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본서는 1618년(광해군 10) 송광사 개간본(동국대학교 소장)이다. ‘귀감’이 되는 구절을 선별하여 그 각각에 ‘선가’의 안목으로 평가나 송(頌)을 붙이는 형식이다. 각 구절 말미에 싯구나 착어(著語)로써 편찬자의 견지를 덧붙여 편집본 이상의 품격을 부여했다. 사명 유정(四溟惟政)의 「발문」에 “묘향산에 머무셨던 10여 년 동안, 수행하시는 틈틈이 50권의 경론과 어록들을 보시고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 간간이 요긴한 구절들을 참구하고 결단하시어 그때마다 기록해 두셨던 것이다.”라는 말에서 본서의 뿌리를 알 수 있다. 목판은 전체가 흠결 없이 완벽하다.
2. 저작자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속성은 최씨, 자는 현응(玄應), 이름은 여신(汝信), 호는 청허 또는 서산(西山)이며, 별호는 묘향산인(妙香山人) 등이다. 10세 전후로 양친를 모두 여의는 등 유년기부터 무상(無常)을 몸소 느끼며 살다가 부용 영관(芙蓉靈觀)의 법문을 듣고 감명받아 숭인(崇仁) 문하로 출가하였다. 1549년(명종 4) 선과(禪科)에 응시한 뒤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에 올랐다. 임진왜란을 맞아 73세로 묘향산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왕의 청으로 8도 16종 도총섭(都摠攝)의 지위를 맡아 전공을 세웠고, 왕은 보답하고자 ‘국일도대선사선교도총섭부종수교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라는 호를 내렸다. 사명 유정, 편양 언기(鞭羊彦機) 등의 제자를 배출했다. 『청허당집』 7권 등을 남겼다.
3. 구성과 내용
수행의 본보기가 될만한 구절을 가려내어 제시한 다음 조사선의 안목과 화두 참구의 관점에 따라 간명하게 해설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선(禪)과 교(敎) 각각의 영역마다 기울어져 있는 잘못된 견해를 바로잡으려는 뜻이 저술의 동기 중 하나이지만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지향하지는 않으며 조사선으로 포괄되는 ‘선가’의 맥락에 따라 모든 글귀가 조정을 받는다. 책머리에 전편을 꿰뚫는 화두가 가장 먼저 주어진다. 어떤 말이나 분별도 붙을 수 없는 ‘하나의 그 무엇(一物)’이 그것이다. 이 앞에서는 부처나 조사도 더 이상 할 일이 없고, 그 어떤 교설도 이것과 맞바꾸지 못한다.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라고 하므로 교설의 자취는 그 마음을 근원으로 한다. 따라서 염화미소(拈花微笑)와 같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소식도 교학의 자취에 따라 이해하면 죽은 말(死句)에 불과하며, 마음에서 선의 경계를 성취하면 거리에 하찮게 떠도는 말이나 자연의 모든 소리조차도 전리를 전하는 법음(法音)이 된다. 구절의 뜻을 낱낱이 추구하는 참의(參意)의 방식에 따르면 구절마다 활력을 잃고 사구(死句)로 전락한다. 반면에 구절마다 의심을 붙이고 궁구하는 참구(參句)의 방식에 근거하면 어떤 맛도 없는 활구(活句)가 되며 이를 경절문(徑截門)이라 한다. 간화십종병(看話十種病)에 대한 설명도 보이며 이는 지눌 이래 한국 선종의 전통이기도 하다. 초기 불교부터 내려오던 주요 수행법도 언급된다. 수행의 요체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평등하게 닦는데 있다고 하며, 6바라밀부터 주문(呪文)과 예배, 염불과 극락왕생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의 조목을 제기하여 그 요체를 설명한다. 경전의 뜻을 몰라도 읽는 소리가 귀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불도를 성취하는 인연이 된다고 한다. 선종 각 종파[五家]의 법계와 특징을 간명하게 소개한 뒤에 근본적인 기틀을 남김 없이 활용할 뿐(大機大用) 정해진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대표적인 선법으로 방(棒)과 할(喝)을 제기하여 걸림 없는 격외의 취지를 보여준다. 서산은 “밝은 달이 홀로 비추니 강산은 고요한데, 자신도 모르게 웃는 한 소리에 천지가 놀라네.”라는 임제(臨濟)의 말로 마무리짓는다.
4. 편찬과 간행
이 송광사 개간본(1618)은 1607년(선조 40) 송광사 개간본(동국대학교 소장)과 구별된다. 『선가귀감』은 현재 서문만 남아 있는 1564년(명종 19) 간행본 이후, 1579년(선조 12) 간행본(고려대학교와 일본 駒澤大學 소장), 1590년(선조 23)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간행본(국립도서관 소장), 1605년(선조 38) 경상도 화산(華山) 원적사(圓寂寺) 개간본, 1612년(광해군 4) 묘향산 내원암(內院庵)에서 개판하여 보현사(普賢寺)로 옮긴 판본(동국대학교 소장), 서문과 발문 없이 『선교석(禪敎釋)』이 부록으로 붙어 있는 1633년(인조 11) 용복사(龍腹寺) 유판본(국립도서관 소장), 1649년(인조 27) 취서산(鷲栖山) 통도사(通度寺) 중간본(전라남도 담양군 龍華寺 소장), 1731년(영조 7) 묘향산 보현사(普賢寺) 유간본(동국대학교 소장), 보원(普願) 발문(跋文)이 붙어 있는 1583년(선조 16) 간행본(고려대학교 소장) 등이 있다.
집필자: 김영욱(고려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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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2015), 『한국의 사찰문화재: 2014 전국 사찰 목판 일제조사』 4 전라남도_2, ㈜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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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문(2022), 「청허 휴정의 禪과 法統에 관한 연구성과 검토」, 『보조사상』 64, 보조사상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