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자
원효元曉(617~686) 시호는 화쟁 국사和諍國師, 속성은 설薛. 15세 전후에 출가하였다.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을 시도하였으나 ‘마음 밖에 법이 없다(三界唯心 萬法唯識)’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바꾸었다. 그 후 수많은 다양한 저술을 남겼는데, 저술의 특징으로 ‘종요宗要’와 ‘대의大義’라는 형식과 체재를 들 수 있으며, 일심에 바탕을 둔 화회和會, 화쟁和諍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분황사芬皇寺에서 『화엄경』「십회향품」을 주석한 후 절필하고는 무애행으로 민중 교화에 헌신하였다.
2. 서지 사항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海印寺, 발행년 미상. 목판본. 35.5×30.0cm. 완본이 아니고 모두 4면이 남아 있다. 이것은 고려 때 판각한 것으로 조사된 판목이다. 남은 4장도 완전한 것이 아니고 중간 중간 빠진 것을 순서대로 합친 것이다. 사간장 판본의 맨 처음 시작 부분은 제8쪽 후반부터이다. 여기서부터 9, 10의 2쪽은 완전하고 11, 12, 13, 14의 4쪽이 결락되었으며 이어 15쪽은 온전하고 16쪽의 전반 반쪽이 남아, 전체를 합치면 모두 4쪽이 된다. 또 『한국불교전서』의 마지막 1쪽인 최범술崔凡述의 복원 부분은 『이장의二障義』의 끝 부분을 잘못 복원한 것이며, 맨 앞부분은 「서당화상비문誓幢和尙碑文」의 내용 중 일부를 합친 것이다.
3. 구성과 내용
『한국불교전서』에 수록된 『십문화쟁론』은 서당화상 비편碑片 일부와 『십문화쟁론』 일부, 그리고 최범술 복원 부분을 함께 실은 것이다. 중간 부분만이 『십문화쟁론』 본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십문화쟁론』은 화쟁을 10부문으로 나누어 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남아 있는 부분에 ① 유무화쟁有無和諍, ② 삼성동이화쟁三性同異和諍, ③ 무성유정유무화쟁無性有情有無和諍 등 세 가지의 주제가 포함되어 있지만 각 문門을 표시하는 표제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10부문의 주제를 다루었다 하더라도 개별의 10문을 세웠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비록 남아 있는 『십문화쟁론』이 4장의 단편에 불과하지만, 공유空有ㆍ삼성동이三性同異ㆍ무성유정유무無性有情有無 등 사상사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을 화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효는 이러한 쟁점들을 객관적인 자료와 종宗ㆍ인因ㆍ유喩라는 논리적인 방법을 통해 화쟁하고 있지만 그의 화쟁은 논리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는다. 논리를 통해 논리를 극복함으로써 진정한 화회의 바다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논서이다.