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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상록八相錄
[표지]
- 팔상록八相錄
삼장역회 백상규 저작
혜명*
✽
옮김
- [팔상록]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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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각의 원조를 표시
2. 유상각의 원조
3. 세계의 성립함과 인생의 유래
4. 도솔천 내원궁에서 오시는 모습
5. 남비니원 동산에서 탄생하시는 모습
6. 사대문으로 관람하시는 모습
7. 성을 넘어 출가하시는 모습
8. 설산에서 도 닦으시는 모양
9. 나무 아래에서 마왕을 항복 받으시는 모양
10. 녹야원에서 법을 전하시는 모습
11. 우전왕이 세존의 등상을 조성하다
12. 세존께서 중생 백골을 참배하시다
13. 쌍림에서 열반에 드시는 모습
[팔상록]
1. 대각의 원조를 표시불타를 번역하면 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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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04_b_01L이 위의 뚜렷한 모양은 대각의 원조를 표시한 것이다. 이 뚜렷한 모양은 본래 천지와 허공과 만물이 하나도 없어 성현도 아니고, 범부도 아니며, 마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것이다. 일체 이름과 모양이 다 없지만 지극히 크고도 또한 작으며, 지극히 비었고 또한 신령하며, 그 밖의 것은 백천 개 해와 달로서 비유할 수 없다. 이것은 곧 대원각 본연성이므로, 이것을 이름하여 대각의 원조라고 한다. 허공도 이 본연성으로부터 있는 것이므로, 천지와 인류와 만물이 다 이 본연성으로부터 있는 것이니, 본성이 곧 대각의 원조인 것이다.
허공과 천지 만물이 일어남에 그 본연성품은 하늘·땅·사람의 세 가지에 주재되고 만법의 왕이 되는 것이다. 천지보다 먼저 있어 그 처음이 없고, 천지 뒤에 있어 마침이 없으니 형태가 없는 본연성품은 형상이 없는 각의 원조인 것이다.
2. 유상각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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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05_a_01L끝없이 넓고도 넓은 큰 도가 모든 형상이 없어 텅 비고 신령하면서 홀로 높고 귀하여 불생불멸하지만, 천지 만물이 건립하므로 인류와 동물이 계속하여 태어나게 되었다. 최초에 위음왕불이 세간에 나타나니 이것이 형상 있는 각이시다. ‘위威’ 자는 형상 있는 색을 말하는 것이며, ‘음音’ 자는 음성을 가리킨다. 그래서 소리와 형색이 나누어진 후에 위없는 큰 도를 깨쳤기 때문에 이름을 ‘위음왕불威音王佛(Bhīṣma-garjitasvara-rāja Buddha)’이라고 하였다.
위음왕 각황께서 세상에 태어나시자 그 지혜가 영특하여 세계와 우주를 관찰하셨고, 한편으로는 ‘그 사람 된 자의 영각靈覺이 밝고 또렷함이 무슨 물건인가?’라고 궁구하기를 마지아니하시어 홀연히 크게 깨치셨다. 그러니 이 위음왕은 형색이 처음 생기자 곧 스승 없이 깨치신 각이시다. 이 각이 태어나신 뒤로, 세계가 수없이 이루어지고 무너짐에 그 각이 세상에 출현한 수를 알 수가 없다.
3. 세계의 성립함과 인생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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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05_b_01L대체로 천지 세계가 일어나고 머물러 있으며, 무너지고 비어 있음이 왕복 순환하여 끊어짐이 없는 것이 개미가 쳇바퀴를 도는 것과 같다. 이 한 차례 성주괴공함을 햇수로써 계산하면 모두 합하여 6억 7천2백만 년이다. 이 세계가 처음으로부터 무너질 때까지를 계산하니 1억 6천8백만 년이다.
공겁空劫을 지나고 성겁成劫으로 옮기고자 할 때에 홀연히 허공에서 큰 구름이 일어나 큰비가 내리니 그 빗방울이 수레바퀴만큼 컸다. 그 아래는 수없이 큰 바람바퀴가 받쳐졌기 때문에 그 빗물이 아래로 빠지지 못하고, 대수大水가 가득 차게 되었으므로 바람이 불어 곧 물거품을 맺어 점점 굳어져서 지구별이 되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부정父精과 모혈母血로써 이 몸이 점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원인은 한 물방울로 되는 것이고, 천지세계도 그 원인이 또한 물로써 되었다. 천지세계가 성립되는 것을 말하자면 매우 끝없이 드넓고 넓어 다 말할 수 없기에 일부만 기록하기로 한다.
지구별이 생긴 뒤에는 만물이 다 화생으로 이루어졌다. 사람도 모두 화생으로 되었는데, 비유하자면 비가 많이 와서 항아리 속에 물이 고여 오래되면 그 물에서 벌레가 변화하여 생겨나게 된다. 곧 천지가 처음 생기는데, 남녀, 존귀, 노소, 빈부의 차별이 함께 생겨나기 까닭에 중생이라 한다.
중생이 태어나면 먹는 것은 자연히 있게 된다. 그 먹는 물건의 이름은 지미地味라 하였다. 그 형용은 제호醍醐와 같고 그 빛깔은 생젖(生酥)과 같고 그 맛은 꿀맛 같았다. 중생들이 손으로써 시험해서 맛보고 즐기고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니 그 지미가 점점 굳어져서, 그것을 뚝뚝 끊어 먹게 되었다.
먼저 기운만 흡수할 적에는 몸에 광명이 있고 신통이 있었는데, 지미를 먹은 뒤로는 둔탁해져 몸이 무겁고 기운이 추하고 탁해져 광채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신통마저도 다 잃어버렸다. 지미를 많이 먹은 자는 얼굴이 추하고 파리하며, 적게 먹은 자는 얼굴이 윤택하였으므로 승부가 있으며, 서로 옳으니 그르니 시비가 있었다. 그 뒤로는 지미가 나지 않았으므로 중생이 모두 근심하여 말하였다.
“걱정이다. 지미가 다시 나지 아니하는구나!”
그 뒤로는 다시 지피地皮가 나왔는데, 그 모양은 엷은 밀떡 같고 맛이 아름답고 향기로웠다. 중생들이 다 이것을 오랫동안 먹자 서로를 하찮게 업신여기게 되었는데, 이 업력으로 인하여 지피가 나지 않더니 또 지비地肥라는 것이 생겨났다. 중생들이 이 지비를 먹고 생활하였는데, 모든 악심이 점점 증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비가 생겨나지 아니하고 다시 포도葡萄가 생겨났는데 그 맛이 매우 달았다.
그 뒤에는 멥쌀(粳米)이 났는데, 그 길이는 네 치나 되고 여러 아름다운 맛이 갖추어져 있었다. 중생이 이를 먹자 자연히 남녀의 얼굴을 알게 되었다. 서로 보자 드디어 음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남녀가 한곳에 있어서 이상한 행동을 하였는데, 다른 중생이 보고 말하였다.
“애닯다. 법 아닌 것을 행하는구나! 어찌 중생에게 이 같은 일이 있으리오?”
이같이 꾸짖으니 그 중생이 뉘우쳐 몸을 들어 땅에 스스로 내던졌다. 그 옆에 있던 여인이 밥도 보내며 또 붙들어 도와주니 이로부터 세간에 부부의 이름이 있게 되었다. 그 뒤에 중생이 드디어 음탕하게 되었다. 그 행동을 가리기 위하여 집을 짓고 부부가 함께 살게 되었다. 이로부터 세간에 화생으로 태어나던 중생이 졸지에 변하여 모태로부터 생겨나게 되었으니 이것이 태생이다.
이때에 세간에 자연히 멥쌀이 생겨났는데, 아침에 베면 저녁에 익고, 저녁에 베면 아침에 익었다. 벤 뒤를 따라서 연달아 나는데, 줄기가 없었다. 이때에 게으른 중생들이 4, 5일 먹을 양식을 미리 베어다가 저축하였다. 이로부터 점점 벼 껍질이 두꺼워지더니 홀연히 나지 아니하고 마른 대만 나타나게 되었다.
이때에 중생이 매우 근심하고 슬퍼하였다. 이것으로써 중생들은 각기 전택을 봉하여 남의 땅과 나의 땅을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그 뒤에 중생들이 자기의 백미를 창고에 감추어 놓고 다른 사람의 밭에 있는 곡식을 도적질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그 죄를 판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의논하고 훌륭한 사람 한 명을 가려 주장을 뽑아 인민을 잘 보호하되, 선함에 상 주고 악함에 벌하였다. 그리하므로 인민들이 추렴하여 공급하니 여기에서부터 왕이 비롯되었다.
그 왕의 이름은 대인大人(Mahā Sammata)으로, 인민들이 왕을 찰제리刹帝利(kṣatriya)라 하였다. 왕이 천하를 다스리기를 법으로써 하며, 열 가지 착한 법으로 교훈하여 인민을 부모가 아들 생각하듯 극진히 하였다. 인민들은 왕을 공경함이 자식이 아비 생각하듯 하였다. 대인왕 시대에는 천하가 다 태평하고 인민이 안락하였는데, 그 아들 지봉왕이 들어서자 그 덕이 그 아버지가 왕 할 때만큼 같지 못하였다.
천지가 처음으로 성립된 뒤로는 사람의 정해진 수명이 8만 4천 살이나 되었는데 점점 줄어들어 7만이며, 1만이며, 1천이며, 1백이며 또 더 줄어들어 열 살까지 줄어들어 왔다.
몸길이도 백년에 한 치씩 줄어들고, 정해진 수명도 한 해씩 줄어들어서, 10세 수명까지 이르게 되었다.
주겁이 20번 증감하는 가운데 아홉 번째 겁이 줄어들 때에(1백 세까지 정해진 수명) 석가대각께서 출세하셨다.
4. 도솔천 내원궁에서 오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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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07_a_01L석가세존이 오늘날 정각을 새롭게 이룬 것은 아니었다. 비유하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티끌을 만들어 그 티끌 수대로 먹으로 점을 찍어, 그 점을 헤아려 일 겁을 삼아서, 그 먹이 다하는 겁 전에 정각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무수겁으로 오시며, 가끔 세간에 방편법으로 탄생하시어 팔상성도 하셨다고 하시니 그것은 한 표준에 불과한 것이다.
『대승방편경』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염부제 사람은 도솔천상에 와서 법문을 들을 수 없고, 천인들은 신통이 있어 왕래가 자유로울 수 있으니, 그러므로 내가 염부제에 내려가 무상도를 이루는 것을 표시하노라. 내가 시방 모든 국토에 몸을 한량없이 나투어 중생을 제도하고자 할 수 있지만 부모의 태를 받지 아니하면 중생들이 모두 ‘사람인가? 귀신인가? 건달바인가?’ 의심하여 법을 듣지 아니할까 한다. 그러므로 내가 마야부인摩耶夫人(Mahāmāyā) 태중에 들어감을 표시한 것이다. 또 내가 마야부인 태중에 들어감을 나타내 보였으나 진실로 모태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내가 무구대정에 들어가 백억 화신을 나투어 삼천대천세계의 백억 국토에 석가 화신을 나투었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밝은 달이 천상에 있어서 백천 강에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이다. 비단 천백억 화신만 나툴 뿐이겠는가? 허공이 다하고 법계가 다하여 티끌티끌과 세계세계에 모두 나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큰 몸이나 작은 몸이나 걸림이 없겠지만 중생의 근기를 따라 장륙의 소화신으로 나투었던 것이다.
내가 마야부인의 꿈에 흰 코끼리로 나투어 보인 것은 삼천대천세계에 백정법白淨法을 닦아옴이 내가 가장 존귀하고 가장 위없음을 보인 것이다. 내가 마야부인 복중에 처함에 삼계의 제천들은 내가 높은 누각 큰 집에 있음을 보고 모든 하늘의 천주와 그 백성이 서로 와서 경배하고 법을 물었었다.
내가 마야부인의 우협으로 나온 것은 모든 중생이 내가 부모의 음욕으로 화합하여 태어난 것인 줄로 알까 하여 곧 화현으로 난 것을 표시함이니 내가 우협으로 들고 우협으로 나온 것은 곧 화현한 까닭인 것이다.
내가 마야부인 우협으로 화현하여 태어날 때에 부인의 몸과 마음이 안락하셨기 때문에 오른손으로 무우수 나무를 붙잡고 나의 탄생함을 보인 것이다. 내가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천주 가운데 제일 높은 까닭으로 나를 일러 ‘천상과 인간의 도사(天人之導師)’이고, ‘사생의 자애로운 어버이(四生之慈父)’라고 하였다.
내가 처음 탄생하자 도리천의 상제가 보배 옷으로 받들었다. 내가 일어서서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을 걸어 다닌 것은, 여섯 수도 취하지 아니하고 여덟 수도 취하지 아니하며, 그 중도의 광명정대한 도로 중생을 이익하게 함을 표시하는 것이다. 일곱 걸음을 걸은 뒤에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또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천상천하에 오직 나 홀로 높다’고 하였는데, 그 소리가 삼천대천세계에 진동하였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모든 하늘과 마왕의 아만을 끊고자 함이고, 한편으로는 나의 대각성품이 홀로 높음을 가르침이며, 또 사람 사람의 청정한 대원정각이 다 구족하여 독존함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마야부인이 7일 만에 열반에 드심은 부인의 수명의 한도가 그에 그친 것이다. 나로 인하여 수명이 단축됨이 아닌 것이다. 참으로 나는 법성신으로 있는 것이어서 어디든지 없는 곳이 없으니, 나의 법신은 상주불생하고 상주불멸하다. 너희들이 항상 성심으로 나를 생각하면 곧 감응할 것이고, 등신상에 감응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등신상과 탑을 둔 것은 만세의 모든 중생으로 인연을 맺고자 함이니, 참으로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탑상이 있고 없는 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의 근기가 하나가 아니니 모든 하근기 중생에게 널리 인연을 맺자면 불상과 탑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부인과 처녀와 권속을 거느린 것은 내가 부부와 남녀가 없으면 중생들이 남자가 아닌가? 의심할까하기 때문이다. 내가 종종 방편으로 팔상성도를 보이나 그 실상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시현한 것이다.
과거 무량겁 시절에 무상법왕이 출세하시니 호는 연등燃燈(Dīpaṃkara)이다. 2만 연등각황 시에 일월등명불日月燈明佛을 보시고 8왕자 가운데서 최후에 정각을 이루시니 이는 곧 연등각황이시다. 이때에 연등각황이 정각을 이루시어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셨는데, 그때의 국왕은 등조왕燈照王이었다. 등조왕이 연등각황을 청하여 대궐에서 맞이하여 공양 예배하고 글을 지어 올렸다. 그 글에 쓰기를,
‘제자 등조왕은 오체를 땅에 던져 합장 공경하와 사생의 부모이시고, 삼계의 도사인 연등각황 전에 이 글월을 올리옵니다. 전륜성왕의 부귀가 비록 장하오나 삼계에 있어서 생·로·병·사와 윤회고락에 있으니 일체가 다 무상합니다. 오직 원컨대 세존은 성 가운데 강림하셔서 왕과 대중을 위하여 잠깐 금구金口를 열어 설법하여 제도하심을 천만 번 바라나이다.’
라고 하였다. 연등각황께서 다 보시고 난 후에 문수정사에게 물었다.
‘왕의 청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하리오?’
문수정사가 합장하시고 대답하셨다.
‘일체 인연을 따라서 설법하시며 중생을 제도하심이 이곳 세존의 큰 원이십니다. 세존은 성 가운데 강림하셔서 왕과 또 대중을 제도케 하옵소서.’
연등각황이 허락하고 이튿날 성 가운데 들어가시므로, 왕이 연등각황을 맞이하며 뵙고는 즐거워하여 국내의 명화와 진주를 천금으로써 구하셨다.
이때 선혜善慧라고 하는 비구선인이 있었으니, 5백 제자를 거느리고 산속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사과四果를 증득하여 가장 신기함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곧 석가 전신이시다. 또한 비구니 선녀가 있었으니 5백의 여자 관인을 데리고 나부산중에 들어가 수련하여 득도함에 이르렀으나 세간의 탐애를 끊지 못하였으니, 이는 야수耶輸(Yaśodharā)부인이다.
이때에 연등각황께서 출세하시었는데, 등조왕에게 연등각황이 신성에 들어오심을 듣고 각각 즐거워하여 명화를 얻고자 하였다. 비구니 선녀는 일찍이 명화 한 가지를 얻어 옥병에 꽂았으니 이 꽃은 도리천상의 우담바라優曇鉢羅(uḍumbara)꽃이다. 3천 년에 한 번씩 피는데, 여래 대성인이 출세하시면 무성히 피고 인연 있는 선남선녀가 얻게 되지만, 각황 전에서 수기 받을 사람이 아니면 얻기 어려웠다.
그때에 선혜선인이 5백 은전을 가지고 명화가 있는 곳을 찾아 널리 구하였지만 한 곳도 찾지 못하여 근심하였다. 하루는 구리선녀가 명화를 감추는 것을 신통으로 알고 비구니를 찾아갔다. 선녀는 비록 명화를 얻었지만 각황 전에 올릴 줄 모르고 다만 천상의 명화라 하여 깊이 간수하여 두었는데, 문득 국왕이 명화를 구하는 것을 듣고 알까 두려워하여 옥병 속에 깊이 넣어 감추고 있었다.
선혜비구의 지성에 감동하여 그 꽃이 문득 병 위로 솟아났는데, 선혜가 즉시 들어가 비구니를 보고 꽃 사기를 구하였다. 선녀가 말하였다.
‘이는 마땅히 나의 정성으로 연등각황께 공양하고자 하오니 어찌 그대에게 주겠는가?’
선혜가 말하였다.
‘5백 은전이 여기 있으니 꽃 다섯 송이를 허락하소서. 내가 연등각황께 올려 일체종지를 성취하여 정각을 이루어 삼계의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노라.’
선녀가 ‘이 남자는 기특하고 참 어질도다. 정성에 감동하여 감추어져 있던 꽃이 스스로 솟아나며, 또 5백 은전을 아끼지 아니하니 이 어찌 명화 값을 취하여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미래 정각 인연을 끊을 것인가’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선녀가 말하였다.
‘내 이제 다섯 명화로써 인연을 맺어 그대의 아내 됨을 원하옵니다.’
선혜가 대답하였다.
‘나의 원은 출가 성도하여 탐욕을 끊어 버릴 것이니 어찌 후생에 부부 되기를 원하리오?’
선녀가 무안해하며 대답하였다.
‘나의 원을 이루지 못하면 꽃을 얻어 가지 못하리라.’
선혜는 속으로 헤아리기를 ‘이 여자는 결단코 꽃을 아니 줄 것인데, 어쩔 수 없이 그 원을 따라야겠구나’라고 하였다.
‘나의 본뜻은 부부의 연분 맺기를 원치 아니하지만, 사람의 뜻을 어기지 아니할 것이다. 그대가 나와 같이 보시하는데, 만일 사람이 나의 수족과 자식을 구해도 또한 아끼지 아니하리니, 그대는 무량한 선심을 생각하고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자비대원을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선녀는 크게 기뻐하며 옥병 속 일곱 송이 꽃 가운데서 다섯 송이 꽃을 선혜에게 받들어 올리고, 남은 두 송이를 따로 주며 말하였다.
‘이것은 나의 발원하는 정성으로 각황 전에 올려 공양하고 세세생생에 그대와 더불어 부부의 원을 이루게 하소서.’
선혜는 선녀와 이별하고 꽃을 간직하여 돌아왔다.
이때에 등조왕이 연등각황을 성 밖에 나가 맞아 궁중에 들어와 공양을 올렸다. 문무조신이며 왕자 비빈이며 성중 인민이 다 차례로 꽃을 올려 예배하였는데, 그 올리는 꽃이 다 땅에 떨어졌다. 그때에 선혜선인은 등조왕이 꽃을 들어 공양함을 보시고 마음속으로 발원하기를 ‘연등각황의 상호가 단엄하시니 나도 어서 저 세존과 같이 삼계의 중생을 제도하리라’라고 가만히 생각하시고, 지금 가지고 있는 다섯 송이 꽃을 각황 전에 올렸다. 그 꽃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변화하여 화대가 되어 상서로운 기운이 찬란하였다. 또 구리선녀가 보낸 두 송이를 올리니 또 화대가 되어 광채가 찬란하였다.
이때에 왕과 천룡팔부신장 등이 그 신통함을 보고 탄복하여 서로 말하였다.
‘이는 미래에 정각을 성취할 보살이다.’
연등각황이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혜의 수행함이여! 무수겁을 지나면 마땅히 정각을 이룰 것이니 이름은 석가모니이다.’
그리고는 걸음을 걸으시려고 하니 땅이 마침 젖어서 축축하였다.
선혜는 연등각황의 발이 행여 더러워질까 염려하여 즉시 입었던 옷을 벗어 땅을 덮으며 머리를 펼쳐 펴니 연등불이 밟으시고 지나가시며 수기하셨다.
‘선혜야! 너는 마땅히 내가 열반한 뒤 오탁한 악한 세계에서 네가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이 되어 제천인민과 삼계 중생을 제도하는데, 나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선혜는 연등불 전에 출가하여 도를 닦는데, 하루는 연등각황에게 여쭈어 말하였다.
‘제자가 다섯 가지 꿈을 꾸었는데, 첫째 밤의 꿈은 큰 바다에 누워 있는 것이 보이고, 둘째 밤의 꿈은 수미산을 베개 삼는 것이 보이며, 셋째 밤의 꿈은 손으로 해를 잡는 것이 보이고, 넷째 밤의 꿈은 중생이 제 몸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 보이며, 다섯째 밤의 꿈은 달을 잡아 보이니 원컨대 세존께서는 해석하셔서 자세히 의혹을 타파하게 하옵소서.’
연등각황이 답하여 말씀하셨다.
‘바다에 누움은 생사대해에 있음이고, 수미산을 베개로 삼음은 생사를 벗어남이며, 중생이 몸을 둘러 에워싼 것은 네게 의지하여 법을 청함이고, 해를 잡아 보임은 너의 지혜광명이 사해에 비춤이며, 달을 잡아 보임은 인연중생을 제도하여 번뇌를 없게 함이다. 이 다섯 가지 꿈은 진실로 과거 제불이 출가하실 때에도 이 같은 상서로운 꿈은 얻기 어려운 것이다. 반드시 장래에 대도를 증험한 것이다.’
선혜가 이 말씀을 듣고 기쁜 마음을 차마 견디지 못하였다.
연등각황께서 열반하시자 선혜비구가 정법을 얻어 만세에 중생을 제도하시니 그 수를 이루 알 수 없었다.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사천왕이 되어 제천 대중을 제도하시고 하늘의 목숨이 다하면 다시 인간에 내려와서 전륜성왕이 되어 금·은·칠보를 구족하셨다. 또 목숨이 다하면 다시 상제가 되었고 그 복이 다하면 또다시 인간에 전륜왕이 되셨으며, 다시 상제도 되시며 그 사이에 무수히 천상천하를 마음대로 왕래하셨다. 혹 바라문 장자도 되시며 천룡 소왕도 되시며 육도사생에 변화하여 마음대로 나시고, 나신 수를 이루 다 기록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렇듯 무수겁을 나고 들으시며 공양을 받으시고 만족하시며, 도솔천상에 사람과 삼십삼천 모든 대중을 제도코자 하여 무수히 설법하시어 인천 대중을 제도하셨다. 그 법안이 일월과 같았는데 하계의 중생이 탐업으로 삼도에 떨어져 고생함을 보시고 크게 근심하시어 제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정각을 이루어 중생을 제도할 시절 인연이 장차 당도하였으니 염부제 세계에 내려가 어진 곳에 탄생코자 하노니 어느 곳에 탄생하리오? 모든 하늘은 나를 위하여 하계에 내려가서 입태할 사람을 살펴보고 올라와 고하라.’
이때에 제석과 사천왕들이 각각 명을 받들어 염부제에 내려와 보살의 입태할 곳을 살피고 도솔천궁에 올라가 각각 소견을 고하여 말하였다.
‘이웃 마갈타국摩竭陀國(Magadha)은 그 아비는 비록 정직하나 그 왕비가 어질지 못하고, 구살라국拘薩羅國(Kośala)은 부모 종족이 악하여 어질지 못하며, 화사국和沙國은 타국의 절제를 받고, 유야리국維耶離國(Vaiaśālī)은 투쟁을 일삼고 선행이 없으며, 발수국鏺樹國은 풍속이 허망하고, 그 남은 국토는 다 변두리 땅이어서 성현이 탄생할 곳이 못되는데, 오직 가비라국迦毗羅國(Kapila-vastu)은 삼천대천세계의 중앙이어서 인민이 풍성하고 덕행이 있으며, 그 국왕의 별호는 정반왕淨飯王(Śuddhodana)이고, 그 왕비는 마야부인摩耶夫人(Mahāmāyā)입니다. 부모 종족이 다 어질므로 금수에게까지 도덕이 미치니 온 나라 백성이 다 칭송합니다.’
그러자 보살이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렸다. 오백세 전에 보살이 이 부인에게 입태하시니, 그 인연으로써 보살이 인도 가비라국 정반왕비 마야부인 복중에 들어가게 되셨다.”
5. 남비니원 동산에서 탄생하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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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12_a_01L인도국 가비라 땅은 과거 구원겁 전에 평등왕平等王이 처음으로 국토의 경계를 정하고 자손이 대를 이어 33세 선사왕善思王 때에 이르러 전륜왕이라고 일컬었다. 사자협왕師子頰王(Siṃhahanu) 때에 대수를 헤아리니 1만 156왕이었다. 사자협왕이 아들 넷을 낳으니 맏아들은 정반왕淨飯王(Śuddhodana)이고, 둘째 아들은 백반왕白飯王(Śuklodana)이며, 셋째 아들은 곡반왕斛飯王(Droṇodana)이고, 넷째 아들은 감로반왕甘露飯王(Amṛtodana)이다. 각각 어진 덕이 사방에 알려졌으니 진실로 대성인이 탄생할 곳이었다.
이때에 정반왕이 즉위하여 선왕의 덕을 닦아 나라를 다스림에 백성을 편안하게 하니, 이때 나이가 52세였다. 즉위 30년에 국사를 전할 자식이 없어 왕과 왕비는 서로 근심하였다. 이때는 중국 주소왕1) 24년 가을 9월 보름이었다. 마야부인이 달빛을 즐기면서 난간을 의지하여 졸았는데, 문득 하늘 문이 열리며 온갖 빛깔의 구름이 일어나는 곳에 한 분의 보살이 장엄을 갖추고 둥근 빛 가운데 내려오시는데, 왼손에 연꽃을 들고 오른손에 백옥 홀을 들고 흰 코끼리를 타고 표연히 내려오셨다. 그리고 좌우 전후에 무수한 보살이 각각 색깔이 고운 옷을 입고 둥근 빛을 띠면서 모시고 꽃비가 내리며 하늘에 음악소리가 진동하였다. 그러다가 점점 내려와 부인 앞에 이르러 합장 예배하여 말하였다.
“소자는 도솔천 내원궁에 있는 호명보살이옵니다. 삼생의 인연으로 남쪽편 염부제에 내려올 시절 인연이 되어 부인 복중에 입태하오니 어여쁘게 여기소서.”
그리고 부인의 오른쪽 갈비를 헤치고 들어갔는데, 부인이 깜짝 놀라 깨어나니 남가일몽이었다. 맑은 향기가 진동하며 하늘 풍악이 귀에 쟁쟁하고 꽃비가 뜰에 가득하였다.
부인이 그날부터 몸이 편안하고 정신이 맑고 깨끗하며, 모든 제천에 상제들이 때때로 좋은 음식과 과일을 가지고 구름 속으로 내려와서 드리니 정신이 전보다 배나 더 상쾌하였다.
보살이 부인 태중에 처하시니 제천은 큰 궁전으로 보였으므로, 아침이면 색계 십팔천을 위해 설법하시고, 정오면 욕계 육천을 위해 설법하시며, 저녁이면 모든 귀신을 위해 법을 설하시니, 그 광대한 신통과 도력을 가히 헤아리기란 어려웠다.
이때에 도솔천국에 천인 등이 서로 의논하여 말하였다.
“우리가 여러 백 년 동안을 도솔천상에서 호명보살을 모시고 위없는 법을 듣고 삼계의 윤회를 벗어나서 정각을 성취하려고 하였는데, 보살이 염부제의 모든 중생을 제도하러 가시니 우리도 함께 그 법 자리에 모셔 필경 정각을 성취함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각각 발원하고 이날로부터 하계에 분분히 내려오니 모든 나라 왕비의 태중이나, 또는 재상의 집이나, 바라문과 상인과 전륜성왕 등의 태중으로 일시에 입태하였다. 이때에 사방 세계가 다 진동하고 광명이 대천세계에 비추며 맑은 향기가 공중에 가득하였다. 도솔천인과 보살이 각각 강생하시니 그 수효가 99억이었다.
이때에 호명보살이 마야부인 태중에 머물러 열 달이 찼는데, 이때는 중국 주소왕 24년 갑인 4월 초파일이었다. 이날은 부인이 자연의 경치를 구경하고자 궁중의 백 채녀를 거느리시고 남비니원 동산에 오르셔서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홀연히 맑은 향내가 진동하고 오색 연꽃이 부인의 발아래에서 솟아나며 궁중에 광명이 비추어 상서로운 기운이 사방에 가득하였다. 부인이 즉시 무우수 나무를 오른손으로 붙잡으시니 옥동자가 홀연히 부인 오른쪽 옆구리를 뚫고 탄생하였다.
그러자 태자의 몸이 오색 연꽃 위에 놓이더니 곧 일어나서 사방을 향하여 각각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우뚝 서서 왼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오른손을 들어 땅을 가리키며, 큰 사자 소리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천상천하에 내가 홀로 높도다.”
그리고는 몸을 던져 누우니 어린 아기같이 울음소리가 낭랑하였다.
이때에 부인이 심사가 쾌락하여 괴로움이 없고 즐거워하더니 제석천 상제께서 친히 옥동자로 하여금 청심차를 내리셨는데, 부인이 곧 받아 마시자 터진 옆구리가 순식간에 봉합되고 정신이 상쾌하시며 행동이 예전과 같게 되었다. 부인이 시녀에게 명하여 왕에게 고하시고 향탕으로 아기를 목욕시키려 할 때, 마침 공중에서 오색빛깔의 구름이 일어나며, 구름 가운데서 아홉 용이 각각 머리를 들어 청정한 물을 토해서 아기를 목욕시키고 사천왕천 상제께서 공중에서 옷을 내리시어 아기의 몸을 덮었다.
이때에 왕이 태자가 탄생함을 듣고 급히 동산에 이르러 아기를 어루만지며 즐거워함이 비할 데가 없고, 온 조정의 여러 신하들도 모두 즐거워 하례를 하였다. 이때에 큰 광명이 사방세계를 두루 비추고 천룡팔부와 사천왕과 상제와 팔금강과 사보살이 공중에 벌려 서고, 꽃비가 분분히 내리며 팔대지옥문이 열리자 만겁에 고통 받았던 죄인이 다 광명을 따라 좋은 곳에 태어났다. 고목에 꽃이 피며, 병인들이 낫고 산림이며 금수까지도 다 즐거운 듯하였다. 이날에 팔대국왕과 바라문과 장자와 제관 귀인이 각각 남자를 얻으니 그 수가 천만이었다. 또한 34종의 상서가 있고 묻혔던 금·은·칠보 등 5백의 감추어 둔 보물이 저절로 솟아나니, 가난한 자가 부귀하게 되었다.
정반왕이 태자의 신기함이 날로 아름다움을 보고 마음으로 경애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는 골격이 깨끗하고 빼어나고 거동이 예사롭지 않으며, 또 옆구리로 태어나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갓 태어나서 말을 할 수 있었다. 이는 고금에 없는 일이므로, 반드시 천인이 강림하여 나의 나라에 기업을 굳게 함이니 어찌 국가가 흥왕치 아니할 것인가? 그러나 신기함이 이렇듯 많으니 나 또한 두려워하노라.”
즉시 태자로 책봉하셨는데, 이름은 실달悉達(Siddhārtha)이라 하시고 자는 천중천天中天(Devātideva)이라고 하시니 모두 부르기를 실달태자라 하였다.
이때에 태자가 탄생하신 지 7일 만에 마야부인이 왕께 이별을 고하며 말하였다.
“도솔천 내원궁에서 즐거운 복락을 버리고 남염부제로 잠깐 내려왔음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왕과 태자에게 숙세의 부부가 되고 모자가 될 인연이 매우 깊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왕을 만나 태자의 탄생함을 원하였는데, 이제는 원을 성취하고 또 왕과 더불어 인연이 다하였으니 지금에 나는 도리천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애련히 슬퍼하여 말하였다.
“강보에 태자를 두고 어찌 차마 그렇게 돌아가시렵니까?”
부인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모이고 흩어짐은 당연한 일이므로, 인연을 따라서 화합하였다가도 인연이 다하면 돌아가는 일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찌 필부의 이별함과 같겠습니까? 바라건대 대왕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시어서 옥체 무강하시다가 훗날 보살의 제도함을 입어 우리 부부가 반드시 도솔천궁에서 다시 만나 8만 4천 년을 반나절같이 지내다가 필경에 정각 이루는 것을 원할 뿐입니다. 어찌 오늘 일시의 이별을 슬퍼하겠습니까?”
말을 마치자마자 목숨이 다하시니 왕이 슬퍼하심은 비할 데 없었다.
태자가 강보에 있으니 그 이모 마하파사摩訶波闍(Mahābrajātatī) 부인이 태자를 거두어 길렀다. 이 부인은 곧 마야부인의 동생이어서 거두고 사랑함이 마야부인과 다름이 없었다. 태자가 점점 자라나자 천연한 기상과 행동이 날로 신기하여 왕이 도리어 염려하여 하루는 유명한 관상 잘 보는 사람을 청하여 태자의 상을 보였다. 이 관상쟁이는 바람과 구름을 부리고 도술이 특출한 아사타阿私陀(Asita) 신선이다. 길흉을 판단할 수 있는데 조금도 어김이 없고 용과 신장을 부리니 사람들이 존중하였다.
그는 영축산 가운데 숨어 있었는데 정반왕이 글로써 청함을 미리 알고 구름을 타고 왕궁에 들어가 보고자 할 때 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왕이 그를 보셨는데 신선의 기골이 깨끗하고 빼어나 노쇠한 얼굴빛에 흰머리였으나 눈빛이 쏟아져 바로 보지 못하였다. 왕이 흔연히 너그럽게 대하고 태자의 관상 보기를 청하니 신선이 태자를 안아 보고는 놀라 얼굴빛이 달라지며 슬퍼하였는데, 왕이 그 까닭을 급히 물었다.
