뜻에는 비록 시리와 본리가 있지만 시리와 본리가 어울려야 일각이 성취된다. 능能과 소所를 벗어나는 것은 신新(시각)과 구舊(본각)를 벗어나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기신론』에서는 “시각은 곧 본각과 같다.”91)고 하였다. 그러므로 일각은 완전히 생·멸·시·종 등의 모습을 벗어나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처음의 초지로부터 최후의 불지에 이르기까지 다만 분分이냐 만滿이냐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
001_0611_c_01L離者。先所取相今滅除故。如經令
001_0611_c_02L彼衆生皆離心我故。泯離者。先所
001_0611_c_03L取相本來空故。如經一切心我本
001_0611_c_04L來空寂故。言心我者。人名爲我法
001_0611_c_05L名爲心。心是諸法所依主故。達諸人
001_0611_c_06L法本來空時。先所取相此時不起。
001_0611_c_07L所以二離一時成就。已說離所取。
001_0611_c_08L云何離能取。謂離一切能取分別。此
001_0611_c_09L亦二種。一者本離。二者始離。言本
001_0611_c_10L離者。通達心我本來空時。正得本
001_0611_c_11L覺空寂之心。此空寂心本離能取。
001_0611_c_12L離能取故本不幻化。如經若得空心
001_0611_c_13L心不幻化故。不幻化者。非虛妄故。
001_0611_c_14L言始離者。得此本覺空寂心時。能取
001_0611_c_15L分別不復得生。隨所得心無幻化
001_0611_c_16L故。如經無幻無化。卽得無生故。如
001_0611_c_17L是始得無生之心會本空寂無化之
001_0611_c_18L理故。言無生之心在於無化。假說
001_0611_c_19L心境故寄言在然。始離能取是始
001_0611_c_20L覺義。本離空心是本覺義。義雖有
001_0611_c_21L二。混成一覺。同離能所離新舊故。
001_0611_c_22L如論說言。以始覺者。卽同本覺。當
001_0611_c_23L知此覺永離生滅始終等相。始從初
001_0611_c_24L地乃至佛地。但有分滿不同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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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2_a_01L『십지경론十地經論』에서 “자체가 본래 공하므로 다름도 없고 다함도 없다.”92)고 자세하게 설명한 것과 같다.또한 이 일각에는 본각과 시각의 뜻이 있다. 본각에는 본래 있는 것을 드러낸다(顯成)는 뜻이 있으므로 본래적인 수행(眞修)이라는 설이 도리에 합당하다. 시각에는 수행을 통하여 성취한다(修成)는 뜻이 있으므로 새로운 수행(新修)이라는 말씀이 도리에 합당하다. 그러므로 어느 한 가지에만 집착하면 올바르지 못하다. 이제 교리에 대한 논의는 그만두고 본문으로 돌아가 해석한다.무상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상으로 마친다.93)
b. 문답으로 의심과 힐난을 해결함
이하는 둘째로 문답을 통하여 의심과 힐난(疑難)을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에 네 가지 문답이 있어 차례대로 의심을 해결한다.
a) 총체적으로 유상문有相門을 타파함
경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중생의 마음은 그 자성이 본래 공적합니다. 공적한 마음은 그 본체에 형색(色)과 생멸상(相)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수습해야 본래 공적한 마음을 터득할 수 있습니까? 바라건대 부처님의 자비로 저희에게 설해 주십시오.”
논 첫 번째 문답에는 질문하는 뜻이 두 가지가 있다.첫째는 “중생의 마음은 그 자성이 본래 공적하다. 그러나 망념을 움직이므로 무시이래로 유전한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수행해야 본래심을 터득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둘째는 “공적한 마음의 본체에는 색과 상이 없다. 그러나 중생은 본래부터 항상 유상有相에 집착한다. 그러면 색도 없고 상도 없는 것을 어떻게 수습해야 공적심을 터득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러므로 경문에서 “어떻게 수습해야 본래 공적한 마음을 터득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문 여기에서 설명하는 중생심은 6식 등의 생멸심일 터인데, 그것으로 어떻게 일심의 본각을 알 수 있겠는가?답 『기신론』에서 “어떤 법이 마하연의 신근信根을 일으킨다. 그 어떤 법은 말하자면 중생심이다. …… 일심의 법에는 두 가지 문이 있다. ……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이다.”94)라고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또 『능가경』에서 “적멸이란 일심을 말한다.”95)라고 하였다.지금 이 경문에서 “공적한 마음의 본체에는 색과 상이 없습니다.”라고 한 것은 언설(言)은 서로 다르지만 뜻(意)의 귀결점은 같다. ‘색이 없다.’고 한 까닭은 색깔과 형체 등이 없는 것이고, ‘상이 없다.’고 한 까닭은 생상과 멸상 등이 없기 때문이다. -
001_0612_a_01L如十地論本分中說。自體本來空有
001_0612_a_02L不二不盡。乃至廣說。又此一覺有
001_0612_a_03L本始義。以有本覺顯成義故。眞修之
001_0612_a_04L說亦有道理。以有始覺修成義故。
001_0612_a_05L新修之談亦有道理。如其偏執卽
001_0612_a_06L有未盡。且止乘論還釋本文。廣無
001_0612_a_07L相觀竟在於前。
001_0612_a_08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衆生之心。
001_0612_a_09L性本空寂。空寂之心。軆無色相。云何
001_0612_a_10L修習。得本空心。願佛慈悲。爲我宣說。
001_0612_a_11L此下第二往復決疑。有四問答次第
001_0612_a_12L決疑。第一問中問意有二。一者。衆
001_0612_a_13L生心性本來空寂。而猶動念無始
001_0612_a_14L流轉。云何方修而得本心。二者。空
001_0612_a_15L寂心體無色無相。衆生本來恒取
001_0612_a_16L有相。云何習無而得空心。故言云
001_0612_a_17L何修習得本空心。問。此中所說衆
001_0612_a_18L生之心應是六識等生滅心。何以得
001_0612_a_19L知一心本覺。答。起信論云。有法能起。
001_0612_a_20L大乘信根。謂衆生心。依一心法有
001_0612_a_21L二種門。乃至廣說。又如經言。寂滅
001_0612_a_22L者名爲一心。今此文言。空寂之心
001_0612_a_23L體無色相。言有左右意致還同。言
001_0612_a_24L無色者。無顯形等色故。無相者。無
-
001_0612_b_01L이 대목은 일심의 진여문(心眞如門)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중생심은 일심의 생멸문(心生滅門)을 언급한 것이다. 곧 이것은 일심의 생멸문을 들어 일심의 진여문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그 자성이 본래 공적합니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생멸문과 진여문은 그 본체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모두 일심법일 따름이다.
(a) 본격적인 답변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보살이여, 일체의 망심妄心과 망상妄相은 본래 근본이 없고 본래 근본의 처소가 없어서 공적하고 무생이다. 이에 망심을 무생케 하면 곧 공적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공적한 심지야말로 곧 심공心空을 터득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무상無相한 일심에는 망심도 없고 망아도 없다. 일체의 법상도 또한 이와 같다.”
논 이 부분은 부처님의 답변인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답正答이고,96) 둘째는 결답決答이다.97)
ⓐ 정답正答
“보살이여”란 해탈보살을 부르는 말이다. 이하의 경문에서 부르는 말도 모두 마찬가지이다.“일체의 망심妄心과 망상妄相”이란 일체의 팔식이 일으키는 망념(動念)의 심心과 심소心所에 상응하는 행行과 상相의 차별이다. 행과 상에는 모두 사상四相이 있다.“본래 근본이 없고 본래 근본의 처소가 없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일체의 심心과 상相에는 종자가 근본인데, 그 근본종자는 찾아보아도 얻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현재가 되어 있거나 이미 과거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현재가 되어 있는 경우는 곧 현재라는 과果가 구비되어 있어 근본과 지말에 차이가 없다. 그것은 마치 소의 두 뿔과 같다. 그리고 이미 과거가 되어 있는 경우는 곧 작인作因도 없어지고 체성體性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토끼의 뿔과 같다. 이와 같은 도리는 본래 법이法爾이다. 그런 까닭에 “본래 근본이 없고”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생멸심이 생겨나는 경우는 반드시 근본의 처소에 의지하는데, 그 근본의 처소가 이미 없다면 생겨날 수가 없다. 여기에서 말한 “근본의 처소”는 구유근俱有根98)이다. 오색근五色根(안근·이근·비근·설근·신근)은 원래 색법으로서 유방有方·무방無方에 관계없이 불가득이고, 나머지 세 가지 소의인 곧 제6식과 제7식과 제8식은 모두 무색법으로서 유시有時·무시無時에 관계없이 다 불가득이다. -
001_0612_b_01L生滅等相故。此文卽顯心眞如門。上
001_0612_b_02L言衆生之心。且擧心生滅門。擧生滅
001_0612_b_03L心顯眞如門。以之故言。性本空寂。
001_0612_b_04L然此二門其軆無二。所以皆是一心
001_0612_b_05L法耳。
001_0612_b_06L佛言。菩薩。一切心相。本來無本。本無
001_0612_b_07L本處。空寂無生。若心無生。卽入空寂。
001_0612_b_08L空寂心地。卽得心空。善男子。無相之
001_0612_b_09L心。無心無我。一切法相。亦復如是。
001_0612_b_10L此答有二。正答決答。言菩薩者。是
001_0612_b_11L呼解脫菩薩之辭。下文呼辭皆亦同
001_0612_b_12L也。一切心相者。一切八識動念之心
001_0612_b_13L心所相應行相差別。若行若相皆
001_0612_b_14L有四相故。本來無本本無本處者。
001_0612_b_15L一切心相種子爲本。求此本種永
001_0612_b_16L無所得。所以然者。爲在現時爲已
001_0612_b_17L過去。若在現時卽與果俱無本末
001_0612_b_18L異。如牛兩角。若已過去卽無作因
001_0612_b_19L無體性故。猶如兎角。如是道理本
001_0612_b_20L來法爾。以之故言。本來無本。又生
001_0612_b_21L滅心生必依本處。本處旣無卽不
001_0612_b_22L得生。言本處者。謂俱有根。其五色
001_0612_b_23L根旣是色法。有方無方皆不可得。
001_0612_b_24L餘三所依皆無色法。有時無時並
-
001_0612_c_01L이런 까닭에 또한 “본래 근본의 처소가 없다.”고 말한다.말하자면 본래부터 그 근본의 처소가 없다. 원래 근본종자가 없으므로 또한 근본의 처소도 없다. 그러므로 심心과 상相은 본래 무생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까닭에 “공적하고 무생하다.”고 한 것이다.이와 같이 심과 상이 발생할 수 없음을 관찰할 경우 그 관찰하는 마음도 또한 무생이다. 이때 곧 본래공적에 들어간다. 들어가야 할 공적의 경지가 바로 일심인데, 이것은 일체의 소의처이므로 지地라 말한다. 그러므로 “곧 공적에 들어간다.”고 하였다.공적한 심지이기에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유전하여 항상 유상에 집착할지라도 이 공적문에 의지해 추구하고 관찰하면 본래의 공적한 마음을 터득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곧 심공心空을 터득할 수가 있다.”고 하였다. 심공心空과 공심空心은 말은 다르지만 모두 일심·본각의 뜻이다.질문에 대한 본격적인 답변 부분은 이상으로 마친다.
ⓑ 결답決答
이하는 결답決答이다.“무상한 일심”이란 일심의 본체를 언급한 것이다.“망심도 없고 망아도 없다.”는 것은 위에서 설명한 “공적하고 무생이다.”에 대한 결론으로 무상심無相心 가운데는 심상心相도 없고 아상我相도 없음을 가리킨다.“일체의 법상도 또한 이와 같다.”는 것은 심상이 공적하다는 것을 거듭 결론 맺은 것이다. 곧 심상과 아상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 밖의 일체의 유위법과 무위법 내지 유상有上과 무상無上 등의 상相도 역시 무상심無相心 가운데서는 벗어나지 못할 까닭이 없음을 가리킨다.
b) 소멸견消滅見인 번뇌에 대하여 생제生際와 멸제滅際의 견해를 타파함
이하부터는 두 번째의 문답이다. 앞의 첫 번째의 문답은 총체적으로 유상문有相門을 타파한 설명이었다. 여기 이 문답은 개별적으로 두 가지 계박(二縛)을 벗어나는 문을 드러낸다. 곧 두 가지 병을 개별적으로 들어 그 처방약을 질문한다.
(a) 망아妄我와 망심妄心에 대한 질문
경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일체중생에게 망아妄我가 있거나 망심妄心이 있으면 어떤 법으로 중생을 일깨워 그 결박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합니까?”
논 “망아가 있다.”는 것은 인집人執(주관에 대한 집착)의 병이고, “망심이 있다.”는 것은 법집法執(객관에 대한 집착)의 병이다. -
001_0612_c_01L不可得。是故亦言本無本處。謂從本
001_0612_c_02L來無其本處。旣無本種亦無本處。
001_0612_c_03L當知心相本來無生。以之故言空寂
001_0612_c_04L無生。如是觀察不得生時。其能觀心
001_0612_c_05L亦無所生。是時卽入本來空寂。所入
001_0612_c_06L空寂卽是一心。一切所依名之爲
001_0612_c_07L地。故言卽入空寂。空寂心地雖諸
001_0612_c_08L衆生本來流轉。恒取有相。然依此
001_0612_c_09L門推求觀察。卽能得本空心。故言
001_0612_c_10L卽得心空。心空空心語有左右。只
001_0612_c_11L是一心本覺之義。正答所問竟在於
001_0612_c_12L前。此下結答。無相之心者。擧一心
001_0612_c_13L體。無心無我者。結前所說。空寂無
001_0612_c_14L生。無相心中。離心我相。一切法相亦
001_0612_c_15L如是者。重結空寂。非直離此心我二
001_0612_c_16L相。其餘一切有爲無爲乃至有上無
001_0612_c_17L上等相。無相心中無不離故。
001_0612_c_18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一切衆生。
001_0612_c_19L若有我者。若有心者。以何法覺。令彼
001_0612_c_20L衆生。出離斯縛。
001_0612_c_21L自此已下第二問答。前一問答摠
001_0612_c_22L明破有相門。今此問答別顯離二縛
001_0612_c_23L門。別擧二病以問其藥。言有我者。
001_0612_c_24L人執之病。若有心者。法執之病。言
-
001_0613_a_01L“그 결박”이란, 개별적으로 말하면 인집은 거칠고 무거운 계박(麤重縛)이고 법집은 분별상에 대한 계박(相縛)이며, 통틀어 설하면 인집과 법집에 모두 거칠고 무거운 계박(麤重縛)과 분별상에 대한 계박(相縛)이 있다. 또한 인집과 법집에는 모두 상응하는 계박(相應縛)과 주체적으로 반연하는 계박(能緣縛)이라는 두 가지 계박이 있는데, 『이장장二障章』99)에 그 뜻이 설명되어 있다.
(b) 망아妄我와 망심妄心에 대한 답변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집을 대치하고, 둘째는 법집을 대치한다.
ⓐ 인집을 대치함
인집을 대치하는 것에도 첫째는 총체적으로 대치하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대치한다.
ㄱ. 총체적으로 대치함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선남자여, 자아(我)가 있다고 보는 자에게는 십이인연을 관찰하게 하라.
논 이것은 총체적으로 대치하는 부분이다. 십이지인연의 관찰에 대략 두 가지가 있다.첫째는 작자作者의 연이 없이 발생함을 관찰하는 것으로 작자에 대한 집착을 대치한다. 마치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고 설하는 경우와 같다.둘째는 상주常住의 연이 없이 발생함을 관찰하는 것으로 상주에 대한 집착을 대치한다. 마치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난다.”고 설하는 경우와 같다. 망아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는 것은 작자와 상주에 대한 집착이 근본이 된다. 그 근본이 없어지기 때문에 모든 지말도 따라서 멸한다.
ㄴ. 개별적으로 대치함
경 십이인연은 본래 인因과 과果를 따른다. 인과 과가 일어나는 것은 마음의 작용(心行)이 일으킨다. 그러나 마음도 없는데 어찌 몸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아가 있다고 보는 자에게는 그 유견有見을 없애 주고, 자아가 없다고 보는 자에게는 그 무견無見을 없애 줘야 한다.100)
논 이것은 개별적으로 대치하는 부분이다.개별적으로 대치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황치況治(번뇌를 비교하여 대치함)이고, 둘째는 축치逐治(번뇌를 따라서 대치함)이다.
ㄱ) 황치況治
황치의 경우 “본래 인과 과를 따른다.”는 것은 총체적 입장을 따라 개별적 입장을 내는 것이다. 총체적 입장에서 말하면, 오직 인因과 과果일 뿐이다. 과거의 인에서 무명無明·행行의 두 가지가 나오고, 현재의 인에서 애愛·취取·유有의 세 가지가 나온다. 현재의 과에서 식識·명색名色·육처六處·촉觸·수受의 다섯 가지가 나오고, 미래의 과에서 생生·노사老死의 두 가지가 나온다.101) 또한 인에서 무명·행·식·명색·육처·촉·수·애·취·유의 열 가지가 나오고, 과에서 생·노사의 두 가지가 나온다. 그러므로 근본은 오직 인과 과일 뿐이다.“인과 과가 일어나는 것은 마음의 작용(心行)이 일으킨다.”는 것은 인과 과가 일어나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 근본임을 말한다. 마음이 인을 만들고 마음이 그 과를 받기 때문이다.“그러나 마음도 없는데 어찌 몸이 있겠는가.”라는 것은 위의 설명에 의거하여 인과의 도리를 관찰하면 -
001_0613_a_01L斯縛者。別而言之。人執是麁重縛。
001_0613_a_02L法執是相縛。通而說之。二執皆有
001_0613_a_03L麁重相縛。又此二執皆有二縛。謂
001_0613_a_04L相應縛及能緣縛。二障章中其義已
001_0613_a_05L具。答中有二。先治人執。後治法執。
001_0613_a_06L治人執中。先摠後別。
001_0613_a_07L佛言。善男子。若有我者。令觀十二因
001_0613_a_08L緣。
001_0613_a_09L此是摠治。觀十二支略有二門。一
001_0613_a_10L觀無作緣生。治作者執。如說是事有
001_0613_a_11L故是事有。二觀無常緣生。治常住執。
001_0613_a_12L如說是事生故是事生。存我之來此
001_0613_a_13L二爲本。本旣除故諸末隨滅也。
001_0613_a_14L十二因緣。本從因果。因果所起。興於
001_0613_a_15L心行。心尙不有。何況有身。若有我者。
001_0613_a_16L令滅有見。若無我者。令滅無見。
001_0613_a_17L此是別治。別治有二。一者況治。二
001_0613_a_18L者逐治。況治中言本從因果者。從
001_0613_a_19L摠出別。摠而言之。唯因與果。從因
001_0613_a_20L出二三。從果出五二。又從因出十支。
001_0613_a_21L從果說二支。故所從本但是因果。
001_0613_a_22L因果所起興於心行者。因果之起
001_0613_a_23L心行爲本。心能作因心受果故。心
001_0613_a_24L尙不有。何況有身者。依上所說觀察
-
001_0613_b_01L마음도 없는데 하물며 마음이 만드는 색신이 어찌 있겠느냐는 것이다. 몸과 마음조차 없는데 하물며 자아가 있겠는가. 또한 마음이 없으므로 인과 과도 역시 공하다. 인과 과조차 공한데 하물며 자아가 있겠는가. 또한 인과 과가 공하기 때문에 십이지인연이 공한데 하물며 인을 만드는 자아와 과를 받는 자가 있겠는가. 경문에서 “보살은 십이인연이 마치 허공과 같아서 끝이 없다고 관찰한다.”102)고 말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황치에 대한 설명은 이상으로 마친다.
ㄴ) 축치逐治
축치는 어떤 것인가. 말하자면 “만약 자아가 있다고 보는 자에게는 그 유견有見을 없애 줘야 한다.”는 것은 위의 황치로써 남아 있는 아집을 타파하고 없애 준다는 것을 이어받은 것이다.“만약 자아가 없다고 보는 자에게는 그 무견無見을 없애 줘야 한다.”는 것은 바로 무아에 집착하는 병을 따라서 타파해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아집을 타파하여 외도의 병을 벗어났지만 다시 무아에 집착하여 이승의 병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무아에 집착하는 견해를 따라서 타파한다. 자아(我)도 본래 실유(有)가 아닌데 하물며 자아의 소멸(無)이 있겠는가.103)이상으로 총체적인 관찰과 개별적인 관찰로써 아집을 타파하는 것을 마친다.
ⓑ 법집을 대치함
이하는 둘째로 존심存心(마음이 발생하거나 소멸한다고 간주하는 것)에 대한 견해를 대치한다.104)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치正治이고, 둘째는 중석重釋이다.
ㄱ. 정치正治
경 그래서 만약 마음이 발생한다고 보는 경우에는 소멸된다는 자성(滅性)을 없애 주고, 만약 마음이 소멸한다고 보는 경우에는 발생한다는 자성(生性)을 없애 줘야 한다. 이처럼 없애 준다(滅)는 그것이야말로 견성으로서 곧 실제에 들어가는 것이다.
논 이승인의 경우에는 법집이 마음에 남아 있어 생멸하는 무상한 마음이 있다고 간주한다. 그러므로 생멸을 타파하고 존심存心(생멸을 타파했지만 아직 생멸을 타파했다는 마음을 깨끗이 제거하지 못한 상태)에 대한 견해를 없애 준다. 만약 존심이 발생하여 병이 되는 자에게는 앞서 소멸되었다는 자성(滅性)으로 타파해 준다. 요컨대 저 소멸되었다는 자성에 의거하여 지금 발생한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후의 미래에 소멸하는 것을 보고 그 이전의 현재의 마음이 있다고 집착한다면, 그것은 마음이 설령 불멸한다고 해도 토끼의 뿔과 같은 경우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견해를 타파하여 발생한다는 자성(生性)을 없애 준다. 발생하는 것이 없다면 소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없애 준다(滅)는 그것이야말로 곧 견성으로 실제에 들어가는 것이다.”라는 것은 자성이 소멸한다고 보는 견해를 없애면 반드시 발생한다는 견해에 절대로 집착하지 않고, -
001_0613_b_01L道理心不可得。況心所作色身是有
001_0613_b_02L乎。身心尙無。況有我耶。又心不有
001_0613_b_03L故因果亦空。因果尙空。況有我乎。
001_0613_b_04L又因果空故十二支空。況有作者受
001_0613_b_05L者等耶。如經言。菩薩觀十二因緣
001_0613_b_06L如虛空不可盡。此之謂也。已說況破。
001_0613_b_07L云何逐治。謂若有我者令滅有見者。
001_0613_b_08L牒前況破滅存我執。若無我者令
001_0613_b_09L滅無見者。此正逐破無我之病。所以
001_0613_b_10L然者。先破我執離外道病。而取無
001_0613_b_11L我墮二乘病故。今逐破着無之見。
001_0613_b_12L我本非有。況有我無。故摠別二觀
001_0613_b_13L破我執竟。
001_0613_b_14L若心生者。令滅滅性。若心滅者。令滅
001_0613_b_15L生性一本云。若心生者令滅生
性。若心滅者。令滅滅性 [9] 滅是見性。卽
001_0613_b_16L入實際。
001_0613_b_17L此下第二治存心見。於中有二。正治
001_0613_b_18L重釋。二乘人等法執存心。計有生
001_0613_b_19L滅無常之心。故破生滅。滅存心見。
001_0613_b_20L若存心生而成病者。破前滅性。要依
001_0613_b_21L彼滅存今生故。若見後滅執有現
001_0613_b_22L心。心設不滅如兎角故。破如是見
001_0613_b_23L令滅生性。無生有滅不應理故。滅
001_0613_b_24L是見性卽入實際者。破見滅性必
-
001_0613_c_01L자성이 발생한다고 보는 견해를 타파하면 자성이 소멸한다는 견해에 절대로 집착하지 않게 되며, 생·멸에 집착하지 않으면 반드시 존심이 없기 때문이다.
ㄴ. 중석重釋
경 왜냐하면 본생本生은 불멸이고 불멸은 불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멸은 불생이고 불생은 불멸인데, 일체법의 실상도 또한 그와 같다.”
