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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1. 저자
보조 지눌普照知訥(1158~1210) 속성은 정鄭, 시호는 불일보조 국사佛日普照國師. 8세에 종휘宗輝 선사에게 축발祝髮하고, 25세에 개경 보제사普濟寺에서 실시한 승선僧選에 합격하였다. 이후 창평현(전남 담양) 청원사淸源寺에서 『육조단경』을 열람하다가 깨달은 바가 있었으며, 28세에 하가산 보문사普門寺에서 대장경을 읽던 중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을 보다가 더욱 밝게 깨달았으며, 40세에 『대혜어록』을 읽다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 31세가 되던 1188년에 팔공산 거조사居祖寺에 내려가 정혜결사定慧結社를 맺었고, 1190년에 『권수정혜결사문』을 지었다. 1200년에 조계산 송광사松廣寺로 옮겨 결사를 지속하였다.
2. 서지 사항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松廣寺, 1608년(선조 41) 발행. 목판본. 1책. 24.9×17.0cm.
3. 구성과 내용
본서는 총 9,559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론ㆍ본론ㆍ결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서론에서는 정혜결사를 해야만 하는 동기와 배경을 밝히고 있다. 마음을 닦아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 수행자의 본분이고, 부처님과 국왕과 부모와 시주자의 사은四恩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개경 보제사 담선법회談禪法會에서 동학同學 10여 인과 함께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정혜결사를 결의하였다는 것이다.
이어서 본론에서는 정혜결사에 대한 일곱 가지 질문에 답변함으로써 결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① 말법 시대에 선정과 지혜를 닦는 것보다 부지런히 염불하여 정토에 태어나기 위한 업을 닦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② 왜 오늘날 선禪의 수행자들은 신통과 지혜를 드러내지 못하는가? ③ 자신의 참 성품이 본래 원만히 이루어진 것이라면 왜 수행해야 하는가? ④ 마음을 관찰하여 부처의 도道를 이루는 것은 상근기上根機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⑤ 경전에서는 수행의 계위階位를 거쳐 구경究竟에 이른다고 하였는데 선정과 지혜의 두 문門에 의해 구경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견해가 아닌가? ⑥ 학문을 널리 배워서 중생을 위해 설법하면 마음 수행에 방해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중생 제도를 위한 이타행을 하지 않으면 고요함만을 추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⑦ 선정과 지혜를 닦더라도 도력道力이 충분하지 못하면 정토를 구하는 것만 못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일곱 가지 질문에 대해, 시대는 변하지만 심성은 변하지 않으므로 바른 믿음과 바른 앎에 기초하여 선정과 지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 염불과 학문도 중요하지만 모든 중생에게 근본이 되는 본래의 깨끗한 마음을 닦는다면 누구나 부처의 도를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마지막 결론에서는 보제사 담선법회에서 만났던 동료들이 일곱 가지 질문에 대해 이해하고 결사를 다짐하였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결사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팔공산 거조사에서 결사를 시작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결사의 뜻을 널리 알려 함께 수행하고자 하는 이들의 참여를 호소하고자 결사문을 짓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글은 고려시대에 판각되어 유포된 이래, 1608년 순천 송광사, 1635년 태인 용장사龍藏寺, 1681년 울산 운흥사雲興寺, 1850년 천마산 봉인사奉印寺의 판각본이 현존하고 있다. 이로 볼 때 조선 후기에 수행자들의 수행 권면을 위해 널리 보급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