“이 아이에게 무슨 흉한 일이 있을 징조가 있기에 도인이 태자의 관상을 보고 어찌 슬퍼하는가? 빨리 그 연유를 일러 나의 근심을 끊게 하라.”
신선이 왕자를 왕께 올리고 예배하며 말하였다.
“태자의 상을 보니 삼십이상과 팔십종호가 완연하오니 몸빛이 순금상임을 대왕이 어찌 아시겠습니까? 반드시 출가 성도하여 대각을 증득하실 귀한 상이니 어찌 궁궐에 있으면서 전륜성왕의 부귀를 받겠습니까? 19세가 되면 반드시 출가하여 장차 정각을 이루어 천상천하에 중생을 제도하여 생·로·병·사를 해탈하고 열반에 들 것이니 어찌 기특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제불이 출세하심은 만겁에 만나기 어려운 것인데 이제 태자께서 장차 정각을 이룰 것이지만, 빈도의 나이 벌써 140세입니다. 10년이 지나면 내가 장차 죽을 터이니 대성인의 설법을 듣지 못할 것이므로, 이로써 슬퍼하나이다.”
왕은 출가한다는 말을 듣고는 곧 믿지 아니하고, 금은과 온갖 비단을 많이 상으로 내렸으나 도인이 받지 아니하고는 말하였다.
“빈도의 생애는 아침 이슬 안개와 저녁 구름인데, 금은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도인은 소매를 떨치며 일어나니 그림자의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왕이 신선을 보내고 여러 신하들에게 그 거짓되고 미덥지 아니함을 말하시고 의심하셨다.
세월이 빠르게 흘러 태자의 나이 7세가 되었는데, 하루는 왕이 태자를 데리고 자재천自在天 천주당天主堂에 들어가 태자의 장수를 빌고자 하였을 때였다. 천주의 탑상에 한가히 앉은 상제의 등상이 다 일어나서 태자에게 절하였다. 그러자 여러 신하가 크게 놀라서 서로 돌아보며 말하였다.
“흙으로 조성한 등상불이 어찌 태자에게 이렇듯 공경하니 이는 고금에 듣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태자를 대단히 두려워하며, 왕도 또한 신기하게 여기시어 깊이 염려하였다.
태자는 날로 총명하고 신기해지니 왕이 행여 단명할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명산대천에 기도도 하고, 또 사방에 조서를 내려 총명한 바라문에게 모든 글과 예술에 능한 자를 구해 오라고 하여 태자를 가르치게 하였다.
이때에 한 바라문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발타라跋陀羅(Bhadra)였고, 5백 바라문으로서 왕을 배알하였는데 왕이 말하였다.
“경들로 태자의 사부를 정하고자 하노니, 경들은 마땅히 태자를 잘 가르칠지어다.”
이때에 태자의 숙부 백정왕이 태자를 위하여 큰 학당을 건축하고, 일곱 가지 보배로써 장엄하니 평상과 자리와 모든 기구가 대단히 찬란하였다. 날을 택하여 태자를 가르쳤는데, 이때에 바라문들이 49종의 글로써 가르치고자 하였다. 태자가 물었다.
“염부제에 있는 글이 몇 가지나 됩니까?”
그러나 바라문이 대답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도리어 바라문이 그 글의 종류를 물었는데, 태자가 대답하였다.
“간략히 말하자면 거류서佉留書(Kharoṣtī), 연화서蓮華書(Puṣkaarasārī), 호중서護衆書, 질견서疾堅書, 용귀서龍鬼書(Nāgalipi), 건답화서揵畓和書(Gandharvalipi), 아수륜서阿須倫書(Asuralipi), 녹륜서鹿輪書(Mṛgacakralipi), 전수서轉數書(Gaṇānāvartalipi), 전안서轉眼書, 관공서觀空書(Gagaṇaprekṣaṇīlipi), 섭취서攝取書(Sarvasṣyandā) 등의 64종서가 있습니다.”
또 바람과 구름을 부리고 마왕과 귀신과 아수라를 항복 받는 큰 글을 태자가 물으시니 바라문이 대답하지 못하고 물러가 왕께 말씀 올렸다.
“태자는 천인이어서 어찌 조그만 소견으로 태자를 가르치겠습니까? 반딧불로써 밝은 달을 희롱하는 것입니다.”
왕이 물었다.
“태자가 무엇을 알더냐?”
바라문이 아뢰어 말하였다.
“세상에서 보고 듣지 못하던 글과 천문 지리를 다 통달하여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으시며, 삼십삼천세계의 일을 무슨 일이든지 환히 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천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들으시고 기뻐하여 다시 별호를 내려 천중천天中天(Devātideva) 실달悉達(Siddhārtha)태자라고 하셨다.
6. 사대문으로 관람하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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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16_a_01L이때에 태자의 나이 13세였다. 힘을 쓰는 것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세고 지혜가 명철하여 대적할 자가 없었다. 하루는 왕이 태자의 힘쓰는 것을 시험하고자 하여 성 가운데 장사를 모았는데, 그 가운데 난타難陀(Nanda)와 조달調達(Devadatta)이라는 두 장사가 힘쓰는 것이 제일이었다. 회장원에 나아가 그 힘쓰는 것을 시험하여 승부를 겨루었는데, 왕은 함께 구경하고자 하셨으나, 코끼리가 문을 막아 눕고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왕이 좌우 장사에게 명하여 밀어서 내쫓으라 하였다. 그러자 장사들이 일시에 달려가서 잡아 밀치려고 하였지만, 코끼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왕이 호되게 꾸짖으며 말하였다.
“조그마한 코끼리를 억제하지 못하는데, 어찌 장사라고 하겠는가?”
이때에 태자가 가만히 속으로 헤아리기를 ‘나의 힘쓰는 것을 시험하리라’라고 하고 한 손으로 코끼리의 코를 잡아채서 공중에 높이 던졌다가 떨어지는 것을 세 번이나 받았지만 안색이 예전 그대로였다. 왕과 모든 장사가 크게 놀라서 탄복하고는 말하였다.
“태자의 힘쓰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이러하겠는가?”
회장원에 이르러 큰 북을 천 보 밖에 매달고는 백 근이나 되는 활로 쏘아 맞히라고 하였는데, 조달과 난타 두 장사가 겨우 두어 살을 맞혔고, 그 나머지 장사들은 하나도 맞히지 못하였다. 태자가 활을 한 번 당기자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그 쇠북 일곱을 꿰뚫고 나아가 땅에 박히니 그 속에서 물이 솟아나며, 철위산 대천세계가 일시에 진동하였다. 이에 군신 백성이 다 놀라서 얼굴빛이 달라지고 경탄하여 말하였다.
“태자는 실로 천인인데, 세상 사람들이 어찌 믿겠는가?”
세월이 흐르는 물 같아서 태자의 나이가 17세가 되었다. 왕이 태자를 위하여 태자비를 간택하였다. 이때 우전국 왕의 여자가 있었으니 이름은 야수耶輸(Yaśodharā)였다. 그 용모가 탁월하고 과연 현숙하였다. 우전왕이 일찍이 남악산에 순행하다가 채약선녀를 만나 하룻밤 연분을 맺은 후로 수태하였으니, 아이를 낳았을 때는 주소왕 24년 여름 4월 초팔일이었다.
우전왕이 난간을 의지하여 잠깐 졸았는데, 천국으로 금신이 흰 코끼리를 타고 내려오는데, 청학을 탄 선녀를 데리고 공중에서 말하였다.
“나는 낙가산 칠보게 보살이니 정반왕에게 탄생하시는 석가모니불이오. 이 선녀는 연등불 전에 인연을 맺어서 꽃으로 공양하던 구리선녀였다. 오늘 보살을 따라 함께 내려오자 길을 인도하니, 왕은 남악산 채약선녀를 찾아 이 아이를 거두어 귀하게 기르라.”
그리고는 공중에 올라 학을 탄 선관을 남으로 데리고 갔다. 왕이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나와 함께 가자.”
라고 할 때에 놀라 깨어나니, 어렴풋한 꿈속의 향기가 가득하였다.
왕이 꿈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난 뒤 마차를 타고 남악산으로 가서 채약선녀와 인연을 맺었다. 그 후 딸 하나를 낳고 난 뒤 채약선녀는 칠일 후에 죽었다. 바라문이 그 딸을 거두어 길렀는데, 왕의 사자가 바로 그 딸을 찾아서 돌아오니 왕이 크게 사랑하였다. 다만 오른손을 쥐고 펴지 아니하였는데, 이름을 야수라고 하였다.
야수는 방년 15세가 되어 생김새가 미려하고 몸가짐이 단아하여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에 놀랐다. 왕이 사랑하여 사위를 맞이하고자 하였는데, 이때 정반왕이 야수의 덕이 높음을 듣고 궁녀의 우두머리에게 명하시어 우전왕에게 글을 보내 구혼하였다. 우전왕이 크게 기뻐하여 혼인을 허락하고 궁녀에게 관대하게 대접하였다. 궁녀가 야수 보기를 청하였는데, 왕이 궁녀들에게 명하여 내전에 들이고 야수를 나오라고 하였다. 야수가 왕의 명을 받아 나오는데, 비유하자면 가을하늘 밝은 달이 여러 빛깔로 아롱진 구름 속에서 나오는 듯하였다. 궁녀가 한번 보자 정신이 황홀하여 왕에게 말씀드렸다.
“귀 공주가 진실로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것과 같으니 과연 왕상의 배필입니다.”
왕이 기뻐하며 또한 근심하여 말하였다.
“이 공주에게 조그마한 병이 있으니 보고 돌아가서 말씀 올려라. 공주가 처음 태어날 때에 오른손을 쥐고 펴지 못하니, 병자가 어찌 태자의 배필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 후 공주의 섬섬옥수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과연 손을 단단히 쥐고 펴지 못하여 살가죽이 붙어 있었다.
궁녀는 곧 하직하고 돌아가서 그 사연을 정반왕께 말씀드리니, 왕이 말없이 깊이 생각하다가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요조숙녀인데 어찌 작은 병을 허물로 삼겠느냐?”
그리고 즉시 택일하시고, 그날이 되자 태자가 혼인의 예물을 보내어 친히 맞이할 때, 비단으로 수놓은 천막에 3천의 미녀가 아름답게 단장을 하고 전후좌우에서 태자를 호위하니 맑은 향기가 멀고 가까운 데에 가득하였다.
야수는 폐백을 받기 위해 왕에게 나아갈 때, 아름다운 손으로 받친 옥쟁반이 기울어졌는데, 이를 본 왕이 야수의 손을 잡으려 할 때 야수가 쥐었던 손이 펴지면서 손바닥에 두 줄의 푸른 글자가 있었다. 왕이 이를 크게 기이하게 여겨서 태자와 함께 그 글을 보니 그 글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연등불전燃燈佛前 오경화五莖花하니
석일발원昔日發願 금부부今夫婦라.
막한원앙莫恨鴛鴦 금별한別今恨하라.
필경정각畢竟正覺 영산회靈山會라.”
이 글의 뜻은,
“연등불 전에 다섯 송이 꽃으로
옛날에 발원하였으니 이제 부부로구나.
원앙의 금침을 갖지 못함을 한탄하지 말라.
필경 정각을 성취하여 영산에서 만나리라.”
라고 하였다. 모두 신기한 일을 찬탄하여 말하였다.
“과거 인연을 어찌하겠는가?”
뜻밖의 일은 야수가 전생에 구리선녀로 있을 때에 다섯 송이 향기로운 꽃으로 발원하였던 일을 완전히 깨닫고, 첫날밤을 맞이하여 은연히 반기는 듯하였지만, 잠자리에 나아가니 동침에는 뜻이 없고 다만 고요한 밤을 지냈다. 야수는 비록 속으로 짐작하는 바가 있었으나 부부간의 사랑은 천지같이 세월을 보내었다.
하루는 태자가 왕에게 말씀드렸다.
“봄 경치가 화려합니다마는 마음이 울적합니다. 원컨대 성 밖에 나아가서 꽃 피고 물 흐르는 경치를 구경하고자 하오며, 온 백성의 살림살이와 병고를 살피고자 합니다.”
왕이 이를 허락하시니 태자가 즉시 마차를 차려 군관 수십여 명을 거느리시고 먼저 동문으로 나아갔다. 성 가운데 백성이 태자가 나오시는 것을 보고 서로 다투어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길에 가득하였다. 태자가 한가롭게 유람할 때 봄바람에 피어나는 꽃은 붉은 빛이 공중에 내리는 것 같았고 아름다운 새소리는 곳곳에서 들렸다. 좌우의 여러 신하들도 즐기었다.
이때 정거천인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와서 동쪽 문 아래에 다다라 문득 변하여 백발노인이 되어 등이 굽고 걸음걸이가 건실하지 못하여 막대기를 짚고 헐떡거리며 지나갔는데, 태자가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저와 같느냐?”
시종이 대답하여 말씀드렸다.
“나이가 젊었을 때는 혈기 왕성하다가 나이가 많으면, 머리카락이 다 희어지고 가죽과 살이 마르기로 등이 굽어지고, 다리에 힘이 없어서 걸음걸이를 잘못 옮기므로 막대기를 짚고 다니며, 남은 목숨도 저와 같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노인이라고 말합니다.”
또 태자가 물었다.
“저 사람뿐이냐?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저러하냐?”
시종이 대답하였다.
“늙는 것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태자가 이 말을 들으시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가 비록 왕궁에서 부귀에 처해 있으나 필경 머리는 희어지고 등이 굽어 늙은 몸이 될 것이니, 어찌 난들 족히 죽음을 면하리오!”
그리고는 궁궐로 돌아가 즐거운 빛이 없었는데, 왕이 그러한 이유를 알고 태자가 걱정하는 것을 근심하였다.
또 다음날 태자는 남문으로 구경을 나갔는데, 정거천인이 다시 변하여 늙은 몸이 병자가 되어 살가죽과 뼈가 마르고 골격과 기색이 헐떡거려 신음하는 소리를 끊이지 아니하고 겨우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여 가다가 길가에서 쉬었다. 태자가 물었다.
“이는 어떤 사람인가?”
시종이 대답하였다.
“이는 늙고 병든 사람입니다.”
또 물었다.
“어찌 병든 사람이라고 하는가?”
시종이 대답하였다.
“늙어지면 위장이 마르고 병들어 음식을 먹지 못하고 가래가 들끓어서 신음하며 걸음이 건실치 못하고 목숨이 아침저녁에 달려 있습니다.”
또 태자가 물었다.
“저 한 사람에게만 병이 있느냐?”
시종이 대답하였다.
“늙으면 귀천이 없이 다 그렇습니다.”
태자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세상 사람이 어찌 고행 가운데 잠겨서 저러한가!”
그리고 궁궐로 돌아가 근심이 가득하였는데, 왕이 그 까닭을 알고 여러 신하들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태자가 구경을 나갔을 때 도로를 엄격히 경계하라 하였더니 어찌 노인과 병자를 길에 두었다가 태자에게 보여서 걱정을 끼치게 하였는가? 이는 경들의 허물이다. 마땅히 법으로 다스리겠노라.”
그러자 신하들이 관을 벗고 이마를 땅에 조아리며 말하였다.
“신들이 어찌 왕명을 태만히 하겠습니까? 노인과 병자가 자취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 태자에게 보였습니다.”
다시 왕이 생각하기를,
‘바라문 장자 우타니優陀夷(Udāyi)라고 하는 사람이 대단히 총명하고 또한 뛰어난 말솜씨가 있어 사람의 굳은 마음을 돌이키게 한다고 하니 이 사람을 청하여 나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을 전하고 외도의 마음을 없게 할 것이다.’
라고 하시고, 우타니를 불러 말씀하셨다.
“태자가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노인과 병자를 보고 우울하여 왕궁의 부귀를 즐기지 아니하니, 반드시 출가할 의사가 있는 것 같아 내가 두려워 경을 불러 부탁하노라. 이제부터 태자에게 단단히 타일러 충효의 대도와 종묘와 사직이 귀중함을 말씀드리고 허망한 마음을 없게 하라.”
그러자 우타니가 여쭈어 말하였다.
“태자는 천인이어서, 드넓은 바다와 같으신 도량이 비범하시니 신의 조그마한 언변으로 들을 것이 아닙니다. 명령이 이렇듯 엄중하시니 간장과 뇌수가 땅에 널려지더라도 목숨을 바쳐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러자 왕이 크게 기뻐하셨다.
다음날 다시 태자가 서쪽 문으로 구경을 나가고자 하였는데, 왕이 그다지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자 태자가 땅에 엎드려 다시 말씀드렸다.
“부왕께서는 원을 거두지 마옵시고 소자의 원을 들어주옵소서.”
왕이 태자를 사랑함이 넘치므로 잠자코 있다가 허락하시고 등을 어루만지며 말씀하셨다.
“우리의 종묘와 사직과 백성과 나라의 안위는 너의 한 몸에 달려 있으니 충과 효를 돌아보고서 늙은 아비로 하여금 근심이 없도록 하라.”
다시 태자는 군관을 데리고 성문에 다다르시니 왕의 하교가 엄중하여서 도로를 수리하고 군관에게 다른 사람들은 왕래하지 못하게 하고 백성들이 집 문을 닫고 문밖에 꽃을 꽂고 깨끗한 휘장으로 십 리 밖을 둘렀으니 그 엄숙함이 그 전날과는 달랐다. 이때에 정거천인이 생각하기를,
‘그 전날에는 태자의 마음을 격동케 하여 그 시종들에게 벌을 받게 한 것은 측은하지만, 우리 삼계의 대도사 석가여래께서 발심 출가할 시절 인연이 당도하였다. 어찌 다른 때를 기다리겠는가?’
라고 하고 문득 변해서 길가에 송장이 되어 염습하여 놓고 여러 친척이 모여 시체를 잡고 슬피 우는 형상과 죽어서 영영 이별하는 모양을 보이게 하였다. 오직 태자와 우타니에게만 이 모습이 보이는 것이므로 태자가 시종들에게 물었다.
“저 송장을 보느냐?”
시종이 아무 대답이 없었는데, 태자가 성내며 물었다.
“눈앞에 있는 것을 대답하지 못하느냐?”
우타니가 곁에 있다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번에 또 저 시체를 보고 대답하였다가 태자가 마음이 움직이게 되면 왕의 노여움과 책망이 우리에게 미칠 것이다. 장차 어찌하리오.’
라고 주저하였는데, 문득 한 역사가 달려와 땅에 엎드려 말하였다.
“이는 죽은 사람의 시체입니다.”
태자가 물었다.
“어찌 시체라고 하느냐?”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부모의 혈기로 입태하니 곧 지·수·화·풍 사대로 형체를 이루어 세상에 나오므로 이는 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나면 태어나고 늙고, 늙은 후에는 병이 나고, 병이 난 후에는 죽습니다. 이 네 가지는 귀천이 없이 면하지 못하오니 이렇기 때문에 사람이 태어나면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죽습니다. 사람이 이 지·수·화·풍으로 다니다가 마침내 죽으면 지·수·화·풍이 흩어지는데, 이른바 인생 세간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습니까!”
태자가 이 말을 들으시고 한탄하여 말하였다.
“세상이 다 저러한가?”
역사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생·로·병·사는 모두 한 몸입니다.”
우타니가 생각하기를,
‘태자께서 정거천 역사의 말을 들으시고 사바세계에 뜻이 없으니 왕의 명령을 저버리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라고 크게 근심하여 태자께 나아가 말씀드렸다.
“고금의 제왕이 종묘와 사직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며, 백성을 편안하게 보호하고 전륜왕을 본받아 성자와 성손이 자자손손이 대를 이어나가서 현명함이 사해에서 들려와 후세의 임금으로서 본받게 하심이 왕자의 떳떳한 바입니다. 이제 태자는 당당한 한 나라 종묘와 사직의 근본이십니다. 위로는 왕상의 명령을 잊지 마시고 아래로 억만 백성들의 바라는 바를 끊어 버리지 마옵소서. 허망함을 취하여 종묘와 사직을 버리시면 이는 고금 제왕들에게는 없는 바입니다. 왕의 종묘와 사직을 누구에게 의탁코자 하십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는 외도를 버리시고 충효를 다하여 왕상을 섬기시고 신하와 백성의 신망을 저버리지 마옵소서.”
말을 마치고 슬퍼하였다. 태자가 말하였다.
“경은 권하지 말라! 사람이 세상에 처해 있는데, 물 위의 부평초와 같고 풀 끝의 이슬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하므로 만사가 다 무상하고 꿈과 같으며 참다운 일이 하나도 없는데, 이제 경의 말과 같다면, 나로 하여금 생사윤회에 떨어지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슬프도다! 일체중생이 탐욕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고서 육도사생에 윤회하여 한량없는 고통을 면하지 못하는구나! 이제 뜬구름 같은 부귀를 탐착하여 먼 훗날에 생·로·병·사와 삼도 고해에 무궁한 윤회를 받을 것이니 나의 마음이 저절로 정함이 있는데도, 경은 부질없는 말로써 도심을 어지럽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록 우타니가 지극히 간청하였으나 태자의 마음이 금강과 같았다. 말로서는 마음을 돌이키지 못할 줄 알고 태자를 모셔 궁중으로 돌아왔다.
이때에 태자의 수심이 전날의 배나 더하였다. 왕이 그 까닭을 물으셨는데 우타니가 자세히 말씀드리기고 고하였다.
“태자는 반드시 출가하심이 멀지 않을 것이니 엎드려 원하옵건대 대왕은 안심치 마옵시고 사문을 굳게 지켜 후회함이 없게 하소서.”
또 왕이 물었다.
“또 송장을 본 것은 어찌된 까닭이냐?”
군관이 대답하였다.
“신들의 눈으로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우타니가 엎드려 말씀드렸다.
“태자와 다만 신에게만 보였습니다. 그 종적을 알지 못하였사오니 진실로 의심스럽습니다.”
왕이 탄식하여 말씀하셨다.
“이는 천신이 장난하는 것이다. 어찌 경들에게 죄가 있겠는가.”
다음날 북쪽 문으로 구경을 나가셨는데, 또 정거천인이 변화하여 한 비구승이 되어 도인의 모습으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녹색 비단 장삼에 금란가사를 드리우고 태자 앞으로 홀연히 지나갔다. 그러자 태자가 보시고 세속 사람과 다름을 깨닫고는 급히 불러 물었다.
“그대는 어떠한 사람이기에 옷차림과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가?”
노승이 합장 배례하여 말하였다.
“저는 비구比丘(bhikṣu)입니다.”
또 태자가 물었다.
“어찌 비구라고 하는가?”
노승이 대답하였다.
“일체가 다 무상하므로 부모, 처자의 은혜를 끊고 삭발하여 승려가 되어 산중에 들어가 청정한 도를 닦아 삼계의 고해를 건너 열반 피안에 이르게 됩니다. 피안에 이르면 생·로·병·사를 면하고 무량 원겁을 일념에 보냅니다. 이러한 사람을 비구라고 합니다.”
그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솟구쳐 허공에 올라 화려한 구름을 타고 홀연히 서쪽 하늘을 향하여 가며 게송 한 글귀를 읊어서 말하기를,
“모든 것이 떳떳함이 없는지라
이것이 다 나고 죽는 법이니
생멸이 멸하여 마치면
적멸이 낙이 된다.”
라고 하고 낭랑히 읊으며 돌아가니 태자가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구름 그림자가 없어지고 향기로운 바람이 흩어지니 그 시원함을 견디지 못하고 종일토록 배회하시다가 달이 뜰 때 궁으로 돌아왔다. 왕이 기다리시다가 태자가 돌아옴을 보시고 손을 잡고서 말씀하셨다.
“네가 구경한 것이 어떠하더냐?”
그러자, 태자가 말씀드렸다.
“네 문을 돌아보다가 생·로·병·사를 보니 비로소 일체가 무상함을 깨달았습니다.”
왕이 말씀하셨다.
“비록 생·로·병·사를 깨달았으나 네가 나로 하여금 생·로·병·사를 벗어나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자 태자가 대답하였다.
“부왕께서는 소자의 원을 따라 출가를 허락하시면 어찌 생·로·병·사를 면하지 못하겠습니까? 반드시 피안에 들어 불생불멸할 것입니다.”
왕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피안에 올라 불생불멸함이 비록 좋지만 왕의 쾌락에다가 어찌 비하겠느냐?”
그러자, 태자가 대답하였다.
“왕의 쾌락이 어떻다고 하십니까?”
왕은 말씀하셨다.
“용루봉각 주궁패궐에 몸을 편안히 하며, 황금으로 된 의자에 우뚝 앉아 열국의 소왕들의 칠보 조공을 받으며 백천 궁녀가 좌우에서 모시고 서며, 성현의 가르침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다가 명이 다하면 태자와 왕손들이 계계승승하여 억만년 향기로운 꽃을 받들며, 억조의 창생과 함께 즐거워하여 태평가를 불러 임금의 성세를 찬탄할 것이다. 인간 쾌락이 어찌 이에서 더하겠느냐? 네가 말한 출가의 성스러운 길은 생멸이 없다 하니 좋겠지만, 눈앞에 보지 못하는 허망한 외도를 믿어 국가의 종묘와 사직을 버리고 인륜을 저버리고자 하니 생각건대 너는 충효를 다하여 나의 태산같이 믿는 바를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에 태자가 절을 올리고 하직하고는 침실에 돌아와 등불을 밝히시고 비구승이 말하던 게문을 일념으로 생각하니, ‘어찌 잠시라도 마음을 게으르게 하겠느냐?’라고 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왕명이 지엄하심을 염려하여 근심으로 세월을 보내셨다.
7. 성을 넘어 출가하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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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21_b_01L이때 태자는 왕궁의 부귀에 뜻이 없고 다만 틈을 타 출가할 마음을 굳게 정하였다. 왕이 태자의 마음을 알고는 매우 근심을 하여 수다라, 우타니 등에게 명을 내려 태자를 좌우에 모시고 있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조금도 흔들려 움직임이 없어 연꽃이 물에 젖지 아니하는 것과 같았고, 명주가 흙먼지에 있지만 변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았다.
하루는 태자가 조용히 왕에게 나아가 여쭈어 말하였다.
“부왕이 어제 경계하여 타이르심을 소자가 어찌 저버리겠나이까마는 삼계 중생이 마침내 고해에 빠져 육도에 생사를 받아 출입함이 한량없으니, 진주나 조개로 호화찬란하게 꾸민 대궐에 금전상이 어찌 장구하겠습니까? 비유하자면 섶이 다하면 불이 멸함과 같으며 저 적막한 산에 홀로 누운 무덤뿐이어서 그 자취가 적막하여 바람 끝에 티끌이고, 산꼭대기에 뜬구름이어서 취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출가는 대도이니 일승의 묘법을 얻어 무상정각을 증득하면 천지는 불에 타 없어지더라도 정각은 멸하지 못합니다. 또한 무량한 제천 중생을 제도하여 무궁겁에 무량한 쾌락을 받을 것이니 어찌 생사 가운데 있어서 뜬구름 같은 부귀에다 비하겠습니까? 부자지간은 천륜으로 맺어진 사이여서 생육하신 은혜가 천지에 망극하여 분신쇄골하여도 갚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출가 성도하여 부모 친척을 다 제도하여 생사고해를 여의고 영원히 극락세계에 처하여 부모 형제의 양육하신 은혜를 갚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경쾌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엎드려 원하옵건대 부왕은 한동안 정을 끊으시어 소자로 하여금 출가 수도하게 하옵소서.”
왕이 정색하여 말씀하셨다.
“네가 오늘 출가하면 내일 성도하여 나로 하여금 생사를 해탈하게 하고, 밝은 대낮에 하늘로 올라가 도솔천궁에 여러 가지 쾌락을 받을지라도 이는 허공 문의 허탄한 것이다. 족히 믿을 것이 아니고, 또 종묘와 사직을 전할 사람이 없는데 어찌 국가와 임금과 아비를 저버리고 출가 성도함을 청하는가?”
왕이 더욱 탄식하니 태자 또한 물러가셨다. 이때에 좌우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땅에 엎드려 말씀드렸다.
“태자의 성덕이 고금에 없사오니 출가함을 막으시어 종묘와 사직과 인민을 태평하게 하옵소서.”
또 우타니가 말씀드렸다.
“신이 어젯밤에 천문을 보니 태자의 직성直星이 정궁을 떠나오니 칠성이 또 본궁을 떠나 변하여 칠불이 되어 직성의 앞에 나열하고 나머지 별은 광채를 잃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태자는 도망하여 출가할 상이라 엎드려 원하옵건대, 성상은 네 성문을 굳게 지키시어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왕이 옳게 여겨서 수문장에게 엄하게 경계하며 말씀하셨다.
“문을 열고 닫음과 출입을 다 고하라.”
라고 하며 각별히 엄중한 명령을 내리셨다. 다음날 태자는 또 여쭈어 말하였다.
“출가 대원의 다섯 가지 좋은 인연이 있습니다. 첫째는 생·로·병·사를 해탈하고, 둘째는 상락아정을 얻으며, 셋째는 중생을 제도하고, 넷째는 구경열반을 증득하며, 다섯째는 모든 제불의 회장에 함께 모이기를 원함이니 이 다섯 가지 원을 위하여 출가하고자 합니다. 생멸이 없는 성인이 되어 중생을 제도하고 부모 친척으로 하여금 이별이 없이 한곳에 모이어 쾌락을 받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왕상은 한 순간의 정으로 출가함을 막지 마옵소서. 만겁에 함께 살아서 이별하고 죽어서 이별하는 고통을 해탈할 목적이오니 소자의 출가함을 막지 마시옵기를 바라나이다. 한 순간의 애정으로 인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이는 광명세계를 버리시고 흑암세계로 향하시는 것이오니 출가케 하심을 천만 번 바라나이다.”
그러자 왕이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셨다.
“네 원이 또한 지극하나 내가 늙어 너를 얻어 의탁함이 태산 같고 또 다른 자식이 없으니 종묘와 사직을 어찌하겠는가? 네가 끝까지 출가하고자 한다면 왕손을 얻어 자식을 낳은 뒤에 너의 원을 쫓아가라. 아직 부질없는 말로써 늙은 아비의 심사를 불안하게 하지 말라.”
왕이 말을 마치시고 눈물을 흘리며 길이 탄식하셨다. 그러자 좌우 여러 신하들도 몰래 슬퍼하였다.
태자는 말없이 자리에서 물러나 조용히 마음속으로 헤아리며 생각하였다.
‘왕상이 이렇듯 완고하시니 어찌하리오.’
태자의 마음이 우울해지고 번뇌하시어 용모가 창백해졌다. 이는 비유하자면 그물에 걸린 새가 맑은 하늘을 날지 못하는 격이었다. 이때 태자의 나이 19세였다.
임신년 이월 초파일 한밤중에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시고 가만히 서쪽 하늘을 향하여 무수히 절을 하시는데, 문득 금색 광명이 일어나며 사방에 제불이 각각 삼십이상과 팔십종호를 갖추어 공중에 늘어서시고 무수한 보살이 각각 장엄을 갖추어 무량 제천 대붕을 거느려 좌우에 나열하였다. 연꽃은 중천에 떠 있고 향기는 바람을 따라 구름 밖에까지 가득하였다.
그 가운데 한 보살이 사자를 타고 엄연히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태자가 광명을 쫓아 살펴보았는데, 머리에 천엽화관을 쓰시고 왼손에 한 송이 연꽃을 들어 어깨에 붙이고 태자를 향해 합장하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청량산 금색계에 있는 문수보살입니다. 2만 연등불이 서로 계속하여 성불한 뒤로 제불이 출세하시면 모든 부처님이 스승이 되어 일승묘법을 도왔습니다. 오늘날 석가 대각이 무량법에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에 수행하여 공덕이 정숙하시어 상생하여 도솔천궁에 나셔서 상제와 신민을 교화하시고, 아래로는 염부제에 나셔서 사문유관하시다가 생·로·병·사를 깨달아 성을 넘어 출가하셨습니다. 시방 삼세에 제불 보살께서 다 증명하시고 광명을 놓으시어 좌우 허공에 나열하셨으니, 엎드려 원하옵건대 대각은 출가하실 때를 잃지 마옵소서.”
태자께서 이 말씀을 들으시고는 크게 기뻐하시어 섬돌 아래에 내려와 예배합장하고 물었다.
“저 허공에 강림하신 성현은 누구이시기에 공중을 평지같이 왕래하시며 연꽃은 걸음을 따라서 피어납니까?”
문수보살이 대답하였다.
“동방은 약사유리광불과 일월등명불과 수미등불과 함께 강림하셨으니 좌우는 일광, 월광의 두 보살이 모시고 계시며, 서방은 극락대도사 아미타불과 대통지승불과 염화왕불로 함께 강림하셨으니 좌우는 관음, 세지의 두 보살이 강림하셨으며, 남방은 정광여래불과 비바시불과 가섭불과 함께 강림하셨으니 좌우는 금강, 청정혜 두 보살이 모든 보살을 거느리시고 강림하셨으며, 북방은 청정불과 칠성여래가 함께 강림하셨으니 좌우는 약왕과 약상 두 보살이 모든 보살을 거느리시고 강림하셨습니다. 또한 중앙은 연등불과 청정법신 비로자나불과 원만보신 노사나불이 함께 강림하셨으니 좌우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과 미륵보살이 무량한 제천 대중과 더불어 모시고 서 있으니 연등은 곧 대각의 수기하신 불이십니다.
대각이 과거 연등불께 수기를 받은 선혜비구에게 꽃을 받들어 공양하고 옷을 벗어 길을 덮어 연등불께 발원하니, 연등불이 수기하시어 후세에 왕궁에 내려와 석가모니불이 되시리라 하셨습니다. 이제 대각이 사바세계 오탁악세에 강림하시어 정반왕궁에 입태하심을 나타내셔서 금일 한밤중에 성을 넘어 출가하실 시절 인연이 오니 때를 잃지 아니하면 오래지 않아 정각을 얻어 삼계중생을 제도하고 대천세계를 지척같이 왕래하실 때 연꽃이 걸음을 따라 저렇듯 솟아날 것입니다.”
태자가 들으시고 다시 절을 하시는데, 이윽고 광명이 스러지며 허공에 무수한 모든 부처님이 일시에 한바탕 맑고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따라 숨어서 보이지 않고, 다만 사천왕과 상제께서 태자 앞에 나아가 여쭈어 말하였다.
“우리들은 문수보살께 계칙을 받고자 기다리오니, 원컨대 궁중을 떠날 때를 잃지 마옵소서.”
태자가 대답하였다.
“궁문을 굳게 닫았으니 어찌 벗어나리오?”
그러자 제천들이 여쭈어 말하였다.
“우리들이 모시고 갈 것이니 어찌 궁문이 닫침을 근심하리까?”
태자가 비로소 출가하심을 결단하시고 종자 차익車匿(Chandaka)을 불러 말하였다.
“말안장을 재촉하여 기다리라.”