논 이것은 거듭 해석한 것이다.어째서 마음이 발생하는 경우를 보면 소멸된다는 자성으로 없애 주고, 마음이 소멸하는 경우를 보면 발생한다는 자성으로 없애 줘야 하는가. 바로 이런 까닭에 “왜냐하면”이라고 한 것이다.다음은 이 질문에 대한 해석이다.“본생은 불멸이다.”라는 것은 이전에 발생한 마음을 영원히 찾을 수가 없는데 찾을 수 없는 그 법에 어찌 소멸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과거의 마음에 소멸되는 자성이 없은즉 현재의 마음이 발생하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불멸은 불생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소멸되는 자성을 없애는 이유를 해석한 것이다.다음의 “불멸은 불생이다.”라는 것은 과거에 소멸이 없다면 현재에 발생도 없음을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현재의 마음에 발생하는 자성이 없으면 곧 이 마음의 소멸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불생은 불멸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발생하는 자성을 없애는 이유를 해석한 것이다. 심법에는 소멸도 없고 발생도 없듯이 기타 제법의 경우도 역시 똑같이 관찰하기 때문에 “일체법의 실상도 또한 그와 같다.”고 말한다.
문 만약 마음이 발생한다고 계탁하면 발생한다는 바로 그 마음을 타파하면 될 터인데, 어째서 굳이 저 과거심이 소멸된다는 견해를 타파하는가?답 지금 발생한 그 마음은 현재이므로 타파가 쉽지 않지만, 과거심은 이미 지나가 버렸으므로 공하다고 이해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먼저 쉬운 것을 타파하고 나서 어려운 것을 없앤다. 이런 차제에 의거해서 현재심이 발생한다는 자성을 타파하고, 그로 말미암아 미래심이 소멸한다는 것에 대한 집착까지도 없애 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소위 의왕醫王(부처님)의 훌륭한 묘술이다.
c) 능멸견能滅見인 약藥으로 유변과 무변의 견해를 타파함
경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만약 어떤 중생이 제법이 생겨난다고 본다면 어떤 견해를 없애도록 해야 합니까?”
논 이하부터는 세 번째의 문답이다.위의 문답에서는 소멸되어야 할 편견의 번뇌(病)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런데 이 문답에서는 능멸能滅하는 견해에 해당하는 약藥에 대하여 드러낸다. -
001_0613_c_01L不取生。破見生性必不取滅。不取
001_0613_c_02L生滅必不存心故。
001_0613_c_03L何以故。本生不滅。不一本
作本滅不生。不滅
001_0613_c_04L不生。不生不滅。一切法相。 [10] 亦復如是。
001_0613_c_05L此是重釋。何以見心生者。令滅滅性。
001_0613_c_06L見心滅者。令滅生性。故言何以故。
001_0613_c_07L次釋此問。本生不滅者。求前生心永
001_0613_c_08L不可得。不可得有何法而滅。如是
001_0613_c_09L不存前心滅性卽不得取今心之生。
001_0613_c_10L故言不滅不生。是釋令滅滅性之由。
001_0613_c_11L次言不滅不生。牒前不滅今不得生。
001_0613_c_12L如是不得今心生性。則不得取此心
001_0613_c_13L之滅。故言不生不滅。是釋令滅生性
001_0613_c_14L之由。如於心法無滅無生。其餘諸
001_0613_c_15L法亦同是觀。故言一切法亦如是。問。
001_0613_c_16L若計心生眞破此生。何須破彼前
001_0613_c_17L心之滅。答。今生是現破有不易。前
001_0613_c_18L心己過解空不難。故先破易而遣其
001_0613_c_19L難。依此次第破今生性。由是卽遣
001_0613_c_20L後滅之執。是謂醫王善巧之術耶。
001_0613_c_21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若有衆生。
001_0613_c_22L見法生時。令滅何見他本有見法滅時。
令滅何見八字。 [11]
001_0613_c_23L此下第三問答。次前問答明所滅之
001_0613_c_24L見之病。今此問答顯能滅之見之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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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4_a_01L또한 위에서는 생제生際와 멸제滅際의 견해를 타파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유변과 무변의 견해를 타파한다. 여기의 질문은 “만약 관행觀行하는 사람이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뜻을 따라 심법이 발생한다고 관찰할 경우, 어떤 견해를 없애도록 해야 하는가.”의 뜻이다.“어떤 견해를 없애도록 해야 합니까?”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뜻을 물은 것이다. 곧 마음이 발생하는 한 측면만 언급하고 있지만, 아울러 그것으로 발생된 마음을 없애 주는 관행의 측면까지 싸잡아서 드러내 준 것이다.
경 부처님께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만약 어떤 중생이 제법이 생겨남을 볼 때에는 무無라는 견해를 없애도록 하고, 제법이 소멸함을 볼 때에는 유有라는 견해를 없애도록 한다. 만약 이와 같은 견해가 사라지면 제법의 진무眞無를 증득하여 결정성에 들어가는데, 그것이 곧 결정무생이다.”
논 “제법이 생겨남을 볼 때”란 세속법이 인연으로 발생함을 정관正觀하는 때이다. 이때 공에 집착하는 견해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세속이) 무라는 견해를 없애게 한다.”고 하였다.“제법이 소멸함을 볼 때”란 세속법이 본래 소멸됨을 정관하는 때이다. 이때 유에 집착하는 견해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세속이) 유라는 견해를 없애게 한다.”고 하였다.(문) 여기에서 무슨 까닭에 “없애게 한다.”고 말하는가?(답) 부처님의 가르침은 관찰하는 자에게 관찰대상에 대한 집착을 없애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 뜻을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관행을 닦는 자가 법의 발생을 관찰할 때에는 단지 없다고 집착하는 견해를 벗어날 뿐이지 생긴다는 생각을 두지 않고, 법의 적멸을 관찰할 때에는 오직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를 벗어날 뿐이지 소멸하다는 생각을 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만약 생긴다는 생각을 두면 생기는 것은 본래 적멸한 것이고, 만약 소멸한다는 생각을 취하면 소멸이 곧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래 「진성공품」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과 같다.
因緣所生義 인연을 말미암아 발생한다는 것은
是義滅非生 소멸이지 발생이 아니라는 뜻이다
滅諸生滅義 발생과 소멸조차 없어진다는 것은
是義生非滅 발생한다는 뜻이지 소멸이 아니다
그러므로 양변을 벗어나고 중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무를 벗어나 유에 집착하거나 유를 타파하고 공에 집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망공妄空이지 진무眞無가 아니다. 이에 비록 유를 벗어났지만 공에 집착하지 않아야만 내지 제법의 진무를 터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법의 진무를 터득한다.”고 하였다.“결정자성”에 대한 뜻은 위에서 이미 설한 바와 같다. 진공을 터득할 경우에 심법이 불생임을 관찰하여 일체의 유심과 무심을 벗어난 까닭에 “결정무생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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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4_a_01L又前破生滅二際之見。今破有無二
001_0614_a_02L邊之見。今問意言若觀行者。順佛
001_0614_a_03L敎意觀法生時令滅何見。滅何見
001_0614_a_04L者。問佛敎意。且擧一邊兼顯觀滅。
001_0614_a_05L佛言。菩薩。若有衆生。見法生時。令滅
001_0614_a_06L無見。見法滅時。令滅有見。若滅是見。
001_0614_a_07L得法眞源無。 [12] 入決定性。決定無生。
001_0614_a_08L見法生時者。正觀俗法因緣生時。此
001_0614_a_09L時能離取空之見。故言令滅無見。見
001_0614_a_10L法滅時者。正觀俗法本來滅時。此時
001_0614_a_11L能離取有之見。故言令滅有見。此中
001_0614_a_12L何故言令滅者。佛敎能令觀者滅故。
001_0614_a_13L此意正明。修觀行者。觀法生時。只離
001_0614_a_14L無見而不存生。觀寂滅時。唯離有見
001_0614_a_15L而不取滅。所以然者。若存生耶。生本
001_0614_a_16L寂滅。若取滅耶。滅卽生起。如下頌
001_0614_a_17L曰。因緣所生義。是義滅非生。滅諸
001_0614_a_18L生滅義。是義生非滅。所以能離二邊
001_0614_a_19L而不着中。如其離無取有破有取空。
001_0614_a_20L此爲妄空而非眞無。今雖離有而不
001_0614_a_21L存空。如是乃得諸法眞無故。言得法
001_0614_a_22L眞無。決定性義如前已說。得眞空
001_0614_a_23L時觀心不生遠離一切有無心故。
001_0614_a_24L故言決定無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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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4_b_01Ld) 허망한 견해 때문에 유생에 머물러 벗어나지 못함을 드러냄
이하부터는 네 번째의 문답이다.
(a) 무생에 대한 질문
경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저 중생으로 하여금 무생에 머물도록 하면 그것이 무생입니까?”
논 이전에는 참된 관행으로 양변을 벗어난 모습을 설명하였다. 여기에서는 허망한 견해 때문에 유생에 머물러 벗어나지 못함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어설프게 관행을 닦은 사람이 의언분별意言分別로 법의 무생을 관찰하고 산란심을 섭수하여 무생의 경계에 머물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생이다.”라고 간주하고, 나중에 출정해서는 증상만을 일으켜서 “나는 이미 무생법인을 터득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병을 타파하기 위하여 병을 거론하여 “무생에 머물도록 하면 그것이 무생입니까?”라고 질문한 것이다.
(b) 무생에 대한 답변
답변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간략하게 답변하고, 둘째는 거듭 상세하게 설명한다.
ⓐ 간략한 답변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무생無生에 머물면 그것은 곧 생生이다. 왜냐하면 무생에조차 머물지 않아야 곧 무생이기 때문이다.
논 이것은 간략하게 답변한 대목이다. 여기에 두 가지 구절이 있다.
ㄱ. 생을 순차적으로 설명
상구上句는 그것이 생生인 이유를 순차적으로 설명한다. 무생의 경계에 머무는 것은 곧 분별심이 발생한 까닭이라는 것이다.
ㄴ. 무생을 역차적으로 해석
하구下句는 반대의 경우를 들어 그것이 무생인 이유를 역차적으로 해석한다. 만약 마음이 무생의 경계에 머물지 않으면 모든 분별을 벗어난 것으로 곧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머무름이 있으면 무생법인이 아닌 줄 알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역차적으로 해석한 것이다.이상으로 간략하게 답변한 경문을 마친다.
ⓑ 거듭 상세한 설명
경 보살이여, 만약 무생無生이 생기면 생生으로써 (경계의) 생김을 없애야 한다. 생과 멸이 함께 없어져 본래의 생이 생기지 않으므로 마음이 항상 공적하다. 공적하여 머무름이 없어 마음에 집착이 없으니, 이것이 무생이다.”
논 이것은 거듭 상세하게 설명하는 대목이다.여기에 두 부분이 있다. 첫째는 생生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둘째는 무생無生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한다.만약 무생의 경계에 대해 머무름이 있는 마음(有住心)이 생기면 생生으로써 그 경계의 생김을 없애기 때문에 “만약 무생이 생기면 생으로써 (경계의) 생김을 없애야 한다.”라고 하였다. 비록 경계의 생김을 없앴지만 -
001_0614_b_01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令彼衆生。
001_0614_b_02L住於無生。是無生耶。
001_0614_b_03L此下第四問答。前明眞觀離二邊相。
001_0614_b_04L今顯妄解不離生住。謂有寡學修觀
001_0614_b_05L行者。意言分別。觀法無生能攝散
001_0614_b_06L亂住無生境。作如是念。謂是無生。
001_0614_b_07L後出定時。起增上慢。意謂已得無生
001_0614_b_08L法忍。爲破是病。擧病問言。住於無
001_0614_b_09L生是無生耶。
001_0614_b_10L佛言。住於無生。卽是有生。何以故。無
001_0614_b_11L住無生。乃是無生。
001_0614_b_12L答中有二。略答重詳。此卽略答。有
001_0614_b_13L其二句。上句順明是生。住無生境。
001_0614_b_14L卽是分別之心生故。下句反釋無生。
001_0614_b_15L若心無住於無生境離諸分別。是無
001_0614_b_16L生忍。故知有住非無生忍。如是反釋。
001_0614_b_17L略答文竟。
001_0614_b_18L菩薩。若生無生。以生滅生。生滅俱滅。
001_0614_b_19L本生不生。心常空寂。空寂 [13] 無住。心無
001_0614_b_20L有住。乃是無生。
001_0614_b_21L此是重詳。於中有二。先詳是生。後
001_0614_b_22L詳無生。若有住心生於無生之境。
001_0614_b_23L卽是以生滅其境界之生。故言若生
001_0614_b_24L無生以生滅生。雖滅境界之生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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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4_c_01L그것이 소멸한 무無를 취한다면, 소멸된 무의 경계에 대해 취하려는 마음(能取心)이 생겨 생과 멸이 함께 있게 되니 어찌 무생無生이라고 하겠는가. 이와 같은 두 구절은 앞에서 말한 생生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 것이다.진정한 무생법인은 그렇지 않다. 밖으로는 집착되는 경계의 소멸이 남아 있지 않고 안으로는 집착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생멸이 모두 없어진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모두 없어진다.’고 한 것은 무無로 돌아가는 것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 본생本生을 추구해 보면 그것이 생기는 것을 얻지 못한다. 이미 생기는 것을 얻지 못하는데, 어떻게 도리어 없앨 수 있겠는가. 이때 본래 공적함을 증득하므로 “본래의 생이 생기지 않으므로 마음이 항상 공적하다.”라고 하였다.이와 같은 공적의 경계는 능·소에 평등하여 공의 경계에 머무는 마음도 없으므로 “공적하여 머무름이 없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아야 무생법인이라 할 수 있으므로 “이것이 무생이다.”라고 하였다.무생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에서 마쳤다.
㉯ 일각심을 드러냄
이하는 일각一覺의 뜻을 펼친 것으로 여기에 여덟 가지 문답이 있다. 이것을 둘로 나누면, 첫째와 둘째의 두 가지 문답은 일각 여래장의 뜻을 바로 펼쳐 보인 것이고, 셋째부터 여덟째까지 여섯 가지 문답은 인론생론因論生論(총론을 인하여 각론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모든 의난疑難을 없앤 것이다.
a. 일각 여래장의 뜻을 바로 펼침
a) 시각이 본각의 여래장성과 다르지 않음을 설명함
(a) 마음에 집착이 없음에 대한 질문
경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마음에 집착(有住)이 없는데 어떻게 닦고(修) 익히길래(學) 유학有學의 경지가 되고 무학無學의 경지가 되는 것입니까?”105)
논 지금 이 대목은 첫째의 문답 가운데 “마음에 집착(有住)이 없는 것”에 대하여 질문한 것이다. 만약 유학有學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곧 무집착(無住)이 아닐 것이고, 만약 무학無學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곧 관행觀行도 없어야 할 것이다. 또 만약 유학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마음이 발생한 것이지만, 만약 무학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단지 헛된 도리(空理)에 불과할 뿐이다.
(b) 마음에 집착이 없음에 대한 답변
여기에서는 첫째로 도리를 드러내고, 둘째로 본격적으로 답변한다.
ⓐ 도리를 드러냄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보살이여, 무생의 마음이란 그 마음에 나고(出) 듦(入)이 없는 본각 여래장으로서 그 자성이 적연부동하다.
논 첫째의 도리를 드러낸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
001_0614_c_01L取其滅之無。於滅無境能取心生。
001_0614_c_02L生滅俱存。豈曰無生耶。如是二句
001_0614_c_03L詳前是生。眞無生忍卽不如是。外
001_0614_c_04L不存於所取之滅。內不生其能取之
001_0614_c_05L生。以之故言生滅俱滅。然此俱滅
001_0614_c_06L非謂還無。推求本生不得其生。旣
001_0614_c_07L不得生何得還滅。于時證會本來空
001_0614_c_08L寂。故言本生不生心常空寂。如是空
001_0614_c_09L寂能所平等。無能住心住於空境。
001_0614_c_10L故言空寂無住。如是乃名無生法忍。
001_0614_c_11L故言乃是無生。演無生觀竟在於
001_0614_c_12L前。
001_0614_c_13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心無有住。
001_0614_c_14L有何修學。爲有學也耶。爲無學也。
001_0614_c_15L此下廣一覺義。於中有八問答。科爲
001_0614_c_16L二分。前二問答正廣一覺如來藏義。
001_0614_c_17L後六問答因論生論遣諸疑難。今
001_0614_c_18L此初問。問心無住。若有學者。卽非
001_0614_c_19L無住。若無學者。卽非觀行。又若有
001_0614_c_20L學者。應有心生。若無學者。只是空
001_0614_c_21L理。
001_0614_c_22L佛言。菩薩。無生之心。心無出入。本如
001_0614_c_23L來藏。性寂不動。
001_0614_c_24L此中。先顯道理。後正對問。顯道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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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5_a_01L무주의 경지를 터득할 경우에 무생의 마음이란 그 마음이 항상 적멸하여 관행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고, 본래 무기無起임을 통달하는 것이기에 또한 애초부터 들어간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에 나고 듦이 없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음에 이미 나고 듦이 없음을 관찰하면 그것이 곧 본각인 여래장심이다. 이것은 시각始覺이 곧 본각本覺과 동일함을 설명한 것이다. 이 무생의 마음은 이미 본각인 여래장으로서 그 자성이 적연하여 다시는 기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 들고(入)·나며(出)·일어나고(起)·쉼(息)이 있겠는가.이것은 “나고 듦이 없다.”는 뜻을 거듭 말한 것이다.
ⓑ 질문에 답변함
경 그래서 또한 유학有學도 아닐뿐더러 또한 무학無學도 아니다. 유학과 불학이 없는 그것이 곧 무학이고, 유학이 없지 않은 그것이 곧 소학이다.”
이 대목은 둘째로 질문의 뜻에 본격적으로 대답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정적인 방식의 답변이고, 둘째는 긍정적인 방식의 답변이다.이미 애초부터 들어감이 없으므로 유학이 아니고, 또한 끝내 나옴이 없으므로 무학도 아니다. 또한 능주심能住心(수행의 상에 머무는 마음)이 없으므로 유학이 아니고, 무주심無住心(수행의 상에 머묾이 없는 마음)이 없지 않으므로 무학도 아니다. 이것은 모두 부정적인 방식으로 부정하고 그치게 하는 구절이다.“유학과 불학이 없는 그것이 곧 무학이고”라는 것은 별도로 익혀야 할 것이 없은즉 그것은 능학이 아니다. 이런 뜻에서 곧 무학임을 긍정한 것이다. 이것은 유학이 아니라는 뜻에 의하여 그것이 무학임을 긍정한 것이다.“유학이 없지 않은 그것이 곧 소학이다.”라는 것은 비록 유주有住의 관행은 아닐지라도 무주無住의 관행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뜻에서 곧 유학을 긍정한 것이다. 이미 유학이기 때문에 이하에서는 그 경지가 소학이 된다. 이것은 무학이 아니라는 뜻에 의하여 곧 유학을 긍정한 것이다.이 대목은 유학과 무학을 모두 긍정하여 자재하게 답변한 것이다.
b) 여래장성은 은장隱藏되어 부동임을 설명함
경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여래장의 자성이 적연부동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논 이하 부분은 둘째의 문답이다.106)첫째의 문답에서는 시각이 본각인 여래장의 자성과 다르지 않음을 설명하였다. -
001_0615_a_01L者。得無住時無生之心。心常寂滅
001_0615_a_02L無有出觀。達本無起亦非始入。以
001_0615_a_03L之故言心無出入。如是觀心旣無
001_0615_a_04L出入。卽是本覺如來藏心。是明始覺
001_0615_a_05L卽同本覺。此無生心旣是本藏。本
001_0615_a_06L來性寂不復起動。云何得有入出起
001_0615_a_07L息。此言重成無出入義。
001_0615_a_08L亦非有學。亦非無學。無有學不學。是
001_0615_a_09L卽無學。非無有學。是爲所學。
001_0615_a_10L此是正對問意。於中有二。先遮後許。
001_0615_a_11L旣非始入故非有學。亦無終出故
001_0615_a_12L非無學。又無能住之心故非有學。
001_0615_a_13L不無無住之心故非無學。此是俱遮
001_0615_a_14L遮止句也。無有學不學是卽無學者。
001_0615_a_15L以無別所學卽不是能學。由是義故
001_0615_a_16L許是無學。此依非有學義。許是無學
001_0615_a_17L也。非無有學。是爲所學者。雖非有
001_0615_a_18L住之觀。非無無住之行。以是義故
001_0615_a_19L許是有學。旣有學故下地所學。此
001_0615_a_20L依非無學義。許是有學也。此是俱許
001_0615_a_21L自在答也。
001_0615_a_22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云何如來
001_0615_a_23L藏性寂不動。
001_0615_a_24L此下第二問答。前明始覺不異本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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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5_b_01L여기 둘째의 문답에서는 여래장의 자성은 은장隱藏되어 부동임을 본격적으로 설명한다. 이제 여래장의 뜻을 간략하게 설명한다.여래장의 문에는 두 가지의 해석 혹은 세 가지의 해석이 있다.107) 소위 세 가지 해석을 『부증불감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생계에는 세 가지 법을 보였는데, 그것은 모두 진실하고 여여하여 서로 다름도 없고 차별도 없다. 세 가지 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래장은 본제에 상응하는 자체이고 또 청정한 법이다. 이 법은 여실하여 허망한 적도 없고, 벗어난 적도 없으며, 떠난 적도 없어 지혜가 부사의한 법이다. 시작이 없는 본제本際로부터 온 것이다. 이것은 곧 청정한 본제로서 진여에 상응하며 법계의 자체이다. 둘째, 여래장은 본제에 불상응하는 자체이고 번뇌에 얽힌 불청정한 법이다. 이것은 본제로부터 유래한 것이지만 그로부터 떠나 있고 불상응하며 번뇌에 얽혀 있는 불청정법이다. 그래서 오직 여래가 깨친 지혜로만 단제할 수 있다. 셋째, 여래장은 미래제까지 평등하고 영원히 존재하는 법이다. 곧 이것은 일체제법의 근본으로서 일체법을 갖추고 일체법이 온전하여 세간법 속에서도 떠나지 않는다.108)
생각해 보면 이것은 세 종류의 여래장의 문을 드러낸 것이다. 세 종류는 무엇인가.첫째는 능섭여래장能攝如來藏이다. 자성에 머무를 경우에 과지果地의 여래의 공덕을 능섭하는 것이다. 여래를 능섭하므로 여래장이라 말한다.둘째는 소섭여래장所攝如來藏이다. 말하자면 번뇌에 얽혀 있는 불청정법의 일체가 다 여래의 지혜에 들어 있어서 모두 여래에게 섭지攝持되어 있다. 여래에 소섭되므로 여래장이라 말한다.셋째는 은부여래장隱覆如來藏이다. 말하자면 법신여래가 번뇌에 묻혀 있는 것이다. 여래가 자체를 감추고 있으므로 여래장이라 말한다.109) 곧 진제삼장은 이와 같이 말했다.110)
글의 내용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미래제까지 평등하고 영원히 존재하는 법이다.”라는 것은 일심의 본체가 과거제·현재제·미래제에 편재한다는 것이다. -
001_0615_b_01L如來藏性。今者正顯如來藏性隱
001_0615_b_02L藏不動。此中略明如來藏義。如來藏
001_0615_b_03L門有二有三。所言三者。如不增不
001_0615_b_04L減經言。衆生界中示三種法。皆眞
001_0615_b_05L實如不異不差。何謂三法。一者。如
001_0615_b_06L來藏本際相應體及淸淨法。此法如
001_0615_b_07L實不虛妄。不離不脫智不思議法。無
001_0615_b_08L始本際來有此淸淨相應法軆。二者。
001_0615_b_09L如來藏本際不相應體及煩惱纒不
001_0615_b_10L淸淨法。此本際離脫不相應煩惱纒
001_0615_b_11L不淸淨法。唯有如來菩提智之所能
001_0615_b_12L斷。三者。如來藏未來際平等恒及
001_0615_b_13L有法。卽是一切諸法根本。備一切法
001_0615_b_14L具一切法。於世法中不離不脫。案
001_0615_b_15L云。是顯三種如來藏門。何等爲三。
001_0615_b_16L一者。能攝如來藏。住自性時能攝
001_0615_b_17L果地如來功德。能攝如來名如來藏
001_0615_b_18L故。二者。所攝如來藏。謂煩惱纒不
001_0615_b_19L淸淨法一切皆在如來智內。皆爲如
001_0615_b_20L來之所攝持。如來所攝名如來藏。
001_0615_b_21L三者。隱覆如來藏。謂法身如來煩
001_0615_b_22L惱所覆。如來自隱名如來藏。眞諦
001_0615_b_23L三藏作如是說。消其文者。言未來
001_0615_b_24L際平等恒及有者。一心之體遍於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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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5_c_01L그런데 앞의 첫째와 둘째에서 이미 본제를 드러냈기 때문에 셋째에서는 후제 곧 미래제까지 평등하고 영원히 존재하는 법임을 설명하였다. 또한 ‘여래’의 뜻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니, 소위 “미래제까지 평등하고 영원하다.”는 것은 ‘여’의 뜻이고, 또 “존재하는 법”은 ‘래’의 뜻이다. 이는 『불성론』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 것과 같다.
