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문헌

임종결臨終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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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결臨終訣
[표지]
임종결臨終訣
용성당龍城堂 백상규白相奎 저술著述
정혜원* 옮김
목차
임종결臨終訣

정토세계 노정기

첫째, 극락세계 주인공 아미타를 찾을 것
둘째는 법신국토와 화신국토가 둘이 아닌 것

육자대명왕경六字大明王經

첫째는 지송持誦하는 서차
둘째는 지송하는 법
셋째는 주문의 뜻을 번역함
넷째는 육도를 파괴하는 것
다섯째는 공덕功德
여섯째는 증험證驗
임종결臨終訣
0001_0002_b_01L제자가 묻기를,
“우리의 가장 큰 일은 죽을 때 임종하는 것이며 또한 알 수 없는 것은 본성本性이니, 그 본성의 본체本體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설명해 주십시오.”
용성이 답하기를,
“그 자체自體는 참으로 말하기가 어렵고도 어렵다. 명상名相과 언어言語가 없으니 말로 표현할 수가 없고, 명상으로도 그려 낼 수가 없다. 어찌하여 그런가? 대각이 아니니 대각이라고도 말 할 수 없고, 묘각妙覺이 아니니 묘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허공이 아니니 허공이라고도 말할 수가 없고, 삼라만상森羅萬象과 세계가 아니니 무엇이라고도 말을 할 수가 없다. 무정無情이 아니니 무정이라고도 말할 수가 없고, 언어도言語道가 끊어지고 생각하는 곳이 끊어졌으니 도대체 무엇이라고도 말할 수가 없다.
억지로 말을 하자면, 각覺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더 넓게 말하자면 대각大覺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각의 체성體性이 극히 영롱玲瓏하여 자체가 진법계眞法界와 허공계虛空界에 두루하여 텅 비어 공하였으나 그 공한 자체도 없느니라. 이 대각의 자체가 하도 미묘微妙하고 미묘해서 그 미묘한 자체를 어떻게 그려 내며 말로써 형용하리요. 쉬고 쉬어라! 나는 다시 말하지 아니하리라.”
제자가 묻기를,
“원컨대 다시 듣기를 원하고 원합니다. 어찌해서 그 말할 수 없는 근본 자체로부터 만물이 비로소 생겨났으며 인간과 축생, 동물이 그 근본 자체로부터 비로소 발생하여 생겨났습니까? 그 근본을 알지 못하면 생사의 원인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용성이 답하기를,
“참으로 알 수 없고 대답을 할 수가 없으나 그대가 묻는데 내가 말을 안 할 수가 없어 한마디로 대답하노라. 대각의 자체가 매우 영롱하여 밝고 밝은 까닭에, 산뜻하며(輕淸), 스스로 동하여 최초에 너무 밝기 때문에, 생겨나는 근본이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다. 누가 억지로 지어서 나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느니라.
의상義湘 조사가 말씀하시기를, ‘진성眞性이 심히 깊고 깊으며 미묘하여 제 자성을 지키지 않고 인연을 따라 이룬다’ 하시니 알 수가 있겠다.
자체의 성품(自體性)이 너무 밝아서 요동하여 경계境界가 발생함으로 내외內外가 없는 체성이 내외를 이루어 안은 어두워지고 밖은 경계가 되어 비추는 성품이 어두워지느니라. 어두워져 극히 미망迷妄하여 훤히 비워 버린 것은 허공이 되나니 그 허공 자체를 의지하여 경계가 되느니라.
또 상相의 자체가 잠복潛伏하여 국토가 성립되고, 망령되게 많은 성품이 흘러 움직여 지각知覺을 발생함으로 해서 ‘중생’이 되느니라.
또 저렇듯 광대한 무변 허공이 상하의 경계(邊際)가 없는 듯하나 오로지 지각 없이 공하기만 하여 무정과 같아서, 오로지 크다고는 하나 동시에 대각성의 이치 가운데서 물거품같이 일어나는 것이다. 광대한 근본 대각에다 비유하면 허공이 조그마한 물거품 일어나는 것과 같으니라. 오직 ‘허공’과 ‘세계’는 진실함이 없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인데 무슨 진실함이 있으리오.
허공, 물, 거품이 꺼져서 멸하면 ‘욕계’와‘색계’와 ‘무색계’와 세계의 ‘유정有情’, ‘무정無情’이 동시에 없느니라. 오직 대각본연성은 생사가 없나니 근본 지혜로 대각의 진리를 요달하였으므로 ‘견성見性’이라고 말하고, 또 대각의 자체에서 이치를 요달하여 일체 만법을 무소불통하고 무소부지하나니, 근본 지혜로 이치를 요달하고, ‘후득 지혜後得智慧’로 일체 사법을 요달함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하느니라.
대각의 본체는 원래대로 깨치고 증證한 것이 아니니, 이 깨치고 증한 것이 아닌 것을 안다면, 원래부터 죽고 사는 것이 아니니라. 세상 사람이 오로지 ‘분별’과 ‘식심識心’으로 생사를 면하려고 하나니, 본래 대각본성에 부합하지 않은 것이므로 결단코 생사를 면치 못하리라. 오직 대각의 본체를 따라서 크게 쓰기 때문에 용用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 또 대용大用을 거두어 대각의 본체로 돌아가는 것을 ‘성인聖人’이라고 말한다. 우리 ‘정사正士’는 반본返本 환원還元하는 것이 곧 생사를 면하는 것이니라. 우리(吾人)는 생전生前 사후死後가 본래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 사심邪心을 조금도 두지 않는 것이 당당한 대도이니라.”
제자가 묻기를,
“곧 명을 마쳐서 죽는 동시에 어떻게 해야 생사를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용성이 답하기를,
“그대가 묻는 것은 모든 중생을 위해서 묻는 것이니 자세히 들어라.
업상業相 - 생각이 일어나는 미세한 상相이니 자기의 참된 성품을 알지 못하므로 최초에 미세한 생각이 홀연히 일어나므로 이름을 ‘업상’이라 한다.
전상轉相 - 처음에 일어나는 생각이 극히 미세하여 생각을 일으켜서 경계境界를 봄으로 이름을 ‘전상’이라고 한다.
현상現相 - 생각이 일어나 능히 보고 뿌리와 몸과 경계를 망령되게 일으킴을 나타내므로 ‘현상’이라고 한다.

이 위의 세 가지 상은 다 미세微細한 상이니 경계를 의지하여 이 아래 여섯 가지 추麤한 상이 일어나게 되느니라.
집법執法
지상智相 - 법法과 집執이 같이 발생하는 것이오.
상속상相續相 - 집과 법을 분별하는 것이오.
경계가 자심으로부터 일어남을 알지 못하고 실다움이 있음을 집착하는 ‘상’이니라.