차익은 회장원 장사 가운데 기운이 충직하므로 근심하여 떠나지 않으며, 말 이름은 건척犍陟(Kaṇṭhaka)으로, 태자가 7세에 자재천의 묘에 가실 때에 항하수를 건널 때 물속으로 백룡이 내달려서 배를 지고 건너 간 후 문득 변하여 흰 말이 되어 태자에게로 돌아오니 하룻날에 삼천리를 순행할 수 있었다. 이날 밤에 차익이 명을 받고 말을 이끌어 안장을 정돈하였다.
이때 태자가 의관을 정제하고는 부왕의 침전을 향하여 네 번 절하고 급히 궁전을 떠나 섬돌 아래로 내려오니 차익이 건척을 이끌어 기다리고 있었다. 태자가 타려고 하시니 건척이 문득 굽을 들어 두 번 치며 목을 늘어뜨려 세 번 슬피 우니 그 울음소리가 처량하였다.
태자가 속으로 헤아리며 생각하였다.
‘슬프다! 건척이여, 비록 짐승이나 집을 떠나 주인을 하직하게 되니, 슬피 우는도다! 이는 무상대도를 위하여 부왕의 지극한 은혜를 끊으며 왕궁의 부귀를 다 버리고 출가하는 것이라.’
이때에 야수부인이 왕명을 받아 태자의 침전에 나가 태자의 동정을 살피셨는데, 날이 오래되자 약한 몸이 피곤하여 침상에 비스듬히 조는데, 문득 허공에서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나며 무수한 장륙금신이 금색 광명을 놓아 어두운 밤이 대낮 같았다. 태자가 그 가운데로 몸을 날려 공중에 오르니 해와 달이 떨어져 두 어깨에 얹히며 구름 속으로 백룡을 타고 금신을 쫓아 서천으로 향하여 가버렸다. 그러자 야수부인이 경황이 없어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태자는 첩을 버리시고 누구를 쫓아 어디로 가십니까?”
태자가 구름 가운데서 한번 돌아보며 뒤에 쫓아가는 동자를 발로 차서 밀치니 그 동자가 울며 야수부인의 품 가운데로 들어오는데, 야수가 놀라 꿈을 깨니 동자의 우는 소리 쟁쟁히 들리듯 하였다.
야수부인이 꿈속의 일을 기록하며 정신을 차려 시녀를 부르니 이때가 삼경이었다. 조용한 달빛은 서창에 걸려 있고 사방이 적적하고 고요한데, 시녀를 데리고 태자의 침실로 들어가니 대궐문이 열리고 문밖에 숙직하는 우타니, 소다라 등이 궁녀와 환신과 같이 잠든 상태였다. 그래서 바로 침실로 들어가니 다만 옥 향로에 향연이 스러지고 쇠잔한 촛불이 밝게 비치는데 사람의 자취가 묘연하거늘 야수부인은 당황하여 탄식하였다.
건척의 우는 소리 나는데, 소리를 따라 넘어질듯이 내달으니 태자가 바야흐로 말 허리를 잡고 주저하시다가 야수부인을 보시고 은근히 말씀하셨다.
“오늘 출성함은 정각을 위함이오. 낭랑娘娘을 만나니 족히 과거 인연을 이루어 후사를 부탁하오리다.”
야수부인이 나아가 금포 소매를 잡고 탄식하여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면서 말하였다.
“태자께서 어찌 부왕과 첩을 속이시며 국민을 버리시고 이렇듯 급작스럽게 한밤중에 누구를 쫓아 어디로 향하십니까? 비록 출성하시나 네 성문에 문지기가 굳건하니 부왕이 기침하심을 기다려 거취를 고하시고 가심이 또한 늦지 아니하거늘 장부가 어찌 못나고 어리석은 뜻을 두어 군부를 속이시고 도망하시렵니까?”
태자가 정색을 하며 말하였다.
“낭랑은 다만 세상 일만 아시고 어찌 세상 밖의 일을 모를까? 하루살이가 사철을 알지 못하고 버섯풀이 그믐과 초하루를 모르는데, 성현의 도덕을 규중 여자가 어찌 알리오? 그렇지만 부왕에게 세 번이나 말씀드려도 끝내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오늘밤 출가함은 제불이 도우신 것이오. 나의 원이 본래 이러함은 낭랑도 아는 것인데, 오늘밤 아니 가고 어느 때를 기다릴 것인가?”
야수부인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출가 성도하여도 중생을 제도함도 또한 성덕이시니 인륜의 대의도 성현의 일입니다. 여자에게 삼종지도가 있으므로 이제 태자께서 출가하시고 한 점 혈육이 없사오니 박명한 인생이 누구를 따라 의탁하겠습니까?”
그리고는 더욱 눈물이 흘러 소리 내어 울었다. 태자가 웃으며 말하였다.
“무상대도를 성취하여 생·로·병·사를 면하고자 하는데, 어찌 조그마한 사랑에 걸리겠는가? 그러나 부왕도 왕손이 없음을 한하시고 부인도 근심하니 내 부인에게 아들 하나를 의탁하노라.”
그리고는 왼손 무명지로 야수의 배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후 8년이면 반드시 남자를 탄생하리니 이름은 라후라羅睺羅(Rāhula)라고 하라. 아이를 낳으면 변괴가 있어 부인이 불타는 숯불 가운데 들어 큰 액난을 받을 것이니 이를 장차 어찌하리오?”
그러면서 전단향栴檀香 한 봉지를 주면서 말하였다.
“불타는 숯불의 고액을 당하거든 향을 먼저 불에 던지고 설산을 향하여 나를 생각하면 불타는 숯불에 들어도 자연히 액난을 면하고 분명히 서로 만남이 있으리다.”
그리고 즉시 소매를 떨치고 일어났다. 야수부인이 다시 붙들고 통곡하며 애걸하였다.
“내일 부왕이 찾으실 것이니 차마 무슨 면목으로 존안을 대하여 슬퍼하심을 뵈오며, 또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군자의 뒤를 따라 생사를 함께하고자 하나이다.”
그러자 태자가 또 웃으며 위로하여 말하였다.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 인연과보인데도 부인이 오히려 왕궁의 부귀에 처하여 청정한 마음이 티끌에 묻혀 과거 인연을 모두 잊었도다. 만일 잊었거든 손바닥에 글씨를 살펴보시오.”
야수부인이 눈물을 거두고 말하였다.
“첩이 어찌 인연이 모이고 흩어짐을 모르겠습니까마는 이번에 이별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니 첩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습니까?”
이로 인하여 슬프게 통곡하니 태자가 머리를 돌려 말하였다.
“부인은 부질없이 번뇌하여 청정 본심을 산란케 말고 돌아가 부왕을 모시고 만세토록 소중히 보살피시오.”
그리고는 건척을 이끌고 궁문을 나서니 하늘에 은하수가 기울어져 밤이 바로 사경 때였다.
사천왕과 제천 상제들이 사방으로 옹위하여 성문을 지키는 장졸을 피하여 바로 성을 넘어갈 때, 상제는 일산을 들고 사천왕은 태자가 타신 말굽을 잡아 내려오는데,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성을 넘어 수십 리를 가실 때, 동방이 밝아오고 제천 상제들은 다 공중으로 돌아갔다.
태자가 발가선림跋伽仙林이라는 곳에 이르시니 산수가 빼어나 바위가 겹겹이 쌓인 절벽에 푸른 소나무와 푸른 대나무가 울창하니, 여기는 가히 출가 도인의 거처할 곳이었다. 길을 찾아 떠나가실 때, 그물에 걸려 있던 물고기가 강호를 향한 듯하였다. 태자가 말 위에서 노래하며 말하였다.
“과거제불이 출가하여 정각을 구할 때
몸에 두른 금의를 벗어 버리고 머리를 잘랐도다.
탐진치를 여의고 번뇌를 벗어 버림이
대장부의 할 일이로다.”
태자는 즉시 말에서 내려 수풀 가운데 자리를 정하시고 머리에 쓰신 칠보금관을 벗으시며 영락과 용포를 벗어 차익을 주면서 말하였다.
“너는 이 관복과 건척을 이끌고 돌아가 부왕께 드리거라.”
그리고는 즉시 금전도金剪刀를 빼서 머리카락을 풀어 헤쳐 잡고 한번 깎으니 구름 같은 녹발이 칼날을 따라 무릎 아래에 떨어졌다. 차익이 이 형상을 보고 오장이 찢어지는 듯하여 관복을 땅에 던지고 급히 나가 목 놓아 통곡을 하며 말하였다.
“태자는 한 나라의 근본인데, 부왕과 종묘와 사직과 신민을 누구에게 부탁하시고 한밤중에 출성하셔서 이곳에 이르러 삭발하여 스님이 되시는 게 어찌 차마 할 바입니까? 차라리 신의 목숨을 끊어서 제가 보지 않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금전도를 잡고 놓지 아니하였는데, 태자가 민망하여 말하였다.
“도를 위하여 이러한 것이니 너의 알 바는 아니니라. 빨리 돌아가라.”
차익이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떠나지 않았는데, 상제와 사천왕이 내달려와 차익을 물리치고 태자가 앉으신 곳을 감추었다. 태자가 다시 칼을 들어 남은 머리를 깎으시니 상제가 그 머리를 낱낱이 거둬 금합에 넣어 천상에 올려다가 탑을 조성하고 그 가운데 모셔 두었다.
이때에 정거천인이 변하여 사냥꾼이 되어 몸에 금란가사를 입고 태자 앞을 지나갔는데, 태자가 그를 불러 말하였다.
“그대가 입은 옷은 출가한 도인의 법복이다. 사냥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도다. 나의 비단 옷과 바꾸는 것이 어떠한가?”
사냥꾼이 즉시 가사를 벗어 받들어 올리는데, 태자가 받아 입고는 그곳을 떠나 설산으로 향하셨다. 차익이 관복을 가지고 태자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고하여 말씀드렸다.
“이제 태자 옷을 바꿔 입으시고 대도를 수행하시니 어찌 홀로 돌아가겠습니까? 함께 뒤를 따르겠으니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는 소신의 원을 저버리지 마옵소서!”
그리고 슬피 울었다. 태자가 웃으며 말하였다.
“앞으로 만날 때가 있을 것이니 나와 더불어 함께 있을 것인데 필경 서로 찾음이 있을 것이지만, 아직 이곳에 와 변하고 설산으로 들어갈 것이다. 부왕이 나의 거처를 모르시고 애통해 하시리라.”
태자가 길을 떠날 때, 차익이 하릴없어서 가시는 곳만 바라보다가 이윽고 통곡하고 건척을 몰아 돌아가려고 하였는데, 건척이 고개를 돌리고 태자가 가시는 곳을 바라보고 슬피 울더니 문득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차익이 수풀 가운데서 건척을 또 잃으니 돌아갈 마음이 끊어져 도로 태자를 찾아가다가 다시 헤아려 생각하였다.
‘태자는 천인이시어서 경계하시어 바삐 돌아가 부왕께 고하라 하셨는데, 이제 명을 따르지 아니하면 이는 신하의 도리가 아니다. 먼 훗날 태자가 정각을 증득하실 것인데, 어찌 나를 제도치 아니하시며 어찌 한곳에서 만나지 아니하리오?’
차익이 슬픔을 억제하고 돌아오다가 다시 설산을 향하여 바라보더니, 산 뒤에 검은 구름이 덮였는데, 차익이 채찍을 들어 가리키며 말하였다.
“어여쁘다! 건척은 저 구름을 타고 설산으로 가건마는, 나는 사람이어서 한갓 건척만 못하여 홀로 돌아가는도다!”
그리고 길이 탄식하였다.
이때에 야수부인이 태자와 더불어 이별할 때 손바닥을 보며 글자를 기록하란 말씀을 깨닫고는 세상만사 인연이 모이고 흩어짐을 홀로 위로하였다. 또 꿈속 일을 보고 태자는 범인이 아니라 세존으로서 출가하심이 반드시 무상정각을 얻을 줄 짐작하나 불타는 숯불을 만날 것이다 하는 말씀을 알지 못해서 근심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위로하여 전단향을 깊이 간수하고 슬픈 태도로 침병에 의지하였다.
이때에 정반왕이 태자가 출가할까 하여 밤낮으로 근심하여 좌불안석하였는데, 비몽사몽간에 태자가 층계 아래에서 네 번 절을 올리며 말하였다.
“불초자 오늘 제천과 더불어 출가하나이다.”
왕이 놀라서 잡으려고 하니 태자가 문득 변하여 키가 하늘에 닿으며 몸이 세계에 가득하더니, 이윽고 몸을 움직이어 공중에 오르니 천지가 진동하였다. 왕이 놀라 깨어나니 일장춘몽이었다. 정신을 차려 시중드는 신하에게 명하여 태자의 동정을 물으셨다.
이때 우타니 등이 태자를 호위하다가 밤중에 가신 곳을 모르고 어쩔 줄 몰라 하여 궁문에서 명령을 기다렸는데, 왕이 나오시는 것을 보고 나아가 왕께 머리를 조아리며 땅에 엎드려 고하였다.
“신들이 왕명을 받들어서 태자를 호위하옵는데, 밤중에 가신 종적을 알지 못하오니 무슨 말씀을 아뢰겠습니까? 죄를 용서해 주시길 청하나이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울었는데, 왕이 놀라 낙담하여 한참 있다가 할 말을 잃은 심정에 눈물이 비 오듯 하시어 용포를 적시었다. 이윽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태자가 출가함이 분명하도다. 간밤에 꿈에 나타난 일이 여차여차하더니 태자는 천인이어서 인력으로 못할 것이다. 만년에 아들 하나를 얻어 깊은 애정으로 금지옥엽 같더니 이제 태자를 잃으니 이 마음을 어찌 위로하며, 종묘와 사직을 누구에게 의탁하리오? 불쌍하고 잔인한 야수의 박명을 더욱 슬퍼하노라!”
그리고는 급히 태자의 침실에 들어가니 야수부인이 하늘가를 바라보며 눈물을 뿌려 홍상을 적시다가 왕이 오심을 보고 몹시 놀라 나와 맞이하였다. 서로 가만히 잠자코 아무런 말이 없었는데, 왕이 야수의 옥같이 고운 얼굴에 눈물이 어림을 보고 크게 슬퍼하여 말하였다.
“태자가 성을 나설 때에 현부는 알았느냐? 만일 알았었다면 이별할 때에 무엇이라고 하였으며, 어디로 향하였으며, 어느 때에 돌아온다고 하더냐?”
그리고 말씀을 잇지 못하여 눈물을 흘렸는데, 야수부인이 왕의 거동을 보고 근심어린 기색을 감추시고 엄숙히 대답하였다.
“첩의 명도 사납고 박복하여 청춘에 소천所天을 이별하오니 이 이별이 영영 이별이어서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습니까? 그렇지만은 태자는 천인이시라, 제불이 강림하시어 출가하였으니 어찌 속세의 부귀와 은애를 생각하오리까? 오래지 아니하여 정각을 증득하실 것인데 부모 친척과 처자 권속을 다 제도함을 입어 먼 훗날 천궁의 쾌락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엎드려 원하옵건대 성상은 심회를 억제하시어 너무 지나치게 슬퍼하지 마옵소서.”
태자가 성을 나설 때에 붙들고 간청하였지만 화를 내며 이르던 말과 전단향을 주고 가시던 일을 낱낱이 고하니 왕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부자는 하늘이 내린 천륜이라 잊고자 하나 형용이 눈에 가물가물하니 슬프다! 늙은 아비의 간장이 어찌 이리 온전하리오?”
그리고는 목 놓아 통곡하셨다. 그러자 좌우의 여러 신하들이 일시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왕이 야수를 위로하며 말하였다.
“얼굴 곱고 운이 사나운 여자가 예로부터 있으니, 현부는 마음을 잘 살펴 늙은 시아비를 생각하라!”
야수부인이 일어나 다시 예배하였다.
이때에 태자를 양육하시던 마야부인의 아우인 마하파사摩訶波闍(Mahābrajātatī)는 슬피 울다가 왕께 고하여 말씀드렸다.
“태자가 성을 나섰으나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오니, 여러 장졸을 보내어 따르게 하소서!”
왕도 말씀하셨다.
“내 뜻도 또한 그러하나 건척이 하루 동안에 수천 리를 갈 것이니 장졸을 보내도 미치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사람을 보내어 소식을 알게 할 것이로다.”
그리고는 즉시 우타니 등에게 명하여 5백 장수를 거느려서 즉시 태자를 따라가 데려오는데, 만일 삭발하였거든 두고 돌아오라고 명하시고는 네 성문을 지키던 장졸을 엄히 경계하라고 하였다.
그때에 차익이 태자를 이별하고 눈물로 돌아오다가 우타니 등을 만나 반기며, 태자가 설산으로 들어가셨다는 말씀을 전하였다. 우타니 등이 이를 듣고 또한 슬퍼하며 중도에 머물러 왕명을 기다렸다. 차익이 돌아와 태자의 금포 옥대와 의관을 받들어 올리고 땅에 엎드려 울면서 고하여 말씀드렸다.
“국운이 불행하여 태자가 모든 하늘과 더불어 밤중에 성을 나서서 벌써 수염과 머리를 깎으시고는 설산으로 들어갔사옵니다. 관복과 건척을 갖다가 부왕께 드리라고 하시옵기에 명을 어기지 못하여 돌아왔사오나 무슨 면목으로 세상에 처하오리까? 머리를 깎을 때에 울며 지극히 간청하였지만, 듣지 아니하시고 제천의 신력으로 몸을 감추어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관복을 벗으시고 사냥하는 사람의 가사를 얻어 입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설산으로 가시던 것과 건척을 또 잃은 사연을 낱낱이 고하였다. 그러자 왕이 야수와 백관으로 더불어 태자의 관복을 보시고 통곡하며 말하였다.
“의관은 있으나 나의 한 아들 자취는 적막하니 슬프다! 화창한 봄바람과 상서로운 구름을 어느 때에 다시 보랴!”
왕이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시니 차익이 머리를 조아리고 울며 아뢰어 말씀드렸다.
“태자가 평상시의 학문과 덕행이 천고의 성현보다 뛰어납니다. 제천 천인과 더불어 출가하시니 머지않아 반드시 대각에 올라 생사고해를 건너 함께 천궁쾌락을 받으시리니, 엎드려 원하옵건대 대왕은 슬픈 마음을 억제하셔서 정각을 기다리소서.”
그러자 왕이 말씀하셨다.
“너는 말을 그쳐라! 내 심장이 끊어져 이기기 어렵도다! 금생에 다시 만나기를 어찌 바라리오?”
왕이 다시 명을 내려 말씀하셨다.
“태자가 이미 삭발하였으니 그 뜻을 돌이키지 못할 것이다. 장사를 다시 거두어 따르지 말라.”
그리고는 성 가운데서 충효 정직하고 자손을 다섯씩 둔 사람의 자식 하나씩을 거두어 수십 인으로 하여금 설산에 보내어 태자를 모시라 하였다. 교진여憍陳如(Kauṇḍinya) 등이 여러 명을 거느려 설산으로 가게 되자 차익이 왕께 여쭈어 말씀드렸다.
“소신이 처음 돌아올 때 태자의 소식을 아뢰고자 한 것이니, 이제 어찌 홀로 떨어지겠습니까? 교진여 등을 따라가고자 하나이다.”
왕이 허락하며 차익의 충성을 기특하다고 하시었다.
8. 설산에서 도 닦으시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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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29_b_01L이때에 태자는 차익을 보내시고 설산으로 향하실 때 수백 리를 걸어가시어 설산으로 들어가니 지명은 피선주였고, 득도한 신선 수십 인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나뭇잎과 풀잎으로 의복을 만들어 입고 먹는 것은 나무 열매였다. 배우는 도는 물과 불을 희롱하여 불 속에서도 들고 나며, 물속에서도 다니며 천궁에 올라가 해와 달도 흔들어 움직이며 바람과 구름을 부렸다. 그 술법이 족히 기특하다고 하겠지만 자신의 한 몸이 생멸문에 처하여 고행을 행하니 올바로 해탈하는 도는 아니었다.
태자는 선인에게 물었다.
“그대는 도술을 배웠으나 결국은 생멸문을 면치 못할 것이니 위없는 큰 도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자, 도인들이 대답하였다.
“우리가 원하는 도는 세세생생에 천상에 나서 바람과 구름을 타며 팔방을 마음대로 왕래하여 요지에 신선계의 반도蟠桃 복숭아를 먹고 큰 신선의 도를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자 태자는 말하였다.
“세상의 쾌락이 비록 지중하나 복이 다하면 타락하여 윤회를 받으리니 어찌 외도를 수행하리오?”
그리고 그곳을 떠나 깊은 산으로 더 들어가셨다.
이때에 교진여 등이 태자를 찾고자 두루 다니다가 길 가운데 고행을 견디지 못하여 말하였다.
“어찌 광인을 면하리오. 왕궁의 부귀를 버리고 이미 출가하여 우리로 하여금 고통스럽게 하니 어찌 분하지 아니하리오? 그러나 이를 버리고 돌아가면 멸족을 당하는 환란이 있을 것이니 길 가운데 머물러 태자의 거처를 찾아내는 것만 같지 못하다.”
차익이 그들이 못마땅해하는 것을 알고는 마음속으로 분하여 말하였다.
“그대들은 머물러 있으시오. 나는 태자를 찾아 죽고 사는 고통을 함께 나눌 것이오.”
그러자 함께 따라나서기를 원하는 자가 여러 명이 되었다. 차익은 이들을 데리고 태자를 찾아 나섰다.
이때에 태자가 아라나阿羅邏(Ārāḍa-kālāma) 선인이 있는 곳을 들어가시니, 층층이 쌓인 바위 늙은 소나무 아래에 두어 선인이 있었는데, 푸른 눈썹이 한 자나 되어 눈을 덮었고 뚜렷한 이마 위에 연엽관蓮葉冠을 쓰고 몸에 보랏빛 옷을 입었는데, 맑고 빼어난 거동이 예사롭지 않았다.
태자가 나아가 절을 올렸는데 아는 체도 아니하였다. 그러자 태자는 선정에 든 도인인가 하여 다시 공경하게 물었다.
“선의군 숭상하는 도를 배우고자 하나니 생·로·병·사를 영원히 끊는 도를 가르쳐 주소서!”
그 도인이 눈썹을 찡그리고 말하였다.
“어떠한 미친 수행승이기에 산중의 수도하는 곳을 요란하게 하는가?”
그 가운데 한 선인이 무릎을 들어 다리 위에 얹고 누웠다가 추파 같은 눈을 들어 태자를 보고 옆 도반에게 말하였다.
“천상천하에 위없는 대성인이 강림하였도다.”
그리고는 일어나 태자를 맞아 합장 예배하고 말하였다.
“과거 도솔천상에서 서로 떠난 후에 각각 연진에 떨어져 도성과 청산의 길이 달라서 오랫동안 뵈옵지 못하였는데, 이제 태자가 부왕을 버리고 깊은 산속 골짜기에 들어와 구경열반 대도를 물으시니 실로 천고에 희유한 일이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어찌 대성인 앞에 감히 대도를 의논하겠습니까?”
태자 다시 일어나 사문에게 절을 올리고 말하였다.
“중생이 비로소 오온 육식에 싸여 대성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교만심을 따르는 것이고, 교만심은 어리석은 마음을 따르는 것이며, 생각은 육신을 따르고, 육신은 모든 번뇌와 우비고뇌를 이룹니다. 이러하므로 그것을 여의지 못함이 윤회 보응이 있게 됩니다.”
태자는 문득 생각하였다.
‘이 늙은 신선이 생·로·병·사를 영원히 끊는 도를 아는구나.’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무슨 방법으로 생·로·병·사를 영원히 끊게 됩니까?”
그러자 늙은 신선이 대답하였다.
“선정을 수습하여 정념을 얻어야 무량한 식의 종자를 멸하게 됩니다. 이것이 구경해탈의 도이니, 이름을 피안이라고 합니다.”
태자는 다시 물었다.
“구경해탈에 마침내 ‘나’라고 하는 상이 있습니까? 만일 이 상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상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피안에 이르겠습니까? 일체가 청정하여 인아人我 사상이 굳어지고 뚜렷이 밝으며, 고요히 비추어 둘이 없는 성품을 깨쳐야만 정각에 오를 것입니다. 이것이 구경해탈의 도이고 생·로·병·사에 근본을 해탈하는 것입니다.”
선인들이 듣고는 각각 절을 올렸다.
태자가 이곳에 머문 지 수년이 되도록 도덕을 의논하셨는데, 하루는 두 선인이 말하였다.
“선과 각의 도가 길은 비록 다르나 청정한 도덕은 한가지입니다. 이제 무상 대각황을 만나 어찌 떠나고자 하겠습니까마는, 우리는 종적이 안개와 구름 같아서 칠금산七金山과 사주四洲 세계를 순식간에 다녔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상제께서 은밀하게 명령을 내리셔서 도리천 선법전에서 삼세제불을 청하여 대법을 설하실 때, 삼계제천과 팔부성신과 모든 신선으로 하여금 법을 들으라고 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하시니 상제의 명을 받들어 돌아가오니, 먼 훗날 영산 대회에서 뵙겠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솟구쳐 공중을 향하였는데, 태자는 늙은 신선을 이별하시고 설산의 구름 깊은 곳으로 향하였다.
설산은 사람의 자취가 이르지 아니하고 산이 하늘에 닿으며 층층이 쌓인 바위 절벽에 기이한 꽃과 맑은 풀과 전단향 숲과 모든 수림이 많으니 맑은 향내가 끊어지지 아니하고, 백천의 봉우리가 흰 구름 가운데 솟았으니 산색이 다 눈빛이었다. 이러하여 설산이라고 하니 과연 출가 도인이 머물 곳이었다.
태자가 산 가운데 들어가 석굴을 찾아 좌정하시니, 그 굴이 대단히 맑고 깨끗하였다. 태자는 대선정에 들어 한번 단정히 앉으셨는데 6년이 지났음을 알지 못하였다. 삼계 모든 하늘과 상제도 때때로 내려와 호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때 차익이 두 사람을 데리고 태자를 찾아 설산으로 왔다. 문득 태자를 만났으나 말을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시니 바로 나무로 만든 사람 같았다. 차익은 속으로 헤아리기를 가까이 다가가면 일정한 맑은 마음을 움직이게 되어 도에 방해될까 두려워하여 석굴 밖에 멀리 토굴을 짓고 은신하며 태자의 동정을 살필 때, 태자가 석굴을 떠나 보리수 아래에 정좌하고 선정에 드시어 여러 날을 굶으시니 형용이 오히려 수척해졌다.
하루는 정거천 사람이 내려와 양치는 소녀에게 유미죽을 구하여 태자에게 드리니 태자께서 그것을 받아 마셨다.
9. 나무 아래에서 마왕을 항복 받으시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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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31_b_01L이때에 욕계 육천과 위로 색계 십팔천 아래 그 사이에 있는 마왕 파순波旬(Pāpīyas)은 그 신통이 불가사의하였다. 아수라를 잡아 항복 받고 수미산을 잡아 흔들며, 해와 달을 가리고 사해를 말려버렸다. 그러니 누가 대적할 수 있을 것인가? 마왕 파순이 마군 8억만 무리를 거느리고 태자를 해코지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때에 세존께서 석굴에 머물며 금색 광명을 놓아 세계에 두루 비추시니, 마왕 파순이 광명을 보고 크게 놀라며 말하였다.
“천상천하에 내가 홀로 내 멋대로 행하지만, 나를 대적할 신통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정반왕의 아들 실달이 정도를 얻었다고 하여 조그마한 광명을 놓아 국토에 비추어 나로 하여금 항복을 받으려 하니, 조그마한 실달이 어찌 이렇듯 무례한가? 내 이제 대군을 거느리고 바로 석굴 속에 들어가 실달을 잡아내어 한숨에 삼키고 돌아오리라.”
그리고 말을 마치자마자 성난 기운이 가득 찼다. 파순의 딸 네 명이 곧장 말하였다.
“보잘것없는 승도로 말미암아 부왕이 어찌 친히 행하고자 하십니까? 소녀들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단장하고 낯을 꾸미어 굴에 들어가 그 도를 헐어 버리면 조금도 힘을 허비하지 않고 항복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근심하십니까?”
라고 하자 파순이 기뻐하여 즉시 네 딸에게 명하여 석굴에 보냈다.
이때에 세존께서 보리수 아래에 결가부좌하시어 부처님의 눈으로 시방 허공을 다하고 법계를 다하여 사무쳐 보시고 들으시며 아셨다. 파순이 네 딸을 보내어 꾀어내고자 하며, 또 8억만 마군이 들어와 해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한참을 움직이지 아니하셨다. 네 딸이 문득 단장을 갖추어 태자 앞에 들어와 독을 머금고 말하였다.
“태자의 도덕이 지중하시니 모든 하늘이 공경하신 바입니다. 그래서 파순왕께서 우리들을 보내시어 좌우에서 항상 모시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좌우에 둘러서서 모시면서 온갖 태도로 유혹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정념으로 부동하시고, 상제는 즉시 사대천왕을 부르시고 또 팔대금강이 들어와 예배하고 옆에 모시고 섰다. 태자는 마녀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이 가죽 주머니에 똥 담은 것으로 시험치 말라.”
금강역사가 네 딸의 거동을 보고, 금강역사 소매에서 쇠고리를 빼내어 네 딸의 머리에 각각 쇠고리를 끼우자 네 딸은 매우 아파하였다. 네 딸이 쇠고리를 쓰고 땅에 거꾸러지며 살고자 애걸하였다. 그러자 또 금강신이 한 번 쇠 작대기로 내려치며 뇌성 같은 소리로 질책하며 말하였다.
“너희 요물이 어찌 대성인을 알지 못하고 침범코자 하느냐?”
네 딸이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절을 올리며 애걸하며 말하였다.
“첩들은 파순의 딸입니다. 망령되게 들어와 대성인을 침노한 죄는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죄가 무거우나 바라건대 용서하시어 남은 목숨을 보전하게 하옵소서.”
세존이 상제에게 말을 전하여 말하였다.
“너희들이 돌아가 파순에게 정도의 교화를 받도록 하라.”
네 딸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어찌 다시 거역하오리까?”
세존께서 금강역사에게 법지를 내려 네 딸에게 씌워진 쇠고리를 벗겨서 돌려보내셨다.
이때에 파순이 네 딸을 설산에 보내고 근심했는데, 네 딸이 곧 돌아와 금강역사의 쇠막대기와 쇠고리에 곤란을 당한 일을 다 고하였다. 파순이 크게 놀라서 불같이 화를 내며 즉시 80억만 마군을 징발하여 말하였다.
“내 오늘날 설산에 들어가 실달을 잡아 항복 받지 못하면 맹세코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그리고는 설산을 향하니 그 형세가 비바람과 같았다.
세존이 바야흐로 보리수 아래에 단좌하시였는데, 검은 안개 가운데로 파순이 군사를 거느리고 들어와 에워싸니 그 형세가 철통과 같았다. 파순이 입으로 푸른 기운을 토하니 그 기운이 변하여 혹 호랑이도 되고, 사자도 되며, 혹 악한 용과 독사도 되고, 혹 창검도 되어 공중에서 무지개도 되며, 모진 바람과 검은 구름도 되어 천지가 진동하며 운무 가득하여 지척을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파순이 칼과 창 위에 뛰어올라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조그마한 사문이 ‘도를 얻었노라’라 하고 5백 세 전에 얻은 신통에 대항하여 나의 네 딸을 꾸짖고 내 항복을 받고자 하니, 방자하고 교만한 죄를 어찌 용서하리오? 마음을 고쳐 나의 제자가 되면 죄를 사하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나의 손 가운데에 목숨을 마쳐 세계 밖으로 던지리라.”
세존은 한결같이 움직이지 않으셨다. 상제께서 사천왕 등을 부르시며, 또 팔대금강이 내달려 공중으로 솟아 금강철퇴를 휘두르며 파순의 칼과 창을 부셔 버리고 바람과 구름을 다 없애 버렸다. 그러자 파순이 공중에서 떨어지며 금강신장을 향하여 입에서 검은 안개를 토하였다. 그 안개가 문득 변하여 열 길이나 되는 뱀이 되어서 그 몸을 날려 신장의 어깨에 붙으려 하였다. 독한 기운이 하늘과 땅, 해와 달에 사무쳤다.
금강신장이 그 독기에 싸여 진실로 위태로웠는데, 이때 차익이 세존을 모시고 석굴 밖에 있다가 이 광경을 당하여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쇠 채찍을 들고 뛰어들어 좌충우돌하며 말하였다.
“우리 세존은 성인이시다. 정각을 얻어 공덕이 원만하거늘, 너희 요물이 어찌 침범하리오?”
그리고 쇠 채찍으로 치며 들어가니 사면에 둘러싸였던 마군이 일시에 흩어져 버렸다. 신장이 비로소 몸을 뺐으나 차익과 같이 미끄러져 들어가니 파순이 힘이 다하여 신통을 부리지 못하고 검은 안개를 거두며 환술로 보이던 독사와 활이 일시에 다 쓰러졌다. 그러나 파순의 독기가 쇠진하기 전에 다시 마군을 몰아 들어왔다. 그런데 세존이 생각하시었다.
‘파순이 비록 마도이나 5백 세를 수련하여 변화 신통이 금강역사를 대적할 수 있으니 그대로 싸운다면 이는 전쟁과 같을 것이다. 어찌 큰 도에 자비를 버리고 외도와 함께 싸움할 것인가? 이제 금강역사의 힘으로 마구니를 대적하여 이긴다면, 이는 이긴 것이 아니다. 천하 도덕이 각각 다름이 있으니 곧 사와 정이다. 이제 파순에게 자기의 사도를 크게 깨달아 정도를 알게 하면 곧 귀순할 것이다. 어찌 자비를 버리고 파순의 악심과 겨룰 것인가?’
그리고는 상제에게 명하여 팔부금강을 물리치시고 파순의 대중을 달래어 말씀하셨다.
“너희 사도의 무리들이 정도를 모르고 이렇듯 침범하다가 아비지옥에 떨어져 억만 겁이라도 나오지 못하면 어찌 두렵지 아니하겠느냐? 이제 나의 대자대비로 금강역사의 살벌을 거두었으니 바삐 보리수 아래에 들어와 항복하여 죄를 면해줄 것을 청하고 정법을 들으라.”
그런데도 파순의 대중이 듣고 각각 비웃으며 말하였다.
“우리 80억만 대중이 너희 칠팔 귀졸을 보고 두려워 항복하겠는가?”
세존이 상제에게 성지를 다시 전하고는 말씀하셨다.
“너희 대중이 사마 외도에 혹하여 정도를 모르고 나와 더불어 승부를 결단코자 하는데, 내 앞에 있는 조그마한 병을 네가 움직일 수 있겠느냐? 만일 이 병을 움직여 흔들림이 없다면 너희의 반역을 깨달아 나에게 귀순해야 할 것이고, 만일 흔들려 움직이면 내가 네게 귀순하리라.”
