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는 대우(大愚)가 예수재의 의식 절차와 예수재를 설행할 때 사용하는 문서 양식인 소문(疏文)과 행첩(行牒) 등을 정리한 불교의례집이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판본은 17종이 확인되며, 송광사에서는 1574년과 1648년, 두 차례 간행하였고, 1648년에 판각한 목판을 현재 소장하고 있다.
2. 저작자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권수제 다음 행에는 ‘松堂野衲大愚 集述’이라는 저자 표시가 있다. 이를 근거로 ‘대우’를 조선 후기 해남의 대흥사(大興寺)를 중심으로 활약한 벽하 대우(碧霞大愚, 1676~1763)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간행된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최고본(最古本)은 1566년 안국사본(安國寺本)으로, 벽하 대우가 태어나기 11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편찬자는 벽하 대우가 아니며, ‘대우’는 16세기 중반 이전의 인물로 보아야 한다.
3. 구성과 내용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본문은 예수재를 설행하게 된 연유를 밝히는 「통서인유편(通敍因由篇)」에서 예수재 도량에 초청한 불보살과 여러 성중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고 예수재의 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보신회향편(普伸回向篇)」까지 25편 또는 3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판본은 25편 계통과 31편 계통으로 구분된다. 25편 계통은 1566년 안국사본를 비롯하여 5종, 31편 계통은 1574년 송광사본을 포함하여 12종이다. 두 계통은 ① 「통서인유편」에서 ⑱ 「헌좌안위편(獻座安位篇)」까지는 편명(篇名)과 본문의 내용이 대부분 일치한다. 이후의 편에서는 편명, 내용, 순서가 달라진다. 단순히 편수(篇數)로는 6편의 차이가 있지만, 25편 계통에서 2편이 삭제되어 31편 계통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31편 계통에는 8편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본문 다음에는 예수재와 관련한 다양한 글이 실려 있다. 예수재를 설행할 때 사용하는 문서 양식인 소문(疏文)과 행첩(行牒), 단에 올리는 물품(壇中所入之物), 종이돈 만드는 법(造錢法), 「자생상(子生相)」에서 「해생상(亥生相)」까지 고조관(庫曺官)에게 내야 하는 돈과 읽어야 할 경전의 분량을 육십갑자(六十甲子)에 따라 기록하고 있다.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는 대부분 권수 혹은 권말에 장육암(藏六庵) 육화(六和)가 찬술한 「예수천왕통의(預修天王通儀)」가 실려 있다. 저자 육화에 대해서 알려진 정보가 없어 「예수천왕통의」는 언제, 어디서 찬술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예수천왕통의」는 시왕과 그 권속들에게 예수시왕생칠재를 베풀게 된 내력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수천왕통의」는 2장 분량의 짧은 글로, 예수재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에 실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4. 편찬과 간행
조선시대에 간행된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판본은 17종으로 확인된다. 현재까지 전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판본은 평안도 성천(成川) 백련산(白蓮山) 영천(靈泉)에서 1566년에 판각하여 목판을 자산(慈山) 안국사(安國寺)로 옮긴 것이다.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편찬과 관련된 정보는 대우가 편집하였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편찬 배경이나 경위를 알 수 있는 서문이나 발문이 없고, 편집자 대우의 생몰연대 또한 확인되지 않아, 처음 판각한 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 현재까지 전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 1566년에 판각한 것이기 때문에, 1566년 이전에 판각한 판본이 발견될 여지는 있다.
송광사에서는 1574년과 1648년에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를 판각하였고, 1648년에 판각한 목판을 현재 소장하고 있다. 1648년 판본의 간기는 ‘順治四年戊子四月日順天地曺溪山松廣寺開板’으로 순치(順治) 4년은 1647년이며, 간지(干支)로는 정해(丁亥)년이다. 간기에서 연호(年號)의 연대와 간지가 맞지 않는다. 간지보다 연호의 연대를 새길 때 착오로 잘못 판각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무자(戊子)년인 1648년을 판각연대로 삼았다.
집필자: 강현찬(동국대)
※ 목판 사항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목판은 1판2면의 형태이며, 총 26판으로 일부가 결실된 상태로 전해지고 있다. 목판의 크기는 세로 19.3-21.3cm, 가로 35.4-48.2cm, 두께 1.5-4.2cm이다. 목판의 무게는 1.66-2.89kg로, 평균 2.05kg이다. 마구리는 측면에 장부가 보이도록 결구하고, 못으로 고정시켰다. 마구리 좌우측면에는 내용을 나타내는 ‘預’가 표시되어 있다. 목판의 상태는 전체적으로 균열이 있고, 일부 판에서 충해, 뒤틀림 현상, 글자 손상이 보이지만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마구리는 근래에 보수하였으나, 일부는 여전히 결손된 상태로 보완이 필요하다. (김은진(동국대) 정리)
참고문헌
문화재청‧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2015), 『한국의 사찰문화재: 2014 전국 사찰 목판 일제조사』 4 전라남도_2, ㈜조계종출판사.
송일기(2020), 「생전예수재 의식집 『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의 서지적 연구」, 『무형문화연구』 2, 불교의례문화연구소.
이종수(2019), 「조선시대 생전예수재의 설행과 의미」, 『불교학연구』 61, 불교학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