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吾道의 진리眞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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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吾道의 진리眞理
[표지]
- 오도吾道의 진리眞理
용성당龍城堂 백상규白相奎 저술著述
한제인*
✽
옮김
자문자답自問自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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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_0002_b_01L첫째의 본성품을 묻는 것(問自家本性).
묻기를, 나의 본성本性을 내가 깨달아 알 수 없다. 본래 깨달은 것이라고 하나 본각本覺이라고 하는 이름과 모양(名相)을 얻을 수 없고, 비로소 깨달은 것이라고 하나 시각始覺의 이름과 모양을 얻을 수 없으며, 구경究竟에 깨달음이라고 하나 구경각究竟覺의 이름과 모양을 얻을 수 없고, 대각大覺이라고 하나 대각의 이름과 모양을 얻을 수 없으니 말이 끊어지고(言語道斷) 마음이 멸하였으니(心行處滅) 무엇을 말하여 깨달음(覺)이라고 하겠는가?
답하기를, 각覺을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없으나 분명히 있으니 나의 비유를 자세히 들어라. 비유하자면 너의 눈을 네가 스스로 보지 못하니 만일 본다고 하면 네가 아니고 너 아닌 딴 사람이 있어 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너의 눈을 비록 보지 못할지라도 반드시 너의 눈이 있는 줄 알면 그것은 너의 눈이 아니고 누구의 눈이겠는가?
또 비유하자면 너의 마음을 네가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한다. 지금 처음으로 한 생각이 일어날 때 그 마음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를 알고자 하여 백겁 천생에 마음이 일어난 곳을 찾아보아도 그 형체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비록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너의 마음이지 다른 물건이 아니니 이것을 알면 너의 본성을 깨달을 것이다.
또 비유하자면 물로 물을 씻지 못하니 물로 물을 씻지 못하는 것이 곧 물이다. 이러한 이치를 알면 너의 본성을 깨달을 것이다.
또 비유하자면 단청丹靑을 칠한 속에 아교풀(阿膠糊)이 반드시 있지만 보지 못한다. 이러한 이치를 알게 되면 너의 본성을 깨달을 것이다.
또 비유하자면 물에는 젖는 습성이 반드시 있지만 자기가 자기를 알지 못하니 우리의 본성도 이와 같다.
대체로 물은 흘러가도 젖고, 물이 움직여 파도를 일으켜도 젖고, 안정하여 파도를 일으키지 않아도 젖고, 흙탕물이 되어도 전체가 젖고, 맑아서 대단히 깨끗하여도 젖고, 풍랑이 일어나서 모든 산하절벽山河絶壁을 쳐도 젖는 것이니 사람의 본성도 이와 같다. 너희들이 이 뜻을 알게 되면 너희 자성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므로 범부에게 있어서 덜하지도 않고 성인에게 있어서 더하지도 아니하니 이것은 예부터 바뀌지 않는 대의大意이다. 물의 근본 자체가 본래 젖는 것이므로 모든 것에 부딪치는 곳마다 젖는 것이다. 만일 물의 근본이 본래 젖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디든지 부딪치는 곳마다 젖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이 뜻을 알면 본성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의 대원각성大圓覺性도 또한 이와 같아서 본래 일체의 형상이 없으니 그것은 부처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요, 일체 갖가지 이름과 모양을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그 형체를 볼 수 없다. 비록 형체를 보지 못할지라도 전체가 각覺이다. 본래로 말이 끊어지고 마음이 없어져 보고 듣고 알 수 없는 이 물건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너희들이 억만 겁을 지내더라도 그 모습을 보려고 하거나 얻으려고 하거나 달리 깨달으려고 하면 깨닫고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분명히 그것이 자기인 줄 알면 그것이 깨달은 것이다. 달리 깨달은 것이 없다. 본래 깨달은 것이 일체 모든 곳에 나타나는 것이 전체가 깨달음이다. 자세히 들어라. 이 깨달음이 눈에 있으면 보고, 깨달음이 귀에 있으면 듣고, 코에 있으면 냄새를 맡고, 입에 있으면 맛을 보고, 몸에 있으면 움직여서 앉고 걸어 다니며, 마음에 있으면 모든 것을 통괄하여 다 알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곧 깨달음이다.