보살의 일심진여는 진여가 없는 가운데서도 진여이고, 진여가 없지 않은 가운데서도 또한 진여이다. 그러나 이승의 진여는 진여가 없는 가운데서는 진여이지만, 진여가 없지 않은 가운데서는 진여가 아니다. 어째서 그런가. 이승인은 허망한 관찰에 의거하여 무상無常 등의 형상(相)을 진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허망한 관찰은 오직 인지因地에만 있고 과지果地에는 없다. 이런 까닭에 이승의 진여는 성成과 괴壞에 있어서 인지에서는 성成이지만 과지에서는 괴壞이다. 그러나 보살의 진여는 허망을 벗어나 참된 자성에 의거하여 진여를 관찰한다. 그러므로 보살의 진여는 인지와 과지에 다름이 없이 오직 성成일 뿐, 괴壞는 없다. …….111)
그러므로 “미래제까지 평등하고 영원하다.”는 것은 대승에서 말하는 진여의 뜻을 곧장 드러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존재하는 법”이 ‘래’의 뜻이라고 한 것은 유루의 제법이 지나가는 것(去)임에 상대하여 일심은 다가오는 것(來)임을 드러낸 것이다. 저 제법이 지나가는 것에 대하여 말하자면 오취온법五取蘊法의 경우는 과지에 이르지 못하여 지나가면 돌아오지 못하지만, 일심진여의 경우는 과지에서도 존재하여 영원히 지나감이 없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법은 여래에서 ‘래’의 뜻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하였다. 『불성론』에서 “자성에 머무는 것으로부터 지득至得(佛地를 가리킨다)에 이른 것이다.”112)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이와 같이 일심은 두루 일체의 염染과 정淨 등 제법이 의지하는 바이므로 곧 “제법의 근본이다.”라고 하였다. 본래의 적정문寂靜門으로 항사의 공덕을 갖추지 않음이 없으므로 “일체법을 갖추었다.”고 하였다. 수연의 기동문起動門으로 항사의 염법을 구비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일체법을 구비하였다.”고 하였다.염법을 가지고 심체心體를 향하면 두루 통하지 못하기 그러므로 그로부터 벗어나고 떠나버린다. -
001_0615_c_01L際。然前二門中。已顯本際故。此門
001_0615_c_02L中明後際等。又欲顯其如來之義。
001_0615_c_03L謂未來際1)平 [6] 等恒者。卽是如義。言
001_0615_c_04L及有者。是其來義。如佛性論云。此
001_0615_c_05L眞如者。非如中有如。無非如亦如。
001_0615_c_06L二乘如者。是非如中如。無非如中非
001_0615_c_07L如。云何如是。二乘之人約虛妄觀
001_0615_c_08L無常等相以爲眞如。此虛妄觀唯
001_0615_c_09L因中有果地則無。是故此如或成
001_0615_c_10L或壞。菩薩如者。離虛妄。約眞性以
001_0615_c_11L觀如。故於因果二處無異唯成無
001_0615_c_12L壞。乃至廣說。故知後際平等恒者。
001_0615_c_13L正顯大乘之如義也。所言及有明來
001_0615_c_14L義者。對凡法去顯一心來。如凡去
001_0615_c_15L時五取蘊法不至2)果 [7] 地。去而不來。
001_0615_c_16L此一心如果地猶有永無過去。故
001_0615_c_17L言及有卽顯來義。如論說言。從住
001_0615_c_18L自性來至至得。正謂此也。如是一心
001_0615_c_19L通爲一切染淨諸法之所依止故。卽
001_0615_c_20L是諸法根本。本來靜門。恒沙功德
001_0615_c_21L無所不備。故言備一切法。隨緣動門
001_0615_c_22L恒沙染法無所不具。故言具一切法。
001_0615_c_23L然擧染法以望心體不能遍通。所
001_0615_c_24L「平」作「下」{甲}。「果」作「異」{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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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6_a_01L하지만 만약 심체를 가지고 염법을 향하면 두루 모든 염법에 통하지 못함이 없다. 그러므로 “세간법에서 떠나지도 않고 진실한 일체법에서 벗어나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떠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는다.”는 뜻은 은부여래장隱覆如來藏의 뜻이다.113)이 셋째, 곧 은부여래장은 일심이 동과 정에 두루 미쳐 염染과 정淨의 소의所依가 됨을 총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둘째, 곧 소섭여래장은 일심이 기동문에 개별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염법染法의 소의이다. 첫째, 곧 능섭여래장은 일심이 적정문에 개별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정법淨法의 소의이다.
둘째에서 “여래장은 본제에 불상응하는 자체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번뇌의 제법이 일심의 자체에 위반되는 것을 불상응이라 한 것이다. 일심의 자체는 기동문을 수연하는 여래장의 소의이기 때문에 그것은 불상응법의 체이다.“번뇌에 얽힌 불청정한 법이다.”라는 것은 능의의 법이 일심의 자체에 의거하여 전변하면서 자심의 체를 얽어서 그에 따라 물들이기 때문에 능의법과 소의법을 합하여 둘째의 여래장의 자체로 삼은 것이다.“오직 여래가 깨친 지혜로만 단제할 수 있다.”는 것은 해탈도解脫道로만 염법을 제대로 단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뜻은 『이장장二障章』에서 설하였다.114)첫째에서 “본제에 상응하는 자체이다.”라는 것은 본래의 적정문에 항사의 공덕을 갖추고 일심에 상응하기 때문에 그것을 상응하는 공덕의 자체라 한 것이다.“청정한 법이다.”라는 것은 능의의 공덕성은 염오를 떠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능의법과 소의법을 합하여 첫째에서 여래장의 자체를 삼은 것이다.“이 법은 여실하여 허망한 적도 없고 벗어난 적도 없으며 떠난 적도 없어 지혜가 부사의한 법이다.”라는 것은 ‘상응’의 뜻을 해석한 것인데, 이것은 법신의 뜻과 모든 공덕법이 상응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의 『부증불감경』에서 “떠난 적도 없고 벗어난 적도 없으며 단절된 적도 없고 변이한 적도 없으며 부사의한 불법에 상응한 것을 법신이라 한다.”115)는 말과 같다.
(문) 이것은 무슨 뜻인가?(답) 이 일심의 자체에 대략 다섯 가지 모습이 있다. 그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
001_0616_a_01L以離脫。若擧心體望諸染法。遍諸
001_0616_a_02L染法無所不通。故言於世法中不
001_0616_a_03L離不脫。不離脫義是隱藏義。此第
001_0616_a_04L三門摠明一心。通於動靜爲染淨
001_0616_a_05L依。第一 [14] 門者。別顯動門。染法所依。
001_0616_a_06L第一門者。別顯靜門。淨法所依。第
001_0616_a_07L二中言本際不相應體者。諸煩惱法
001_0616_a_08L違反心體名不相應。一心之體隨
001_0616_a_09L緣動門爲彼所依故。是不相應法之
001_0616_a_10L體。言及煩惱纒不淸淨法者。彼能依
001_0616_a_11L法依心體轉。纒自心體令隨染故。
001_0616_a_12L合取能依所依之法以爲第二如來
001_0616_a_13L藏體。唯有如來菩提智之所能斷者。
001_0616_a_14L唯解脫道能正斷故。此義具如二障
001_0616_a_15L章說。第一中言本際相應體者。本
001_0616_a_16L來靜門備恒沙德與心相應故。是
001_0616_a_17L相應功德之體。言及淸淨法者。能依
001_0616_a_18L功德性離染故。合取能依所依之法
001_0616_a_19L以爲第一如來藏體。此法如實不
001_0616_a_20L虛妄。不離不脫智不思議法者。釋相
001_0616_a_21L應義。是法身義與諸功德法相應故。
001_0616_a_22L如上文言。不離不脫不斷不異不思
001_0616_a_23L議佛法相應名爲法身。是義云何。
001_0616_a_24L此一心體略有五相。何等爲五。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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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6_b_01L첫째는 집착되는(所取) 차별상을 멀리 떠난 것이다. 둘째는 집착하는(能取) 분별집착을 해탈하는 것이다. 셋째는 삼세제에 평등하지 않음이 없이 편만한 것이다. 넷째는 허공계처럼 편만하지 않음이 없이 평등한 것이다. 다섯째는 유有·무無·일一·이異 등의 변견에 치우치지 않아 마음으로도 헤아릴 수 없고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항사보다도 많은 본유공덕本有功德(애초부터 지니고 있는 공덕)에도 또한 다섯 가지 뜻이 있어서 일심의 본체에 상응한다.첫째는 낱낱의 공덕이 소취의 분별상을 떠나 있으므로 법신을 떠난 적이 없다. 이것은 일심의 자체에 있는 다섯 가지 모습 가운데 첫째의 모습에 상응한다. 『부증불감경』에서 “떠난 적도 없다.”고 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둘째는 낱낱의 공덕이 능취의 집착상을 벗어나 있으므로 법신을 벗어난 적이 없다. 이것은 일심의 자체에 있는 다섯 가지 모습 가운데 둘째의 모습에 상응한다. 저 경문에서 말한 “벗어난 적도 없다.”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셋째는 낱낱의 공덕이 삼세제에 편만하므로 종적으로 전·후제에 단절됨이 없다. 이것은 일심의 자체에 있는 다섯 가지 모습 가운데 셋째의 모습에 상응한다. 그러므로 “단절된 적도 없다.”고 하였다.넷째는 낱낱의 공덕이 허공계처럼 평등하므로 횡적으로 피·차의 처소에 다름이 없다. 이것은 일심의 자체에 있는 다섯 가지 모습 가운데 넷째의 모습에 상응한다. 그러므로 “변이한 적도 없다.”고 하였다.다섯째는 낱낱의 공덕이 모두 변견을 떠나 분별사량의 경계가 아니고 언어문자의 표현이 끊겨 있다. 이것은 일심의 자체에 있는 다섯 가지 모습 가운데 다섯째의 모습에 상응한다. 저 『부증불감경』에서 “부사의한 불법이다.”라고 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모든 공덕법에 이 다섯 가지 뜻이 있어 일심의 자체와 차별이 없고 일미에 융통한다. 이런 도리를 말미암아 ‘상응’이라 하는데, 저 심왕心王과 심수心數의 경우처럼 개별적인 자체로 상응하는 것은 아니다.지금 여기에서 “떠난 적도 없고 벗어난 적도 없어 지혜가 부사의한 법이다.”라고 한 것은 모든 공덕 가운데 대략 일각의 뜻(覺義)만 언급하고 그 다섯 가지 상응에서 간략하게 세 가지 뜻만 설명한 것이다.116) 여래장의 세 가지 뜻 가운데 이것은 첫째인 능섭여래장에 해당한다. 이로써 여래장의 세 가지 뜻을 약술하였다.
둘째의 소섭여래장에 대하여 『승만부인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존이시여, 공여래장이란 법신으로부터 떠나 존재하고 벗어나 존재하며 다르게 존재하는 일체의 번뇌장입니다. 세존이시여, 불공여래장이란 항사겁이 지나도록 법신으로부터 떠난 적도 없고 벗어난 적도 없으며 달라진 적도 없는 부사의한 법입니다.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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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6_b_01L者。遠離所取差別之相。二者。解脫
001_0616_b_02L能取分別之執。三者。遍三世際無所
001_0616_b_03L不等。四者。等虛空界無所不遍。五
001_0616_b_04L者。不墮有無一異等邊。超心行處。
001_0616_b_05L過言語道。過恒沙等本有功德亦有
001_0616_b_06L五義與體相應。一者。一一功德。離
001_0616_b_07L所取相故非法身所離。與第一相相
001_0616_b_08L應。如經言不離故。1)二 [8] 者。一一功德
001_0616_b_09L脫能取執故非法身所脫。與第二相
001_0616_b_10L相應。如經不脫故。三者。此一一德
001_0616_b_11L遍三世際縱無前後際斷。與第三相
001_0616_b_12L相應。故言不斷。四者。此一一德等
001_0616_b_13L虛空界。橫無彼此處異。與第四相相
001_0616_b_14L應故言不異。五者。一一功德皆離
001_0616_b_15L諸邊非思量境絕言語路。與第五
001_0616_b_16L相相應。如經言不思議故。諸功德法
001_0616_b_17L有此五義。與體無別融通一味。由
001_0616_b_18L是道理名爲相應。非如王數別體
001_0616_b_19L相應。今此中言不離不脫智不思議
001_0616_b_20L法者。諸功德中略擧覺義。五相應
001_0616_b_21L中略說三義。此是第一能攝藏也。
001_0616_b_22L三種藏義略述如之。言二門者。如
001_0616_b_23L夫人經言。空如來藏者。若離若脫若
001_0616_b_24L異一切煩惱藏。不空如來藏者。不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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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6_c_01L생각해 보면 번뇌의 제법은 모두 허망한 것이다. 그것은 부실한 경계를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허虛’라고 하고, 자체가 산란함을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망妄’이라 한다. 망이므로 진眞이 없고, 허이므로 실實이 없다. 진과 실이 없기 때문에 공이라 하고, 여래를 덮고 있으므로 여래장이라 한다. 곧 이와 같은 공의 뜻이야말로 진실을 은부隱覆(감추어 덮음)한 것이다.모든 번뇌의 경계는 부실한 모습으로서 법신으로부터 떠나 있기 때문에 “떠나 존재한다.”고 하였다. 모든 번뇌의 자체는 망집에 얽혀서 법신으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에 “벗어나 존재한다.”고 하였다. “다르게 존재한다.”고 말한 것은 앞의 허망한 차별과 분별이 법신의 평등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법신으로부터 떠나 존재하고 벗어나 존재하며 다르게 존재하는 이 세 가지 뜻으로 법신과 불상응하므로 진실이 없는데, 이것이야말로 곧 공의 뜻이다.“불공”이란 일체의 공덕이 자체와 상응하는데 그 자체는 망이 아니므로 진이고, 그 경계는 허가 아니므로 실임을 말한 것이다. 진실을 말미암은 것이므로 불공이라 하고, 여래를 은부하고 있으므로 여래장이라 한다. “법신으로부터 떠난 적도 없고 벗어난 적도 없으며 달라진 적도 없는 부사의한 법입니다.”라는 구절은 불공의 뜻을 말한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세 종류의 여래장의 문에서 이미 설명한 것과 같다.그러나 여기에서 불공여래장의 자체는 앞의 세 가지118) 가운데 첫째의 법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공의 뜻은 그것의 둘째에 해당한다. 저 세 가지 여래장 가운데 은부의 뜻은 그 셋째인 은부여래장에 그대로 합치되어 있다.119) 그러므로 은부여래장 앞에 있는 능섭여래장과 소섭여래장의 두 가지 뜻에 대해서는 별도로 드러낸다.지금 이 능섭여래장문과 소섭여래장문은 진실을 은부하고 있다는 것이 공의 뜻임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부와 소부의 두 가지 뜻으로 구별한다. 또한 『부증불감경』과 『승만경』은 각각 별도로 여래장문의 뜻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두 가지 경우와 세 가지 경우로 다르게 해석하였다. 그에 대한 논의는 이것으로 마치고 다시 본문을 해석하겠다.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여래장은 생멸하는 여지慮知의 상이다. 이치를 감추어 드러내지 않는 것이 여래장이니, -
001_0616_c_01L不脫不異不思議佛法。案云。諸煩惱
001_0616_c_02L法皆是虛妄。由境不實故虛。由體散
001_0616_c_03L亂故妄。妄故無眞。虛故無實。無眞
001_0616_c_04L實故說名爲空。能覆如來名如來
001_0616_c_05L藏。卽是空議。隱覆眞也。諸煩惱境
001_0616_c_06L不實之相法身所離故曰若離。諸
001_0616_c_07L煩惱體妄執之縛法身所脫故言若
001_0616_c_08L脫。言若異者。卽前虛妄差別分別
001_0616_c_09L乖於法身平等性故。以此三義不相
001_0616_c_10L應故。是無眞實卽是空義也。言不
001_0616_c_11L空者。一切功德與體相應。體非妄
001_0616_c_12L故眞。境非虛故實。由眞實故說名
001_0616_c_13L不空。如來被覆名如來藏。不離不
001_0616_c_14L脫等句。是釋不空之義。義如三種藏
001_0616_c_15L門已說。然此中不空如來藏體卽前
001_0616_c_16L三中第一之法。此中空義是彼第二。
001_0616_c_17L而彼三種如來藏中隱覆之義合在
001_0616_c_18L第三。故前二中別顯能攝所攝二義。
001_0616_c_19L今此二種如來藏門欲顯空義。隱覆
001_0616_c_20L眞實。故別能覆所覆二義。又此二經
001_0616_c_21L互顯別義。所以二三兩門異釋。且止
001_0616_c_22L乘論。還釋本文。
001_0616_c_23L佛言。如來藏者。生滅慮知相。隱理不顯。
001_0616_c_24L「二」作「一」{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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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7_a_01L그 자성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논 “생멸하는 여지慮知의 상이다.”라는 것은 곧 공여래장空如來藏이다. 다만 이 경문에서는 감추는 주체(能隱)의 뜻을 드러낼 뿐 그것을 여래장이라고 하지는 않았다.“이치를 감추어 드러내지 않는 것이 여래장이다.”라는 것은 불공여래장不空如來藏이니, 감춰지는 대상(所隱)의 뜻에 의하여 여래장이라 한 것이다.“그 자성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 여래장의 자성은 비록 감추어져 있지만 바뀌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무상론』에서는 여래장의 자성(性)에 다섯 가지 뜻이 있음을 설명한다.120)첫째는 종류種類의 뜻으로 자성의 뜻을 삼는다. 마치 병과 옷 등 일체의 색법이 사대의 종류를 떠나지 않고 모두 사대로서 자성을 삼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중생은 여래장이라는 일계를 벗어나지 않고 모두 동일계로서 종류를 삼기 때문이다. 『섭대승론』에서는 이를 체류體類의 뜻이라 하였고,121) 『불성론』에서는 자성自性의 뜻이라 하였다.122) 이들은 말은 다르지만 뜻은 다르지 않다.둘째는 인因의 뜻으로 자성의 뜻을 삼는다. 마치 나무에 있는 불의 자성과 같아서 불이 일어나는 인이 되므로 자성이라 말한다. 이와 같이 성인의 모든 무루법도 이것이 인이 되어 이루어진다. 『섭대승론』과 『불성론』에서도 똑같이 인의 뜻이라 하였다.셋째는 생生의 뜻으로 자성의 뜻을 삼는다. 마치 진금을 단련하여 장엄구를 만들어 낼 경우 장엄구가 생성되는 것은 진금을 자성으로 삼는 것과 같다. 이 여래장계도 또한 그와 같이 과지果地의 오분법신五分法身을 생성(能生)한다. 그 법신의 생성은 여래장계를 자성으로 삼는다. 『섭대승론』에서도 또한 생生의 뜻이라 하였고, 『불성론』에서는 지득至得의 뜻이라 하여 인因의 뜻과는 구별하였다. 인因은 과지 이전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생已生의 입장에서 지득의 뜻이라 한 것이다.넷째는 불개不改의 뜻으로 자성의 뜻을 삼는다. 마치 금강보배의 성질이 1겁 동안 머물러도 증가도 없고 감소도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여래장계도 삼세에 평등하게 머물러 세간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출세간에서도 끝이 없다. 『섭대승론』과 『불성론』에서는 진실眞實의 뜻이라 말하였는데, -
001_0617_a_01L是如來藏。性寂不動。
001_0617_a_02L生滅慮知相者。卽是空如來藏。但此
001_0617_a_03L文中。顯能隱義。而不名此爲如來藏。
001_0617_a_04L言隱理不顯是如來藏者。是不空如
001_0617_a_05L來藏。約所隱義名如來藏。言性寂
001_0617_a_06L不動者。顯此藏性。雖隱不改。此性
001_0617_a_07L有五義。如無相論說。一種類義是
001_0617_a_08L性義。如甁衣等一切色法。不離四大
001_0617_a_09L種類。皆以四大爲性。如是衆生不出
001_0617_a_10L一界。皆用一界爲種類故。攝大乘論。
001_0617_a_11L名體類義。佛性論中。名自性義。言
001_0617_a_12L有左右。意無異也。二者。因義是性
001_0617_a_13L義。如木中有火性。與火作因。故名
001_0617_a_14L爲性。如是聖人諸無漏法。以此爲因
001_0617_a_15L而得成故。彼二論中。同名因義也。
001_0617_a_16L三者生義。是性義。如鍊眞金。生莊嚴
001_0617_a_17L具。莊嚴具生。以金爲性。此界亦爾。
001_0617_a_18L能生果地五分法身。法身之生。此界
001_0617_a_19L爲性。攝大乘中。亦名生義。佛性論
001_0617_a_20L中。名至得義。爲別因義。是在果前
001_0617_a_21L故。就已生名至得義。四者。不改義
001_0617_a_22L是性義。猶如金剛寶性。一劫等住
001_0617_a_23L無增無減。如是此界。三世等住。世
001_0617_a_24L間不壞。出世不盡。彼二論中。名眞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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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7_b_01L진실의 뜻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말은 다르지만 뜻은 같다.다섯째는 밀장密藏의 뜻으로 자성의 뜻을 삼는다. 누런 돌에 들어 있는 진금의 성질과 같다. 누런 쇳돌을 부수지 않으면 이익을 얻을 수 없지만 수순하여 연마하면 보배로 활용할 수가 있다. 이런 까닭에 여래장의 자성은 은장隱藏의 뜻이다. 여래장의 자성도 또한 이와 같은 줄 알아야 한다. 그 얽혀 있는 것을 부수지 않으면 외外가 되고 염染이 되지만 얽혀 있는 것을 부수어 상응하면 내內가 되고 정淨이 된다. 그러므로 여래장의 자성이 밀장의 뜻인 줄 알아야 한다. 이를 『불성론』에서는 비밀秘密의 뜻이라 하였고, 『섭대승론』에서는 장藏의 뜻이라 하였다. 뜻은 같지만 말만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지금 이 경문에서 말한 “자성”에도 이 다섯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것은 마지막 넷째와 다섯째의 두 가지 뜻을 요약하여 드러낸 것이다. ‘고요함’은 비밀秘密의 뜻이고, ‘움직이지 않음’은 불개不改의 뜻이기 때문이다.이상으로 일각一覺의 뜻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설법하는 부분을 마친다.
b. 총론을 인하여 각론을 발생시켜 모든 의난을 없앰
이하 부분에 여섯 가지 문답123)이 있는데, 총론을 인하여 각론을 발생시키는(因論生論) 방법으로 모든 의심을 해결한다.
a) 감추는 주체인 여지慮知의 상을 설명함
경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생멸하는 여지의 상이란 무엇입니까?”
논 이 대목은 첫째 문답124)으로, 감추는 주체(能隱)인 여지慮知의 상을 설명한다.
(a) 답변함
이 답변은 두 겹으로 되어 있다. 첫째는 간략하게 답변하고, 둘째는 자세하게 설명한다.
ⓐ 간략한 답변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보살이여, 여래장의 도리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만약 옳고 그름이 있으면 온갖 망념이 발생한다. 그 천만 가지 사려분별이 곧 생멸의 모습이다.