집아執我
집취상執取相 - 아我와 집執이 같이 발생하는 상이오.
계명자상計名字相 - 아와 집을 분별하는 상이며, 즉 명자를 헤아리는 상이니라.
‘집’과 ‘법’이 정定한 것이므로 ‘자自’와 ‘타他’가 다름을 보고 자自를 헤아려서 ‘아我’를 삼는 ‘상’이라 한다.
기업상起業相 - 아我와 타他가 다름을 보고 분별을 내어 업을 일으키므로 기업상이라 한다.
조업상造業相 - 탐내고 화를 내고 어리석은 업을 일으켜 업을 지으므로 조업상이라 한다.
수업상受業相 - 이미 지은 업은 면키가 어렵기 때문에 업을 따라 선악의 업보로 받기 때문에 수업상이라 한다.

이 위의 팔상을 자세히 알면 생사의 원인을 자세히 알 것이니라. 이 위에서 대강 말하였거니와 업을 지어 죄받는 것을 역력히 설하리라.
‘육도六途’천상, 인간, 아귀, 지옥, 축생, 아수라 중생의 마음은 둘이 아니고 똑같이 하나이니 어찌 하나가 되는 것을 알 수가 있는가?
어떤 사람이 콩 한 개를 가지고 한 사람에게 묻기를, ‘이것이 무엇이오?’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콩이오’ 백 사람에게 물어도 콩이라 하고, 백천 사람에게 물어도 모두 다 콩이라 하니, 사람마다 콩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영지靈智 자리도 하나가 아니고 무엇이냐? 그러므로 나의 본마음도 백천만 인이 똑같이 다 하나임을 알 것이다. 그러나 쓰는 곳이 다르니 어찌하여 그러한가? 어떤 사람은 금 장사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무장사도 하고, 어떤 사람은 문학도 해서 그 쓰는 곳이 낱낱이 다른 것이 아니겠는가? 그 다른 가운데에서도 어떤 사람은 바른 업을 짓고 어떤 사람은 부정한 업을 짓나니, 이와 같이 그 업력에 차별이 각각 다르니라. 부정한 업으로 죄를 짓는 자는 명이 떨어질 때에 모든 지은 업이 먼저 나타나서 ‘악도’에 떨어지니 대체 현상이 어떠한가?
업력이 무겁고 가벼움을 따라서 혹자는 모든 업식으로 인하여 바람이 일어나 혹시 공포심으로 무한히 무서운 생각을 일으켜서 혹자는 ‘지옥’에 가는 자가 있으니, 이것은 자기의 업력으로 마음이 둔탁함을 따라가는 것이지 타인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또 자기의 업력으로 넓은 물이 사면으로 달려오므로 죽는 자의 가슴이 두근두근하여 무한한 공포를 일으켜 물속에 들어가 ‘지옥’에 가는 자도 있으며, 혹 어떤 자는 호랑이·사자 등이 심히 무서운 형상으로 사면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마음에 공포심을 내거나 혹 어떤 사람은 무서운 독사들이 험악한 입을 벌리고 쫓는 것을 보고 공포심이 나서 사면으로 달아나는 자도 있으며, 혹 어떤 자는 사면으로 모진 불이 들어오므로 마음의 갈 바를 알지 못하여 불로 뛰어 들어가는 자도 있으니, 이와 같은 일이 수도 없이 많고 끝이 없다.
다 ‘지옥’에 가는 것인데 다 자기의 업력으로 식識이 무거워서 이와 같이 종종 무서운 경계가 나타나 악업으로 가는 것이요, 다른 사람이 그렇게 시키는 것은 없느니라. 또 ‘착한 업’을 짓는 자는 업이 가벼워지고 식심識心이 청정한 까닭으로 가되, 죽은 사람의 업이 가볍고 더욱 가벼움으로 ‘색계 하늘’과 ‘욕계 하늘’과 ‘무색계 하늘’로 가느니라.”
제자가 묻기를,
“임종 시에 어떻게 해야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용성이 답하기를,
“생사를 면하고자 하려면 생전에 ‘염불’, ‘참선’, ‘간경看經’, ‘주력呪力’ 등을 일심으로 수행하되 지극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공부해서, 임종 시에 그 공부하던 습기로 임종할 때에 즉시 왕생하게 되는데, 생전에 공부도 하지 않고 임종 시에 생사를 해탈하고자 하는 것은 목마름을 당해서 우물을 파는 것과 같으니라. 대단히 생사를 면키 어려운 것이니라. 평생에 공부도 하지 않고 임종 시에 공부를 아무리 하려고 해도 업식業識이 망망하여 자연히 모든 생사에 떨어지느니라. 어떻게 해서 그런가? 평생에 ‘번뇌’, ‘습기’가 무겁고 도력이 없으므로 생사를 면치 못하느니라. 생사를 면하고자 하면, 평상시에 항상 공부를 익혀 두면 임종 시에 그 공부한 힘으로 매昧하지 않고 즉시 생사를 해탈하리라. 평생 공부하는 것은 죽을 때에 쓰자는 것이니, 만일 임종 시에 공부한 것을 잊어버리게 되면 ‘천당’, ‘지옥’에 업을 따라서 곧 가게 되느니라. 제일 꺼리는 것은 귀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임종 시에는 개나 소나 말이나 고운 여자 등이 생전에 좋아하던 모양으로 좋게 보여서 애심愛心과 음욕으로 인해서 자연히 자신의 업을 따라 생사윤회에 떨어져 고를 받게 되느니라.
이러하므로 아무리 좋은 것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을 쫓아가지 말 것이다. 마음을 견고히 하고 공부하는 힘이 일정하여 일념도 요동하지 않는 사람은 생사를 해탈解脫하리라. 만일 임종 시에 마음이 동하여 혹 ‘천당’이나 ‘인간’이나 고운 여자나 어디든지 따라가는 것은 자기 정신을 잃고 마음이 전도하는 것이니, 참으로 ‘극락’도 아니요 ‘천당’도 아니며, 그 마음이 업식과 전도로 되는 것이니, 다만 일심으로 일체 경계를 따라가지 말고 보고 듣고 아는 놈과 마음 근본을 반조反照하되 이것이 어디서 나오는가? 그 근본을 돌이켜 다만 어디서 나오는가? 이와 같이 하면 생사를 해탈하리라. 다시 권하는데 이것은 생사 대사인지라 한 생각이라도 일체 경계를 따르지 말고, 대체 한 생각이 일어나는 마음이 어디에서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단지 이와 같이 하면 마음이 경계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자연히 ‘전도상’이 없어지고 ‘전도상’이 공함으로 해서 ‘업식’이 공하고, ‘업식’이 공함으로 해서 마음이 공하고, 마음이 공하므로 세계 전체가 공하고, 세계일체상이 공함으로 해서 모든 생사에 영원히 업력을 받지 아니하나니, 즉 생사 대사를 해탈하느니라.”
