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BC_Y0037_0001_R_001
문건文件
禪宗臨濟派講究所 제1회 講義錄
- 제공 ; 국사편찬위원회
-
名称 阿部充家文書
標題 白龍城
分類番号 348-1
国立国会図書館
登錄番号 (공란)
-
〈피봉〉
아베미츠이에(阿部充家) 댁에 보내는 편지
- 阿部充家殿
-
장사동 142번지 선종임제파강구소
백용성 보냄
- 長沙洞百四十二番地 禪宗臨濟派講究所 白龍城
-
선종임제파강구소禪宗臨濟派講究所 제1회 강의록講義錄
백용성白龍城 강설(說)
전용락全龍洛 기록(記)
- 禪宗臨濟派講究所第一回 講義錄 白龍城說 全龍洛記
황벽육십통봉黃蘗六十痛棒
- 대사께서 강단講壇에 올라 위엄 있게 큰 소리로 꾸짖으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師陞講壇振威一喝云
- “불법佛法의 적적的的한 대의大義를 알아차렸느냐? 모름지기 용맹한 자(勇猛漢)라면 옛 임제臨濟 조사께서 불법佛法의 적적的的한 대의大義를 물었을 때 황벽黃蘗 선사에게 세 번에 걸쳐 60방의 매질을 당한 뜻을 비로소 깨달을 것이다.
- 要會得佛法的的大義麽。須是勇猛漢、始得昔臨濟祖師問佛法的的大義、被黃蘗三度六十賜棒。
- 대중大衆아, 어떠한가. 이 몽둥이가 바로 한 가닥 흰 몽둥이며, 옴이 없는 곳의 방망이임을 알아차렸느냐. 눈알을 도려내는 방망이이며, 부딪혀 현묘함에 돌아가게 하는 방망이임을 알아차렸느냐. 제접하여 쓸어 버려서 바름을 쫓게 하는 방망이이며, 현묘한 데 의지하여 바름을 해치는 방망이임을 알아차렸느냐. 헛됨과 참됨을 구별하여 증험하는 방망이임을 알아차렸느냐. 지시하는 방망이이며, 지시함이 없는 방망이임을 알아차렸느냐.
- 大衆、如何。會得這棒是一條白棒麽。是無來處棒麽。是換却眼睛棒麽。是觸令返玄棒麽。是接掃從正棒麽。是靠玄傷正棒麽。是辨驗虛實棒麽。是指示棒麽。是無指示棒麽。
- 나귀의 해(驢年)1)가 되어서야 깨닫게 되리라. 그때에 만약 헤아릴 수 없이 큰 힘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꾸짖음이 우레와 같이 쩌렁쩌렁 울리고 몽둥이가 빗방울처럼 쏟아질 것이다. 어떠하냐, 알아차렸느냐? 대중 가운데 알아차린 자가 있느냐? 빨리빨리 나와 보거라. 만약 시시비비를 가려내려고 들면, 유성이 떨어져 불빛이 사라지듯 할 것이로다. 황벽노파黃蘗老婆와 대우大愚의 요란한 말(撓舌)과 푸르등등한 60방이 마치 쑥 가지(蒿枝)와 같고, 불법佛法이 별것이 아님을 깨달아 알리라. 달이 끝없는 하늘을 비추고 바람이 온갖 만물의 소리를 일으키도다. 대우大愚가 가슴팍을 세 방 내려치는 것은, 불법의 적적한 대의이니라. 호랑이 수염을 잡아 보았느냐? 진정으로 뛰어난 대장부라면 방망이를 내려치는 그 자리에서 무생인無生忍을 깨달을 것이니, 그 기회를 만나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느니라. 지금 다시 임제 노한을 만나본 자가 있느냐? 구포九包의 풀은 울타리 가 아래에 있지 않고, 천리를 달리는 말은 양 무리 가운데 처하지 않는 법이니라. 우리 임제臨濟 조사는 보통의 부류보다 뛰어난 분이어서, 천성千聖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계신 분이시니, 어찌 보통 사람들이 헤아리고 생각하여 알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 驢年始得。當時若非沒量大力者、喝似雷奔棒、似雨滴。奈何爾不得。衆中還有承當者麽、速速出來看、若欲擬議、星飛火散、黃蘗老婆、大愚撓舌、蒼藤六十似蒿枝、了知佛法無多子、月照長空、風生萬籟、大愚肋下三拳、佛法的的大義、將虎鬚、見也麽、眞箇雄雄大丈夫、棒下無生忍、當機不讓師、如今還有見臨濟老漢者麽、九包之雛、不在籬邊之下、千里之駒、不處羣羊之中、我臨濟祖師、道出常流、千聖齊立下風、豈可以凡小情量擬議哉、
- 그리고 주장자로 아래를 두 번 내려치면서 일갈을 하시고 말씀하시길, “모름지기 이 일갈을 알아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더라도, 이는 방편문(建化門)에서 맞이한 일일 뿐이니, 태평성세에는 태평가太平歌가 필요치 않으니라”라고 하였다.
- 打拄杖兩下喝一喝云須知這一喝、始得、然雖如是、此是建化門接引之事、時淸不要太平歌。
임제 선사가 보청2)에 간 이야기(臨濟赴普請話)
- “대저 종사宗師가 서로 만날 때는, 마치 칼끝을 서로 맞대는 것과 같고, 마치 두 장수가 서로 싸움을 벌이는 것과 같으며, 마치 돌이 부딪혀 불꽃이 번쩍 일어나는 것과 같으니, 어찌 부족한 안목으로 알아보는 것을 용납하리오.
- 大抵宗師相見、如劒鋒相拄、如兩將對戰、似擊石火閃電光、那容貶眼看。
- 옛날에 임제臨濟 선사가 보청普請에 나가서 밭일을 하고 있었는데, 황벽黃蘗 선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자, 괭이를 땅에 꽂아 세웠다. 하늘을 찌를 듯한 의지와 기운(意氣)을 가지고, 호랑이를 빠뜨릴 덫과 함정(機關)을 설치하고서, 마치 항우項羽가 진시황(秦皇)을 노려보며 ‘저놈의 자리를 빼앗아야지’라고 하듯, 마치 용맹한 장수가 진을 쳐놓고 위풍당당하게 서서 빛나는 해와 같이 번쩍이는 칼을 들고 군대를 통솔하는 것과 같았으니, 진실로 뛰어난 대장부의 모습이었다.
- 0001_0003_a_01L昔臨濟赴普請鋤地次、見黃蘗來、拄钁而立。負衝天之意氣、設陷虎之機關、如項羽見秦皇而彼可取云、如猛將上陣、威風凛凛、劒光曜日、全涉運爲、眞箇雄雄大丈夫。
- 이에 황벽 선사가 말하길 ‘이놈아, 힘이 들더냐?’라고 하였으니, 말씀 자체는 온후한 듯하나, 어찌 오가는 말에 여유가 있겠는가. 각기 호랑이를 빠트릴 덫과 함정에 대응한 것이니, 바로 웃음 속에 칼을 숨긴 격이었다.
- 蘗云這漢困耶。言似溫厚、何其來言不豐也。各報陷虎之機關、是笑中有刀。
- 임제 선사가 말하길 ‘괭이도 들지 않았는데, 뭐 힘들 것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으니, 이는 맑은 바람이 씻어내고 밝은 달빛이 비추듯 하며, 우물을 파고 물을 마시고 밭을 일구어 밥을 먹듯 한 것이로다. 괭이 끝에서 저절로 무생악無生樂이 흘러나오니, 군대를 모두 움직여서 칼을 겨눈들 어찌 방해가 되리오. 이는 도적이 그 몸을 모두 드러냈다고 할 만하도다.
- 臨濟云钁也未擧、困箇什麽。是淸風拂、明月照、鑿井而飮、耕田而食。钁頭自有無生樂、全涉運爲那何妨。是可謂賊身現露。
- 그때 황벽 스님이 몽둥이로 내리쳤으니, 이는 몽둥이 끝에 해와 달과 같이 밝은 눈이 달려서 불 속에 진금眞金이 있음을 바로 안 것이로다.
- 蘗便打、棒頭有眼明日月、要識眞金火裏看。
- 임제 선사가 몽둥이를 받아 움켜잡고서, 황벽 선사를 밀어서 넘어뜨렸다. 사나운 호랑이가 한데 엉켜 싸우는데 조금도 물러남이 없으니, 영웅은 과연 영웅이로다.
- 臨濟接住棒送倒兮。猛虎共闘勢不休、英雄終是英雄漢。
- 이때 황벽 선사가 유나維那3)를 불러 말하길 ‘유나야, 유나야, 나를 좀 일으켜다오’라고 하자, 유나가 달려가 스님을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하길 ‘스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런 미친놈의 무례한 행동을 그냥 두시렵니까?’라고 했다. 넘어졌는데 다른 사람을 구하니, 먼 산은 층층이 푸르르네. 어찌 미친놈을 그냥 두겠는가, 여전히 득도한 자들 속에 있었구나.
- 蘗喚維那維那扶起我、維那近前扶云和尙、爭容得者風顚漢無禮。倒須別人救、遠山碧層層。爭容風顚漢、猶在度頭岸。
- 곧바로 유나維那를 방망이로 내리치니, 가는 풀은 안개를 머금고 산 곳곳에 푸릇푸릇, 가을 달에 봄꽃 피는 무한한 뜻이여. 그 가운데 진짜배기를 누가 알겠는가.
- 便棒維那兮、細草含烟遍山綠、秋月春花無限意、箇中眞箇有誰知。
- 화장火葬을 하였는데 생매장(活埋)을 한다고 하니, 아이고 아이고 허허허.
- 火葬活埋兮蒼天噓噓。
- 대홍大洪4) 선사가 말하길 ‘밀어서 넘어트리고 부축하여 일으키는 것은 만고에 변치 않는 풍습이자 규범이요, 화장과 생매장은 모든 곳(諸方)에서 본받는 방편이로다’라고 하였다. 정안正眼5)이 본다면 일시에 매장되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니, 어떤 것이 정안인지 속히 와서 말해 보거라.”
- 大洪云推倒扶起萬古風規、火葬活埋諸方榜樣。正眼觀來、未免一時埋却、那箇是正眼、速來道看。
- 일갈一喝을 내지르고 말씀하시길 “나(山僧)는 이미 강석講席에 임했기 때문에 부득이 노파老婆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비록 수백 개의 구멍과 수천 개의 상처투성이와 같이 엉망진창이라 할지라도, 그대들에게 용서를 청하노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주장자를 한 번 내려치고는 말씀하시길 “한 번의 주먹질로 황학루黃鶴樓를 부숴버리고, 한 번의 발길질로 앵무주鸚鵡洲를 날려버리네”라고 하고, 또 한 번 내려치고는 “의지와 기운이 있을 때에 의지와 기운을 더하고, 풍류가 없는 곳에서 풍류를 일으키도다”라고 말씀하시고는, 곧 바로 법좌에서 내려왔다.
- 喝一喝云山僧、旣臨講席故、不得已說老婆、雖則百孔千瘡、請君容恕。打拄杖一下云、一拳碎倒黃鶴樓、一脚踢翻鸚鵡洲、又打一下云、有意氣時添意氣、不風流處也風流、便下座。
-
대정大正 4년 4월 20일 백용성
상무불거사전上無佛居士殿
-
大正四年四月二十日 白龍城
上無佛居士殿
禪宗臨濟派講究所 제2회 講義錄
- 제공 ; 국사편찬위원회
-
名称 阿部充家文書
標題 白龍城
分類番号 348-2
国立国会図書館
登錄番号 (공란)
-
〈피봉〉
아베미츠이에(阿部充家) 댁에 보내는 편지
- 阿部充家殿
-
장사동 142번지 선종임제파강구소
백용성 보냄
- 長沙洞百四十二番地 禪宗臨濟派講究所 白龍城
- 대정 4년 5월 2일
- 大正四年五越二日
-
제2회 강의講義
백용성白龍城 강설(說)
전용락全龍洛 기록(記)
- 第二回講義 講義錄 白龍城說 全龍洛記
- 대사께서 강단講壇에 올라서, 주장자를 잡아 올리고 말씀하시길 “이 주장자는 어디서 났는가?”라고 하시고는, 등 뒤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양손을 활짝 펼치고 말씀하시길 “내 주장자를 돌려다오”라고 말씀하셨다.
- 師陞講壇、拈起拄杖云、這箇拄杖子、甚麽得來、擲下背後。展開兩手云、還我拄杖子來。
- 아무 말 없이 한참 있다가 말씀하시길 “밝기가 천 개의 해를 더하고 어둡기는 옻칠을 더한 듯한데, 옛 골짜기의 서늘한 구름은 얼어서 열리지 않네. 옛날에 임제臨濟 조사께서 보청普請에 나아가셨을 때, 임제 선사의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것을 황벽 선사가 보았느니라. 이에 묻기를 ‘괭이(钁頭)를 어디에 두었느냐?’라고 하였는데, 이 괭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 보청을 할 때에 가지고 가서 사용하는 한 물건(一物)이라, 고요하고 또렷하며(穩穩當當) 빈틈없고 끊임이 없어서(密密綿綿) 털끝만큼도 빠짐이 없으니(絲髮不漏), 이 한 물건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 초산楚山은 끝없이 높고 가파른 봉우리 펼쳐졌네.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길 ‘어떤 사람이 가져가 버렸습니다’라고 하였으니, 한 물건을 내려놓은 곳, 적연하게 천지가 비었구나.
- 良久云、明添千日暗添漆、古洞凉雲凍不開、昔臨濟祖師因普請次、黃蘗見師空手。乃問钁頭在什麽處、這箇钁頭、是諸人普請受用底一物、穩穩當當、密密綿綿、絲髮不漏、這一物、誰能會。楚山無限謾崢嶸。臨濟云有一人、將去了也、放下一物處、寂然天地空。
- 황벽 조사께서 괭이를 일으켜 세우며 말씀하시길 ‘오직 이것만은 천하 사람들이 잡아 세우려 해도 일으키지 못한다’라고 하셨다. 쯧쯧(咄), 오직 이것만이 있으니, 저울에 쇠파리(蒼蠅)가 앉는 것조차 허락지 않았는데, 저울추를 밟으니 단단하기가 쇠망치와 같구나.
- 黃蘗竪起钁頭云秪這个、天下人拈掇不起。咄唯有這箇在、然秤頭不許蒼蠅坐、踏着秤鎚堅似鎚。
- 임제 선사께서 손을 뻗어 주장자를 낚아채 잡아 세우면서 말하길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은 이것이 제 손 안에 있습니까?’라고 하였으니, 이는 가히 도둑은 소인배이나 지혜는 군자보다 낫다고 할 만하다. 이 물건은 부처와 부처가 서로 전한 것이요, 조사와 조사가 가지고 논 것이라. 어찌 특별히 움켜쥐고서 일으키지 않겠는가. 알겠느냐? 강남江南의 삼월 풍경이 계속해서 기억하자니, 자고새(鷓鵠) 우는 곳 온갖 꽃향기 가득하였지.
- 臨濟就手掣得拄杖堅起云爲什麽、却在某甲手裏、可謂賊是小人、智過君子。這箇物、佛佛相傳、祖祖拈弄。何特拈掇不起哉。會麽。常憶江南三月裏、鷓鵠啼處百花香。
- 황벽 조사께서 말씀하시길 ‘우리 종문이 너에 이르러 크게 일어나겠구나’라고 하였으니, 이는 아무 쓸데없는 것이다. 진주鎭州에서는 큰 무(大蘿蔔)가 난다네.
- 黃蘗云吾宗、到汝大興、是甚閑家具。鎭州出大蘿蔔。
조주주토화趙州走兎話
- “훌륭한 여러 씨앗(仁子)들이여, 옛날에 조주趙州 화상이 밖으로 나와서 거닐고 있었는데, 마침 그 앞으로 토끼가 달려갔다. 승려가 묻기를 ‘화상께서는 선지식善知識이신데, 어째서 토끼새끼가 도망가 버립니까’라고 하였다. 조주 화상이 말씀하시길 ‘나(老僧)는 살생을 많이 했기 때문이니라’라고 하였다. 대중아, 어떻게 알아차렸느냐? 만약 추호라도 알음알이를 일으킨다면, 나귀의 해(馿年)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차리게 될 것이로다. 소나무에 기대어 한가로이 몇 권의 경을 잡고서, 객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웃으며 묻네.
- 好諸仁子、昔趙州和尙、出遊、因適値兎走。僧問和尙、是善知識、爲甚麽、兎兒走却。趙州云老僧多殺生。大衆作麽生會。若一毫擬議思量、馿年始得會麽。倚松閑持數卷經、笑問客從何處來。
- 세상 사람들이 모두들 불법佛法의 소굴에 떨어져서 들락날락할 뿐이니, 어느 때에 꿈에서라도 조주趙州6) 선사를 보겠는가. 중생의 심식心識은 마치 태말충太末虫이 닿는 곳마다 앉는 것과 같으니, 삼세三世의 제불諸佛과 역대歷代의 조사祖師와 항하수(河沙)와 같이 많은 장경藏經 모두가 바로 마구니의 말(魔說)이자, 생사生死 근본根本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조주 선사께서 말씀하시길 ‘불佛이라는 한 글자는 영원히 듣고 싶지 않다’라고 하셨으니, 알겠느냐?
- 世人擧皆是墮在佛法窠窟、頭出頭沒、何時夢見趙州。衆生心識、如太末虫處處能緣、三世諸佛、歷代祖師、河沙藏經、惣是魔說、是生死根本。故趙州云、佛之一字、吾不喜聞、會麽。
- 어떤 한 사람은 향목香木을 잘라내어 불상佛像을 만들고, 또한 다른 한 사람은 향목을 잘라내어 똥막대(糞機)를 만들면, 어떠한가? 그 본성本性을 잃는 것은 한가지이니라. 어떤 한 사람은 선행을 지어 천당에 태어나고, 또한 다른 한 사람은 악행을 저질러 지옥에 태어나면, 어떠한가? 선악은 비록 다를지라도, 윤회하는 것은 한가지이니라.
- 有一人、斫伐香木、造佛像、又有一人、斫伐香木、作糞機、於意云何。失其本性則一也。有一人作善生天堂、又有一人作惡生地獄、於意云何。善惡雖殊、其輪廻則一也。
- 부처(佛)와 조사(祖), 세간법世間法과 출세간법出世間法, 이로理路와 의로義路, 분별分別과 전체全軆를 막론하고 모두 생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조六祖께서 말씀하시길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일체법一切法은 중생의 일체심一切心을 구제하기 위한 것인데, 나는 일체심이 없으니 어찌 일체법을 쓰리오”라고 하신 것이다.
- 勿論佛祖及世間法出世間法、有理路義路、及分別全軆、是生死也。故六祖云、佛說一切法、爲度一切心、我無一切心、何用一切法。
-
그러나 제법諸法이 모두 공空한 자리에는 본성 스스로가 신해神解하여서 목석木石과는 같지 않으니, 성인聖人께서는 생멸이 없는 몸으로, 세간에 두루 들어가서 널리 중생들을 구제하여 치연熾然하게 항상 설법을 하시되, 한 글자도 말씀하신 적이 없느니라. 그러한 즉 조주의 뜻은 어떠한가? 달이 중추中秋에 이르고 가득하고 바람은 팔월八月부터 서늘하네. 조주의 뜻은 어떠한가? 도잠陶潛이 팽택彭澤에서 오직 버드나무만을 기르며 번악潘嶽은 하양河陽에서 꽃만 심도다. 조주의 뜻이 어떠한가? 납승衲僧이 근원(巴鼻)7)을 파고들어서, 순박하고 진실되게 상량하여 조종을 잇네. 조주의 뜻이 어떠한가? 조주의 토끼 화두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니, 잡초와 들꽃만이 땅에 가득하네. 쯧쯧(咄), 순박하게 좋을 것이 없다고만 말하지 말라.
곧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 然諸法皆空之處、性自神解、不同木石、聖人以無生滅之身、普入世間、廣度衆生、熾然常說、未曾說一字。然則趙州意作麽生。月到中秋滿、風從八月凉。是趙州意麽。陶潛彭澤唯栽柳、潘嶽河陽秪種花。是趙州意麽。衲僧巴鼻徒穿鑿、平實商量累8)祖宗。是趙州意麽。趙州兎關、無人會、野草閑花滿地愁。咄莫道純朴無爲好、便下座。
- 아베미츠이에(阿部充家) 댁
- 阿部充家殿
白相奎 신문조서
白相奎 訊問調書(京城地方法院, 1919)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11(三一運動 I), 1919.
1. 원문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11 11권 三一運動 I 〉 三ㆍ一 獨立宣言 關聯者 訊問調書(京城地方法院)(日文) 〉 白相奎 訊問調書(第2回)
白相奎 訊問調書(第2回)
白相奎
右之者ニ對スル出版法及保安法違反事件ニ付大正8年7月28日西大門監獄ニ於テ
豫審掛朝鮮總督府判事 永島雄藏
朝鮮總督府裁判所書記 磯村仁兵衛
列席ノ上豫審判事ハ前回ニ引續キ被告人ニ對シ訊問ヲ爲スコト左ノ如シ.
問 白相奎カ.
答 左樣テス.
問 此レハ 林圭ヲシテ帝國議會ヘ提出セシメタ朝鮮獨立通告文テ, 此書面ノ被告名下ノ印章ハ被告ノ印章ニ相違ナイカ.
此時第419號, 第420號證ヲ示ス.
答 相違アリマセヌ.
問 最初ノ宣言書ハ パコタ公園テ發表スル事ニナッテ居タノカ.
答 其事ハ存シマセヌテシタ.
問 被告等ノ宣言書ヲ見テ各地方ニ暴動カ起キタトノ事ナルカ, 其事ハ豫想シテ居タノテハナイカ.
答 私ハ左樣ナ事ハ考ヘテ居マセヌテシタ.
朝鮮總督府裁判所通譯生 尾田滿
右署名者ニ讀聞ケタル處之ヲ承認シタルモノナリ.
前同日同所ニ於テ此調書ヲ作ル故ニ裁判所印ヲ押捺スル能ハス.
서기京城地方法院
朝鮮總督府裁判所書記 磯村仁兵衛
신문자 豫審掛朝鮮總督府判事 永島雄藏
2. 번역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11 11권 三一運動 I 〉 三ㆍ一 獨立宣言 關聯者 訊問調書(京城地方法院)(國漢文) 〉 白相奎 신문조서(제2회)
白相奎 신문조서(제2회)
白相奎
위 사람에 대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사건에 대하여 대정 8년 7월 28일 서대문감옥에서
예심계 조선총독부 판사 永島雄藏
조선총독부 재판소 서기 磯村仁兵衛
열석하여 예심판사는 전회에 이어 피고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신문하다.
문 白相奎인가.
답 그렇다.
문 이것은 林圭로 하여금 제국의회에 제출하게 한 조선독립통고문인데 이 서면에서 피고의 성명 밑의 도장은 피고의 도장임에 틀림이 없는가.
이때 증제419호, 증제420호를 보이다.
답 틀림없다.
문 맨처음에는 선언서를 파고다공원에서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는가.
답 그것은 몰랐었다.
문 피고 등의 선언서를 보고 각 지방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데 그것은 예상하고 있지 않았는가.
답 나는 그런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았었다.
조선총독부 재판소 통역생 尾田滿
위 서명자에게 읽어서 들려주었더니 그것을 승인하다.
앞에서와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이 조서를 작성하였으므로 재판소의 직인을 찍지 못함.
서기경성지방법원
조선총독부 재판소 서기 磯村仁兵衛
신문자 예심계 조선총독부 판사 永島雄藏
白相奎 訊問調書(高等法院, 1919)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12(三一運動 II), 1919.
1. 원문
-
0001_0007_a_01L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12 12권 三一運動 II 〉三ㆍ一 獨立宣言 關聯者 訊問調書(高等法院)(日文) 〉白相奎 訊問調書
白相奎 訊問調書
白相奎
右之者ニ對スル內亂事件ニ付大正8年8月27日高等法院ニ於テ
豫審掛朝鮮總督府判事 楠常藏
朝鮮總督府裁判所書記 宮原悅次
列席ノ上判事ハ被告人ニ對シ訊問ヲ爲スコト左ノ如シ.
問 氏名, 年齡, 族稱, 職業, 住所, 本籍及出生地ハ如何.
答 氏名ハ白相奎.
年齡ハ52歲(5月1日生).
族稱ハ-.
職業ハ僧侶.
住所ハ京城府鳳翼洞1番地.
本籍ハ京城府鳳翼洞1番地.
出生地ハ全羅北道長水郡蟠岩面竹林里.
問 爵位, 勳章, 記章ヲ有シ年金, 恩給ヲ受ケ又ハ公務員ノ職ニ在ルモノニアラサルヤ.
答 アリマセン.
問 是迄刑罰ニ處セラレタルコトナキヤ.
答 アリマセン.
問 被告ハ本年2月27日 韓龍雲ニ勸メラレテ朝鮮獨立運動ニ參加シ, 3月1日明月舘支店ニ於テ宣言書ヲ發表シ其ノ場ニ於テ捕ニ就キタルモノニテ, 其間獨立運動ニ關シ執リタル行動其他ノ事項ハ被告カ前ニ地方法院豫審ニ於テ申立タル通リ相違ナキヤ.
答 相違アリマセン.
問 獨立運動ノ方法如何.
答 獨立宣言書ヲ配付スレハ自然日本テモ朝鮮カ獨立ヲ希望シテ居ルト云フ事ヲ知リ獨立ヲ承認シテ吳レルテアロウト云フ事ヲ韓龍雲ノ談ニ依リ聞キマシタ故, 其ノ樣ニ思ヒ運動ニ參加スル事ヲ承認シ私モ宣言書ニ名前ヲ出ス事ニ致シマシタ. 其ノ外請願書ヲ作テ日本政府ヤ總督府, 講和會議ノ各國代表者抔ヘ送ルト云フ樣ナ事ニ付テハ何モ聞イテ居リマセン.
問 宣言書ヲ配付スレハ其レテ直ク獨立カ得ラレルモノト信シテ居タカ.
答 左樣テアリマス.
問 宣言書ニハ如何ナル事ヲ書ク積リナリシカ.
答 私ハ宣言書ヲ見タ事モアリマセンカ, 韓龍雲ノ話ニ武器ヲ以テ爲ルテモナク亂暴ヲ爲ルテモナク唯穩健ナル態度ノ下ニ書面ヲ以テ獨立ノ宣言ヲ爲スノテアルト申シマス故, 其ノ樣ナ趣旨テ宣言書ハ出來ルモノト思ツテ居マシタ.
問 宣言書ハ獨立シタト云フ事ヲ宣言スルノカ, 獨立ヲ希望スルト云フ事ヲ宣言スルト云フノカ孰カ.
答 是カラ獨立爲ヨウトスルト云フ意味ヲ發表スルト云フ事テシタ.
問 左樣ナ宣言書ヲ發表スレハ保安法ニ獨レルト云フ事ハ其方ハ承知シ居タルヤ.
答 左樣ナ事ハ私ハ知リマセン. 唯今度ノ事ニ付テ名前ヲ出セト云フ事ナリシ故, 私ハ獨立スルノテサヘアレハ名前位出シテモ良イト思ツテ名前ヲ出シタニ過キマセン.
問 獨立運動ノ事ニ付テ 韓龍雲以外ノ者ト話ヲ爲タ事ハナキヤ.
答 アリマセン.
問 明月舘支店ニ會合シタ時ニハ, 其宣言書ヲ發表スレハ直ニ逮捕サレルト覺悟シテ居タノテハナイカ.
答 其レハ覺悟シテ居マシタ.
問 何故然思ッタカ.
答 其レハ彼ノ樣ナモノヲ發表スレハ怎テ其ノ儘無事テハ濟ムマイト思ッタカラテス.
問 獨立宣言ヲ爲レハ日本政府カ容易ク承認シテ吳レル樣ナラ, 罪ニモ何ニモナラヌ事テ捕ヘラレルト云フ樣ナ事ハ考ヘナイ筈テハナイカ.
答 愈々獨立シテ了ヘハ捕ヘラレル事モアルマイカ, 獨立ニナル迄ノ間ハ其ノ樣ナ事ヲ爲レハ何ノ罪ニ獨レルカハ判ラヌカ兎ニ角捕ヘラレルダロウト考テ居リマシタ.
問 被告等ハ朝鮮ノ獨立ヲ 講和會議ノ問題トナシ, 日本ヲシテ獨立ヲ餘儀ナク承認サセルト云フ考テハナカッタカ.
答 私ハ左樣ナ事ハ知リマセン. 私ハ東洋ノ平和ヲ永遠ニ保持スル上カラ朝鮮ノ獨立ハ必要テアル, 日本ニ於テモ其邊ハ能ク知テ居ル事テアロウシ, 尙 佛敎ノ上カラ見テモ朝鮮ノ獨立ハ至當ナ事テアルカラ, 其レ等カラシテモ兎ニ角朝鮮ノ獨立ハ容易ニ出來ルモノト信シテ居タ譯テアリマス.
領第330號ノ3ヲ示シ
問 宣言書ハ是カ.
答 左樣テアリマス.
問 此草案ヲ見タカ.
答 見マセン.
問 何時甫メテ是ヲ見タカ.
答 明月館支店テ甫メテ見マシタ. 其ノ際モ私ハ遲ク其處ヘ行タノテ, 手ニ取テ見ヨウトシテ居ル處ヘ警官カ來テ摑ヘノテ能ク見ル間カアリマセンテシタ.
問 此宣言書ニハ不穩過激ナル文句カアルカ, 斯樣ナモノヲ發表シタノハ朝鮮民族ヲシテ煽動シ暴動ヲ起サセルト云フ趣旨テハナカッタカ.
答 左樣テハアリマセン.
問 其ノ樣ナ意思テナクテモ, 其レヲ見レハ其レニ刺戟サレテ暴動ヲ起スモノカアルト云フ事ハ判リハセヌカ.
答 私ハ左樣ナ氣遣ハ無カロウト思ヒマス.
同號419, 420ヲ示シ
問 是ニ被告ノ印カ捺シテアルハ如何.
答 私ハ斯樣ナモノニ捺印スルト云フ事ハ知ラス, 唯 獨立宣言書ニ捺印スルト云フ事ヲ聞イテ韓龍雲ニ印ヲ托シテ措イタ丈ケテアリマス.
問 公訴事實ニアル如ク 京畿道安城郡, 平安北道義州郡, 黃海道遂安郡等ニ宣言書ニ刺戟サレ獨立ヲ目的トスル暴動カ起ッテ居ルカ如何.
答 其レハ宣言書ニ刺戟サレタ爲トハ思ヒマセン. 恐ラク其レハ官民感情ノ衝突カラ起タ事ト思ッテ居リマス.
本訊問ハ朝鮮總督府裁判所通譯生植山健藏ノ通譯ニ依リ之ヲ行ヒ, 右錄取シタル處ヲ同通譯生ニ讀聞カセタルニ相違ナキ旨承認シ左ニ署名捺印シタリ.
통역朝鮮總督府裁判所通譯生 植山健藏
작성일 大正8年8月27日
高等法院
서기朝鮮總督府裁判所書記 宮原悅次
신문자 豫審掛朝鮮總督府判事 楠常藏
2. 번역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12 12권 三一運動 II 〉 三ㆍ一 獨立宣言 關聯者 訊問調書(高等法院)(國漢文) 〉 白相奎 신문조서
白相奎 신문조서
白相奎
위 사람에 대한 내란사건에 대하여 대정 8년 8월 27일 고등법원에서
예심계 조선총독부 판사 楠常藏
조선총독부 재판소 서기 宮原悅次
열석하여 판사는 피고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신문하다.
문 성명, 연령, 족칭, 직업, 주소, 본적 및 출생지를 말하라.
답 성명은 白相奎.
연령은 52세(5월 1일생).
족칭은 -.
직업은 승려.
주소는 京城府 鳳翼洞 1번지.
본적은 京城府 鳳翼洞 1번지.
출생지는 全羅北道 長水郡 蟠岩面 竹林里.
문 작위, 훈장, 기장을 가지고 연금, 은급을 받거나 또는 공직에 있는 것은 아닌가.
답 없다.
문 지금까지 형벌을 받은 일은 없는가.
답 없다.
문 피고는 금년 2월 27일에 韓龍雲의 권유로 조선독립운동에 참가하고 3월 1일에 명월관지점에서 선언서를 발표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된 사람으로서 그 사이에 독립운동에 관하여 취한 행동, 기타 사항은 피고가 전에 지방법원 예심에서 진술한 대로 틀림이 없는가.
답 틀림없다.
문 독립운동의 방법은 무엇인가.
답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면 자연 일본에서도 조선이 독립을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독립을 승인해 주리라는 것을 韓龍雲에게서 들었으므로 그렇게 생각하고 운동에 참가할 것을 승낙하고 나도 선언서에 이름을 내기로 했었다. 그 밖에 청원서를 만들어 일본정부나 총독부, 강화회의의 각국 대표자 등에 보낸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었다.
문 선언서를 배포하면 그것으로 곧 독립이 얻어진다고 믿었는가.
답 그렇다.
문 선언서에는 어떤 것을 쓸 생각이었는가.
답 나는 선언서를 본 일도 없으나 韓龍雲의 말로는 무기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난폭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온건한 태도로 서면으로써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했으므로 그런 취지로 선언서는 씌어질 것으로 생각했었다.
문 선언서는 독립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인가, 독립을 희망한다는 것을 선언한다는 것인가, 어느 것인가.
답 지금부터 독립하려고 한다는 의미를 발표한다는 것이었다.
문 그러한 선언서를 발표하면 보안법에 저촉된다는 것은 그대도 알고 있었는가.
답 그런 것은 나는 모른다. 다만 이번의 일에 대하여 이름을 내라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독립하는 것이라면 이름쯤 내어도 좋다고 생각하여 이름을 낸 것에 불과하다.
문 독립운동에 관하여 韓龍雲 이외의 사람과 말을 한 일은 없는가.