논 첫째의 간략한 답변에는 두 구절이 있다.첫째는 미혹의 대상(所迷)을 언급한다. 미혹의 대상인 도리에는 마음의 작용이 미치지 못하므로 “여래장의 도리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고 말한다. ‘옳다(可)’는 것은 시是이고, ‘그르다(不)’는 것은 비非이다. 도리(理)는 사구四句125)와 단절되어 모든 시비를 떠나 있어서 분별심의 작용이 미치는 대상이 아니다.둘째는 미혹하게 만드는 주체(能迷)를 드러낸다. -
001_0617_b_01L義。眞實義者。是不壞義。所以言異而
001_0617_b_02L意同也。五者。密藏義是性義。如黃
001_0617_b_03L石中。有眞金性。若不破鑛。無所利益。
001_0617_b_04L隨順鍊治。卽有寶用。是故彼性是
001_0617_b_05L隱藏義。如來藏性。當知亦爾。不破
001_0617_b_06L其纏。爲外爲染。破纒相應成內成
001_0617_b_07L淨。故知此性是密藏義。佛性論中。
001_0617_b_08L名秘密義。攝大乘論。名爲藏義。義同
001_0617_b_09L言異。灼然可見。今此文中。所言性
001_0617_b_10L者。含此五義。寂不動者。略顯後二。
001_0617_b_11L寂是密藏義。不動是不改義故。上來
001_0617_b_12L正廣一覺義竟。
001_0617_b_13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云何生滅
001_0617_b_14L慮知相。
001_0617_b_15L自此已下。有六問答。因論生論。決
001_0617_b_16L諸疑難。此一問答。明其能隱慮知之
001_0617_b_17L相。
001_0617_b_18L佛言。菩薩。理無可不。若有可不。卽生
001_0617_b_19L諸念。千思萬慮。是生滅相。
001_0617_b_20L此答中有二重。先略答。後廣演。略
001_0617_b_21L中二句。先擧所迷。所迷之理。心行
001_0617_b_22L處滅。故言理無可不。可者是也。不
001_0617_b_23L者非也。理絕四句。離諸是非。非分
001_0617_b_24L別心之所行處也。次顯能迷。若有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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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7_c_01L“만약 옳고 그름이 있으면 온갖 망념이 발생한다.”는 것은 무명 때문에 평등함을 깨치지 못하면 곧 옳고 그름의 분별심이 발생한다. 이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염심126)이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그 천만 가지 사려분별이 곧 생멸의 모습이다.”라는 것은 여섯 가지 염심에 거침(麤)과 미세함(細)이 있어 모두 평등함에 어긋나는 것이니, 이는 생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또한 생멸상을 분별하면 대략 두 가지가 있다.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거침(麤)인데 마음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미세함(細)인데 마음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거침 가운데 거침은 범부의 경계이고, 거침 가운데 미세함 및 미세함 가운데 거침은 보살의 경계이며, 미세함 가운데 미세함은 곧 부처의 경계이다. 이 두 가지 생멸은 무명의 훈습에 의거하여 존재하니, 이른바 인因에 의거하고 연緣에 의거하는 것이다. 인에 의거한다는 것은 불각不覺의 뜻이고, 연에 의거한다는 것은 허망하게 일으킨 경계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약 인이 소멸하면 연도 소멸한다. 인이 소멸하기 때문에 불상응심이 소멸하고, 연이 소멸하기 때문에 상응심이 소멸한다.127)
생각해 보면 여기에서 “중생심에 상응하는 거침”이란 세 가지 상응염相應染이고, “중생심에 불상응하는 미세함”이란 세 가지 불상응염이다. “거침 가운데 거침”은 집상응염執相應染과 부단상응염不斷相應染으로 모두 6식에 해당하므로 범부의 경계이다. “거침 가운데 미세함”은 분별지상응염分別智相應染으로 제7식에 해당한다. “미세함 가운데 거침”은 현색불상응염現色不相應染과 능견심불상응염能見心不相應染이다. “미세함 가운데 미세함”은 근본업불상응염根本業不相應染이다. 이 세 가지128)는 모두 제8식의 경지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세 가지 미세한 생멸(細生滅)은 무명의 바람으로 움직여지기 때문에 “인이 소멸하기 때문에 불상응심이 소멸한다.”고 하였다. 이 가운데 세 가지 거친 생멸(麤生滅)은 경계의 바람으로 움직여지기 때문에 -
001_0617_c_01L不卽生諸念者。以有無明。不覺平
001_0617_c_02L等。卽有分別可不之心。由是具起六
001_0617_c_03L種染心故。千思萬慮是生滅相者。
001_0617_c_04L六種染心。雖有麁細。皆違平等。是
001_0617_c_05L生滅相故。如起信論云。復次分別生
001_0617_c_06L滅相者。略有二種。云何爲二。一者
001_0617_c_07L麁。與心相應故。二者細。與心不相
001_0617_c_08L應故。又麁中之麁。凡夫境界。麁中
001_0617_c_09L之細。細中之麁。菩薩境界。細中之
001_0617_c_10L細。是佛境界。此二種生滅。依於無
001_0617_c_11L明熏習而有。所謂依因依緣。依因者。
001_0617_c_12L不覺義故。依緣者。妄作境界義故。
001_0617_c_13L若因滅卽緣滅。因滅故。不相應心滅。
001_0617_c_14L緣滅故。相應心滅。案云。此中麁與心
001_0617_c_15L相應者。謂三種相應染。細與心不相
001_0617_c_16L應者。三種不相應染。麁中之麁者。
001_0617_c_17L謂執相應染。不斷相應染。皆在六識
001_0617_c_18L故。凡夫境界也。麁中之細者。謂分
001_0617_c_19L別智相應染。在第七識。細中之麁者。
001_0617_c_20L謂現色不相應染。能見心不相應染。
001_0617_c_21L細中之細者。謂根本業不相應染。此
001_0617_c_22L三皆在第八識位。此中三種細生滅
001_0617_c_23L者。無明風所動。故言因滅故不相
001_0617_c_24L應心滅。於中三種麁生滅者。境界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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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8_a_01L“연이 소멸하기 때문에 상응심이 소멸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저 『기신론소』129)에서 서술한 바와 같다.지금 경문에서 말한 “그 천 가지 사려분별”이란 모든 불상응염심의 미세한 분별을 총섭한 것이다. “그 만 가지 사려분별”이란 모든 상응염심의 거친 분별을 총섭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망념이 움직인 모습이다. 따라서 “곧 생멸의 모습이다.”라고 한 것이다.
ⓑ 자세하게 설명함
이하는 둘째로 자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생멸의 모습에 상대하여 도리의 만족을 드러내고, 둘째는 도리의 만족에 상대하여 염의 과실을 설명하며, 셋째는 도리에 수순하여 염을 소멸하고 기동을 제거하여 적연에 나아가는 공리功利를 변별한다.
경 보살이여, 본각의 자성을 관찰해 보면 그 도리가 애초부터 갖추어져 있다. 따라서 천만 가지 사려분별은 도리를 증가시키지 못하고 한낱 동란動亂에 불과하여 본래의 심왕을 상실할 뿐이다.
ㄱ. 생멸의 모습에 상대하여 도리(理)의 만족을 드러냄
그 첫째에서 “보살이여”라는 말은 해탈보살을 부르는 표현이다.“본각의 자성을 관찰해 본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본각 여래장의 자성을 관찰해 본다는 것이다.“그 도리(理)가 애초부터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관찰된 본각 여래장의 도리에 무량한 자성의 공덕이 구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신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한 진여 자체상은 본래부터 그 자성에 일체의 공덕이 만족되어 있다. 소위 진여 자체에 대지혜의 광명이라는 뜻이 있고, 법계를 널리 비춘다는 뜻이 있으며, 제대로 알아차린다는 뜻이 있고, 자성청정심의 뜻이 있으며, 상·낙·아·정의 뜻이 있고, 청량·불변·자재하다는 뜻이 있다. 이와 같이 항사를 능가하고, 떠난 적도 없으며, 단절된 적도 없고, 변이한 적도 없는 부사의한 불법을 구비 내지 구족하고 나아가서 부족한 뜻이 없으므로 여래장이라 하고, 또한 여래법신이라 한다.130)
지금 이 경문의 “그 도리가 애초부터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이와 같은 공덕이 갖추어져 있음을 통틀어 드러낸 것이다. 첫째 경문의 뜻을 마친다.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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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8_a_01L所動。故言緣滅故相應心滅。於中委
001_0618_a_02L悉。如彼論疏中說也。今此經言千
001_0618_a_03L思者。摠攝一切不相應染。細分別故。
001_0618_a_04L萬慮者。摠攝一切相應染心。麁分別
001_0618_a_05L故。此二皆是動念之相。以之故言是
001_0618_a_06L生滅相也。
001_0618_a_07L菩薩。觀本性相。理自滿足。千思萬慮。
001_0618_a_08L不益道理。徒爲動亂。失本心王。
001_0618_a_09L此下廣演。於中有三。一者。對生滅
001_0618_a_10L相。顯理滿足。二者。對理滿足。明染
001_0618_a_11L闕失。三。辨順理滅染去動趣寂之利。
001_0618_a_12L初中言菩薩者。是呼解脫菩薩之辭。
001_0618_a_13L觀本性相者。佛觀本覺如來藏性故。
001_0618_a_14L理自滿足者。所觀本覺如來藏理。具
001_0618_a_15L足無量性功德故。如起信論云。復次
001_0618_a_16L眞如自體相者。從本已來。性自滿足
001_0618_a_17L一切功德。所謂自體有大智慧光明
001_0618_a_18L義故。遍照法界義故。眞實識知義故。
001_0618_a_19L自性淸淨心義故。常樂我淨義故。淸
001_0618_a_20L凉不變自在義故。具足如是過於恒
001_0618_a_21L沙不離不斷不異不思議佛法。乃至
001_0618_a_22L滿足無有所少義故。名爲如來藏。亦
001_0618_a_23L名如來法身故。今此經言。理自滿足。
001_0618_a_24L摠顯如是功德滿足也。初段文竟。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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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8_b_01Lㄴ. 도리의 만족에 상대하여 염의 과실을 설명함
둘째는 생멸하는 망념의 과실에 대하여 설명한다.132) 여기서는 이익이 없고 손해가 있음을 통틀어 설명하고 있다. 이 뜻에 대하여 『기신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해석한다.
문 위에서는 진여에 대하여 그 자체가 평등하여 일체의 모습을 떠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자체에 이와 같은 갖가지 공덕이 있다고 다시 설하는가?답 비록 그와 같은 공덕의 뜻이 실제로 있다고 해도 무차별상으로 동등한 일미이고 유일한 진여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무분별하여 분별상을 떠나 있는 까닭에 무이無二이다.
문 그러면 또 무슨 뜻에서 차별상을 설하는가?답 업식에 의하여 생멸상이 발생하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문 그것을 어떻게 보여 주고 있는가?답 일체법은 본래 유심唯心으로 실로 망념(相念)이 없다. 그러나 망심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망념을 일으켜 모든 경계를 보기 때문에 무명이라 한다. 그리고 심성이 일어나지 않는 그것이 곧 대지혜의 광명이라는 뜻이다. 만약 심성에서 유견有見이 일어나면 곧 불견不見의 상도 있겠지만, 심성에서 유견이 떠나 있으면 곧 법계를 널리 비춘다는 뜻이다. 만약 마음이 기동하면 제대로 알 수도 없으며, 자성이 없고 상도 없고 낙도 없으며 아도 없고 정도 없으며, 내지 (열뇌로 붕괴되어 자재하지 못하고) 항사를 능가하는 망염妄染의 뜻이 구비된다. 이런 뜻에 상대하여 심성이 기동하지 않으면 곧 항사를 능가하는 공덕상의 뜻이 있음을 시현한다. 이에 만약 마음이 기동하여 목전의 법에서 망념인 줄을 보게 된다면 부족하지만 이와 같이 청정법의 무량한 공덕은 곧 일심이기 때문에 그 망념이 없어져 만족하게 되는데, 그것을 법신여래장이라 한다.133)
여기 경문에서 “한낱 동란에 불과하다.”고 한 것은 마음이 기동한다면 제대로 알 수 없고, 자성이 없으며, 상·낙·아·정도 없기 때문에 ‘동動’이라 하였고, 심성에서 유견이 일어나면 곧 불견의 상 등도 있기 때문에 ‘난亂’이라 하였다.“본래의 심왕을 상실할 뿐이다.”라는 것에서 무량한 공덕이 곧 일심인데, -
001_0618_b_01L明生滅動念之過。於中摠明無益有
001_0618_b_02L損。如彼論中。廣釋此義云。問曰。上
001_0618_b_03L說眞如其體平等。離一切相。云何
001_0618_b_04L復說體有如是種種功德。答曰。雖實
001_0618_b_05L有此諸功德義。而無差別之相。等同
001_0618_b_06L一味。唯一眞如。此義云何。以無分別
001_0618_b_07L離分別相。是故無二。復以何義。得說
001_0618_b_08L差別。以依業識生滅相示。此云何示。
001_0618_b_09L以一切法。本來唯心。實無相念。而
001_0618_b_10L有妄心。不覺起念。見諸境界。故說
001_0618_b_11L無明。心性不起。卽是大智慧光明義
001_0618_b_12L故。若心起見。卽有不見之相。心性
001_0618_b_13L離見。卽是遍照法界義故。若心有動。
001_0618_b_14L非眞識知。無有自性。非常非樂非我
001_0618_b_15L非淨。乃至具足過恒沙等妄染之義。
001_0618_b_16L對此義故。心性無動。卽有過恆沙等
001_0618_b_17L諸淨功德相義示現。若心有起。更見
001_0618_b_18L前法可念者。卽有所少。如是淨法無
001_0618_b_19L量功德。卽是一心。更無所念。是故
001_0618_b_20L滿足名爲法身如來之藏。今此經言
001_0618_b_21L徒爲動亂者。以心有動。非眞識知。
001_0618_b_22L無有自性。非常樂我淨等。故言動也。
001_0618_b_23L以心起見。卽有不見之相等。故言亂
001_0618_b_24L也。失本心王者。無量功德。卽是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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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8_c_01L일심이 주主가 되므로 ‘심왕’이라 하였고, 생멸과 동란으로 이 심왕을 떠나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므로 ‘상실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ㄷ. 도리에 수순하여 염을 소멸하고 기동을 제거하여 적연에 나아가는 공리를 변별함
이하는 셋째로 도리에 수순하여 염染을 소멸하고 기동을 제거하여 적연의 경지에 나아가는 대목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곧장 드러내고, 둘째는 거듭 성취한다.
ㄱ) 곧장 드러냄
경 그러나 만약 사려분별이 없으면 곧 생멸이 없어져 여실하여 기동이 없으며, 제식이 안적安寂하고 번뇌(流注)가 발생하지 않아 오법五法이 청정해진다. 이것을 대승이라 말한다.
논 이 경문은 기동을 제거하여 적연의 경지에 나아가는 것을 곧장 드러내는 부분이다.“만약 사려분별이 없으면”은 처음 초지로부터 불지에 이르기까지 일심의 평등법계를 점차 수순하여 영원히 일체의 사려분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생멸이 없어진다.”는 것은 앞서 사려분별로 말미암아 생멸상이 있었지만 이제 사려분별이 없어져 영원히 분별하지 않아 두 종류의 생멸134)을 완전히 떠났기 때문이다.이로부터 이미 도리에 수순하여 기동하지 않고 미래제가 다하도록 다시는 기동하지 않기 때문에 “여실하여 기동이 없다.”고 하였다.두 종류의 생멸이 완전히 그치면 여덟 가지 식의 움직임은 모두 적정으로 돌아가고, 여섯 가지 염의 번뇌가 영원히 소멸되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제식이 안적하고 번뇌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번뇌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법계가 원만하게 드러나고, 제식이 안적하므로 사지四智가 원만하게 성취되기 때문에 “오법이 청정해진다.”고 하였다.실어 나르는(運載) 공덕에 있어서 이것을 능가함이 없으므로 “이것을 대승이라 말한다.”라는 말로 총결하였다.기동을 제거하여 적연의 경지에 나아감을 곧장 설명하는 부분을 마친다.
ㄴ) 거듭 성취함
경 보살이여, 오법이 청정해진 경지에 들어가면 마음에 곧 망념이 없어진다. 망념이 없어지면 여래의 자각성지自覺聖智의 경지에 들어간다. 자각성지의 경지에 들어가면 일체법이 본래 불생임을 잘 알게 된다. 본래 불생임을 알면 곧 망상이 없어진다.”
논 이것은 거듭해서 성취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여기에 삼구가 있다.첫째 “오법이 청정해진 경지에 들어가면 마음에 곧 망념이 없어진다.”고 한 것은 -
001_0618_c_01L心。一心爲主。故名心王。生滅動亂。
001_0618_c_02L違此心王。不得還歸。故言失也。
001_0618_c_03L若無思慮。卽無生滅。如實不起。諸識
001_0618_c_04L安寂。流注不生。得五法淨。是謂大乘。
001_0618_c_05L此下第三順理滅染去動就寂。於中
001_0618_c_06L有二。正顯。重成。此卽正顯去動就
001_0618_c_07L寂。若無思慮者。始從初地乃至佛
001_0618_c_08L地。漸順一心平等法界。永無一切思
001_0618_c_09L慮分別故。卽無生滅者。由前思慮。
001_0618_c_10L有生滅相。今無思慮。永無分別。二
001_0618_c_11L種生滅。究竟離故。從此已去。順理
001_0618_c_12L不動。窮未來際。不復還動。故言如
001_0618_c_13L實不起。二種生滅。究竟息時。八種識
001_0618_c_14L動。皆得歸靜。六染流注。永滅不起。
001_0618_c_15L故言諸識安寂流注不生。流注不生
001_0618_c_16L故。法界圓顯。諸識安寂故。四智滿
001_0618_c_17L成。故言得五法淨。運載之功。莫過
001_0618_c_18L於此故。摠結言是謂大乘。正明去
001_0618_c_19L動就寂文竟。
001_0618_c_20L菩薩。入五法淨。心卽無妄。若無有妄。
001_0618_c_21L卽入如來自覺聖智之地。入智地者。善
001_0618_c_22L知一切從本不生。知本不生。卽無妄
001_0618_c_23L想。
001_0618_c_24L此是重顯。卽有三句。初言入五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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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9_a_01L일심의 근원(心源)으로 돌아갈 때 망념의 불각이 없어진다는 것이다.둘째 “망념이 없어지면 여래의 자각성지의 경지에 들어간다.”고 한 것은 불각이 다하는 때에 곧 시각始覺의 원만한 지혜(圓智)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는 곧 불각에 상대하여 시각의 충만을 드러낸 것이다.셋째 “자각성지의 경지에 들어가면 일체법이 본래 불생임을 잘 알 수 있다. 본래 불생임을 알면 곧 망상이 없어진다.”고 한 것은 시각이 충만할 때 사상四相(生·住·異·滅)으로 기동되는 망념의 불각이 본래 불생임을 알게 되는 것이니, 망상이 본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는 시각이 본각과 다르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기신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한 마음의 발기에 대하여 처음의 모습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처음의 모습을 안다고 하는 것은 곧 무념을 말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일체중생을 깨달았다고 하지 않으니, 본래부터 생각생각 상속되어 일찍이 망념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에 무시무명無始無明이라 말한다. 만약 무념을 터득하면 곧 마음의 생상·주상·이상·멸상을 알게 되니, 무념과 동등하기 때문이다. 실로 시각과 다름이 없으니 사상四相이 동시에 있어서 각각 독립적으로 일어남이 없고, 본래 평등하므로 본각과 똑같다.135)
생각해 보면, 『기신론』에서 “만약 무념을 터득하면 곧 마음의 생상·주상·이상·멸상을 알게 된다.”는 말은 『금강삼매경』의 “일체법이 …… 알게 된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또 『기신론』에서 “실로 시각과 다름이 없다.”는 말은 곧 『금강삼매경』의 “본래 불생임을 잘 알게 된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또 『기신론』에서 “사상이 동시에 있어서 각각 독립적으로 일어남이 없고, 본래 평등하므로 본각과 똑같다.”는 말은 곧 『금강삼매경』의 “본래 불생임을 알면 곧 망상이 없어진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꿈에서 강을 건너는 비유136)는 이와 관련하여 자세히 설명되어야 한다.
b) 망상을 그칠 필요가 없음을 설명
이하는 둘째 문답137)으로 망상을 그칠(止息) 필요가 없음을 설명하는 것이다.0)
(a) 망상이 없으면 그칠 필요가 없음을 질문함
경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그렇다면 망상이 없는 자는 굳이 망상을 그칠 필요도 없겠습니다.”
논 묻는 내용은 -
001_0619_a_01L淨心卽無妄者。歸心源時。卽無妄念
001_0619_a_02L之不覺故。第二言若無有妄卽入如
001_0619_a_03L來自覺聖智之地者。不覺盡時。卽入
001_0619_a_04L始覺圓智之地故。是對不覺顯始覺
001_0619_a_05L滿也。第三入智地者善知一切從本
001_0619_a_06L不生知本不生卽無妄想者。始覺滿
001_0619_a_07L時能知不覺四相動念本來不生。
001_0619_a_08L卽知本來無妄想故。是顯始覺不異
001_0619_a_09L本覺也。如起信論云。一切衆生。不
001_0619_a_10L名爲覺。以從本來。念念相續。未曾
001_0619_a_11L離念。故說無始無明。若得無念者。
001_0619_a_12L卽知心相生住異滅。以無念等故。而
001_0619_a_13L實無有始覺之異。以四相俱時而有。
001_0619_a_14L皆無自立。本來平等。同一覺故。案
001_0619_a_15L云。此中言若得無念卽知心相生住
001_0619_a_16L異滅者。卽顯經中善知一切也。而實
001_0619_a_17L無有始覺之異者。卽顯經中善知從
001_0619_a_18L本不生也。以四相俱時而有。皆無自
001_0619_a_19L立。本來平等同一覺故者。卽顯經
001_0619_a_20L中知本不生。卽無妄想也。夢中渡
001_0619_a_21L河之喩。此中應廣說也。
001_0619_a_22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無妄想者。
001_0619_a_23L應無止息。
001_0619_a_24L此下第二問答明無止息。問意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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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9_b_01L“본래 망상이 없으면 곧 그칠 대상(所止)도 없다. 그칠 대상이 없으므로 또한 그치는 주체(能止)도 없다. 그치는 주체가 없으므로 마땅히 시각도 없어야 할 것이다.”라는 뜻으로 질문한 것이다.
(b) 없앨 것이 없다고 답변함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보살이여, 망상은 본래 불생이므로 멈출(息) 망상이 없다. 본심에 망심이 없는 줄 알면 그칠(止) 망심도 없다. 그래서 분별(分)도 없고 차별(別)도 없으면 현식現識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칠(止) 망상의 발생이 없으므로, 곧 그칠 것(止)도 없고 또한 그치지 않음(無止)도 없다. 왜냐하면 그칠 것이 없다는 것마저도 그쳐야 하기 때문이다.”
논 답변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그칠 것이 없다는 것을 긍정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칠 것이 없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긍정한 까닭은 시각이 본각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고, 부정한 까닭은 시각이 본각과 똑같지는 않기 때문이다.(문) 긍정하는 가운데 멈춤(息)과 그침(止)은 무엇이 다른가?(답) 망심이 기동起動하면 멈추어야 하고, 망심이 치산馳散하면 없애야 한다. 그러나 본래 기동도 없고 치산도 없으므로 멈춤도 없고 없앰도 없다.“분별이 없다.”는 것은 견해에 분별상이 없는 것이고, “차별이 없다.”는 것은 형상에 분별견이 없는 것이다. 이미 형상과 견해에 분별과 차별이 없으면 현재식도 본래 발생하지 않고 과거식도 발생하지 않으며 미래식도 본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리석거나 지혜롭거나 모두 아는 일이다. 다만 현재에 의거하여 본래 발생하지 않음을 설명했을 뿐이다. 이미 그쳐야 할(所止) 불각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그치는 주체(能止)로서의 시각과 다름이 없다. 이것은 시각과 본각이 다르지 않다는(不異門) 것에 의하여 이처럼 긍정한 것이다.138)“또한 그치지 않음도 없다.”는 것은 본각과 다르지 않은 시각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그칠 것이 없다는 것마저도 그쳐야 한다.”는 것은 (망상의) 발생이 없다는 망심을 그치는(能止)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망상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서 망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그 마음마저도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곧 망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그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쳐야 할 것이 없다는 것마저도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치는 주체(能止)로서의 시각始覺이 없지 않으므로 이처럼 답변한 것이다.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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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9_b_01L本無妄想。卽無所止。所止無故。能
001_0619_b_02L止亦無。無能止故。應無始覺。如是
001_0619_b_03L難也。
001_0619_b_04L佛言。菩薩。妄本不生。無妄可息。知心
001_0619_b_05L無心。無心可止。無分無別。現識不生。
001_0619_b_06L無生可止。是卽無止。亦非無止。何以
001_0619_b_07L故。止無止故。
001_0619_b_08L答意有二。先許無止。後遮無止。許
001_0619_b_09L者。始覺不異本覺故。遮者。始覺非
001_0619_b_10L唯是本覺故。許中息與止何異者。妄
001_0619_b_11L起動。故可息。心馳散。故可止。而本無
001_0619_b_12L起無馳。故無可息可止耳。無分者。
001_0619_b_13L無相分於見故。無別者。無見別於相
001_0619_b_14L故。相見旣無分別。現識本來不生。
001_0619_b_15L去來不生。愚智共知。故約現在明本
001_0619_b_16L不生。旣無所止不覺之生。卽無能止
001_0619_b_17L始覺之異。依不異門。如是許也。亦
001_0619_b_18L非無止者。非無不異之始覺故。止無
001_0619_b_19L止故者。能止無生之妄心故。雖生不
001_0619_b_20L可得。而非徒無生故。非徒無生故。
001_0619_b_21L不無所止。所以非無能止之覺。如是
001_0619_b_22L答也。
001_0619_b_23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若止無止。
001_0619_b_24L止卽是生。何謂無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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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19_c_01Lc) 무생관을 드러냄
이하는 셋째 문답140)으로 무생관을 드러내는 것이다.0)
(a) 무생에 대하여 질문함
경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만약 그칠 것이 없다(無止)는 것마저도 그쳐야(止) 한다면 그친다는 바로 그것이 생깁니다. 그러면 무생無生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논 질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약 없애는(能止) 시각이 있으면 곧 없애는 관이 생긴다. 비록 불각이 기동함은 사라졌을지라도 도리어 시각의 생김이 남아 있게 된다. 그렇다면 어찌 무생관을 증득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b) 무생에 대하여 답변함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보살이여, 그친다는 것은 생김이지만 그치고 난 후에는 그치는 것도 없다. 또한 그치는 것이 없다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또한 집착이 없다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엇이 생기겠는가.”