근본자성이 전체가 깨달음이 아니면 누가 보고 듣고 깨달으며 이것을 깨친 사람을 이름하여 성리性理를 깨쳤다고 말하며, 이것을 깨치지 못하고 다만 문자文字만으로 보든지 선지식의 말을 들었든지, 혹은 자성自性이 공空한 것이라고 하든지 청정한 것이라고 하든지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든지, 이러한 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든지 이러하지 않은 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든지 이런 것과 이렇지 않는 것 모두 얻을 수 없다고 하든지, 또한 이래도 되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고 이렇든지 이렇지 않는 것이 모두 그것이라고 하지만, 그 실상은 본성本性을 깨치지 못하고 다만 앵무새와 같이 말하는 것이니 단지 말로만 있고 전혀 실상이 없는 것이다.
또 너희들이 자세히 들어라. 공적空寂하다고 말하지만 어떤 것이 공적한 것이며 어떤 것이 청정한 것이며 어떤 것이 말할 수 없는 것인가? 일체를 얻을 수 없다고 하지만 어떤 물건이 얻을 수 없다는 것이며, 일체 물건이 낱낱이 그것이라고 하지만 어떤 물건이 낱낱이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깨달았다고 한다면 분명한 것이다.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지만 진실로 깨닫지도 못하고 앵무새와 같이 말로만 깨달았다고 한다면 크게 깨달은 것이 아니다.
삼계는 오직 마음이라고 하는데 청정본연淸淨本然하여 일체 모든 허물이 없지만 만법이 오직 알음알이이지만 오직 식이 변하므로 인하여 천당과 지옥과 육도사생六途四生을 받는다.
묻기를, 본연청정한데 어찌해서 천당과 지옥과 선과 악과 깨끗하고 더러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까?
답하기를, 옛 큰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법에 머물지 아니하면 도를 통한 것이요 만일 마음이 법에 머무르면 이름이 스스로 얽혀 매인 것이라고 하니, 마음이 머물고 집착하므로 여러 가지 습기를 내어 여러 가지 업을 지으므로 죄가 있게 된다. 모든 사람은 몸의 병을 치료하고자 하지만 나는 모든 중생의 마음의 병을 다스리고자 하므로 자세히 나의 말을 들어라.
어떤 것이 마음의 병이 되는가?
식識으로 인연하여 병이 생기게 되는 것이니 마음이 안정하면 모든 병이 스스로 없어질 것이다. 본래 병이 없지만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이 서로 부딪히게 되면 육식六識이 그 가운데서 생기게 되어 병이 나는 것이다. 이 근根과 경계境界가 서로 대치하여 식이 그 가운데서 발생하여 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마음은 뿌리가 되고 외부의 대상은 경계가 된다. 일체 모든 경계를 만나게 되면 색色이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는데, 색이라고 하는 것은 여색이나 남색이나 천지 만물의 여러 가지 색을 상대하여도 마음이 머물지 않고 일체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일체 병이 없을 것이다.
또한 일체 모든 소리와 일체 모든 맛(味)과 접촉과 일체 모든 법에 마음이 머물러 집착하지 않으며 또 마음 그 자체가 산란하지 아니하면 자신이 어지럽지 않아서 동요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어지럽지 아니하면 이름을 정定이라고 하고 마음이 어리석지 아니한 것을 혜慧라고 한다. 정혜定慧라고 하는 말을 비유하자면 등잔은 광명의 체體가 되고 광명은 등잔의 용用이 된다. 등을 떠나서 따로 광명이 없고 광명을 떠나서 등잔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정혜라고 한다.
이와 같이 하면 마음의 병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니 모든 습기가 자연히 없어져서 모든 마음의 병이 없어질 것이다. 마음 닦는 도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습기習氣가 없어져서 마음이 반연의 상을 여의게 되면 습기가 스스로 공空하게 된다. 번뇌 망상이 스스로 처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이것이 곧 망상이다.
또 만법이 오직 알음알이이니 그 식識을 따라서 유물唯物이나 유식唯識 혹은 세간의 만법을 나타내게 되니 유물은 곧 유식이며 유식을 떠나고는 유물이 없다.
마음 자체는 본래 병이 없으므로 모든 허물이 마음 쓰는 데 대해서 세간의 만법과 일체 선악이 있게 되는 것이다.
지각知覺을 잘 쓰는 것을 천당이라고 하고, 지각을 잘못 쓰면 지옥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중생이라 하는가? 지각을 일러 중생이라고 한다.