답 없다.
문 명월관지점에서 회합했을 때에는 그 선언서를 발표하면 곧 체포된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답 그것은 각오하고 있었다.
문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답 그것은 그런 것을 발표하면 어쨌든 그대로 무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독립선언을 하면 일본정부가 쉽사리 승인해 줄 것이라면 죄도 아무것도 아닌 것에 체포된다는 일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답 마침내 독립되고 나면 체포되는 일도 없겠지만 독립이 되기까지의 동안은 그런 일을 하면 무슨 죄에 저촉되는지는 모르나 하여튼 체포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문 피고 등은 조선의 독립을 강화회의의 문제로 삼고 일본으로 하여금 독립을 어쩔 수 없이 승인하도록 하게 할 생각이 아니었는가.
답 나는 그런 것은 모른다. 나는 동양의 평화를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독립은 필요하다, 일본에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며 또 불교상으로 보더라도 조선의 독립은 마땅한 것이므로 여러가지 점으로 보아 하여튼 조선의 독립은 용이하게 될 것으로 믿고 있는 터이다.
領제330호의 3을 보이다.
문 선언서는 이것인가.
답 그렇다.
문 이 초안을 보았는가.
답 못 보았다.
문 언제 이것을 처음 보았는가.
답 명월관지점에서 처음 보았다. 그때에도 나는 늦게 거기로 갔었기 때문에 손으로 잡아서 볼려고 하는데 경찰관이 와서 체포하였으므로 잘 볼 사이가 없었었다.
문 이 선언서에는 불온 과격한 문구가 있는데 그런 것을 발표한 것은 조선민족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키려는 취지가 아닌가.
답 그렇지는 않다.
문 그런 의사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을 보면 그것에 자극을 받아서 폭동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 아닌가.
답 나는 그런 염려는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동호의 419, 420을 보이다.
문 여기에 피고의 도장이 찍혀 있는데 어떤가.
답 나는 그런 것에 날인한다는 것은 몰랐다. 다만 독립선언서에 날인한다는 것을 듣고 韓龍雲에게 도장을 맡겨두었을 뿐이다.
문 공소사실에 있는 바와 같이 京畿道 安城郡, 平安北道 義州郡, 黃海道 遂安郡 등지에서 선언서에 자극되어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폭동이 일어났는데 어떤가.
답 그것은 선언서에 자극되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그것은 관민의 감정이 충돌하여 일어난 것으로 생각한다.
이 신문은 조선총독부 재판소 통역생 植山健藏이 통역했고, 위 녹취한 것을 그 통역생에게 읽어서 들려주었더니 틀림이 없다고 승인하고 다음에 서명 날인하다.
통역조선총독부 재판소 통역생 植山健藏
작성일 대정 8년 8월 27일
고등법원
서기조선총독부 재판소 서기 宮原悅次
신문자 예심계 조선총독부 판사 楠常藏
대각교 제칭 이유서(1920)
- 村山智順著, 崔吉城·張相彦 共譯, 『朝鮮의 類似宗敎』(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pp.328-329.
-
0001_0012_a_01L題稱大覺敎者는 其義何在오, 本敎精神要素가 專在於草新而己니라, 自上古己來로 眞理的·道德的·哲學的·科學的·兼善的·慈悲的인 大倧敎가 法久成弊하야 不合於佛文本懷하니 然則佛敎之衰退를 於斯에 可鑑矣로다. 若不革新이면 恐難扶持하야 晝宵耿耿이라가 余任戌之夏四月初八日에 始稱大覺敎之名하니 佛敎界中에 不合余意者는 間有反對之端而同情者ㅣ亦不多也라. 以故로 余ㅣ歷盡萬般辛苦矣러니 偶與釋時鏡禪師로 心志相合故로 丁卯之春에 同入於中華吉林省 延邊地方하야 建立大覺敎堂하고 民衆大覺化事業을 實施하다
覺日無有定法이 名無上正眞之道라 하시며 又云眞性深深極微妙하야 隨縁成就一切事法이라 하시니 眞偉哉라, 聖言也 ㅣ시며 觀其三世之千變하여 變通無碍라야사 可與聖人之道로 合矣哉ㄴ저
又當時思湖와 民智開發이 與古不同이어늘 固守舊習하야 自取滅亡이 可乎아, 是故로 佛敎를 譯稱大覺敎라하니, 何謂之大覺고, 本覺과 始覺과 究竟覺이 圓滿無二故로 號稱大覺이요(本覺者 天地世界와 人畜動物의 本然性이니 水中의 鹽味와 如하야 決定是有나 不可見者也 ㅣ니라, 始覺者 本有眞性을 昧而不知라가 因師覺之하야 勇猛精進하야 始合本性이니 如採金鑛에 百鍊而後에사 始成眞金이니라, 究竟覺者 一成眞金에 不重爲鑛과 如하야 始本이 合致에 更不迷却故로 名日究竟覺이니라.)
又世間出世間에 窮通無碍故ㅣ며, 又吾人之日用動靜에 以覺爲師하야 內覺에 不昧本性하고 外覺에 不昧事物故ㅣ며, 又天下民衆의 思湖를 觀察하는 覺慧로 時代에 適合하도록 敎理를 宣傳故ㅣ며, 又眞理와 道德과 唯心과 唯物을 倂行하야 前進하며 證實한 哲學的 因果를 信行하고 虛僞한 邪見的迷信을 打破故로 通靜大覺이라나니 此覺之一字에 萬事萬理가 圓融舞碍하야 無所不備로다
故로 道之大源이 出於覺니라 하노니 本敎의 宗旨가 於斯에 圓滿具足이로다. 如此而覺得出身活路則樹樹 皆生新歲葉이요 花花爭發去年枝矣니라. 大覺紀元〈p.328〉
千九百五十八年 辛未正月二十四日, 白龍城識.〈p.329〉
선학원 창건 上樑文(1921)
- 『財團法人禪學院略史』(선학원, 1986), p.7.
-
0001_0013_a_01L六緯의 唱은 支那 宋元時로부터 始作됨이요, 自古로 有한 法은 안인 則, 足히 取할 바가 無하도다. 大抵 正法千年과 像法千年이 旣是過去하고 季法萬年中에서도 亦是 九百四十八年이나 되었으니 世道와 人心이 漸次 複雜함으로 敎理의 通學과 宗旨의 宣傳이 實로 極難한 中에 各種의 敎가 朝發而暮作하야 個個 自善自是로 闡揚하니 邪正의 根과 眞膺의 端이 無異於烏之雌雄이로다. 此時를 當한 佛子가 엇지 責任이 無하리오.
吾輩 六七人이 潛伏의 志를 打破하고 金剛心願을 共發하여 京城에 來居한 지 數星霜만에, 惱心焦思하난 中에 丁巳生 具氏智月化의 檀力이 有하고 梵魚寺에서 仁寺洞 敎堂 全部와 兼하야 千圓金額을 寄附하기 吾輩의 蚊力에 對하야는 可謂 虎가 山에 處하고 龍이 海에 蟠함과 如하도다.
辛酉十月四日 卯時에 立柱上樑하니 此大院을 成就한 然後에는 敎理硏究하며 正法을 說示하야 佛法大海를 十方世界에 永遠流通하기로 하노라.
世尊應化二千九百四十八年 辛酉十月 四日 大衆秩 白龍城 吳惺月 康道峯 金石頭 韓雪濟 金南泉 李景悅 朴普善 白俊燁 朴敦法
선우공제회 취지서(1922)
- 『근현대불교자료전집』 권65(1996, 민족사), pp.3-5.
-
0001_0014_a_01L去聖이 彌遠에 大法이 沈淪하야 敎徒가 曉星과 如한 中에 學者는 實노 麟角과 如하야 如來의 慧命이 殘縷를 保存키 難하도다. 多少의 學者가 有하다 할지라도 眞正한 發心衲子가 少할 아니라 眞膺이 相雜하야 禪侶를 等視하는 故로 禪侶到處에 窘迫이 相隨하야 一衣一鉢의 雲水生涯를 支持키 難함은 實노 今日의 現狀이라. 그러나 人을 怨치 말고 己를 責하야 猛然反省할지어다. 元來로 生受를 人에게 依함은 自立自活의 道가 아닌즉 學者의 全生命을 人에게 托하여 他人의 鼻息를 矣함은 大道活命의 本意에 反할지라. 吾輩禪侶는 警醒鬪勵하야 命을 覩하여 道를 修하고 따라서 自立의 活路를 開拓하야 禪界를 勃興할 大道를 闡明하야 衆生을 苦海에 救하고 迷倫을 彼岸에 度할지니 滿天下의 禪侶는 自立自受할지어다.
佛 應化 二千九百四十九年 三月 三十日 發起人 無順
吳惺月, 李雪雲, 白鶴鳴, 金南泉, 李大蓮, 金法界, 金南翁, 韓龍雲, 鄭石菴, 權南鏡, 朴慧明, 奇石虎, 金性玟, 申幻翁, 具松溪, 黃龍吟, 尹鐵空, 尹祥彦, 姜懶龍, 李海山, 金載奎, 李戒峰, 金松月, 李一虛, 金性敬, 宋滿空, 林石頭, 金涵圓, 崔道玄, 曺東湖, 姜道峰, 李意月, 朴寶光, 趙禮雲, 鄭雲巖, 白龍城, 鄭草菴, 韓雪濟, 朴昌洙, 申隱峰, 沈圓田, 權一圓, 全西耕, 金錦超, 李芝晻, 余齊峰, 朴金山, 鄭玄坡, 朴周演, 尹退雲, 千普菴, 朴湖山, 金寶月, 朴漢九, 朴古峰, 金石頭, 鄭雲門, 申隱峰, 洪秀菴, 安月松, 李無含, 李石雲, 李音草, 金蓮渾, 秋天圓, 崔日前, 梁泰熙, 吉浩然, 李初月, 金斗劤, 金南翁, 金修■, 鄭永信, 李春城, 李啓煥, 李杲山, 馬■燈, 金慶奭, 朴耆暗, 金初眼, 金翠松, 尹退雲
『龍城大宗師 壽宴帖』(1923, 대각사)
- 제공 ; 죽림정사(장수)
-
0001_0016_a_01L1.
謹賀 白龍城 法師壽辰 삼가 백용성 법사의 회갑생신을 축하드립니다.
甲子重回六一今 갑자년이 다시 돌아와 이제 61세가 되시니
始知活佛慧功深 비로소 활불지의 공덕의 심현深玄을 알았도다.
玩鶴應性閒聽偈 학처럼 노닐면서 본성에 따라 한가히 게송을 읊고
種松聊識老年林 소나무를 심어 원림園林에서 노년을 즐기시는구나.
毫光滿帶來生福 백호 광명 가득하여 來生의 복이 함께하니
腦海常莊普濟心 마음 깊은 곳은 항상 중생 제도할 마음이 왕성하시네.
壽星奎彩同輝地 하늘엔 수성壽星9)과 규성奎星10)이 빛나고 그 빛이 땅위에서도 찬란하여라.
讀罷金經復浪吟 부처님의 경전을 읽고 다시 낭랑하게 읊습니다.
迺隱 崔斗榮11) 내은 최두영
-
0001_0017_a_01L2.
謹和 白龍城 法師壽韻 삼가 백용성 법사의 수연시에 화운和韻12)합니다.
佛指中道將到今 부처님 중도中道의 가르침으로 장차 오늘에 이르러
六旬修鍊六根深 육십 평생 육근六根을 심원深遠하게 닦으셨도다.
茶初月滿眞江水 초승달 찻잔에 가득하고 강물은 부질없이 흐르는데
偈凌雲橫古洞林 게송 읊는 소리에 비껴있는 구름이 옛골 숲을 지나가네.
木鐸聲名提醒世 목탁소리 명성이 세상을 일깨워주고
香煙功德積無心 향 연기 공덕은 무심하게 쌓여 가는 구나
衆生擺待慈航渡 중생을 이끌어 자비 반야용선으로 제도 하소서
只祝返壽爲一吟 지금 회갑이 돌아옴을 축하드리며 시를 읊습니다.
林觀 韓渭東 임관 한위동
-
0001_0018_a_01L3.
謹賀 白龍城禪師 壽辰 삼가 백용성 선사의 회갑생신을 축하드립니다.
先天甲子又奉今 선천先天시대 갑자년 다시 만난 지금
已濟圓功修鍊深 원만한 공덕과 오랜 수행으로 중생을 제도해 마쳤도다.
道氣莊龍傳寶鉢 도기道氣는 장한 제자에게 진귀한 발우 전하시고
經聲引鶴出眞林 가르침의 소리로 학을 이끌어 진림眞林으로 나오게 하니
叢風慧月三生觀 총림 가풍의 혜월慧月로 삼생을 관할 지어다.
流水閒雲萬境心 흐르는 물과 한가로운 구름은 만 가지 경계의 마음이로다.
節盡業累眞活佛 누대의 숙업이 다해 진실로 살아있는 부처라네.
輪珠唱偈後長吟 염주 돌리며 게송으로 노래하여 길이 축하시를 읊습니다.
石農 李星會 석농 이성회
-
0001_0019_a_01L4.
祝 龍城禪師 壽朝 용성선사의 회갑생신을 축하드립니다.
聞說三藏子 듣자하니 삼장 존자께서
現生六十今 현생에서 오늘 60이 되었다 하시네,
雲木風霜古 운목雲木이 겪은 풍상이 오래 되었고
江河歲月深 강물 따라 세월의 흔적이 깊구나.
渺渺前神佛 아스라이 신령스러운 부처님이 앞에 계셔서
重重此度心 겹겹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나이다.
憶曾燕獄裏 예전 감옥의 일들을 기억해보니
誰談有期吟 누가 앞날을 기약할 수 있으리오. 수연시를 읊습니다.
春菴13) 춘암
-
0001_0020_a_01L5.
謹賀 白龍城 禪師 壽辰 삼가 백용성 선사의 회갑생신을 축하드립니다.
前身是佛復生今 전신 부처님께서 지금 다시 환생하셨네.
因果由來道力深 인과의 유래로 보면 도력이 깊었음을 알겠네.
水月精神依錫杖 석장에 의지해서 운수행각하던 정신은
雲霞蹤迹托珠林 구름과 노을의 종적을 따라 총림에 의탁했다.
出家常有慈悲念 출가 하여 항상 자비심이 있었으니
悅世豈無忠義心 충의로 세상을 누리려는 마음이 어찌 없었겠는가?
俗壽重回新甲子 세속의 생일이 다시 돌아와서 새로운 갑자년이 되니
祝辭咸句一高吟 축사의 여러 말을 한마디로 읊습니다.
素巖 呂炳鉉14) 소암 여병현
-
0001_0021_a_01L6.
謹次 白龍城堂禪師 長筵韵 삼가 백용성 선사의 수연시에 차운次韻합니다.
無来君逢又至今 온 적도 없는 존자님을 오늘에야 다시 뵈오니
解脱吾師道自深 해탈을 하신 우리스님의 도가 저절로 깊으시어라.
坐處蓮花非寶榻 앉아계신 처소는 연화보좌가 아니고
眼前残樓是空林 눈앞의 낡은 누각은 총림이라네.
圜扉四載經壽劫 감옥[圜扉]에서 나온 지 4년이 되어 회갑을 맞이하시니
譯會三藏現佛心 삼장을 번역하여 불심으로 나타내셨도다.
只爲化身住於世 오직 화신으로 세상에 머물러 주시기를 바라며
衆生遍作晬筵吟 중생이 다함께 수연시를 지어 읊습니다.
偶丁 林圭15) 우정 임규
-
0001_0022_a_01L7.
祝 白先生壽朝 백선생님 수연을 축하드립니다.
舊日復今 옛날부터 다시 오늘에 이르기까지
年高海深 연세가 높으시니 법력도 바다와 같이 깊으시네.
志在上乘 포부는 높고 높으신데 있으나
身㞐小林 스님은 작은 절에 거처 하신다네.
苦海多㦖 고해의 많은 번뇌 중생에게
福望勞心 복덕이 있기를 바라며 노심초사 하시네
深玆美辰 이 약초로 생신을 깊이 축하하며
盡裏一吟 마음속으로 시를 읊습니다.
羅龍煥16) 라용환
-
0001_0023_a_01L8.
祝 龍城禪師壽朝 용성선사의 회갑생신을 축하드립니다.
西囚一別到如今 서대문 감옥에서 헤어져 오늘에 이르렀는데
忽見招呼感激深 감자기 초청하여 불러주시니 깊이 감격 하였습니다.
自愧田家無學圃 농사꾼이라 부끄럽게도 배운 것이 없어
從知城市有禪林 도시에 선림이 있음을 누가 알았으리오.
吾生六十本來夢 우리네 인생에서 육십이란 본래 꿈과 같거늘
此日重逢何管心 오늘 다시 만나니 마음을 어떻게 보이고
雲山萬里難爲意 운산 만리의 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하리까?
只倚業欄聊一吟 다만 선림의 난간에 기대어 축하시를 읊을 뿐입니다.
羅仁協17) 라인협
-
0001_0024_a_01L9.
敬祝 龍城堂 大禪師 壽宴 용성당 대선사의 수연을 경축합니다.
普門舊宿老如今 보문의 옛 별자리 오늘에 이르니
永峙翔雲花木深 오래된 언덕길에 상서로운 구름과 꽃과 나무가 우거졌네.
覺岸松風鳴寶鐸 깨달음의 언덕에 솔바람소리와 보배로운 목탁이 울리고
給園香樹攢珠林 급고독원과 기타태자의 향수림에 보배 구슬이 모이고
禪燈已懺貝書影 선문의 등불로 스스로를 비추고 경전의 그림자를 드리우니
澔月常印菩提心 밝은 달은 항상 보리심을 나투시네.
三世此身無住處 삼세에 이 몸은 머무를 곳이 없지만
往來不與俗人吟 왕래를 하나 세속 사람과 더불어 하지 않으시네. 수연시를 읊습니다.
惺菴 崔潤錫 謹稿 성암 최윤석 근고
-
0001_0025_a_01L10.
謹賀 白禪師 龍城堂 壽朝 삼가 용성당 백선사의 수연을 축하드립니다.
大師花甲再回今 대사의 회갑이 오늘 다시 돌아오니
善得人因緣果深 인연의 과보가 깊어서 좋은 분을 만났습니다.
報無仁風曾鐵圄 지난날 감옥에서 인자한 가르침에 보답할 길 없었는데
福笻海月晩博林 주장자의 지혜와 복덕으로 오래도록 선림을 보살펴 주소서.
爲通六識鳴禪界 육식六識의 고통을 선계로 통하게 하시며
手譯三藏謳佛心 손수 삼장을 번역하여 불심으로 부처님의 마음을 노래하시네.
遙祝現來無量壽 오래도록 현세에서 무량수 누리기를 축원하며
恁將批韻一高吟 운율에 맞추어서 수연시를 읊습니다.
沃坡 李鍾一18) 옥파 이종일
-
0001_0026_a_01L11.
晬筵祝詩 수연을 축하하며 시를 드립니다.
尊師出世兮 존사께서 세상에 태어나신
甲子復回今 갑자년이 다시 돌아온 오늘.
此地烟霞蒲 이곳 안개와 노을 낀 부들 숲은
諸天花雨深 천상계諸天에서 꽃비가 내려 우거졌노라.
四香定德性 네 가지 묘한 향기19)로 덕성德性을 다스리며
三界說明心 삼계의 묘명妙明한 마음을 설법 하시도다.
晬席崗陵祝 수연 자리에서 강릉岡陵20)처럼 장수하시길 축원 드리며
詩歌幷偈吟 시가와 게송으로 함께 읊습니다.
靑■ 仲夏日 俗生 李丙薰 謹稿 한여름 날에 속생 이병훈 삼가 씁니다.
-
0001_0027_a_01L12.
謹次 白龍城 禪師 壽宴 韻 삼가 백용성 선사의 수연시에 차운합니다.
髫齡剃染到于今 어린 시절 출가하여 오늘에 이르니
鏡裏霜侵兩鬢深 거울 속 귀밑머리 서리가 깊게 앉았구나.
法海神龍飜敎網 진리의 바다에서 신용神龍처럼 경론을 번역하시고
律門猛虎入禪林 율문律門의 맹호猛虎가 되시어 선림禪林에 드셨도다.
昏衢自闢人天眼 어두운 시대에 인천人天의 안목이 저절로 열려
覺苑重明佛祖心 묘각妙覺의 경지에서 선조佛祖의 마음을 거듭 밝히셨네.
非但耆英皆欲頌 뛰어난 노승老僧들이 다 칭송할 뿐만 아니라
鸎兒燕子亦叅吟 꾀꼬리와 제비도 참례하여 축하시를 읊고 있네.
全南 順天郡 曹溪山 仙巖寺 金擎雲21) 전남 순천군 조계산 선암사 김경운
-
0001_0028_a_01L13.
祝賀 白龍城 大禪師 晬宴 삼가 백용성 대선사의 수연을 축하드립니다.
人間六十至於今 인간세상 60년 오늘에 이르러
慶祝盛筵快樂深 회갑을 경축하는 성대한 수연회의 즐거움이 무르익어 가네.
珠賣街頭彌劣鋪 보배구슬을 파는 초라한 점포에는
貴收芳菓樗成林 귀하게 거둘 향기 나는 과일나무와 가죽나무로 숲을 이루었구나.
攪何製酪威神力 어지러이 섞이었으니 어찌 위신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요.
覺法契眞況蒼心 법을 깨달아 진리와 합했으니 더욱 중생을 제도하소서.
獻壽三山不老呪 삼신산22)에 늙지 않는 신주神呪로 장수하시길,
超關那畔更那吟 나반의 관문을 초출하시고 편안하시길 바라며 수연시를 읊습니다.
甲子 端陽23) 越三天 李晦光 갑자 단양 삼일이 지난 후 이회광24)
-
0001_0029_a_01L14.
敬賀 龍城法師 晬宴 용성법사의 수연을 공경하며 축하드립니다.
人言甲子復回今 사람들이 오늘 다시 갑자甲子가 돌아왔다고 하니
手植靑松歲月深 손수 심은 푸른 소나무엔 세월이 깊어가네.
恩報劬懇經作塔 불은에 보답코저 간절히 경을 번역하신 업적을 세워
緣深春懊錫歸林 인연이 깊어짐에 세월을 한탄하며 총림으로 돌아가 머물렀네.
十方偏照非後氣 시방에 두루 비친 광명은 후대까지 미치는 기운이 아니고
四大原空見佛心 사대四大가 원래 공적空寂하니 불심으로만 볼 수 있다네.
競渡戱過三晝永 분주히 노닐다가 사흘이 지났으니
賀詩聊代偈辭吟 축하시를 대신해 게송을 읊습니다.
甲子 五月 七日 呑應 李容求 謹稿 갑자년 5월 7일 탄응 이용구가 삼가 씁니다.
-
0001_0030_a_01L15.
祝 龍城大禪師 壽宴 용성대선사 수연을 축하드립니다.
多生修得現如今 여러 생을 수행하여 오늘의 모습을 나타내시니
濟世杞憂老益深 세상을 구제하려 노사老師의 기우가 더욱 깊어지셨네.
貝葉飜經開肉眼 경전을 번역하여 육안을 열어 주시고
雨花論法曙雲林 법을 강론함에 꽃비가 내려 구름숲[雲林]을 비추네.
霞觴細鑲丹砂氣 신선들이 마시는 술잔[霞觴]에는 세밀하게 단사의 기운이 어리고25)
槐日爭明白髮心 홰나무에 걸린 해가 밝기를 재촉하는 백발노장의 마음이시라네.
彩眼趨應由來得 재빨리 빛나는 안목을 가지고 와서 응당 얻어 갈지니
藝香壇萬壽詩吟 예향26)의 향기 나는 단 위에 만수무강 축수시祝壽詩를 읊습니다.
弟子 甲子五月八日 金鏡峰27) 焚香 제자 갑자 5월 8일 김경봉 향을 올립니다.
-
0001_0031_a_01L16.
謹賀 鳳翼洞 賢宗 壽筵 삼가 봉익동 현명하신 종장님의 수연을 축하드립니다.
靈誕重回上甲今 영명스러운 탄생일 다시 돌아와 회갑이 되었으니
榴花時節雨花深 석류꽃 피는 시절에 꽃비가 내려 깊어갑니다.
千春桃結原因果 오래전[千春]28)기약한 약속의 인연 결과로
萬丈松高手種林 만길 높이 우뚝 솟은 소나무 손수 심어 숲을 이루셨구나.
慧眼已空三界相 혜안으로 삼계의 모습이 공함을 꿰뚫고
慈航一繫六洲心 자비의 배[慈航]29)로 6대주 중생의 마음을 이끌어 주시네.
願將功德添沙算 원컨대 장차 미세한 모래알처럼 많은 공덕이 보태져서
永世衆生口口吟 영원토록 중생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수연시를 읊습니다.
宗人 冀洙 謹稿 종인 익수 삼가 씁니다.
-
0001_0032_a_01L17.
謹賀 鳳翼洞 賢宗大人 回甲 삼가 봉익동 현명하신 종장 대인의 회갑을 축하드립니다.
西天和尙復於今 인도의 화상이 여기 다시 오셨으니
况是一根其誼深 더욱 동일한 근원으로 그 도리가 깊어가네.
萬彙變遷祝塵芥 많은 무리들의 변절을 먼지처럼 끊어버리시고
六旬安靜托雲林 육순에 안정하시어 운림雲林에 의탁하셨네.
益金雖長遍全禮 더욱 빛나시고 비록 어른이시나 온갖 예에 두루하시니
流水太淸同本心 흘러가는 물처럼 하늘의 맑은 기운太淸30)은 본심과 같도다.
慧性若通上乘法 지혜로운 성품으로 상승법에 통달하시니
異時順勿負斯吟 후세 사람들은 이 뜻을 따라 저버리지 않기를 바라며 이 시를 읇습니다.
宗人 南容 拜稿 종인 남용 절하며 씁니다.
-
0001_0033_a_01L18.
謹賀 鳳翼洞 賢宗大人 華甲 삼가 봉익동 현명하신 종당 대인의 화갑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㽔賓今節甲筵今 시절은 5월 유빈蕤賓31) 화갑연이 열린 오늘
美溢霞觴祝意深 신선의 잔[霞觴]32)에 미주美酒가 넘쳐나니 축하의 뜻이 무르익어 갑니다.
不是萬蹤遊紫陌 도성33)에서 노닐며 벗을 사귐이 옳지는 않으나
元來養性學緇林 원래는 불문佛門에서 배워 자성自性을 기르셨네.
迷津普施傳經力 미혹한 중생에게 널리 경전을 전하고 베풀어
苦海恒存渡筏心 고통의 바다를 항상 건네주려는 마음이 있었어라.
曉契更敦花樹誼 깨달음으로 맺어진 화수花樹34)의 교분이 더욱 돈독하길
嘏辭盈案一長吟 축하의 글 여러 수로 기나긴 시를 읊습니다.
又 또
-
0001_0034_a_01L19.
覽揆重回甲筵今 헤아려보니 회갑의 수연이 오늘 다시 돌아오니
賓朋回座兕觥深 손님과 벗들이 모여 앉아 큰 잔35)을 깊이 비우고 있네.
超生莫若求禪道 생사를 초월하려 참선의 도를 구하지 말지어다.
眞理何曾比藝林 진리를 궁구함을 어찌 문인36)들에게 비교 하겠는가?
影逐慈雲飛法界 그림자를 뒤쫓은 자운慈雲이 법계로 날아가니
光留慧月照空心 혜월慧月은 신령한 빛에 머물러 텅 빈 마음을 비추는구나.
欣然此日爲君壽 오늘 흔연하게 스님의 수연을 위해
南極恒沙祝以吟 오래도록 장수37)하시길 축하시로 읊습니다.
宗人 樂韶 拜稿 종인 악소 절하며 씁니다.
-
0001_0035_a_01L20.
謹步 壽席 原韻 삼가 원래 시운詩韻으로 수연시를 짓습니다.
六一晬辰又到今 육십 하나의 회갑 생신이 오늘 다시 돌아오니
極星呈彩梵宮深 남극南極의 별자리 사찰[梵宮]38)을 깊숙이 비춰주시네.
甲花香伴榴花蘂 회갑의 향기가 석류 꽃술과 짝하니
鐵棟春盆法樹林 견고한 기둥주위 봄꽃 화분으로 법法의 숲을 이루었어라.
初來西域金精髮 처음 서역에서 오신 존자님의 정신과 자취는
生老東方太古心 동방에서 태고의 마음[太古心]39)으로 늙어가는 구나.
錦袈錫杖桑孤席 금란가사에 석장을 짚고 홀로 자리하신
白首上人風月吟 백발의 스님[上人]께 풍월로 읊습니다.
-
0001_0036_a_01L21.
幾生修鍊現身今 몇 생의 수련으로 오늘의 육신으로 나타나셨는가?
慧眼東回滄海深 지혜의 안목으로 동쪽을 돌아보니 푸른 바다가 깊구나.
五月花開三寶樹 5월은 삼보수에 꽃이 피고
南風日永衆香林 남풍南風은 날마다 불어 온갖 향기 산림에 가득하구나.
蚌胎出海千年彩 조개가 바다에서 나오니 천 년 만에 빛을 만나고
鳳翼冲霄萬古心 봉황의 날개가 하늘을 차고 오르니 만고의 마음이라.
無量閣前無量壽 무량각 앞에서 무량수 누리시길
一聲筵禮白雲吟 수연의 연회 석상에서 객손[白雲]40)이 한소리 읊습니다.
宗人 南老 拜稿 종인 남노 절하며 씁니다.
-
0001_0037_a_01L22.
重逢甲子古如今 갑자甲子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옛과 지금이 같으니
花雨諸天春色深 모든 하늘에서 꽃비 내려 봄기운이 깊어 가는구나.
壽祝龜籌添海屋 거북이와 같이 장수하시길 기원하여 장수하시길 기원하여41)
洞巢鳳翼顉雲林 봉익동 처소로 운수납자 모여들었네.
萬念都空淸淨界 온갖 번뇌 모두 텅 빈 청정한 세계
一業不染慈悲心 티끌하나 묻지 않은 자비심이로다.
獻賀紛紛詩滿軸 축하시를 올리는 시축詩軸이 잇따르고
老人星下老人吟 노인의 별자리[老人星]42) 아래에서 노인이 수연시를 읊습니다.
家人 南億 謹稿 가인 남억 삼가 씁니다.
-
0001_0038_a_01L23.
謹賀 三藏譯會 祝宴詩韻 삼가 삼장역회의 축연 시운詩韻을 써서 축하드립니다.
靜齋德蔭到于今 고요히 재계齋戒43)하여 수행한 음덕蔭德이 오늘에 이르니
飭慶孤筵感舊深 경계하는 마음이 더욱 옛날을 그립게 하는구나.
益壽延年隣海屋 온갖 길상이 함께 하여44) 해마다 더욱 장수하시기를
悟空說法坐叢林 공적空寂을 깨달아 총림에 앉아 설법 하시네.
一身修煉引仙術 일신一身을 수련하는 참선仙術으로 인도하고
三界慈悲養道心 삼계에서 자비로 도심을 기르도다.
紛紛賀軸沙門下 분분하게 축하하는 글들이 스님께 이르니
滿座佳賓朗好吟 자리 가득한 귀한 객손들이 낭랑하게 수연시를 읊습니다.
宗人 南杓 拜稿 종인 남표 절하며 씁니다.
-
24.
金粟前身復現今 오늘 다시 금속여래45)의 전신이
一塵不染上房深 한 티끌도 없는 청정한 사원[上房]46)에 나타나셨네.
五月祝宴開鳳洞 5월의 회갑 축연이 봉익동에서 열리니
三藏盛會動鷄林 삼장성회가 조선朝鮮47)을 울리네.
萬事俱空堪白首 모든 것이 온전히 진공眞空임을 아시고 백발도 즐기시니
六旬益壯尙丹心 육순六旬 노익장에도 정성스러운 마음[丹心]은 오히려 높으시네.
幸隣花樹菩提下 행복하게 꽃나무와 보리수 아래에서
春蝶曉鸎爲一吟 봄날의 나비와 새벽 꾀꼬리도 축하시를 읊는구나.
宗人 南正 拜稿 종인 남정 절하며 씁니다.
-
25.
西天活佛復來今 서천의 활불活佛께서 오늘 다시 돌아와서
悟得平生道味深 평생 도道의 맛을 깊이 깨달아 얻으시었도다.
片石孤峰開淨土 한 조각의 돌로 까마득한 봉우리의 정토를 여시고
閑雲流水坐空林 한가로운 구름에 흐르는 물처럼 공림空林에 앉으셨네.
壽加萬萬無疆祝 만수를 누리시어 더욱 장수하시길 축원 드리며
人又三三普濟心 인간과 구류중생九類衆生을 널리 제도해 주소서
最好良辰榴夏節 가장 좋은 시절과 절기인 5월48)에
更將賀語爲君吟 다시 스님의 수연을 축하하기 위해 시를 읊습니다.
宗人 麟基 拜稿 종인 인기 절하며 씁니다.
-
26.
甲子重回五月今 갑자甲子가 다시 돌아온 5월 오늘
坎中連裏道微深 감중련坎中連하는49) 가운데 도道는 더욱 쇠미해져 갔었네.
初疑名士臨驛壘 처음엔 유명인사[名士]가 경성에 온 것인가 의아해했지만
更覺上人降祗林 깨달으신 스님[上人]께서 기원정사에 강림하신 듯하구나.
藏跡遠離榮辱世 자취를 감추고 멀리 세속의 영욕을 벗어났으니
焚香黙坐惠慈心 향을 사르고 묵묵히 좌선하며 자비심을 베푸셨네.
余將何語爲公祝 제가 어떤 말로 귀공貴公께 축수祝壽 드리리오.
極樂蓮坮送一吟 극락의 연화대에 시 한수를 보내며 읊습니다.
宗人 昇基 拜稿 종인 승기 절하며 씁니다.