논 답변에 두 가지가 있다.첫째는 그렇다는(與) 긍정이고, 둘째는 그렇지 않다는(奪) 부정이다.그렇다는 것은 생기는 것을 긍정하는 것인데, 방편관方便觀의 입장으로 보면 그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 세제일법世第一法141)의 경우에는 비록 식의 생김을 그쳤을지라도 그 식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식을 그친 마음(能止心)에 그쳤다는 집착이 발생된다면 식을 그친 바로 그때를 당해서는 곧 그쳤다는 사실이 생긴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이런 까닭에 “그친다는 것은 생김이다.”고 하였다.그러나 그 찰나(一念)가 지나면 곧 그쳤다는 사실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쳤다는 사실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집착심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그치고 난 후에는 그치는 것도 없다.”고 하였다. 이 경우 일체의 분별을 멀리 떠난 까닭에 그치는 것이 없다는 그 무無에도 집착하지 않고, 또한 스스로 집착이 없다는 그 마음(無住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처럼 능能과 소所가 영원히 단절되어 절대평등한데, 이때에 무엇이 생기겠는가.이와 같이 답하였다.
d) 증익견增益見과 손감견損減見을 물리침
경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능·소의 발생이 없는 마음(無生心)은 무엇을 취하고 버리며, 어떤 법의 상에 머무는 것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능소의 발생이 없는 마음은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능소가 없는 마음(不心)에 머물고 능소가 없는 법(不法)에 머문다.”
논 이는 넷째 문답142)으로 증익견增益見과 손감견損減見을 물리친 것이다.배우는 많은 이들이 “관觀에 들어간 마음은 형상 없는 도리를 취하고 모든 형상 있는 현상을 버린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와 같은 증익견을 물리치려는 까닭에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다.”고 하였다.혹은 “관에 들어간 때에는 머무는 법도 전혀 없고 또한 머무는 마음도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필경무畢竟無와 다르지 않다. -
001_0619_c_01L此下第三問答顯無生觀。難意云。
001_0619_c_02L若有能止之覺。則生能止之觀。雖遣
001_0619_c_03L不覺之起。還存始覺之生。何謂能證
001_0619_c_04L無生觀耶。
001_0619_c_05L佛言。菩薩。當止是生。止已無止。亦不
001_0619_c_06L住於無止。亦不住於無住。云何是生。
001_0619_c_07L答意有二。先與後奪。與者許生。在
001_0619_c_08L方便觀。能止心生故。且如世第一法
001_0619_c_09L之時。雖止識生。不取於識。而能止
001_0619_c_10L心。取無而生。當此止時。卽許是生。
001_0619_c_11L以之故言當止是生。過此一念。卽
001_0619_c_12L不取無。不取無故。取心不生。以之
001_0619_c_13L故言止已無止。此時遠離一切分別
001_0619_c_14L故。不住於無止之無。亦不取其自無
001_0619_c_15L住心。能所永絕。平等平等。云何是
001_0619_c_16L時可得是生。如是答也。
001_0619_c_17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無生之心。
001_0619_c_18L有何取捨。住何法相。佛言。無生之心。
001_0619_c_19L不取不捨。住於不心。住於不法。
001_0619_c_20L此是第四問答。遣增減見。謂諸學者。
001_0619_c_21L猶作是念。入觀之心。取無相理。捨
001_0619_c_22L諸相事。爲遣此增益見故。言不取不
001_0619_c_23L捨。或作是念。入觀之時。都無所住
001_0619_c_24L法。亦無能住心。如是不異於畢竟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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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0_a_01L바로 이와 같은 손감견을 없애기 위해 “능소가 없는 마음에 머물고 능소가 없는 법에 머문다.”고 하였다. 비록 머묾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머묾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머묾이 없는 것이 아니므로 ‘머문다.(住)’고 말할 수 있다.
e) 거듭 의심하는 마음을 물리침
경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무엇이 능·소가 없는 마음에 머물고 능·소가 없는 법에 머문다는 것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능·소의 마음을 발생하지 않는 그것이 능·소가 없는 마음에 머무는 것이고, 능·소의 법을 발생하지 않는 그것이 능·소가 없는 법에 머무는 것이다.
논 이하 부분은 다섯째 문답143)으로 거듭 의심하는 마음을 물리친 대목이다.의심하는 마음은 다음과 같다. “이미 머문다고 말하였으면 마땅히 마음이라고 하거나 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마음이나 법이 아니라면 마땅히 머물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 말씀은 매우 심오하니 어떻게 믿고 이해해야 하겠는가.” 이와 같이 의심한 것이다.이에 부처님이 답변한 뜻은 다음과 같다.“증득하는 관심觀心도 없고 증득된 이법理法도 없다. 그러므로 ‘능·소의 마음을 발생하지 않고 능·소의 법을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발생한다(生)는 것은 존재한다(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항상 마음과 법이 존재한 적도 없고, 간혹 실념 때문에 존재한 적도 없다. 그러므로 ‘그것이 능·소가 없는 마음에 머무는 것이고, 그것이 능·소가 없는 법에 머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머문다(住)는 것은 항상한다(恒)는 것이다. 항상 퇴실하지 않기 때문에 머문다고 하였다. 머문다는 뜻은 이와 같다. 그래서 능·소가 없는 마음을 널리 수순하니 어찌 마음과 법 사이에 어긋남이 있겠는가.”이와 같이 곧장 답변하셨다. 이하는 곧 이것을 거듭 드러낸 대목이다.
(a) 거듭 답변을 드러냄
이하는 위의 질문에 대하여 두 번 거듭하여 드러낸 대목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모든 형상을 멀리 떠나 삼세에 두루함을 드러내고, 둘째는 법계를 수순하여 육바라밀을 구비한 수행을 드러낸다.
ⓐ 모든 형상을 멀리 떠나 삼세에 두루함을 드러냄
경 선남자여, 마음과 법이 일어나지 않으면 곧 의지함이 없고, 유루의 여러 수행에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항상 공적하여 변이하는 모습이 없다.비유하면 저 허공에는 움직임(動)도 없고 머묾(住)도 없어서 일어남(起)도 없고 일으킴(作)도 없으며 저것(彼)도 없고 이것(此)도 없다. 아공의 심안을 터득하고 법공의 몸을 터득하면 오음과 육입이 모두 공적하다.
논 첫째에 세 구절이 있으니, 첫째 구절은 법法이고, 둘째 구절은 비유(喩)이며, 셋째 구절은 합合이다.“마음과 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위에서 자세하게 답변한 것을 이어받은 구절이다.“곧 의지함이 없다.”는 것은 -
001_0620_a_01L爲除此損減見。故言住於不心。住
001_0620_a_02L於不法。雖非有住。而非無住。非無
001_0620_a_03L住故。得言住也。
001_0620_a_04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云何住於
001_0620_a_05L不心。住於不法。佛言。不生於心。是住
001_0620_a_06L不心。不生於法。是住不法。
001_0620_a_07L此下第五問答重遣疑情。疑情之言。
001_0620_a_08L旣言住者。卽應是心是法。若不心法。
001_0620_a_09L卽應言是不住。此言甚深。云何信解。
001_0620_a_10L如是疑也。佛答意言。不存能證觀心。
001_0620_a_11L不存所證理法。故言不生於心。不生
001_0620_a_12L於法。生猶存也。旣恒不存心法。非
001_0620_a_13L或失念而存。故言是住不心。是住不
001_0620_a_14L法。住猶恒也。恒不退失。故名爲住。
001_0620_a_15L住義如是。彌順不心。何容相違於其
001_0620_a_16L間哉。如是正答。下卽重顯。
001_0620_a_17L善男子。不生心法。卽無依止。不住諸行。
001_0620_a_18L心常空寂。無有異相。 [15] 譬彼虛空。無有
001_0620_a_19L動住。無起無作。無彼無此。得空心眼。 [16]
001_0620_a_20L得法空身一本
作心。 [17] 五陰六入。悉皆空寂。
001_0620_a_21L此下第二重顯。於中有二。先顯遠離
001_0620_a_22L諸相。周遍三世。後顯隨順法界具
001_0620_a_23L修六度。初中三句。謂法喩合。不生
001_0620_a_24L心法者。牒前正答句。卽無依止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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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0_b_01L공간적으로 능의와 소의가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유루의 여러 수행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과거와 미래와 현재로 구별되어 나타난 수행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구별이 없으므로 마음이 항상 공적하고, 능의와 소의가 없으므로 변이하는 모습이 없다.“비유하면 저 허공에는 ……” 이하는 세 구절 가운데 둘째로서 비유를 인용한 것이다.“움직임(動)도 없고 머묾(住)도 없다.”는 것은 저 세간의 허공이 무위법으로 상주하여 이전에 소멸했다가 나중에 생겨난다든가 하는 변동이 없다는 것으로 유루의 여러 수행에 집착하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고, 또한 능의와 소의의 머묾이 없다는 것으로 곧 의지함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일어남(起)도 없고 일으킴(作)도 없다.”는 것은 곧 마음이 항상 공적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저것(彼)도 없고 이것(此)도 없다.”는 것은 변이하는 모습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공을 언급하여 불생관不生觀을 비유한 것이다.셋째 구절인 합合 부분에서 “아공의 심안을 터득한다.”는 것은 관찰하는 마음이 발생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관찰하지 못할 바가 없음을 터득한다는 것이다.“법공의 몸을 터득한다.”는 것은 관찰되는 법이 발생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평등한 법신을 터득한다는 것이다.“오음이 모두 공적하다.”는 것은 아공의 심안을 터득함으로써 시간적으로 삼세에 통달하여 오음이 공적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허공에는 일어남(起)도 없고 일으킴(作)도 없다.”는 것에 합치된다.“육입이 모두 공적하다.”는 것은 법공의 몸을 터득함으로써 공간적으로 내외에 두루하여 육입이 공적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허공에는 저것도 없고 이것도 없다.”는 것에 합치된다.
ⓑ 법계를 수순하여 육바라밀을 구비한 수행을 드러냄
경 선남자여, 공적한 법을 닦는 자는 삼계三界에 의지하지 않고, 계상戒相144)에 머물지 않으며, 청정하여 욕념이 없고, 섭수함도 없고 방탕함도 없으며, 성품은 금강과 같아 삼보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와 같이 공적심이 부동한 경지에서 육바라밀을 구비한다.”
논 이것은 둘째의 육바라밀을 구비한 수행을 드러낸다.145)“공적한 법을 닦는 자”란 위의 공적한 마음을 거듭 제기한 것이다. 이하는 모든 육바라밀을 개별적으로 드러낸 것이다.“삼계三界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보시바라밀을 갖추고, “계상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지계바라밀을 갖추며, “청정하여 욕념이 없기” 때문에 인욕바라밀을 갖추고, “섭수함도 없고 방탕함도 없기” 때문에 정진바라밀을 갖추며, “성품은 금강과 같기” 때문에 선정바라밀을 갖추고, “삼보를 저버리지 않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갖춘다.왜냐하면 오직 하나의 관심觀心으로 -
001_0620_b_01L橫無能依所依之異。不住諸行者。縱
001_0620_b_02L無曾當今現之行。無曾當故。心常空
001_0620_b_03L寂。無能所故。無有異相。譬彼已下。
001_0620_b_04L第二引喩。無有動住者。如世虛空。
001_0620_b_05L無爲常住無有前滅後生之動。喩於
001_0620_b_06L不住諸行。亦無能依所依之住。比於
001_0620_b_07L卽無依止。無起無作。卽同心常空寂。
001_0620_b_08L無彼無此。不異無有異相。故擧虛空。
001_0620_b_09L喩不生觀也。合中言得空心眼者。由
001_0620_b_10L不生能觀心。得無所不觀故。得法空
001_0620_b_11L身者。由不生所觀法。得平等法身故。
001_0620_b_12L五陰皆空者。以得空心眼。達於三世
001_0620_b_13L五陰空故。合前虛空無起作也。六入
001_0620_b_14L悉空者。以得法空身。遍於內外六
001_0620_b_15L入空故。合前虛空無彼此也。
001_0620_b_16L善男子。脩空法者。不依三界。不住戒
001_0620_b_17L相。淸淨無念。無攝無放。性等金剛。不
001_0620_b_18L壞三寶。空心不動。具六波羅蜜。
001_0620_b_19L是第二顯具修六度。修空法者者。牒
001_0620_b_20L前空寂之心。下別顯具六度。不依三
001_0620_b_21L界。故具施度。不住戒相。故具戒度。
001_0620_b_22L淸淨無念。故具忍度。無攝無放。故
001_0620_b_23L具精進。性等金剛。故具禪定。不壞
001_0620_b_24L三寶。故具般若。何以故。唯一觀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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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0_c_01L수행의 궤칙을 두루 비추어보고 모든 쟁론을 단절한 까닭에 ‘삼보’를 갖추게 되고 삼보의 뜻이 성취된 까닭에 “저버리지 않는다.”고 말한다.그리고 오직 하나의 공적한 마음으로 별도의 동작이 없으면서 육바라밀을 갖추었기 때문에 “공적심이 부동한 경지에서 육바라밀을 구비한다.”고 하였다.
f) 출세간의 육바라밀의 뜻을 거듭 드러냄
이하 부분은 여섯째 문답146)으로 출세간의 육바라밀의 뜻을 거듭 드러낸 대목이다. 질문자는 의심을 해결하기 위하여 세간의 육바라밀의 사상事相을 언급함으로써 출세간의 마음에도 육바라밀이 갖추어져 있는가를 의심한다.이에 대한 답변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간략하게 나타낸 것이고, 둘째는 자세하게 해석한 것이다.
(a) 간략하게 나타냄
경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육바라밀은 모두 유상有相인데 유상법으로 세간을 벗어날 수 있습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선남자여, 내가 설한 육바라밀은 무상無相이고 무위無爲이다.
논 이 대목은 첫째의 간략하게 나타낸 것이다.“무상이다.”라고 한 것은 보시하는 자·보시 받는 자·보시물의 세 가지 모습(三輪相)을 떠났기 때문이다.“무위이다.”라고 한 것은 생상·주상·멸상의 세 가지 유위상을 떠났기 때문이다.“내가 이전에 설한 일심이 육바라밀을 구비하고 있다.”는 것은 낱낱이 모두 무상·무위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육바라밀도 세간을 벗어난 것으로 세간의 유상·유위와는 같지 않다.
(b) 자세하게 해석함
이하는 둘째로 자세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개별적으로 해석하고, 둘째는 총체적으로 설명한다.
ⓐ 개별적으로 해석함
경 어째서인가? 이욕離欲의 경지에 잘 들어가서 마음이 항상 청정하며, 실다운 말(實語)로 방편을 삼아 본각의 이익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니, 이것이 곧 보시바라밀이다.
논 “어째서인가?”는 (앞의) 질문으로 인해 “이미 여섯 가지나 있는데 무슨 까닭에 무상이라 말하는가.”라는 물음을 일으킨 것이다.전의轉依147)된 진여를 “이욕離欲”이라 하니, 삼유三有의 욕망을 떠남으로 인해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관심의 자체를 이해한 까닭에 “잘 들어간다.”고 하였다.또 출·입이 없으므로 “마음이 항상”이라 하였고, 삼륜三輪148)에 대한 번뇌를 떠난 까닭에 “청정하다.”고 하니, 곧 위에서 말한 “삼계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001_0620_c_01L遍照可軌。絕諸諍論。故備三寶。三
001_0620_c_02L寶義成。故言不壞。唯一空心。無別
001_0620_c_03L動作。而具六度。故言空心不動具
001_0620_c_04L六波羅密。
001_0620_c_05L解脫菩薩而白佛言。尊者。六波羅密
001_0620_c_06L者。皆是有相。有相之法。能出世耶。佛
001_0620_c_07L言。善男子。我所說六波羅密者。無相
001_0620_c_08L無爲。
001_0620_c_09L此下第六問答重顯出世六度之義。
001_0620_c_10L問者乘疑。而爲決之故。擧世間六度
001_0620_c_11L事相。以疑出世心中具六。答中有二。
001_0620_c_12L一者略標。二者廣釋。此卽略標。言
001_0620_c_13L無相者。離施受等三輪相故。言無爲
001_0620_c_14L者。離生住等三有爲故。我前所說一
001_0620_c_15L心具六者。一一皆是無相無爲。故此
001_0620_c_16L六度。是出世間。不同世間有相有爲。
001_0620_c_17L何以故。善入 [18] 離欲。心常淸淨。實語方
001_0620_c_18L便。本利利人。是檀波羅密。
001_0620_c_19L此下廣釋。於中有二。先別釋。後摠
001_0620_c_20L明。何以故者。因問發起。旣有六數。
001_0620_c_21L何故無相也。轉依眞如。名爲離欲。
001_0620_c_22L離三有欲之所顯故。觀心軆解。故言
001_0620_c_23L善入。更無出入。故曰心常。離三輪
001_0620_c_24L垢。故曰淸淨。卽是上言不依三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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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1_a_01L도리에 맞게 설하므로 “실다운 말”이라 하고, 교묘하게 잘 인도하므로 “방편”이라 한다. 이것은 무공용無功用149)으로 중생을 상대하여 말해 주는 것이 마치 천고天鼓150)와 같기 때문에 방편이라 하였다.일체중생은 오직 하나의 본각을 통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일각에 함께 돌아가도록 하므로 “본각의 이익으로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출세간의 보시바라밀이다.
경 지념至念이 견고하여 마음은 항상 머묾이 없고, 청정하여 염오되지 않아 삼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계바라밀이다.
논 중생을 마치 외아들처럼 불쌍히 여기고 호념하기 때문에 “지념至念이 견고하다.”고 하였다.항상 세간에 있으면서 열반에도 머물지 않기 때문에 “마음은 항상 머묾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승의 허물151)을 방지한 것이다.관찰하는 마음이 명철하여 모든 번뇌에 뒤섞이지 않기 때문에 “청정하여 염오되지 않는다.”고 하였다.두루 윤회의 육도를 건너고 그것이 모두 공적한 줄을 통달하므로 “삼계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범부의 허물을 없앤 것이다.이것은 범부와 성인의 계상戒相에 집착함이 없음을 설명한 것으로, 곧 위에서 말한 “계상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출세간의 지계바라밀이다.
경 공을 닦아 결사結使(번뇌)를 단제하여 제유諸有152)에 의지하지 않고, 삼업을 적정하게 하여 몸과 마음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이 곧 인욕바라밀이다.
논 앞의 두 구절은 공의 도리에 안착하여 번뇌를 벗어나는 것이고, 뒤의 두 구절은 삼업을 적정하게 하여 몸과 마음의 집착을 없애는 것이다. 이는 모두 무생법인無生法忍의 뜻으로, 곧 위에서 말한 “청정하여 욕념이 없다.”는 것에 해당한다.
경 명칭(名)과 법수(數)를 멀리 떠나 공견과 유견을 단제하여 오음의 공에 깊이 들어간다. 이것이 곧 정진바라밀이다.
논 앞의 두 구절153)은 거칢(麤)과 정밀함(精)을 떠났다는 뜻이다.“공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진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곧 위에서 말한 “섭수함도 없고 방기함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출세간의 정진바라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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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1_a_01L如理而說。故言實語。巧便引導。故
001_0621_a_02L曰方便。雖無功用。應機發語。猶如
001_0621_a_03L天鼓。此之謂也。一切衆生。唯一本
001_0621_a_04L覺。令諸衆生。同歸一覺。以之故言
001_0621_a_05L本利利人。是名出世檀波羅密。
001_0621_a_06L至 [19] 念堅固。心常無住。淸淨無染。不着
001_0621_a_07L三界。是尸波羅密。
001_0621_a_08L愍念衆生。如視一子。故曰至念堅固。
001_0621_a_09L恒在世間。不住涅槃。故曰心常無住。
001_0621_a_10L是防二乘之非。觀心明徹。不雜諸漏。
001_0621_a_11L故言淸淨無染。遍涉六道。達皆空寂。
001_0621_a_12L故言不着三界。是止凡夫之惡。是明
001_0621_a_13L不住凡聖戒相。卽是上言不住戒相。
001_0621_a_14L是名出世尸波羅密。
001_0621_a_15L修空斷結。不依諸有。寂靜三業。不住
001_0621_a_16L身心。是羼提波羅密。
001_0621_a_17L上二句者。安空理。離有結。下二句
001_0621_a_18L者。靜三業。泯身心。皆是無生法忍
001_0621_a_19L之義。卽是上言淸淨無念。
001_0621_a_20L遠離名數。斷空有見。深入陰空。是毗
001_0621_a_21L梨耶波羅密。
001_0621_a_22L上二句者。離麁精義。入空者。是進
001_0621_a_23L義。卽是上言無攝無放。此是出世精
001_0621_a_24L進度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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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1_b_01L경 공적을 완전하게 떠나 모든 공에 집착하지 않지만, 마음이 무無의 경지에 처하여 대공大空에 머문다. 이것이 곧 선정바라밀이다.
논 “공적을 완전하게 떠났다.”는 것은 응화신으로 생을 받아 삼유에 편재하기 때문이고, “모든 공에 집착이 없다.”는 것은 오음의 공에 빠져 있지 않고 항상 시방세계를 교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생을 교화하는 선정을 설명한 것이다.“마음이 무의 경지에 처하여”는 비록 몸은 삼유에 노닐더라도 마음은 항상 이무理無의 경지에 있다는 것이다. 이무란 삼유의 집착을 단절한 공의 도리를 말한다.“대공에 머문다.”는 것은 비록 항상 시방세계를 교화할지라도 마음은 대공大空154)에 있다는 것이다. 대공이란 시방의 전체 모습(大相)이 공한 것이다. 이것은 불법을 성취한 선정을 드러낸 것이다. 몸에는 비록 일어남(起)과 일으킴(作)이 있지만 마음은 적연부동하니, 곧 위에서 말한 “성품은 금강과 같다.”는 것이다.그러나 대공에는 대략 다섯 가지 뜻이 있다.첫째는 인공과 법공의 이공을 대공이라 하니, 『잡아함경雜阿含經』 가운데 대공경大空經의 설명과 같다.155) 또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서도 같은 설명을 한다.156)둘째는 반야바라밀이 공한 것을 대공이라 하니, 『열반경涅槃經』의 설명과 같다.157) 또 『능가경楞伽經』에서도 같은 설명을 한다.158)셋째는 기세계器世界가 공한 것을 대공이라 하니, 『해심밀경解深密經』의 설명과 같다.159) 또 『중변론中邊論』에서도 같은 설명을 한다.160)넷째는 아리야식이 공한 것을 대공이라 하니, 『십지론十地論』의 설명과 같다.161)다섯째는 시방의 모습이 공한 것을 대공이라 하니, 『대지도론大智度論』의 설명과 같다.162)이 『금강삼매경』의 경문은 이 가운데 다섯 번째의 경우에 해당하니,163) 편의에 따라 이렇게 설한 것일 뿐이다.
