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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법우(弘法友)

《홍법우弘法友》는 봉선사奉先寺 홍법강우회弘法講友會에서 1938년 3월 12일에 펴낸 잡지이다. 현재 《홍법우》 1호, 즉 창간호만 전하지만 그후에도 계속 간행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홍법강우회는 봉선사의 홍법강원의 재학생들로 구성된 모임이었으며, 홍법우는 봉선사 강원 학우의 통칭이었다고 한다. 홍법강원은 봉선사 주지로 있던 홍월초洪月初가 1934년에 입적하면서 남긴 ‘유촉遺囑’에 의하여 1936년에 설립되었으나, 1943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문閉門’ 하였다고 한다. 이 잡지의 발행 겸 편집인은 홍법강우회의 문예부 위원이었던 이재복李在福이었으며, 잡지의 말미에 비매품非賣品이라고 전한 것을 보면 이 《홍법우》는 사찰 등지에 무료로 배포한 것 같다. 홍법강우회는 《불교시보佛敎時報》71호(1941. 6. 15)에 그 단체명이 전하는 것을 보면 1941년까지는 명맥을 유지 하였으며 1943년 강원이 ’폐문’할 때까지는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잡지는 봉선사 평의원회에서 지원한 160원의 자금으로 간행 되었으며, 홍법강원의 기관지 성격을 갖고 있었다. 홍법강우회에서 이 《홍법우》를 간행하면서 전선강원全鮮講院의 기관지機關誌를 펴낼 것을 기대 한다고 한 것에서는 당시 여타의 강원 및 전국적인 기관지 발간이 없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1928년 3월, 전국 학인學人들은 각황사에서 조선불교학인대회朝鮮佛敎學人大會를 개최하여 강원교육의 재정비를 통한 불교발전을 기하였다. 그 대회는 이운허, 이순호 등이 주도하 여 개최되었는바, 당시 전국 강원의 학인들은 조선불교학인연맹朝鮮佛敎學人聯盟을 결성하여 그 운동을 조직화하였다. 그후 그 연맹의 사무소는 유점사, 개운사, 통도사 등지로 이전되기도 하였다. 당시 그 학인연맹의 기관지였던 《회광回光》(이순호 주간)이 2호(1929. 3. 6, 1932. 3. 16)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 《홍법우》에는 봉선사의 홍법강원 및 당시 전국 강원들의 전모를 알려주는 귀중한 내용이 다수 있다. 즉, 봉선사 강원의 원칙과 강령綱領이 전하고, 홍법강원의 설립 과정, 홍법강우회의 임원, 전 조선 강원의 학인명부學人名簿가 실려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1930년대 중반의 전국 강원의 전모와 함께 그 강원 학인들의 성명・연령・소속 사찰 등이 각各 과科별로 일목요연하게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에 의하면 당시 강원은 32개처, 그 학인들은 662명이라고 전한다. 그 러므로 이 잡지는 일제시대 강원 및 학인연구에 있어서 절대로 필요한 사료의 가치를 갖고 있는 자료라 단정해도 무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