파순의 대중이 이 말을 듣고 각각 손뼉을 치며 크게 웃으며 달려들어 병을 잡아 밀치고자 하였으나 조금도 흔들려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파순이 너무 놀라 마군 등을 호령하여 쇠사슬로 병목에 매어 놋줄을 던져 마군들에게 일시에 당기라고 하였으나 조금도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다만 병 속에서 오색 무지개가 솟아나 공중에 두루하고 모진 바람과 돌비가 공중에서 비바람같이 내렸다. 그러자 파순과 마군들이 다 정신이 아득하여 머리를 들어 세존께서 앉으신 곳을 바라보니 금강과 사대천왕과 모든 하늘과 상제가 좌우에서 모시고 있고 상서로운 기운이 하늘까지 가득하였는데, 정신을 겨우 차려 땅에 엎드려 말씀드렸다.
“오늘에야 정도가 당당함을 깨달았습니다. 세존은 대자대비로 남은 목숨을 보전하여 정도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세존이 즉시 발로 철병을 밀치며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이 조그마한 병 하나를 움직이지 못하니 너희 신통이 어디 있는가? 오늘 반역을 깨닫고 사와 정을 안다면, 또한 선남자라. 훗날 마땅히 제도하리니 지금은 돌아가 선행을 닦으라.”
그러자 차익이 분해하며 말씀드렸다.
“파순이 대성인을 항거한 죄는 큽니다. 마땅히 파순을 풍도지옥으로 보내어 억만 겁이라도 나오지 못하게 하소서!”
세존이 말씀하셨다.
“정도가 있으면 외도 또한 따라서 침범함이 예사이다. 너는 아직 세간 희·로·애·락에 이끌려 그러하거니와 정도에 있는 사람은 일체를 평등하게 보는 것이다. 타인의 탐내고 아낌과 꾸짖으며 욕함이 내게는 극락이니 어찌 마음에 두고 걱정하리오?”
차익이 절을 올리고는 물러나고 파순과 군졸도 또한 사죄하고는 물러나 돌아갔다.
이때에 세존이 마왕을 항복 받으시고 정도를 나투시니 이로 인하여 심기가 원명하시어 삼명육통이 구족하셨다. 세존이 출가하신 지 11년이다. 5년은 선도에 머무르시고 6년은 설산에 머물러 정도를 얻으시니, 그해 섣달 초파일 한밤중에 동방의 밝은 별을 보시고 홀연히 대도를 깨치시어 정각을 증득하셨다. 삼천대천세계와 억만 천지가 손바닥에 밝은 구슬과 같았다.
참으로 크도다! 무량겁에 육도사생에 출입하시어 만행을 닦으신 후에 도솔천에 올라 태어나시고, 왕궁에 내려오셨다. 사문유관 하시다가 생·로·병·사를 살피시고, 무상함을 깨달으시어 한밤중에 유성출가하셨다. 만첩청산 설산 가운데서 6년 고행하시다가 마왕 파순을 항복받으시고는 석가모니 불호를 얻으셨다. 십호 구족함이 실로 장하며 원만 상호가 거룩하시도다. 어찌하여 십호라고 하는가? 이른바 ‘여래如來(tathṃgata), 응공應供(arhat), 정변지正遍知(samyak-saṃbuddha), 명행족明行足(vidyā-caraṇa-saṃpanna), 선서善逝(sugata), 세간해世間解(loka-vid), 무상사無上士(anuttara), 조어장부調御丈夫(puruṣa-damya-sārathi), 천인사天人師(śāstā deva-manuśyāṇāṃ), 불세존佛世尊(buddha bhagavat)’이시니 이것이 십호이다. 또한 삼십이상을 갖추셨으니 천상천하에 세존이라고 한다.
10. 녹야원에서 법을 전하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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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35_a_01L이때에 세존이 무상정각을 이루시어 삼신사지三身四智와 팔해육통八解六通이 구족하여 허공이 다하고 세계가 다하여 사무쳐 보시고 아셨다. 삼계 중생의 윤회하는 근본을 보시고 탄식하여 말씀하셨다.
“삼계는 윤회의 근본이다. 중생이 어찌 오온에 싸여 열두 가지 인연으로 무명업을 벗지 못하고 생·로·병·사를 면치 못하여 고액을 받는가? 그러니 이제 내가 정각을 얻었으니 마땅히 중생을 교화하리라.”
그리고는 즉시 미간 백호에서 방광을 놓아 대천세계에 비추시니 시방제불과 십지보살과 벽지불 성문과 연각과 나한이 각각 광명을 따라 혹 연꽃도 타며, 사자, 봉황, 공작들을 타고 여러 빛깔로 아롱진 구름을 헤치며 세존이 계신 곳을 향하여 들어오니 꽃비가 어지럽게 흩날리고 천상의 음악이 맑게 울리었다.
이때에 세존이 몸을 변화하시어 원만보신 노사나불로 나투시니 키가 하늘에 닿고 몸이 세계에 가득하셨다. 세존이 마음속으로 생각하시었다.
‘불보살이 인연 있는 대중을 위하여 이르시기를 불보살 밖에 성문 연각은 숙세에 선근 인연으로 한번 법을 들으면 즉시 깨칠 것이지만 그 가운데 하근 중생은 비록 듣더라도 비방코자 하니, 이 같은 중생은 장차 악도에 떨어질 것이다. 내가 처음에 성불하여 일체중생을 평등히 제도할까 하였는데, 이제 중생이 각각 근기를 따라 비방하여 악도에 빠지면 어찌 교화한다 할 것인가. 차라리 열반에 든 것만 같지 못하다.’
그리고 말없이 계셨는데, 이때 모든 범천왕이 머리를 조아리며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삼계 중생이 오래도록 고해에 빠져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존이 출세하셨으니 중생이 다 감로수를 마셔 모두 제도하심을 바라옵니다. 무슨 까닭으로 말씀을 아니 하시고 도리어 열반에 들고자 하십니까?”
그러자 세존이 다시 삼칠일을 생각하시다가 다시 장륙금신을 나투시고 즉시 녹야원鹿野苑(Mṛgadāva)에 들어가서 먼저 아함阿含과 방등方等의 사제법을 설하였다.
“사제법四諦法이라 하는 뜻은 고제苦諦와 집제集諦와 멸제滅諦와 도제道諦이다. 일신이 다 생·로·병·사를 가져 괴로운 것이 내 몸에 모였으니 모든 고를 멸하여 버리고 도를 닦아 청정적멸의 즐거움을 얻어 차례로 나한과를 얻도록 하라.”
그리고 세존이 설법하시어 말씀하셨다.
“오늘 이 법좌에서 법을 듣고 누가 도에 나아갈 수 있는 자가 있느냐?”
제천 대중이 모두 세존을 둘러싸고 사제법을 들었는데 그 가운데 부란나가섭富蘭那迦葉(Pūraṇa-kāśyapa)과 가야가섭伽耶迦葉(Gayā-kāśyapa) 두 사람이 숙세 인연으로 사제법을 증득하였다.
세존이 마음속으로 생각하시었다.
‘차익과 교진여 등 여섯 명이 나를 따라 고행하고 또 전생의 인연이 있으니 먼저 제도하리라.’
그리고 사제법을 설하셨다. 이날 세존에게 법문을 듣고 득도한 대중들이 모두 즐거워하였다.
이때 5백 상인들이 칠보를 가지고 지나가는데, 천신이 공중에서 외쳐 말하였다.
“대각이 출세하셨으니, 너희들은 금은을 아끼지 말고 세존 전에 공양해서 무량한 복을 얻도록 하라.”
다른 상인들은 들은 체도 안 하였지만, 그 가운데 두 사람이 발원하며 벽옥 발우 두 개를 내어 꿀물을 담아 세존께 공양하였다. 세존이 받아 공양하시고 그 발우 두 개를 포개어 손으로 만지시니 둘이 합해져 한 개의 그릇이 되었다. 발우 이름을 응량기應量器라고 하였다. 상인의 이름은 제위提謂(Trapuṣa)와 발리가跋梨迦(Bhallika)였다. 각각 제도하여 인천의 복을 받았다.
이때에 교진여와 차익 등이 다시 세존께 여쭈어 말하였다.
“비록 세존을 모셨으나 머리카락을 깎지 못하였사오니 오늘부터 삭발하고 세존을 법좌에 모시겠습니다.”
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져 사문으로 참예하게 되었다. 세존이 다시 설법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발원으로 말미암아 이제 비구가 되어 나를 따라 함께 중생을 교화하려고 하니 너희들에게는 오온식상이 공하느냐?”
교진여 등이 여쭈어 말하였다.
“이미 법을 들었사오니 오온이 다 공한데, 어찌 아상이 있으리까?”
그러자 세존이 다시 좌우로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오온이 공하고 아상이 없다면 일체가 청정하고 평등하리니, 피안에 올라 열반에 들지 못함을 어찌 근심하리오?”
여러 비구들이 합장 배례하고 여쭈어 말하였다.
“오늘 세존이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하시어 후세 중생으로 하여금 삼보를 공경하게 하시어 인천의 복전을 얻게 하소서.”
세존이 말씀하셨다.
“어찌 삼보라고 하느냐?”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우리 세존은 삼계에 도사이시고 석가여래불이시니 후세의 중생이 귀의하여 ‘나무불南無佛’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고·집·멸·도의 법을 설하시니 ‘나무법’이라고 할 것이며, 또 교진여 등 여러 비구들이 법을 듣고 나한과를 얻었으니 이것이 승보라고 할 것이니, 불·법·승 삼보는 인천의 큰 보배이며 복전이 되는 것입니다.”
세존이 말을 듣고 나서는 ‘훌륭하구나!’라고 하시고 엄연 단좌하시고 설법하시어 야사耶舍(Yaśa) 등 50비구를 또 제도하시니, 이는 숙세의 인연으로 감응한 것이다.
세존이 여러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타방세계에 두루 다니며, 근기가 완전히 익지 못한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고 제도하라. 나도 마갈타국摩竭陀國(Magadha)에 들어가 어진 제자를 얻고자 하노라.”
그리고 의발을 거두어 길 떠날 준비를 차리셨다. 차익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이제 세존께서는 정각을 얻으셨으니 노복이 또한 비구가 되어 법좌에 길이 모시니, 하천한 몸이 바로 천궁에 오른 것 같습니다. 처음에 대왕이 노복을 설산에 보내 태자의 동정을 알아 오라 하신 것으로 인하여 노복이 산중에 모셔 금일에 이르렀습니다. 세존과 함께 본궁을 길이 끊고 몸이 법좌에 있습니다. 인간 세상의 사람을 어찌 다시 생각하오리까마는 부자는 하늘이 내린 천륜입니다. 낳고 길러 주신 은혜가 하늘같이 넓고 다함이 없사온데 어찌 부자의 정을 끊으려 하시나이까? 청컨대 노복과 함께 본궁에 돌아가 대왕을 뵙고 난 후 타방세계에 두루 돌아다니며 중생을 제도해도 늦지 아니하옵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세존은 한 생각을 돌이키옵소서.”
세존이 대답하셨다.
“이렇기에 내가 처음 너에게 묻기를 ‘오온이 본래 공하느냐? 아상이 없느냐?’고 하니 과연 ‘오온이 공하니 아상이 어찌 있으리오?’라고 하였는데, 내심으로 깊이 헤아리기를 나를 따라 법을 듣더니 참으로 공함을 아는구나 하고 여겼더니 오온식상이 그저 남아 있도다.”
세존이 또 말씀하셨다.
“세간 애욕을 탐착하면 정도를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생멸문에 남아 있어 윤회를 받게 되나니 어찌 출가하였다고 하겠는가? 내 이미 삼명육통을 갖추어 몸은 만 리 밖에 있지만, 왕궁의 동정은 눈앞에서 조석으로 보니 어찌 다른 생각이 있으리오. 이제 나는 마갈타국 가운데로 들어가 어진 제자를 얻은 후에 영산회상에 부왕을 모시리라.”
그리고 즉시 마갈타국으로 행하셨다.
이때에 마갈타 제국에 우루빈나가섭優樓頻螺迦葉(Uruvilvā-kāśyapa) 삼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선도를 연습하다가 화덕진군을 만나 화룡火龍을 섬겨 그 도를 얻어 불 속에 들어 마음대로 행하는 신통이 기이하고 유명하였다. 세존이 그들을 한번 살펴보고는 깊이 탄식하여 말씀하셨다.
“성도에 근기가 완전히 익은 사람이 어찌 화룡의 도술을 배우는가?”
그리고는 가섭이 있는 곳을 찾아가셨다. 날이 저물어 황혼이 되어서 세존이 가섭을 보시고 공경히 인사를 하면서 말씀하셨다.
“빈도는 사람이라서 날이 저물고 인적이 없으니 도인은 빈도를 위하여 하룻밤 머물 곳을 빌려주소서.”
세존이 묻자 가섭이 예를 갖추어 대답하였다.
“이곳은 인가가 없고, 다만 내가 있는 곳은 석굴이라 비록 깨끗하나 여기에는 불을 뿜는 용이 있다오. 밤마다 모진 불을 토하니 만약 그대가 그 안에 들어가 대적할 신통이 있으면 어찌 못하리오.”
그러자 세존이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다만 머물 곳만 허락하고 화룡은 염려치 말지어다.”
가섭이 마음속으로 비웃으며 말하였다.
“이 사문이 무슨 도를 배워 신통을 얻었기에 이렇게 사리에 어둡고 물정을 모르는가? 그러나 시험하여 보리라.”
그리고는 세존을 모셔 화룡이 있는 굴에 들어가 돌문을 닫으며 세존께 말하였다.
“내일 서로 다시 봅시다.”
세존은 결가부좌하시고 밤을 지내셨다. 이윽고 굴속에서 모진 바람이 일어나며 불빛이 찬란한 가운데 화룡이 나오는데, 두 눈이 물결 같고 크기가 10장이었다. 머리를 들어서 몸을 날려 세존을 향하여 입을 벌리고 동화 같은 모진 불을 토하니 불꽃이 굴속에 가득하고 돌이 녹아서 떨어졌다. 그때 세존은 화광삼매에 들어 계시니 그 화룡의 불기운이 다시 청명해졌다. 이윽고 화룡이 신통을 잃고는 도리어 불 속에 들어 더운 기운을 참지 못해 머리를 붙이고 세존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며 죄를 용서해 주길 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세존이 즉시 벽옥 발우를 내치시며 말씀하셨다.
“화룡아, 네 더운 것을 견디지 못하겠거든 내 발우 가운데로 들어가라.”
세존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1척의 뱀이 되어 발우 가운데로 들어갔다. 그러자 세존이 설법하여 말씀하셨다.
“보응이 분명하도다. 네게서 나오는 불을 네가 도로 받으니 누구를 원망하리오? 그러나 불 속에 들어서 불타는 듯 몹시 목마름이 나게 함은 자비 선심으로 할 것이 아니다. 아직은 발우 속에 있다가 내일 네 주인을 보고 돌아가라.”
날이 밝아 오자 가섭이 5백 제자를 거느려 굴문 밖에 와 서로 떠들며 말하였다.
“어제 지나가던 사문이 도를 얻었노라고 하면서 굴을 빌려 자고자 하였다. 그래서 화룡의 모진 불을 말해 줬더니 담이 가장 큰 체하고 겁 없이 들어가더라. 그 사문이 필시에 화룡의 불을 만나 몸이 벌써 재가 다 되었을 것이니 안타깝다고 하겠구나.”
그리고는 돌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굴 안에는 세존이 단좌하시고 앞에는 발우가 놓여 있었다. 그 가운데 1척의 뱀이 가섭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들어 뛰어나오고자 하는데 나오지 못하였다. 가섭이 화룡인 줄을 알고는 마음속으로 놀라 생각하였다.
‘이 사문의 신통이 신기하도다. 우리 화룡이 벌써 신통을 잃고 뱀이 되어 발우 속에 들었으니 우리 술법이 어찌 신기하다 하겠는가?’
그러며 거듭 탄복을 하다가 거짓으로 정색을 하며 말하였다.
“존자는 어찌 밤을 지냈습니까?”
그러자 이에 세존이 말씀하셨다.
“밤이 차고 굴속이 음랭하여 주인 화룡이 객을 대접하고자 불을 내어 주려 하나 불이 붙지 아니해서 숙박한 객이 추위를 면치 못하였나이다. 여기 내 발우 가운데 있는 것이 화룡인가 보시오.”
그리고는 발우를 들치니 그 뱀이 겨우 꿈틀거려 움직이며 돌 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를 본 가섭이 의심이 들면서도 탄복하였으나 거짓으로 정색하며 말하였다.
“만일 화룡이 곧 있었다면 존자가 어찌 몸을 보존하리오? 그 화룡이 남해 용왕의 대신으로 가고 없기에 존자가 그 화재를 면했소이다.”
그러자 세존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대가 화룡의 도술을 배워 알 것이니, 나에게 감히 한번 보여 주도록 하라.”
가섭이 즉시 5백 제자를 불러 마른 나무를 쌓고 불을 놓아 그 불 속에 들어 왕래하는 신통을 자랑하려 하고는 세존을 청하여 언덕에 모시고 여러 제자에게 불을 놓으라고 했으나 불이 꺼지고 불이 붙지 아니하였다. 그러자 가섭이 크게 이상하게 여겨 직접 불을 들어 놓으나 결국에는 꺼지고 불빛이 없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나무가 말랐지만, 불이 꺼지고 불이 일어나지 아니하는구나. 화룡이 필시 남해에 가고 없을지라도 술법을 배웠을 것인데 어찌 이러한가? 내 화덕진군을 불러 불을 내라 하였으니 이제 불을 놓으라.”
가섭이 불을 놓으니 그제야 불이 일어났는데, 가섭이 신통을 믿고 옷을 벗고 불 속에 달려드니 머리털이 그을리고 피부와 살이 다 타서 견디지 못하며 진실로 힘들어하였다. 가섭이 살을 만지며 크게 소리를 지르고 급히 뛰어 내달았는데, 세존이 크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득도한 신통이 어찌 저러한가?”
가섭은 피부와 살이 다 상하였다.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되돌아왔으나 거꾸러졌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세존께 합장하여 예를 갖추고는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세존이 그제야 설법하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완전히 익은 인연이 있는데 어찌 외도를 따르고 정도를 버리는가?”
그리고 꾸짖었다. 가섭이 그 말씀을 듣자마자 5백 제자를 데리고 함께 세존 전에 나아가 다시 합장하여 공경하게 법을 청하니,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몸에 가사가 입혀졌다. 세존이 화룡의 술법을 물리치고 가섭을 얻은 후에 이로 인하여 석굴에 7일을 머물렀다.
하룻밤에는 제천 상제가 내려와 법을 청하고, 하룻밤에는 모든 보살과 성문 연각 등이 차례로 내려와 법을 청하니 광명이 굴속에 가득하였다. 가섭이 생각하였다.
‘밤이면 굴 밖에 불빛이 하늘을 찌를 듯 가득하니 세존이 우리 불의 무리를 비웃다가 도리어 배움이 있는 것인가?’
7일 후에 세존이 석굴을 떠나실 때 가섭과 함께 삼주 세계를 두루 돌아보고자 하였다.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먼저 네 집에 돌아가 형제를 찾아보고 나를 기다리라. 나는 이곳 남섬부주를 두루 돌아보고 가리라.”
가섭이 세존에게 절하며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화룡의 도술을 배우던 책과 불을 섬기던 기물을 다 거둬서 강물에 띄워 버리고 5백 제자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때 세존은 벌써 남섬부주를 지나 동·서 이주를 두루 보시고, 삼주의 선과 선채를 얻어 가지시고 가섭의 집으로 돌아오시니 가섭은 미처 돌아오지 못하였는데, 세존이 먼저 오시자 크게 놀라면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화룡의 굴이 여기서 1만 8천 리이고, 삼주로 돌아오면 4만 8천 리거늘 비록 바람과 구름을 타도 미치지 못할 것이니 진실로 삼계가 지척이로소이다.”
세존이 삼주의 선과를 내어 주시니 가섭이 배례하고 받아먹었다. 그러자 정신이 상쾌하여 5백 제자를 두고 천상 과거 인연으로 세존을 따라 제자가 되어 돌아다니던 일이 환하게 밝아서 어제 같음을 크게 깨달아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절을 올렸다.
이때 우루빈나가섭의 동생들이 있었는데, 한 명은 나제가섭那提迦葉(Nadī-kāśyapa)이었고, 또 한 명은 가야가섭伽耶迦葉(Gayā-kāśyapa)이었다. 각각 5백 제자를 데리고 형과 같이 화룡선도를 배우며 니련선하尼連禪河(Nairañjanā) 물속에서 놀았었다. 문득 화술 서책과 불 섬기는 기물이 물 위로 떠내려오고 있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형의 서책임을 알고 즉시 찾아 가져오니, 형이 벌써 5백 제자와 더불어 삭발하고 세존을 모시고 있었다. 두 아우가 크게 놀라 물었다.
“웬일로 선도를 버리고 삭발하여 사문이 되셨습니까?”
그러자 가섭이 대답하였다.
“우리 도는 마침내 윤회를 면치 못할 것이다. 어찌 어진 데로 나아가지 아니하리오?”
그 두 사람이 그 말을 다 듣고는 또한 환희심을 일으켜 형과 함께 오백 제자를 데리고 세존 앞에 나아가 머리카락을 끊어 버리고 제자 되기를 청하였다. 세존이 허락하시고 즉시 숙세 인연을 말씀하셨다. 다시 가섭 등을 불러 말씀하셨다.
“병사왕甁沙王(Bimbisāra)의 소원이 있으니 이제 그 왕의 공양 인연으로 먼저 제도하리라.”
그리고 병사 왕궁에 들어가시니, 왕이 북문 밖에서 친히 맞아 공양하였다. 세존이 숙세 인연법을 설하여 천상으로 제도하셨다. 기수태자祇樹太子(Jeta), 급고장자(給孤獨長者; Anāthapiṇḍada)는 원림과 죽림정사를 세존께 올리니 세존이 1천2백 대중을 거느리고 즉시 죽원정사에 머무셨다. 이곳이 바사익왕波斯匿王(Prasenajit)의 왕궁이다.
세존이 왕사성王舍城(Rājagṛha)에 이르시어 중생 인연을 맺으시며, 또 어진 제자를 얻고자 하시어 성안으로 들어가시니 모든 장님과 병인들이 저절로 온전한 사람이 되고, 묻혔던 금과 은이 저절로 솟아나며, 마른 우물에 감로수가 솟아났다. 성 가운데 바라문 두 사람이 있었으니 한 명은 사리불舍利弗(Śāriputra)이요, 또 한 명은 수보리須菩提(Subhūti)였다. 총명한 지혜가 제자 가운데서 뛰어나 숙세의 일을 알 수 있었는데, 세존 앞에 와서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너희들은 숙세의 근기가 잘 익은 제자이다. 오래지 아니하여 또 어진 제자가 나를 찾아올 것이니 십대제자를 얻은 후에 영산회상에 나아가 대회를 이루리라.”
이때에 바라나국波羅奈國(Vārāṇasī)에 선남자 있었으니 이름이 나복羅卜이었다. 대단히 자비와 착한 일을 행하고 그 부친이 또한 좋은 일을 일삼아 날마다 5백 승을 청하여 동산에 별당을 짓고 재식을 일삼았다. 또한 가난하고 병든 이와 걸인을 구제하다가 그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나복이 그 부친의 행적을 본받아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다.
하루는 나복이 그 모친 청제부인靑提夫人에게 청하여 말하였다.
“소자 이제 금전 1만 냥을 가지고 타국으로 장사하러 가고자 하오니, 소자 돌아올 때까지 모친은 소자의 원을 따라 매일 5백 승재를 하십시오. 여기 금전 1만 냥을 드리고 가겠습니다.”
부인이 말하였다.
“나복아, 내 어찌 네 원을 저버리겠느냐?”
나복이 그 모친의 허락을 듣고 얼굴 가득히 환희하여 즉시 행장을 열어 금전 1만 냥을 드리고 떠나갔다. 청제부인이 나복을 보낸 뒤 집안에 엄하게 타일러 명을 내려 말하였다.
“만일 재승과 걸인들이 문 앞에 오거든 너희들은 엄격히 단속하도록 하라.”
그리고 나복이 주고 간 금전을 풀어 날마다 잡객을 모으고 소와 말 등의 가축들을 살해하여 잡아먹으며 불·법·승 삼보를 훼방하였다. 이것이 인간의 쾌락이라 하고 말하였다.
“나의 남편과 아들은 허망하게 5백 승재를 일삼아 허다한 재물을 방탕하였다.”
이때 나복이 여러 달 만에 동행과 더불어 돌아왔는데, 오는 도중 집을 바라보고 걸음마다 절을 하였다. 그런데 동행들이 괴상히 여겨 말하였다.
“나복아 무슨 일로 걸음마다 절을 하는가?”
그러자 나복이 대답하였다.
“나의 모친이 부친의 선행을 이어 날마다 5백 승재를 일삼으시니 부처님께서 왕림하신 곳이라서 이렇게 절을 하노라.”
이때에 나복을 맞으려 왔던 사람이 웃으며 말하였다.
이때에 바라나국波羅奈國(Vārāṇasī)에 선남자 있었으니 이름이 나복羅卜이었다. 대단히 자비와 착한 일을 행하고 그 부친이 또한 좋은 일을 일삼아 날마다 5백 승을 청하여 동산에 별당을 짓고 재식을 일삼았다. 또한 가난하고 병든 이와 걸인을 구제하다가 그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나복이 그 부친의 행적을 본받아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다.
“그대의 모친이 어찌 5백 승재를 하리오? 날마다 5백 승재는 고사하고 5백 잡객을 모아 놓고 소와 양을 살해하고, 만일 재승이 오면 쫓아내고 삼보를 꾸짖어 욕하니 가히 악행이라고 할 것이다.”
나복이 그 말을 듣고 놀라서 얼굴빛이 달라지며 통곡하다가 기절하였다. 동행이 급히 부축하여 들어가서 부인에게 그 까닭을 전하니, 부인이 크게 놀라 매우 부끄럽게 여겨 즉시 하인으로 하여금 동산에 재식하는 모양으로 벌여 놓고 나복을 부르며 말하였다.
“나복아! 나를 의심하거든 동산을 보아라. 나의 원과 네 원이 같으니 어찌 네 원을 따르지 아니하리오? 이 말을 전하던 사람은 너를 속인 것이다. 내가 만일 너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3일 만에 급사하여 아비지옥에 들어갈 것이니라.”
나복이 정신을 차려 모친의 맹세한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산에 가보니, 향로에 향 연기가 남아있고 밥상의 기물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놓여 재식하던 자취가 분명하였다. 그러자 나복이 비로소 믿고 모친에게 절을 올리며 말하였다.
“다른 사람이 어찌 이렇듯 나를 속였던가?”
그런데 과연 3일 만에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나복은 시신을 붙들고 대성통곡하였다. 나복이 속으로 생각하였다.
‘모친이 참으로 선행이 있었을 것인데, 어찌 이러하리오?’
그리하며 수없이 통곡하다가 선산에 장사를 지낼 때, 몸소 무덤에 흙을 지니 날짐승과 길짐승도 또한 나복의 효성에 감동하여 입에 흙을 물어 왔다.
나복이 분묘 앞에 초막을 짓고 밤낮으로 애통해하였는데, 하루는 비몽사몽간에 귀졸이 모친을 철사로 얽어매고 쇠 채찍으로 치니 유혈이 낭자하였다. 모친이 울며 나복을 부르며 말하였다.
“어미를 제도하여라. 내가 너를 속이고 삼보를 비방한 죄로 지옥으로 들어갔노라. 그러하나 태산부군이 너의 정성에 감동하여 귀졸을 이곳에 잠깐 머물게 하여 모자를 상봉케 하였으나 귀신 사자의 재촉함이 급하니 어찌 오래 말을 하리오.”
그리고 목 놓아 큰 소리로 통곡하였는데, 나복이 놀라 통곡하며 서로 붙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귀신 사자가 쇠 채찍으로써 뿌리치니 놀라서 깨었는데 남가일몽이었다. 나복이 다시 통곡하다가 마음속으로 헤아리며 생각하였다.
‘모친이 참으로 선심을 닦았는데 어찌 지옥에 들어가리오? 비록 꿈일지라도 분명하다. 이것이 어찌된 까닭인가?’라고 하며 의심을 일으키나 그 연유를 알지 못하였다. 분묘 옆을 떠나지 아니하고 밤낮으로 통곡하다가 문득 세존이 출세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나복이 깨닫고 생각하였다.
‘오늘부터 출가하여 세존의 제자가 되면 모친을 제도할 수 있을 것이리라.’
그리고는 즉시 분묘를 하직하고 세존 계신 곳을 찾아갔다.
이때에 야수부인은 태자를 이별한 뒤로 날마다 설산을 바라보며 한결같이 슬픈 마음으로 세월을 보낼 때였다. 하루는 정반왕이 태자를 생각하시고 야수부인을 찾아오시니 야수부인이 몹시 당황해 왕 앞에 엎드려 절하니 왕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현부는 마음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니라. 출가한 사람을 믿을 수 없으니 종족 가운데 태자의 후사를 정하리라. 그러니 현부는 그에게 의탁하라.”
그러자 야수부인이 대답하였다.
“태자와 이별할 때의 이야기를 대강 고하였었는데 어찌 잊어버리셨나이까? 태자가 이별할 때에 무명지로 배를 가리키며 ‘훗날에 반드시 귀한 사내아이를 낳을 것이니, 이름을 라후라羅睺羅(Rāhula)라고 하라’ 하였나이다.”
왕은 크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태자가 비록 신기하나 어찌 손가락으로 가리켜 자식을 낳으리오? 실로 허망하구나.”
그리고는 돌아갔다. 하루는 야수부인이 잠자리에 의지하여 조실 때였다. 하늘 문이 열리며 소년 한 사람이 머리에 화관을 쓰고 몸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내려와 야수부인에게 합장하며 말하였다.
“소자의 이름은 라후라입니다. 도솔천 내원궁에서 백의관음을 만나 설산에 여래 계신 곳에 갔더니, 세존이 말씀하시기를, ‘영산회가 아직 멀었으니 부인 계신 곳에 있다가 함께 돌아오라’라고 하옵기에 이제 관음을 따라와서 부인께 의탁하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은혜를 베풀어 저를 거둬 주옵소서.”
그리고는 어린아이가 되어 야수부인의 품에 뛰어들어 놀라 깨어나니 침상에서 꾼 꿈이었다. 방 안에 맑은 향내가 가득하였다. 그 달부터 태기가 있었는데, 열 달이 넘어도 아기가 나오지 아니하고, 팔 년이 되던 해 무인년 칠월 보름에 한 뛰어난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는 용모가 예사롭지 않았고 골격이 빼어나서 천상의 일을 말할 수 있으며 관음을 따라왔노라고 하였다.
궁녀가 즉시 왕에게 고하여 말씀드렸다.
“태자가 떠나신 지 이미 8년입니다. 오늘에 야수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으셨는데, 반드시 부인이 다른 사람과 간통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아니하겠습니까?”
왕이 듣고 크게 노하여 말씀하셨다.
“며느리가 일찍이 나에게 말하기를 ‘태자가 출가할 때에 무명지로 배를 가리키며 반드시 아들이 생겨나리라’라고 해서 늘 내가 허황함을 비웃었더니 어찌 오늘날 이런 일이 있겠는가? 대체로 예행은 서민도 삼가는데, 왕궁에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음을 보고 차마 용서하리오? 바삐 불타는 숯불에 던져 자취를 없애라.”
그리고는 좌우에 명하여 백탄 7정을 어전 뜰에 피우니 불꽃이 치성하여 10리 밖까지 비치었다.
시자로 하여금 야수부인을 독촉하여 빨리 불 속으로 들어가라 하니 야수부인은 황당한 가운데 이러한 광경을 당하니 산들바람에 달빛도 다 슬퍼하는 듯하였다. 그 애처롭고 참담한 거동을 차마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때에 왕이 몹시 성난 기색이 얼굴에 가득하여 질책하며 말씀하셨다.
“음부 야수는 오늘날 나를 대하면서 어찌 부끄럽지 아니한가? 마땅히 자식을 끌고 저 불타는 숯불 속에 들어가 그 죄를 받으라.”
라고 하는 소리가 천둥 치는 소리와 같았다. 어찌 그 시각을 늦출 수 있으리오. 야수부인은 말없이 아기를 거두어 안고 불타는 숯불로 들어갔는데,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고 다만 말하였다.
“사람의 삼재팔난과 길흉화복과 비명악사는 업운에 정한 것이요, 또 과거의 업력이다. 오늘날 야수가 음행이 있었다면, 설산 태자는 반드시 나타남이 있으리라.”
그 말이 끝나고 난 후에 설산을 바라보고 한바탕 통곡하며 전단향을 불 가운데에 던지고는 세존을 생각하고 몸을 던져 불타는 숯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니 나무나 돌처럼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이 광경을 보고 차마 견디겠는가? 좌우의 여러 신하들과 궁중의 비빈 등이 일시에 다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야수부인이 불타는 숯불에 들어가자 순간 문득 천지가 진동하고 금색광명이 일어나며, 열두 가닥 무지개가 되어 공중에 둘렀고 그 불타는 숯불이 변하여 붉은 연꽃이 되어 넘실거렸다. 야수부인이 아기를 안고 연화대에 단정히 앉았으니 씩씩한 태도는 가을 하늘에 보름달이 검은 구름을 헐고 맑은 하늘을 향한 듯하였다.
이때에 왕과 문관과 무관 등 여러 신하들과 백천 시녀들이 모두 크게 놀라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왕이 또한 말씀하셨다.
“불타는 숯불은 어디로 가고 연화대가 되었는가?”
라고 하고는 어찌할 줄 몰라 하였다. 홀연히 서쪽에서 금색선인이 화려한 구름을 타고 공중에서 나타나 말하였다.
“나는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의 관음이다. 설산에 계신 석가여래가 말씀하시기를, ‘야수에게 태어난 라후라는 출가할 때에 깃들었던 것이다. 이후에 8년이면 라후라와 대왕과 야수가 함께 영산에 들어가 수도인연을 듣고 도솔천상에 보살로 돌아갈 것이니라’라고 하였으니 왕은 의혹하지 마소서! 부디 현부 현손을 잘 보호하소서.”