제자가 묻기를,
“교敎 밖에 따로 전하신 법을 설하여 주십시오.”
용성이 답하기를,
“확철대오하여 생사를 면코자 공부하는 것이 아니냐? 임종 시에 생사를 면하고자 하면, 평상시에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여 단지 의정이 큰 불덩어리와 같이 하여 단지 의정뿐이며, 다른 생각이 없으면 인연을 따라 혹 생전에 깨치는 사람도 있고 설사 깨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임종 시에 매昧하지 않으면 생사를 해탈하리라. 내가 다시 생사 해탈하는 법을 말하겠으니 자세히 들어라.
임종 시에 정신이 왔다 갔다 할 때 정신을 굳게 하여 일체 경계를 따르지 말고, 석가모니께서 친히 말씀하신 근본 화두를 의정할 것이며, 단지 의정만 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크게 생사를 면하리라.
임종 시에 다만 화두를 의정하여 생각하되, 석가모니께서 제일처에서 말씀하신 화두는 ‘인人’ ‘천天’ 백만억 대중이 위요하신 가운데서 오직 가섭존자를 불러, 앉으신 자리에서 자리 반 자리를 나누어(分半座) 가섭을 앉게 하시니, 무슨 뜻으로 세존이 반 자리를 나누어 주셨는가? 이 화두를 단지 의정만 하면 생사를 해탈하리라.
제이처에서 말씀하신 화두 하는 법이 있으니, 임종 시에 단지 의정하되 세존께서 인천 백만억 대중 가운데서 꽃을 들어(拈花) 가섭에게 보여 주시니 무슨 뜻으로 꽃을 들어 보이셨는가? 무슨 뜻으로 꽃을 들어 보이셨는가? 단지 의정만 하면 생사를 해탈하리라.
제삼처에서 말씀하신 화두는, 세존께서 열반하실 때에 사라쌍수 간에서 가섭에게 곽 안에서 두 발을 내어 보이셨으니 무슨 뜻으로 두 발을 내어 보이셨는가?(槨示雙扶) 목마름에 우물을 파는 격으로 하지 말고 평상시에 결정코 의심하고, 임종 시에 화두를 의정하여 모든 분별을 따르지 않으면 생사를 면하리라. 만일 공부를 잊어버리고 모든 분별을 따라가면 생사를 면치 못하리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세상 사람이 이 화두에 지극히 의정하지 않고 대기大機니 대용大用이니 대용제시大用提示니 하면 깨닫지 못하려니와 영겁 생사를 면하지 못하리라.
임종 시에는 곧 불(火)이 떨어지는데 무슨 ‘천당’, ‘지옥’, ‘정토淨土’를 의논하리오. 고인이 말씀 하시되 ‘크게 의심하는 아래에 반드시 크게 깨친다’ 하시니 결단코 사람을 속이지 아니함이라. 또 사람이 목숨을 마쳐서 ‘지옥’, ‘천당’이 곧 나타나는 자도 있으니 이러한 때를 당하여 급한 불덩어리가 곧 떨어지는데 어떻게 이것을 면할까? 비유하건대 세상에 삿된 도를 하는 사람이 둔법遁法을 써서 혹 나무도 되고 돌도 되고 물도 되어 사람의 눈을 가리는 것같이 마음 닦는 사람의 경계도 이와 같아서 마음 자체가 텅 비어 공하면 모든 귀신 등이 능히 보지 못하느니라.
또 비우고 비워서 이렇게 해도 얻을 수 없고, 이러하지 않다고 해도 얻을 수 없는 향상向上에 이르러 또 한 번 위를 굴러 버리면 각성 본체가 확연히 나타나게 되느니라.
비유하건대, 오래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가도 홀연히 맑은 바람이 불면 모든 구름이 흩어져 버려서 구름은 한 점도 볼 수 없이 없어지고, 일월이 명랑明朗할 때에 다만 달 가운데서 계수나무 그림자가 은은히 덮여 있는 듯하니, 그 계수나무를 쳐 버리면 맑은 광명이 마땅히 더욱 맑을 것이리라. 우리 자성도 이와 같으니 무슨 생사 대사가 있으리오.”
제자가 또 묻기를,
“그 밖에 또 마음 닦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용성이 답하기를,
“진실하게 생사를 면하고자 하거든, 임종 시에 눈, 귀, 코, 혀, 몸, 뜻에 모든 분별이 경계를 침입하거든 그 분별하는 놈을 돌이켜 마음이 모든 인연을 쫓아가지 않고 다시 ‘마음’과 ‘경계’가 텅 비어 혹惑되지 않게 하면, 이것은 처음 범부凡夫들이 마음 닦는 경계이니 생전에 매우 잘 닦으면 임종 시에 업력을 받지 않고 생사를 해탈하느니라.
성인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임종 시에 마음바탕이 어지럽지 아니하여 고요하고, 또 마음바탕이 어리석지 아니하여, 이 두 가지가 하나가 됨이 등잔에다 불을 켜면 등잔은 광명의 체體가 되고 광명은 광명의 용用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와 같이 닦아 가면 임종 시에 생사를 해탈하여 대해탈을 얻으리라.
또 도통한 사람이 공부하는 법이 있으니, 육조 말씀과 같이 세존께서 ‘일체 법을 말하신 것이 일체 마음을 제도하고자 함이니 나는 일체 마음이 없거니와 어찌 일체 법이 있으리오.’ 이것은 닦음도 없고 증證한 것도 없으니, 이와 같이 하면 임종 시에 업력이 없어 대해탈을 얻으리라. 도인의 마음 닦는 법이 또 있으니, 마음은 마음 위에 두어 버리고 경계는 경계 위에 두어 버리고 모든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닦으면 대해탈을 얻으리라.
또 마음 닦는 법이 있으니 『육조단경』의 말씀과 같이 ‘빛’과 ‘받아들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과 ‘알음알이’ 이 다섯 가지가 본래 공空하며 ‘빛’과 ‘소리’와 ‘향香’과 ‘맛(味)’1)과 ‘닿음(觸)’과 ‘법法’이라는 이 여섯 가지 티끌(六塵)이 본래 공하며 여섯 티끌이 있는 것이 아니며, 듣는 것도 아니며 나는 것도 아니며 증證한 것도 아니요, 어지러운 것도 아니며, 선禪의 성품性品이 주住함이 없는지라 선적禪寂에 머묾을 여의었으며, 선성품이 남아 있는 것이 없는지라 선생禪生에 머묾도 여의어 마음이 허공과 같으므로 또한 허공과 같은 상을 짓지 않으므로, 이와 같이 수행하면 대해탈을 얻을 수가 있으니 이것은 ‘도道’를 깨친 자의 경계이니라.