경 마음에 마음이라는 분별상이 없어서 허공에도 집착하지 않고 모든 유루의 수행도 발생시키지 않으며 적멸도 증득하지 않는다. 또 마음에 출·입이 없어서 자성은 항상 평등하고 제법은 실제로서 모두 결정성이다. 이처럼 모든 수행의 단계(諸地)에 의지하지 않고 지혜에도 머물지 않는다. 이것이 곧 반야바라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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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1_b_01L具 [20] 離空寂。不住諸空。心處無。在大空
001_0621_b_02L一本云。心處無
住。不住大空。 [21] 是禪波羅密。
001_0621_b_03L具離空寂者。應化受生。遍三有故。
001_0621_b_04L不住諸空者。不滯五空。恒化十方故。
001_0621_b_05L此明敎化衆生禪也。心處無者。雖身
001_0621_b_06L涉於三有。心常處於理無。理無者。
001_0621_b_07L理絕三有之相也。在大空者。雖恒化
001_0621_b_08L於十方。而心在於大空。大空者。十
001_0621_b_09L方大相之空也。此顯成就佛法禪也。
001_0621_b_10L身雖起作。心寂不動。卽是上言性等
001_0621_b_11L金剛。然大空義。略有五種。一者。人
001_0621_b_12L法二空。名爲大空。如雜阿含大空經
001_0621_b_13L說。瑜伽論中。亦同是說。二者。般若
001_0621_b_14L波羅密空。名爲大空。如大涅槃經說。
001_0621_b_15L楞伽經中。亦同是說。三者。器世界
001_0621_b_16L空。名爲大空。如解深密經說。中邊
001_0621_b_17L論中。亦同是說。四者。阿梨耶識空。
001_0621_b_18L名爲大空。如十地論說。五者。十方
001_0621_b_19L相空。名爲大空。如智度論說。今此
001_0621_b_20L經文。在於第五。且隨意便。作是說
001_0621_b_21L耳。
001_0621_b_22L心無心相。不取虛空。諸行不生。不證
001_0621_b_23L寂滅。心無出入。性常平等。諸法實際。
001_0621_b_24L皆決定性。不依諸地。不住智慧。是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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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1_c_01L논 “마음에 마음이라는 분별상이 없다.”는 것은 자기의 내심에 관심의 모습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고, “허공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텅 빈 마음의 공성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증도證道의 지혜이다.“모든 유루의 수행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일체행이 본래 발생이 아님을 통달하는 것이고, “적멸도 증득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생에 집착하지 않고 항상 밖으로 교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도敎道의 지혜이다.“마음에 출·입이 없어서 자성은 항상 평등하다.”는 것은 위의 증도와 교도가 항상 서로 떠나지 않아 작용하지만 항상 고요하고, 고요하지만 항상 작용하므로 출·입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용과 고요가 항상 병행하여 일변에 빠지지 않으므로 자성이 항상 평등하다고 하였다.“제법은 실제로서 모두 결정성이다.”라는 것은 증도가 상적常寂한 모습을 연설한 것인데, 그 모습이 진제와 동일하고 법성과 평등하기 때문이다.“이처럼 모든 수행의 단계(諸地)에 의지하지 않고 지혜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교도가 항상 작용하는 유래를 연설한 것인데, 십중十重의 법계에도 의지하지 않고 적조寂照의 지혜에도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곧 깨우쳐 두루 비추어보는 것(覺照)과 수행의 궤칙(可軌)과 모든 쟁론의 단절(絶諍)이라는 뜻이 갖추어져 있다. 이것은 곧 위에서 말한 “삼보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출세간의 반야바라밀이다.이상으로 육바라밀을 개별적으로 해석한 글을 마친다.
ⓑ 총체적으로 설명함
이하는 둘째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164) 여기에 두 부분이 있다. 첫째는 육바라밀이 해탈과 동일함을 설명하고, 둘째는 해탈이 곧 열반임을 드러낸다.
ㄱ. 육바라밀이 해탈과 동일함을 설명함
경 선남자여, 이 육바라밀은 모두 본각의 이익을 획득하여 결정성에 들어가 초연히 세간을 벗어나는 걸림 없는 해탈이다.
논 첫째 가운데서 “모두 본각의 이익을 획득하여 결정성에 들어간다.”는 것은 육바라밀을 처음 닦을 때 모두 본각과 동일해져서, 본각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익이 환히 드러나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래장에 들어가니, 그 자성은 본래 적정하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서 개전改轉이 없기 때문이다.이와 같은 육바라밀은 본각의 이익을 얻기 때문에 망념으로 유전하는 모습을 멀리 떠났으므로 -
001_0621_c_01L若波羅密。
001_0621_c_02L心無心相者。不存自內觀心相故。不
001_0621_c_03L取虛空者。不取心虛之空性故。此是
001_0621_c_04L證道慧也。諸行不生者。達一切行本
001_0621_c_05L來不生故。不證寂滅者。不着無生。而
001_0621_c_06L恒外化故。此是敎道慧也。心無出入。
001_0621_c_07L性常平等者。前之二道。恒不相離。
001_0621_c_08L動而常寂。寂而恒動。故無出入。動
001_0621_c_09L寂恒並。不滯一邊。故性常平等。諸
001_0621_c_10L法實際。皆決定性者。演證道之常寂
001_0621_c_11L之相。相同眞際。等法性故。不依諸
001_0621_c_12L地不住智慧者。演敎道之恒動之由
001_0621_c_13L不依着於十重法界。不住滯於寂照
001_0621_c_14L慧故。此中卽具覺照可軌絕諍之
001_0621_c_15L義。卽是上言不壞三寶。是名出世般
001_0621_c_16L若波羅密也。上來別釋六度文竟。
001_0621_c_17L善男子。是六波羅密者。皆獲本利。入
001_0621_c_18L決定性。超然出世。無礙解脫。
001_0621_c_19L此下第二摠明。於中有二。先明六度
001_0621_c_20L同一解脫。後顯解脫卽是涅槃。初中
001_0621_c_21L言皆獲本利入決定性者。六度始修。
001_0621_c_22L皆同本覺。本覺顯成。本利行故。入
001_0621_c_23L如來藏。性本寂靜。無始無終。無改轉
001_0621_c_24L故。如是六度。得本利故。遠離妄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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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2_a_01L“초연히 세간을 벗어났다.”고 하였다.법성에 들어가므로 법계에 주변하여 분별상이 없고(無相) 조작의 유위가 없으며(無爲) 얽매임이 없고(無縛) 벗어남이 없다(無脫). 그러므로 “걸림 없는 해탈이다.”라고 하였다.
ㄴ. 해탈이 곧 열반임을 드러냄
경 선남자여, 이와 같이 해탈법의 모습은 모두 상相도 없고 행行도 없으며, 또한 벗어남(解)도 없고 벗어나지 못함(不解)도 없으므로 해탈이라 말한다.왜냐하면 해탈의 모습은 무상無相이고 무행無行이며 무동無動하고 무란無亂하여 적정한 열반이지만 또한 열반의 모습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논 이 부분은 둘째 해탈이 곧 열반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 두 부분이 있다. 첫째는 해탈을 설명하고, 둘째는 해탈이 그대로 열반임을 밝힌다.첫째 가운데 “모두 분별상도 없고 유위행도 없다.”는 것은 육바라밀의 수행이 모두 본각과 동일한 것을 말한다. 곧 본각의 모습은 형상(相)을 떠나 있고 성질(性)을 떠나 있으므로 분별상(相)이 없다고 하였고, 육바라밀의 수행은 닦음(修)을 떠나 있고 나아감(行)을 떠나 있으므로 유위행(行)이 없다고 하였다. 이처럼 분별상과 유위행이 모두 단절되어 있으므로 “모두 분별상도 없고 유위행도 없다.”고 하였다.해탈법의 모습이 이미 이와 같은데 어찌 결박을 떠난 벗어남(解)이 있고 어찌 벗어나지 못한(不解) 결박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또한 벗어남(解)도 없고 벗어나지 못함(不解)도 없다.”고 하였다.“왜냐하면”이란 ‘무슨 까닭에 육바라밀의 수행에 대하여 분별상이 없고 유위행이 없다고 말하는가.’라는 뜻이다.이 뜻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육바라밀은 곧 해탈일 뿐만 아니라 또한 열반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상도 없고 행도 없다.”고 하였다. “해탈의 모습은 무상이고 무행이다.”라는 것은 앞의 해탈을 이어받은 것이고, “무동하고 무란하여 적정한 열반이다.”라는 것은 해탈이 곧 열반임을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위에서 설명해 온 육바라밀의 수행이 모두 기동도 없고 또 산란도 없어 곧 본래 적정한 열반임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이미 열반인데 어찌 분별상(相)과 유위행(行)이 있겠는가. 요동(動)과 산란(亂)의 모습을 떠나 있으므로 적정이라 한다. 또한 적정한 자성도 떠나 있으므로 “또한 열반의 모습에도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이 가운데 육바라밀과 해탈과 열반은 -
001_0622_a_01L流轉之相。故曰超然出世。入法性故。
001_0622_a_02L周遍法界。無相無爲。無縛無脫。故
001_0622_a_03L曰無礙解脫。
001_0622_a_04L善男子。如是解脫法相。皆無相行。亦
001_0622_a_05L無解不解。是名解脫。何以故。解脫之
001_0622_a_06L相。無相無行。無動無亂。寂靜涅槃。亦
001_0622_a_07L不取涅槃相。
001_0622_a_08L是第二明解脫卽是涅槃。於中有二。
001_0622_a_09L先明解脫。後卽涅槃。初中言皆無
001_0622_a_10L相行者。六度之行。皆同本覺。本覺
001_0622_a_11L之相。離相離性。故曰無相。六度之
001_0622_a_12L行離修離行。故曰無行。行相俱絕。
001_0622_a_13L故言皆無相行。解脫法相旣其如是。
001_0622_a_14L何有離縛之解。何有不解之縛。故言
001_0622_a_15L亦無解不解。何以故者。何故六度之
001_0622_a_16L行而言無相行耶。答此意言。如是
001_0622_a_17L六度。非但卽是解脫。亦乃卽是涅槃。
001_0622_a_18L是故說言無相行也。解脫之相無相
001_0622_a_19L無行者。牒前解脫。無動無亂寂靜涅
001_0622_a_20L槃者。明卽涅槃。欲明如前所說六
001_0622_a_21L度之行。皆無起動。亦無散亂。卽是
001_0622_a_22L本來寂靜涅槃。旣卽是涅槃。何有相
001_0622_a_23L行耶。離動亂相。故曰寂靜。亦離寂
001_0622_a_24L靜性故。亦不取涅槃相也。此中六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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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2_b_01L처음 초지로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불지에 이르기까지 모두에 해당한다.여기에서 말한 열반이란 네 가지 종류(本來自性淸淨涅槃·有餘依涅槃·無餘依涅槃·無住處涅槃) 가운데 곧 ‘본래자성청정열반’이다. 바로 이것은 불가사의해탈로서 자재하여 걸림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까닭에 “걸림이 없는 해탈이다.”라고 하였다.
문 해탈의 뜻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쌍도雙道(無間道와 解脫道) 가운데 해탈이고, 둘째는 원이삼점圓伊三點(法身·般若·解脫) 가운데 해탈이며, 셋째는 오분법신(戒身·定身·慧身·解脫身·解脫知見身) 가운데 해탈이고, 넷째는 십종해탈문十種解脫門165) 가운데 해탈이다. 이 여러 가지 가운데 어떤 것에 해당하는가?답 이것은 삼사三事166) 가운데 해탈을 가리킨다. 해탈이 곧 그대로 열반이기 때문이다. 육바라밀의 수행과 삼사의 덕을 드러내고자 할 경우에 그것을 사실적으로 말하면 초지에서 이미 터득되지만 이에 묘각위妙覺位에 이르러 구경원만해진다. 저 경전에서 “만약 어떤 보살이 대열반에 머물면 대의大義를 건립한다. …….”167)고 자세하게 설한 것과 같다.
② 중송重頌
경 해탈보살이 이 말씀을 듣고서 마음에 큰 기쁨을 느끼고 미증유한 경지를 증득하였다. 이에 그 뜻을 펼치고자 게송을 읊었다.
大覺滿足尊 대각을 원만구족한 세존께서는
爲衆敷演法 중생 위해 법 널리 연설하시네
皆說於一乘 모두 다 일승법만을 설명하시고
無有二乘道 그 밖에 이승의 도 전혀 없다네
一味無相利 분별없는 일미본각의 이익들은
猶如大虛空 비유하면 마치 큰 허공과 같아
無有不容受 일체를 수용하지 못할 것 없네
隨其性各異 자기의 성품 각각 다름을 따라
皆得於本處 모두가 본래자리를 얻게 한다네
논 이하는 둘째의 중송重頌이다.168) 그 가운데 먼저 경가經家의 서발序發이 있다. 본격적으로 읊은 것에는 일곱 행의 게송이 있다. 여기에도 두 가지가 있다. 앞의 여섯 행의 게송은 별송別頌이고, 뒤의 하나는 총송摠頌이다.
가. 여섯 행의 별송別頌
별송 가운데도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두 게송과 한 구절로서 앞에서 간략히 표방한 것(略標)169)을 읊었고, 둘째는 세 게송과 세 구절로서 뒤의 자세하게 해석한 것을 읊었다.
가) 간략히 표방한 것을 읊음
약표 중에서 “제불의 지혜의 경지는 진실한 법의 상에 들어간 것으로 결정성이기 때문이다. 방편과 신통은 모두 분별상이 없는 이익이다.”라고 말한 것을 지금 여기 중송 부분에서는 처음의 한 게송170)으로 읊었다.또한 “일각一覺과 요의了義는 이해하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렵다. -
001_0622_b_01L解脫涅槃。始從初地。乃至佛地。言
001_0622_b_02L涅槃者。四種之中。卽是本來淸淨涅
001_0622_b_03L槃。正是不可思議解脫。依其自在無
001_0622_b_04L障礙義。是故說名無礙解脫。問。解脫
001_0622_b_05L之義。乃有衆多。有雙道中解脫。有
001_0622_b_06L三點中解脫。五分法身之中解脫。十
001_0622_b_07L種解脫門中解脫。是諸門內。爲在何
001_0622_b_08L門。答。是三事中解脫。解脫卽是涅
001_0622_b_09L槃故。欲顯六度之行。三事之德。尅
001_0622_b_10L實而言。初地已得。乃至妙覺位。究
001_0622_b_11L竟圓滿。如經中說。若有菩薩。住大
001_0622_b_12L涅槃。能建大義。乃至廣說故。
001_0622_b_13L解脫菩薩。聞是語已。心大欣懌。得未
001_0622_b_14L曾有。欲宣義意。而說偈言。
001_0622_b_15L大覺滿足尊。爲衆敷演法。皆說於一乘。
001_0622_b_16L無有二乘道。一味無相利。猶如大 [22] 虛空。
001_0622_b_17L無有不容受。隨其性各異。皆得於本處。
001_0622_b_18L此下第二重頌。於中在先經家序發。
001_0622_b_19L正頌之中。有七行頌。於中有二。前
001_0622_b_20L六別頌。後一摠頌。初中亦二。一者
001_0622_b_21L二頌一句。頌前略標。二者三頌三句。
001_0622_b_22L頌後廣釋。略標中言。諸佛智地入
001_0622_b_23L實法相決定性故。方便神通皆無相
001_0622_b_24L利。今此頌中初一頌頌。又言一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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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2_c_01L(그래서 이승의 지견으로 들어갈 바가 아니다. 오직 불·보살만이 그 경계를 알아) 제도할 수 있는 중생에게는 모두 일미법을 설하였다.”고 말한 것을 지금 여기 중송 부분에서는 세 가지 뜻으로 읊었다. 앞의 “분별없는 일미본각의 이익들은”의 한 구절은 설법의 내용(法說)을 읊었고, 다음의 “비유하면 마치 큰 허공과 같아 일체를 수용하지 못할 것 없네.”의 두 구절은 비유를 인용하여(引喩) 읊었으며, 마지막의 “자기의 성품 각각 다름을 따라 모두가 본래자리를 터득한다네.”의 두 구절은 비유와 합하여(合喩) 읊었다.
나) 자세하게 해석한 것을 읊음
이하는 자세하게 해석한 경문을 읊은 것이다. 여기에 두 부분이 있다. 위의 다섯 구절171)은 널리 무상관無相觀을 읊은 것이고, 뒤의 두 게송 반172)은 자세하게 일각의 뜻을 읊은 것이다.
(가) 널리 무상관을 읊음
경
如彼離心我 이처럼 아와 법을 떠난 까닭은
一法之所成 일법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네
諸有同異行 제유에 같고 다른 수행 있지만
皆獲於本利 모두 다 본각의 이익 획득하여
滅絶二相見 유무견과 유무상을 멸절시키네173)
논 첫째의 널리 무상관을 읊은 내용에는 본격적이고 자세한 것(正廣)과 거듭 드러낸 것(重顯)이 있다.
㉮ 본격적이고 자세하게 읊음(正廣)
이제 처음의 두 구174)는 본격적이고 자세한 경문에 대하여 읊은 것이다. 여기 본격적이고 자세한 것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방편관方便觀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정관正觀을 설명한 것이다.지금 위의 게송은 정관에 해당하는 경문을 읊은 것이다. 경문의 말에는 “일체중생에게 망아妄我가 있거나 망심妄心이 있으면 어떤 법으로 중생을 일깨워 그 결박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합니까.” 내지 “자세하게 능과 소를 멀리 떠나도록 한다.”는 대목이 있는데,175) 지금 이 2구는 바로 이 경문에 대하여 읊은 것이다.“일법으로”란 유변과 무변을 떠난 일실중도관一實中道觀이다. 이로써 망심과 망아에 대한 집착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 거듭 드러내어 읊음(重顯)
거듭 드러낸 경문에는 네 가지 문답이 있다. 지금 이 2구176)는 네 가지 문답 가운데 제1과 제2의 문답에 대하여 읊은 것이다.“제유에 같고 다른 수행 있지만”이란 제1의 문답 가운데 “일체의 심心과 상相에 본래 근본이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경문은 곧 같은 수행(同行)으로 총상관摠相觀이다.제2의 문답에서는 “자아(我)가 있다고 보는 자에게는 십이인연을 관찰토록 하라.”고 하고, 또한 “만약 자아가 있다고 보는 자에게는 유견有見을 없애 주고, 만약 자아가 없다고 보는 자에게는 무견無見을 없애 줘야 한다. 그래서 만약 마음이 발생한다고 집착하는 경우에는 소멸된다는 자성(滅性)으로 없애 주고, 만약 마음이 소멸한다고 집착하는 경우에는 발생한다는 자성(生性)으로 없애 줘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경문은 곧 다른 수행(異行)으로 별상관別相觀이다.여기에서 같은 수행(同行)과 다른 수행(異行)은 그 소입所入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모두 다 본각의 이익 획득하여”라고 하였다. -
001_0622_c_01L了義難解難入。乃至可度衆生皆說
001_0622_c_02L一味。今此頌中以三義頌。謂前一
001_0622_c_03L句是法說頌。次二句引喩頌。後二
001_0622_c_04L句合喩頌。
001_0622_c_05L如彼離心我。一法之所成。諸有同異行。
001_0622_c_06L皆獲於本利皆一本
作悉。滅絕二相見。
001_0622_c_07L此下頌廣釋文。於中有二。先五句。頌
001_0622_c_08L廣無相觀。後二頌半。頌廣一覺義。
001_0622_c_09L廣無相中。正廣重顯。今初二句。頌
001_0622_c_10L正廣文。前正廣中。亦有二分。先方
001_0622_c_11L便觀。後明正觀。今此頌中。頌正觀
001_0622_c_12L文。彼言令彼衆生皆離心我。乃至
001_0622_c_13L廣說遠離能所。今此二句正頌此文。
001_0622_c_14L言一法者。離有無邊。一中道觀。以
001_0622_c_15L此能離心我執故。重顯文中。有四問
001_0622_c_16L答。今此二句頌前二番問答。所言
001_0622_c_17L諸有同異行者。彼初番答中言。一切
001_0622_c_18L心相。本來無本。如是等文。卽是同
001_0622_c_19L行摠相觀故。第二番答中言。若有我
001_0622_c_20L者令觀十二因緣。又言若有我者
001_0622_c_21L令滅有見。若無我者令滅無見。若
001_0622_c_22L心生者令滅滅性。若心滅者令滅
001_0622_c_23L生性。如是等文卽是異行別相觀故。
001_0622_c_24L此同異行所入無異。故言皆獲於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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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3_a_01L이것은 제2의 문답 끝 부분에서 “없애 주는(滅) 것이야말로 곧 견성으로 실제에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가리킨다.또한 이 게송에서 “유무견과 유무상을 멸절시키네.”라고 말한 것은 네 가지 문답 가운데 제3과 제4의 문답에 대하여 읊은 것이다. 곧 저 제3의 문답 가운데서 말한 “법이 생겨난다고 보는 경우에는 무無라는 견해로 없애 주고, 법이 소멸한다고 보는 경우에는 유有라는 견해로 없애 줘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지금 여기에서는 “유견과 무견을 소멸시키네.”라고 바로 게송으로 말한 것이다.제4의 문답 가운데 “생·멸이 모두 소멸되면 본생이 되고 불생이 되어 마음이 항상 공적하다. 공적한 무주의 경지야말로”라는 것에 대하여 지금 여기에서는 “유상과 무상을 단절시키네.”라고 바로 게송으로 읊은 것이다.
(나) 자세하게 일각의 뜻을 읊음
이하 두 게송 반은 널리 일각一覺에 대하여 읊은 것이다. 널리 일각에 대해 읊은 부분은 본격적이고 자세한 것(正廣)과 거듭 드러낸 것(重顯)이 있다.
(㉮ 본격적이고 자세하게 읊음)
㉯ 거듭 드러내어 읊음
그러나 지금 여기 부분은 거듭 드러낸 것에 대해서만 읊었다. 거듭 드러낸 경문의 산문 부분에 여섯 가지 문답이 있다.177)여기 경문의 두 게송 반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위의 한 게송은 여섯 가지 문답 가운데 제6의 답변에 대한 것이고, 이하의 한 게송 반은 여섯 가지 문답 가운데 제5의 답변에 대한 것이다. 이전의 네 가지 문답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읊지 않았다.
a. 제6의 답변에 대한 것
경
寂靜之涅槃 요동 없고 요란 없는 적정열반
亦不住取證 또 깨침의 터득에도 집착 없네
入於決定處 결정 도리에 들어 있기 때문에
無相無有行 상도 없고 또한 행조차도 없네
논 제6의 답변 가운데서는 “결정성에 들어가는 것이며 출세에 초연하는 것이고 걸림이 없는 해탈이다. …… 해탈의 모습은 분별상이 없고(無相) 유위행이 없으며(無行) 요동이 없고(無動) 요란이 없으며(無亂) 적정한 열반이지만 또한 열반의 모습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지금 여기 한 게송에서는 차제를 바꾸어 읊은 것이다.178)
b. 제5의 답변에 대한 것
경
空心寂滅地 텅 빈 마음의 적멸한 경지에는
寂滅心無生 적멸한 그 마음도 발생이 없네
同彼金剛性 저 금강의 성품과 아주 똑같아
不壞於三寶 불법승 세 보배 저버리지 않고
具六波羅蜜 여섯 가지 바라밀 두루 갖추어
度諸一切生 일체중생을 죄다 제도해 준다네
논 이것은 제5의 답변에 대하여 읊은 것이다. 경문에서 “마음과 법에 능·소가 발생하지 않으면 곧 의지함이 없고, 모든 유위행에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항상 공적하여 변이하는 모습이 없다. …… 자성은 금강과 같고, 삼보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와 같이 공적심의 부동경지에서 육바라밀을 구비한다.”고 말한 것에 대하여 지금 여기 게송에서는 답변하는 내용을 순차적으로 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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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3_a_01L利。如前末言。滅是見性卽入實際
001_0623_a_02L故。又此頌言滅絕二相見者。頌後
001_0623_a_03L二番問答。彼第三答中言。見法生時
001_0623_a_04L令滅無見。見法滅時令滅有見。今
001_0623_a_05L正頌此故言滅二見也。第四答言。
001_0623_a_06L生滅俱滅本生不生心常空寂空
001_0623_a_07L寂無住。今正頌此。故言絕二相也。
001_0623_a_08L寂靜之涅槃。亦不住取證。入於決定處。
001_0623_a_09L無相無有行。
001_0623_a_10L此下。二頌半頌廣一覺。廣一覺中。
001_0623_a_11L正廣。重顯。1)今 [9] 此頌中唯頌重顯。重
001_0623_a_12L顯文中。有六問答。此中有二。前之
001_0623_a_13L一頌頌第六答。次一頌半頌第五
001_0623_a_14L答。前四問答略而不頌。第六答中
001_0623_a_15L言。入決定性超然出世無礙解脫
001_0623_a_16L解脫之相無相無行無動無亂寂
001_0623_a_17L靜涅槃亦不取涅槃相。今此頌中
001_0623_a_18L逆次頌也。
001_0623_a_19L空心寂滅地。寂滅心無生。同彼金剛性。
001_0623_a_20L不壞於三寶。具六波羅密。度諸一切生。
001_0623_a_21L此是頌第五答。彼文言。不生心法
001_0623_a_22L卽無依止不住諸行心常空寂無
001_0623_a_23L有異相。乃至性等金剛不壞三寶
001_0623_a_24L空心不動具六波羅密。今此頌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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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3_b_01L나. 하나의 총송摠頌
경
超然出三界 초연히 삼계를 벗어남은
皆不以小乘 다 소승에 의하지 않으니
一味之法印 일미의 법으로 인증하고
一乘之所成 일승으로 이룬 것이라네
논 이 한 게송은 「무상법품」의 대의를 총체적으로 읊은 것이다.경문의 대의를 풀이한 것은 앞에서 설한 것과 같다.