왕이 몸과 마음이 아득하시어, 실로 주저앉을 즈음에 관음보살께서 다시 고하니 왕이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정신이 아득하여 층계 아래에 내려가 무수히 절을 올렸는데, 이윽고 보살은 보이지 아니하고 향긋한 바람이 일어났다. 왕이 정신을 차려 야수부인이 있는 곳을 돌아보니 야수부인은 아기를 안고 연화대를 흩어버리고 정전에 들어와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면해 주기를 청하였다. 왕이 속으로 깊이 생각을 하고 가만히 있다가 말씀하셨다.
“늙은 아비가 정신이 흐릿하여 천인의 조화를 알지 못하고, 한갓 세속 사람의 일을 행하여 현부와 손자를 구박하여 죽이려 하였는데, 천신이 도우시고 관음보살이 강림하시어 불타는 숯불에 든 목숨을 구하셨다. 그러니 오늘에야 비로소 태자의 신통을 알겠노라. 늙은 아비의 정신이 흐릿함을 허물치 말라.”
왕이 아기를 친히 안고 다시 슬퍼하며 슬픈 생각이 간절하였다. 야수부인이 절을 올리며 말하였다.
“태자가 신통을 인연하여 아들을 얻어 후사를 이었사오니 왕상이 의혹하심이 당연하옵니다. 왕상을 괴롭고 힘들게 하심이 다 소부의 죄인데 어찌 성체를 과도히 하오십니까?”
왕이 다시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현부의 덕행과 태자의 도력이 신통하여 늙은 아비로 하여금 천추의 덕을 욕되게 함을 면하게 하니 또한 현부의 큰 덕이로다. 차후에 손자를 잘 보호하여 신민의 임자를 얻게 하라.”
야수부인은 다시 절을 올리고 침전으로 돌아오니 시녀들이 야수부인을 음부라고 하여 모두 침을 뱉었다가 불 가운데 들어도 태연하니, 야수부인의 그 신통묘법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들은 일시에 계단 아래로 내려와 엎드리고는 죄를 용서해 줄 것을 청하며 말하였다.
“태자비는 천인이십니다. 반드시 정각에 돌아갈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첩 등의 죄를 용서하시고 제도하여 주옵소서.”
세월이 매우 빨리 흘러 벌써 왕손 라후라의 나이 7세가 되었다. 맑고 빼어난 기운과 또 골격이 빼어나고 도솔천 내원궁에서 미륵보살을 따라 강설 문법하던 일을 알며, 금륜보위에는 뜻이 없었다. 그러니 정반왕이 라후라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씀하셨다.
“이 아이의 풍채와 기골이 출가한 태자와 더불어 조금도 다름이 없으니, 이 아이도 반드시 늙은 아비를 속이고 출가할 것이다.”
라고 하시고는 근심하였다.
이때 세존이 왕사성 죽원정사에 거처하시며 가섭迦葉(Mahā-kāśyapa) 등 여러 제자와 함께 도를 강론하실 때였다. 문득 사자가 고하였다.
“문밖에 두 손님이 와서 뵙기를 청합나이다.”
세존께서 즉시 불러 성명을 물으시니 한 명은 아난阿難(Ānanda)이고, 한 명은 나복羅卜(目犍連, Maudgalyāyana)이라며 합장 배례하였다. 세존이 보시고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제 법 가운데 들어오니 가히 상족 제자가 될 것이다.”
나복이 다시 배례하고 여쭈어 말하였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 매일 5백 승재를 일삼고 악행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 저의 모친이 잡혀감을 보오니 지옥에 들어간 것이 분명하옵니다. 이제 세존께 출가하여 제자가 되어 어머니를 제도코자 하나이다.”
나복이 말을 마치자마자,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몸에 가사가 입혀졌다. 세존이 설법하시며 말씀하셨다.
“너의 어머니가 선행이 있었다면, 어찌 지옥에 가리오?”
그러자 나복이 대답하였다.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눈으로 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오니 엎드려 원하옵건대, 존자는 대자대비로 속히 신통 도안을 얻어 어머니 간 곳을 찾아보게 하옵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네 효성이 이와 같으니 어찌 감동치 아니하리오? 그러나 네가 전생에 나무꾼이 되어 산중에 들어가 나무를 베다가 수많은 벌을 놀라게 하여 상하게 하니, 네 옷을 벗어 던지며 말하기를 ‘내 후세에 불문에 들어가 득도한 후에 제도하리라’라고 발원하였었다. 네가 이제 내게로 돌아오니 참으로 너의 원과 같이 된 것이니 어찌 기특하지 아니하리오?”
그러시고 십이인연법과 대선정법을 가르치셨다. 목련은 겁겁 다생에 청법하여 수행하던 나한이었다. 그래서 한번 듣고는 바로 깨달음을 얻어 제일의 신통을 얻어 숙세의 일을 통달하였는데, 세존을 천시로 따라 천상 인간에 출입하며 제자가 되어 청법하여 수도하던 일이 실로 어제와 같았다. 세존이 목련의 숙명통을 얻음을 알고는 칭찬하시기를, “훌륭하구나!”라고 하셨다.
이때의 아난의 나이 20이었는데, 풍채가 화려하고 총명이 뛰어나니 과연 날아다니는 신선의 깨끗한 마음씨에 신선의 풍채와 도인의 골격을 지녔다. 그의 부친 곡반왕斛飯王(Droṇodana)은 정반왕의 아우이니 세존과 아난은 사촌 형제 사이이다. 세존이 출가하실 때에 나이가 5세였는데, 점점 자라나자 정반왕이 크게 사랑하여 태자가 출가하니 아난을 책봉하려 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난이 총명이 특출하고 구변이 많으니, 설산에 보내 혹 아난의 구변으로 태자의 마음을 돌이키고 존망 거취와 성도 여부를 알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가만히 아난에게 부탁하여 보냈었는데, 아난이 나복과 더불어 함께 세존께 온 것이었다.
이때에 세존이 연화 탑상에 자금색이 단엄하시고 삼십이상 팔십종호 가운데 백호상의 광명은 공중에 어리었고, 상제와 금강역사는 좌우에 모시고 서 있었다. 나복이 먼저 법전에 들어가 생멸이 없는 대법을 곧바로 깨달아 이미 삼명육통을 얻었는데, 아난이 마침내 돌아갈 마음이 묘연하고 저절로 환희하여서 사자탑 아래에 나아가 엎드려 절하며 말씀드렸다.
“오늘 아난이 백부이신 정반왕의 명을 받자와 들어와 뵌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세존께 잘 말씀드려 왕궁에 돌아가실까 함이었는데, 이곳에 이르니 돌아갈 마음이 없나이다.”
말을 마치자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몸에는 가사가 입혀졌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아난이여! 너는 나의 법 가운데 상족제자이다. 영산회상에 들어가고자 하여서 항상 너를 기다렸노라. 내 이미 정각을 얻었으니 영산에서 대회를 열고 먼저 부왕을 모셔 도솔천상으로 인도하여 마야부인과 한곳에 모시고 대도를 얻어 불생불멸케 할 것이다. 그러니 어찌 세속의 일을 의논하리오?”
아난이 말씀을 듣자마자 크게 깨쳐 벌써 나한과를 얻었다. 아난은 또한 숙세 결연한 나한이었으니 어찌 모르겠는가. 세존이 제자 가운데 대단히 사랑하시어 출입하실 때에 아난과 가섭으로 더불어 좌우에 모시게 함으로써 이들을 떠날 때가 없으셨다.
이때에 목련이 그 모친을 위하여 출가하니 세존이 설법하시어 도를 가르치시니 바람과 구름을 타고 천상 인간을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었으며 시방세계를 지척같이 다녔다. 세존이 칭찬하시어 말씀하셨다.
“십대제자 가운데 신통이 제일이라.”
대중이 또한 칭찬하였다. 하루는 목련이 세존께 여쭈어 말하였다.
“제자는 먼저 부모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허락하시어 이승과 저승의 모자를 만나 보게 하옵소서.”
세존이 말씀하셨다.
“나도 장차 부모를 찾아 천상으로 모시려 하거니와 너는 부모를 위하여 지극한 효성으로 출가하였으니 어찌 바삐 찾아 제도치 아니하겠는가? 그러나 네가 이제 어디로 먼저 가고자 하는가?”
그러자 목련이 말하였다.
“부모가 생시에 선행이 있으니 반드시 천상에 있을 것입니다. 먼저 천상으로 가고자 합니다.”
세존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네가 신통은 얻었으나 세상 밖의 일을 어찌 알리오? 대체로 세상일은 귀로 듣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였으니 네가 찾아보고 오라.”
목련이 하직하고 신통을 부리며 발우를 공중에 던지고 몸을 날려 발우 위에 앉아 바로 도리천상 문을 향하여 들어갔다. 그러자 문 지키는 천관이 말하였다.
“여래 제자 목련존자는 여래법지를 가지고 그 부모를 찾아왔도다.”
그리고는 즉시 상제께 아뢰었다. 상제는 목련에게 천궁을 두루 보라 하였는데, 목련이 곧바로 범천왕에 올라서서 도솔천과 타화천과 유정천과 자재천을 두루 돌아 화락천에 들어가니 다만 부친이 칠보각에 천동천녀를 데리고 봉황과 춤추며 놀다가 목련을 보시고는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우리 아들 나복아! 어찌 이곳을 찾아왔는가?”
목련이 절을 올리며 말하였다.
“모친은 어디 계십니까?”
부친이 말하였다.
“내 이곳에 온 후로 부인은 오지 아니하고 몇 달 전에 명부 염라대왕이 상제께 올리는 지옥 죄수의 도록을 보니 청제부인 이름이 있어서 내가 가장 의심하였는데, 반드시 너희 모친은 지옥에 들었도다. 인간에 있을 때에 무슨 죄를 지었는가?”
하며 되물었다. 목련이 통곡하며 말하였다.
“그러면 모친이 정말 지옥에 계시는군요. 소자 바로 지옥에 내려가 모친을 찾아보고 영산으로 돌아가 여래께 여쭈어 지옥 중생을 제도하고 모친을 모셔 이곳에 돌아와 부친과 함께 쾌락을 받게 하겠습니다.”
목련이 말을 마치고 몸을 공중에 솟구쳐 철위산을 향하여 바로 명부에 들어갔다. 그곳에 가니 염라대왕이 황급하게 교의交椅에서 내려와 읍을 하고서 말하였다.
“존자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곳에 오셨습니까?”
목련이 답례하며 말하였다.
“빈도의 모친이 지은 죄 없이 중하여 이곳에 들어오셨다 하니, 원컨대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러자 염왕이 크게 놀라 말하였다.
“그러하면 십육지옥에 찾아보라 하겠습니다.”
한 판관에게 명령을 내려 옥졸에게 분부하니, 목련이 옥졸을 데리고 곳곳에 찾아보았지만 모친이 없었다. 목련이 망극하여 옥졸에게 물었다.
“십육지옥 밖에 또 다른 지옥이 있는가?”
귀졸이 대답하였다.
“감히 묻자오니 부인이 세상에 계실 때에 무슨 죄 없이 계셨겠습니까?”
라고 하자 목련이 말하였다.
“만일 인간 사람이 불·법·승 삼보를 비방하고 탐욕과 살생을 즐기면 어느 지옥으로 가는가?”
그러자 옥졸이 대답하였다.
“그러한 죄인은 아비무간지옥에 들어가면 만겁이라도 해탈치 못하옵나이다.”
목련이 다시 통곡하고 귀졸을 따라 바로 철위성을 지나 무간지옥을 찾아 들어가니 철성은 의의하고 검은 안개 자욱한 가운데 울음소리가 가장 슬펐다.
목련이 문 앞에 다다라 문을 열라고 하니, 문을 지키는 삼목 귀왕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염왕의 공문이 있을지라도 죄인을 내보내는 일이 없습니다. 존자는 여래의 제자라 하니 나도 여러 옥문 지키는 귀왕이지만 천만 죄수의 애련한 거동을 차마 보지 못하겠습니다. 이제 석가불이 출세하시어 영산회상에서 일체중생을 제도하실 것이니, 바라건대 존자는 나를 위하여 이곳에서 고통 받음을 벗게 하소서.”
그리고는 즉시 옥문을 잡고 옥졸을 불러 말하였다.
“여래 제자 목련존자가 모친을 청하여 찾아보려고 옥문 밖에 오셨으니 문틈으로 보게 하라.”
그러자 귀졸이 명령을 듣고,
“청제부인이 이 옥에 계신가?”
라고 하더니 이윽고 나와 고하여 말하였다.
“청제부인은 있으나 아들의 이름은 나복이고, 목련은 모른다고 하나이다.”
목련이 크게 통곡하여 말하였다.
“과거에 나복이니라.”
귀졸이 다시 들어가더니 이윽고 청제부인을 우두나찰이 쇠막대에 꿰어 입으로 구리즙을 흘리며 몸에 불꽃이 일어나 가죽과 살이 녹아 기름이 흘렀으니 어찌 차마 볼 수 있으리오. 청제부인이 옥문 안에서 목련을 보고 목 놓아 통곡하며 말하였다.
“나복아, 내 너를 속이고 인간에 있을 때에 소와 양 짐승들을 살해하여 날마다 친구들과 더불어 즐기고, 삼보를 비방하고 거짓으로 5백 승재하였노라 맹세한 죄로 이곳에 들어와 천만 가지 죄를 받으니 이로써 서러워하노라.”
목련이 옥문 밖에서 문틈으로 손을 뻗어 모친 손을 만지며 오래도록 통곡하다가 기절하였는데, 귀왕이 말씀드렸다.
“과도히 슬퍼 마옵소서.”
목련이 정신을 수습하여 다시 말하고자 할 때, 문득 옥문 안으로부터 흉악한 귀졸 십여 인이 급히 내달려와서 말하였다.
“청제야! 화탕에 끓는 물이 식어 가니 바삐 가자.”
그리고 쇠막대로 꿰어 들고 바삐 가니, 청제부인이 슬피 울며 말하였다.
“나복아! 나를 급히 제도하라.”
나복이 문틈으로 오래도록 보며 통곡하다가 다시 왕사성 죽원정사로 왔다. 이때에 세존이 아난과 가섭 등 여러 제자와 더불어 중생 교화할 의논을 하시다가 목련이 오는 것을 보시고 물으셨다.
“너의 모친을 찾아보았는가?”
목련이 눈물을 흘리면서 울며 말하였다.
“아비지옥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엎드려 비노니 바삐 세존께서는 제도하옵소서.”
라고 하니 세존이 대답하셨다.
“한 자식이 출가하여도 구족 망령이 다 천상의 쾌락을 받는데, 이제 네가 출가하여 나한과에 있으니 어찌 청제가 지옥에 있겠는가? 세상 사람이 다 자손을 너와 같이 낳을 것인데 지옥이 어찌 있겠는가?”
목련이 여쭈어 말하였다.
“그러하오면 모친만 어찌 제도하겠습니까? 그 지옥 중생을 모두 함께 제도코자 합니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너의 자비대원이 이렇듯 하니 청제는 벌써 천궁에 갔을 것이다. 훗날에 나와 함께 화락천궁에 올라가 너의 부친 갈제와 모친 청제를 찾아볼 것이니 안심하라.”
그러자 목련이 합장하고 무수히 절을 올렸다. 이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가섭 등 여러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일찍 부모의 은혜를 끊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를 따라 불문에 들어옴은 중생을 제도코자 함이요, 중생을 제도할 것인데 마땅히 인연을 널리 맺을 것이다. 각각 촌락 가운데 나아가 걸식하여 중생 복전을 두텁게 하라.”
가섭이 여쭈어 말하였다.
“세존이 출세하셔서 삼계의 큰 도사시고 사생의 부모이십니다. 일체중생이 다 어린 자식 같으니 어찌 중생과 인연을 삼겠습니까? 이는 중생의 힘으로 제도함이 다 공변되지 아니한가 합니다.”
세존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너희 말이 비록 그러하지만, 과거 제불이 말하기를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치 못하고, 또한 정한 업보도 다시 고치지 못하며, 중생 세계를 타파하지 못한다’고 하였느니라. 이러하므로 중생의 힘으로써 불연이 되고, 불연으로 미타 원해에 돌아가는 것이다. 너희들은 다만 계행을 청정히 지키고 마을에 나아가 걸식하여 중생 인연을 맺으라.”
모든 제자가 합장하고 사례하였다.
다음날 아난과 가섭 및 수보리 등이 각각 응량기를 가지고 사방에 나아가 걸식하였는데, 가섭은 즉시 들어오고 아난과 수보리 등은 늦게 왔다. 그러자 세존이 그 까닭을 물으셨는데, 가섭은 가난한 집에 가서 걸식하기 괴로워 부자의 집만 가려서 인연을 맺어 후세의 복전을 얻게 하고, 아난은 빈부귀천을 보지 아니하고 차례로 인연을 지어 평등하게 제도코자 함을 각각 구하였다고 하였다. 세존이 말씀하셨다.
“가섭이 어찌 홀로 부자만 가리는가?”
가섭이 물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을 어찌 제도하겠습니까?”
세존이 말씀하셨다.
“수보리의 가난한 집을 맡은 이유와 아난의 빈부귀천을 보지 않고 평등히 인연을 맺는 말이 가히 기특하구나. 그러나 그 가운데 소나 말 등의 짐승을 살해하는 집과 술파는 집과 창기의 집은 계행이 있는 사문으로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니라. 그 외에는 평등한 인연을 맺어 후세의 복전을 고르게 하라.”
아난이 다시 여쭈어 말하였다.
“살생하는 집과 술집과 창기의 집은 어찌 금하십니까?”
세존이 말씀하셨다.
“이 세 집은 한갓 업보가 중하여 제도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살생은 자비심이 변하고, 술 파는 집은 독주로 사람의 마음을 미혹케 하여 불성이 멸하며, 창기의 집은 미색을 보면 비록 사문이라도 자연히 마음이 방탕하여지는데, 어찌 계행을 지키겠는가? 이러하므로 이 세 집은 피하라 한 것이다.”
아난이 미소 지으며 말하였다.
“계행이 견고할 것인데 그러한 곳에 들어간다고 해서 어찌 백옥 같은 마음이 변하겠습니까? 아난의 마음은 이 세 집을 가릴 것이 없사오니 인연을 평등하게 맺고자 하나이다.”
세존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네 심신은 비록 그러하나 이 훗날을 보라.”
하루는 아난이 홀로 여염집에 가서 걸식할 때였다. 한 곳에 이르렀는데 곧 문 앞에 꽃나무가 매우 푸르게 정갈하고 봄바람에 꽃잎이 어지러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난이 생각하였다.
‘바라문 장자의 집이 아니면 필시 도인의 집일 것이다.’
그리고는 중문에 들어가 방울을 흔들고 시주 쌀을 청할 때, 절세미인이 단장을 곱게 하고 앵무새를 희롱하다가 아난의 용모를 보고는 그 미인이 춘정을 일으켜 점점 나아가 섬섬옥수로 주렴을 들고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를 반만 벌리고 말하였다.
“소화상은 가까이 들어와 시주 쌀을 받으소서.”
아난이 눈을 들어 잠깐 보니 연두저고리와 다홍치마 곱게 차리고 자태가 영롱하고 더할 수 없는 교태가 과연 미색이었다. 사람의 호탕한 정신을 금하지 못하여 아난이 음녀가 방에 들어옴을 깨닫고는 몸을 돌려 물러가고자 할 때였다. 그러자 미인은 아난의 회피함을 보고 마음이 애련하여 급히 중문 밖으로 내달려 나가 살펴보니 벌써 간 곳이 없이 보이지 않았다.
미인이 침방에 들어가 금침에 누워 울며 말하였다.
“아름다운 낭군 소화상아! 오늘 나의 명이 다할 것이로다.”
이때 그 미인의 어미가 먼 마을에 나갔다가 들어와 딸자식의 마음속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그 자식이 길이 한숨을 쉬다가 겨우 말하였다.
“아까 걸식을 왔던 소화상의 얼굴을 잠깐 보니 정신이 저절로 호탕해져 춘정을 억제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소화상을 만나지 못하면 소녀의 명이 끊어질 것이니, 비록 여자의 도리는 아니오나 죽을 지경에 무슨 말씀을 못하겠습니까?”
그 어미가 말하였다.
“그 화상의 용모는 어떠하며 어디로 향하더냐?”
딸이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그 화상의 용모는 대단히 화려하고 풍채가 늠름하여 인간 세상의 사람 같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런데 소녀가 흠모하여 시주 쌀을 받으라고 하니 그 화상이 몸을 피하여 문밖으로 나가자 간 곳을 모르겠나이다.”
그 어미가 말하였다.
“내 딸은 서러워 마라. 그 소화상은 반드시 여래의 제자 아난존자이다. 비록 도술을 얻었지만, 어찌 나의 황발외도의 환술을 당할 것인가? 내 이제 너를 위하여 사비가라娑毘迦羅(Kapila) 범천주 진언을 염하면 아난이 저절로 내 집에 들어와 너의 침석에 누울 것이니, 네 마땅히 달빛 아래에 인연을 얻어 백 년 동안 같이 즐기도록 하리라.”
이 말을 마치자마자 사방을 향하여 진언을 염하였다.
이때 아난이 미인의 집 문을 떠나 왕사성을 바라보고 오는데, 홀연히 바람이 불며 몸이 바람에 싸여 그 미인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미인의 이름은 마등가摩登伽(Mātaṅga)이다. 자색이 특출하고 또한 일대에 명창으로 풍류호걸의 미남자가 아니면 조금도 즐기지 아니하고 일찍 황발외도를 따라 모녀가 함께 환술을 배워 신통을 얻어 아름다운 남자를 만나 자기 말을 따르지 아니하면 환술로 휘여 제 욕심을 방자히 하였다.
이날 아난의 백옥 같은 몸이 음실에 갇혔다. 처음으로 도를 배워 법력이 굳세지 못하였기 때문에 환술에 빠졌으니 과연 안타깝구나! 여래의 대신통이 아니면 아난이 마침내 마등가의 음실을 어찌 벗어나리오!
이날 아난이 음풍에 싸여 마등가 집에 들어오니 마등가는 단장을 하고 조용히 있다가 아난을 보고 붙들고 바로 침실로 들어갔다. 마등가가 아난의 법체를 더럽히고자 하였는데, 아난이 비록 환술에 떨어졌지만, 아난의 금강과 같은 계행은 조금도 변치 아니하고 다만 음풍을 마시고 정신이 혼미하여 꿈에 취해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마등가와 더불어 같이 즐기니 장차 아난의 계행이 어찌 될 것인가?
이때에 바사익왕波斯匿王(Prasenajit)이 그 부왕의 기일을 당하여 세존을 궁중에 청해 설법을 듣고자 하였다. 그래서 세 번을 청하거늘 세존이 마지못해 1천2백 제자를 거느리시고 즉시 성 가운데 들어가실 때였다. 문수보살에게 명하여 장자의 별청을 받으라고 하고는 왕궁에 들어가셨다. 왕이 세존이 왕림하심을 듣고 문무 조신을 거느려 친히 궐문에 나와 맞이하였다. 세존이 바로 금란전金鑾殿에 들어가 좌정하시니 빛난 채색과 보물이 찬란하였다.
세존이 재식을 마치시고 설법코자 하시어 좌우를 돌아보시니 제자 가운데 아난이 홀로 없거늘 주위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난이 없으니 어찌한 까닭이냐?”
가섭이 여쭈어 말하였다.
“중생 인연을 위하여 시골 마을 집에 갔었는데 돌아옴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오는 길에 무슨 까닭이 있는가 하나이다.”
이때 세존이 즉시 미간 백호상을 놓으시고 시방세계를 향하여 아난의 간 곳을 살펴보시니 환술에 이끌려 창기 집에 있었다. 즉시 마음을 살펴서 아시고 크게 탄식하며 대중을 물리치고 일어나셨다. 바사익왕이 세존께 나아가 말씀드렸다.
“제자가 오늘에 부왕의 승재를 위하여 세존께 재를 올리며 일승묘법을 듣고자 하였사온데, 무슨 까닭으로 재를 파하시고 돌아가시고자 하나이까?”
세존이 말씀하셨다.
“나의 제자 한 사람이 오지 아니하였으니, 이제 돌아가 제자를 찾아 함께 설법하리라.”그리고는 궁중을 떠나 죽원정사로 들어가시어 자리를 정하셨다. 왕과 시위 대중이 세존을 따라 좌우에 모시고 섰는데, 세존이 사자 탑상에 앉으시고는 이마 위로 백 가지 보배 빛의 광명을 놓으시니 그 광명 가운데서 수없는 불이 화현하였다. 그 화불이 동시에 소리를 내어 능엄신주를 설하니, 세존이 문수보살에게 명하여 아난을 구하라 하셨다. 이윽고 운무 가운데서부터 사대천왕과 팔부금강이 들어오며 아난과 마등가 두 몸이 한데 누운 침석을 들어다가 세존이 앉으신 대중 가운데에 놓으니 마등가의 설부화룡이 아난과 함께 누워 있었다.
왕궁의 시위 신하와 좌우 여러 신하들이 그 광경을 보고 몹시 놀라 얼굴빛이 하얗게 질려 서로 보고 말하였다.
“어찌 아난존자가 저러할 줄을 알았겠는가? 반드시 삿된 마구니에 속은 것이다. 그러나 청정한 법 자리에서 보기가 매우 괴상하고 야릇하여 남부끄럽도다.”
그리고 각각 머리를 돌이켜 세존만 바라보았다. 세존이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은 과거 무량겁 전에 공왕불 처소에서 함께 발심하여 한량없는 보살행을 닦아 중생을 제도하였다. 오늘날 나의 제자가 되어 중생을 제도코자 하여 방편으로 음실에 떨어짐을 보인 것이니라.”
이때에 아난이 눈을 뜨고 살펴보니 세존은 사자좌상에 앉으시고, 좌우에 문수, 보현, 관음, 세지 등 백만억 보살이며, 팔금강, 사천왕과 무수한 제천 성중과 1천2백5십 인 제자 등이 차례로 모시고 있으니 상서로운 광명이 찬란하고 법도 엄숙하였다.
아난이 당황하고 망극하여 급히 일어나고자 하였으나 몸에 법복이 없었다. 손으로 법복을 잡아당겨 입고자 하였으나 어찌하지 못하였고, 마등가 또한 대중을 보고 놀라 얼굴 가득히 부끄러워 급히 몸을 감추고자 하나 어찌하지 못하였다.
세존이 가섭으로 하여금 법복을 던져 입게 하시니, 아난이 즉시 몸을 빼어 옷차림을 수습하고 세존 탑하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용서해 주시길 청하며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오늘 아난의 몸이 음실에 들어간 것은 무슨 일이니까? 엎드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설법 교화하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일찍이 너에게 경계하여 타이르던 말이 또한 이를 말한 것이다. 네 어찌 청정심으로 창녀 집에 누웠는가?”
그러자 아난이 다시 배례하고는 여쭈어 말하였다.
“어찌 아난의 본심이겠습니까? 두 눈은 있사오나 눈동자가 없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눈이 본다고 하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아니 본다 하겠습니까?”
세존이 물었다.
“그러면 눈에 안경을 쓰면 안경이 보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안경이 어찌 보겠습니까? 보는 것이 눈동자입니다.”
세존께서 물었다.
“그러면 죽은 송장도 눈동자가 있으니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난이 그제야 깨닫고 말하였다.
“과연 묘명진심이 본다고 하겠습니다.”
세존께서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청정진여심은 일체중생이 다 구족하고 있지만, 오온 육식에 싸여 눈앞에 보는 것만 알고 지척이라도 막힌 밖의 만물은 보지 못하기로 황발외도의 환술에 이끌려 창녀 집에 들어갔으니, 까딱하면 빙옥 같은 계행을 파괴할 뻔하였다. 그러하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오온과 육식이 공하면 청정진심이 자연히 나타나는 것이 맑은 물에 밝은 달이 비추는 것과 같으니, 여래의 광명이 어느 곳에 비취지 아니하리오? 너의 계행이 비록 빙옥과 같다 하지만, 아직 수행이 멀고 오음이 허망한 이치를 모르고 법력이 굳세지 못하였도다.”
아난이 또 여쭈어 말하였다.
“도력이 넉넉지 못하옵기에 음실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비록 들어갔사오나 침석에 누움은 진실로 아난의 본마음은 아니었는데, 하물며 침석을 많은 대중 가운데에 들어다가 참괴함을 받게 하심은 또 무슨 까닭이옵니까?”
그러자 세존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비록 정각에 있는 성현이라도 숙세 인연과 죄보를 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게도 야수부인과 라후라가 있고, 또 인욕선인이 가리왕에게 온몸이 갈기갈기 잘리게 함을 당하게 하였으니, 그 정한 업보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저 마등가는 곧 너와 더불어 이미 5백 세 동안 부부 될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금생에 이르러 너는 불문에 돌아오니 마등가는 다시 인연을 맺고자 하여 창녀의 몸이 되어 환술로 너를 유인하여 동침하였다. 그러나 너의 청정심은 물 한가운데 비친 밝은 달이어서 환술로 흔들려 움직일 것이 아닌 것이다. 많은 대중 가운데 들어다가 놓은 것은 사도와 정도를 분별하며 대중을 경계하여 후세에 수행사문으로 하여금 법을 지켜서 음실에 들어가도 몸을 삼가게 한 것이니라.”
이때에 마등가가 세존의 말씀을 듣고 환하게 크게 깨달아서 몸을 정갈히 하고 세존 전에 나와 합장하여 절을 올리고는 여쭈어 말하였다.
“오늘로부터 여인의 옷을 버리고 존자의 벗은 법복을 입어 부처님 제자 되어 길이 떠나지 않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불법이 큰 바다 같아서 맑고 탁함이 없나니, 네 신행함을 명심한다면, 저절로 돌아올 것이니라. 훗날 영산회상에 다른 착한 여인 등으로 함께 청법할 것이니 물러가거라.”
라고 하셨는데, 마등가가 다시 아난을 돌아보며 정에 이끌림을 거두고 서로 이별을 아꼈다. 세존께서 그리하여 아난을 돌아보며 설법하시고 함께 바사익 왕궁에 들어가서 재를 받으셨다. 그리고는 왕과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시어 마음을 씻게 하시니 종친과 문무 여러 신하들이 다 합장하고 사례하였다.
이때에 세존께서 마왕 파순을 항복 받고 녹야원에 나아가 대법을 강설하시어 중생을 제도하셨다. 그로 인하여 타방 국토에 두루 어진 제자를 많이 얻으시니, 바로 영산으로 들어가 법회를 기약하고 부모 친족과 라후라를 먼저 설법 제도하려다가 문득 모친 마야부인을 생각하시고는 아난, 가섭 등을 불러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에 왕궁에 탄생하여 모친 마야부인이 즉시 천상으로 가셨으니 이제 바로 도솔천으로 올라가 부인을 찾아뵙고 설법 득도한 후에 돌아올까 한다. 그러니 여러 제자 가운데 누가 나를 따라올 수 있겠는가?”
가섭이 여쭈어 말하였다.
“목련이 육신통을 얻어 큰 신통이 거룩하오니 가히 모실 것이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목련이 일찍이 제 모친을 위하여 출가한 원이 있음은 바로 오늘을 말한 것이니라.”
라고 하시니 목련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세존의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였다.
이튿날 세존께서 목련을 데리고 죽원정사를 떠나실 때, 천룡 팔부신장과 국왕 대신 인민 등이 산문 밖에 전송하였다. 세존께서 천상을 바라보시니 키가 장륙척이나 되는 금신들이 화려한 빛깔의 구름 가운데에 있는 연화대에 단정히 앉고는 공중으로 향하시니 바사익왕과 우전왕이 친히 성문 밖에 나와 향과 꽃을 공양함으로써 절하고 이별을 하였다.
이날 목련은 세존을 모시고 바람과 구름을 타고 남쪽 문을 지나 화락천으로 들어가니, 하늘나라의 임금과 하늘나라의 백성들이 세존께서 들어오심을 보고 천문 밖으로 나와 맞이하여 좌우에 옹위하며 난새 봉황과 공작이 구름 가운데를 왕래하였다.
이때에 청제부인이 목련을 지옥에서 이별한 후에 출가한 효성으로 세존의 제도함을 힘입어 그날로 아비지옥을 벗어나 곧바로 화락천에 올라가 남편 갈제 천인으로 더불어 환희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이날 청제와 갈제는 함께 난새와 봉황을 타고 영소전永昭殿 조회에 갔다가 돌아올 때였다. 이때 세존께서 목련을 데리고 오시다가 천문 위에서 세존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목련아! 저 난새와 봉황 타고 오는 사람은 누구인가?”
목련이 대답하였다.
“제자는 천안이 밝지 못하여 알지를 못하나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네 부친과 모친을 모르느냐?”
목련이 그 말씀을 듣자마자 너무 기쁜 나머지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크게 소리치며 말하였다.
“어머니 청제부인은 어찌 목련을 모르십니까?”
청제부인이 깜짝 놀라 바라보니 둥글게 빛나는 빛 가운데 세존께서 연화대에 단정히 앉으시고 좌우에 제천 상제가 모시고 지나가고 있었다. 청제부인이 남편 갈제와 함께 탔던 난새와 봉황을 버리고 세존을 향하여 합장하고 예배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히 기특하다. 청제야! 지옥과 천상이 어떠하느냐?”
부인이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세존께서 제도하신 은덕은 하늘같이 드넓고 끝을 모르기에, 백천만 겁이 지나더라도 가히 갚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목련의 효성이 아니면 어찌 오늘날 천상에서 모자가 상봉하리오?”
목련이 다시 땅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오늘 모자가 서로 만나 즐기는 것이 다 세존의 은덕이옵니다.”
부인이 목련의 손을 잡고 목매어 울면서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전날 지옥에서 너를 잠깐 보고 화탕에 들어가 천만의 고통을 받았는데, 그날 명부의 염왕이 여래의 법지를 전하니 즉시 승천하여 너의 부친과 이곳에 만나 천궁의 쾌락을 받았느니라. 네가 출가한 효성과 여래 신력이 아니면 어찌 오늘 서로 만날 수 있겠느냐? 그러나 너는 어디로 가려 하느냐?”
목련이 말하였다.
“이제 세존을 모시고 도솔천으로 올라가 마야부인을 친견하고 설법 후에 영산회상으로 향하려 합니다.”
목련이 청제부인과 서로 이별한 후 도솔천궁으로 올라갔다.
이때에 정반왕이 태자가 성불함을 짐작하였으나 만날 기약이 없었다. 그래서 차익 등을 보내어 태자의 동정을 살펴보라 하였다. 그런데 차익이 또한 돌아오지 아니하자 왕이 다시 아난에게 하명하여 보내었으나 또한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그러자 왕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주위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전륜왕의 부귀는 비할 데가 없는데도 허망한 아들은 세상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설산에 도망하였다. 그래서 차익과 아난 등을 보내 찾아보라 하여도 이들도 오지 아니하니 이는 반드시 출가한 것이다. 내가 이제 수레를 움직여 설산에 친히 행차하여서 태자의 거취를 보고 진실로 성불하였으면 용서하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먼저 차익과 아난을 베어 왕법을 밝히리라.”