공부하는 법이 하도 많아서 내가 조금 분별을 했노라.”
제자가 묻기를,
“또 그 밖에 미세한 말씀을 자세하게 일러 주십시오.”
용성이 답하기를,
“내가 이미 정당한 말을 다 했는데 무슨 말을 또 하라고 하느냐? 세상 사람이 모두 다 임종 시에 이대로만 가겠다고 하니 도대체 죽을 때에 어디로 갈 것인가? ‘천당天堂’에도 올라가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지옥地獄’에도 가는 법을 알지 못하는 우리 인생들이 어디로만 간다고 하니 참 애석하도다.
옛적에 보조普照 선사가 말씀하시기를, ‘법계法界를 돌이켜 일심으로 행하는 자는 오는 것이며 정定한 것이며, 한마음을 미迷하여 가는 자는 가는 것이며 동動하는 것이라’ 하시니 이 말씀이 분명한데도 삿되게 어디로 가겠다고만 하느냐? 다만 한마음만 견고하여 털끝도 갈 것이 없으면 ‘천당’, ‘극락’이 한 걸음도 동치 않고 곧 그 자리가 ‘천당’, ‘극락’이니라.”
제가가 묻기를,
“환주세계幻住世界는 자체自體가 실다움(實)이 아니라 자체가 허망虛妄하거니와 ‘적광토寂光土’는 진실한지라 우리 사람들이 수생受生해야 될 것이 아닌가요?”
용성이 답하기를,
“그대가 적광토를 어떻게 아는가? 참으로 적광토일지라도 고금연대古今年代가 없고 죽고 사는 것이 없어 곧 대원각大圓覺 본성本性에 ‘자수용삼매自受用三昧’를 수용受用하는 것이니라.”
제자가 묻기를,
“미세하게 말하자면 그 원인이 어떻게 됩니까?”
용성이 답하기를,
“문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다른 것이 아니라 지각知覺이 있기에 중생이라’ 하셨으니 모든 중생이 지각으로 모든 분별을 내어 일초도 쉬지 않는 것이니라.
모든 중생이 죽을 때에 육신은 벗었더라도 그 아는 지각의 분별은 분명하므로, 모든 귀신들이 이 식심識心을 희롱하여 서로서로 아는 것이, 이 현세現世의 색신色身 가진 중생들이 이 몸을 서로서로 보는 것과 같으니라. 죽은 귀신의 형체가 본래 없으나 각기 자기의 형체가 있음을 보는 것은 이 업식業識으로 자기가 존재存在함을 보는 것과 같아서 이 ‘업식’으로 천룡팔부天龍八部와 염라천자閻羅天子와 일체 귀신들이 생시에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을 지은 것을 임종 시에 낱낱이 검사하여 처리하느니라.”
제자가 묻기를,
“사람이 생시에 어떠한 사람이 불공대천지 원수가 있어 내가 결단코 원수 갚기를 쉬지 않다가 명을 마친 뒤에는 원수 갚기는 둘째이고 그의 형적形迹까지 볼 수가 없으니 그것이 무슨 이치입니까?”
용성이 답하기를,
“그대가 참으로 알지 못하는구나, 산 것은 죽은 자의 꿈이니, 그 꿈 가운데 있다가 살아서 꿈이 되어 버리면, 살았을 때 일을 다 잊어버리고 원수 갚을 생각이 없어지고, 죽은 것은 산 자의 꿈이니 그 꿈이 되어 버리면 다시 갚을 마음이 없느니라. 그러나 그 원수의 인연이 익어 서로 만날 때에 갚을 마음이 없다가 별안간 인연이 익은 그때에 악심이 홀연히 발생하여 살육殺戮의 폐癈가 일어나느니라. 혹 나는 인간에 수생하고 저 사람은 지옥에 수생하면 그 인연이 다르고 멀어지므로 서로 원수를 갚지 못하나 백천만 년이라도 인연이 서로 합할 때에는 반드시 원수를 갚느니라. 혹 나는 남섬부주南贍部洲에 나고 저 사람은 북구로주北具盧州에 나면 인연이 합당치 못하므로 갚지 못하나 백천만 세라도 인연이 합할 때에는 그 원수를 반드시 갚느니라.”
제자가 물어 말하기를,
“꿈이 되었으면 뒤에는 다시 원수를 갚을 것이 없거늘 어찌하여 서로 인연이 오면 원수를 갚게 됩니까?”
용성이 답하기를,
“비록 꿈이 되었으나 그 생전에 원수를 맺었던 그 습기習氣를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도 하고, 또는 장식藏識이라고도 하는 식識 가운데에 갈무리되어 있다가 시절 인연이 도래到來하여 다시 서로 한 국토에 나면, 육신肉身으로는 서로 모르지만, 갈무리되었던 제8아뢰야식 가운데서 홀연히 원수심이 일어나 자신도 모르게 자연히 원수를 갚게 되느니라. 비유컨대 이것은 우리 사람들이 몇십 년 잊었던 기억이 하루아침에 홀연히 머리에 명철明哲히 떠도는 것과 같으니라. 이것도 제8아뢰야식 가운데 갈무리된 습기로 인하여 홀연히 발하는 까닭이니라.
석가모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연으로 지은 업은 백천 겁劫이라도 없어지지 않았다가 인연으로 만날 때에 과果와 보報를 다 받는다’ 하셨으니 어찌 다 조심하지 아니하리오. 도대체 인과因果를 믿지 않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아니니라.”
제자가 물어 말하기를,
“세상에 악업을 짓는 사람들도 혹 임종 시에는 잘 죽는 사람들도 많고, 혹 참선 염불하는 사람들도 아무 정신없이 혼몽천지昏懜天地로 죽는 사람이 많은데, 그 연고가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용성이 답하기를,
“너희들이 참으로 그 이치를 알지 못하는구나. 업을 짓는 것이 과거와 현재, 미래에 천차만별로 다르니, 혹시 과거 업을 가지고서 과거에 받는 자도 있고, 금생, 내생에 받는 자도 있으며, 혹 금생에 업을 지어 가지고 금생, 후생, 내생에 받는 자도 있으므로 그 차별이 각각 다르니라. 혹 견성見性을 한 자도 업을 받는 자가 있으니 이것은 전생(과거) 업력이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혹 금생에 받는 자가 있느니라.