대체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체體로부터 용用을 일으켜서 나는 것이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용을 거두어 체로 돌아가는 것이니 이것은 곧 반본환원返本還源이라고 한다. 천당과 지옥을 따로 말할 것이 없는 것이다. 또한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데는 참선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니 그 가운데 한 가지만 말하겠다. 혹 번뇌의 습기가 많은 사람은 비록 깨쳤다고 하더라도 시삼마是甚麽 화두話頭를 하는 것이 좋으니 시삼마로 방편을 삼아서 ‘이것이 무엇인고?’ 하며 일체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단지 의심만 홀로 드러내고 조금도 다른 생각이 나지 않게 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면 미세한 번뇌가 완전히 끊어지고, 대원각지大圓覺智가 훤하게 홀로 드러나 마치 달이 높은 하늘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 그림자가 모든 물을 비추듯이 하여 이와 같이 하면 마음의 병을 스스로 다스리게 된다.
또 마음을 깨닫지 못한 중생이라고 할지라도 시삼마 화두를 하는 것이 좋으니 보고 듣고 깨닫는 이것이 무슨 물건인 줄 알지 못하므로 단지 ‘이것이 무엇인고?’ 의심하여 오래오래 공부하면 당연히 맷돌을 맞추듯이 축착합착築着磕着이 되므로 곧바로 깨달을 것이다. 이것이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것이다. 내가 이미 참선하는 법을 『선문촬요禪門撮要』와 『각해일륜覺海日輪』과 『수심론修心論』에 자세히 말하였으니 그곳에서 자세히 보시오.
또 한편으로 염불하는 것이 좋으니 혹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되 어느 성인聖人이든지 한 분만을 부르고 여러 성인의 명호를 불러 마음을 산란케 하지 말라. 단지 한 성인의 명호를 부르되 어묵동정語默動靜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있어서도 지극하게 불러야 한다. 처음에는 소리를 내어서 부르되 글자를 자기가 들어 역역하고 분명하게 하여 산란하지 않도록 하라.
또한 공부가 익어지거든 입으로 부르지 말고 다만 항상 생각만으로 역역하고 분명하게 하여 산란하지 않도록 하라.
그 다음에는 입조차도 움직이지 말고 아미타불 전체를 관하여 마음이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자기가 자성을 깨달을 것이다.
비록 깨닫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당체가 바로 극락이며 곧 제불의 정토에 태어날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하면 하나는 자력自力이니 나의 정성스럽게 염불하는 마음의 힘이고 둘째는 타력他力이니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바로 서방극락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또 하나는 주력呪力이니 관세음보살 육자대명왕진언이 ‘옴마니반메훔’이다. 이 주력을 지극한 마음으로 행주좌와에 끊임없이 외워라. 처음에는 소리를 내어 외우되 글자글자를 역력하고 분명하게 하여 자기 귀에 낱낱이 들리도록 10만 편 정도를 외워라.
그 다음에는 입도 움직이지 말고 다만 마음으로만 수십만 편 외워라.
또 그 다음에는 마음도 움직이지 말고 오직 ‘옴마니반메훔’만을 관하여 외워라.
다만 ‘옴’자나 ‘훔’자나 한 글자만 관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옴’자나 ‘훔’자를 관하되 항상 마음의 근본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그 자체를 관하면 하루아침에 활연관통하여 도를 성취할 것이다.
이 주문은 설사 계행이 좀 부족하더라도 다른 주문과 같이 허물이 되지 아니한다.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관세음보살 모다라니 ‘나모라 다나 다라야 나막아리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다냐타 아바다 아바다 바리바제 인혜혜 다냐타 살바다라니 만다라야 혜혜바라 마수다 모다야 옴 살바작수가야 다리니 인지리야 다냐타 바로기제 새바라야 살바도따오하야미 사바하’ 이 주문은 청정한 계행을 지키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쉼 없이 외우면 어떠한 일이든지 성취하지 아니할 것이 없다.
제일 대풍창이나 간질병과 같이 무서운 병이라도 지극정성으로 이 주문을 외우면 낫지 않는 병이 없다. 근래에 15, 6세 되는 남자가 간질병을 앓았는데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고요한 곳에 가서 20만 편을 외웠더니 그 간질병이 완전히 나아서 완쾌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예는 하나뿐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간혹 있으니 만일 병에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으면 계행을 잘 지키면서 이 주문을 지극정성으로 외워라.
또한 일단 외도들이 근래에 흔히 말하기를 ‘술 먹고 고기 먹는 것이 반야를 성취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飮酒食肉無放般若)’고 하니 이러한 사람들은 외도의 무리들이다. 만일 모든 도 닦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 말에 속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영산회상에 행실 없는 부처가 없고 소림굴 속에 거짓말하는 조사가 없다’고 하시니 이것은 예부터 바뀌지 못할 바른 진리이다. 이 말씀을 분명히 믿고 다른 외도들의 견해에 속지 말라.