(3) 대중이 이익을 얻은 부분(得益分)
경 그때 대중은 「무상법품」에 대한 설법을 듣고 마음이 크게 기뻤다. 그리고 심상心相(法見)과 아상我相(我見)에 대한 집착을 떠나서 공의 무분별상(無相)의 경지에 들어갔다. 이에 마음이 텅 비고 탁 트여 모두 결정성을 터득하였고, 번뇌(結使)를 단제하여 유루혹(漏惑)을 탕진하였다.
논 「무상법품」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179) 이 가운데 앞의 두 대문大文, 즉 삼매에서 나오는 부분(出定分)과 설법을 시작하는 부분(起說分)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마쳤다. 여기 대문은 셋째로서 당시의 대중이 이익을 얻은 부분(得益分)이다.“심상心相과 아상我相에 대한 집착을 떠났다.”는 것은 아공과 법공의 진여를 증득한 것이다.“번뇌를 단제하고 유루혹을 탕진하였다.”는 것은 견혹見惑과 수혹修惑을 단제한 것이다. 이것은 초지에 들어가면 견도에서 곧바로 견혹을 단제하고, 아울러 수혹도 단제함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뜻은 『미륵소문론』의 설명과 같다.180) 보다 자세한 것은 『이장장二障章』에 있다.181)
『금강삼매경론』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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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3_b_01L順次頌也。
001_0623_b_02L超然出三界。皆不以小乘。一味之法印。
001_0623_b_03L一乘之所成。
001_0623_b_04L此一頌者摠頌前來一品大意。消文
001_0623_b_05L大意。已如前說。
001_0623_b_06L爾時。大衆聞說是義。心大欣懌。得離
001_0623_b_07L心我。入空無相。恢廓曠蕩。皆得決定。
001_0623_b_08L斷結盡漏。
001_0623_b_09L一品之內有三分中。前之二分。竟
001_0623_b_10L在於前。此是大文第三時衆得益。
001_0623_b_11L得離心我者。證二空眞如故。斷結盡
001_0623_b_12L漏者。斷見修二惑故。欲顯得入初地
001_0623_b_13L見道正斷見惑。兼斷修惑。義如彌
001_0623_b_14L勒所問論說。於中委悉在二障章也。
001_0623_b_15L金剛三昧經論卷上。
001_0623_b_16L「今」作「令」{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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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23_c_01L
- 1)삼공三空 : 법상종法相宗에서 삼성三性이 모두 무자성공無自性空임을 말하는 변계소집성공遍計所執性空·의타기성공依他起性空·원성실성공圓成實性空이다. 이하에서 설명하는 공상공空相空(平等空)·공공공空空空(差別空)·소공공所空空(中道空) 참조.
- 2)중中 : 중도中道로서 ‘도리에 적중的中하다’라는 뜻으로 상황에 대한 불편부당不偏不黨하고 적절한 입장을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삼공三空이 단순히 공간적·시간적인 의미의 중中이 아님을 말한다. 이하에서 “그러므로 중도에 들어가는 것은 곧 삼공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所以入中卽入三空)”라고 하였다.
- 3)핵심(環中) : 중심·핵심·꼭지점이 되는 것을 말한다. 달리 천도天道·천리天理·지도至道·지리至理라고도 하며 근원에 통하는 것이다. 방외方外는 이와는 반대 개념이다.
- 4)오법五法 : 상相·명名·분별分別·정지正智·여여如如의 다섯 가지 법을 가리킨다.
- 5)육행六行 :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십지十地·등각等覺 등 수행의 여섯 계위를 가리킨다.
- 6)여섯 품 : 「序品」과 「總持品」을 제외한 「無相法品」, 「無生行品」, 「本覺利品」, 「入實際品」, 「眞性空品」, 「如來藏品」의 여섯 품을 가리킨다.
- 7)구식九識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암마라식唵摩羅識 등 아홉 가지 식을 가리킨다.
- 8)사지四智 : 성소작지成所作智·묘관찰지妙觀察智·평등성지平等性智·대원경지大圓鏡智 등 네 가지 지智를 가리킨다.
- 9)삼신三身 : 대원경지로 성취되는 법신法身, 평등성지로 성취되는 보신報身, 묘관찰지와 성소작지로 성취되는 화신化身을 가리킨다.
- 10)일실一實 : 여기서 일실一實은 유일진실唯一眞實로서의 중도관中道觀을 말한다.
- 11)일행一行 : 유일무이행唯一無異行으로서 곧 보리행菩提行을 가리킨다.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1(X35, 323b~c).
- 12)일미一味 : 금강삼매의 종의宗義로서 일체의 분별 집착을 벗어난 가르침을 가리킨다.
- 13)삼계三戒 : 섭률의계攝律儀戒·섭선법계攝善法戒·섭중생계攝衆生戒의 삼취정계三聚淨戒를 가리킨다.
- 14)삼대제三大諦 : 보리도菩提道에 해당하는 평등제平等諦, 대각大覺에 해당하는 정지득제正智得諦, 혜정慧定에 해당하는 무이행입제無異行入諦를 가리킨다.
- 15)삼해탈三解脫 : 삼삼매三三昧로서 공삼매空三昧·무상삼매無相三昧·무원삼매無願三昧를 가리킨다.
- 16)삼지三地 : 본 경문의 「眞性空品」 가운데 등각의 경지에서 드러나는 지위를 말한다. 첫째는 백겁위의 항포지行布地, 둘째는 천겁위의 등각지等覺地, 셋째는 만겁위의 건혜지乾慧地이다.
- 17)묘각의 삼신 : 묘각의 경지에서 자재하게 드러나는 법신과 보신과 화신을 가리킨다.
- 18)삼공취三空聚 : 삼삼매로서三三昧로서 삼해탈과 마찬가지로 공삼매空三昧·무상삼매無相三昧·무원삼매無願三昧를 가리킨다.
- 19)삼유심三有心 : 욕유심欲有心·색유심色有心·무색유심無色有心을 가리킨다.
- 20)사정근四正勤 : ⓢ catvāri-samyak-prahāņāni. 사정단四正斷·사정승四正勝·사의단四意端·사의단四意斷이라고도 한다. 삼십칠조도품에서 사념처四念處의 다음에 닦는 네 가지 수행법이다. 곧 이미 생긴 악은 없애고(斷斷),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미리 방지하며(律儀斷),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증장하고(修斷),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발생하도록 하는 것(修護斷)이다.
- 21)사신족四神足 : 사여의족四如意足이라고도 하는데, 욕여의족欲如意足·정진여의족精進如意足·심여의족心如意足·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을 가리킨다.
- 22)사대연四大緣의 힘 : 첫째는 택멸을 작용시키는 힘으로 별해탈계를 취하는 연인데, 말하자면 섭률의계攝律儀戒이다. 둘째는 본각의 이익인 청정한 근본의 힘으로 모든 선법을 집기하는 연인데, 말하자면 섭선법계攝善法戒이다. 셋째는 본각의 지혜인 대비의 힘을 일으키는 연인데, 말하자면 섭중생계攝衆生戒이다. 넷째는 일본각一本覺으로 삼취정계를 두루 꿰뚫어보는 지혜력의 연인데, 말하자면 진여를 따라 머무는 것이다.
- 23)사선四禪 : 색계에서 터득하는 초선初禪·제이선第二禪·제삼선第三禪·제사선第四禪을 가리킨다.
- 24)사방四謗 : 유有·무無·역유역무亦有亦無·비유비무非有非無의 사구四句로서 온갖 분별을 상징한다.
- 25)사홍지四弘地 : 사홍서원四弘誓願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을 가리킨다.
- 26)오음五陰 : 색음色陰·수음受陰·상음想陰·행음行陰·식음識陰을 가리킨다.
- 27)오십악五十惡 : 식음識陰에 여덟 가지, 수음受陰에 여덟 가지, 상음想陰에 여덟 가지, 행음行陰에 아홉 가지, 색음色陰에 열일곱 가지의 악惡이 갖추어져 있다.
- 28)오근五根 : 보리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법으로서 신근信根·진근進根·염근念根·정근定根·혜근慧根을 가리킨다.
- 29)오력五力 : 신력信力·진력進力·염력念力·정력定力·혜력慧力 등 불법의 실천 덕목을 말한다.
- 30)오공해五空海 : 삼유三有가 공한 것, 육도六道의 모습이 공한 것, 법상法相이 공한 것, 명상名相이 공한 것, 심식心識의 뜻이 공한 것을 말한다.
- 31)오등위五等位 : 십신十信의 신위信位, 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의 사위思位, 십지十地의 수위修位, 등각위等覺位의 행위行位, 묘각위妙覺位의 사위捨位를 말한다.
- 32)오정법五淨法 : 생멸하는 여지慮知의 상을 벗어나 있는 여래장의 속성으로 곧 여래장의 마음에는 사려분별이 없고, 생멸이 없으며, 여실하여 기동起動이 없고, 모든 식이 안적安寂하며, 번뇌가 발생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 33)오도의 중생(五道生) : 천상·인간·축생·아귀·지옥의 미혹한 중생세계를 가리킨다.
- 34)육도六度 : 대승불교의 보살이 실천하는 여섯 가지 바라밀波羅蜜로서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가리킨다.
- 35)육입六入 : 육처六處라고도 한다.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근意根의 육근六根을 육내입六內入, 색경色境·성경聲境·향경香境·미경味境·촉경觸境·법경法境의 육경六境을 육외입六外入이라 한다.
- 36)칠각분七覺分 : 칠각지七覺支·칠등각지七等覺支·칠각의七覺意라고도 한다. 택법각지澤法覺支·정진각지精進覺支·희각지喜覺支·제각지除覺支·사각지捨覺支·정각지定覺支·염각지念覺支를 가리킨다.
- 37)칠의과七義科 : 칠七은 사대四大와 삼의三義의 일곱 가지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의義는 대大와 의義를 합한 말로서 지대地大·수대水大·화대火大·풍대風大의 사대와 오음五陰·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의 삼의를 가리킨다. 과科는 근본식根本識을 가리킨다.
- 38)팔식八識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 전오식前五識, 제6의 의식意識, 제7의 말나식末那識, 제8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을 가리킨다.
- 39)구식九識 : 섭론종攝論宗의 진제眞諦 계통에서 주장한 것으로 앞의 팔식八識까지를 모두 망식妄識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다시 제9의 암마라식唵摩羅識, 곧 무구정식無垢淨識을 설정한 것을 가리킨다.
- 40)『摩訶般若波羅蜜經』 권5(T8, 251b).
- 41)『大智度論』 권47(T25, 399b).
- 42)『摩訶般若波羅蜜經』 권5(T8, 251b)에서 발췌하여 인용하였다.
- 43)『大智度論』 권47(T25, 400b).
- 44)『金剛三昧本性淸淨不增不減經』(T15, 697a~699b).
- 45)육종석六種釋 : 육합석六合釋·육석六釋이라고도 한다. 범어에서 복합사複合辭를 해석하는 방식으로서 의주석依住釋·상위석相違釋·지업석持業釋·대수석帶數釋·인근석隣近釋·유재석有財釋 등 여섯 가지를 가리킨다.
- 46)심일경성心一境性 : ⓢ cittaikāgratā의 번역어로서 선정禪定을 일컫는 말이다.
- 47)『瑜伽師地論』 권11(T30, 329b).
- 48)심사尋伺 : 심尋은 심구尋究(ⓢvitakka)이고, 사伺는 사찰伺察(ⓢvicara)로서 번뇌를 가리킨다. 구역舊譯에서는 각각 각覺과 관觀으로 번역되어 거친 번뇌와 미세한 번뇌를 의미한다.
- 49)빠른 언변 : 보통사람들의 언어 습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불보살의 다양한 변재 가운데 하나로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막힘없이 설명하는 능력을 말한다.
- 50)『合部金光明經』 권3(T16, p375a).
- 51)여섯 가지 심소心所 : 변행遍行·별행別境·선善·번뇌煩惱·수번뇌隨煩惱·부정不定 등 심소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 52)별경別境의 다섯 가지 심소 : 욕欲·승해勝解·염念·정定·혜慧를 말한다.
- 53)반주삼매般舟三昧 : ⓢpratyutpanna-samādhi. 『般舟三昧經』에 나오는 삼매로서 상행삼매常行三昧·반주정般舟定·제불현전삼매諸佛現前三昧·불립삼매佛立三昧·상행도정常行道定·불립정佛立定이라고도 한다.
- 54)심주心住 : 내주內住·등주等住·안주安住·근주近住·조순調順·적정寂靜·최극적정最極寂靜·전주일취專住一趣·등지等持 등 아홉 가지가 있다.
- 55)네 가지 혜행慧行 : 정사택正思擇·최극사택最極思擇·주변심사周徧尋思·주변사찰周徧伺察을 가리킨다.
- 56)삼매를 뜻하는 여덟 가지 용어의 범주를 넓은 것으로부터 좁은 것으로 그 순서를 정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삼마지三摩地(等持)와 정定이다. 둘째는 심일경성心一境性(一心)과 삼매三昧(正思)이다. 셋째는 삼마희다三摩呬多(等引)와 태연나駄演那(靜慮)이다. 넷째는 삼마발제三摩鉢提(等至)와 사마타奢摩他(止)이다.
- 57)「序品」 : 이하 제1장 서분까지 포함하는 부분이다.
- 58)여섯 개의 품 : 「無相法品」, 「無生行品」, 「本覺利品」, 「入實際品」, 「眞性空品」, 「如來藏品」의 여섯 개 품을 말한다.
- 59)『金剛三昧經註解』 권4(X35, 251c)에서는 원효의 설명과는 달리 “그때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와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후 부분부터 유통분으로 간주하였다.
- 60)통서通序는 모든 경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서로서 신信·문聞·시時·주主·처處·중衆의 육사六事를 갖춘 것이고, 별서別序는 각 경전마다 개별적으로 있는 것이다.
- 61)육사六事 : 육성취六成就라고도 한다. 신성취信成就·문성취聞成就·시성취時成就·주성취主成就·처성취處成就·중성취衆成就를 말한다.
- 62)대사大師 : 여기서는 부처님에 대한 존칭인 대도사大導師의 뜻으로 쓰였다.
- 63)성문중은 부처님으로부터 육성법문을 친히 들은 대중으로서 “왕사대성의 기사굴산에 대비구 일만 명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모두 아라한도를 터득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사리불·대목건련·수보리 등 아라한의 무리였다.”는 부분이고, 보살중은 “보살마하살 이천 명과 함께 계셨다. 그들의 이름은 해탈보살·심왕보살·무주보살 등의 무리였다.”는 부분이며, 장자중은 “장자 팔만 명과 함께 계셨다. 이름은 범행장자·대범행장자·수제장자 등의 무리였다.”는 부분이고, 잡류중은 “천룡·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인비인 등 육십만억이 있었다.”는 부분에 각각 해당된다.
- 64)『妙法蓮華經』 권1(T9, 2b).
- 65)『妙法蓮華經憂波提舍』 권상(T26, 2c).
- 66)『妙法蓮華經憂波提舍』의 저자 천친天親은 「方便品」 이전까지를 서품으로 간주하였다. 『妙法蓮華經憂波提舍』 권상(T26, 4b).
- 67)『金剛三昧經』을 설하기 이전에 일미·진실·무상·무생·결정·실제·본각·이행이라는 명칭의 경전을 설했다는 것이다.
- 68)두 경전 : 일미·진실·무상·무생·결정·실제·본각·이행 등의 경과 『金剛三昧經』을 가리킨다.
- 69)이에 해당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만약 이 경전을 듣고 내지 하나의 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닌다면 그 사람은 곧 부처님 지혜의 경지에 들어가 방편으로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일체중생의 대선지식이 될 것이다.”
- 70)간략하게 설하는 경 : 『金剛三昧經』을 가리킨다.
- 71)합장하고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 : 이에 해당하는 원문은 ‘合掌胡跪’로서 합장을 하고 오른쪽 무릎만 땅에 대고 허리를 펴서 공경을 표하는 행위이다.
- 72)『金剛三昧經註解』 권1(X35, 221a)에서는 “아가타 비구가 설한 여덟 게송에는 두 부분이 있는데, 위의 세 게송은 대중을 상대하여 칭양한 것이고, 이하의 다섯 게송은 대중을 상대하여 널리 질문할 것을 권장한 것이다.”라고 해석하고,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X35, 265a~b)에서는 이상 세 게송에 대하여 대승을 칭송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이하 다섯 게송에 대해서는 대중을 상대하여 널리 질문한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청하는 것, 설법으로 이익을 베풀어 주는 것을 설명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 73)둘째 : 여덟 게송 가운데 앞의 일곱 게송은 설하신 경에 대해 읊은 게송이고, 나머지 한 게송은 삼매에 들어간 것에 대해 읊은 게송인데, 이 가운데 후자를 가리킨다.
- 74)앞의 두 구는 일미법을 통하여 선정에 들어간 것으로 일반적인 방식임에 반하여 뒤의 두 구는 선정에 들어간 후에 일미법을 성취한 것으로 앞의 일반적인 방식과 다름을 가리킨다.
- 75)여섯 가지 수행(六行) : 십신행·십주행·십행행·십회향행·십지행·등각지행의 여섯 가지 수행을 가리킨다.
- 76)「無相法品」과 「無生行品」을 가리킨다.
- 77)무상관無相觀 : 무분별상관無分別相觀이라고도 한다. 분별상이 없는 관찰로서 평등관平等觀에 통한다.
- 78)앞서 언급한 여섯 부분이란, 첫째 「無相法品」의 무상, 둘째 「無生行品」의 무생, 셋째 「本覺利品」의 본각, 넷째 「入實際品」의 실제, 다섯째 「眞性空品」의 진성, 여섯째 「如來藏品」의 여래장을 가리킨다. 그리고 뒤에 언급한 여섯 문은 첫째 「無相法品」의 법, 둘째 「無生行品」 행, 셋째 「本覺利品」의 이, 넷째 「入實際品」의 입, 다섯째 「眞性空品」의 공, 여섯째 「如來藏品」의 여래장을 가리킨다.
- 79)“제불의 지혜의 경지는 실제의 법과 실제의 상에 들어간 것으로 결정성이다.”라는 경문에 대하여 『金剛三昧經註解』에서는 “제불의 자각성지지自覺聖智地의 경계로서 오직 부처와 부처끼리만 철저하게 깨친 것이지 다른 사람이 엿볼 수가 없으니, 곧 진실지혜이다.”라고 말한다.
- 80)팔상八相 : 불보살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하려고 일생 동안에 나타내 보이는 여덟 가지 모습을 가리킨다. 여래의 팔상은 몇 가지 설명이 있다. 첫째는 강도솔상降兜率相·탁태상託胎相·출생상出生相·출가상出家相·항마상降魔相·성도상成道相·전법륜상轉法輪相·입열반상入涅槃相이다. 둘째는 강도솔상降兜率相·입태상入胎相·주태상住胎相·출태상出胎相·출가상出家相·성도상成道相·전법륜상轉法輪相·입열반상入涅槃相이다. 셋째는 수태상受胎相·강생상降生相·처궁상處宮相·출가상出家相·성불상成佛相·항마상降魔相·설법상說法相·열반상涅槃相이다. 넷째는 재천상在天相·처태상處胎相·초생상初生相·출가상出家相·좌도량상坐道場相·성도상成道相·전법륜상轉法輪相·입열반상入涅槃相이다. 다섯째는 생천상生天相·처도솔천상處兜率天相·하천탁태상下天託胎相·출태상出胎相·출가상出家相·항마상降魔相·전법륜상轉法輪相·입열반상入涅槃相이다. 여섯째는 주태상住胎相·영해상嬰孩相·애욕상愛欲相·요고행상樂苦行相·항마상降魔相·성도상成道相·전법륜상轉法輪相·입멸상入滅相이다.
- 81)삼륜三輪 : 삼륜청정三輪淸淨으로, 보시하는 자·보시물·보시를 받는 자에 모두 집착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 82)『入楞伽經』 권1(T16, 519a).
- 83)『妙法蓮華經憂波提舍』 권하(T26, 6a).
- 84)오탁악세 : 불법의 존속을 정법시대正法時代·상법시대像法時代·말법시대末法時代의 삼시三時로 나눈 가운데서 수명탁壽命濁·중생탁衆生濁·번뇌탁煩惱濁·견탁見濁·겁탁劫濁 등 다섯 가지 번뇌의 모습이 나타나는 말법시대를 가리킨다.
- 85)『妙法蓮華經』 권1(T9, 7a).
- 86)『妙法蓮華經憂波提舍』 권하(T26, 7ab).
- 87)첫째의 1구 : “중생을 교화하려면”을 가리킨다.
- 88)넷째의 1구 : “그래야 그 교화가 훌륭하다.”를 가리킨다.
- 89)둘째와 셋째의 2구 : “교화한다는 분별상이 없어야 하고” 및 “교화하지 않았다는 분별상도 없어야 한다.”를 가리킨다.
- 90)『佛性論』 권2(T31, 794ab) 참조.
- 91)『大乘起信論』(T32, 576b).
- 92)『十地經論』 권2(T26, 132b). “자성은 항상 적멸하여 멸함도 생함도 없다네. 자체가 본래 공하므로 불이이고 또 부진이네.(自性常寂滅。 不滅亦不生。 自體本來空。 有不二不盡。)”
- 93)무상관無相觀에 대한 두 가지 설명 가운데 첫째의 직접적으로 관행의 모습을 설하는 대목을 마친 것이다.
- 94)『大乘起信論』(T32, 575b~576a)에서 발췌한 것이다.
- 95)『入楞伽經』 권1(T16, 519a)에 의거하여 이 대목과 관련된 내용을 보충하면 다음과 같다. “적멸이란 일심을 말하고, 일심이란 여래장을 말한다. 자내신自內身의 지혜경계에 들어가서 무생법인의 삼매를 터득하는 것이다.(寂滅者名爲一心。 一心者名爲如來藏。 入自內身智慧境界。 得無生法忍三昧。)”
- 96)이에 해당하는 경문은 다음과 같다. “보살이여, 일체의 망심妄心과 일체의 망상妄相은 본래 근본이 없고 본래 근본의 처소가 없어서 공적하고 무생하다. 이에 심을 무생케 하면 곧 공적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공적한 심지야말로 곧 심공心空을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97)이에 해당하는 경문은 다음과 같다. “선남자여, 무상無相한 심에는 망심도 없고 망아도 없다. 일체의 법상도 또한 이와 같다.”
- 98)구유근俱有根 : 구유의俱有依·구유소의俱有所依·증상연의增上緣依라고도 한다. 심과 심소와 동시에 존재하면서 그 소의처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구유근에는 오색근五色根·제6식·제7식·제8식의 네 가지가 있다.
