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자
화악 지탁華嶽知濯(1750~1839) 속성은 한韓, 본관은 청주. 어려서부터 속세를 싫어하여 황해도 배천 견불산 강서사江西寺의 성붕性鵬 선사에게 출가하였다. 삼각산에 살아서 호를 ‘삼봉’이라고도 한다. 금강산과 보개산寶蓋山에 머물렀고, 『수능엄경』을 만 번 읽어 근진根塵에서 벗어났다. 금강산 장안사 지장암에서 입적하였다.
2. 서지 사항
경기도 양주 천마산 보광사寶光寺, 1869년(고종 6) 간행. 불분권 1책. 31.3×20.2cm.
3. 구성과 내용
경기도 양주 천마산 보광사寶光寺, 1869년(고종 6) 간행. 불분권 1책. 31.3×20.2cm.화악에게는 『풍사록風使錄』 2권의 저술이 있었는데 속인이 훔쳐 가서 사라지고, 학도學徒들에게 전송傳誦되는 글을 모은 것이 『삼봉집』 1권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화악이 찬술한 문(1) 3편, 시 51편, 문(2) 35편에, 타인이 쓴 서문, 영찬影讚, 법상찬法像讃, 행장行狀, 발문, 그리고 부록 5편이 들어 있다. 문文을 둘로 나누어 실은 것은 시기상 구별한 것으로 보인다. 시문도 문체 구별이 아니라 시간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개행>「행각록行脚錄」과 「백두산기白頭山記」 사이에 있는 시문은 별도의 작품처럼 구별되어 있지만 모두 「행각록」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시 ‘58편’이라는 『한국불교전서』의 목차 내용은 잘못된 것이다. 부록 5편은 화악의 제자인 화담 경화華潭敬和에 대해 판부사判府事 이유원李裕元이 쓴 부도비명과, 그밖에 영찬과 행장이 있다.<개행>화악의 행장은 취벽翠碧 이도현李道玄이 지었는데, 삼봉이 강화학파江華學派의 초원椒園 이충익李忠翊의 문하에서 노닐었으며, 문채가 웅혼하고 우아하여 유자의 기풍이 있었고, 게송의 문사文詞는 세속의 운韻을 높게 가다듬었으며, 필법은 굳세고 범서梵書에 뛰어났으니, 도를 깨치고 재주와 학문을 갖춘 불가의 대종사라고 했다. 전법 제자가 100여 명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 화담 경화가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