옛적에 목주睦州 진존숙陳尊宿은 전생(과거)에 도를 깨쳤으나 금생(현재)에 와서 타인에게 악살惡殺을 받았으니 이런 일이 허다히 많으니라. 어떤 사람이 일평생에 소(牛)를 잡는 악업을 지었음도 불구하고 임종 시에 편안히 죽었으니, 이것은 전생에 지은 업이 없는 연고로 편안히 죽었으며 그렇다고 업을 안 받는 것은 아니니라. 즉시 지옥에 가게 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이 염불, 참선, 간경看經도 많이 하고 모든 착한 업을 지었지만, 임종 시에 병으로 인하여 모든 고통을 받는 자도 있어, 죽을 때에 천지 분간을 모르지만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니 의심할 것이 없다. 그것은 육체에 관계된 것이어서 비록 정신이 혼암昏暗하나 육신이 해탈한 뒤에는 본정신이 즉시 돌아와 그전에 참선, 염불, 간경하던 정신이 되돌아와서 즉시 도를 닦던 선업善業으로 좋은 세계로 가게 되느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그대들이 몽혼한 것을 보았느냐? 정신이 혼몽하여 천지 분간을 못하다가 약 기운이 다하면 정신이 다시 예전과 같이 완전히 돌아오는 것이다. 그와 같아서 세상 사람이 참선, 염불, 간경을 하다가 임종 시에 비록 정신이 혼암하여 아무것도 몰랐을지라도 육체를 여의는 동시에 본정신이 예전과 같이 돌아와서 생사를 여의게 되느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하면, 다만 육체에 병이 든 것이지 마음에 병이 들지 않은 까닭이니라.
만일 육신을 해탈할 때에 마음이 근본자성으로 돌이킬 줄을 알지 못하고, 모든 분별과 경계를 따라서 어디든지 가는 자는 모두 생사를 해탈하지 못하느니라. 세상 사람이 근본자성은 알지 못하고, 마음이 모든 경계만을 따라가는 자는 천당, 지옥 어디로도 갈 줄 모르고, 다만 선·악업을 따라 생사에 윤회하느니라. 세상 사람이 육체의 병은 다스릴 줄은 알고 있지만, 자기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사람은 적으니 아무쪼록 마음의 병을 잘 치료하여 생사 대사를 면하도록 하시오.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失) 백천 겁 생 동안 생사에 윤회함을 면치 못하니 아무쪼록 이상의 글을 참구하여 생사 대사를 면하도록 하십시오.”
제자가 묻기를,
“어떤 사람은 영혼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참으로 영혼이 없는 것입니까?”
용성이 답하기를,
“영혼이 없을 수가 있겠느냐? 자세히 들어 보아라. 사람마다 그 이치를 모르는 까닭으로 영혼이 없다고 한다. 생시에는 온갖 일을 다 알다가 그 명을 마쳐 죽으면 그전 일은 다 꿈이 되어 버려 몽중사를 관계할 것이 없으므로 현시에 서로 보복을 하지 않지만, 제8아뢰야식 가운데 종자가 갈무리되어 있으므로 내시에 인연이 합할 때에 서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서로 갚게 되느니라. 영혼이 아주 없어졌다면 어찌 서로 보복하게 되겠는가. 또 사람이 태중에 몸을 받은 뒤에는 태중에 둔탁함을 받아 둔탁해지므로 전생의 일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라. 이러하므로 너희들이 영혼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내가 임종 시에 향할 바를 자세히 설명할 것이니 잘 들어라. 대체로 사람이 선악善惡 두 업으로 육도에 오르고(昇) 내림(降)이 소연昭然하고 명백하여 털끝도 숨김(隱)이 없지만, 사람이 스스로 어두워서(昧) 모르게 되니 참으로 불쌍하다. 대체로 사람이 목숨을 마친 뒤에 따뜻한 기운이 떨어지는 곳을 증험證驗하면 알지 못함이 없나니, 어찌하여 그런가? 본래 목숨의 근원은 원래부터 오직 심식心識으로 됨이니, 용이 승강昇降하매 구름과 안개가 자연히 호종護從하는 것과 같이 심식이 향하는 곳에 바람과 불이 자연히 쫓다가 몸을 여의고 나면 흩어져 버리게 되느니라.
선업자는 따뜻한 기운이 배꼽 위로부터 이마에까지 이르고, 악업자는 따뜻한 기운이 배꼽 아래로부터 발아래로까지 이르느니라. 사지四肢에 따뜻한 기운이 점점 식어 굳어지나니, 최후에 따뜻한 기운이 식는 데를 보아 증험해야 할 것이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탁한 물을 모든 그릇에 요동치 않게 담아서 가만히 놓아두면 탁한 것은 아래로 내려가고 맑은 것은 위로 올라가나니, 그릇은 중생의 신근身根에 비유하고 물은 중생의 심식心識에 비유하며, 탁한 것은 중생의 악업에 비유하고 맑은 것은 선업에 비유하며, 아래로 내려가는 자는 중생이 악도에 수생하는 것에 비유하고 위로 올라가는 것은 중생이 선도에 수생함을 비유한 것이니라.
또 비유컨대, 실로 새(鳥) 다리를 매달면 그 실의 경중輕重과 장단長短을 따라서 멀고 가까이 나르는 것과 같으니, 새는 중생의 식識에 비유하고 실은 중생의 업業에 비유하고 실의 경중과 장단은 중생의 업業이 두텁고 엷은 것에 비유한 것이니, 업이 두터운 자는 따뜻한 기운이 말려서 내려가고, 업이 엷은 자는 따뜻한 기운이 말려서 올라가는 것이니라. 따뜻한 기운이 배꼽에서 발아래에 이르는 그 사이에서 식는 자는 악도에 떨어지고, 배꼽 위로부터 이마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서 따뜻한 기운이 식는 자는 선도에 수생하나니, 이것이 마치 실에 매달리지 않은 새가 자유로움을 얻어 걸림 없이 나는 것과 같으니라.
임종 시에 미리 편안한 곳에 잘 눕혀서 온몸을 요동시키지 말고 무엇이든지 불편하게 하지 마시오. 망인이 여러 가지 분별과 말을 못함을 외면으로 보면 죽은 듯이 보이지만, 따뜻한 기운이 식기 전에는 식識이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아주 죽은 것이 아니니, 시체의 몸을 요동시키거나 만일 아름답지 못한 말로 번잡하게 하면 영혼이 분주함을 싫어하므로 인하여 식으로 성을 내게 되면 이 결과로 좋은 곳에 가지 못합니다.
고인의 말씀에 ‘한번 성냄을 일으킴으로 인하여 뱀의 몸을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따뜻한 기운이 식기 전에는 세수도 하지 말며 영혼이 떠난 후라도 절대로 울음소리를 내지 말 것이며, 떠난 지 한 시간 후에는 혹 곡성을 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나 될 수 있으면 마음으로 슬픈 생각만 하고 곡성을 내지 않는 것이 망인을 위함이 되겠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여 대도를 통하여 자수용삼매自受用三昧를 수용하는 성인은 열반 시에 몸에 따뜻한 기운이 배꼽 위에서 식거나 아래에서 식거나 상관이 없으니, 이것은 삼계를 해탈한 성인이라야 하는 것이니라.”