-
27.
謹賀 三藏譯會 壽宴詩韻 삼가 삼장역회 수연의 시운詩韻에 축하드립니다.
舊甲今辰又到今 예전의 갑자가 오늘 생신에 다시 이르니
邀明識喜話情深 밝은 식견을 가진 분을 초대하여 즐거이 대화하며 정이 깊어가네.
設席懸孤耀極彩 펼쳐진 연회 자리에 드높이 홀로 남극성의 광채 빛나시니
披雲飛錫住檀林 구름을 헤치고 석장을 떨치고 전단림에 주석하시구나.
六一遐齡幻道骨 육십 일세의 높은 연세에도 도인의 골격을 나타냄이로다.
三千大界養眞心 삼천대천세계에서 참다운 본심을 기르시는구나.
榴花月上菩提樹 5월의 달이 보리수 위에 높았으니
黃鳥聲中賀以吟 꾀꼬리 소리 가운데에서 축하시를 읊습니다.
宗人 性基 謹稿 종인 성기 삼가 씁니다.
-
28.
謹賀 三藏譯會 壽席韻 삼가 삼장역회 수연석에서 시운詩韻에 축하드립니다.
白蓮盛集古猶今 옛과 같이 백련白蓮이 성대하게 모인 오늘
現世如來功德深 세상에 나타나신 여래의 공덕은 깊어만 가는구나.
天風飛錫月明海 높이 부는 바람에 석장錫杖을 떨치고 행각하여 밝은 바다를 비추고
時雨撒花春滿林 때 마쳐 내리는 비는 꽃에 뿌려져 총림에 봄이 가득하네.
三生得鍊金成粟 삼생의 수련으로 금속여래金粟如來를 이루시어
萬㤼無塵鏡掛心 만겁에 마음은 티끌하나 걸림 없이 비추시네.
僞士安知眞㘦偈 위선의 인사가 어찌 진실된 게송을 알 수 있으리오?
鶴南權作祝辭吟 학남鶴南, 鄭羽良50)의 글을 모방하여 축사를 읊습니다.
宗人 樂正 謹稿 종인 낙정 삼가 씁니다.
-
29.
大道神通無古今 대도大道의 신통함은 고금이 달리 없으니
幾年入定閉門深 깊이 문을 닫고 선정에 든지 몇 해가 되었는가?
燭影花殘明靜境 촛불 그림자에 꽃은 지고 적정寂靜의 경지 밝아지니
磬聲月落散空林 경쇠소리에 달은 지고 공림空林에 흩어지네.
法雨慈雲能見性 법의 비와 자비로운 구름으로 능히 성품을 보시니[見性]
善男信女最關心 선남자 선여인의 가장 큰 관심사라네.
顧余猥添同宗誼 돌이켜보니 외람되이 우리 종도라는 친분으로
爲賀靈辰另一吟 신령한 생신을 축하드리기 위해 따로 한 수首 읊습니다.
宗人 樂庸 謹稿 종인 낙용 삼가 씁니다.
-
30.
甲子端陽重到今 갑자甲子의 단양端陽이 다시 돌아온 오늘
上人靈誕壽華深 스님上人의 신령한 탄생일에 축수연회가 깊어집니다.
仙花散落三淸界 삼청계51) 신선의 꽃은 흩어져 떨어지고
法雨頻飜七寶林 법의 비가 빈번하게 칠보七寶 총림에 내리는 구나.
杖前解虎龍能事 주장자 앞세워 호랑이와 용의 능사도 깨닫게 하시고
鉢裏生蓮玩本心 발우 속에서 연꽃을 피워 본성의 마음에서 유희[玩] 하시네.
塵臼都將兒戱付 번뇌와 허물은 모두 아이들 장난으로 여기고
空庭閑聽老松吟 공림空林의 뜰에서 한가로이 노송의 소리를 들으며 읊습니다.
宗人 樂寅 謹稿 종인 낙인 삼가 씁니다.
-
31.
三萬會客卽來今 많은 손님이 오늘 모여 와서
賀語紛紛誼更深 축하의 말이 이어져 친분[友誼]은 더욱 깊어지네.
琴邊閑鶴依松盖 거문고 주위의 한가로운 학은 일산처럼 소나무에 의지하고
棋上群仙坐橘林 장기판 위의 여러 신선들은 감귤 숲에 앉아있네.
紅塵不到袈裟影 세속의 번뇌는 가사袈裟 그림자에도 닿지 않고
晧月長明梵貝心 밝은 달은 오래도록 비춰서 마음[梵唄心]을 그윽이 읊조려 주소서.
况是吾宗遐祝日 더군다나 우리 문중 종장宗匠의 성대한 경축일에
何嫌露拙一聊吟 어찌 졸작이라 하여 한 수 읊기를 마다하오리까?
宗人 樂善 謹稿 종인 낙선 삼가 씁니다.
-
32.
舊甲子年又到今 예전 갑자년이 다시 오늘 돌아오니
菩提樹下古堂深 보리수 아래의 옛 법당[古堂]은 창연해져 가네.
門設蓬孤登壽域 문 앞에 봉래蓬萊52)를 진열하고 홀로 천수의 경계[壽域]53)에 올라
道傳衣鉢坐禪林 법[道]의 가사와 발우를 전하고자 선림에 앉으셨네.
五月喜聽黃鳥囀 5월에 꾀꼬리 지저귀는 소리 즐겁게 들려오고
百年久托白雲心 백년이 되도록 오랜 세월은 백운白雲에 의탁하셨도다.
君家餘慶無疆祝 스님의 문중에 경사가 넘치고 만수무강을 축원하면서
滿座高朋共一吟 자리에 가득하신 고명한 벗들과 함께 수연시를 읊습니다.
宗人 南福 謹稿 종인 남복 씁니다.
-
33.
鶴算龜齡又到今 학과 거북이처럼 장수 하시어 다시 오늘에 이르러
年來修鍊道微深 여러해 전부터 수련하여 도道를 깊이 숨기셨네.
花叢吉祥連鐵樹 온갖 꽃 길상하고 철수鐵樹54)는 잇따라 피고
人閑空寐愛雲林 도인道人은 한적한 공삼매에 들어 운림雲林을 사랑 하셨네.
身常康健引仙術 몸은 항상 건강하여 참선[神仙術]으로 인도하고
音抱慈悲濟世心 자비의 법음으로 포용하여 중생을 제도 하소서.
採採金光技以贈 금빛 찬란한 기량으로 가려내 주시니
爲君祝壽賀詩吟 스님을 위해서 수연의 축하시를 드리며 시를 읊습니다.
宗人 泳欽 謹稿 종인 영흠 삼가 씁니다.
계첩(1920년대 해인사, 망월사 등)
- 이지관, 『한국불교계율전통』(2005, 가산불교문화연구원), pp.179-185.
-
朝鮮京畿道楊州郡道峰山望月寺金剛戒壇護戒牒文
(번역문·활자영인본)55)
삼가 상고해 보건대 毘盧藏海의 노사나부처님께서 千花上의 부처님께 전하시고, 千花上의 부처님은 千百億釋迦佛께 전하였으며,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모든 大菩薩들에게 전수하였고, 모든 대보살은 각각 곳에 따라 傳戒함이 끝이 없어 온 천하에 모두 佛子가 되었던 것이다.
五戒를 받은 佛子를 청신사·청신녀라 하고, 十戒를 받으면 沙彌라 하며, 二百五十戒를 받으면 비구라 하고, 五百戒를 받은 이는 비구니라 하며, 四百戒를 받은 이를 菩薩56)이라 일컫는다. 이 곳 東土에서는 다만 『梵網經』의 心地品과 菩薩戒目인 上下兩卷57)만이 傳譯되었으니 이는 근본인 略本으로써 枝末인 廣本을 모두 攝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 佛敎가 傳來된 이후로 戒法이 있은 적도 있고 또한 없었던 적도 있었으므로 스님이 없었던 때도 있었으니 이는 當然한 이치인 것이다.
新羅의 제2대인 南解王元年(서기 4)에 純金으로 조성된 五十三尊 佛像이 船舶에 실려 天竺으로부터 와서 강원도 高城 앞바다58)에 漂着하였으므로 비로소 금강산에 楡岾寺를 창건하고 그곳〈p.179〉에 奉安하였다. 그 후 後漢의 光武帝 建武 18년(서기 42)에는 寶玉和尙이 月支國59)으로부터 入國하여 智異山 七佛寺60)를 창건하였고, 372년(咸安 2 : 고구려 小獸林王 2)에는 順刀和尙이 前秦으로부터 고구려에 들어와 처음으로 佛敎를 傳播함으로부터 寺刹이 마치 숲처럼 많아졌고, 따라서 禪과 律과 敎도 함께 크게 興盛하였다.
그로부터 시작하여 新羅의 慈裝律師가 638년(선덕여왕 7 : 정관 12)61) 求法次 唐나라에 갔는데 태종황제는 律師를 받들어 國師로 추대하고 융숭히 대접하였다. 스님은 五臺山 雲際寺62)로 찾아가 문수보살상 앞에서 大法을 구하기 위한 기도를 봉행하던 중, 어느날 밤 문수보살님께서 梵僧으로 化現하여 ‘一切法을 알고 나면, 自性이 본래 없는 법, 이와 같이 法性을 깨닫게 되면 곧바로 노사나부처님을 친견하게 된다’는 偈頌을 설하시고 아울러 비단 바탕에 金絲로 繡를 놓은 袈裟 一領과 부처님 眞身舍利百棵, 부처님 頂骨, 肢節, 貝葉經, 水晶念珠 一個 및 金剛戒壇圖 등을 전해 주시면서 ‘너는 五百生 동안 童眞으로 出家하여 성실히 修行하였으므로 내가 부처님의 遺囑을 받아 너를 기다린 지 매우 오래되었다’ 라고 말씀하였다. 이때 당 태종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歡喜心을 일으켜 律師를 宮中 式乾殿으로 초빙하여 親히 大戒(보살계)를 받았다.
善德女王으로부터 歸國要請을 받고 643년(정관 17 : 선덕여왕 1〈p.180〉2)에 귀국함으로써 왕은 스님을 기꺼이 맞이하여 王師로 추대하였다. 律師는 곧 영추산에 通度寺를 창건하고 金剛戒壇을 건립하되 一一이 문수보살로부터 전해 받은 금강계단의 圖式대로 施設하였다. 왕이 친히 授戒法會에 참여하여 千佛大戒(보살계)를 받는 한편, 모든 出家得度者는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受戒토록 하고 得度者에게는 국가에서 度牒을 주게 하는 制度를 마련케 하였으므로 절 이름을 通度寺라고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歷代 帝王이 得度하는 스님들에게 度牒을 주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후 眞表律師 때에 이르러서는 律宗이 크게 繁昌하였다. 진표율사의 행적을 상고해 보니 律師는 647년(진덕여왕 1) 全州 碧骨郡63) 都川山 大井忖64)에서 태어났다. 659년(무열왕 6) 12세 때 母岳山 金山寺로 찾아가 崇濟65)법사를 恩師로 하여 沙彌戒를 받고 스님이 되었다. 674년(문무왕 14) 27세 때 普安縣66)에 있는 邊山의 不思議房으로 찾아가 彌勒菩薩과 地藏菩薩님 像前에서 戒法을 받기 위해 3년간 고행 정근하였으나, 마침내 戒를 받지 못하자 信心不足을 自責하고 층암절벽으로 投身하였는데 忽然히 靑衣童子가 나타나 두 손으로 받아 無事히 石臺 위에 安置하였다.
이로 因하여 律師는 용기를 얻어 다시 大願을 發하여 三年死限을 세워 身命을 돌보지 아니하고 盤石 위에서 扣石懺悔를 하던〈p.181〉중, 3일 만에 손과 팔이 모두 傷하였으나, 7일이 되던 날 지장보살님께서 錫杖을 들고 律師의 앞에 나타나 이마를 만지면서 위로해주는 加被를 입고는 곧 손·팔이 完全히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袈裟와 바리때를 전해 받는 靈瑞를 감득하고는 倍加精進하여 天眼通을 얻어 十方世界를 마치 손바닥의 구슬을 보는 듯 통철하였다. 이때에 다시 지장 미륵 兩大聖人이 律師의 앞에 나타나 金色 팔을 펼쳐서 진표율사의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善哉라! 大丈夫여! 이와 같은 戒法을 求하기 위해 身命을 아끼지 아니하고 간절히 참회기도를 하였구나’라면서 칭찬하시고 ‘네가 금생의 이 몸을 버린 다음 生에는 大法王67)의 地位를 받아 도솔천 內院宮에 上生하리라’는 授記를 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졌으니 때는 676년(문무왕 16) 4월 24일68)이었다.
律師께서 이와 같이 灌頂을 받은 후 不思議房을 나와 금강산을 향해 가다가 大淵津69)에 이르니 홀연히 용왕이 해변에 나와 玉鉢과 가사를 헌납하였으니 이와 같은 기적이 하도 많아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다.
高麗朝에 접어들어서는 佛日이 거듭 비추고 法輪이 크게 굴러서 왕과 신하가 모두 불교를 敬重히 여겨 대대로 相傳하여 오다가 고려말 恭愍王(1351~1374 재위) 때 인도의 指空和尙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옴으로써 왕은 그를 맞이하여 國師로 추대하고〈p.182〉 융숭하게 대접했다. 이어 傳戒和尙으로 추대하여 1376년(홍무 9 : 우왕 2) 통도사 金剛戒壇에서 授戒法會를 가졌다.
朝鮮朝에 들어와서는 太祖 康獻大王70)이 無學自超를 王師로 모시고 佛敎를 闡揚한 후로부터 戒律도 함께 계속 이어져 喚惺志安(1664~1729)에 이르기까지에는 師師承承하여 傳戒度生을 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喚惺大師가 불교를 中興시키기 위해 百方으로 노력하다가 마침내 儒生들의 모략에 의해 殉敎한 이후부터는 律宗뿐만 아니라 佛敎全體가 滅亡狀態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靈岩 月出山 道岬寺의 大隱朗旿律師가 그의 스승인 金潭普明律師와 함께 律宗의 쇠퇴함을 염려하다가 1826년(순종 26) 7월 15일부터 智異山 東國第一禪院71)에서 戒法을 구하는 기도를 하던 중 7일 만에 一道祥光이 마치 무지개처럼 뻗어 大隱의 頂上에 灌注하는 瑞祥受戒를 감득하였다. 그의 스승인 金潭長老가 經에 의하면 오직 戒가 있는 곳에서 父子가 서로 바뀌어 스승이 될 수 있는 법이라 하여 上佐인 大隱으로부터 戒를 받고 戒脈을 이었던 것이다. 그러하여 大隱의 戒脈을 계승한 金潭律師는 草衣意恂律師에게 草衣는 梵海覺岸律師에게, 梵海는 禪谷律師에게, 禪谷은 龍城震鍾律師에게로 繼承되었다.
龍城震鍾律師(1864~1940)가 1934년72) 경기도 양주군 道峰山 望月寺에서 金剛戒壇을 설치하고 전수하니, 受戒弟子들은 받은〈p.183〉바 戒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굳게 지키고 慧命으로 하여금 斷絶함이 없도록 하라.
羯磨阿闍蔾
本壇傳戒大和尙
敎授阿闍蔾
尊證阿闍蔾
引禮
世尊應化二千九百六十七年 三月 日 受戒弟子 收執
본 계첩에 나타난 玉印
본 계첩에는 白玉材의 도장 2개를 사용했다. 하나는 法王之寶印으로 四方 五寸이고, 다른 하나는 千華正脉印으로 四方 二寸 五分의 크기이다.
만일참선결사회 방함록(1925~1927, 망월사·내원암)
- 소장 ; 보광스님
-
0001_0044_b_01L世尊應化貳九五二年乙丑十月十五日
丙寅
丁卯
萬日禪會
芳啣錄
世尊應化二九五二年乙丑冬安居
祖室 龍城大和尙 海印寺
首座 薛石友 長安寺
立繩 鄭雲峰 仙岩寺
維那 安月松 梵魚寺
秉法 全錦超 內院庵
李芝岩 釋王寺
持殿 金蓮湖 海印寺
柳定菴 仙岩寺
崔玄門 內院庵
柳靈照 梵魚寺
黃桂玉 松廣寺
獻食 趙性月 長安寺
時警 朴石頭 乾鳳寺
知賓 張雪峯 釋王
金東日 內院庵
記錄 李檀菴 內院庵
河東山 梵魚寺
金瓊林 京城
看病 朴昌洙 白羊寺
鄭承梵 內院庵
禹性天 梵魚寺
金壯潤 把溪寺
掃地 孫淨海 內院庵
朴普覺 內院庵
李海山 長安寺
魯弘濟 內院庵
曺東湖 仝
淨桶 張永峯 把溪寺
吳在燮 來蘇寺
姜泰秀 內院庵
淨頭 李在禧 白羊寺
金鍾協 把溪寺
磨糊 趙長信 內院庵
尹相彦 海印寺
奉茶 韓鍾秀 內院庵
鍾頭 朴可喜 長安寺
玄又玄 白潭寺
侍者 李性學 望月寺
表檜岩 興國寺
魯德眞 富平
李千奉 京城
比丘尼 李性慧 長安寺
淸信女 梁勤修華 羅州
金正妙心 唐珠洞
高菩薩 大明庵
別座 李月下 泰安寺
菜供 金奉三 海印寺
供司 全德成 興國寺
負木 朴士允
金德元
金化瑞
李成道
書記 河淨光 內院庵
院主 金警惺 海印寺
住持 鄭石菴 望月寺
世尊應化二九五三年丙寅三月 初十日에 京畿道 楊州 道峰山 望月寺에셔 萬日禪會를 慶尙南道梁山郡 千聖山內院庵으로 移來하다
丙寅年夏安居
祖室 龍城大和尙 海印寺
立繩 全錦超 內院庵
長老 金蓮峯 通度寺
孫石潭 仝
禪伯 張寶雲 表忠寺
金雪山 通度寺
禪德 朴致淳 仝
禪德 金舊翁 表忠寺
林龍雲 把溪寺
金寶虛 內院庵
李芝巖 釋王寺
秉法 安普光 望月寺
持殿 金蓮湖 海印寺
獻食 趙性月 長安寺
譯經 鄭時鏡 釋王寺
崔英虎 乾鳳寺
知賓 朴聖元 內院庵
金東日 仝
記錄 李檀庵 仝
河東山 梵魚寺
錢監 金警惺 海印寺
米監 河淨光 內院庵
李龍珠 通度寺
看病 崔玄門 內院庵
具萬化 仝
鄭承梵 仝
柳靈照 梵魚寺
掃地 朴德雲 內院庵
張永峯 把溪寺
曺東湖 內院庵
淨桶 孫淨海 仝
朴仁谷 白羊寺
韓鍾秀 內院庵
姜世融 仝
磨糊 趙長信 仝
朴石頭 乾鳳寺
奉茶 金壯潤 把溪寺
金學洙 通度寺
鍾頭 尹古庵 海印寺
侍者 魯德眞 富平
李千奉 京城
朴長律
淸信士 金香泉 京城
池影月 仁川
淸信女 梁勤修華 羅州
園頭 李月下 泰安寺
別座 李道允 內院庵
菜供 徐鳳衛 通度寺
供司 金祥福 內院庵
負木 崔敬德 中防里
山監 鄭台善 通度寺
事務 金慧光 仝
書記 柳正河 內院庵
姜泰秀 仝
院主 金聖鶴 仝
住持 文印坡 通度寺
世尊貳九五參年 丙寅冬安居
祖室 龍城大和尙 京城府鳳翼洞二
海印寺
立繩 全錦超 京畿道開城郡嶺北面雲興寺
本庵
禪伯 金雪山 密陽郡丹場面九川里
通度寺
禪德 金寶虛 水原郡安龍面松山里一六九
高夢惺 蔚山郡滝東面加垈里
通度寺
持殿 張白牛 尙州郡沙代面化達里
金龍寺
朴聖元 釜山府凣一町
本庵
獻(献)食 孫淨海 住實郡新德面照月里
本庵
知賓 李龍珠 盈德郡南亭面道川里
通度寺
看病 金光日 安州郡雲谷面盤龍里
普賢
掃地 趙長信 高源郡河德面水東里
本庵
淨桶 金明淳 金龍寺
磨糊 韓鍾秀 鎭安郡聖壽面新基里
本庵
奉茶 鄭承梵 鉄山郡雲山面銀川里
本庵
鍾頭 金鶴洙 通度寺
侍者 姜世融 安東郡直面九川里三三
本庵
別座 曺東湖 統營郡山陽面■■里
本庵
李道允 高興郡浦頭面南村里
本庵
菜供 金性柱 仙岩寺
供司 金祥福 淸道郡錦川面芳旨里一四三
負木 崔敬德 中防里
山監 鄭台善 梁山郡下北面龍淵里
通度寺
事務 朴德雲 京城府鍾路六丁目二ㅎ一
本庵
書記 姜泰秀 長淵郡樂道面松竹里七六三
本庵
院主 朴致淳 梁山郡下北面芝山里
通度寺
住持 金警惺 星州郡伽泉面法田里
海印寺
丁卯年夏安居
祖室 龍城大和尙 京城府鳳翼洞二
海印寺
立繩 孫淨海 任實郡新德面照月里
本庵
禪德 金普虛 水原郡安龍面松山里
金雪山 密陽郡丹場面九川里
通度寺
全錦超 開城郡嶺北面雲興寺
本庵
朴枕空 梁山郡下北面芝山里
通度寺
朴月印 上仝
秉法 崔智月 梁山郡下北面草山里
通度寺
持殿 朴聖元 釜山府凡一町
本庵
金明淳 金龍寺
姜龍得 晋州郡
■■寺
獻食 李秋庵 高敞郡星內面新星里
定慧寺
知賓 權尙一 仙岩寺
鍾頭 姜龍得
淨桶 金明淳
茶角 金德壽 星州郡伽泉面法田里
海印寺
看病 李牧庵 宜寧郡大義面
本庵
磨糊 ■聖湖 安東郡下北面下爲里
■■寺
菜供 金性柱 仙岩寺
供司 金潛迷 淸道郡錦川面芳旨里
本庵
負木 李尙昊 龍淵里
相浩
山監 李貞宰 盈德郡南亭面道川里
通度寺
院主 張象林 桐華寺
書記 姜旭在 長淵郡長淵面仙亭里
本庵
法務 河淨光 ■■郡■■面■■里
本庵
事務 朴德雲 京城府鍾路六丁目二■一
本庵
住持 金警惺 星州郡伽泉面法田里
海印寺
(뒷 표지)
백양사 금강계단 호계첩(1929.4.8)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호계첩護戒牒(조선朝鮮 전라남도全羅南道 장성군長城郡 백양사白羊寺 금강계단金剛戒壇)
- 盖戒律之傳於東土也、皆佛親授、非轉輾受。唐貞觀十七年、新羅善德王、師慈藏律師求法入唐、太宗皇帝奉師爲國師。師往五臺山雲際寺、文殊像前勤求大法。兼受戒壇圖、受戒法。本年師還到本國、創通度寺、設金剛戒壇、大昌戒律。
- 무릇 우리나라에 전해진 계율은 모두 부처님께서 직접 전해 준 것이지, 다른 이를 통해서 전해 받은 것이 아니다. 당唐 정관貞觀73) 17년(643), 신라 선덕왕善德王74) 때에 자장慈藏 율사律師가 불법을 구하기 위해 당나라로 들어가자, 당의 태종太宗 황제는 자장 율사를 받들어 국사國師로 삼았다. 율사는 오대산五臺山 운제사雲際寺75)로 가서 문수보살상(文殊像) 앞에서 대법大法을 부지런히 구하였다. 그리고 문수보살로부터 계단戒壇76)의 도상과 계법戒法77)을 받았다. 같은 해에 율사는 신라로 돌아와 통도사通度寺를 창건하고,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계율을 크게 번성시켰다.
- 上元三年、母岳山眞表律師、親覲彌勒像、於普安縣不思議坊、受戒律而來、廣度乘車止魚鱉鱗甲。
- 상원上元78) 3년(676)에는 모악산母岳山79)의 진표眞表 율사가 보안현普安縣 부사의방不思議坊80)에서 미륵상彌勒像을 친견하고, 계율을 받고 와서, 수레를 탄 귀인들부터 물고기·자라·조개 등과 같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널리 구제하였다.
- 明洪武九年、中印度指空律師隨緣、而來高麗、恭愍王以禮遇之。就通度戒壇、大興戒律。
- 명나라 홍무洪武81) 9년(1376)에는 중인도中印度의 지공指空 율사가 인연에 따라 고려로 왔는데, 공민왕恭愍王82)이 예를 다하여 대우하였다. 이에 율사는 통도사의 계단戒壇으로 가서, 계율을 크게 부흥시켰다.
- 純祖肅皇帝、二十六年、丙戌、七月七日、七佛禪院大隱律師深歎東國戒脈之幾絶、與其師金潭長老、七日七夜於佛像前、同爲乞戒矣。忽然一道祥光、注於律師頂上、長老深服佛靈。仍受大戒及具足戒於律師。傳之於草衣律師、師傳之梵海律師、師傳之霽山律師。自此戒律傳布于世、海東戒脈卽佛親授歟。
- 순조純祖 숙황제肅皇帝83) 26년 병술丙戌(1826)년 7월 7일에 칠불선원七佛禪院84)의 대은大隱85) 율사가 우리나라 계율의 법맥이 거의 끊긴 것을 아쉬워하여, 그의 스승인 금담金潭 장로長老와 함께 7일 밤낮을 불상 앞에서 함께 계戒를 구하였다. 그러던 중 홀연히 한 줄기 상서로운 빛(祥光)이 대은 율사의 정수리 위에 쏟아지자, 금담 장로가 부처님의 영험함에 깊이 감복하였다. 이에 금담 장로는 대은 율사로부터 대계大戒와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초의草衣86) 율사에게 전하였고, 초의 율사는 그것을 범해梵海87) 율사에게 전하였으며, 범해 율사는 그것을 제산霽山88) 율사에게 전하였다. 이로부터 계율이 세상에 널리 전하게 되었으니, 우리나라 계율의 법맥은 바로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전수받은 것이로다.
- 是以受戒弟子、凡傳持戒律。原期廣布佛法、佐助太平、聽敎參禪。或在寺院、或在山林、須講明經義、精嚴戒律。倂釋敎修明、僧規整飭。廣布戒律、上報四恩、下濟三途、俱成正覺焉。
- 이 때문에 계戒를 받은 제자는 무릇 계율을 전수받고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불법佛法을 널리 전하고, 태평시대에 일조하며,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참선하기를 기약해야 한다. 혹 사찰에 있거나 혹은 산속에 있더라도 반드시 경전의 뜻을 연구하고 밝히며, 계율을 정밀하고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아울러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고 밝히며, 승려들의 법규를 온전하고 바르게 지켜야 한다. 그리고 계율을 널리 퍼트려, 위로는 사은四恩89)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삼도三途90)의 중생들을 구제하여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正覺)을 함께 이루어야 한다.
- 由是今於本壇、依律開演戒法。內有受戒弟子、淸信士己酉生邊鎭偰、本居海東朝鮮全羅南道長城郡長城面長安里。參於本壇、受菩薩大戒、永傳戒法。特爲此具牒、各給一道、隨身執收。遊方參學、凡遇關津把隘處、執此實驗。
- 이로 말미암아 이곳 계단에서 계율에 의거하여 계법戒法 의식을 거행하려고 한다. 안에 있는 수계제자受戒弟子는 청신사淸信士91) 기유己酉(1909)년 생 변진설邊鎭偰로, 본적은 해동海東 조선朝鮮 전라남도全羅南道 장성군長城郡 장성면長城面 장안리長安里이다. 본 계단에 참여하고 보살대계菩薩大戒를 받았으니, 계법을 길이 전하라. 이를 위해 특별히 계첩92)을 각각 하나씩 지급하니, 이것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도록 하라.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가르침을 받고 수행을 할 때 관문이나 나루 혹은 파수하는 길목 등에 이르게 되면, 이것으로 내용을 증명하도록 하라.
- 須至戒牒者。
-
수지須至93) 계첩자戒牒者.
갈마아사리羯魔阿闍梨94) : 만암 종헌曼庵宗憲95) 율사律師
전계화상아사리傳戒和尙阿闍梨96) : 금해 관영錦海瓘英97) 율사
교수아사리敎授阿闍梨98) : 청하 경헌淸河敬憲 율사
존증아사리尊證阿闍梨99) : 인담 경수仁潭敬守 율사, 성담 경일性潭敬日 율사, 환옹 도희幻翁道喜 율사, 춘강 보화春岡普化 율사, 봉하 장조峯霞長照 율사, 용봉 재희龍峯載禧 율사, 묵담 성우默潭聲佑 율사
인례사引禮師100) : 병식秉植 율사
- 世尊降生 二千九百五十六年 四月 八日 右牒給付 戒弟子 收執。
- 세존강생世尊降生 : 佛紀 2956년(1929) 4월 8일 위 계첩을 발부함. 계제자戒弟子 수집收執.
