章疏書名
불설아미타경소佛說阿彌陀經疏
개요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가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주석한 것.
체제와 내용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가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주석한 1권으로 『대정신수대장경』권37(N. 1759)에 수록되어 있다. 전체를 술대의(述大意)·석경종치(釋經宗致)·입문석(入文釋)의 삼문(三門)으로 나누고 있다. 먼저 술대의에서는, 석가모니와 아미타불이 세상에 출현하신 본의를 밝히고, 재가와 출가의 남녀가 불도(佛道)에 들어가는 요문(要門)을 보이고 있다. 또 『아미타경』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바로 일승(一乘)에 들어가고, 입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면 바로 삼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한다. 석경종치에서는, 삼계(三界)를 초월하는 기세간(器世間)과 중생세간(衆生世間)의 2종의 청정(淸淨)을 가지고 ‘종(宗)’으로 삼고, 중생으로 하여금 무상도(無上道)에서 불퇴전(不退轉)의 위치를 획득하게 하는 것을 ‘치(致)’로 했다. 입문석에서는, 경문을 서분(序分)·정종분(正宗分)·유통분(流通分)의 삼단(三段)으로 나누어 차례로 해석하고 있다. 본서는 화엄교학의 입장에서 『아미타경』을 해석하는 데에 특색이 있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정영식>
장소찬자
신라 원효(元曉, 617~686)의 속성은 설(薛)씨로서 617년(진평왕 39)에 불지촌(佛地村) 북쪽이며 압량군(押梁郡) 남쪽인 율곡(栗谷)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엔 화랑으로서 서당(誓幢)이 되었으며, 나이 18세가 되어 자신이 살던 집을 절로 삼아 초개사(初開寺)라 하고 스스로 이름을 ‘이른 새벽’을 뜻하는 원효로 바꾸었다. 그는 유불도(儒佛道) 삼교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불교의 교학에 있어서도 섭렵하지 않은 경론이 없을 정도로 넓고 깊어서 중국에서는 해동조사(海東祖師)로 불리었으며, 한국과 일본에서는 백부(百部)의 논주(論主)요, 팔종(八宗)의 조사(祖師)로 추앙받았다. 또한 그의 행적은 일상인의 잣대로는 재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요석공주와 관계하여 아들 설총(薛聰)을 얻었는가 하면, 창가와 주점을 걸림 없이 드나들었고, 저잣거리에서 뒤웅박을 두드리며 무애가(無碍歌)를 부르고 무애무(無碍舞)를 추었다. 80여종의 책을 저술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20종 정도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영락본업경소(瓔珞本業經疏)』·『열반경종요(涅槃經宗要)』·『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이장의(二障義)』·『판비량론(判比量論)』·『중변분별론소(中邊分別論疏)』·『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등이 있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정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