정토세계 노정기
첫째, 극락세계 주인공 아미타를 찾을 것(第一極樂世界主人公阿彌陀)
0001_0019_b_01L객이 묻기를,
“극락국토極樂國土를 가고자 하는데 무슨 도를 닦아야 하나요?”
용성이 말하기를,
“아미타공안阿彌陀公案을 힘써 참구參究하여 극락세계에 가서 미타성존彌陀聖尊을 친견親見하고 위가 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객이 물어 말하기를,
“경에 말씀하였으되 이 사바세계로부터 서방西方으로 십만억 세계十萬億世界를 지나가서 극락국토가 있고, 그 국토에 대각성존이 계시되 지금 법法을 설說하신다 하시니 어찌 미타공안만 참구하여 멀고 먼 극락세계를 갈 것인가요?”
용성이 말하기를,
“사바세계娑婆世界니 극락세계니 광대廣大한 허공虛空에 한량限量없이 건립建立된 세계들이 다 마음으로 건립된 것이니, 그 마음만 청정淸淨하면 극락세계가 저절로 오는 것이니라.”
객이 물어 말하기를,
“아미타공안을 어떻게 참구합니까?”
용성이 말하기를,
“아미타성존을 한문漢文으로 번역飜譯하면 무량수각無量壽覺이라고 하고 우리말로 번역하면, 광명光明이 넓게 비치고 수명이 한량이 없다는 말이니 이것이 다 우리의 본원각성本源覺性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명상名相을 지을 수 없고 형용形容도 할 수 없는 것을 이름을 지어 본성本性이라 하며, 대원각성大圓覺性이라 하고 묘각妙覺이라고 하며, 성각性覺이라고 하고 묘명진심妙明眞心이라고 하며, 일진법계一眞法界라고 하고 대각이라 하며, 아미타불阿彌陀佛이라고 하고 주인공主人公이라고 하나니라.
아미타는 삼세등정각三世等正覺의 총명總名이니 우리의 주인공이다. 그러하므로 아미타는 우리의 본심본성本心本性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하면, 무슨 물건이 광명이 간단間斷없이 항상恒常 비추며 목숨이 한량없이 사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이 한 물건이 우리의 옷 입고 밥 먹고 동動하고 정靜하는 가운데에 있으나 알 수 없는 이 주인공 아미타가 무엇인가? 또 ‘어떤 것이 아미타불인고? 어떤 것이 아미타불인고? 또 어떤 것이 아미타불인고?’ 하며 깨끗하고 깨끗이 고요하게 의심하며, 고요하고 고요히 깨끗하게 의심하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의심하여 찾아볼지어다.
이와 같이 아미타공안을 참구하면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을 합하여 공부가 일치하게 나갈 것이니 어찌 묘하지 아니하리오. 미타공안을 잘 의심하여 가면 참선參禪과 염불念佛이 둘이 아니어서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왕생극락往生極樂이 자기의 마음 속(方寸)에 있느니라.”
객이 물어 말하기를,
“극락세계가 서방으로 십만억 국토를 지나가서 있다고 하셨는데, 어찌 의심만 깨치면 극락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까?”
용성이 말하기를,
“그대가 참으로 알지 못하는구나. 상근중생上根衆生을 위해서는 극락세계가 자기의 마음 가운데에 있다고 하고, 하근중생下根衆生을 위해서는 극락세계가 서방으로 십만억 국토 밖에 있다고 하는데, 말부합위일리末復合爲一理2)라는 말과 같이 모두 한 이치라 둘이 아니니라.
그대는 자세히 들어 볼지어다. 동방東方은 봄(春)을 표준標準한 것이니 태양(日) 기운氣運이 따뜻함을 따라 만물萬物이 발생하는 것이요, 서방西方은 가을(秋)을 표준한 것이니 태양의 기운이 서늘하고 찬 것을 따라서 만물이 숙살熟殺하여 무상無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만 무상한 뜻만 취하고 죽는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근본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 것이니 우리의 대원각성大圓覺性이 일체명상一切名相이 없지만 지극至極히 청정하여 항상恒常 고요하고 항상 밝아 모든 고락苦樂이 없는 것이다.
십만억 국토를 지나간다는 말은 일찰나一刹那 사이에 구백 생멸九百生滅이 있고, 한 생각 가운데에 구십 찰나가 있으니 모두 합하면 한 생각 동안에 팔만 일천 생멸八萬一千生滅이 있고, 이 한 생각으로부터 염념念念이 수없는 진노망상塵勞忘想이 있으니 이것을 대수로 쳐서 십만억 국토라고 하는 것이니, 십십무진十十無盡한 것을 표시한 것이니라. 생멸심행生滅心行이 텅 비고 본각심本覺心이 청정하면 무위탕탕자재無爲蕩蕩自在하니 이것이 무위불국無爲佛國이며 극락세계이니라.”
객이 또 물어 말하기를,
“극락세계에 구품연대九品蓮臺가 있다고 하는데 어찌 마음만 청정한 것으로 극락세계를 삼으리요?”
용성이 말하기를,
“그대는 말만 쫓아다니고 이치理致를 요달了達치 못하는구나. 우리의 마음 가운데 구품혹九品惑이 있으니, 혹이 점점 맑은 데로 구품연대가 나타나느니라. 우리의 마음이 청정한 것은 근본이 되고 보토극락報土極樂은 끝이 되는 것이니 그 근본만 청정하게 닦을지언정 그 끝을 근심하지 말지어다. 비유컨대 흐린 물이 점점 맑아지므로 영상이 소소昭昭히 나타나는 것과 같아서, 극락세계 구품연대도 이와 같으니라.
물이 맑은 것은 중생의 본래 마음에 비유하고 물이 흐린 것은 끝이 되는 것이니 중생의 업혹業惑에 비유하며, 흐린 물이 점점 맑아지는 것은 중생의 업혹이 점점 녹는 데 비유하고, 영상靈像이 점점 나타나는 것은 보토 구품연대가 점점 나타나는 데 비유하노라. 마음이 청정하면 보토 극락이 스스로 오고 마음이 탁하면 육도六途하늘, 사람,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 오온五蘊육신,3) 빛을 받아들이는 것, 생각, 행하는 것, 알음알이스스로 나타나느니라.”
객이 물어 말하기를,
“마음이 청정하면 곧 극락세계라 하니 그러면 극락세계가 따로 없는 것이 아닌가요?”
용성이 말하기를,
“바로 대원각성大圓覺性을 깨치면 천당天堂과 불국佛國이 다 꿈과 같으니 그대가 또 자세히 들을지어다. 『원각경圓覺經』 「보안장普眼章」에 말씀하시되 ‘원각이 넓게 비치며 적寂과 멸滅이 둘이 아니어서 저 원각체성圓覺體性이 뚜렷이 밝고 고요히 비치는 곳에 앉아 보면 백천항하사아승지 모든 불佛의 세계가 마치 허공꽃(空華)과 같아서, 즉卽한 것도 아니고 여읜(離) 것도 아니니, 알겠구나! 중생이 본래 불을 이룬 것이라’ 하시니 이것이 참 진실한 법신法身의 극락세계니라.
