章疏書名
화엄경소과華嚴經疏科
개요
『화엄경소과(華嚴經疏科)』(20권)는 송의 진수 정원(晉水淨源, 1011∼1088)이 화엄 5조 청량 징관의 『화엄경소과문(華嚴經疏科文)』(10권)을 중간(重刊)한 것으로 정가당 문고(靜嘉堂文庫)에 일부가 전한다.
체제와 내용
『화엄경소과(華嚴經疏科)』(20권)는 송의 진수 정원(晉水淨源, 1011∼1088)이 화엄 5조 청량 징관의 『화엄경소과문(華嚴經疏科文)』(10권)을 중간(重刊)한 것으로 정가당 문고(靜嘉堂文庫)에 일부가 전한다.
현존하는 『화엄경소과』에서 권3은 『대방광불화엄경소』의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제1에 수록된 십문(十門: ①敎起因緣, ②藏敎所攝, ③義理分齊, ④敎所被機, ⑤敎體淺深, ⑥宗趣通局, ⑦部類品會, ⑧傳譯感通, ⑨總釋經題, ⑩別解文義)의 ⑩별해문의에서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제2의 이광소유연(二光召有緣)까지 과문하였다.
권4는 삼소소운분(三所召雲奔)부터 「비로자나품」제6의 보문연화안당불(普聞蓮華眼幢佛)까지를, 권5는 ‘수인계과행해분(修因契果生解分)’을 과문한 것이다. 권6은 「현수품(賢首品)」제12의 덕용해수(德用該收)부터 「범행품(梵行品)」제16의 답인소성과(答因所成果)까지를, 권9는 「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제24 조화찬덕(助化讚德)에서 「십회향품(十迴向品)」제25 이상회향(離相迴向)까지를 도식화 한 것이다.
권11은 「십지품(十地品)」제26 대중동청(大衆同請)부터 삼실도(三失道)와 삼실멸(三失滅)까지 를, 권17은 보광명전회이세문일품분십(普光明殿會離世問一品分十)을 과문한 것이다.
정가당 문고에는 『화엄경소과』 권제3, 4, 5, 6, 9, 11, 17권이 남아있다. 그 가운데서 권4, 권5의 마지막 부분과 권11의 첫머리와 마지막, 권17의 첫머리와 마지막에서 ‘과문’이라 한 것으로 보아 원래 명칭이 『화엄경소과문』이며 『화엄경소과』로 약칭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정영식>
장소찬자
진수정원은 북송대의 화엄승으로서, 진강晉江(현재의 福建省 泉州府)출신이다. 자는 백장伯長)이며, 속성은 양楊)씨이다. 구족계를 받은 후 오대산의 승천承遷)과 횡해명담橫海明潭에게 배운 후, 장수자선長水子璿을 사사하여 능엄楞嚴·원각圓覺·기신론起信論의 강의를 들었다. 후에 항주杭州의 혜인사慧因寺에 주석하였는데, 이때 고려의 의천義天이 와서 정원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그 후 의천과 정원의 교류는 점점 깊어졌는데, 의천과 주고받았던 서한이 지금도 많이 남아있다. 정원은 징관澄觀·종밀宗密 이후 쇠퇴해가던 중국 화엄교학을 부흥시킨 ‘중흥교주中興敎主’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의천을 통해서 중국에서 산일散逸되었던 화엄전적을 많이 수집하였으며, 화엄종의 조통설祖統說을 수립하였다. 현재 알려지고 있는 두순杜順→지엄智儼→법장法藏→징관澄觀→종밀宗密의 화엄오조설華嚴五祖說을 확립한 것도 정원이며, 그 앞에 마명馬鳴과 용수龍樹를 둔 칠조설七祖說을 주장한 것도 정원이다. 나아가 그는 수집한 화엄전적을 가지고 ‘현수경장賢首經藏’을 간행하여 각지에 배포하였으며, 현수교賢首敎라고 하는 명칭을 표명하였다. 그의 사상적 특징은 징관·종밀의 교학에 의거하면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적 일심一心의 입장에서 화엄을 해석하는 것이었다. 화엄관계의 저술로는『화엄보현행원수증의華嚴普賢行願修證儀』·『화엄망진환원관과華嚴妄塵還源觀科』·『화엄망진환원관소초보해華嚴妄盡還源觀疏鈔補解』등이 있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정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