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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제목정보
대표서명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간략정보
  • 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 大愚(朝鮮) 集述. -- 木板本 -- [全羅道] 順天 曺溪山 : 松廣寺, 1648年(仁祖 26) 刻, 2015年 後刷.
  • 51張, , 四周單邊 全郭 19.3×35.2 cm , 無界, 8行16字 / 11行19-20字(半葉), 白口, 上下內向2葉花紋魚尾(上下內向黑魚尾, 上下向黑魚尾 下上向2葉花文魚尾 混入, 上魚尾에 '玄', '계', '上', '下' 陰刻) ;
  • 소장자 : 송광사

제목정보
책명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권수제 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표제
이제
서제
판심제 預修文 / 預修疏 / 緘 / 預修 / 預修通
분류정보
자료구분 인경
주제분류 한국찬술-의례
저자정보
저역자 大愚(朝鮮) 集述
판사항
판종 木板本
저본
발행정보
발행지 [全羅道] 順天 曺溪山
발행자 송광사(松廣寺)
발행년 1648年(仁祖 26) 刻, 2015年 後刷
형태정보
장정 낱장
권사항
장수 51張
결락중복
도표
광곽형태 四周單邊
광곽종류 全郭
광곽크기 19.3×35.2
계선 無界
행자수 8行16字 / 11行19-20字(半葉)
주표기
판구 白口
어미 上下內向2葉花紋魚尾(上下內向黑魚尾, 上下向黑魚尾 下上向2葉花文魚尾 混入, 上魚尾에 '玄', '계', '上', '下' 陰刻)
책크기
기록정보
서문
발문
간기 卷末: 順治五年戊子(1648)四月日 順天地曺溪山松廣寺開刊
간행질 冊末: 前金城判事本寺住持兼變能靈駕, 本寺秩首僧 大敬, 三剛 惠明, 持寺 文勝, 處悋㚑駕, 一旭, 哲?, 施主秩 正會 등 다수, 刻手秩 信哲, 尙稔, 一岩 등 다수
기타판각인명정보
인출유통묵서기
주기정보
지질
표지첨기
합본사항
현토표점방점
인장
주기상세
내용주기
형태주기
소장정보
소장자 송광사
소재처 송광사성보박물관
소재처관리번호
연계정보
한국불교전서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H0275
신집성문헌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10137_0001
출처정보
-
참고정보
이력과정

[서지해제]

1. 개요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는 대우(大愚)가 예수재의 의식 절차와 예수재를 설행할 때 사용하는 문서 양식인 소문(疏文)과 행첩(行牒) 등을 정리한 불교의례집이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판본은 17종이 확인되며, 송광사에서는 1574년과 1648년, 두 차례 간행하였고, 1648년에 판각한 목판을 현재 소장하고 있다.
2. 저작자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권수제 다음 행에는 ‘松堂野衲大愚 集述’이라는 저자 표시가 있다. 이를 근거로 ‘대우’를 조선 후기 해남의 대흥사(大興寺)를 중심으로 활약한 벽하 대우(碧霞大愚, 1676~1763)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간행된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최고본(最古本)은 1566년 안국사본(安國寺本)으로, 벽하 대우가 태어나기 11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편찬자는 벽하 대우가 아니며, ‘대우’는 16세기 중반 이전의 인물로 보아야 한다.
3. 구성과 내용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본문은 예수재를 설행하게 된 연유를 밝히는 「통서인유편(通敍因由篇)」에서 예수재 도량에 초청한 불보살과 여러 성중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고 예수재의 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보신회향편(普伸回向篇)」까지 25편 또는 3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판본은 25편 계통과 31편 계통으로 구분된다. 25편 계통은 1566년 안국사본를 비롯하여 5종, 31편 계통은 1574년 송광사본을 포함하여 12종이다. 두 계통은 ① 「통서인유편」에서 ⑱ 「헌좌안위편(獻座安位篇)」까지는 편명(篇名)과 본문의 내용이 대부분 일치한다. 이후의 편에서는 편명, 내용, 순서가 달라진다. 단순히 편수(篇數)로는 6편의 차이가 있지만, 25편 계통에서 2편이 삭제되어 31편 계통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31편 계통에는 8편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본문 다음에는 예수재와 관련한 다양한 글이 실려 있다. 예수재를 설행할 때 사용하는 문서 양식인 소문(疏文)과 행첩(行牒), 단에 올리는 물품(壇中所入之物), 종이돈 만드는 법(造錢法), 「자생상(子生相)」에서 「해생상(亥生相)」까지 고조관(庫曺官)에게 내야 하는 돈과 읽어야 할 경전의 분량을 육십갑자(六十甲子)에 따라 기록하고 있다.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는 대부분 권수 혹은 권말에 장육암(藏六庵) 육화(六和)가 찬술한 「예수천왕통의(預修天王通儀)」가 실려 있다. 저자 육화에 대해서 알려진 정보가 없어 「예수천왕통의」는 언제, 어디서 찬술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예수천왕통의」는 시왕과 그 권속들에게 예수시왕생칠재를 베풀게 된 내력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수천왕통의」는 2장 분량의 짧은 글로, 예수재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에 실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4. 편찬과 간행
조선시대에 간행된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판본은 17종으로 확인된다. 현재까지 전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판본은 평안도 성천(成川) 백련산(白蓮山) 영천(靈泉)에서 1566년에 판각하여 목판을 자산(慈山) 안국사(安國寺)로 옮긴 것이다.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편찬과 관련된 정보는 대우가 편집하였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편찬 배경이나 경위를 알 수 있는 서문이나 발문이 없고, 편집자 대우의 생몰연대 또한 확인되지 않아, 처음 판각한 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 현재까지 전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 1566년에 판각한 것이기 때문에, 1566년 이전에 판각한 판본이 발견될 여지는 있다.
송광사에서는 1574년과 1648년에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를 판각하였고, 1648년에 판각한 목판을 현재 소장하고 있다. 1648년 판본의 간기는 ‘順治四年戊子四月日順天地曺溪山松廣寺開板’으로 순치(順治) 4년은 1647년이며, 간지(干支)로는 정해(丁亥)년이다. 간기에서 연호(年號)의 연대와 간지가 맞지 않는다. 간지보다 연호의 연대를 새길 때 착오로 잘못 판각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무자(戊子)년인 1648년을 판각연대로 삼았다.
집필자: 강현찬(동국대)
참고문헌
문화재청‧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2015), 『한국의 사찰문화재: 2014 전국 사찰 목판 일제조사』 4 전라남도_2, ㈜조계종출판사.
송일기(2020), 「생전예수재 의식집 『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의 서지적 연구」, 『무형문화연구』 2, 불교의례문화연구소.
이종수(2019), 「조선시대 생전예수재의 설행과 의미」, 『불교학연구』 61, 불교학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