또 모든 불타께서 하근중생下根衆生을 불쌍히 생각하시어 시방十方 허공중에 수없는 화신정토化身淨土를 건립하시니 서방西方 극락세계는 수없는 대각의 나라 중에 하나이니라. 어떠하든지 아미타阿彌陀 공안公案만 일심으로 참구參究하면 법신극락法身極樂과 화신극락化身極樂이 다 스스로 나의 방촌方寸 중에 있는 것이다.”
둘째는 법신국토와 화신국토가 둘이 아닌 것
0001_0023_b_01L객이 물어 말하기를,
“법신극락세계에 왕생往生하기를 원할 것이요, 화신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은 없는 것이 아닌가요?”
용성이 말하기를,
“그대가 허공을 나누어도 조각을 내는구나. 법신을 내놓고 화신이 어디에 있으며 화신을 내놓고 법신이 어디에 있으리오. 다만 어떤 것이 아미타성존阿彌陀聖尊인가 의심하여 참구하되 고요하고 깨끗이 의심하여 일심으로 공부를 할지어다. 하루아침에 낯을 씻다가 코 만지듯이 홀연히 깨달으면 탐貪, 진嗔, 치痴를 돌이켜 계戒, 정定, 혜慧를 삼으며, 육식六識을 돌이켜 육신통六神通을 삼으며, 긴 하수(長河水)를 저어 소락제호酥酪醍醐를 삼으며, 대지大地를 변화하여 황금黃金을 삼으며, 지옥地獄을 변화하여 극락세계를 삼는데, 무슨 법신과 화신의 국토가 따로 있으리오. 우리의 광명이 넓게 비치고 수명壽命이 한량없는 자성自性의 주인공主人公인 아미타성존이 시방 허공을 다 집어삼키어 조금도 다른 것이 없도다. 진허공변법계眞虛空遍法界가 다 풍류風流하고 모든 세계가 노래하며 춤추도다.
아미타성존을 화두話頭로 삼아 의심으로 참구하되 처음 시작할 때마다 ‘어떤 것이 나의 자성인가?’ 한번 잘 듣고 연속하여 ‘어떤 것이 아미타성존인가’ 하되 자나 깨나 누울 때나 먹을 때나 일할 때나 어느 때를 막론하고 의심하여 가면, 아미타성존의 가피력加被力과 나의 법력法力과 합하여 일치一致되므로, 나의 자성 아미타성존과 저 아미타성존은 둘이 아니므로 극락세계를 성취하리라.
그대는 극락세계의 행상行狀을 대강 들어 볼지어다. 극락세계는 모든 고통이 없고 다만 한량없는 낙樂만 받기 때문에 극락세계라 한다. 황금보전을 칠보로 장엄하여 천 층이나 높아서 반 공중에 솟아 있으니, 이와 같은 궁전이 중중무진重重無盡하여 온 극락세계에 충만充滿하며, 칠중난간으로 궁전을 장엄하고 칠중으로 보배 그물을 둘러 장엄하며, 칠중으로 보배 나무가 줄줄이 행렬을 지어 벌였으니, 이것들이 다 금金, 은銀, 유리琉璃, 자거硨磲, 마노瑪瑙 등으로 되어 두루 둘렀으므로 곳곳마다 그 웅장한 경치를 한 입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극락이라 하는 것이니, 이것은 칠과七科, 도품道品과 상常, 락樂, 아我, 정淨 사덕四德을 닦은 인因으로 이러한 장한 과보果報를 얻는 것이다.
또 곳곳마다 일곱 가지 보배 연못이 있으니 팔공덕수八功德水가 그 가운데 가득하며, 사변四邊으로 금金, 은銀, 유리琉璃, 파리진주玻璃眞珠로 축대를 쌓았으니, 그 맑은 물이 청철淸澈하고 보배 빛이 영롱찬란玲瓏燦爛하며, 또 그 위에다가 누각을 지었는데 칠보로 장엄하였으며, 못 가운데에는 연꽃이 수없이 피었는데 크기가 금륜성왕金輪聖王의 천륜보거千輪寶車와 같아서 주위가 40리 가량이 되며, 그 연화가 청색靑色 청광靑光이고 황색黃色 황광黃光이며 적색赤色 적광赤光이고 백색白色 백광白光이니, 형상은 미묘하고 향기는 정결淨潔하여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또 극락세계는 황금으로 땅이 되어 있으므로 밤낮 육시六時로 하늘 꽃이 분분히 내리면 그곳 중생들은 그 꽃을 담아다가 이른 아침(淸朝)에 궁전을 타고 다른 곳의 십만억 불타 처소에 가서 공양을 올린 뒤에 본국本國으로 돌아와 밥을 먹는다. 또 극락세계에 종종의 기묘한 새가 있는데 백학白鶴, 공작孔雀이며 앵무사리鸚鵡舍利며 가릉빈가伽陵頻伽와 공명새들이 화창한 소리를 내어 법을 연설하니 그곳 중생들이 자연히 염불念佛, 염법念法, 염승念僧을 하니, 이것은 죄보罪報로 된 새가 아니고, 아미타성존의 부사의不思議 신통력神通力으로 화현化現된 것이다.
또 이 세계는 춥고 더운 것이 없어 항상 사람의 뜻에 맞으며 농사짓는 법이 없고 옷과 밥이 생각을 따라 스스로 오느니라. 또 이 세계에서는 작은 바람이 불면 모든 보배 나무와 보배 그물에서 한량없이 미묘微妙하고 화창한 소리가 나는 것이 백천 가지 하늘 풍악을 울리는 것 같아서 모든 법문 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를 듣는 자는 자연히 염불, 염법, 염승을 하느니라. 아미타성존의 광명이 시방국토에 비치나니 참 이것이 『화엄경華嚴經』의 진리眞理와 같아서 국토가 이 법을 설하고 중생이 이 법을 설하고 삼계 일체가 다 이 법을 설하느니라.”
선남자, 선여인들은 미타공안을 일심으로 참구하시어 견성見性 성각成覺 하여 왕생극락 하시기를 축祝하고 이 글을 지음.
육자대명왕경六字大明王經
용성龍城 백상규白相奎 역譯
이 경이 매우 광대하여 다 번역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조금 빼서 아주 간략히 번역하였습니다.