-
0001_0052_b_01L〈피봉〉
(앞)
(뒤) 운문암雲門菴 변진설邊鎭偰
백양사 안거증(1929.7.15)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安居證書
全羅南道 長城郡 長城面 長安里
邊月舟
己酉年 十月 一日 生
右者 今夏九旬安居를 本寺 雲門禪院에서 圓滿成就하얏슴 仍하야 玆에 證홈
世尊應化 二千九百五十六年 己巳 七月 十五日
全羅南道 長城郡 北下面
禪敎兩宗大本山白巖山
白羊寺 住持 柳錦海
大覺敎 中央本部 現存 物目錄(1931)
- 소장 ; 보광스님
-
0001_0054_b_01L大覺應世二千九百五十八年辛未四月
大覺敎中央本部
京城府鳳翼町貳番地
朝鮮佛敎禪宗叢林
一、所屬宗派 韓國佛敎曹溪宗
一、職員 住持 表壽福 本籍 楊州郡別內面德松里四二二七年九月五日生
一、信徒扱 五十名程度
一、布敎方法 每日曜日及國慶日四大紀念日에 敎徒를 集合하야 說敎會를 開催하고 法要式이 있음. 追悼會等不定期特別法要式도 있음. 四大紀念日 四月八日 釋尊誕降日 七月十五日 盂蘭盆齋日 十二月八日 釋尊成道日 二月十五日 釋尊涅槃日
一、維持方法 敎徒의 喜捨淨財로써 維持
一、建物의 表示
一、서울特別市鍾路區鳳翼町貳番地
1. 垈 壹百八坪
右地上
2. 木造瓦葺平家建本家壹棟
建坪貳拾四坪貳合
3. 附屬木造瓦葺平家建倉庫壹棟
建坪五坪七合六勺
4. 附屬木造瓦葺平家建住宅 壹棟
建坪七坪五合六勺
二、서울特別市鍾路區鳳翼町貳番地의 壹號
1. 垈 四坪七合
三、서울特別市鍾路區鳳翼町四番地
1. 垈 七拾四坪
右地上
2. 木造瓦葺平家建本家壹棟
建坪參拾坪四合六勺七寸
■■
一、本尊 本尊은 釋迦牟尼佛、觀世音菩薩、 地藏菩薩
一、其他 其他動、不動産及貴重品은 共히 없음
大覺寺現況
- 一、沿革 檀紀四二四四年(辛亥年)四月八日에 己未獨立宣言民族代表三十三人의 一人이였던 故白龍城先生이 佛敎布敎를 目的으로 創設하야 再來四十餘年間佛敎의 大衆化、民族精神의 涵養、著述譯經等事業으로 不斷의 努力으로 貢獻하시다가 檀紀四二七三年(庚辰年)二月二十四日에 先生이 七十七歲의 高齡으로 入寂(別世와 같음)하섰음으로 高足弟子表壽福氏가 先生의 遺業을 繼承하야 大覺寺住持로 就任. 現在에 至하다
-
貴重品之部
釋迦如來尊像 一位 木質塗金
觀音菩薩尊像 一位 玉質
地藏菩薩尊像 一位 玉質
釋迦如來尊像 一位 刺■ 後佛幀
金剛寶塔 一座 木質八角形
金襴袈裟 三件 大韓織組式
高宗皇帝御下賜物
道服 一件 槿花紋錦質
-
0001_0056_b_01L建物部
大覺聖殿
灌頂師室
寮舍 事務室
地下室
門間室
法杖 一箇 無灰木
香爐 一座 銀質圓形 大本
茶器 一座 銀質 中本
香盒 一座 銀質 中本
鍾 一座 鍮鐵質 中本
風琴 一座 中本
燭臺 一雙 鍮質 大本
燭臺 三雙 鍮質 中小本 中本一 小本二
時計 二座 大中本
香爐 一座 鍮質八角形 大本
灌頂師眞影 大本
佛盤 三箇 鍮質圓形 大本
洋盆 三箇 鍮質圓形 中本
大洋盆 三箇 銅質 大本
鍮接匙 十四箇 鍮質 小本
錚盤 三箇 鍮質 小本
茶器 三座 盖合幷 小本
香盒 一箇 鍮質 小本
鍮鼎 一箇 盖合幷 小本
佛器 四箇
鍮盒 四箇 盖合幷
食鼎 五箇 中小幷 鐵質
鉢盂 一座 五合式
木食器大接 一件 木質
饌合 四箇盒 一具
搖鈴 一箇 鍮質
木咸池 一箇 木質圓形 大木
匙子 七十箇 鍮質
草席 七箇 莞草
四十九燈 紗質
遮日 二件 廣木綿質
五方幡 五箇 錦紗質
引路王幡 一箇 金薄錦質
茶梡 二箇 沙鐵質
국자 二箇 鍮質
負擔乼101) 一箇 縄質
木樻 二箇
洋食器 八箇
洋發器
沙發器 五箇 沙質
沙發器 七箇 古物
沙錚盤 一箇 古物
洋接匙 二箇 新
木合子 六箇
沙匙 八箇
小刀子 一箇
茶盤 一箇 大本
茶宗子 二十箇
沙甁 一箇 古物
布帳 二箇 一灰色 一藍色
燈籠 二箇
法床 一箇
經床 一箇
卓床 一箇
倚子 二箇
主102)杖子 一箇
濱床 一箇
燈籠 十箇 大本紗質
燈籠 二十七箇小本紗質
黑板 一箇
木鐸 二箇 大小本
磬金 一箇
座敷 三十一箇四角形綿質
座敷 六箇 長角形
華嚴經 一部
法床褓 一箇
經褓 一箇
千念珠 一件 菩提子
食器 一箇 鍮質
小盤 四箇 木質
匙子 十九箇 鍮質
洋食床 五箇 木質
食床 一箇 木質 大本
木咸池 二箇 大本
洋錚盤 三十箇 小本
洋空器 二十箇
沙鉢 十箇
甑 二十箇
濱床 一箇
舂臼 一箇
鎭羞器 六箇
火爐 一箇 鍮質
木錚盤 一箇
食磬 一箇 小本
茶梡 三箇 大小幷
屛風 三箇 大中小幷
衿子 三件 綿質
小角더무 一箇 銅質 將去於果樹園
茶보 一箇 銀質洋式
飯桶 一箇 柒器式
禮服 灌頂師 一件 錦■文黑色
禮服 正敎師 一件 錦■文黑色
禮服 掌禮師 一件 錦■文黑色
禮服 管衆 一件 錦■文黑色
禮服 藍院 一件 錦■文黑色
禮服 大衆 二件 錦■文黑色
大覺禪院 財産目錄(1944)
-
京城府鳳翼町貳番地
大本山梵魚寺 京城布敎堂
大覺禪院
-
0001_0063_a_01L昭和十九年三月十一日 調査
財産目錄
財産目錄 鈔 昭和十九年三月十一日現在
一、聖殿部
一、佛像 本尊釋迦牟尼佛 (木造箔塗)
觀世音菩薩 玉造
地藏菩薩 玉造 各一基
■楨畫 一幅 (上■佛畫) 觀音幀畫一幅
二、神衆幀畫 一幅
三、現王幀畫 一幅
四、觀音寫眞額板 參位 昭和十九年四月二十五日 一位道庵師侍去
同七月十八日 林太虛 金海翁 一位式 各侍去
五、五如來幡 五幅
六、五方如來幡 五幅
七、引路王幡 一幅
八、釋迦如來足跡圖額板 一枚
九、銀製香爐、茶器、香盒 各一個
十、大型燭臺 一雙
十一、鍮鐵燭臺 四雙
十二、鍮製香爐 四個 (■大型一個)
十三、茶器(鍮製) 三個(具盖)
十四、中鐘 一個
十五、法床 一介
十六、風琴 一基
十七、四角型體鏡 一個
十八、讀經床 大小 各 一個
十九、大型時計 一個
二十、經藏櫃 三基
二十一、寶傘蓋 二雙
二十二、煖爐 一基
二十三、搖鈴 一個
二十四、木鐸 四個 (大一、中一、小二)
二十五、靈壇位牌
二十六、位牌床 六基
二十七、雜用木櫃 四基
二十八、電燈 五十一介
二十九、鍮器接匙 十七介
三〇、燈包衣 四十九枚
三十一、拜席 十枚
三二、坐蒲團 (一、莞草製十四枚 二、褥六枚 三、布製小型四十五枚)
三三、陶器皿一 (大[靑十、白十六、] 中[二十六介] 小[十五介])
三四、錻力水臺 一介
三五、洋磁器 新品壹百三十四介 (食器)
三六、鍮製匙子 五十介
三七、洋磁器쟁반 大四中一介
三八、103)
三八、椅子 一個
三九、足梯板 (발판) 二介
四〇、寫眞額 四個
四一、屛風 二基
四二、松板 二枚
四三、大覺聖殿額書 一介
四四、花甁靑色 三介 內錫 一介 內一介破損 昭和十九年七月十日
四五、柱型坐時計 一基
-
0001_0067_a_01L寮舍部
一、木鉢盂 五座
二、圓型柱時計 一介
三、綿製衾 十二枚 褥 三枚
四、房帳
五、丹床 三個
六、法床 一個
七、鏡臺 一介
八、卅三祖師 簇子 一幅
九、金櫃 一基
一〇、謄寫版 二個
一一、文書櫃 一基
一二、珠盤 一介
一三、硯石 二介
-
0001_0068_a_01L供需所 (地下室)
一、銅製洋銅盂 一介
二、鍮洋銅盂 一個
三、鍮製匙子 三十二介
四、米斗池 二基
五、饌藏 一基
六、木製함지 (大、三介 中、三介 小、二介)
七、洋磁器 百介(食器)
八、椅子 二介
九、蚊帳 三枚
十、木板 九個 小二介
一一、矯子床 十二個
一二、小盤 大一介 中小八個
一三、洋磁器爭盤 大中二十二介 小二個
一四、茶盤 七介 高型二介
一五、鍮器爭盤 一介
一六、洋磁器대황 大一 中十 小七介
一七、錻力製桶 大一 中三 小一介 長桶一個
一八、砂器皿 壹四四介
一九、鉄舂 一基 (杵具)
二〇、案盤 一基 餠槌 二個
二一、木製절구 一個 절구대 三個
二二、竹籠 四個
二三、飯空器 四十個
二四、砂器飯器 二基 (蓋具)
二五、花紋接匙 砂器 中七 小二十五介
二六、깍쟁이 四十四介
二七、茶罐 大一 小四個 (錫製 二介)
二八、中鉢磁器 三十四個
二九、靑色中鉢 四介
三〇、鍮器食器 一벌
三一、砂器사시 十九介
三二、닛루製杓子 三介
三三、餠手 一介
三四、茶空器 六十五個
三五、飯桶 一介
三六、箕 一介
三七、篩 二介
三八、石旋臼 一雙
三九、餠甑 五介
四〇、蒸巾 二枚
四一、자루
四二、甕 醬甕大四介 渍甕八介 小甕十九介
四三、黑板 小型 一介
四四、木製牀 一介
四五、足梯 (발판) 一介
四六、餠卓子 二基
四七、隨求沱羅尼板 一介
四八、채광주리 大四介
四九、채롱 二介
五〇、鉄鼎 五座 (鉄蓋具)
五一、煑鍋 (鉄製) 二介
五二、琺瑯丸鍋 大一介 小一介
五三、바쓰 大壹介 中二介
五四、煎鉄 二介
五五、斧 一介
五六、鍬 一介
五七、삽 五介
-
0001_0072_b_01L壬寅年 八月十五日 記
目錄
一、大茶器 鍮器 三座 高七寸 廣六寸
一、小茶器 鍮器 三座 高三寸 廣五寸
一、大燭台 鍮器 一雙 高二尺二寸 廣六寸
一、中燭台 鍮器 二雙 1. 高一尺五 廣五寸 1. 高一尺 廣四寸
一、小燭台 鍮器 四雙半 高一尺 廣三寸
一、大香爐 鍮器製 一器 高八寸 廣一尺
一、中香爐 鍮器製 二器 1. 高六寸 廣九寸 2. 高四寸 廣七寸
一、小香爐 鍮器製 六104)器 高八寸 廣一尺
一、火爐 鍮器製 一器
一、佛器 鍮器製 十105)器
一、盃台 鍮器製 二雙
一、水桶 銅製 一器
一、菓血 鍮製 貳拾血
一、食桶 大中小 鍮 參坐
一、大졉 鍮製 貳拾器
一、食器 鍮製 拾器
一、食器蓋 鍮製 拾器
一、手著 鍮製 百個
一、中양동우 鍮製 六個
一、大놎장반 (불판) 鍮製 一個
一、양동우 蓋 鍮 四個
一、놎새웅 鍮 一座
一、風琴 新起 一台
一、裁斷針 新起 一台
一、搖鈴 鍮 三秉
一、電話機 新起 一台
수업증서(화엄사 사교과 금강경 수료증)(1932.8.20)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修業證書
白巖山 白羊寺
氏名 邊月舟
明治 四二年十月一日生
右者 本 學林에셔 四敎科中 金剛經를 修了하얏기 此 證書 授與홈
世尊 紀元 二千九白五十九年 八月 二十日
全南 求禮郡 智異山 大華嚴寺
華山學林 講師 陳震應
大華嚴寺 住持 鄭秉憲
修業證書(화엄사 사교과 기신론 수료증)(1933.2.5)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修業證書
白岩山 白羊寺
氏名 邊月舟
明治 四二年十月一日生
右者 本 學林에셔 四敎科 起信論를 修了하얏기 此 證書 授與홈
世尊 紀元 二千九白六十年 二月 五日
全南 求禮郡 智異山 大華嚴寺
華山學林 講師 陳震應
大華嚴寺 住持 鄭秉憲
修業證書(화엄사 사교과 능엄경 수료증)(1933.7.15.)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修業證書
白羊寺
邊月舟
明治 四十二年 十月 一日 生
右者 本學林에셔 四敎科 楞嚴經을 修了하얏기 此 證書를 授與함
世尊紀元 二千九百六十年 七月 十五日
華山學林 講師 陳震應
大華嚴寺 住持 鄭秉憲
修業證書(화엄사 대교과 현담 수료증)(1934.8.15)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修業證書
山 白羊寺
氏名 邊月舟
明治 四二年十月一日生
右者 本 學林에셔 四敎科 玄談를 修了하얏기 此 證書 授與홈
世尊 紀元 二千九白六十一年 八月 十五日
全南 求禮郡 智異山 大華嚴寺
華山學林 講師 陳震應
大華嚴寺 住持 鄭秉憲
대각교본부 부인선원 방명부(1934)
- 제공 ; 죽림정사(장수)
-
芳名簿
覺紀二九六二年 癸酉 冬安居 始
大覺敎本部 婦人 修道院
-
0001_0077_a_01L방함녹
각긔 이쳔구백육십일연 갑술
대각교중앙본부부인수도원
-
0001_0077_b_01L갑술년 하안거
관즁 신영우 충남 례산 보덕사
박요연 양쥬군 원통사
오대보화 안국동 별궁
리지혜월 경성 종노 오졍목
윤광명월 황금졍
최무셩화 성북동
빅백연화 쳥진동
김션심행 사동
김광명화 운이동
공사 리상운 강화군 백년사
화주 최션광명 안국동 별궁 -
0001_0078_a_01L갑술연 동안거
관즁 오보화 안국동 별궁
리무열광명 장사동
리보월화 안국동 별궁
백백연화 청진동
한법성월 경성부 낙산
윤광명월 황금졍
리지혜월 종노 오정목
박심우바 관동
최무셩화 성북동
공사 리상운 강화군 백년사
화쥬 최션광명 안국동 별궁 -
0001_0078_b_01L을년 하안거
관즁 홍득 충남도 공주군 마곡사
오보화 안국동 별궁
리무열광명 장사동
박심우바 관동
한법성월 낙산
최무셩화 성북동
하무궁화 경성부 녹쳔동
한덕성화 인사동
공사 박승삼 경남 울산군 석남사
화주 최션광명 안국 별궁 -
0001_0079_a_01L을해년 동안거
관즁 도덕 례산군 졍혜사
선덕 리무열광명 장사동
오대보화 안국동 별궁
한법성월 낙산
박심우바 관동
서원명화 안국동 별궁
공사 민기현 한남동
화주 최션광명 안국동 별궁 -
졍츅년 하안거
입승 오대보화 봉익졍 사번지
리무열광명
최무성화
박심우바
박우향화
화쥬 최션광명 -
0001_0079_b_01L졍츅년 동안거
입승 비구니 명셩
선원
재민
청신녀 지극낙행
오대보화
염복덕화
리묘련화
한법성월
고극낙심
리무열광명
강쳥졍심
리진실상
박심우바
김자비월
화쥬 최선광명 -
무인년 하안거
입승 심셩길 경북 문경군 대승사
오보화 봉익졍
한법셩월 낙산
리무열광명 가회졍
윤광명월 현져졍
고극낙심 락원졍
박심우바 관동
화쥬 최션광명 안국졍 -
0001_0080_b_01L무인년 동안거
종주 룡성대화상
입승 홍민수좌 해인사
선덕 리씨무열광명 가회졍
오씨대보화 봉익졍
한씨법성월 동순졍
서씨원명화 별궁
고씨극락심 락원졍
리씨공월심 권농졍
부전 재민수좌 심원사
간병 리씨동진화 별궁
지객 마씨청졍월 당주졍
만졍수좌 졍혜사
공사 두성대사 쌍게사
원감 회암화상 본원
화쥬 최씨선광명 별궁
용성스님에게 받은 변봉암 전법게 1(1936.1)
- 제공 ; 대광사(진해)
[원문]
-
示邊月舟峰庵丈室
山頭石疊疊
巖下水澄澄
讀書又睡眠
花枝鳥聲亂
佛紀二千九百六十三年 丙子正月二十四日 大覺敎灌頂師 白龍城稿
피봉 ; 偈文
[번역]
-
봉암에게
산마루에 돌은 우뚝 솟구쳤고
바위 밑에 물은 맑고 맑도다.
책 읽다가 또 잠을 자니
꽃가지에 새소리 어지럽네.
불기 2963년(1936) 병자 정월 24일 대각교 관정사 백용성 고(稿)
용성스님에게 받은 변봉암 전법게 2(1936.1)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示峰庵月舟丈室
山頭石疊疊
巖下水澄澄
讀書又睡眠
花枝鳥聲亂
佛紀二九六三年 丙子正月 觀音齋日 白龍城
피봉 ; 峰庵丈室淸執
용성스님에게 받은 변봉암 전법게 3(1936.1)
- 제공 ; 대광사(진해)
-
傳法偈
白龍城
峰庵丈室淸執
山頭石疊疊
巖下水澄澄
讀書又睡眠
花枝鳥聲亂
佛紀二九六三年 丙子正月 觀音齋日 白雲山人 白龍城
송광사 안거증(1937.7.15)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安居證書
慶尙南道 東萊郡 北面 梵魚寺 止住
邊 月 舟
明治 四二年十一月十三日生
右者 當寺 三日禪院에서 夏安居를 成就하엿기 玆에 此를 證함
昭和 十二年 七月 十五日
全羅南道 順天君 松廣面
禪敎兩宗 大本山 松廣寺
住持 林錫珍
安居證 第 號
朝鮮佛敎禪宗 叢林(華果院) 安居證(1938.1.15)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安 居 證 書
慶南 東來郡 梵魚寺 止住
邊 鳳 巖
明治 四十二年 十月 初 一日 生
右者 本 叢林에서 冬安居를 成就하엿기 玆에 證書를 授與함
佛紀二九六五年 陰 正月 十五日
慶南 咸陽郡 白雲山 華果院
朝鮮佛敎禪宗 叢林
宗主 白龍城 인
第 號
불계율연원(해인사 금강계단)(1938.4.8)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불계율연원佛戒律淵源(조선朝鮮 경상남도慶尙南道 합천군陜川郡 해인사海印寺 금강계단金剛戒壇)
- 敬夫經律論三藏者、諸佛降靈之本致也。蘊結天竺、出彼千齡、自東傳震旦。復經三百有五載、卽東晋簡文帝、咸安、二年、順道和尙、來自前秦化度高句麗、受律習經坐禪、自此始矣。
- 삼가 살피니, 경經·율律·논論 삼장三藏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부처님(諸佛)의 신령한 기운이 내려와 그대로 담긴 것이다. 그러한 삼장이 천축天竺(인도)에서 오래도록 머물러 있다가 천년이 흐른 뒤에 동쪽으로 전해져서 중국(震旦)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시 305년이 흐른 뒤에 동진東晋 간문제簡文帝106) 함안咸安 2년(372) 때 순도順道107) 화상이 전진前秦으로부터 와서 고구려高句麗를 교화하였으니, 계율을 받고 불경을 익히며 좌선을 행하는 것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 如是而禪律倂運、師師相授、而下及至慈藏律師。師往入中原、求法時、卽唐太宗皇帝、貞觀、十二年也。皇帝奉師爲國師。師往五臺山雲際寺、於文殊像前、勤求大法。一夜、文殊化作梵僧、說偈曰。
-
이와 같이 선禪과 율律이 함께 운용되어서, 스승으로부터 스승에게 서로 전수되고, 아래로 전해져서 자장慈藏 율사律師에게 이어졌다. 자장 율사가 중원中原으로 가서 불법을 구하러 갔을 때는 바로 당唐나라 태종황제太宗皇帝 정관貞觀108) 12년(638)이다. 황제가 율사를 받들어 국사國師로 모셨다. 율사는 오대산五臺山 운제사雲際寺109)로 가서 문수보살상(文殊像) 앞에서 대법大法을 부지런히 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문수보살이 범승梵僧으로 변하여 나타나서 게송을 읊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체법을 깨달아 알면 了知一切法
자성이라 할 것이 없네 自性無所有
이와 같이 법성을 알면 如是解法性
노사나불110)을 곧 볼 것이네 卽見盧舍那
- 卽以緋羅金點、袈裟一領、舍利百枚、佛頂骨指節、貝葉經、與水晶念珠一件、傳授于師云、汝是五百生來童眞身也、吾受佛囑待汝至今也。兼付金剛戒壇圖。於是、太宗皇帝、聞之大悅、請師于式乾殿、親受大戒。
- 게송을 마치고는, 곧 붉은 비단에 금빛 수가 놓인 가사袈裟 한 벌과 사리舍利 100과와 부처님의 머리뼈(頂骨)와 손가락마디(指節)와 패엽경貝葉經111) 그리고 수정염주水晶念珠 한 개를 율사에게 전하여 주며 말하시길 “그대는 500생 동안 동진童眞112)의 몸을 지녔었다. 나는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서 그대를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느니라”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금강계단도金剛戒壇圖를 주었다. 이에 태종황제가 그 소식을 듣고는 매우 기뻐하여서, 율사를 식건전式乾殿113)에 청하여 친히 대계大戒를 받았다.
- 貞觀、十七年、師還本國、乃新羅二十七善德王時也。王喜、卽奉爲王師。師創通度寺、建設金剛戒壇、一依文殊所賜圖式。王親赴戒壇下、受千佛大戒、賜僧度牒、通度僧侶故、因名寺焉。自此以後、歷代諸王、無不度僧受戒者矣。
- 정관貞觀 17년(643)에 율사는 본국本國으로 돌아왔으니, 바로 신라新羅 27대 선덕왕善德王 때이다. 선덕왕은 기뻐하며 율사를 받들어 왕사王師로 모셨다. 율사는 통도사通度寺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지었는데, 이는 문수보살이 내려준 도식圖式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왕은 몸소 계단戒壇 아래에 나아가 천불대계千佛大戒를 받고서, 사찰의 승려들에게 도첩度牒을 하사하여 공식적으로 승려가 되도록 모두 승인하였으니(通度僧侶), 이로 인해 이 사찰의 이름을 통도사라 붙이게 되었다. 이후부터 대대로 모든 왕들이 승려들에게 도첩을 발행하고 계를 받게 하지 않음이 없었다.
- 又至眞表律師時、律宗重輝于法界。按師生于全州碧骨郡都川山大井村。而年十二、依母岳山、煩濟和尙、受沙彌戒。至二十七歲、卽唐高宗、上元、元年、甲戌也、師往普安縣邊山、不思議坊、詣彌勒地藏像前、勤求戒法。
- 진표眞表 율사 때에 이르러 율종律宗이 세상에 거듭 빛을 발하게 되었다. 살펴보건대, 율사는 전주全州 벽골군碧骨郡 도천산都川山 대정촌大井村에서 태어났다. 나이 12세 때 모악산母岳山 번제煩濟 화상에게 의지하여 사미계沙彌戒를 받았다. 율사가 27세 되던 해인 당나라 고종高宗 상원上元 원년元年 갑술甲戌(674)년에는 보안현普安縣114) 변산邊山의 부사의방不思議坊115)에 가서, 미륵彌勒 보살상과 지장地藏 보살상 앞에 이르러 부지런히 계법戒法을 구했다.
- 苦到三年、不得授記、師乃捨身岩下、忽有靑衣童子、擘捧而上石臺。因發大願、立三年死限。日夜不惜身命、扣石懺悔、至三日、手臂折落。又至七日、地藏菩薩手捶金錫、來爲加被、手臂如舊、遂與袈裟幷鉢盂。師感之靈瑞、倍加精進、是日卽得天眼通、明徹十方世界。於是、地藏彌勒兩大聖人現前、而住舒金色臂、撫眞表頂曰、善哉、大丈夫、求戒如是、不惜身命、丹懇懺悔、授與記莂曰、汝捨此身、受大法王位、上生兜率天、因隱不現、時丙子四月二十七日也。
- 고행한 지 3년이 되어도 수기授記116)을 얻지 못하자, 율사는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는데, 홀연히 푸른 옷의 동자童子가 나타나 손을 뻗어 율사를 들어 올려 석대石臺에 내려놓았다. 이로 인해 큰 서원(大願)을 일으켜서, 3년 안에 이루지 못하면 죽을 각오로 수행을 하였다. 몸을 돌보거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밤낮으로 돌을 두드리며 참회하니, 3일이 되자 손과 팔이 꺾이고 부러졌다. 이윽고 7일이 되자, 지장地藏 보살이 쇠로 된 석장(金錫)을 손에 들고 와서 가피加被117)하자, 손과 팔이 예전과 같이 정상으로 변하였다. 드디어 가사袈裟와 발우鉢盂를 내주니, 율사는 이 신묘하고 상서로운 현상에 감명을 받고는, 더욱 정성껏 수행에 전념하였고, 그날 곧바로 천안통天眼通118)을 얻어 시방세계十方世界를 훤히 꿰뚫게 되었다. 이에 지장地藏과 미륵彌勒 두 큰 성인이 앞에 나타나서, 금빛 팔을 뻗어 진표 율사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시며 말하길 “훌륭하도다, 대장부大丈夫여. 계戒를 구하기를 이와 같이 하여서 몸을 돌보거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정성을 다해 간절하게 참회하니, 이제 그대에게 기별記莂119)을 주겠노라. 그대는 이 몸을 버리면, 큰 법왕法王의 지위를 받아서 도솔천兜率天120)에 태어나리라”고 하시고는,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으니, 때는 병자丙子(676)년 4월 27일이었다.
- 和尙受灌頂已、出不思議坊、行至大淵津。忽然龍王出於淵邊、奉獻玉鉢袈裟、如此勝跡、不可勝記也。
- 스님이 두 보살로부터 관정灌頂을 받고 나서, 수행처였던 부사의방에서 내려와 유행하다가 대연진大淵津에 이르렀다. 그때 홀연히 용왕龍王이 연못가에서 나와, 옥으로 된 발우(玉鉢)와 가사를 진표 율사에게 받들어 바쳤으니, 이와 같이 빼어나고 신묘한 행적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 至高麗時、佛日重輝、法輪大轉、王臣敬重、代代相傳律法。而及乎高麗恭愍王、時指空和尙、自天竺而至、王奉之爲國師。仍就通度寺大戒壇、度僧受戒、卽明之洪武九年事也。
- 고려高麗 때에는 부처님의 지혜(佛日)121)가 거듭 빛나고 부처님의 교화(法輪)122)가 크게 펼쳐져서, 왕과 신하가 공경하고 존중하여 대대로 불교의 율법律法을 서로 전하게 되었다. 그렇게 전해져서 고려 공민왕恭愍王123)에 이르렀는데, 그때 지공指空124) 화상이 천축으로부터 이르니, 왕이 받들어 국사國師로 모셨다. 이에 지공 화상은 통도사 대계단大戒壇에 나아가 승려들을 출가시키고 계를 주었으니, 이는 곧 명나라 홍무洪武 9년(1376)의 일이다.
- 粤自我太祖康獻大王奉無學和尙爲王師、闡揚佛法之後、戒律綿歷、以至於喚惺和尙、莫不師師相承、傳戒度生矣。當是時、律宗殆危、幾乎泯矣。
- 우리 태조太祖 강헌대왕康獻大王125)이 무학無學 화상을 받들어 왕사王師로 모셔서 불법佛法을 널리 드러내고 전파한 후로부터 계율이 끊임없이 계속 이어져, 환성喚惺126) 화상에 이르도록 스승으로부터 스승에게 서로 전해져서 계戒를 전하고 중생을 제도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때에 이르러 율종律宗은 위태로워져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 幸在本朝純祖肅皇帝二十六年丙戌七月、大隱和尙與其師金潭長老、甚憂之、卽於智異山東國第一禪院。際其解夏、依佛敎勅、誓祈佛前之七日、一道祥光、注大隱頂上。其師金潭長老云、經云、惟戒所在父子互爲師、遂受戒於大隱和尙。
- 다행히 본조本朝의 순조純祖 숙황제肅皇帝127) 26년 병술丙戌(1826)년 7월에 대은大隱128) 화상과 그의 스승 금담金潭 장로가 이러한 현실을 매우 걱정하여서, 지리산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에129) 나아갔다. 하안거130) 마칠 때를 즈음하여, 부처님의 교칙敎勅에 따라 부처님 앞에 서원을 세워 기도를 하자, 7일 만에 한 줄기 상서로운 빛(祥光)이 대은 화상의 정수리 위에 쏟아졌다. 이에 그의 스승인 금담 장로가 말하길 “경經에 이르길 ‘오직 계戒로써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이어지듯 스승으로 삼으라’고 하였다”라고 하고는, 드디어 제자인 대은 화상에게 계戒를 받았다.
- 師又傳之草衣律師、師傳之梵海律師、師傳之禪谷律師、師傳之龍城律師。師於海印寺金剛戒壇、傳授戒法於余曰、菩薩十重·四十八戒·比丘二百五十戒、傳授於汝、汝當敬心奉持、傳之未來、毋令斷絶。
-
그리고 금담 율사는 그것을 다시 초의草衣131) 율사에게 전하고, 초의 율사는 그것을 범해梵海132) 율사에게 전하였으며, 범해 율사는 그것을 선곡禪谷 율사에게 전하고, 선곡 율사는 그것을 용성龍城133) 율사에게 전하였다. 용성 율사는 해인사海印寺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나에게 계법戒法을 전하며 말하시길 “보살의 10중계重戒134)·48계戒135)와 비구 250계136)를 그대에게 전해 주노니, 그대는 마땅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들어 지니고, 그것을 미래에 전하여 끊어지거나 없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본사화상本師和尙 :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교수아사리敎授阿闍梨 : 미륵존불彌勒尊佛
갈마아사리羯磨阿闍梨 : 용종상존왕불龍種上尊王佛
본단전계화상本壇傳戒和尙 : 용성율사龍城律師
존증아사리尊證阿闍梨 : 시방제대보살十方諸大菩薩
수계受戒 본인本人 행력行歷
- 姓邊氏、貫黃州、父名舜基、母昌寧曺氏、啣堯基。隆熙三年己酉、十月初一日、生于全羅南道長城郡長城面長安里、年二十二、於白羊寺、得度受沙彌戒大戒及具足戒、二十八歲、嗣法於龍城大禪師、今再受大小二戒於龍城律師。
- 성姓은 변씨邊氏이고, 본관은 황주黃州이며, 아버지의 이름은 순기舜基이고, 어머니는 창녕昌寧 조씨曺氏, 이름은 요기堯基임. 융희隆熙 3년 기유己酉(1909)년 10월 초하루에, 전라남도全羅南道 장성군長城郡 장성면長城面 장안리長安里에서 출생. 나이 22세에 백양사白羊寺에서 출가하여 사미계沙彌戒와 대계大戒 그리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음. 28세에 용성龍城 대선사大禪師의 법을 이음. 그리고 지금 다시 용성 율사로부터 소계小戒와 대계大戒를 받음.
- 世尊應化 二千九百六十五年 戊寅 四月 八日 聖誕節 受戒弟子 月舟 收執。
- 세존응화世尊應化(佛紀) 2965년 무인戊寅(1938)년 4월 8일 성탄절聖誕節 수계제자受戒弟子 월주月舟 수집收執
-
0001_0085_a_01L〈피봉〉
(앞) 계원함戒源函
(뒤) 수계제자受戒弟子 : 석월주釋月舟 수집收執
변월주 안거증(해인사, 1938.7.15)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安居證
-
慶南道 陜川郡 伽耶面 海印寺
邊峯菴
右者 本寺 禪院에서 夏安居를 成就하얏기 玆에 證書를 授與함
昭和 十參年 舊 七月十五日
慶尙南道 陜川郡 伽耶面 海印寺
住持 卞雪湖
변월주 승적첩(해인사, 1938.9.29)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僧籍牒
所生本因
出生地 全南 長城郡 長城面 長安理 三三七
本籍地 同 同 同
父 邊舜基 母 曺堯基 出生別 長男 本貫 黃州
入法結緣
師僧 恩師 法師 沙彌戒師 比丘戒師
氏名 白相奎 白相奎 柳錦海 白相奎
法名 震鍾 震鍾 震鍾
法號 龍城 龍城 龍城
分限享失
昭和 四年 四月 八日 全南道 長城郡 北下面 白羊寺에서 得度
昭和 十二年 四月二十日 大本山 梵魚寺에서 度牒授與
昭和 四年 四月 八日 全南道 長城郡 北下面 白羊寺에서 沙彌戒를 受함
昭和 四年 四月 八日 全南道 長城郡 北下面 白羊寺에서 比丘戒를 受함
以下 餘白
所化當體
現 法階 大禪 法名 月舟 法號 峰庵
姓名 邊鎭契 法門身位 恩第 法第
生年月日 隆熙 參年 十壹月 十參日生
身上異動
昭和十三年 四月二十日 附 梵魚寺로붙어 入籍
以下 餘白
行解經歷
一, 安居
昭和 四年 七月 十五日 長城郡 白羊寺 雲門禪院에서 首禪安居 邇來
五歲 成就 (昭和十二年 追)
一, 修學
昭和 八年 十二月 日 華嚴寺에서 陳震應을 師하야 四敎科를 卒業
昭和 拾年 十二月 雙溪寺에서 陳震應을 師하야 大敎科를 卒業
昭和 三年 六月 五日 光州公立高等普通學校 四年級 一學期 退學
大正 十四年 三月 二十五日 長城郡 長城公立普通學校 卒業
以下 餘白
右藤本 僧籍簿 元本 相違 證
昭和 拾三年 九月 二十九日 慶尙南道 陜川郡 伽耶面 海印寺
海印寺 住持 邊雪湖
변월주 승려증(해인사, 1938.11.29)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僧侶證
第 號
僧 侶 證
出生地 全羅南道 長城郡 長城面 長安理
僧籍地 慶尙南道 陜川郡 伽耶面 海印寺
氏名 邊月舟
年齡 明治 四十二年 十月 一日生
得度 昭和 五年 四月 八日
右를 當 本末寺 僧侶로 證홈
昭和 十三年 十一月 二十九日
慶尙南道 陜川郡 伽耶面 伽倻山
法刹 大本山 海印寺 住持 邊雪湖
용성 스님에게 받은 동산의 전계증(1938)
- 소장 ; 범어사 성보박물관
[원문]
-
吾今所傳戒脈 朝鮮智異山七佛禪院大隱和尙 依梵網經 誓受諸佛淨戒 七日祈禱 一道祥光 注于大隱頂上 親受佛戒後 傳于錦潭律師 傳于草衣律師 傳于梵海律師 傳于禪谷律師 傳至于吾代 將此海東初祖所傳 張大敎網 鹿人天之魚之寶印 以爲戒脈 與正法眼藏 正傳之信 慇懃付與東山慧日 汝善自護持 令不斷絶 與知來正法 住世無窮
世尊應化 2963年 丙子 11月 18日
龍城震鍾爲證 東山慧日 受持
[번역문]
-
龍城 스님이 東山에게 傳授한 전계증
내가 이제 전하는 바의 계맥은 조선조의 순조 때 지리산 칠불선원에서 대은 율사가 『범망경』에서 말씀하신 천리 내에 계를 전해 줄 법사가 없을 경우 불전에서 서상수계하라는 것에 의거하여 부처님께 청정한 계를 받고자 서원을 세우고 7일 기도 중 한 줄기 祥光이 대은 율사의 정수리에 灌注하는 서상을 얻고 佛戒를 받은 후, 金潭137) 律師에 전하였고, 금담 율사는 草衣 律師에게 전하였으며, 초의 율사는 梵海 律師에게 전하였고,138) 범해 율사는 禪谷 律師에게 전하였으며, 선곡 율사께서 나에게 전해 주셨으니 이는 해동의 화엄초조인 원효 대사가 전하신 大敎의 그물을 펴서 人天의 고기를 걸러 올리는 寶印으로써 戒脈을 삼았으니 정법안장인 正傳의 信表와 함께 동산 혜일에게 전하노니 너는 굳게 이를 호지하여 정법안장의 혜명으로 하여금 단절됨이 없도록 해서 부처님의 正法과 더불어 이 계맥이 영원무궁토록 할지어다.
세존응화 2963년 병자 11월 18일
용성 진종이 傳授하니 東山 慧日은 받아 지킬지어다.
용성 스님에게 받은 동산의 전법게(1939)
- 소장 ; 해인사 백련암
-
세상과 함께 부침하며 망령되이 생각지 마라
순금은 백 도의 불 속에서 단련되네
조계의 법수는 너로부터 전해지니
금강산 일만이천 봉에 달빛이로다
-
與世浮沈莫妄想
眞金百度火中鍊
曹溪法水由汝傳
萬二千峰金剛月
-
다시 부탁한다.
많은 생 동안 이름 없이, 미혹된 습화習和를 송두리째 뽑아버려서 완전히 없애버려야 가히 제성諸聖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갈 수 있느니라. 일체의 시비是非와 호오好惡 등에 전혀 동요하거나 알음알이를 일으키지 않은 연후에야 가히 도道와 합할 수 있느니라.