- 99)원효 자신의 저술인 『二障義』를 가리킨다.
- 100)자아가 있다(有我)고 보는 경우는 범부에 해당하고, 자아가 없다(無我)고 보는 경우는 이승二乘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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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십이지인연을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過去 現在 未來 無明 行 識 名色 六處 觸 受 愛 取 有 生 老死 二因 五果 三因 二果 과거와 현재의 一重因果 현재와 미래의 一重因果 三世兩重因果 - 102)『大般若波羅蜜多經』 권348(T6, 787b). “선현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보리좌에 앉아서 십이인연을 사실 그대로 관찰하면 허공처럼 끝이 없기 때문이다.(善現當知。 諸菩薩摩訶薩。 處菩提座。 如實觀察十二緣起。 猶如虛空不可盡故。)”
- 103)본래부터 자아가 없기 때문에 그 자아가 없다(無)는 상황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 104)법집으로 인하여 마음이 발생한다는 견해와 마음이 소멸한다는 견해를 대치한다.
- 105)여기에서 말하는 ‘닦음(修)’과 ‘익힘(學)’의 의미에 대해서는 『金剛三昧經通宗記』 권3(X35, 271c) 참조. “수修는 덕업德業을 닦는 것이고, 학學은 도법道法을 익히는 것이다. 상고시대에는 문자로 기록함이 없었다. 그래서 만약 어떤 대업을 성취하고자 할 경우에는 먼저 나무에다 칼로 새겨서 흔적을 내어 그 숫자를 헤아렸는데, 그것을 업業이라 한다. 그리하여 무릇 하나의 공功이 성취되면 곧 하나의 흔적을 닦아서 없앤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모두 수업修業에 대하여 말해 왔다. 이로써 나무의 흔적을 모두 닦아서 없애면 그것이 곧 졸업卒業이다. 수修의 뜻은 바로 이와 같다. 그리고 또한 학學이라는 글자는 말하자면 어린아이가 처음에 글을 익힐 때 두 손으로 받들어 지니는데 마치 놀이를 하는 것처럼 효爻와 상象을 매달고 그리는데 이것이 학學의 뜻이다. 또한 그 학이 충만하지 않으면 그것을 유학有學이라 말하고, 더 이상 익힐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그것이 곧 무학無學이다. 또한 진리를 궁구하여 번뇌를 없애는 것을 학이라 말하고, 진리마저 다하고 번뇌가 다하는 것을 무학이라 말한다. 해탈보살이 말한 심무유주心無有住는 곧 공적空寂과 같다. 이미 공적인데 어찌 닦을 것이 있고 어찌 익힐 것이 있겠는가.(修者修於德業。 學者學其道法。 上古之世。 無文字記識。 若欲成一大業。 先於木上。 以刀斫痕計其數。 名之曰業。 凡一功成。 即修去一痕。 故聖人皆言修業。 以木痕修盡。 爲卒業。 其義如此。 又學字。 謂童穉初授書時。 兩手捧持。 如翫卦畫爻象而已。 此學之義也。 又學未滿。 謂之有學。 至無所學地。 爲無學。 又研眞斷惑名爲學。 眞窮惑盡名無學。 解脫謂心無有住。 即同空寂。 既是空寂。 有何所修。 有何所學。)”
- 106)일각의 뜻을 펼친 여덟 가지 문답 가운데 둘째에 해당한다.
- 107)여래장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은 『勝鬘經』에서 공여래장과 불공여래장으로 해석한 것이고, 세 가지 해석은 『不增不減經』에서 능섭여래장과 소섭여래장과 은부여래장으로 해석한 것을 말한다.
- 108)『不增不減經』(T16, 467bc)에 의거하여 내용을 보충한다. “또한 사리불이여, 내가 위에서 설한 바 중생계에는 또 세 가지 법이 있다. 모두 진실하고 여여하여 서로 다름도 없고 차별도 없다. 세 가지 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여래장은 본제本際(본각의 실제)에 상응하는 자체이고 청정한 법이다. 둘째는 여래장은 본제에 불상응하는 자체이고 번뇌에 얽힌 불청정한 법이다. 셋째는 여래장은 미래제까지 평등하고 영원히 존재하는 법이다. 사리불이여, 여래장은 본제에 상응하는 자체이고 청정한 법이라는 이 법은 여실하여 허망한 적도 없고 벗어난 적도 없으며 떠난 적도 없어 지혜가 청정하고 진여의 법계이며 부사의한 법으로서 무시이래의 본제에서 유래한 것인 줄 알아야 한다. 곧 이것은 청정한 본제이고 진여에 상응하며 법계의 자체이다. 사리불이여, 나는 이 청정·진여·법계에 의거하여 중생에게 불가사의법과 자성청정심을 설해 준다. 사리불이여, 여래장은 본제에 불상응하는 자체 및 번뇌에 얽힌 불청정법이라는 것은 본제로부터 유래한 것이지만 그로부터 떠나 있고 불상응하며 번뇌에 얽힌 불청정법인 줄을 알아야 한다. 오직 여래가 깨친 지혜로만 단제할 수 있다. 사리불이여, 나는 이처럼 번뇌에 얽힌 불상응의 부사의한 법계에 의거하여 중생을 위한 까닭에 객진번뇌에 물든 자성청정심의 불가사의법을 설한다. 사리불이여, 여래장은 미래제까지 평등하고 영원히 존재하는 법인 줄 알아야 한다. 곧 여래장은 일체제법의 근본으로서 일체법을 갖추고 일체법을 구비하여 세간법에서 떠나지도 않고 진실한 일체법에서 벗어나지도 않으며 일체법을 주지住持하고 일체법을 섭수한다. 사리불이여, 나는 이처럼 불생하고 불멸하며 영원하고 청량하며 불변한 여래장에 귀의함으로써 불가사의·청정법계를 중생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중생이란 곧 불생하고 불멸하며 영원하고 청량하며 불변한 여래장에 귀의함을 말한 것으로 불가사의·청정법계 등의 다른 명칭이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나는 저 중생계의 세 가지 법의 설명에 의거하여 중생이라 말한다. 사리불이여, 이 세 가지 법은 모두 진실여로서 서로 다름도 없고 차별도 없다. 이처럼 진실여로서 서로 다름도 없고 차별도 없는 법에서는 필경에 극악極惡과 불선不善의 두 가지 사견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실한 지혜로 보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극악과 불선의 두 가지 사견은 제불여래가 필경에 멀리 떠난 것이고, 제불여래가 가책呵責하는 바이기 때문이다.(復次舍利弗。 如我上說。 衆生界中亦三種法。 皆眞實如不異不差。 何謂三法。 一者如來藏本際相應體及淸淨法。 二者如來藏本際不相應體及煩惱纏不淸淨法。 三者如來藏未來際平等恒及有法。 舍利弗。 當知。 如來藏本際相應體及淸淨法者。 此法如實不虛妄不離不脫。 智慧淸淨眞如法界不思議法。 無始本際來。 有此淸淨相應法體。 舍利弗。 我依此淸淨眞如法界。 爲衆生故說爲不可思議法自性淸淨心。 舍利弗。 當知。 如來藏本際不相應體。 及煩惱纏不淸淨法者。 此本際來離脫不相應煩惱所纏不淸淨法。 唯有如來菩提智之所能斷。 舍利弗。 我依此煩惱所纏不相應不思議法界。 爲衆生故說爲客塵煩惱所染。 自性淸淨心不可思議法。 舍利弗。 當知。 如來藏未來際平等恒及有法者。 卽是一切諸法根本。 備一切法具一切法。 於世法中不離不脫眞實一切法。 住持一切法攝一切法。 舍利弗。 我依此不生不滅常恒淸涼不變歸依。 不可思議淸淨法界說名衆生。 所以者何。 言衆生者卽是不生不滅常恒淸涼不變歸依。 不可思議淸淨法界等異名。 以是義故。 我依彼法說名衆生。 舍利弗。 此三種法皆眞實如不異不差。 於此眞實如不異不差法中。 畢竟不起極惡不善二種邪見。 何以故。 以如實見故。 所謂減見增見。 舍利弗。 此二邪見諸佛如來畢竟遠離。 諸佛如來之所呵責。)”
- 109)『佛性論』 권2(T31, 795c~796a).
- 110)천친天親의 『佛性論』에 대하여 진제眞諦가 이와 같이 번역했다는 말이다.
- 111)『佛性論』 권4(T31, 812b).
- 112)『佛性論』 권2(T31, 796a)에서 “둘째는 상주의 뜻이다. 이 진여의 성은 자성의 성에 머무는 것으로부터 지득에 이른다. 진여의 체는 변이가 없는 까닭에 상常의 뜻이다.(二者現常住義。 此如性從住自性性來至至得。 如體不變異故是常義。)”라고 하였다.
- 113)이상은 앞에서 인용한 『不增不減經』에 대한 해석이다.
- 114)원효의 『二障義』(H1, 805a~c ; 811a)에 자세한 설명이 있다.
- 115)『不增不減經』(T16, 467上) 내용 참조. “내가 설한 법신의 뜻은 과거 항사겁 동안 떠난 적도 없고 벗어난 적도 없으며 단절된 적도 없고 변이한 적도 없는 부사의한 불법으로 여래의 공덕이고 지혜이다.(如我所說法身義者。 過於恒沙不離不脫不斷不異。 不思議佛法如來功德智慧。)” 기타 『勝鬘經』(T12, 221c) 참조.
- 116)위의 『不增不減經』(T16, 467a)에서 말한 “떠난 적도 없고, 벗어난 적도 없으며, 단절된 적도 없고, 변이한 적도 없으며, 부사의한 불법에 상응한 것”의 다섯 가지 가운데 ‘떠난 적도 없고, 벗어난 적도 없으며, 부사의한 불법’의 세 가지만 설명했다는 것이다.
- 117)『勝鬘經』(T12, 221c).
- 118)앞의 세 가지 : 『不增不減經』에서 말한 세 가지 법을 말한다. 첫째는 여래장은 본제에 상응하는 자체이고 청정한 법이고, 둘째는 여래장은 본제에 불상응하는 자체이고 번뇌에 얽힌 불청정한 법이며, 셋째는 여래장은 미래제까지 평등하고 영원히 존재하는 법이라는 것이다.
- 119)세 종류 여래장 가운데 은부의 뜻은 셋째인 은부여래장에 그대로 합치되어 있어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하 능섭과 소섭에 대하여 『勝鬘經』의 공과 불공을 인용하여 별도로 설명한다.
- 120)『現識論』(T31, 881c~882a)에 의하면, ‘그 다섯 가지 뜻’은 자성종류自性種類·인성因性·생生·불괴不壞·비밀장袐密藏이고, 또한 『無相論』은 『三無性論』·『顯識論』·『轉識論』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 121)『攝大乘論釋』 권1(T31, 156c)에서는 그 다섯 가지가 체류의體類義·인의因義·생의生義·진실의眞實義·장의藏義이다.
- 122)『佛性論』 권2(T31, 796b)에서는 그 다섯 가지가 여래장자성如來藏自性·정법장인正法藏因·법신장지득法身藏至得·출세장진실出世藏眞實·자성청정장비밀自性淸淨藏秘密이다.
- 123)일각에 대한 여덟 가지 문답 가운데 그 셋째부터 여덟째까지를 말한다. 그 셋째로부터 생멸 및 여지의 모습에 대한 여섯 가지 문답이 이어진다.
- 124)“생멸하는 여지의 상”에 대한 여섯 가지 문답 가운데 첫째이다. 일각에 대한 여덟 가지 문답으로 보면 그 셋째에 해당한다.
- 125)사구四句 : 유구有句·무구無句·역유역무구亦有亦無句·비유비무구非有非無句의 사구를 말한다. 이로써 백비百非에 이르기까지 형성되는 일체의 분별을 의미한다.
- 126)여섯 가지 염심 : 집상응염심執相應染心·부단상응염심不斷相應染心·분별지상응염심分別智相應染心·현색불상응염심現色不相應染心·능견심불상응염심能見心不相應染心·근본업불상응염심根本業不相應染心을 가리킨다.
- 127)『大乘起信論』(T32, 577c~578a).
- 128)세 가지 : 현색불상응염심現色不相應染心·능견심불상응염심能見心不相應染心·근본업불상응염심根本業不相應染心을 가리킨다.
- 129)원효가 지은 『大乘起信論疏』를 말한다.
- 130)『大乘起信論』(T32, 579a).
- 131)생멸의 모습에 상대하여 도리의 만족을 드러낸 경문에 대한 해석을 마친다는 뜻이다.
- 132)앞에서 “도리의 만족에 상대하여 염의 궐실闕失을 설명한다.”는 대목을 가리킨다.
- 133)『大乘起信論』(T32, 579a~b)에 의하여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問曰。 上說眞如其體平等離一切相。 云何復說體有如是種種功德。 答曰。 雖實有此諸功德義。 而無差別之相。 等同一味唯一眞如。 此義云何。 以無分別離分別相。 是故無二。 復以何義得說差別。 以依業識生滅相示。 此云何示。 以一切法本來唯心實無相【於】念。 而有妄心不覺起念見諸境界故說無明。 心性不起卽是大智慧光明義故。 若心起見卽有不見之相。 心性離見卽是遍照法界義故。 若心有動非眞識知。 無有自性。 非常非樂非我非淨。 乃至。 【熱惱衰變則不自在】。 具足【有】過恒沙等妄染之義。 對此義故。 心性無動卽有過恒沙等諸淨功德相義示現。 若心有起。 更見前法可念者卽有所少。 如是淨法無量功德。 卽是一心更無所念。 是故滿足名爲法身如來之藏。 ”
- 134)두 종류의 생멸 : 집상응염심執相應染心·부단상응염심不斷相應染心·분별지상응염심分別智相應染心·현색불상응염심現色不相應染心·능견심불상응염심能見心不相應染心·근본업불상응염심根本業不相應染心의 여섯 가지 염심 가운데 현색불상응염심·능견심불상응염심·근본업불상응염심의 세생멸細生滅과 집상응염심·부단상응염심·분별지상응염심의 추생멸麤生滅을 가리킨다. 또한 『楞伽經』의 내용을 인용한 『金剛三昧經通宗記』 권3(X35, 272b)에서 말하는 다음과 같은 2종의 생주멸生住滅을 참조. “楞伽經云。 諸識有二種生住滅。 謂流注生及相生。 流注住及相住。 流注滅及相滅。”
- 135)『大乘起信論』(T32, 576b~c)에 의하여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 136)꿈에서 강을 건너는 비유 : 『合部金光明經』 권1(T16, 364c),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침상에 누워 꿈을 꾼 것과 같다. 그는 꿈에 큰 강물이 자신의 몸을 휩쓰는 것을 보고는 손과 발을 움직여 그 물살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온 정신과 힘을 쏟으며 게으르지 않았기에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그러나 꿈에서 깨 보니 강물은커녕 이 언덕과 저 언덕도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생사의 망상이 이미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그 깨달음이 청정해지니, 깨달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법계의 일체 망상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청정하다고 말한다.(譬如有人於臥寐中夢見大水流泛其身。 運手動足逆流而上。 以其心力不懈退故。 從於此岸得至彼岸。 夢旣覺已。 不見有水彼此之岸。 生死妄想旣滅盡已。 是覺淸淨不爲無覺。 如是法界一切妄想不復更生。 故說淸淨。)”
- 137)둘째 문답 : 생멸하는 여지慮知의 상에 대한 여섯 가지 문답 가운데 그 둘째에 해당한다.
- 0)원문에는 다음에 나오는 “해탈보살이~필요도 없겠습니다.”까지가 이 문장보다 먼저 쓰였으나, 문맥의 흐름에 맞추어 위치를 바꿨다.
- 138)이것은 “첫째 그칠 것이 없다는 것을 긍정하는 것”에 해당한다.
- 139)이것은 “둘째 그칠 것이 없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에 해당한다.
- 140)셋째 문답 : 일각의 뜻을 펼친 여섯 가지 문답 가운데 그 셋째에 해당한다.
- 0)원문에는 다음에 나오는 “해탈보살이~무생無生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까지가 이 문장보다 먼저 쓰였으나, 문맥의 흐름에 맞추어 위치를 바꿨다.
- 141)세제일법世第一法 : 유식수도唯識修道의 오위五位인 제1 자량위資糧位, 제2 가행위加行位, 제3 통달위通達位, 제4 수습위修習位, 제5 구경위究竟位에서 제2 가행위인 난煖·정頂·인忍·세제일법世第一法 중 넷째를 가리킨다.
- 142)넷째 문답 : 일각의 뜻을 펼친 여섯 가지 문답 가운데 그 넷째에 해당한다.
- 143)다섯째 문답 : 일각의 뜻을 펼친 여섯 가지 문답 가운데 그 다섯째에 해당한다.
- 144)계상戒相 : 여기에서는 대승의 무루계無漏戒가 아닌 소승의 유위계有爲戒를 가리킨다.
- 145)두 번 거듭하여 드러낸 대목 가운데 그 둘째로서 법계를 수순하여 육바라밀을 구비한 수행을 드러낸다는 부분이다.
- 146)여섯째 문답 : 일각의 뜻을 펼친 여섯 가지 문답 가운데 그 여섯째에 해당한다.
- 147)전의轉依 : 보리菩提와 열반涅槃의 이과二果를 말한다. 전轉은 전사轉捨·전득轉得의 뜻이고, 의依는 소의所依의 뜻으로 제8식을 가리킨다.
- 148)삼륜三輪 : 보시하는 사람과 보시 받는 사람과 보시물의 세 가지를 가리킨다.
- 149)무공용無功用 : 조작이 없고 분별이 없으며 시비가 없고 집착의 상이 없는 수행의 모습이다.
- 150)천고天鼓 : 도리천에 있는 북으로서 때와 기회를 알아서 저절로 울림으로써 사람들을 일깨워 준다고 한다.
- 151)이승의 허물 : 중생제도보다 자신의 해탈만 추구하는 행위 및 선과 악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 152)제유諸有 : 중생세간으로서 욕계유欲界有·색계유色界有·무색계유無色界를 가리킨다.
- 153)앞의 두 구절 : “명칭과 법수를 멀리 떠나 공견과 유견을 단제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 154)대공大空 : 소승의 편공偏空에 상대되는 말로서 대승구경의 공적을 뜻한다. 공空도 또한 공空하다는 것이 구경의 대공이다. 곧 대승의 열반을 가리킨다.
- 155)『雜阿含經』 권12(T2, 84c~85a).
- 156)『瑜伽師地論』 권77(T30, 726c).
- 157)『大般涅槃經』 권15(T12, 704ab).
- 158)『入楞伽經』 권3(T16, 529a).
- 159)『解深密經』 권3(T16, 701a).
- 160)『中邊分別論』 권상(T31, 452c).
- 161)『十地經論』 권8(T26, 172b).
- 162)『大智度論』 권31(T25, 288a).
- 163)『金剛三昧經通宗記』에서는 원효와는 달리 대공大空의 뜻을 다섯 가지 가운데 셋째의 기세계器世界가 공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金剛三昧經通宗記』 권4(X35, 278c), “又不住於大空。 謂身所棲托。 即器世界。 十方無量無邊。 皆悉是空。 故曰大空。 ” 참조.
- 164)자세하게 해석한 대목 가운데 둘째의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해당한다.
- 165)십종해탈문十種解脫門 : 『大方廣佛華嚴經』 권31(T9, 600c~601a).
- 166)삼사三事 : 원이삼점圓伊三點으로 법신法身(體)·반야般若(宗)·해탈解脫(行)로서 열반이 지니고 있는 세 가지 속성을 가리킨다. 『金剛三昧經通宗記』 권4(X35, 280c)에서 “또한 열반은 자세하게 말하면 마하반열반나인데 번역하면 대멸도이다. 대는 곧 법신의 뜻이고, 멸은 곧 해탈의 뜻이며, 도는 곧 반야의 뜻이다. 그러므로 법신과 반야와 해탈로서 열반 삼덕의 비장을 삼는다.(又涅槃。 具云摩訶般涅拌那。 此此云大滅度。 大者即法身義。 滅者即解脫義。 度者即般若義。 故以法身解脫般若。 爲涅槃三德祕藏)”라고 하였다.
- 167)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大般涅槃經』 권4(T12, 388a) 내용 참조.
- 168)저 위에서 말한 “이하는 둘째 본격적으로 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산문(長行)이고, 둘째는 중송重頌이다.”에서 그 둘째의 중송에 해당한다.
- 169)원효는 「無相法品」의 산문(長行)을 약표略標와 광설廣說의 두 가지로 분류하였는데, 그 가운데 약표를 가리킨다.
- 170)처음의 한 게송 : “대각을 원만구족한 세존께서는 …… 그 밖에 이승의 도 전혀 없다네.”의 부분을 가리킨다.
- 171)위의 다섯 구절 : 위 경문의 게송, “이처럼 아와 법을 떠난 까닭은 일법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네. 제유에 같고 다른 수행 있지만 모두 다 본각의 이익 획득하여 유무견과 유무상을 멸절시키네.”를 가리킨다.
- 172)두 게송 반 : 이하의 경문에 나오는 “요동도 없고 요란 없는 적정열반 또 깨침의 터득에도 집착 없네. 결정 도리에 들어 있기 때문에 상도 없고 또한 행조차도 없네. 텅 빈 마음의 적멸한 경지에는 적멸한 그 마음도 발생이 없네. 저 금강의 성품과 아주 똑같이 불법승 세 보배 저버리지 않고 여섯 가지 바라밀 두루 갖추어 일체중생을 죄다 제도해 준다네.”의 게송을 가리킨다.
- 173)유무견과 유무상을 멸절시키네(滅絶二相見) : 게송의 글자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유견과 무견을 소멸시키네.(滅二見)” 및 “유상과 무상을 단절시키네.(絶二相)”를 합한 것이다.
- 174)“이처럼 아와 법을 떠난 까닭은 일법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네.”를 가리킨다.
- 175)이에 해당하는 경문은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렸다. 존자이시여, 중생의 마음은 그 자성이 본래 공적합니다. 공적한 마음은 그 본체에 형색(色)과 생멸상(相)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수습해야 본래 공적한 마음을 터득할 수 있습니까? 바라건대 부처님의 자비로 저희에게 설해 주십시오. …….”이다.
- 176)지금 이 2구 : 위 게송의 제3구와 제4구로서 “제유에 같고 다른 수행 있지만, 모두 다 본각의 이익 획득하여”를 가리킨다.
- 177)위의 경문에서 “생멸하는 여지慮知의 상이란 무엇입니까?”에 대하여 여섯 가지로 문답한 대목이 이에 해당한다.
- 178)위의 제1구와 제2구에 해당하는 “요동 없고 요란 없는 적정열반 또 깨침의 터득에도 집착 없네”라는 것은 제6의 답변 가운데 “해탈의 모습은 분별상이 없고(無相) 유위행이 없으며(無行) 요동이 없고(無動) 요란이 없으며(無亂) 적정한 열반이지만 또한 열반의 모습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뒷부분에 대하여 읊은 것이고, 제3구와 제4구에 해당하는 “결정 도리에 들어 있기 때문에 상도 없고 또한 행조차도 없네.”라는 것은 제6의 답변 가운데 “결정성에 들어가는 것이며 출세에 초연하는 것이고 걸림이 없는 해탈이다.”라는 앞부분에 대하여 읊은 것이다. 이처럼 제6의 답변 가운데 뒷부분과 앞부분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 179)이 「無相法品」의 경문을 분과하면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선정으로부터 나오는 부분(出定分)이고, 둘째는 설법을 시작하는 부분(起說分)이며, 셋째는 법문을 들은 청중이 이익을 얻는 부분(得益分)이다.
- 180)『彌勒菩薩所問經論』 권1~권6(T26, 233b~260c) 참조.
- 181)『二障義』(H1, 802b~811b) 참조.
- 1){底}朝鮮佛敎會本(劉敬鍾校訂本) {甲}高麗大藏經。補遺板庭凾。
- 1)「經序品第一」無{甲}。
- 2)「如是我聞…六十萬億」百四十一字無{甲}。
- 3)經支上每有「經曰」{甲}。
- 4)論文上每有「論曰」{甲}。
- 1)「無上法品第二」無{甲}。
- 1)「平」作「下」{甲}。
- 2)「果」作「異」{甲}。
- 1)「二」作「一」{甲}。
- 1)「今」作「令」{甲}。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김호귀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