章疏書名
기신론소起信論疏
개요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주석한 것.
체제와 내용
신라의 원효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주석한 것으로 『기신론해동소(起信論海東疏)』라고도 하며, 혜원(慧遠)의 『대승기신론의소(大乘起信論義疏)』, 법장(法藏)의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와 함께 ‘기신(起信)의 삼소(三疏)’라고 불린다. 2권. 『대정신수대장경』권44(N.1844)에 수록되어 있다. 원효의 『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는 본서에 앞서서 저술되었다. 전체 삼문(三門)으로 구성되는데, 삼문이란 제 1 표종체(標宗體)·제2 석제명(釋題名)·제3 의문현의(依文顯義)이다. 먼저 표종체에서는 전체에 걸쳐서 일심(一心)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의 석제명에서는 ‘대승(大乘)은 논의 종체(宗體)이고, 기신(起信)은 논의 승능(勝能)이다. 체(體)와 용(用)을 함께 들어서 제목을 삼는다. 그러므로 대승기신론이라고 이름한다’라고 한다. 의문현의에서는 『대승기신론』의 본문을 귀경술의(歸敬述意)·정립논체(正立論體)·총결회향(總結廻向)의 삼분(三分)으로 나누어 해석하고 있다. 본서는 『기신론』을 『능가경(楞伽經)』에 기초한 것으로서 이해하고, 법상유식학(法相唯識學)과 『기신론』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나아가 천태지의(天台智顗)의 주장에 기초해서 지관(止觀)의 행법(行法)을 서술하고, 선경(禪經)을 인용해서 번뇌를 다스릴 것을 설한다. 본서는 법장의 『대승기신론의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정영식>
장소찬자
원효(元曉, 617~686)의 속성은 설(薛)씨로서 617년(진평왕 39)에 불지촌(佛地村) 북쪽이며 압량군(押梁郡) 남쪽인 율곡(栗谷)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엔 화랑으로서 서당(誓幢)이 되었으며, 나이 18세가 되어 자신이 살던 집을 절로 삼아 초개사(初開寺)라 하고 스스로 이름을 ‘이른 새벽’을 뜻하는 원효로 바꾸었다. 그는 유불도(儒佛道) 삼교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불교의 교학에 있어서도 섭렵하지 않은 경론이 없을 정도로 넓고 깊어서 중국에서는 해동조사(海東祖師)로 불리었으며, 한국과 일본에서는 백부(百部)의 논주(論主)요, 팔종(八宗)의 조사(祖師)로 추앙받았다. 또한 그의 행적은 일상인의 잣대로는 재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요석공주와 관계하여 아들 설총(薛聰)을 얻었는가 하면, 창가와 주점을 걸림 없이 드나들었고, 저잣거리에서 뒤웅박을 두드리며 무애가(無碍歌)를 부르고 무애무(無碍舞)를 추었다. 80여종의 책을 저술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20종 정도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영락본업경소(瓔珞本業經疏)』·『열반경종요(涅槃經宗要)』·『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이장의(二障義)』·『판비량론(判比量論)』·『중변분별론소(中邊分別論疏)』·『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등이 있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정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