- 更囑 多生無名 惑習和根拔去了 沒巴鼻 可與諸聖齊肩而行矣 一切是非好惡等 都無動念然後 可與道合矣
-
백용성 보냄
하동산 받음
-
白龍城
河東山 見
-
〈피봉〉
(앞) 경성부 봉익동 2번지
백용성 보냄
-
京城府鳳翼洞二番地
白龍城
-
(뒤) 강원도 회양군 금강산 장안사선원
하동산 받음
-
江原道淮陽郡金剛山
長安寺禪院
河東山 見
조선불교선종 총림(대각사) 안거증(1939.1.15)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安 居 證 書
慶南 陜川郡 伽倻山 海印寺 止住
邊 峰 庵
右者는 本 叢林에서 冬安居를 成就하얏기 玆에 證書를 授與함
昭和 十四年 舊 正月 十五日
京城府 鳳翼町 二番地
朝鮮佛敎 禪宗叢林 宗主 白龍城
변월주 안거증(마하연, 1939.7.15)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安居證
慶南道 陜川郡 海印寺 止住
邊峯菴
明治 四十二年 十月 一日生
右者 本寺 禪院에서 夏安居 成就함을 證함
佛紀 二九六六年 己卯 七月 十五日
江原道 淮陽郡 內金剛 摩訶衍
住持 籌室 薛石右
선리참구원 평의원회 「회록」에 나타난 대각교(1939.3.24)
- 제공 ; 김광식
-
0001_0090_a_01L金寂音氏
鳳翼町 二蕃地 前 大覺敎堂으로 붙어 同不動産을 本 財團에 參加하겠다는 當 該 寄附證書까지 接受하온 事實이 有하온데 何故로 今般 財務部 經過 報告書에 記入치 안헛나뇨?
崔應山氏
寄附書類는 完結되여 있아오나 寄附者 側으로 붙어 移轉 手續 等에 對해서 何等의 付託도 無하였아오며 到今엔 該 寄附證書를 返還 又는 取消해 달나는 通知가 直接間接으로 有할뿐 外라 正式으로 移轉 手續에 付치 않고 延期된 問題 中의 기부 토지이므로 記入하지 안헛소
金寂音氏
該 不動産을 本 法人으로 寄附한다는 寄附 證書 作成 當時 立會人으로 證參햇든 表檜庵氏가 昨日 本院에 와서…… 現在 봉익정 敎堂內엔 該 寄附 土地에 對하야 或者는 獨立으로 禪院 事業機關을 施設하자고 主張도 하오나 旣히 參究院 財團에 編入하기로 寄附 證書까지 提出되여 있는 今日이온바 此를 法的 手續이나 又는 如何한 方法이든지 速速 移轉手續에 着手해 달나……는 말슴이 있사오니 本 平議員會 席上에서 圓滿 討議하야 處理하시오.
一同
速히 본 法人 財團에 編入 수속을 火急 진행케 하시오.
崔應山氏
今般에 처음으로 金寂音씨 傳言을 듯사오니 鳳翼町 敎堂 表檜庵氏를 一次 訪問해 가지고 事實 內容을 確知한 後에 移轉 手續 如何를 處理하겠음니다.
선리참구원 평의원회 문건에 나타난 대각교(1940.3.8)
- 제공 ; 김광식
-
0001_0091_b_01L昭和 拾四年 拾壹月 貳日附로 京城府 鳳翼町 貳蕃地 朝鮮佛敎 禪宗叢林 代表 白龍城 禪師로붙어 本人 不動産 外 同所 崔昌雲 徐文吉 金順明 諸氏의 名義 不動産과 京城府 鐘路 六丁目 貳拾蕃地 高鳳雲氏 名義 不動産과 京畿道 고양군 毒縣島〇九宜里 九蕃地 金占泰氏 명의 不動産 等 全部에 대하야 各 本人의 圓滿한 承諾下에 此를 본 財團 法人 財團에 無償寄附하옵고 今後로는 본 法人과 共히 朝鮮佛敎 禪宗 事業에 根本 目的에 就하야 又壹層 堅固한 同一 步調의 線上에서 積極的으로 永遠無窮히 邁進하기를 期하야 相互간에 雙方 契約 등 六通 書類를 締結하온 事가 有하온데 該 不動産에 關한 大略 要項은 左와 如하다.
記
부동산 소재지 지목 지적 가 격 금 씨명 경남 함양 沓 14,012평 3,541원 백용성 田 6,020 335 백용성 岱 664 69 백용성 雜種地 318 13 백용성 林野 114町 5反 6〇 650 백용성 경기 양주 건물 19평 6合 392 백용성 경남 함양 답 9,080 2,674 최창운 전 736 91 최창운 임야 11町 5反 2 691 최창운 경기 고양 답 5,238 2,734 최창운 전 1,731 164 최창운 경성 봉익정 대 112평 7合 3,156 최창운 건물 37평 6合 2刁 3,810 최창운 경남 함양 답 3,712 1,140 서문길 전 178 268 서문길 답 2149 623 김순명 답 990 356 고봉운 임야 10町 5反 7〇 646 고봉운 경기 양주 임야 7町 5反 2〇 451 김정봉
總合計
함양 답 29,0143평 가격 8334원 전 6934평 가격 694원 대 664평 가격 69원 잡종지 318평 가격 13원 임야 136정보, 6반, 5〇步 가격 1987원 고양 답 5238평 가격 2734원 전 2731평 가격 164원 양주 건물 19평 6합 가격 392원 임야 7정보 5반 1〇 가격 451원 경성 112평7반 가격 3156원 건물 37평 5반 2刁 가격 3810원
備考
이상 不動産은 前 大覺敎 中央本部에서 年收益을 하고 事業을 經營하다가 前 諸氏로붙어 昭和 九年 九月 貳拾日附로 昭和 白九年 九月 拾九日에 至하기까지 滿 百箇年 間 京城府 南大通壹 丁目 拾九蕃地 朝鮮 信託株式會社에 信託하야 있난 關係上 該 收益者 名義 變更 手續을 目下 본 法人으로 進行 道中에 有하다.
卒業을 當하야 學窓生活의 反省과 告白
- 佛化行者(이불화, 1941)
-
0001_0094_a_01L내가 希望하였고 내 師傅가 期待하든 卒業의 날字가 오는 十二月 二十八日로 決定되고 보니, 깁버야 할 卒業이 웬일인지 悲哀로 化해진다. 諸行이 無常한 즉 그것이 當然하겟지만은 그러나 刹那의 生命이 生死를 超越하야 한 意欲이 있고 없고를 不關하고 自己 지은 業因에 따라 果報를 받고 果報 卽 未來의 業因이 되야 輪回의 途上에서 出發하고 있으니 此身不問今生度면 更待何生度此身이리요, 百千萬劫을 두고 輪回한다 하여도 그는 하마 今日의 나는 아니였다. 盲龜遇木은 있을지언정 이 몸은 영영 다시 가질 수 없다. 나와 相敬하든 學友들도 學窓을 떠남에 딸아 다시 보지 못할 벗도 있을 것이다. 다시 본다 할지라도 그는 오날의 그가 아니요, 내가 아니다. 이것을 一基一會의 悲哀的 無常의 原理라 할가! 내가 出家할 때는 먹고 살기 爲하야 한 것은 아니였다. 얻더한 宗敎的 回心에서 家門의 名譽 門族의 反對를 물니치고 生父 別世 後 다시 出家하였다. 처음에 十四歲에 入滿하야 安邊에서 得度한 것은 回心이람보다도 方便의 하나였다. 그럼으로 入滿이 不如意하게 되자 一年만에 歸家하야 學業을 繼續하였다. (중략) 出家는 英雄의 逝世 (중략) 이 神經質的 發心도 墮落이 되야 信心은 열버지고 肉體는 衰弱하야 畢竟에는 禪林의 修行과 講院의 學究도 中斷되고 虛榮에 끄을이기 쉬운 都市의 學校로 方向을 轉換하게 된 것은 實로 내 自身을 내 스스로가 망치고 말엇다. “怨望하는 者는 가장 비루하고, 어리석은 者다”라는 標語 아래 不怨而自過自責을 하면서 自己運命을 自己 스스로가 打開하기에 努力하든 내가 近日에 와서는 왜 나를 이렇게 맨들어 주웟나? 祖上을 비롯하야 敎界를 向하야 怨望함을 일삼고 있으니 애닯고 슲으다.
내가 日本에 留學하든 動機는 무엇보다도 日本佛敎 敎育制度를 硏究하야 將來 할 敎運·發展에 棟梁이 될 人才를 養成하는 方法을 나의 體驗上에서 그 結論을 얻고자 한 것이였다.
(중략)
긑으로 이 글을 맟임에 故 龍城禪師의 靈前에 感謝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내가 龍城禪師를 陞拜하기는 師의 楞嚴經 譯本 及 圓覺經 譯本을 얻어 본 後부터이다. 그리하야 내가 在京時 멧번인가 師를 차젔을 때는 南道에 가시여서 한번도 못 만냈다. 그리다가 親見하기는 六年前 二月인가부이다. 師는 三學이 具足하고 半農半禪의 實踐主義, 戒律嚴守主義, 佛敎普遍化 及 佛敎의 時代化의 熱熱한 傳道·譯經·著書 等의 禪學者였다. 可謂 曹溪 普照의 法燈相乘者라 하겠다. 親見한 後 “小僧이 日本內地의 臨濟宗立 妙興禪林에 掛錫하야 學行을 兼修하고저 하오나 渡航道里가 없나니다” 한즉 師는 “내가 病이 重하니 學資은 엊지 할 수가 없으나 어듸 힘써 봅시다” 한다. 事實이시 그때는 不幸하게도 老師의 病患이 重하신 때였다. 그리하야 渡航證 手續은 師의 印章을 얻어서 提出하게 되었고 出發 時에 著書의 數本과 金一封을 下賜하시였다. 오날 내가 이것을 쓰게 된 學力을 얻게 된 것이라는지 奉先寺와 結緣하게 된 것도 오로지 師의 恩惠이다. 내 日本에 가게 못 되었드면 奉先寺로 갈 因緣도 매저 지지 않었었을 것이써이다.
그러나 不幸이도 師는 後繼者를 得하지 못한 채 作春에 涅槃하섰다고 한다. 師가 않게신 그날 내에서 訃告가 올니 없다. 다만 下賜金으로 買入한 ‘도랑크’만이 今日에 그 冊子와 갗이 남었을 뿐이니 ‘諸行無常’ 그 아닌가! 늣겨진다. 到處에 恩惠만 끼친 내가 언제나 報恩할고? 期必할 수 없는 내 목숨 애닲고 슲우다. 그러나 臨命終時까지 한 狂人으로 正義와 佛法을 爲하야 內로 國家와 外로 世界를 爲하야 歷史에 뚜렷한 事實를 갖고 曹溪 普照國師의 法燈 相乘系譜를 밝히고 그 家風을 再興하여 出家僧의 養成에 獻身하야 福國祐世의 化他·垂慈佛敎를 再建하야 나의게 化主된 분 施主된 분 賜恩, 與德, 示敎하신 諸 大善知識의 鴻恩을 報答코저 誓願하고 休說한다.
二五0七 辛巳 一0, 二六, 於 東京 湯島 自省寮
화과원 선원 안거증(선리참구원) ①(1941.1.15)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禪第 號
安 居 證 書
本籍地 全羅南道 長城郡 長城面 長安理
僧籍地 慶尙南道 陜川郡 伽耶面 海印寺
戶籍名 東平月舟
明治 四十二年 十一月 十三日生
右者本法人華果院禪院ニ於テ冬安居ヲ成就ンタルニ付玆ニ證書ヲ授與ス
昭和 十六年 陰正月 十五日
京城府 安國町 四十
財團法人 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理事長 吳州成月
慶尙南道 咸陽郡 栢田面 寺
白雲山 華果院 禪院
祖室
住持
院主 釋峯庵
화과원 선원 안거증(선리참구원) ②(1941.7.15)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禪第 號
安 居 證 書
本籍地 全羅南道 長城郡 長城面 長安理
僧籍地 慶尙南道 陜川郡 伽耶面 海印寺
戶籍名 東平月舟
明治 四十二年 十一月 十三日生
右者本法人華果院禪院ニ於テ夏安居ヲ成就ンタルニ付玆ニ證書ヲ授與ス
昭和 十六年 陰七月 十五日
京城府 安國町 四十
財團法人 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理事長 吳州成月
慶尙南道 咸陽郡 栢田面 寺
白雲山 華果院 禪院
祖室
住持
院主 釋峯庵
화과원 선원 안거증(선리참구원) ③(1942.7.15)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禪第 號
安 居 證 書
本籍地 全羅南道 長城郡 長城面 長安理
僧籍地 慶尙南道 陜川郡 伽耶面 海印寺
氏名 邊峰庵
明治 四十二年 十月 初一日生
右者本法人華果院禪院ニ於テ夏安居ヲ成就ンタルニ付玆ニ證書ヲ授與ス
昭和 十七年 七月 十五日
京城府 安國町 四十
財團法人 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理事長
道 咸陽郡 栢田面 寺
華果 禪院
祖室 李仙坡
住持
院主 李雪谷
대각선원 원장 임명장
- 제공 ; 김광식
-
任 命 狀
新井俊輝
明治二十七年 九月 二十三日生
右者 本 法人 大覺禪院ノ院長ラ命ス
昭和拾九年 參月 拾參日
京城府 鐘路區 安國町 四拾番地
財團法人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理事長 金 寂 音
대각선원 원감 임명장
- 제공 ; 김광식
-
任 命 狀
三井泰龍
大正二年 七月二十七日生
右者 本 法人 大覺禪院ノ院監ラ命ス
昭和拾九年 參月 拾參日
京城府 鐘路區 安國町 四拾番地
財團法人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理事長 金 寂 音
용탑선원 창건 상량기(1947.8.23)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원문]
-
龍塔禪院 創建 上樑記
原夫法界六相, 該羅萬象, 而無非從緣生者也.
我師龍城大和尙, 主世七十七年, 熏度群品, 受訓弟資, 四十餘人矣.
總中警惺師兄, 事師之道至矣臻矣.
己未運動時, 先師被倭奴之縲絏, 三年定省, 如若一日.
創建白雲山華果院, 建築舍利塔及碑石等, 皆是師兄之功勞也.
今者又, 謀奉香閣之建, 今春以來, 與片手李花白, 共榮明月臺, 建築後去, 八月初六日, 本院二十四間, 立柱柱日, 上梁式擧行, 龍城門徒, 幸莫大於此焉.
於是, 抛樑於東見滿月界, 抛樑於南望歡喜界, 抛樑於西看極樂界, 抛樑於北面無憂界, 抛樑於上瞻內院界, 抛樑於下暎香水海.
安樑於其所, 三際相卽, 十方互攝, 重重交映, 念念圓融.
伏願上樑之後, 千災雪消, 萬福雲興.
門高僧隆德厚, 普潤與法界, 量無窮無盡云甫.
時 佛紀二九七四年 檀紀四二八零年 丁亥八月二十三日 龍城後人 峰庵月周 謹識
都監 警惺 德律
片手 白蓮居士 李花白
副片手 林敬律
木手 申應順
木手 盧敬雲
切木片手 金仁範 外九人
本寺住持 林幻鏡
元老 白景霞
叢林祖室 李晩峰
講院祖室 姜高峰
總務 金東光
敎務 邊峰庵
財務 崔寶山
會計 梁寶輪
書記 朴印峰
龍城門徒
恩法上佐 仁谷 昌洙
古庵 祥彦
警惺 德律
仙坡 學成
檜庵 中賢
慈雲 盛祐
碧虛 常輝
抱牛 慧明 外二十六人
孫上佐 雪谷 道允
太虛 錫珍
錦潭 法行 外十九人
大施主 서울市
甲午生 尹氏 大智月
乙亥生 高氏 大日華
乙亥生 崔氏 善光明
金氏 天眞佛
金氏 大圓覺
金氏 金剛月
金氏 法王心
劉氏 淸淨水
李觀明
安童眞
閔氏 圓滿行
金氏 慧日華
安普光
金氏 普覺心
朴氏 尋牛婆
李氏 大圓成
徐氏 圓明華
尹其淑
尹乙老
李鍾完
李元南
劉氏 紫金華
安根淑
金順成
李基順
金東銀
廉氏 淸淨月
金鳳鳴
山監 主任 車東城
山監 李海松
全海完
化主 錦潭 法行
抱牛 慧明
高氏 大日華
崔氏 善光明
[번역문]
-
용탑선원 창건 상량기
무릇 법계 육상六相139)의 삼라만상은 인연을 쫓아 생겨나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 스승이신 용성 대화상은 세상에 머무신 지 77년 동안 여러 중생을 제도하셨고,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40여 명이나 된다.
그 가운데 경성警惺140) 사형師兄은 스승을 모시는 법도가 지극함에 이르렀다.
기미년 3·1운동 때에 스승께서는 일제(倭奴)에 의해 옥중에 갇혀 지내시게 되었다. 그때 사형은 3년간 옥바라지(定省)하기를141) 마치 하루와 같이 했다.
백운산 화과원華果院을 창건하시고, 사리탑과 비석 등을 건축한 것은 모두 사형의 공로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봉향각奉香閣 건립을 도모하여, 올 봄부터는 도편수 이화백과 함께 명월대를 함께 번창시켜 건축하니, 8월 6일 본원에 24칸 기둥을 세운(立柱) 그날 상량식을 거행하게 되었으니 용성 스님 문도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행운은 없을 것이다.
이에 대들보를 들어 올려 동쪽의 만월계를 보고, 대들보를 들어 올려 남쪽의 환희계를 바라보며, 대들보를 들어 올려 서쪽의 극락세계를 보고, 대들보를 들어 올려 북쪽의 무우세계를 보며, 대들보를 들어 올려 위쪽의 내원계를 쳐다보고, 대들보를 들어서 내려 아래쪽의 향수해를 비추어 보게 하였다.
대들보가 그 장소에 안치되니 삼제三際가 상즉하고, 시방이 서로 융섭하고, 겹겹이 서로 비추고, 생각마다 원융하게 되었다.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한 이후에 천 가지 재앙은 눈 녹듯 사라지고, 만 가지 복이 구름처럼 종문에 일어나리라.
고승의 후덕함이 극진하여 널리 법계를 적시니 그 무궁무진함을 헤아려 본다.
때는 불기 2974년 단기 4280년 정해(1947년) 8월 23일 용성후인 봉암 월주 삼가 짓다.
도감 경성 덕율
편수 백련거사 이화백
부편수 임경율
목수 신응순
목수 노경운
절목편수 김인범 외구인
본사주지 임환경
원로 백경하
총림조실 이만봉
강원조실 강고봉
총무 김동광
교무 변봉암
재무 최보산
회계 양보륜
서기 박인봉
용성문도
은법상좌 인곡창수
고암 상언
경성 덕율
선파 학성
회암 중현
자운 성우
벽허 상휘
포우 혜명 외 이십육인
손상좌 설곡 도윤
태허 석진
금담 법행 외 십구인
대시주 서울시
갑오생 윤씨 대지월
을해생 고씨 대일화
을해생 최씨 선광명
김씨 천진불
김씨 대원각
김씨 금강월
김씨 법왕심
유씨 청정수
이관명
안동진
민씨 원만행
김씨 혜일화
안보광
김씨 보각심
박씨 심우파
이씨 대원성
서씨 원명화
윤기숙
윤을노
이종완
이원남
유씨 자금화
안근숙
김순성
이기순
김동은
염씨 청정월
김봉명
산감 주임 차동성
산감 이해송
전해완
화주 금담 법행
포우 혜명
고씨 대일화
최씨 선광명
고백문, 주식회사 해인사 영림공사(1948.9.30)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告白文
伽耶山의 靈峯을 玄武로 載한 우리 海印寺는 一千有二百年의 歷史를 갖이고 있으며 周圍의 三千三白餘 町步의 寺有林은 古德의 心血을 傾注하여 蔚然히 造成하였었던바 數年 前에 不幸히 倭賊의 戰禍와 愚民의 濫伐로 因하야 蕭條히 疎野하여짐을 現 山內 四部大衆은 憤然히 覺惺하고 玆에 株式會社 海印寺 營林造林公社를 創設하야 官의 登記를 完了하고 綱領의 趣旨 目的을 達成토록 邁進하기 爲하야 關係 官廳의 諸位와 地方 有志 諸賢을 招請하야 今日 이에 開業式을 擧行하는 바이오니 三寶 玆尊께서는 哀愍히 녁이사 證明하야 주시옵소서
綱領 一, 綠化養林 二, 勝景保護 三, 增産報國 四, 利用厚生 此等 趣旨를 徹底히 認識하고 實踐코저 하오니 脫線되는 行爲가 毫釐라도 없도록 護念하야 주심을 仰願하오며 此等 事業은 또한 畢竟 三寶護持에 圓滿 廻向코자 함을 盟誓하나이다.
檀紀 四千二百八十一年 九月 三十日
株式會社 海印寺 營林公社
社株 一同 代表 某甲
焚香謹白
변월주 이력서(1949.11.5)
- 제공 ; 진천 원융호국사(진해 대광사 소장)
-
0001_0100_a_01L 履歷書
一. 現住所 慶南 陜川郡 伽耶面 緇仁里 一0番地(海印寺)
檀紀 四二四二年 十一月 一三生
二. 出生地 全南 長城郡 長城邑 長安里 三三七番地
三. 得度 檀紀 四伊二二年 四月 八日
全南 長城郡 北下面 白羊寺
白龍城을 師로 하야 得度함
四. 受戒 四二六二年 四月 八日 白羊寺 金剛戒壇에서 劉錦海를 師하야 沙彌戒 比丘戒 及 菩薩戒를 受持함
五. 修學 四二四九年 十一月붙어 四二五三年 三月까지 長安書齋에서 漢文을 修學함
四二五三年 三月 十五日 全南 長城公立普通學校를 卒業
四二六一年 六月 五日 光州公立高等 普通學校 第四學年에서 退學함
四二六三年 三月 十日 長城郡 白羊寺에서 劉錦海를 師하야 沙彌科 及 四集科 卒業
四二六七年 十二月 一日 河東郡 雙溪寺에서 陳震應을 師하야 四敎 及 大敎科를 卒業함
六. 安居 四二六이年 八月 十五日붙어 四二七六年 七月 十五日까지 十夏安居를 成就함
七. 法階 四二七一年 十一月 十九日 海印寺에서 中德 法階 稟受
四二七巳四년 四月 二十日 右寺에서 大德 法階 稟受
八. 就職 四二七一年 十一月 什一 海印寺 法寶學院 講師 被任
四二七三年 山淸郡 大源寺 講院 講師에 被任
四二七七年 一月 十二日 海印寺 指定 山淸 布敎師 被任
四二七九年 一月 十二日 海印寺 敎務 被任
四二八一年 九月一日 海印寺 營林公社 常務 取締役 被任
九. 賞罰 無
右와 如히 相違 無함
檀紀 四二八二年 十一月 五日
右 本人 邊月舟
용성의 신도
- 「梵魚寺 中央布敎堂 移建의 由來」(1950, 범어사), p.2.(제공 ; 김광식)
- 被 證人中 崔昌雲女士는 白龍城禪師의 心腹 信徒로서 禪師 亦 同時에 鳳益洞 二番地에 自己 布敎堂을 新建하는데 全 責任者로서 全力을 하여 도로혀 梵魚寺 事業에 對立이 되어 모든 妨害 工作을 다하여 梵魚寺는 信徒들 喜捨가 烏有에 歸하였으며
登記濟權利證(大覺寺)
- 소장 ; 보광스님
-
〈登記濟權利證 次例〉
1p. 登記濟 權利證
2p. 贈與契約書
4p. 住持 在職證明願
5p. 寺有不動産 證明願
6p. 不動産目錄
8p. 信託契約 全部解除에 關한 信託財産 引繼書
9p. 不動産表示
11p. 登記義務者의 人違없는 保證書
11p. 不動産表示
12p. 信託原簿更正 登記申請
13p. 更正事項
15p. 不動産 管理信託契約 壹部變更 契約書
18p. 附屬建物新築
19p. 不動産目錄
20p. 建物宅地番號 變更 登記申請
21p. (不動産)目錄
22p. 附屬建物 取毁에 因한 表示變更 登記申請
23p. 不動産目錄
23p. 贈與契約書
24p. 不動産表示
26p. 賣渡證書
27p. 登記簿謄本
28p. 贈與契約書
29p. 不動産表示
31p. 寺有 不動産 證明願
32p. 不動産目錄
34p. 信託契 全部解除에 關한 信託財産 引繼書
35p. 不動産表示
37p. 登記義務者의 人違없는 保證書
38p. 受附 信託原簿更正 登記申請
39p. 更正事項
41p. 不動産 管理信託契約 壹部變更 契約書
43p. 贈與契約書
44p. 不動産目錄
45p. 申請書
46p. 大覺敎會中央本部 規約
-
〈登記濟權利證〉
1p.右
登記濟 權利證
-
1p.左
登記濟 權利證
所有者 大覺寺
-
2p.右
贈與契約書
不動産 表示
左記 記載와 如함
右 不動産은 贈與者 崔光烈 所有인바
此를 受贈者 大覺寺에게 贈與하고 受贈者는
此를 受諾하였음으로 各者 署名 捺印함
檀紀 四貳八五年 拾貳月 貳拾參日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四番地
贈與者 崔光烈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受贈者 大覺寺
同 所 同 番地
-
2p.左
住持 表壽福
不動産 表示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四番地
一. 垈 七拾四坪
右地上
一. 木造 瓦葺142)平家建143) 本家144) 壹棟145)
建坪 參拾坪 四合 六勺 七才
以上
-
3p.右
登記濟
-
3p.左
(공란)
-
4p.右
住持 在職證明願
本籍 京畿道 楊州郡 別內面 德松里
所所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二番地
大覺寺 住持 表壽福
檀紀 四二二七年 九月 五日生
右者 今般 寺院建物 名義移轉 手續上 必要하오니
大覺寺 住持 在職中임을 證明하여
주심을 仰願하나이다.
檀紀 四二八六年 八月 二十九日
右願人
大覺寺 住持 表壽福
-
4p.左
佛敎中央總務院長 貴下
四二八六年 八月三十日
佛敎中央總務院長
李鍾郁
-
5p.右
寺有不動産 證明願
一. 不動産의 表示
別紙目錄과 如함
右 不動産은 從來 大覺寺에서 佛殿으로 使用하여온바
今般 登記申請 手續上 必要하오니
證明하여주심을 仰願하나이다.
檀紀 四二八六年 一月 日
李鍾郁(인)
文敎部長官 閣下
-
5p.左
文敎部長官 金法麟
-
6p.右
不動産目錄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一. 垈 壹百八坪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貳拾四坪 貳合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倉庫 壹棟
建坪 五坪 七合 六勺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住宅 壹棟
建坪 七坪 五合 六勺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의 壹
一. 垈 四坪 七合
-
6p.左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四番地
一. 垈 七拾四坪
右地上
一.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參拾坪 四合 六勺 七才
以上
-
7p.右
登記權利證
所有者 大覺寺
-
7p.左
(공란)
-
8p.右
信託契約 全部解除에 關한 信託財産 引繼書
崔昌雲 所有에 係한 別紙目錄에 記載한 不動産에 對하여
檀紀 四貳六七年 九月 貳拾日附 不動産 管理信託契約에
基하여 當 銀行이 其信託을 受諾하고 檀紀 四貳六七年
拾貳月 貳拾七日 서울地方法院 受附 第九貳壹貳壹號로써
信託行爲에 因한 所有權移轉及 信託登記를 完了하였던 바
今般 貴下에 全部解除 請求함을 認諾하고
信託財産을 歸屬權利者되는 貴下에게 引繼함
檀紀 四貳八六年 四月 壹日
서울特別市 中區 南大門路 二街 壹參0番地
受託者 株式會社 韓國信託銀行
釜山市 富民洞 二街 拾參番地
-
8p.左
代表取縡役146) 韓弼濟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大覺寺 貴中
-
9p.右
不動産表示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一. 垈 壹百八坪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貳拾四坪 貳合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倉庫 壹棟
建坪 五坪 七合 六勺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住宅 壹棟
建坪 七坪 五合 六勺
同 所 貳番地의 壹
一. 垈 四坪 七合
-
9p.左
100환
七一六
-
10p.右
登記濟
-
10p.左
(공란)
-
11p.右
登記義務者의 人違없는 保證書
不動産表示 末尾 記載와 如함
登記目的 所有權 移轉
登記義務者 住所 姓名
서울特別市 中區 南大門路 二街 壹參0番地 株式會社 韓國信託銀行
保證年月日 檀紀 四貳八六年 拾貳月 貳日
保證人
(登記를 受한 不動産表示及 年月日 又는 登記番號)
서울特別市 鐘路區 蓮池洞 九貳番地
土地
登記番號 第參四號
서울特別市 鐘路區 鐘路五街 貳參七番地
土地 (持分 貳分의 壹)
登記番號 第壹四0七號
(住所 姓名 年令)
서울特別市 鐘路區 蓮池洞 九貳番地 安英植 當四拾歲
서울特別市 中區 笠井洞 貳參七番地 李季順 當四拾歲
-
11p.左
不動産 表示
信託原簿 表示
檀紀 四貳六七年 信託原簿 第拾八號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一. 垈 壹百八坪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貳拾四坪 貳合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倉庫 壹棟
建坪 五坪 七合 六勺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住宅 壹棟
建坪 七坪 五合 六勺
仝 所 貳番地의 壹
一. 垈 四坪 七合
-
12p.右
信託原簿更正 登記申請
信託原簿 表示
檀紀 四貳六七年
信託原簿 第拾八號
登記原因及 其日附 檀紀 四貳八六年 六月 參拾日
回復登記遺漏 發見
登記目的 信託原簿更正
更正事項 別紙目錄과 如함
附屬書類
委任狀 壹通
信託原簿 壹通
登記原因을 證明할 書類 存在치 않음으로 申請書 副本 壹通
서울特別市 中區 南大門路 一街 拾九番地
서울特別市 中區 南大門路 二街 壹參0番地
申請人 朝鮮信託 株式會社
株式會社 韓國信託銀行
釜山市 富民洞 二街 拾參番地
代表取縡役 韓弼濟
右 代理人
檀紀 四貳八六年 拾貳月 日
서울地方法院 貴中
-
12p.左
登錄稅 金貳拾圜整
-
13p.右
更正事項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一. 垈 壹百八坪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貳拾四坪 貳合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倉庫 壹棟
建坪 五坪 七合 六勺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住宅 壹棟
建坪 七坪 五合 六勺
同 所 貳番地의 壹
一. 垈 四坪 七合
-
13p.左
右 表示는 檀紀 四貳六七年 信託原簿 第拾八號
滅失로 因한 回復登記申請을 遺漏하였음으로
前記 信託原簿 表示와 如히 遺漏更正외 登記
以上
-
14p.右
登記濟
-
14p.左
(공란)
-
15p.右
不動産 管理信託 契約 壹部147) 變更 契約書
委託者 崔昌雲과 受託者 株式會社 韓國信託銀行間의 檀紀
四貳六七年 九月 貳拾日附로써 締結한 管理信託 第壹壹八號 不動産
管理信託契約 條項中 左記와 如히 變更하고 檀紀 四貳八六年
四月 壹日부터 實施할 것을 契約함.
記
第四條를 左와 如히 改正함.
本 信託契約에 있어 左의 者를 受益者로 定함.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信託元本의 受益者 大覺寺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信託利益의 受益者 大覺寺
-
15p.左
第八條를 左와 如히 改正함.
本 信託은 契約期限中 解除하지 않기로 함.
但, 委託者 又는 信託元本의 受益者가 中途 解除하고자 할 時에는
受託者의 同意을 得하여 解除 할 수 있음.
本 契約을 貳通 作成하여 委託者 및 受託者 各自 壹通을
保管하기로 함.
檀紀 四貳八六年 四月 壹日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委託者 崔昌雲
서울特別市 中區 南大門路 二街 壹參0番地
受託者 株式會社 韓國信託銀行
代表取縡役 韓弼濟
-
16p.右
100환
七一五
-
16p.左
附屬建物增築
登記權利證
所有者
大覺寺
-
17p.右
(공란)
-
17p.左
(공란)
- 18p.右
-
附屬建物新築
不動産表示 別紙目錄과 如함.
