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자
태현太賢(생몰년 미상) 태현의 이름에 대해 『삼국유사』를 포함한 한국과 중국의 문헌들에서는 대현大賢이라 칭하는 경우가 많고, 일본의 주석서에서는 태현太賢이라 표기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원측의 고족인 도증道證의 제자이다. 그가 경주 남산南山의 용장사茸長寺에 머물 때 1장 6척의 미륵보살 석상 주위를 돌면 석상도 태현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는 기록과 경덕왕景德王 천보天寶 12년(753) 여름 큰 가뭄이 들었을 때, 태현이 『금광명경金光明經』을 강의하면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자 대궐의 우물물이 높이 솟구쳤다는 기록이 전한다.
2. 서지 사항
『속장경』 제1편 80투 1책.
3. 구성과 내용
『성유식론학기』가 수록되어 있는 『속장경』의 모두冒頭에는 ‘보살장아비달마고적기菩薩藏阿毗達摩古迹記’, 의천義天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는 ‘성유식론고적기成唯識論古迹記’라고 되어 있다.
이 책은 『성유식론成唯識論』에 대한 주석서로서, 총 3문門으로 되어 있다. 첫째 문은 종과 체를 나타낸 문(顯宗出體門)이다. 여기서는 ‘종’을 크게 청변종淸辨宗과 호법종護法宗으로 구분하고, 이 논은 호법이 주장한 유식중도唯識中道의 경境ㆍ행行ㆍ과果 세 가지를 종으로 삼는다는 것을 밝힌다. 또 ‘체’를 논한 곳에서는 규기窺基의 4문과 원측圓測의 5문, 대당삼장大唐三藏의 8문을 통해 성스런 교설의 본질(敎體)에 대한 법상종의 세 가지 해석을 소개한다. 둘째 문은 논의 제명에 대해 분별한 문(題名分別門)으로서, ‘유식의 이치를 성립시키는 논’이라는 의미에서 ‘성유식론’이라 명명했음을 밝힌다. 셋째 문은 본문의 뜻을 해석한 문(解釋文義門)으로서, 태현은 삼분과경三分科經의 틀에 따라서 이 논을 교기인연분敎起因緣分과 성교정설분聖敎正說分과 결명회시분結名迴施分으로 삼분하였다. 이 중에 처음의 교기인연분이란 논을 짓게 된 취지를 밝힌 서두의 귀경송歸敬頌과 장행長行을 가리키고, 마지막 결명회시분이란 논의 끝부분에서 ‘성유식론’이라 명명한 이유를 결론짓고 나서 이 논의 공덕을 회시하겠다고 서원하는 대목을 가리킨다. 중간의 ‘성교정설분’은 이 논의 본문에 대한 본격적 해석이다.
태현은 법상학자들의 전통적 해석 방식에 따라 이 논의 성교정설분을 유식唯識의 경境ㆍ행行ㆍ과果로 나누었다. ‘경’이란 보살들이 배우고 알아야 할 경계들을 가리키고, ‘행’이란 그런 경계에 의거해서 일으킨 수행을 가리키며, ‘과’란 이전의 경ㆍ행에 의해 획득되는 과(해탈과 보리)를 가리킨다. 그런데 『성유식론』이 본래 세친世親의 〈유식삼십송〉에 대한 인도 유식학자들의 해석을 편집해 놓은 책이기 때문에 태현 또한 이 논의 내용을 본송本頌을 기준으로 삼분하였다. 앞의 25송은 유식의 경境을, 다음의 네 송은 유식의 행行을, 마지막 한 송은 유식의 과果를 밝힌 것이다.
첫째, 유식의 경을 밝힌 곳에서, 처음(1송 반)은 ‘식소변識所變’에 의거해서 아我ㆍ법法에 해당하는 종종의 언설을 일으켰음을 나타낸 것인데, 이는 이 논의 종지가 ‘유식’임을 표명한 것이다. 다음(14송 반)은 아뢰야식阿賴耶識과 말나식末那識과 요별경식了別境識 세 종류 능변식能變識의 상相을 중심으로 유식의 이치를 자세히 해석하였다. 마지막(9송)은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는 종지와 관련해서 외인들이 제기할 수 있는 몇 가지 힐난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둘째, 유식의 행을 밝힌 곳에서는 ‘유식성唯識性’을 깨달아 가는 유식오위唯識五位, 즉 자량위資糧位ㆍ가행위加行位ㆍ통달위通達位ㆍ수습위修習位ㆍ구경위究竟位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셋째, 유식의 과를 밝힌 곳에서는 전의轉依의 과로서 무루계無漏界ㆍ부사의不思議ㆍ선善ㆍ상常 등의 상相에 대해 설한다.
태현의 『성유식론학기』는 기존의 『성유식론』 주석서를 참고로 해서 저술된 것으로, 특히 규기窺基의 『성유식론장중추요成唯識論掌中樞要』와 원측圓測의 『성유식론소成唯識論疏』, 그리고 원측의 제자 도증道證의 『성유식론요집成唯識論要集』의 설을 많이 언급하고 있다. 『학기』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법상종 내에서 자은파慈恩派와 서명파西明派를 만들어 낸 규기窺基와 원측圓測의 학설을 비교적 대등하게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은파의 혜소慧沼가 『성유식론요의등成唯識論了義燈』에서 규기의 설을 선양하고 원측과 도증의 설을 배척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원측의 제자 도증에게서 유식학을 배운 태현이 그 두 사람의 학설을 융화시키려 했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학기』는 당시의 신라 유식학자들의 유식학 연구 풍토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앞으로 여러 각도에서 학문적으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는 문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