또 혹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사람이 죽으면 마음까지 일체가 한 줌의 재와 같아서 완전히 생전, 사후와 현재가 다 없어져 버리며 나무나 돌과 같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다’고 하지만 이러한 무리들은 단멸외도斷滅外道들이다. 이 말을 듣고 외도들의 견해를 따르지 말라.
또 혹 어떤 사람들은 모두 있는 것만 주장하나 이것들은 상견외도이므로 그러한 말에 속지 말라.
혹 어떤 사람들은 인과因果가 없다고 하니 현재 우리가 보아도 사람의 선과 악의 인과가 분명한데 어찌하여 인과가 없을 것인가? 이것이 다 올바른 말이 아니다. 삼계유심三界惟心 만법유식萬法惟識이라고 하셨으니 어찌 분명하지 않겠는가?
소위 인과라고 하는 것은 천지의 떳떳한 정이요, 만고에 바꾸지 못할 큰 법이라.(因果는 天地之常情萬古不易之大典) 어찌하여 그러한가 하면 일체 만물이 다 인이 있으면 과가 있는 것이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착한善 것에는 착한 과果가 있고 악한 것에는 악한 과가 있는 것이다. 내지 크고 적고 근본根本과 지말枝末이 인因이 있으면 과果가 있는 것이니 인과는 항상한 것이다. 별도로 다른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또 생각해 보아라. 어떤 사람이 맛있는 진수성찬을 생각하면 입에서 저절로 입맛을 다시게 되고 식초食醋나 매실梅實을 생각하면 입에서 침이 나오고 마음의 번뇌를 일으켜 온몸에 열기가 나게 되니 이것이 다 마음의 생각을 일으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물건이 아니다. 또 생사의 근본은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 곧 삶과 죽음이며 음욕이 생사의 근본이다. 일생토록 그 훈습력熏習力이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에 감추어져 있다가 사람이나 축생의 자궁子宮에 들어가게 된다. 사람에 들어가면 남녀가 되고 축생에 들어가면 축생이 된다. 천지에 분명한 이치이다. 그러므로 선업을 짓는 사람은 선도에 태어나고 악업을 지은 사람은 악도에 태어나니 이것이 모두 인과가 아니겠는가. 선악인과가 분명한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인과가 없다고 주장하니 참으로 우습구나.
너희들은 나의 말을 자세히 듣고 마음을 닦아 큰 도를 성취하여라. 내가 일체 사람의 마음의 병을 다스리게 하기 위하여 10만 권의 경을 발간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많이 유포하였으니 이 경을 자세히 보고 수행하면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면免할 것이다.
나는 지금 팔십 당년當年이라 다시는 법문을 할 수도 없고 경을 다시 번역할 수도 없으니 이왕이면 번역하여 놓은 경을 아무쪼록 보아서 생사를 면하도록 하시오.
대도는 분명하여 참구할 것을 요구하지 아니하니 비유하자면 물의 전체가 젖는 것이므로 일체 처에 젖고, 마음의 전체가 깨달음인 고로 일체 처에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눈에 있으면 보고, 귀에 있으면 듣고, 입에 있으면 말하고, 발에 있으면 걸어 다니고, 마음에 있으면 수업식數業識을 깨치게 된다. 그 근본 체는 가히 볼 수 없으며 알 수 없어서 일체체상一切體相이 다 끊어지게 되니 이것이 없다고 해서 형체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하여도 보고 듣고 깨닫고 알지 못한다. 그러면 오직 습기習氣만 다하면 바로 그것이다. 별도로 도를 닦을 것이 없다. 그 습기를 어떻게 하면 없앨 것인가?
마음 전체가 산란하지 않고 마음 전체가 어리석지 않으면 자연히 습기가 없어질 것이다.
일체 처에 무심하며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에 반연하지 않으면 습기가 저절로 없어지게 될 것이다. 또 마음은 마음대로 내버려 두고 경계는 경계대로 내버려 두고 어느 때에 마음이 경계를 취하지 아니하며 경계가 마음에 다다르지 아니하면 자연히 망령된 생각이 나지 않고 도에도 걸리지 아니할 것이다. 이것이 습기를 없애는 법이다. 하근기 중생들은 비록 깨쳤을지라도 방편 삼아서 생각생각이 그 생각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하고 돌이켜 항상 관찰하면 습기가 스스로 없어질 것이다. 비록 깨끗한 옥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 옥을 갈지 않으면 사용하지 못하게 되니 이와 같이 사람이 본성을 깨쳤더라도 습기를 없애지 않으면 쓸모없이 된다.
대각응세大覺應世 2964년 정축丁丑 중춘仲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