登記原因及其日附 西紀 壹九六六年 拾貳月 參拾日 新築
登記의 目的 附屬建物新築
更正事項 別紙目錄과 如함
附屬書類
委任狀 建物圖面 各 壹通
家屋臺帳謄本 壹通, 재직證明書
壹通은 今時 申請에 附屬建物取毁
에 因한 表示變更登記148)件으로서 添付하였음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申請人 大覺寺
仝 所 仝 番地
右 代表者 住持 表壽福
서울特別市 鐘路區 仁寺洞 七五番地
右 代理人 司法書士 李春植 (인)
西紀 壹九六七年 八月 日
서울民事地方法院
貴中
-
18p.左
課稅標準 不動産價格 金六拾八萬貳千五百六拾원整
登錄稅 金參千四百拾貳원整
-
19p.右
不動産目錄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貳拾四坪 貳合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住宅 壹棟
建坪 七坪 五合 五勺
新築한 附屬建物
煉瓦造149) 平屋蓋150) 貳階建151) 法堂 壹棟
建坪 拾參坪
外 貳階坪 八坪 參合 參勺
以上
-
19p.左
(공란)
-
20p.右
建物宅地番號 變更 登記申請
不動産表示 別紙目錄 記載와 如함
登記原因과 그 年月日 西紀 一九六六年 拾貳月 參拾日 地番 變更
登記의 目的 建物宅地番號 變更
附屬書類
家屋臺帳謄本, 佛敎 재직證明書 各 壹通은
仝時 申請으로 附屬建物取毁에 因한
表示變更件에 添付하였음.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申請人 大覺寺
仝 所 仝 番地
右 代表者 住持 表壽福
서울特別市 鐘路區 仁寺洞 七五番地
右 代理人 司法書士 李春植 (인)
西紀 壹九六七年 八月 日
서울民事地方法院 貴中
-
20p.左
登錄稅 金貳百원整
-
21p.右
目錄
變更 前의 表示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貳拾四坪 貳合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住宅 壹棟
建坪 七坪 五合 六勺
仝 煉瓦造 平屋蓋 貳階建 法堂 壹棟
建坪 拾參坪
外 貳階坪 八坪 參合 參勺
變更 後의 表示
-
21p.左
仝 所 仝 番地의 壹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貳拾四坪 貳合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住宅 壹棟
建坪 七坪 五合 六勺
仝 煉瓦造 平屋蓋 貳階建 法堂 壹棟
建坪 拾參坪
外 貳階坪 八坪 參合 參勺
以上
-
22p.右
附屬建物 取毁에 因한 表示變更 登記申請
不動産表示 別紙目錄 記載와 如함
登記原因과 그 年月日 西紀 壹九六六年 拾壹月 貳拾日 取毁
登記의 目的 附屬建物 取毁에 因한 表示變更
附屬書類
허가서등본 壹通
委任狀 壹通
재직증명서 壹通
家屋臺帳謄本 壹通
建物圖面 壹通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申請人 大覺寺
仝 所 仝 番地
右 代表者 住持 表壽福
서울特別市 鐘路區 仁寺洞 七五番地
右 代理人 司法書士 李春植 (인)
西紀 壹九六七年 八月 日
서울民事地方法院
貴中
-
22p.左
登錄稅 金貳百원整
-
23p.右
不動産目錄
變更 前의 表示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貳拾四坪 貳合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倉庫 壹棟
建坪 五坪 七合 六勺
仝 木造 瓦葺 平家建 住宅 壹棟
建坪 七坪 五合 六勺
變更 後의 表示
仝 所 貳番地
-
23p.左
贈與契約書
一. 不動産表示
右記 目錄 記載와 如함
右 不動産은 本人에 所有인바 今般 受贈者 貴下에게
無償으로 贈與하고 受贈者 貴下는 此을 受諾하였으므로
後日을 証키 爲하여 各自 署名 捺印 함.
檀紀 四貳八五年 拾貳月 日
仁川市 京洞 貳參壹番地
贈與人 崔光烈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受贈人 大覺寺
住持 表壽福
-
24p.右
不動産表示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四番地
一. 垈 七拾四坪
右地上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參拾坪 四合 六勺 七才
以上
-
24p.左
登記濟權利證
所有者 崔光烈
-
25p.右
(공란)
-
25p.左
수입인지 梁壽根
-
26p.右
賣渡證書
一. 不動産의 表示
末尾 記載와 如함
此 代金 壹百參拾萬圓也
右 不動産은 本人의 所有인바 今般 前記代金으로써 貴下에 賣渡하고 代金 正히 領收하였음으로 後日 證憑키 爲하여 此 賣渡證書를 作成함
檀紀 四貳八貳年 貳月 拾日
慶尙南道 東萊郡 北面 靑龍里 五四六番地
賣渡人 梵魚寺
慶尙南道 東萊郡 北面 老圃里 九壹0番地
右 財産管理者 住持 梁壽根
-
26p.左
서울市 鐘路區 鳳翼洞 四番地
買主 崔光烈 貴下
不動産의 表示
서울市 鐘路區 鳳翼洞 四番地
一. 垈 七拾四坪 價格 金貳拾七萬圓也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參拾坪 四合 六勺 七才
價格 金壹百參萬圓也
-
27p.右
(공란)
-
27p.左
登記簿謄本 登記番號 第八八號
表題部(不動産表示)
表示番號 壹卷
表示欄 受附 檀紀 四六六七年 九月 拾九日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貳拾四坪 貳合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倉庫 壹棟
建坪 五坪 七合 六勺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住宅 壹棟
建坪 七坪 五合 六勺
以下 余白152)
甲區(所有權)
順位番號 貳卷
事項欄 移轉
受附 檀紀 四貳八六年 拾貳月 四日
第壹壹六壹七號
原因 檀紀 四貳八六年 四月 壹日
信託解除에 因한 信託財産
(取得者)153)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大覺寺
以下 余白
-
28p.右
書記官 許東弼
-
28p.左
贈與契約書
不動産表示
左記 記載와 如함
右 不動産은 贈與者 崔光烈 所有인바 此를
受贈者 大覺寺에게 贈與하고 受贈者는
此를 受諾하였으므로 各者 署名 捺印함
檀紀 四二八五年 拾貳月 貳拾參日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四番地
贈與者 崔光烈 印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受贈者 大覺寺 印
同 所 同 番地
-
29p.右
(공란)
-
29p.左
住持 表壽福 印
不動産 表示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四番地
一. 垈 七拾四坪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參拾坪 四合 六勺 七才
以上
-
30p.右
登記濟 印
-
30p.左
(공란)
-
31p.右
寺有 不動産 證明願
一. 不動産의 表示
別紙目錄과 如함
右 不動産은 從來 大覺寺에서 佛殿으로
使用하여온바 今般 登記申請 手續上 必要하오니
證明하여 주심을 仰願하나이다.
檀紀 四二八六年 一月 日
佛敎中央總務院長
李鍾郁 印
文敎部長官 閣下
右와 如히 相違 無함을 証明154)함
檀紀 四二八六年 三月 十七日
-
31p.左
文敎部長官 金法麟 印
-
32p.右
不動産目錄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155) 二番地
一. 垈 壹百八坪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貳拾四坪 貳合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倉庫 壹棟
建坪 五坪 七合 六勺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住宅 壹棟
建坪 七坪 五合 六勺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의 壹
一. 垈 四坪 七合
-
32p.左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四番地
一. 垈 七拾四坪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參拾坪 四合 六勺 七才
以上
-
33p.右
登記權利證
所有者 大覺寺
-
33p.左
(공란)
-
34p.右
信託契約 全部解除에 關한 信託財産 引繼書
崔光雲 所有에 關한 別紙目錄에 記載한 不動産에 對하여
檀紀 四二六七年 九月 二十日附 不動産 管理信託 契約書에 基하여
當 銀行이 其信託을 受諾하고 檀紀 四二六七年 拾貳月 二七日
서울地方法院 受附 第九二一二一號로써 信託行爲에
因한 所有權移轉及 信託登記를 完了하였든바
今般 貴下에 全部解除 請求함을 認諾하고
右 信託財産을 歸屬權利者되는 貴下에게 引繼함
檀紀 四二八六年 四月 一日
서울特別市 中區 南大門路 二街 壹參0番地
受託者 株式會社 韓國信託銀行
釜山市 富民洞 二街 拾參番地
-
34p.左
代表取縡役
韓弼濟 印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大覺寺 貴下
-
35p.右
不動産 表示 印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一. 垈 壹百八坪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貳拾四坪 貳合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倉庫 壹棟
建坪 五坪 七合 六勺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住宅 壹棟
建坪 七坪 五合 六勺
同所 貳番地의 壹
一, 垈 四坪 七合
-
35p.左
司法書士 金永泰 印
書記料金六환
(進行 以上 0電光) 一二七番
-
36p.右
登記濟 印
-
36p.左
(공란)
-
37p.右
登記義務者의 人違없는 保證書
不動産表示 末尾 記載와 如함
登記目的 所有權 移轉
登記義務者 住所 姓名 서울特別市 中區 南大門路 二街 一三0番地
株式會社 韓國信託銀行
保證年月日 檀紀 四二八六年 十二月 二日
登記를 受한 不動産及 年月日 又는 登記番號
保証人 서울特別市 鐘路區 蓮池洞 九二番地
土地
登記番號 第三四號
서울特別市 鐘路區 鐘路五街 二三七番地
土地 (拾分 二分의 一)
住所 姓名 年令
서울特別市 鐘路區 蓮池洞 九二番地
安英植 印 當 四拾歲
서울特別市 中區 笠井洞 二三七番地
李季順 印
-
37p.左
登記番號 第一四七號
不動産 表示
信託原簿 表示
檀紀 四二六七年 信託原簿 第拾八號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二番地
一. 垈 一0八坪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貳拾四坪 貳合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倉庫 壹棟
建坪 五坪 七合 六勺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住宅 一棟
建坪 七坪 五合 六勺
仝 所 貳番地의 壹
-
38p.右
受附 信託原簿更正 登記申請
檀紀 四二八六年 十二月 四日 第 10615號
受附 印鑑 調査 記入 見出 校合 登記濟通知 各種通知
信託原簿表示 檀紀 四二六七年 信託原簿 第拾八號
登記原因及其日附 檀紀 四二八六年 六月 參拾日 回復登記遺漏 發見
登記目的 信託原簿更正
更正事項 別紙目錄과 如함
附屬書類
委任狀 一通
信託原簿 一通
登記原因을 証明할 書類 存在치 않으므로 申請書 副本 壹通
人違없는 保證書 貳通
申請人
서울特別市 中區 南大門路 一街 十九番地
서울特別市 中區 南大門路 二街 一三0番地
朝鮮信託銀行 株式會社
株式會社 韓國信託銀行
釜山市 富民洞 二街 十一番地
代表取縡役 韓弼濟
서울特別市 鐘路區 蓮池洞 六一番地
右 代理人 金永泰 印
檀紀 四二八六年 拾貳月 日
-
38p.左
서울地方法院 貴下
登錄稅 金貳拾圜整
-
39p.右
更正事項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一. 垈 壹百八坪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二四坪 二合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倉庫 壹棟
建坪 五坪 七合 六勺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住宅 壹棟
建坪 七坪 五合 六勺
同 所 貳番地의 壹
一. 垈 四坪 七合
-
39p.左
右 表示는 檀紀 四二六七年 信託原簿 第十八號
滅失로 因한 回復登記 申請을 遺漏하였으므로
前記 信託原簿 表示와 如히 遺漏 更正외 登記
以上
-
40p.右
登記濟
-
40p.左
(공란)
-
41p.右
不動産 管理信託契約 壹部變更 契約書
委託者 崔昌雲과 受託者 株式會社 韓國信託銀行間의
檀紀 四二六七年 九月 二十日附로써 締結한
管理信託 第一一八號 不動産 管理信託 契約條項中
左記와 如히 變更하고 檀紀 四二八六年 四月 一日부터
實施할 것을 契約함.
記
第四條를 左와 如히 改正함.
本 信託 契約에 있어 左의 者를 受益者로 定함.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信託元本의 受益者 大覺寺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
41p.左
信託利益의 受益者 大覺寺
第八條를 左와 如히 改正함.
本 信託은 契約期限中 解除하지 않기로 함. 但 委託者 又는
信託元本의 受益者가 中途 解除하고저 할 時에는 受託者의
同意을 得하야 解除 할 수 있음.
本 契約은 二通 作成하야 委託者및 受託者 各自 壹通을 保管하기로 함.
檀紀 四二八六年 四月 一日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委託者 崔昌雲 印
서울特別市 中區 南大門路 二街 一參0番地
受託者 株式會社 韓國信託銀行
代表取縡役 韓弼濟 印
-
42p.右
(공란)
-
42p.左
(공란)
-
43p.右
贈與契約書
一. 不動産表示
別紙目錄 記載와 如함
右 不動産은 本人에 所有인바 今般
受贈者 貴下에게 無償으로 贈與하고
受贈者 貴下는 此를 受諾하였으므로
後日을 証키 爲하여 各自 署名 捺印 함
檀紀 四二八五年 拾貳月 日
仁川市 京洞 貳參壹番地
贈與人 崔昌雲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156)
-
43p.左
受贈人 大覺寺
住持 表壽福
-
44p.右
不動産目錄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一. 垈 壹百八坪
右地上
一. 木造 瓦葺 平家建 本家 壹棟
建坪 貳拾四坪 貳合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倉庫 壹棟
建坪 五坪 七合 六勺
附屬 木造 瓦葺 平家建 住宅 壹棟
建坪 七坪 五合 六勺
同 所 貳番地의 壹
一. 垈 四坪 七合
-
44p.左
以上
-
45p.右
申請書
檀紀 四貳九參年 月 日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大覺敎會 中央本部
事務所에서 理事會를 開催하고 全員 出席下에
末尾記載 不動産을 大覺敎會
中央本部 所有로 하여 信託財産 引繼에
因한 所有權 移轉登記 申請을 함에 있어서
左記者를 代表者로 委任함을
決議함.
記
代表者157)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表壽福
-
45p.左
檀紀 四貳九參年 月 日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貳番地 理事長 表壽福
仝 所 仝 番地 理事 河東奎
仝 所 仝 番地 仝 朴暢洙
仝 所 仝 番地 仝 尹祥彦
仝 所 仝 番地 仝 李完圭
仝 所 仝 番地 仝 朴承洙
仝 所 仝 番地 仝 金盛祐
不動産 表示
慶尙南道 咸陽郡 栢田面 白雲里 山 七六番地
林野 八町 四反畝158)
所 山 貳番地
-
46p.右
大覺敎會中央本部 規約
第一章 總則
第一條 本 敎會는 大韓佛敎曹溪宗 白龍城 大宗師 遺業을 保存하기 爲한 大覺敎라 稱한다.
第二條 本 敎會는 事務所를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二番地에 둔다.
第三條 本 敎會는 左의 各項을 目的으로 한다.
一. 三一運動 三十三人中의 一員이신 白龍城 大宗師의 民族正氣의 先覺的 自主精神을 永遠히 暢達한다.
二. 李朝 五百年間 被壓腐傷한 韓國佛敎의 大覺的 中興의 業績과 日帝의 植民地 宗敎政策에 對한 公明한 鬪爭精神의 崇高性을 千秋萬代에 保存發展해서 民族精彩의 主軸이 되어야한다.
三. 白龍城 大宗師의 敎旨에 따라 參禪修道하여 悟道見性을 爲主 한다.
-
46p.左
第四條 本 敎會는 前條의 目的을 達成하기 爲하여 左의 事業을 行한다.
一. 白龍城 大宗師의 救國愛族의 業績을 宣揚敎化 한다.
二. 宗師의 三一運動 實記와 獄中記의 發刊 및 普及.
三. 宗師의 修行과 敎化事業의 普及.
四. 宗師의 遺文의 集大成과 普及.
五. 遺跡의 永久 保存.
六. 大覺寺는 永久히 寺院으로서 維持 經營한다.
七. 其他 目的 遂行에 必要한 事業.
第二章 資産及 經理
第五條 本 敎會의 資産은 基本資産과 普通資産으로 區分管理159) 한다.
基本資産은 別紙目錄의 資産과 將來 基本資産으로 編入되는 資産으로 하고 普通資産은 其外資産으로 한다.
-
47p.右
第六條 本 敎會의 基本資産은 永久히 保存함을 原則으로 한다. 但, 本 敎會의 發展上 必要하다고 느꼈을 時엔 理事會에 依하여 其他의 形式으로 變更 할 수 있다.
第七條 本 敎會의 經費는 基本財團에서 生하는 果實과 龍城門徒會員의 會費 및 喜捨 其他收入으로서 充當한다.
第八條 本 敎會의 會計年度는 每年 陰曆 二月 二十四日부터 翌年 二月 二十三日까지로 한다.
第九條 豫算 및 決算은 監査를 受한 後 理事會의 承認을 得하여야 한다.
第三章 任員 및 任期
第十條 本 敎會의 任員은 左와 如한다.
一. 理事長 一人
二. 理事 六人
三. 監事 二人
-
47p.左
四, 評議員 二三人
必要에 依하여 理事中에서 常務理事 一人을 選任 할 수 있다.
評議員中에서 評議員 議長 一人을 選出 한다.
第十一條 本 敎會의 理事 및 監事의 任期는 六年으로 한다. 但, 本 敎會 設立當初의 理事中 三名과 監事 一名은 各各 三年으로 한다.
第十二條 理事 및 監事는 任期完了 一個月 前에 評議員會에서 選出하여 主務長官의 認可를 得한 後에 就한다.
第十三條 本 敎會의 理事長 및 理事는 十年以上 實修行에 公認을 받고 있으며 僧侶基本資格인 八大原則을 遵守하여오는 比丘僧이어야 하며 特히 白龍城 大宗師의 門徒에 限한다.
第十四條 理事長은 本 敎會를 代表하고 事業을 統理하며 理事會의 議長이 된다.
-
48p.右
第十五條 理事長 有故 時는 理事長이 指名한 理事가 일을 代行한다.
第十六條 理事는 理事會를 構成하고 本 敎會의 重要業務를 審誠 決定한다.
第十七條 監事는 理事會에 出席하여 意見을 陳述할 수 있으며 職務는 다음 같다.
一. 業務執行의 狀況監査
二. 財産 및 經理 狀況의 監査
三. 前 二項에 依하여 監査한 結果 不正을 發見 했을 때엔 理事會 또는 全務長官에게 報告한다.
四. 前項의 報告하기 必要할 時는 理事會 召集을 要請하고 前項의 實施는 監事 全員의 合意로서 行한다.
第十八條 理事나 監事는 本 敎會가 經營하는 業體의 職員을 兼할 수 없다.
-
48p.左
但, 不得已 兼할 境遇에는 任期中에 限하여 理事나 監事의 權限은 停止된다.
第十九條 理事나 監事中 闕位가 有할 時는 闕位日로부터 二個月 以內에 理事長은 評議員 議長에게 補選要請을 하여야 하며 評議員會에서는 直時 補選을 實施한다. 補選된 任員의 任期는 前任者의 殘任期間으로 한다.
第四章 理事會
第二十條 理事會는 理事長과 理事로서 構成한다.
第二十一條 理事會의 決議事項은 다음과 같다.
一. 財産의 取得 및 維持 管理에 關한 事項
二. 事業 運營 및 計劃에 關한 事項
三. 收支豫算160) 以外의 義務負担 又는 權利 抛棄에 關한 事項
-
49p.右
四. 本 敎會가 經營하는 業體의 責任者 進退에 關한 事項
五. 其他 重要 事項
第二十二條 理事會는 每年 一回 陰曆 二月 二十四日(宗師 誕辰日)에 定期理事會를 召集하며 또는 理事長이 必要하다고 認定할 時 및 本 規約 第十七條 四項에 依한 監事의 要請이 有할 時 又는 評議員會 議長이 要請할 時에는 二十日 以內에 理事會를 召集하여야 한다.
第二十三條 理事會 召集은 開會 十五日 前에 書面으로서 日時, 場所 및 會議目的을 明示하여 各 理事 및 監事에게 客觀的으로 보아 必着의 方法으로 通知하여야 한다.
第二十四條 理事會에 附議할 事項의 內容이 簡易 또는 緊急 할 時에는 面書附議로서 理事會의 決議를 代할 수 있다. 但, 人事進退에 關한 事項은 그렇지 않다.
-
49p.左
第二十五條 理事會는 構成 現員 過半數 以上의 出席으로 開會하고 出席 會員 三分之二 以上 決議로서 決定한다. 但, 票決은 必히 無記名 秘密 投票 方法에 依한다.
第五章 評議員會
第二十六條 評議員會는 評議員 二十三人으로서 構成하고 議長 一人을 選出한다.
第二十七條 本 敎會의 評議員은 五年 以上 修行을 公認 받고 僧侶基本資格인 八大原則을 遵守해 온 比丘僧이며 白龍城 大宗師의 門徒라야 한다.
第二十八條 本 敎會의 評議員 任期는 九年으로 한다. 但, 本 敎會의 設立 當初 評議員 中 十六名의 任期만은 四年 六個月로 한다.
第二十九條 本 敎會의 設立 當初의 評議員 選出은 白龍城 大宗師
-
50p.右
門徒中에서 實際로 修行한 比丘僧 最高法臘의 元老 順으로 三人이 合意해서 指名한다.
二代부터는 任期 滿了前 一個月內에 任期 滿了者를 除外한 構成 現員 三分之二 以上의 出席 下에 三分之二 以上으로 議決한다.
第三十條 本 敎會의 評議員會에서는 理事 및 監事를 選出한다.
第三十一條 評議員會는 三年 一回式 陰曆 二月 二十四日에 定期 評議員會를 召集하며 評議員議長이 必要하다고 認定할 時 또는 理事長의 要請이 有할 時 評議員 十人 以上의 要請이 有할 時 本 規約 第十九條의 境遇 議長은 三十日 以內에 臨時 評議員會를 召集하여야 한다.
第三十二條 理事나 監事의 處事가 本 敎會의 目的 遂行에 違背된다고 認定할 時는 評議員會에서 不信任 解任 할 수 있다.
-
50p.左
第三十三條 評議員 召集은 開會 十五日 前에 書面으로서 日時, 場所 및 會議 目的을 明示하여 各 評議員에게 客觀的으로 보아 必着의 方法으로서 通知를 하여야 한다.
第三十四條 評議員의 票決方法은 無記名 秘密 投票로서 必行한다.
評議員會는 構成 現員의 過半數 以上의 出席과 出席議員 三分之二 以上의 議決로 定한다.
第六章 解散
第三十五條 本 敎會는 永遠히 解散하지 못한다. 그 어떠한 條件에 處하더라도 亦是같다.
附則
第三十六條 本 敎會 第二條, 第三條, 第四條, 第十三條, 第十八條, 第二十七條, 第三十五條는 어떠한 事情으로라도 變更 改正 할 수 없다.
-
51p.右
第三十七條 本 敎會 第三十六條에 關係되지 않는 各 條項에 對하여서는 理事 全員 出席과 評議員會 構成 現員 三分之二 以上의 出席으로 合席해서 三分之二 以上의 議決로서 改正 修補 할 수 있다.
第三十八條 本 敎會의 業體 責任者의 任期는 三年으로 한다.
第三十九條 本 敎會 第四條 六項의 責任者는 理事會에서 選出해서 大韓佛敎曹溪宗(比丘僧團) 宗正의 任命을 받아야 한다.
第四◯條 本 敎會의 設立 當初 任員은 任期 滿了하는 年度의 陰 三月 二十三日을 任期滿了 期限으로 한다.
第四十一條 本 敎會 設立 當初의 任員 및 任期는 다음과 같다.
職位 任期 姓名 住所
理事長 六年 河東奎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二番地
理事 朴暢洙
-
51p.左
理事 六年 尹祥彦
李完圭
三年 朴承洙
金盛祐
表壽福
監事 六年 曺錦禫
三年 金智曉
-
52p.右
大覺敎會中央本部 規約
第一章 總則
第一條 本 敎會는 大韓佛敎曹溪宗 白龍城 大宗師 遺業을 保存하기 爲한 大覺敎라 稱한다.
第二條 本 敎會는 事務所를 서울特別市 鐘路區 鳳翼洞 二番地에 둔다.
第三條 本 敎會는 左의 各項을 目的으로 한다.
一, 三一運動 三十三人中의 一員이신 白龍城 大宗師의 民族正氣의 先覺的 自主精神을 永遠히 暢達한다.
二, 李朝 五百年間 被壓腐傷한 韓國佛敎의 大覺的 中興의 業績과 日帝의 植民地 宗敎政策에 對한 公明한 鬪爭精神의 崇高性을 千秋萬代에 保存發展해서 民族精彩의 主軸이 되어야한다.
三, 白龍城 大宗師의 敎旨에 따라 參禪修道하여 悟道見性을 爲主 한다.
-
52p.左
(공란)
佛祖源流海東譜
- 소장 ; 보광스님
-
0001_0128_a_01L佛祖源流海東譜派 印
詳夫威音王佛最初發明此道之後劫世界海難量古佛應世亦綿歷無窮不可思議故今之撰述斷自七佛而下如世之宗廟七代之列也原自西乾東震佛祖歷史昭載簡帖唯我朝鮮何其不明之甚也羅麗之時代佛法之盛不下支那三千里江山鍾聲相連者其崔公孤雲之說哉現今細考朝鮮法脈則但太古禪師麗末入支那受臨濟正脈淸珙和尙法印相承以來李朝佛法歷史尤甚不明也又喚惺之後見性通宗六七代泯矣傳法偈文無憑可考但工文學産業者之名相爲僧故也唯是欠哉
臨濟正脈三十一代孫釋龍城七佛毘婆尸佛 偈曰身從無相中受生猶如幻出諸形像幻人心識本來無罪福皆空無所住
等正覺
過去莊嚴劫第九百九十八尊人壽八萬歲出世說法三會侍者無憂子方應尸棄佛 偈曰起諸善法本是幻造諸惡業亦是幻身如聚沫心如風幻出無根無實性
九百九十九尊人壽七萬歲出世說法三會侍者忍行子無量毘舍浮佛 偈曰假借四大以為身心本無生因境有前境若無心亦無罪福如幻起亦滅
第一千尊人壽六萬歲出世說法三會侍者寂滅子妙覺拘留孫佛 偈曰見身無實是佛身了心如幻是佛心了得身心本性空斯人與佛何殊別
現在賢劫第一尊人壽五萬歲出世說法一會侍者善覺子上勝拘那舍牟尼佛 偈曰佛不見身知是佛若實有知別無佛智者能知罪性空坦然不怖於生死
第二尊人壽四萬歲出世說法一會侍者安和子導師迦葉佛 偈曰一切眾生性清淨從本無生無可滅即此身心是幻生幻化之中無罪福
第三尊人壽二萬歲出世說法一會侍者善友子集軍釋迦牟尼佛 偈曰法本法無法無法法亦法今付無法時法法何曾法
第四尊周昭王二十四年甲寅四月八日誕降父淨飯王母大淸淨普曜經云佛初生時放大光明照十方 世界地涌金蓮自然捧足東南西北各行七步觀察四方一手指天一手指地作師子吼天上天下唯我獨尊十九出家三十成道示衆曰夫出家沙門者斷欲去愛識自心源達佛本理悟無爲法內無所得外無所求不繫道亦不業結無念無作無修無證不歷諸位而自崇敬名之爲道如是說法四十九年此所以爲敎也後於多子塔前分半座靈山會上擧拈花拘尸那城泥連河測沙羅雙樹間入涅槃槨示雙趺此所以爲敎外別傳也壽七十九年穆王五十三年壬申二月十五日示寂侍者阿難子羅睺羅西天四七祖師
第一摩訶迦葉 偈曰法法本來法無法無非法何於一法中有法有不法
摩竭國人姓波羅門父飮澤母香志名迦葉波付法阿難持僧伽梨周孝王五年丙辰入鷄足山待慈氏出世也第二阿難 偈曰本來付有法付了言無法各各須自悟悟了無無法
王舍城人姓剎帝利父斛飯王佛之從弟尊者付法眼藏竟踊身虛空作十八變入風奮迅三昧入寂乃周厲王十一161)年癸巳歲也第三商那和修 偈曰非法亦非心無心亦無法說是心法時是法非心法
摩突羅國人亦名舍那婆斯姓毗舍多父林勝母憍奢耶在胎六年而生宣王二十二162)年乙未入寂第四優波鞠多 偈曰心自本來心本心非有法有法有本心非心非本法
吒利國人姓首陀父善意十七出家二十證果隨方行化每度一人以一籌置於石室付法已乃踊身虛空呈十八變然後復本座跏趺而逝以室內籌用焚其軀即平王三十一163)年庚子歲也第五提多迦 偈曰通達本法心無法無非法悟了同未悟無心亦無法
摩伽陀國人說偈已踊身虛空作十八變化火自焚其軀即莊王五164)年己丑歲也第六彌遮迦 偈曰無心無可得說得不名法若了心非心始解心心法
中印度人曾與提多同生梵天後入仙道有弟子八千經六劫遇師得道入師子奮迅三昧踊身虛空高七多羅樹却復本座化火自焚即襄王十五165)年甲申歲第七婆須蜜 偈曰心同虛空界示等虛空法證得虛空時無是無非法
北天竺國人姓頗羅墮獻如來寶座現執酒器吟啸行狂遇師自省投器出家入三昧示涅槃卽周定王十七166)年辛未歲也第八佛陀難提 偈曰虛空無內外心法亦如此若了虛空故是達真如理
迦摩羅國人姓瞿曇氏頂有肉髻辯捷無礙請師論義師曰論則不義義則不論乃欽伏出家現神變已却復本座儼然寂滅即景王十167)年丙寅歲也第九伏馱密多 偈曰真理本無名因名顯真理受得真實法非真亦非偽
提伽國人姓毗舍羅年已五十口未曾言足未曾履見師遽起禮拜說偈付法已即入滅盡三昧而般涅槃敬王三十三168)年甲寅歲第十脅尊者 偈曰真體自然真因真說有理領得真真法無行亦無止
中印度人本名難生處胎六十歲因號而後値伏馱尊者執侍左右未嘗睡眠脇不至席遽號脅尊者付法已即現神變而入涅槃化火自焚乃貞王二十七169)年己亥歲也第十一富那夜奢 偈曰迷悟如隱顯明暗不相離今付隱顯法非一亦非二