라고 하시고는 다음날 문관과 무관 여러 신하들을 모아 놓고 나라를 맡길 사람을 의논하였다.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말씀드렸다.
“라후라 성손이 계시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의논하겠습니까?”
왕이 말씀하셨다.
“라후라 또한 왕궁에 있을 사람이 아니니라. 옛날에 불타는 숯불에 던졌을 때 금신이 말하기를 차후 8년이면 영산에 있으리라 하였으니, 이제 여덟 살인데 수고롭게 나라를 맡겼다가 또 어찌 신민에게 비웃음을 얻겠는가.”
하였다.
그래서 아난의 다음 아우 세달로서 태자를 봉하고, 수레를 차려 행차를 떠나고자 하였다. 먼저 사자를 보내어 태자 있는 곳을 탐지하게 하니, 보름 후에 사자가 돌아와 고하여 말씀드렸다.
“태자는 벌써 설산에서 대각을 얻으셨고, 설산을 떠나 타방 국토에 두루 중생을 제도하시고, 바사익 국왕 사위성 죽원정사에서 여러 제자와 더불어 법을 강론하시다가 여러 달 전에 목련을 데리고 마야부인을 찾아보려 하시어 도솔천상으로 올라가셨다 하나이다.”
정반왕이 좌우를 돌아보시며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태자가 분명 성불하였으면 어찌 가까운 왕궁을 버리고 높은 하늘을 먼저 올라가는가? 그 어미는 알고 아비는 모르는구나.”
하고는 탄식을 참지 못하였다. 난타難陀(Nanda)가 곁에 있다가 말씀드렸다.
“부왕을 버리고 야반에 성을 넘어 설산으로 도망하였사오니, 지은 죄가 너무 커서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비록 성불하였으나 부자의 오륜을 돌아보지 아니하오니 소자 마땅히 왕상을 모시고 함께 태자를 찾아 아난과 차익을 먼저 죽이고 사촌형을 잡아오겠습니다.”
왕이 말씀하셨다.
“네 말이 옳으나 태자는 천인이이어서, 성불하였다면 왕법을 쓰지 못할 것이니라.”
난타는 세존의 사촌 아우인데, 성품과 행실이 패악무도하여 불법을 비방하고 간탐 질투와 살업과 오역지죄가 차마 교화로 인도하기 어렵기 때문에, 세존이 평상시에 크게 근심하며 “난타를 어이할꼬?” 하셨다. 그런데 이날 부왕의 노기를 북돋우며 세존을 비방하니, 문관과 무관 여러 신하들이 말씀드렸다.
“태자가 성도하신 신통한 법력을 누가 침노할 수 있겠습니까? 난타의 말이 너무 사정에 어두운지라 엎드려 원하옵건대 왕상은 수레를 머무르셔서 대성인의 거취를 보소서.”
왕은 이를 옳게 여겨 다시 사자를 보내어 영산회상의 허실을 살펴보라고 하였다.
11. 우전왕이 세존의 등상을 조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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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54_a_01L이때에 우전왕優塡王(Udayana)이 바사익왕과 더불어 세존이 계시던 죽원정사에 날마다 왔는데, 세존의 자금색신을 보지 못하고 묘법을 듣지 못한 지 벌써 수개월이 되었다. 우전왕이 사모함을 이기지 못하여 솜씨가 빼어난 장인을 구하여 세존의 등상을 조성하고자 할 때였다. 등상불을 조성할 만한 공장이가 없었으므로 정거천인이 신력으로 공장이의 몸을 나투어 불상을 조성하였다.
이때 매일 하늘에 올라가 세존의 상호를 본떠 조성하기를 마치니 그 모양이 세존과 거의 똑같았다. 화려하게 단장한 수레에 연화탑상을 장엄하고, 그 위에 세존 등상을 봉안하였다. 왕이 친히 화려하게 단장한 수레를 이끌고 다니며 향과 꽃을 갖추어 공양하고 배례하니, 등상의 자금색신과 상호가 단엄한 거동이 세존과 마찬가지였다. 왕족과 대중이 모두 보고 말하였다.
“세존이 천상에서 화려하게 단장한 수레를 타시고 오셨다.”
이때에 세존께서 목련을 데리고 화락천 문 밖에서 청제부인과 목련으로 하여금 모자를 상봉케 하시고 도솔천에 들어가실 때였다. 세존은 옛날 호명보살로서 도솔천 내원궁에서 5백 세를 계셨다. 도솔천중과 미륵보살과 더불어 상주하여 설법하시다가 오늘 자당이신 마야부인을 친견하고 설법하고자 하시어 들어오셨다. 이때에 내원궁에서도 제천보살이 세존께서 오심을 보고 천문 밖에서 맞이하며 향과 꽃을 갖추어 공양하고 배례하였다.
이때 마야부인이 용루 봉각에서 화관을 비스듬히 놓고 백옥향로에 향을 피우고는 미륵보살과 천친天親(Vasubandhu), 무착無著(Asaṅga) 두 보살을 청하여 화엄경을 강론하게 하였다. 그런데 홀연히 금색광명이 비추며 꽃비가 여기저기에 흩날리고 천악이 낭랑하게 울렸다.
부인이 황홀하여 마음속으로 헤아려 생각하였다.
‘상제가 두 보살과 더불어 간경하는 곳에 오시는구나.’
문득 동자 들어와 말씀드렸다.
“하계에 계신 석가모니불께서 마야부인을 뵈려고 오십니다.”
그러자 부인께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시고 또 보살이 장엄을 수습하여 황망히 계단 아래로 내려가 여래를 맞이하였다.
세존께서 곧 들어오셔서 부인을 향해 합장하며 배례하였다. 부인이 또한 스스로 몸을 굽혀 합장하며 절을 받으시며 말씀하셨다.
“정말로 기특하구나! 천상천하에 위없는 대도사이구나. 천인들이 추존하고 용귀가 덕을 희망하니 어찌 세속의 부모 자식 사이로서 의론하리오.”
세존의 금색 손을 잡으시고 반기며 감동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천인사 세존이시여! 삼계 중생을 얼마나 제도하였는가? 또 정반왕은 전륜왕의 부귀를 탐하여 이곳에 돌아옴이 어찌 이리 더딘가?”
세존께서 절을 받으시며 말씀하셨다.
“어머니를 위하여 천상에 올라온 것은 30년 사이에 자식의 얼굴을 친히 보시며 일승묘법을 강설하여 천만 겁이라도 불생불멸함을 축원하기 위함입니다. 부왕은 왕궁 인연이 아직 미진하여, 소자 이곳에서 영산에 내려가 부왕 종족과 라후라를 영산으로 인도하여 설법하여 도를 깨닫게 한 후에 어머니 계신 곳에 돌아오게 하겠습니다.”
그 말씀을 마치자마자 목련에게 명하여 도솔천 내원궁에 모든 보살을 다 청하여 모이게 하였다. 미륵보살은 그곳 주인이어서 제천의 성인들을 거느려 왼쪽 법자리에 좌정하고 문수·관음은 시방 모든 불보살을 모셔 오른쪽 법자리에 자리하였으니 그 수가 무량 천만이었다.
이때에 세존께서 연화대에 단정히 앉으시고 마야부인은 황금탑상에 앉으시고, 세존께서 부인 아래에 나아가 선다를 받들어 올리고는 결가부좌하시고는 일승묘법을 강설하셨다. 제천 성중이 일시에 일어나 세존과 부인 탑하에 합장하고 배례하였다.
이때에 문 지키던 선관이 들어와 고하여 말씀드렸다.
“상제께서 영소전으로 여래를 청하여 설법을 듣고자 하옵니다.”
세존께서 즉시 상제의 청을 받고는 영소전으로 향하셨다. 상제가 계단 아래로 내려와 세존을 맞이하며 황금탑상에 자리를 정하여 인도하셨다. 세존께서 자리에 나아가 앉으신 곳에서 연꽃이 솟아났다.
상제는 세존 전에 공경히 배례하고 존경하시니, 또 세존께서 합장하고 답례하셨다. 제천과 상제와 보살과 나한, 연각들이 차례로 세존께 배례하니 영소보전이 과연 불보살의 대회처와 같았다.
상제는 법을 청하고는 희색이 가득하여 다시 고하여 말씀드렸다.
“영소전은 인천에 존귀하온지라 비록 사천에 목숨을 가져 무궁한 쾌락을 받으나 욕계 육천이 삼계 가운데 있으니, 삼계는 욕해의 근본이어서 다겁을 지나면 삼재가 일어나 회멸하게 됩니다. 천지가 멸할 때는 상제가 어찌 영소전을 보전하리오? 반드시 윤회에 들어 생멸을 받거니와 오직 불법은 생멸이 없으니 어찌 무상대도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무상묘법을 듣고자 하오니 제자의 원은 생멸이 없는 극락으로 돌아가 불생불멸하기를 원하나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상제의 말씀이 곧 설법이다. 오늘 영소전 회상에 제천 중생은 반드시 왕생극락하여 함께 정각을 얻으리라.”
상제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금쟁반에 반도선과를 갖추어 세존 전에 공양하였다.
세존은 상제에게 하직하시고 내원궁에 돌아와 다시 모친을 뵙고 여러 날 머물러 계시다가 정반왕궁 소식을 관하시고, 부왕이 아난의 아우에게 전위하고 난타 등을 친히 거느리시고 영산으로 출발하고자 함을 알게 되시어 마야부인께 하직 인사를 올렸다. 부인이 새로 측은하게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하계에 인연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급하므로, 영산회상을 더디게 하지 말라.”
세존께서 이별의 절을 올리시고 목련을 데리고 내원궁을 떠나 화락천 문으로 나오려고 할 때였다. 문득 청제와 갈제가 함께 세존께 작별인사를 올리거늘, 목련이 또 어머니 청제부인과 아버지 갈제와 더불어 절하고 이별하였다.
이때에 우전국왕이 세존의 등상을 화려하게 꾸민 수레에 모시고 궁중에서 공양할 때였다. 세존께서 장륙금신을 나투어 구름 속으로 걸음걸음이 연꽃을 밟으시며 서서히 내려오시니, 화려하게 꾸민 수레에 등상이 홀연히 솟아 공중으로 올라 세존을 맞아 자리를 나누어 함께 내려오니 누가 진위를 알 수 있겠는가? 왕민 대중이 모두 하늘을 우러러 절을 올리며 진짜와 가짜를 분별치 못하고, 다만 세존의 신통을 못내 탄복하였다.
세존께서 등상과 함께 우전국 궁에 내려와 왕을 향하여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왕이여! 나를 위하여 등상을 조성하여 공양하니, 실로 그 지극한 정성을 틀림없이 알겠도다. 이 등상을 공양하며 예배한 사람들도 그 복이 무량하여 장래에 성불할 것인데, 하물며 조성한 사람은 어떻겠느냐?”
왕이 다시 절을 올리고 그 등상을 궁중에 봉안하여 공양하였다.
세존께서 왕사성 죽원정사로 돌아오시니 1천2백 제자가 일시에 나와 맞아 천상의 먼 길 여행을 못내 위로하였다.
12. 세존께서 중생 백골을 참배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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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56_a_01L수일 후 세존께서 죽원정사를 떠나 남쪽 영축산으로 향하셨다. 세존께서 대중을 데리고 어느 한 곳을 지나실 때였다. 항하사 언덕 위에 사람의 해골이 쌓였고 비바람이 불어 해의 빛깔이 가장 처량하였다. 세존께서 그 백골을 보시고 크게 슬퍼하며 오체를 투지하시어 합장하고 배례하셨다. 그러자 아난과 대중이 크게 놀라 여쭈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삼계에 대도사이시고 사생의 자부이십니다. 인천이 공경하옵거늘, 어찌 해골을 보고 예배하시나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네가 비록 나의 상족 제자이나 오히려 아는 일이 넓지 못하구나. 저기 저 뼈 무덤이 전생 부모의 백골인데, 어찌 예배하지 아니하리오?”
아난이 또 물었다.
“어찌 전생의 부모 뼈라고 하십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일체중생이 육도에 윤회함이 무궁하니 이제 내 불안으로 보건대, 전생 부모가 여러 겁을 윤회하니 어찌 부모의 백골이 아니겠는가?”
하시고는 두 가지 뼈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희고 무거운 뼈는 남자의 뼈이고, 거멓고 가벼운 뼈는 여인의 뼈이니라.”
아난이 말하였다.
“사람이 세상에 있을 때에 옷차림과 인물로 남녀를 가리겠지만, 죽은 후에 백골은 마찬가진데 어찌 남녀의 뼈를 분간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남자는 세상에서 혹은 절에 들어가 삼보께 공양도 하고 대승경전을 독송하며, 염불 참선하여 선업을 많이 짓기 때문에 뼈가 희고 무거운 것이다. 여인은 세간에 있어서 항상 음욕을 많이 부리고 자녀를 낳아 기르기에 골몰하여 염불도 못하고, 또 자식 낳을 때에 피를 많이 흘리며, 어린아이가 먹는 젖이 많음으로 그 정기가 모자라게 되니라. 이러하므로 뼈가 거멓고 가벼운 차등이 있게 되느니라.”
아난이 그 말씀을 듣고 울며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양육하시는 은혜가 드넓은 하늘과 같이 다함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고생하신 은혜는 아버님보다 배나 더 합니다. 이를 어찌해야 다 갚으오리까?”
세존께서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아기를 배어 열 달 동안 고생하는 은혜가 있으니 너는 곧 자세히 듣도록 하여라.
아기를 밴 첫 달은 풀 끝에 이슬과 같아서 아침저녁으로 모이고 흩어지고, 다음 달에는 어린 젖 같으며, 셋째 달에는 피가 어린 것 같고, 넷째 달에는 비로소 한 형상을 이루며, 다섯 달 만에 머리와 두 팔과 두 무릎을 이루고, 여섯 달 만에는 안·이·비·설·신·의 육정이 열리게 된다. 또 일곱째 달에 3백6십 골절과 8만 4천 모공이 나고, 여덟째 달에는 구공이 통하고, 아홉 달이 되면 음식 맛을 알게 되니라.
복중에 있는 아기에게 삼산이 있으니, 첫째는 수미산이고, 둘째는 업산이며, 셋째는 혈산이다. 혈산이 한번 무너져 핏줄기가 되어 아기 입으로 흘러 들어가고, 열 달이 되면 아기를 낳게 될 때이다. 효순한 자식은 고통 없이 순산하고, 원업으로 지은 자식은 어미 복중에서 오장을 무너뜨리며 두 발로 심간을 구르는데, 일천 창검으로 오장을 베는 듯 천만 수고를 받다가 낳게 되느니라. 열 달이 차게 되면 그 어미의 쓰라린 고통이 극해지니라. 무거운 짐을 지고 밤낮으로 병인이 되었다가 임산에 유혈이 낭자하여 아파함이 비할 데 없느니라.
또 아기를 생산하면 열 가지 중한 은혜가 있으니 첫째는 수호하는 은혜이고, 둘째는 해산달에 고통 받는 은혜이며, 셋째는 낳은 후에 근심이 있는 은혜이고, 넷째는 쓴 것은 삼키고 단것은 토하는 은혜이며, 다섯째는 마른 곳은 아기를 누이고 젖은 곳에는 어머니가 눕는 은혜이고, 여섯째는 젖 먹이는 은혜이며, 일곱째는 부정한 몸을 씻기는 은혜이고, 여덟째는 멀리 나가 돌아오지 아니하면 문에 기대어 기다리는 은혜이며, 아홉째는 나를 위하여 악업 짓는 은혜이고, 열째는 구경토록 어여삐 여기는 은혜이다.
어미가 자식을 배어 열 달을 고통을 받던 은덕과 낳은 후 양육하는 은혜가 지중하고, 장성하면 예도로 교훈하며 선악으로 경계하여 그른 일을 행하면 부모가 근심하고, 어진 일을 행하면 부모가 기뻐하며, 병들면 대신 앓고자 하고, 재물을 아끼지 아니하며, 정신없이 취하여 일생을 사랑하느니라. 그러나 자식 된 자는 부모의 10종 대은을 저버리며, 혹 패역한 자식은 천륜을 알지 못하고 형제친척을 사랑하지도 않으며, 악한 벗을 사귀어 집안의 재산을 탕진하며, 불의를 행하다가 국법을 범하여 비명횡사도 하며, 길거리에서 굶주리고 추위로 죽기도 하느니라. 그 부모는 패악한 아들로 인하여 혹 눈도 멀며 오장도 상하며 애를 쓰다가 죽나니, 이러한 자식은 사후에 아비지옥에 들어가 만겁에 고통을 받아 인간에 다시 나지 못하니 어찌 참혹하지 아니하리오? 이러하니 효도로써 부모의 은혜를 갚을 사람이 희유하니 또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아난과 대중이 모두 법문을 듣고는 슬피 울며 말하였다.
“저희들은 참 죄인입니다. 일찍이 세존을 모셔 돌아오는데, 부모의 10종 대은을 알지 못하고 어둔 밤에 처함과 같이 깨달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존의 말씀을 들으니 저희 죄인은 무슨 방법으로 부모의 큰 은혜를 보답하겠습니까?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자비로 가르쳐 주옵소서.”
여래는 즉시 여덟 가지 법으로써 설하셨다.
“가령 효자는 그 부모를 위하여 왼쪽 어깨에 아버님을 메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님을 메고, 수미산을 천만 번 돌아다니며 가죽과 살이 다하고 다리뼈가 드러나 골수가 흘러도 그 은혜를 갚지 못할 것이다. 굶주려 곤란한 때를 만나 부모를 위하여 제 몸의 뼈와 살을 깎아 가는 티끌같이 하여도 오히려 갚지 못할 것이다. 손에 창검을 잡고 눈을 빼어 여래 전에 공양하며, 또 그 부모를 위하여 배를 갈라 간을 빼내며 두개골을 깨어 몸에 기름을 내어 여래 전에 등촉 공양하며, 입에 혀를 뽑아 밭을 갈며, 뜨거운 쇠구슬을 삼켜도 오히려 부모의 은혜를 갚지 못할 것이다.”
아난 등이 크게 놀라 말하였다.
“그러하면 어찌하여 보답하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한순간의 눈앞의 효성이다. 어찌 부모로 하여금 길이 생사에 벗어나게 하리오? 만일 효심을 일으켜 십중대은을 갚고자 한다면, 출가 수도하여 간탐심을 버리고 부모를 위하여 대승경전을 독송하며, 대원각성을 깨쳐 그 부모를 제도하는 것이 참 효성이며, 항상 부모에게 바른 도로 간청하여 지옥업을 짓지 않게 하는 것이 효성이며, 부모를 잘 봉양하기도 하려니와 부모로 하여금 정도를 행하게 하는 것이 참 효성이니라.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청정한 대도를 닦으며, 만 가지 선심을 닦아 부모를 천도하는 것이 참 부모에게 효성하는 것이니라.”
아난이 말씀드렸다.
“그러하면 저희들이 세존을 따라 출가하여 대승경을 강론하고 공덕을 닦았사오니, 부모님들로 하여금 각각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도솔천 내원궁 미륵회상에 왕생하여 불생불멸할 것이니, 어찌 갚지 못한다 하리오? 목련이 출가함을 따라 청제부인이 천상에 태어남을 너희들은 모르느냐?”
하시니 대중이 그 말씀을 듣자마자 뛸 듯이 기뻐하였다.
세존께서 아난 등과 함께 어떤 곳을 지나갈 때였다. 아귀 등이 흉악한 얼굴로 뛰놀며 노래하여 즐기며, 그 뒤에는 풍채가 좋은 남녀 5백 인이 지나가며 각각 슬피 통곡하고 있었다. 아난과 대중이 의심이 나서 세존께 여쭈었다.
“저 아귀 등은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고, 저 풍채 좋은 사람들은 어찌한 까닭으로 슬피 통곡하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저 아귀들은 자손들이 인간 세상에서 자기의 부모를 위하여 불사를 베풀어 삼보께 공양하였으므로 오래지 않아 아귀를 면하고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그러하므로 환희하고, 저 풍채 좋은 사람은 그 자식들이 인간 세상에서 삼보를 비방하고 살생 악업을 지었는데, 그 부모들이 악도에 들어가 아귀보를 받게 되기 때문에 슬피 우는 것이다.”
아난이 다시 여쭈어 말하였다.
“범부중생이 삼보를 비방하다가 나중에 혹 깨쳐 불도를 수행하면 족히 죄를 멸하고 다시 태어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소와 양을 스스로 살해하고, 오역죄를 짓다가 하루아침에 깨달아 업장을 참회하고 신심으로 염불하면 죄가 다 소멸되고 선도에 나는 것이니, 이른바 끓는 물에 한 조각 빙설이어서 한 점 불로써 태산같이 쌓인 섶을 일시에 다 태우는 것 같으리니 성불하기를 어찌 의심하리오? 이러하므로 늦게 깨쳐 염불하고 참회하면 미타의 원력으로 반야의 순풍을 만나 극락세계로 돌아가리라.”
아난이 다시 고하여 말하였다.
“그러하오면 서방 극락세계는 어떤 부처님이 계시다가 염불하는 중생을 교화하시나이까? 바라건대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위해 설법을 다시 깨우쳐 주옵소서!”
세존께서 즉시 미간에 백호 광명을 놓으시어 삼천세계를 비추고 말씀하셨다.
“무량겁 전에 저 왕의 태자가 있었으니, 나와 같이 왕궁을 버리고 출가하여 법명은 법장비구法藏比丘였다. 입산수도하여 사십팔원을 세우시고 정각을 얻으니 불호는 아미타불이다. 지금 서방 극락세계에 계시면서 상주 설법하여 중생을 제도하시니 말세의 근기가 둔한 중생들이 아미타불의 성호를 생각하면, 아미타불세존께서 천안으로 보시고 관음·세지 두 보살과 더불어 강림하시어 염불하는 제자를 극락세계로 맞이하고 인도하시어 정수리를 어루만지고 수기하며, 순식간에 십만억 불토로 돌아 들어가 불생불멸하게 하느니라.
아난아! 네가 이제 내 광명을 따라 서방 극락세계를 자세히 보라!”
아난이 즉시 서방을 향하여 오체를 투지하고 일어나 머리를 들고 서방을 바라보니 극락세계에 열여섯 가지 경계가 눈앞에 완연히 있었다.
칠보 연못 가운데에 팔공덕수가 가득하고, 오색 연꽃이 가득한 곳에 불보살이 앉아 계시며, 일곱 가지 보배로 지은 누각에 일곱 겹의 난간이 반공중에 영롱히 솟아 있고, 난봉 공작과 앵무새와 비취와 가릉빈가와 공명새들이 다 염불소리로 서로 화답하니 어찌 저곳에 금수가 있겠는가?
아미타불이 변화를 나타내는구나. 밤낮 육시로 우담바라화 꽃으로 비를 내리고 하늘풍악이 공중에서 울리며, 구품연대에 무량수불이 장륙금신을 나투시고 관음·세지 두 보살과 더불어 상주하여 설법하시며, 하계의 염불하는 중생들은 미타 원력으로 반야선에 올라 삼계의 고해를 지나 구품 연화대로 향하는 것이다. 이 광명을 따라 다 보고 나서 오체투지를 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는 이제 극락세계를 다 보았느냐? 세간 중생들이 탐업으로 삼악도에 빠져 고통을 받고 저같이 좋은 극락을 모를 것인데, 제 몸에 가진 보배구슬을 진흙 한가운데 던진 것이로다.”
아난이 다시 여쭈어 말하였다.
“극락을 다 보았습니다. 원컨대 이번에는 영산회에서 중생을 제도하셔야 할 것입니다. 극락세계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세존께서 금빛 상호를 찡그리시고는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삼계 중생을 생각하기를 나의 아들 라후라와 같이 보지만, 중생이 각각 그 업보를 해탈치 못하느니라.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하기 어렵고 업과가 성숙한 중생들로 과보를 받은 후에 다시 선근을 따라 제도하리라. 이번 영산으로 향하는 길에 선악업보 받는 중생을 만나 볼 것이니 선악과보를 자세히 보아라.”
라고 말씀하시니 아난과 대중이 모두 듣고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때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과거 겁 가운데 낭일 장자가 있었으니, 재물이 매우 많으나 오직 자식 없어서 그 아내가 명산 승지를 찾아 향과 꽃으로써 기도하였다. 그러나 자식을 얻지 못하고 자식이 없어 선령의 향과 꽃을 끊는 죄가 크므로 남편에게 첩을 얻어 자식을 보라 하였다. 그 말대로 후처를 들였더니 과연 아들 한 명을 얻게 되자 장자는 그 모자를 대단히 사랑하고 본처를 소박하였다. 그러자 본처는 속으로 헤아려 생각하였다.
‘후처의 자식이 장성한다면, 나의 집 재물이 다 후처 모자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바깥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하고는 불현듯 시기심이 나서 그 자식을 죽이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장자는 출타하고 그 후처는 잠든 때를 타서 철침으로 아이 머리를 꿰뚫어 죽였으나 장자와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후처는 본처의 흉계로 아들이 죽은 줄 알고 통곡하여 화내며 꾸짖었다.
“이 악독한 본처야, 어찌 나의 자식을 죽였느냐?”
하고 크게 꾸짖으니 본처는 거짓으로 발뺌을 하며 맹세하여 말하였다.
“내가 만일 너의 자식을 죽였다면 세세생생에 나의 가장이 독사에게 물려 죽고, 자식을 낳으면 길 가운데에서 피를 흘리고 짐승에게 물려 죽고 또 물에 빠져 죽으며, 내 부모는 불타서 죽고, 내 자식을 내가 베어 먹을 것이며, 내 몸이 산 채로 흙에 묻혀 목만 남으리라. 명천일월과 토지신령과 제천제불은 살피소서!”
하고는 손뼉을 치며 발악하니 어찌 불상치 아니한가? 후처와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맹세함을 보고 한편으로는 애매하다고 하였다. 그 후에 본처 문득 병을 얻고는 곧바로 죽어 혼신이 무간지옥에 들어 무량한 고통을 받았다. 그러다가 세존 출세 시에 그 여자는 다시 빈천한 사람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이 세 살이 되고 둘째 자식을 배어 임신하였다. 그 즈음에 물을 건너 친가로 갈 때 마침 여름날이 더웠다. 그래서 그 가장이 세 살 된 어린 아들을 업고 그 처와 함께 가다가 수풀 아래 들어가 쉬는 동안 홀연히 독사가 내달려 와 그 가장을 물어 죽이거늘, 그 처는 애통하나 어쩔 수 없이 행인을 빌려 흙을 덮고 아이를 업고 갔다. 그때 홀연히 복통이 나서 피 흘리고 해산하니 겨우 정신을 차려 두 자식을 안으며 업고 물가에 도달하니 그곳이 매우 깊었다. 갓난아기를 먼저 저편 언덕에 갖다 두고 다시 급하게 건너올 때였다. 홀연히 큰 호랑이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내달려 와 그 아이를 물고 달아나 버렸다. 그 어미가 비록 물가에서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도로 건너올 때였다. 저편에 있는 아이가 제 어미 몸을 보고 반갑게 웃으며 마주 오다가 언덕에서 굴러 깊은 물에 빠져 죽어 버렸다. 그 어미는 하늘을 향해 부르짖으며 무수히 통곡하다가 할 수 없어 본가로 갔다. 그러자 본가 이웃 사람들이 말하였다.
“지난밤에 그대 부모가 화재를 만나 불에 타서 죽었으니 참혹하기 한량없다.”
그 여인이 이 말을 듣고 실성하여 통곡하였느니라. 이때 홀연히 무례한 남자가 내달려 와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상처한 홀아비이고, 너도 상부한 여자이다. 나와 동거하자.”
하고는 위력으로 겁탈하니 그 여자는 할 수 없어 남자를 따라가 살았다. 그런데 삼시로 독한 매와 욕설이 셀 수 없었다. 또 자식을 낳아 강보에 두었더니 그 남편이 나갔다가 술에 취해 들어와 빨리 밥을 안 준다고 아이를 잡아 문밖에 던졌는데, 실수하여 끓는 가마에 그 아이가 떨어져 죽어 버렸다. 그 어미가 달려와 통곡하며 말하였다.
“자식을 어찌 삶아 죽이는가?”
그 남편이 취중에 크게 노하여 삶은 아이를 건져 내어 입에 문지르며 말하였다.
“네 자식의 고기를 네가 먹으라.”
그 마을 사람들이 모두 보고 끔찍하여 관청에 보고하니 그 남편은 달아나고 그 여인만 잡혀갔다. 관원이 말하였다.
“국법은 부부가 화합하지 못하면 길가에 땅을 파고 묻는데, 아래만 묻고 위는 내놓아 7일을 왕래하는 행인으로 보게 하여 참괴하게 하느니라.”
이때에 세존께서 남쪽으로 유행하시다가 아난과 대중을 불러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아직 도가 밝지 못하고 숙명신통이 없으니 어찌 알리오? 저 여자의 과보는 낱낱이 발원과 같이 죄보를 받으니 누구를 원망하리오?”
본처로써 후처를 시기하여 자식을 침살하고 맹세하던 일을 낱낱이 말씀하시고는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그러나 저 여자가 옛적에 연등불께서 출세하셨을 때 다다라 행로에서 서로 만남이 있으니 어찌 제도치 아니하리오.”
말씀을 마치자 세존의 신통력으로 그 여자는 숙세의 업보를 크게 깨달아 방성통곡하며 묻힌 몸이 저절로 솟아나 세존께 나아가 무수히 예배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착하다! 착한 인연 종자가 있으니 영산회상으로 오라.”
라고 하시었다.
이때 바사익왕에게 딸이 한 명이 있었는데, 이름은 선관이다. 나이가 16세였다. 용모가 아름답고 기질이 단아하고 고금의 이론을 통달하니 왕이 너무 사랑하여 딸과 같은 배필을 널리 구하였다.
하루는 선관공주가 단장을 반듯이 하고 칠보채의를 더욱 찬란케 하여 왕을 뵈었는데, 왕이 크게 기뻐하며 공주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선관아, 내 너를 사랑하니 백천 궁속이 다 너를 사랑하고, 몸이 칠보 궁궐에 있으니 이러한 부귀를 나 아니면 네가 어찌 바라겠는가? 비로소 나의 복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줄로 알아야 할 것이다.”
하자 선관이 정색하여 대답하여 말하였다.
“어찌 부친의 복덕이겠습니까? 이는 소신의 지은 복인가 하나이다.”
왕이 노하여 꾸짖으며 말하였다.
“그러하면 칠보궁전과 육미 팔진과 화만 영락이 다 공주의 복인가?”
하고 좌우에게 명령하여 말하였다.
“길거리에 걸식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함께 살게 하라.”
그러자 걸인 가운데서도 참혹한 걸인을 데려오니 옷이 해어져 누덕누덕 기워 짧아진 옷과 검은 얼굴이 마치 귀신 같았다. 왕이 말하였다.
“이제 공주를 네게 맡기나니 빨리 데리고 가 부부가 되라.”
하고는 선관공주를 불러 말하였다.
“네 복덕이 거룩하다 하니 저 걸인을 네게 맡기니라. 그러니 데리고 가라.”
하고는 공주의 입은 칠보의복을 다 벗기고 내쫓았다. 공주는 별안간에 부왕의 노여움과 내쳐짐을 받았으나 조금도 근심하는 낯빛이 없고 다만 걸인을 따라 궐문 밖으로 나오며 말하였다.
“오늘날 이와 같음도 또한 전생의 인연인데, 필경 과보를 받으리니 어찌 탓하리오.”
그리하여 걸인을 따라가며 말하였다.
“오늘 첩이 부왕의 명으로 그대를 쫓아가는데 그대 성명은 무엇이며, 거주는 어디며, 부모는 누구라 하는가?”
걸인이 대답하였다.
“성명은 마하타라 합니다. 부모가 계시면 어찌 걸식하리오? 부모의 거주는 이곳에서 40리에 있습니다. 부모 생시의 재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는데, 다섯 살에 양친이 모두 돌아가시고 의탁할 곳이 없어 지금 나이가 이십 남짓에 이르도록 걸식할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선관공주가 말하였다.
“그러면 그대와 더불어 부모가 살던 곳으로 가자.”
라고 하니, 걸인이 말하였다.
“그러하나 다만 가택이 허물어져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니 어찌하리오?”
공주가 말하였다.
“그곳에 들어가 초막을 의지코자 하노라.”
라고 하고는 걸인을 데리고 들어가니 초목이 무성하나 인가가 분명하였다. 걸인에게 풀을 베라 하고, 공주는 마을 사람에게 기계를 빌려 땅을 깊이 팠다. 이곳은 원래 걸인이 살던 동산이어서 문득 금은을 묻어 뒀던 가마 열을 얻었는데, 그 가운데서 금은유리 칠보의 보물이 가득하였다.
공주는 걸인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그대의 부모가 숨겨 둔 것이다.”
라고 하고는 즉시 금은을 매매하여 몇 년간에 궁전을 이루고 노비, 논밭과 마소와 권속을 풍부하게 갖추게 되었다. 걸인과 공주 비로소 헌 의복을 벗고 칠보화복을 입고 빛내며 의기양양하니 공주가 왕궁에 있을 때와 다름이 없었다.
이때에 바사익왕이 공주를 구박한 후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을 몰라 사람으로 하여금 탐문하시니 사신이 보고하여 말하였다.
“공주가 아무 곳에서 궁전을 웅장하게 이루고 칠보 재산이 왕궁과 다름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는데, 왕이 크게 놀라 즉시 수레를 대령하라 명하여 친히 행차하여 공주 있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그 궁실이 빛나고 재산이 풍성하며 공주는 온몸을 칠보로 장엄하였으니, 바로 왕궁 부귀와 다름이 없었다.
한편 선관공주가 칠보로 치장된 옷을 입고 왕에게 배알하니 왕이 십분 놀라 마음속으로 헤아리기를,
‘이것은 범상한 사람으로 알 것이 아니로구나’
라고 하고 즉시 돌아와 세존이 계신 곳을 찾아와 인과를 여쭈었다.
이때 세존께서 남행하시는 길에서 왕을 만난 것이었다. 왕이 수레에서 내려 합장하여 예배하고 물었다.
“세존이시여! 나의 딸 선관공주는 숙세 공덕이 어떠하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선관공주는 옛날에 가섭불이 출세했을 때에 재상의 부인으로 금전을 헐어서 삼보께 공양하며,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구제하고자 의복과 음식으로 보시하기를 일삼았느니라. 그러자 재상은 크게 꺼리어 부인을 꾸짖고 보시함을 엄금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그 부인이 선악 과보로써 간청하여 재상의 감동함을 얻어 부인과 같은 마음으로 삼보를 공경하며 보시하였느니라.
