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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보(佛敎時報)

《불교시보佛敎時報》는 김태흡金泰洽(대은大隱)이 주관한 불교시보사佛敎時報社에서 1935년 8월에 창간호를 펴낸 이래 매월 1회씩 105호(1944. 4)까지 나온 불교잡지이다. 당시 불교계에서는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에서 간행한 《불교佛敎》지가 1924년 7월에 창간되어 1933년 7월의 108호까지 나왔지만, 불교계 내분으로 인하여 그 잡지가 일시 휴간됨으로 인해 보도지가 없었다. 그리고 1929년 1월의 승려대회 이후 《조선불교선교양종종보朝鮮佛敎禪敎兩宗宗報》도 간행되었으나 이 ‘종보宗報’불교계의 통일운동이 미진함에 따라 종간되었다. 이러한 교계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온 잡지가 《불교시보》인 것이다.
이에, 《불교시보》의 주간인 김태흡은 불교계의 소식을 전하는 동시에 종교부활, 정신작흥作興, 신앙고취를 내세우면서도 심전개발운동의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목적에서 이 잡지를 간행하였다. 불교시보사의 간부로는 고문에 박한영朴漢永, 권상로權相老, 김포광金包光, 안진호安震湖, 주간主幹에 김태흡, 사원에 조동호趙東鎬, 이상렬李相烈, 박윤진朴允進 등의 인명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불교시보사는 국내 및 일본에 지국支局을 17개 처에 설치하였다. 《불교시보》는 5,000여 부가 발행되어 전국의 사찰, 포교당, 공공기관, 불교신도 등에게 배포되었다. 그러나 《불교시보》는 일제의 군국주의가 가속화되자 ‘비상조치결전시국하의 국가요청非常措置決戰時局下의 國家要請’에 협조 한다는 명목하에 105호로써 자진 ‘休刊휴간’하여 결과적으로 종간終刊되었던 것이다.
《불교시보》의 성격을 이해함에 있어서는 우선 창간시부터 내세운 3대 강령인 자수자리自修自利, 이타겸제利他兼濟, 대은보사(국왕은國王恩, 부모은父母恩, 삼보은三寶恩, 사장은師長恩, 중생은衆生恩)라는 내용을 고려할 수 있다. 이러한 강령을 실천하기 위해 불교시보사는 법등계소法燈繼紹의 헌신적 희생, 교계시사敎界時事의 보도 충실, 불교정신의 진력선전盡力宣傳 등의 강목綱目을 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잡지는 창간시부터 심전개발운동心田開發運動에 동참하는 것을 내세웠으며, 1937년 중일전쟁 직후부터는 ‘황도皇道’선전宣傳을 목표하는 종교보국운동宗敎報國運動에 전력한다고 표방하였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이 가속화되면서 일제의 군국주의 통치가 강화되자 불교시보의 강령이 황도불교선양皇道佛敎宣揚, 감사보은철저感謝報恩徹底, 포교보국강화布敎報國强化 등으로 전환된 것도 그 사정을 반영 한 것이다. 이는 곧 일제 식민통치에 일정한 협조를 강조 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성향은 불교시보사가 스스로 조선불교의 ‘보도탑報道塔’이요, 심전개발의 ‘선전지宣傳誌’로 자임한 데에서도 단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1937년부터 1945년 해방될 당시까지의 불교계 동향 특히 ‘친일불교’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잡지의 철저한 분석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편집의 구성은 사설社說, 수양강화修養講話, 신앙실화信仰實話, 교계소식敎界消息 등을 기본으로 하였으나 그 밖에도 불교교리 및 사상과 관련된 내용, 교계 동향에 대한 기고문, 문예물 등도 다수 보이고 있다. 특히 교계소식은 당시 여타 불교지가 빈약한 상황이기에 당시 불교계의 동향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어 이 잡지의 사료적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매년 1월호에는 근하신년謹賀新年란을 설정하였는데, 그 난에는 불교계 다수 인사의 소속된 사찰 및 단체명과 동시에 그 직무職務를 전해 주고 있어 불교사 연구의 기초자료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불교시보》의 간행 및 운영을 주로 김태흡이 담당하였기에 그 간행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연 경비가 2,000원 이상이나 부담되었기에, 그 간행의 고초를 김태흡의 표현으로 살펴보면, 사옥의 터를 빼앗기거나, 집을 빼앗기고, 노지露地에 나앉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 주기 위해 당시 교계에서는 불교시보 후원회를 1939년 9월에 조직하였다. 봉은사奉恩寺의 관동포교당유지회館洞布敎堂維持會 간부가 주동이 되어 조직된 그 후원회는 경영에 고민하였던 김태흡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당시 그 후원회의 회장은 김취운金翠雲, 부회장 김동봉金東峰, 간사장 홍태욱洪泰旭, 간사 정태정鄭泰正, 박윤진朴允進 등, 고문 강성인姜性仁, 박한영朴漢永, 김포광金包光, 이종욱李鍾郁 등의 인사를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