華氏國人姓瞿曇氏父寶身付法已即現神變湛然圓寂安王十九170)年戊戌歲也
第十二馬鳴 偈曰隱顯即本法明暗元不二今付悟了法非取亦非離波羅柰國人亦名功勝以有作無作諸功德最為殊勝付法已即入龍奮迅三昧挺身空中如日輪相然後示滅顯王四十二171)年甲午歲也第十三迦毗摩羅 偈曰非隱非顯法說是真實際悟此隱顯法非愚亦非智
華氏國人付法已即現神變化火自焚赧王三十六172)年壬辰歲也第十四龍樹 偈曰為明隱顯法方說解脫理於法心不證無瞋亦無喜
西天竺國人亦名龍勝乃造大智度論中論十二門論垂之於世付法訖入月輪三昧廣現神變復就本座凝然禪寂即秦始皇三十五年己丑歲也第十五迦那提婆 偈曰本對傳法人為說解脫理於法實無證無終亦無始
南天竺國人姓毗舍羅謁龍樹知是智人先遣侍者以滿缽水置於座前尊者睹之即一針投之而進欣然契會祖說偈已入奮迅定身放八光而歸寂滅前漢文帝十九年庚辰歲也第十六羅睺羅多 偈曰於法實無證不取亦不離法非有無相內外云何起
迦毗羅國人祖付法已安坐歸寂前漢武帝二十八年戊辰歲也第十七僧伽難提 偈曰心地本無生因地從緣起緣種不相妨華果亦復爾
室羅筏城寶莊嚴王之子生而能言常讚佛事七歲即厭世樂付法已右手攀樹而化奉全身建塔前漢昭帝十三年丁未歲也第十八伽耶舍多 偈曰有種有心地因緣能發萌於緣不相礙當生生不生
摩竭提國人姓鬱頭藍父天蓋母方聖嘗夢大神持鑑因而有娠凡七日誕肌體瑩如琉璃付法已踊身虛空現十八變化火光三昧自焚其軀前漢成帝二十年戊申也第十九鳩摩羅多 偈曰性上本無生為對求人說於法既無得何懷決不決
大月氏國婆羅門之子說偈已曰此是妙音如來見性清淨之句汝宜傳布後學言訖即於座上以爪指173)剺面如紅蓮開出大光明照耀四眾而入寂滅當新室十四年壬午也第二十闍夜多 偈曰言下合無生同於法界性若能如是解通達事理竟
北天竺國人智慧淵沖化導無量付法已不起於座奄然歸寂漢明帝永平十七年甲戌歲也第二十一婆修盤頭 偈曰泡幻同無礙如何不了悟達法在其中非今亦非古
羅閱城人姓毗舍佉父光蓋母嚴一付法已踊身高半由旬屹然而住復坐跏趺而逝後漢安174)帝十一175)年丁巳歲也第二十二摩拏羅 偈曰心隨萬境轉轉處實能幽隨流認得性無喜復無憂
那提國常自在王之子年三十遇婆須176)祖師出家說法偈已跏趺寂然奄化後漢桓帝十九年乙巳歲也第二十三鶴勒那 偈曰認得心性時可說不思議了了無可得得時不說知
月氏國人姓婆羅門父千勝母金光付法已現十八變而歸寂後漢獻帝二十年己丑歲也第二十四師子 偈曰正說知見時知見俱是心當心即知見知見即于今
中印度人姓婆羅門說偈已以僧伽梨密付斯多曰難不可以苟免獨留罽賓受害而終當魏齊王二十年己卯歲也第二十五婆舍斯多 偈曰聖人說知見當境無是非我今悟真性無道亦無理
罽賓國人姓婆羅門父寂行母常安樂付法已現于神變化三昧火自焚平地舍利可高一尺東晉明帝太寧三年乙酉歲也第二十六不如密多 偈曰真性心地藏無頭亦無尾應緣而化物方便呼為智
南印度人德勝王之太子177)付法已跏趺而逝化火自焚東晉孝武帝太元十三年戊子歲也第二十七般若多羅 偈曰心地生諸種因事復生理果滿菩提圓華開世界起
東印度人姓婆羅門幼失父母不知名氏號爲縷絡童子付法已即於座上起立舒左右手各放光明二十七道五色光耀又踊身虛空高七多羅樹化火自焚空中舍利如雨宋孝武帝大明元年丁酉歲也
-
0001_0132_b_01L中華六朝五派分流
初祖菩提達磨 偈曰吾本來茲土傳法救
迷情一花開五葉結果自然成
南印度香至王第三子也及香至王厭世眾皆號絕唯師於柩前入定經七日而出乃求出家本名菩提多羅改號菩提達摩178)者通大之義也告于尊者曰我既得法當往何國而作佛事尊者曰吾滅後六十七載當往震旦設大法藥直接上根慎勿速行後179)乃如其言乘舟至南海入梁武帝宮種種說法帝皆不省遂之魏於嵩山少林寺九載面壁乃遇二祖以如來正法眼藏吾今付汝汝當護持並授袈裟以爲法信有楞伽經四卷亦用付汝勿輕未悟一念面機便同本淂遂端居而逝即後180)魏孝靜帝天平三年丙辰歲十月五日也葬於態耳山也
-
0001_0133_a_01L世尊傳衣三義
一金襴寶衣佛佛傳授迦葉持入鷄足山以待龍花
二金襴補依祖祖相傳置南天竺國得滕王宮
三屈咰補依自迦葉來傳止于六祖
二祖慧可 偈曰本來緣有地因地種華生本來無有種華亦不曾生
累武牢人自幼志氣不群博涉詩書尤精玄理每歎曰孔老之敎禮術風規莊易之書未盡妙理不事家產好遊山水後181)覽佛書超然自得付依法曰宜處深山未可行化當有國難吾亦有宿累今要償之後182)果翟仲侃之難怡然委順時年一百七歲隋文帝開皇十三年癸丑三月十六日三祖僧璨 偈曰花183)種雖因地從地種花184)生若無人下種花185)地盡無生
徐186)州人初以白衣謁二祖既得度傳法隱于皖公山屬後187)周武帝廢敎有沙彌道信年始十四來禮師曰願和尚慈悲乞與解脫法門師曰誰縛汝曰無人縛師曰何更求解脫乎信於言下大悟服勞九載知其緣熟乃付依法隋煬帝大業二年丙寅十月十五日合掌入終四祖道信 偈曰花188)種有生性因地花189)生生大緣與性合當生生不生
蘄州人姓司馬生而超異幼慕空宗行化黃梅縣路逢一小兒仍以度之乃傳衣付法高宗永徽二年辛亥入寂年七十二五祖弘忍 偈曰有情來下種因地果還生無情既無種無性亦無生
蘄州黃梅人周氏子有一智者歎曰此子闕七種相不逮如來遇信大士得法行化於破頭山付法六祖能居士受畢問法則旣受衣付何人師曰昔達摩初至人未之信故傳衣以明得法今信心已熟衣乃爭端止汝身不復傳也卽入室安坐而逝高宗上元二年乙亥歲也六祖惠能 偈曰心地含諸種普雨悉皆萌190)頓悟華情已菩提果自成
新州人姓盧氏一日示衆曰諸善知識各各淨心聽吾說法汝等諸人自心是佛更莫孤疑外無一物能建立皆是本心生萬種法吾受忍大師衣法今爲汝等說法不付其衣盖汝等信根已熟決定無疑堪任大事復謂衆曰其法無二其心亦然其道淸淨亦無諸相汝等不用觀靜及空其心次心本爭無可取捨各自努力隨緣好去吾涅槃時至珎重即跏趺而逝於是山林變白鳥獸哀鳴唐睿宗先天元年壬子八月三日南嶽懷讓 偈曰心地含諸種遇澤悉皆萌三昧花191)無相何壞復何成
全192)州人姓杜氏年五十193)出家毗尼藏一日自歎曰夫出家者為無為法天上人間無有勝者乃直指詣曹溪參六祖祖曰甚麼處來曰嵩山來祖曰甚麼物恁麼來師無語遂經八年忽然有省乃白祖曰說似一物即不中祖曰還假修證否曰修證卽不無污染即不得祖曰只此不污染即不得祖曰只此不污染諸佛之所護念汝既如是吾亦如是師示馬祖曰一切法皆從心生心無所生法無所住若達心地所作無礙唐玄宗天寶三年甲申八月十一日入寂馬祖道一 偈曰心地隨時說菩提亦祗寧事理俱無礙當生即不生
漢州什邡人姓馬氏容貌豊偉牛行虎視引舌過鼻足有二輪文遇懷讓禪師密受心法始自建陽遷臨川次南康所至聚徒說法唐德宗貞元四年戊辰歲二月四日入寂百丈懷海 偈曰本無言語囑强以心法傳汝旣受持去心法更何言
福州長樂人姓王氏丱歲離塵三學該鍊屬馬祖闡化江西師傾心依附會學千百西堂智藏禪師同號入室二大師為角立焉唐憲宗元和九年壬辰正月十九194)日入寂黃蘗希運 偈曰病時心法在不病心法無吾所付法心不在心法道
福州唐人姿貌豊碩游方晩趍江西參馬祖値祖歸寂乃見百丈問馬祖平日機緣丈擧再參馬祖掛拂話師於言下大悟曰子他日嗣馬祖去師曰不然今日因師擧得見馬祖大機之用若嗣馬祖喪我兒孫丈曰如是如是見與師齊減師半德見過於師乃堪傳受唐宣宗大中三年己巳入寂臨濟義玄 偈曰至道無揀澤本心無向背便如此承當春風增瞌睡
曺州南華人姓邢氏參黃蘗問佛法的的大意三度被痛棒因而辞之蘗敎往高安灘頭今參大愚師見愚大徹玄旨再面黃蘗師資道合當時臨濟宗風冠干天下唐咸通七年丙戌四月十日入寂勅謚慧照禪師興化存獎 偈曰大道全自心亦非在心求付汝自心道無喜亦無憂
魏府人爲后唐莊宗師莊宗謂師曰朕收大梁得一顆無價明珠未有人酬價師曰請陛下珠看帝以手舒開襆頭腳師曰君王之寶誰敢酬價龍顔大悅賜紫衣師號皆不收同光二年甲申入寂南院慧顒 偈曰我今無法說所說皆非法今付無法法不可住干法
河北人亦云道顆上堂曰赤肉團上壁立千仞又曰諸方只具啐啄同時眼不具啐啄同時用周太祖廣順二年壬子入寂風穴延沼 偈曰無說是眞性195)其說原無說我今說付196)時說說何曾說
飾杬人姓劉氏上堂曰夫參學眼目臨機直須大用現前莫自拘於小節設使言前薦得猶滯殼迷封從然句下精通未免觸途狂見觀汝諸人從前依他學解迷昧兩蹊而今與汝一齊掃却直敎箇箇作大獅子兒吒呀地哮吼一聲壁立千仞誰敢正眼覷著若覷著卽瞽却一目也宋太祖開寶六年癸酉入寂首山省念 偈曰自古付無說我今197)亦無說只此無說心諸佛所共說
萊州人姓狄氏得度於南禪寺爲人簡重有精識故叢林多敬之一日穴問如何是世尊不說二師曰動容楊古路不墮悄然機宋太祖淳化四年示寂汾陽善昭 偈曰虛空無形像形像非虛空我所付心法空空空不空
太原人姓兪氏器識沉邃不緣飾有大志於一切文字不由師訓自然通曉宋仁宗大聖二年甲子入寂慈明楚圓 偈曰虛空無面目心相亦如然卽此虛空心可稱天中天
全州淸湘人姓李氏年二十二依城南湘山隱靜寺得度公連眉秀目頎然豐碩與守芝谷泉俱結伴入洛中汾陽道望冠于天下決志親依宋仁宗慶曆元年辛巳正月五日示寂楊岐方會 偈曰心体如虛空法亦備虛空證得心空理非法非心空
袁州宜春人姓冷氏少警敏滑稽談劇有味閱經聞法心融神會能痛自折節依參老宿宋仁宗慶曆六年丙戌示寂白雲守端 偈曰道我元198)無我道心元199)無心唯此無我法相契無我心
衡州人姓葛氏幼工翰墨不喜處俗依茶陵郁山主剃髮年二十餘參顒禪師顒沒楊岐會公嗣居焉一見端奇之毎與語終夕宋神宗熙寧五年壬子入寂五祖法演 偈曰真我本無心真心亦無我契此真真心我我何曾我
錦州巴西人姓鄧氏見白雲端禪師大徹玄旨乃呈一偈曰山前一片閑田地叉手丁叮寧問祖翁幾度賣來還自買為憐松竹引清風宋徽宗崇寧三年甲申示寂山摧石隕四十里內岩谷震吼圓悟克勤 偈曰得道心自在不得道憂惱付汝自心道無喜亦無惱
彭州崇寧人姓駱氏依妙寂院自省落髮受具參法演禪師大徹玄旨當時圓悟敷揚宗風冠干天下南宋高宗紹興五年乙卯八月五日示寂春秋七十有三坐五十五夏謚眞覺禪師塔曰寂照虎丘紹隆 偈曰天晴雲在天雨落滉在地秘200)密付汝心心法是這是
和州含山人又按續指月鋶則吉安雙溪人■九歲出家見圓悟禪師師資道合二十年侍師巾甁盡得圓悟之秘南宋高宗紹興六年丙辰五月八日示寂住世六十年坐四十五夏應庵曇華 偈曰佛用眼觀星我用耳聽聲我用與佛用我明汝亦明
蘄州黃梅人姓江氏年十七投邑之東禪寺出家參紹隆大悟祖道南宋孝宗隆興元年壬子六月十三日奄然趺坐而化春秋六十一夏臘四十三密庵咸傑 偈曰佛與衆生見 元本不隔線 付汝付自心201) 非見非不見
福州人姓鄭氏母夢廬山老僧入舍而生自幼穎悟出家後究心禪理徧參知識後謁曇華大徹玄旨師晩年退居天童之太白峰鉗錘訓誨學者雲集後無疾坐遊門人建塔於山之中峰破庵祖先 偈曰我若不見時汝應不見見見見非自見自心常顯現
廣安人姓王氏依羅漢院德祥出家參密庵大悟祖道到處開堂學者如雲後於慧雲開書訖。端坐而逝山凡六年202)坐道場嘉定四年六月九日示寂偈曰末後一句已成忉怛寫出人前千錯萬錯書訖端坐而逝無準師範 偈曰眞理直如絃何默更何言我今善付囑表心本無得
梓橦人姓雍氏九歲出家侍破庵同游石筍庵庵主請益破庵曰用捉他作甚麽如風吹水自然成紋師侍傍忽然有惺淳祐戊申秋師築室明月池上榜曰退耕便歸方丈集衆談笑自若偈曰來時空索索去也赤條條更要問端的天台有石橋謚曰圓照雪岩惠朗 偈曰本無迷悟人迷悟自家討203)記得少壯時而今不覺老
閩之漳州人參臨濟痛棒話忽然有呈偈無準曰通身只是一張口百煉爐中輥出來斷送夕陽歸去后又催明月上樓臺后經十年見古栢子始見無準老人立地處大撤玄旨咸淳己巳元帝賜賚尊禮至元丁亥寄竹箆塵拂庵然而逝及庵宗信 偈曰此心極廣大虛空比不得此道眞如是受持休外覓
不知氏名住持建陽庵敎化大行淸珙來問甚麽處來師曰天目如何示人珙云參萬法歸一話師曰汝作麽生會珙無語師曰此是死句什麽害熱病底敎汝與麽一日珙入室師再問前話珙曰上馬見路師大呵一聲而逐之珙見風亭豁然有省師言辞峭峻非作家者難以氷當久住道場是稱道場和尙大明弘武建元師無疾而逝■維得五色舍利塔於天湖之原石屋204)淸珙 偈曰至大是此心至聖是此法燈燈光不差了此心者達
蘇州常熟人姓溫氏首參高峰示萬法歸一話服勤三年無所發明後至建陽庵參宗信和尙大撤玄旨至正問朝庭降香幣皇后賜金■法衣一日集衆書偈曰靑山不著臭屍骸死了何須掘土埋碩我也無三昧火光前絶後一堆柴擲筆而逝勅謚佛慈慧照禪師建塔于天湖宗信塔之左級
-
0001_0137_b_01L海東心派
太古普愚 偈曰心中有自心法中有至法我今可付囑心法無心法
洪州人姓洪氏父諱陽公母鄭氏夢日輪入懷旣已有娠大德五年辛丑九月二十■日生師年十三投檜岩廣智禪師出家三十七歲冬寓栴檀園參無字話明年正月七日五更豁然大悟作頌曰趙州古佛老坐斷千聖路吹毛覿而提通身毛孔竅狐鬼絶潛踪翻身師子露打破牢■後淸風吹太古至正丙戌師年四十六逝燕都至胡州霞霧山石屋205)禪師具進所得且獻太古庵歌石屋206)深器之問日用事師答訖徐又啓曰未知此外還更有事否石屋207)云老僧亦如是三世佛祖亦如是遂以袈裟表信曰老僧今日展脚睡矣石屋208)臨濟十九世孫也還本國封爲國師壬戌十二月十七日感微疾二十三日召門人曰明日酉時吾當去矣請知郡封國師■及辞世狀而給之沐浴端坐說偈而逝舍利無算進百杖干內上益加敬重興寺之東謚曰圓證幻庵混修 偈曰一道不心光三際十方明何如明白中有明有不明
字無作幻庵其號姓趙氏楊州豊壤人元仁宗延佑七年高麗忠肅王七年庚申生明太祖洪武二十五年我太祖卽位元年壬申入寂謚曰普覺玄陵請留辞之賜國師智雄尊者龜谷覺雲 偈曰我無法可付汝無心可受無付無受心何人不成就
湖南龍城人尹紹宗諌斥粲英故隱避不市或云小隱云云玄陵函達摩折芦渡江圖普賢六牙白象圖賜之又手書龜谷覺雲四字兼賜二十二字法號李牧隱爲之讚云矣述拈頌說話三十卷下筆舍利丁丁大振禪風碧溪淨心 偈曰心卽能知心法卽可知法今所付法心非心亦非法
金山崔氏遠嗣龜谷又入明國傳臨濟宗下摠統和尙法印而來高麗恭讓王時辞退後因沙汰長髮畜妻入黃岳山隱居于古紫洞物罕里晦跡焉將啓手足傳■碧松傳敎淨蓮碧松智嚴 偈曰祖祖無法付人人本自由汝受無付法急着傳於後
號野老取居堂曰碧松姓宋氏父福生扶安人母王氏夢梵僧設禮寄宿因而有娠天順八年甲申三月十五日生年二十八鷄龍山上草庵參祖證大師投簮落髮次尋淨心禪師悟西來密旨正德戊辰入金剛山妙吉祥看大慧語錄至無字話打破柒桶肅靖甲午十一月一日辰時端坐入寂茶毘之日出頂骨一片樹石鐘頭流義神南麓享年八十一法臘四十四也芙蓉靈觀 偈曰眞性本無性眞法本無法了知無法性何處不通達
號隱庵禪子嶺南晋州人成化二十一年成宗十六年乙巳七月七日生中宗六年辛未四月十四日入寂壽八十八臘七十二收靈骨竪浮屠頭流山燕谷寺淸虛休靜 偈曰非法非非法非性非非性非心非非心付汝心法竟
久住香山故稱西山姓完山崔氏安州人父世昌母金氏夢一尺琉璃甁從天降入懷又老婆揖曰脴胎丈夫男兒故來賀因以有娠中宗庚辰三月十六日生隨完山宰朴祥讀書淸凉山圓岩寺朞年朴祥還京師入智異山依能仁大師落髮於圓通庵參芙蓉大師傳心焉壬辰亂有大功宣廟封折衡將軍又賜國一都禪師禪敎都摠扶宗樹敎普濟登階師乃臨濟二十五世孫也臨濟正脈傳來東土大化人天其門人有玩虛玄賓松雲逍遙鞭羊普應靜觀霽月詠月松軒中觀震黙秋月騎虛等皆得骨髓甲辰正月二十二日謂門人曰明日亥時吾去矣及期索筆書曰千計萬思量烘炉一奌雪泥牛水上行大地虛空裂投筆就佛殿禮三拜卽入寂壽八十五法臘六十三舍利二枚奉安于普賢寺懶翁之級頂骨定楡岾寺鞭羊彦機 偈曰師傳拈花宗示我微笑法親手分付汝持奉徧塵刹
姓張氏竹山人珀之子母李氏夢日月而娠萬曆辛巳七月生幼從玄賓受具戒稍長歸西山受心法遂南遊參證禪長老以充舊學或楓岳或妙香留住講堂廣演禪敎受以解之者難以盡記甲申五月十日感微疾而化壽六十四法臘五十三臨化付囑門人顔色不變旣化異香滿室越七日茶毘得頂骨於火叢中門徒數百齊誠三晝夜後又得銀色舍利五枚普賢寺南麓樹石鍾而藏之竪碑于楓岳西山碑後楓潭誼諶 偈曰得本無所得傳亦無可傳今付無傳法東西共一天
姓鄭氏京畿通津人器量宏深聰慧絶倫三藏法無不通解俗文平生不對專以頓悟爲心扶樹宗旨寔爲海東中興之祖弟子敎百人得傳奧旨者四十八人收舍利立浮屠于金剛表訓寺白華庵又立碑月潭雪霽 偈曰無傳無受法無傳無受心付與無手者掣斷虛空觔
喚惺志安 偈曰沿流一段事竟無頭與尾付與師子兒哮吼滿大地
諱志安號喚惺字三諾俗姓鄭氏春川人以顯宗甲辰六月初十日己丑時生十五出家落髮於龍門寺受具於霜峯得法於月潭擁正己酉七月初七日入寂壽六十六夏臘五十一碑在大芚寺錦溪元宇 偈曰沿流一段事頭正■■正暎■簷端敍明月■面■209)
字暮雲姓羅氏父脫綠母全氏入夕一僧授蓮花一枝入依中因有娠康熙十四年乙卯十月二十八日戌時生乾隆七年庚申二月二日召門人曰吾將逝矣汝等珍重言訖入寂壽六十六臘五十一臺山漏谷人也靑波慧苑 禪師 偈曰自從胡亂后藍醤少■得江南三月裡百花爛漫開
百忍泰榮 偈曰一人曾傳虛萬人■傳實星轉■■去無水不朝東
翫眞大安 偈曰本來無一事何事起波浪■脚打眠睡淸風過虛庭
枕虛處華 偈曰我相元不得畵也畵不畵水流花自開紅日滿空山210)
本淸州韓氏生于大頭里入寂于全州郡鳳翔面鶴林庵草愚永瑄 偈曰法法元不法不法何法法法法心心法日落月又東211)
本星州姓都氏生于連山郡郡內面校村年五十九壬辰六月二十日入寂于錦山郡寶石寺南湖幸準 偈曰汝觀虛空性敢道有傳授空空空不空道火不燒口
本度江金氏生于全州龜東面龜尾里壬子十二月十二日龍城震鍾 偈曰佛祖元不會假說爲傳心雲門胡餠團鎭州蘿蔔長
細考禪宗師師相傳法脈則傳法偈文昭然相承嗅惺之後無憑可考名■俱虛汚穢禪宗與諸禪師會于如如居士之軒討論這般事意旨相合体碧溪遠嗣龜谷之意以喚惺爲嗣法師後之兒孫傳法偈文代代詳記相傳可也光武元年甲子五月初八日生于南原郡竹林村姓白氏父諱南賢母密陽孫氏年十六出家依伽倻山海印寺華月和尙剃髮受沙彌戒於相虛和尙三十一受具足戒菩薩戒於禪谷律師壬辰八月始自行脚參禪林智識又佛祖未曾傳我亦無所得打破虛空骨忽地霹靂起
覓雲淨心西師間不知幾代削去震鍾喚惺之間七師削去矣然但工文字或專産業者但從權道以七師承脉耳
二九五一甲子四月二十八日不安左齒已而紫金色舍利一枚自出左齒間其色甚光潤其■如佛頭其後三次放光緇素倍信皈仰矣己卯二月二十一日示疾三日仝月二十四日寅時入寂年七十七臘登六十二辛巳十月日塔碑奉安於海印三藏譯解文廣布於世語錄傳世無窮矣
龍城→東山
→趙錦浦(后에 定이나 死后 다시 東山으로)
① 東山은 幻鏡으로 부처 靈峰暎珠
② 慈雲스님 받은 傳法偈曰
庭前栢樹子
儼然冠山林
身帶紺靑色
葉覆須彌山
수행이력서(조병구, 1954.1.10)
- 소장 ; 김광식
-
0001_0142_a_01L修行履歷書
本籍 慶南 梁山郡 下北面 芝山里 五八三 番地
住所 釜山市 新昌洞 00 六番地
曺秉球
檀紀 四二四0年 一0月 拾五日生
一, 得度 檀紀 四二六0年 二月 二三日 梁山郡 下北面 通度寺에서 方漢岩 禪師를 師로 하여 得度함
一, 受戒 檀紀 四二六0年 二月 二三日 梁山郡 下北面 通度寺에서 宋雪牛 禪師를 師로 하여 沙彌十戒 大小乘戒를 受持함
檀紀 四二六一年 一0月 一三日 京畿道 楊州郡 望月寺에서 白龍城 禪師를 師로 하여 比丘戒를 受持
一, 度牒 檀紀 四二六二年 一月 三0日 梁山郡 通度寺에서 度牒을 受持함
一, 修學 檀紀 四二六二年 三月 梁山郡 通度寺 佛敎傳修學校 卒業
同 四二六四年 三月 梁山郡 通度寺 佛敎專門講院 卒業
同 四二七0年 三月 京都 臨濟專門學校 卒業
一, 安居 檀紀 四二七0年 七月 一五日 梁山郡 通度寺 禪院에서 首先安居 成就 以來 一0歲를 成滿함
一, 法階 檀紀 四二七一年一 一0月 一五日 梁山郡 通度寺에서 大德法階를 稟受함
一, 就職 檀紀 四二六四年 一0月 慶北 義城 布敎師 就任
同 四二六六年 五月 梁山郡 通度寺 巡廻 布敎師 就任
同 四二七一年 四月 梁山郡 通度寺 佛敎傳修學校 敎師 就任
檀紀 四二七八年 九月 梁山郡 通度寺 敎務에 就任
同 四二七九年 九月 梁山郡 普光中學校 敎師에 就任
同 四二八一年 四月 佛敎 慶南敎務院 布敎師 就任
同 四二八六年 一月 佛敎 慶南敎務院 監務部長 就任
一, 賞罰 共히 無함
右와 如히 相違가 無함
檀紀 四二八七年 一月 十日 右 曺秉球
右 曺秉球 印
수행이력서(이종억, 1954.4.7)
- 소장 ; 김광식
-
0001_0143_b_01L修行履歷書
本籍 釜山市 草梁洞 一0五六番地
住所 東萊郡 北面 靑龍理 五七
李鐘億
檀紀 四二三三年 一0月 二二日生
一, 得度 四二四六年 四月 八日 東萊郡 梵魚寺에서 得度
一, 度牒 四二五年二 一月 二二日 梵魚寺 住持로부터 度牒를 受함
一, 受戒 四二四六年 四月 八日 梵魚寺에서 沙彌戒를 受함
四二四九年 三月 一五日 梵魚寺에서 比丘戒를 受함一, 修學 四二五二年 三月 二五日 梵魚寺 地方學林 修了
四二五六年 三月 二五日 梵魚寺 講院에서 四敎科 卒業一, 安倨 四二七五年 七月 一五日 梵魚寺 禪院에서 首先安居 成就
四二六一年 三月 二0日 白羊寺 講院에서 大敎科 卒業
四二六四年 十二月 一二日 東京 生理療法에硏究所에서 生理學士 學位 取得
四二六五年 十二月 二0日 東京 指壓本院에서 醫療師 資格 得
四二六八年 八月 一日 東京 醫學協會 大學 經 療醫學部 卒業
四二七三年 三月 一六日 京城 佛敎專門學校 卒業
四二八年0年 七月 一五日 梵魚寺 禪院에서 安居 六夏 成滿一, 法階 四二五七年 七月 九日 梵魚寺에서 大禪 法階 稟受
四二七0年 七月 一五日 梵魚寺에서 中德 法階 昇進一, 就職 四二六一年 三月 一六日 京城府 大覺敎堂 布敎師 被任
四二七三年 七月 一五日 梵魚寺에서 大德 法階 昇進
四二六二年 三月 二0日 仁川 光明學校長에 被任一, 賞罰 共히 無함
四二六六年 三月 六日 釜山 濟家敎堂 布敎師 被任
四二六九年 一月 四日 梵魚寺 巡廻 布敎師 被任
右와 如히 相違 無함檀紀 四二八七年 四月 七日
右 李鐘億 印
신세순(소천) 이력서(1955.11)
- 소장 ; 김광식
-
0001_0145_a_01L履歷書
本籍 서울特別市 種路區 積善洞 一三一
住所 同 鳳翼洞
姓名 申世淳 法名 韶天檀紀 四二四八, 三, 二七 徽文義塾을 卒業
生年月日 檀紀 四二三一年 二月 一日
學力 及 略歷
四二五一, 三, 八 滿洲 北間島 軍政署 士官學校 卒業
四二六一, 三, 一 北京大學 文學科 卒業
四二六二, 三, 一 三一運動을 契機로 獨立運動에 加擔함
四二六三, 二, 北路軍政署에 現役으로써 報務함
四二五七, 一0, 金剛山에 入山修道함과 同時 佛敎經典을 獨身 硏究함
四二八五, 四, 一五 東萊 梵魚寺에서 白龍城을 師로 하야 涅度
四二八五, 四, 一五 同時에 同寺에서 白龍城을 師로 하야 具足戒를 受함
四三七0, 四, 一五 定慧禪院에서 首禪安倨 邇來 十三 夏를 成滿함
윤주일 이력서
- 소장 ; 한국동양학연구원(이동호)
-
출신 ; 전남
생년월일 ; 단기 4288(1895) 11월 18일
본적 ; 全南 康津郡 城田面 挑林里
현주소 ; 광주시 대의동 97번지
4243년(1910) 3월 강진 사립 금릉학교 졸업
4246년(1913) 3월 경성 사립 중앙학교 졸업
4월 경성 인사동 불교포교당에서 백용성 화상의 보살계를 받고 금강경 원각경을 수학하였고 한용운 화상에게 기신론 능엄경을 수학하다.
4250년(1917) 4월 평양불교청년회를 창립 회장 피선
4251년(1918) 3월 경성에서 조선불교청년회와 유신회를 발기
창립 대표간사로 피선.
4254년(1921) 2월 평양고아원 설립 대표이사 겸 원감 23년간 근무
4254년(1921) 4월 평양 사립 명성학교 설립 교장 피임 후 20년간 근무
4281년(1948) 3월 경선 선학원과 불교거사림에서 강사로 근무
4285년(1952) 4월 광주 불교선우회 강사로 근무중
4287년(1954) 5월 전남대학교 문리과대학 시간강사를 촉임함
4288년(1955) 6월 전남대학교 문리과대학 전임강사를 촉임함
龍城大和尙祭文
- 소장 ; 보광스님
-
0001_0147_a_01L龍城大和尙 忌祭
午前像前上供大衆禮 三拜 維那先擧 大衆合掌 同和
南無香雲蓋菩薩摩訶薩 三稱
南無禪定宗主龍城震鍾大和尙 三稱
楞伽阿跋多羅寶經 一切佛語心品
不生句生句。常句無常句。名相句。無名相句。住異句非住異句。刹那句非刹那句。自性句離自在句。空句不空句。斷句不斷句。邊句非邊句。中句非中句。常句非常句。緣句非緣句。因句非因句。煩惱句非煩惱句。愛句非愛句。方便句非方便句。巧句非巧句。淨句非淨句。成句非成句。譬句非譬句。第子句非第子句。師句非師句。種性句非種性句。三乘句非三乘句。所有句無所有句。願句非願句。三輪句非三輪句。標相句非標相句。有品句非有品句。俱句非俱句。緣自聖智現法樂句非現法樂句。刹土句非刹土句。阿■(6)句非阿■(6)句。水句非水句。弓句非弓句。實句非實句。數句非數句。神通數句非神通數句。明句非明句。虛空句非虛空句。雲句非雲句。工巧伎術明處句非工巧伎術明處句。風句非風句。地句非地句。心句非心句。施設句非施設句。自性句非自性句。陰句非陰句。衆生句非衆生句。慧句非慧句。涅槃句非涅槃句。爾燄句非爾燄句。外道句非外道句。荒亂句非荒亂句。幻句非幻句。夢句非夢句。燄句非燄句。像句非像句。輪句非輪句。揵闥婆句比揵闥婆句。天句非天句。飮食句非飮食句。婬欲句非婬欲句。見句非見句。波羅密句非波羅密句。戒句非戒句。日月星宿句非日月星宿句。諦句非諦句。果句非果句。滅起句非滅起句。治句非治句。占相句非占相句。支句非支句。巧明處句非巧明處句。禪句非禪句。迷句非迷句。現句非現句。護句非護句。族句非族句。仙句非仙句。王句非王句。攝受句非攝受句。寶句非寶句。記句非記句。一闡提句非一闡提句。女男不男句非女男不男句。味句非味句。事句非事句。身句非身句。覺句非覺句。動句非動句。根句非根句。有爲句非有爲句。無爲句非無爲句。因果句非因果句。色究竟句 非色究竟句。節句非節句。叢樹葛藤句非叢樹葛藤句。雜句非雜句。說句非說句。毗尼句非毗尼句。比邱句非比邱句。處句非處句。字句非字句。
大慧是百八句。先佛所說。
汝及諸菩薩摩訶薩應當修學。
施甘露水眞言
나마수루파야 타타가타야 타댜타 옴 수루수루 프라수루 푸라수루 스바하 七遍
無量威德自在光明勝妙力加持飮食陀羅尼
옴 사르바 타타가타 아바로키테밤 바라바라 사바라 사바라 훔 七遍
普供養眞言
옴。가가나 사바바 바즈라호 七遍
-
0001_0152_b_01L維那云
유나가 장괴하고 합장하여 사뢰옵니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데 큰스님께서는 성품이 자비롭고 착하시며 모양에 내와 네가 없습니다。
규율을 총림에 세우시니 행동은 백장스님과 같고 법도를 선방에 행하시니 도덕은 만봉스님을 지납니다。
조계 육조 삼십 오대의 마음 등불을 전하여 바로 가르침을 표방하사 구름을 헤치고 달을 보이며 자취를 내리사 칠십 칠세의 세상 수명을 누리시니 먼지 구덩이를 버리여 순박함에 합하고 참됨에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기제사를 만나 문인들이 쪽보다 더 푸른 비유를 부끄러히 여기고 다못 가사 바루를 받은 은혜만 입어 대중과 같이 능가 아발다라 보경 일체불어심품을 외워 간절한 정성을 부처님께 올리고 인간 천상에 큰 법을 펼치어 이공덕으로 은혜갚음을 비나이다。
엎드려 원하옵건데 영축산 봉우리 앞에서 높이 묘각의 지위를 뛰어넘고 적광토깨끗한 속에서 형상없는 몸을 항상 즐기옵소서。
불기 이천오백년 이월 이십 사일 문인들 함께 아뢰옵니다。
대중이 같이 노래하되
금오산 천추의 밝은 달이요、
낙동강 만리의 푸른 파도로다
한 조각 고깃배 어느 곳으로 갔는가、
옛과 같이 흰 갈대꽃 속에서 잠자는도다。
南無禪定宗主龍城震鍾 大和尙 三稱 三拜
- 1)여년驢年 : ‘당나귀 해’라는 뜻으로, 인생에서 영원히 닥쳐오지 않는 시간을 의미한다. 12간지 가운데 여년이라는 이름이 없는 까닭에 만날 기한이 없음을 뜻한다.
- 2)보청普請 : 한 사찰의 승려들을 두루 청하여 함께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 운력運力이라고도 한다.
- 3)유나維那 : 절에서 승려의 규율規律 등을 관장하는 책임자를 말한다.
- 4)대홍大洪 : 송나라 때 선승인 대홍 보은大洪報恩(1058~1111)을 말한다.
- 5)정안正眼 :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준말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간직하는 깨달음, 혹은 이를 깨달은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 6)조주趙州 : 당唐나라 때의 임제종 승려로, 법호는 종심從諗(778~897)이다. 산동성山東省 조주曹州 출신으로, 어려서 조주曹州 호통원扈通院에 출가하고, 남전 보원南泉普願(748~834)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여러 지역을 편력하다가 80세부터 하북성河北省 조주趙州 관음원觀音院에 40년 동안 머물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시호諡號는 진제대사眞際大師이다.
- 7)파비巴鼻 : 파巴는 꼬리요, 비鼻는 머리를 가리킨다. 모든 것의 처음과 끝, 근거, 요긴하고 절실한 곳이란 뜻으로 쓰인다.
- 8)『선종송고연주통집禪宗頌古聯珠通集』 제9권에는 ‘累’가 ‘紹’로 되어 있다.
- 9)수성壽星 : 남극 하늘에 떠서 인간 수명의 연장 여부를 점친다는 별.
- 10)규성奎星 : 문장 또는 학문을 관장하는 별. 이 별이 밝으면 천하가 태평하다고 한다.
- 11)최두영崔斗榮(1851~1933) :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유학자. 호는 연강蓮岡이다. 전라북도 부안 출신.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통분을 금치 못하였다. 1913년에 매국노 이완용에게 치죄문治罪文을 발송하였고, 데라우찌 마사다케[寺內正毅] 조선총독과 전라북도 도지사 이두황李斗璜에게 “데라우찌[大正]는 원수이니, 데라우찌의 머리를 베어 우리 황제에게 바치리[血讐大正斬其大正之頭, 獻于我皇帝]”라는 항일 문서를 보냈다. 1914년에 그는 이 문서로 인하여 구속되어 3년형을 언도받았다. 이에 그는 옥중에서 단식을 하기도 하고, 목을 매어 죽으려고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였다.
- 12)화운和韻 : 남이 지은 시의 운자를 써서 답시를 지음.
- 13)박인호朴寅浩(1855~1940) :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가. 천도교 제4세 대도주大道主. 초명은 용호龍浩, 자는 도일道一, 도호는 춘암春菴. 충청남도 덕산 출신. 1883년 동학에 입도하였다. 이듬해인 1884년에 손병희孫秉熙와 함께 공주 가섭사迦葉寺에 들어갔다. 동학의 제2세 교조 최시형崔時亨에게 종교적 수행을 지도 받은 뒤 예산 지방에 포교 활동을 전개, 서산 지방의 박희인朴熙寅, 德七와 쌍벽을 이루었다. 1892년에는 전라도 삼례 교조신원운동에, 1893년에는 동학교도광화문복합상소 때 활약하였다. 1900년 동학의 경도주敬道主가 되어 손병희를 도와 동학을 재건하는 데 힘썼고, 1904년에는 동학교도들로 조직된 진보회進步會를 통해 갑진개화운동甲辰開化運動의 일선에 나섰다. 1907년 천도교 차도주次道主가 되었다. 1919년 3·1운동으로 일본 경찰에 잡혀 옥고를 치르고 다음해 10월 출옥하였다. 천도교 교부를 지도하다 일제가 대륙 침략을 감행한 이듬해인 1938년 멸왜기도滅倭祈禱를 지시한 것이 발각되어 많은 교도들이 잡힐 때 병석에서 심문을 받았다.