오늘날 저 선관공주는 옛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던 부인이고, 왕이 불러 맡긴 걸인은 부인의 남편이었던 재상이니라. 숙세 부부로서 그 부인을 비방하고 금생에 걸인이 되어 4년을 고통 받다가 다시 숙세 부부 인연으로 선관공주를 만나 칠보궁전의 복락을 받았으니 전생 인연은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라고 하셨는데 바사익왕이 말씀을 듣고서 인연 과보를 못내 찬탄하시었다.
이윽고 부부가 함께 들어와 세존 앞에 배알하니 아난과 대중들은 숙세 인연을 탄복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인연이 당하였으니 선관 부부는 영산회상으로 오라.”
이때에 일란 장자가 있었는데, 나라에서 큰 부자였다. 그러나 간탐심이 많았기 때문에 문전에 가난하고 병든 걸인을 엄금할 뿐 아니라 하인을 호령하여 심하게 때려 내치니 그 아들 전단이 또한 그 아비의 행적을 본받아 지냈다.
하루는 그 장자가 병이 들어 죽자, 그 혼신이 즉시 그 마을에서 빌어먹는 장님의 여인에게 입태하여 열 달 만에 태어났는데, 그 아이를 낳자 두 눈이 멀었었다. 그 어미가 늘 등에 업고 두루 빌어 먹였다. 그 아이가 겨우 나이 칠팔 세에 이르러서는 시골 마을 집에 두루 다니며 슬피 울고 양식을 빌었는데, 사람마다 미워하고는 한 줌의 곡식도 주지 아니하였다.
어느 날 장자의 집을 찾아가니 이때 일란은 죽고 그 아들 전단이 일란의 가르침을 본받아 사내종으로 문 앞을 지키게 하고 있었다. 마침 노복이 조는 때를 틈타 장님 어미는 그 장님 아들을 데리고 중문에 들어와 양식을 달라고 하니 일란의 아들 전단이 크게 노하여 문 지키는 노복을 꾸짖었다. 이로 인하여 큰 막대로 장님 아들을 내려치니 그 장님 아들은 독한 매에 머리가 깨져 흐르는 피가 낭자하였다.
그 어미가 장님 아들을 데리고 문을 나오니 홀연히 문귀신이 허공에서 말하였다.
“네가 지은 죄보를 네가 받으니 누구를 원망하리오? 그러나 이 앞에 무량겁을 두고 천만 고통을 어찌할꼬.”
이때에 장님 아들과 그 어미가 길가에 앉아 피를 흘리고 통곡하고 있었다. 세존께서 마침 지나시다가 아난 등 대중을 돌아보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저 장님을 알겠느냐?”
대중이 대답하였다.
“어찌 알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의 탐함이 심하여 한 세상에 부자를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자식의 중한 매를 받으니, 저 지은 업보는 족히 아깝지 아니하지만, 이제 지나는 길에서 만나니 어찌 제도치 아니하리오.”
그 말씀이 끝나자마자 장님 아들이 앉은 곳에 나아가 세존의 금손으로 장님 아들의 두 눈을 잡고 어루만지시니 이윽고 장님의 두 눈이 밝아졌다.
또 세존의 신통력을 입어 곧 전생에 일란 장자가 자신이 간탐과 질투가 많아 그 아들에게 악행을 가르쳐서 악한 마음을 쓰게 하던 일과 그 자식에게 호령을 받고 맞던 일을 환하게 깨닫고는 울며 예배하였다. 그리고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옛날 악행을 하던 일은 천만 겁이라도 아비지옥에 들어가 아귀보를 받아도 족히 아깝지 않겠지만, 세존께서 출세하심을 만났으니 자비로 제도하옵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정한 업보가 있으니 차후에 제도하리라.”
또 우타우바새가 있었는데, 계행이 청정하고 그 아내 파새도 또한 그 남편을 따라 청정심으로 염불 공덕이 원만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편이 홀연히 병을 얻어 임종 시에 그 아내가 병석에 나아가 부부의 애련한 정을 이기지 못해 남편의 손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이제 그대가 죽게 되니 내가 홀로 어찌하리오.”
그 남편은 눈을 떠 그 처를 바라보며 애련한 마음으로 명이 다하고 그 처는 시체 거둬 장사를 지내고는 통곡하였다.
이때 세존께서 지나시다가 보시고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가련하구나! 저 우는 여인의 콧속에 벌레가 들어 있는데, 그 벌레는 천상에 태어날 선남자이니 어찌 제도치 아니하리오.”
아난과 대중이 놀라 여쭈어 말하였다.
“벌레가 되었을 것인데 어찌 천상에 태어납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법안이 밝지 못하여 식견이 없으므로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이로 인하여 그 여인을 나오라 하셨다. 그 여인이 눈물을 거두고 나와 세존께 예배할 때였다. 여인의 콧구멍에서 벌레가 떨어지니 그 여인이 크게 놀라 발로 밟고자 하였는데, 세존께서 급히 말리시고는 말씀하셨다.
“이 벌레는 너의 남편이니라. 어찌 놀래서 죽이려 하는가?”
그 여인은 의심스러운 마음으로 말하였다.
“저의 남편은 청신사라 계행이 빙옥 같고 도학이 높아 염불 참선한 지 수십 년입니다. 죽은 후에는 혼신이 천당과 극락으로 돌아갈 터인데 어찌 벌레가 되었습니까?”
세존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너의 남편은 족히 하늘에 태어날 것인데, 임종 시에 너와 더불어 애련한 마음을 품고 일념을 굳게 못하였으므로 네게 애련심을 끼쳐 벌레가 되어 너의 코에 들어가 있는 것이니라.”
하시고는 벌레를 향하여 신통력을 가피하시니 즉시 모습을 변하여 다시 우타가 되어 세존께 무수히 배례하였다. 그 처는 죽은 남편의 얼굴을 다시 보고 무한히 기뻐하며 다시 세존께 여쭈어 말하였다.
“이제 죽은 사람을 제도하여 다시 나게 하셔서 또다시 보게 하시니 이는 썩은 뼈에 피와 살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세존의 신통변화를 힘입어 수년을 인간에 있다가 다시 부부가 함께 천상에 돌아가게 하옵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네 말처럼 어찌 벌레가 되겠는가? 사람과 벌레를 분별하여 후세에 염불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임종 시에 애정 탐심과 산란심과 일체 애정을 두지 말고 일념을 굳게 하여 본원지로 돌아감을 보이노라.
그러나 인간 부부의 애정을 어찌 끊으리오? 이제 너의 남편은 살았으나 육신은 지·수·화·풍 사대이어서 벌써 다 흩어지고 네 눈에 보인 것은 다만 신령뿐이니라. 이제 천상으로 돌아갔으니 애정을 따라 어찌 인간에 다시 있겠느냐?”
말씀하시자마자 아난과 대중이 공경하며 받아들이고는 이날 우타는 천상으로 따라 태어나고 그 파새 여인은 세존을 따라 영산으로 향하였다.
또한 법지라는 사람이 일찍 출가 수행하다가 오십에 퇴속하여 부인을 얻어 아들 셋을 낳았는데 기이한 일이었다. 법지는 크게 아들을 사랑하여 한순간도 슬하에 떠나지 아니하고 손바닥에 보물같이 사랑하였다. 큰아들은 10세이고, 둘째 아들은 8세이며, 셋째 아들은 6세였는데, 홀연히 병을 얻어 세 아들이 차례로 죽었다. 그러자 법지는 통곡하여 길에 다니면서 미친 듯이 날뛰며 사람을 만나면 낱낱이 잡고서 말하였다.
“염라왕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또 말하였다.
“염왕아! 어찌 내 자식 셋을 잡아가느냐?”
그러고 다니다가, 한 곳에 이르니 소나무 아래에 도복을 입은 백발노인이 앉아 있었다. 법지는 공손히 예를 올리고 물었다.
“노인은 나를 위하여 염왕 있는 곳을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이 말하였다.
“염왕 있는 곳을 범인이 어찌 찾으리오? 저승과 이승이 다르니 가히 보지 못하려니와, 네 지성으로 찾고자 한다면 내일 세존께서 영산으로 순행하시니, 염라왕과 천지신명 무수한 귀왕이 신졸을 거느려 세존을 따라 모시고 따라갈 것이니라. 내일 오시에 대천변 언덕에 있다가 염왕을 찾아보라.”
하고는 문득 간 데 없이 사라졌다. 법지는 소리쳐 고하였다.
“만생이 늦게야 세 아들을 얻어 의탁고자 하였더니, 삼 일 안에 염왕이 세 아들을 잡아갔으니 어찌 원통치 아니하리오? 그러나 죽은 자식을 보고자 합니다. 대왕은 나를 잡아다가 자식 있는 곳에 두소서.”
하고는 무수히 통곡하였다.
이때에 염왕이 듣고 귀신 사자를 명하여 법지로 하여금 세 아들을 보게 하라 하였다. 법지는 즉시 귀신 사자를 따라 어떤 곳에 이르니 성문이 엄숙하고 문 위에 동속문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귀신 사자는 문을 열고 법지를 청하여 말하였다.
“여기는 인간 귀신의 아이들을 잡아다가 두는 곳이니 들어가 찾아보라.”
법지는 문에 들어가 세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데, 세 아들이 여러 아이와 더불어 즐겁게 놀다가 법지를 보고 도로 달아나 버렸다. 그러자 법지는 세 아들을 붙들고 통곡하며 말하였다.
“너를 잃은 후에 나는 밤낮으로 슬퍼하여 염왕이 인도하여 이곳에 와 너희를 만나 반갑게 여기는데 너희들은 나를 보고 반김이 없으니 무슨 일이냐?”
그 아이는 혀를 굴리며 몹시 성을 내고 꾸짖으며 말하였다.
“이 원수 같은 놈아! 우리 인간에서 네 자식이 된 것은 다 원수를 갚고자 한 것이니라. 이곳에 들어왔으나 또 다른 원수를 갚고자 하여 이제 바삐 돌아가고자 하노라. 망령된 말을 말라.”
하고는 옷자락을 떨치고 발로 박차며 달아나 버렸다.
법지가 이 거동을 보고 어이가 없어 동문으로 나와 귀신 사자를 보고 돌아가기를 청하였다. 귀신 사자가 법지를 데리고 언덕으로 오는데, 염왕은 간 곳 없고 세존께서 지나신다고 하였다. 법지 급히 세존께 들어가 합장하고 예배하며 여쭈어 말하였다.
“저승과 이승이 비록 다르지만, 부자의 정이 어찌 이같이 박절합니까?”
전후 사정을 다 아뢰었는데,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전생에 사냥하는 사냥꾼을 쫓아가 한 곳에서 기러기 세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네가 사냥꾼에게 말하기를, ‘네가 저 기러기를 화살로 쏘아 맞힐 수 있겠느냐?’라고 말하여 그 사냥꾼의 마음을 충동하여 마침내 세 기러기를 한 화살에 쏘아 맞추었다. 그러하니 그 죽은 원업이 있어 그 기러기가 너의 자식이 되었다가 일시에 죽어 너희 심장을 상하게 한 것이다.”
법지는 크게 깨달아 다시 우바새가 되어 세존을 따라갔다.
이때에 세존께서 아사국에 왕림하시니 아사국왕이 세존을 청하였다. 세존이 그 나라에 들어가시니 왕이 문무 여러 신하들과 육궁 비빈으로 더불어 공양을 올리고 예배하였다. 세존은 상림원에서 등불을 밝히고 밤을 지내실 때였다. 이때 왕궁 비빈과 문무 여러 신하들이 각각 한 말 기름을 유리대에 부어 공중에 달고 등불을 깨끗하게 하여 7일 밤을 밝히니 불빛이 대낮과 같았다.
이때에 미수타微戍陀(Viśuddha)라고 하는 여인이 있었다. 빈천한 형상이 참혹하여 이웃집에 물도 깃고 빨래도 하여 금전 한 냥을 얻게 되었다. 세존께서 상림원에서 머무시어 모든 귀인들이 불 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저러한 사람은 숙세 인연이 깊어 금세에 오복을 가져 재물이 많기 때문에 이제 세존 전에 등불을 공양하니 복덕을 얻은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전생에 복을 심지 못하여 금생에 빈천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이제 세존 전에 등불을 밝히지 못하니 내생은 더 빈궁하겠구나. 그러나 이미 얻은 이 금전 한 냥이라도 내 신심으로 기름을 사서 작은 종지에 심지를 가늘게 해 불을 켜리라.”
하고 이로 인하여 불을 켜 가지고 상림원에 나아가 세존을 향하여 예배하고 여러 유리등 사이에 서서 마음속으로 헤아려 생각하였다.
‘이 등불은 초경도 지나지 못하겠구나.’
축원하여 말하였다.
“후세에 남자로 태어나길 발원하노니, 출가 성도하여 세존의 광명과 같이 꺼짐이 없게 하소서.”
라고 발원하고 돌아갔다.
이튿날 동방이 밝아 백천의 등불과 촛불이 혹 꺼진 것도 있으며 꺼지지 아니한 것도 있었다.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날이 밝았으니 모든 불을 다 꺼라.”
아난이 즉시 입으로 불어 차례로 끄다가 가난한 여인의 등불 앞에 다다라 여러 번 불었으나 꺼지지 아니하였다. 그러자 아난이 신통으로 바람을 얻어 껐는데도 그 등불이 점점 광명이 새롭게 피어나거늘 아난과 대중이 크게 놀라 여쭈었다.
“이 등불의 인연은 어떠한 까닭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가난한 여인의 신심이여! 훗날 성불할 사람이니 어찌 네 신력으로 불을 끄겠는가?”
그리고는 부처님의 입을 열어 등불을 끄시고 말씀하셨다.
“가난한 여인은 일찍이 바라문 여자로 세존 불전에 다만 공양할 뿐이고, 재물을 보시하지 않은 연분으로 빈천한 과보를 받았었는데, 이제 내가 출세함에 한 냥의 금전으로써 등을 밝히고 발원하였다. 불문은 다만 정성을 보는 것이니 이후 30겁을 지내면 공덕이 무량하여 성불하는데, 불호는 수미등광여래須彌燈光如來라고 하리라.”
이에 대중이 탄복하였다.
세존께서 아사국에 머무르시며 여러 비구를 시골 마을 집에 보내 중생을 제도할 인연을 맺게 한 후에 제도하라 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차례로 돌아다녔다. 이때의 아사국에 한 가난한 여인이 있었으니 이름은 단니가檀尼迦(Dhanikā)였다. 빈궁하기가 비할 데 없어 땅굴 속에 몸을 감추고 있었는데, 그 처자가 나가려고 하면 그 남편이 벗은 몸을 굴속에 감추어 부부가 서로 출입하여 품을 팔아먹으니 그 빈궁함이 비할 데 없었다.
하룻날에는 한 비구가 와서 말하기를,
“빈도는 영산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보시하여 공덕을 심으라.”
라고 하였다. 단니가가 토굴 속에서 대답하였다.
“화상아, 눈을 들어 보소서! 부부가 두 몸에 입은 것이 누더기 하나뿐이어서, 이밖에는 다른 것이 없는데, 무엇을 보시하리오?”
사문이 말하였다.
“비록 누더기일지라도 보시하고자 한다면 벗어 달라.”
그 부부는 말하였다.
“이 누더기 하나로 우리 둘이 서로 입고서 출입하는데, 이제 사문에게 주어 보내면 어찌하리오? 전생에 보시를 못하였기 때문에 금생에 이러한 빈궁한 과보를 받으니 저 사문이 이 헌 누더기라도 가지고 가고자 하니, 원컨대 보시하리라.”
라고 하고는 사문에게 말하였다.
“입고 있는 누더기를 벗고자 하오니 화상은 잠깐 머무소서.”
사문은 대답하여 말하였다.
“보시할 것이라면 어찌 지체하리오. 바삐 벗어 주소서.”
가난한 여인이 즉시 누더기를 벗었을 때, 한 손으로 몸을 가리고 누더기를 벗어서 던지는데, 사문이 양손으로 받으며 축원하고 돌아왔다.
시골 마을 집에 갔던 여러 비구들은 혹 칠보와 재물도 얻어 왔으며, 또는 백미와 온갖 비단도 얻어 와 각각 자랑하다가, 헌 누더기를 보고 발로 차 던지며 말하였다.
“길가 성황당에 버린 헌 누더기를 무엇하려고 가져 왔느냐?”
하고 박장대소하였는데, 이때 세존께서 금빛 얼굴에 미소를 나타내시고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누더기를 보시한 여자의 신심이여! 너희 여러 비구들이 받아 온 보물이 어찌 저 누더기를 당하리오?”
아난이 크게 놀라 그 까닭을 여쭈오니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옷을 보시한 신심이 기특하도다. 그 신심을 따라 행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자는 도과에 나갈 수 있느니라. 이 누더기는 비록 쓸데없으나 그 임자에게는 대단히 애중한 것이니라. 몸을 감추고 벗어 줄 때에 제불이 벌써 감동하시니라. 이러하므로 과거 제불이 인행하실 때에 신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처자 권속으로써 보시하였느니라. 그 마음에 애착이 없을 것인데, 이는 곧 성현이니라.”
그러자 대중이 탄복하였다.
이때에 아사왕이 마침 설법을 듣고자 하여 법연에 모셨는데, 단니가가 누더기를 보시하였던 말과 세존께서 칭찬하심을 듣고 또한 찬탄하다가 입었던 금포를 벗어 사자를 불러 그 가난한 여인에게 가서 이것을 입혀 데려오라고 하였다.
이날 단니가 부부는 누더기 하나를 보시하고, 토굴 가운데 묻혀 있다가 왕의 사자가 왕의 조칙을 전하고, 또 비단옷을 주고 입혀서 보배 수레에 실려 가니, 눈 깜빡할 사이에 귀한 이름이 빛나게 되었다. 부부 두 사람이 들어가 예배하니 세존께서 금수로 정수리를 문지르며 수기하시고 설법하니 나한과를 얻게 되었다.
이때 하수 북촌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큰 부자인 장자였다. 오직 자식이 없어 명산을 찾아 기도하였더니 늦게야 아들을 하나 얻었는데 신선의 풍채와 도인의 골격을 지녔다. 3세가 되어 그 모친이 아이를 데리고 큰 하수를 건너 친가로 가다가 배에 들어갈 때 실수하여 그 자식이 물에 떨어졌다. 그때 물결이 급하여 건질 기약이 없었다. 슬피 통곡하며 붙들고자 하였으나 벌써 물고기의 밥이 되고 말았다. 그 어미가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물에 뛰어들어 죽고자 하다가 선인의 구함을 힘입어 집에 돌아와 통곡으로 세월을 보내었다.
이때 하수 남촌에 한 장자 있었는데 성명은 우다리였다. 재산이 넉넉하였지만 또한 자식이 없었다. 그 부부는 밤낮으로 기도하였으나 마침내 아들 하나를 얻지 못해 늘 근심을 하였다. 그러다 하루는 어촌에 고기 잡으러 갔던 늙은 하인이 어망에 큰 고기 하나를 잡아 왔는데, 그 고기의 배를 가르니 그 속에서 옥동자가 어미를 부르며 내달려 나오거늘 황홀하여 살펴보니 칠보로 꾸민 남자 아이였다. 장자 부부가 매우 기뻐하며 말하였다.
“우리 부부가 성심으로 기도하였더니, 용신이 감동하여 귀한 자식을 주시는구나.”
하고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였다.
수일 후에 북촌 장자가 이 말을 듣고 남촌 장자의 집을 찾아 그 아이를 안고 슬피 울면서,
“이 아이는 곧 내 아들이다.”
라고 하고는 칠보로써 그 은혜를 갚고 데려가려고 하니, 남촌 장자가 성을 내면서 말하였다.
“비록 그대 자식일지라도 내가 몰래 데려옴이 없고, 잡아 온 고기 속에서 얻은 것이다. 어찌 주리오?”
하고 두 사람이 다투어 왕께 송사하였는데, 결판을 짓지 못하고 다시 말하였다.
“여래 세존께서는 중생의 부모이시다. 자비로 제도하시니 나아가 결단하리라.”
하고는 세존 전에 공경히 예배하고 각각 소회를 고하니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두 사람이 후사를 위하여 이러하니 두 집이 각각 혼인을 시켜 이편에서 얻은 자부가 아들을 낳거든 이 집의 후사를 세우고, 저 편에서 얻은 자부가 아들을 낳거든 저 집의 후사를 세우라.”
아난이 여쭈어 말하였다.
“이 아이는 전생에 무슨 복덕을 지었기에 두 장자의 집에 한 아들이 되어 무량한 부귀를 받는 것입니까? 그 까닭을 알고자 하나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 아이는 과거 비바시불毘婆尸佛(Vipaśyin)이 계실 때에 남자로 태어나 살생을 하지 아니하고, 금전 1관을 비바시불 전에 시주한 공덕으로 물에 들어도 죽지 아니하고, 두 장자에 한 자식 되어 무량한 복덕을 받는 것이다. 또한 불법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오래지 아니해서 양가에 한 자식을 낳은 후에 나의 법 가운데 들어와 제자가 되어 법명을 중성重姓 비구라 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후에 두 아들을 낳아 두 집에 후사를 전하게 하고는 출가하여 위없는 쾌락을 받게 되었다.
이때 여래께서 아사왕궁에서 설법하시더니 아사왕이 다시 세존 전에 예배하고는 말하였다.
“세계 중생이 사람의 몸으로 인간 세상에 태어나는데, 복덕이 두루 고르지 못하여 존귀한 사람도 있고, 빈천한 사람도 있으며, 장수자도 있고, 단명자도 있으며, 억세고 모진 사람과 부드러운 사람도 있으며, 정직한 사람과 왜곡된 사람도 있고, 도적질하며 거짓말하는 참됨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체중생의 천진불성은 다 한가지인데 어찌 평등하지 못하고 선악이 같지 아니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이 살생, 도둑질과 음행의 세 가지 악행과 안·의·비·설·신·의 여섯 가지 도둑에 끌려 천진불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육도사생에 끌려 윤회하지만, 깨닫지 못해 중생의 선악이 각각 업보를 따라 태어나는 것이 그림자가 그 모양을 따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존귀한 자는 전생에 부모에게 효도하며 삼보를 공양한 자이고, 하천하고 남에게 질투를 받으며 독한 매를 맞는 자는 전생에 그 사람을 속여 전 재산을 탈취하며 혹 빚지고 갚지 못한 자이며, 장수자는 전생에 살생을 하지 않은 사람이고, 단명자는 살생을 좋아하던 자이다. 부드러운 사람은 전생에 선행을 닦던 자이고, 억세고 모진 자는 전생에 축생으로 태어난 자이며, 우직하고 총명하여 인덕이 있는 자는 전생에 선행을 많이 닦아 부모께 효양하고 불도를 공경하여 자비로 선지식을 친근히 공양하던 사람이고, 금생에 패악부정하고 어리석고 우둔한 자는 전생에 돼지의 몸을 따라 태어났던 것이고, 경솔하여 참지 못하는 사람은 원숭이를 따라 태어났던 것이며, 몸에 비린내가 나고 악취가 나는 자는 자라의 몸과 일체 물고기를 따라 태어났던 것이고, 정신 없고 글을 잘 못하는 사람은 전생에 남을 가르치지 아니한 자이고, 자비심이 없고 심술 많은 자는 전생에 모진 호랑이를 따라 태어난 것이며, 벙어리가 되는 사람은 남을 모함하던 자이고, 몸에 병이 많은 사람은 남의 목숨을 해롭게 하던 자이며, 음식을 혼자 먹고 남을 주기 싫어하던 자는 요망한 귀신을 따라 태어났던 것이고, 비록 사람 몸을 얻으나 빈곤한 것이다.
또 총명하며 음성이 청아한 자는 전생에 염불 공덕으로 일삼아 선행을 행하던 자이고, 불연이 없는 자는 염불을 비방한 것이니, 염불하는 사람을 방해한 죄는 아비지옥에 들어 만겁이라도 사람 몸을 얻지 못하느니라. 만일 금생에 사람이 남녀 간에 부모를 효성으로 봉양하고 삼보를 공경하며, 가난하고 병든 걸인을 구원하고 어진 벗을 친근히 하며, 악한 사람을 멀리하고 자비심을 일으켜 초목의 곤충이라도 내 몸같이 사랑할 것이니, 어질고 착한 사람을 보거든 따라 배워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착한 행을 가진 사람은 금생에 어진 신령이 옹위하며, 임종할 때에 또 인간도에 몸을 받아 태어날 것이다.
슬프다! 악업을 짓는 사람은 악도에 떨어질 것이니 어찌 애달프지 아니한가? 경전에 낱낱이 말씀하셨거니와 모든 악을 행하지 말고 선심을 본받으면 이 세상에 험한 몸을 벗고 후세에 결단코 착한 곳으로 돌아가리라.”
이때 아난과 대중이 아사왕과 더불어 듣고 받아들여 절을 올렸다.
이튿날 세존께서 아사궁을 떠나 하수산을 지나오시다가 아난과 가섭에게 인연을 보라 하시고, 먼저 아난을 불러 말씀하셨다.
“우타 장자의 집에 가서 시주를 하여 오라.”
아난이 명을 받들어 우타 장자의 집에 갔다.
이때에 장자가 아난을 한참 동안 보다가 문득 성을 내면서 말하였다.
“어떤 사문이 무례히 들어와 시주를 청하는가?”
하고는 늙은 하인을 불러 쫓아내라고 하였다. 아난이 구박을 받고 즉시 돌아와 세존께 낱낱이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조금 웃으시고는 다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우타 장자의 집에 나아가 보라.”
그런데 아난이 가섭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풍채가 좋은 나도 그 사람에게 쫓겨났는데, 사형의 흉한 얼굴 생김새로 어찌 쫓겨나지 않겠는가? 다른 곳에 가서 시주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가섭은 듣지 않고, 바로 우타 장자의 집으로 들어갔는데, 우타 장자는 문밖에 서 있다가 가섭을 보고 반가워하며 말하였다.
“화상이 수고로이 오시는군요.”
가섭을 맞아 당상에 앉히고는 차를 올리며 늙은 하인을 불러 말하였다.
“시주 쌀과 노잣돈을 속히 가져오너라.”
가섭이 받아 하직하고 돌아와 세존께 올리니 대중이 여쭈어 말하였다.
“아난의 쫓겨남과 가섭의 후대함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아난과 가섭이 과거 겁에 시골 마을 집의 농부가 되어 들에 있다가 길가에 한 큰 이무기가 목동에게 맞아 죽을 때였다. 아난은 흉악히 여겨 달아나고, 가섭은 밭 갈다가 긴 작대기를 가지고 큰 이무기가 죽은 것을 보고 목동을 꾸짖으며 죽은 큰 이무기를 들어다가 개미의 집에 두고서 말하기를, ‘업과를 빨리 벗고 좋은 과보를 얻으라’라고 하고는 다라니 주문을 읽어 준 그 인연으로 장자가 되었다. 온 마을의 하인들은 다 그때의 개미이고, 흉악하다고 피했던 농부는 지금의 아난이며, 불쌍하다고 축원하며 개미구멍에 두었던 농부는 가섭이다.
흉악하다고 하니 내쳐짐을 받고, 불쌍하다고 축원함으로써 후대를 받은 것이다. 아난과 가섭아! 너희가 과거에 지내던 일을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짓는 것이 후생에 받을 과보이니라.”
대중이 다 받아들이고 예배하였다.
이때 야수부인이 부왕을 이별하고 침전에 나와 하늘가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설산 도인이 분명히 정각에 올라 영산에 있을 것인데, 어찌 이리 무심하리오?’
불타는 숯불에 들어갈 때 백의관음의 말씀을 생각하고 날마다 마음이 우울하여 라후라의 손을 잡고 슬퍼하며 탄식하였을 때였다.
하루는 부왕을 모시고 갔던 종족 난타難陀(Nanda) 등이 급히 들어와 공중에서 금신을 만나 대낮에 승천하던 말을 다 마치지 못하였는데, 홀연히 공중으로 구름을 탄 두 존자가 궁궐에 이르러 금양과를 던지며 영산으로 돌아감을 청하였다. 야수 모자가 황망히 계단 아래로 내려와 절을 올리고 던진 선과를 먹으니 두 몸이 벌써 허공에 올랐고, 문수와 목련이 궁중 비빈과 친척을 거느리고 갔다. 궁녀 등이 야수부인과 라후라와 왕녀 삼천 명이 차례로 구름을 타고 가는 것을 보고 각각 손을 합장하여 천상을 향해 축원하며 말하였다.
“야수부인은 영산에 들어가 세존께 발원하셔서 우리도 함께 돌아가게 하옵소서.”
축원하는 소리가 구름 밖에까지 사무쳤다.
이때 난타가 종족과 함께 왕을 모시고 영산으로 들어감을 보고 망령되이 분란을 일으키려 하다가 성 밖에서 왕이 공중에서 사라지자, 사악한 마음에 분노하여 소리쳤다.
“우리는 동거동족이거늘 구름을 태워 가지 아니하고 이제 버리니, 어찌 애닯지 아니하리오?”
즉시 내궁에 들어가 천리마를 타고 필마로 홀로 달려갔다.
이때에 정반왕이 금신의 변화로 백룡을 타고 공중에 올라 지나가는 곳을 굽어보니, 다만 백운이 어려 세계를 덮고 있고, 천수만산의 풍경이 얼른얼른 달라지며 귀에 바람소리가 요란하니 정신이 황홀하여 짐짓 꿈속에 있는 듯하였다.
이윽고 한 곳에 이르러 향기롭고 꽃다운 풀이 있는 언덕에 두 발이 놓이고, 봉황과 학의 울음소리가 새로운데, 왕이 정신을 수습하여 살펴보시니 타고 왔던 백룡이 변하여 흰옷을 입은 소년이 되었고, 관음과 더불어 왕을 인도하였다. 왕이 물었다.
“저 소년은 어떠한 선인인가?”
소년이 웃고는 대답하여 말하였다.
“왕이 오히려 번뇌에 혼탁하여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자를 몰라보십니까?”
왕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이름을 모르는데, 어찌 알리오?”
소년이 말하였다.
“소자의 이름은 건척입니다. 숙세에 왕의 은덕이 있기 때문에 보답하고자 하옵니다. 제가 하수 용왕의 셋째 아들이 되었습니다. 세존께서 성을 뛰어넘어 출가하실 때에 소자가 등에 업고 설산으로 모셔 갔었고, 이제는 영산회에 또 돌아와 대왕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정반왕이 크게 놀라고 대단히 기뻐하며 소년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건척아, 반갑도다.”
정반왕이 말씀하시자마자 그 소년이 왕을 인도하여 영산 동문 밖으로 인도하며 말하였다.
“저기 바라보이는 곳이 여래께서 계신 곳입니다.”
왕께서 살펴보시니 신선의 경치와 같았다. 왕께서는 궁중에 있을 때 국가만 위하여 일찍이 세존의 출가 후로 번뇌로 세월을 보내시다가 사위성 밖에서 금양선과를 잡수시고 백의관음을 따라오자 천상 보살 위로 나온 듯하고, 이미 지난 왕궁의 부귀는 독 속의 하루살이 같았다.
이때에 세존께서 백관 대중을 거느리고 일승묘법을 강설하실 때였다. 문득 동자가 들어와 고하였다.
“백의관음이 먼저 대왕을 모셔 오나이다.”
세존께서는 즉시 탑상에서 내려오시어 인천대중과 1천2백 제자를 거느리고 산문 밖에 나와 부왕을 맞아 오체투지하여 공경하게 절을 하셨다. 좌우 대중이 세존의 뒤를 따라 동시에 합장하여 배례하고 동서로 모시고 서서 들어오니 꽃비가 내리고 하늘음악이 공중에서 요란하고 천룡팔부는 전후에 둘러싸 지키고 서 있었다.
탑상에 이르러 세존께서 부왕을 인도하여 연화탑상에 자리를 정하시고 다시 금구를 열어 말씀하셨다.
“출가자 실달은 오늘 영산에 멀리 나와 맞이하여 뵈옵습니다. 이별한 지 30년에 부왕의 옥체 안녕하심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왕이 연화 탑상에 단정히 앉으시어 대중의 예를 받으시고 다시 세존께서 금빛 얼굴을 돌려 보시니 장륙금신이 단정하고 엄숙하여 상제와 금강팔부 성신이 모셨으니, 법도 거룩하고 위의도 엄숙하였다.
왕이 마음속으로 헤아리셨다.
‘가히 기특하다. 천인사에 위덕이시여! 중생의 복이로다. 아난이 어찌 돌아올 마음이 있었겠는가?’
부처님을 찬탄하고 우러러 보다가 공경히 대답하였다.
“부자와 친척이 천당에 모여 이별 없이 불생불멸하게 하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소자 왕궁에 있을 때 사문유관하고 한밤중에 유성출가를 한 것은 바로 부왕을 위하여 영산회에 모시고자 한 것이니 어찌 생멸문이 있겠습니까? 다시는 세간의 일을 의론하지 마시옵소서!”
이때 아난과 차익이 회중에 있다가 탑상 아래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용서해 주기를 청하였다. 왕이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너희들이 세존을 따라 함께 출가하였는데, 오늘 부처님 세계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옛날 번뇌를 생각하리오?”
왕은 흰옷을 입은 소년을 불러 차익에게 보이고는 말씀하셨다.
“차익 존자는 저 소년을 알겠는가?”
차익은 미처 대답하지 못하자 그 소년이 차익의 소매를 붙들고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며 말하였다.
“나는 용마 건척입니다. 왕궁에 있을 때 서로 따랐었는데, 이제 세존의 제도하심을 힘입어 하수 용왕의 셋째 아들이 되어 대왕을 모셔 이곳에 왔습니다.”
하고 서로 반기며 슬퍼하였다.
세존께서 아난과 대중을 불러 말씀하셨다.
“문수보살과 목련이 오늘 들어오면 내 법연에 나아가 묘법을 강설할 것이니라. 목련이 라후라 모자를 데리고 북방 비사문천 왕궁에 들어가 야수에게 숙부 천왕을 찾아서 보내도록 하라. 그곳에서 천상에 올라가 마야부인과 청제부인을 모시고 영산으로 올 것이니 지금은 기다려라.”
한편 야수부인은 우전왕의 딸이다. 일찍 정반왕궁에서 결혼한 후로 친가와 이별한 지 30년이 되었다. 우전왕은 영산에 들어가 문수보살이 목련을 데리고 정반왕궁으로 가서 야수부인과 라후라를 풍운대에 거느리고 영산으로 온다는 말을 듣고서 여래께 그 사연을 고하고 북방 천왕궁으로 돌아왔다. 이날 보살과 목련이 야수부인 모자를 구름에 태우고 함께 들어오다가 왕을 만나자 서로 인사를 하고, 야수부인 모자를 왕궁에 청하여 지난 일을 말하며 슬퍼하였다.