첫째는 지송持誦하는 서차
0001_0026_b_01L정삼업진언淨三業眞言 3편씩 외울 것

옴 사바 바바 수다 살바 달마 사바 바바 수도함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 7편씩 외울 것

옴 남

관음정사육자대명왕령감진언觀音正士六字大明王靈感眞言

옴마니반메훔唵嘛呢

(이 주문은 행주좌와에 끊임없이 할 것)
둘째는 지송持誦하는 법
0001_0027_a_01L이 주문은 별로 가리는 것이 없습니다. 이 주문은 일체 죄업 중생을 위하여 대자비로 설하신 경입니다. 항상 그른(誤) 마음이 없이 하며 일체 처에 자심自心이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이 계행戒行입니다. 항상 어느 때든지 행주좌와와 어묵동정에 입속으로 끊임없이 ‘옴마니반메훔’을 외우시되 이 여섯 글자를 역력히 분명히 외우시오. 오래오래 외우시면 저절로 습관이 되어 자연히 자나 깨나 스스로 염념불망念念不忘하게 됩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거든 혀도 놀리지 말고 생각으로만 역력 분명하게 주문을 생각하시오. 또 생각이 항상 이어져 일심이 되거든 이 주문을 생각하는 놈을 세세밀밀히 찾아보면서 외우되, ‘이 주문 생각하는 놈이 누구인가?’ 이와 같이 하되 주문은 항상 끊어지지 않고 외우면 자연히 육자 선정禪定을 얻어 삼매三昧에 들어가게 됩니다. 점점 백천 무량삼매無量三昧를 얻게 되나니 이 지경에 이르면 자기 자성自性을 깨쳐 대각을 성취합니다.
셋째는 주문의 뜻을 번역함(呪文飜譯)
唵字는 無上正法身을 表示한 것이요, 또 引生義를 表示한 것이니 種種恒沙妙義가 此로 由하여 發生하는 뜻이외다.
‘옴唵’ 자의 뜻은 위없는 본연각성 정법신을 표시한 것이고, 또 결과를 이끌어서 다른 것이 생겨나도록 이끄는 의미(引生義) 표시한 것이니, 갖가지 항하사와 같은 묘의가 이로부터 생겨난다는 뜻이니 범부는 능히 측량할 사람이 없습니다.
嘛呢 二字는 眞空妙智가 本源覺性과 冥合한 것이요. 또다시 譯하면 如意寶珠가 光淨한 것과 如하여 恒沙功德을 增長하여 願대로 되지 않음이 없다는 뜻이올시다.
‘마니嘛呢’라는 두 글자를 번역하면 진공묘지가 뚜렷이 밝아 본원각성에 그윽하게 합한다는 뜻이며, 또다시 번역하면 여의주와 같아서 자체가 명정하여 항사 공덕이 원만하여 원대로 되지 아니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二字를 飜譯하면 光明圓覺이니 智慧로써 惑業障을 斷하고 大圓覺을 成就하는 것이며, 또다시 번역하면 圓滿具足한 것이니 觀音心呪의 靈感이 不可思議라, 妙蓮花가 圓滿具足한 것과 같습니다.
0001_0028_a_01L‘반메’ 두 글자를 번역하면 대광명정각이라는 뜻이니, 지혜로써 혹업장을 끊고 대원각을 성취하는 뜻이며, 또다시 번역하면 큰 원이 원만하게 만족한다는 뜻이니 관음심주의 영감이 불가사의하여, 오묘한 연화가 원만구족함과 같습니다.
吽字의 뜻을 飜譯하면 種種義를 出生하는 뜻이며 十方大覺과 菩薩과 天神과 護法聖神이 擁護하는 뜻이며, 種種 災殃을 消滅하는 뜻이며 種種 惡魔邪神을 降伏 받는 뜻이올시다.
‘훔吽’ 자 뜻을 번역하면 종종의 묘의를 출생하는 것이며, 시방의 대각님과 보살과 천신 모든 호법성신 대중이 옹호하는 뜻이며, 종종의 재앙을 소멸하는 뜻이며, 종종의 악마 사신을 항복받는 뜻입니다.
넷째는 육도를 파괴하는 것(六途破壞)
0001_0028_b_01L此唵嘛呢吽 六字의 威神力이 能히 六道受生하는 種子破壞하고 能히 六波羅蜜을 成就하며 能히 모든 大覺의 國土에 受生하며 能히 十方國土에 大覺을 成就하여 恒常 無上大法輪을 轉합니다.
이 ‘옴마니반메훔’ 육자의 위신력이 능히 육도를 일으키는 종자를 부수어 버리고 능히 육바라밀의 종종 공덕을 성취하며, 능히 모든 대각의 국토에 왕생하고 능히 시방 불타의 국토에 마음대로 왕생하여 대각을 성취하여 무상대각이 되어 항상 무상 대법륜을 굴려 중생을 제도합니다.
다섯째는 공덕功德
0001_0029_a_01L이 주문의 공덕을 말하자면, 허공으로 입을 삼고 산하대지로 광명을 놓아 종종 공덕을 칭찬하여도 항하사미진수와 같아서 하나도 말할 수 없습니다.
『대승장엄보왕경』과 『대명경』 등 모든 경전 가운데에 설명한 것을 보면 매우 끔찍하여 공덕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용성이 이 주문을 바다에 물 한 방울만큼만 빼내어 모든 불타님을 믿는 신도에게 제공하오니 이 주문을 단단히 믿어 공부하십시다.
이 주문의 신통변화는 매우 엄청나서 말할 수 없어 그만둡니다.
여섯째는 증험證驗
0001_0029_b_01L일심으로 백만 편을 외우시면 꿈 가운데에 일월日月 광명光明과 불타님과 종종의 기기묘묘한 경계가 나타납니다. 그래도 아무 상관 말고 또 백만 편을 외우면 천리만리의 일도 알기도 하고 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조금 기쁜 마음을 내지 말고 다만 일심으로 또 백만 편을 외우면 그 경계를 말로 어떠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다시 아무 상관 말고 백만 편을 외우면 일체 대각님과 팔만사천 금강신과 허공에 가득한 삼계 호법신장이 항상 옹위하여 천마天魔 사신邪神과 일체 재난이 없고 만사를 뜻대로 하여도 장애가 없습니다. 또 백만 편을 일심으로 외우면 큰 도를 통하여 천상인간에 제일 자재하신 대법왕大法王이 됩니다. 그러나 성심誠心과 일심一心과 부동심不動心과 사견邪見이 없는 정성심으로 외워야 됩니다.
  1. 1)맛(味) : 육경六境 중 ‘味’의 누락으로 보충함.
  2. 2)말부합위일리末復合爲一理 : 주자는 『중용』의 대의를 요약하기를 ‘처음에 한 이치를 말하고 중간에 만 가지로 확산하고 마지막에 다시 한 이치에 합한다(始言一理 中散爲萬事 末復合爲一理)’고 했다.
  3. 3)육신 : 오온 가운데 색色(육신)이 탈락되어 보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