- 14)여병현呂炳鉉(1867~?) : 한국 YMCA 창설자의 한 사람. 황해도 출신. 1890년대에 일본에 건너가 수학하다가, 1896년 미국 하버드대학으로 유학하였으며, 5개월 후 다시 영국 할레이 대학에서 3년간 수학하였다. 1899년 귀국하여 배재학당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영국영사관의 통역관이 되었다. 1900년 6월 중국에 주재하던 국제 YMCA간사 라이언Lyon, D. W.이 우리나라에 YMCA를 창설하고자 왔을 때, 창설멤버의 한 사람이 되어 한성기독청년회를 만들고, 의사부議事部위원장이 되어 김규식金奎植·전덕기全德基·김필수金弼秀 등을 기독청년운동에 가담하게 하였다.
- 15)임규林圭(1867~1948) : 독립운동가. 호는 우정偶丁. 전라북도 익산출신. 3·1운동 때 중앙지도체 49인중의 1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일본에 가서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중학교 특별과를 거쳐 동 전수학교 경제과를 졸업한 뒤 서울의 여러 사립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다. 손병희孫秉熙 등이 주축이 된 거족적인 독립운동계획에 참여하여, 일본정부와 귀족원·중의원에 조선독립에 관한 의견서와 통고문 및 선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에 2월 27일 오후 7시 최남선崔南善으로부터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통고문 3통과 선언서를 받아 3월 1일 오후 4시경 일본 동경에 도착, 3일에 이 문서를 일본 수상과 의회에 우송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3월 9일 귀국 도중에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본국에 압송되었으나, 미결수로 1년 7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무죄로 석방되었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16)나용환羅龍煥(1863∼1936) : 독립운동가·천도교인. 호는 봉암逢菴. 평안남도 성천 출신. 23세 때 동학에 가담하여 나인협羅仁協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2월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참배를 위해 상경,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을 만나 3·1독립만세운동 계획을 듣고, 그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서 서명할 것을 동의하였다.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의 초안을 검토하였으며, 그들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성명을 열기하고 날인하였다.
- 17)나인협羅仁協 1872∼1951: 독립운동가, 천도교인. 호는 홍암泓菴. 평안남도 평양 출신. 19세에 동학에 가담하여 1894년 나용환羅龍煥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하였다. 그 뒤 천도교 도사道師로서 15년간 포교와 민중교화운동에 힘썼다.
- 18)이종일李鍾一(1858~1925) : 언론인·독립운동가. 본관은 성주星州. 호는 묵암默菴·옥파沃坡, 도호道號는 천연자天然子. 충청남도 서산 출신. 아버지는 이교환李敎煥이다. 1873년 문과에 급제한 뒤 1882년 2월 박영효朴泳孝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1894년에는 보성보통학교 교장으로 취임해 2세 교육에 힘썼다. 1896년 독립협회가 발족되자 그 막후에서 민권의식과 민권사상 고취에 노력했으며, 대한제국민력회大韓帝國民力會를 조직해 민권운동에 앞장섰다.
- 19)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으로 볼 수 있다.
- 20)강릉岡陵 : 만수무강을 축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시경》 〈소아小雅〉〈천보天保〉에 “산과 같고 언덕과 같으며, 산마루와 같고 구릉과 같다.〔如山如阜 如岡如陵〕”라고 하여 아홉 가지의 예를 들어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이른바 ‘구여지축九如之祝’이 나온다.
- 21)김경운金擎雲 : 임제종 관장[지금의 종정]으로 선암사 주지를 지냈다.
- 22)삼신산三神山 : 동해에 있다고 하는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을 가리키는데, 금빛 자라가 등으로 이 산을 지고 있다고 한다.
- 23)단양端陽 : 음력으로 5월 8일을 칭함, 단오는 음력으로 5월 5일인데 3일 넘었기에越三天 단양端陽으로 표기한 것임. 단오端午를 달리 부르는 말. 단端은 처음을 뜻하고 양陽은 중국 음양陰陽철학에서 기수奇數인 5를 뜻하므로 단양이라 하였다.
- 24)이회광李晦光(1862∼1932) : 일제 강점기 승려. 법명은 유선有璿‧사선師璿이다. 본적은 강원도 양양襄陽. 1881년 신흥사新興寺에서 출가한 뒤, 1907년 불교연구회 회장과 명진학교明進學校 4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1908년 불교연구회를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으로 개편하여 종정宗正에 취임하였으며, 1910년융희 4 일본 불교 조동종曹洞宗과 연합동맹을 체결하였다. 1912년 메이지[明治]천황 추모 봉도식 및 49제를 봉행하였으며, 1914년 조선불교선교양종각본산주지회의원 3대 원장을 겸임하였다. 1917년 일본불교시찰단원으로 일본을 시찰한 뒤, 1920년 일본 임제종臨濟宗과 조선 불교의 합병을 시도하였으며, 1924년 조선불교대회 대법정大法廷 대법사大法師로 활동하였다. 1924년 해인사 승려들의 탄원서로 주지직에서 사임한 뒤, 1926년 해인사 채무로 피소되었다. 이후 일선융화日鮮融和를 목적으로 불교개혁을 시도하다가 1932년 사망하였다.
- 25)단사丹砂의 기운이 어린다 : 단사丹砂는 도가에서 장생불사약長生不死藥이라고 하는 이른바 단약丹藥을 제조하는 재료이다. ‘단사 기운이 어린다’는 것은 곧 장수長壽를 상징하여 이른 말이다.
- 26)예향蕓香 : 향초香草의 이름이다. 다년생 식물로 아랫부분은 목질로 이루어졌고 늦여름에 노란 꽃이 핀다. 꽃과 잎의 향기가 매우 진하여 구충제와 구풍제로 사용한다. 당唐나라 양거원楊巨源이 지은 〈수영호원외직야서회견기酬令狐員外直夜書懷見寄〉 시에 “예향은 글자를 보호하고, 연참은 글을 잘 바친다.〔芸香能護字 鉛槧善呈書〕”라고 하였다.
- 27)김경봉金鏡峰: 통도사 선승.
- 28)오래전千春 : ①千年。形容歲月長久。②壽辰。
- 29)자비심慈航 : 부처님이 자비심을 가지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배의 운항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 30)하늘太淸 : 삼청三淸의 하나로, 도교道敎의 신선이 사는 천상天上의 세계이다. 천지의 맑은 원기元氣를 뜻하기도 한다.
- 31)유빈蕤賓 : 음력 5월을 달리 부르는 말. 고대 중국에서는 12律을 각각 일년 열두 달에 배속시켰는데, 첫 음인 황종黃鍾을 양陽의 기운이 처음 생기는 동짓달에 배속시켰기 때문에 유빈蕤賓은 음력 5월에 해당한다. 중국 한漢나라 반고班固의 『백호통의白虎通義』 「오행五行」편에 “5월을 유빈蕤賓이라고 하니 유蕤는 아래라는 뜻이고, 빈賓은 공경한다는 뜻이다. 이는 양陽의 기운이 위로 다하여 음陰의 기운이 비로소 나타나므로 그를 공경한다五月謂之蕤賓 㽔者下也 賓者敬也 言陽氣上極 陰氣始賓 敬之也.”라는 구절이 있다.
- 32)술잔霞觴: 하상. 신선들이 마시는 술잔.
- 33)도성紫陌 : 도성 근교의 큰 길을 말함.
- 34)화수花樹 : 원래의 의미는 ‘꽃나무’를 뜻하며, 引伸하여 ‘하나의 뿌리에서 많은 가지로 나와 달린 열매’란 뜻으로 ‘같은 문중’의 뜻을 나타낸다.
- 35)벌주잔兕觥 : 시굉. 외뿔소의 뿔로 만든 큰 술잔으로, 보통 벌주罰酒를 따르는데 쓰였다.
- 36)예림藝林 : 문인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칭한다.
- 37)남극南極 : ‘남극’은 인간의 수명을 맡았다는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을 말한다. 사람의 수명을 주관하는 별자리로, 보통 ‘장수’함을 축수祝壽할 때 쓰는 표현이다.
- 38)범궁梵宮: 본래 색계色界의 범천梵天에 있는 궁전인데, 흔히 사찰寺刹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사원寺院ㆍ불전佛殿ㆍ범왕궁梵王宮ㆍ범관梵關이라고도 한다.
- 39)태고적 마음太古心 : ‘태고적 마음’이란 곧 ‘태고인太古人 같은 마음’을 뜻하며 ‘태고시대 사람으로 자연적 심성과 정신, 어진 마음을 지닌 사람’의 의미를 지닌다. 이백李白의 증임명현령호제贈臨洺縣令皓弟 시에 “도잠은 팽택 영을 그만두고 떠나, 아득히 태고인의 마음을 지녀서, 오묘한 소리가 절로 곡조를 이뤘기에, 단지 줄 없는 거문고만 탔었다네.〔陶令去彭澤 茫然太古心 大音自成曲 但奏無絃琴〕”라고 하였다.
- 40)빈객白雲 : 구름이 자유로이 오고간다는 뜻으로, 사찰의 대중방 벽에 ‘白雲’이라고 써 붙여 빈객의 자리를 나타낸다.
- 41)해옥첨주海屋添籌. 장수를 축원할 때 쓰는 표현이다. ‘海屋’은 ‘신선이 사는 해상의 집’이라는 말이다. 노인 세 사람이 만나서 나이를 물어보니,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바닷물이 말라서 뽕나무밭이 될 때면 내가 산가지 하나를 내려놓는데, 그동안 내가 헤아린 산가지가 열 칸의 내 집에 벌써 가득 찼다.〔海水變桑田時 吾輒下一籌 邇來吾籌已滿十間屋〕”라고 했다는 ‘해옥첨주海屋添籌’의 이야기가 소식蘇軾의 《동파지림東坡志林》 〈삼로어三老語〉에 나온다.
- 42)노인성老人星 :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을 말한다. 사람의 수명을 주관하는 별자리로, 보통 ‘장수’함을 축수祝壽할 때 쓰는 표현이다.
- 43)고요히 재계靜齋 : 靜心齋戒.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청정한 규범을 잘 지킨다.
- 44)온갖 길상이 함께하여 : ‘연년익수延年益壽’란 한나라 사람들이 吉祥을 기원하며 수명이 늘어나 장수하길 기원하는 데 쓰던 말.
- 45)금속여래金粟如來 : 유마 거사의 전신前身이라고도 하나 경문에 근거가 없다.
- 46)청정한 사원上房 : 사찰의 스님들이 거주하는 요사를 말하며, 사찰을 의미하기도 한다.
- 47)조선朝鮮 : ‘계림鷄林’은 조선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 48)榴夏 : 음력 5월을 달리 부르는 말로 석류꽃이 피는 무더운 달이다. 유하榴夏, 유화월榴花月이라고도 한다.
- 49)감중련坎中連하다 : 팔괘八卦 가운데 6번째 괘. 감괘坎卦의 가운데 획이 이어져 ‘틈이 막혔다’는 뜻으로,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
- 50)학남鶴南 : 정우량鄭羽良 1692~1754. 조선 영조 때 사람.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자휘子翬, 호는 학남鶴南, 숙종 계묘년에 문과에 급제, 벼슬은 우의정右議政에 이름. 시호는 문충文忠. 균역청均役廳을 설치 할 것을 건의하다.
- 51)삼청계三淸界 :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이 사는 세계로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을 말한다.
- 52)봉래蓬萊 : 봉래산을 본떠서 송松. 죽竹. 매梅. 학鶴. 거북 같은 것을 만들어 한군데 모아 보기 좋게 장식해서 축하하는데 쓰는 물건.
- 53)수역壽域 : 인수지역仁壽之域의 줄인, 말로 천수天壽를 다하며 살 수 있는 태평성대를 가리킨다. 인수仁壽는 원래 《논어》〈옹야雍也〉의 “인자는 장수한다.〔仁者壽〕”는 대목에서 온 말이다.
- 54)철수鐵樹 : 철수는 잎이 자색紫色이고 줄기는 마디가 촘촘한 구절창포九節菖蒲와 같은 식물이라고 하기도 하고, 소철蘇鐵을 말한다고도 한다. 열대식물이고 거의 꽃이 피지 않는 식물이어서, 철수가 꽃을 피운다는 철수개화鐵樹開花는 보기가 쉽지 않은,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문에서 철수의 개화는 대개 장수長壽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 55)이는 龍城 스님이 1934년 望月寺에서 전수한 것이다. 이 戒牒의 戒脈은 大隱朗旿→金潭普明→草衣意恂→ 梵海覺岸→禪谷律師→龍城震種으로 이어졌다.
- 56)『범망경』에서 전하는 보살계는 十重 48輕垢戒로서 58조항뿐이다.
- 57)全帙은 61권 120품이다.
- 58)옛 安昌縣이다.
- 59)印度 西北에 있었던 나라이다.
- 60)河東 智異山 七佛庵을 일컫는다.
- 61)『삼국사기』에는 636년으로 되어 있다.
- 62)중국 終南山에 있는 절이다.
- 63)지금 전북 金堤의 옛 이름이다.
- 64)一說에는 元山州 萬頃縣이다.
- 65)一說에는 煩濟이다.
- 66)保安縣이니 지금의 전북 扶安郡 保安面이다.
- 67)十地보살이다.
- 68)『三國遺事』에는 壬寅(642년) 4월 27일이다.
- 69)지금의 강원도 주문진 부근이다.
- 70)明의 成祖가 준 諡號이다.
- 71)河東 智異山 七佛庵 亞字房이다.
- 72)北傳佛紀는 2967년. 南傳佛紀는 2478년 甲戌이다.
- 73)정관貞觀 : 중국 당나라 태종太宗(재위 627~649)의 연호이다.
- 74)선덕왕善德王 : 신라 제27대 왕(재위 632~647)이다.
- 75)운제사雲際寺 : 『속고승전』에는 자장 율사가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際寺에서 득도했다고 되어 있고, 『삼국유사』에는 오대산五臺山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고 되어 있다. 두 내용이 혼재된 것으로 보인다.
- 76)계단戒壇 : 계戒를 받기 위하여 흙과 돌로 쌓은 단을 말한다.
- 77)계법戒法 : 부처님이 정한 계율戒律의 법으로, 오계五戒·팔계八戒·십계十戒·구족계具足戒 등이 있다.
- 78)상원上元 : 당나라 고종高宗(650~682)의 연호이다.
- 79)모악산母岳山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과 김제시 금산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 80)부사의방不思議坊 : 전북 부안군 변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의상봉의 남쪽 자락에 있는 수행처를 말한다. 부사의방不思議房 혹은 부사의암不思議庵이라고도 한다.
- 81)홍무洪武 : 명나라 태조太祖(1368~1398) 때의 연호이다.
- 82)공민왕恭愍王 : 고려 제31대 왕(1330~1374, 재위 1351~1374)으로, 이름은 전顓, 호는 이재怡齋ㆍ익당益當이다.
- 83)숙황제肅皇帝 : 조선왕조 제23대 임금인 순조는 1899년(광무 3년)에 숙황제肅皇帝로 추존되었다.
- 84)칠불선원七佛禪院 :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법왕리 지리산 반야봉般若峰 남쪽에 있는 쌍계사雙磎寺의 말사末寺이다. 칠불암七佛庵 혹은 칠불사七佛寺라고도 한다.
- 85)대은大隱 : 조선 후기의 승려로, 법명은 낭오朗旿(1780~1841)이다. 영암 월출산에서 출가하여 14세에 금담金潭에게 출가하였다. 연담蓮潭·백련白蓮·의암義庵·낭암郎巖 등을 찾아 경교를 연구하였고, 특히 글씨가 명필이었다. 뒤엔 교를 버리고 선에 들어갔다. 해남 대흥사 만일암에서 설법을 마치고, 나이 62세, 법랍 47년에 앉아서 입적하였다.
- 86)초의草衣 : 조선 후기의 승려로, 법명은 의순意恂(1786~1866)이다. 15세에 남평 운홍사 벽봉 민성碧峰敏性에게 출가하고, 완호玩虎의 법을 이었다. 저서로는 『초의집草衣集』 2권과 『동다송東茶頌』 등이 있다.
- 87)
- 88)제산霽山 : 한말의 선승禪僧으로, 성姓은 김씨金氏이고, 이름은 정원淨圓(1862~1930)이다. 14세 때 고향 인근의 해인사海印寺에 출가하여 신해 서장信海瑞章 스님에게 구족계를 받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1913년 해인사에서 직지사直指寺로 옮겨가서 입적할 때까지 17년간 벽안당碧眼堂에서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행을 하였다.
- 89)사은四恩 : 중생이 이 세상에서 받는 네 가지의 은혜로, 부모·국왕·스승·시주의 은혜를 말한다. 또는 부모·국왕·중생·삼보라고도 한다.
- 90)삼도三途 : 삼도三道, 삼악취三惡趣, 또는 삼악도三惡道라고도 한다. 뜨거운 불로 몸을 태우는 지옥도地獄道, 서로 잡아먹는 축생도畜生道, 그리고 칼과 몽둥이로 핍박하는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악행을 저지른 자는 죽어서 반드시 이 셋 가운데 하나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 91)청신사淸信士 :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를 이른다.
- 92)계첩戒牒 : 계戒를 받았다는 증명서이다.
- 93)수지須至 : 옛날 공문의 마지막에 관용적으로 사용하던 용어로, ‘반드시 수신자에게 도달해야 한다’는 뜻의 말이다. 즉 ‘계첩을 받는 당사자에게 이 증명서를 반드시 지급하라’는 뜻이다.
- 94)갈마아사리羯魔阿闍梨 : 아사리阿闍梨는 모범이 되어 제자의 행위를 바로잡는 고승高僧을 뜻한다. 산스크리트어 ‘ācārya’의 음역어이다. 그중 갈마아사리는 갈마사羯魔師로도 불리는데, 계단戒壇에서 계를 받는 이에게 지침이 되는 스님을 말한다.
- 95)만암 종헌曼庵宗憲 : 속성은 송씨宋氏이며, 법호는 만암曼庵(1876~1956)이다. 11세에 백양사白羊寺로 출가하였고, 16세에 구암사龜巖寺 전문강원에 입학하여 박한영朴漢永 강백에게 수학하고, 다시 운문암雲門庵의 환응幻應 강백에게 수학하여 불교경전을 익혔다. 1928년부터 3년 동안 현재의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中央佛敎專門學校 초대 교장을 역임하였다. 1952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대 종정으로 추대되어 5년 동안 재직하면서, 일제강점기에 대다수의 승려들이 처를 거느리게 되어 승적僧籍을 교적敎籍으로 고쳤던 것을 다시 승적부僧籍簿로 고쳐 출가승 본위의 종단 출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 96)전계화상아사리傳戒和尙阿闍梨 : 계를 주는 아사리를 말한다.
- 97)금해 관영錦海瓘英 : 속성은 유씨柳氏이며, 호는 금해錦海(1856~1926)이다. 1866년(고종 3) 봄에 출가하여 백양사白羊寺의 선사 화담華曇의 제자가 되어 불교를 배웠고, 호은虎隱 율사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880년 청류암淸流庵에서 개당開堂하여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선禪의 깊은 뜻을 찾기 위해 강사직을 그만두고 참선에만 몰두하였다. 그 뒤 선과 교를 고루 갖춘 대종장大宗匠이 되어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청류암에서 입적하였다.
- 98)교수아사리敎授阿闍梨 : 계 받는 이를 인도하여 수계하는 계단戒壇에 대한 여러 가지 작법과 규모를 가르쳐주는 스님을 말한다. 교수사敎授師라고도 한다.
- 99)존증아사리尊證阿闍梨 : 수계의식을 증명해 주는 아사리를 말한다.
- 100)인례사引禮師 : 예식을 인도하여 가르치는 스님을 말한다.
- 101)원문에는 主乙로 되어 있다.
- 102)拄杖子가 맞는 듯하나 필사본에는 主杖子로 되어 있다.
- 103)중복되어 쓰여 있다.
- 104)옆에 ‘四’라고 표기되어 있다.
- 105)옆에 ‘七’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 106)간문제簡文帝 : 중국 동진東晉의 제8대 왕(320~372)으로, 성은 사마司馬, 자는 도만道萬, 이름은 욱昱이다. 시호는 간문황제簡文皇帝, 묘호는 태종太宗이다.
- 107)순도順道 : 고구려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승려로, 생몰년은 미상이다. 372년(소수림왕 2)에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이 순도를 보내 고구려에 불상과 불경을 전하게 했고, 소수림왕은 이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사신을 보내고, 순도로 하여금 왕자를 가르치게 했다. 순도의 국적이나 인종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그는 덕망이 높고 자비로우며, 교화의 열의가 굳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가 거처한 절은 375년에 창건한 성문사이며, 뒤에 흥국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 108)정관貞觀 : 중국 당나라 태종太宗(재위 627~649)의 연호이다.
- 109)운제사雲際寺 : 중국 산시성(山西省)에 있는 종남산終南山의 운제사雲際寺를 말한다.
- 110)노사나盧舍那 : 부처님의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말한다. 비로자나毘盧遮那는 산스크리트어 vairocana의 음사로, 변조遍照·광명변조光明遍照·변일체처遍一切處라 한역하는데, 부처님의 신광身光(모습)과 지광智光(지혜)은 법계를 고루 비추어 빠짐이 없으며 원만구족하고 완전무결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노사나는 바이로차나(Vairocana)의 음역인 비로자나毘盧遮那의 다른 이름이다.
- 111)패엽경貝葉經 : 나뭇잎에 글을 새겨 만든 초기 불교경전을 말한다. 패엽貝葉은 범어인 패다라貝多羅, 즉 나뭇잎이라는 뜻에서 온 말로, 패다貝多 또는 패다라엽貝多羅葉이라고도 한다. 패다라는 범어 Pattra의 음사로서, 특정한 식물을 가리키기도 하나, 흔히 일반 식물의 잎 또는 필사용 나뭇잎이란 뜻으로 쓰인다.
- 112)동진童眞 : 일생 동안 여색을 일절 가까이 하지 않은 청정한 사람을 말한다.
- 113)식건전式乾殿 : 중국 황제가 거처하는 주요 궁전 가운데 하나로, 황제가 머무는 침소를 말한다.
- 114)보안현普安縣 : 옛날 전북 부안군에 둔 행정구역으로, 부안군 보안면에 해당한다. 통상 보안현保安縣이라 한다.
- 115)부사의방不思議坊 : 변산 내 능가산 의상봉 인근 절벽 중턱에 자리한 옛 수행처로, 부사의방不思議房 혹은 부사의암不思議庵이라고도 한다.
- 116)수기授記 : 부처님이 수행자에게 미래의 깨달음에 대하여 미리 지시하는 예언과 약속을 말한다. 기별記別·기별記莂·기설記說이라고도 한다.
- 117)가피加被 : 부처나 보살이 자비심으로 중생에게 힘을 주거나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 118)천안통天眼通 : 6신통神通의 하나로,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곧 형상이 있는 것으로부터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훤히 꿰뚫어 볼 수 있는 신통력을 말한다.
- 119)기별記莂 : 부처님이 수행하는 사람에 대하여 미래에 성불할 것을 낱낱이 구별하여 예언하는 것을 말한다. 즉, 그 시기와 국토와 불명佛名과 수명壽命 등을 분명히 밝혀 예언하는 것을 말한다.
- 120)도솔천兜率天 : 범어 Tuṣita의 음역으로, 욕계欲界 6천天 가운데 제4천을 말한다. 외원外院과 내원內院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미륵보살이 이 내원에서 미래불未來佛로 이 땅에 하생下生하려고 준비하면서 천신天神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 121)불일佛日 :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태양에 비유한 말이다.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는 무궁무진하여 모든 중생에게 빠짐없이 널리 미쳐서, 마치 해가 어둠을 없애주듯이 중생의 번뇌를 없앤다는 뜻이다.
- 122)법륜法輪 : 부처님의 교화와 설법을 수레바퀴에 비유한 말이다. 부처님이 교법을 펼쳐 중생의 모든 번뇌를 굴복시키는 것이 마치 전륜성왕의 윤보輪寶가 산과 바위를 부수고 거침새 없이 나아가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 123)공민왕恭愍王 : 고려 제31대 왕(1330~1374)으로, 이름은 전顓, 호는 이재怡齋ㆍ익당益當이다.
- 124)지공指空(?~1363) : 원나라 때의 고승高僧으로, 인도 마갈타국摩羯陀國 사람이다. 1324년경에 원나라로 건너가 불법을 전했는데, 이때 고려의 나옹懶翁 화상에게 인가印可를 주었다. 1326년(충숙왕 13)에 고려에 들어와서 금강산 법기도량法起道場에 예배하고, 연복정延福亭에서 계를 설했다. 1372년(공민왕 21)에 그의 사리舍利 일부가 고려에 전해 오니, 왕명으로 양주 회암사檜巖寺에 부도를 세워 안치하였다.
- 125)강헌대왕康獻大王 :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李成桂(1335~1408)를 말한다. 그의 시호는 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고, 묘호廟號는 태조太祖이다.
- 126)환성喚惺 : 조선 후기의 대선사였던 지안志安(1664~1729) 선사를 말한다. 조선 시대의 승려로 여러 곳에서 강석講席을 베풀어 후학을 교도하였으며, 종풍宗風을 크게 떨쳤다. 저서로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鋼要』가 있다.
- 127)숙황제肅皇帝 : 조선왕조 제23대 임금인 순조는 1899년(광무 3)에 숙황제肅皇帝로 추존되었다.
- 128)대은大隱 : 조선 후기의 승려로, 법명은 낭오朗旿(1780~1841)이다. 영암 월출산에서 출가하여 14세에 금담金潭에게 출가하였다. 연담蓮潭·백련白蓮·의암義庵·낭암郎巖 등을 찾아 경교를 연구하였고, 특히 글씨가 명필이었다. 뒤엔 교를 버리고 선에 들어갔다. 해남 대흥사 만일암에서 설법을 마치고, 나이 62세, 법랍 47년에 앉아서 입적하였다.
- 129)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지리산 반야봉에 있는 칠불암七佛庵을 말한다. 쌍계사雙磎寺의 말사로, 칠불선원七佛禪院 또는 칠불사七佛寺라고도 한다. 이곳 정문에 있는 보설루普說樓 현판에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 130)하안거夏安居 : 불교에서 승려들이 여름 동안 한곳에 머물면서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말한다. 음력 4월 보름 다음날부터 7월 보름까지 3개월 동안 계속된다.
- 131)초의草衣 : 조선 후기의 승려로, 법명은 의순意恂(1786~1866)이다. 15세에 남평 운홍사 벽봉 민성碧峰敏性에게 출가하고, 완호玩虎의 법을 이었다. 저서로는 『초의집草衣集』 2권과 『동다송東茶頌』 등이 있다.
- 132)범해梵海 : 조선 후기의 승려로, 법호는 각안覺岸(1820~1896)이다. 두륜산 대둔사大芚寺에서 출가하였고, 1835년 호의縞衣를 은사로 삼고, 하의荷衣에게서 사미계를 받았으며, 초의草衣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저서로는 고승전인 『동사열전東師列傳』·『범해선사유고梵海禪師遺稿』·『범해시고梵海詩稿』 등이 있다.
- 133)용성龍城 : 한말의 대각교大覺敎를 창시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로, 속성은 백白씨이고, 속명 상규相奎, 법명은 진종震鍾(1864~1940)이다.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불교종단의 정화를 위하여 힘썼으며, 대처승의 법통 계승을 인정하는 일본의 종교정책에 맹렬히 반대하였다. 그리고 불교의 대중화운동을 촉진하기 위하여 한문을 한글로 번역하는 저술에 진력하였으며,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각교大覺敎를 창설하였다. 1927년 중국 연길에 대각교당大覺敎堂을 설립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 134)십중계十重戒 : 대승불교의 보살이 지켜야 할 열 가지 엄중한 계율로, 이를 어길 때는 즉시 보살의 자격이 상실되는 기본적인 계율이므로 십중대계十重大戒라고도 한다.
- 135)사십팔계四十八戒 : 대승계 가운데 십중대계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죄를 경계한 마흔여덟 가지의 계율을 말한다.
- 136)이백오십계二百五十戒 : 비구가 지켜야 할 250가지의 구족계具足戒, 즉 13승잔僧殘, 2부정不定, 30사타捨墮, 90단타單墮, 7멸쟁滅諍 등 250가지의 구족계를 말한다.
- 137)본 전계증에는 錦潭이라 하였다.
- 138)본 전계증에는 梵海와 草衣의 순서가 바뀌었다.
- 139)육상六相 : 화엄종에서, 만유萬有의 모든 법이 여섯 가지 모양을 갖추고 있음을 이르는 말.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의 여섯 가지 상은 그 전체와 부분 또 부분과 부분이 서로 원만하게 융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 140)경성警惺 : 사리탑비명병서 - 한용운 찬 문도질에 의하면 수법제자이다.
- 141)옥바라지(定省) :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줄인 말로,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리는 일.
- 142)瓦葺(와즙) : 기와지붕
- 143)平家建(평가건) : 단층 주택
- 144)本家(본가) : 원채
- 145)壹棟(일동) : 건평의 단위. 평坪 홉合 작勺 재才. 1坪은 가로, 세로 여섯 자인 정사각형의 넓이로 3.3제곱미터이다. 1合은 1坪의 10분의 1이며, 1勺은 1合의 10분의 1, 1才는 1勺의 10분의 1의 넓이를 이르는 척관법尺貫法 단위를 말한다.
- 146)代表取縡役(대표취체역) : 대표이사의 일본식 표현.
- 147)‘一部’가 옳은 표기이나 영인본에서 ‘壹部’로 표기함.
- 148)영인본에는 ‘登記’의 ‘記’가 누락됨.
- 149)煉瓦造(연와조) : 벽돌로 지은 집
- 150)영平屋蓋(평옥개) : 슬라브 지붕
- 151)貳階建(이계건) : 이층 집
- 152)‘餘白’이 옳은 표기이나 영인본에서 ‘余白’으로 표기함.
- 153)‘取得者’는 미확인이나 문맥상 신탁재산의 ‘取得者’로 보는 것이 타당함.
- 154)‘證明’이 옳은 표기이나 영인본에 따라 ‘証明’으로 표기.
- 155)인본에는 ‘翼鳳洞’으로 誤記되어 ‘鳳翼洞’으로 바로잡음.
- 156)영인본에는 ‘番地’가 누락.
- 157)代表者와 理事 명단은 規約 제41조의 내용과 유사하므로 참고.
- 158)정町, 반反, 무畝는 면적의 표시 단위. 일제강점기 토지대장에 등록하는 면적 단위는 坪이며, 임야대장에 등록하는 면적 단위는 畝로 표기하였다. 1畝=30步=30坪, 10畝=1段이고, 10段=1町=3000步(坪). 段을 反으로 쓰는 것은 일본식 표기이다.
- 159)영인본에는 ‘管理’의 ‘理’가 누락.
- 160)수지예산收支豫算 : 수입과 지출 예산.
- 161)五燈嚴統에는 十二년으로 되어 있다.
- 162)五燈嚴統에는 二十三년으로 되어 있다.
- 163)五燈嚴統에는 三十一년으로 되어 있다.
- 164)燈嚴統에는 七년으로 되어 있다.
- 165)五燈嚴統에는 十七년으로 되어 있다.
- 166)五燈嚴統에는 十九년으로 되어 있다.
- 167)燈嚴統에는 十二년으로 되어 있다.
- 168)五燈嚴統에는 三十五년으로 되어 있다.
- 169)五燈嚴統에는 二十二년으로 되어 있다.
- 170)五燈嚴統에는 十四년으로 되어 있다.
- 171)五燈嚴統에는 三十七년으로 되어 있다.
- 172)五燈嚴統에는 四十一년으로 되어 있다.
- 173)五燈嚴統에는 指爪로 되어 있다.
- 174)五燈嚴統에는 殤으로 되어 있다.
- 175)五燈嚴統에는 十二년으로 되어 있다.
- 176)五燈嚴統에는 修로 되어 있다.
- 177)五燈嚴統에는 南印度天德王之次子也로 되어 있다.
- 178)摩達로 쓰여진 것을 바로잡음
- 179)后로 쓰여 있다.
- 180)后로 쓰여 있다.
- 181)后로 쓰여 있다.
- 182)后로 쓰여 있다.
- 183)五燈嚴統에는 華로 되어 있다.
- 184)五燈嚴統에는 華로 되어 있다.
- 185)五燈嚴統에는 華로 되어 있다.
- 186)五燈嚴統에는 舒로 되어 있다.
- 187)后로 쓰여 있다.
- 188)五燈嚴統에는 華로 되어 있다.
- 189)五燈嚴統에는 華로 되어 있다.
- 190)五燈嚴統에는 生으로 되어 있다.
- 191)五燈嚴統에는 華로 되어 있다.
- 192)五燈嚴統에는 金으로 되어 있다.(경덕전등록에도 마찬가지임)
- 193)五燈嚴統에는 十五로 되어 있다.
- 194)五燈嚴統에는 十七로 되어 있다.
- 195)가흥대장경에는 法(?)
- 196)가흥대장경에는 付, 다른 곳에는 無(?)
- 197)爲(?)
- 198)가흥대장경에는 元, 다른 곳에는 之(?)
- 199)가흥대장경에는 元, 다른 곳에는 之(?)
- 200)다른 곳에는 神(?)
- 201)다른 곳에는 付汝自心法(?)
- 202)여타의 전등사서에는 凡六이라고 되어 있다.
- 203)다른 곳에는 計(?)
- 204)室을 屋으로 고침
- 205)室을 屋으로 고침
- 206)室을 屋으로 고침
- 207)室을 屋으로 고침
- 208)室을 屋으로 고침
- 209)뒷부분에 쓰여진 것을 앞으로 당김.
- 210)뒷부분에 쓰여진 것을 앞으로 당김.
- 211)뒷부분에 쓰여진 것을 앞으로 당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