천왕이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보살과 함께 부인을 모시고 영산으로 들어갈 것이니, 존자는 여래께로 가십시오.”
목련이 말하였다.
“빈도는 이 길로 천상에 올라가 마야부인과 저의 어머니를 모셔 함께 한곳에서 세존께서 설하시는 법을 듣게 하겠습니다.”
하고 천상으로 갔다.
이때 파사부인波闍夫人(Mahābrajātatī)은 마야부인의 동생이며 세존의 이모이다. 세존께서 탄생하신 후 7일 만에 어머니가 천상으로 가시자, 파사부인이 세존을 거두어 양육하셨으니 모자의 정이 매우 깊었다. 세존께서 일찍이 출가하시니 부인이 태자를 생각하고는 3년 전부터 금실로 짜서 법복을 지어 보물로 장엄하여 두고는 늘 ‘영산에 들어가 친히 올리리다’라고 하였다.
정반왕과 야수 모자는 목련존자가 인도하여 영산으로 들어갔고, 파사부인과 종족은 다시 세존의 신통력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때 세존께서 파사부인과 종족을 생각하여 목련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다가 천상으로 올라간 것을 아셨다. 또 난타가 필마로 쫓아오다가 길 위에서 낭패를 보아 도처에 참괴한 거동을 천안으로 보시고 탄식하며 아난과 대중을 불러 말씀하셨다.
“난타의 사정과 파사부인을 모셔 올 일과 모든 권속을 데려올 일을 어찌 목련 한 사람의 신통만 바라리오? 여래 제자 가운데 누가 목련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세존이 말씀을 마치자마자 대회중에서 가섭과 수보리가 나와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며 말하였다.
“비록 목련과 같지는 못하오나 청컨대 신통을 시험해서 여래 법지를 봉행하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가섭과 수보리는 절을 올리고는 즉시 공중에 올라 구름을 타고 갔다.
이때 난타는 분하여 필마로 쫓아왔는데, 천리마가 놀래 달아나고 난타는 말에서 떨어져 구덩이에 빠져 겨우 언덕에 올라갔다. 목마름을 이기지 못하여 주막집을 찾아오다가 한 집에 들어가니 중당에 한 미인이 단정히 앉아 영산 석가모니불이라고 부르며 염불하고 있었다. 난타가 달려들어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석가불은 나의 형이다. 오늘 저녁에 나와 동침하고 술과 고기를 많이 주면, 내 곧 영산에 들어가 부처님인 형에게 친히 고하리다.”
하며 낯 뜨거운 거동을 하였다. 그 미인이 보다가 어이없어 침 뱉으며 말하였다.
“불타께서 어찌 너 같은 미친 동생을 두었겠느냐? 내 비록 기생이나 너같이 패역한 자를 가까이하겠느냐?”
그러자 난타가 말하였다.
“내가 어찌 네 자리에 못 눕겠느냐?”
하면서 방에 들어와 누웠다. 그러자 미인이 너무 놀라 뿌리치며 말하였다.
“별놈도 많구나. 옛날에 아난존자도 내 자리에 누었다가 여래께서 괘씸하다 하시어 누웠던 자리를 들어다가 대회중에 놓아 부끄럽고 욕됨을 끼쳤는데, 이제 또 여래 동생이라 하며 억탈하며 구박하니 반드시 무슨 변괴가 있을 것이다.”
난타가 말하였다.
“너와 내가 영산에 가지 못하여 염불하는 것이니, 나와 둘이 누웠으면 아난과 같이 갈 것이니라.”
소리치며 달려들었는데, 미인이 또 소리치며 난타의 등을 밀쳐 문밖으로 내치니 그 거동이 참으로 낯 뜨거웠다.
이때 가섭과 수보리 등이 세존께서 주신 계수신공을 가지고 구름을 타고 왕사성에 들어가 제달왕에게 부왕이 영산에 무사히 오셨는지 여쭈고 또 세존의 법지를 전하여 말하였다.
“파사부인과 종족을 모시러 왔습니다. 종족이 모두 원대로 모이게 해 주소서.”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파사부인은 머리 위에 금사 법복을 이고 나오며, 종족 가운데 백반왕, 곡반왕, 감로반왕과 기타 권속 수십여 인과 궁녀 50여 인이 일시에 모여 각각 합장하고 가섭과 수보리 두 사람을 향하여 말하였다.
“아침에 목련과 보살은 풍운신통으로 왕상을 구름에 태워 갔습니다. 그런데 저 두 존자는 무슨 신통으로 수많은 궁속을 어찌 데려갈 수 있겠습니까?”
가섭은 비범한 사람이었으므로 다만, “걷지 않고 갈 것이로다.”라는 말을 끝마치자마자 여래께서 주신 계수신공을 공중에 던지니 변하여 구름다리가 되었다. 가섭이 말하였다.
“영산에 가기를 원하는 중생이 있거든 구름다리에 오르자마자 순식간에 가게 됩니다.”
이때 파사부인이 구름다리에 오르니 몸이 금련대에 앉아 있었다. 그 남은 종족들과 궁녀와 인연을 맺은 중생들도 함께 구름다리로 올라갔다.
이때에 가섭과 수보리가 구름다리 가에 앉아서 인연 있는 중생들에게 권하여 구름다리로 오르게 하였다. 어느 곳에 다다르니 가섭이 수보리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저 촌막에서 싸우고 있는 남녀는 반드시 난타와 마등가일 것이다. 난타가 필마로 영산에 들어와 난리를 피우고자 하였는데, 후토신后土神이 미워하여 말에서 떨어지게 해서 등가죽이 벗겨졌었다. 시골 마을 집에 들어와서도 난리를 피우고 있구나. 세존께서 우리 두 사람을 보내실 때 ‘선악을 보지 말고 평등히 제도하라!’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난타를 보고 말한 것이리라. 어찌 던져두고 가겠는가?”
수보리가 말하였다.
“이 사람은 사나워 우리 세존을 능멸하고 불법을 비방하며, 영산회에 들어가면 대중의 공부를 방해하여 법 가운데 외도가 되어 무궁한 죄를 지을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사람을 아는 체하여 인연에 동참하게 할 수는 없다.”
가섭이 말하였다.
“난타의 행실과 마음을 본다면 제도하기는 어려우나 어찌 부탁함을 저버리겠는가?”
가섭이 급히 후토신을 불러 난타를 잡아 오게 하니, 마등가가 내달려 와 합장하며 말씀드렸다.
“옛날 세존님께서 영산으로 들어와 법을 들으라 하셨으니 어찌 아니 가겠습니까?”
가섭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하마터면 잊을 뻔하였구나. 그러나 어찌 아난존자의 얼굴을 보지 않겠는가?”
함께 구름다리에 오르니 마등가가 다시 두 존자에게 절을 하였다.
이때 문수보살은 천상에서 야수 모자를 데리고 천왕과 함께 구름을 타고 돌아오고, 목련은 천상에 올라 마야부인과 청제부인을 모셔 영산으로 돌아오며, 가섭과 수보리는 파사부인과 난타와 여러 종족과 마등가와 인연 있는 중생들을 구름다리에 올려 영산으로 돌아오니, 인천의 거룩한 위의와 법연의 찬란한 광경을 가히 기록하지 못할 것이다.
이때 세존께서 부왕과 친척을 법좌에 청하여 일승묘법을 설하시니 왕과 종족이 다 도에 들어 숙명통을 얻었다. 과거 무량겁을 두고 태자로 더불어 부모 자식이 되어 사랑하고 효도하던 일이 어제와 같았다. 왕과 종족이 육신을 지니고 승천하여 도솔천에 올라가시니 세존의 대원이 아니면 어찌 이렇게 하겠는가?
이때에 부인이 라후라를 데리고 세존 전에 들어와 합장하고 예배하였다. 이때 아름다운 용모에 사람들이 놀랐다. 세존께서 탑상에 결가부좌하시고 라후라가 탑상 아래에서 절을 올리는 것을 보고 금빛 얼굴에 희색을 띠우시고 라후라의 이마를 만지며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알겠느냐? 영산법회에서 모이기를 원하였는데, 오늘 나의 원이 이루어졌구나. 그러나 네 모친으로 더불어 왕궁에서 탄생할 때에 불타는 숯불에 가장 고생하였다.”
그리고는 목련에게 명하여 말씀하셨다.
“대법을 일러서 라후라의 아만심을 깨트리게 하라.”
즉시 명을 받들어 라후라를 인도하여 법좌에 앉히고 대법을 강설하니 그 법문을 듣자마자 라후라는 대오하여 숙세의 일을 거울같이 알게 되었다. 과거 겁에 부모 자식이 되어 사랑하던 일과 세존께서 천상에서 호명보살로 계실 때 제자로 법문을 듣고 수도하여 밀행이 제일이라고 칭찬하시고, 세세생생에 부모 자식이 되어 법좌에 모심을 원하였는데, 오늘에야 모였음을 기뻐하여 무수히 절을 올렸다. 그러자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졌다. 라후라는 숙세의 일을 크게 깨닫고 서글픈 마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소자 세존의 대원을 입어서 삼생의 혼몽을 깨쳤습니다.”
야수부인이 법좌에 섰다가 옥 같은 얼굴을 들어 잠깐 살펴보니, 세존께서 장륙금신으로 사자탑상에 엄연히 단정하게 앉아 계신데 삼십이상의 백호광명은 삼천세계를 둘러 있고 연꽃은 법좌에서 빛나며, 맑은 향기가 온천지에 진동하고 좌우에 관음·세지·문수·보현 등 성문, 연각이며 제천 상제와 천룡팔부 등이 차례로 늘어서 모시고 서 있었다.
‘정말로 영산대법회의 석가여래가 아니시면 어찌 이러하겠는가?’
야수부인이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출가하실 때에 이별을 아껴 금포 소매를 잡고 자식이 없음을 한탄할 때 왼손 무명지로 복중을 가리키며 전단향을 주시어 변고를 벗게 하시고, 이제 세존의 신력으로 이렇게 모였구나. 그러나 라후라는 벌써 세존 전에 이르러 연설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럽구나’라고 하면서 옛일을 생각하시니 눈물이 옥 같은 얼굴에 그득히 고였다.
야수가 하루는 세존과 이별할 때에 마음속에 품은 슬픈 회포가 잊혀지지 않고 황홀하여 세존 전에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절을 올리며 말하였다.
“태자께서 정각을 얻으시어 삼계 중생을 제도하시니 전생의 일을 생각하옵건대, 큰 바다 같은 은혜를 어찌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겠습니까? 원컨대 라후라를 따라 함께 대법을 듣고 법좌에 길이 모셔 반드시 세존을 따라 함께 열반에 들어 불생불멸하게 해 주십시오.”
말을 마치자마자 눈물이 비 오듯 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부인의 허다한 고행은 다 전생의 인연이니 어찌 세속 부부의 인연에 애착으로 이곳에 이르겠는가?”
즉시 아난에게 명하여 말씀하셨다.
“야수의 인간 혼몽을 깨닫게 하라.”
아난이 명을 받들어 인도하니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야수가 출가하기를 원하는구나. 내가 이미 파사부인의 출가함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다만 마땅치 아니하지만 야수의 출가를 허락하고자 하노라.”
야수가 즉시 칠보 의복을 벗고 금전도를 청하여 머리를 깎으려 할 때였다. 홀연히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졌다. 그러자 다시 세존을 향하여 합장하고 두 번 절을 올렸다. 아난이 설법하니 곧 깨달아 삼명육통을 얻었다.
이때에 야수비구니는 과거 연등불이 출세하셨을 때에 다섯 송이 꽃으로 세세생생에 부부가 되어 육도사생에 출입하던 일을 다 알게 되었다. 또한 법 가운데 들어 옛날 정욕에 있음을 생각하였다.
‘어찌 여자의 몸이 되어 규중에 있어 이별을 아끼며, 사랑을 저버리지 못하였는가?’
다시 성을 내며 말하였다.
“가소롭구나! 세간 망상이 하나도 떳떳함이 없음을 모르고 궁중에서 하던 일이 더욱 우습구나.”
그러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지나간 일을 지금 보면 다 허망하니 세속의 일은 의논할 것도 없다. 설사 만 리 앞을 환하게 내다볼지라도 다 망상이다.”
야수는 다시 절을 올리고 여쭈었다.
“제자 또한 숙세의 일을 압니다. 그러니 연등불 시대에 이름 있는 꽃 한 송이를 아껴 부부의 발원이 없었으면 오늘로부터 어찌 깨침을 얻겠습니까?”
이때 라후라는 세존을 모시고 있었는데, 야수부인이 득도함을 알고 모친에게 합장하고 배례하였다.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너희 숙세로부터 발원과 믿음이 견고하기에 오늘 법회에 모이게 된 것이다.”
이때 야수를 따라온 시녀 등이 세존께 합장 예배하고 야수와 함께 삭발 출가하여 야수의 법회에 청하고자 하니, 세존께서 그 발원을 칭찬하시어 허락하셨다. 이튿날 야수는 세존께 여쭈었다.
“세간 혼몽을 깨쳤사오니 신통을 잠깐 시험하여 천상에 올라가 부왕과 마야부인을 찾아뵙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변신하여 화려한 구름을 타고 도솔천으로 올라갔다.
이때 세존께서 왕궁에 계실 때 양육하셨던 파사부인은 세존의 이모이다. 마침 금실로 법복을 지어 세존께 올리니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모친이 수고롭게 법복을 지어 나를 입게 하시니, 그 은혜와 사랑으로 생각하여 보시하시면, 이는 모친으로 하여금 복덕을 심지 못하게 합니다.”
하시고는 그 법복을 내어 좌중에 법복 없는 비구에게 보시하셨다. 그러자 파사부인이 크게 놀라면서 말하였다.
“복덕을 바라는 것이 아니오니 오직 바라건대 세존께서는 금의를 입으소서.”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어찌 복덕을 없애리오.”
파사부인 또한 이날 법을 듣고 도를 얻어 삼명육통이 다 구족하였다.
세존께서 종족 50여 인에게 차례로 설법하셨다. 그러나 오직 세존의 동생 난타는 숙세에 선행이 없고 정도에 마음이 없지만 세존의 신력으로 이곳에 참례하여 이 같은 법회를 대수롭지 않게 보고 비방심을 일으켰다. 세존께서 아시고 크게 근심하여 아난과 목련을 불러 말씀하셨다.
“비록 내 동기나 악업이 중하여 불법에 장애가 되어 구제할 길이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목련이 여쭈었다.
“제자는 비록 재주가 없사오나 난타로 하여금 일념에 귀의하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난타를 청하여 말하였다.
“이곳에 와서 구경하고자 하거든 나를 따라오라.”
난타는 일생동안 두루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따라가기를 원하였다. 목련이 즉시 신통력으로 옆에 난타를 끼고 공중에 올라 한 곳에 다다랐는데, 철성이 하늘에 닿는 듯하고 성 안에 궁전이 가득하여 무수한 귀신이 문마다 지키고 서 있었다. 난타가 살펴보니 인간 세상에서는 보지 못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목련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떤 곳인가?”
목련은 대답하여 말하였다.
“이곳은 염라궁전이다.”
하고 난타를 데리고 여러 성문을 넘어갔다. 그곳은 무수한 죄인을 철상에 앉히고 우두나찰과 무수한 귀졸들이 달려들어 목도 베고 배도 가르며, 오장도 흩어 내고 끓는 가마에 넣어 삶으니 통곡 소리가 낭자하였다. 또 한 곳에 다다르니 무수한 승속 남녀를 모두 구리기둥에 기름을 발라 불타는 숯불 속에 기둥을 세우고 죄인을 올라가도록 하였다. 만약 더디게 오르면 쇠 채찍으로 후려쳐 두 다리와 양발이 미끄러져 불 속에 떨어져 벌벌 떨고 살이 타면서 우는 소리가 가득하였다. 그리고는 그 죄인을 도로 살려 쇠 채찍으로 가슴을 꿰어 공중에 매달아 모진 뱀과 주린 매로 하여금 달려들어 골도 파고 살을 파먹게 하니 유혈이 낭자하여 차마 보지 못하였다.
난타가 이러한 거동을 보고 말하였다.
“이 사람들은 인간 세상에서 무슨 죄로 이러한 고통을 받는가?”
옥졸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이 사람은 세상에서 임금과 부모에게 불충과 불효를 행하고, 부인은 남편을 배반하고 집안에서 화목하게 지내지 아니하며, 삼보를 비방하고, 염불하는 사람을 보면 쓸데없이 모함하여 술과 고기에 취해 불량스럽게 행한 죄이다. 이제 처음으로 다스리는데 이후 팔만사천 무간지옥에 들어가면 날마다 만 번 죽이고 만 번 살려 억만 겁이라도 인간에 나올 기약이 없느니라.”
난타는 이 말을 듣고 마음에 큰 두려움이 생겨 목련을 바라보며 바삐 나가자 하였다.
목련이 난타를 데리고 또 한 곳에 이르니 큰 가마에 기름을 가득히 붓고 끓이며 철창을 세우고 흉악한 기계가 가득한 곳에 죄인은 없고 귀졸들은 팔을 걷어 올리고 죄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타가 옥졸에게 물었다.
“이곳은 어찌 죄인은 없는가?”
귀졸은 답하였다.
“이곳은 지금 세존님 동생 난타가 들어와 삶을 곳이라서 벌써 염왕께 잡혀 올 것이지만, 영산법회로 들어갔다고 하였기에 법회를 파하면 잡아다가 삶을 것입니다.”
난타는 이 말을 듣고 놀라서 얼굴빛이 달라지며 물었다.
“무슨 죄라고 하는가?”
옥졸이 답하였다.
“불법을 비방하고 세존 설법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상제와 사천왕 등이 우리 염왕께 기별하여 이름을 난타라 하고 벽에 써 붙였습니다.”
라고 하며 벽을 가리켰다. 난타는 이 말을 듣고 몸이 송구하여 돌아보지 아니하고 목련을 손으로 치며 말하였다.
“나는 먼저 가리라.”
목련이 난타를 데리고 가다가 성문에 오르며 발우를 던져 난타를 옆에 끼고 발우 위에 앉아 곧바로 화락천상에 올라갔다. 거기에는 칠보 재화며 선동선녀 들이 진주로 꾸민 누각 위에 줄을 지어 있고 진기한 보물들이 매우 많으며 봉황과 공작이 왕래하고 있으니 바로 천상의 땅이었다.
난타가 이를 보고 환희하며 즐거워하여 목련에게 물었다.
“이곳은 어떠한 사람들이 있는가?”
목련이 답하였다.
“인간세계에서 삼보를 공양하고 부모 형제를 사랑하여 악도를 버리고 충성심과 효행심과 선한 도를 행하는 사람이면 이곳에 있게 되니라.”
난타가 듣고는 매우 기뻐하여 두루 구경하고자 하는데, 목련이 말하였다.
“너 홀로 다니며 구경하여라.”
그러자 난타는 혼자 두루 구경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기이하고 특이한 곳에 이르니 칠보채각을 새로 짓고 황금교의에 진주로 꾸민 물품이 가득하지만, 오직 주인이 없고 여러 시녀뿐이었다. 난타는 그 시녀에게 물었다.
“이 집의 주인은 없느냐?”
시녀는 대답하였다.
“이 집의 임자는 영산 석가여래의 동생 난타의 집입니다. 처음에 상제가 명하셔서 석가여래가 정각에 들어 계신데 부모 친척을 다 천상으로 인도하시면 이 집에는 난타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들으오니 난타가 정법을 비방하고 사도에 들어 있기 때문에 지옥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난타는 이 말을 듣고 목련을 찾아 소매를 잡고 빌며 말하였다.
“그만 구경하겠으니 존자는 나를 세존 전에 데려다가 주십시오.”
목련이 그 마음을 짐작하고 즉시 신통으로 난타를 끼고 영산으로 돌아오니, 세존께서 설법하여 모든 제자와 함께 난타를 아는 체 아니하였다. 난타가 세존 전에 나아가 머리를 두드리며 울면서 말하였다.
“어리석어 정도를 비방해 온 죄는 만겁이라도 면하기 어려우나 오늘 비로소 뉘우침이 있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대자비로 난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말을 마치자마자 난타의 머리카락이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졌다. 난타는 세존을 향하여 절을 올리니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난타의 성불이 기특하다. 내 너와 동기이나 너는 조금도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라. 너는 회중 1천2백 제자들에게 차례로 예배하도록 하라.”
난타가 절을 하다가 우바리優波離(Upāli)에게는 예배를 하지 아니하고 세존께 여쭈었다.
“우바리는 내 집 하인인데 어찌 차마 저에게 예배하라고 하십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만심이 오히려 이와 같으니 어찌 도를 이루겠는가? 오늘 너를 대하여 설법하는 것은 너의 아만심을 끊을까 하였는데 이와 같이 하니, 영산법회가 장하여 불법이 바다와 같아서 모든 물이 다 들어가지만 물맛은 한가지이다. 어찌 귀천과 고하가 있겠는가?”
난타가 이 말씀을 듣고 즉시 합장하고 우바리를 향하여 공경하게 예배하였다.
아! 난타의 아만심이 세존의 한 말씀에 깨어지니 천지도 또한 감동하였다.
이때에 세존께서 정각을 얻어 49년을 설법하여 중생을 구제하셔 삼계 중생을 삼승묘법으로 인도하고 피안에 이르게 하신 횟수는 무량무변하다. 어찌 거룩하지 아니하겠는가. 이때에 세존의 연세는 79세였다.
13. 쌍림에서 열반에 드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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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79_a_01L슬프다! 열반에 드실 시절 인연을 당하셔서 쌍림원에 나아가시어 여러 제자와 함께 금구를 열어 말씀하셨다.
“출가한 11년 동안에 5년은 선도로 다니고 6년은 정도에 들어 정각을 얻어 삼계 윤회에 처해 무량겁을 몸과 마음을 다해 수행하던 일이 가장 어려웠다.
마왕 파순이 열반에 들기를 청하였지만 듣지 아니하는 것은 전법 제자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교진여 등 5백 제자를 먼저 제도하여 모두 다 제도에 들게 하였다. 또 부왕 종족과 야수 궁속 수천 인을 차례로 제도하여 사제법을 이루게 하여 생·로·병·사를 면하게 하였다.
이제 십대제자가 있으니 1천2백 제자 가운데 제일인데, 가섭은 상행이 제일이고, 아난은 다문이 제일이며, 사리불은 지혜가 제일이고, 아나율은 천안이 제일이며, 우바리는 지계가 제일이고, 라후라는 밀행이 제일이다. 그 나머지 여러 제자가 각각 다 도를 가져 후세의 중생으로 하여금 귀의하게 할 것이다.
내가 비록 열반에 들어가나 내 법신은 상주불멸할 것이다. 너희들은 삼계 중생을 제도하며 방심하지 말라. 삼계가 편안하지 못함이 불타는 집과 같으니 빨리 불타는 집을 벗어나 피안에 이르라.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다시 얻기 어려우니라. 비록 사람의 몸을 얻으나 마침내 불타의 출세시를 만나기는 가장 어려우니라.”
대중이 모두 맑은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이때 청신사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이 순타純陀(Cunda)이다. 세존 전에 공양을 올리니 세존께서 순타의 공양을 받고는 말씀하셨다.
“나의 열반 시에 최후의 공양이다.”
아난이 이 말을 듣고 더욱 슬픈 마음을 금치 못하여 벽으로 몸을 돌려 슬피 울었다. 아나율이 아난을 위로하며 말하였다.
“존자가 만일 슬퍼만 하고 세존께 물을 말씀을 묻지 못하면, 여래께서 열반하신 뒤에는 후회가 막급할 것이오. 일체의 의혹스러운 일을 여쭈도록 하시오.”
아난이 즉시 네 가지를 여쭈었다.
“첫째는 육군비구六群比丘(ṣaḍ-vargīka-bhikṣu) 등을 어찌 교화해야 합니까? 둘째는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는 여래를 스승으로 모셨으나, 이제 열반하신 후에는 누구로 하여금 스승을 삼아야 합니까? 셋째는 여래에게 의지하여 머물렀는데, 이제 열반에 드시면 어느 곳을 향하여 머물러야 합니까? 넷째는 대장경을 결집할 때에 처음 말씀을 무엇이라 해야 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내 열반 후에 육군비구는 정법으로 교화하여 무명을 끊어 버려 ‘나’라고 하는 상이 없게 하고, 마음이 본래 공한 줄을 깨치면 삼계의 불타는 집을 벗어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너희들에게 부탁하노라. 육군비구 등으로 하여금 삼계의 전도된 망상에 들지 못하게 하라.
내가 멸도한 후에는 계행으로써 스승을 삼고 사념처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몸이 부정한 것으로 보고, 법이 내가 없는 것으로 보며, 마음이 무상하다는 것을 보고, 경계를 받는 것이 괴로운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일체경 첫머리에는 ‘이와 같음을 내가 듣사오니 한때에 부처님이 아무 곳에서 계시더라’라고 하라.”
아난이 또 여쭈었다.
“세존께서 열반하시면 장례를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전륜왕의 장례로 할 것이지만, 나의 사리를 거두어 칠보탑에 모셔 두고 일체중생이 참배하여 내세에 성불할 인연을 맺게 하며, 또 내 몸이 있을 때와 같이 하라.”
이때에 제천과 상제께서 세존께서 영결하시는 유언을 듣고 슬피 통곡하는 소리가 천지에 진동하였다. 세존께서 위로하며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속절없이 슬퍼하지 말라. 비록 열반에 들지만 나의 사리가 있고 모든 경전이 있으니 족히 기쁜 마음으로 귀의하고 공양해야 할 것이다. 나를 보고자 한다면 곧 법신을 볼 것이니, 이 법신을 본다면 곧 성인을 볼 것이고, 성인을 보고자 한다면 사제법을 볼 것이며, 사제법을 보고자 하면 곧 열반을 볼 것이다. 마땅히 불·법·승 삼보는 세간에 상주하여 변함이 없고, 이른바 일체중생이 신심으로 귀의해야 할 것이다.”
이 말씀을 마치자마자 세존께서 사자탑상에 의지하여 앉으셔서 붉은 가사 끈을 풀어 놓으시고 금색 가슴을 드러내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계행 가짐을 항상 삼가라. 마침내 정각을 얻어 나와 같이 무너지지 아니하는 몸을 얻어 삼십이상과 팔십종호를 구족하게 하라. 진실로 불타가 출세함이 우담바라화와 같으니 가장 희유하여 만나기 어려운 것이다. 이제 중생과 더불어 인연이 다했으니 어찌 열반치 아니하겠는가? 너희들은 다시 자금색신을 보아 청정히 수도하여 미래세에 나와 같이 과보를 얻어 중생을 제도하라.”
이렇듯 세 번 크게 이르시고는 몸을 솟구치시어 공중에 오르시니 높기가 50길이었다. 다시 허공에서 땅에 내려 또 아래로부터 허공에 오르시기를 열네 번을 하셨다. 그리고는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 대중들을 위함이다. 혹 금빛 몸을 보지 못할까 함이다. 슬프다! 이후는 너희들이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하시고는 즉시 초선천에 오르시며 제이선천과 비비상천에 올라 왕복하시기를 27번을 하셨다. 또 대중을 불러 말씀하셨다.
“내 비비상천에 올라 눈으로 두루 살펴보니 일체중생은 자성이 본래 나와 다름이 없지만, 무명과 망령으로 인해 해탈하지 못하니 어찌 애달프지 아니한가? 근본 업력에 무명과 탐애를 끊는다면 지말번뇌는 저절로 없을 것이다. 어찌 생·로·병·사와 우·비·고·뇌가 있겠는가?”
이 말씀이 끝나자마자 열반 시각이 되었는데, 이때는 중국 주목왕 52년 임신 이월 보름이었다. 세존께서 오른쪽으로 옆으로 누우셔서 동쪽으로 등을 두고 서로 얼굴을 보며 머리는 북쪽으로 두고 발은 남쪽으로 두고 열반하셨다.
이때에 쌍림원에 사라수나무가 여덟 그루 있었는데, 그 나무 네 그루에 여덟 가지가 홀연히 변하여 백설같이 일시에 다 마르고 꺾어지며 천지가 진동하고 큰 바다가 솟아 끓으며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바람에 돌이 날리며 초목이 시드니 가장 처량하였다.
이때에 사천왕과 제천과 상제가 슬피 통곡하며 말하였다.
“삼계의 대교주이신 석가세존이시여! 하루아침에 꿈결같이 가시니 일체중생들이 다 자비한 아비를 잃었습니다. 괴롭고 괴롭습니다. 어디에 가서 전과 같이 종종 뵈오며 대법을 듣겠습니까?”
이같이 부르짖으며 통곡하니 산천의 초목과 날짐승, 들짐승들이 다 슬퍼하는 듯하였다.
아난과 가섭 및 십대제자 등이 세존의 유언을 받들어 전륜왕의 장례로 관과 곽을 갖춰 세존의 시신을 입관하였다. 구시라拘尸羅(Kuśinagara) 성 가운데 백성들이 의논하였다. ‘부처님의 관을 모셔 성내에 들어가자.’ 그 백성들이 힘을 다하여도 관이 들리지 않았다. 천하장사 여덟 명이 들어도 관은 들리지 아니하였다. 그 가운데서 제자 루타淚墮 존자가 말하였다.
“세존께서 평일에 마음을 두시는 것은 제자 중생으로 하여금 평등히 복을 얻게 하는 것이었다. 이제 천만 역사라도 관을 들지 못하리라.”
존자가 말을 마치자마자 관이 저절로 뚝 떨어져 허공에 올라갔는데, 그 높이가 50장을 넘어섰다. 관이 허공에 떠 구시라성 40리를 가서 서문으로 들어가서 남문으로 나오며 남문, 동문에 일곱 번을 돌아 허공 가운데 머물렀다.
이때 보살, 성문, 연각이며 제천과 상제 등이 각각 보배 일산과 화개와 백천 가지 장엄을 가지고 부처님의 관을 따로 호위하시니 하늘에서 음악소리가 울리고 꽃비가 흩어져 낭자하였다.
이때에 사천왕과 제천과 상제 등이 공중에서 슬피 통곡하며 말하였다.
“삼계의 대교주이신 석가세존이시여! 하루아침에 꿈결같이 가시니 일체중생이 다 친자식으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7일 만에 부처님 관이 허공으로 돌아 성중에 내려왔다. 대중이 세존의 자금색신을 붙들어 보상 위에 모시고 전단 향수로 관을 씻은 후에 순금 비단으로 여래 금빛 몸을 다시 싸 입관하였다. 제천과 많은 제자 등이 각각 전단 향수를 관 아래 두고 전단 향목으로 홰를 만들어 일시에 불을 질렀는데, 조금도 불이 붙지 않고 저절로 꺼져버렸다. 대중이 더욱 슬퍼하여 통곡하였는데 대중이 말하였다.
“여래께서 무슨 인연으로 뉘우칠 일이 있기에 보관 향에 불이 붙지 아니하는가?”
상제가 말하였다.
“다른 까닭이 아니라 가섭을 기다리시는 것이다. 가섭이 어디에 갔기에 여래의 열반을 보지 못하는가?”
이때 가섭이 세존 명을 받들어 먼 곳으로 설법을 나갔다가 이날 들어올 때였다. 세존께서 벌써 열반에 드시고 사라쌍수 아래에 부처님의 보곽이 놓여 있음을 보고 황급히 들어가 보곽을 붙들고 정신을 잃고 통곡하였다.
“세존이시여! 생·로·병·사를 면하여 계시거늘 또 불멸함이 없다고 하시더니 어찌 돌아가셨습니까?”
말을 마치자마자 보관이 저절로 열리고 한편으로는 부처님의 두 발이 곽 밖으로 나와 보이시며 말씀하셨다.
“내 어찌 죽으리오. 삼세제불이 중생으로 더불어 인연이 다하면 열반상을 보이는 것이니라.”
가섭이 이것을 보고 더욱 애통해 마지않고 세존의 발아래에 무수히 배례하였다. 그러자 즉시 발을 거둬 곽 가운데 봉안하고 여러 역사들이 향과 꽃을 바르게 하여 불을 질렀으나 조금도 불이 붙지 아니하였다.
가섭이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대성인의 관곽은 삼계의 불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어찌 역사의 힘으로 불을 붙이려 하는가?”
말을 마치자마자 여래의 곽이 허공으로 올라가며 삼매의 불이 저절로 일어나 관곽에 사무쳤다. 7일 만에야 삼매의 불이 다하였고 사리가 공중에서 비 오듯 하여 여덟 섬 너 말이었다.
이때 사천왕이 여러 신하들로 더불어 급히 사리를 취하려 할 때, 미처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물로써 불을 끄고자 하였는데, 불꽃이 점점 치성하여 줄어들지 아니하였다. 누타가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너희들이 우리 여래의 수많은 사리를 거둬 가지고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고자 하는데, 세간 중생은 사리를 얻어 공양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자 사천왕이 무수히 퇴거하였다.
이때 상제께서 칠보병을 들고 들어와 말씀하셨다.
“세존께서 허락하신 오른쪽 사리를 얻고자 왔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불이 꺼지고 부처님의 치아와 사리가 다 담겼다.
명주 같은 사리가 곽 속에 가득하고 광명과 상서로운 기운이 세계에 비치니 햇빛과 달빛이 다 숨어 버렸다.
이때에 상제가 칠보병에 세존께서 허락하신 사리를 수효대로 담으니 팔대 국왕이 또 각각 사리를 다투어 떠들썩하였다. 그러자 상제가 보고 근심하며 변하여 한 범지가 되어 말하였다.
“제왕은 만민의 부모니 다툴 일이 아닙니다. 여래의 사리를 제왕의 국토에 나누어 탑묘를 세워 공양하여 만민의 복덕을 널리 퍼지도록 하소서.”
그러자 제왕들이 그 말을 옳게 여겨 여러 나라와 사해용왕으로 각각 평등하게 나누니 그 즐거움이 비할 데 없었다.
이때는 중국 주목왕 52년 임신 2월 보름이다. 대지가 진동하고 서쪽에는 흰 무지개가 열두 길로 사방에 뻗쳐 날이 바뀌도록 사라지지 아니하였는데, 주목왕이 태사에게 물었다.
“이 무슨 상서인가?”
태사는 답하였다.
“서방에 대성인이 세상을 떠나시는 상서이옵니다.”
그러자 왕이 기록하여 두어라 하였다.
- 1) 주소왕周昭王(?~BCE977)은 성은 희姬씨이고, 이름은 하瑕이며, 주강왕周康王 희쇠姬釗의 아들로 서주西周 왕조의 4대 왕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때가 중국 주소왕 24년이라고 하였다. 佛祖歷代通載 권9(大正藏 49, p.547a14), “吾佛以周昭王二十四年誕生.”; 釋氏稽古略 권1(大正藏 49, p.752c18), “當此周昭王九年甲寅之四月八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