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상도해제
1570년 안동 광흥사(廣興寺)에서 간행된 금강경이다. 총 24매 판에 변상과 본문이 함께 판각되어 있다. 표지를 열면 ‘금강반야바라밀경변상(金剛般若波羅密經變相)’이라는 제목과 기원정사에서 금강경을 설하는 장면을 묘사한 기원설법도(祇園說法圖)가 권수변상으로 배치되어 있고 이후에는 도상과 본문이 상하로 나뉘어 나란히 전개되는 상도하문식(上圖下文式) 구조를 이루고 있다.
기원설법도는 통상대로 화면의 오른쪽에 석가모니의 설법장면, 그 앞에는 청문중들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향로와 화반이 놓인 불탁을 앞에 놓고 높은 수미좌에 앉아 오른손을 들어 설법하고 있는 모습이다. 좌우에는 가섭과 아난으로 대표되는 제자, 무장을 하고 각기 지물을 든 사천왕 그리고 뒤쪽으로 팔부중이 시립하고 있다. 건너편의 청문중은 수보리(須菩提)를 비롯한 5명의 성문(聲聞), 그 뒤로 제왕형의 천자와 주악천녀들이 장엄하고 있으며 화면의 위쪽 배경에는 법회의 장소인 제타숲임을 암시하듯 암산과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다.
제2~5판의 하단에는 금강경계청과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 상단에는 ‘옹호(擁護)’ 변상, 이후에는 금강경감응사적, 발원문, 운하범(云何梵)과 함께 팔금강과 금강보살의 도상이 전개되어 있다. 이후 제5판부터 금강경의 본문과 변상이 전개된다. 본문 끝에 진언이 부가되고 마자막 판에는 ‘호법선신(護法善神)’ 명호와 함께 위태천이 배치되어 경전을 수호하고 있다.
위태천은 갑옷을 입고 합장한 팔 위에 금강보저(金剛寶杵)를 올려놓은 전형적인 도상이며 두상 둘레에 화염이 둘려져 있다. 이후에는 간기(隆慶四年庚午六月初二日慶尙道 安東地鶴駕山 廣興寺刊板)와 승속 수십명이 망라된 시주질이 기록되어 있고, 마지막에 연화질로 각수는 석견(釋堅), 화주는 계희(戒熙)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금강경은 전라도 남원에서 1363년 간행된 판본이 전해지고 있으며(보물 제696호) 또한 현재 경주 왕룡사원(王龍寺院)에 봉안되어 있는 소조석가불좌상(1579년)에서 1338년 원 대도(大都)에서 간행된 금강경이 복장품으로 출토되었다. 그러므로 이 원대 금강경의 도상은 이미 고려시대에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간본은 이 광흥사본과 패엽사본(1564년)이 전해진다.
문화재청 박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