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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당유고(無用堂遺稿)

1. 개요
『무용당유고(無用堂遺稿)』는 부휴계(浮休系) 적전(嫡傳) 무용 수연(無用秀演, 1651~1719)이 남긴 시(詩)와 문(文)을 문인(門人) 영해 약탄(影海若坦, 1668~1754) 등이 수집·정리하여 1724년(영조 즉위년) 순천 송광사(松廣寺)에서 간행한 문집이다.
2. 저작자
무용 수연의 휘(諱)는 수연(秀演), 자(字)와 호(號)는 무용(無用)이다. 1651년(효종 2) 전라북도 용안(龍安)에서 태어났다. 속성(俗姓)은 해주 오씨(海州吳氏)로 문양공(文襄公) 오연총(吳延寵)의 후손이다. 증조(曾祖) 오하몽(吳下蒙)은 무안현감(務安縣監)을 지냈고, 조부(祖父) 오응정(吳應鼎)은 순천부사(順天府使)를 역임하였으며, 부(父) 오섬무(吳暹武)는 벽단첨사(碧團僉使)를 지냈다.
1663년(현종 4) 13세에 부모를 여의고, 1669년(현종 10) 19세에 송광사 혜관(惠寬)에게 출가하였다. 출가 후 혜공(慧空)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그후 20대에는 침굉 현변(枕肱懸辯, 1616~1684)과 백암 성총(栢庵性聰, 1631~1700)에게 수학하였다. 1688년(숙종 14) 38세에는 다시 조계산으로 가서 백암 성총에게 『화엄소초(華嚴疏鈔)』를 습득하였다. 이듬해인 1689년(숙종 15) 백암 성총과 함께 징광사(澄光寺)에서 1681년(숙종 7) 임자도에 표류한 중국선박에서 발견된 불서를 바탕으로 『화엄연의(華嚴演義)』·『대명법수(大明法數)』·『간정기(刊定記)』 등을 간행하였다. 1700년(숙종 26) 50세에 백암 성총이 지리산 신흥사(神興寺)에서 입적하자 그를 이어 개당(開堂)하였다. 1710년(숙종 36) 60세에 송광사로 돌아와 주석하였다. 1719년(숙종 45) 봄에 화엄대회(華嚴大會)를 열어 대중을 가르쳤다. 그런데 같은 해 여름부터 병을 얻어 결국 10월에 입적하였다. 세수는 69세, 법랍은 51세였다.
선(禪)·교(敎)·염불(念佛)에 모두 뛰어나 각지에서 배움을 청하였다. 사대부인 이광좌(李光佐, 1674~1740), 최창대(崔昌大, 1669~1720), 김창흡(金昌翕, 1653~1722) 등과의 교우관계도 두터웠다. 문인으로는 영해 약탄과 두륜 청성(頭輪淸性, ?~?) 등이 있다.
3. 구성과 내용
『무용당유고』는 찬국옹(餐菊翁)의 서문, 권상(卷上)·권하(卷下)의 본문, 무용 수용의 행장(行狀)으로 총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상에는 장단시(長短詩) 4수, 오언절구(五言絶句) 4수, 칠언절구(七言絶句) 32수, 오언율시(五言律詩) 17수, 칠언율시(七言律詩) 38수 총 95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적으로는 주로 사대부와 교유한 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 어사에게 증정한 장시[奉呈李御史長詩]」, 「이 방백이 솜옷과 먹과 붓을 보내 주었기에 시를 지어 사례하다[上李方伯謝綿墨管]」, 「삼연 선생의 시에 삼가 차운하다[敬次三淵先生高韻]」 등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수석정(水石亭), 보림사(寶林寺) 등지의 정취를 읊은 시와 백암 성총을 비롯하여 여러 상인(上人)과의 교유시도 수록되어 있다.
권하에는 서간문(書簡文) 10편, 서문(序文) 4편, 모연문(募緣文) 6편, 상량문(上樑文) 1편, 기문(記文) 7편, 소문(疏文) 10편, 계문(啓文) 3편, 제문(祭文) 3편 총 44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서간문은 최계옹(崔啓翁, 1654~1720)과 임상덕(林象德, 1683~1719) 등 사대부와 교유한 글로 구성되었으며, 계문 또한 관찰사 등 지방관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글이 수록되었다. 한편 그가 남긴 서문으로 백암 성총의 문집인 『백암집(栢庵集)』,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주석서를 회편한 『심경소기회편心經䟽記會編』, 수륙재(水陸齋) 의식집인 『범음산보집(梵音刪補集)』,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의 주석서인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의 서문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태안사(泰安寺), 송광사 등지의 중창 불사와 관계된 모연문 및 상량문과 조계산(曹溪山), 대광산(大光山) 일대 사암(寺庵)과 관련된 기문이 수록되었다. 또한 각종 의식과 추천(追薦)을 위한 소문과 제문도 전해진다.
4. 편찬과 간행
『무용당유고』는 무용 수연이 입적한 후, 문인 영해 약탄이 1724년(영조 즉위년) 12월 송광사에서 간행하였다. 구체적인 간행 과정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행장에 의하면 무용 수연이 남긴 많은 글 중에 정밀하고 중요한 것만 간추려서 판각하여 간행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집필자: 김선기(순천대)
※ 목판 사항
『무용당유고』의 목판은 1판2면의 형태로 일부 판이 결실되어 총 31판이 전해지고 있다. 「遺稿下」의 (27, ×) 목판만 한쪽 면만을 판각하였고, 나머지 판은 양쪽 모두 판각하였다. 목판의 크기는 세로 19.9-22.2cm, 가로 43.0-46.0cm, 두께 1.8-3.9cm이다. 목판의 무게는 1.24-2.50kg으로 평균 1.62kg이다. 마구리는 따로 제작 후 목판의 장부에 끼워 결합하였다. 마구리에는 내용을 식별할 수 있는 ‘無用’의 표시가 있다. 근래 10판은 새로 교체한 상태이나, 6판은 한쪽 또는 양쪽 마구리가 결손된 상태이며,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목판의 상태는 전체적으로 균열이 보이며, 일부 충해가 나타나 있다. (김은진(동국대) 정리)
참고문헌
『동사열전(東師列傳)』
『무용당유고(無用堂遺稿)』
김용태(2010),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신구문화사.
김종진(2015), 「무용당유고無用堂遺稿 해제」, 『(한글본 한국불교전서)무용당유고』, 동국대학교출판부.
문화재청‧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2015), 『한국의 사찰문화재: 2014 전국 사찰 목판 일제조사』 4 전라남도_2, ㈜조계종출판사.
이종수(2008), 「숙종 7년 중국선박의 표착과 백암성총의 불서간행」, 『불교학연구』 21, 불교학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